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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동욱의 파피루스] 4차 산업혁명은 판단력의 문제다

    [서동욱의 파피루스] 4차 산업혁명은 판단력의 문제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등을 기반으로 삶에서 이루어지는 급격한 변화를 일컫는다. 이 혁명의 핵심에 ‘판단력’이 있다. 일상에서 사람들은 흔히 ‘결정’ 장애를 호소한다. 판단을 내리는 일만큼 어렵고 중요한 것이 없음을 알려 준다. 판단력은 흥미로운 탐구 대상이다. 구구단이나 역사적 사실이나 영문법은 가르치지만 판단력은 가르칠 수 없다. 자수성가한 재벌 1세보다 2세는 경영학의 원리를 많이 학습하지만 회사를 말아먹는 경우가 있다. 원리를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를 사례에 적용하는 판단력이 관건이고, 원리는 학습할 수 있으나 판단력은 학습되지 않는 까닭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의 판단력을 훔치지 못한다. 그래서 ‘판단력 비판’의 저자 칸트는 판단력을 ‘천부의 자질’이라 했다.판단력은 그것을 지도하는 상위의 교본이 없는 근본 지위에 있는 것이다. 가령 의학상의 규칙, 치료 요법 전체를 잘 공부한 의사를 생각해 보자. 그 의학 지식과는 별도로 환자에게 어떤 의학 지식, 어떤 치료 규칙을 적용해야 하는지는 전적으로 그의 능력에 달렸다. 그 능력을 판단력이라 부른다. 개별적으로 주어진 사례에 어떤 보편적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합당한지 결정하는 능력 말이다. 명의와 의료 사고를 내는 의사가 갈리는 지점은 바로 저런 판단력의 유무다. 판단력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히틀러의 법학자인 칼 슈미트가 몰두했던 것 역시 내가 보기엔 ‘판단력의 문제’다. ‘정치신학’에서 ‘독재’를 옹호한 이 법학자는 규칙은 완벽히 합리적으로 구성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가령 국가에 예산법이 없는데,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면 어쩔 것인가? 이런 예외 상태에 대해 법은 답하지 못한다. 국법은 거기서 끝난다. 그러면 법적 절차가 진행되지 못할 때 누가 법 대신 결정하는가? 바로 법 위에 있는 통치자가 결정한다. 인류는 오래도록 법이 예외 상태와 맞닥뜨려 무용지물이 되지 않도록, 완벽히 합리적이도록 법을 다듬어 나갔다. 슈미트의 주장은 그래 봤자 법은 예외 상태와 마주쳐 어쩔 줄 모르며, 법이 무용지물이 된 이 예외 상태는 법 위에 있는 통치자의 결정, 재량, 바로 독창적인 판단력에 따라 타개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법 위에 한 인격의 천부의 재능인 판단력, 결정하는 능력이 놓인다. 이렇게 규칙 위에 통치자의 판단력을 위치 짓는 이 사상은 히틀러 같은 독재자를 위한 법철학이다. 규칙이 아무리 합리적으로 마련되더라도 규칙은 그 자체로는 영위될 수 없고 결국 인격이 지닌 천부의 재능인 판단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인간이 걸어온 합리주의에 대한 의심이다. 인류는 한 인격(또는 공모적인 몇몇 인격)의 판단력이 인간 사회를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인격에 의존하지 않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예외 없이 작동하는 익명의 규칙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민주주의 자체가 이 예외 없는 익명적 규칙을 존중하며, 여기에 예외를 두고 끼어드는 한 인격의 판단력(독재자가 행사하는 유신이나 긴급권)을 못 참는다. 4차 산업혁명의 의의는 바로 인공지능이 인간 고유 능력인 판단력의 자리를 넘본다는 데 있다. 예외가 생겨 무너지는 합리적인 규칙을 완벽하게 만들고, 완벽하게 개개 경우에 적용하는 혁명으로서 의의 말이다. 가령 알파고는 돌이 놓일 가장 좋은 자리를 판단한다. 그 판단이 실수를 저질렀을 때 사람들은 신기해하고 즐거워하지만, 인공지능은 곧 그 예외를 합리성으로 만회한다. ‘딥러닝.’ 바로 기계학습을 하는 까닭이다. 점점 더 예외 상태(적용돼야 할 규칙이 무용하게 되는 상태)가 발생하는 치욕은 사라지고, 합리성의 자리를 한 인격의 판단력(총기를 잃었을 때는 변덕, 객기, 우유부단)에게 내주는 일은 없어진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잘못 판단하는 사태(인간에 대한 공격)를 우려한다. 그것은 사실 인간의 재앙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겪는 재앙이다. 인공지능 스스로 예외 상태를 허용해 다시 한 인간의 판단력에, 존 오코너 같은 원시적 영웅의 결단에 자기 자리를 양보하게 되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인간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진 않는다. 인공지능을 다독이며 다시 합리성을 향한 길로 나가 차세대 판단력 혁명을 준비할 것이다.
  • 프랑스 상징 만든 중세 ‘악마의 동물’

    프랑스 상징 만든 중세 ‘악마의 동물’

    돼지에게 살해된 왕/미셸 파스투로 지음/주나미 옮김/오롯/320쪽/2만 5000원프랑스 국가대표 축구 대표팀은 ‘레블뢰’(Les Bleus=The Blues)라 불린다. 파란색 유니폼을 입어서다. 프랑스대혁명 직후인 1793년부터 1800년까지 프랑스 서부 지역에서 벌어진 방데전쟁에서 왕당파와 맞서 싸웠던 혁명군도 ‘레블뢰’라 불렸다. 그들도 파란색 옷을 입고 있었다. 중세 시절 유럽 다른 왕조 대부분은 동물을 문장(紋章)으로 사용했다. 예컨대 잉글랜드와 덴마크 왕국은 레오파르두스를, 스코틀랜드와 레온, 보헤미아, 노르웨이 왕국은 사자를, 스웨덴 왕국은 황소를 상징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프랑스 왕국은 평화와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을 내세웠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백합의 기원은 12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랑스 카페 왕조가 파란색 바탕에 금색 백합꽃이 총총하게 그려진 문장을 갑옷과 깃발 등에 사용하면서부터다. 그렇다면 이 문장들은 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갑자기 왕에게 뛰어든 돼지 때문’이라면 너무 이상한가. 프랑스 중세사학자 미셸 파스투로의 ‘돼지에게 살해된 왕’은 이 과정을 추적한다.1131년 10월 13일의 일이다. 프랑스 루이 6세의 맏아들 15살 필리프가 파리 근교에서 낙마 사고로 죽었다. 그가 타고 있던 말 다리 사이로 돼지 한 마리가 갑자기 뛰어들었다. 말에서 떨어진 필리프는 돌에 세게 부딪혔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단순한 낙마 사고였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뛰어든 동물이 하필 ‘돼지’였다. 돼지는 중세 라틴어로 목구멍을 의미하는 ‘굴라’(gula)로 불렸다. 현대 프랑스어로 풀이하면 ‘탐식’이다. 더럽고 불결했으며, 음욕으로 가득하며, 절대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지옥을 상징하는 땅만 바라본다. 돼지는 그래서 ‘악마의 동물’로 여겨졌다. 야생 멧돼지를 사냥하다 죽는 일은 전사다운 명예로운 죽음이었지만, 가축 돼지에 의해 당한 죽음은 불명예였다. 사람들은 이 수치스런 죽음을 두고 ‘신이 내린 벌’이라 수군거렸다. 역사가들은 급기야 필리프를 ‘돼지에게 살해된 왕’으로 불렀다. 죽은 필리프를 대신해 왕위에 오른 루이 7세는 교황에 맞서고 실정을 거듭하면서 교회의 분노를 샀다. 왕가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왕은 명예를 회복하려고 왕비와 함께 직접 제2차 십자군에 참여했다. 그러나 원정은 무참한 실패로 끝났다.“모든 게 돼지 때문”이었다. 루이 7세는 불명예스런 필리프 왕자의 죽음의 흔적을 지우고자 교회와 손을 잡았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왕국의 수호자이자 프랑스의 여왕으로 삼기로 했다. 성모 마리아의 그림에서 가져온 백합, 그리고 신을 상징하는 파란색을 내세웠다. 쉬제르 수도원장은 생드니 수도원 교회를 개축하면서 처음으로 화려한 파란색 유리를 이용한 성모 마리아의 그림을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했다. 이어 샤르트르 대성당을 비롯한 왕국 교회들도 이런 유행을 따랐다. 파란색 바탕에 금빛의 노란 백합꽃은 이렇게 왕국을 상징하는 문장으로 발돋움했다. 불명예를 가리기 위한 왕가의 노력과 당시 막강한 권세를 지녔던 중세 시대 교회 세력의 이해관계가 맞닿은 지점이기도 했다. 중세 상징사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미셸 파스투로는 문장과 동물, 색이라는 주제로 이렇게 감춰진 역사를 꿰뚫었다. 작가는 고교 시절 역사책에서 필리프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강렬한 흥미를 느꼈다. 동물과 문장에 관한 철저한 조사를 거쳐 결국 프랑스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백합꽃까지 추적하는 데에만 무려 50년이 걸렸다. 저자가 1983년부터 2015년까지 각종 세미나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하자 “우리가 그동안 필리프 왕자의 이상한 죽음을 간과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덧붙여 돼지를 위한 변명 한마디. 돼지는 물을 좋아하고, 공간이 충분하고 너무 덥지만 않으면 깨끗하게 산다. 땀을 배출하기 어려운 신체 구조상 열을 식히려고 물이나 진흙을 찾는다. 무엇보다 맛있는 고기를 비롯해 각종 부속물을 인간에게 아낌없이 제공한다. 이런 고마운 동물을 악마라 여기다니, 중세 사람들 해도 너무들 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선승 경헌 기리려 제자들이 세운 제월당 탑비… ‘불살생 계행’을 엿보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선승 경헌 기리려 제자들이 세운 제월당 탑비… ‘불살생 계행’을 엿보다

