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세종대왕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캣맘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체모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버핏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초수축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806
  • 흙길따라 달리는 경북 성주 ‘0번 버스’

    흙길따라 달리는 경북 성주 ‘0번 버스’

    버스가 자주 안오니께네 통 사람구실하기가 어려븐 기라. 눈발이 쪼매만 날다카믄 안들어오제, 비온다꼬 안들어 오제, 병원가는 기야 그렇다치지만서도 상가집을 제대로 갈 수가 있나, 불편한 기 한두개가 아인 기라 신작로 저편에서 버스가 달려옵니다. 군데군데 파여 불편하기 짝이 없는 흙길 위로 네 바퀴가 경망을 떨며 달려옵니다. 곧이어 희뿌연 흙먼지가 길가 코스모스꽃 위에 들이닥칩니다. 입으로 불어 흙먼지를 털어내고 나면 온갖 빛깔로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잇몸을 드러낸 어린아이처럼 밝게 웃습니다. 어린 시절 보았던 흙길에 대한 기억입니다. 요즘 세상에 아직도 흙길이 있을까 싶지만, 경북 성주의 0번 버스는 그런 길을 달립니다. 군도 11번을 따라 성주 읍내와 산골마을 작은리(鵲隱里)를 오갑니다. 조금씩 포장공사가 이뤄져 현재는 편도 10여㎞ 거리 중 2㎞남짓한 구간에만 흙길이 남아있습니다. 그마저 순차적으로 포장될 계획이라 하니, 어쩌면 이번 방문이 성주 0번버스가 다니는 흙길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 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번 타보시지요. 고즈넉한 산골마을을 달리며 비포장길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보고 싶다면 말입니다. 요금은 2200원입니다. # 마지막 남은 비포장도로… 하루 두 번만 운행 성주군 작은리는 군 내에서도 유일하게 비포장도로가 남아 있을 만큼 대표적인 오지 중 한 곳이다. 맨 윗동네 거뫼에서부터 아래로 덕골과 삼거리, 모방골, 개티, 배티 등 6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성주군의 대중교통은 경일교통에서 운행하는 0번과 250번 버스 등이 거의 전부다.250번 버스는 주로 대구 등 외지,0번 버스는 군 내를 오간다. 단 두 대의 0번 버스가 하루에 돌아야 하는 코스가 44개. 작은리 코스는 그 중 하나다. 오전 10시, 오후 3시 등 하루 두 번 운행한다. 오전엔 까치산과 칠봉산 사이 하미기재를 넘어 가뫼∼배티를 돌아오고 오후엔 역순으로 돈다. 군데군데 비포장길인 데다, 좁은 산길이어서 대부분 운전기사들이 기피하는 코스다. 오전 10시차. 예상대로 버스 안은 텅 비었다. 성주 읍내에 장이 서는 날이나 승객이 좀 있을 뿐 평소엔 빈 차로 운행하는 경우가 많다. 읍내를 벗어나 산길로 들어서자 비포장 길이 시작됐다. 낙엽송 터널길을 지나고 나니 오른쪽으로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이고 선 가야산이 펼쳐진다. 주변 산들이 시립한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범상치 않다. 가야산이 저처럼 높았던가. 구비구비 산길을 돌다 보면 꼭 산자락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은 아찔한 느낌이 드는 때가 있다. 놀이기구 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짜릿하다. 하미기재(400m) 정상에서 보자니 아랫마을이 여간 까마득한 게 아니다. 그 높은 고갯마루에도 마을 사람들은 논을 일구며 살아간다. 작은리 맨 윗동네 거뫼사는 이규칠 할아버지는 차에 오르자마자 대뜸 하소연이다.“버스가 자주 안오니께네 통 사람구실하기가 어려븐 기라. 눈발이 쪼매만 날다카믄 안들어오제, 비온다꼬 안들어 오제, 병원가는 기야 그렇다치지만서도 상가집을 제대로 갈 수가 있나, 불편한 기 한두개가 아인 기라.” 버스 기사라고 할 말이 없을까.5년째 0번버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최병국씨는 “비만 오면 산길이 진흙탕으로 변해 여간 위험한 게 아니라예. 좁은 산길 오가다 주민들 차라도 만났다카믄 참 난감합니더.”라며 볼멘 소리다. 게다가 밀린 임금조차 겨우 지난 달에야 받았다는 것. # 0번 버스의 말못할 속사정 0번 버스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구불대는 산길만큼이나 애로가 많다. 대부분 노인인 주민들이 버스를 탈 일이라곤 병원가는 일과 장에 가는 일이 전부다. 성주는 멀고 교통편이 좋지 않아 주민들은 주로 고령으로 다닌다. 그나마 개티, 배티마을까지는 도로가 포장돼 있어 상황이 나은 편. 고령에서 운행하는 공영버스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윗마을 주민들은 0번버스를 타고 보월리까지 나와서 버스를 바꿔타야 한다. 버스 회사 입장에서도 0번버스는 애물단지에 다름아니다. 군에서 일정 부분 적자를 보전해 주고,205번 버스에서 나오는 약간의 수익으로 그나마 근근이 운행하고 있는 형편이다. 아직 남아있는 비포장길은 주민과 버스 회사 모두에게 불편함 그 자체다. 한 통신사의 광고처럼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쇼(show)’를 해서라도 도로가 포장된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올해 책정된 도로포장 예산은 8000만원. 겨우 몇 백m 포장하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액수다. # 곳곳 고풍스러운 돌담길 풍경은 덤 0번 버스 속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아쉬움을 가슴에 담고 차창밖만 내다 본다. 할아버지는 날씨가 안좋으면 운행하지 않는 버스 회사 측의 처사가 야속하고, 임금조차 제때 못받는 버스 기사는 행여 운행 보조금을 올려 주지 않을까 군청만 바라보며 한숨이다. 이런저런 사연들을 체감하지 못한 이방인은 서정미 넘치는 흙길이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성주는 고풍스러운 풍경들이 즐비한 곳이다. 옛 건축물은 물론이려니와, 수백년 세월의 흔적이 더께더께 붙어있는 돌담길은 성주가 독특한 풍모를 지니는데 큰 몫을 담당한다. 성주를 대표하는 돌담길 마을은 한개마을이다. 하지만 돌담길은 한개마을에만 있지는 않다. 외려 문화재 지정 후 인공미가 가미된 한개마을보다 더욱 고풍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마을들이 널려있다. 특히 0번 버스가 작은리를 경유해 수륜면을 돌아나오는 동안 돌담길이 예쁜 마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글·사진성주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가는 길 : 서울 남부버스터미널에서 하루 4회 고속버스가 운행한다. 승용차는 영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성주 나들목→성주. ▶주변 관광지 ▲가야산국립공원 : 소백산맥 동쪽으로 슬쩍 비껴앉은 영남의 명산. 남북으로 경남 합천군과 경북 성주군의 경계를 이룬다. 수륜면 백운리에 등산로가 마련돼 있다. ▲무흘구곡 : 대가천의 맑은 물과 사인암 등 주변 계곡의 기암괴석, 수목들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성밖숲 : 천연기념물 제403호인 왕버들 고목 군락지. 임진왜란 이후 조성됐다. 성주군민들이 휴식공간으로 애용하는 곳. 읍내 초입에 있다. ▲세종대왕자태실 : 1438∼42년 사이 조성된 전국 최대 규모의 태실지(왕 자손의 태반을 묻어두는 곳). 세종대왕의 적서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안장돼 있다. 인촌리에 있다. ▲한개마을 : 성산 이씨 집성촌으로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돼 있다.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양반촌.150년 된 ‘탱자나무 같은 귤나무’로 유명한 교리댁 등의 문화재를 비롯, 60여가구가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월항면 대산리에 있다. 성주군청 새마을 관광문화재담당 930-6063∼4. ▶맛집 : 용암면 용정리 큰나무골 궁중약백숙은 한약재가 섞인 닭백숙을 잘한다. 한마리 2만 7000원∼3만 5000원.933-3651. 예산리 혜성관가든은 소고기 숯불구이로 유명한 집. 불고기 1인분 9000원, 갈비살 1만 9000원.933-5229. ▶성주참외축제 : 25∼27일 성밖숲일대에서 열린다. 참외따기 체험, 세종대왕자 태 봉안행렬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됐다.
  • 세종대왕의 왕자 胎 봉안의식 재연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胎)를 봉안하는 의식이 경북 성주군 주최로 16일 오후 2시 경복궁에서 재연된다. 교태전에서 왕자의 태를 씻어 태항아리에 안치하는 의식, 강녕전에서 국왕이 태봉지를 낙점하고 장태의식을 총괄하는 안태사를 임명하고 교지를 내리는 의식, 태항아리를 누자(가마)에 안치하여 경복궁을 출발해 장태지인 성주까지 가는 봉출의식으로 이어진다. 오는 26일에는 성주 일원에서 안태사 행차와 영접의식, 봉안의식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 세종시대 ‘여민락’ 되살린다

