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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 바로알기/김세중 국어연구원 학예연구관(굄돌)

    또 한번의 한글날이 지나갔다. 기념식과 여러 가지 행사가 열렸다. 신문에도 한글과 관련한 사설이 실리고 여러 가지 보도가 잇따랐다. 한글과 우리말을 위해 남 모르게 애 쓴 이들의 선행도 이 때만은 크게 다루어진다. 늘 한글날 무렵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이 날이 지나면 평상으로 돌아간다. 필자가 오래 전부터 소망해 오는 것이 있다. ‘한글’의 뜻만은 제대로 알고 썼으면 하는 것이다. 우선 한글을 우리말과 혼동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한글은 문자이고 우리말은 언어이다. 문자와 언어를 혼동하는 일이 참 비일비재하다. 세종대왕이 우리말을 만들었다고 믿는 사람마저 있다. 우리말은 세종대왕 이전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써 왔다. 요즘 자식을 낳고는 “한글 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다. 순수한 우리말 이름인,‘아름’이나 ‘곱슬’과 같은 이름을 짓고 싶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응당 “고유어 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어야 옳다. 순수한 우리 고유의 말이 고유어인데 이 말이 어려워서인지 ‘한글 이름’이라고 말한다. 정확한 표현이 물론 아니다. 고유어라는 말이 그렇게 어렵다면 “순우리말 이름을 지어달라”든지 “한글로만 적을 수 있는 이름을 지어 달라”고 풀어서 말했으면 좋겠다.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오해도 널리 퍼져 있다. 한글이 우수한 문자라는 자부심이 지나쳐서 새소리,바람소리는 물론이요,세계 어느 언어의 소리도 적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한글은 분명 매우 과학적인 문자임에 틀림없지만 온세상 소리를 있는 그대로 적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글은 우리말,즉 국어의 소리를 정확히 적을 수 있는 문자이지 외국어를 적기 위한 도구는 아니다. 외국어를 온전히 적기 위해서는 우리가 쓰는 한글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글자를 자꾸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미 한글이 아니다. ‘한글’을 바로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 우리가 지켜야 할 한글(사설)

    다시 한글날을 맞는다. 오늘은 세종대왕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훈민정음),즉 한글을 만들어 널리 펴신지 552돌이 되는 날이다. 다행히 올해 한글날을 앞두고 우리 말과 글의 발전에 도움이 될 책 두권이 발간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용례중심의 실용사전인 ‘연세한국어사전’과 음성인식 컴퓨터 개발에 도움이 될 ‘세종대 음성학’이 그것이다. ‘연세한국어사전’은 기존 국어사전의 부족한 점을 메워줄 것이라는 점에서,그리고 ‘세종대 음성학’은 정보화 시대에 한글 기계화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작업이다. 두권의 책을 펴 낸 집필자들의 노고에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이런 반가운 소식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글의 현주소는 우울하다. 세계화에 밀려 한글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다. 정체불명의 신조어 범람과 한글의 잘못된 사용 등 우리 말 파괴 현상이 더욱 심각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한때는 한자에 치였던 한글이 이제는 영어에 밀려 그 설 자리를 위협 받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이 즐겨 사용하는 컴퓨터 통신 대화방의 한글 오염은 매우 걱정스럽다. 단어를 소리나는 대로 표기하거나 외래어를 남용하고 무리하게 줄인 말을 사용해 우리 말이 잡탕말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근(당연하다)’‘몰팅(몰래 하는 채팅)’‘20000(이만 안녕)’등 이곳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은 암호에 가깝다. 대중가요,영화제목,상호 간판등에서 영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 교육과 함께 대중의 언어사용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언론에서도 로마자를 제목으로 그대로 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구 제국시대’에 영어가 국제어로 자리잡고 있으므로 우리도 영어를 공용어로 해야한다는 엉뚱한 주장이 한 소설가에 의해 제기돼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에는 현존하는 세계언어의 90%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글은 사라지는 언어속에 포함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네스코는 지난해 훈민정음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우리 글의 우수성을 세계가 인정했는데 정작 우리가 한글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부끄러운일이다. 언어는 그 나라의 정체성을 지키는 최후 보루다. 국어를 지키고 가꾸는 일은 겨레의 얼을 지키고 가꾸는 일임을 한글날 우리 모두 마음 깊이 새겨야겠다.
  • 오늘 552돌 한글날/세종문화회관서 기념식

    훈민정음 반포 522돌 한글날 기념식이 9일 오전 10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김종필 국무총리와 박준규 국회의장 김용준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허웅 한글학회이사장 등 국어학계 인사,시민대표 등 3,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다. 또 오후 2시에는 문화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글학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공동주관하는 ‘한글의 역사와 미래’ 특별전이 예술의 전당 예술자료관 1층 전시장에서 열린다. 이와 함께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는 한글을 주제로 한 밀물현대 무용단의 창작무용이 공연되며,세종대왕기념관에서는 제6회 한글 글자체 공모전이,10일 한글회관에서는 전국 국어학 학술대회가 각각 개최될 예정이다.
  • “세종대왕 범패 손수 작곡”/朴範薰 국립국악단장 확인

    ◎김수온 ‘사리영응기’에 기록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작곡한 범패(梵唄)에 관한 기록이 국립국악관현악단 박범훈 단장에 의해 최초로 발견됐다.박씨는 세종 때 학자 김수온의 ‘사리영응기(舍利靈應記)’ 기록을 최근 확인,세종이 불교음악의 근간이 되는 범패를 직접 작곡한 사실을 밝혀냈다. ‘사리영응기’는 1920년대 퇴경 권상노 스님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그 자료를 받아 국학자인 자산 안확이 1930년 ‘불교’라는 잡지에 단편적으로 소개한 적이 있다.그러나 자료 내용의 일부만 소개됐을 뿐 전체가 심층적으로 조명되지는 못했다.우리나라 범패의 시원은 신라시대 진관선사로 알려져 있지만 이때 부른 범패에 대한 실체는 분명하지 않다.‘사리영응기’에 따르면 조선조 범패의 전통은 세종대왕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세종은 자신이 직접 창제한 범패를 가무악으로 공연했다.이러한 사실은 세종이 ‘봉래의’같은 향악 궁중정재와 함께 불교에 바탕을 둔 궁중정재도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 창무악 ‘백범 김구’ 작창 정철호 선생

