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세종대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전장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30년간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정확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동남아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282
  • 국회의원 김진태 “황희, 간통에 뇌물까지 받았는데 명재상”

    국회의원 김진태 “황희, 간통에 뇌물까지 받았는데 명재상”

    국회의원 김진태 “황희, 간통에 뇌물까지 받았는데 명재상” 국회의원 김진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22일 ‘성완종 파문’에 휘말린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의 표명에 대해 언론과 야당 등을 탓하며 ‘현대판 마녀사냥’, ‘참 의리도 없는 정치판’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이날 CBS, PBC 라디오에 잇따라 출연, 이 총리의 ‘낙마’ 사례를 거론하면서 “이것저것 다 뒤집어서 사소한 것부터 온갖 걸 다 쑤셔놓는데 점잖은 선비들이 이걸(총리를) 하려고 하겠나”라며 “이래서 우리가 인물을 키우지 못하고 오히려 씨를 말린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특히 “조선시대 명재상으로 추앙받는 황희 정승이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간통도 하고 무슨 참 온갖 부정청탁에 뇌물에 이런 일이 많았다는 건데 그래도 세종대왕이 이분을 다 감싸고 해서 명재상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것도 곡해해서 ‘온갖 못된 걸 다 하는 사람이 총리가 되느냐’ 이런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의 됨됨이, 사소한 과오 같은 걸 덮고도 큰 걸 보고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주장은 이 총리에 대한 의혹이 덮고 넘어갈 만한 ‘흠결’에 불과하다는 주장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진태 의원 “이완구 총리는 선비…정치판 의리 없어”

    김진태 의원 “이완구 총리는 선비…정치판 의리 없어”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의 표명을 놓고 “현대판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했다. 김진태 의원은 22일 평화방송(PBC)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윤재선입니다’와 한 인터뷰에서 “선비를 모셔서 그 분이 정말 목숨까지 걸고도 아니라고 했는데도 정말 세상은 너무나 잔인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진태 의원은 새누리당 내 분위기가 자진 사퇴로 기울면서 이완구 총리의 사의 표명으로 이어진 과정에 대해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고 조만간 결론이 나오는데 그새 여론이 나빠지니까 이걸 버티지 못하고 ‘나중에 어떻게 됐든 간에 이렇게까지 의심을 받고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까 당을 위해서, 정부를 위해서 물러나줘라’ 이런 기류가 형성된 것”이라며 “정말 참으로 의리도 없는 정치판”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이완구 총리 사퇴가 ‘성완종 게이트’의 시작이라는 야당 주장에 대해서는 “오히려 이완구씨는 본인이 여태까지 결백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이제 결백을 입증하기 위한 새로운 시작”이라며 “이완구 총리가 사퇴하니까 야당에서는 김이 빠진 모양”이라고 반박했다. 김진태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도 나와 이완구 총리의 사의 표명으로 박근혜 정부의 총리 수난사가 이어지는 것을 두고 “인사청문회 때문에 여러 명이 낙마됐다”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야당이 있는 한 총리 후보를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으로 하기 전에는 아마 계속 반대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조선 시대 명재상으로 추앙받는 황희 정승이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간통도 하고 온갖 부정 청탁과 뇌물(수수) 같은 이런 일이 많았지만 세종대왕이 이 분을 다 감싸서 명재상을 만들었다”며 “어떤 사람의 됨됨이, 사소한 과오 같은 걸 덮고도 큰 걸 보고 정치적인 결단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진태 의원은 ‘이완구 총리가 국회의원 직도 내려놔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는 질문에 “그런 주장도 있느냐.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그러면 한명숙 의원, 박지원 의원 다 같이 사퇴하면 되겠다. 기소돼 재판만 시작되면 (국회의원직을) 다 같이 내려놓는 걸로 하자”고 말했다. 그는 “한명숙 의원은 뇌물 9억원을 받고 재판 중이고, 박지원 의원은 8000만원을 받아 알선수재로 재판 중”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한편 앞서 20일(현지시간) 중남미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이완구 총리 사의 표명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21일 “고뇌에 찬 결단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도 참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현장 블로그] 경찰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현장 블로그] 경찰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지난 16일 늦은 밤부터 서울 종로구 광화문 누각 앞에서 진상규명과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 폐지 등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을 하던 세월호 유족 일부가 경찰에 연행된 건 18일 오후였습니다. 같은 시각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에 참석하던 시민들에게 소식이 전해졌고, 시위대는 광화문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미 경력 1만 3700여명과 차량 470여대, 안전펜스 등을 준비해놓은 경찰은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저지선을 두고 시위대와 대치 끝에 캡사이신 최루액과 물대포를 발사했습니다. 물대포 세례도 고통스러웠지만, 유가족 등 시위 참가자들의 분노를 끓어오르게 한 건 현장 경찰지휘관의 황당한 발언 때문이었습니다. 경찰 측 확성기에서 “우리 경찰 잘하고 있습니다”,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캡사이신을 쏠 때는 “당당히 쏘세요”라는 방송까지 나왔습니다. 급기야 “(행진을 멈추고) 이제 사랑하는 가족 품으로 돌아가세요”라는 방송까지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금쪽같은 자식들을 잃은 유가족의 가슴에 못을 박는 한마디였습니다. 시위대가 흥분한 건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는 “유족들도 현장에 버젓이 있었는데, 가족 품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경찰이 집회 해산 때 으레 하던 말이지만, 세월호 참사 1주년 추모제라는 점을 감안했어야 합니다. 경박한 발언을 한 장본인은 종로경찰서 이규환 경비과장(경정).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도 20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경솔한 발언이었다”며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사달이 벌어졌습니다. 장애인의 날인 이날 차별 철폐를 외치며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을 행진하던 장애인들 앞에선 이 과장은 현장에 배치된 기동대를 향해 “오늘은 장애인들의 ‘생일 같은 날’이니 차분히 대응하라”고 수차례 말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장애인 비하 발언’이라며 격앙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장애인을 존중하고 배려해 집회권을 충분히 보장하라는 취지의 발언”이라고 수습에 나섰지만, 장애인들의 가슴에는 이미 ‘대못’이 박힌 뒤였습니다. 물론 특정 경찰간부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축소해석하는 일은 경계해야 합니다.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집회에 대해 강경 대응을 하도록 부추긴 경찰 지도부 또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경찰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시민들의 분노만 커지고 있습니다. 오세진 사회부 기자 5sjin@seoul.co.kr
  • 항공운항학과 지원 전략 살펴보니