    세종시대 ‘여민락’ 되살린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권제, 정인지, 안지 등에게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내용으로 하는 노래를 짓도록 한다. 바로 ‘용비어천가’이다. 그렇게 지어진 ‘용비어천가’의 한시(漢詩) 초장과 2∼4장, 그리고 마지막 125장을 관현악 선율에 얹은 것이 ‘여민락(與民樂)’이다. ‘여민락’은 세종 29년(1447년)부터 연례악으로 연주되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노래가 분리되어 오늘날에는 가사가 없는 기악곡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립국악원 정악단이 세종시대처럼 노래와 기악선율이 함께하는 ‘여민락’을 되살려 17일 오후 7시30분 예악당에서 첫 선을 보인다. ‘여민락’의 가사가 ‘용비어천가’였다는 것은 기록에만 남아있을 뿐 악보가 남아있지 않아 원래형태대로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전승되는 음악을 살리되 현대에 맞게 재창작하는 것 또한 국립국악원의 할 일이라는 생각에서 ‘용비어천가’의 음운을 살려 가사가 있는 ‘여민락’을 새로 짰다고 한다. ‘여민락’은 선율이 유려하고 화평하여 조선시대를 통틀어서 으뜸가는 명곡으로 꼽힌다. 전체 연주시간이 1시간 35분에 이르는 대곡이다. 정악단이 ‘여민락’을 연주하는 것은 1996년 이후 12년 만이다. 가사를 얹은 ‘여민락’ 연주는 당연히 처음이다. ‘여민락’은 꿋꿋한 피리 선율이 가야금, 거문고, 대금, 해금 등 대규모 관현악 편성을 이끌고 가는 유장한 가락이 특징이다. 본래 10장이었으나, 지금은 7장만 전해진다.1∼3장은 느리게,4∼7장은 빠르게 연주된다. 정악단은 지난해 한양대 권오성 명예교수와 황준연 서울대 교수 등 5명의 전문가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여 어떤 가사를 어떤 장에 실을 것인지 논의했다. 그 결과 ‘용비어천가’ 125장의 가사를 발췌하여 가사로 옮겨도 좋겠다고 뜻을 모았다고 한다. 정악단은 이렇게 ‘여민락´ 7장의 노래와 선율이 함께하는 ‘여민락’을 지난해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연습하기 시작했다.4월에 들어서는 오전, 오후로 ‘여민락’을 맹연습하고 있다. 김한승 정악단 예술감독은 “6개월이 넘도록 연습에 열중한 결과 단원들 모두 암보로 연주할 수 있을 만큼 몸에 익혔다.”면서 “남은 기간에는 새로운 ‘여민락’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민락’은 각 장이 모두 본장과 여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음이란 각 장을 마무리하여 여민다는 의미가 있다. 여음에서 피리와 해금은 ‘쇠는 가락’이라 하여 전체 악기의 선율보다 한 옥타브 높게 연주한다. 각 파트에서 한 두 사람이 대표주자로 이 역할을 맡는데, 멀리서 아련히 들려오는 듯한 ‘쇠는 가락’이 ‘여민락’을 더욱 풍성하고 화려한 음악으로 만드는 데 톡톡히 한 몫을 한다.‘여민락’ 감상의 중요한 ‘포인트’이다.8000원∼1만원.(02)580-3300.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사설] 北, 미사일 시위로 뭘 얻자는 건가

    북한이 어제 서해상에서 단거리 미사일 수발을 발사했다. 북측은 같은 날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포함한, 미국 측의 완전한 핵신고 요구에도 강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미사일 발사가 개성공단의 남측 당국자 철수 요구에 이어 뭔가를 얻어내려는 ‘대외적 시위’임을 짐작케 한다. 우리 측이 과잉대응으로 긴장을 고조시키기보다는 의연하게 대처해야 할 이유다. 북측이 이번에 함대함 미사일을 발사한 것과 관련, 청와대는 “통상적인 훈련으로 보인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발사 시점을 감안하면 연례행사인 양 예사롭게 넘길 일도 아니다. 북한은 지난해에도 남측이 최신예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 진수식을 갖던 날 미사일을 발사했었다. 이번엔 북핵 해결을 위한 한·미 공조가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발사했다. 엊그제 열린 한·미 외무장관회담에서 양국은 한목소리로 정확한 핵프그램 신고를 주저하는 북측의 결단을 강하게 촉구했다. 더욱이 그제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우리 측이 찬성한 가운데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임기를 1년 연장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북측이 새 정부의 대북 정책에 불만을 품고 의도적 긴장조성에 나섰다는 분석도 가능한 셈이다. 우리는 어떤 이유로든 북측의 이번 미사일 발사는 잘못된 선택이라고 본다.6자회담의 다음 단계 진전을 가로막는 데 그치지 않고 쌀·비료 지원이나 남북 경협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자승자박의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도 강경한 맞대응보다는 유연하게 대응하는 게 실용적인 자세임을 명심해야 한다. 혹여 터져나올지도 모르는,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체제(MD)에 참여해야 한다는 등 강경한 목소리를 오히려 경계해야 한다.
  • 명말·청초 조선외교 ‘현장보고서’

    명말·청초 조선외교 ‘현장보고서’

    병자호란 때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가 본국에 써 보낸 ‘심양장계’(瀋陽狀啓, 소현세자 시강원 지음, 이화여대 국문과 고전번역팀 옮김, 창비 펴냄)가 번역·출간됐다. 심양장계는 신하가 임금에게 보내는 보고서 형식의 글이다. 세자를 수행한 시강원(조선시대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한 관청으로 소현세자가 심양에 볼모로 잡혀갈 때 따라감) 관리가 장계를 작성해 승정원으로 보내면 승지가 국왕에게 전달했다. 본국에 보내기 전에 세자의 재가를 거쳤다는 점에서 세자가 임금에게 보낸 글이라 봐도 무방하다. 소현세자 일행은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한 이듬해인 1637년 4월 심양에 도착(당시 세자 나이 26세)한 뒤부터 귀국을 허락받은 1644년 8월에 이르기까지 8년간 청나라에 볼모로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세자는 자신을 수행해간 남이웅, 박로, 박황 등 시강원 관료들을 통해 본국 승정원에 장계를 올렸다. ●정치상황·청나라 궁실 생활상 자세히 심양장계는 명말 청초의 조선 외교사를 파악할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자료 중 하나로 꼽힌다. 책엔 청나라 건국 초기의 정치상황과 궁실의 내부 사정, 만주 귀족들의 생활상까지 상세히 기술돼 있다. 당시 조선과 명·청 3국의 외교관계를 총체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조선이 몰락하는 명나라와 흥성하는 청나라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시강원 관리는 심양의 세자와 대군 이하 종신들의 동정 외에도 청나라 관아의 모습, 심양의 정치·경제·사회 상황, 청나라와 명나라의 관계까지 탐문해 보고했다. 특히 국경 지역에서 벌어진 담배와 종이 등의 교역에 관한 기록은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본국에서는 장계 내용을 토대로 적절한 대책을 세우고 지시를 내렸다. 장계에 따르면, 소현세자가 심양에서 풀어야 할 시급한 외교 현안은 요동 일대를 장악한 청나라가 명의 본토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조선에 요청한 군대 파병 문제였다. 세자는 조선과 청 사이에서 양국의 의견을 조율했고, 조선군을 향한 청군의 각종 항의를 무마시키기도 했다. ●세자가 양국 의견 조율·청군 항의 무마 시급한 현안을 놓고 급하게 쓰인 글인 만큼 심양장계는 정통 한문 문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조선식의 이두가 섞여 있고 부정확한 표현들도 적지 않아 해독이 쉽지만은 않다. 미묘한 국제관계를 다룬 탓에 조선왕조 기간엔 대외유출이 철저하게 금지됐고, 규장각에 국가 기밀자료로 보관된 채 왕실 친인척에게도 공개되지 않았다. 심양장계에 가장 먼저 주목한 건 일본인 학자들이었다. 명말 청초의 조선 외교관계를 파악하고 조선 식민지화 구실을 찾기 위해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고서번각위원회’가 1932년 ‘규장각총서’ 제1책으로 간행했다. 이번 번역본은 이화여대 국문과 고전번역팀이 이강로 한글학회 이사의 감수를 받아 수년간 공동작업 끝에 완성한 완역주석본으로 경성대 판본에 기초했다. 학술적 목적으로 이화여대 팀과 비슷한 시기에 직역 위주로 옮긴 ‘세종대왕기념사업회’의 번역본에 비해,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썼다는 것이 번역팀의 설명이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경기도 휴양림 5색 테마로 개발

