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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년 고민 끝에 쓴 추사 ‘침계’ 보물 된다

    30년 고민 끝에 쓴 추사 ‘침계’ 보물 된다

    김정희 만년의 대표작 ‘대팽고회’ 빠른 붓질로 멋 살린 ‘차호호공’ 서예 작품 3점 추가 지정 예고조선 후기 최고의 서예가이자 금석학자였던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의 글씨 3점이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김정희의 서예 작품 중 ‘김정희 필 침계’(사진ㆍ金正喜 筆 ?溪)를 포함한 3점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20일 밝혔다. 김정희는 19세기 세도정치 기간에 문인이자 정치가로 활동했으며 금석문(金石文·금속이나 돌 위에 새긴 문양이나 글씨)의 서예적 가치를 재평가한 추사체를 창안해 한국 서예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김정희 필 침계’는 오른쪽에 ‘침계’ 두 글자를 커다랗게 쓰고 왼쪽에 약간 흘려 쓴 서체로 8행에 걸친 발문을 적은 작품이다. ‘침계’는 조선 후기 문신인 윤정현(1793∼1874)의 호다. 윤정현은 추사가 함경도로 귀양 갔을 때 함경감사를 지낸 인물이다. 발문에 따르면 김정희는 일찍이 윤정현으로부터 호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한나라 예서(隷書·중국의 옛 서체인 전서보다 쓰기 쉽도록 고안된 서체)에 ‘침’(?) 자가 없어서 30년간 고민하던 끝에 예서와 해서(楷書·정자체)를 합해 썼다. 작품의 완성도를 갖추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한 김정희의 작가적 태도와 그런 김정희를 기다려준 윤정현의 인내와 우정이 담긴 작품이다. 이번에 보물로 함께 지정 예고된 ‘김정희 필 대팽고회’(金正喜 筆 大烹高會)와 ‘김정희 필 차호호공’(金正喜 筆 且呼好共)은 대구의 글을 써서 대문이나 기둥의 양쪽에 부착하거나 걸어 놓은 대련(對聯)이다. 김정희가 세상을 뜬 해인 1856년에 완성한 ‘대팽고회’는 중국 명나라 문인 오종잠의 ‘중추가연’이라는 시에서 유래했다.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녀손’(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이라는 글로 “푸짐하게 차린 음식은 두부·오이·생강·나물이고, 성대한 연회는 부부·아들딸·손자라네”라는 글귀를 쓴 것이다. 평범한 일상생활이야말로 이상적인 경지와 같다는 내용에 걸맞게 꾸밈없는 소박한 필치로 붓을 자유자재로 운용한 작품이다. 서예가의 인생관과 예술관이 응축되어 있는 김정희 만년의 대표작이다. ‘차호호공’은 중국 촉나라 시대의 비석에 새겨진 글씨를 활용해 ‘차호명월성삼우, 호공매화주일산’(且呼明月成三友, 好共梅花住一山)이라는 글귀를 쓴 작품이다. “잠시 밝은 달을 불러 세 벗을 이루고, 좋아서 매화와 함께 한 산에 사네”라는 의미다. 필획 사이의 간격이 넉넉하고 빠른 붓질로 속도감을 내는 등 운필의 멋을 살린 수작이다. 김정희 작품 중에는 글씨 ‘김정희 해서 묵소거사자찬’과 ‘김정희 예서 대련 호고연경’ 등 4건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김정희가 1844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하고 있을 때 그린 ‘김정희 필 세한도’는 국보 제180호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에 각계 의견을 받은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물 지정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나부터 바로 서서 그에게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나부터 바로 서서 그에게

    유배인들이 유배지에서 했던 일들은 많다. 한시를 짓고 가사를 씀으로써 소위 유배문학이라는 전통을 만든 것도 그들이다. 그들이 살던 시대에는 한시를 짓는 능력이 교양으로 매우 중시됐다. 특히 과거시험을 위해 어려서부터 한시 짓는 방법을 익혀야 했다. 문학을 도덕과 교훈을 위한 도구로 생각했던 조선 지식인들은 한시를 짓는 일이 원칙적으로 남성들의 일이라 여겼다. 이 때문에 유배지에서도 많은 유배인들이 한시를 남겼다. 그런가 하면 한시 외에 편지를 쓴 유배인도 많다. 소학에 ‘선비의 일에 가장 가까운 것이 글씨를 익히고 편지를 쓰는 일’이라고 했듯이 편지는 조선 지식인들이 사는 일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유배인들은 외부와의 유일한 의사전달 방법이 편지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두 아들과 둘째형, 그리고 제자들에게 수백여 통의 편지를 보냈고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김정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것들은 모두 유배인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유배지의 현지 주민들을 위한 행위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중국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해남도(海南島)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소동파를 두고 “동파는 불행했지만 해남은 행복했다”고 하는 이유가 그가 시를 잘 썼기 때문이 아니라 무지몽매한 유배지 현지 주민들과 함께 어울렸기 때문이다. 어울림 가운데 으뜸은 바로 교육 활동이다. 1545년 을사사화로 성주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이문건 역시 유배지 주민들과 잘 어울리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현지 주민들에게서 전세 공물 및 잡역 등 부세를 받아서 대신 관에 납부하고 중간에서 차액을 남기는 방납에 관여해 상당한 수익을 올리는 경제활동을 했을 뿐이었다. 유배인 신분에도 재산을 증식한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유배지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현지의 젊은이들을 잘 가르쳐 조선 건국 이래 처음으로 가장 많은 과거 합격자를 배출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4년 뒤 사면을 받았던 강백 같은 유배인도 있었다. 그는 1728년 이인좌의 난에 연루돼 철산에 유배됐는데 교육 활동을 통해 현지 주민들과 적극적으로 만남으로써 그 결과 “강백은 불행했지만 철산은 행복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선비들이 유배를 당하면 정치인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학자적 기능은 여전히 가능했기 때문에 유배생활을 서재생활로 전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많은 한시도 쓰고, 편지도 썼지만 어떤 유배인은 이 시간에 현지 주민들을 가르쳤던 것이다. 사실 김정희가 위대한 것은 추사체를 완성하고 세한도를 그렸기 때문만이 아니라 제주도 주민들과 기꺼이 만나고 그들에게 가르침을 주었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배인들의 교육 활동이 왜 이렇듯 중요한가 하면 당시 계급으로 차별을 구조화한 조선시대의 위계질서를 넘어선 이타적 행위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만남, 이런 교육 활동이다. 자본의 위계질서를 정당화하고 부익부 빈익빈의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교육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행복한 ‘함께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교육이 가능하려면 무지몽매한 유배지 주민들에게 헌신했던 유배인들처럼 정부와 기업, 기득권자, 그리고 우리 개개인들이 나서서 가난과 질병, 냉대와 무관심, 스트레스로 소외받고 있는 아이들과 이웃들에게 지속적으로 인간적이고 생산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연말연시, 그 바람이 더욱 커진다.
  •  과천 추사박물관, 제주추사관과 학술 콘텐츠 교류

     과천 추사박물관, 제주추사관과 학술 콘텐츠 교류

    추사 김정희가 꽃피웠던 학문과 예술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개관한 두 기관이 학술과 콘텐츠를 교류하고, 네트워크를 공동으로 구축한다. 경기 과천시 추사박물관은 이를 위해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산하 제주추사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13일 밝혔다. 이에 따라 두 기관은 추사 공동연구 및 심포지엄 개최, 전시·교육·체험 프로그램 교류 및 정보의 공유, 학술출판물 등 콘텐츠 개발과 행사에 서로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추사 김정희(1786~1856년)는 추사체로 상징되는 조선말 글씨의 명인이다. 또한 청나라 고증학을 기반으로 한 금석학자이기도 하다. 추사는 현종 때 풍양 조씨가 득세하자 다시 반격을 가한 안동 김씨가 10년 만에 윤상도의 옥사를 다시 거론, 유배를 가게 되면서 제주와 첫 인연을 맺는다. 인생의 첫 좌절, 9년 유배생활 동안 생애 최고의 명작 ‘날이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는 세한도(국보 180호)를 그리고, 추사체를 제주에서 완성했다.과천과 인연은 1851년 당시 영의정이던 친구 권돈의 일에 연루돼 또다시 북청으로 유배됐다 풀려난 뒤 과천에 자리 잡으면서 시작됐다. 추사는 유배로 삭탈관작된 생부 김노경의 복원을 위해 한양에서 가까운 과천의 주암동에 묘역을 모시고, 아버지가 조성한 과지초당에 기거했다. 과천에 4년 동안 거주하면서 말년의 완숙인 불이선란도, 판전, 대팽고회 대련 등 작품을 남겼다. 과천에서 봉은사를 오가던 그는 71세의 나이로 죽었다.  이런 추사와의 인연으로 두 지자체에 세워진 추사 박물관은 ‘세한도, 또 다른 자화상’, ‘추사 가문의 글씨’ 등 특별기획전에 소장유물을 서로 대여해 주는 등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다. 과천 추사박물관은 2013년 6월 3일, 추사 김정희의 음력생일에 맞춰 개관했다. 추사의 학문과 예술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전시하고 있다. 2016년에는 ‘자하 신위 전’을 통해 학술적인 성과를 인정받아 경기도 도지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주추사관은 서귀포 대정의 추사 유배지에 2010년 재개관했으며, 현재 제주도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연간 7만 명의 관람객이 찾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상기 과천시 추사박물관장은 “제주추사관과의 협약을 통해 관람객에게 더 다양한 양질의 문화콘텐츠를 제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명예기자 마당] 한도 넘은 면세품, 신고가 유리