    ◎“임방울류 적벽가 문화재 지정됐으면”/국창 임방울 선생의 유일한 생존 제자/신판소리·신창극·신민요 2만곡 작곡 “전통예술의 꽃이라 불리는 판소리의 모든 유파가 그 가치를 인정받고 보존 혜택을 받고 있는 데 비해 명창 임방울 선생의 소리는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아온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선생의 소리정신을 계승하고 득음(得音)의 세계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국창(國唱) 임방울 선생의 제자로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국악인 정철호씨(75·전남 도립남도국악단장).그는 임방울 선생의 판소리 유파를 계승·보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우리나라에서 무형문화재 지정제도가 처음 생긴 것이 1964년이기 때문에 61년 작고한 임방울 선생은 거기에 포함될 수 없었다.이런 현실에서 정씨는 스승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임방울류 적벽가를 완창,테이프를 내기도 했다. 국내 최고의 판소리 작창가이자 아쟁산조의 창시자로 중요 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고법(鼓法) 예능보유자인 정씨는 14세가 되던 해 목포에 공연온 임방울 선생을 처음 만났다. “선생의 소리를 듣다가 다른 사람의 소리는 못 듣는다고들 했습니다.선생의 목은 원래 ‘떡목’으로,십년을 하루같이 수련해 얻은 것이지요.선생은 소리하는 사람의 4대 요건이라 할 인물치레,사설치레,득음,너름새를 고루 갖추었습니다” 정씨는 판소리 명창이지만 그의 업적은 작곡 쪽에서 한층 빛난다 신창극·신판소리·신민요 등을 포함해 줄잡아 2만여개에 달한다.그 중 대표곡으로 꼽히는 것이 신작 판소리 ‘열사가’. “오늘날 회자되는 판소리 다섯 마당은 내용이 추상적일뿐 아니라 소재 또한 중국 것입니다.옛 것을 지키는 것도 좋지만 오늘의 조국이 있게 한 애국선열들의 이야기를 통해 민족정기를 일깨우는 것은 더욱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작창한 창무악 ‘백범 김구’도 그런 배경에서 나온 작품이다.그는 지금은 신작 판소리 ‘세종대왕’ 작창과 창무악 ‘춘하추동’ 개창(改唱)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소리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흥부가 아나? 춘향가 아는가? 심청가 아시는가? 적벽가 아십니까?”라는 말이 있다.적벽가는 부르기 힘들고,또 그런 어려운 곡을 부르는 소리꾼을 대접한다는 의미에서 생긴 말이다.적벽가는 임방울 선생의 대표창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정씨의 소망은 그 임방울류 판소리 적벽가가 널리 불리고 하루 빨리 문화재로 보호받는 것이다. “어떤 분야든 문화재로 지정이 안되면 제자로 입문해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요.임방울 소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는 인간문화재 제도라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합니다.” 국창 임방울의 법통이 끊어져선 안된다는 것은 비단 그만의 생각은 아니다.
  • 훈민정음 영인본으로 복원

    ◎세종대왕 탄신 600돌·세계기록유산등록 기념/고문헌 비교 분석/발간 당시 원형 재현 심혈/한글우수성 널리 알릴 귀중한 계기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훈민정음(訓民正音)이 영인본으로 복원됐다. 한글학회와 문화관광부는 지난해의 세종대왕 탄신 600주년과 ‘훈민정음’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등록을 기념해 ‘훈민정음’영인본을 최근 펴냈다. 도서출판 해성사. 이번 ‘훈민정음’은 15세기 세종대왕이 창제·반포한 한글의 원형을 복원하는 데 중점을 뒀다. ‘훈민정음’원본은 국보 제70호로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원본을 영인할 경우 원상이 손상될 우려가 있다. 그런 점을 감안,조선어학회(한글학회 전신)에서 1946년에 펴낸 ‘훈민정음’최초본을 토대로 영인작업을 벌였다. ‘세종실록’‘월인석보’등 ‘훈민정음’관련 고문헌들도 비교·분석해 1446년 발간 당시의 원형을 최대한 재현했다. 이번 영인작업은 특히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훈민정음’의 오류부분을 수정·보완한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쉼표 역할을 하는 권점(圈點)을 오른쪽에서 가운데로 옮겼고,성조(聲調)표시 권점을 첨삭했으며,일부 자구를 수정했다. 또 고색(古色)처리를 하지 않았으며 표지 문양은 서지학자 등의 견해에 따라 15세기 궁중에서 일상적으로 썼던 완자문(卍字紋)을 사용했다. 지질은 고문서 영인 때 주로 쓰이는 한지를 사용했으며 서명(書名)쪽수가 적힌 판심(版心)을 원형대로 복원했다. 간송미술관의 소장본은 중국이나 일본식인 ‘4침(針)안정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훈민정음’은 우리의 전통적인 제책방식에 따라 실로 다섯번 꿰매는 ‘5침 안정방식’으로 복원됐다. 지금까지 발견된 ‘훈민정음’의 이본(異本)은 모두 5종. ‘세종실록’에 실려 있는 순 한문체의 ‘훈민정음’과 ‘월인석보’첫째 권의 책머리에 부록돼 있는 ‘세종어제 훈민정음’,박승빈이 간수한 단행 판각본 ‘훈민정음’,최근 경북 안동군 이씨 집에서 발견된 전형필본 ‘훈민정음’,서강대학에서 간수하고 있는 ‘월인석보’에 실린 ‘세종어제 훈민정음’등이 그것이다. ‘훈민정음’영인본 발간은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귀중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735­3576.
  • 아!… ‘아래아 한글’(朴康文 코너)