    항공운항학과 지원 전략 살펴보니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동안 국제항공 여객시장은 매년 5%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항공업계는 향후 2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53만 3000명에 달하는 조종사 일자리가 쏟아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 2014년 기준 조종사 수는 5300명으로 5년 전보다 40% 이상 증가했다. 항공사들은 올해도 조종사 채용 규모를 전년 대비 최고 50% 이상 늘려 잡고 있다. 취업 전망이 밝은 항공기 조종사를 배출하는 항공운항학과의 지원전략을 20일 알아봤다. 전국 4년제 대학 가운데 항공운항학과를 운영하는 곳은 경운대·극동대·중원대·청주대·초당대·한국교통대·한국항공대·한서대 등이다. 이 외에 영남대는 인문자율전공학부 항공운항계열, 세종대는 항공시스템공학과에서 예비 공군 조종사를 배출한다. 해당 학과에 입학한 뒤 조종사가 되는 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공군과 협약을 통해 군 복무를 하고 사회에 진출하는 방법과 민간항공사와 협약해 항공사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고 해당 항공사에 취업하는 길이다. 취업하면 비교적 고액 연봉으로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지만 입학 과정에 있어 학업 성적뿐 아니라 까다로운 신체검사도 거쳐야 한다. 따라서 목표를 세우기 전 해당 학과의 신체 조건에 부합하는지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미리 받아 보는 것은 필수다. 입학이 끝이 아니다. 입학 뒤에도 조종사가 되기 위한 다양한 커리큘럼을 이수해야 한다. 먼저 조종사들은 세계 표준 언어라 할 수 있는 영어에 능통해야 하므로 일정 수준의 영어 실력이 요구된다. 또 항공학에 대한 기초 이론 과정뿐 아니라 항공기 조종에 필요한 실습수업이 이뤄진다. 조종사의 작은 실수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평소 차분하고 꼼꼼한 성격은 필수 덕목이며,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신속·정확하게 대처할 수 있는 판단력과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는 책임감도 키워야 한다. 취업률이 높고 사회적 수요가 많은 유망 학과인 만큼 타 학과에 비해 경쟁률과 성적이 높은 편이다. 개설 대학은 지방 소재의 대학이 많지만 학과의 특성상 합격선이 타 학과에 비해 높게 형성돼 있다. 수시모집으로 뽑는 대학의 경우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있으므로 지원하려는 수험생은 최저학력기준에 본인의 성적이 부합하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는 “항공운항과는 전망이 매우 밝지만 입학 후 적성에 맞지 않으면 다른 분야로 진출이 어렵게 때문에 입학 전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깊이 고민해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경찰 “세월호 추모 집회 변질…주동자 전원 사법처리 계획” 방침

    경찰 “세월호 추모 집회 변질…주동자 전원 사법처리 계획” 방침

    경찰 “세월호 추모 집회 변질…주동자 전원 사법처리 계획” 방침 세월호 추모 집회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18일 세월호 추모 집회가 열린 가운데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과의 충돌 사태에 대해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경찰청은 19일 브리핑을 갖고 지난 18일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 이후 광화문 일대에서 빚어진 집회에 대해 ‘4·18 불법·폭력 집회’라고 지칭하고 “시위 주동자와 극렬 행위자들을 끝까지 추적해 전원 사법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를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나머지 15개 지방경찰청에도 수사전담반을 편성하기로 했다. 경찰은 “집회 현장에서 경찰관과 의무경찰이 다수 다치고 경찰버스 등 장비가 파손됐다”며 주최 측인 세월호 국민대책회의에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방침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시위 사태로 의경 3명이 귀, 머리 등이 찢어지거나 의식을 잃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지는 등 경찰 74명이 다쳤다. 아울러 경찰 차량 71대가 파손됐고 채증용 캠코더와 무전기 등 경찰장비 368개가 집회 참가자들에게 빼앗기거나 망가진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은 경력 1만 3700여명과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한 차량 470여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시위대 저지선을 쳤다.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은 서울광장에서의 집회가 끝난 뒤 광화문 광장 방면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과 물대포를 대량으로 살포했고, 시위대 일부는 경찰 차량을 부수고 차량 안의 분말 소화기를 꺼내 뿌리거나, 유리창을 깨고 나서 밧줄을 걸어 잡아 당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뿐 아니라 유가족과 시민들도 병원으로 이송되는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경찰은 이날 집회 참가자 100명을 연행, 시내 경찰서로 분산 이송해 조사 중이다. 연행자 중 ‘유민아빠’ 김영오씨 등 유가족은 20명이며, 고교생 5명은 훈방 조치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주동자 처벌” vs “무차별 진압”… 상처뿐인 추모 집회

    “주동자 처벌” vs “무차별 진압”… 상처뿐인 추모 집회

    세월호 참사 1주년 후 열린 범국민대회 참가자 100명을 연행하며 강경 대응에 나선 경찰이 주동자 사법 처리와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의사를 분명히 했다. 경찰은 시위대가 과격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시위대 측은 경찰의 과잉진압을 문제 삼았다. 19일 경찰청은 브리핑을 통해 18일 열린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를 ‘불법 폭력 집회’로 규정, 주동자를 사법처리하고 집회를 주관한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측에 경찰의 물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나머지 15개 지방경찰청에도 수사전담반을 편성, 시위 주동자와 극렬 행위자를 끝까지 추적해 사법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유가족 21명을 포함한 100명을 연행했고, 19일 오전까지 유가족과 고등학생·환자 등 29명을 우선 석방한 뒤 71명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지난 18일 경찰은 경력 1만 3700여명과 트럭 18대를 비롯한 차량 470여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차벽’을 설치해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의 이동을 차단했다. 서울광장에서 유가족들이 있는 광화문 누각으로 향하던 범국민대회 참가자 1만여명(경찰 추산)은 길을 가로막은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고,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과 물대포를 분사하며 막았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시민 양측 모두 부상자가 속출했다. 경찰은 경찰관·의경 74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차량 71대, 캠코더 등 경찰장비 368점이 집회 참가자에게 빼앗기거나 파손됐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뿌린 물대포에 넘어진 40대 남성은 무릎 뼈가 완전히 부서지는 부상을 입고 서울대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등 범국민대회 참석자 100여명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의 변혜진 기획실장은 “경찰이 무차별적으로 캡사이신을 뿌리는 과정에서 눈과 피부가 약한 어린 아이들과 노인들이 부상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고 “4월 16일 이후 대한민국엔 진압과 검거밖에 모르는 경찰의 폭력만 있다”며 “유가족을 시민과 떼어 놓고 고립시켜 세월호 1주년으로 인한 정권의 부담을 덜고 진실마저 수장시키기 위한 의도로 판단된다”고 비난했다. 경찰은 “차벽을 허무는 등 참가자들이 예전 집회보다 격렬하고 과격한 모습을 보였다”면서 “차벽이 무너지면 바로 청와대에 접근하고 경찰과 몸싸움이 일어날 상황이었다”고 물대포 등을 사용한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경찰의 차벽이 일반 시민들의 교통불편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서울 중구에 직장을 둔 김모(30·여)씨는 “종로구 청운동에서 을지로로 이동하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면서 “길목마다 경찰이 길을 막고 있었고 우회하라고 지시한 도로마다 주차장처럼 차량들이 멈춰 있었다”고 말했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경찰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 것인지 정당한 진압을 위한 조치였는지에 관한 논란이 계속됐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경찰, 세월호 추모 집회를 “4·18 불법 폭력집회”라며… “주동자 전원 사법처리 계획”

