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세 돌
    2026-07-26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7-26
    검색기록 지우기
  • 복역
    2026-07-26
    검색기록 지우기
  • 메달
    2026-07-26
    검색기록 지우기
  • 배제
    2026-07-2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495
  • [근대광고 엿보기] 자전거왕의 탄생- 전 조선 자전거 대회/손성진 논설고문

    [근대광고 엿보기] 자전거왕의 탄생- 전 조선 자전거 대회/손성진 논설고문

    자전거가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것은 1890년대 전후로 추정된다. 독립신문 등 신문에 자전거 광고가 간혹 등장하는데 대중에게 보급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최초의 자전거 대회는 1906년 4월 22일 서울 동대문운동장 훈련원에서 열렸다고 한다. 1913년 매일신보와 경성일보가 주최한 전 조선 자전거 경주대회가 1913년 4월 인천을 시작으로 서울, 부산, 평양, 개성 등 전국 대도시를 돌며 열렸다. 본격적인 대회로는 처음인 이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이 바로 자전거왕 엄복동이다. 그때 나이 21세였고 40대가 돼서까지 각종 경주 대회를 휩쓸었다. 장소는 서울은 용산 부대 연병장, 인천은 만석동 매립지였다. 지금이야 자전거가 큰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당시에는 신기한 운송수단이었다. 스포츠 경기로는 거의 처음이었을 자전거 경주 대회에는 관람 인파가 구름같이 몰려들어 천막을 쳐 놓고 구경했고 관람객을 위한 임시 전차를 운행하는가 하면 시내 중심가의 상점들은 하루 문을 닫았다. 고관들은 부인을 동반하고 대회장에 앉아서 관람했다. 용산에서 열린 서울 대회의 관람자는 10만여명에 이르렀다. “운동장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루어 송곳 세울 틈도 없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매일신보 1913년 4월 15일자). 서울 대회의 제1류 경주에는 일본인 4명과 한국인 엄복동, 황수복 두 사람이 참가했는데 엄이 1등, 황이 3등으로 골인했다. 그런데 이어진 본사 우승기 쟁탈 경주에 엄복동과 일인 8명이 경주를 펼쳤는데 엄 선수가 결승점에 들어오기 직전 일인 선수의 바퀴에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고의였는지 실수였는지는 보도되지 않았다. 엄복동이 당시 대회에서 탄 자전거는 중고였다고 한다. 이후 엄 선수는 조선의 자전거 경주대회를 석권하게 된다. 3·1 만세운동 이듬해인 1920년 5월 일제는 일본 최고의 선수들을 불러 엄복동과 한국인들의 기를 꺾으려고 대결을 붙였는데 일본 선수들은 뒤처지거나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일인들은 엄 선수가 대회장을 돌지 못하게 막아서며 방해했다. 우승기는 엄 선수 차지가 됐다. 분개한 일인들이 우승기를 빼앗고 엄 선수를 구타하는 소란을 피웠고 격분한 한인 군중은 “심판원과 일인들을 때려잡아라”라고 소리치며 돌을 던지며 항의해 대회장이 아수라장이 됐다(매일신보 1920년 5월 4일자). 동아일보는 엄 선수가 골인하기 전에 심판이 별안간 경기를 중단시켰다고 보도했다. 그런 엄 선수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20여년 동안 자전거 절도 행각을 벌이며 몇 번이나 처벌을 받은 것은 아이러니다. sonsj@seoul.co.kr
  • 정은경 “이태원 집단감염 ‘용인 66번’서 시작 추정”

    정은경 “이태원 집단감염 ‘용인 66번’서 시작 추정”

    경기도 용인시의 29세 남성 확진자 A씨와 관련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8일까지 총 15명이 확인된 가운데,방역당국은 A씨를 이태원 클럽 관련 감염의 초발환자(첫 환자)로 추정했다. 방역당국은 A씨와 동선이 꼭 일치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시간대에 이태원 일대 유흥시설을 방문한 사람 중 코로나19 의심증상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검사를 받으라고 권고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본부장은 이날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15명 확진자의 역학조사 결과로는 29세 용인시 (66번 환자 A씨) 사례를 발병이 빠른 초발환자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A씨와 관련한 코로나19 감염자는 현재까지 15명에 이른다. 이날 확인된 13명 중 12명은 클럽에서 접촉한 이들이고 1명은 직장동료다. 확진자들은 19∼37세의 젊은 연령층이다. A씨는 지난 2일부터 고열과 설사 등 코로나19 증상을 보였으며, 6일 확진 판정을 받고 현재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2일에는 이태원 일대를 돌며 0시∼오전 3시 30분에 ‘킹클럽’, 오전 1시∼1시 40분에 ‘트렁크’, 오전 3시 30∼50분 ‘퀸’을 방문한 것으로 조사됐다. 클럽 내부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방역당국은 A씨의 발병 2주 전까지의 동선을 역추적하며 역학조사를 진행 중이다. 정 본부장은 “아직은 2일에 클럽에서 노출돼 감염된 확진자가 대다수”라며 “그래서 1차 용인시 사례로 인한 2차 전파로 보고 있고, 이렇게 확진된 분에 대한 추가 접촉자를 확인해 자가격리 등 조치를 하고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확진자의 동선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2일 오전 0∼4시에 3개 업소가 아니더라도 이태원에 있는 클럽이나 유흥시설을 방문하신 분 중에서도 의심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관할 보건소 또는 1339를 통해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아달라”고 당부했다. 또 “(A씨가) 전염력이 높은 시기(발병 초기)에 시설을 방문했다”며 “(A씨를 비롯한 클럽 방문자들이) 입장을 대기하면서는 마스크를 썼지만,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공공기관과 상생 협약, 전통시장 살리는 묘약

    공공기관과 상생 협약, 전통시장 살리는 묘약

    “구청장님이 직접 여기까지 왔으니까 내가 깎아 드려야지. 대신 다음에 또 오세요.” ‘최고로 좋은 국산 참기름을 달라’는 이창우 서울 동작구청장의 말에 시장 상인은 “구청장님이 와 준 것만도 감사하다”며 값을 깎아 줬다. 이 구청장은 코로나19로 방문객이 줄어든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지난달 29일 동작구 사당동에 있는 남성사계시장을 찾았다. 남성사계시장은 1일 평균 1만 5000여명이 찾는 동작구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이다. 사당동 주민은 물론이고 길 건너 서초구에서도 찾아온다. 이 구청장은 이날 30여분간 시장 곳곳을 돌며 온누리상품권 30만원어치를 모두 사용했다. 어묵집에서 밀가루를 넣지 않은 수제 어묵을, 손두부집에서는 국산콩 두부 한 모를, 정육점에서는 구이용 삼겹살 두 근을 샀다. 반찬가게에서는 명란젓·코다리조림·멸치볶음을, 과일 가게에서는 직원들에게 돌릴 수박을, 각각 다른 상점에서 족발과 홍어무침도 샀다. 부산어묵의 정미숙(60·여)씨는 “구청장님 바쁘실 텐데 직접 와 줘서 정말 고맙다”며 “요즘 코로나19로 소상공인이 어려운데 우리 시장에 고객지원센터가 문을 열게 돼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정육점의 김현수(60)씨는 “구청장님이 늘 전통시장을 각별하게 신경써 줘 힘이 난다”고 말했다. 장보기에 앞서 이 구청장은 새로 문을 연 고객지원센터를 찾아 상인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지난 2월 리모델링을 마친 고객지원센터는 고객쉼터, 어린이도서관, 다목적실 등 상인과 시장 이용 주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별도의 개관식은 하지 않았다. 남성사계시장은 최근 110개 점포에 화재 알림 시설 설치를 완료했고, 올해 12월 준공을 목표로 주차장 건립을 추진 중이다. 간담회에서 이재열 상인회장은 “코로나19로 난리인데 다행히 우리 시장은 큰 문제 없이 지내 왔다”며 “앞으로도 구청에서 소독약 등 방역물품을 지원해 주면 한 달에 5회 이상 자체적으로 방역하겠다”고 말했다. 이 구청장은 간담회에서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방안도 소개했다. 중앙대병원은 남성사계시장, 숭실대는 상도골목시장 등 지역 공공기관과 협약을 맺어 인근 전통시장을 전담해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구청 공무원들도 전통시장 가는 날을 운영해 장을 본 뒤에 곧바로 퇴근할 수 있게 했다. 구청 구내식당 대신 지역 음식점을 이용하는 날도 운영한다. 이 구청장은 “코로나19로 전통시장이 걱정됐는데, 직접 와서 손님이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며 “전통시장 지원에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어 “소상공인 긴급생활안정자금을 지급하고 동작사랑상품권 발행액과 혜택을 늘려 전통시장뿐만 아니라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을 돕는 데 총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1972년 ‘퍼펙트 우승’ NFL 전설 돈 슐라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1972년 ‘퍼펙트 우승’ NFL 전설 돈 슐라

