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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슴 속 그림 한 폭] 김정희의 ‘세한도’

    [가슴 속 그림 한 폭] 김정희의 ‘세한도’

    겨울바람이 매서운 날. 외떨어진 어느 곳에 소나무 몇 그루 동그마니 서있는 작은 집. 마치 핼쑥한 얼굴에 깡마른 노파만 살고 있을 듯한 곳….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속 외딴집 방문이 열리듯 단아한 남색 재킷을 걸친 중년신사가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지난해 말 국립극장장 자리에서 물러나 ‘광대’로 돌아온 김명곤씨. ●“세한도는 추사의 자긍심” 김 전 극장장은 마음 한 구석에 품어 둔 그림으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꼽았다. 그 자신 현재 처지를 설명하기에 그만한 작품이 없기 때문일까.“성균관 대사성·이조참판 등 최고 관직을 지냈던 추사는 그 화려했던 세월을 뒤로한 채 유배생활 중에 이 그림을 그렸죠. 지금 내 마음과 조금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실상 추사에게 당시는 그를 잊은 세상이 매서운 바람처럼 느껴졌을 터. 최근 ‘끗발’있는 자리에서 물러난 김 전 극장장에게도 세상이 차갑게만 느껴지는지 넌지시 그림에 빗대 물어봤다. 하지만 그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오히려 세한도는 추사의 자긍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에 슬퍼하지도 실망하지도 않았죠. 대신 푸른 소나무를 마음속에 키워 갔습니다. 점점 세상에 연연하지 않고 사철 푸른 소나무와 동화되어 갑니다. 그림 속 작은 집은 자신을 닦는 공간인 안식처, 곧 우주입니다. 결국 자신을 갈고 닦으며 세한을 거치니 지나온 삶에 대한 대학자의 자긍심은 푸른 소나무처럼 변치 않습니다.” 김 전 극장장은 작은 수첩을 꺼내더니 한 페이지 가득한 문구 하나를 보여준다.‘소나무는 세한(歲寒)전에도 푸르고 그 후에도 푸르다. 하지만 성인은 후자를 알아준다.’ ●“바쁠수록 유배가 필요” 이어 그는 “발전을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든 스스로 유배시키기를 즐겨야 한다.”면서 말을 잇는다.“국립극장장 시절뿐 아니라 그 전에도 난 스스로를 유배시키는 걸 즐겼어요. 바쁘다는 것은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중인 거죠. 그럴 때일수록 창조를 위해 나를 닦을 ‘유배’의 시간이 절실해요.5년 전인가 세한도를 처음 접한 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면 그림처럼 소나무 옆 작은 집이 떠오릅디다.”이미 그는 화려할 때부터 마당에 소나무 묘목을 심고 ‘세한’ 이후의 세상을 준비한 셈이다.“자리에서 물러난 뒤 그동안 쓰고 싶던 글 쓰고, 혼자 앉아 먹을 갈며 마음을 가다듬고, 극단은 연습에 들어가고…. 혼자만의 시간도 바쁘게만 지나갑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 속 소나무는 오늘도 푸른지 다시 다짐합니다.”그가 문을 닫고 돌아섰다. 다시 들여다본 ‘세한도’ 속 소나무 잎은 전과는 달리 당당하게 푸른 느낌이다. 아직도 겨울바람은 세차기만 한데도….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현대 ‘묵향’ vs 옛 ‘묵향’

    옛 묵향의 맛이 깊고 고졸한 데 있다면, 요즘 묵향의 매력은 그에 더해 창조적인 세련미까지 갖춘 데 있지 않을까.2월들어 서울 강남과 강북에서 나란히 열리는 ‘문자향 서권기’전과 ‘소전 손재형’전을 보면 이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청담동 박여숙화랑과 려갤러리가 공동 기획한 ‘도자향 서권기(陶瓷香 書卷氣)’전은 붓, 먹, 종이, 벼루의 문방사우를 테마로 현대 도자와 한국적인 현대회화의 만남을 시도하는 전시다. 전시 제목 ‘도자향 서권기’는 19세기 조선 남종 문인화를 대표하는 추사 김정희의 예술적 신념인 ‘문자향(文字香) 서권기’에서 따온 것. 그림에는 모름지기 문자의 향기와 서책의 기운이 담겨야 한다는 뜻으로, 문인화의 가치를 강조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김익영 이천수 이기조 이헌정 이영호 등 도예가들이 연적, 연병, 문진, 필통 등 다양한 도자작품을 선보인다. 또 한국적 현대회화를 대표하는 강미선 문봉선 송영방 이왈종 정광호 허달재 등이 문인화적 예술관에 근거한 회화와 조각작품을 내놓는다. 진청색 필통에 붓, 편지지, 연필 등이 보일 듯 말 듯 그림자처럼 꽂힌 모양을 표현한 강미선의 회화작품 ‘도자기소묘3’, 수천년간 땅속 깊이 묻혀 있다가 발굴된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현대적 조형미를 강조한 ‘문방구1’ 등의 작품은 전통적인 문인화와 도자기의 창조적 계승 가능성을 보여줘 주목된다.7일부터 21일까지. 박여숙화랑과 려갤러리 두 곳에서 동시에 열린다.(02)549-7564. 관훈동 갤러리 우림 1∼3층에선 ‘소전 손재형’전(7∼16일)과 ‘소치 허련’전(17∼27일)이 잇달아 열린다. 추사 김정희가 19세기 한국서예를 대표한다면 소전(素) 손재형(1903∼1981)은 20세기 한국서예를 대표한다고 할 만큼 현대 서예사에서 독보적인 인물이다. 소전은 일본에서 몇달 동안 머물며 노력한 끝에 일본으로 건너간 추사의 대표작 ‘세한도’를 찾아올 정도로 추사를 존경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서예를 가르치기도 했다. 전·예·해·행·초 오체(五體)를 섭렵한 소전은 특히 갑골문을 연구해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를 이뤘다. 이번 전시에선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작품 20여점과 ‘묵련’(墨蓮)‘묵란’(墨蘭)‘연화도’(蓮花圖) 등 서화 31점을 선보인다. 소치(小痴) 허련(1809∼1893)은 진도 출신으로 추사의 애제자. 조선 남종문인화를 계승해 주옥 같은 작품을 남겼다.이번 전시에선 개인 소장의 미공개 작품들을 중심으로 소치의 대가적 풍모를 느낄 수 있는 작품 50여점을 감상할 수 있다.(02)733-3738.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국립중앙박물관 용산시대] 반만년 겨레의 보물…눈길마다 탄성

    [국립중앙박물관 용산시대] 반만년 겨레의 보물…눈길마다 탄성

    우리나라의 찬란한 5000년 역사·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 28일 서울 용산에서 새로 문을 연다. 광복 60주년과 역사를 같이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잦은 이전의 아픈 과거를 뒤로 하고 새 보금자리에서 한민족 역사를 다시 쓰게 됐다. 9만여평의 넓은 터에 최첨단 전시·관람시설, 넉넉한 식사·휴식·문화공간, 박물관을 둘러싼 자연경관까지 가족들이 즐기기에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놓치기 아까운 새 박물관을 들여다보자. ●규모·시설, 세계 최고수준 박물관으로 향하는 정문에 들어서면 우선 엄청난 규모에 놀라게 된다.9만 2900평의 부지에 건물 연건평만 4만평이다. 특히 박물관 3개층에 달하는 전시면적은 8100평으로, 옛 경복궁 시절 전시실의 3배 이상이다. 정문에서 이어지는 ‘나들다리’를 걷다 보면 널따란 연못인 ‘거울못’을 만난다. 거울못을 지나 박물관 건물에 다다르면 동관과 서관을 잇는 ‘열린마당’에 서게 된다. 지붕은 있지만 벽이 없는 이 공간에서 남산을 바라볼 수 있다. 이어 동관 1층 ‘으뜸홀’에 이르면 비로소 3개층에 걸친 전시실들에 대한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된다. 동관 상설전시관은 6개 관 43개 실로 꾸며졌다. 특히 1층 역사관과 2층 기증관,3층 아시아관이 신설돼 위용을 갖췄다. 서관에는 기획전시실과 어린이박물관, 도서관,805석 규모의 전문 공연장 ‘용’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와 함께 다양한 문화상품을 개발, 선보이는 ‘뮤지엄숍’ 4개와, 야외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거울못 레스토랑’ 등 7개의 식음료공간도 갖췄다. 새로운 전시기법도 눈에 띈다.‘으뜸홀’에서 이어지는 복도인 ‘역사의 길’은 최첨단 자연채광 시스템을 갖췄다. 전시실마다 대기오염 감시시스템, 광섬유 조명시스템 등은 물론, 관람시 영상안내기(PDA)·음성안내기(MP3플레이어)를 통해 전시물 설명과 동선 정보까지 제공하는 종합정보화시스템은 최첨단 정보기술(IT)박물관으로서 손색이 없다. ●국보급 유물 한자리 집결 지하 수장고에 집결한 유물만 해도 15만점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중 개관때 전시실에 선보이는 유물은 1만 1000점 정도. 전시실 규모와 배치 등을 고려한 결과다. 개관에 맞춰 국보·보물 등 지정 문화재도 139건이 한자리에 모여 사상 최대 규모의 지정문화재 전시를 자랑하게 됐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경주 황남대총 출토 신라시대 금관(국보 191호)·금허리띠(국보 192호)와 반가사유상(보물 331호) 등은 박물관의 자랑거리다. 개관을 축하하기 위해 개인소장가와 공·사립박물관에서 대여해준 국보들도 어렵게 용산 나들이를 했다. 간송미술관 소장 훈민정음해례본(국보 70호)과 추사의 명품인 손창근 소장 세한도(국보 180호), 부여박물관 소장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 해남윤씨고택 소장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240호) 등이다. 소장처를 떠나서는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중요 문화재들도 볼 수 있다. 현충사 소장 충무공 이순신 장군 칼(보물 326호), 화엄사 소장 화엄석경(보물 1040호) 등이 그것. 또 중앙박물관이 입수, 첫 공개하는 중요 문화재인 춘천 천전리 출토 청동기 화살대·화살촉을 비롯, 경북 경산 임당유적 출토 삼국시대 갑옷틀 등이 보존처리를 거쳐 모습을 드러낸다. 이와 함께 ‘여러 신들’ 불화와 소상팔경무늬·오리모양 연적 등도 박물관의 첫 공개유물이다. 중앙박물관에 처음으로 마련된 불화실에는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에서 대여한 수월관음보살 2점이 전시된다. 국내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14세기 고려불화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러나 이들 대여 보물은 2주일에서 1개월 정도 전시될 예정이라서 개관 초기에 들러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이같이 진귀한 문화재들이 가득한 전시실을 효율적인 동선에 따라 원하는 대로 둘러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1층 ‘역사의 길’에서는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북관대첩비’를 볼 수 있다. 복원작업을 위해 10일간만 볼 수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 북관대첩비 뒤로는 10년간 복원·이전작업 끝에 자리를 잡은 ‘경천사지 10층석탑’의 웅장함을 감상할 수 있다. 박물관 야외전시실도 눈여겨 볼 만하다. 보신각 종 등 국보급 문화재 10여점을 포함, 석탑과 석비 등 다양한 석조유물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박물관 제대로 즐기려면 모든 전시실을 둘러보는 데 11시간, 박물관이 엄선한 ‘명품 100선’을 구경하는 데만 3시간 정도 걸린다는 것이 박물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따라서 여유를 갖고 ‘골라보는 재미’를 즐기는 것도 좋다. 박물관측은 PDA 네비게이터 서비스를 통해 11시간짜리 ‘정석코스’와 ‘명품 100선 코스’ 외에 1∼2시간 내 관람할 수 있는 ‘집중코스’정보도 제공한다. 정해진 코스에 따라 관람하지 않는다면 관심 있는 주제에 따라 전시실을 골라 돌면 된다.PDA·MP3플레이어를 각각 3000원,1000원에 빌리면 ‘셀프 스터디’를 할 수 있다. 박물관 홈페이지(www.museum.go.kr)에서 사전 예약은 필수다. 전시실만 돌며 다리 힘을 빼지는 말자. 관람 중간중간에 밖으로 나와 연못과 석조물정원, 소나무길 등을 거닐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관람료는 올해 말까지 무료다. 그러나 관람질서 유지와 이용객 안전을 위해 매표소 3곳에서 ‘무료관람권’을 받아야 입장이 가능하다. 박물관측은 최대 3000명이 동시입장할 수 있고 1일 최대 1만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수용인원 한도 내에서만 관람객을 받을 예정이다. 관람시간은 평일은 오전 9시∼오후 6시이며, 주말·공휴일은 오전 9시∼오후 7시. 내년부터 적용되는 관람료는 개인 2000원,20인 이상 단체는 1500원이며 6세 이하 어린이와 65세 이상 노인은 무료다. 청소년은 개인 1000원, 단체 500원이며 어린이박물관은 개인당 500원이다.20인 이상 단체관람은 관람 1주일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신청을 해야 한다. 매주 월요일은 연중 휴관한다. 내년부터는 매월 넷째 토요일이 무료로 운영된다. 직장인의 편의를 위해 관람이 끝나기 1시간전 무료로 개방하는 선셋(sun-set) 제도도 실시한다. 중앙박물관과 연계한 문화기관 중 5곳을 이용하면 박물관을 5회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뮤지엄 쿠폰’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하기 위해 주차료는 기본 2시간에 소형차는 2000원, 대형차는 4000원이다.30분마다 500원이 추가되나 하루 주차료 상한선은 1만원이다. 개관날인 28일 오전 10시 대통령이 참석하는 개관기념식이 열리며, 오후 2시부터 일반에 공개된다.28∼30일 오후 6시부터 열리는 축하공연 및 박물관 외벽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멀티미디어 영상쇼’ 등도 볼거리다. 글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사진 강성남·이언탁기자 snk@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4)조선찻사발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4)조선찻사발

