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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유산 톡톡] 보물창고 같은 서울사방, 한달도 안된 ‘전봉준 동상’…염상섭 좌상처럼 지정 기대

    [미래유산 톡톡] 보물창고 같은 서울사방, 한달도 안된 ‘전봉준 동상’…염상섭 좌상처럼 지정 기대

    지난 12일 답사단이 찾은 서울사방(중앙)은 서울미래유산의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옛 서울인 사대문 안은 발 닿는 곳마다 국보, 보물, 명승, 유·무형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가 즐비하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451곳 중 절반이 도심에 몰려 있기도 하다. 이날 코스 중에서도 보신각 타종, 보신각 지하철 수준점, 청일집(빈대떡), 미진(메밀국수), 청진옥(해장국), 도로원표, 광화문지하보도, 이순신 동상, 세종대왕 동상,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세종로공원 서울의 찬가 노래비, 세종문화회관 등이 뚜렷한 존재 이유를 가지고 서울미래유산 목록에 올라 있다.모두 13곳의 탐방 장소 중 동학농민군을 이끈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이 유일한 비서울미래유산이다. 이유는 단 하나, 지난달 24일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동상 세우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서울, 그중에서도 종로 중심에 떡하니 자리잡았다. 크기나 비중 면에서 세종문화회관 앞 정지용, 교보 앞 염상섭 좌상은 댈 것도 아니다. 4월 24일은 우금치 전투에서 패해 서울로 압송된 녹두장군이 숨진 지 123년째 되는 날이다. 장군이 형형한 눈빛으로 버티고 앉은 종로네거리는 명실상부한 옛 서울의 중심지이자 전옥서 감옥 터이다. 터가 워낙 길하고 샘물이 좋아 죄와 상처를 씻어주고자 감옥을 뒀다. 녹두장군의 원도 풀어지길 바란다. 세종문화회관은 1935년 부민관, 1961년 시민회관의 전통을 잇는 문화예술의 전당이자 요람이다. 1978년 건립 이후 40년 동안 광화문 일대가 대한민국 문화 1번지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이후 서초동 예술의전당에 밀려 주춤했으나 또 한번의 도약을 앞두고 있다. 오는 2021년 새로운 광화문광장이 조성되면 서울의 문화예술 지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세종문화회관 쪽 세종대로 도로가 없어지는 대신 광장으로 탈바꿈하면 세종문화회관이 광화문광장의 문화 중추로 거듭날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세종대왕 탄신 621돌 문화행사 다채

    세종대왕 탄신 621돌 문화행사 다채

    경기 여주시에서 세종대왕 탄신 621돌을 맞아 한글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렸다. 지난 12일부터 13일까지 양일 여주 세종대왕 역사문화관 일원에서 세종대왕의 위업을 숭모하고 세종대왕과 가까워 질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한국화 드로잉 퍼포먼스를 비롯해 퓨전 국악 등이 공연됐고, 세종실록을 다시 써 보면서 세종대왕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한글의 우수성을 확인해 보는 기회도 가졌다. 한글 친환경 가방 만들기를 비롯해 한글 팔찌 만들기 및 한글 죽방울 놀이 등 한글과 친숙해 질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져 눈길을 끌었다. 세종대왕 탄신 621돌이라는 역사성을 기념하기 위한 플래시몹 제작을 통해 세종대왕과 여주를 알리는 기회를 가졌다. 또한 세종대왕 역사문화관 앞에서는 세종대왕과 한글을 모티브로 한 드로잉 퍼포먼스와 진도아리랑, 사랑가 등 시민들에게 익숙한 국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퓨전국악공연을 펼치며 겨레의 스승인 세종대왕 탄신일을 더욱 뜻깊게 했다. 스승의 날 이기도 한 지난 15일에는 세종대왕 영릉 정자각에서 세종대왕 탄신 621돌 숭모제전을 열고, 숭모제향을 비롯한 헌화와 분향 등이 진행됐다. 이대직 시장권한대행은 “이번 기념행사를 통해 스승의 날의 유래가 된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세종대왕 행차요!… 행궁밥상·약수칵테일 대령이요~