    미국 프로풋볼(NFL) 마이애미 돌핀스의 전설적인 감독 돈 슐라가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1972년 NFL 역사에 유일하게 완벽한 우승 시나리오를 쓴 것이었다. 정규 시즌 14경기, 플레이오프 두 경기를 이긴 뒤 워싱턴 레드스킨스를 물리치고 자신의 첫 슈퍼볼 우승을 장식했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2007년 시즌은 정규시즌 16전 전승이지만 슈퍼볼에서 패해 ‘퍼펙트 시즌’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슐라는 사령탑으로 무려 33시즌, 526경기를 지휘했다. 347승으로 역대 최다 승리 지휘 기록을 갖고 있다. 돌핀스 구단은 4일(이하 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오늘 아침 돈 슐라 감독이 (사우스 플로리다의)자택에서 평안히 영면했음을 알려 슬프다”며 “고인은 50년 동안 마이애미 돌핀스의 가부장이었다. 우리 프랜차이즈 구단에 승리의 순간을 가져다줬으며 구단과 우리 시 마이애미를 전국구로 키웠다”고 추모했다. 2013년에는 미네소타 바이킹스를 물리치고 2년 연속 슈퍼볼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수비수 출신답게 노네임 디펜스(Noname Defense)로 불린 막강 수비진을 구축했는데 처음 상대해본 내셔널풋볼컨퍼런스(NFC) 감독들이 돌핀스의 막강 공격진에 견줘 요즘 말로 ‘듣보잡’이라고 얕잡아 본 것에서 유래했다. 밥 그리시, 데이비드 우들리, 댄 마리노로 이어지는 좋은 쿼터백을 고르는 안목도 대단했다. 하지만 다른 슈퍼볼 우승 기회는 번번이 날려 버렸다. 해서 큰 승부에 약하다는 뒷말도 들었다. 제3회 슈퍼볼 때 자신이 지휘하던 볼티모어 콜츠가 뉴욕 제츠에 지고 말았고, 1982년과 1984년 돌아왔지만 두 번 모두 졌다. 결국 그의 슈퍼볼 우승은 두 차례로 끝났다. 하지만 슐라만큼 꾸준히 성적을 내는 사령탑도 없었다. 16차례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고 정규시즌 172경기를 이겨 승률 5할 이상을 올렸다. 19차례나 플레이오프에 팀을 이끌어 역대 가장 많았다. 그가 지휘한 돌핀스가 승률 5할을 밑돈 것은 1976년 6승 8패, 1988년 6승 10패 두 차례 뿐이었다.상대들 가운데 하나가 자신이 1970년 돌핀스로 옮기기 전까지 1963년부터 몸 담았던 볼티모어 콜츠였다. 그는 1995년 은퇴할 때까지 돌핀스에 25년을 몸담았다. 플레이오프에서 버팔로 빌스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뒤 구단은 코치진 개편을 강요했고 그가 거절한 것이 구단주의 격분을 사 전설적인 사령탑 경력이 끝났다. 1997년 명예의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슐라는 시간 관념을 바꾼 사령탑으로도 이름 높다. 1972년 퍼펙트 시즌을 달성했을 때 정규시즌 14경기에 패스 횟수가 259번 밖에 안됐고, 세 번의 플레이오프 경기에 264 순 패싱야드를 기록했다. 러닝 게임과 빼어난 수비 덕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슈퍼볼에 진출한 1984년에 2년차 쿼터백 마리노가 48차례 터치다운과 5084 패싱야드 기록을 세운 것과 견줘도 얼마나 짠물 경기를 펼쳤는지 알 수 있다. 그의 리더십은 흔히 ‘올드 스쿨’로 불렸는데 야후! 스포츠는 은퇴한 뒤에도 그렇게 오랫동안 존경받는 지도자로 남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가 매년 뽑는 올해의 스포츠 인물에 1993년 선정됐다. 선수로는 7시즌 동안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와 콜츠, 레드스킨스의 디펜시브 백으로 뛰었다. 존 캐롤 대학에서 수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뒤 잠깐 고교 교사로 일하다 1951년 NFL 드래프트 9라운드 110번으로 브라운스에 입단했고 선수로서 두드러진 실적을 남기지 못했다. 선수 생활을 하던 1952년 오하이오 주방위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 11개월 한국에서 근무한 이력도 있다. 로저 구델 NFL 커미셔너는 성명을 내 고인은 “가장 위대한 감독 가운데 한 명이자 우리 게임의 역사에 기여한 인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수많은 이들의 삶에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NFL 역대 최다승 감독, 완벽한 시즌으로 팀을 이끈 유일한 인물로 슐라 감독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풋볼 인생을 살았다”고 애도했다. 마지막 NFL 경기를 지휘한 뒤 레스토랑 체인 ‘슐라스 스테이크하우스’에 이름이 붙여지는 영예도 누렸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반나절 동안 3번 체포·3번 석방된 범죄자…코로나19 ‘수혜’ 톡톡

    반나절 동안 3번 체포·3번 석방된 범죄자…코로나19 ‘수혜’ 톡톡

    약 120만 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미국에서 코로나19의 ‘수혜’를 누리는 범죄자가 속출하고 있다. 뉴욕포스트 등 현지 언론의 3일 보도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지난 1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 있는 글렌도라 경찰서는 20대 남성이 불과 12시간 동안 세 번의 체포와 세 번의 석방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문제의 남성은 올해 24세인 디종 랜드럼으로, 첫 번째 사건은 지난달 29일 오전 8시 28분경 발생했다. 경찰은 한 남성이 차량을 부수려 한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한 뒤, 훔친 차량으로 도주를 시도하는 랜드럼과 맞닥뜨렸다. 경찰은 이 남성에 대한 조사를 마친 뒤, 캘리포니아의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제로-베일 정책’(Zero-Bail Policy)에 따라 이 남성에게 훗날 소환장을 발부하기로 하고 현장에서 석방했다. 하지만 문제의 남성을 석방한 지 불과 한 시간 후인 오후 2시 20분, 경찰은 또 한 통의 신고전화를 받았다. 수상한 남성이 커다란 상자를 들고 주택가를 배회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수상한 남성’이 몇 시간 전 체포됐다 풀려난 랜드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상자를 품에 안고 주택가를 돌며 물건을 훔치다 딱 걸린 랜드럼은 두 번째로 꼬리로 잡혔지만, 경찰은 정책상 또다시 ‘선(先) 석방, 후(後) 소환장 발부’를 약속하며 현장에서 풀어줘야 했다. 경찰이 마지막 신고전화를 받은 것은 저녁 8시 50분, 첫 번째 체포가 있은 지 12시간 정도 흐른 뒤였다. 경찰은 주차장에서 차량을 도난당했다는 신고를 접수한 뒤 범인을 추적해 체포한 뒤 그가 반나절 새 두 번의 체포와 석방을 거듭한 랜드럼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번에도 그를 ‘순순히’ 놓아줄 수 밖에 없었다. 역시 캘리포니아의 제로-베일 정책 때문이었다. 문제가 된 제로-베일 정책은 교도소 내 코로나19 확진 위험을 낮추기 위해 용의자의 수감을 최대한 줄이고,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 법적 책임을 묻는 캘리포니아주의 긴급명령이다. 현지에서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캘리포니아의 긴급 정책이 범죄 용의자들은 다시 대중들에게 되돌려보내는 부작용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불과 12시간 동안 범죄를 세 차례나 저지른 뒤 체포되고도 자유의 몸이 된 랜드럼과 같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주에는 이틀 동안 네 차례의 범죄를 저지른 남성이 제로-베일 정책의 수혜자가 됐다. 미국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밀집도가 높은 교도소에서도 급속도로 퍼지면서 주의령이 내려졌다. 특히 캘리포니아의 경우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비폭력 범죄 로 수감된 재소자 등을 임시 석방 또는 조기 석방해야 했다. 4월 중순 기준, 전국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조기 석방된 재소자는 1만 6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실시간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현지시간 3일 기준으로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118만 8122명, 누적 사망자는 6만 8598명이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점심, 마음에 점 하나 찍는 것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점심, 마음에 점 하나 찍는 것

    코로나19로 점심 풍경도 사뭇 달라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도시락을 싸 오거나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나도 직장의 권유로 싸지 않던 도시락을 쌌다. 오늘은 점심으로 뭘 먹을까 하는 고민은 덜었지만 집사람을 불편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하다. 보통 점심이란 아침과 저녁 사이에 먹는 음식이다. 아침과 저녁은 때와 끼니의 의미까지 가졌지만, 점심은 오직 끼니만을 일컫는다. 점심은 본래 두 끼를 먹던 중국에서 아침과 저녁 사이에 드는 간단한 식사로, 시장기가 돌 때 마음에 점을 찍고 넘겼다는 뜻과 한 끼 식사 중 다음 요리를 기다리는 동안에 간단하게 먹는 음식이란 의미를 뜻했다. 요즘은 어떤가. 아침은 임금처럼, 점심은 양반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먹으라는 말이 있지만, 거꾸로 아침은 굶거나 적게 먹고 오히려 점심과 저녁은 더 푸짐하게 먹는다. 원래 점심은 글자 그대로 마음(心)에 점(點)을 찍듯 조금 먹는 음식으로, 낮에 먹는 끼니 혹은 선승들이 배고플 때 아주 조금 먹는 음식 등을 가리킨다. 요즘처럼 정식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소식으로 가볍게 먹는 것을 이른다. 당나라 때에는 점심을 이른 새벽이나 아침 혹은 낮 12시를 전후해 드는 간단한 소식으로, 기가 흩어졌을 때 마음을 새롭게 하는 다과류를 가리켰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스님들이 새벽이나 저녁 공양 전에 뱃속에 점하나 찍을 정도로 간단히 먹는 음식’을 말한다. 또한 간단한 간식을 뎬신(點心)이라 하고, 우리의 점심 식사에 해당하는 말은 우판(午飯)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점심이란 용어의 첫 등장은 조선조 태종 6년(1406)이다. 태종은 심한 가뭄이 계속 들자 각 관아에 점심을 중지하라는 명을 내렸다. 여기서 점심이란 간단한 간식을 이른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후기 성호 이익 선생도 “이른 새벽에 소식하는 것이 점심이고 한낮에 많이 먹는 것을 점심이라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했다. 주자의 ‘가례’에 “주부가 새벽참을 드린다는 것은 소식을 말하는 것으로 곧 세속에서 말하는 점심을 가리킨다. 비록 오찬이라도 소식만 하면 점심이라 칭해도 된다”고 했다. 임진왜란 중에 오희문이 쓴 일기 ‘쇄미록’에서도 간단히 먹는 것을 점심이라 쓰고 푸짐하게 먹는 경우를 주반(晝飯), 즉 ‘낮밥’이라며 점심과 구분했다. 궁중에서도 아침저녁에는 ‘수라’를 올리고 낮에는 다과나 국수로 ‘낮 것’을 차렸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가 낮에 푸짐하게 먹는 오찬(午餐), 즉 점심은 굳이 옛날로 따지자면 낮밥이지 점심이 아니다. 지금이야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끼를 먹지만 점심은 불과 100여년도 채 되지 않았다. 목천 현감 황윤석이 52세 때 쓴 1780년 4월 1일자 일기 ‘이재난고’에 따르면 “식사는 보통 하루에 두 번 먹는데 배가 고프다. 배가 고파 춘분부터 추분 이전까지는 부득불 속례에 따라 세끼를 먹었다”고 했다. 1790년대 실학자 이덕무도 조선인은 아침저녁으로 5홉씩 하루에 한 되를 먹는다고 했다. 19세기 중엽 실학자인 이규경도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해가 짧아지는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다섯 달 동안은 아침저녁 두 끼만 먹고 농사철이 시작되는 2월부터 8월까지 일곱 달 동안은 점심 포함해 하루 세 끼를 먹는다고 했다. 1916년 일본군 군의관들이 북부 지방의 생활을 기록한 ‘조선의 의식주’에서도 한국인의 식사 횟수는 지방에 따라, 계절에 따라, 경제력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하루 두 끼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먹는다고 하여 식사를 ‘조석’(朝夕)이라 했다. 농촌에서는 노동력에 따라 하루에 먹는 끼니 수가 달랐다. 필자가 어렸을 적 모내기나 김매기, 타작과 같이 힘든 일을 할 때는 하루에 다섯 끼를 먹었다. 일이 시작되기 전 먹는 밥을 아침밥, 10시에서 11시쯤 먹는 밥을 아침 저밥, 오후 2시에서 3시쯤 먹는 밥을 ‘저녁 저밥’, 일을 마치고 먹는 것을 저녁밥이라 했다.
  • 밥 대신 돌 끓인 엄마, 끝없는 배급줄…코로나19발 식량난