    “눈 뜨고 바라보니/꽃은 보이지 않고/물오른 이파리도 없구나/바닷가 모래밭에 자리잡은/고즈넉한 초가 한 채/가을 밤 몽롱한/불빛 아래 있구나” 모든 것이 일탈해버린 가을바다는 고즈넉하다 못해 추사의 세한도처럼 담백하기도 하며 쓸쓸하기까지 하다. 달도 별도 잠든 가을밤 바닷가 한 귀퉁이를 틀어쥐고 사는 열평 남짓한 초가집에서 홀로 차를 마시는 것은 완전한 자유인의 경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청복(淸福)이다. 일본의 다성(茶聖)은 센리휴다. 그가 이른바 ‘와비즈키’ 다도의 완성인 초암의 아름다운 정경을 한편의 광막한 시로 읊고 있다.‘와비즈키’의 정체성은 평범한 다도를 추구하는 데 있다. 평범, 불균형, 자연, 탈속, 정적인 것이 바로 와비즈키 정신이 추구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평범하면서도 범속한 찻자리와 차도구들이다. 과거 명·청대에도 그랬듯이 차문화의 저변확대는 과도한 문화적 사치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황금의 찻잔’으로 차를 마신다든지, 좋은 차를 감별하기 위해 차를 겨루는 ‘투다’ 등 다양한 문화적 변형들을 초래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차인들의 찻자리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제대로 된 찻자리를 꾸미기 위해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이 넘는 차 도구들을 갖추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에서 건너오는 자사호 같은 경우는 수백만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비싼 다구가 능사가 아니라 차를 제대로 우려낼 수 있는 적절한 분위기와 품격을 갖춘 것이 차를 즐기는 차인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센리큐는 이같은 차인들의 문화적 사치에 대해 이렇게 충고했다.“다구가 좋은지 나쁜지 또는 새것인지 헌것인지를 따지는 것은 장사꾼들이나 하는 짓이요, 차의 도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깨진 발우에라도 차를 마실 수 있소.”라며 다구의 좋고 나쁨을 질문하는 차인을 경책한 경우도 있다. 차인의 찻자리는 담백하고 검소해야 한다.‘조선의 찻사발’(이도다완)은 이같은 진실한 차인의 세계를 잘 담아내고 있다. 조선의 찻사발은 사찰에서 공양할 때 쓰는 발우를 닮았다. 발우는 우주의 생명을 담는 그릇으로 깨달음을 상징하는 ‘화현’같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찻사발의 미학은 바로 공존과 상생의 미학을 담고 있는 검박함에 있다. 꾸미지 않는 아름다움, 누구나 손에 붙잡고 밥이면 밥, 나물이면 나물, 차면 차, 그 어떤 생명의 공양들을 담아도 못나지 않는 우주적인 ‘화엄’의 미학이 깃들어 있는 것이 바로 ‘조선찻사발’이다.‘조선찻사발’의 미학은 먼저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절묘함에 있다. 서툴고 투박한, 그리고 다급해서 미처 갈무리를 짓지 못한 것 같은 미완성의 완벽함에 있다. 그러나 그 미완성 속에는 ‘완성’보다 더 완벽한 미학들이 깃들어 있다. 굽의 당당함, 그릇표면에 자연스럽게 그려진 자연을 닮은 문양, 온유한 색감, 가벼움과 높은 굽, 끊임없는 색의 변화와 따뜻한 촉감 등은 그 어떤 찻사발도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조선찻사발이 일본의 국보로, 세계적인 명물이 된데는 참으로 드라마틱한 역사가 한몫을 했다.‘기자에몬이도’로 불리는 조선찻사발 이야기를 해보자. 기자에몬은 원래 다케다라는 성을 가진 오사카 상인의 이름이었다. 차를 무척 좋아했던 기자에몬은 조선의 찻사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마구잡이로 수집, 가문의 가보로 아낄 정도로 소중하게 다뤘다. 그 기자에몬이 수집한 찻사발이 17세기초 혼다다요시에게 헌납되고, 고오리야마의 나카무라 소에추를 거쳐 1775년 푸마이에게 넘어갔다. 기자에몬이도를 아낀 푸마이는 죽으면서 유언을 남겼다.“이 사발은 천하의 명물이다. 오랫동안 소중하게 보관하라.” 그러나 푸마이의 아들 게탄은 그같은 유언을 어기고 1818년 교토의 대덕사 분원인 고호안에 기증을 하고 만다. 게탄이 기자에몬이도를 기증한 이유는 단순했다. 기자에몬이도가 액운을 불러온다는 것이었다. 그 기자에몬이도는 그후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일본의 차인들뿐만 아니라 세계 차인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조선찻사발이 일본의 국보가 되고 최고의 다완으로 불리게 된 것은 바로 그 어떤 것으로 흉내낼 수 없는 자연적인 아름다움 때문이다. 물레를 돌리는 도공의 손에서 당당하고 즉흥적이면서도 질박한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품고 있는 것은 오직 조선찻사발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치 온 우주를 품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찻사발은 차인들에게 몽환적인 꿈같이 아련하게 다가오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마치 봄날 아지랑이를 몰고오며 꽃의 향내를 피워내는 나비와 벌같이, 때로는 가까이 할수록 멀어져만 가는, 사랑하는 여인의 향내와 같은 끝없는 설렘만 던져주는 존재와 같다. 명품 찻사발은 그런 점에서 차인들의 오랜 꿈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자신의 차 살림살이와 부합되는 명품찻사발은 어떻게 골라야 될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불이다. 첫째, 가능하다면 장작가마로 구워진 찻사발을 구하는 것이다. 찻사발의 생명은 ‘요변’이다. 가마에서 타는 장작불로 인해 화학적 결합으로 나타나는 도자기의 자연발색을 요변이라고 하는데 가마내의 기압, 습도, 장작의 두께, 포개짐 등 인간이 도저히 통제하기 불가능한 변수에서 생겨나는 자연적 결과물이다. 그 다음은 바로 ‘흙맛’이다. 옛날부터 도자기를 굽는 명인들은 질 좋은 흙을 찾아 전국의 산야를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고 한다. 명인들은 자신만의 흙을 고집하며 그 흙맛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다음은 차색과 찻사발에 관한 것이다. 차인들은 흔히 좋은 찻상이나 좋은 찻사발을 가지면 아름답고 품격있게 찻물을 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찻상이나 찻사발에 깃들인 찻물은 그 차 도구에 형용할 수 없는 기품을 선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명품 찻사발에는 숨어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찻잔을 떠받치고 있는 ‘굽’이다. 찻사발을 고즈넉하게 떠받치고 있는 굽은 싱그러운 말차의 향을 들이켠 후 그 찻잔을 뒤집어 보면 잘 알 수 있다. 장인들은 찻잔의 자연미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굽깎기에 최선을 다한다. 찻사발의 굽에서 장인의 진정한 솜씨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명품찻사발은 가볍다. 외관에서 보면 명품찻사발은 매우 무겁게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그 찻잔을 들어보면 마치 종이를 들거나 바짝 마른 나무조각을 드는 것처럼 매우 가볍다. 일본에서 가장 먼저 국보급으로 지정된 조선찻사발의 무게는 고작 360g정도라고 한다. 참으로 종잇장처럼 가벼운 것이 바로 명품 찻사발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찻잔속에 스미는 차색의 아름다움만 가지고 명품의 찻사발을 선별하는 품평회가 있을 정도다. 차로 인해 변하지 않는 찻사발은 그러므로 죽은 찻사발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찻사발이 명품 찻사발이 되는 것은 바로 찻사발을 사용하는 차인의 심미안과 인격에 의해 결정된다. 명인의 손길과 가마속의 불꽃으로 점화되는 요변을 통해 완성된 명품은 그 찻사발을 사용하는 차인의 차품에 의해 최종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경우든 차의 완성은 바로 인격의 완성에 있다. 먼저 물을 끓여 차를 집어넣고 적당히 우러난뒤 마시는 차인의 행위는 그 사람의 마음자리가 어디에 있는가에 완성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느날 센리큐를 따르던 차인이 물었다.“스님 진정한 다도의 비밀은 어디에 있습니까.” 센리큐는 그 차인을 한참동안 바라보다 다음과 같은 답을 했다.“그대는 불을 지펴 물을 적당한 온도로 끓이고 차가 적당한 맛이 우러나도록 우려라. 그대는 다옥에 꽃과 나무를 마련하여 마치 그것들이 자라고 있는 것처럼 하라. 그리고 여름에는 선선하다는 암시를 주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는 암시를 주라. 이밖에 다른 비밀은 없다.” 이 얼마나 명쾌한 대답인가. 차는 바로 일상속에서 거칠 대로 거칠어진 우리의 영혼을 쉬게 해주는 것이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삶과 함께하는 것이 바로 차인 것이다. 그리고 그 차는 바로 나를 제외한 소외된 자들에게 열려있는 따뜻한 나눔의 영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지암 암주 ■ 日 3대 명품찻잔 ‘쓰쓰이쓰쓰’ 고려청자와 함께 세계적인 도자기가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바로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이도다완’이다. 일본 차인들 사이에서는 ‘신물’(神物)로 여겨지는 ‘이도다완’은 진주 웅천지역 등에서 생산된 조선막사발이다. 그 조선막사발을 우리는 ‘조선찻사발’로 부르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 사발 장인들과 차인들 사이에서 새롭게 그 가치를 지닌 이름으로 재평가하자는 움직임에서 나온 것이다.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최근 막을 내린 ‘불멸의 이순신’에 나오는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 차인들은 ‘이도’를 찻사발의 으뜸으로 친다. 그밖의 찻사발에는 등급이 없는 것을 볼 때 조선찻사발의 위대함에 일본인들이 붙이는 찬사는 참으로 대단한 것이기도 하다. 조선찻사발 이야기중 일본천하 3대 이도다완으로 불리는 ‘쓰쓰이쓰쓰’ 찻사발 이야기를 해보자.‘쓰쓰이쓰쓰’ 찻사발은 비파색을 기본바탕으로 두터운 기벽, 은은한 물레자국, 태산을 짓누른 듯한 중후함, 크고 작은 빙렬의 아름다움 등 완벽한 명품다완이라고 평가받고 있다.‘쓰쓰이쓰쓰’라는 유래는 일본 전국시대 가장 큰 사건중 하나인 ‘혼노우지의 변’이다.‘혼노우지의 변’은 당시 가장 강력한 ‘쇼군’이었던 오다노부가나를 아케치 미쓰히데가 암살하는 사건을 말한다. 당시 쓰쓰이쓰쓰는 오다노부가나를 죽인 영주의 통치하에 살고 있던 이도요시 히로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었다. 이도요시 히로는 당시 야마토고오리야마성의 성주 쓰쓰이케이의 부하였다. 주군의 원수를 갚으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 유명한 야마사키 전투에서 승리하며 전국의 패자로 떠오를 수 있었다. 도요토미의 승리를 본 쓰쓰이케이는 자신의 목숨과 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부하인 이도요시 히로가 소장하고 있던 ‘이도다완’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헌납했다. 자신의 비천한 출신을 차도를 통해 극복하려고 했던 도요토미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던 셈이다. 그 선물로 인해 쓰쓰이케이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그 조선 찻사발의 이름을 ‘쓰쓰이이도’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쓰쓰이쓰쓰이도’라는 이름은 그 다음에 붙여지게 된다. 도요토미는 ‘쓰쓰이이도’를 천하제일의 찻사발이라고 극찬하며 아꼈다. 그러던 어느날 차를 시중들던 시동이 실수로 쓰쓰이이도를 떨어뜨려 다섯조각을 내고 말았다. 쓰쓰이이도를 아깝게 여긴 도요토미는 당시 자신의 차두였던 일본의 다성 센리큐에게 수리를 맡겼다. 센리큐는 그 다완을 이틀에 걸쳐 수리했다. 그리고 그 다완의 우주적인 심미감에 사로잡힌 센리큐는 도요토미도 모르게 찻사발에 차 한잔을 했다. 그러나 그같은 사실을 도요토미에게 들켜 엄청난 분노를 사게 됐다. 센리큐에게 수리된 쓰쓰이이도는 일본말로 다섯조각의 이도라는 뜻으로 ‘쓰쓰이쓰쓰이도’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쓰쓰이쓰쓰이도 찻사발은 현재 일본의 보물로 지정되어 가나자와현의 사가에 소장되어 있다.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6)초의·추사 그리고 정약용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6)초의·추사 그리고 정약용