    경기 연천 심원사(深源寺)는 647년(신라 진덕여왕 1) 영원이 창건한 것으로 전한다. 처음 이름은 흥림사(興林寺)였는데, 1393년(조선 태조 2) 불탄 것을 1395년 자초가 중창하면서 영주산(靈珠山)을 보개산(寶蓋山)으로 바꾸고, 절 이름도 심원사로 고쳤다는 이야기다. 720년(신라 성덕왕 19) 사냥꾼 형제가 지장보살의 감화를 입어 산내암자인 석대암(石臺庵)을 세우면서 우리나라 제일의 지장성지로 이름이 났다고도 한다.엄밀히 따지면 심원사는 지금 연천이 아닌 보개산의 동쪽 너머 강원 철원에 있다. 심원사가 자리잡은 보개산은 군사 요충이다. 절은 1950년 6·25전쟁 당시 완전히 파괴됐고, 이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됐다. 지금도 원래의 심원사 일대에는 대규모 포병부대가 있다. 전쟁이 끝나고 주지였던 김상기가 강원 철원 동송읍에 같은 이름의 절을 세웠다. 철원 심원사의 큰법당은 명주전(明珠殿)이다. 명주전 지장보살상은 석대암 불상이라고 한다. 지장보살을 모시는 전각을 지장전(地藏殿)이나 명부전(冥府殿)이라 한다. 지하 세계의 어두움을 강조한다. 그런데 철원 심원사는 어두울 명(冥)을 밝을 명(明)으로 바꿔 놓았다. 연천 심원사도 발굴조사를 거쳐 전각을 복원하고 있다. 두 심원사는 모두 속초 신흥사의 말사다. 연천이 아닌 철원의 심원사가 옛 이름을 이어 받은 것은 전쟁통에도 법등(法燈)을 꺼뜨리지 않은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 연천 심원사는 이제 원(元)심원사라 부른다. 철원 심원사는 명주전이 대웅전이나 극락전보다 훨씬 크다. 모셔진 지장보살상이 절집에 비해 너무 작아 보일 정도다. 반면 연천 심원사는 대웅전이 가장 크고 극락보전과 지장전이 뒤를 잇는다. 철원에 심원사를 중창하면서 상징성을 살려 지장신앙의 성지(聖地)를 재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 보개산에 대한 설명은 잘 알려진 고대산을 중심으로 하는 게 좋겠다. 연천 고대산에 오르는 등산객은 경원선 신탄리역을 많이 이용한다. 고대산 남쪽 자락에 금학산이 있고, 다시 그 남쪽 연천과 철원 경계에 보개산이 있다. 옛 심원사에 가려면 연천과 철원을 잇는 국도 3호선을 타는 것이 좋다. 불교에서 보개(寶蓋)란 불보살이 머리에 쓰는 장식을 말한다.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과 경산 팔공산의 관봉 석조여래좌상을 떠올리면 된다. 지장보살상도 두건을 쓰곤 한다. 성스러운 존재의 머리 장식이니 이것도 보개다. 보개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지장봉인 것도 자연스럽다. 풍수지리에서는 명당의 핵심을 이루는 산줄기도 보개라 부른다. 이유가 무엇이건 성지이거나 길지(吉地)라는 의미를 갖는 것은 다르지 않다.오늘 찾아갈 곳은 옛 심원사의 부도밭이다. 연천군청을 지나 북쪽으로 조금 더 달리다 보면 오른쪽 내산리 방향으로 원심원사를 알리는 푯말이 있다. 제법 가파른 산줄기를 넘어가면 산수(山水)가 조화롭다는 느낌인데,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동막계곡이다.심원사 터는 절골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아미천을 건넌 뒤 1㎞가 조금 넘게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모습을 드러낸다. 새로 지은 원심원사 절집들이 멀리 보일 때쯤 왼쪽에 잘 정비되어 있는 부도밭이 나타난다. 전면에는 새로 조성한 아미타불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역시 그리 오래지 않은 공덕비가 하나 보인다. 그 뒤 양쪽으로 탑비 두 기와 함께 열 기가 넘는 부도가 줄지어 있다.대공덕비(大功德碑)는 아직 연륜이 쌓이지 않은 모습이지만, 내력을 살펴보면 의미가 있다. 주인공은 각각 선심화(善心華)와 대선화(大善華)라는 법명의 박기우와 박기석 자매다. 특히 선심화는 참정대신으로 을사늑약 체결을 반대하다 파면된 독립운동가 한규설의 부인이다. 심원사는 1935년 두 사람의 시주로 화산경원(華山經院)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불교연구원이었다는데 역시 전쟁의 와중에 사라졌다. 철원 심원사에 가면 같은 이름의 현대식 건물을 볼 수 있다.부도밭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상은 제월당(霽月堂) 탑비다. 제월당 경헌(1544~1633)은 청허 휴정의 제자로 15세에 출가해 91세에 입적할 때까지 수행에 몰두한 선승(禪僧)이다. 수행과 경전공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선교겸수(禪敎兼修)의 조선 불교 수행관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탑비는 1636년(인조 14) 제자 설현이 세웠다. 부도도 세웠겠지만, 이곳에서는 볼 수 없다. 제월당탑비는 조선시대 탑비로는 유례가 드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각이 매우 화려하다. 비문은 선조의 부마 동양위 신익성이 지었고, 선조의 왕자 의창군 이광이 글씨를 썼다. 한마디로 왕실의 지원으로 부도와 탑비가 세워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전서로 ‘제월당대사비명’(霽月堂大師碑銘)이라고 쓴 머리글을 보면 의창군의 필력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제월당탑비가 흥미로운 것은 왼쪽 측면에 새겨진 다음과 같은 비문의 일부 때문이다. ‘이 돌은 공홍도(公洪道) 홍주(洪州)에서 캐낸 다음 배에 실어 운반했다. 손을 수고롭게 하지 않고 노를 이용해 징파도(澄波渡) 강변에 이르러 군도·승려·속인 5600명을 모아 옮겨 왔다.’ 공홍도는 당시의 충청도, 홍주는 지금의 홍성이다. 징파도는 임진강 상류의 나루다. 돌을 왜 먼 곳에서 가져왔는지 뚜렷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제자들이 스승의 무덤이 부도와 스승의 공적을 새긴 탑비를 세우면서 섬세한 조각이 가능한 질 좋은 석재를 쓰려 노력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경헌은 수도자로 임진왜란을 겪었다. 그의 스승 청허 휴정, 곧 서산대사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당시 승군을 이끌며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하지만 경헌은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 탑비에는 제월당이 ‘선조로부터 고위군직인 좌영장(左營將)을 제수받고 잠깐 군문(軍門)에 나갔다가 곧바로 사의를 표했고, 판선교양종사(判禪敎兩宗事) 벼슬을 받고는 아예 종적을 감추고 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새겼다. 하지만 송암도사 홍택의 ‘제월당대사행적(行蹟)’을 보면 탑비의 표현은 매우 완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적’은 ‘선조가 좌영장의 직첩을 친히 주셨지만, 대사는 굳이 사양하여 돌보지 않고 구석진 곳으로 피해 숨어 살았다’고 적었다. 판선교양종사도 사양하여 물리치면서 ‘만리의 강물도 악명(惡名)을 씻어가지는 못한다’며 직첩을 돌려보내고는 묘향산에 숨어 지냈다는 것이다. 척불(斥佛)의 시대, 낫과 칼을 들고 국난 극복에 나서 교단의 위상을 되살린 청허도 중요했겠지만, 불(不)살생의 계행(戒行)을 엄격하게 이어 간 경헌 같은 존재도 조선 불교를 위해서는 의미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미국의 ‘국민 할머니’ 부시/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미국의 ‘국민 할머니’ 부시/최광숙 논설위원