    세종대왕 행차요!… 행궁밥상·약수칵테일 대령이요~

    전직 대통령들의 탄핵과 구속 등으로 우울한 요즘 위로를 받고 싶다면 ‘세종대왕과 초정약수 축제’를 추천한다. 충북 청주시가 오는 25일부터 3일간 청원구 내수읍 초정문화공원 일원에서 개최하는 이 축제는 자신보다 먼저 백성을 생각해 ‘성군’(聖君)으로 불리는 세종대왕의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행사다. 우리도 자랑할 만한 국가지도자가 있었다는 사실에 잠시나마 가슴이 뿌듯하지 않을까. 더불어 세계 3대 광천수로 인정받고 있는 초정약수를 마음껏 즐겨 볼 수 있으니 요즘 말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율) 최고의 축제다.●세종 2회 123일간 머물며 눈병 치료 15일 청주시에 따르면 세종대왕과 초정약수가 축제를 통해 ‘한몸’이 된 것은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1400년대로 가보자. 세종대왕은 1432년부터 눈병을 앓았다고 한다. 그다음 해부터 당뇨까지 겹쳐 합병증까지 찾아왔다. 세종대왕은 눈병 치료를 위해 충남 온양온천 등에서 요양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낙심한 세종대왕은 다시는 온천에 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러나 1444년 반전이 있었다. 청주에 후추 맛 같은 ‘초수’라는 물이 있는데 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세종대왕은 청주행을 결심하고 4~5일이나 걸려 청주를 찾았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대왕은 내수읍 초정리에 행궁(行宮)을 짓고 1444년 3월과 9월 두 차례로 나눠 총 123일간 머물며 눈병을 치료했다. 행궁은 왕이 본궁 밖으로 나가 머무는 임시 궁궐을 말한다. 세종대왕은 초정에서 한글 창제의 마무리 작업도 진행했다. 또한 어려운 백성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지역민들의 여론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하는 등 민본정치를 실현하기도 했다. 축제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시작돼 올해 12회를 맞는다. 축제의 백미는 세종대왕이 한양을 떠나 초정리로 오는 모습을 재현하는 어가행렬이다. 그동안 시는 어가행렬을 선보이면서 고종황제의 증손자를 세종대왕으로 분장시켜 참여시키고 수백명을 투입했다. 지난해 축제 때는 청주대 학생들과 군 장병 등 200여명이 왕비, 호위 무사, 신하, 궁녀, 장군, 선비 등의 의상을 입고 충북소주 공장에서 초정문화공원까지 2㎞ 구간에서 어가행차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규모를 축소하는 등 변화를 주기로 했다. 축제 둘째 날인 26일 오후 초정리 주변에서 펼쳐지는 어가행렬에는 대학생 등 100여명이 참여한다. 또한 사물놀이패 등 시민공연팀이 어가행렬에 참여해 분위기를 띄운다. 어가행렬의 주인공인 세종과 소헌왕후는 전국 공모를 통해 선발한다. 나이 등 자격 조건은 아무것도 없다. 남녀가 동반 신청만 하면 된다. 뽑히면 각각 상금 100만원을 받는다.●식욕 증진·소화 촉진·구토 진정에 효과 어가행렬 규모를 줄인 것은 실제 초정으로 오던 세종대왕의 어가행렬이 소박했기 때문이다. 임금의 행차를 알리는 나팔수와 수라상을 올릴 몇몇 사람, 집현전 학자, 각종 행사를 그리거나 풍경을 사생하는 도화서 화공 등만이 함께 했을 뿐 취타대도 따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한다. 이동암 청주시 축제담당은 “그동안 어가행렬이 보여주기였다면 이번에는 모두가 참여하는 어가행렬이 될 것”이라며 “축제의 재미가 배가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축제 기간 동안 행사장에서는 세종대왕과 관련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조선시대를 느낄 수 있는 한옥 형태의 가건물을 만들어 한글 이름 도장 만들기와 휘호 쓰기가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세종대왕이 먹었던 음식을 직접 맛보는 행궁 밥상 체험 부스가 운영되고 조선시대 저잣거리가 조성돼 눈과 입이 심심할 틈이 없다. 집현전과 내의원, 수라간도 꾸며진다. 행사장 한쪽에는 별빛정원이 조성돼 아름다운 야경도 볼 수 있다.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잔치도 펼쳐진다. 초정에 머물며 마을 주민들을 초청해 잔치를 열고 옷감을 하사한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기리기 위해서다. 