    경찰, 세월호 추모 집회를 “4·18 불법 폭력집회”라며… “주동자 전원 사법처리 계획”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18일 세월호 추모 집회가 열린 가운데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과의 충돌 사태에 대해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경찰청은 19일 브리핑을 갖고 지난 18일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 이후 광화문 일대에서 빚어진 집회에 대해 ‘4·18 불법·폭력 집회’라고 지칭하고 “시위 주동자와 극렬 행위자들을 끝까지 추적해 전원 사법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를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나머지 15개 지방경찰청에도 수사전담반을 편성하기로 했다. 경찰은 “집회 현장에서 경찰관과 의무경찰이 다수 다치고 경찰버스 등 장비가 파손됐다”며 주최 측인 세월호 국민대책회의에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방침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시위 사태로 의경 3명이 귀, 머리 등이 찢어지거나 의식을 잃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지는 등 경찰 74명이 다쳤다. 아울러 경찰 차량 71대가 파손됐고 채증용 캠코더와 무전기 등 경찰장비 368개가 집회 참가자들에게 빼앗기거나 망가진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은 경력 1만 3700여명과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한 차량 470여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시위대 저지선을 쳤다.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은 서울광장에서의 집회가 끝난 뒤 광화문 광장 방면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과 물대포를 대량으로 살포했고, 시위대 일부는 경찰 차량을 부수고 차량 안의 분말 소화기를 꺼내 뿌리거나, 유리창을 깨고 나서 밧줄을 걸어 잡아 당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뿐 아니라 유가족과 시민들도 병원으로 이송되는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경찰은 이날 집회 참가자 100명을 연행, 시내 경찰서로 분산 이송해 조사 중이다. 연행자 중 ‘유민아빠’ 김영오씨 등 유가족은 20명이며, 고교생 5명은 훈방 조치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화문 세월호 추모집회…경찰, 물대포·캡사이신 대량 살포 ‘충돌’

    광화문 세월호 추모집회…경찰, 물대포·캡사이신 대량 살포 ‘충돌’

    ’광화문 물대포’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세월호 추모집회’ 광화문 세월호 추모집회…경찰, 물대포·캡사이신 대량 살포 ‘충돌’ 광화문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과 충돌하는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유가족 등 100여명이 연행됐다. ’세월호 1주년’ 이후 첫 주말인 18일 저녁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참가자 수천명이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은 서울 광장에서 집회가 끝난 후 광화문 광장에 모여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는 광화문 누각으로 향했고, 경찰이 저지하자 차벽으로 사용된 차량을 흔들고 부수는 등 거세게 저항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과 물대포를 대량으로 살포하고 유가족과 시민 등 100명을 연행했다. 경찰은 이날 경력 1만 3700여명과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해 차량 470여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저지선을 쳤다. 또 경찰버스와 경력을 청계광장에서 광교 넘어서까지 청계천 북쪽 길가에 길게 늘여 세워 우회로까지 막아섰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 등 참가자 1만여명(경찰 추산)은 광화문 광장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청계천변을 따라 걸어간 뒤 낙원상가 방면으로 좌회전해 안국역에서 광화문 쪽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종로경찰서 앞 차로도 경찰에 막히자 집회 참가자들은 흩어져 지하철 등을 타고 광화문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오후 6시 20분쯤께 광화문 광장에 모인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광화문 누각 쪽으로 가려고 세종대왕상 인근 경찰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세종문화회관 인도 쪽을 통해 광화문 광장 북쪽으로 이동하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분사하고 물대포를 쏘며 이를 저지했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 모인 시위대 일부는 경찰 차량을 부수고 차량 안의 분말 소화기를 꺼내 뿌리거나 경찰 보호장구를 빼앗아 차벽 너머로 던졌다. 또 스프레이로 경찰 차량에 낙서하고, 경찰 차량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시위대 중 일부는 광화문 광장 북쪽 차벽을 뚫고 광화문 누각 근처까지 접근했으나 누각 바로 앞의 차벽에 막혀 더 전진하지 못했다. 오후 10시 20분쯤 누각에 있던 유가족들이 북측 광장에 있는 시위대에 합류해 정리 집회를 하고 이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경찰은 수차례 해산 명령을 내리고 광화문 광장에서만 79명을 연행했다. 앞서 오후 3∼5시 누각 앞과 북측 광장에서 검거된 21명을 더하면 이날 연행된 시민과 유가족 등은 모두 100명이다. 이중 ‘유민아빠’ 김영오씨 등 유가족은 20명이고, 학생 5명은 훈방 조치됐다. 이들은 금천, 성동, 마포 등 일선 경찰서 11곳으로 분산 호송돼 조사를 받았다. 집회 참가자와 경찰 간 몸싸움으로 유가족과 시민 등 9명, 의경 2명 등 모두 11명이 탈진 또는 부상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중 한 남성이 경찰과 뒤엉키면서 넘어져 복부 부분에 부상을, 의경 1명은 오른 귀 뒷부분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울역 광장에서는 ‘엄마의 노란손수건’ 등 21개 단체의 모임인 ‘대한민국 엄마들’ 주최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 등을 촉구하는 집회가, 광화문 광장에서는 ‘청소년공동체 희망’의 주최로 ‘세월호 1주기 416인 청소년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화문 등 세월호 추모집회…경찰, 물대포·캡사이신 대량 살포에 100여명 연행

    광화문 등 세월호 추모집회…경찰, 물대포·캡사이신 대량 살포에 100여명 연행

    ’광화문 물대포’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세월호 추모집회’ 광화문 등 세월호 추모집회…경찰, 물대포·캡사이신 대량 살포에 100여명 연행 광화문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과 충돌하는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유가족 등 100여명이 연행됐다. ’세월호 1주년’ 이후 첫 주말인 18일 저녁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참가자 수천명이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은 서울 광장에서 집회가 끝난 후 광화문 광장에 모여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는 광화문 누각으로 향했고, 경찰이 저지하자 차벽으로 사용된 차량을 흔들고 부수는 등 거세게 저항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과 물대포를 대량으로 살포하고 유가족과 시민 등 100명을 연행했다. 경찰은 이날 경력 1만 3700여명과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해 차량 470여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저지선을 쳤다. 또 경찰버스와 경력을 청계광장에서 광교 넘어서까지 청계천 북쪽 길가에 길게 늘여 세워 우회로까지 막아섰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 등 참가자 1만여명(경찰 추산)은 광화문 광장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청계천변을 따라 걸어간 뒤 낙원상가 방면으로 좌회전해 안국역에서 광화문 쪽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종로경찰서 앞 차로도 경찰에 막히자 집회 참가자들은 흩어져 지하철 등을 타고 광화문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오후 6시 20분쯤께 광화문 광장에 모인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광화문 누각 쪽으로 가려고 세종대왕상 인근 경찰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세종문화회관 인도 쪽을 통해 광화문 광장 북쪽으로 이동하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분사하고 물대포를 쏘며 이를 저지했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 모인 시위대 일부는 경찰 차량을 부수고 차량 안의 분말 소화기를 꺼내 뿌리거나 경찰 보호장구를 빼앗아 차벽 너머로 던졌다. 또 스프레이로 경찰 차량에 낙서하고, 경찰 차량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시위대 중 일부는 광화문 광장 북쪽 차벽을 뚫고 광화문 누각 근처까지 접근했으나 누각 바로 앞의 차벽에 막혀 더 전진하지 못했다. 오후 10시 20분쯤 누각에 있던 유가족들이 북측 광장에 있는 시위대에 합류해 정리 집회를 하고 이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경찰은 수차례 해산 명령을 내리고 광화문 광장에서만 79명을 연행했다. 앞서 오후 3∼5시 누각 앞과 북측 광장에서 검거된 21명을 더하면 이날 연행된 시민과 유가족 등은 모두 100명이다. 이중 ‘유민아빠’ 김영오씨 등 유가족은 20명이고, 학생 5명은 훈방 조치됐다. 이들은 금천, 성동, 마포 등 일선 경찰서 11곳으로 분산 호송돼 조사를 받았다. 집회 참가자와 경찰 간 몸싸움으로 유가족과 시민 등 9명, 의경 2명 등 모두 11명이 탈진 또는 부상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중 한 남성이 경찰과 뒤엉키면서 넘어져 복부 부분에 부상을, 의경 1명은 오른 귀 뒷부분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울역 광장에서는 ‘엄마의 노란손수건’ 등 21개 단체의 모임인 ‘대한민국 엄마들’ 주최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 등을 촉구하는 집회가, 광화문 광장에서는 ‘청소년공동체 희망’의 주최로 ‘세월호 1주기 416인 청소년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화문 세월호 추모집회…경찰, 물대포 대량 살포, 유가족 등 100여명 연행