    나는 89년 세운상가 4층 러브리소프트라는 가게에서 ‘한글’을 샀다. 개발자 이찬진씨한테 어디서 파느냐고 천리안 전자우편으로 물었더니 이곳을 일러 주었다. 그 때 그는 남의 소유인 이 가게의 한켠에 작은 책상 하나를 놓고 5.25인치 디스켓 다섯 장에 든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 ‘한글’을 팔았다. 그는 대학노트를 펴고 기다란 일련번호 다음에 구입자 주소 성명을 모나미 볼펜으로 적은 뒤 1번 디스켓 레이블에 그 번호를 써 주었다. 그와 말을 나눈 것은 이 때를 앞뒤로 하여 두어 번밖에 되지 않는다.그는 수줍음을 타는 편이었는데 겸손하고 성실한 젊은이라는 인상을 주었다.그런 그가 뒷날 화려하게 날개를 펴고 한글과컴퓨터라는 회사의 사장이 되어 한국의 빌 게이츠로 날아오를 줄은 그 때 짐작도 하지 못했다. 그는 내가 외국에 나가 있게 된다는 것을 알고는 출국할 때쯤에 새 버전이 나올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그 해 여름 새 버전으로 바꿔 미국에 가서 잘썼다.그의 성실함에 끌려 ‘프로그램의 이러이러한 점은 저러저러하게 고쳤으면 좋겠다’고 꽤 긴 편지를 서울에 보내기도 했다. 미국서 잠시 함께 지내던 국어학자 서 아무개 교수도 나와 마찬가지로 ‘한글’사랑에 빠진 이였다.세종대왕 이후의 최대 업적이라고 극찬했다. ‘한글’이야말로 한글 워드프로세서라고 할 만한 것으로는 유일한 것이었다.이것이 나옴으로써 컴퓨터에서 한글이 비로소 제대로 살아 빛을 뿜었다.이찬진씨에게 훈장을 주어야 한다는 서 교수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나는 ‘한글’이 처음 나올 때부터,그 뒤 여러 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쳐 이제까지,10 년 동안 써 왔다.내 머리 속의 생각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글로 짜여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글을 읽었다. 이찬진,그가 빛나는 한국의 빌 게이츠가 되리라는 것도 몰랐지만, 그가 자신의 분신이라 할 ‘한글’에 스스로 사형선고를 내리는 날이 오리라는 것은 더더욱 상상할 수 없었다.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은 나 같은 이보다야 그자신이 몇 백 갑절 더할 것이다. 고민도 많았으리라. 그를 생각하면 죄책감,허탈감이 밀려 온다. 우리가 누린 만큼 그에게 제대로 보답했는가.우리 잇속만 챙기고 그의 고민을 외면하지 않았는가.사실 여러 번의 버전업이 있었지만,내가 정품을 구입했던 것은 두 번 아니면 세 번밖에 되지 않는다.컴퓨터를 사면 하드 디스크에 이미 설치된 경우가 있어 굳이 따로 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배신감도 한편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른다.그 길밖에 없었는가.자신이 만들기는 했지만,또 비록 그것이 돈벌이가 안된다지만,이제 국민적 자산이 된 ‘한글’을 버릴 수 있는가.자기 ‘아이’를 버리기로 하고 2,000만 달러를 빌 게이츠에게서 얻다니. 소프트웨어 불법복제가 성행하고 정품이 팔리지 않는 풍토를 그가 원망하지만, 이름없는 청년을 오늘의 그로 자라게 한 밑거름은 초기에 싸지 않은 값을 치르고 정품을 구입한 사람들이 뿌렸다. 초기의 겸손을 잊은 것이 오늘이 사태의 원인일 수도 있다. 이제,자꾸만 그가,영혼을 판 파우스트처럼 보이니 슬프다.무너지는‘한글’의 신화가 가슴 아프다.
  • 한국 역사속의 여성 위인/여성개발원 책자 발간

    이순신,김유신,세종대왕… 위인전의 주인공들은 이처럼 거의 남자다.어쩌다 끼어드는 신사임당 등도 업적보다는 현모양처란 점에서 각광받는다. 한국여성개발원이 펴낸 ‘한국역사속의 여성인물’은 여성차별 유교문화 아래 역사의 주류에서 철저히 소외돼온 여성들을 발굴,복권하는 책. 70여명의 여성위인을 상·하권에 나눠 소개한 그 상권이 나왔으며 하권은 올 하반기 출간예정.상권에는 고대부터 개화기까지,하권에는 일제시대 인물을 실었다.여성개발원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내용을 볼 수 있다.주소는 http://kwoninet.or.kr이다.356­0070.
  • 스승의 날 2월로 옮겨야하나(쟁점)