이번 축제의 한 축인 초정약수는 600여년 전에 발견됐다. 행사장을 방문하면 약수로 족욕을 하고, 약수로 만든 칵테일을 마셔 볼 수 있다. 행사장 방문객들이 약수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시음대도 마련된다. 미국의 샤스터, 영국의 나폴리나스와 함께 세계 3대 광천수로 인정받고 있는 초정약수는 유리탄산, 칼슘, 나트륨, 중탄산, 칼륨, 마그네슘, 이온이 많이 들어 있어 피부 미용에 좋다. 자체 탄산가스가 살균 작용을 해 위생적이다. 지하 50~100m에서 석영 암반을 뚫고 솟아나 허드렛물이 끼어들 틈도 없다. 한 모금 마시면 쌉싸래하며 톡 쏘는 맛이 일품이다. 감미료 등을 첨가하지 않은 싱거운 사이다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조성렬 충북보건환경연구원 먹는물검사과장은 “탄산가스를 함유한 물이 피부에 닿으면 항균 작용을 하고 혈관을 확장시켜 준다”며 “이 때문에 초정약수탕에 들어가 앉으면 사타구니 등 예민한 곳이 따끔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물을 마시면 식욕 증진, 소화 촉진, 구토 진정 등의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초정리 물이 좋다 보니 주변에 탄산수 등을 생산하는 일화, 충북소주, 롯데주류 등의 공장이 가동 중에 있다. 초정약수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 수 있는 목욕탕도 2곳이 있다. 김인석 내수읍장은 “주말이면 약수를 즐기기 위해 관광버스를 타고 초정을 찾는 외지인들이 많다”며 “임금 가운데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이 요양을 위해 찾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 주민들이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시는 관람객 편의를 위해 축제 기간 중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청주 시내와 초정약수를 잇는 셔틀버스를 운영한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세종대왕 ‘초정 행궁’ 축구장 5배로 복원 추진

    세종대왕 ‘초정 행궁’ 축구장 5배로 복원 추진

    충북 청주시가 내년 9월 완공을 목표로 초정문화공원 일원에 세종대왕 행궁(조감도)을 조성하고 있다.15일 청주시에 따르면 이 사업에는 국비와 도비, 시비 등 총 155억원이 투입된다. 초정 행궁은 현재 남아 있는 충남 온양 행궁 등 조선시대의 다른 행궁이나 행궁도 등을 참고해 건립된다. 똑같이 복원을 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초정 행궁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없다. 터에 남은 흔적조차 없다. 세종대왕이 초정을 떠난 뒤 수년 후 방화범이 불을 질러 사라졌다는 내용만 전해질 뿐이다. 건립 예정지는 초정문화공원 일대의 10여 필지가 왕실 소유로 기록돼 있는 일제 강점기의 토지대장을 근거로 결정됐다. 초정 행궁의 부지 전체 면적은 축구장 5배 정도 크기(3만 8006㎡)다. 중심부에는 세종대왕이 평소 업무를 보는 공간인 ‘편전’과 잠을 잤던 ‘침전’, 세자가 사용했던 ‘왕자방’이 자리잡는다. 주변에는 학문연구기관인 ‘집현전’과 세종대왕이 먹을 음식을 만들었던 ‘수라간’이 위치한다. 집현전 옆에는 ‘독서당’이 꾸며진다. 세종대왕은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줘 학문에 전념하게 하는 사가독서제를 시행했는데, 독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전용공간이 독서당이다. 세종대왕과 초정약수의 연결고리였던 목욕시설 ‘탕실’과 행궁의 정문에 해당하는 ‘초수문’도 재현된다. 행궁 어가가 전시될 ‘사복청’, 행궁 호위병들이 머물렀던 ‘사장청’도 배치될 예정이다. 방문객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마련된다.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 전통 한옥 6동 12실, 산책로, 연못, 야외 족욕 체험이 가능한 원탕 행각, 전통찻집도 꾸며진다. 서흥원 관광과장은 “행궁이 조성되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초정 일대를 세종대왕 테마관광지로 만들 계획”이라며 “관광객들이 몰리면 초정약수 홍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레드벨벳이 추천하는 한국어 공부법’…누리-세종학당 홍보영상 공개