    이맘때면 생각나는 차가 있다. 바로 ‘눈물차’다.‘눈물차’에 대한 사연은 이렇다.1996년의 일이다. 별이 하늘에서 내려온 듯 자우홍련사 작은 연못에 둥둥 떠내려오고 달빛은 풀벌레들의 합창에 일그러지던 날이었다. 초의스님이 ‘동다송´에서 말했듯이 깊은 밤 대자연의 품속에 빨려드는 풍광을 벗삼아 한잔의 차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스님 계십니까” 밤중에 절을 찾는 나그네는 드물다. 아주 친한 도반이나 절 식구만이 늦은 밤 사찰을 찾을 수 있는 법인데 연락도 없이 찾아든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해남의 신문사, 농민회 등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지역활동가들이었다. 낯익은 얼굴들이었고 10여명 가까이 되는 대식구였다. ●새로운 茶문화 생산공동체 구성 자우홍련사 툇마루는 때아닌 손님들로 꽉찼다. 한잔의 차를 돌리고 대뜸 찾아온 연유부터 물었다.“스님 저희들이 차 공부를 좀 하고 싶습니다. 저희들을 가르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뜻은 간단했다. 향후 환경과 생명에 대해 관심을 갖고 농촌지역에 어울리는 새로운 차문화 생산공동체를 구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고 당돌한 제안이었다. 생산과 소비가 연결된 차문화공동체 구성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생각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제안에 망설여졌다. 생각해보겠다며 그들을 돌려보냈지만 못내 마음이 아팠다. 그들은 그후로 대여섯차례 방문하며 자신들의 뜻을 전했다. 결국 승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작명을 했다. 남쪽에서 늦게 차를 시작한다는 뜻을 가진 ‘남천다회’라고 명명했다. 어떤 농사든 어떤 계획이든 서둘러서 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시작하라는 뜻에서 지어준 이름이었다. 한달에 두 번씩 공부를 하기로 했다.‘동다송´‘다신전´, 그리고 행다와 차에 대한 것들도 공부를 했다. 젊은 그들에게는 열정이 있었다.1997년부터 놀고 있던 땅 8000평에 차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우리가 택한 농법은 철저하게 친환경농법이었다. 화학비료 등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자연의 기운으로만 차밭을 조성하기로 했기 때문이다.10년까지는 수확을 바라지 않을 작정으로 자연에서 나오는 부엽토만 퇴비로 사용했다. 조금 느리지만 인간과 호흡하는 차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주경야독이란 말을 그들을 보며 실감할 수 있었다. 낮에는 차밭을 가꾸고 밤에는 차 공부를 늦게까지 하느라 모두들 열심이었다. 차밭은 4000평,5000평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본과 중국의 차 생산지와 다창들 그리고 국내외 유명 다원들을 둘러본 그들의 안목은 점차 넓어지고 깊어졌다.7년째 되던 해인 2002년 4만여평의 차밭에서 생엽 200㎏을 채취했다. 그리고 제다한 가공량은 40㎏.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작은 양이었다. 차브랜드는 ‘손덖음 첫물차’로 했다. 기계적인 영농이 아닌 손으로 덖는 첫물차만을 만들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첫차를 제다해 일지암에서 초의스님에게 제사를 지낸 후 모두 모여 차를 마시며 기뻐했다. 그날의 가장 아름다운 사연은 3000평의 차밭을 가꾼 남천다회 부부 이야기다. 차농사를 시작한 지 5년만에 젊은 부부는 고작 4통의 차를 손수 만들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그 차들을 이불속에 넣고 눈물을 훔치며 밤을 꼬박 샜다고 한다. 참으로 눈물나는 눈물차 이야기인 것이다. 이같은 사연이 담긴 첫물차 이름을 남천다회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눈물차’로 명명한 것이다. 그날도 바로 오늘같은 밤이었다. 그때의 기쁨은 차인으로서 또 하나 기억할 만한 역사로 남아 있다. 이렇듯 ‘인연’은 모든 것을 바꾼다.18세기 최고의 개혁적인 지식인들이었던 초의스님,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의 인연은 당대 조선사회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 이시대까지 많은 지식인들에게 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다산에 유서와 시학 배워 초의스님은 24세 때인 1809년 강진 다산초당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 정약용을 아암 혜장스님을 통해 먼저 만났다. 아암 혜장과 정약용은 혜장이 40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6년 동안 교류했다. 정약용이 아암 혜장에 보낸, 차를 청하는 편지인 ‘걸명소(乞茗疏)’는 지금까지도 차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다.‘걸명소´에는 “을축년(1805년)겨울 아암선사에게 보냄. 나그네는 요즘 차만 탐식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약으로도 마십니다. 글 중의 묘함은 육우의 ‘다경´삼편이요, 병든 몸은 누에인 양 노동의 칠완다를 들이킨다오” ‘소’의 형식을 빌린 다산의 ‘걸명소´는 노동의 시와 육우의 다경 등에서 보여지듯 차에 대한 해박한 지식뿐만 아니라 다도에도 깊은 경지에 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암 혜장이 세상을 떠난후 초의는 다산을 스승으로 모시며 유서(儒書)와 시학(詩學)을 배웠다. 초의스님은 다산을 스승으로 극진하게 모셨다. 초의스님은 1813년 다산의 초대를 받았다. 그러나 때 마침 내린 비로 인해 장삼자락이 젖어 다산초당을 방문하지 못했다. 다산에게 가지 못한 초의는 안타까운 마음에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슬프도다. 이 적은 몸 하나 나에게 선인의 경거술이라도 지었더라면 빗속으로 산넘어 날아갔을 텐데.” 초의스님이 정약용을 얼마나 극진히 모셨는지를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시가 있다.‘탁옹(정약용의 별호)선생에게 드림’이란 시다.“부자는 재물로 사람을 떠나보내고, 어진이는 말로써 떠나보내네. 지금 선생께 하직하려 하지만, 저는 마땅히 드릴게 없습니다. 먼저 공경하게 누추한 마음 펼쳐 은자의 책상앞에서 말씀드리리라. 하늘이 맹자 어머니같은 이웃을 내려주셨네. 덕성과 학업이 나라의 으뜸이요. 문장과 자질이 함께 빛나시네. 편안히 머물 때도 항시 의로움을 생각하고 실천에 나서면 어짊을 보였네. 이미 넉넉하면서도 모자란 듯 하였고 항시 비우고 남을 포용하였네. 내 이런 도를 구하기 위해 멀리 와서 정성을 드립니다. 이제 또 헤어지는 자리에 종아리를 걷고 가르침을 청합니다. 수레가 떠나갈 때 주신 말씀은 가슴에 깊이 새기고 또 띠에다 써두렵니다.”라며 감사하고 있다. 훗날 초의가 조선의 신진사대부들과 활발하게 교류할 수 있었던 유학적 터전은 정약용에게 받은 것이다. 초의스님과 다산은 많은 교류를 했다.1812년 가을 초의선사와 정약용은 월출산 백운동에서 월출산 외경을 그렸다. 초의스님은 백운도(白雲圖)를 그렸고, 다산은 청산도(靑山圖)를 그렸다. 그리고 그 그림의 말미에 시를 지어 붙였다.1823년 대둔사지 편찬에도 함께 참여했다. 초의스님은 수룡스님과 함께 편집을 담당했고, 호의와 기어스님이 교정을 보았고, 완호와 아암스님이 감정했으며 정약용이 필사를 했다. 정약용이 해배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간 후에도 교류는 지속되었다. 초의스님은 한양을 방문할 때면 늘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수종사에 머물렀다. 수종사 인근 마현마을에는 그의 평생 스승 정약용과 정학연이 살고 있었다. ●스승과 제자관계 떠나 수행자로 다산과 그의 아들은 수종사의 샘물로 늘 차를 달여마셨다. 한양에 온 초의스님은 수종사에 머물며 다산과 교류했던 것이다. 이렇듯 다산은 평생 초의스님의 스승 노릇을 하며 그의 안목을 더욱 깊고 넓게 해주었다. 다산 정약용은 차인으로 차를 직접 제다했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 제다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18년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강진을 떠날 때 제자들에게 차를 만들어 마시며 신의를 지켜나가도록 ‘다신계’(茶信契)를 만들었을 정도였다. 