    경기도 휴양림 5색 테마로 개발

    경기도는 주 5일제 근무 정착에 따른 산림 휴식 공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 특성에 따른 다양한 휴식 공간을 조성키로 했다. 11일 도에 따르면 자연 휴식 공간을 ▲공원 ▲산림 ▲자연생태 ▲계곡 및 습지 ▲갯벌·어촌체험 등 5개 유형별로 세분화하고 지역을 서북해안, 동북내륙, 동남내륙, 남부임해, 중부권 등 5개 권역으로 나눠 개발할 계획이다. 이중 서북해안권에는 DMZ 평화생태공원을 거점으로 생태 탐방로를 만들고 고양시 개명산, 파주시 고령산 앵무봉, 김포시 가현산 등에 자연 휴양림과 삼림욕장 등을 설치한다. 또 산림면적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동북내륙권은 산림을 기반으로 하는 종합 건강 프로그램센터를 연인산과 명지산·축령산 등에 조성한다. 특히 가평군 석룡산 조무락골에는 산림·한방·수변·문화공연·스파케어 등 시설을 갖춘 웰빙 치료센터를 설립한다. 동남내륙권은 남한강의 수변 공간을 배경으로 종합 캠핑장을 조성하고 세종대왕릉, 목아박물관, 명성왕후 생가, 세계도자기엑스포, 이천 온천 등 역사문화자원과 연계한 관광루트를 개발한다. 남부임해권은 갯벌과 어촌을 체험할 수 있는 휴식 공간을 마련하고 중부권은 기존의 도시자연공원과 삼림욕장의 정비 및 네트워크화를 추진한다. 도는 이같은 권역별 개발사업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해 인지도, 공간의 규모, 이용객 수 등을 고려,‘자연 휴’ 공간 100곳을 선정해 오는 2017년까지 2884억원을 집중 투입해 개발하기로 했다. 특히 남한산성, 연인산, 수리산, 청계산, 명성산 등 도내 5개 산에는 노약자 등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케이블카를 도입하고 안양 관악산 서울대 수목원은 개방한다. 또 100대 자연 휴 공간의 이용 편의를 위해 입장료와 주차료가 마일리지로 적립되고 재방문시 할인 혜택이 주어지는 ‘통합그린카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유스호스텔 등 청소년 숙박시설도 확충해 서북해안권 1개소, 동북내륙권 1개소, 동남내륙권 2개소, 남부임해권 5개소 등 모두 5개소의 시설을 새로 설치할 계획이다. 오는 13일 도청 상황실에서 김문수 지사와 대학교수, 연구원 등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자연 휴 공간조성 기본계획 용역 보고회를 개최한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1만원권 위폐 ‘주의보’

    1만원권 위폐 ‘주의보’

    진짜와 가짜 돈 일부를 합성한 1만원권 위조 지폐가 잇따라 발견돼 일반인들은 진위 여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국은행은 29일 올 들어 위폐 일부분과 진폐 일부분을 이어 붙여 만든 새로운 유형의 새 1만원권 위조 지폐 16장이 금융기관 및 한은의 화폐 정리 과정에서 발견돼 경찰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 위조 지폐는 앞면의 3분의1 정도는 위폐며 세종대왕 초상이 있는 나머지 3분의2는 진폐로, 두 개 조각을 반투명 테이프로 이어 붙인 게 특징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위조 지폐의 일련번호는 왼쪽과 오른쪽이 일치하지 않고 한쪽 일련 번호가 ‘AK1441861J’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홀로그램도 절반은 반투명 테이프로 가려져 있다. 이같은 방식으로는 진짜 1만원권 1장으로 2장의 위폐를 만들 수 있다고 한은은 밝혔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대왕세종’은 지금 성장통?

    ‘대왕세종’은 지금 성장통?

    대하드라마들이 꼭 한번씩 경험하는 ‘성장통’이 있다. 바로 아역에서 성인역으로 바뀔 때 터져나오는 ‘미스 캐스팅’ 논란이다.KBS 1TV ‘대왕세종’(토·일 오후 9시40분)도 어린 세종인 충녕대군을 맡은 이현우 군, 양녕대군을 맡은 이준군이 물러나고 김상경, 박상민 등이 배역을 이어받았지만 “아역에 비해 어색하다.”는 우려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27일 ‘대왕 세종’ 8회 방송분에서는 4회째 성인 배우들의 연기가 이어졌다. 방송 후 ‘대왕세종’ 홈페이지 시청자 소감란 등에는 “적응이 안 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시청자 김효정씨는 “김상경은 충녕의 감정을 잘 살려내지 못하고 있고 뭔가 부족하다. 박상민도 발성이 뭉개지고 표정이 느끼해 양녕대군으로 느끼기엔 어색하다.”고 지적했다. 이현영씨도 “세종대왕 하면 떠오르는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따뜻한 눈빛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고, 이밖에도 “지적인 이미지가 부족하다.”는 평이 올라왔다. 이같은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에 대해 ‘월간 드라마틱’ 조민준 편집장은 “사극에서 요구하는 연기 패턴에는 정형화된 면이 있다.”면서 “이 때문에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도 처음에는 캐릭터 연기가 부자연스러울 수 있고, 시청자들도 낯설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아역에서 성인으로 바뀔 때 혼란이 빚어지는 현상은 비단 ‘대왕세종’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태왕사신기’의 문소리,‘왕과 나’의 오만석 등도 등장 초반 캐스팅이 잘못됐다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이같은 현상이 빚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드라마에서 아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보통 아역은 등장인물이 성인이 되기 전의 징검다리, 보조역할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시청층을 사로잡기 위한 강력한 승부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럼에도 유독 다른 장르보다 사극에 관해 ‘미스 캐스팅’ 논란이 많은 이유는 이미 역사적 평가가 내려진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데서 비롯된다. 세종대왕 역시 지폐에 등장할 정도로 위대한 인물로 고정적인 이미지가 널리 형성돼 있기 때문에 그같은 기대치에 부응해야 하는 부담이 존재한다. 더욱이 잘 알려진 배우의 경우, 기존에 출연했던 현대극이나 영화 등에서의 이미지가 선입견으로 자리잡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선입견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추가로 주어진다. 그러나 연기력과 탄탄한 스토리로 이같은 우려를 불식하고 반전을 꾀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태조왕건’ 최수종,‘야인시대’ 안재모,‘불멸의 이순신’ 김명민도 초반에는 캐스팅 논란에 휩싸였으나 연말 연기대상에서 상을 거머쥐는 등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특히 최수종의 경우, 짙고 두꺼운 쌍거풀이 사극 출연에는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많았으나 뛰어난 연기력으로 ‘사극의 제왕’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월간 드라마틱’ 조민준 편집장은 “‘대왕세종’은 세종대왕 하면 떠오르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정치적 암투를 부각시키는 등 설정과 접근 자체를 다르게 하려는 의도가 읽힌다.”면서 “캐릭터가 탄탄한 만큼 시간이 지나면 배우도 인물에 동화되고 시청자들도 자연스럽게 적응이 될 것 같다.”며 희망적으로 내다봤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이지스함 ‘SM-6’ 장착 北미사일 요격체계 강화

    해군이 한국형 이지스함(7600t급)에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장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군의 한 관계자는 20일 “지난해 진수한 세종대왕함과 추가로 건조될 2척의 이지스함에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SM-6 장거리 함대공미사일을 장착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면서 “미 측도 이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지스함에 SM-6를 장착하면 북한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하층(lower layer)방어시스템을 갖추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세종대왕함이 장착하고 있는 SM-2함대공 미사일은 사거리가 148㎞로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방어하는데에는 제약이 있다. 미국이 개발하고 있는 SM-6는 사거리 320∼400㎞의안신형미사일로, 이를 장착하면 고도 수십㎞ 이하의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또 공군이 올해부터 사업비 1조원을 들여 패트리엇(PAC-2) 미사일 48기와 발사장비 등을 독일에서 구매할 계획이어서 육상과 해상의 미사일방어시스템을 모두 갖추게 될 전망이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지방시대] ‘지방화’ 체감온도 높이려면/김남호 강원대 IT대학 학장