    ‘레드벨벳이 추천하는 한국어 공부법’…누리-세종학당 홍보영상 공개

    걸그룹 레드벨벳이 전 세계 한국어 교육을 보급하는 세종학당 홍보 영상에 재능기부를 했다. 세종학당재단(이사장 송향근)은 한국어와 한국문화 통합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학습 누리집인 ‘누리-세종학당’의 새 홍보영상을 세종대왕 탄신일을 맞아 15일 공개했다고 밝혔다. 공개된 영상은 세종학당 홍보대사이기도 한 걸그룹 ‘레드벨벳’ 멤버들이 ‘누리-세종학당’을 소개하고 이용방법 등을 안내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영상은 재단 공식 유튜브 채널(https://goo.gl/XtDYaZ)에서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으며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 자막까지 제공되어 세계 젊은층에게 널리 알려질 예정이다. 레드벨벳은 세종학당 수강생이 직접 출연해 한국문화를 체험하는 ‘함께해요! 한국문화!’ 영상에도 진행자로 참여해 한국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했다. 이 영상은 아리랑TV를 통해 6월까지 전 세계 105개 국가로 송출될 계획이다. 이에 재단 이사인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는 “홍보대사인 레드벨벳이 영상제작에 재능기부를 함으로써 한국어를 배우는, 그리고 배우고자 하는 많은 해외 한류 팬들에게 큰 관심을 이끌어 낼 것이라 자신한다”고 전했다. 또한 서 교수는 “재단은 앞으로도 한류 스타들과 함께 해외 한국어 학습자들이 보다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한국어 및 한국문화 학습자료를 개발해 나갈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레드벨벳은 지난해 10월, 배우 안성기씨와 함께 세종학당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남한강, 세종대왕 그리고 천년도자의 만남’ ... ‘30회 여주도자기축제’ 5일 개막

    ‘남한강, 세종대왕 그리고 천년도자의 만남’ ... ‘30회 여주도자기축제’ 5일 개막

    30회 여주도자기축제가 ‘남한강, 세종대왕 그리고 천년도자의 만남’ 이라는 주제로 5일 막이 올랐다. 신륵사관광지 야외공연장에서는 개막을 알리는 타북이 힘차게 울려 퍼졌다. 의례적인 개막식에서 벗어나 시민대합창 등 관람객이 직접 참여해 함께 어우러지는 한마당이 펼쳐졌다. 이날은 세종대왕 행차를 비롯해 선인 도공인을 기리며 제를 지내는 ‘도공제’도 열렸다. 22일까지 열리는 도자기축제 30주년 기념전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선풍을 일으킨 컬링을 여주도자기컬링대회 이벤트로 진행하고 도자접시를 던져 깨는 여주전국도자접시깨기대회 등 독창적인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또한 성남 판교역에서 여주역까지 경강선 타고 떠나는 여주 명품 도자여행이 마련된다. 이 프로그램은 복선전철 세종대왕열차를 타고 축제 기간 동안 논스톱으로 달려 여주도자체험, 신륵사 관광, 황포돛배 체험, 여주박물관 관람 등이 가능하다. 축제 기간 중 5회에 걸쳐 진행한다. 도자기 모양을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는 물레체험을 비롯해 원하는 모양의 도자기를 손수 체험하며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다. 올해로 일곱 번째를 맞이하며 독창적으로 운영하는 여주전국도자접시깨기 대회에서 우승하면 푸짐한 도자기교환권도 받는다. 이번 여주도자기축제에서는 유약을 처리하는 과정을 참가자들이 직접 체험해 보도록 ‘도자기 핸드페인팅’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올해 세종대왕 600돌을 맞이하기 때문에 이를 접목한 특별체험인 한방·뷰티체험도 준비해 눈길을 끈다. 여주 최고의 도예명장들이 물레시연을 하고 이들의 수준 높은 작품들도 전시된다. 이번 축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축제 30주년을 기념하는 ‘테이블 웨어전’도 관전 포인트이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댄스공연 ‘키즈 댄스’와 7080세대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아름다운 포크 음악이 있고 국악공연과 신명나는 난타공연. 피아노합주 등도 흥미롭다. 어르신들이 직접 참여하는 댄스와 악기연주 등 흥겨운 한마당이 준비된다. 이밖에 도공의 혼과 정성이 듬뿍 담긴 작품도자기와 생활도자기, 도자기 액세서리 등 다양한 제품들이 관람객들의 관심을 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5월의 호국인물’ 이천 장군

    전쟁기념관은 조선 초기 대마도 정벌의 무공을 세운 이천(1376∼1451) 장군을 ‘5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1402년 무과에 급제한 장군은 1419년 왜구가 충청도 앞바다에 출몰하자 왜구의 본거지인 대마도 정벌에 나서 적선 109척을 불태우고 20척을 포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던 장군은 1437년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80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여진족 근거지인 파저강 유역을 기습 공격하기도 했다. 오는 3일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현양 행사가 열린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상감마마 산책 나가신다~