초의스님과 다산은 스승과 제자로서 유학을 배운 것만이 아니었다. 사상적으로 유·불·선에 대한 폭넓은 교류를 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차에 대한 제배 및 제다 그리고 행다 등 다양한 논의도 함께 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자신을 스승으로 모신 초의스님에 대해 다산은 스승과 제자관계를 떠나 한 사람의 존귀한 수행자로 평생 존경을 아끼지 않았다. 초의스님이 평생의 도반(道伴)인 추사 김정희를 만난 것은 30세인 1815년이다. 초의스님은 그때 처음으로 한양에 올라가 2년 동안 머물렀다. 정약용의 주선으로 한양으로 올라간 것으로 추측되는 초의스님은 서울 두릉(杜陵)에 사는 다산의 아들 유산 정학연, 운포 정학유, 자하 신위, 해거 홍현주 등과 교류했다. 이때 추사 김정희와 그의 동생 산천 김명희, 금미 김상희와도 사귀었다.1786년 같은해에 태어난 초의와 추사는 한눈에 서로 뜻이 통했다. 당대의 석학인 옹방강, 완원 등과 교분을 맺고 청의 금석학 시문 전각등을 깊이 연구해온 젊고 개혁적인 신진사대부였던 추사는 청의 상류사회에서 중국의 고급 차문화를 배워 차에 대해서도 해박했던 것이다. 추사가 가끔씩 초의스님에게 자신이 구한 중국의 고급차를 보낼때 초의스님이 중국차에 대해서 어떤 것은 참으로 진미가 있고 어떤 것은 가짜 느낌이 난다고 했던 것은 그같은 교류를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추사는 차에 대해 ‘광적’이었을 정도로 애착이 강했던 것 같다. 승설(勝雪), 고다노인(苦茶老人), 다문(茶門), 일로향실(一爐香室) 등 차에 관한 수많은 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초의스님에게 차를 선물받고 써준 저 유명한 명선(茗禪)을 비롯, 죽로지실(竹爐之室), 다로경권실(茶爐經卷室), 다산초당(茶山艸堂) 등 차에 관한 수많은 글도 남기고 있다. 일지암을 맨처음 방문한 사람은 추사도 그의 동생들도 아닌 아버지 김노경이었다. 완도 고금도에서 4년동안 유배생활을 하다 풀려난 김노경은 그의 아들과 친하게 지내는 초의스님을 알고 싶어 일지암을 찾은 것이다. 일지암에서 하룻밤을 머문 김노경은 시·서·화등 다방면에 뛰어난 성취를 보여준 초의스님에게 첫눈에 반했다. 초의스님은 김노경에게 일지암의 유천에 대해 시로 답한다. “내가 사는 산에는 끝도 없이 흐르는 물이 있어, 시방에 모든 중생들의 목마름을 채우고도 남는다. 각자 표주박을 하나씩 들고와 물을 떠가라. 갈때는 달빛 하나씩을 건져가라.” 초의스님의 시에 김노경은 유천의 물맛이 소락의 물맛보다 뛰어나다고 극찬한다.“1840년 9월 추사는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며 초의스님을 찾아 일지암을 방문한다. 오롯한 가을의 풍광에 휩싸인 일지암에서 초의스님을 만나 추사는 애틋한 하룻밤을 함께 지낸다. 동지부사의 고위직에서 하룻밤 사이에 유배를 떠나는 추사에 대해 초의스님의 위로는 많은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후 초의스님은 자신의 제자이자 추사의 제자였던 허유를 통해 제주도로 차와 서신을 보냈다. 제주도에서 초의스님의 차와 서신을 받아본 추사는 그 고마움에 ‘일로향실’이란 글을 써서 허유편에 보냈다.‘일로향실’은 지금도 대흥사에 보관되어 있다. 추사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 초의스님은 1843년 봄 제주도로 건너간다.1년여 동안 제주도에 머물며 초의와 추사는 차에 대한 즐거움과 학문적 교류의 폭을 넓혀간다. 추사는 이때 초의스님을 통해 선불교에 대한 혜안을 넓힌다. 초의가 다녀간 다음 해에 추사는 세속의 각박한 인심을 따르지 않고 어려움속에서도 그를 따르던 제자 이상적에게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를 그려 세상에 선보인다. 소나무와 잦나무 지조는 눈이 내린 후에야 그 절개를 알수 있다는 화제(畵題)를 지닌 ‘세한도’는 세속을 완벽하게 품어낸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의 질곡에 대해 울분을 터트려야할 추사로부터 이같은 작품이 유배지에서 나왔다는 것은 초의스님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세한도 등 명작들 초의 영향 커 초의스님은 제주도에서 차의 재배를 시도한다.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추사를 위해 차의 재배를 시도했다고 한다. 이같은 인연이어서일까. 지금 제주도에는 국내 굴지의 회사가 운영하는 광대한 차밭이 존재한다. 초의스님은 1851년 추사가 보내온 서간문을 모은 ‘영해타운´(瀛海朶雲)을 책으로 묶어낸다.‘영해타운´은 1840년부터 1848년 제주도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추사가 보낸 서신을 차곡 차곡 모았다가 책자로 편서한 것이다. 초의스님이 추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절절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추사는 북청유배에서 풀려나 과천에 머물며 초의스님을 더욱 그리워하게 된다.‘소동파의 생일날 과천 사람이’란 편지는 그러한 추사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큰눈이 내리고 차를 마침 받게 되어 눈을 끓여 차맛을 품평해 보는데 스님과 함께하지 못함이 더욱 한스러울 뿐입니다. 요즘 송나라때 만든 소룡단(小龍團)이라는 차 한 개를 얻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특이한 보물입니다. 이렇게 볼 만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래도 오지 않으시겠습니까. 한번 도모해 보십시오. 너무 추워 길게 쓰지 못합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초의스님은 추사의 간절한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차를 보내달라는 추사의 청도 제때 지키지 않았다. 추사는 제때 차를 부쳐주지 않는 초의스님에게 익살섞인 ‘최후의 통첩‘도 보낸다.“지금 지체없이 보내지 않으면 덕산의 방과 임제의 할로 경책하겠다.”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그러다 초의스님이 차를 보내오면 “과천의 샘물로 차를 달여 시음하니 과연 천하의 제일가는 차다.”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추사가 초의스님과 그의 차를 얼마나 좋아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던 추사가 1856년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초의스님은 깊이 슬퍼했다. 슬픔에 못이긴 초의스님은 추사가 세상을 떠난 3년후 ‘완당김공제문’(阮堂金公祭文)을 쓴다.“오호라 그대와 나의 42년 동안의 아름답던 우정이여. 그 우정일랑 다음에 저 세상에서도 오래 오래 이어나가십시다. 나는 그대의 글을 받을 때마다 마치 그대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고 그대와 만났을 때는 진정 허물이 없었습니다. 그대와 나는 손수 뇌협과 설유를 달여 마시곤 했는데 그러다 슬픈 소문이 귀에 닿으면 적삼 옷이 함께 젖기도 했습니다. 슬프다. 그대를 먼저 떠나보내는 나의 애끓는 심사여. 황국이 다시들고 흰눈이 내리는데 어찌하여 내가 이토록 늦게 그대의 영전에 당도했을꼬. 원망일세 원망이로세. 하늘과 땅 사람이 모두 알지 못해도 오직 그대는 나의 심사를 알것입니다.”라고 애절하고 통절한 마음을 적고 있다. 추사를 보낸 초의스님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떠나버린 그를 잊지 못했다. 초의, 추사, 다산은 이렇게 거대한 변화의 담론이 진행됐던 18세기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들이 엮어낸 인연의 바다는 새로운 세기에 목말랐던 많은 후학들의 귀감이 되었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눈물차를 만들어낸 남천다회도 마찬가지다. 200여년이란 시공을 뛰어넘어 일지암과 초의스님의 선차(禪茶)의 인연이 오늘 이시대에 생산과 소비, 그리고 문화가 결합된 진정한 차의 세계를 열려는 움직임을 싹틔우고 있는 것이다.‘눈물차’를 만들며 차문화생산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남천다회는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 차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지암 암주)
  • ‘락고재’ 인기 폭발