    광화문 세월호 추모집회…경찰, 물대포 대량 살포, 유가족 등 100여명 연행

    ’광화문 물대포’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세월호 추모집회’ 광화문 세월호 추모집회…경찰, 물대포 대량 살포, 유가족 등 100여명 연행 광화문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과 충돌하는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유가족 등 100여명이 연행됐다. ’세월호 1주년’ 이후 첫 주말인 18일 저녁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참가자 수천명이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은 서울 광장에서 집회가 끝난 후 광화문 광장에 모여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는 광화문 누각으로 향했고, 경찰이 저지하자 차벽으로 사용된 차량을 흔들고 부수는 등 거세게 저항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과 물대포를 대량으로 살포하고 유가족과 시민 등 100명을 연행했다. 경찰은 이날 경력 1만 3700여명과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해 차량 470여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저지선을 쳤다. 또 경찰버스와 경력을 청계광장에서 광교 넘어서까지 청계천 북쪽 길가에 길게 늘여 세워 우회로까지 막아섰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 등 참가자 1만여명(경찰 추산)은 광화문 광장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청계천변을 따라 걸어간 뒤 낙원상가 방면으로 좌회전해 안국역에서 광화문 쪽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종로경찰서 앞 차로도 경찰에 막히자 집회 참가자들은 흩어져 지하철 등을 타고 광화문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오후 6시 20분쯤께 광화문 광장에 모인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광화문 누각 쪽으로 가려고 세종대왕상 인근 경찰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세종문화회관 인도 쪽을 통해 광화문 광장 북쪽으로 이동하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분사하고 물대포를 쏘며 이를 저지했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 모인 시위대 일부는 경찰 차량을 부수고 차량 안의 분말 소화기를 꺼내 뿌리거나 경찰 보호장구를 빼앗아 차벽 너머로 던졌다. 또 스프레이로 경찰 차량에 낙서하고, 경찰 차량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시위대 중 일부는 광화문 광장 북쪽 차벽을 뚫고 광화문 누각 근처까지 접근했으나 누각 바로 앞의 차벽에 막혀 더 전진하지 못했다. 오후 10시 20분쯤 누각에 있던 유가족들이 북측 광장에 있는 시위대에 합류해 정리 집회를 하고 이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경찰은 수차례 해산 명령을 내리고 광화문 광장에서만 79명을 연행했다. 앞서 오후 3∼5시 누각 앞과 북측 광장에서 검거된 21명을 더하면 이날 연행된 시민과 유가족 등은 모두 100명이다. 이중 ‘유민아빠’ 김영오씨 등 유가족은 20명이고, 학생 5명은 훈방 조치됐다. 이들은 금천, 성동, 마포 등 일선 경찰서 11곳으로 분산 호송돼 조사를 받았다. 집회 참가자와 경찰 간 몸싸움으로 유가족과 시민 등 9명, 의경 2명 등 모두 11명이 탈진 또는 부상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중 한 남성이 경찰과 뒤엉키면서 넘어져 복부 부분에 부상을, 의경 1명은 오른 귀 뒷부분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울역 광장에서는 ‘엄마의 노란손수건’ 등 21개 단체의 모임인 ‘대한민국 엄마들’ 주최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 등을 촉구하는 집회가, 광화문 광장에서는 ‘청소년공동체 희망’의 주최로 ‘세월호 1주기 416인 청소년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충돌…유민아빠 등 100여명 연행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충돌…유민아빠 등 100여명 연행

    ’광화문 집회’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광화문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과 충돌하는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유가족 등 100여명이 연행됐다. ’세월호 1주년’ 이후 첫 주말인 18일 저녁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참가자 수천명이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은 서울 광장에서 집회가 끝난 후 광화문 광장에 모여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는 광화문 누각으로 향했고, 경찰이 저지하자 차벽으로 사용된 차량을 흔들고 부수는 등 거세게 저항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과 물대포를 대량으로 살포하고 유가족과 시민 등 100명을 연행했다. 경찰은 이날 경력 1만 3700여명과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해 차량 470여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저지선을 쳤다. 또 경찰버스와 경력을 청계광장에서 광교 넘어서까지 청계천 북쪽 길가에 길게 늘여 세워 우회로까지 막아섰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 등 참가자 1만여명(경찰 추산)은 광화문 광장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청계천변을 따라 걸어간 뒤 낙원상가 방면으로 좌회전해 안국역에서 광화문 쪽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종로경찰서 앞 차로도 경찰에 막히자 집회 참가자들은 흩어져 지하철 등을 타고 광화문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오후 6시 20분쯤께 광화문 광장에 모인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광화문 누각 쪽으로 가려고 세종대왕상 인근 경찰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세종문화회관 인도 쪽을 통해 광화문 광장 북쪽으로 이동하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분사하고 물대포를 쏘며 이를 저지했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 모인 시위대 일부는 경찰 차량을 부수고 차량 안의 분말 소화기를 꺼내 뿌리거나 경찰 보호장구를 빼앗아 차벽 너머로 던졌다. 또 스프레이로 경찰 차량에 낙서하고, 경찰 차량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시위대 중 일부는 광화문 광장 북쪽 차벽을 뚫고 광화문 누각 근처까지 접근했으나 누각 바로 앞의 차벽에 막혀 더 전진하지 못했다. 오후 10시 20분쯤 누각에 있던 유가족들이 북측 광장에 있는 시위대에 합류해 정리 집회를 하고 이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경찰은 수차례 해산 명령을 내리고 광화문 광장에서만 79명을 연행했다. 앞서 오후 3∼5시 누각 앞과 북측 광장에서 검거된 21명을 더하면 이날 연행된 시민과 유가족 등은 모두 100명이다. 이중 ‘유민아빠’ 김영오씨 등 유가족은 20명이고, 학생 5명은 훈방 조치됐다. 이들은 금천, 성동, 마포 등 일선 경찰서 11곳으로 분산 호송돼 조사를 받았다. 집회 참가자와 경찰 간 몸싸움으로 유가족과 시민 등 9명, 의경 2명 등 모두 11명이 탈진 또는 부상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중 한 남성이 경찰과 뒤엉키면서 넘어져 복부 부분에 부상을, 의경 1명은 오른 귀 뒷부분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울역 광장에서는 ‘엄마의 노란손수건’ 등 21개 단체의 모임인 ‘대한민국 엄마들’ 주최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 등을 촉구하는 집회가, 광화문 광장에서는 ‘청소년공동체 희망’의 주최로 ‘세월호 1주기 416인 청소년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집회 충돌…유가족 등 21명 연행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집회 충돌…유가족 등 21명 연행