    상감마마 산책 나가신다~

    30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에서 열린 ‘제4회 궁중문화축전’에서 왕과 왕비, 상궁, 나인 등 분장을 한 배우들이 ‘왕가의 산책’을 재현하고 있다.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번 축전은 오는 6일까지 서울의 4개 고궁(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과 종묘에서 전시·공연·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 文 “온 세계에 큰 선물하자”… 金 “새 역사 신호탄 쏘자”

    文 “온 세계에 큰 선물하자”… 金 “새 역사 신호탄 쏘자”

    文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 金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 찍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7일 군사분계선(MDL)에서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남북 정상회담에 앞서 진행된 환담에 이르기까지 두 정상 간 만남이 이날로 끝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라며 “우리 힘으로 이끌고 주변국이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고 왔고 우리 사이에 걸리는 문제에 대해 대통령님과 무릎을 맞대고 풀려고 왔다. 꼭 좋은 앞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판문점 자유의집 브리핑과 녹취록 등으로 정리한 두 정상의 주요 대화 내용.●군사분계선에서 ‘깜짝 월경’ 문재인 대통령(이하 문) (김 위원장과 악수하며) 김 위원장은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느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하 김) (남측으로 넘어온 뒤 문 대통령의 손을 이끌며)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 ●공식 환영식장으로 이동하다 靑 초청 문 오늘 보여드린 전통 의장대는 약식이라 아쉽다. 청와대에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다. 김 아 그런가요. 대통령께서 초청해 주시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다. ●의장대 사열 후 예정에 없던 사진 촬영 김 오늘 이 자리에 왔다가 사열을 끝내고 돌아가야 하는 분들이 있다. 문 그럼 가시기 전에 남북 공식 수행원 모두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 ●평화의집 로비에서 ‘북한산’ 그림 보며 김 이것은 어떤 기법으로 그린 것이냐. 문 서양화인데 우리 동양적 기법으로 그린 것이다. ●金 “새벽잠 설치지 않게 확인하겠다” 문(김중만 작가의 작품 ‘천년의 동행, 그 시작’을 소개하며) 이 작품은 세종대왕이 만드신 훈민정음의 글씨를 작업한 것이다. 여기 보면 ‘서로 사맛디’는 우리말로 서로 통한다는 뜻이고 글자에 ‘ㅁ’이 있다. ‘맹가노니’는 만들다라는 뜻이다. 거기에 ‘ㄱ’을 특별히 표시했다. 서로 통하게 만든다는 뜻이고 사맛디의 ‘ㅁ’은 문재인의 ‘ㅁ’, 맹가노니의 ‘ㄱ’은 김 위원장의 ‘ㄱ’이다. 김 대통령께서 우리 때문에 NSC(국가안보회의) 참석하시느라 새벽잠 많이 설쳤다는데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 되셨겠다. 문 김 위원장이 특사단 갔을 때 선제적으로 말씀해 주셔서 앞으로 발 뻗고 자겠다. 김 대통령께서 새벽잠을 설치지 않도록 내가 확인하겠다. 원래 평양에서 대통령을 만날 줄 알았는데 여기서 만난 게 더 잘됐다. 오면서 보니 실향민과 탈북자, 연평도 주민 등 언제 북한군의 포격이 날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분도 오늘 만남에 기대를 갖고 있는 걸 봤다. 이 기회를 소중히 여겨 남북 사이에 상처가 치유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분단선이 높지 않은데 많은 사람이 밟고 지나다 보면 없어지지 않겠나. ●“김여정 제1부부장은 남쪽에서 스타” 문 (환담장에 걸린 박대성 화백의 ‘장백폭포’와 ‘일출봉’ 그림을 보며) 나는 백두산에 안 가봤다. 중국으로 가는 분들이 많더라. 나는 북측을 통해 백두산에 꼭 가보고 싶다. 김 대통령께서 오시면 솔직히 걱정스러운 게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다. 평창올림픽에 갔다 온 분이 말하는데 평창 고속열차가 다 좋다고 하더라. 남측의 이런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 우리도 준비해서 대통령께서 오시면 편히 모실 수 있게 하겠다. 문 앞으로 북측과 철도가 연결되면 남북이 모두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 이런 것이 6·15, 10·4 합의서에 담겼는데 10년 세월에 그리 실천을 하지 못했다. 남북 관계가 완전히 달라져서 그 맥이 끊어진 것이 한스럽다. 김 위원장의 큰 용단으로 10년간 끊어진 혈맥을 오늘 다시 이었다. 김 기대가 큰 만큼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큰 합의를 해 놓고 10년 이상 실천하지 못했다. 대통령을 여기서 만나면 불편하지 않을까 했는데 친서와 특사로 사전에 대화해 보니 마음이 편했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중요하다. 문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가리키며) 김 부부장은 남쪽에서 아주 스타가 됐다. 오늘의 주인공은 김 위원장과 나다. 과거의 실패를 거울 삼아 잘할 것이다. 제가 시작한 지 1년차다. 제 임기 내에 김 위원장 신년사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달려온 속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김 김여정 부부장 부서에서 ‘만리마 속도전’이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남과 북의 통일 속도로 삼자. 문 과거를 돌아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다. 김 이제 자주 만나자. 이제 마음을 단단히, 굳게 먹고 다시 원점으로 오는 일이 없어야겠다. 기대에 부응해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자. 앞으로 우리도 잘하겠다. 문 북측에 큰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다. 수습하느라 고생이 많았겠다.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 병원에 들러 위로하고, 특별열차까지 배려했다고 들었다. 김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고 해서 왔고, 우리 사이에 걸리는 문제에 대해 대통령과 무릎을 맞대고 풀려고 왔다. 꼭 좋은 앞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문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다. 그러면서도 세계와 함께 가는 우리 민족이 돼야 한다. 우리 힘으로 이끌고 주변국이 따라오게 해야 한다. ●회담 전 환담장서 두 정상의 모두 발언 김 역사적인 이 자리에 오기까지 11년이 걸렸는데 오늘 걸어오면서 보니까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평화·번영, 북남 관계가, 새로운 역사가 쓰이는 그런 순간에 이런 출발점에 서서, 출발선에서 신호탄을 쏜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여기 왔다. 오기 전에 보니까 오늘 저녁 만찬 음식 갖고 많이 얘기하던데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져왔다. 대통령께서 편한 맘으로, 평양냉면, 멀리서 온, 멀다고 말하면 안 되겠구나(웃음), 좀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다. 문 한반도의 봄이 한창이다. 이 한반도의 봄,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두 사람, 어깨가 무겁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대화도 그렇게 통 크게 대화를 나누고 합의에 이르러서 우리 온 민족과 평화를 바라는 세계 모든 사람에게 큰 선물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자, 오늘 종일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만큼, 그동안 10년간 못다 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文 “닥쳐서 논의하는 맛도 있어야” 김 내가 말씀드리자면 고저 비행기로 오시면 제일 편안하시니까. 우리 도로라는 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불편하다. 제가 오늘 내려와 보니까 이제 오시면 이제 공항에서 영접 의식을 하고 이렇게 하면 잘 될 것 같다. 문 그 정도는 또 남겨 놓고 닥쳐서 논의하는 맛도 있어야(웃음). 김 오늘 여기서 다음 계획까지 다 할 필요는 없다(웃음). 문 아주 오늘 좋은 논의를 많이 이뤄서 아주 우리 남북의 국민에게,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아주 선물이 될 것 같다. 김 많이 기대했던 분들에게 물론 이제 시작에,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겠지만, 우리 오늘 첫 만남과 오늘 이야기된 게 발표되고 하면 기대했던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만족을 드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판문점공동취재단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영상] 2018 남북정상회담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1차 브리핑 전문