    ‘락고재’ 인기 폭발

    예스러움이 고즈넉이 묻어나오는 한옥. 헨리(다니엘 헤니)가 자신의 숙소에 놀러온 희진(정려원)에게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준다. 대청마루에 앉아 날렵한 처마 곡선을 보면서 시원한 바람을 맞는 그는 희진이 떠난 뒤 은은한 달빛 아래 새어나오는 풍경소리를 들으며 상념에 빠진다. 지난 21일 시청률 50%를 넘기며 막내린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헨리가 머문 숙소의 모습이다. 드라마의 인기 만큼이나 인터넷 포털에서 숙소에 대한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예스러움을 즐기는 한옥민박 드라마의 배경이 된 곳은 서울 종로구 북촌에 위치한 ‘락고재(樂古齋)’라는 전통 한옥민박집이다. 예약을 통해 사람을 받는 만큼 평소 개방을 하고 있지 않지만, 최근 공사로 인해 문을 잠시 열어둔 사이 50여명이 몰려오는 등 유명세를 타고 있다. 2003년 헐릴 위기에 처한 진단학회의 건물을 개조해 꾸며진 ‘락고재’는 ‘예스러움을 즐기는 집’이라는 뜻대로 풍류체험 공간으로 불리고 있다. 대지 130평·건평 45평으로 아담한 규모지만 오밀조밀한 구경 거리가 많다. 기와가 얹혀진 솟을대문, 작은 연못과 낙락장송이 서있는 정원, 뒤뜰 대나무 숲 사이의 장독대와 굴뚝,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와 오원 장승업의 ‘화조도’ 등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헨리는 굉장한 부자? ‘락고재’ 주인인 안영환씨는 뜻밖에도 컴퓨터 엔지니어 출신이다. 디지털시대가 다가올수록 애널로그적인 것을 그리게 된다는 것이 안씨의 생각이다. 안씨는 “미국에서 10년 동안 일한 뒤 한국에 들어와 사업하는 친구들의 외국인 바이어 접대를 도와주면서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리는 관광코스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락고재’는 고급 한옥을 표방하는 만큼 숙박비용이 1인당 15만원(6명부터는 1인당 7만원)으로 웬만한 호텔비용과 맞먹는다. 집 한 채를 한 팀에게 빌려주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서너팀이 다녀가는 정도다. 호젓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9명 이상 받지 않는다. 극중에서 당초 예정대로 헨리가 6개월 동안 머물렀다면 2700여만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던 셈이다. 하지만 MBC는 촬영할 때마다 2∼3시간 동안 4번 빌리면서 회당 40만원의 촬영비를 냈다.(02)742-3410. ●저가 한옥 민박집도 있어 북촌에는 비교적 나이가 든 외국인 인사들이 찾는 ‘락고재’와 달리 외국인 배낭여행객들이 찾는 저렴한 민박집도 있다. 서울 게스트하우스(745-0057), 북촌 게스트하우스(743-8530), 안국 게스트하우스(736-8304), 우리집 게스트하우스(744-0536) 등이다. 숙박료는 3만∼7만원이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80) 集大成(집대성)

    儒林(378)에는 ‘集大成’(모을 집/큰 대/이룰 성)이 나온다.‘여러 가지를 모아 하나의 體系(체계)를 이루어 完成(완성)함’을 뜻한다. ‘集’자는 ‘모으다.’‘모이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새가 떼를 지어 나뭇가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양을 나타낸 會意字(회의자)에 속한다.用例(용례)에는 ‘離合集散(이합집산:헤어졌다가 모였다가 하는 일),雲集(운집:구름처럼 모인다는 뜻으로, 많은 사람이 모여듦을 이르는 말),集中(집중:한곳을 중심으로 하여 모임, 또는 그렇게 모음)’ 등이 있다. ‘大’자는 ‘어른’을 나타내기 위하여 ‘팔을 벌리고 선 사람’의 모습을 정면에서 그린 것이다. 어른은 아이에 비하여 크다는 데서 ‘커다랗다.’는 뜻이 派生(파생)하였다.‘大團圓(대단원:연극 소설 따위에서,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끝을 내는 마지막 장면),大聲痛哭(대성통곡:큰 소리로 몹시 슬프게 곡을 함) 등에 쓰인다. ‘成’은 ‘戌’(술)과 ‘丁’(정)을 합한 形聲字(형성자)이다.戌(술)은 ‘넓적한 날이 달린 儀典用(의전용) 武器(무기)’의 상형이다.成의 본 뜻은 戌(술)이라는 병기를 든 병사들이 ‘대오를 이루다.’에서 추출한 ‘이루다’.用例에는 ‘落成(낙성:건축물의 완공),成功(성공:목적하는 바를 이룸),守成(수성:조상들이 이루어 놓은 일을 이어서 지킴)’ 등이 있다. 孟子(맹자)는 歷代(역대) 賢哲(현철)들 가운데 ‘伯夷(백이)는 인품이 高潔(고결)하여 淸雅(청아)하고,伊尹(이윤)은 매사에 使命感(사명감)을 갖고 積極的(적극적)으로 임하며,柳下惠(유하혜)는 인품이 너그러워 溫和(온화)하다.’라고 評(평)하였다.孟子의 눈에 비친 이들은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지만 孔子(공자)처럼 청아해야 할 때는 청아하고, 적극적으로 일할 때는 적극적으로 일을 하며, 온화해야 할 때는 온화하게 처신하는, 이른바 ‘때를 알고 때에 가장 적절하게 대처한 聖人(성인)’은 아니었다. 여기서 孟子는 孔子를 ‘集大成’이라 하였다. 원래 集大成은 모든 악기가 연주하는 노랫가락이 각각의 個性(개성)을 發揮(발휘)하면서 全體的(전체적)인 조화를 演出(연출)하는 오케스트라를 말한다.集大成을 演奏(연주)할 때, 가락을 뗄 때는 각 음의 높낮이를 정확하게 분별하여 각각의 고유의 소리를 정확하게 내야 하므로, 음과 소리를 잘 분별할 수 있는 智慧(지혜)가 필요하지만, 가락을 마무리할 때는 모든 가락이 渾然一體(혼연일체)가 되어 全體的(전체적)인 調和(조화)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남과 하나일 수 있는 仁의 마음이 필요하다. 온갖 逆境(역경) 속에서도 大同輿地圖(대동여지도)를 만들어 朝鮮(조선) 地理學史(지리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金正浩(김정호), 제주도에서의 9년간 귀양살이 동안 不朽(불후)의 명작 歲寒圖(세한도)와 秋史體(추사체)를 完成(완성)한 金正喜(김정희),19년 동안의 流配(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手不釋卷(수불석권)하여 500여권의 저술을 남긴 丁若鏞(정약용),身分(신분)의 한계 속에서 오른 御醫(어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15년간의 執念(집념)으로 東醫寶鑑(동의보감)을 執筆(집필)한 許浚(허준). 우리는 이들의 偉業(위업)을 集大成이라고 표현하기에 머뭇거리지 않는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볼 만한 전시회

    ●사제동행전 용산고 사제지간인 원로 조각가 강태성씨와 민중미술 작가로 유명한 임옥상씨의 ‘사제동행전’이 정동 경향갤러리에서 다음달 4일까지 열린다.이번 전시회는 영원히 녹슬지 않는 스승과 제자지간의 정을 확인하는 자리이면서도 같은 예술 세계를 걸어가는 이들의 동지애를 엿볼 수 있다. 조각과 평면, 진보와 보수의 서로 다른 색채의 작품들이 어우러진다. 강씨의 작품은 나무 소재의 ‘토루소’등 1960년대 이후 최근작까지 시기별로 선보이고, 임씨의 경우 민화풍의 꽃그림과 종이부조 ‘신 세한도’등을 만날 수 있다.(02)6731-6751.●모정이 있는 조각전+드로잉 조각가 20명이 ‘모정’을 주제로 한자리에서 만났다. 신사동 청작화랑 개관 18주년 기획전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회에는 원로 조각가와 신인 조각가들이 돌, 브론즈, 스텐, 대리석, 나무 등의 소재로 각기 다른 독특한 개성을 보여준다. 특히 조각가들의 드로잉도 함께 전시, 이채롭다. 기계로 작업하는 풍토에서 여전히 수작업을 하는 원로 조각가 전뢰진씨의 ‘모정’, 서울 시내 빌딩주변의 많은 조각들을 제작한 김창희씨의 ‘환상가족’등이 볼 만하다.8일까지.(02)549-3112.●싱크 다빈치전 아이들이 스스로 만지고 경험해 볼 수 있는 체험 전시회로 8월21일까지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다. 감각의 방, 창조의 방, 상상의 방등 6개 영역으로 꾸며진 이 전시회에서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예술과 과학이 만나는 작품, 다빈치의 발명품, 체험학습 등을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아동미술학회회장인 최필규 수원여대 교수가 기획했다.(02)3443-6483.●설미재 미술체험학교 연수 대자연속에서 뛰놀면서 미술의 세계를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명상 등 정신수련을 겸할 수 있어 좋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위치한 미술대안학교 설미재는 다음달 1일부터 ▲1일코스(회화교실, 도예교실)▲1박2일코스(도예교실, 다도교실, 명상, 명상에 의한 드로잉 등)의 연수를 실시한다.(031)585-6276.
  • “추사의 그림에서 시적 영감 얻어”