    해외 여행에서 반드시 거치는 곳 중 한 곳이 면세점이다. 관세법상 보세판매장이 면세점인데 ‘보세’란 관세의 부과가 유보된다는 의미다.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물품이 들어올 때는 관세가 붙지만, 외국에 가지고 나가는 물품에 대해 과세하지 않는 상태에서 파는 곳이 보세판매장이다. 해외 거주 외국인이 면세점에서 살 수 있는 한도는 제한이 없다. 반면 내국인은 3000달러 이내로 구매가 제한된다. 만약 면세점에서 산 물건을 다시 국내로 가져온다면 내·외국인 모두 여행자 면세한도(600달러) 규정을 적용받는다. 면세점에서의 물품 구입은 국외 반출을 전제하기에 국내 입국시 여행 중 선물 구입 등을 위한 편의책인 면세한도와 별개로 보는 것이다. 물건 구매액이 면세한도를 넘으면 초과분에 대해 세금이 부과된다. 예를 들어 면세점에서 1000달러짜리 가방을 산 A씨는 즐거운 해외 여행을 마치고 아무 생각없이 입국하다 세관 검사를 받게 됐다. 결국 면세한도를 넘긴 400달러에 대해 20%(40달러) 관세와 자진신고를 하지 않아 세금의 40%(16달러) 가산세까지 부과됐다. 면세한도에 대한 정보가 있어 자진신고했다면 오히려 30%(12달러)를 감면받을 수 있었다. 면세를 고려한 계획·규모 있는 구매는 해외 여행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김미숙 명예기자(관세청 대변인실 주무관)
  • 추사박물관, ‘국보180호 세한도 이야기’ 등 여러 체험프로 그램 운영

    추사박물관, ‘국보180호 세한도 이야기’ 등 여러 체험프로 그램 운영

    경기 과천시 추사박물관은 여름방학을 맞아 조선말기 서예가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예술혼을 느껴볼 수 있는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10일 밝혔다. 체험학습 중심의 이번 프로그램은 조선시대 선비의 삶과 정신, 과천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조선의 선비, 추사의 하루’, ‘국보180호 세한도 이야기’, ‘두근두근 나도 추사암행어사’ 등이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각각 운영된다.  ‘조선의 선비, 추사의 하루’는 청소년들이 조선시대 선비의 하루 생활을 체험해보고 당대 문인문화를 이해하는 색다른 체험이다.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으며 선비의 정신과 역할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기획됐다. ‘국보180호 세한도 이야기’는 국보 180호인 세한도를 중심으로 추사박물관 전시를 재구성 해보고, 족자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매주 마지막 주 수요일에 운영된다.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중 많은 책을 전해준 제자 우선 이상적(1804~1865)을 위해 그린 그림이다. 세한도에는 논어의 한구절인 자한편의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두근두근 나도 추사암행어사’는 추사 김정희가 과거시험을 통해 암행어사가 되는 과정을 미션해결형식으로 진행한다. 조선시대의 신분, 사회, 문화 등을 알아보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과정의 신청은 추사박물관 홈페이지(www.chusamuseum.go.kr)로 하면 되며, 선착순 접수로 진행된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조선 선비들 삶에 밴 ‘나무의 가르침’

    조선 선비들 삶에 밴 ‘나무의 가르침’

    나무를 품은 선비/강판권 지음/위즈덤하우스/328쪽/1만 6000원“날이 차가워진 연후에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더디 시듦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경구이다. 공자는 사계절에 상관없이 잎이 시들지 않고 지지도 않는 소나무와 잣나무에서 변치 않는 우정과 충절을 가르쳤다. 이렇듯 나무는 우리에게 많은 진리를 깨우쳐 준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늘 자신이 사는 공간에 나무를 심어놓고 관찰하고 공부했던 이유다. ‘나무를 품은 선비들’은 역사학자인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가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남긴 나무에 관한 시와 문집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삶이 서린 공간과 나무를 찾아가 남긴 기록이다.조선의 선비들은 그가 어떤 삶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가까이하는 나무가 달랐다. 조선 중기 지성사를 상징하는 남명 조식은 평생 거의 벼슬을 하지 않고 성리학의 기본을 실천하며 살았다. 조식은 예순한 살인 1561년 경남 산청군의 산천재에 자리를 잡고 선비정신의 상징인 매실나무를 심었다. 세 편의 시와 함께 남은 450년 수령의 산천재 매실나무는 ‘남명매’라고 불린다. 조선시대 최고의 역관 이상적은 추사 김정희와의 인연으로 후세에 이름이 알려졌다. 1830년 중국에 처음 다녀온 후 추사 김정희를 만난 이상적은 훗날 제주 유배 중인 추사에게 중국에서 구한 귀한 서적들을 전해 준다. 추사가 글과 그림으로 이에 대한 고마움을 표한 것이 그 유명한 ‘세한도’다. 꽃이 100일 동안 피어 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배롱나무의 붉은 꽃은 조상을 향한 후손들의 일편단심을 의미한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던 조임도는 거처를 정할 때 조상의 묘소를 먼저 생각했다. 마흔아홉 살이던 1633년 창녕군 영산의 용산마을에 자리잡은 것은 조상의 묘소를 늘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임도는 묘소에 직접 배롱나무를 한 그루 심고 집을 마련한 뒤에는 팔을 굽힌다는 뜻의 ‘곡굉’(曲肱)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그는 팔베개하고 누워 배롱나무의 꽃 그림자가 질 때까지 부모의 묘소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조성한은 1674년 연천현감에서 물러나 홍주, 즉 지금의 홍천 녹운동 동산촌에 거처를 정했다. 집 앞에 회화나무 두 그루를 심고 집 이름을 쌍괴당이라 불렀으며 자신의 호도 쌍괴당이라 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즐겨 암송했던 그가 나무와 함께 즐긴 것은 소요의 삶이었다.조선 중기 최고의 문장가 신흠은 자신의 공간에 형제의 우애를 상징하는 박태기나무를 심었다. 조선말의 성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곽종석은 그의 ‘면우집’에서 버드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을 노래했다. 조선의 농업을 집대성한 ‘임원경제지’를 집필한 서유구는 바위 위에 사는 단풍나무를 상징하는 풍석(楓石)을 호로 삼았다. 감나무는 효도와 관련이 깊다. 가사로 유명한 박인로는 홍시를 통해 어버이에 대한 효도를 노래했다. 우리나라 감나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산청군 단성면의 감나무는 600년 전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경재 하연이 홍시를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심은 것이다. 윤선도가 남긴 ‘오우가’에는 강직함과 절개를 상징하는 소나무와 절대나무가 포함돼 있다. 저자는 나무를 매개로 조선의 지식인들과 조우하는 것이 가슴 설레는 일이지만 역사 속 성리학자들의 정신이 서린 공간들이 방치되거나 사라지는 것을 보면 늘 유쾌한 것은 아니라고 적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명예기자가 간다] 미얀마 공항 검사대… 세관 직원인 나도 떨렸다