    얼마 전 ‘GOOD TO GREAT(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을 읽었다. 여기서 말하는 기업은 중앙 정부, 지방자치단체, 대학, 우리들 각자의 삶에도 적용될 것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에 적용해 본다면 ‘좋은 대학을 넘어… 위대한 대학으로’이다. 오늘날 전국의 모든 대학은 좋은 대학이 되기 위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교육, 연구분야의 대표적인 평가 지표인 취업률이나 논문 편수 등의 지수를 높이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토해내고 있다. 이는 조직이 큰 중앙 정부나 그보다 작은 지자체에서도 거의 같은 현상으로 나타난다. 위대한 국가, 위대한 지방정부, 위대한 대학이 어떤 것인지는 최소한 눈에 보이는 각종 성과지수의 높낮이에 따라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국가가 경제적으로 부유하면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빈부의 차가 극심하거나 지역적으로 불화가 심하면 결코 위대한 나라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돈이 많은 불행한 가정보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 않더라도 행복한 가정은 위대함으로 진입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가정은 부부 사이에, 또한 부모와 자식간에 따뜻한 정이 흐르는 융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지방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여기에서 찾고 싶다. 지역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모든 구성원의 총체적 행복지수를 극대화하는 것이 위대한 지방시대로 들어서는 요체라고 생각한다. 행복이란 어떤 특정한 단면만 강조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특정 소수만의 행복을 구현하는 것이 아닐진대, 모든 구성원을 잘 아울러 의식과 목표의 공유를 이끌어낼 수 있고 계획의 강력하고 치밀한 실행과 성과의 공정한 분배를 뒷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과 시스템의 정립이 위대한 지방시대를 여는 필수 요소라고 할 것이다.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지 20년이 가깝지만 지역 주민들이 느끼는 지방화의 체감 온도와 만족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지방의 특색을 살려 스스로 잘살게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한 제도이지만 아직도 중앙집중시대의 시스템과 네트워크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제도시행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이나 서비스도 나아졌다는 얘기를 듣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대학이나 기업과의 관계에서 관청은 여전히 높은 문턱을 유지하며 군림하고 있다. 오히려 표를 의식한 자치단체장들이 임기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단편적이고 이벤트성 사업(체육 시설, 각종 회관 건립, 축제와 각종 세계대회 유치 등)에 치중하며 부작용까지 낳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지역 리더들의 철학 빈곤과 지역내 자원과 역량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 부재 때문이다. 지방자치에도 지역 사회를 꿰뚫는 혜안과 철학이 밑받침되어야 하며 이는 지도자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이러한 새로운 리더십에 의해 목표와 인식이 구성원 개개인에게 스펀지에 물이 빨려들듯 스며들어가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세종대왕이 대왕으로 불리는 이유는 확고한 통치 철학과 정책을 수립하여 사회의 제반 분야를 살피고 백성이 혜택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치를 펴고 시스템을 안정화시켰기 때문이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지역의 대형 프로젝트 건설 등을 위한 거대담론도 필요하지만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의 피부에 와닿는 생활 밀착형, 맞춤형 정책들의 개발과 실천이 절실하다. 진정으로 ‘좋은 지방시대를 넘어 위대한 지방시대’를 위해서는 중앙 정부뿐 아니라 지자체장, 지역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노력과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김남호 강원대 IT대학 학장
  • 창덕궁 새 영문이름 ‘비밀정원의 궁전’

    앞으로 국보 몇호니, 보물 몇호니 하는 일련번호가 없어진다. 또 건축물이나 동산뿐 아니라 사적과 천연기념물도 국보로 지정된다. 이렇게 되면 창덕궁, 제주자연유산, 무령왕릉 등도 국보가 될 수 있다. 문화재청은 이런 내용을 담은 ‘문화재 등급·분류체계 개선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10일 밝혔다. 국가유산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으로 나누고, 국보를 상위점으로 하위 분류는 보물, 무형문화재, 천연기념물, 명승 등 4가지로 단순화한다.또 국보와 보물은 일련번호를 없애고 대신 사적 제○호, 건축문화재 제○호, 미술문화재 제○호 등 하위분류 번호를 매기게 된다.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은 `국보 숭례문(건축문화재 제1호)´, 보물 제1호인 흥인지문은 `보물 흥인지문(건축문화재 제2호)´과 같이 표기되는 것이다.이와 함께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고 있는 경복궁(Gyeongbokgung), 불국사(Bulguksa) 등 외국인이 이해하기 어렵고 흥미를 유발하지 않는 이름도 고치기로 했다. 경복궁은 `The Grand Palace of Joseon Dynasty´, 창덕궁은 `The Palace of Secret Garden´ 등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조선 왕릉의 국문 표기도 왕릉의 주인공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조선 태조 건원릉’,‘조선 세조 광릉’,‘세종대왕 영릉’ 등으로 묘호를 함께 표기하기로 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역사·조망·문화·도시 4개 테마로

    역사·조망·문화·도시 4개 테마로

    새롭게 바뀌는 ‘광화문 광장’은 차가 점령해버린 서울의 중심을 인간과 자연, 역사가 중심에 서도록 시계 바늘을 되돌리는 작업이다. 북한산을 배경으로 광화문, 남산, 관악산까지 이어지는 서울의 축을 되살리는 것과 광장 가운데 일제시대에 심어진 은행나무를 뽑는 대신 세종대왕상을 옮겨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광장은 광화문이 있는 북쪽부터 전체를 4등분해 ▲광화문의 역사를 회복하는 광장(경복궁 역사의 존)▲육조거리의 풍경을 재현하는 광장(조망의 존)▲한국의 대표광장(문화의 존)▲시민들이 참여하는 도시문화 광장(도시광장의 존) 등 4개 테마로 나눠 조성된다. ●6조거리 재현 광화문과 맞닿은 곳인 ‘경복궁 역사의 존’에선 옛 육조거리와 월대를 재현하고 해태상을 제자리로 복원한다. 또 ‘조망의 존’ 바닥에는 육조의 모습을 줄여 놓은 미니어처와 노두석 등을 통해 과거 행정기관인 이조(吏曹)·호조(戶曹)·예조(禮曹)·병조(兵曹)·형조(刑曹)·공조(工曹)가 현재 어느 곳에 위치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또 관아의 회랑을 재현해 정조릉 행차 등의 역사문화 체험공간으로 바꾼다. 세종문화회관과 KT가 마주보는 구간은 ‘문화의 존’으로 분류된다. 조선의 문화르네상스를 이끈 세종대왕 동상이 덕수궁에서 옮겨진다. 또 분수를 이용한 ‘물 스크린’, 미디어 폴 등을 설치해 IT(정보기술)과 문화네트워크의 축으로 꾸며낸다.‘도시광장의 존’은 세종문화회관과 이순신 장군 동상 사이로 광화문광장과 지하철 광화문역을 연결하는 지하통로를 만든다. 화장실 등 편의시설과 전시장 등 문화갤러리 공간을 갖춘 ‘선큰(Sunken·지하공원) 가든’으로 지하철과 연계해 시민들이 편하게 공원에 들어오는 출입구 역할을 한다. ●야경이 더 아름다운 도시 광화문의 랜드마크인 이순신 장군 동상 주변도 새롭게 조성된다. 우선 이순신 장군의 해전을 토대로 한 ‘스토리 텔링(Story Telling)’ 기법 연출이 가능한 바닥분수와 포토존 등으로 꾸며진다. 분수는 배 모양으로 만들어져 마치 장군이 배위에서 해전을 이끄는 듯한 형상을 하게 된다. 광화문 광장의 경관과 전통성, 상징성, 기능성 등을 확보하기 위해 광장부, 차도부, 보도부로 나눠 각기 다른 색상과 패턴으로 포장한다. 아스팔트와 보도블록 대신 돌과 화강암을 써 고풍스러움을 더한다는 계획이다. 해태상, 세종대왕상, 광장 바닥 등에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설치한다. 광화문광장은 평소 길이 740m, 폭 34m 규모지만 주요 행사때는 양옆 도로를 통제해 중규모 행사는 67m, 대규모 행사는 100m까지 폭을 넓혀 사용한다. 중앙분리대의 은행나무 29그루는 양측 보도로 옮기기로 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장애인 주차구역 표지 선 밖에 그린다

    주차표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반인이 장애인 주차구역에 차를 대는 얌체 주차를 없애기 위해 휠체어 표지를 주차구역 밖에 그려넣는다. 또 세종로에 한글을 새긴 보도블록을 설치해 한글에 대한 자긍심을 높인다. 서울시는 13일 서울시민 시정 아이디어 회의인 ‘천만상상 오아시스’ 회의를 열고 장애인 주차장 표기 개선 등 4개 제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장애인 주차구역 표지의 경우 공공주차장은 장애인 주차 표기가 잘 돼있는 편이지만 민간주차장은 구분이 어렵고, 잘 지켜지지도 않는다는 지적에서 비롯됐다. 또 광화문 광장 조성 사업과 연계해 광화문 앞 세종로에 한글 디자인이 들어간 보도블록을 설치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한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를 만든 세종대왕의 이름을 딴 도로인 만큼 한글 문양을 넣은 보도블록으로 만들면 거리의 의미를 살리고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제안이었다. 이밖에 ‘서울 차없는 날’,‘하이서울 페스티벌’ 행사와 연계해 ‘이색 자전거 축제’를 열어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유도하자는 의견도 채택됐다. 시가 관리하는 공원 1곳을 시범 선정해 무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드는 것도 추진된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업계소식-CF]삽화처리된 위인 코믹 등장