    함성득 전 고려대 교수는 저서 ‘영부인론’(2001년)에서 영부인을 ‘전통적인 내조형’, ‘정치적 내조형’, ‘제3세계형’(전통적 내조나 정치적 내조에서 권력형 축재로 변질됨), ‘전문적 참여형’으로 분류했다. 미국의 역대 퍼스트레이드 가운데 41대 조지 H W 부시의 아내이자 43대 조지 W 부시의 어머니인 바버라 부시(92세)는 ‘전통적인 내조형’으로 볼 수 있다.바버라는 15세 때 크리스마스 댄스파티에서 만나 처음 키스한 한 살 위의 남자와 결혼해 지금까지 73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해 오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전생에 나라를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구하지 않고서는 얻기 어려운 축복받은 인생이다(여성을 가족의 종속 개념이 아닌 독립적 주체로서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정치 명문가의 안방마님인 그는 남편의 대선 때와 달리 아들 부시의 대선 때는 하루에 3개 주를 돌며 연설을 하고, 수천 통의 지지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하는 억척스러운 엄마였다. 소탈하고 유머러스한 아들 부시의 성격은 “시어머니 바버라를 빼닮았다”는 게 며느리 로라의 얘기다. 겉으로는 조용한 내조형이지만 실제 부시 집안에서는 자녀와 손자들의 교육을 맡는 ‘집행자’라고 불린다. 부시 가문 사람 중 가장 적극적이고 정치적이라는 평도 있다. 차남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2016년 대선 출마 의사를 내비치자 “아버지와 형이 큰 변수가 될 것이다. 젭은 절반의 적과 절반의 친구를 갖고 있다”며 차남의 출마를 반대한 이도 그다. 최근 투병 중이던 그가 모든 의학적 치료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한다. 여러 차례 지병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던 그는 추가적인 의학 치료를 받는 대신 ‘편안한 돌봄’을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의학계에서는 이를 ‘소극적 안락사’라고 한다. 바버라는 꾸밈없는 솔직하고 담백한 성품에 유머 감각이 뛰어나 백악관 시절이나 그 이후에나 남편보다 더 인기 있는,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퍼스트레이디였다. 상원 의원의 며느리로, 대통령의 아내로, 대통령의 어머니로 누구보다 화려하고 부유한 삶을 살아왔지만 그는 목에 건 굵은 진주 목걸이를 제외한다면 여느 평범한 동네 할머니의 이미지였다. 백발에 자애로운 모습이다 보니 ‘국민 할머니’라는 별명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그의 투병과 치료 중단 소식에 미국 각계에서 바버라의 편안함을 한마음으로 기원한다고 한다. 쾌유를 바랄 수 없어 안타깝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정권이 바뀌면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이 감옥에 가는 우리의 현실이 떠오른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광진, 어린이 동물보호 교육

    서울 광진구는 동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해 만 5세 이상 어린이를 대상으로 ‘동물보호 교육’을 한다고 17일 밝혔다. 오는 27일부터 12월까지 동물보호 전문 강사가 지역 내 어린이집·유치원 66곳을 순차적으로 돌며 안전사고 예방, 기본 에티켓 등을 교육한다. 반려동물에 착용하는 목걸이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역할 놀이’, 강아지를 키울 때 필요한 물건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움직이는 강아지 인형을 이용해 어린이들의 집중력과 흥미도 높인다. 산책의 중요성과 산책 때 필요한 준비물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낯선 개를 만났을 때의 올바른 대처법 등도 알려 준다. 김기동 광진구청장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을 지속적으로 마련해 아이들이 반려동물의 소중함을 알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흉물로 방치된 군사시설 3500여곳 싹 정리한다

    흉물로 방치된 군사시설 3500여곳 싹 정리한다

    개발 제한·환경오염 유발 민원 일부 지역 버려진 ‘탱크’도 발견정부가 전국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방치된 경계초소 등 국방·군사시설 3500여개에 대해 일제 정리·개선하기로 했다. 이 시설들로 인해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탓에 지역개발이 제한되고, 오래된 폐타이어·철조망으로 환경오염이 유발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특히 일부 지역에선 ‘방치된 탱크’까지 발견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동·서·남해안 지역을 대상으로 미사용 국방·군사시설 실태에 대한 기획조사를 한 뒤 일제 정리 및 개선방안을 국방부에 권고했다고 16일 밝혔다. 권익위가 이처럼 실태조사에 나선 까닭은 해안 지역에 방치된 국방·군사시설에 대한 민원이 지속적으로 접수됐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해안 지역의 군사시설 철거와 관련한 민원 75건이 제기됐고, 내륙과 주거지역에는 165건의 민원이 제기됐다. 이에 권익위는 인력 10여명을 투입해 휴전선 밑 전국 해안 8695㎞(12개 사단, 55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 충청 지역은 해안선을 돌며 전수조사했고, 전라·경상지역은 지자체별 2~3개 지역을 골라 현장조사를 벌였다. 경기·강원지역은 의견수렴 방식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권익위는 3500~4000개에 이르는 문제 시설을 발견했다. 다만 정확한 집계는 내지 않았다. “현장조사를 해본 결과 방치된 군사시설이 너무 많아 숫자를 세는 게 무의미했다”는 게 권익위의 설명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1960~1980년대까지만 해도 해안선 인근은 병력 위주의 방어를 펼쳐 경계초소 등을 설치했지만, 1990년대 접어들어 과학화 감시장비가 발달해 기존 시설의 사용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며 “이는 자연스럽게 방치현상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무단 설치된 국방·군사시설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인한 부당한 재산권 제한 ▲건축 폐기물 방치 등 환경오염 유발 ▲안전조치가 필요한 시설 등이 그렇다. 물론 이런 유형이 딱 나뉘는 건 아니다. 한 지자체에 설치된 경계초소는 사유지에 무단으로 설치돼 있으면서, 유휴시설임에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민간의 재산권 행사를 방해하고 있었다. 전남 진도군의 한 지역은 사유지 내 군사시설이 무단으로 방치돼 있어 인근의 휴양지 개발을 막기도 했다. 특히 어떤 지역은 군사시설을 철거했음에도 건축 폐기물이 수거되지 않아 환경오염 및 우범지대화될 우려도 있었다. 일부 지역에선 방치된 탱크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군 주둔으로 인한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적극적이고 선제로 제도를 개선하고, 지역 주민과 상생하는 군사시설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군 작전수행에 제한이 없도록 하면서 국민 편익과 지역 균형발전을 높인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국방부는 실태 전수조사, 합동 현장검증, 시범사업 추진, 관련 법령·제도개선 등 국방·군사시설의 정리 및 개선을 원활하게 추진하고자 권익위와 긴밀히 협업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흉물로 방치된 군사시설 3500여곳 싹 정리한다

    정부가 전국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방치된 경계초소 등 국방·군사시설 3500여개에 대해 일제 정리·개선하기로 했다. 이 시설들로 인해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탓에 지역개발이 제한되고, 오래된 폐타이어·철조망으로 환경오염이 유발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특히 일부 지역에선 ‘방치된 탱크’까지 발견됐다.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동·서·남해안 지역을 대상으로 미사용 국방·군사시설 실태에 대한 기획조사를 한 뒤 일제 정리 및 개선방안을 국방부에 권고했다고 16일 밝혔다.권익위가 이처럼 실태조사에 나선 까닭은 해안 지역에 방치된 국방·군사시설에 대한 민원이 지속적으로 접수됐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해안 지역의 군사시설 철거와 관련한 민원 75건이 제기됐고, 내륙과 주거지역에는 165건의 민원이 제기됐다. 이에 권익위는 인력 10여명을 투입해 휴전선 밑 전국 해안 8695㎞(12개 사단, 55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 충청 지역은 해안선을 돌며 전수조사했고, 전라·경상지역은 지자체별 2~3개 지역을 골라 현장조사를 벌였다. 경기·강원지역은 의견수렴 방식으로 조사했다.그 결과 권익위는 3500~4000개에 이르는 문제 시설을 발견했다. 다만 정확한 집계는 내지 않았다. “현장조사를 해본 결과 방치된 군사시설이 너무 많이 숫자를 세는 게 무의미했다”는 게 권익위의 설명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1960~1980년대까지만 해도 해안선 인근은 병력 위주의 방어를 펼쳐 경계초소 등을 설치했지만, 1990년대 접어들어 과학화 감시장비가 발달해 기존 시설의 사용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며 “이는 자연스럽게 방치현상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구체적으로 보면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무단 설치된 국방·군사시설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인한 부당한 재산권 제한 ▲건축 폐기물 방치 등 환경오염 유발 ▲안전조치가 필요한 시설 등이 그렇다. 물론 이런 유형이 딱 나뉘는 건 아니다. 한 지자체에 설치된 경계초소는 사유지에 무단으로 설치돼 있으면서, 유휴시설임에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민간의 재산권 행사를 방해하고 있었다. 전남 진도군의 한 지역은 사유지 내 군사시설이 무단으로 방치돼 있어 인근의 휴양지 개발을 막기도 했다. 특히 어떤 지역은 군사시설을 철거했음에도 건축 폐기물이 수거되지 않아 환경오염 및 우범지대화될 우려도 있었다. 일부 지역에선 방치된 탱크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했다.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군 주둔으로 인한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적극적이고 선제로 제도를 개선하고, 지역 주민과 상생하는 군사시설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군 작전수행에 제한이 없도록 하면서 국민 편익과 지역 균형발전을 높인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국방부는 실태 전수조사, 합동 현장검증, 시범사업 추진, 관련 법령·제도개선 등 국방·군사시설의 정리 및 개선을 원활하게 추진하고자 권익위와 긴밀히 협업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한 지자체에 무단 설치됐다가 부실하게 철거된 것으로 보이는 내무반 막사(왼쪽). 미사용 군사시설을 조사하다 발견한 ‘방치된 탱크’(오른쪽 점선). 국민권익위원회 제공·연합뉴스
  • ‘13일의 金’ 저주? … ‘버디’ 잡고 탈락