    밥 대신 돌 끓인 엄마, 끝없는 배급줄…코로나19발 식량난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외곽의 도시 센투리언. 약 24만 명이 거주하는 이곳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5주 전 봉쇄령이 떨어졌다. 그 여파로 경기 침체와 식량 공급망 교란이 이어지면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도 쏟아져 나왔다. 주민 80%는 짐바브웨, 모잠비크, 말라위, 카메룬, 말리 등 다른 아프리카 지역 출신 외국인이라 정부의 재정지원에서도 제외됐다. 극심한 기아에 곳곳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고 약탈도 자행됐다. 이들을 딱하게 여긴 건 몇몇 개인기업이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센투리언에서 8000개의 식량 키트가 굶주린 주민에게 돌아갔다고 전했다. 식량 원조 소식이 전해지자 주민 수천 명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하늘에 띄운 드론으로 본 배급 현장은 길게 늘어선 줄이 4㎞까지 이어져 끝이 보이지 않았다.코로나19 사태 이후 몇몇 국가는 극심한 식량난에 빠졌다. 인명피해와 폭력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는 밀가루와 식용유 배급 현장에 인파가 대거 몰리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해 2명이 사망했다. 외출금지령으로 집에 머무는 콜롬비아 사람들은 창밖으로 붉은 천을 내걸고 식량 원조를 호소하고 있다. 특히 감염병 확산 이전부터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렸던 수단과 짐바브웨 등 아프리카의 기아 인구가 급증하는 모양새다. 1일 영국 BBC에 따르면 케냐 코스트주 몸바사의 한 여성은 코로나19로 일거리가 끊기자 펄펄 끓는 물에 돌을 넣어 끓였다. 실제로 먹일 수는 없지만 배고파 우는 8명의 자녀를 잠시라도 달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다행히 방송을 통해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후원이 쇄도해 당장의 굶주림은 모면할 수 있게 됐다.생산량 부족과 공급망 교란 등 코로나19발 식량난의 이유는 여러 가지다. 주요 농축산물 수출국의 수출 제한 영향도 크다. 코로나19 이후 베트남과 러시아, 세르비아, 파키스탄, 캄보디아, 태국 등 주요 농축산물 수출국은 자국 식량확보를 위해 수출을 일시 제한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코로나19 여파로 1억3500만 명이었던 전 세계 기아 인구가 2억6500만 명까지 2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관측한다. 뉴욕타임스는 현재의 식량난에 대해 “코로나바이러스 대신 굶주림으로 죽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내놨다. 세계식량계획 수석 경제학자 아리프 후사인은 현재의 식량난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라고 경고했다.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으로 일부 지역에 국한돼 나타나던 기아 현상이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그 범위가 넓어졌다는 분석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발리우드의 영원한 청춘 스타 리시 카푸르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발리우드의 영원한 청춘 스타 리시 카푸르

    공교롭게도 발리우드와 할리우드를 오간 배우 이르판 칸이 세상을 떠난 다음날,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던 발리우드 배우 리시 카푸르가 세상을 등졌다. 4대에 걸쳐 배우가 나온 집안 출신인 고인이 암으로 67세 일기를 접었다고 영국 BBC가 30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발리우드의 가장 이름난 로맨스 영웅 중 한 명이었던 그는 예전에 파키스탄 땅이었다가 1947년 인도에 합병된 페샤와르에서 추앙 받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족의 전기작가에 따르면 “연기하기 위해 태어난 집안”이었다. 할아버지는 유명한 극장 회사를 운영했고 아버지 라지 카푸르는 발리우드 역대 최고의 배우이자 감독으로 이름을 떨쳐 한때 “인도 영화계의 간판 스타”란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친투(달콤한 것)’라고 가족들이 부를 정도로 “영원한 젊음”을 누릴 것 같은 용모를 타고났다. 할아버지가 연기할 때 요람에서 잠든 역할을 했고, 네 살 때 아버지가 영화 ‘Shree 420’에 출연해 바바리 코트를 입고 낭만적인 노래를 부를 때 잠깐 등장하기도 했다. 진짜 아역 배우로 데뷔한 것은 1970년 광대와 그의 연애를 다룬 ‘Mera Naam Joker’였다.아버지가 메가폰을 잡고 가족이 운영하던 봄베이(지금의 뭄바이)의 스튜디오가 제작해 흥행에 실패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장 많은 관객이 본 작품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는 한 인터뷰를 통해 “그 영화에 캐스팅됐을 때 난 학교에 있었는데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연기를 해도 좋겠냐고 물었다. 그 얘기를 듣고 전율이 돋아 내 방으로 달려가 거울을 보고 연기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스무 살이던 3년 뒤 아버지가 만든 ‘Bobby’ 주연을 맡았다. 두 도시가 10대들을 키운다는 뮤지컬 러브스토리는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영화는 속된 말로 ‘대박’이 났고, 인도의 영웅들은 화가 잔뜩 나 있거나 비극적인 영웅들로 묘사되던 때 그의 젊고 활달함은 데뷔작이었던 여주인공 딤플 카파디아와 호흡이 척척 맞아 관객들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1970년대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영화 가운데 하나였으며 옛소련에까지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어 그에게 혈서를 보내는 소녀 팬들까지 있을 정도였다.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새로운 두 스타, 뮤지컬 노래들, 사회주의의 감각, 젊은 관객들에게 어필한 점, 약간 선정적인 장면들, 폭력과 3시간에 걸친 호사스런 일탈”이라고 영화의 성공 요인을 꼽았다. 이어 평론가는 “젊음이란 액센트는 인도 영화에 상대적으로 새로운 것이었으며 연기자들은 자신이 그려낸 캐릭터보다 때로는 더 나이 들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발리우드의 슈퍼스타 샤 루크 칸은 “‘Bobby’ 이전에 인도 영화가 남녀를 그렸다면 이 영화 이후에 소년과 소녀를 다루게 됐다”고 말했다. 100편이 넘는 영화, 197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그는 로맨스 영웅의 역할을 계속했다.영화 전문기자 디네시 라헤자는 그를 “70년대란 패션판 위에 새겨진 남성 키치(kitsch)”라고 평가했다. 그는 자서전에 “1970년대나 80년대 내겐 티셔츠만 입어도 멋진, 속닥이는 말투로 여색을 밝히는 카사노바, 한 손에 기타와 다른 손에 소녀를 낀 청춘 스타 이미지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발리우드의 기념비적인 작품들, Kabhi Kabhi, Amar, Akbar, Antony, Naseeb, Coolie, Ajooba 등에 출연했다. 청춘물에 함께 나온 니투 싱과 결혼해 아들 란비르 역시 발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타 배우로 길렀다. 중년이 된 뒤 이미지를 바꿔 영민한 가부장, 갱단원, 슬랩스틱 코미디물에 카메오 등으로 출연했다. 카푸르는 2012년 인터뷰를 통해 “내 연기 경력의 초반 25년보다 지금이 더 재미있다. 난 늘 노래를 불러 여인들을 꾀고 춤추며 나무 주위를 돌았는데 지금은 스스로 즐기고 있다. 이런저런 역할들을 실험해보고 내 안의 배우들을 탐험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할리우드 배우 더스틴 호프먼을 흠모해 그가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샤일록 베니스의 상인’ 연극에 출연했을 때 롤스로이스를 빌려 타고 가 관람했다. 공연이 끝난 뒤 호프먼을 잠깐 만났는데 자신이 타고 온 롤스로이스보다 한참 아래인 포드 에스코트를 타는 것을 보고 당황했던 기억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의 가문은 좋은 위스키와 음식에 약한 이미지로 타블로이드와 소셜미디어에 곧잘 등장했다. 트위터 팔로어만 350만명인 그는 가끔 논쟁적인 글을 올리고 댓글들과 다투곤 했다. 유명 정치가 가문인 간디 가를 신랄하게 비판해 반대 시위꾼들이 집에 몰려오기도 했다. 고인은 솔직한 면모도 지니고 있었다. “난 여전히 영화계 학생이다. 어떤 자격시험을 통과하지도 않았으며 잘 교육받지도 않았다. 거의 학교를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었다. 해서 난 지독히 운이 좋아 이 자리에 왔을 뿐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일한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이제 할 건 기도밖에”…생활치료센터 마지막날 자원봉사자가 보내온 편지