    “한국문학계의 큰 별이신 정지용 시인의 이름이 걸린 상이라는 점에서 영광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낍니다.” 제17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시인 유자효(58·SBS라디오본부장)씨는 28일 “어릴 때부터 시를 쓰기 위해 애를 써왔는데 이번 수상을 계기로 그분이 지닌 시혼의 일부라도 비춰지는 행운이 따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수상작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추사의 절절한 고독이 점철된 그림 속 풍경과 현재 나의 정신적인 풍경이 순간적으로 겹쳐졌다.”면서 “삶의 고통과 이별, 그리움 등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불어교육과를 나와 1974년 KBS기자로 입사한 그는 1991년 SBS로 옮겨 정치부장, 보도제작국 부국장 등을 거쳐 라디오본부장에 재직 중이다.1972년 시조문학에 ‘혼례’를 발표하며 등단했고, 현대문학시조상·후광문학상·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시집 ‘성수요일의 저녁’ ‘짧은 사랑’ ‘떠남’, 산문집 ‘세상의 다른 이름’ 등이 있다. “기자가 되기 전에 시인 소리를 먼저 들었기 때문에 시를 쓰는 일은 삶의 일부”라는 그는 “일에 바빠 몰두를 못했을 뿐 늘 쓰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잠자는 시간을 아껴 틈틈이 글을 쓴다.”고 전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정지용문학상에 유자효 시인

    ‘향수’의 시인 정지용(1902∼?)의 문학정신을 기려 지용회(회장 이근배)가 제정한 제17회 정지용문학상에 시인 유자효(58)씨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 ‘세한도’.
  • 그림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만난다

    그림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만난다

    요즘 서점의 신간코너에 가면 ‘그림책’이 부쩍 눈에 많이 띈다. 미술작품에 그럴 듯한 이야기를 버무린 단행본들이다. 고전명화에 신화를 섞은 것, 현대작품에 에세이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것, 화가의 삶과 그림 이야기 등등. 전통적 필자였던 미술평론가나 미술사가는 물론이고, 작가 스스로 또는 큐레이터들까지 앞다퉈 글쟁이로 데뷔 중이다. 추측컨대 큐레이터는 나름대로 자신이 쌓아온 흔적과 성과에 대한 정리의 욕구 때문에, 화가들은 작품 이면에 숨은 치열함의 흔적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이 책들은 대체로 쉽게 읽히는 것들이어서 예술에 대한 독자들의 지적 허영심 혹은 갈증을 채워주기에 안성맞춤이다. 이번 주엔 특히 각각 특색이 뚜렷한 단행본 3권이 출간됐다. 근대 200년 우리 화가들의 이야기를 묶은 ‘畵傳(화전)’,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를 서양의 고전명화와 버무린 ‘로망스’, 명화(名畵)란 널리 알려진 그림이 아니라 울적한 가을날 따뜻한 위로가 되는 그런 그림이라고 주장하는 한 젊은 큐레이터의 ‘사랑한다면 그림을 보여줘’가 바로 그것이다. 지은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풀어내며 그림속으로 들어가는지, 화가들의 삶과 예술정신의 내면을 어떻게 넘나드는지 보기만 해도 제법 흥미롭다. (최열 지음, 청년사 펴냄,2만 4000원)은 미술사가인 지은이의 말대로 ‘그림을 통해 찾아 헤맸던’ 화가들의 이야기다. 지은이는 ‘만나기로 작정했지만 이미 세상을 떠나버렸기에 문득 그들이 남겨둔 그림 속으로 걸어들어가 그들을 만났다.’고 했다. 한데 그들이 살아 있지 않기에 오히려 텅빈 마음 같아 그들의 빈터에서 편안히 만났고, 그 때마다 글을 썼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만난 그들은 누군가. 바로 19세기 묵장의 영수로 불리는 조희룡에서 격정의 시대정신을 보여준 이응노까지 200여년에 걸쳐 각기 독특한 스펙트럼을 보여준 화가 28명이다. 그 안엔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인연을 보여준 김정희외 허련, 휘황한 천재의 빛을 남긴 김수철, 단아함과 충실함에 깃든 정열의 소유자 윤희순, 우주의 질서에 도전한 유영국, 아름다운 감옥의 죄수를 연상케하는 김환기,20세기 신화의 탄생 박생광이 포함된다. 지은이는 추사 김정희와 제자 소치 허련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추사 자신은 난초 그림과 서예에 집중했으므로 회화 창작의 욕망을 구현해줄 누군가 필요했고, 그가 바로 소치였다. 소치는 김정희가 꿈꾸던 세계를 현실에 형상화했고, 이후 남도 산수화의 종장이요 문인산수화풍을 조선에 아로새긴 거장으로 우뚝 섰다.‘세한도’‘산수도’ 등 그의 거칠고도 깔끔한 화폭들은 당대에 이미 절정의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었으며, 이같은 허련에 대해 조희룡은 “그림을 통해 시에 들어가고, 시를 통해 선에 들어갔다.”고 평가했다.’시종일관 거친 듯하면서 세밀하게, 군더더기 하나 없이 지은이는 당대의 붓장이 28명의 삶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촘촘히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명옥 지음, 시공사 펴냄,1만 4000원)는 중세때 그야말로 ‘전설적인 세기의 사랑’ 이야기를 남긴 4쌍의 가슴저린 로맨스를 뼈대로 한다. 평소 ‘연애의 정수는 로망스임을 의심치 않았다.’는 지은이는 “요즘들어 신파조로 폄하하며 왕따시킨 로망스를 제자리로 복권시킬 필요가 있다.”고 집필 동기를 밝힌다. 미술관장인 그는 먼저 단테의 ‘신곡’에서 로망스의 모티브를 찾는다. 단테가 지옥의 제2원에서 연인 사이인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를 만나고, 이들의 애절한 사연에 충격을 받고 혼절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두 연인이 한 소설속 남녀 주인공의 달콤한 입맞춤에 자극을 받아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입술을 찾고, 지옥까지 함께하는 영원한 연인관계로 빠져드는 이야기를 당대의 거장들이 표현한 그림에 버무린다. 또 아더왕에게 충정을 맹세한 기사 랜슬롯과 아더왕의 부인 귀네비어의 불같은 사랑,‘사랑의 묘약’을 마시고 서로에게 매혹당하나 끝내 둘 다 세상을 떠난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가 뒤를 잇는다. 마지막엔 다시 단테로 돌아간다. 단테는 스탕달의 이른바 ‘사랑의 결정작용’을 통해 오염된 영혼을 정화시키고,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는 베아트리체를 얻어 사랑의 완결을 이룬다는 이야기다. (공주형 지음, 학고재 펴냄,1만 5000원)에선 풋풋한 삶의 이야기를 다양한 그림을 통해 이야기한다. 다섯살과 여덟달 짜리 아이를 둔 젊은 주부 큐레이터인 지은이는 때로 왜 내 삶은 밀레의 ‘만종’이 전하는 진정한 평화를 하락받지 못할까, 나는 왜 베르메르의 ‘레이스 뜨는 여자’가 갖고 있는 숭고한 여유를 건너뛰어야 하는 것일까 의아해 한다. 하지만 절망하는 실직자와 그 옆을 지켜주는 한 남자가 등장하는 박수근의 ‘실직’은 엄마이자 아내, 딸이자 며느리인 그에게 상생의 지혜를 일깨워주었고, 김상유의 ‘세심정(洗心亭)’은 삶의 속도에 치여 사는 지은이에게 차 한 잔의 여유를 권했으며, 반복되는 일상의 우울을 하늘 높이 날려보낼 수 있었던 것은 샤갈의 ‘파란 풍경속의 연인’ 덕분이었다고 고마워한다. 어떤 그림이 있어 그 그림이 나에게 오늘 저녁 퇴근길에 동행이 되고, 그 그림 앞에서 가쁜 호흡을 고를 수 있다면 그게 명화가 아니겠느냐며 그는 독자들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마치 지은이가 그의 아이들에게 설명하듯 쉽고 다정하게 풀어가는 그림 이야기, 그리고 그림을 보는 눈이 더없이 따사롭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평창동의 어제와 오늘/가나아트갤러리 ‘평창동 사람들’展

    서울 종로구 평창동은 북한산 줄기인 보현봉과 북악스카이웨이가 지나는 북악산 자락에 둘러싸인 일종의 ‘풍치지구’.조선시대 대동미 출납을 관장하던 선혜청의 평창이 있어 평창동이란 이름이 붙었다.평창동부라 불린 이 지역은 신라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만큼 수많은 이야기와 문화유적이 숨쉬고 있다.서울특별시 민속자료 3호인 보현산신각,조선시대 기우제를 지냈던 천제단터,대를 이어갈 자손이 없는 무사(無嗣)귀신을 위로해 제사지내던 여단터 등 문화유적들이 널려 있으며 10여개의 화랑과 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또한 미술인과 문인,음악인 등 400여명의 예술인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 문화마을이다. 가나아트갤러리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평창동 사람들’전(10월12일까지)은 평창동의 역사와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색다른 전시다. 윤명로의 ‘평창동 예찬’,김병기의 ‘북한산 세한도’ 같은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당당한 문화인프라를 갖춘 평창동의 독특한 지역색과 문화를 보여주고그것을 가꿔나가는 데 초점을 맞췄다.전시에는 평창동 일대에 사는 미술인 60명이 참여했다.강대운,강애란,김승연,김창렬,김흥수,노정란,도윤희,박인경,배병우,송수남,신명범,윤명로,이경성,이종상,임옥상,한만영,홍승남….이들이 낸 회화,조각,사진 등 120여점과 가나아트갤러리 소장 작품 50여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본 전시와 함께 평창동 지역에 분포돼있는 문화유적과 명소가 담긴 지도 및 사진 특별전도 마련돼 일반인들이 미처 몰랐던 평창동의 면면을 알려준다.전시기간 매주 토요일 오후 1∼6시에는 가나아트센터 야외공연장에서 기증품을 팔아 얻은 수익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움직이는 가게’가 열려 전시의 의의를 더해준다.(02)720-1020. 김종면기자 jmkim@
  • 백자에 담긴 지식인들의 美의식/ 호림미술관 ‘조선백자명품전’