    ‘13일의 金’ 저주? … ‘버디’ 잡고 탈락

    공 물에 빠져, 1타 차 통과 못 해 김시우, 선두와 1타 차 공동 2위 “13일의 금요일이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다음에 잘하면 되지 뭐.”켈리 크래프트(30·미국)가 지난 13일(이하 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힐튼헤드의 하버타운 골프링크스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RBC 헤리티지 2라운드 14번홀에서 뜻밖의 불운과 맞닥뜨렸다. 13번홀까지 이븐파여서 이 타수만 지키면 3라운드 진출이 가능했던 그에게 티샷이 갑자기 날아든 커다란 검정 새를 맞히고 그린 앞 워터해저드에 떨어지고 말았다. 경기위원에게 벌타 없이 티샷을 다시 날리면 안 되겠느냐고 문의했으나 돌아온 답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약 3.5m의 보기 퍼트를 남겼지만 이것마저 들어가지 않아 두 타를 잃었다. 결국 1오버파로 라운드를 마친 그는 이븐파까지 통과한 이 대회 컷을 한 타 때문에 통과하지 못했다. 크래프트는 “바람의 도움도 있었고 7번 아이언티샷이 궤적대로 날아갔다면 그린 중앙에 떨어졌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달랬다. 새는 다행히 아무 일 없다는 듯 날아갔다. PGA 투어 도중 이렇게 운 나쁜 골퍼는 2014년 크라운 플라자 인비테이셔널 2라운드 17번홀에서의 지미 워커 이후 4년 만이다. 1998년 브래드 파벨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17번홀 그린에 멈춰선 공을 갈매기가 부리로 문 채 다시 날아가려다 연못에 빠뜨린 일이 있었는데 벌타도 먹지 않고 원래 자리에 공을 다시 놓고 플레이를 재개했다.한편 김시우(23)는 14일 대회 3라운드에서 3타를 줄여 중간 합계 12언더파 201타로 선두 이언 폴터(42·잉글랜드)에 1타 뒤진 공동 2위에 자리했다. 2016년 윈덤 챔피언십, 지난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에 이은 PGA 투어 세 번째 우승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아빠, 가난한 나도 꿈꿀 수 있을까요

    아빠, 가난한 나도 꿈꿀 수 있을까요

    자녀 양육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한국 아빠 4총사(강상규·심재원·허민·우명훈씨)가 컴패션과 함께 5박 6일 일정으로 필리핀을 찾았다. 경제적 궁핍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녀 양육에 힘쓰는 현지 엄마, 아빠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들은 마닐라와 팜팡가의 여러 가정과 어린이센터 등을 돌며 컴패션의 양육 철학과 가치를 직접 체험했다. 컴패션은 6·25전쟁 때 한국에 온 미국 출신 에버렛 스완슨 목사가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가는 한국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설립한 국제어린이양육기구다. 지난 66년간 태아영아생존, 1대1 어린이양육, 양육 보완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빈곤에 놓인 전 세계 어린이를 어엿한 성인으로 키워내는 데 앞장섰다.양팔을 뻗으면 양쪽 벽에 손이 닿을 정도로 좁은 공간. 발을 움직일 때마다 얇은 바닥이 무너질 듯 삐걱대는 방 두 칸짜리 집이 셀레스트 카초(31·여) 부부와 네 아이의 보금자리다.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골목 위로 나무판자를 덧대 엉성하게 지은 이곳에서 그는 태어나고 자랐다. 작은 가게에서 일할 때 남편을 만났다. 함께 산 지 9년이 지났지만 돈이 없어 결혼식은 못 올렸다. 생후 3개월 된 막내 마리아는 엄마 품에 꼭 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타지에서 일하느라 주말에만 집에 오는 남편 대신 홀로 아이들을 키워 오던 그에게 얼마 전 웃을 일이 생겼다. 임신 중이던 그에게 이웃 주민이 컴패션의 양육 지원 프로그램을 소개해 준 것이다. 덕분에 마리아는 태어난 뒤 예방접종을 받았고 매주 식재료도 지원받고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늘 밝게 웃는 셀레스트는 “비록 가난하지만 네 아이를 모두 공부시키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힘을 내겠다”고 말했다.셀레스트 가족은 마닐라 외곽에 위치한 크리스천가스펠교회 어린이센터의 지원을 받고 있다. 아빠 4총사의 여행 둘째 날, 센터는 현지 엄마 20여명과 아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엄마들은 센터 직원을 따라 바느질로 베갯잇을 만들었다. 센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엄마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해 베갯잇, 목걸이 등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재료도 무상으로 준다. 필리핀컴패션은 전국 355개 어린이센터를 통해 8만 1366명의 어린이를 지원하고 있다.4총사는 전날 저녁 이곳에서 현지 아이들의 아빠들을 만났다. 한때 술과 마약, 도박 등에 빠져 있던 이들은 아이를 통해 컴패션을 알게 됐다. 부인과 함께 세 자녀를 키우는 잭슨 하레스(37)는 한 달 전부터 매주 아버지 모임에 나오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학대 당했고 마약에 빠져 지금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아이를 잘 키워 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이웃의 말에 오게 됐는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여행 나흘째 4총사는 팜팡가주 앙헬레스에 위치한 주디 두케사(19·여)의 집을 방문했다. 주디는 세 살 때부터 캐나다 후원자로부터 1대1 양육지원을 받고 있다. 후원자를 만나 본 적은 없다는 주디는 “대신 편지를 보여 주겠다”며 방으로 안내했다. 주디는 후원자가 보내온 가족 사진과 편지 수십통을 보여 주며 “아이들을 30명이나 후원하면서도 중간에 끊지 않고 17년간 후원해 준 너무 고마운 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매년 크리스마스에 선물도 보내주는데 아홉 살 때 받은 첫 번째 드레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수줍게 웃었다.4총사는 이날 주디와 가족들을 위해 한국식 짜장라면 파티를 열었다. 라면 20개를 뜯어 면과 짜장수프, 건더기수프를 따로 모았다. 냄비에는 6ℓ 물 한 통을 붓고 면을 모두 넣었다. 잘 익은 라면을 조금씩 덜어 모여든 사람들에게 나눠 주자 60그릇이 나왔다. 짜장라면 파티는 금세 마을 잔치가 됐다. 오는 길에 코리아마트에서 사 온 버너와 큰 냄비는 주디 가족의 세간살이가 됐다. 4총사는 주디의 아버지 레이난테(45)에게 버너 사용법을 알려 줬다. 레이난테는 “얼마 전 버너가 고장 났는데 돈이 없어 못 사고 있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주디 가족은 기찻길 옆에서 살다 7년 전 이곳으로 이사했다. 원래 살던 집을 정부가 철거해 새 터전을 구해야 했다. 친척집 마당 한구석에 나무판자로 지은 집이지만 여덟 식구에게는 소중한 터전이 됐다. 주디는 두 오빠, 부모와 큰방을 함께 썼다. 하지만 2년 전 엄마가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나면서 지금은 네 명이 쓰고 있다. 주디는 방이 좁아 다섯 식구가 몸을 꼭 붙이고 자야 했던 예전이 그립다. 레이난테는 “마약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에서 살고 있지만 컴패션의 후원 덕에 주디와 아들들이 바르게 자랄 수 있었다”며 “대가 없이 후원해 줘 너무도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렸다.같은 날 저녁 4총사는 컴패션 졸업생 일곱 명과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컴패션의 1대1 양육 프로그램을 마친 학생 중 성적이 우수하고 진로계획이 뚜렷한 소수에게 주어지는 1대1 리더십 결연 프로그램까지 수료하고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디딘 이들이다. 이 중 아이리 리싱(22·여)은 한국 후원자로부터 3년간 지원을 받았다. 후원자의 이름만 알 뿐 얼굴도 성별도 몰랐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어 동생들의 학비를 댈 수 있게 된 것 모두 후원자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취업 전 한국에 가 보려고 돈을 모았지만 재산이 일정 규모 이상 되어야 비자를 받을 수 있어 갈 수 없었다”며 “한국에 가면 후원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이날 한국컴패션에서 준비한 깜짝 영상편지에 후원자가 등장하자마자 아이리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친구들도 각자 자신의 후원자를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여행 마지막 날 만난 에드가르도 하비에르(50)는 트라이시클(자전거 삼륜 택시) 운전사다. 태풍으로 집을 잃은 뒤 가족과 함께 교회에 얹혀 산다. 하루 종일 일해도 200페소(약 4000원)씩 트라이시클 판매상에게 내야 하는 할부 원금과 이자를 빼면 남는 게 별로 없다. 그러나 컴패션 후원 덕에 셋째와 넷째를 공부시킬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한다. 에드가르도는 꿈을 묻는 질문에 “자식들이 졸업 후 원하는 직장을 갖고 받은 것 이상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을 살길 바란다”고 답했다. 마닐라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김영남·최룡해 등 당·정·군 실세들 총집결… “전략 국가로 지위 올려”… 핵 보유 우회 과시

    김영남·최룡해 등 당·정·군 실세들 총집결… “전략 국가로 지위 올려”… 핵 보유 우회 과시

    비핵화·정상회담 언급 없고 ‘핵무력’도 직접적 거론 안 해 최고인민회의 정책 방향 등 처리 북한이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6차 회의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노동당 제1비서 추대 6주년 경축 중앙보고대회를 개최했다. 북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국제적 지위와 영향력을 비상히 강화했다’며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북 노동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김 위원장은) 엄혹한 시련 속에서 그토록 짧은 기간에 당과 국가의 면모를 일신시키고 국제적 지위와 영향력을 비상히 강화했다”고 밝혔다. 또 “자체의 기술역량과 경제적 잠재력을 총동원하여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수행의 세 번째 해인 올해에 경제전선전반에서 활성화의 돌파구를 열어 제끼며 사회주의문화의 전면적인 개화발전으로 문명강국건설을 적극 다그쳐 나가야 한다”고 했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 상황과 경제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TV가 이날 녹화해 방송한 중앙보고대회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박봉주 내각 총리, 최룡해·박광호·리수용 당 부위원장, 김정각 군 총정치국장 등 당·정·군 실세들이 총집결했다. 하지만 비핵화 의지나 정상회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최 부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조국을 그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세계적인 군사대국으로 빛내어 주시고 전략국가의 지위에 당당히 올려세우신 것은 경애하는 최고 영도자 동지(김정은)께서 국력 강화의 길에 쌓으신 영구 불멸의 업적”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전략국가’는 미국을 상대할 핵 능력을 보유했음을 나타내는 우회적 표현으로, ‘핵 무력’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최근 북측이 핵 무력을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 이날 열린 최고인민회의는 흔히 한국 국회와 비교된다. 지난해도 전년도 예산 결산, 당해 연도 예산 보고 및 승인, 내각의 사업 평가와 정책 방향 제시, 인사·조직 문제 등이 처리됐다. 하지만 북한 헌법상 규정된 이런 광범위한 권한과 달리 그간 최고인민회의는 당의 결정을 추인하는 형식적 거수기에 불과했다. 반면 김 위원장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상국가화’를 표방하고 있다. 대외관계 정책 방향을 다룰 정도로 무게가 실린다는 의미다. 김 위원장은 그간 총 8회의 최고인민회의 중에서 지난해를 포함해 6번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김 위원장은 지난 9일 당 중앙위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고 남북 관계의 발전 방향과 북·미 대화의 전망을 분석, 평가하고 이후의 국제관계 방침과 대응방향을 제시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보도했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류현진 ‘괴물본능’ 되찾다…오클랜드전 6이닝 8K 시즌 첫 승 신고