    [업계소식-CF]삽화처리된 위인 코믹 등장

    웅진씽크빅은 일러스트레이션 기법을 이용한 새 광고를 선보였다. 세종대왕, 에디슨, 뉴턴을 코믹하게 등장시켜 초등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췄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자격루 복원한 남문현 건국대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자격루 복원한 남문현 건국대 교수

    흥미있는 가정을 불쑥 해본다. 만약 동양의 천재 장영실과 서양의 천재 에디슨이 만났다면?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아마도 우린 현재보다 100년 후의 세계 문명 속에 살고 있지 않을까. 어쨌든 장영실은 시대의 벽에 막힌 불운의 과학자였고, 에디슨은 시대를 초월한 발명가였기 때문에 둘의 만남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에디슨과 달리 장영실은 오랜 세월이 지난 근래에 이르러서야 위대한 과학자로 새삼 평가받고 있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 세계적인 학자 영국의 도널드 힐 박사는 지난 1990년 ‘국제중국과학사학회’에서 “13세기를 대표하는 시계 기술자가 아랍의 알재재리라면 장영실은 15세기를 대표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러면서 “복잡한 기계를 설계·제작해 의도했던 대로 기능을 발휘하게 했던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또 ‘세종실록’ 보루각기에 보면 “모든 기계(機械)는 감추어져 보이지 않고…”라는 구절과 함께 “영실은 성질이 정교하여 항상 궐내의 공장(工匠) 일을 주관했다.”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장영실은 왕실 최고 장인(匠人)이었다. 이런 장영실이 최근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가 만든 위대한 발명품 물시계 ‘자격루’가 서울 한복판에서 돌기 시작한 것. 꼭 573년의 세월이 흘러 지난 11월28일부터 고궁박물관에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이는 한국 기술발달사, 나아가서는 세계 시계 제작역사에서 차지하는 자리매김을 당당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고궁박물관 재개관 첫날, 작동시간이 미리 시작되는 바람에 약간의 착오가 있었지만 정밀도만큼은 탄복을 자아내게 했다. 관심이 집중된 이날, 오전 11시에 울리기로 된 오시(午時·오전 11시∼오후 1시) 시보는 이보다 앞선 오전 10시45분에 울렸다. 이어 미시(未時·오후 1∼3시)는 낮 12시35분, 신시(申時·오후 3∼5시)는 오후 2시34분, 유시(酉時·오후 5∼7시)는 4시34분쯤에 알렸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작동이 제대로 안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첫시보가 15분 빨리 시작됐을 뿐 예정된 두 시간 간격에는 오히려 1∼2분 차이에 불과해 당시 자격루가 얼마만큼 정확했는지를 증명했다. 당시에는 현재처럼 시간을 검증하는 시스템조차도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튿날에는 오전 9시,11시, 그리고 오후 1시,3시,5시 등 매 두 시간마다 불과 1∼3분 차이로 예정대로 시보를 알려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도 한국의 15세기 과학기술 수준에 매우 놀라워했다. 건국대 남문현(65·전기공학) 교수.23년 동안 자격루 원형복원에 헌신적으로 노력한 끝에 573년 전의 발명품을 우리곁에 끌어들인 주인공이다.‘세종실록’에 나와 있는 2000자짜리 문서를 근거로 자격루의 작동원리를 고스란히 밝혀냈다. 게다가 전공분야인 전기공학을 뛰어넘어 천문학, 과학사, 기술사까지 공부하면서 이룬 성과여서 더욱 값지게 여겨진다. 고궁박물관 재개관과 때를 맞춰 남 교수를 만났다. 그는 첫날 작동과 관련, “원래 물시계는 24시간 이상 돌아가야 정상으로 된다.15시간 동안 그대로 놔두었다가 박물관 개방에 맞춰 급히 물을 채우느라 당초 시보 예정보다 약간 빨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루 이틀 지난 지금은 아주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모 신문에서 ‘타격루’ 운운한 것은 조선시대 과학기술을 폄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아무튼 이번 자격루 복원으로 지하에 있는 세종대왕이 매우 기뻐하겠다고 하자 “세종은 비록 신분이 낮았지만 재능있는 장영실 같은 인물을 귀히 여겼기 때문에 해시계, 물시계, 별시계 등을 발명해 세계 기술사의 한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지 않았느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어 자격루는 자동 물시계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디지털 기계라고 강조했다. “조선 초기에는 시간제도가 이원화돼 있어요. 지구가 한 바퀴를 돌면 24시간이잖아요. 그걸 12로 나누다 보니 12간지가 됐지요. 결국 물시계는 물의 흐름을 지구의 자전속도에 맞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생활시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농업시간이죠. 해뜨면 성 밖으로 나와 일하고 해지면 성안으로 들어가는 생활말입니다. 여기에 쓰이는 시간이 경점(更點·1경 오후 7시,5경 오전 3시)입니다. 이때에는 북과 징으로 시간을 알렸지요. 이 역할을 한 것이 자격루입니다.” 예를 들어 성문 닫을 시간(1경3점)에는 북 한번과 징을 세번, 그리고 ‘새날이 밝았으니 문을 열어라.’ 해서(5경3점) 북 다섯번, 징 세번을 울렸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활동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중요한 신호였다. 세종실록(세종16년 7월1일자) 보루각기(報漏閣記)에 보면 자격루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시간을 측정하는 물시계와 종·북·징소리로 알리는 시보장치, 이를 접속하는 방목이라는 디지털신호장치 등으로 구성돼 있음을 기록했다. 또 시보장치 상단에는 시·경·점을 알리는 시보인형(로봇)이 각각 종·북·징을 들고 있으며 때마다 인형들의 팔뚝과 연결된 제어기구가 작동되면서 종·북·징을 울리도록 돼 있다. 이러한 장치는 동력공급, 논리·연산장치들에 의해 자동으로 이뤄진다는 것이 남 교수의 설명이다. 아울러 자격루의 탄생으로 조선 고유의 치안 유지제도인 인정(人定)·파루(罷漏)가 비로소 시행될 수 있었으니 한마디로 디지털 기술의 개가였다고 강조했다. “어려움이야 많았지요. 임진왜란 때 설계도가 타버렸고, 또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들이 중종 때 다시 만든 그림을 태워버렸어요. 남아 있는 건 보루각기하고 국보 229호 유물인 물항아리 3개와 수수호(受水壺)인데 그걸 바탕으로 복원했지요. 또 자료에 보면 ‘(작은 구슬은)탄알만 하다’‘(큰 구슬은)달걀만 하다’고 했는데 토종닭 달걀을 수집하며 크기를 가늠하느라 애를 먹었지요. 고궁 박물관 서준 연구원의 도움도 컸습니다.” 남 교수가 자격루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1984년, 미국 버클리대 교수의 권유 때문이었다. 자동제어장치 전공자라면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제어장치에 관심 가질 만하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고서였다. 이후 덕수궁에 있는 자격루(중종때 개량)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나마 1911년 일본인 학자들이 창경궁에 있던 것을 덕수궁으로 옮기면서 물통 등의 배열이 엉망이 됐음을 알게 됐다. 이것을 맞추는 데만 15년. 세월을 거꾸로 더듬어 올라가면서 옛날 방식의 기계 논리를 체득했다. 결국 지난 1997년이 돼서야 문화재청과 함께 본격적인 복원 설계 작업이 시작됐고 전통 단청장, 유기장, 옻칠장 등 무형문화재급 장인과 기계공학자 등 모두 32명이 참여하면서 결실을 보게 됐다. 그는 “물시계가 정확히 작동하려면 물 관리가 필수다. 조선시대에도 자격루 옆에 난방장치를 뒀을 정도로 항온 항습에 주의했다.”면서 “여러 기록을 검토해 보면 당시 우물의 온도는 섭씨 7도, 그리고 실내 온도는 섭씨 20도 정도가 적당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2월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노학자에게 무슨 정년이 있겠느냐면서 “이번에 원형복원된 보루각 자격루 외에 장영실이 또 만든 흠경각 자격루를 복원해야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2년 경기 남양주 출생. ▲61년 국립교통고등학교 졸업. ▲70년 연세대 전기공학 학사. ▲75년 동대학 대학원 공학박사. ▲76∼현재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 ▲80∼81년 미 UC 버클리 전기컴퓨터과학과 초빙교수. ▲93∼2003년 한국기술사연구소장. ▲00∼01년 건국대박물관장. ▲03∼07년 문화재위원회 위원. ▲97∼05년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정회원 겸 이사. ▲04∼현재 사단법인 자격루연구회 이사장. ▲07년 현재 한국기술사료정립위원회 위원.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9) 떠돌이 고아 출신 역관 (曆官) 김영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9) 떠돌이 고아 출신 역관 (曆官) 김영