    5월 15일 스승의날을 2월로 옮겨야한다는 주장이 나와 찬반의견이 분분하다.“빡빡한 학기중에는 스승의날 본연의 뜻도 살리기 힘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이 매우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 2월 스승의날 주장의 이유.그러나 “5월은 어린이날·어버이날 등이 있는 가정의달이며 스승의날도 그 연장선상에서 있는 것”이라는 반대론도 많다.대표적인 찬·반론을 들어본다. ◎찬/5월 여러가지 행사 겹치고 학기초라 학부모 선물 부담/한해결산 ‘책거리’ 미풍 살려 감사의 표현 2월 바람직/吳星淑 참교육 학부모회장 스승의날은 어려운 교육여건에서도 우리 아이들이 올곧게 자라도록 애쓰시는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제정됐다고 생각한다.스승의날의 의미를 제대로 살려나가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실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그러나 ‘5월 15일 스승의날’은 빡빡한 학기중이라 현실적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준비하고 실천하는 스승의날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학부모 역시 5월은 아이들의 소풍,운동회 등 이런저런 행사들이 많은 데다 학기초에 ‘스승의날’이 있어 “첫 인사라도 해야할텐데 그냥 가도 될까,무슨 선물을 해야할까” 등등 고민스럽기만 하다. 스승의날로 제정된 5월15일은 세종대왕의 탄생일일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한다.오히려 교사와 학부모,학생들이 모두 건강하게 참여할 수 있는 즐거운 스승의날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2월로 옮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2월에 스승의날을 맞는다면 학생들은 1년간 수고하신 선생님께 개인적인 선물보다 공동으로 준비한 선물을 드리거나,행사를 마련하기에 더욱 좋을 것이다. 1년간 선생님과 함께 생활한 모습을 담은 앨범이나,감사의 말과 노래를 담은 테이프 등은 선생님께 훌륭한 선물이 될 수 있다고 본다.이러한 작업은 빡빡한 학기중에는 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2월은 한 학년을 마감하는 때이기 때문에 학부모·교사·학생 모두 진심으로 한해동안 수고한 선생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에 좋고 교사도 더욱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많은 학부모들이 부담스러워 한다면 ‘선생님에게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는 날’이라는 스승의날의 진정한 의미도 찾기 어렵다. ◎반/방학중 텅빈 교정에서 행사 선생님·학생 모두에 허탈감/교사·학생 학부모 혼연일체 존경·사랑·신뢰 회복이 우선/鄭昌鉉 중동고 교장 지난 15일은 국가가 정한 제17회 스승의날이었다.스승의날을 맞아 제자가 존경하는 마음으로 스승님께 선물을 드리고,또한 학부모가 자녀의 선생님에게 고마움의 뜻을 전하는 것은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아름다운 풍속일 수도 있다.그러나 이같은 풍속이 일부 학부모들의 ‘내자식만을 위한 이기심’과 일부 교직자들의 ‘사사로운 욕심’에 편승해 파행적 교육으로 변질돼가고 있는 현실이 실로 안타깝고 부끄럽다. 또한 스승의날을 2월로 옮기자는 주장을 접하고서는 실로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스승의날을 맞는 학부모들의 심적 부담이 오죽했으면 그러한 주장이 나왔을까 하고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지만,방학중의 텅빈 교정에서 맞는 스승의날은 모든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허탈감만 안겨주는 결과를 낳을것이다.5월은 가정의달이면서 그 안에 어린이날,어버이날이 있고 그 연장선상에 스승의날도 있는 것이다. 스승의 품위를 해치는 아름답지 못한 일들이 아직도 학교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든 교육자들이 반성해야할 일이다.실제로 많은 선생님들은 반성하고 있고,이를 근절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제자들이 보기에도 민망하게 ‘촌지근절’이란 현수막을 교문에 걸기도 하고,어쩔수 없이 받게된 촌지를 넣으라고 ‘촌지함’을 설치한 학교도 있다. 이제는 정말로 교사와 학생,학부모가 혼연일체가 되어 참교육을 위해 노력해야할 때이다.제자들의 스승을 향한 존경심과 선생님의 제자를 향한 사랑,교사와 학부모간의 신뢰감은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이러한 노력이 조금이나마 결실을 맺어 내년 5월에는 모두의 신뢰를 확인하는 스승의날이 되기를 기대한다.
  • 부담스러운 스승의 날(사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다.오늘은 우리의 미래를 맡긴 스승의 은혜를 기리는 날이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 스승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스승의 날은 선생님에게도,학생에게도,학부모에게도 부담스러운 날이 돼 버렸다.학부모들은 선생님께 인사를 차리자니 부담스럽고 안하자니 불안하다.학생들은 “촌지나 금품을 보내지 말고 학부모의 학교 방문을 삼가달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학교에서 집으로 전달해야 한다.죄인 취급 받는 선생님들은 아내와 자식,친구 보기가 민망스럽고 부끄럽다. 올해 스승의 날은 더욱 우울하다.교육부가 5월을 ‘촌지 없는 달’로 정한 가운데 각급학교에서는 오해를 없애기 위해 스승의 날 기념식을 축소하거나 없애 버렸다.스승의 날이 오히려 괴로운 선생님들은 차라리 스승의 날 하루를 휴업할 것을 적극 검토하기도 했다.교육청의 ‘불가’방침으로 초·중·고교의 스승의 날 휴업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서울 강남 유치원들은 스승의 날 하루 문을 닫는다.한 시민단체는 스승의 날을 2월로 옮기자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게다가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두고 인터넷에 음란방을 개설한 초등학교 교사가 구속되는 기막힌 사건까지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스승의 날은 무의미하다.모두에게 부담스럽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스승의 날은 없느니만 못하다는 생각까지 든다.언제까지 스승의 날을 이렇게 방치할 수는 없다.우리 모두 스승의 날이 부모만큼 스승을 공경하던 전래의 미풍이 이어지는 날로 되살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 스승의 날을 2월로 옮기는 것도 적극 검토해 볼 만하다고 본다.학기중인 5월 스승의 날의 감사표시는 자칫 ‘거래’로 흐르기 쉽지만 학년말인 2월 스승의 날 선생님께 드리는 인사는 순수한 감사의 표시가 될 수있을 것이다.스승의 날은 지난 63년 충남지역 청소년적십자회가 9월21일을 은사의 날로 정해 기념행사를 한 것에서 비롯돼 5월26일로 바뀌었다가 65년부터 세종대왕 탄신 기념일인 5월15일로 변경됐고 73년 정부 서정쇄신 방침에 따라 폐지됐다가 82년 부활한 것이다.그러나 스승의 날을 2월로 옮긴다 해도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회복되지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은 촌지교사,폭력교사,음란교사의 책임이지만 소수의 혐의를 전체에 확대하는 무신경으로 선생님을 업수이여긴 학부모들의 책임도 크다.우리의 미래를 위해 선생님에게 촌지대신 존경의 마음을 보내자.
  • 世宗大王고교/李世基 社賓 논설위원(外言內言)