    “이제 할 건 기도밖에”…생활치료센터 마지막날 자원봉사자가 보내온 편지

    대구 생활치료센터 30일 완전 해산첫날부터 자원봉사 지원한 유동훈씨지난 10일 이후 두 번째 편지 보내와코로나19 진정에 기쁘지만미완치 환자 볼 때 안타까움 더해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가 지난 3월 1일 설립된 이후 4월 30일을 끝으로 해산한다. 설립된 지 꼭 60일 만이다. 코로나19 경증 환자를 치료·격리할 목적으로 대구 중앙교육연수원에 처음으로 센터가 설립된 이후 14개 센터가 추가로 설립·운영됐다. 경증 환자 3025명이 입소해 2957명(완치율 97%)이 퇴소했으며, 의료진 등 누적 종사자는 1611명에 이른다. 중앙교육연수원에 센터가 마련됐을 때부터 간호조무사로 자원봉사를 한 유동훈(39)씨가 해산을 맞아 29일 서울신문에 편지를 보내왔다. 지난달 10일 이후 두 번째 편지에서 그는 자신을 ‘패잔병’이라 표현했다. 완치 판정을 받지 못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는 환자들이 마음에 걸려서다. 그는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음을 아쉬워했다. 대구는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지난 3월 1일부터 일했으니 이제 60일째입니다. 고민하지 않고 이곳에 지원했지만, 의료진 감염 소식에 걱정이 앞선 것도 사실입니다. 이곳이 세계 최초의 생활치료센터라는 점 때문에 언론의 관심이 높아 행동 하나하나가 부담스러웠습니다. 개소 직후 들어오던 수많은 구급차 행렬은 잊지 못할 겁니다.과거에 병원에서 일할 땐 환자들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외딴곳에 내려와 환자들이 먹는 도시락을 먹으며 같은 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오랜 격리 생활에 지쳐 있는 환자들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저 역시 고립감과 불안감 등으로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우리 의료진은 환자들과 가장 밀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혈압을 재고 체온을 재며 투약 업무 등 늘 환자와 가까이 있었습니다. 다른 불편한 증상이 있을 때도 의사 지시 하에 관찰하고 보고하고, 환자에 관련된 모든 걸 살피며 지내왔습니다. 계속되는 유전자 증폭(PCR) 검사 때도 들어가 의료진을 돕고, 검체 포장 등 잡다한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함께 지내온 환자들이 완치해 우리에게 감사 편지를 남기고 떠날 때 위안과 기쁨을 얻었습니다. 심리적 압박 겪는 코로나19 환자들 이곳에 입원한 환자 증상은 다양했습니다. 오랜 격리생활로 불안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았습니다. 심리적 부분도 지원하고자 지역대학의 정신간호학 교수님이 매일 오셔서 환자 한분 한분 상담을 해주시며 일일이 살피고 정서적 지지를 해주셨습니다. 특히 소아청소년과 고령자, 기저질환자 분들은 긴장하고 더 살펴야 했습니다. 새벽에 갑자기 통증이 있으면 항상 방호복을 입고 달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기억에 남는 환자도 많습니다. 코로나 환자 이송업무를 하다가 감염돼 입소하신 구급대원이 있었습니다. 항상 표정이 밝아 보는 사람들을 더 안타깝게 했습니다. 간호사, 간호조무사로 일하다가 확진돼 오신 분들을 보면 막중한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요양병원에서 간병사로 일하다 감염된 분도 있었는데, 저와 동성동본이라 더 반갑게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있습니다.치료 후 사회로 복귀해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고용불안 문제 때문입니다. 2년간 공무원 준비했던 한 남성은 코로나19로 일주일 정도 다닌 회사에서 해고됐습니다. 실업급여대상도 아니어서 살길이 막막하다고 했습니다. 당장 이달 월세 낼 돈도 없고 주소도 대구로 이전돼 있지가 않아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위로해 드렸지만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생활고에 시달려 그 마음이 이해됩니다. 저도 돈 벌면서 야간에 간호학원을 다니며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계속 병원 일을 하며 돈을 마련해 왔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대구에 내려오긴 했지만, 그 뒤에 대한 삶은 저 역시 또 고민이 생길 것 같습니다. 돌아갈 직장이 있는 분들도 걱정이 없는 건 아닙니다. 회사에서 낙인이 찍혀 안 좋은 소문이 돌아 허탈해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신천지도 아닌데 신천지로 소문난 분도 있습니다. 지역적 팬데믹을 만들어낸 신천지에 대한 분노도 컸습니다. 특히 한 분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신천지 교인으로 인해 감염 됐는데 끝까지 말하지 않아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화를 내셨습니다. 신천지랑 상관도 없는데 왜 코로나 걸렸느냐고 추궁하는 부모님 때문에 힘들다는 젊은 분 이야기를 들을 땐 가족 간 오해도 생길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이 세상 어머님들은 역시나 본인보다 가족과 자식을 더 걱정하며 지냈습니다. 남편이 타지에서 근무하고 자녀가 10, 15세 아들이라 끼니 거르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어머님, 6, 10세 아이들을 다른 곳에 맡겼지만 그래도 밥 먹는 게 걱정된다는 어머님, 자녀가 걱정할까봐 일부러 자녀 전화 안 받는다는 어머님 등…그중 안타까웠던 건 7년 전 딸이 교통사고를 당해 후유증으로 자신이 간병을 해왔는데, 격리되는 바람에 간병을 할 수 없는 분 이야기였습니다. 차라리 이곳에 병실을 따로 만들어 제가 돌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는 전쟁 뒤의 황폐함 들어 대구 지역만 현재 누적 완치자가 6000명대에 이릅니다. 그래서 다른 생활치료센터들은 속속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나 그곳들이 닫을 때마다 이곳에 환자가 집중돼 뉴스로 보는 바깥세상과 이곳의 현실이 달라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점차 고립돼 낙오된 보병과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코로나19 진료에 참여한 수많은 의료진이 겪었을 정신적인 고통에 공감합니다. 20대 초반부터 병원 일을 시작해 음악 대학원 마칠 때까지 병원 일을 했습니다. 환자들을 대하며 살아온 시간은 짧지 않습니다. 그때도 많은 죽음을 봐왔고 종종 가까운 이들의 죽음도 겪었지만 잘 이겨냈습니다. 그때 경험은 교통사고를 겪은 느낌이라면, 이번 일은 전쟁 뒤의 황폐함 같은 감정이 듭니다. “패잔병처럼 저는 서울로 갑니다…할 수 있는 건 기도뿐” 이곳 생활치료센터도 이제 해산합니다. 적은 숫자이지만 아직도 완치되지 못하고 집에 못 돌아가는 분도 있습니다. 또다시 여러 병원으로 나뉘어 보내지게 될 것입니다. 그분들을 결국 집으로 보내드리지 못하고 저는 패잔병처럼 서울로 돌아갑니다. 이제는 기도밖에 해줄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특히 외딴 이곳에까지 기부 물품을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유머사이트 커뮤니티인 ‘웃기는 대학’ 회원들이 우리의 수분 보충을 염려해 음료수를 상자 채로 보내줬던 게 큰 위로가 됐습니다.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불편하더라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꼭 지켜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그들의 시선] 목탁 장인 김종성씨의 60년…불평보단 인내를

    [그들의 시선] 목탁 장인 김종성씨의 60년…불평보단 인내를

    “이제는 목탁을 못 놓지. 내 생명 끝날 때까지 해야 되는 거지…” 60여 년간 목탁(木鐸)을 만든 김종성(74)씨는 “남은 생도 이 일에 바치고 싶다”고 했다. 모든 것이 기계화되고 있는 시대, 그는 몇 곱절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전통방식의 수작업을 고집했고, 자신의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는 “기계로는 목탁을 대량 생산하겠지만, 수작업으로 만든 목탁 고유의 소리를 내지 못한다”며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목탁과 함께 한 김씨의 인생을 듣기 위해 지난 22일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 하개금마을에 있는 그의 작업 공간을 찾았다.김씨의 스승은 그의 선친(김사용씨, 1977년 사망)이다. 전국 방방곡곡 사찰을 돌며 목탁행상을 하던 그의 선친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직접 목탁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궁핍한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김씨는 아버지와 동행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13살에 선택한 길이었다. “그때 초등학교도 못했어요. 학교도 못했지… 그러니까 취직 같은 건 엄두도 못 내고, 먹고 살길이 없으니 이걸 배워야 되겠다 싶어서, 2대째 배워서 목탁 만드는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데… 고생이라는 것은 말도 못하지요. 절 같은 데 목탁 한 개 가져가서, 보리쌀 한 되, 두 되 얻어서 연명을 해 나온 기라.”기술을 익히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포기하기도 여러 번. 그는 “몇 번 안 하려고 했다”며 “목탁 만드는 일을 시작할 때, 아무리 해도 원하는 소리가 안 나오더라. 겉을 다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속을 파내서 소리를 내는 건 아무나 할 수가 없다. 껍데기가 아무리 좋아 봐야 소리가 안 나면 다 필요 없다”며 소리의 중요성을 터득하기까지 인고의 시간을 보냈음을 밝혔다. 삼 년 반. 목탁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먼저 물푸레나무 뿌리를 캐내 습기 많은 논에 3년간 묻어 나무의 진을 뺀다. 굵은 소금과 함께 가마솥에 넣고 삶은 후 그늘에 석 달 건조하면 목탁 재료가 된다. 그 재료를 손도끼, 자귀, 곱칼 등을 이용해 다듬어 형태를 만든다. 그 위에 숯검정을 칠하고 들기름을 7번 덧칠하면 그제야 온전한 하나의 목탁이 완성된다.그렇게 완성한 목탁에 그는 ‘성공(成空)’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성철 스님이 ‘이루고 공을 들인 목탁’이라는 의미로 그에게 성공이라는 법명을 지어줬다. 오래전 그는 “목탁을 들고 해인사에 있는 성철스님을 찾았다. 스님이 한 번 치시더니, ‘김 처사 밥값도 못한다’고 하더라. 이후 매번 꾸중을 들으면서도 몇 년을 찾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이 ‘됐다’고 하시면서 성공이라는 낙관 두 자를 주셨다”고 말했다. 목탁을 완성한 뒤, 잘 만들었다고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 그는 단박에 “소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법당같이 갇힌 공간에서 목탁을 두드리면 그 울림이 다르다. 소리 울림이 십리 까지 간다”며 “마음에 들지 않은 목탁은 바로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서 태워버린다”고 덧붙였다.평생 목탁만 만든 그는, 5남매 가운데 목탁 일을 배우던 둘째 아들을 2012년 심장마비로 먼저 보냈다. 그보다 앞선 2000년에는 군에 간 막내아들이 전역 석 달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오랜 시간 그의 곁에서 목탁 만드는 일을 돕던 친동생도 2011년 고인이 됐다. “내 사는 게 말도 못합니다. 군대 간 막내아들 하나 잃었지, 목탁 만든다던 아들도 죽고 없지, 제 동생도 세상 저버리고 없고… 소중한 세 사람을 갑자기 잃은 기라…” 최근에는 김씨의 24살 된 손자가 먼저 떠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할아버지 곁에 있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처음에는 못하게 말렸다. 아이를 봐서라도 대학까지는 마쳤으면 했는데, 끝내 목탁 만드는 일을 해보겠다는 고집을 꺾지 못했다”며 “지금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곧 내려와서 목탁 만드는 일을 한다고 했다”며 손자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손자가 대를 잇는다는 소식은 반갑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가난이 대물림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예불용 중에 최고 품질은 35만원이다”며 “한 달에 두세 개, 1년에 서른 개를 못 만든다. 그러니 현상 유지가 안 된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사실 빚만 남았다”며 손자가 추후 겪게 될 빈곤을 걱정했다. 그럼에도 불평보단 희망을 말하는 김씨. 그는 목탁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증조부,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4대째 목탁 만드는 일을 해보겠다는 손자 때문에 버틴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불심 때문인지 목탁 만들 때만큼은 정말 행복하다. 손자의 행복을 빌며 함께 이 길을 잘 가보려 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세월의 때가 고스란히 묻은 낡고 오래된 그의 작업공간만큼이나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김씨. ‘불평보다 인내를’ 택한 그는, 환하게 웃을 날을 기약하며 오늘도 묵묵히 목탁을 만들고 있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형우 기자 gophk@seoul.co.kr
  • 미래통합당 총선 참패로 ‘대통령 탄핵’ 마무리됐다