    관상감은 천문과 지리를 비롯해 달력, 날씨, 시간 등을 맡아보는 관청인데, 영의정이 최고 책임자인 영사(領事)를 겸임할 정도로 중요한 관청이었지만 실제 업무는 중인들이 담당했다. 세조 때에는 관원 65명에 생도 45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영조 때에는 관원 150여명에 생도 60명으로 늘어났다. 경복궁 안과 북부 광화방에 관아가 있었는데, 청사와 함께 관천대(觀天臺)를 비롯한 관측시설이 있었다. 간의(簡儀)를 올려놓고 하늘을 관측하던 관천대는 첨성대(瞻星臺)라고도 불렸는데, 지금도 서울 계동 현대건설 앞에 남아 있는 관천대는 사적 제222호로 지정되었다. 경복궁이 불타버린 조선후기에는 창경궁에 다시 관천대를 만들어 보물 제851호로 지정되었다. ●이상한 별이 나타나면 관측해 기록하다 관상감의 관측제도는 ‘서운관지(書雲觀志)’ 권2 ‘측후(測候)’에 규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밤마다 5명이 숙직하며 관측해 기록했다. 지금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성변등록(星變謄錄)’에도 날마다 5명 관측자의 서명이 남아 있다. 성변(星變)은 별자리에 변화가 생겼다는 뜻. 혜성(彗星)이나 객성(客星)이 나타나면 천문학 관원들이 협의해 영사(領事)에게 알리고 관측을 시작했다. 혜성이 나타날 때부터 사라질 때까지의 움직임과 그 위치를 하루하루 관측하고 기록한 보고서를 성변측후단자(星變測候單子)라고 했으며 이 보고서들을 책으로 묶은 것이 등록(謄錄)이다. 이 보고서는 왕에게 보고되어 국정에 반영되었으므로, 관측자의 이름만 빼고 ‘승정원일기’에 거의 전문을 실었다. 현재 제대로 남아 있는 자료는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성변등록’뿐이다.1723년 9월21일 밤 1경에 여숙(女宿)에 나타난 혜성을 54명이 27일 동안 관측하였고,1759년 3월5일 밤 5경에 위숙(危宿)에 나타난 혜성을 35명이 25일 동안 관측하였으며,1759년 12월23일 밤 1경에 헌원(軒轅)자리에 나타난 객성을 21명이 11일 동안 관측하였다. 중인 출신의 천문학교수만으로는 부족해서 문관들도 많이 참여하였다. 이 가운데 1759년에 출현한 헬리 혜성에 대한 관측 기록은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사료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서울특별시에서 2007년 3월22일자로 ‘성변등록’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2호로 지정하였다. ●중인 역관(曆官)들의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역서 관상감은 천문학·지리학·명과학(命課學)의 3학으로 구성되었다. 이 가운데 천문학이 본학으로 가장 중요시되었다. 정성희 선생은 ‘조선후기 역서의 간행과 반포’라는 논문에서 “천문이나 역법에 대한 중요성이 높은 만큼, 그리고 전문성이 강조되었던 직책이던 관계로 관상감 관원의 실무(失務)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따랐다고 하였다.“전통시대 천문학은 농사 절기에 대한 예보 기능 외에도 천인합일적(天人合一的) 성격도 아울러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일식이나 월식, 오위(五緯 또는 5행성) 등 천문현상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예보가 중요했다.” “1710년에 관상감 관원이 월식 예보를 잘하지 못해 이를 감추려고 천변(天變)이라고 말했다가, 다시 월식으로 정정한 일이 있었다. 이 사실이 발각되자 숙종은 월식을 천변으로 보고한 자와 추산(推算)을 담당한 관원을 처벌하도록 했다.” 역서(曆書)도 관상감에서 만들었는데, 일반 백성들은 천문학보다 역서를 통해 관상감의 존재를 실감했다. 조선초기에 4000여건에 지나지 않던 역서(曆書)가 조선후기에는 1만5000축이 넘게 간행 보급되었다. 일부 계층이 사용하던 역서가 보다 생활 깊숙이 대중적으로 사용되었음을 뜻한다. 물론 관상감 관원들이 종이를 사서 개인적으로 인쇄하여 판매하는 숫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역서를 위조하거나 제멋대로 인쇄한 자는 사형에 처했는데, 실제로 정조 1년(1777)에 책력을 사조(私造)한 죄로 이동이(李同伊)가 사형을 언도받았다. 역서 간행을 주도한 관원은 성력(星曆)을 계산한 삼역관(三曆官)인데, 삼역관 선발시험에 1등하는 사람을 부연관(赴燕官)으로 임명해, 수시로 북경에 가서 천문기계나 천문서적을 구입하는 특전을 주었다. 관상감 중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천문학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삼역관을 거쳐야 했다. 다른 관상감 기술직은 음양과에 합격하지 않아도 능력이 있으면 선발했는데, 삼역관만은 음양과 출신만 선발할 정도로 전문성이 강조되었다. 정조가 천재 과학자 김영을 삼역관으로 승진시키려 하자, 우의정 윤시동과 여러 역관들이 반대한 이유도 그가 음양과에 합격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사도세자 현륭원을 옮기기 위해 김영이 발탁되다 김영(金泳·1749∼1817)은 농사꾼 출신인데, 어려서 고아가 되어 이리저리 떠돌다 서울에 올라왔다. 중인 신분도 못되는 데다, 말도 어눌하고 용모까지 꾀죄죄했다. 산술(算術)에 타고난 재주가 있어 스승도 없이 혼자 공부했다. 너무 골돌하다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산가지를 늘어놓고 계산하다가 ‘기하원본(幾何原本)’을 구해 읽고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 그의 제자 홍길주(洪吉周·1786∼1841)는 스승의 전기를 쓰면서 “혼자 ‘기하원본(幾何原本)’이라는 책 한 권을 가져다 읽은 뒤 그 이치를 모두 터득하여 산수에 있어서는 더 이상 익힐 것이 없게 되었다.”고 했다. 당대에 가장 이름 높았던 산학자 서호수가 관상감 제거(提擧·3품)로 있었는데, 김영의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몇 가지를 물어본 뒤에 자신의 실력보다 나음을 알았다. 그는 관상감의 책임자였던 영의정 홍낙성에게 김영을 추천해 관원으로 채용하였다. 김영은 그러한 인연으로 뒷날 홍길주의 집에도 드나들게 되었다. 홍길주는 김영이 관상감에 임용된 것은 “정조가 인재 등용하기를 좋아해, 남다른 재주로 이름난 자가 있으면 비록 지극히 미천한 자라도 남김없이 등용하던 시대 분위기 덕분”이라고 했다. 1789년에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현륭원을 수원 화산으로 이장하는데 길일을 잡고 시각을 정하는 데에 문제가 생겼다. 중성(中星)의 위치를 측정한 지 50년이 지나 별자리의 위치가 1도 가까이 어긋나 있었고, 해시계와 물시계의 시간도 실제와 차이가 났다. 관상감사 김익이 8월31일 정조에게 아뢰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근본적으로 중성의 위치를 추산하여 그 궤도와 도수를 정해야 하는데, 만약 관측기구가 없으면 측정할 근거가 없습니다. 먼저 지평의(地平儀)와 상한의(象限儀) 및 새로운 해시계를 만들어 제대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관상감의 감생 가운데는 제대로 추산할 수 있는 자가 매우 드무니, 역법(曆法)에 정통하다고 알려진 김영을 본감에 소속시켜 이 일에 참여하도록 한다면 실효가 있을 것입니다.” ●음양과를 거치지 않았다고 관상감 관원들이 반대하다 세종대왕이 1434년에 만든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이름 그대로 솥 모양을 오목하게 파내고 영침(影針)을 세워 그림자가 변화하는 정도를 살펴 시각을 측정했다. 그런데 김영이 새로 만든 보물 제840호 지평일구(地平日晷)는 이름 그대로 해그림자를 받는 면을 평면으로 고쳐 만들었다. 중국의 지평일구(보물 제839호)가 수입되자, 그 원리를 이용하여 만든 것이다. 그래프 용지에 1㎝ 간격으로 동심원과 10도 간격의 방사선을 그어놓고, 그 중심에 막대를 세워 시간에 따른 그림자의 변화를 보는 형태인데, 반구형 모습의 해시계 앙부일구를 전개하여 평면에 옮겨놓은 것과 똑같다. 김영이 처음 만들어내자 그 이후에도 여러 개가 제작되었는데, 재료는 보통 대리석이나 오석(烏石)을 썼으며, 놋쇠로 휴대용도 만들었다. 정조가 김영을 특채하려고 하자 관상감 관원들이 심하게 반대했는데, 홍길주가 그 사연을 기록했다.“관상감은 천문학과를 두어 사람을 뽑기 때문에 천문학과를 통해 조정에 들어온 자가 아니면 역법(曆法)을 제정하는 역관(曆官)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임금께서 특명을 내려 김영에게 역법을 제정하게 하시면서 ‘김영같이 남다른 재주를 지닌 자가 아니면 이런 예에 해당될 수 없다.’고 말씀하시니, 김영이 크게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당시 관상감 사람들이 모두 김영을 질시했으며,‘이는 우리 관직의 규율을 무너뜨리는 일이다.’라고 따졌다. 그러나 임금의 명이 있었으므로 끝내 그 누구도 크게 떠들지는 못했다.” ●정조 승하하자 벼슬에서 쫓겨나 굶어 죽다 중인들은 혼인은 물론, 교육과 관직도 몇몇 집안이 주고받았는데, 중인 출신도 아닌 김영이 중인의 전유물인 역관이 되었으므로 반대가 심했다. 서호수가 죽고 정조도 승하하자, 김영은 다른 관직으로 좌천되었다가 벼슬에서 쫓겨났다. 1807년과 1811년에 혜성이 나타나자 조정에서 관상감에 명해 혜성의 운행 도수를 계산해 올리라고 했는데, 아무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김영을 다시 불러들였다. 계산이 끝나자 그는 다시 쫓겨났는데, 그의 전기를 쓴 서유본은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면전에 욕하고, 주먹으로 때리기까지 했다.”고 기록했다. 그가 남의 집 어린아이에게 글을 가르치다 굶어 죽자, 관상감 생도가 그의 원고 상자를 훔쳐갔다. 미처 간행되지 못한 몇 권의 책은 다 없어지고,‘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나 ‘칠정보법(七政步法)’ 같은 책 끝머리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을 뿐이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열린세상] 대통령 없애야 나라가 산다/강지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공동대표