    [명예기자가 간다] 미얀마 공항 검사대… 세관 직원인 나도 떨렸다

    # 1999년 인천공항 이전의 김포공항에서 여행자휴대품 검사(휴대품 검사)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비아그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시기다. 비아그라 반입이 불법인 줄 알면서도 몰래 반입하다가 세관에 적발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 미얀마 입국 시 휴대품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현지 선교사를 위해 이것저것 싸간 물품이 문제가 됐다. 의류 등 양이 많다 보니 현지 세관에서는 판매용으로 본 것이다. 미얀마 세관의 여행자휴대품 면세한도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세관신고서 제출 전부터 휴대품 검사가 걱정됐다. 세관직원인데도 말이다. # “난, 괜찮겠지”…무모한 용기가 화 불러 지난해 인천공항 내국인 입국자 수는 1600만명에 달한다. 일평균 4만 3000여명이 세관을 통과한다. 즐거웠던 해외여행의 끝에 맞는 휴대품 검사는 불쾌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여행자휴대품 면세한도가 600달러에 술 1병, 담배 1보루는 면세가 된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일 수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인천공항 유치내역 1위는 핸드백, 2위는 주류, 3위는 담배다. 특히 담배류 유치 실적은 전년 대비 36.7% 증가했다. 대부분은 “설마 걸리겠냐”는 무모한 용기를 발휘하다 적발된다. 이 경우 휴대품 신고서에 ‘신고할 물품 없음’으로 체크하는데 자진신고 미이행으로 납부세액의 40%에 해당하는 가산세를 납부해야 한다. 관세청은 2015년 해외여행자의 휴대품성실신고를 위해 면세한도 초과물품 자진 신고 시 30% 감면(15만원 한도)하는 반면 미신고 시 40% 가산세를 부과하고 있다. 2년 내 2회 이상 적발된 상습적 미신고자는 세액의 60%를 가산세로 부과하도록 개정했다. 반입금지 물품 등 관련 규정을 몰라 유치 또는 처벌되는 경우도 있다. 반입금지 물품은 총기류, 마약류, 검역대상물품, 멸종위기 동식물 등이다. 착오로 반입하다 적발되는 물품은 BB탄 총, 장식용 칼, 웅담분 등이 대표적이다. BB탄 총과 장식용 칼은 모의총포 규정에 해당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멸종위기야생동식물취급에관한조약(CITES)에 따라 웅담·사향 등의 성분이 들어간 제품은 반입할 수 없다. 마약류는 반입금지 물품임을 잘 알고 있기에 대리운반의 위험이 높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대학생이나 가정주부가 대상이다. 일정액의 사례금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가방을 대신 운반해 줄 것을 부탁한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운반해 주다가 세관에 적발돼 처벌받는 사례가 빈번하다. 특히 마약·총기류 등이 들어 있는 줄 모르고 운반해주다 본의 아니게 범죄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 대리 운반하다 적발되면 밀수입죄가 적용된다. 해당물품 몰수 및 죄질이 나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해질 수 있기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각국 반입금지 물품 숙지해 불이익 막아야 관광업계에 따르면 5월 황금연휴를 앞두고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이 1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즐거웠던 여행을 휴대품 검사로 인해 두렵고 불쾌하게 마무리하지 않기 위해서는 성실한 휴대품 신고가 중요하다. 관세청은 여행객들이 알지 못해 처벌받는 일이 없도록 홈페이지·블로그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관세청 블로그(http://ecustoms.tistory.com)에는 주요 여행국의 면세한도를 연재하고 있다. 여행 전에 꼼꼼이 살피고 준비하면 낭패를 예방할 수 있다. 김석원 명예기자(관세청 대변인실 주무관)
  • 연꽃 유명한 양평 세미원 25일부터 야간 개장

    연꽃 유명한 양평 세미원 25일부터 야간 개장

    연꽃으로 유명한 경기 양평의 세미원이 25일부터 야간에도 개장한다. 세미원 측은 한낮의 분주함과 들뜬 마음을 고즈넉한 저녁 풍경을 통해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도록 오는 11월 30일까지 야간에도 문을 연다고 24일 밝혔다. 야간 개장은 오후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며 휴관일은 없다. 팔괘담 정중앙에 위치한 태극기 형태의 출입문을 통해 입장하면 가장 먼저 장독대분수가 장관이다. 300여개 항아리에서 뿜어 오르는 물이 은은한 조명을 받아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장독대분수는 한강물이 더욱 맑아지기를 기원하는 제단을 상징한다. 드넒은 연못에서는 홍련과 백련 꽃봉오리가 탐스럽게 피어오르고 있으며 진한 물과 풀 향기가 인상적이다. 물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세족대와 돌빨래판이 깔린 세심로를 지나면 추사 김정희 선생이 유배생활 중에 제자 이상적 선생에게 그려준 세한도를 공간에 펼쳐 정원으로 만든 세한정이 나타난다. 세한정 안에 위치한 송백헌(松柏軒)에는 세한도와 함께 추사와 제자의 초상화 그리고 추사 선생의 생애와 삶의 역정을 보여주는 그림들이 전시돼 있다. 세한정 밖으로 나오면 배다리인 열수주교(烈水舟橋)가 장관이다. 20여억원을 들여 설치한 열수주교는 배를 여럿 이어 만든 나무다리이다. 정조 임금이 부친인 사도세자 묘를 참배하러 갈 때 한강에 설치했던 배다리를 복원한 것이다. 세미원 이훈석 대표이사가 국토교통부를 6년간 쫓아다니며 설득해 만들었다. 열수주교를 건너면 고려판 이동식 정자라 할 수 있는 사륜정과 조선 때 궁중 온실 등이 있는 상춘원을 구경할 수 있다. 끝으로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기슭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한 남한강의 두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의미의 두물머리(兩水里)가 한여름 무더위를 잊게 한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www.semiwon.or.kr)를 참고하거나 전화(031-775-1830)로 문의하면 된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복합리조트 개장 땐 공무원 수보다 많은 7000개 정규직 생길 것”

    “복합리조트 개장 땐 공무원 수보다 많은 7000개 정규직 생길 것”

    “‘리조트월드제주’가 완전 개장하는 2018년까지 제주도 전체 공무원 수(6300명)보다 많은 7000개의 정규직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김한욱(68)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이사장은 리조트월드제주의 경제효과에 대해 이같이 전망했다. JDC는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 신화역사공원을 조성 중인데 총 4개 지구 중 3개 지구가 아시아 최대의 복합리조트인 리조트월드제주다. 홍콩 람정그룹과 리조트월드센토사를 운영하는 겐팅 싱가포르가 2조 3000억원을 합작 투자해 253만㎡ 규모로 만들어진다. 리조트가 문을 열면 정규직 7000명을 비롯해 아웃소싱 3000명 등 모두 1만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김 이사장은 “쾌청일수가 연간 78일밖에 되지 않는 제주에 실내·가족 중심 관광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본다”면서 “JDC투자기업과 제주도내 대학들이 만든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이수한 청년들이 내년 8월 부분 개장할 리조트월드제주에서 대리급 이상 초급 관리자로 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그동안 간부급 관광 인재를 육성하지 못해 총지배인 등 외부 관리자 초청으로 인한 숙박, 교통, 자녀 교육 문제 등 부담이 컸다”면서 “다음달부터 대학 내 카지노 등 람정 인재채용 특별과목을 신설해 맞춤형 교육을 진행하고 5년간 의무 근무로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2013년 6월 취임 당시 수천억원의 적자와 잇단 민자 유치 실패로 공기업 경영평가 최하등급을 받았던 JDC를 2014~2015년 연속 최고등급 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취임 당시 2860억원에 달했던 금융부채를 초긴축 경영으로 지난해 12월 전부 다 갚았다. 지금은 1873억원의 여유자금을 갖고 있다. 스스로 교통비를 제외한 출장경비를 받지 않았고 항공 비즈니스석도 타지 않았다. JDC 면세점은 지난해 매출 4882억원으로 전년 대비 34%나 끌어올리며 역대 최고 매출을 달성했다. 김 이사장은 “올해는 면세한도(600달러)에 맞는 상품 개발 등을 통해 매출 5200억원을 넘기겠다”고 자신했다. 도민들을 위한 최소 1000억원 이상의 공익재단 설립을 위해 태스크포스도 구성했다. 김 이사장은 “개발이익의 과실을 지역이 영속적으로 갖도록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제주 국제학교 내 중국인 학생수를 늘려 인적네트워크를 형성한다면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몽유도원도, 왕의 심기를 건드리다