    미래통합당 총선 참패로 ‘대통령 탄핵’ 마무리됐다

    한국의 ‘선거혁명’이라 불러도 좋겠다. 선거가 혁명적인 정치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려준 사건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압승, 미래통합당 참패, 진보정당 위축, 제3정당 소멸로 요약되는 선거 결과에 대해 정당과 언론은 물론 국민들도 깜짝 놀랐다. 선거가 민주주의를 장식하는 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한 무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 정치사의 흐름을 바꾼 중대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4월 15일 ‘2020년 총선’으로 대통령 탄핵은 마침내 마무리됐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보자. 2016년 촛불혁명과 2017년 대통령 탄핵으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분열됐고 두 정당은 긴 길을 돌아 다시 미래통합당으로 합쳤다. 그 도정에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동물국회가 있었고 장외투쟁으로 증폭됐다. 탄핵 후에 치러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의 거듭된 패배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과 미래통합당은 변화를 거부하다가 결국 이번 총선에서 심판을 받았다. 그러나 대참패는 아니다. 1960년 4월혁명 직후에 치러진 7·29 총선에서 자유당이 어떻게 패배했는지 확인해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5대 국회는 219석 중 172석을 민주당이 차지했다. 비중이 78.5%이다. 민주국가에서 선거로 집권한 정권은 행정권력, 입법권력, 지방권력이라는 세 차원의 권력을 갖는다. 탄핵 후 대통령선거에서 행정권력이 교체되고 지방선거에서 지방권력이 교체됐지만 국회는 계속 바뀌지 않다가 이번 선거에서야 교체됐다. 국회의 교체는 탄핵 3년 후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탄핵과 무관한 사건이 아니라 행정권력과 지방권력 교체에 이은 입법권력 교체로서 탄핵의 세 번째 후속조치이자 탄핵의 완결이라고 정의해야 할 것이다. 2017년 탄핵이 2020년에 마무리됐으니 세상에서 가장 긴 탄핵으로 기억될 것이다. 선거에는 여러 변수가 작용한다. 오랫동안 한국정치에 강력하게 작용했던 남북관계, 지역감정, 국제상황 등 단골 변수가 등장하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현안인 한일 관계나 한미 관계는 물론 경제 상황이나 노사 관계도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파급력이 큰 조국 변수가 부각됐지만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비례위성정당도 논란거리였지만 민주당과 통합당이 모두 실시하면서 변별력이 없어져 버렸다. 결국 남은 변수는 코로나19와 통합당의 반대뿐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코로나19에 효과적으로 대응해 유럽과 비교되는 성과를 거두고 각국의 긍정적인 평가가 속출하면서 통합당의 반대는 빛을 잃었다. 미증유의 코로나 상황은 선거에 삼중효과를 주었는데 정부의 성공적인 방역에 대한 국내외의 호평 외에도 두 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코로나19가 모든 사회경제적 이슈를 빨아들여 선거 이슈를 제한하는 블랙홀이 됐다는 사실이다. 또 코로나19 상황이 유사 전시상황으로 간주돼 통합당의 정권심판론을 원천 차단해 버렸다. 결국 선거 이슈가 제한되고 정권심판론이 차단된 상태에서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성공적인 대응만 부각되는 코로나 총선이 돼 버린 셈이다. 4·15 총선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였다. 중간평가란 집권여당에 불리한 선거라는 뜻인데 야당이 참패하고 여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역전극이 펼쳐졌다. 여당의 승리는 통합당의 참패, 진보정당의 위축, 제3정당의 소멸이라는 복합적인 정치상황의 산물이다. 정의당은 기대의석에 못 미쳤고 민생당은 의석을 얻지 못했으며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비례 3석으로 축소됐다. 게다가 나경원, 김진태, 민경욱, 전희경, 황교안, 심재철, 김대호, 차명진 등 정치적 논란 유발자들이 대거 낙선함으로써 유사 낙선운동의 성격을 갖게 됐다. 선거에서 중산층은 전투에서 병사의 갑옷과도 같은 것인데 통합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와 억지의 논리에 빠져 중산층을 포기하는 벌거벗은 선거전략을 구사했고 유권자들은 그런 대책 없는 통합당을 미련 없이 버렸다. 민주당이 호남을 장악하고 통합당이 영남을 석권한 선거 결과를 두고 지역주의 강화론이 제기됐다. 그러나 지역주의 대결구도는 맞지만 지역주의 강화는 아니다. 호남의 상황은 안철수 현상의 퇴조와 민생당에 대한 심판의 결과일 뿐이다. 영남에서 통합당의 의석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당 역시 의미 있는 득표를 했다. 선거 결과는 지역주의 대결구도에서 양당의 대결이 격화되면서 나타난 표의 집중성을 반영한 결과일 뿐이다. 계급투표나 계층투표의 작동에 대해서는 연구가 더 진행돼야겠지만 세대투표 측면에서는 젊은 유권자와 50대 유권자층의 진보적 경향이 눈에 띈다. 이러한 경향이 분단구조하에서 고착된 보수화된 정치지형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통합당의 떼쓰기 정치에 대한 일시적인 반감인지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통합당의 정권심판론은 작동하지 않았고 거꾸로 야당심판론만 작동했다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흐름은 26.69%에 달한 사전투표에서 일찌감치 감지됐다. 여당 압승으로 정부는 정책 추진을 위한 유리한 환경을 갖추었다. 특히 야당의 반대 때문에 하지 못했던 개혁입법을 추진하는 데는 매우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졌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의 국정 안정 기조가 마련됐기 때문에 레임덕 현상의 등장이 지연되거나 그 강도 역시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정운영의 난맥상이 반드시 야당의 반대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때때로 정권 내부의 문제로 인해 더 심각한 난관에 봉착하기도 하는 만큼 두루 안팎을 신중하게 단속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다. 영국 시인 바이런처럼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더라는 말이 있다. 정부여당에는 4월 15일이 그런 날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과거 열린우리당의 쓰라린 경험을 반추하면서 최대한 신중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참패한 통합당은 재편 논의에 들어갔지만 재편 방향을 둘러싸고 다시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당 해체론서부터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어 조기 수습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수습 자체가 어려운 상황인 데다 지도력까지 취약하기 때문이다. 여당이 압승한 상황에서 제1야당의 재편이 지연되면 정국은 정부여당이 주도하는 비정상적인 1.5정당체제의 양상으로 고착될 수밖에 없다.단기 전망은 어떨까. 선거 결과로 인물의 부침이 큰데 여당에서는 행정부의 이낙연이 정치인으로 복귀하면서 이낙연, 이재명, 박원순 등 차기 주자군이 공고해졌다. 앞으로 더 많은 의원과 단체장들이 대열에 합류할 예정이다. 야당의 경우에는 선거 참패와 전반적인 지지도 하락의 상황에서 황교안, 오세훈, 심재철의 낙선까지 겹쳐 심각한 인물난을 겪고 있는데 무소속으로 당선된 홍준표와 김태호의 역할은 아직 미정이니 내년부터 본격화될 대통령선거를 준비해야 할 통합당 앞에는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2022년 정권교체론이 정권 재창출론에 대적하기 어려운 정치구조가 만들어졌다는 뜻이고 쉽게 바뀌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떨까. 과유불급에 호사다마라는 격언은 이 경우에도 적용돼야 할 것이다. 총선 결과로 나타난 비대칭적 정치구도가 국정 안정화와 개혁입법 추진에 유리한 것이 사실이고 통합당의 떼쓰기 정치투쟁으로 인한 사회적 분열과 국력 낭비도 막을 수 있는 환경이지만 여야 관계의 불균형을 마냥 환영할 상황은 아니다. 진보정당이 위축되고 제3정치세력이 소멸돼 진보·개혁·보수의 미래지향적 3정립 구도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은 더욱 아쉽다. 민주주의가 힘의 균형을 토대로 한 소통과 협력을 요구하며 다원적 정치세력의 다양한 목소리가 갈등 조정과 국민 통합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비대칭적이고 불균등한 정치관계는 민주주의의 성숙에 바람직한 정치구도라 할 수 없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하고 더 많은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지대 총장
  • 남편 코로나19와 사투 벌이는데 아내 쌍둥이 형제 낳고 확진 판정