    [열린세상] 대통령 없애야 나라가 산다/강지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공동대표

    대통령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또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인가. 이번 대통령선거의 한심한 작태들을 들여다보면 자연 이런 생각에 빠지게 된다. 지구상의 대통령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우선 내각제하의 대통령이 있다. 그러나 이는 국가의 상징적 존재일 뿐 실권은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 이원집정부제하의 대통령이 있다. 이는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제한한 분권형 존재다. 그리고 대통령제하의 대통령이 있다. 그런데 대통령제라면 다 똑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사실은 천만의 말씀이다. 대통령제의 원조는 미국이다. 그리고 이는 많은 후진국들에 수출되었다. 그런데 막상 미국의 대통령은 단일국가가 아니라 연방제국가의 대통령이란 사실을 잊고 있는 이들이 많다. 미국의 연방제란 당초 13개로 따로따로 존재하던 나라(state)들이 하나의 연방(union)으로 합치자고 해서 발명된 제도다. 그래서 헌법을 만들어 연방에서 할 일과 각 주에서 할 일들을 분명하게 분배했다. 연방에서는 외교권, 군사권, 각 주 사이의 통상권, 연방과세권, 연방사법권 등 헌법에 열거된 사항에 한해서 권한을 가진다. 그리고 나머지는 대부분, 예컨대 민사, 형사에 관한 입법권과 사법권까지 각 주가 담당한다. 행정권만 하더라도 연방대통령과 주지사가 할 일이 엄연히 분담되어 있다. 대통령을 뽑을 때도 각 주별로 선거하는 독특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떤 의미에선 미국 대통령은 일이 적은 편이다. 주로 외교·국방에 관한 일을 관장하면서 밥 먹고 손 흔들고 사진 찍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속사정은 모른 채 대통령제라는 껍데기만 수입해간 후진국에서는 반드시 사고를 치고 말았다. 남미를 비롯해 대부분의 후진국 대통령들은 죄다 제왕적 대통령이 되어 독재자가 되고 만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수십년간의 경험에서 그 악폐가 얼마나 지독했는지는 우리가 잘 안다. 그러나 소위 민주화가 진행되었다는 지난 십수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거와 같은 독재는 불가능하다 해도 지금 가진 권한만 해도 가히 제왕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힘이 미치지 않는 영역은 형식적으로 입법부와 사법부일 뿐, 그 외에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나라의 크기에 차이가 있지만 이 나라 대통령은 미국의 연방대통령과 50개 주지사가 해야 할 일 중 상당부분을 모두 한몸에 떠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잉부담이다. 그래서 늘 원맨쇼를 해야 하는 신세가 된다. 시쳇말로 통반장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참 불쌍한 일이다. 우린 그동안에 훌륭한 대통령 한번 보기를 그토록 고대했다. 그러나 늘 절반의 실패를 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이미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 때문이다. 실례의 말이지만 지금의 대통령 자리에는 세종대왕을 앉혀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선거로 뽑는 것은 불에다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그 제도의 도입과정에는 불가피한 점이 있었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직접선거는 온 국민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온통 패싸움꾼들로 만들어 놓고 있다. 세계적으로 선진국치고 연방국 아닌 나라에서 대통령제와 직선제까지 하는 나라는 없다. 이젠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대통령직선제를 폐지할 뿐 아니라 아예 제왕적 대통령자리를 없애 버려야 한다. 굳이 대통령제의 형식을 유지하겠다면 대폭적인 분권을 전제로 한 소통령(小統領) 수준의 책임자가 좋겠다. 아니면 내각제에 안정성과 실효성을 대폭 강화한 신내각책임총리제 형태가 좋을 것이다. 이젠 헌법개정을 통해 선진국형으로 정부형태를 바꾸어야 할 때다. 강지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공동대표
  •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조폐공사 디자인조각팀 김종희 선임연구원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조폐공사 디자인조각팀 김종희 선임연구원