    학교명칭은 설립자의 아호나 시도군면 등 고장을 앞세우는 것이 보통이다.또는 설립자의 이름과 교육의 의미를 섞어 짓기도 한다.조선왕조 말기의 문신이던 閔泳徽가 설립한 휘문의숙(徽文義塾)이 그 한 예이고 오산(五山)학교의 경우는 1907년 李昇薰이 평북 정주군 오산면에 창립했으나 해방후 서울의 오산중고가 되었다.숭전(崇田)대학은 미국인 선교사가 평양에 설립한 숭실학교와 지난 71년 대전대학을 통합한 것이다.배재(培材)학교는 재인을 길러낸다는 의미이고 양정(養正)학교는 정도(正道)를 닦는다는 뜻을 명칭속에 담고 있다.미국의 유명한 하버드대학은 설립자인 존 하버드의 이름을 딴 것이다.북한에는 김일성가계 우상화작업을 위한 김일성종합대학,김정숙교원대학,아버지인 김형직사범대학이 있고 김일성의 빨치산시절에 그의 부하로 용맹을 떨쳤다는 오중흡사범대학도 있다.이 대학은 본래 청진 제1사범대학이었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세종대왕고교’가 탄생했다고 한다.본래는 ‘제19고등학교’였으나 세종대왕의 학문적 업적과 문화사랑정신을 본받자는 의미에서 ‘세종대왕 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꿨다는 것이다.이 학교가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근처에 있는 대우자동차의 폴란드합작회사인 ‘대우­FSO’공장때문이며 지난해 한국어 학습반을 설치하고 학교이름을 고친 것을 기념하여 폴란드의 6개 고교생들이 모여 ‘한국에 관한 지식경연대회’를 열기도 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지난해엔 일본인 천문학자 와다나베 하나로씨가 발견한 ‘1996 QV1’이라는 소행성에 세종대왕을 뜻하는 ‘SEJONG’을 붙이더니 이번엔 외국고교 명칭에 세종을 붙이는 걸 보아 우리의 세종대왕은 과연 세계적인 대왕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서울에도 세종대학이 있긴 하지만 알렉산더대왕이나 나폴레옹처럼 세계사에 빛나는 위대한 대왕을 가졌다는 자부심마저 생긴다.역사의 힘은 역시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이 도도하기만 하다.세월이 가고시대가 변해도 그 찬란한 업적은 한치 오차없이 언제라도 그 빛을 발하게 된다는 진리를 다시한번 일깨운다.
  • 소행성 ‘세종’ 촬영 성공/한국표준과학원 부설 천문대

    ◎일 아마 천문가 96년 첫 발견 소행성 ‘세종’의 모습이 마침내 망원경에 잡혔다. 한국표준과학원 부설 천문대는 최근 1.8m 광학망원경으로 새벽녘 게자리에서 이동중인 소행성 ‘세종’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세종’은 원래 지난 96년 일본 아마추어 천문가 와타나베 가즈오씨가 발견,국제천문연맹(IAU)이 ‘1996QV1’으로 명명한 소행성.그 뒤 일본 천문학자 후루카와 기이치로 박사가 세종대왕 탄생 600주년을 기리기 위해 ‘세종(Sejong)’으로 명명할 것을 제안,지난 3월 공식으로 채택됐다. 천문대 金奉奎 연구원은 “소행성 ‘세종’이 있는 게자리는 초저녁부터 이른 새벽까지 볼 수 있고 저녁 8시쯤에는 남쪽 하늘 높이 떠 있다”면서 “그러나 이 소행성의 밝기는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어두운 별의 1백만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아 소형 천체망원경으로는 관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 TV 왕조실록과 古典 번역/이계황 전통문화연구회장(굄돌)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역사에 관한 주제를 재미있게 꾸려가며 해설자가 컴퓨터 오퍼레이터에게 ‘조선왕조실록’에는 어떻게 기술되어 있나 검색하는 장면이 나온다.또한 조선개국과 태종을 조명하는 ‘용의 눈물’은 월탄 박종화 원작 ‘세종대왕’을 극화한 것인데,해설에 조선조 야사인 ‘연려실기술’을 인용하고 있다. 이 ‘연려실기술’과 CD­ROM ‘조선왕조실록’이 나오기까지는 정부지원으로 20여년간 12억원을 들여 400여책의 번역작업이 이루어졌고,이를 CD­ROM으로 제작한 덕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한문고전 번역을 살펴 보면 한글창제후 불경과 유교경전 등의 諺解(언해)에서 시작되었다.그후 개화기부터 해방직후까지는 번역의 필요성은 논의되었으나 사회의 혼란과 한문고전 이해층이 많아서인지 많은 실적은 없었다.그러나 한글전용후 한글세대가 많아지고 한문고전을 번역할 만한 학자가 점차 타계하자 학예술계의 권고에 따라 박정희 대통령은 본격적으로 고전국역 사업에 착수하여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으나 이는 시작에 불과한 실정이라 하겠다. 일반적으로 번역이란 외국어를 자국어로 의미전환하는 것으로,외국의 언어는 물론 역사와 문화의 전문지식에 문학성까지 겸비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어려운 작업이다.이러한 번역은 문화교류의 중요한 수단으로써 유교문화나 불교문화나 기독교문화의 수용과 전파에서 경전 등의 번역이 결정적 역할을 하여온 것은 상식적으로도 알 수 있다. 난세에는 고전에서 지혜를 찾는다고 한다.우리 선현들이 수천년 겪어온 인고의 삶의 모습을 우리의 번역 고전에서 찾아보고 배워야 하겠다.이런 뜻에서 이 시기야말로 국민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게 하는 고전국역사업이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한가를 다시 한번 생각할 때가 아닌가.
  • 사라진 청와대 독대/박성래 외국어대 교수·과학사(서울광장)