    ’광화문 집회’ 광화문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과 충돌, 세월호 유가족 등 21명이 연행됐다. ’세월호 1주년’ 이후 첫 주말인 18일 오후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광화문 누각 쪽으로 이동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이날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해 차량 470여대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저지선을 쳤다. 또 차량과 경력을 동원해 청계광장에서 광교 넘어서까지 청계천 북쪽을 길게 막아섰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 등 참가자 1만여명(경찰 추산)은 광화문 광장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청계천변을 따라 걸어간 뒤 낙원상가 방면으로 좌회전해 안국역에서 광화문 쪽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종로경찰서 앞 차로도 경찰에 막히자 집회 참가자들은 흩어져 지하철 등을 타고 광화문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오후 6시 20분쯤 광화문 광장에 모인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세종대왕상 인근 경찰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세종문화회관 인도 쪽을 통해 광화문 광장 북쪽으로 이동하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분사하고 물대포를 쏘며 이를 저지했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 모인 시위대는 경찰 버스를 흔들거나 넘어뜨리려고 시도하고 차량에 스프레이로 낙서하기도 했다. 일부는 경찰 차량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앞서 경찰은 이날 오후 3∼5시 광화문 누각 앞 도로를 점거한 유가족과 시민 등 11명, 경찰 버스 위에서 시위하던 ‘유민 아빠’ 김영호씨 등 5명, 북측 광장에서 도로를 점거한 시민·유가족 등 5명을 합쳐 모두 21명을 연행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충돌…유가족 등 21명 연행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충돌…유가족 등 21명 연행

    ’광화문 집회’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광화문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과 충돌하는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유가족 등 21명이 연행됐다. ’세월호 1주년’ 이후 첫 주말인 18일 오후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광화문 누각 쪽으로 이동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이날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해 차량 470여대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저지선을 쳤다. 또 차량과 경력을 동원해 청계광장에서 광교 넘어서까지 청계천 북쪽을 길게 막아섰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 등 참가자 1만여명(경찰 추산)은 광화문 광장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청계천변을 따라 걸어간 뒤 낙원상가 방면으로 좌회전해 안국역에서 광화문 쪽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종로경찰서 앞 차로도 경찰에 막히자 집회 참가자들은 흩어져 지하철 등을 타고 광화문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오후 6시 20분쯤 광화문 광장에 모인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세종대왕상 인근 경찰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세종문화회관 인도 쪽을 통해 광화문 광장 북쪽으로 이동하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분사하고 물대포를 쏘며 이를 저지했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 모인 시위대는 경찰 버스를 흔들거나 넘어뜨리려고 시도하고 차량에 스프레이로 낙서하기도 했다. 일부는 경찰 차량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앞서 경찰은 이날 오후 3∼5시 광화문 누각 앞 도로를 점거한 유가족과 시민 등 11명, 경찰 버스 위에서 시위하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 등 5명, 북측 광장에서 도로를 점거한 시민·유가족 등 5명을 합쳐 모두 21명을 연행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충돌…유민아빠 김영오씨 등 100여명 연행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충돌…유민아빠 김영오씨 등 100여명 연행

    ’광화문 집회’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광화문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과 충돌하는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유가족 등 100여명이 연행됐다. ’세월호 1주년’ 이후 첫 주말인 18일 저녁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참가자 수천명이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은 서울 광장에서 집회가 끝난 후 광화문 광장에 모여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는 광화문 누각으로 향했고, 경찰이 저지하자 차벽으로 사용된 차량을 흔들고 부수는 등 거세게 저항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과 물대포를 대량으로 살포하고 유가족과 시민 등 100명을 연행했다. 경찰은 이날 경력 1만 3700여명과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해 차량 470여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저지선을 쳤다. 또 경찰버스와 경력을 청계광장에서 광교 넘어서까지 청계천 북쪽 길가에 길게 늘여 세워 우회로까지 막아섰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 등 참가자 1만여명(경찰 추산)은 광화문 광장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청계천변을 따라 걸어간 뒤 낙원상가 방면으로 좌회전해 안국역에서 광화문 쪽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종로경찰서 앞 차로도 경찰에 막히자 집회 참가자들은 흩어져 지하철 등을 타고 광화문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오후 6시 20분쯤께 광화문 광장에 모인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광화문 누각 쪽으로 가려고 세종대왕상 인근 경찰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세종문화회관 인도 쪽을 통해 광화문 광장 북쪽으로 이동하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분사하고 물대포를 쏘며 이를 저지했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 모인 시위대 일부는 경찰 차량을 부수고 차량 안의 분말 소화기를 꺼내 뿌리거나 경찰 보호장구를 빼앗아 차벽 너머로 던졌다. 또 스프레이로 경찰 차량에 낙서하고, 경찰 차량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시위대 중 일부는 광화문 광장 북쪽 차벽을 뚫고 광화문 누각 근처까지 접근했으나 누각 바로 앞의 차벽에 막혀 더 전진하지 못했다. 오후 10시 20분쯤 누각에 있던 유가족들이 북측 광장에 있는 시위대에 합류해 정리 집회를 하고 이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경찰은 수차례 해산 명령을 내리고 광화문 광장에서만 79명을 연행했다. 앞서 오후 3∼5시 누각 앞과 북측 광장에서 검거된 21명을 더하면 이날 연행된 시민과 유가족 등은 모두 100명이다. 이중 ‘유민아빠’ 김영오씨 등 유가족은 20명이고, 학생 5명은 훈방 조치됐다. 이들은 금천, 성동, 마포 등 일선 경찰서 11곳으로 분산 호송돼 조사를 받았다. 집회 참가자와 경찰 간 몸싸움으로 유가족과 시민 등 9명, 의경 2명 등 모두 11명이 탈진 또는 부상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중 한 남성이 경찰과 뒤엉키면서 넘어져 복부 부분에 부상을, 의경 1명은 오른 귀 뒷부분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울역 광장에서는 ‘엄마의 노란손수건’ 등 21개 단체의 모임인 ‘대한민국 엄마들’ 주최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 등을 촉구하는 집회가, 광화문 광장에서는 ‘청소년공동체 희망’의 주최로 ‘세월호 1주기 416인 청소년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곳곳 집회…유가족 등 21명 연행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곳곳 집회…유가족 등 21명 연행

    ’광화문 집회’ 광화문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과 충돌, 세월호 유가족 등 21명이 연행됐다. ’세월호 1주년’ 이후 첫 주말인 18일 오후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광화문 누각 쪽으로 이동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이날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해 차량 470여대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저지선을 쳤다. 또 차량과 경력을 동원해 청계광장에서 광교 넘어서까지 청계천 북쪽을 길게 막아섰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 등 참가자 1만여명(경찰 추산)은 광화문 광장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청계천변을 따라 걸어간 뒤 낙원상가 방면으로 좌회전해 안국역에서 광화문 쪽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종로경찰서 앞 차로도 경찰에 막히자 집회 참가자들은 흩어져 지하철 등을 타고 광화문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오후 6시 20분쯤 광화문 광장에 모인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세종대왕상 인근 경찰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세종문화회관 인도 쪽을 통해 광화문 광장 북쪽으로 이동하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분사하고 물대포를 쏘며 이를 저지했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 모인 시위대는 경찰 버스를 흔들거나 넘어뜨리려고 시도하고 차량에 스프레이로 낙서하기도 했다. 일부는 경찰 차량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앞서 경찰은 이날 오후 3∼5시 광화문 누각 앞 도로를 점거한 유가족과 시민 등 11명, 경찰 버스 위에서 시위하던 ‘유민 아빠’ 김영호씨 등 5명, 북측 광장에서 도로를 점거한 시민·유가족 등 5명을 합쳐 모두 21명을 연행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충돌…유민아빠 연행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충돌…유민아빠 연행