    [영상] 2018 남북정상회담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1차 브리핑 전문

    오늘 두 정상이 MDL에서 역사적인 만남을 시작한 이후부터 환담까지 비공개로 진행된 대화 내용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남북 정상이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만남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역사적인 악수를 하면서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나”라고 대화를 하셨습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남측으로 넘어온 뒤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라고 하면서 문 대통령의 손을 이끌고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오늘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께서 예정에 없던 MDL을, 북측에서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의장대 행렬을 하면서 “외국도 전통의장대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셨고, “그런데 오늘 보여준 전통의장대는 약식이라 아쉽다. 청와대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아, 그런가요. 대통령께서 초청해 주시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습니다”라고 화답했습니다. 이어 의장대 사열이 있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의장대 사열이 끝나고 양측의 수행원들과 악수를 나눈 뒤 “오늘 이 자리에 왔다가 사열을 끝나고 돌아가야 하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고, 이에 문 대통령은 “그럼 가시기 전에 남북 공식 수행원 모두 기념으로 사진을 함께 찍었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해서 예정에 없던 포토타임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평화의 집으로 이동을 한 후에 평화의 집 로비 전면에 걸린 민정기 화백의 북한산 그림을 보면서, 김 위원장이 “이건 어떤 기법으로 그린 것이냐”라고 질문 했고, 문 대통령께서는 “서양화인데, 우리 동양적 기법으로 그린 것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두 정상은 9시 48분경 환담장에 입장해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대통령께서 먼저 환담장 뒷 벽에 걸려있는 김중만 작가의 ‘훈민정음’래는 작품을 소개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 작품은 세종대왕이 만드신 훈민정음의 글씨를 작업한 것이다. 여기에 보면 ‘서로 사맛디’는 우리말로 ‘서로 통한다’는 뜻이고, 글자에 미음이 들어가 있다. ‘맹가노니’는 ‘만들다’라는 뜻이다. 거기에 기역을 특별하게 표시했다. 서로 통하게 만든다는 뜻이고, ‘사맛디’는 ‘미음’은 문재인의 미음, ‘맹가노니의’ ‘기역’은 김 위원장의 기역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웃으면서 “세부에까지 마음을 썼습니다.”라고 화답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느냐”라고 물었고, 김 위원장은 “새벽에 차를 이용해 개성을 거쳐 왔다. 대통령께서도 아침에 일찍 출발 하셨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저는 불과 52키로미터 떨어져 있어 한 시간 정도 걸렸습니다.”라고 답했고, 김 위원장은 “대통령께서 우리 때문에 NSC에 참석하시느라 새벽잠을 많이 설쳤다는데,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셨겠다”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께서 우리 특사단이 갔을 때 선제적으로 말씀을 주셔서 앞으로 발 뻗고 자겠다” 고 화답을 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대통령께서 새벽잠을 설치지 않도록 내가 확인하겠다. 불과 200미터를 오면서 왜 이리 멀어보였을까, 또 왜 이리 어려웠을까 생각했다. 원래 평양에서 문 대통령님을 만날 줄 알았는데 여기서 만난 것이 더 잘됐습니다. 대결의 상징인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오면서 보니 실향민들과 탈북자, 연평도 주민 등 언제 북한군의 포격이 날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분들도 오늘 우리 만남에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이 기회를 소중히 해서 남북 사이에 상처가 치유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단선이 높지도 않은데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보면 없어지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오는데 도로변에 많은 주민들이 환송을 해 주었다. 그만큼 오늘 우리 만남에 대한 기대가 크다. 대성동 주민들도 다 나와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우리 어깨가 무겁다. 오늘 판문점을 시작으로 평양과 서울, 제주도, 백두산으로 만남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환담장 앞편에 걸린 ‘장백폭포’ ‘성산일출봉’ 그림을 가리키면서 “왼쪽에는 장백폭포 그림이 있고, 오른쪽에는 제주도 성산일출봉 그림이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께서 백두산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아시는 것 같다” 고 말했고, 문 대통령은 “나는 백두산을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중국 쪽으로 백두산을 가는 분들이 많더라. 나는 북측을 통해서 꼭 백두산에 가보고 싶다” 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오시면 솔직히 걱정스러운 것이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다. 평창 올림픽에 갔다 온 분들이 말하는데 평창 고속열차가 다 좋다고 하더라. 남측의 이런 환영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으로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 우리도 준비해서 대통령이 오시면 편히 모실 수 있게 하겠다” 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북측과 철도가 연결되면 남북이 모두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 이런 것이 6.15 10.4 합의서에 담겨 있는데 10년 세월 동안 그리 실천하지 못했다. 남북 관계가 완전히 달라져 그 맥이 끊어진 것이 한스럽다. 김 위원장께서 큰 용단으로 10동안 끊어졌던 혈맥을 오늘 다시 이었다” 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기대가 큰 만큼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큰 합의를 해놓고 10년 이상 실천을 못했다. 오늘 만남도 그 결과가 제대로 되겠나느라는 하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짧게 걸어오면서 정말 11년이나 걸렸나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 우리가 11년간 못한 것을 100여일 만에 줄기차게 달려왔다. 굳은 의지로 함께 손잡고 가면 지금보다야 못해질 수 있겠나”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김 위원장은 “대통령님을 제가 여기서 만나면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래도 친서와 특사를 통해 사전에 대화를 해보니 마음이 편하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중요하다” 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배석한 김여정 부부장을 가리키며 “김 부부장은 남쪽에서는 아주 스타가 되었다”라고 말했고, 큰 웃음이 있었습니다. 김여정 부부장도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문 대통령은 “오늘의 주인공은 김 위원장과 나다.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잘 할 것이다. 과거에는 정권 중간이나 말에 늦게 합의가 이뤄져 정권이 바뀌면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가 시작한지 이제 1년차다. 제 임기 내에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달려온 속도를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다” 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김여정 부부장의 부서에서 ‘만리마 속도전’이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남과 북의 통일의 속도로 삼자”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웃음이 있었고, 임종석 준비위원장은 “살얼음판을 걸을 때 빠지지 않으려면 속도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고 거들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과거를 돌아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다”라고 말했고, 김 위원장은 “이제 자주 만나자. 이제 마음 단단히 굳게 먹고 다시 원점으로 오는 일이 없어야겠다. 기대에 부응해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자. 앞으로 우리도 잘하겠습니다.” 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북측에 큰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다. 수습하시느라 고생이 많았겠다. 김 위원장께서 직접 나서 병원에 들러 위로도 하시고, 특별 열차까지 배려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고 왔고, 우리 사이에 걸리는 문제들에 대해 대통령님과 무릎을 맞대고 풀려고 왔다. 꼭 좋은 앞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다. 그러면서도 세계와 함께 가는 우리 민족이 되어야 한다. 우리 힘으로 이끌고 주변국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 말했습니다. 2018년 4월 27일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윤영찬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서울포토] 남북정상회담장 장식한 미술품 눈길…김중만 작가 ‘천년의 동행, 그 시작’