    ○예로부터 경계의 대상 “청와대 투명하게 독대 없앤다”­ 11일자 서울신문의 첫머리 제목이다.독대란 임금이 신하를 다른 사람이 배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이런 만남은 조선 시대에는 흔히 참소의 기회로 이용되고,그렇게 오해되는 수가 많았다.당연히 옛 사람들은 독대란 것 그자체를 좋지 않게 여기는 수가 많았다. 적어도 형식상 조선 시대까지의 임금은 절대권력을 휘두른 권력자였다.그의 마음 돌아가는 데 따라 세상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바뀌고 흔들리는 것이당연한 일이었다.그런데 임금이란 반드시 훌륭한 인물이기는커녕,오히려 대체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그런 임금에게 혀끝이 날카로운 인물이혼자 찾아가 세치 혀를 놀리는 날이면 세상이 피바다로 변하는 수가 없지 않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독대란 신하들로서는 경계의 대상이었다.실제로 숙종 43(1717)년 7월 좌의정 이이명의 독대 사건은 당시 한바탕 소란을불러 일으킨 적도 있다.그런데 그날 노론의 대표격이던 이이명이 숙종과 만나 어떤이야기를 나눴던가는 확실하지 않다.그날 낮에 임금은 그를 불러들였고,대궐로 들어가면서 그는 분명히 “일이 상규와 다르니 승지와 사관은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모름지기 나와 함께 들어가는 것이 옳겠다.”한 것으로 당시 ‘실록’은 전한다.하지만 승지와 사관이 들어가기 전에 이미 임금과 이이명은 독대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독대 직후 임금은 건강을 이유로 세자에게 청정할 것을 명했다.분명히 임금은 그 독대에서 좌의정 이이명에게 그의 뜻을 전했고,이에 대해 상의했던 것으로 보인다.그런데 당시 세자란 다름아닌 장희빈의 아들로 뒤에 경종이 된 인물이다.오랜 동안 세자 자리를 지키고는 있었지만,정치적으로 그리 튼튼할 수는 없는 처지였다.그리고 당시 지배층은 장희빈과 민비,세자와다른 가능한 후계자등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임금에게 이상한 소리가 전해질 것을 몹시 두려워하며 서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판국이었다.좌우간 이이명의 독대는 당시 정국을 뒤흔드는 엄청난 효과를 보였고,이이명 자신에게도 결코 유리한것은 아니었다. ○때론 정국 뒤흔들기도 1717년의 독대가 조선 시대의 유일한 독대는 아니다.유명한 학자 우암 송시열은 1659(효종 10)년 3월 11일 효종의 부름을 받고 독대한 일이있다.이 일은 뒷날 자신의 회고록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규장각에 남아 있는 ‘독대설화’라는 17쪽 짜리 책이 그것이다.효종 때 북벌을 주장한 것으로도 잘 알려진 송시열이 효종 임금과 독대해 나눈 대화는 북벌에 관한 것 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그는 이 자리에서 임금에게 이율곡등의 위패를 문묘에 모시는 문제를 공론이라며 거론했고,또 소현세자의 세자빈과 관련된 억울한 일을 풀어주려는 요청도 했다.온갖 정치적 문제들이 거론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세종대왕도 폐지 반대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송시열의 독대는 그리 심한 비판을 받지 않았는데,한 세기 뒤의 이이명의 독대는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이다.아니,독대란 조선 초기에는 그저 범상스럽기까지 한 관행이었던 것으로도 보인다.세종 7년 8월 사간원에서 올린 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옛적에는 사관을 두어서 임금의 행동을 반드시 적고,그때의 사실을반드시 기록하여,후세에 공도를 보였습니다.지금 우리 나라에서는…육조·대간이 조계한 뒤에 독대하여 실정을 아뢰도록 하는데,이는 진실로 성대의 아름다운 법입니다.그러나 사관이 참여하지못하니 그 아름다운 말씀과 착한 행실을 어떻게 해서 후세에 전하겠습니까.전하께서는 이제부터 윤대할 때에 사관도 참여하도록 하시기를 원합니다.” ○청와대 관행 정착 기대 하지만 세종은 사관을 참석시키자는 말을 거절했다.그래도 세종 때에는 별 반발이 없었다.성종과 중종 때에도 독대는 있었고 아무 말썽도 없었다.선조 때의 이율곡은 임금과의 독대가 흔히 있는 일이었고 또 바람직한 일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청와대가 독대를 없애는 것이 중요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가능한 한 중요한 모든 모임에 통치사료 비서관을 참석시켜 기록을 남기겠다는 것은 대단히 좋은 발상인 것으로 보인다.말하자면 사관을 동석시킨다는 뜻이라 하겠다.조선 시대에는 임금과 대신의 만남에는 반드시 사관과 승지가 배석하게 되어 있었고,그런 경우 이를 독대라 하지 않았다.부디 한번잘 먹은 생각을 오래 지켜 주기만 바랄 따름이다.
  • 세종대왕별/이세기 사빈 논설위원(외언내언)

    지구에서 육안으로 볼수 있는 가장 먼 천체는 안드로메다성좌다.그러나 거대한 이 와상성운은 2백만 광년이나 떨어져있어 밤하늘의 희미한 얼룩으로 보일 뿐이다.태양밖에 있는 별중에서 태양에 가장 가까운 별은 4.25광년 거리의 프록시마 켄타우리이고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보이는 별은 천랑성으로 불리는 시리우스와 카노푸스,인마좌의 알파성과 목동좌의 아르크투루스 등이다.가장 작은 항성들은 행성정도의 크기로 직경이 1만6천㎞ 이하가 대부분이다.이제까지 발견된 가장 작은 별은 이리좌의 457번성으로 태양크기의 1천분의 3밖에 되지 않으며 지구보다 작다. 일본인 천문학자 와다나베 하나로(도변화랑)씨가 발견한 ‘1996 QV1’이라는 소행성에 우리의 세종대왕을 뜻하는 ‘(7365)SEJONG’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이름이 붙여진 7천여개 별중에서 7천365번째로 우리의 별이름을 갖게된 셈이다.평소 세종을 존경해온 도쿄천문대 후루카와 기이치로(길천기일랑)교수가 지난해 600주년을 맞은 세종대왕탄신을 기념하기 위해 발견자인 와타나베씨의 동의를 얻어 국제천문연맹에 제출하면서 이뤄진 것이다.세종의 업적은 한글창제 외에도 그 시대의 장영실 측우기는 1639년 이탈리아의 가스텔리가 발명한 것보다 약 200년이나 앞선 것이다.궁중에 과학관인 흠경각을 설치하고 혼천의·해시계·물시계 외에 천문·역법에 관한 ‘제가역상집’을 펴낸 것도 세종대왕이다.만약 그가 일본의 왕이었다면 그는 세계를 통틀어 학문과 문화의 근본이요 과학의 원조로서 국민의 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힘이 아닌,일본학자들에 의해 붙여지긴 했으나 국경을 초월하여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는 그들의 자세는 뭔가 배울만 하다고 여겨진다.누구나 저많은 별중에서 하나의 별이 되고자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우러르고 흠모하며 꿈을 갖게되기 때문이다.가람이 ‘저별은 뉘별이며 내별 또한 어느 게요’한 것처럼 우리의 별도 있다고 생각하니 밤하늘의 별이 더욱 빛나고 희망차게 보일 것 같다.
  • ‘세종대왕별’ 탄생/소행성 발견 일 학자 천거