    ’광화문 집회’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광화문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과 충돌하는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유가족 등 21명이 연행됐다. ’세월호 1주년’ 이후 첫 주말인 18일 오후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광화문 누각 쪽으로 이동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이날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해 차량 470여대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저지선을 쳤다. 또 차량과 경력을 동원해 청계광장에서 광교 넘어서까지 청계천 북쪽을 길게 막아섰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 등 참가자 1만여명(경찰 추산)은 광화문 광장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청계천변을 따라 걸어간 뒤 낙원상가 방면으로 좌회전해 안국역에서 광화문 쪽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종로경찰서 앞 차로도 경찰에 막히자 집회 참가자들은 흩어져 지하철 등을 타고 광화문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오후 6시 20분쯤 광화문 광장에 모인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세종대왕상 인근 경찰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세종문화회관 인도 쪽을 통해 광화문 광장 북쪽으로 이동하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분사하고 물대포를 쏘며 이를 저지했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 모인 시위대는 경찰 버스를 흔들거나 넘어뜨리려고 시도하고 차량에 스프레이로 낙서하기도 했다. 일부는 경찰 차량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앞서 경찰은 이날 오후 3∼5시 광화문 누각 앞 도로를 점거한 유가족과 시민 등 11명, 경찰 버스 위에서 시위하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 등 5명, 북측 광장에서 도로를 점거한 시민·유가족 등 5명을 합쳐 모두 21명을 연행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한국 첫 이슬람 출판사 대표 후세인 크르데미리가 말하는 무슬림이란…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한국 첫 이슬람 출판사 대표 후세인 크르데미리가 말하는 무슬림이란…

    이 세상에는 유별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21년간 이 땅에 무슬림(이슬람 신자)으로 살고 있는 터키 출신의 후세인 크르데미리(44·한국명 장후세인)도 종교계에선 이름 난 인물이다. 본국에서부터 한국어를 전공해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공부를 계속한 한국통이다. 이슬람 제대로 알리기를 천직이자 으뜸 소명으로 삼다가 한국에 귀화했고 결국 3년 전 출판사를 직접 차려 한국과 이슬람의 가교 역할을 자임해 사는 그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슬람 사원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최근 들어 이슬람국가(IS)의 움직임이 지구촌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돼 버린 느낌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IS가 테러와 침탈, 학살의 주체나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IS는 어떤 단체인가. -나도 잘 모른다. 9·11사태가 발생하기 전 사람들이 오사마 빈라덴을 잘 몰랐던 것처럼 IS 역시 갑자기 돌출돼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됐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당황스러워한다. 정치적 배후며 무기 공급 통로 같은 것들이 베일에 가려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분명한 건 그들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행동은 무슬림이라면 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이슬람 신앙에 토대를 둔 순수 종교집단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로 결속된 무장단체로 본다. →IS는 테러 등 집단행동을 할 때 꼭 이슬람을 표방하고 이슬람 단체임을 명시하는데. -나를 포함해 전 세계 16억 이슬람 교도들이 걱정하며 지켜보고 있다. 그들의 행태는 코란과 예언자 언행록인 하디스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코란에는 ‘한 사람을 죽이는 건 온 인류를 죽이는 것과 같고,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온 인류를 구하는 것과 같다’고 쓰여 있다. 예언자 언행록인 하디스에는 낙타를 타고 갈 때 강아지가 밟혀 죽을까 염려해 길을 바꿔 돌아갔다는 대목도 전해진다. 무슬림들은 그렇게 배웠고 배우고 있다. 그런데 생각이 다르다고, 함께 행동하지 않는다고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다면 무슬림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이슬람에서는 전투에도 나름의 법도가 있다. 나와 싸우는 사람만 적으로 보며 나를 죽일 목적으로 무기를 들지 않는 한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한 민간인은 절대 죽이지 않는다. 적의 시신도 존중하라고 가르치는데 어떻게 민간인 시신을 불태우고 칼로 자를 수 있는가. →IS가 기승을 부리면서 주변의 시선이 달라지지 않았나. -IS의 잔인한 모습이 연신 등장하는 언론 보도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이슬람교를 무서운 종교라고 생각하게 될 것 같아 안타깝다. 뉴스에 비치는 모습들은 모든 이슬람을 대표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운 미국의 극우 비밀결사 KKK를 보고 모든 기독교 단체가 다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IS와 정통 무슬림을 엄격하게 구분 짓는 으뜸의 정신은 무엇인가. -평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슬람 국가들이 다른 국적의 사람들과 평화롭게 공존한 역사적 흔적들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숱하게 찾을 수 있다. 서방세계에 이슬람이 잘못 알려져 지금처럼 편견과 오해가 만연한 것 같다. 안타깝게도 이런 것들은 쉽게 바로잡을 수 없고 개선하기도 힘들다. →평화를 중시한다는 이슬람과 아랍 세계에서 왜 전쟁과 테러가 끊임없이 반복되나. -자원을 둘러싼 서방세계, 특히 유럽의 정치 역학이 큰 원인일 것이다. 교육 기회가 늘고 해외 이주가 늘면서 유럽화된 무슬림을 포함해 이슬람과 멀어진 무슬림들이 많아진 탓도 크다. 이슬람 국가들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이슬람식으로 풀어야 하는데 지도자들이 제 나라 제 민족보다 자신을 지원하는 서방 국가들에 휘둘리기 일쑤다. 그 많은 자원을 갖고도 가난하게 살며 내분이 만연한 이유다. 이집트만 하더라도 전 국민의 40%가 1달러로 하루를 살아간다. 다행히 무슬림권에서 ‘원래의 이슬람으로 돌아가야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인식이 늘고 있고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몸짓들이 확산되고 있다. 서방세계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 유럽의 무슬림들은 옛날 유대인 격리 거주구역 ‘게토’처럼 따로 모여 사는 경우가 많고 취업할 때도 아랍어 이름을 쓰면 불이익을 받는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친다는 나라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한국인들 사이에도 이슬람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용어가 많은가. -‘알라신’과 ‘회교’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알라는 이슬람교의 유일신을 지칭하는데 알라신이라고 말하면 동어반복이다. 흔히 무함마드를 이슬람교의 창시자라 부르지만 무함마드는 창시자가 아닌 예언자다. 코란도 예언자 무함마드가 쓴 책이 아닌데 무함마드가 썼다고 인식되기 일쑤다. ‘한손에 칼, 한손에 코란’처럼 서방세계가 이슬람의 호전성을 악의적으로 왜곡해 만들어낸 말도 적지 않다. 전쟁이 끝난 뒤 홀로 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등장했던 일부다처제도 잘못된 인식의 단적인 사례다. 한국의 나이 든 세대에서 이슬람교 대신 자주 쓰이는 ‘회교’도 옛 중국 무슬림 중에 회족이 많았던 데서 비롯된 말이다. →주변에 이슬람의 지하드나 자살 테러와 관련해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 이슬람에서 용인하는 개념들인가. -성전(holy war)으로 널리 알려진 지하드는 이슬람이 아닌 서방세계에서 비롯됐다. 성지 탈환을 위한 십자군전쟁 때 모병하면서 성스러운 전쟁을 강조한 말이다. 이슬람에서의 지하드는 원래 ‘노력하다’ ‘열심히 하다’ ‘투쟁하다’의 뜻을 담고 있다. 이를테면 학생이 커닝 안 하고 정직하게 공부하거나 통치자가 나라를 바르게 다스린다는 뜻이다. 물론 적군의 공격에 방어한다는 의미도 있다. 무함마드는 예언자 시절 전투가 끝난 뒤 “싸우기는 쉽지만 나 자신을 올바르게 바꾸기에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며 작은 지하드 끝에 정신적인 차원의 더 큰 지하드가 시작된다고 늘 말했다고 한다. 자살 테러와 관련해선 코란의 가르침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무슬림은 하나님이 몸을 주셨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잘 관리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영혼을 주신 분의 허락 없이 목숨을 끊는 자살은 당연히 금지된다. 지옥에선 현생과 똑같은 방식으로 고통받는다고 하는데 지옥에는 죽음이 없는 만큼 지금 세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는 것이다. 자살 폭탄 테러는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 또는 배후 세력의 위협을 받아 저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은 많은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해 ‘종교 천국’이라는 말이 통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미 평화가 깨졌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한국의 종교 마찰 양상이 그렇게 심한가. -피부로 느낄 만큼 종교 간 마찰이 심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일부 개신교의 지나친 선교 행위는 비기독교인들이 적지 않게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무슬림인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인들도 눈살을 찌푸린다. →한국에서 이슬람 교세 학장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데 어느 정도인가. -외국인 무슬림은 10만명 안팎으로 추산되며 최근 들어 신도가 부쩍 늘고 있다. 이슬람 사원 같은 곳에서 처음 마주치는 얼굴, 특히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마트에 가 보면 히잡으로 머리와 상반신을 가린 동남아시아나 아랍국 여성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한국인들도 별로 어색하지 않게 보는 것 같다. →출판사 이름이 특이하다. 왜 이슬람 출판사를 시작했나. -초등학생인 딸 이름 젠나와 입학 전인 아들 무민의 이름을 합쳐 출판사 이름을 지었다. 이슬람을 바르게 알리는 게 시급하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 왔다. 이슬람을 신앙으로 택하건 안 하건 자유이지만 알려면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슬람을 이해하면 세계인의 4분의1을 아는 것이다. 국가 간의 관계도 편견 없이 정확하게 알아야 오래 지속되고 얻는 게 많은 법이다. 그런데 국내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이슬람 서적의 95%가 비무슬림이 쓴 책이다. 제대로 알리려면 정확한 지식을 정확한 한국어로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2013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했다. 한국의 무슬림 출판사로는 처음이라고 한다. →어떤 책을 냈나. 책은 잘 팔리나. -주로 이슬람을 쉽고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돕는 책들인데 반응이 썩 나쁘지 않은 편이다. 지금까지 5권을 냈는데 모두 재판을 찍었다. 해외에서도 주문이 들어온다. 특히 지난해 낸 ‘한국인들이 이슬람에 대해 궁금해하는 40가지’는 나도 놀랄 만큼 반응이 좋았다. →한국인들은 지금 이슬람과 무슬림을 어떻게 보고 있다고 생각하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대왕이 경복궁 경회루 앞뜰에서 좌우로 문무백관이 도열한 가운데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이슬람 원로의 코란 암송 소리에 빠져 있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렇게 한국과 이슬람의 관계는 오래됐지만 여전히 한국인에게 이슬람은 낯선 종교이자 문화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나처럼 다리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 한국에 올 때와 비교해 보면 큰 변화를 실감한다. 이제는 이슬람교에 대한 거부감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귀화 한국인인데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은. -이슬람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성원 같은 공간을 파주에 세웠으면 한다. 이슬람 교육이 필요한 무슬림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지만 그들을 수용할 마땅한 공간이 없다. 신앙과 교육, 문화를 함께 접할 수 있는 학교 형식의 공간도 마련했으면 한다. 물론 이슬람을 정확하게 알리는 출판 일이 으뜸이다. 출판 단지에 이슬람 출판사를 크게 짓고 싶은 꿈이 이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후세인 크르데미리는 누구 1971년 터키 동쪽의 작은 도시 요즈가트에서 대대로 제빵 기술자의 업을 이은 ‘명문 빵집’의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한국의 TV 만화영화며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며 자랐고 앙카라대 한국어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한국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1994년 한국에 들어와 서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박사 과정을 모두 마쳤고 현재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웬만한 한국 사람보다 고급 한국어 구사가 더 정확하다. 2005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슬람 사원을 찾았다가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선교교육국에서 이슬람 안내 책자를 펴내는 일을 하게 된 것을 시작으로 7년간 언론·홍보 담당과 내외국 방문객 안내 및 통역 일을 두루 했다. 2006년 귀화했고 한국인 아내와의 사이에 1녀(8세), 1남(6세)을 뒀다. 이슬람 사원 인근 이태원에 보금자리를 꾸며 살다가 2012년 경기 파주시에 한국 최초의 이슬람 전문 출판사 ‘젠나무민북스’를 차리면서 그곳으로 옮겨 가 살고 있다. 지금까지 모두 다섯권의 이슬람 관련 서적을 세상에 내놓았으며 서울국제도서전에도 해마다 참여하고 있다. 이슬람을 제대로 알리는 것을 으뜸 소명으로 삼아 “한국과 이슬람의 다리로 살다가 이 땅에 뼈를 묻겠다”는 독특한 이방인이다.
  • “선체 인양” vs 경찰 차벽… 또 부딪친 세월호 광장