    몽유도원도, 왕의 심기를 건드리다

    옛 그림에서 정치를 걷다/허균 지음/깊은나무/256쪽/1만 6000원 왕과 사대부가 남긴 그림은 일반 풍속화와 다르다. 조선의 정치적 신념과 개인의 이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화에 비해 딱딱하고 정적인 느낌을 주는 조선시대 왕들의 초상화인 어진부터 풍경화에 담긴 사대부 그림에는 퍼즐처럼 정치적 시대상이 숨겨져 있다. 이 책은 그 흔적들을 찾아 그림을 새롭게 읽는다. 15세기 조선화가 안견의 대표적 명작인 ‘몽유도원도’. 안평대군(1418~1453)이 꿈에서 본 도화원경의 이상향을 재현한 작품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이 작품은 안평대군과 수양대군 간 권력 쟁투의 비극적인 산물로 한때 금기시됐다. 안평대군이 도원을 거니는 꿈을 꾼 것은 1447년 4월 20일 밤. 안견이 몽유도원도를 완성한 건 사흘 후인 4월 23일이다. 지금의 시대에는 명작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빛을 보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안평대군이 꿈을 꾼 시점은 세종의 맏아들 문종이 대리청정을 하던 권력 공백기였다. 1450년 문종이 왕위에 오르자 안평대군은 자신이 추천하는 인물들을 대거 조정에 등용시키며 실력자로 부상한다. 안평대군 세력은 세종을 보필했던 문인과 학자들이 중심이었고, 수양대군을 지지하는 무인 등 일파들과의 권력 투쟁은 필연적이었다. 안평대군은 그림 속 도원과 비슷한 풍경을 지닌 창의문 밖 현 부암동 인근의 무계정사에서 측근들과 회합을 하다 결국 수양대군에 의해 대역죄인이 되고, 강화도에서 사사(賜死)된다. 그 후로 몽유도원도 등 안평대군과 연관된 서화를 품평하거나 감상하는 것 자체가 세조 등 집권 세력의 역린을 건드리는 일이 됐다.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인 저자는 조선시대 집권층의 그림에는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몽유도원도는 단순히 꿈을 기록한 게 아니라 안평대군의 정치적 야망이 반영된 그림이라는 식이다. 그림에 덧붙여진 사대부들의 찬시들은 미래의 왕위를 꿈꾼 안평대군에 대한 충성 맹세였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이런 관점에서 어진부터 사대부 그림에 담긴 정치적 의미를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 시대상을 세세하게 보여 준다. 조선시대의 어진은 정교한 세밀화였다. 어진은 실제 왕의 얼굴과 터럭만큼의 차이도 없이 그려졌다. 영조 어진의 경우 수염 한 올조차 틀리지 않고 최대한 정확하게 그리는 원칙을 따랐다. 사진 기술이 없던 시절 조선시대 임금의 얼굴을 유추할 수 있는 것도 어진 덕분이다. 오죽하면 산 사람 사이에 행해지는 예절인 작헌례(술을 가져가 권하는 행위)를 왕의 초상 앞에서 행했을까. 저자는 어진 역시 현 집권세력의 정통성과 권위를 확보하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제작됐다고 분석한다. 1, 2차 난을 통해 권력을 잡은 태종이나 왕권 강화에 힘쓴 숙종, 개혁 정치로 문예 부흥을 이룬 영조 등이 역대 선왕의 어진 제작에 정성을 쏟은 이유이기도 하다. 풍경화나 정물화를 그렸던 문인화는 어떨까. 제주도에 유배된 추사 김정희가 그린 대표작이 바로 국보 제180호 ‘세한도’(歲寒圖)다. 헌종 집권기에 안동김씨 세력의 탄압을 받은 추사는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제주도에서 장장 9년간 외롭고 고통스러운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저자가 소나무와 잣나무를 주제로 그린 세한도는 제자인 역관 이상적의 지조와 의리를 상징하는 동시에 당쟁으로 희생된 자신을 향한 복잡한 심경을 표현한 ‘시’(詩)이자 ‘서’(書), 화(畵)라고 지적한다. 역적의 자손으로 전락한 김시의 ‘목우도’나 몰락한 세도가의 자손인 심사정의 ‘탁목조’ 모두 정치적으로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스스로의 탈출구인 동시에 가슴 속에 맺힌 울분을 삭이게 하는 정신적인 안식처였다. 저자는 말한다. 옛 그림을 감상하면서 화법이나 양식만 봐서는 실체적 진실에 다가설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림을 둘러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개인의 역사를 퍼즐 맞추듯 해야 비로소 그림에 대한 해석이 분명해진다는 가르침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매장서 보고 온라인 구매” 유커 新쇼핑법 등장

    ‘중국인 관광객 쇼핑 패턴 달라지나?’ 중국인 관광객들이 국내에서 상품을 확인 후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귀국 후, 원하는 곳에서 받을 수 있는 O2O(온라인 to 오프라인) 방식의 쇼핑시스템이 제주에 등장,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의 정주보세국제와 국내 알지비컨소시엄이 설립한 ㈜알지비플러스제주는 최근 제주시 연동에 1000㎡ 규모의 중국 관광객을 위한 쇼핑몰인 보세국제전시관을 개장했다. 이 쇼핑몰은 8000여 한국 및 해외 명품을 갖추어 중국인 관광객들이 직접 매장에서 상품을 확인한후 온라인을 통해 구매, 결제하면 중국 현지 원하는 곳까지 72시간 안에 배송해주는 시스템이다. 구매한 상품은 중국 현지 보세창고에서 구매자에게 택배를하는 방식으로 중국관세를 물지 않아도 된다. 윤상범 ㈜알지비플러스제주 마케팅팀장은 “중국정부의 쇼핑 강요 저가여행 추방 정책 등에 부합하고 최근 면세한도 5000위안 이상(91만원 안팎) 구매 관광객에 대한 공항검색 강화로 중국 관광객들의 핸드캐리어가 어려워진 상황에 대처하는 새로운 쇼핑”이라고 말했다. 이런 쇼핑시스템 등장에 제주지역 면세점 등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L면세점 관계자는 “중국정부가 핸드캐리어 면세한도 단속을 강화하는 추세여서 보세국제전시관이 국내 면세점보다 영업이 다소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이 같은 쇼핑 방식은 상품의 진위 여부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거람 김반석 개인전 ‘글그림? 한글! 품다’

    거람 김반석 개인전 ‘글그림? 한글! 품다’

    한글날을 맞아 한글로 우리 전통과 선비정신을 한국화로 풀어낸 ‘글그림? 한글! 품다’ 전이 열려 눈길을 끌고 있다. 미술전문잡지 ‘미술세계’가 기획한 거람 김반석 개인전이 7일 개막되어 오는 13일까지 서울 인사동4거리 미술세계 빌딩 5층에서 열린다.  경남 울주군 치술령 자락에서 24년째 작업을 해온 작가는 사물의 형상을 추상적인 한글로 풀기도 하고, 한국의 전통을 자유롭게 해석하기도 한다. 장지에 자연 채색의 한국화 느낌을 담은 ‘꿈’ ‘절’ ‘밝음’ ‘나비 꽃’ 등은 작가의 말 대로 “언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상징을 시각화”한 것이다. 추사의 세한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 그의 작품은 ‘장욱진 풍’의 간결미와 검은 먹 선이 주는 절제미를 최대한 살리고 있다. 작가 김반석은 은행원 출신으로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초야의 비주류 화가이다. 스스로 주변부에서 맴도는 그림쟁이라고 일컫는 그의 작품은 언제나 정신이 자유롭고 꾸밈이 없는 순수한 열정이 묻어나고 있다. 이경형 기자 iseoul@seoul.co.kr
  •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추사 김정희·화가 이중섭 그들이 남긴 예술의 숨결 지근거리서 찾아보세요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추사 김정희·화가 이중섭 그들이 남긴 예술의 숨결 지근거리서 찾아보세요