    류현진 ‘괴물본능’ 되찾다…오클랜드전 6이닝 8K 시즌 첫 승 신고

    6이닝 90개 공 던져 삼진 8개…안타·볼넷은 1개씩선발 두 경기 만에 무실점 첫 승 신고, 평균자책점도2.79↓류현진(31·LA 다저스)이 첫 등판의 부진을 깔끔히 씻어내고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류현진은 1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오클랜드와의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홈경기에 시즌 두 번째 선발 등판, 6이닝 동안 안타와 볼넷 하나씩만 내주고 삼진 8개를 잡아내며 무실점으로 막아 승리투수가 됐다. 90개의 공을 던진 류현진은 다저스가 4-0으로 앞선 6회말 무사 1, 2루 때 자신의 타석에서 대타 족 피더슨으로 교체됐다. 결국 다저스가 4-0으로 이겨 류현진은 시즌 첫 승리를 수확했다. 5회 2사 이후 스티븐 피스코티의 중전안타가 이날 오클랜드의 첫 안타였을 만큼 류현진의 투구는 위력적이었다. 류현진이 날카로운 컷 패스트볼(커터)을 앞세워 공격적인 투구를 하고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제구력까지 되찾으면서 오클랜드 타자들의 방망이는 마냥 헛돌았다. 이날 류현진의 빠른 볼 구속은 MLB닷컴 기준으로 시속 91.9마일(약 148㎞)까지 나왔다. 포수 오스틴 반스와 배터리로 시즌 첫 호흡을 맞춘 류현진의 영리한 볼 배합도 돋보였다. 류현진은 타석에서도 시즌 첫 볼넷과 안타로 멀티 출루를 기록하며 활약했다. 류현진은 지난 3일 애리조나와의 올해 정규시즌 첫 등판에서 3⅔이닝 5피안타 3실점으로 부진해 선발진 잔류 여부마저 불투명해진 상황이었다. 더욱이 당초 9일에서 12일로, 다시 11일로 등판 일정이 두 차례나 변경되는 ‘5선발의 비애’를 겪은 뒤에야 시즌 처음 홈 경기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류현진은 반등의 발판을 놓았다. 시즌 평균자책점을 7.36에서 2.79로 뚝 떨어뜨린 류현진은 17∼19일 샌디에이고와의 원정 3연전 중 한 경기에 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류현진은 1회 볼넷 하나를 허용했지만 루킹 삼진 두 개를 잡아내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선두타자 마커스 세미언을 좌익수 뜬공으로 보낸 뒤 맷 채프먼을 풀카운트 끝에 볼넷으로 내보냈다. 하지만 제드 라우리를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으로 낮게 들어가는 커터로 3구 만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크리스 데이비스도 4구째 바깥쪽에 꽉 찬 커터에 방망이를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삼진을 당했다. 역시 왼손 투수인 션 머나야와 맞선 다저스 타선은 1회말 선두타자 크리스 테일러에 이은 코리 시거의 연속 솔로 홈런으로 류현진에게 2-0의 리드를 안겼다. 류현진은 2회 맷 올슨에게는 낙차 큰 커브 결정구로 역시 루킹 삼진을 잡아내며 세 타자 연속 탈삼진을 기록히고 조너선 루크로이, 피스코티를 각각 유격수 앞 땅볼로 아웃시켜 삼자범퇴로 끝냈다. 3회에도 류현진의 ‘삼진 쇼’가 이어졌다. 첫 타자 제이크 스몰린스키를 3구째 하이 패스트볼로 헛스윙 삼진을 잡았고, 머나야를 2루수 땅볼로 처리한 뒤 세미언에게는 높게 던진 커터로 다시 헛방망이질을 유도했다. 타순이 한 바퀴 돌았지만 오클랜드 타자들은 여전히 류현진을 공략하는 데 애를 먹었다. 류현진은 4회 2∼4번의 상대 중심타선을 삼자범퇴로 요리했다. 4번 타자 데이비스는 두 타석 연속 류현진의 커터에 루킹 삼진을 당했다. 류현진은 5회 2사 후 피스코티에게 중전안타를 맞아 이날 첫 피안타를 기록했지만 스몰린스키의 빗맞은 타구를 2루수 엔리케 에르난데스가 호수비로 걷어내 큰 위기 없이 넘겼다.6회에는 대타 트레이시 톰슨과 세이먼을 잇달아 삼진으로 돌려보내는 등 다시 세 타자만 상대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다저스는 6회말 맷 켐프의 솔로포와 로건 포사이드의 적시타로 두 점을 보태 류현진의 마음을 더 편하게 해줬다. 2회말 2사 후 첫 타석에서 볼넷을 골라 출루한 류현진은 4회말 2사 1루에서 깔끔한 좌전 안타를 쳐 지난해 8월 25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전 이후 229일 만에 안타를 추가했다. 6회말 자신의 타석에서는 피더슨에게 방망이를 넘겼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자치광장] 50대, 중단이 아닌 계속을 말하다/하재호 서울 양천구 홍보정책과장

    [자치광장] 50대, 중단이 아닌 계속을 말하다/하재호 서울 양천구 홍보정책과장

    나이 오십을 일컫는 지천명(知天命). 공자가 쉰 나이에 천명을 알았다는 데서 유래한 말로,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는 뜻이란다. 지금의 50대는 1960년대에 태어난 산업화시대의 막내둥이 세대로, 유년 시절에는 대가족 내에서 형제들과 부대끼며 성장했고 결혼 후에는 자녀 수도 1~2명으로 자발적으로 제어해야 했던 핵가족제도 이행 세대다.50대 중반의 필자도 어른공경·대가족주의라는 관례적 전통과 핵가족주의 지향이라는 양면적 굴레 속에서 살아왔고, 어느새 필자 앞에 돌아온 건 ‘지천명’ 대신 ‘꼰대’라는 호칭에 무엇 하나 장담할 수 없는 퇴직 후 20년 이상 남은 잿빛 미래다. 기대수명이 길어지는 만큼 ‘노후 불안’ 역시 50대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 중 하나가 됐다. 최근 50대 독거남의 고독사가 언론에 자주 보도된다. 50대의 삶이 녹록지 않다는 방증이리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복지는 65세 이상 독거노인에게 맞춰져 있고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중·장년 1인 가구 지원 정책은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양천구는 작년 초 우리나라 고독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50대 독거남들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해 2월부터 40일간 지역 내 50대 독거남 6841가구에 대해 전수조사를 해 생계·주거·의료 지원이 급히 요구되는 고위험군 96가구를 발굴했다. 이웃주민으로 구성된 95명의 멘토단은 사회와 단절된 50대 독거남들과 친구가 돼 그들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그들이 다시 사회와 연결될 수 있도록 손잡아 주고 있다. 정신적인 부분뿐 아니라 건강·금융·생활자금 등 현실적인 문제도 다양한 지역 사회 자원을 활용해 도움을 주며, 50대 독거남들이 오롯이 사회공동체의 건강한 일원으로 복귀하도록 힘을 쏟고 있다. 한때는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가장이었던 이들이 혼자가 되고 사회로부터 잊히고 있다. 공동체 문화 실종, 각자도생의 사회. 한번 쓰러지면 재기가 어려운 작금의 현실에서 위기의 50대 독거남 문제는 지역 사회의 해법도 마련돼야 하지만 중앙정부 차원의 해결 의지와 지원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는 “인생의 목표가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으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이 인생의 비극이 아니라 달성하고 싶은 목표가 없는 것이 비극”이라고 말했다. 100세 시대. 50대라면 이제 고작 반환점을 돌았을 뿐이다. 제2의 도전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출발선에 나서 ‘중단’이 아닌 ‘계속’을 말해야 한다. 아직은 현역으로서의 삶이 필요한 50대들이여, 힘을 내시라. 60~70년을 살던 시대엔 30대가 청춘이었다면, 100세 시대엔 50대가 청춘이다.
  • 국내에 부는 스페셜티 커피 바람… ‘재야의 커피고수’ 3인이 바라본 커피시장