    “선체 인양” vs 경찰 차벽… 또 부딪친 세월호 광장

    세월호 참사 1주년인 16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한 5만여명(경찰 추산 1만명)의 시민들이 행사가 끝난 오후 9시부터 세종대로를 가득 메운 채 행진을 벌이며 밤늦게까지 서울시내 곳곳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경찰이 광화문 4거리에 경찰버스로 차벽을 세우고 50여m 앞인 청계광장 앞 16차선 도로에 높은 장벽을 세워 행진을 막자 일부 유가족들과 주최 측인 4·16국민연대, 시민들은 청계천으로 우회해 삼일교 등을 거쳐 광화문광장 쪽으로 접근했다. 일부 유가족과 시민들은 경찰버스 위로 올라가 ‘세월호 즉각 인양’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 등을 외쳤다. 경찰은 두 차례 이상 “불법집회를 즉각 해산하라”는 경고방송을 내보낸 뒤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시민들을 제지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과 가수 김장훈 등은 “무엇이 두렵기에 추모의 발걸음을 막느냐”며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앞서 오후 7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 ‘4·16 약속의 밤’에 참석한 시민·학생들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정부 측에 세월호 선체 인양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를 촉구했다. 행사에는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출발한 세월호 유가족들과 낮부터 각지에서 집회와 문화제를 열었던 시민단체 회원과 대학생 등이 참석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 손에 엄마를 붙들고, 다른 손에 국화꽃을 든 어린이들도 눈에 띄였다. 추모제에 참석한 취업준비생 김지원(여·24)씨는 “다시는 세월호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와 동생 등 가족과 함께 참석했다”면서 “하루빨리 세월호를 인양하고 참사의 원인이 밝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남 장성에서 딸과 함께 참석한 윤두병(70·농업)씨는 “어른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나라를 만들지 못한 것이 죄스럽다”면서 “있는 그대로 진실을 밝히면 되는 것뿐인데 그게 안 되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진상규명을 제대로 해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과 온전하게 세월호를 인양해 실종자를 끝까지 찾아주겠다는 대답을 기다렸지만 끝내 답변을 듣지 못했다”면서 “대통령은 우리 가족들을 피해 팽목항에 잠시 머물렀다 대국민 담화문 발표만 하고 해외로 떠났다”고 비판했다. 분향소가 설치된 광화문 광장에는 오후부터 분향 행렬이 이어졌다. 김영인(32)씨는 “오늘 1주년 추모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과천에서 광화문까지 분향하러 왔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대학생들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행진과 퍼포먼스, 집회가 잇따랐다. 15개 대학 총학생회·단과대학생회 등으로 구성된 ‘세월호 대학생 대표자 연석회의’ 소속 1000여명은 각각 경희대·이화여대·남영3로터리·마로니에공원 등에서 오후 4시 16분 출발해 청계광장까지 행진한 뒤 추모집회를 열었다. 이화여대에서 출발한 서울 서부지역 대학생들은 단원고 2학년 1∼10반을 나눠 맡아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304명의 기억을 담은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서울역 광장에서는 오후 4시 16분 민주노총의 율동 퍼포먼스가 진행됐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오후 5시 추모 연극제가 열렸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세월호 추모제, 경찰 vs 시민 대치…최루액 살포