    남편 코로나19와 사투 벌이는데 아내 쌍둥이 형제 낳고 확진 판정

    미국의 36세 부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코로나19에 감염되는 와중에 무사히 쌍둥이 형제를 세상에 내놓았다. 특히 남편은 천식을 기저질환으로 갖고 있어 목숨을 앗길 뻔했지만 병원에 부인을 보낸 뒤 혼자서 병마를 이겨냈다. 화제의 주인공은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근처 클락스턴에 사는 제니퍼 라우바흐(36)와 안드레 동갑내기 부부. 출산의 어려움과 남편의 용태를 함께 걱정하면서 혼자 힘으로 형제를 분만한 제니퍼도 대단했다. 하지만 집에 혼자 남아 기침에 시달리며 9일을 견뎌낸 안드레도 못지 않았다. 제니퍼는 남편이 따라 가지 못한 트로이 뷰몽트 병원에서 쌍둥이 형제 미첼과 막심을 순산했다. 예정일에 8주 앞선 조산이라 각각 1.3㎏, 1.8㎏ 밖에 체중이 안 되지만 둘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없이 태어났다. 3주 동안 인큐베이터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의 극진한 돌봄을 받고 미첼이 25일(이하 현지시간) 퇴원해 집에 왔다. 막심은 폐에 조금 문제가 있어 사흘이나 닷새 뒤면 집에 올 예정이다. 제니퍼의 양수가 터졌을 때 그녀는 이미 코로나19로 의심되는 증상들을 겪고 있었다. 양수 터졌다는 얘기에 위층에서 부랴부랴 아내의 병원 짐을 챙기던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변호사인 안드레는 아래층으로 내려오다 머리가 핑 돌아 벽에 한번 부딪혔다. 기침을 하면 참을 수가 없을 정도이고, 말하기조차 힘겨웠다. 간신히 아내를 조수석에 태우고 차를 운전해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으니 병원에 오면 안된다고 했다. 해서 안드레를 집에 데려다 놓고 제니퍼가 손수 운전을 해 병원에 갔다. 그녀는 다시는 남편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리는 남편에게 “사랑해”라고 인사하자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안드레는 27일까지 미국에서만 100만명 가까운 감염자와 5만 4000여명의 사망자를 낳고 미시간주에서 확인된 3만 7000명의 감염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 주에서는 사망자가 3000명을 넘어섰다.출산 예정일이 8주나 남았는데 뱃속 아기들은 급한 모양이었다. 나중에 의료진은 제니퍼가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이 출산을 앞당기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어렵게 가진 아이들이었다. 난자 수가 적다고 해 임신 촉진제를 맞았는데 효과가 있었다. 안드레는 제니퍼의 양수가 터지기 며칠 전 하도 기침이 멎질 않아 병원 응급실을 함께 다녀왔다. 응급실에 다녀온 뒤에도 기침이 5시간 이어져 복부 근육이 파열될 정도였고 아침 7시에야 잠이 들었다. 그리고 4시간 뒤 제니퍼가 양수가 터졌다며 잠을 깨웠다. 제니퍼는 첫 번째 검사에서는 음성 판정이 나왔으나 아기들을 낳은 뒤 두 번째 검사 결과 양성 판정을 받았다. 온이란 이름의 여간호사가 남편 대신 그녀의 손을 꽉 잡아줘 미첼을 오전 9시 41분, 막심을 10분 뒤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물론 아이들에게 감염시킬까봐 분만 직후 안아보지도 못했다. 대신 아이들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보내 함께 보며 둘이 아니, 넷이 모두 위기를 잘 헤쳐나왔다고 다독였다. 특히 안드레는 사진을 보고 반드시 이 감염병을 이겨내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23일 감염병내과 의료진의 최종 완치 판정을 받고서야 부부는 형제들을 안아볼 수 있었다. 당연히 안드레는 공을 아내에게 돌렸다. “제니퍼는 양수가 터진 뒤에도 30분을 혼자 운전해 병원에 달려갔고,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움에 떨면서 코로나 감염 판정을 받았고 응원도 받지 못한 채 두 아이를 낳았다. 정말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값어치 있는 교훈을 얻었다고 지역 일간 디트로이트 프리프레스에 털어놓았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한다는 사실을 공유하라는 것이다. 누릴 수 있는 매일을 그래야 한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美 36세 부부 코로나19 감염되고도 쌍둥이 형제 낳고 완치까지

    美 36세 부부 코로나19 감염되고도 쌍둥이 형제 낳고 완치까지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근처 클락스턴에 사는 제니퍼 라우바흐(36)의 양수가 터졌을 때 이미 코로나19로 의심되는 증상들을 겪고 있었다. 양수 터졌다는 얘기에 위층에서 부랴부랴 아내의 병원 짐을 챙기던 동갑내기 남편 안드레 역시 마찬가지였다. 출산 예정일이 8주나 남았는데 뱃속 아기들은 급했던 모양이었다. 나중에 의료진은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이 출산을 앞당기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변호사인 안드레는 아래층으로 내려오다 머리가 핑 돌아 벽에 한번 부딪혔다. 원래 천식을 앓아 언론에서 가장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는 기저질환자였다. 기침을 하면 참을 수가 없을 정도이고, 말하기조차 어려웠다. 간신히 아내를 조수석에 태우고 차를 운전해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으니 병원에 오면 안된다고 했다. 해서 안드레를 집에 데려다 놓고 제니퍼가 손수 운전을 해 트로이 뷰몽트 병원에 갔다. 그녀는 다시는 남편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리는 남편에게 “사랑해”라고 인사하자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안드레는 27일까지 미국에서만 100만명 가까운 감염자와 5만 4000여명의 사망자를 낳고 미시간주에서 확인된 3만 7000명의 감염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 주에서는 사망자가 3000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안드레는 혼자서 모든 과정을 이겨내고 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았다. 제니퍼는 쌍둥이 형제 미첼과 막심을 순산했다. 조산이라 각각 1.3㎏, 1.8㎏ 밖에 체중이 안 되지만 둘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없이 태어났다. 3주 동안 인큐베이터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의 극진한 돌봄을 받고 미첼이 25일(이하 현지시간) 퇴원해 집에 왔다. 막심은 폐에 조금 문제가 있어 사흘에서 닷새 뒤면 집에 올 예정이다. 당연히 출산 과정과 남편의 건강을 함께 걱정하면서 혼자 힘으로 형제를 분만한 제니퍼도 대단했다. 하지만 집에 혼자 남아 기침에 시달리며 9일을 혼자 견뎌낸 안드레도 대단했다. 양수가 터지기 며칠 전 하도 기침이 멎질 않아 병원 응급실도 부부가 함께 다녀왔다. 그래도 기침이 5시간 이어져 복부 근육이 파열될 정도였고 아침 7시에야 잠이 들었다. 그리고 4시간 뒤 제니퍼가 양수가 터졌다며 잠을 깨웠다. 제니퍼는 첫 번째 검사에서는 음성 판정이 나왔으나 아기들을 낳은 뒤 두 번째 검사 결과 양성 판정을 받았다. 어렵게 가진 아이들이었다. 난자 수가 적다고 해 임신 촉진제를 맞았는데 효과가 있었다. 온이란 이름의 여간호사가 남편 대신 그녀의 손을 꽉 잡아줘 미첼을 오전 9시 41분, 막심을 10분 뒤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물론 아이들에게 감염시킬까봐 분만 직후 안아보지도 못했다. 대신 아이들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보내 함께 보며 둘이 아니, 넷이 모두 위기를 잘 헤쳐나왔다고 다독였다. 특히 안드레는 사진을 보고 반드시 이 감염병을 이겨내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23일 감염병내과 의료진의 최종 완치 판정을 받고서야 부부는 형제들을 안아볼 수 있었다. 당연히 안드레는 공을 아내에게 돌렸다. “제니퍼는 양수가 터진 뒤에도 30분을 혼자 운전해 병원에 달려갔고,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움에 떨면서 코로나 감염 판정을 받았고 응원도 받지 못한 채 두 아이를 낳았다. 정말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값어치 있는 교훈을 얻었다고 지역 일간 디트로이트 프리프레스에 털어놓았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한다는 사실을 공유하라는 것이다. 누릴 수 있는 매일을 그래야 한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홀로코스트 홀로 살아남은 키치카 코로나19로 ‘삶의 행진 끝’

    홀로코스트 홀로 살아남은 키치카 코로나19로 ‘삶의 행진 끝’

    나치의 잔학한 홀로코스트에 온가족을 잃고 혼자만 살아남았던 벨기에 유대인 앙리 키치카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세상을 떠났다. 벨기에에 남은 마지막 아우슈비츠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키치카가 지난 25일(이하 현지시간) 브뤼셀의 요양원에서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BBC가 다음날 전했다. 아들 미셸은 페이스북에 부음을 올려 “작은 미물 코로나바이러스가 나치 군대 전체가 실패한 일을 성공시켰다. 우리 아버지는 죽음의 행진에서 살아남았는데 오늘 그에게 삶의 행진이 끝났다”고 알렸다. 고인은 지난 1월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묻는 질문에 “아우슈비츠에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 장소 자체가 죽음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1926년 폴란드에서 유대인 차별을 겪은 가족이 이주한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나치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해 장악하자 그들은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져 1942년 나치가 폴란드 남부에 세운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다. 앙리와 아버지는 한동안 노예 노동을 했던 반면, 어머니와 두 누이동생, 이모는 아우슈비츠에 끌려가자마자 가스를 마시고 불태워졌다.일년 정도 아우슈비츠 생활을 했던 앙리는 1945년 옛 소련 군대가 중부와 동부 유럽에 흩어져 있던 나치 수용소들을 해방시키겠다며 진격하자 독일 수용소로 이송하기 위해 굶주린 수용자들과 함께 죽음의 행진에 참가했다. 전쟁이 끝난 뒤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는 자신의 경험을 결코 입에 올리지 않았다. 결혼도 해 아내와 가게를 열어 네 자녀와 아홉 손주, 열넷의 증손주를 뒀다. 그러나 한침 뒤 학교들을 돌며 강연을 하기 시작하며 다른 이들이 잊지 않도록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 고통을 견디는 데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종전 60년을 맞아 그는 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회고록에 담아 냈고 이제 그의 목소리를 책을 통해 들을 수 있게 됐다고 방송은 지적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100세에 정원 100바퀴 457억원 모은 노익장, 싱글 차트 넘버원