    외지인이지만 제주에서 원주민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 두 사람이 있다. 추사 김정희(1786~1856)와 화가 이중섭(1916~1956)이다. 추사는 유배를 왔고 이중섭은 전쟁을 피해 잠시 서귀포에서 피란살이를 했다. 추사는 제주 유배생활에서 걸작 세한도를 남겼고 추사체를 완성했다. 이중섭은 끼니조차 힘들었던 궁핍한 피란살이 속에도 칠십리 서귀포를 탐미했다. 제주 섬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배지다. 500년 동안 200여명이 유배됐고 추사는 서귀포시 대정읍 인성리 작은 시골마을에서 9년간 나 홀로 고독한 유배생활을 했다. 추사가 거닐던 유배지 주변은 추사 유배길로 재탄생, 추사의 집념과 예술혼을 느낄 수 있는 명소가 됐다. 추사 유배 1길은 인성리 추사 유배지를 중심으로 추사기념관, 정난주 마리아 묘, 대정향교를 거쳐 다시 추사 유배지로 돌아오는 8㎞의 순환코스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제주추사관은 이곳에서 유배 생활한 추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관으로 걸작 세한도를 본떠 지었다. 추사가 머물렀던 초가집도 복원했다. 추사 2길은 추사의 한시, 편지, 차 등을 통해 추사의 인연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추사 유배지에서 시작해 오설록 녹차밭까지 이어지는 8㎞의 코스로 3시간이 소요된다. 추사 3길인 사색의 길에선 산방산과 안덕계곡을 따라 서귀포 바다와 오름, 계곡의 풍광을 즐길수 있다. 이중섭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 후퇴 때 고향인 평남 평원군을 떠나 부산에 잠시 머물다가 서귀포로 피란 왔다. 칠십리 앞바다 섶섬이 보이는 초가집 한 평 남짓한 셋방에서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1년여 고달픈 피란살이를 하다 그해 12월 이중섭은 서귀포를 떠났다. 서귀포는 이중섭과의 짧았지만 소중한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1997년 그가 살았던 옛 삼일극장 일대를 ‘이중섭거리’로 이름 짓고 이중섭이 세 들어 살던 초가집을 복원했다. 2002년 11월 초가집 바로 옆에 이중섭미술관을 세웠다. 내년은 이중섭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된다. 서귀포시는 이를 기념해 창작 오페레타를 제작하는 등 행사를 성대하게 마련할 계획이다. 글 사진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면세한도 상향 탓?… 상반기 해외 사용 카드 사상최대

    올해 상반기 내국인이 해외에서 사용한 신용카드 결제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해외 출국자 수가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지난해 세법 개정으로 1인당 면세한도를 올린 게 소비 씀씀이를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 31일 한국은행 지급결제 통계에 따르면 내국인이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해외에서 사용한 신용카드 사용액은 하루 평균 28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7% 증가했다. 내국인의 해외 카드 사용액은 한은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최대치다. 신용카드 해외 사용액 증가율도 2010년 하반기 26.9% 이래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지난해 9월 정부는 해외에서 구입한 물품에 대한 면세 한도를 400달러에서 600달러로 높였다. 해외로의 출국자 수도 늘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내국인 출국자 수는 올해 상반기 915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0.2% 증가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공무원이 들려주는 공직이야기] (6)관세청

    [공무원이 들려주는 공직이야기] (6)관세청

    ‘공무원이 들려주는 공직 이야기’ 6회에서는 관세청 소속으로 부산본부 세관에서 일하고 있는 공무원을 소개한다. 이들의 업무를 살펴보고, 새내기 공무원에게 공직 적응기와 시험 준비 과정 등을 들어 봤다. 해외여행을 갔다가 입국할 때는 공항, 여객터미널 등에서 여행자 휴대품 신고서와 세관에 신고할 물품 목록을 작성해야 한다. 해외에서 구입하거나 국내외 면세점에서 산 물품이 모두 600달러를 초과하면 구입한 물품을 국내로 들여오는 데 대한 세금을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600달러 외에 주류 1병(1ℓ, 400달러 이하), 향수 60㎖, 담배 200개비는 면세로 구입할 수 있다. 이처럼 국내로 들여오는 물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업무는 관세청에서 담당하고 있다. 1878년 9월 부산 두모진에 해관이 설치되면서 시작된 관세 업무는 이후 인천해관, 원산해관 등이 잇따라 문을 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46년 당시 재무부 국고국 세관과를 시작으로 1970년 8월 관세청이 설립되면서 현재와 비슷한 업무 체계를 구축했다. 관세청의 주 업무는 수입되는 물품에 관세를 부과·징수해 국가재정 수입을 확보하고, 수출입물품의 통관 등이 적법하게 이뤄지도록 관리해 대외무역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다. 밀수 및 부정수출입 행위를 단속하고, 수출입물품의 원산지 표시 확인, 지적재산권 침해행위 단속 등도 관세청의 몫이다. 관세청은 정부대전청사에 위치한 본청과 서울세관 등 각 지역별 본부세관을 포함해 47개 세관, 5개 지소로 구성돼 있다. 본청은 통관지원과 조사감시, 기획총괄 등 각종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본부세관 등 지역별 세관이 실제 통관업무를 맡고 있다. 지난달 관세청 부산세관(본부세관)으로 임용된 강민지(30·여) 주무관은 현재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휴대품 검사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강 주무관은 지난해 국가직 9급 시험에 합격했다. 만 1년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준비기간이었지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한 공무원시험이라 부담이 컸다. 학습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지는 않았지만, 하루에 7~8시간을 공부하더라도 집중력을 발휘했고, 하루를 통째로 쉬는 일은 없었다. 그는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단 하루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그 방법이 나에게는 효과적이었다”고 말했다. 강 주무관은 현재 부산항 터미널 입국장에서 여객선을 타고 한국으로 들어오는 여행자 및 승무원의 휴대품을 검사·통관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해외여행을 갔다 돌아올 때 흔히 겪게 되는 일인 만큼 국민 생활에 밀접한 업무이기도 하다. 단순히 휴대품을 검사하는 것만이 아니라 마약류 등 안전을 위협하는 반입 불가 물품을 가려내고, 몸에 지니고 들어오는 각종 밀수품을 집어낸다. 명품시계 여러 개를 몸에 지닌 채 세관을 통과하거나 관세를 내지 않고 호주머니 등에 고가의 물품을 숨겨오는 행위를 적발하기도 한다. 특히 금이나 마약, 명품 등은 밀수 수법이 갈수록 다양해지는 추세여서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금괴를 옷걸이나 물건걸이로 위장해서 들여오거나 전자계산기, 노트북 등 전자제품 안에 넣어오는가 하면, 항문이나 입 안에 마약이나 금을 숨기는 괴이한 수법도 횡행하고 있다. 강 주무관은 “숨기고 들어오는 물품이 없는지 등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늘 긴장하면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면세 한도인 600달러를 초과한 물품을 가지고 들어오는 입국자를 대상으로 초과된 물품에 대해 과세처리를 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강 주무관은 “여행자, 승무원을 직접 대면하기 때문에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입국장에서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친절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휴대물품이나 면세한도를 넘는 물품을 몰래 반입하고도 큰소리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강 주무관이 가장 힘든 순간도 법을 어기고도 오히려 소란을 피우거나 반말을 내뱉는 등 몰지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대해야 할 때라고 한다. 그는 “다양한 여행자들을 접하면서 느낀 점은 모든 업무를 천편일률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는 사실”이라면서 “법을 준수할 수 있게끔 유도하고 설득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라고 소개했다. 세관은 강 주무관이 맡고 있는 감시 업무를 비롯해 통관, 심사, 조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수출입 화물을 검사하고 통관요건 등을 확인하며, 수입물품의 과세가격을 결정하고 관세를 징수·환급한다. 외환관련 법률 위반자나 밀수업자 등에 대한 조사 업무도 맡는다. 강 주무관이 소속된 부산세관은 우리나라 컨테이너 반출입화물의 76%를 맡고 있는 최대의 항만 세관이다. 통관·감시 등 각종 업무로 정신없이 바쁜 곳이다. 강 주무관은 “부산항의 경우 1970~80년대 일본을 통해 굉장히 많은 수입물품이 들어왔던 곳”이라면서 “지금도 배로 일본을 오가는 사람이 많아 승객이 몰리는 시간에는 집중해서 업무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강 주무관의 일상적인 업무시간은 ‘오전 8~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여객선의 입출항 시간에 맞춰 근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터미널에 처음 입항하는 여객선을 시작으로 마지막 여객선이 입항할 때까지가 근무시간인 셈이다. 또 설날이나 추석 등 명절을 비롯해 각종 연휴에도 터미널은 쉬지 않고, 여객선을 통해 오가는 사람이 끊이질 않기 때문에 근무조를 3개로 편성해 이틀 일한 뒤 하루를 쉰다. 그는 “정년보장 등 직업의 안정성만을 생각하고 공직에 도전한다면 후회할 수 있다”며 “특히 관세청의 경우 업무시간이 불규칙하고, 업무량도 민간기업에 버금갈 정도로 많다”고 전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新 국토기행] 제주 서귀포