    조선백자가 세계 미술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엄청난 값에 팔리는 것은,이름없는 장인이 만들었지만 단순한 공예품이 아니기 때문이다.무엇보다 조선백자에는 당대 지식인들이 지향했던 의식세계와 미의식이 그대로 녹아있다.그래서 해외 박물관들은 한국의 다른 미술품보다 조선백자에 더욱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호림미술관에서 지난 11일 막을 연 ‘조선백자명품전-순백과 절제의 미’는,미술이 사회성을 바탕으로 했을 때 진정한 가치를 평가받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백자가,한 시대의 미의식이 낳은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겠다는 것이 기획의도다. 전시에는 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백자를 중심으로 서화와 목제품 등 300여점이 나와 있다.15세기 뚜껑달린 주전자(有蓋 白磁注子) 등 국보 3점과,같은 15세기 백자반합(사진·白磁飯盒) 등 보물 4점이 포함됐다.추사 김정희의 걸작 세한도(歲寒圖·국보 제180호)를 대여받아 전시하고 있는 것은 조선백자의 성격을 명확히 하겠다는 의지의 표시일 것이다. 조선백자가 고려청자와가장 다른 점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문방구가 많다는 점이다.과거를 치러 관직에 진출하든,산림으로 남아 추앙받든 학문의 연마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기에 필통과 연적은 조선시대 양반에게는 밥그릇 이상의 필수품이었다. 성리학적 토대 위에 있던 양반들이 그릇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기능이었다.번다한 문양과 장식은 최대한 억제되었으며,모양도 안정성이 우선 고려됐다.화려한 청자에서 견고한 백자로 바뀌어간 이유였다. 그러나 17∼18세기에 들어 낙향한 양반들이 아취와 풍류를 즐기는 생활을 하면서 백자 역시 이런 체취를 풍긴다.그릇의 모양이 다양해지고,선비의 올곧음과 청초함을 상징하는 소나무·대나무·매화·국화·난초가 문양으로 각광을 받았다. 한편 관람객들은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이 미술관을 찾으면 학예연구원으로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다.9월30일까지.(02)858-3874. 서동철기자 dcsuh@
  • 세제개편안 특집/세제개편안 의미·특징, 이색 내용

    ■세제개편안 의미·특징/과세 형평성 제고에 초점 정부가 확정한 세제개편안은 과세형평을 제고하면서 세입기반을 확충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지난해에는 소득·법인세율을 인하하고 특별부가세를 폐지하는 등 각종 세제혜택을 주는데 주안점을 뒀었다.그러나 내년부터 적용될 이번 세제개편안은 과세형평을 왜곡하거나 지원의 실효성이 낮은 비과세 및 세제감면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등 세제혜택 축소에 무게가 실렸다. ‘공적자금 상환’ 재원을 마련한다는 현실적인 명분과 함께 국민의 정부의 마지막 세제개편이란 점에서 세율인하나 새로운 조세감면 조치를 내놓을 경우 ‘선심성 세제정책’으로 비쳐질 지 모른다는 우려도 감안됐다.때문에 이번 세제개편안은 소득세율 조정 등을 통해 봉급생활자에게 세(稅) 부담을 덜어주는 조치는 제외됐다. 그러다보니 개정대상 법률도 국세징수법,조세특례제한법,상속세 및 증여세법,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등 4개 뿐이다.소득세법이나 법인세법은 손질대상이 아니다. ◇주요 골격은- ▲중산·서민층의 생활안정지원 ▲정보화투자 등의 기업경쟁력강화 ▲비과세·감면 축소를 통한 세입기반 확충 ▲재벌들의 상속·증여방지를 위한 제도 보완 ▲국제거래와 관련된 조세제도 개선 ▲기업 규제완화 및 납세편의 제고 등으로 요약된다. 세제혜택 부문 중에서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 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다국적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외국인 임직원의 해외근무 수당에 대한 비과세한도 확대 등이 눈길을 끈다. 현재 운용되고 있는 149개의 조세감면제도 가운데 올해 말로 적용기간(일몰시한)이 끝나는 고수익·고위험 신탁저축의 이자·배당소득 비과세제도 등 10개는 폐지된다.투자세액공제율 조정 등 4개는 세액공제율을 축소해 기한을 연장하는 조치를 취했다.2003년 균형재정을 목표로,세원은 넓히고 세율은 낮춰간다는 중장기 세제개편의 큰 틀로 이해될 수 있다. 세제개편안은 고액재산가의 변칙 상속·증여를 막기 위해 증여의제 과세체계에 특수관계인 사이의 고·저가 양도 등 7개 유형의 일반적 증여의제를 포함시켰다.더 이상 ‘가진 자’들의 탈법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에 따른 국제거래 관련 조세회피를 막기위해 조세제도를 대폭 개선하고,납세권익을 위해 과세전 적부심 청구대상을 확대키로 한 것은 세제선진화를 위한 적절한 조치로 평가된다. ◇효과 및 문제점- 이번 세제개편안으로 2004년부터는 연간 8300억원의 세수효과가 기대된다.이는 올 연간 감면규모로 추정되는 14조 2000억원의 5%에 해당된다.기존의 조세감면 축소에 따른 연간 세수 3700억원을 포함하면 연간 1조 2000억원의 세수가 추가 확보된다. 그러나 공적자금 상환을 위해 기업과 개인에 대한 세금감면 혜택을 없애거나 대폭 감축하는 것은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특히 투자유치를 위해 외국인 기업들에 파격적인 세금감면 조치를 취한 것은 국내 기업들과의 형평성차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이로 인해 기업들의 생산활동이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주병철기자 bcjoo@ ■세제개편 이색 내용/미용목적 성형수술 10% 부가세 물린다 코를 높이거나 주름살을 없애고 싶다면 내년6월말 이전에 성형수술을 받는 게 좋을 것 같다.7월부터는 수술비가 이전보다 10%쯤 오를 공산이 크다.지금은 모든 의료서비스에 대해 부가가치세(10%)가 면제되지만 바뀌는 세법에서는 의료보험이 적용 안되는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쌍꺼풀·코성형·유방확대·지방흡인·주름살제거 등)은 제외된다.언청이·사고흉터 등 어쩔 수 없는 수술에는 면세 적용이 유지된다.라면·치약같은 생활필수품에도 부가세를 물리는 마당에 미용을 위한 수술까지 혜택을 주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번 세제개편에서는 약주와 청주도 영향을 받았다.전통주산업 활성화 차원에서 알코올도수 제한이 풀렸다.소주·맥주·과실주·위스키 등 거의 모든술이 알코올도수 제한을 받지 않는 것과 달리 약주와 청주에는 각각 ‘13도이하’와 ‘14도 이상’이라는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때문에 다양한 제품개발이 불가능했다.세율은 그대로다. 집을 한 채 갖고 있는 사람이 다른 한 채를 상속받았을 때,앞으로는 원래 갖고 있던 집에만 ‘1세대1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가 적용되고 나중에 물려받은 집을 팔 경우 여기에는 양도세가 부과된다.지금은 두 채 모두에 대해 양도세를 물리지 않고 있다.주식이나 상가 등 다른 모든 상속재산에 양도세를 물리면서 주택만 예외로 할 까닭이 없는데다 일부에서 이를 악용해 부모명의로 비싼 집을 사뒀다가 나중에 상속받은 것처럼 꾸미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 고려됐다. 또 내년부터는 주택·상가 등을 임차하기에 앞서 건물임대주가 국세를 제대로 냈는지 확인해 볼 수 있게 된다.임대주가 세금을 제대로 안 낸지도 모르고 입주했다가 나중에 건물이 공매돼 피해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열람을 하려면 임대주의 동의를 얻은 뒤 세무서에 가면 된다.이때 세무서에 임대주의 동의서와 인감증명을 제출해야 한다.(그림 참조) 압류재산의 신속한 매각과 매수희망자의 편의를 위해 내년부터 인터넷 등을 통한 전자식 입찰·경매가 가능해진다.이미 조달청 등 몇몇 정부기관은 인터넷 입찰·경매를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김태균기자 windsea@
  • 새 시집 ‘나무’출간…섬진강 시인의 천진한 언어들