    국내에 부는 스페셜티 커피 바람… ‘재야의 커피고수’ 3인이 바라본 커피시장

    바야흐로 커피 춘추전국시대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커피시장 규모는 지난해 11조원을 돌파했다. 소위 ‘다방 커피’라고 불리는 인스턴트 커피에서 출발해 최근 몇 년 사이 에스프레소 머신을 기반으로 한 커피전문점 시장이 빠르게 몸집을 키웠다. 이미 카페는 인기 창업 아이템으로 치킨집과 편의점을 추월한 지 오래다. 최근에는 핸드드립 커피나 스페셜티 커피와 같은 프리미엄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기업이나 대형 프랜차이즈업체뿐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크고 작은 커피전문점도 급격히 늘고 있는 추세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또 사라지는 커피전문점 중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있는 재야의 숨은 ‘커피 고수’들에게서 국내 시장의 변화 흐름을 들어 봤다.■“취향 따라 수요층 분화… 한국 테스트마켓 부상” 한겨레 ‘콜렉티보커피’ 수석 바리스타 “우리나라의 커피 마시는 풍경이 달라지고 있어요. 누군가는 점심식사 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하고, 또 누군가는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천천히 커피를 음미하죠. 커피를 즐기는 저마다 다른 모습이 생겨나고 있는 겁니다. 시장이 성장하면서 취향에 따라 수요층이 분화되어 가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블루보틀, 美·日 이어 세 번째로 한국 선택”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커피전문점 ‘콜렉티보커피’에서 만난 UCC커피코리아 소속 한겨레(29) 콜렉티보커피 수석 바리스타는 “커피시장이 커질수록 프리미엄 커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UCC커피코리아는 세계적인 커피 원두 전문기업인 일본 UCC커피의 한국 지사다. 콜렉티보 커피는 이 UCC커피의 원두로 내린 스페셜티 커피와 베이커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이다. 지난해 한국 바리스타 국가대표 선발전 브루어스컵 챔피언이기도 한 한 바리스타는 콜렉티보커피의 개장 초기부터 음료의 종류와 레시피 등 메뉴 전반의 컨설팅을 맡고 있다. 이곳에서는 커피뿐 아니라 비정기적으로 그림 그리기 수업, 각종 강연 등 문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한 바리스타는 “최근 해외의 유명 커피 관련 기업들도 한국시장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준비하는 곳도 늘고 있다. 그는 “해외 커피업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은 변화가 빠르고 새로운 문화를 흡수하는 데 적극적이기 때문에 굉장히 도전하고 싶은 시장”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중국, 홍콩 등 기존 차 문화에 익숙하던 아시아 국가들이 커피시장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면서 한국시장이 이들을 공략하기 전에 거쳐가는 일종의 테스트마켓 성격을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세계적인 스페셜티커피 전문업체 ‘블루보틀’이 미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 진출 국가로 한국을 선택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한 번 높아진 입맛은 내려가지 않아요” 한 바리스타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국내 커피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포화상태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의문도 있지만 여전히 성장잠재력이 크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라면서 “커피 대기업들이 저마다 프리미엄 제품을 내놓고 있는 것도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한번 높아진 입맛은 다시 내려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커피시장이 변화하는 건 다른 이유보다도 소비자들이 점점 맛있는 커피를 맛보면서 취향이 상향평준화되고 있기 때문이죠. 점점 더 격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양질의 커피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답에 도달하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집에서 손수 원두 갈고 마시는 풍경 보편화될 것” 김병기 ‘프츠커피컴퍼니’ 공동대표 “커피 종주국인 유럽, 미국 등은 아침 8~9시가 하루 중 카페가 가장 붐비는 시간대라면, 한국은 점심시간이 단연 피크타임이죠. 같은 맥락에서 해외의 카페는 오후 4~5시면 문을 닫는데, 한국에는 저녁 늦도록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해요. 커피가 대중화된 음료라고 하지만 가정이 아닌 전문점 등 매장에서의 소비가 유난히 높은 것도 국내의 독특한 특징입니다.”●“전 세계 주요 커피 원산지 돌며 생두 직접 공수” 김병기(38) 프츠커피컴퍼니 공동대표는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본점에서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른바 커피선진국은 대부분 아침에 집에서 손수 마련한 커피를 즐기는 문화가 보편화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 정도로 커피가 생활에 깊숙이 자리잡지는 않은 단계”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기에 여전히 커피시장이 추가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2014년 문을 연 프츠커피컴퍼니는 국내 토종 커피전문점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선두주자 중 하나다. 프츠커피컴퍼니는 매장 내에 자체 커피랩(연구실)을 갖추고 있어 이곳에서 생두를 볶는 로스팅 작업이나 원료 평가 작업이 이뤄진다. 김 공동대표는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등 전 세계 주요 커피 원산지를 돌아다니면서 생두를 직접 공수해 온다. 매달 정기적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커피의 맛을 감별해내는 기술인 ‘커핑’ 강좌를 진행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지하철3호선 안국역과 양재역 인근에 2·3호점을 연달아 내며 몸집을 키우고 있다. ●“커피도 와인처럼 산지·품종 따라 차별화된 맛 음미” 김 공동대표는 “스페셜티 커피나 핸드드립 커피 등은 새롭게 유입된 개념은 아니다”라면서 “과거에도 국내에 존재했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넓이가 넓어지면서 커피를 즐기는 계층의 층위도 세분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커피는 와인과 비견되는 기호음료지만 생산국과 주요 소비국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라면서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문화적 접근이나 깊이는 커피 음용의 역사에 비해 상당히 뒤늦게 시작된 편”이라고 말했다. 와인처럼 커피도 산지와 품종 등의 정보에 따라 차별화된 맛을 음미하기 시작한 세계적인 흐름을 국내시장이 상당히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앞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자신이 선호하는 커피를 찾아 마시는 것에서 더 나아가 각자 집에서 손수 원두를 갈고 내려 마시는 행동이 보편화될 정도로 커피문화가 성장할 겁니다. 커피전문점들도 그런 또 다른 변화에 대비해 나가야겠죠.”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커피에 담겨진 이야기 즐기는 문화 정착돼야” 박진훈 ‘컨플릭트스토어’ 대표 “제가 처음 커피업계에 종사하기 시작한 8~9년 전만 해도 커피 주문의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면, 지금은 자신의 기호를 말하고 유사한 맛의 커피를 추천해 달라고 하거나, 커피에 관해 묻는 손님들이 부쩍 늘었어요. 소비자들이 커피의 맛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소비자들, 커피 맛 자체에 관심 가져”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컨플릭트스토어’는 일종의 커피 편집매장이다. 이곳에서는 서울 마포구 창전동의 ‘펠트커피’와 합정동의 ‘파이브브루잉’, 강원 강릉의 ‘커피내리는 버스정류장’, 경기 하남의 ‘벙커컴퍼니’ 등 전국 각지에 있는 유명 커피전문점의 커피들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이곳의 유일한 바리스타인 박진훈(34) 대표가 커피전문점 7~8곳에서 직접 볶은 원두 약 14~15가지를 때마다 공수해 온다. 가로수길 중심부가 아닌 주택가에 자리잡은 데다 지하에 위치해 잘 눈에 띄지 않는 공간이지만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올 1월 문을 열었는데 벌써 입소문을 타고 ‘핫플레이스’로 자리잡았다. 지난 5일 매장에서 만난 박 대표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커피에 담긴 이야기와 문화를 공유하는 곳을 만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처음에는 에스프레소머신을 사용하고, 커피를 내리고, 향이 좋은 커피를 사람들에게 내놓는 행위 자체가 멋있다고 생각해서 커피에 빠져들었는데, 지금은 좋은 커피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면서 “커피도 와인처럼 원산지, 종류, 가공 방식에 따라 저마다 다른 풍미를 내는 음료”라고 말했다. 이어 “커피는 잔에 담겨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과정 전체를 알고 즐기는 일종의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커피는 상대방과 이야기하는 도구… 국내 시장 SNS 타고 급성장” 박 대표는 국내의 커피문화를 “1~5점 중 2.5점 정도”라고 평가했다. 박 대표는 “소비자들에게 커피는 여전히 기호식품이라기보다 상대방과 이야기하는 데 쓰이는 도구의 성격이 강하다”면서 “기호식품으로서는 이제 막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단계”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국내 시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성장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이런 현상이 외려 걸림돌이 될까 우려된다”고 털어놨다. 최근의 스페셜티 커피 열풍을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는 이유기도 하다. 지나치게 빠르게 유행을 좇다 보면 다양성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남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유명한 매장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직접 많은 커피를 맛보고 바리스타와 대화하면서 나에게 맞는 커피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즐기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커피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사진 정연호·박지환 기자 tpgod@seoul.co.kr 그래픽 길종만 기자 kjman@seoul.co.kr
  • [F1] 모나코 그랑프리도 그리드 걸 부활 검토에 해밀턴 “생큐 지저스”

    [F1] 모나코 그랑프리도 그리드 걸 부활 검토에 해밀턴 “생큐 지저스”