    [新 국토기행] 제주 서귀포

    감귤과 올레길의 고장, 우리나라 최남단 항구 도시인 서귀포시는 아름다운 화산섬 제주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다. 연평균 17~18도의 따뜻한 기온, 그림 같이 펼쳐진 서귀포 칠십리 해안, 천재화가 이중섭의 예술혼이 살아 있는 곳. 서귀포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문화가 넘쳐 난다. 전국에 걷기 열풍을 몰고 왔던 제주 올레길이 처음 시작한 곳도 서귀포다. 사시사철 올레꾼들의 꼬닥꼬닥 발자국 소리가 이어지고 들판을 가득 메운 노란 감귤밭은 서귀포의 풍요를 말해 준다. 요즘 서귀포에는 중국인들로 넘쳐 난다. 중문관광단지 면세점에는 중국인 쇼핑 관광객이 줄을 잇고 올레길에도 중국어 소리가 왁자지껄 들린다. 과거 남제주군에 속했던 서귀포시는 서귀포항을 중심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1981년 자치시로 승격했다가 2006년 7월 고도의 자치권을 가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남제주군과 통합해 행정시로 바뀌었다. 서호동에는 제주 혁신도시가 들어섰고 서귀포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중산간 이곳저곳에는 중국자본의 대규모 휴양단지 건설사업이 한창이다. [볼거리] ●외돌개~월평포구로 이어진 올레 7코스… 중국 관광객도 북적 제주의 올레길 가운데 올레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서귀포 7코스다. 외돌개를 출발해 법환포구를 거쳐 월평포구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해안올레는 사시사철 올레꾼들이 넘쳐 난다. 올레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자연생태길인 ‘수봉로’가 유명하다. 7코스 개척 시기인 2007년 12월, 올레지기인 김수봉이 염소가 다니던 길에 직접 삽과 곡괭이만으로 계단과 길을 만들어서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한 길이다. 2009년 2월에는 그동안 너무 험해 갈 수 없었던 두머니물~서건도 해안 구간을 일일이 손으로 돌을 고르는 작업 끝에 새로운 바닷길로 만들어 이어, ‘일강정 바당올레’로 이름 지었다. 7코스는 14.2㎞로 4~5시간이 걸린다. 올레꾼들이 7코스에만 몰리는 바람에 호젓한 올레길의 멋은 사라져 가고 있지만 올레길 앞에 펼쳐지는 푸른 서귀포 앞바다의 풍광은 장관이다. 최근에는 중국인들도 즐겨 찾는 올레길이다. ●천재화가의 예술혼 살아 있는 ‘이중섭 미술관’ 이중섭(1916~1956)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 후퇴 때 고향인 평남 평원군을 떠나 부산에 잠시 머물다가 서귀포로 피란을 왔다. 서귀포 앞바다 섶섬이 보이는 초가집 한 평 남짓한 셋방에서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1년여 고달픈 피란살이를 하다 그해 12월 이중섭은 서귀포를 떠났다. 서귀포는 이중섭과의 짧았지만 소중한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1997년 그가 살았던 옛 삼일극장 일대를 ‘이중섭거리’로 이름 짓고 이중섭이 세 들어 살던 초가집을 복원했다. 2002년 11월에는 그가 피란살이를 했던 초가집 바로 옆에 이중섭미술관을 세웠다. 2012년 11월에는 일본에 거주 중인 이중섭의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94·한국명 이남덕)가 서귀포를 직접 찾아와 이중섭의 유품인 팔레트를 기증했다. 야마모토는 이중섭으로부터 사랑의 징표로 받았던 팔레트를 70여년간 고이 간직하다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서귀포시민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았다. ●추사체·세한도 남긴 초가집 복원… 역사의 흔적 쫓는 ‘추사 유배길’ 올레길이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속살을 보여 준다면 유배길은 유배 문화에 빠져 볼 수 있는 역사의 길이다. 조선시대 제주 섬은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500년 동안 200여명이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제주에서 추사체를 완성했고 걸작 세한도를 남겼다. 추사 유배 1길은 대정읍 인성리 추사 유배지를 중심으로 추사기념관, 정난주 마리아 묘, 대정향교를 거쳐 다시 추사 유배지로 돌아오는 8㎞의 순환코스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제주추사관은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한 추사 김정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관이다. 그의 걸작 세한도를 본떠 지어졌다. 추사가 머물렀던 , 강도순의 제주 초가집은 복원돼 있다. 추사 김정희는 이곳 한 평 남짓한 비좁은 방에서 추사체를 완성했고 세한도를 그렸다. 추사 2길에선 추사의 한시, 편지, 차 등을 통해 추사의 인연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추사 유배지에서 시작해 오설록 녹차밭까지 이어지는 8㎞의 코스로 3시간이 소요된다. 추사 3길인 사색의 길에선 산방산과 안덕계곡을 따라 제주의 바다, 오름, 계곡의 풍광을 느낄 수 있다. 대정향교에서 시작, 산방산을 거쳐 안덕계곡까지 이어지는 10㎞에 4시간 정도 걸린다. ●서귀포서 한라산 오를 수 있는 유일한 등산로 ‘돈내코 탐방로’ 돈내코 탐방로는 서귀포에서 한라산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등산로다. 돈내코 유원지 상류에 있는 탐방안내소(해발 500m)를 출발해 평궤대피소(해발 1450m)를 지나 한라산 남벽 분기점(해발 1600m)까지 이어지는 7㎞ 탐방로다. 편도 3시간 30분 소요된다. 평궤에서 남벽 분기점까지는 거의 평탄 지형으로 한라산 백록담 화구벽의 웅장한 자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돈내코 탐방로는 동백나무, 사스레피나무 등 상록 활엽수림과 단풍나무, 서어나무 등 낙엽 활엽수림과 구상나무, 시로미 등 한대수림이 수직적으로 분포, 기후변화에 따른 식물 변화상을 관찰할 수 있다. 평궤에서 남벽 분기점 일대는 한라산 백록담의 현무암이 넓게 분포해 있고 소규모의 용암 동굴과 한라산 백록담 조면암의 라바돔(용암 언덕)을 가장 멋있게 조망할 수 있다. 윗세오름과 연결된 남벽 순환로를 따라가면 어리목과 영실로 하산도 가능하다. ●제주 전통 배 ‘태우’ 형상화한 새연교… 화려한 조명에 야간 관광명소 서귀포항 바로 앞 작은 새섬은 본래 썰물 때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지만 2009년 9월 새연교가 놓이면서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서귀포항과 새섬을 연결하는 길이 169m, 높이 45m 새연교는 제주의 전통 배인 ‘태우’를 형상화했다. 새연교를 건너 새섬을 한 바퀴 도는 1.2㎞ 산책로는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서귀포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라는 의미를 담은 새연교는 일출부터 밤 10시까지 개방한다. 새연교는 국내에서는 최초로 외줄 케이블 형식을 도입한 사장교로, 바람과 돛을 형상화한 주탑에 화려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시설까지 갖춰 야간에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야간 관광명소로 인기가 높다. ●민물·바닷물의 어울림 ‘쇠소깍’… 깊은 수심·기암괴석·소나무숲 조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인 쇠소깍은 하효동과 남원읍 하례리 사이를 흐르는 효돈천 하구로 제주 현무암 지하를 흐르는 물이 분출해 바닷물과 만나 깊은 웅덩이를 형성한 곳이다.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의 연못’이라는 뜻의 ‘쇠소’에 마지막을 의미하는 ‘깍’이 더해진 제주 방언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어울리는 빛깔은 유난히 푸르고 맑다. 깊은 속을 그대로 비추는 계곡 바위 틈으로 썰물 때면 솟아오르는 지하수의 신기한 경관도 바라볼 수 있다. 쇠소깍은 서귀포 칠십리에 숨은 비경 중 하나로 깊은 수심과 용암으로 이뤄진 기암괴석과 소나무숲이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쇠소깍이 위치한 하효동은 한라산 남쪽 앞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 감귤의 주산지로 유명한데 마을 곳곳에서 향긋한 감귤 냄새가 난다. ●제주 368개 오름 중 최고 ‘따라비오름’… 가을엔 은빛 억새물결 장관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따라비오름(기생화산)은 말굽 형태로 터진 3개의 분화구를 중심에 두고 좌우 2곳의 말굽형 분화구가 쌍으로 맞물려 3개의 원형분화구와 6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 화산 폭발 시 용암이 오름의 아름다운 능선을 창조해 제주의 368개 오름 가운데 ‘오름의 여왕’으로 불린다. 북쪽에 새끼오름, 동쪽에 모지오름과 장자오름이 있어 가장 격이라 해 ‘딸 애비’라고 불리던 게 ‘따래비’로 불리게 됐다고 전해진다. 높이 342m, 둘레 2633m인 따라비오름은 해마다 가을이면 억새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해 질 녘 가을 햇빛에 출렁이는 은빛 억새 물결은 장관이다. 인근의 갑마장길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갑마장길은 조선시대 궁중에 진상하는 최고급 말인 갑마를 사육했던 국영목장인 갑마장에 나 있는 길로 광활한 초원과 억새밭, 따라비오름 등에 걸쳐 있다. 제주 조랑말의 생태와 목동인 말테우리의 삶, 제주마와 관련된 유물 등 100여점이 전시된 조랑말 박물관도 볼거리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먹거리] ●제주 여름 대표 음식 ‘자리물회’ 제주에서는 서귀포 보목리 앞바다에서 잡은 자리돔을 최고로 쳐 준다. 자리돔을 뼈째로 썰어 채소와 함께 토장 등으로 양념한 후 시원한 물을 부어 먹는 자리물회는 제주 여름 음식의 대명사다. 자리돔은 보리가 익을 무렵인 5월이 가장 맛있다. 자리물회는 자리돔의 비늘을 긁어내고 머리와 지느러미 내장을 제거하고 썰어서 식초를 약간 뿌려 둔다. 상추, 깻잎 등의 채소들은 잘게 썰고 오이는 채를 썬다. 토장과 다진 마늘 등 양념을 넣고 무친 후 찬물을 부어 먹는데 제피나무의 잎을 약간 넣으면 향도 좋고 비린내도 가신다. 자리돔에 있는 양질의 단백질과 신선한 채소가 가진 각종 비타민을 동시에 섭취할 수 있어 무더위로 잃어버린 입맛을 돋우는 데 뛰어나다. 자리돔은 바로 소금에 절여서 젓으로 담그기도 하고, 구이로 먹기도 한다. ●겨울 제주의 진미 ‘방어회’ 방어는 전갱이과에 딸린 바닷물고기로 몸길이는 1m쯤이고, 몸 색깔은 등 쪽이 회색을 띤 푸른색이며, 배 쪽은 은백색이다. 주둥이에서 꼬리지느러미까지 세로로 그어진 노란 줄이 있다. 최남단 마라도 인근 바다에서 잡아 올린 방어를 최고로 친다. 마라도 바다는 물살이 세기로 유명해 이곳에서 사는 방어는 몸집이 크고 살이 단단하다. 방어회는 겨울철 제주의 진미다. 뱃살에 기름이 잔뜩 오른 방어는 참치가 부럽지 않다. 간장이나 초장, 쌈 된장과도 모두 잘 어울리며 제주 사람들은 신 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기름진 방어와 신 김치는 궁합이 잘 맞는다. 회를 뜬 방어 머리를 구워 낸 머리 구이와 방어뼈를 넣고 끓인 방어 김치찌개도 별미다. 해마다 겨울이면 모슬포항에서 방어잡이 방어축제가 열린다. 무게에 따라 2㎏ 내외는 소방어, 4㎏ 이하는 중방어, 5㎏ 이상은 대방어로 쳐준다. 대방어일수록 회 맛이 더 뛰어나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9팀 9색’ 창작 춤 향연