    100세에 정원 100바퀴 457억원 모은 노익장, 싱글 차트 넘버원

    오는 30일(이하 현지시간) 100세 생일을 맞는 톰 무어 할아버지가 정원을 100바퀴 도는 이벤트를 담은 싱글 음반으로 영국 차트 최고령 넘버원 기록을 경신했다.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와 종사자들에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정원의 25m 트랙을 100회 생일이 될 때까지 100바퀴를 돌겠다며 모금 운동을 시작해 3000만 파운드(약 457억원) 가까이 모은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인 무어 할아버지는 가수 마이클 볼과 함께 부른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거에요(You‘ll Never Walk Alone)가 8만 2000장 팔려 이런 영예를 차지했다고 BBC가 전했다. 물론 음반 수익금도 NHS 채리티스 투게더 기금에 전달된다. 대위로 전역한 할아버지는 “우리 손주들도 내가 톱 차트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믿지 않더라”면서 많은 이들이 싱글을 사줘 고마우며 “우리가 여기 이렇게 함께 있다. 해서 난 여러분의 응원이 무한정 감사하다. 이것이 노래 제목을 그대로 웅변한다”고 말했다. 다음주 목요일 생일상을 받는데 세 자릿수 나이로 처음 넘버원을 차지하게 된다. 지금까지 최고령 싱글 넘버원은 톰 존스 경(卿)으로 2009년 발매된 ‘배리 아일랜드즈 인 더 스트림’의 코믹 버전으로 1위를 차지했을 때 68세 9개월이었다. 그 다음은 루이 암스트롱으로 ‘왓 어 원더풀 월드’를 발표했을 때 66세 10개월이었다. 웨일스 출신 존스 경은 재빨리 무어 할아버지에게 축하 메시지를 띄워 “무어 대위님, 톰이 또다른 톰에게 1위를 넘겼네요. 제 차트 기록을 깨주셔서 축하드려요. 누군가에게 질 것 같았는데 NHS를 위해 할아버지가 하신 일들과 할아버지에게 졌으니 영광이에요”라고 말했다. 볼은 이번 성취가 “가장 특별한 일이었으며 내 가수 경력에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 가운데 하나”라며 “하지만 나에 관한 것은 아니다. 톰 대위에 관란 것이다. 100세 생일에 넘버원이 되는 것에 감사드린다. 당신은 최고이며 신의 은총을”이라고 기원했다. 이 노래가 이번주 톱40 차트에 유일하게 오른 자선 노래도 아니었다. 두아 리파, 헤일리 스타인펠트, 앤 마리, 제스 글린, 숀 폴, 크리스 마틴, 바스티유, AJ 트레이시 등 스타들이 망라된 푸 파이터스의 ‘타임스 라이크 디즈’는 톱5에 들어섰는데 발매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거에요’가 처음 발매된 것은 지난 17일이었다. 48시간 만에 3만 6000장이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더 위큰드(The Weeknd)가 따라잡기 시작해 23일 저녁에 두 음반의 격차는 40장으로까지 좁혀져 곧 뒤집힐 상황이었다. 그러자 본명이 아벨 테스파예인 더 위큰드는 방송에 나가 “무어 할아버지가 1위를 해보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할아버지는 트위터에 “맙소사, 당신 참 아량 넓다”면서 손주들이 당신에게 “더 위큰드가 훨씬 재능도 있고 아주 인기 있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더 위큰드의 호소가 먹혀 할아버지의 판매량이 1만 3000장 정도 앞설 수 있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일자리 만들고 코로나도 이기는 ‘은평’

    일자리 만들고 코로나도 이기는 ‘은평’

    손소독제 교체·다중이용시설 순찰 등 코로나 관련 보조업무 일자리 만들어 김 구청장, 일자리사업 현장업무 동행 “주민과 구청 협력하면 위기 극복 가능”“주민과 구청이 협력하면 반드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습니다.” 지난 21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의 한 아파트. 김미경 은평구청장은 ‘은평형 코로나19 극복지원단 일자리사업’ 참여자들에게 “이번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이겨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김 구청장은 일자리사업 참여자들과 함께 아파트 두 군데를 돌며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손소독제를 비치하거나 교체하고 버튼 등에 항균 필터를 붙였다. 은평구는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되면서 경제 위기에 처한 주민을 긴급하게 지원하기 위해 은평형 코로나19 극복지원단 일자리사업을 만들었다. 경기 침체로 실직, 무급휴직, 일자리를 잃은 아르바이트생 등 어려움에 처한 주민을 위해 은평구가 선도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앞서 구는 지난 1일 추경예산을 통해 사업비 3억 9000만원을 확보했다. 지난 6~8일 3일간 일자리사업 참여자를 모집했다. 은평구에 주민등록이 된 18세 이상, 39세 미만 주민 가운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생활이 어려워 긴급 지원이 필요한 주민을 우선 선발했다. 선발 인원은 모두 240명으로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하루 5만 2000원을 받으며 교통, 간식비는 별도로 준다. 사업기간은 지난 13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1개월간이다. 일자리사업 참여자들은 구청 13개 부서와 8개 동주민센터에 배치돼 취약지역 방역, 다중이용시설과 다중참석행사 점검·순찰, 환경정비, 코로나19 관련 보조업무 등을 하고 있다. 김 구청장은 이날 아파트를 돌며 일자리사업 참여자들을 격려했다. 참여자들은 은평구가 지원한 손소독제 6900여개를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 주거용 오피스텔 등에 배부하고 항균 필터 작업을 했다. 사업에 참여한 한모(33)씨는 “결혼과 함께 경력이 단절돼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인 데다 코로나19로 남편까지 무급휴직 중이어서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는데, 은평형 일자리사업 소식을 듣고 기뻤다”며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을 떠나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 주민을 도울 수 있는 업무라 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김 구청장은 “이번 사업이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주민의 경제적 생활 안정에 기여하고 나아가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코로나에도 일본 성업소는 여전…이성소개 앱 사용자 폭증

    코로나에도 일본 성업소는 여전…이성소개 앱 사용자 폭증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에도 일본의 성 산업은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0일 정부의 문을 닫으라는 권고에도 S&M클럽과 같은 성판매 업소가 여전히 성업 중이며 이성을 소개하는 데이팅 앱은 오히려 이용자가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코로나19에 따른 긴급사태를 선포한 뒤 도쿄 대부분의 백화점은 문을 닫았고, 식당도 싸갈 수 있는 도시락 ‘벤또’ 메뉴를 주로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도쿄에서 면대면이 기본인 호스티스 클럽과 같은 성판매 업소의 사정은 다르다. 스트레스를 받은 직장인들이 젊은 여성을 찾는 호스티스 클럽, 핑크 살롱 등은 40분에 약 6000엔(약 7만원)의 비용이 든다. 오사카의 S&M클럽에서 일하고 있는 브리트니 제인은 20대 미국 여성으로 5년째 일본에 살고 있다. 그는 “손님들이 업소에 들어오기 전에 손을 씻고 옷을 소독해야만 한다”며 “내가 병에 걸려 아플 수도 있지만 기차를 이용하거나 슈퍼마켓에 가더라도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동네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사람도 코로나에 걸렸으나 무섭지 않다”며 “일본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안심이 되는 국가지만, 고령층이 많다는 사실이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도쿄의 핑크 살롱은 한 개의 방 안에서 여러 개의 칸막이를 두어 공간을 나누어 영업한다. 핑크 살롱에서 일하는 친구를 둔 27세 여성 유는 “내 친구는 고참이라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있지만 이제 막 시골에서 도쿄로 온 여성들은 그럴 자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손님들이 생식기를 물티슈로 닦는 것 외에 핑크 살롱에서는 더 이상의 위생 조치가 없으며 젊은 여성들이 부스를 돌면서 남성 고객들을 맞는 것이 대개의 영업 방식이다.틴더, 범블, 그라인더, 나인몬과 같이 이성을 소개하는 데이팅 앱 사용자 숫자는 어느 때보다 늘었다. 유는 “여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틴더와 범블에서 나를 검색하고 이들은 현지인이거나 일본에 오래 산 외국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일본의 1인 가구는 4분의 1 수준이지만 2035년이면 인구의 절반이 독신일 것이란 전망이 나올 정도로 일본에서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다. 호주 출신 동성애자로 일본에 사는 벤은 데이팅 앱 ‘그라인더’의 사용자가 코로나 발발 이후 폭증했다고 털어놓았다. 애초 검색할 수 있는 개인 신상 숫자를 그라인더가 제한해 놓았는데 3월 중순에는 볼 수 있는 볼 수 있는 프로필이 300개로 늘었다는 것이다. 프로필 검색 300개는 원래 비용을 더 지용해야만 검색할 수 있었는데 무료로 바뀌면서 훨씬 더 많은 사람들과 데이트하는 것이 가능해진 셈이다. 벤은 “사람들이 코로나 격리로 무료해지면서 데이팅 앱인 그라인더와 틴더의 유료 서비스를 구매해 세계인이 일본에 사는 동성애자들을 검색하고 있다”며 “정부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데이트를 하거나 점심을 같이 먹고 가라오케에 가고 있다”고 밝혔다.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했던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탑승자(712명)를 포함한 일본 내 누적 확진자는 1만 1866명을 기록 중이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대만서 자가격리 벌금 안 내고 떠나려다 걸린 한국 부부 그 후

    대만서 자가격리 벌금 안 내고 떠나려다 걸린 한국 부부 그 후

    대만에서 코로나19 자가격리 위반으로 부과된 벌금을 내지 않고 떠나려다가 제지당한 한국 부부가 결국 1000만원가량의 벌금을 납부했다고 현지 언론이 21일 보도했다. EBC방송과 연합보 등에 따르면 대만 법무부는 전날 오후 이들 한국 국적의 부부가 벌금 30만 대만달러(약 1200만원)를 지정은행 계좌에 송금한 것을 확인하고 출국제한 조치를 해제했다고 밝혔다. 이들 부부는 대만 법무부가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의 협조를 얻어 한국에 있는 친척에게 연락을 취하면서 벌금을 납부할 수 있게 됐다고 이들 매체는 전했다. 지난 2월말 대만 남부 가오슝공항을 통해 들어온 이들 부부는 격리 전용 호텔에서 14일간 자가격리하도록 조치됐다. 그러나 격리 해제 하루를 앞두고 물건 구매를 위해 잠시 외출했다가 적발돼 1인당 15만 대만달러(약 610만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심지어 이들은 벌금 납부를 회피하고 호텔을 떠났다가 지난 2일 타이베이 북부 타오위안공항에서 출국 전 항공편 탑승을 제지당했다. 이후 이들 부부는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 도움으로 그 동안 타이베이의 한국 교회에 머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부는 EBC방송과 CTI TV 등과의 인터뷰에서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가오슝 위생국의 한 관계자는 “이들이 처음부터 비협조적이었고, 중국어 회화와 독해도 가능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대만 당국이 29일까지 있었던 2월 윤달을 착각해 자가격리 기간을 혼동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대만 당국은 자가격리 관련 서류에 격리가 해제되는 날짜를 적어주기 때문이다. 대만 당국은 자가격리 기간을 계산하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입국한 다음날 0시를 기준으로 14일이 자가격리 기간이다. 입국일부터 세면 15일인 셈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노바스코샤 참극 희생자 18명으로, 간호사·교사·경찰·일가족 셋