    #문제1:우리나라 역사 이래 최고의 슈퍼모델은 누구일까요. “???” #문제2:그렇다면 최장수 모델은? “???” 정답은 바로 우리 주머니속에 있다.1만원권 지폐를 잠깐 들여다보자. 앞면 우측에 근엄하면서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인물, 바로 ‘세종대왕’이 새롭게 다가온다. 흥미로운 것은 세종대왕 옷깃에 한글 창제 당시의 28자모를 조각해 넣은 미세 문자다. 육안으로는 거의 식별이 불가능하며 확대경으로만 알아 볼 수 있다. 또 세종대왕 뒤 ‘일월오봉도’에 숨어 있는 수많은 그림과 글씨가 빽빽하게 조각돼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또한 세종대왕 오른쪽 눈 가까이에 있는 빨간 점(日)만 하더라도 ‘10000원’이라는 아라비아 숫자가 수십개 들어가 있으니 말이다. 그렁저렁 1만원권이 새삼 애지중지 느껴질 것이다. 이렇듯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최고액권의 지폐에 47년 동안 지존의 모델로 굳건히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1960년 1000환권에 처음 등장한 이래 500환권,100원권,1만원권 등 지금까지 화폐 단위는 물론 액면 가치의 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든 유일한 인물로 기록된다. 다른 모델, 즉 이황과 이율곡이 1000원권과 5000원권에 고정출연하는 것과 비교하면 세종대왕은 분명 최고·최장수의 모델인 셈이다. 그만큼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마 모델료 얘기가 나오면 세종대왕이 지하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2009년이면 5만원권과 10만원권이 나오게 돼 있어 지존의 위치를 물려줘야 할 처지에 놓여 있어 안타까움이 없지 않다. ●신권 색상·문양 디자인… 종이를 지폐로 변신 그렇다면 새로 나올 고액 신권의 경우 어떤 모양으로 우리 주머니속에 들어올까.1차적으로 10만원권과 5만원권의 모델로 김구와 신사임당으로 각각 정해졌지만 전체적인 크기나 색상, 문양 등 신권의 디자인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러한 디자인 작업은 극도의 보안을 요하는 사항이어서 어떤 모양이 될지 현재로서는 그저 추측만 해볼 뿐이다. 다만 이미 새로 나온 1000원·5000원·1만원권의 경우, 권(원)종 구분을 위해 차가운 색과 따뜻한 색을 번갈아 적용하는 원칙상 1000원권은 차가운 청색,5000원권은 따뜻한 적황색,1만원권은 차가운 녹색 계열을 사용했다는 점을 볼 때 2009년에 선보일 5만원권은 따뜻한 계열의 색이,10만원권에는 차가운 계열의 색으로 결정될 것이 아니냐 하는 관측을 해볼 수 있다. 현재 고액 신권의 디자인 작업은 한국조폐공사 기술연구원의 디자인조각팀에서 기초공사가 이루지고 있다. 이들은 말 그대로 ‘나랏돈’을 디자인하는 국내 유일의 팀. 따라서 보람도 있지만 남모르는 애환도 적지 않을 터. 대전광역시 유성구 가정동에 위치한 조폐공사에서 디자인조각팀의 김종희(37) 선임연구원을 만났다. 김씨는 새 옷을 갈아입은 1000원,5000원,1만원권을 디자인한 주역이다. 요즘은 이 신권의 위조방지 보완 등 사후관리에 바쁘고 특히 정부가 최근 5만권과 10만원권 고액 화폐 발행과 모델을 결정함에 따라 후속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사무실에 들어서자 보안을 이유로 진행 중인 ‘작업’을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황급히 밀친다.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김 연구원의 책상에는 현재 통용되고 있는 1만원권 신권과 각국의 지폐들이 쭉 널려 있었다. 궁금해하자 그는 “130여개국의 지폐 견본들인데 이중에 독일과 캐나다 지폐가 디자인 면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설명한다. 신권 디자인 작업에 대해 슬쩍 묻자 “한국은행 도안자문위원회 여러 검토과정을 거치고 나서 시작된다.”면서 아직 얘기할 단계가 아니라고 했다. 이어 “지폐는 24년마다 교체되는데 신권 디자인 작업을 하려면 대개 1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또 어느 개인의 주문에 의해서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나랏돈이므로 국민의 정서와 쓰임새에 잘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퇴계 이황 선생 수염 0.1㎜까지 손으로 그려” 김씨가 속한 디자인팀은 모두 20여명. 초상 인물이나 사진 등이 도안자문위원회에서 정해지면 다음 순서로 크기나 색상, 컨셉트 등 최초의 기획작업이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획 단계에서 수십번 회의를 거치는데 특히 위조방지를 최우선으로 둔 상태에서 시대와 정서에 맞는 색상과 바닥지문의 패턴 등이 결정된다고 귀띔했다. 아울러 요·평판 조각 등 분야별 전문 디자이너들이 참여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기존의 신권, 즉 1만원권과 1000원권의 변별력 논란도 있고 해서 앞으로 나올 고액 신권은 더욱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각오를 다진다. 디자인 작업할 때는 실물보다 300%가량 더 큰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이어 그는 “화폐 디자이너는 손바닥 크기만 한 공간에 여러가지 크고 작은 숨은 내용을 예술적 감각으로 그려내야 한다.”면서 퇴계 이황 선생의 경우 수염을 0.1㎜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세밀하게 그려낼 정도로 치밀한 작업을 필요로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씨는 그동안 현재 전국민이 사용 중인 주민등록증을 비롯,2002년 월드컵 주화,2002년에 발행된 새 수표 등 각종 국가기념 주화 및 채권 등을 디자인했다. 지폐 탄생과 관련, 그는 “지폐 속의 그림, 위조방지의 기술, 디자인 등 3박자가 제대로 갖춰질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고 했다. 김씨를 비롯한 조폐공사의 디자이너들은 위·변조 장치만 하더라도 수십개의 위치와 편의성, 미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아주 복잡한 작업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디자인을 하는 과정에서 자료조사 등 현장 취재와 역사·미술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반드시 자문을 한다. 새 1만원권에 들어간 보현산 천문대 망원경의 경우, 촬영과 스케치를 하기 위해 여섯 차례나 현장을 직접 다녀왔다. ●그림+위조방지기술+디자인 갖춰야 지폐 탄생 “작업이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다른 일은 못하게 됩니다. 낮과 밤이 구분도 없는 날이 많지요. 성격도 예전에 비해 꼼꼼해졌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온 국민이 사용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자부심도 많이 느끼지요.” 그러면서 대개 돈을 무심코 주고받는 경우가 많지만 한번쯤 천천히 들여다보면 소중한 예술작품이나 다름없기에 제발 귀하게 쓰여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곁들인다. 또한 다른 디자이너들의 경우 자신의 작품을 알리려고 노력하지만 화폐 디자이너들은 구체적인 내용이나 여러 생색을 낼 수 없다고 아쉬움(?)을 고백했다. 그만큼 지켜야 할 비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나라의 화폐디자인 수준은 선진국에 결코 뒤지지 않으며 1983년에 발행된 지폐와 비교할 때 얼마나 많은 발전을 했느냐.”고 반문한다. 한국미술협회에 소속된 그는 올해 9년째 조폐공사에 근무 중이다. 한남대 응용미술과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으며, 졸업후 3년 동안 광고대행사에 다니다 1998년 조폐공사에 공채로 입사했다. 이후 ‘대한민국 주민등록증 디자인 공모 최우수상’을 받았고 2002년 월드컵 대회 성공 개최 유공 표창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71년 강원도 평창 출생 ▲89년 중앙고 졸업 ▲97년 한남대 응용미술과 졸업 ▲98년 조폐공사 입사 ▲2006년 한남대 석사과정 #주요 작품 주민등록증 도안(99년), 월드컵 주화(2002년),10만원권 새 수표(2006년), 그외 각종 채권 및 정부 보안인쇄물 디자인 수십종
  • 李 “세종대왕 리더십”

    李 “세종대왕 리더십”

    최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연설문 등에 ‘세종대왕’이라는 고유명사가 자주 들어가 주목되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 13일 SBS 미래한국리포트 행사에서 “세종대왕께서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국민을 배부르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했다. 그 이틀 전 기자회견에서는 “세종대왕은 정치란 백성을 먹여 살리고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했다.”라고 했다. 이 후보는 14일 중앙선대위 산하 경제살리기특별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차기정부에서 추진할 ‘민생경제살리기 10대 과제’를 발표하는 등 ‘세종대왕 노선’에 박차를 가했다.▲일자리 창출과 청년실업 해소 ▲중소·벤처기업 육성 ▲소상공인, 자영업자, 재래상인 지원 ▲물가안정과 서민생활비 줄이기 ▲서민주거 안정 ▲여성경제활동 활성화 ▲농어촌 살리기 ▲비정규직 문제 등 고용안정 ▲서민금융 활성화 ▲서민 기초생활 보장 및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이다. 이 후보가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였다. 그는 “모두가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리는 생생지락(生生之樂)의 편안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서 세종의 어록을 차용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리더십을 세종대왕의 ‘전임자’인 태종에 빗댄 적이 있어 흥미롭다. 노 대통령은 2003년 11월 “태종이 세종 시대의 기반을 닦는 역할을 했다. 구태를 깨끗하게 청산해 다음 정권이 다시는 흙탕물 길을 걷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혈육과 개국 공신들에 대한 피의 숙청을 통해 세종에게 왕권의 기반을 닦아준 태종의 가시밭길을 걷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한편 한나라당은 최근 선거자금 마련을 위해 제2금융권으로부터 거액을 차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관계자는 “중앙당 후원금 모금액이 10억원 정도에 그치고 있다.”면서 “이 후보의 ‘돈 안쓰는 선거’ 방침에 따라 재정만으로는 도저히 선거를 치를 수가 없어 결국 280억원을 빌렸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할아버지 조정래의 위인이야기

    할아버지 조정래의 위인이야기

    소설가 조정래(64)가 손자 손녀들이 읽을 수 있는 인물이야기를 펴냈다. 시리즈 제목이‘큰 작가 조정래의 인물이야기’(문학동네)다.‘소설가 조정래’가 추구해온 치열한 작가적 고민을 ‘할아버지 조정래’의 입을 빌려 진솔한 마음을 담아 풀어냈다. 작가는 “글 쓰는 할아버지로서 위인전과 전래동화를 손수 써서 손자에게 읽히고 싶은 꿈을 갖고 있었다.”고 집필동기를 설명했다. 민족이 겪어온 처절한 역사 속에서 민족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가를 놓고 동시대 독자들에게 호소했던 것을 이젠 손자 세대에게도 말해 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10권을 훌쩍 넘는 대하장편소설을 써온 작가는 자신의 글힘을 과시하듯, 국내외 인물 30명의 삶을 30권에 담는 방대한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다시 ‘글감옥’에 갇혔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7월까지 소설 작업을 중단하고 한 달 반만에 한 권씩을 마무리했다. ‘민족주의자’ 조정래가 인물을 고른 기준 또한 민족주의다. 신채호·안중근·한용운·김구·박태준을 주인공으로 해서 5권이 먼저 나왔다. 유일한 생존인물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을 꼽은 데 대해 작가는 “‘단군 이래의 최대 기적’이라 부르는 한국의 경제발전 중심엔 박태준씨가 있었다.”면서 “그는 식민지시대 항일열사들만큼이나 한국 현대사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인물로 이순신, 세종대왕, 허준, 김정호, 전봉준, 홍범도, 신돌석, 김원봉, 유일한, 장기려 등을 추후 집필 대상으로 꼽고 있다. 국내 인물을 마치면 곧 해외 인물 집필을 시작할 계획이다. 조정래의 인물이야기가 기존 위인전과 다른 점은 작가가 한평생 견지해온 문제의식을 그대로 투사했다는 점이다.‘안중근편’에서는 외국 신부의 입을 통해 강대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고발했고,‘신채호편’에선 작가 자신이 사표로 삼아온 선생에 대한 존경의 뜻을 한껏 담았다. 조정래는 “글을 쓰면서 선생들이 느꼈을 고통과 괴로움을 내가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늘 두려웠다.”면서 “한 권의 글을 마칠 때마다 그분들의 삶이 너무 숭고해 가슴이 먹먹했다.”고 회고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