    “고맙습니다 주님(Thank you Jesus).” 너무 자신의 심경을 솔직히 드러냈다고 생각했을까. 곧바로 지워 버렸다. 8일(현지시간) 세계 최고의 자동차경주대회 포뮬러원(F1)의 바레인 그랑프리에 출전하는 디펜딩 챔피언 루이스 해밀턴(영국)이 모나코 그랑프리에 그리드 걸이 배치된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장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이런 글을 달았다가 얼마 안돼 삭제했다. 모나코 그랑프리 조직위원회를 맡고 있는 미셸 보에리는 F1 주최사인 리버티 미디어와 자신이 겪는 단 하나의 문제는 그리드 걸 문제라며 “아가씨들은 예쁘다. 계속 카메라 앞에 있게 될 것”이라고 드미트리 코작 러시아 부총리 겸 러시아 그랑프리 조직위원장과 비슷한 취지의 얘기를 했다. 리버티 미디어는 레이스 도중 각종 프로모션 이벤트를 진행하는 그리드 걸을 채용하는 관행을 지난 1월 공식 폐기하고 ‘그리드 키드’로 대체하기로 했다. 지난달 호주 그랑프리에서는 어린이들이 깃발을 든 채 트랙 위에 섰다. 하지만 코작 위원장은 인테르팍스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어린이들을 트랙에 세우는 것은 다칠 염려가 있어 잘못된 결정이라고 못박고 “여기에는 어른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모든 유형의 모터스포츠에는 자동차를 조화롭고 기쁘게 광고해왔다. 합의를 이뤄낸다면 우리는 이 전통을 재도입했으면 한다. 무엇보다 우리 아가씨들이 제일 예쁘다”고 덧붙였다.F1 월드 그랑프리 시리즈 가운데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모나코 그랑프리는 다음달 27일 열리고, 러시아 흑해 연안 휴양지인 소치에서 열리는 러시아 그랑프리는 오는 9월 30일 열린다. F1의 상업광고 책임자인 션 브래치스는 그리드 걸을 채용하는 것은 “현대 사회 통념과 명백히 충돌한다”며 “우리는 그 관행이 F1과 전 세계 팬들-나이 들었거나 젊거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 됐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윌리엄스 팀의 징계위원회 부책임자인 클레어 윌리엄스는 “이 종목이 내릴 필요가 있었던 결정”이라고 말했다. 윌리엄스 팀 후보 드라이버였던 수지 볼프는 그리드 걸 때문에 자신이 공격받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더 이상 쓰지 않는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한 발 내디딘 것”이라고 반겼다. 한편 시즌 첫 호주 그랑프리에서 제바스티안 페텔(독일)에 이어 2위를 차지했던 해밀턴은 6일 첫 번째 연습 주행 5위였다가 두 번째 연습 주행 4위로 올라서 7일 세 번째이자 마지막 연습 주행 때 몇 위를 차지해 8일 본 주행에 나설지 관심을 끌었는데 변수가 생겼다. 호주 그랑프리 때 여섯 바퀴를 돌 때까지 기어박스를 바꾸면 안된다는 규정을 연료 누출 때문에 지키지 않아 본 주행 때 다섯 계단을 깎이는 징계를 국제자동차연맹(FIA)으로부터 받았다. 이에 따라 마지막 연습 주행 때 차지한 순위에서 다섯 계단을 깎여 출발하는 매우 불리한 상황에 몰렸다. 마지막 연습 주행은 한국시간으로 7일 밤 9시 시작한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나쁜 짓들의 목록/공광규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나쁜 짓들의 목록/공광규

    나쁜 짓들의 목록/공광규 길을 가다 개미를 밟은 일 나비가 되려고 나무를 향해 기어가던 애벌레를 밟아 몸을 터지게 한 일 풀잎을 꺾은 일 꽃을 딴 일 돌멩이를 함부로 옮긴 일 도랑을 막아 물길을 틀어버린 일 나뭇가지가 악수를 청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피해서 다닌 일 날아가는 새의 깃털을 세지 못한 일 그늘을 공짜로 사용한 일 곤충들의 행동을 무시한 일 풀잎 문장을 읽지 못한 일 꽃의 마음을 모른 일 돌과 같이 뒹굴며 놀지 못한 일 나뭇가지에 앉은 눈이 겨울꽃인 줄도 모르고 함부로 털어버린 일 물의 속도와 새의 방향과 그늘의 평수를 계산하지 못한 일 그중에 가장 나쁜 것은 저들의 이름을 시에 함부로 도용한 일 사람의 일에 사용한 일 세상 정의를 다 가진 듯 당당한 사람, 늘 옳은 소리만 외치는 사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다. 자기가 얼마나 나쁜 짓을 저지르는 걸 모르니 저토록 당당하다. 개미를 밟고, 풀잎을 꺾고, 꽃을 따고, 돌멩이를 옮기고, 도랑을 막아 물길을 돌렸다. 다 나쁜 짓이다. 만물이 한 몸으로 연결된 생명공동체, 세월 인연으로 얽힌 인드라망 속에 있는데, 오직 사람만이 우주의 주인인 양 제멋대로 산다. 저리도 많은 나쁜 짓을 하고서도 도무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장석주 시인
  • [프로농구] ‘신인왕’ 안영준 효과… SK, 챔프전 오르다

    PO 네 경기 모두 10득점 이상메이스 등 3점슛 15개 합작 8일부터 DB와 우승 놓고 격돌 정말 플레이오프(PO)를 이렇게 꾸준히 잘하는 신인이 또 있었나 싶다. 4일 전북 전주체육관에서 이어진 KCC와의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PO) 4차전에서 3점슛 세 방 등 16득점 6리바운드 1어시스트 1가로채기를 기록한 신인왕 안영준(SK) 얘기다. 그는 앞서 세 차례 경기 모두 10득점 이상을 해냈고 3점슛도 4개나 넣었다. SK는 3점슛 15개를 작렬, 117-114로 이겨 3승1패로 시리즈를 끝내며 통산 네 번째, 다섯 시즌 만에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SK는 8일부터 강원 원주종합체육관을 찾아 DB와의 챔프전에 나선다. SK가 DB와 우승을 다투는 것은 처음이다. SK의 3점슛은 제임스 메이스가 4개, 안영준과 테리코 화이트가 3개, 변기훈과 이현석이 2개씩 퍼부었다. 화이트가 33득점, 메이스가 25득점으로 앞장섰다. SK는 팀 PO 사상 가장 많은 3점포를 작렬했다. 역대 PO 한 경기 최다 3점슛은 17개였다. 일곱 시즌 만의 PO 우승 도전을 노리던 KCC 선수들은 3쿼터 중반 역전에 성공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상대에게 너무 많은 외곽포를 얻어맞은 것이 뼈아팠다. 또 종료 직전 13점이나 뒤졌던 경기를 3점 차까지 좁히는 투혼을 불살랐다. 30초가 30분처럼 여겨질 정도로 접전이 이어졌다. 종료 3초를 남기고 이정현이 던진 슛이 림에 조금 못 미쳐 연장으로 승부를 끌고 갈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추승균 KCC 감독은 “선수들이 열심히 해줘 고맙다. 다만 나 스스로부터 잘못한 것이 없는지 돌아보겠다”고 말했다. 이상범 DB 감독과 챔프전에서 지략 싸움을 벌이게 된 문경은 SK 감독은 “정규리그 마지막 6라운드 때 손쉽게 이겨 봐 자신 있다”고 도발했다. 화이트 역시 “DB의 주포인 디온테 버튼의 속도를 잠재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안영준은 신인답지 않다는 칭찬에 대해 “(김) 선형이 형 말대로 PO다 챔프전이다 따로 생각하지 않고 시즌 한 경기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자신감 있게 뛴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SK는 5년 전 챔프전 때 1승도 챙기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김선형은 “당시 2년차였다. 그때 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는데 (안)영준이는 너무도 잘해 주고 있다”며 많은 기대를 보냈다. 안영준이 스피드에서 훨씬 빼어난 DB와의 챔프전에서 제 몫을 해낼지 주목된다. 전주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그린 재킷 누가 입나

    그린 재킷 누가 입나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올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명인열전’ 마스터스가 5~8일(현지시간) 막을 올린다. 1997년 이후 21년 만에 가장 적은 규모인 87명이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자웅을 겨룬다. 우승자에게만 허락된 ‘그린 재킷’을 누가 걸칠지를 놓고 팬들이 들썩이고 있다.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타이거 우즈(43)의 5번째 그린 재킷 도전이다. 우즈는 2005년 이후 13년 만에 다시 정상을 노린다. 2015년을 마지막으로 최근 두 개 대회 연속 불참했다가 3년 만에 오거스타에 돌아온 우즈는 최고 컨디션을 자랑한다. 긴 슬럼프를 딛고 복귀해 최근 발스파챔피언십 준우승,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5위를 차지했다. 우즈는 우리 시간으로 5일 오후 11시 42분 티오프 한다. 우즈는 4일 연습라운드에서도 구름 갤러리를 몰고 다녔다. 그는 필 미컬슨(48)과 함께 9개 홀을 돌면서 이글을 2개나 낚았다. 13·15번홀에서 각각 5m와 1.2m 퍼팅을 성공했다. 만약 이번에 그린 재킷을 입으면 1986년 46세로 마스터스 정상에 올랐던 잭 니클라우스(78)를 제치고 역대 최고령 우승자로 기록되는 미컬슨도 5연속 버디로 맞불을 놓았다. 로리 매킬로이(29·북아일랜드)의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 여부도 관심이다. 매킬로이는 2011년 US오픈, 2012년 PGA챔피언십, 2014년 브리티시오픈을 제패했다. 메이저대회 중 마지막으로 남은 마스터스를 평정하려고 도전을 거듭했지만 허사였다. 매킬로이가 우승하면 유럽 출신 중 첫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어렵기로 악명을 날리는 ‘아멘 코너’(11~13번홀)를 어떻게 공략할지도 관건이다. 아널드 파머(미국)가 마스터스에서 처음 우승한 1958년 12번홀에서 친 공이 벌타 없이 구제될 때 “아멘” 하고 외친 게 현지 매체에 실리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505야드로 전장이 긴 편인 11번홀(파4)은 지난해 나흘 내내 단 하나의 이글도 생산하지 못한 반면 보기 이하를 108번 쏟아냈다. 변화무쌍한 바람 때문에 난코스로 꼽히는 12번홀(파3)에서도 이글 없이 보기 이하만 72번이었다. 510야드로 파5치고 짧은 13번홀에선 그나마 이글이 여섯 차례 터졌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온종일 초등돌봄] 저녁 7시까지 돌봄 확대… ‘맞벌이 초딩맘’ 퇴사 막는다