    ◎작년 국제천문연서 결정 일본인 천문학자가 발견한 소행성에 ‘세종’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연세대 나일성 명예교수(천문우주학)는 4일 “국제천문연맹(IAU) 소행성 분과위원회가 96년 새로 발견된 한 소행성의 이름을 세종대왕 탄신 6백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10월 ‘(7365)SEJONG’으로 결정,공포한 사실이 최근 국내에 전해졌다”고 밝혔다. 소행성 ‘세종’은 일본인 천문학자 와타나베 가즈오(도변화랑)에 의해 발견됐으며 그동안 ‘1996 QV1’이라는 임시명으로 불려왔다. 나교수는 “지금까지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발견된 7천여개의 소행성 중 한국인이 발견한 것을 하나도 없으며 우리나라와 관계된 이름이 붙여진 것도 세종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소행성에 ‘세종’이라는 이름이 붙게된 것은 세종대왕 연구에 조예가 깊은 동경천문대 후루카와 기이치로(고천기일랑)교수가 발견자 와타나베씨에게 제안해 성사됐다.
  • 문신 그 육체훼손의 미학/월간 ‘지오’ 3월호 특집기사

    “너희 몸에 먹물로 어떤 무늬도 새기지 말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모세가 유태인들에게 문신을 금지한 후로 유럽에서 문신은 한때 퇴조의 길을 걸었다.그러나 문신은 여전히 결속의 징표로,또 남태평양의 여러 섬나라에서는 아름다움과 힘을 과시하는 최고의 상징으로 널리 애용되고 있다. 본격 다큐멘터리 잡지 월간 ‘지오’(두비) 3월호는 문신­그 육체훼손의 미학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어 눈길을 끈다. 1769년 당시 폴리네시아 여러 나라들을 여행한 영국인 선장 제임스 쿡은 유럽으로 돌아가 원주민들의 몸에 그려진 화려한 그림에 대해 설명했다.그가 전한 ‘예술적’이라는 의미의 타이티 언어 ‘타타우(tatau)’는 문신이란 뜻의 영어 단어 ‘태투(tattoo)’의 어원이 됐다. 문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인도다.인도에서는 문신술 자체가 규수가 익혀야할 교양과 기예 중 하나로 정해져 있다.특히 여자들의 정수리에 그려진 작은 점,곧 백호상은 순결을 지켜주고 정숙함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통한다.또 남인도 케랄라 주의 족장은 신격화 의식을 위해 ‘테이얌’이라는 복장을 해야 한다.죽은 뒤 부족의 정령으로 모셔질 그는 몸 전체를 화려하게 장식해 최고의 지도자라는 표시를 남긴다. 몸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일심동체임을 확인하는 서약 의식으로서의 문신은 우리나라에서도 그 역사가 깊다.대표적인 것이 바로 연인간의 연비다.삼국시대 이후 여염이나 기방에서 행하던 연비는 같은 부위에 같은 문양이나 글귀를 쪼아 먹을 먹여 서로의 몸에 베품으로써 연인끼리 사랑을 맹세하는 일종의 서약식이다.조선 초 성도덕 관념을 흔들었던 어우동 사건이 알려진 것도 연비 문신 때문이었다.성종 당시 뭇 양반들을 거느렸던 어우동의 팔뚝에는 각기 다른 남자와 사랑을 약속한 연비 문신이 여섯 개나 있었다. 세종대왕의 형 효령대군의 손자 며느리였던 어우동은 결국 시어머니의 구박과 양반가의 부당한 처사에 “이제부터 당신네들의 노리개가 아닌 한 인간으로 살겠다”고 선언하며 소박을 자청해 집을 나온다.아름다운 사랑의 약속인 연비 풍속도 후에는 ‘곰배팔이 할개눈에 째보년도 팔을쪼을 줄 안다’는 속담이 나올 정도로 천시됐다.우리나라에서는 또 신분을 구별하고 범죄자임을 표시하기 위해 문신을 사용했다.흔히 ‘경칠놈’이라는 욕을 하는데,여기서 경친다의 경은 살갗을 쪼아 입묵을 하는 문신을 뜻한다.혹형을 폐지한 영조 이전까지만 해도 나랏돈이나 세금을 횡령한 관리에게는 오른쪽 팔뚝에 경을 쳐 죽을 때까지 지울 수 없게 했다. 이번 호에서는 또 효과적인 캐릭터 상품으로서의 기능을 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문신에 대해서도 소개한다.인기 여배우 미라 소르비노는 퀼트 문양의 문신을 양손과 등에 새겼고,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아역배우 조나단 리프니키는 오른 팔뚝에 용맹스런 독수리 문신을 지니고 있다.한편 문신은 낯선 이국땅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 사이에서는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긍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된다.로스앤젤레스 빈민가의 멕시칸들 대부분이 왼쪽손등 부위에 3방사형 문신을 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 세계 문화유산의 해/’97문화계 결산