    ‘9팀 9색’ 창작 춤 향연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한국 춤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리 전통 춤을 바탕으로 안무한 창작 춤 경연대회를 펼친다. 다음달 2~10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열리는 한국 무용인들의 대축제 ‘제29회 한국무용제전’에서다. 이번 제전은 광복 70주년을 맞아 ‘아리랑 아홉 고개’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국내 무용단체 9개 팀이 각각 아리랑을 주제로 9가지 색깔의 작품을 선보인다. 행사를 주최하는 한국춤협회 백현순 이사장은 “아리랑 고개를 한 고개 한 고개 넘을 때마다 그 속에 담긴 우리의 이야기를 광복 70주년의 기쁨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경연 첫 주자는 리을 무용단이다.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에서 비롯되는 내면적 갈등을 그린 ‘바라기Ⅳ-웃음에 관한 천착’을 들고 나온다. 성재형 SSUM 무용단의 ‘그립고 그리운 아리랑’, 박덕상타무천 예술단의 ‘세한도’, 김용철 섶 무용단의 ‘콜링’(Calling), 백정희무동단의 ‘와락’, 임학선 댄스위의 ‘마녀사냥’, 김남용무용단의 ‘진달래꽃’, 김기화무용단의 ‘독도며느리’, 윤덕경무용단의 ‘싸이클’이 뒤를 잇는다. 공연 뒤 전문평가단과 관객평가단의 심사를 통해 최우수작품과 우수작품을 선정한다. 수상 단체는 상금과 함께 해외 무용페스티벌에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개·폐막 공연은 지난해 제전에서 수상한 무용단과 해외 초청 단체들이 꾸민다. 2일 개막공연엔 지난해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윤수미 무용단의 ‘나비잠Ⅱ’, 인도네시아 댄스 래보래토리의 ‘레공 케라톤’, 말레이시아 아스와라 댄스 컴퍼니의 ‘멩가답 리밥’ 등이 무대에 오른다. 10일 폐막 공연엔 지난해 우수상을 받은 김미숙 하나무용단의 ‘아름답거나 혹은 슬픈’, 창무회(안무 김지영)의 ‘살-아리’, 위안부 사건을 소재로 한 중국 동북청년무용단의 ‘안전구역’ 등이 관객들을 찾아간다. 백 이사장은 “우리 춤은 한국인의 정신을 담고 있다”며 “케이팝 등 한류 문화가 세계 속에 각광받고 있는 요즘 한국 춤은 새로운 한류 바람을 일으킬 좋은 소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기고] 소나무 지키기에 시민의 동참을/이강덕 포항시장

    [기고] 소나무 지키기에 시민의 동참을/이강덕 포항시장

    우리 국토의 64%는 산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4분의1이 소나무 숲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와 같은 옛 산수화에서 소나무가 없는 그림은 볼 수 없을 정도다. 소나무는 임진왜란 때 거북선의 재료로, 불타 버린 숭례문 복원의 재료로, 조상 대대로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민족과 함께해 온 대표 수종이다. 또 애국가에 등장해 한민족의 기상을 상징하며 경제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포항시의 소나무 숲은 1970년대 포항·영일 지구에서 추진됐던 대규모 사방사업으로 조성된 것으로 더욱 울창하게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국가적 자원이 됐다. 그러나 급격한 기후변화로 소나무재선충병 매개충의 발생 환경이 좋아지면서 재선충병이 창궐해 우리의 푸르고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죽어 가고 있다. 소나무가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애국가의 가사가 소나무가 아닌 다른 나무로 바뀔지도 모른다. 재선충의 경우 발생 초기에 예산과 인력을 집중 투입해 잡지 못하면 일본의 경우처럼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되고 나중에 아무리 많은 방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도 실패한다는 교훈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소는 잃고 다시 사면되지만, 소나무를 잃는다면 민족의 정서가 담긴 대신할 나무가 없다. 선조가 남겨 준 소중한 자산인 소나무 숲을 우리 세대에서 지키지 못하면 무슨 면목으로 후대에 이야기할 것인가. 지금 이 시점이 우리의 소나무를 지켜 나가야 할 때다. 하지만 아직까지 재선충 백신이나 저항 품종이 개발되지 못해 현재로서는 이를 완벽하게 박멸할 방법은 없다. 따라서 재선충병 감염을 예방하고 확산을 막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정부에서는 2005년 재선충병 방제 특별법을 제정, 방제사업을 펼친 결과 2010년까지는 피해목 증가 추세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2011년 이후 기상이변으로 고온건조한 날씨가 지속되면서 매개충의 생육환경이 좋아져 개체수가 증가하고, 재선충병으로 인한 소나무 고사목도 급속도로 확산돼 우리 국토 전역이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자연적인 확산 요인보다는 인위적인 요인이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묘지나 농경지에 해가림이 된다는 이유 등으로 산속의 소나무를 베어 내고 방제처리 없이 산속에 방치해 두는 등 산주를 비롯한 우리의 무관심으로 재선충병 재발생률은 낮아지지 않고 있다. 포항시에서는 매개충이 활동하는 4월 이전에 고사목을 제거하고, 피해목의 불법적인 이동을 막아 재선충병 확산을 저지하며, 향후 수년간 지속적인 산림 관리를 통해 소나무 재선충병 발생률을 점진적으로 낮출 계획이다. 재선충병은 국가적 재난으로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재정자립도가 높지 않은 일선 시·군에서 재선충 방제에 많은 예산을 배정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재선충병 방제 사업에 우리 국민 모두의 역량을 결집해 아름답고 푸른 국토를 보전하고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과제다. 53만 포항 시민 모두의 동참과 협조를 당부드린다.
  • [명인·명물을 찾아서] 제주섬 굽이굽이 길에 서린 진한 삶의 향기를 느끼다