    정부가 온종일 돌봄체계 구축을 위해 2022년까지 연평균 2200억원씩 총 1조 1053억원의 재원을 투입하는 이유는 맞벌이 부부의 증가 등 양육 환경도 급격히 변화했기 때문이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무상보육을 실시 중인 0~5세 영유아들은 315만명 중 68.3%인 215만명이 공적돌봄 혜택을 받고 있는 반면 초등학생의 공적돌봄 이용률은 12.5%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초등학교 학생들의 방과후 돌봄 공백은 ‘워킹맘’들에게 출산 이후 직장을 포기하는 것으로 이어져 여성 경력단절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신학기에 초등 1~3학년 자녀를 둔 직장인 여성 1만 5841명이 퇴사했다. 4일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로 구성된 온종일 돌봄체계 구축 범정부 추진단에 따르면 이번 계획을 통해 부처별로 제각각이었던 초등돌봄 서비스를 통합해 지역 내 빈틈없는 돌봄 체계를 구축한다는 목표다. 정부는 현재 33만명에게 지원되고 있는 초등돌봄 서비스를 2022년까지 총 53만명으로 확대한다. 정부는 2022년 맞벌이 돌봄수요(부부 모두 풀타임 직장 기준)가 약 46만명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파트타임 근무자인 맞벌이 부부까지 포함하면 맞벌이 돌봄 수요가 64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목표치인 53만명은 풀타임과 파트타임 맞벌이 부부들 돌봄 수요의 절충점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먼저 정부는 현재 각 학교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학교돌봄’ 이용 아동 수를 현재 24만명에서 2022년까지 34만명(초등돌봄교실 3500실, 빈 교실 활용 1500실)으로 늘릴 계획이다. 초등돌봄교실은 ‘기존 겸용 교실 리모델링’, ‘신설 학교 돌봄교실 설치 의무화’ 등을 통해 7만명을 더 수용한다. 초등돌봄교실은 각 초등학교가 재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방과후 돌봄 서비스다. 또 빈 교실을 지역사회에 개방해 지자체 등에서 인력을 고용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도 계획 중이다. 이를 통해 3만명에게 추가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초등 1~2학년 위주였던 초등돌봄교실 대상을 3~6학년까지 초등생 전체로 확대하고 운영 시간도 오후 5시까지에서 부모들의 퇴근 이후인 오후 7시까지 확대한다. 초등교육법에 초등돌봄교실과 방과후 학교 설치·운영에 대한 내용을 추가해 법적 근거도 마련할 방침이다. 이를 위한 운영 및 인건비 4935억원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충당하고 시설비용 1050억원은 전액 국고에서 지원한다. 지역아동센터를 통해 제공되는 마을돌봄 서비스는 현재 9만명에서 19만명으로 두 배 이상 늘린다. 지역 내 도사관이나 주민센터 등 공공시설 공간 1817곳을 활용해 지역돌봄 수요를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한 재원 3560억원은 국고보조(서울 30%, 지방 50%)를 활용한다. 온종일 돌봄체계 구축은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해 7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온종일 돌봄교실을 초등학교 전 학년으로 점차 확대하고 내실화하는 방안을 병행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공교육 비용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해 출발선 단계부터 균등한 교육기회를 보장한다는 취지다. 돌봄학교 확대와 온종일 완전돌봄체계 구축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경력단절여성을 돌봄 교실 교사로 채용해 지역 고용을 창출, 돌봄과 고용 문제를 함께 해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박인비, 생애 두 번째 ‘호수 다이빙’ 끝내 무산

    박인비, 생애 두 번째 ‘호수 다이빙’ 끝내 무산

    ANA 인스퍼레이션 8차 연장 .. 린드베리에 7m짜리 버디 맞고 분패역대 연장 승부 3승4패로 기우뚱 .. 세계랭킹은 종전 9위에서 3위로 박인비(30)가 이틀에 걸친 연장전을 펼쳤지만 생애 두 번째 ‘호수 다이빙’은 끝내 무산됐다.박인비는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 컨트리클럽(파72·6763야드)에서 열린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ANA 인스퍼레이션 연장전에서 날을 넘겨 8차까지 간 연장전 끝에 페르닐라 린드베리(32·스웨덴)에게 패했다. 박인비는 지금까지 6차례 가진 연장 승부 결과가 3승3패로 똑같았지만 이날 린드베리에 패해 균형이 깨졌다. 특히 세 번째 치른 메이저대회 연장전에서 패해 더 아쉬움이 남았다. 박인비는 지난 2013년과 이듬해 나란히 LPGA 챔피언십에서 연장에 돌입한 뒤 각각 카트리오나 매튜(스코틀랜드), 브리타니 린시컴(미국)을 따돌리고 대회 2연패를 일구기도 했다. 전날 최종합계 15언더파 273타를 기록한 박인비는 전날 린드베리, 재미교포 제니퍼 송(29)과 연장전에 돌입한 바 있다. 3차 연장에서 송이 먼저 탈락했고, 4차 연장까지 승부를 내지 못해 이날 5차 연장부터 경기가 재개됐다. 지난 2013년 이 대회 우승자 박인비는 2015년 8월 브리티시 여자오픈 이후 2년 8개월 만에 메이저 대회 우승을 노렸으나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박인비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했더라면 투어 통산 20승, 메이저 8승, 시즌 2승을 한꺼번에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박인비는 이날 발표된 세계랭키에서 지난주 9위보다 6계단 상승해 3위에 이름을 올렸다.지난달 LPGA 투어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에서 우승해 종전 19위에서 9위로 뛰어오른 박인비는 약 2주 사이에 세계 랭킹을 16계단이나 끌어 올렸다. 지난해 10월 말 이후 줄곧 10위 밖에 머물다가 어느덧 세계 1위 탈환이 가능한 자리까지 만회한 셈이다. 지난 2013년 4월에 처음 세계 1위에 올랐던 박인비는 이후 2015년 10월까지 총 92주간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다. 한편 2010년부터 LPGA 투어에서 뛴 린드베리는 앞서 출전한 191개 대회에서 한 번도 우승이 없다가 생애 첫 우승을 메이저 대회에서 일궈냈다. 우승 상금은 42만 달러(약 4억 4000만원)다.이날도 10번(파4), 17번(파3), 18번(파5)을 돌며 이어진 5∼7차 연장에서 나란히 파로 승부를 내지 못한 둘은 다시 10번 홀로 옮긴 8차 연장에서 승부가 갈렸다. 린드베리가 약 7m 긴 버디 퍼트에 성공한 반면 박인비의 약 5m 버디 퍼트는 왼쪽으로 빗나가 우승 세리머니의 터인 ‘포피스 폰드’의 주인공은 린드베리가 됐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여기는 남미] 경찰까지 전멸…마약 조직 지배하는 멕시코 유령도시

    [여기는 남미] 경찰까지 전멸…마약 조직 지배하는 멕시코 유령도시

    무법천지가 되면서 썰렁한 유령도시로 전락한 멕시코의 국경도시가 중남미 언론에 소개됐다.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는 문제의 도시는 치와와주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으로 꼽히는 과달루페. 무법천지를 피해 주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경찰까지 사라진 도시엔 기분 나쁜 적막감만 흐르고 있다. 미국 텍사스와 얕은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국경도시 과달루페는 마약카르텔에겐 전략적 요충지였다. 10여 년 전 시날로아와 후아레스의 마약카르텔 간 참혹한 '영토전쟁'이 시작된 이유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멕시코 중앙정부는 치안유지를 위해 2008년 과델루페에 군과 경찰 1만1800여 명을 투입했다. 하지만 군을 투입한 건 불난 곳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됐다. 2010년 과달루페와 인근 후아레스에선 3825명이 살해됐다. 이른바 '마약과의 전쟁'이 낳은 사망자 중 15%가 이들 2개 도시에서 발생했다. 후아레스보다 과달루페의 피해가 더 컸다. 과달루페에선 경찰이 전멸했다. 2010년 10월 발생한 여경 에리카 아르출레타의 피살사건은 과달루페 공권력 붕괴의 대표적 사건이다. 당시 28세였던 아르출레타는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과달루페에 배치됐다. 처음엔 휘하 부하경찰이 7명이었지만 모두 피살되거나 마약카르텔의 협박을 받고 사직했다. 홀로 남은 그는 장총을 매고 매일 혼자 순찰을 돌다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됐다. 생사가 확인되지 않던 그녀는 납치된 지 2개월 만에 하천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아르출레타 사건 이후 과달루페의 지방경찰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중남미 언론은 "모두 피살되거나 마약카르텔의 협박을 받고 옷을 벗어 지방경찰은 이제 단 1명도 남아 있지 않다"고 보도했다. 경찰이 사라지면서 과달루페는 마약카르텔이 통치하는 땅이 됐다. 주민들은 불안에 떨다 결국은 피난길에 올랐다. 2005년 4600명을 웃돌던 과달루페의 주민은 이제 1500명 정도가 남았을 뿐이다. 익명을 원한 한 여자주민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있지만 정말 불안하다"며 "(인터뷰를 하는 지금도 마약카르텔의)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라디오쇼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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