    ◎수원 화성·창덕궁 세계문화유산 지정 개가 문화유산의 해는 무엇을 남겼나.올해 정부가 정한 문화유산의 해가 지난 8일 폐막식을 갖고 막을 내렸다.올해는 수원 화성과 창덕궁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돼 우리 문화유산이 또 한번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다.이같은 분위기와는 별도로 국내에서도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도 적지않게 바뀐 것으로 평가된다.그러나 정작 우리 문화유산을 보호·보존하기 위한 근본적인 제도마련 측면에선 아쉬움이 남는다는 견해가 적지않은게 사실이다. 지난 1월 선포식을 갖고 시작된 문화유산의 해는 다양한 사업을 발표하면서 출발했다.고병익 위원장을 중심으로 운영된 조직위원회는 ‘민족의 얼 문화유산 알고 찾고 가꾸자’라는 표어를 내걸고 조직위 추진사업과 문화재관리국 추진사업을 포함,모두 72건의 사업계획을 발표하면서 공식 활동에 들어갔다. 이같은 사업계획은 우선 문화유산 애호에 대한 국민의식 제고와 전통문화유산의 현대적 계승,문화유산 보존관리의 질적 향상과 관리체제의 합리적 개선을 근간으로 했다.문화유산의 해가 무리없이 출발한 데는 문화체육부 문화재관리국의 예산확보 노력이 큰 작용을 했다.97년도 예산이 전년도보다 3백34억원이 늘어난 1천2백42억원이 확보됐고 지방자치단체도 문화유산관련예산으로 5백44억원을 배정했다.예산확보에 따라 전남 해남군 금쇄동 유적의 정밀조사를 통해 그 중요성을 확인하고 문화재관리국에 문화재로 지정해줄 것을 의뢰한 것을 비롯해 흥례문 복원공사 착공식,세종대왕 즉위의식,국조보감을 왕과 종묘에 올리는 의식,전통왕릉 제례의식 등 궁중문화를 재현해 볼거리들을 제공하면서 문화유산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유발했다.또 그동안 문체부가 정한 문화의 해가 5번째를 지나도록 헌장제정이 없었던데 비해 문화유산헌장을 제정,선포한 것도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수원 화성과 창덕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면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돼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또다른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성과에 비해 거시적인 측면의 문화유산 측면은 다소 미흡하다고 볼 수 있다.문화재 분야의 예산이 대폭 확충된 것은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인정한 큰 흐름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제도적 장치마련에서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우선 문화재관리국을 중심으로 추진해온 문화재보호법 개정이 완결을 보지 못했고 문화유산의 해 조직위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매장문화재 제도개선도 충분한 성과를 가져왔다고는 볼 수 없다.또 역사고도 보존특별법 제정,문화재관리국의 청 승격,문화재 관련 고급인력 양성 등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미결로 남아 문화유산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와 진취적인 개선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아도 무난할 것이다.
  • 올해 문화정책 ‘삶의 질 향상’에 보탬

    ◎문화기반 시설 확충·국제교류 활성화/남북문화 충격 완화 기본안 마련 성과/졸속 정책 입안 등 비판 목소리도 높아 올해 문화정책은 무엇보다도 국민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이 모아진다.연초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기본정책 구상을 밝힌 것이나 ‘문화비전2000’을 통해 21세기 문화의 세기에 대비한 기본적인 기저를 천명한 것이 모두 이같은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문체부가 만든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기본정책 구상’과 문화비전 2000에서 명확히 설정한 기본 방향은 ▲문화기반시설 확충과 ▲우리말글 진흥발전 ▲국제문화교류 활성화 ▲그리고 남북문화교류기반 마련 등으로 요약된다.이같은 계획은 우선 문화 향수권의 신장을 통한 우리 문화알리기 작업으로 모아지는데 여기에는 문화의 집 개설과 지방문예회관 건립 ▲공공도서관 건립지원 쪽에서 좋은 결과를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지방문예회관 건립지원에 20개관에 17억원을 지원한 것이나 공공도서관 23개관에 83억원을 지원한것,15개의 문화의 집 개설 등이 좋은반응을 얻은 사업이랄 수 있다.우리말 글 진흥쪽에서는 세종대왕 600돌 기념사업을 비롯해 한글 점자규정 제정,언어권별 한국어 교재 개발 보급 등을 빼놓을 수 없다.여기에 통일에 대비한 남북문화교류를 위한 북한 문화재 전문가 정례토론회를 마련한 것이나 남북문화 충격완화를 위한 기본구상을 마련한 것도 큰 성과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여기에 문화비전 2000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문화정책을 제시,문화예술의 방향과 국민 문화 향수권 신장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 것은 문화정책 측면에서의 두드러진 진전으로 평가된다.문화교류 측면에선 통합 이미지(CI) 10개를 제정,보급한 것도 예년엔 볼 수 없었던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정책 측면과는 달리 실제 국민들의 입장에선 아직도 미흡한게 사실.우선 문화인프라 쪽에서 문화의 집 등 문화시설 확충에선 어느 정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마련과 꾸준한 공급에선 열악한게 사실이다.특히 문화예술 분야 예산 1% 확보가 결국 무산된 것이나 문예진흥기금 운영의비공평성 등이 계속 거론되고 있고 정책 입안과정의 졸속에 대한 비판이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는 문제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 ‘영종도 신공항’이름 바꾸자/이원택 서원대 교수·경영학(발언대)

    영종도에 건설중인 신공항은 동양최대의 물류기지이자 동북아의 중심공항으로서 태평양시대를 선도할 위치로 부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그러나지역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이를 홍보하고,국가의 이익을 도모할 절호의 기회를 놓칠 위기에 처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공식명칭 때문이다.이 공항의 정식 명칭인 ‘서울인천국제공항’은 지난 92년 명칭 공모때 8위를 차지했던 이름이다.최다 응모작인‘세종공항’을 제치고 정식명칭으로 채택된 것은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전후한 상황에서 거센 지역압력에 밀렸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영종도 신공항을 ‘세종국제공항’으로 명명할 것을 제의한다. 그 이유는 첫째,세종대왕은 한민족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불멸의 위대하고도 빛나는 치적을 남긴 성군이기 때문이다.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제정·반포한 것 외에 집현전을 만들고 우수한 학자들을 육성하였고 궁중 도서관인 장서각외에 수정전,검사청 등을 지었다.또 측우기 해시계물시계 등을 발명,당시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 오지 못할제어계측공학의 발전을 이루었다. 둘째는 한글의 합리성과 과학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유네스코도 국제사회에서 전세계의 문맹퇴치 유공자에게 세종대왕상인 ‘킹세종 프라이스’를 계속 시행해 오고 있으며 미국 시카고 대학의 저명한 언어학자인 제임스 맥클리 교수도 해마다 한글날에 다른 언어학자·제자들과 함꼐 20여년째 기념행사를 계속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계 여러나라에는 국가와 사회에 크게 공헌한 인물의 이름을 딴 공항이 많이 있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들고 싶다.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파리의 샤를르 드골 공항,뮌헨의 프란츠슈트라우스공항,뉴욕의 존 F 케네디공항 등이 있으며 특히 최근 워싱턴의 내셔널 공항을 로널드 레이건 공항으로 바꾸기로 결의했다고 한다. 명칭공모시 1위로 선정된 세종국제공항을 영종도 공항의 이름으로 명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세종대왕 탄진 600년인 올해가 저물기 전에 다시 세종공항으로 환원되어 자손만대까지 세계역사속에 기록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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