    [명인·명물을 찾아서] 제주섬 굽이굽이 길에 서린 진한 삶의 향기를 느끼다

    제주 올레길이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속살을 보여 준다면 제주 유배길은 유배 문화에 빠져 볼 수 있는 역사의 길이다. 조선시대 제주 섬은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500년 동안 200여명이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한번 가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절망의 제주 유배길, 치열한 당파 싸움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패배 역사가 유배다. 하지만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유배된 제주에서 추사체를 완성했고 걸작 세한도를 남겼다. 추사에게 제주 유배는 패배의 시간이 아니라 완성과 창조의 시간이었다. 당대 내로라하는 인물들의 유배 흔적을 찾아가는 제주 유배길은 제주 올레길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제주 유배길은 추사 유배길과 제주성안 유배길, 면암 유배길 등 세 곳이 있다. 추사 김정희를 찾아가는 추사 유배길은 제주의 대표 유배길이다. 추사 김정희는 헌종 6년(1840) 9월 당시 정치권력이었던 안동 김씨의 음모에 의해 제주에 유배된다. 군신 사이를 이간질한다고 능지처참을 당한 윤상도와 그 아들의 상소문을 추사가 작성했다고 안동 김씨 세력이 주장하면서 유배돼 헌종 14년(1848) 12월까지 8년 3개월 동안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추사 김정희는 70 평생 벼루 10개를 갈아 닳게 했고 1000자루의 붓을 다 닳게 했다고 한다. 추사 유배길은 그의 집념을 엿볼 수 있는 길이다. 추사 유배 1길은 제주 대정읍 인성리 추사 유배지를 중심으로 추사기념관, 정난주 마리아 묘, 대정향교를 거쳐 다시 추사 유배지로 돌아오는 8㎞의 순환코스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제주추사관은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한 추사 김정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관이다. 그의 걸작 세한도를 본떠 지어졌다. 제주 유배 생활에서 추사가 쓴 글씨와 그림 등이 전시돼 있어 추사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제주에 와 추사가 머물렀던 추사 유배집 강도순의 제주 초가집은 복원돼 있다. 추사 김정희는 이곳 한 평 남짓한 비좁은 방에서 추사체를 완성했고 세한도를 그렸다. 추사가 매일 바라봤던 박쥐가 날개를 편 모습인 바굼지 오름(단산)도 볼거리다. 추사 2길에선 추사의 한시, 편지, 차 등을 통해 추사의 인연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추사 유배지에서 시작해 오설록 녹차밭까지 이어지는 8㎞의 코스로 3시간이 소요된다. 제주 전통 옹기를 만들었던 도요지가 있어 제주의 옹기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추사 3길인 사색의 길에선 산방산과 안덕계곡을 따라 제주의 바다, 오름, 계곡의 풍광을 느낄 수 있다. 대정향교에서 시작, 산방산을 거쳐 안덕계곡까지 이어지는 10㎞에 4시간 정도 걸린다. 제주시내 구도심에는 제주성안 유배길이 있다. 옛 제주성을 중심으로 유배인들의 유적지를 둘러보는 성안 유배길은 제주목 관아에서 시작해 유배지를 거쳐 다시 제주목 관아로 돌아오는 3㎞ 순환코스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제주목 관아는 탐라국에서부터 조선시대까지 제주의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지였다. 유배인이 제주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이 제주목 관아였다. 광해군, 우암 송시열, 추사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인사들도 이곳에 들러 일개 제주목사에게 자신의 당도를 아뢰어야만 했다. 당장은 유배인이지만 정치범인 이들은 다시 중앙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할 가능성이 있어 제주목사는 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반면 제주목사와의 잘못된 인연은 유배의 고통을 더했다. 정조 때 유배인 조정철은 원수 집안 사람인 김시구가 제주목사로 내려오면서 험난한 유배 생활을 했다. 그를 돌봐 주었던 제주 여인 홍윤애는 목숨을 잃었고 훗날 유배에서 풀려난 조정철은 제주목사로 부임해 그녀의 묘를 돌보며 안타까워했다. 성안 유배길에서는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위에 반대하다 제주에 유배돼 5년을 지낸 간옹 이익(?~?),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상소했다가 탄핵된 면암 최익현(1833~1906)의 유배 흔적도 만날 수 있다. 왕세자 책봉을 반대했다가 숙종의 노여움을 사 1689년(숙종 15년) 83세 고령의 나이로 제주에 유배된 우암 송시열(1607~1689), 제주 유배인 가운데 유일하게 왕이었던 광해군(1575~1641)은 5년의 유배살이 끝에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제주의 마지막 유배인인 3·1만세운동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남강 이승훈(1864~1930)의 제주 유배 이야기도 전해진다. 조선 선비의 마지막 자존심 면암 최익현이 걸었던 면암 유배길은 제주시 오라동 연미마을에서 조설대~정실마을을 거쳐 방선문에 이르는 5.5㎞의 코스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1873년 11월 제주 유배길에 오른 면암 최익현은 제주목 관아 부근에 있던 아전 윤규환의 집에서 유배 생활에 들어간다. 면암 최익현은 1875년 3월 제주에 온 지 1년 3개월 만에 유배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되지만 곧바로 돌아가지 않고 한라산에 오른다. 제주성 남문에서 출발해 방선문을 거쳐 지금의 관음사 코스인 탐라계곡~개미목~삼각봉~용진각으로 백록담에 올랐다. 그는 한라산에 오르면서 들른 방선문 계곡과 백록담, 영실, 오백 장군 등을 구경한 소감을 ‘유한라산기’에 기록해 놓았다. 영주 십경의 하나인 방선문 마애명에는 면암 최익현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그가 유배 당시 이곳에 왔음을 보여 준다. 제주 유배길을 개설하고 이야기를 더한 스토리텔링연구센터 소장 양진건 제주대 교수는 “유배라는 고난의 시기에도 자신을 다스리며 삶의 큰 발자취를 남긴 유배인에게 유배는 자신의 신념을 찾아가는 여행이기도 했을 것”이라며 “제주 유배길에서는 그들의 진한 삶의 향기를 느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심사평] 낡은 관념을 벗은 낯선 감성, 판을 흔들다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심사평] 낡은 관념을 벗은 낯선 감성, 판을 흔들다

    낯섦과 새로움, 이는 신춘문예에 거는 기댓값의 졸가리다. 낯선 감성과 새로운 감각만이 의식을 뒤흔드는 정서의 충격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낡은 관념을 벗고 일상성을 뛰어넘는 자기갱신이 필요하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나 소녀가장의 아픈 삶을 다룬 작품에서부터 생존의 상처와 자연 풍경을 결속하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 소재나 주제도 퍽 다양 다기했다. 특기할 것은 역사 속 인물의 명암을 좇아 그것을 현실 언어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걸러낸 작품들을 앞에 놓고 또 한 차례 꼲기가 이어졌다. 그런 뒤에 ‘연꽃, 피다’(박복영), ‘신(神)의 우주’(김경태), ‘바람을 읽다’(정황수), ‘비로자나불’(윤은주), ‘아침을 깁다’(송가영), ‘순천만 갈대밭’(김범렬), ‘수화의 풍경’(이윤훈), ‘푸른, 고서를 읽다’(박경희), ‘세한도를 읽다’(용창선) 등 아홉 편의 작품이 선자의 손에 남았다. 그중에서도 박경희와 용창선의 작품이 끝까지 으뜸의 자리를 다투었다. 두 편이 다 가멸찬 역사의 온축에서 시상을 캐고 있다. ‘푸른, 고서를 읽다’는 매우 안정된 호흡이 강점이지만, 그게 흠이기도 하다. 어딘가 긴장이 풀린 듯한, 미처 걷어내지 못한 타성의 그늘이 보이는 것이다. ‘세한도를 읽다’의 발화는 앞서 말한 신춘문예의 경향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나 같은 역사인식이더라도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낯선 접근방식이나 표현의 신선함은 그런 우려를 떨치고도 남는다. 작중의 추사를 온전히 자기화한, 그러면서 한 치의 허점도 보이지 않는 결구의 완결성이 특히 돋보였다. 문면에 선연한 ‘먹 가는 소리’와 ‘수묵의 갈필’이 마침내 ‘뼈마디 시퍼런 결기로 빈 들판에 홀로 서’게 하는 것이다. 그 갈필의 결기가 이 작품을 흔쾌히 당선작으로 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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