    [서울포토] 남북정상회담장 장식한 미술품 눈길…김중만 작가 ‘천년의 동행, 그 시작’

    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 평화의집 실내 곳곳에는 성공적 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을 기원하는 의미의 다양한 미술품이 걸려 눈길을 끈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25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환영과 배려, 평화와 소망’이라는 주제로 미술품을 선정했다”며 ”그림 하나에도 이야기와 정성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사진은 평화의집 1층 정상 접견실 내 병풍으로 세종대왕기념관이 소장한 ’여초 김응현의 훈민정음’을 김중만 작가가 재해석한 사진 작품 ’천 년의 동행, 그 시작’. 김 작가는 문재인 대통령 성(姓)의 ’ㅁ’을 푸른색으로, 김정은 위원장 성의 ’ㄱ’을 붉은색으로 강조해 두 정상이 서로 통하기를 소망하는 뜻을 작품에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제공
  • [영상] 미리 가본 남북정상회담장 ‘평화의 집’

    [영상] 미리 가본 남북정상회담장 ‘평화의 집’

    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 평화의집 실내 곳곳에는 다양한 미술품이 걸려 눈길을 끈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25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환영과 배려, 평화와 소망’이라는 주제로 미술품을 선정했다”며 “그림 하나에도 이야기와 정성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 기념사진을 촬영하게 될 1층 로비 정면에는 민정기 작가의 ‘북한산’이 걸렸다. 역사상 처음으로 남한 땅을 밟는 북측 최고 지도자를 서울 명산으로 초대한다는 의미로, 서울에 있는 산이지만 이름은 ‘북한’산이라는 점도 고려했다고 고 부대변인은 설명했다.방명록 서명 장소 뒤쪽으로는 김준권 작가의 ‘산운’이 배치됐다. 수묵으로 그린 음영 짙은 산이 안정적인 구도를 연출하는 그림이다. 1층 정상 접견실 내 병풍은 세종대왕기념관이 소장한 ‘여초 김응현의 훈민정음’을 김중만 작가가 재해석한 사진 작품 ‘천년의 동행, 그 시작’이다. 김 작가는 문 대통령 성(姓)의 ‘ㅁ’을 푸른색으로, 김 위원장 성의 ‘ㄱ’을 붉은색으로 강조해 두 정상이 서로 통하기를 소망하는 뜻을 작품에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상 접견실 정면으로는 박대성 작가의 ‘장백폭포’와 ‘일출봉’이 놓였다. 국토의 남북단에 있는 백두산 장백폭포와 제주 성산일출봉 그림을 한 데 모아놓은 것이다. 2층 회담장의 배경이 될 출입문 맞은편 벽에는 금강산의 높고 푸른 기상을 담은 신장식 화백의 작품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이 걸렸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 그림을 뒤로 하고 취재진 앞에서 악수할 예정이다. 고 부대변인은 “2008년 이후 다시 가지 못하는 금강산은 누구나 다시 가고 싶어하는 명산”이라며 “남북 화해와 협력의 상징인 금강산을 회담장 안으로 들여 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소망했다”고 말했다. 또 회담장 입구 양쪽 벽면에는 이숙자 작가의 ‘청맥, 노란 유채꽃’과 ‘보랏빛 엉겅퀴’이 배치됐다. 강인한 생명력을 나타내는 푸른 보리로 희망적인 분위기를 살렸다. 3층 연회장 헤드테이블 뒤에는 신태수 작가의 ‘두무진에서 장산곶’이 걸렸다. 북한과 마주한 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해안가를 묘사한 회화로, 서해를 평화의 보금자리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를 담았다. 이밖에 연회장 밖 복도에는 이이남 작가의 ‘고전회화 해피니스’와 ‘평화의 길목’을 놓았다. 액정표시장치(LCD)에 고전 회화를 띄우는 형식의 디지털 작품이다. 고 부대변인은 “무릎이 닿을 만큼 함께 할 남북 정상에게 이 상징적 공간이 소리 없이 말을 걸게 했다”며 “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판문점 평화의집에 걸린 미술품…‘환영과 배려, 평화와 소망’

    판문점 평화의집에 걸린 미술품…‘환영과 배려, 평화와 소망’

    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 평화의집 실내 곳곳에는 다양한 미술품이 걸려 눈길을 끈다.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25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환영과 배려, 평화와 소망’이라는 주제로 미술품을 선정했다”며 “그림 하나에도 이야기와 정성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 기념사진을 촬영하게 될 1층 로비 정면에는 민정기 작가의 ‘북한산’이 걸렸다. 역사상 처음으로 남한 땅을 밟는 북측 최고 지도자를 서울 명산으로 초대한다는 의미로, 서울에 있는 산이지만 이름은 ‘북한’산이라는 점도 고려했다고 고 부대변인은 설명했다. 방명록 서명 장소 뒤쪽으로는 김준권 작가의 ‘산운’이 배치됐다. 수묵으로 그린 음영 짙은 산이 안정적인 구도를 연출하는 그림이다. 1층 정상 접견실 내 병풍은 세종대왕기념관이 소장한 ‘여초 김응현의 훈민정음’을 김중만 작가가 재해석한 사진 작품 ‘천년의 동행, 그 시작’이다. 김 작가는 문 대통령 성(姓)의 ‘ㅁ’을 푸른색으로, 김 위원장 성의 ‘ㄱ’을 붉은색으로 강조해 두 정상이 서로 통하기를 소망하는 뜻을 작품에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상 접견실 정면으로는 박대성 작가의 ‘장백폭포’와 ‘일출봉’이 놓였다. 국토의 남북단에 있는 백두산 장백폭포와 제주 성산일출봉 그림을 한 데 모아놓은 것이다. 2층 회담장의 배경이 될 출입문 맞은편 벽에는 금강산의 높고 푸른 기상을 담은 신장식 화백의 작품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이 걸렸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 그림을 뒤로 하고 취재진 앞에서 악수할 예정이다. 고 부대변인은 “2008년 이후 다시 가지 못하는 금강산은 누구나 다시 가고 싶어하는 명산”이라며 “남북 화해와 협력의 상징인 금강산을 회담장 안으로 들여 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소망했다”고 말했다. 또 회담장 입구 양쪽 벽면에는 이숙자 작가의 ‘청맥, 노란 유채꽃’과 ‘보랏빛 엉겅퀴’이 배치됐다. 강인한 생명력을 나타내는 푸른 보리로 희망적인 분위기를 살렸다. 3층 연회장 헤드테이블 뒤에는 신태수 작가의 ‘두무진에서 장산곶’이 걸렸다. 북한과 마주한 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해안가를 묘사한 회화로, 서해를 평화의 보금자리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를 담았다. 이밖에 연회장 밖 복도에는 이이남 작가의 ‘고전회화 해피니스’와 ‘평화의 길목’을 놓았다. 액정표시장치(LCD)에 고전 회화를 띄우는 형식의 디지털 작품이다. 고 부대변인은 “무릎이 닿을 만큼 함께 할 남북 정상에게 이 상징적 공간이 소리 없이 말을 걸게 했다”며 “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월요 정책마당] 봄 궁궐의 화려한 낮과 고즈넉한 밤/김종진 문화재청장