    세월호 추모제, 경찰 vs 시민 대치…최루액 살포

    ‘세월호 1주기 추모행사’ ’세월호 추모제’ 세월호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과 경찰이 밤늦게 곳곳에서 충돌했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인 16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한 5만여명(경찰 추산 1만명)의 시민들이 행사가 끝난 오후 9시부터 세종대로를 가득 메운 채 행진을 벌이며 밤늦게까지 서울시내 곳곳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경찰이 광화문 4거리에 경찰버스로 차벽을 세우고 50여m 앞인 청계광장 앞 16차선 도로에 높은 장벽을 세워 행진을 막자 일부 유가족들과 주최 측인 4·16국민연대, 시민들은 청계천으로 우회해 삼일교 등을 거쳐 광화문광장 쪽으로 접근했다. 일부 유가족과 시민들은 경찰버스 위로 올라가 ‘세월호 즉각 인양’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 등을 외쳤다. 경찰은 두 차례 이상 “불법집회를 즉각 해산하라”는 경고방송을 내보낸 뒤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시민들을 제지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과 가수 김장훈 등은 “무엇이 두렵기에 추모의 발걸음을 막느냐”며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앞서 오후 7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 ‘4·16 약속의 밤’에 참석한 시민·학생들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정부 측에 세월호 선체 인양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를 촉구했다. 행사에는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출발한 세월호 유가족들과 낮부터 각지에서 집회와 문화제를 열었던 시민단체 회원과 대학생 등이 참석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 손에 엄마를 붙들고, 다른 손에 국화꽃을 든 어린이들도 눈에 띄였다. 추모제에 참석한 취업준비생 김지원(여·24)씨는 “다시는 세월호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와 동생 등 가족과 함께 참석했다”면서 “하루빨리 세월호를 인양하고 참사의 원인이 밝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남 장성에서 딸과 함께 참석한 윤두병(70·농업)씨는 “어른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나라를 만들지 못한 것이 죄스럽다”면서 “있는 그대로 진실을 밝히면 되는 것뿐인데 그게 안 되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진상규명을 제대로 해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과 온전하게 세월호를 인양해 실종자를 끝까지 찾아주겠다는 대답을 기다렸지만 끝내 답변을 듣지 못했다”면서 “대통령은 우리 가족들을 피해 팽목항에 잠시 머물렀다 대국민 담화문 발표만 하고 해외로 떠났다”고 비판했다. 분향소가 설치된 광화문 광장에는 오후부터 분향 행렬이 이어졌다. 김영인(32)씨는 “오늘 1주년 추모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과천에서 광화문까지 분향하러 왔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대학생들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행진과 퍼포먼스, 집회가 잇따랐다. 15개 대학 총학생회·단과대학생회 등으로 구성된 ‘세월호 대학생 대표자 연석회의’ 소속 1000여명은 각각 경희대·이화여대·남영3로터리·마로니에공원 등에서 오후 4시 16분 출발해 청계광장까지 행진한 뒤 추모집회를 열었다. 이화여대에서 출발한 서울 서부지역 대학생들은 단원고 2학년 1∼10반을 나눠 맡아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304명의 기억을 담은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서울역 광장에서는 오후 4시 16분 민주노총의 율동 퍼포먼스가 진행됐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오후 5시 추모 연극제가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추모제, 경찰 vs 시민 대치…최루액 살포

    세월호 추모제, 경찰 vs 시민 대치…최루액 살포

    세월호 참사 1주년인 16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한 5만여명(경찰 추산 1만명)의 시민들이 행사가 끝난 오후 9시부터 세종대로를 가득 메운 채 행진을 벌이며 밤늦게까지 서울시내 곳곳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경찰이 광화문 4거리에 경찰버스로 차벽을 세우고 50여m 앞인 청계광장 앞 16차선 도로에 높은 장벽을 세워 행진을 막자 일부 유가족들과 주최 측인 4·16국민연대, 시민들은 청계천으로 우회해 삼일교 등을 거쳐 광화문광장 쪽으로 접근했다. 일부 유가족과 시민들은 경찰버스 위로 올라가 ‘세월호 즉각 인양’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 등을 외쳤다. 경찰은 두 차례 이상 “불법집회를 즉각 해산하라”는 경고방송을 내보낸 뒤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시민들을 제지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과 가수 김장훈 등은 “무엇이 두렵기에 추모의 발걸음을 막느냐”며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앞서 오후 7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 ‘4·16 약속의 밤’에 참석한 시민·학생들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정부 측에 세월호 선체 인양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를 촉구했다. 행사에는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출발한 세월호 유가족들과 낮부터 각지에서 집회와 문화제를 열었던 시민단체 회원과 대학생 등이 참석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 손에 엄마를 붙들고, 다른 손에 국화꽃을 든 어린이들도 눈에 띄였다. 추모제에 참석한 취업준비생 김지원(여·24)씨는 “다시는 세월호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와 동생 등 가족과 함께 참석했다”면서 “하루빨리 세월호를 인양하고 참사의 원인이 밝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남 장성에서 딸과 함께 참석한 윤두병(70·농업)씨는 “어른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나라를 만들지 못한 것이 죄스럽다”면서 “있는 그대로 진실을 밝히면 되는 것뿐인데 그게 안 되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진상규명을 제대로 해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과 온전하게 세월호를 인양해 실종자를 끝까지 찾아주겠다는 대답을 기다렸지만 끝내 답변을 듣지 못했다”면서 “대통령은 우리 가족들을 피해 팽목항에 잠시 머물렀다 대국민 담화문 발표만 하고 해외로 떠났다”고 비판했다. 분향소가 설치된 광화문 광장에는 오후부터 분향 행렬이 이어졌다. 김영인(32)씨는 “오늘 1주년 추모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과천에서 광화문까지 분향하러 왔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대학생들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행진과 퍼포먼스, 집회가 잇따랐다. 15개 대학 총학생회·단과대학생회 등으로 구성된 ‘세월호 대학생 대표자 연석회의’ 소속 1000여명은 각각 경희대·이화여대·남영3로터리·마로니에공원 등에서 오후 4시 16분 출발해 청계광장까지 행진한 뒤 추모집회를 열었다. 이화여대에서 출발한 서울 서부지역 대학생들은 단원고 2학년 1∼10반을 나눠 맡아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304명의 기억을 담은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서울역 광장에서는 오후 4시 16분 민주노총의 율동 퍼포먼스가 진행됐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오후 5시 추모 연극제가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