    ‘섬진강 시인’ 김용택(54)씨가 ‘그 여자네 집’(1998년) 이후 4년만에 새 시집 ‘나무’(창작과 비평사 펴냄)를 냈다. 4년이란 세월에 시인은 변했을까.5년을 붙박이로 교편을 잡아온 전북 임실군 운암면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를 떠나,새학기부터 인근 덕치면의 덕치초등학교로 전근가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다. 8번째인 새 시집에도 여전히 꾸밀 줄 모르는 순진한 그만의 언어들로 가득차 있다.모두 25편이 실린 이번 작품의 특징은 몇 쪽씩 이어지는 산문시들이 자주 눈에 띈다는 점이다. 방학을 맞아 찾아간 홀어머니의 시골집에서 방 구들을 벗삼아 써내린 시어들은 ‘세한도’라는 제목으로 엮였다.장장 13쪽 짜리다. 문학평론가 남진우씨의 평문처럼 그의 색깔이 가장 잘 드러나는 때는 역시 천진한 언어로 농촌공동체의 훼손되지 않은삶을 그리는 대목들에서다.포크레인에 찍혀 앞산 소나무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면 시인의 속은 꺼멓게 탔다.‘너거들정말 그렇게 아무 곳이나 올라가 파고,뒤집고,자르고,산을부술래 이 염병 삼년에 땀도 못 나고뒈질 놈들아.’(‘세한도’에서) 그렇다고 섬진강 시인이 봄내 풀풀 피어나는 강변의 서정을 전해주지 않을 리도 없다.‘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서 있었지/봄이었어/나,그 나무에 기대앉아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지’(‘나무’에서) 유년의 속살같은 추억담도 고집스레 붙들고 있는 소재다.‘어머니는 동이 가득 남실거리는 물동이를 이고 서서 나를 불렀습니다/…용태가아,밥 안 묵을래/저 건너 강기슭에 산그늘이 막 닿고 있었습니다’(‘이 소 받아라’에서) 이내가 깔리는 시골마을의 해질녘,금방이라도 밥짓는 냄새가 코끝에 훅 끼쳐올 것만 같다. 황수정기자 sjh@
  • [씨줄날줄] 세한도와 맥아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는 우리나라 문인화의 최고봉으로 꼽힌다.추사의 정신세계와 사제지간의 애틋한 정이 담긴 이 작품은 당시 중국의 대가들이붙인 찬사가 말해 주듯이 이 그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품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될 정도이다.탄생 배경이 기구하면생애가 또한 그런가? 추사의 유배지에서 탄생한 ‘세한도’의 이동 과정은 파란만장했다.제자 이상적(李尙迪)에게그려준 이 작품은 어찌어찌 해서 휘문고등학교 설립자로 유명한 민영휘(閔泳徽)의 소유로 넘어 갔다가 일본인 학자 후지즈카 린보(藤塚隣邦)의 손에 들어갔다.나중에 이를 안 서예가 손재형(孫在馨)이 일본까지 찾아가 후지즈카의 집 인근에 유숙하면서 무려 두 달을 조른 끝에 넘겨 받는 데 성공했다.그 3개월 후 1945년 3월 연합군의 폭격으로 후지즈카의 소장품들이 불타 버렸다니 손재형의 열정이 아니었다면 세한도는 지금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뻔 했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의 보도에 의하면 일본은 19세기 말부터 2차대전에서 패망하기까지 한반도 곳곳에서 최소한 10만점의 문화재를 약탈해 갔다고 한다.‘타임’ 아시아판 최근호(2월4일자)는 일본의 약탈자들과 관변 고고학자들은 일제강점기에 왕과 왕비의 무덤을 파헤쳐 금 세공품과옥 장식, 청자, 돌조각품,탑 등 유물을 닥치는 대로 약탈해간 것은 물론,사찰들에서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귀한사리함들을,도서관들에서는 수만점의 서책들을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고 폭로했다. 그런데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서방에서는 각국 정부와 박물관들이 나치가 약탈해간 문화재를 반환받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으나 아시아의 옛 일제 식민지,특히 한국에서는 이와 같은 노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고 이 잡지는지적했다.일본 점령군 사령관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정치적인 고려에 의해 약탈문화재의 반환에 반대했다는것이다.‘타임’은 이 사실이 미 문서보관소 기록을 통해드러났다고 밝혔다.일본에 전범 책임을 철저하게 묻지 않았던 것과 함께 맥아더의 또 하나의 실책이 드러난 셈이다.그러나 그것을 맥아더 실책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종군 위안부 문제등 빠트린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한일회담 실무자 중에 손재형 같은 안목을 가진 사람이 한사람만 있었어도 약탈 문화재 문제를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해외 골프여행 81% 껑충

    경기가 바닥을 기고 있는데도 골프를 치거나 호화사치품을 사기 위한 해외여행은 크게 늘고 있다. 28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출국하면서 골프채를 갖고나간다고 신고한 사람은 9만 1170명으로 2000년 5만 243명보다 81.5%나 늘었다.하루 평균 250명이 해외로 골프여행을 떠난 셈이다.관세청 관계자는 “외국에서 골프채를 빌려 쓰는 사람까지 치면 골프여행객 수는 공식 수치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으로 갖고 들어오다 세관에 유치된 물품 가운데 주류는 20만 4655병으로 전년 16만 8535병에 비해 21.4%나 늘었다.이중에는 통관가격이 390만원에 이르는 코냑 ‘리처드 헤네시’를 비롯해 1인당 휴대품 면세한도(400달러)를넘어서는 고급양주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 관세청은 이에 따라 문화부 법무부 국세청 등과 함께 사치성 해외여행을 막기 위한 대책마련에 나서기로 했다.또설 연휴기간에 사치성 해외여행이 더욱 늘 것으로 보고 다음달 8일부터 17일까지 10일동안 모든 휴대물에 대해 X선검색을 실시하는 등 휴대품 검사를 강화하기로 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
  • [김성호기자가 본 종교 萬華鏡] 해원과 상생 사이

    이런 저런 위령제가 줄을 잇는다.까닭도 모른 채(사실은까닭있게) 죽어간,이른바 의문사한 망자들의 한도 풀어야하고 시위 도중 밟혀죽고 맞아죽은 어린 학생들의 넋도 달래야 한다.천주교계에선 박해 순교자들의 시복(諡福) 시성(諡聖)이 한창이다. 천기를 누설하면 구천에 떠도는 원혼이 된다고 했는데 이땅엔 무슨 비밀이 그리도 많길래 풀어줄 한들이 그렇게 많은지 모를 일이다. 유난히 ‘해원’(解寃)과 ‘상생’(相生)의 목소리가 높은 한 해였다.새 밀레니엄의 진정한 원단이니,한 세기의진짜 시작이니 하며 새해 벽두부터 알듯말듯한 화두로 나온 해원 상생이 연말인 지금 일상용어로 정착된 느낌이다. 심오한 의미의 종교 철학 용어가 이렇듯 생활속의 쉬운 말이 됐으니,역시 말은 삶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수단임이 틀림없다. 기독교의 ‘원죄’나 불교의 ‘무명’(無明)처럼 원과 한은 많은 종교에서 중시하는 인간 고통의 씨앗이다.이 맺히고 쌓인 원과 한을 풀어주는 해원을 상생의 질서로 바꿀때 그 고통이 해결된다는 게 ‘해원 상생’의 요체랄 수있다. 한풀이의 해원이 죽은 자를 위한 철학이라면,나도 살고너도 살고 서로 보듬고 잘 살아보자는 상생은 산 자를 위한 철학이다.그런데 따지고 보면 해원이나 상생이나 모두‘산 자’를 위한 철학이다.죽은 자의 한을 푼다는 해원도산 사람이 잘 살아보자고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젯상의 음복(飮福)은 산 사람의 몫이다.경북 안동의 그 이름난 헛제사밥 집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않는다고 한다. 잠깐 넋 타령을 접고 옆을 보자.아니 굳이 애써 보려고하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는 이웃들을 바라보자.찬 하늘과바람만 가려진 틈새에서 웅숭크리고 있는 노숙자며,고사리같은 손으로 어린 동생들을 챙기는 소년소녀 가장, 의지할곳 없는 독거노인들…. 이들에게 해원과 상생의 말뜻을 한번 물어보자.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는 ‘세상이 추워져야 소나무의푸르름을 보게 된다’는,차가움과 따스함의 미학이 함께담겼다.인적도 끊긴 채 고립무원 유배중인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준 벗에의 고마움이다. 가슴저린 작품이지만,그래서 세한도의여백은 더욱 넉넉하다.세한도의 숨은 뜻을 풀어냄은 살아있는 우리의 몫이아닐까.죽은 자의 한풀이도 좋다.하지만 산 자부터 챙겨보자.아이구 산 자들의 이 많은 한을 어떻게 다 푸나. 김성호 기자 kimus@
  • 2001 길섶에서/ 글씨 평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보면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소개돼 있다. 추사가 쉰넷에 제주도 귀양길에 올라 해남 대흥사에 들르게 됐다.귀양을 가면서도 기개가 살아 있던 추사는 대웅보전에 걸린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의 글씨 ‘대웅보전(大雄寶殿)’을 보더니 “조선의 글씨를 망친 사람의 현판”이라며 주지스님인 초의선사(草衣禪師)에게 당장 떼내라고신경질을 부렸다.추사의 고집에 초의는 현판을 떼냈고 추사는 제주도에서 긴긴 유배생활에 들어갔다.세한도(歲寒圖)도그리면서 9년을 보낸 추사가 귀양이 풀려 상경길에 다시 대흥사를 찾았다.초의와 회포를 풀면서 “원교의 현판이 어디있나. 그때는 내가 잘못 봤어”라고 말했다. 초의가 보관해두었던 현판은 제자리에 다시 달려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요즘 현판이나 비문을 나름대로의 이유를 들어 훼손하는일들이 종종 있다.꼭 부수고 없애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훼손과 보관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일이다.하나는 비문화고,다른 하나는 문화다. 강석진 논설위원
  • [굄돌] 작은것이 아름답다

    며칠 전 서울 인사동에서 우연히 만난 몇몇 화방이나 표구사를 하는 분들이 점포 때문에 푸념을 하는 소리를 들었다. 작품들이 점차 대작으로 달라져서 도저히 좁은 공간으로는화판이나 액자제작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작품들의 대형화 추세는 공모전,대학의 강의실을 비롯하여 일상생활에서도 얼마든지 느껴진다.작품의 질과는 상관없이 일단 시위를 하고 보자는 식의 규모 확장은 결국 공사로 따진다면 부실공사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그만큼 밀도가 없는 부실한 작품들을 양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생전에 불과 20여 점만을 남기고 갔지만 77×53cm의 ‘모나리자’를 비롯한 대표적인 작품들은 우리들에게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있다.안견의 ‘몽유도원도’가 그렇고,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나 ‘부작난도’ 역시 대작은 아니지만 미술사에서 보석같은 작품들로 꼽힌다.이중섭이 그렇고 이상범,변관식,박수근이나 장욱진 등대표적인 작가들이 그렇다.양적으로도 소수에 그치지만 정수를 보여주는 예가 너무나 많다.고려청자가 그렇고,고려불화 역시 얼마 남지 않은 작품들이지만 모두가 국보급으로지정해도 좋을 만큼 우리문화의 유산이 되고 있다.미술사에서 이같은 예는 얼마든지 있다. 최근 우리의 의식 속에는 언제부터인가 양적인 과시에 집착한 부풀리기나 규모의 시위가 질적인 절대가치보다 앞서가는 추세이다.보다 크고,높고,많은 숫자를 좋아하게 된 것은 심리적으로 보면 단기적으로라도 규모에서 압도하려는의식이 반영된 것이지만 이같은 흐름이 결국 거품가치를 양산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호당가격제라는 신기한 그림값을 통해 거래되어온 우리 미술시장의 기이한 현상 역시 작품의 절대가치를 무시한 오류이며,거시적으로 보면 백화점식의 확장을 해가는 기업이나 교육기관의 팽창도 결국 전문화된 경영이나 밀도있는교육과 연구를 포기하는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작은 것은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다.미술작품에 한정된 말은 결코 아닐 듯 한 이 한마디가 다시금 새롭게 다가온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미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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