    노바스코샤 참극 희생자 18명으로, 간호사·교사·경찰·일가족 셋

    캐나다 남동부 노바스코샤주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희생자가 적어도 18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모임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온라인에서 만들어진다. 이 나라에서 최악의 총기 관련 참사로 기록될 이번 사건은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밤부터 다음날 새벽 사이 치과기공사로 일했던 개브리얼 워트먼(51)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쫓기며 12시간 동안 외딴 마을 포르타피크 등 여러 곳을 돌며 총기를 난사하고 여러 채의 건물에 불을 지른 뒤 경찰과 총격전 끝에 사살됐다. 당국은 추모 모임에만 모임 금지령을 해제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온라인 국장 장례가 오는 24일 저녁 치러진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 역시 온라인으로 참여하겠다면서 “어제 발생한 사건에 관해 많은 것을 알수록 우리가 지역사회를 응원해야 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집권 민주당은 감염병이 수그러든 다음에 총기 규제 관련 논의를 의회에서 새롭게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희생된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영국 BBC가 20일 정리했다. 자원봉사 단체인 빅토리아 수도회 간호사(VON)에서 17년을 일해 온 헤더 오브라이언은 봉쇄령 탓에 힘겨운 일상을 보내는 요양원 어르신들을 돌보느라 힘든 한 주를 보냈는데 결국 고향집 데버트에서 워트먼의 흉탄에 스러졌다. 지난 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면 아주 바쁜 나날을 보냈다며 “지금 이 순간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 누리는 모든 것이 좋다. 난 진정 축복받았다”고 적고 있었다. 딸 다르시 돕슨은 페이스북에 “괴물”이 엄마를 살해했다며 “그날(19일) 아침 9시 59분에 가족 채팅창에 마지막 문자를 올렸는데 10시 15분 엄마가 숨을 거뒀다”고 적었다. 이어 “모든 이들이 엄마가 얼마나 친절한지 기억하고 간호사 일을 얼마나 사랑했는데 끔찍한 방법으로 숨졌다”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같은 VON 소속으로 돌봄 보조 일을 해온 크리스틴 비튼도 결혼한 지 얼마 안돼 어린 자녀가 있는데 변을 당했다. 첫 보도를 통해 숨진 사실이 널리 알려진 왕립캐나다기마경찰(RCMP)의 하이디 스티븐슨 경사는 23년 동안 봉직하다 두 자녀를 두고 순직했다. 트뤼도 총리는 20일 정례 브리핑 도중 그녀와 RCMP의 헌신에 감사하고 격려하는 언급을 했다. 데버트 초등학교 교사 리사 맥컬리도 두 자녀를 남기고 세상을 떴다. 경찰은 모두 성인 남녀들인 희생자들의 신원을 모두 공개하지 않았는데 CBC 방송은 교정 공무원 션 매클레오드와 알라나 젱킨스도 희생됐다고 보도했다. 또 졸린 올리버와 남편 애런 턱, 딸 에밀리(17) 일가족이 화를 당해 온라인 모금 운동이 전개된다. 에밀리는 아빠와 함께 바이올린을 켜거나 차를 고치는 일을 즐겼다고 했다. 또 제이미와 그레그 블레어 부부도 살해됐다. 글로브 앤드 메일에 따르면 40대 사회봉사 요원 코리 엘리슨도 희생됐다. 톰 배글리는 워트먼이 설치한 것으로 의심되는 폭발 현장을 점검하다 숨졌다. 아직도 워트먼이 어떤 동기로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18일 밤 11시 32분 총기 사고가 일어났다는 최초의 신고가 접수돼 경찰은 출동하며 주민들에게 집밖에 나오지 말라고 전했다. 경관들은 한 주택의 안팎에서 여러 희생자들을 발견했지만 용의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한 주민은 CBC 뉴스에 세 군데 사유지에서 총기가 발사됐다고 전했다. 용의자 신원은 그가 여러 군데를 돌며 총기를 난사할 때 특정됐는데 경찰은 피해 현장이 “주의 곳곳에 흩어져 있다”고 했다. 크리스 레더 노바스코샤 RCMP 서장은 20일 “극도로 복잡한 수사”의 첫 단계에 이제야 들어섰다고 말했다. 한 명의 경관이 더 부상 당했는데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모두 다섯 채의 건물이 불타 무너졌는데 그 안에서 주검이 더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일부 희생자는 용의자와 아는 사이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이들은 무작위로 고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워트먼은 평소 RCMP를 동경해 기념품 등을 수집하는 것을 취미로 삼을 정도였는데 그가 꾸민 경찰차는 경관이 보더라도 진짜로 착각할 만큼 제대로 만들었으며 정복도 거의 진품 같아 보였다. 따라서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으로 추정된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황제의 옥새8] “조선 독립 요구 문서에 옥새 찍어 헤이그 보내야”

    [황제의 옥새8] “조선 독립 요구 문서에 옥새 찍어 헤이그 보내야”

    서울신문은 조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국인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을 주인공으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들 소설은 일제 병합 직전 조선을 배경으로 베델이 조선 독립을 위해 모험에 나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900년대 초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거의 유일한 해외 소설이어서 사료적 가치도 큽니다. 서울신문은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에 이어 ‘황제의 옥새’(1914년 출간·원제 The Great Cardinal Seal)를 연재 형태로 소개합니다.나와 베델은 용 남작이 매우 중요한 일을 말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변장을 했어도 그에게서는 신사의 기품이 느껴졌다. 보통의 조선 양반에게서 흔히 볼 수 있던 어리석음이나 게으름 같은 느낌이 없었다. 넓은 이마는 지성인의 면모를 보여줬고 달걀형 얼굴 또한 그가 상류 계층에 속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줬다. 곱고 예리한 눈과 넓은 미간, 반듯한 코와 입술의 모양에서 애국의 열망이 묻어났다. 이 우울한 조선 땅에 용 남작 같은 이가 몇 명만 더 있었어도 역사는 지금과 같지 않았을 텐데... “존경하는 베델과 빌리!” 그는 열정에 가득 차 있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제가 오늘 조선을 구할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기회를 잘 살린다면 우리에게도 새로운 길이 열릴 것입니다.” 베델은 더 이상 그가 말을 하지 못하도록 손가락으로 입을 막았다. 다른 한 손으로는 목소리를 높이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우리는 작은 램프로 더 가까이 얼굴을 맞댔다. 그림자가 더 크게 만들어졌다. 남작은 속삭이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한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묘수를 찾았어요. 오는 9월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국제회의(제2회 만국평화회의)가 열립니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주재해요. 그곳에 대한제국 대표가 참석해 전 세계에 정의를 촉구하며 도움을 요청할 계획입니다. 조선의 생존이 달린 일이죠.” 베델이 급하게 끼어 들었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회의죠? 조선 특사가 헤이그에 가도록 일본이 가만 내버려 둘까요?” “제 말을 천천히 들어 보십시요.” 조선의 젊은 친구가 영국인 편집자를 제지했다. “앞서 제가 유럽과 러시아에 다녀온 사실을 두 분은 잘 알고 계시죠. 사실 저는 그때 폐하(고종)의 서신을 갖고 세상 밖으로 나갔습니다. 제 신발 속에 숨겨 지구의 반을 돌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고위층에게 전달했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도와 달라고 말이죠.“ 용 남작은 니콜라이 2세의 비밀 평의회 의원 한 명의 이름을 말했다. 그는 지금(이 소설을 발간한 1914년)도 유럽 외교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에 여기서는 가명을 쓰고자 한다. ‘애스터리스크(‘*’표시, 작은별을 의미) 왕자’쯤으로 해 두자. “그는 저에게 ‘조선에서 자행되는 일본의 행위들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조선이 국제 회의에 대표단을 파견한다면, 그리고 동양의 작은 독립국에 서서히 칼을 들이대는 일본의 진실을 폭로할 수 있다면 차르(니콜라이 2세)가 분명 뒤에서 도울 것’이라고 확언했습니다. 일본이 손에 끈을 들고 이 나라의 목을 조르고 있음을 모두에게 알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날 밤 희미한 전등 불 아래서 무너져 가는 나라에 찾아온 마지막 희망을 잡아보고자 열망에 가득찬 눈빛으로 열변을 토하는 그 애국자를 다시 한 번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 남작과 자리를 함께 한 영국인(베델)과 미국인(빌리)은 마치 전 세계의 운명이 자신들의 손에 놓여 있는 것같은 전율을 느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기나긴 항해 끝에 신대륙을 발견하고 찬송가를 부르던 그때만 해도 조선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던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둠 만이 가득한 곳으로 변했다. 아무 힘도 없는 우리 세 명이 이 땅을 구하고자 머리를 맞대고 있다. 현실적으로 지금 기댈 수 있는 곳은 러시아 차르 뿐이었다. 그만이 일본인 교살자의 손에서 조선을 구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용 남작을 지원할 수 있었다. 악인들의 감시 속에서 무섭고도 지루한 삶을 지내던 우리들에게 그 사실은 새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난 러시아가 이번 게임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잘 모릅니다. 조선을 도우려는 약속 뒤에 분명 뭔가 노리는 것이 있겠죠. 다만 이분(애스터리스크 왕자)는 뭔가를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일단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분입니다. 그를 믿고 이 모험을 감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황제의 옥새’는 9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