    [월요 정책마당] 봄 궁궐의 화려한 낮과 고즈넉한 밤/김종진 문화재청장

    최근 따스한 봄날이 계속되면서 단아한 한복 차림으로 고궁을 찾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색색의 고운 한복으로 갈아입고 궁궐을 거니는 이들을 보면 궁궐이 온통 봄꽃으로 넘실대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남녀노소가 한복을 입고 궁 나들이를 즐기는 모습을 볼 때면 예전보다 궁궐이 우리에게 정겹고 익숙한 장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에 흐뭇하다. 우리 궁궐은 조선 500년 역사의 흥망성쇠를 함께해 온 문화유산이자 한 시대를 담고 있는 그릇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차례 복원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지만, 지나온 역사의 숨결은 궁궐 안에 남아 오늘까지 유유히 흐르고 있다. 그러기에 궁궐 탐방은 단지 휴식을 취하고 볼 것을 즐기는 눈요기가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역사 현장으로의 초대인 셈이다. 특히 궁궐은 역사의 지대한 정신과 건물의 외형을 보는 것이 아닌, 수천년의 긴 세월 동안 실타래처럼 엮인 과거의 지혜와 정신을 오늘날의 또 다른 시간으로 빚어내는 것이다. 올봄 궁궐이 문화와 예술을 만나 되살아난다.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과 종묘에서 오는 28일부터 5월 6일까지 열리는 제4회 궁중문화축전은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궁궐들에서 전통과 현대를 결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 4대궁과 종묘를 무대로 다채로운 문화 콘텐츠가 어우러진 축제의 장으로 꾸며져, 문화유산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궁중문화축전의 가장 큰 매력은 궁궐이 단순한 축제의 장소로만 소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궁궐이 궁궐에 담긴 인물, 역사, 문화에 상상력을 더해 재해석한 전시와 공연, 체험의 장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직접 상궁, 나인, 궁궐 관리 등 궁에서 살았던 인물로 분장해 과거의 시간 속 궁궐을 누비고 당시의 생활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올해는 전 국민이 사랑하는 성군 ‘세종’의 즉위 600주년을 맞아 그의 업적과 정신이 축전 속에 녹아 있다. ‘민이 나라의 근본이다‘는 민본정치의 정수이자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그가 꿈꿨던 태평성대의 모습을 ‘산대희’라는 신명 나는 잔치로도 선보일 것이다. 축전에 온 사람들은 세종대왕의 가장 위대한 업적인 한글의 미학과 실용성을 다양한 타이포로 풀어낸 ‘한글 타이포전(展)’을 비롯하여, 경복궁에서 세종의 흔적을 찾아 미션을 풀어 나가는 ‘세종이야기 보물찾기’, 세종의 인간적 면모와 다양한 업적을 담은 ‘뮤지컬 세종 이야기’(부제 : 왕의 선물) 등도 만날 수 있다. 창덕궁에서는 백성을 향한 왕의 마음을 담은 ‘어제시’ 전시, 창경궁에서는 시민이 배우가 되어 영조 시대의 하루를 재현하는 ‘시간여행, 그날’, 덕수궁에서는 고종이 사랑한 가배차를 마셔볼 수 있는 ‘대한제국과 가배차’, 종묘에서는 세계무형유산인 종묘제례악을 밤이 내려앉은 고요함 속에 즐길 수 있는 ‘종묘제례악 야간공연’ 등이 준비되어 있다. 4대궁과 종묘, 각 장소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채비를 마치고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관람객들은 축전 기간 내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환히 불을 밝히는 궁궐을 놀이터 삼아 몇 백년을 이어온 이곳의 역사를 온몸으로 만끽하고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장엄한 궁궐 속에서도 오직 백성만을 생각하며 새로운 조선의 모습을 꿈꾼 세종의 정신은 따뜻한 위로와 선물이 될 것이다. 특히나 문화유산 축제는 우리 고유의 문화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끌어내지만, 전 세계와 나아가서는 국가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도 큰 역할을 한다. 수천년을 버텨 온 세계 곳곳의 유적지에서 굵직한 행사가 열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세종의 숨결이 담긴 궁중문화축전에서 살아 숨 쉬는 궁을 만나길 바란다.
  • 세종대왕님도 ‘봄맞이 샤워’

    세종대왕님도 ‘봄맞이 샤워’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서울시 관계자들이 저압 세척기를 이용해 세종대왕 동상에 쌓인 먼지와 이물질을 제거하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서울포토] ‘세종대왕님, 잠시 머리 좀 식히시지요’

    [서울포토] ‘세종대왕님, 잠시 머리 좀 식히시지요’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서울시 관계자들이 세종대왕 동상을 청소하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참시’ 이영자 휴게소 먹방, 이번엔 우동+도리뱅뱅..그 맛은?

    ‘전참시’ 이영자 휴게소 먹방, 이번엔 우동+도리뱅뱅..그 맛은?

    이영자의 휴게소 먹방이 화제다.지난 7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는 이영자가 매니저와 함께 금강휴게소를 향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영자는 금강휴게소에 대해 “휴게소의 세종대왕”이라며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의 모든 음식을 파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영자는 “금강휴게소에서 파는 우동은 꼭 먹어야 한다. 우동 국물이 정말 진하고, 면발이 탱탱하면서 쫀득쫀득하다. 그런 것 하나 먹으면 꽃샘추위를 견딜 수가 있다”며 우동을 추천했다. 또한 이영자는 “도리뱅뱅이라는 메뉴가 있다. 금강에 사는 민물고기를 고추장 양념에 발라서 철판에 구워서 판다. 그걸 입에 딱 넣으면 뼈 마디마디가 힘이 난다”고 설명했다. 매니저와 이영자는 휴게소 폭풍 먹방을 선보였다. 사진=MBC ‘전지적 참견 시점’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말빛 발견] 봄봄/이경우 어문팀장

    [말빛 발견] 봄봄/이경우 어문팀장

    김유정의 ‘봄봄’에서 ‘나’는 3년이 훨씬 넘도록 머슴 노릇을 한다. 돈은 한 푼도 받지 않는다. 봉필은 딸 점순이와 혼례를 치러 주겠다며 ‘나’를 데릴사위처럼 데려다 놓고 일만 시킨다. 봄이 오고 또 와도 봉필은 일만 하란다. ‘나’가 “장인님 인제 저…” 하고 혼례를 요구하면, 점순이 키가 아직 덜 컸다고 둘러댄다. ‘나’는 속이 타고 끓는다. 봄이 되니 더욱 그렇다. 점순이를 향한 그리움은 더 커진다. ‘봄이 되면 온갖 초목이 물이 오르고 싹이 트고 한다’는 작품 속 표현이 뒷받침한다. 그러나 환경은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이런 ‘나’의 심정을 충분히 반영해 제목을 그저 ‘봄’이라 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그립고 간절해진 봄날 사연을 ‘봄’이라고 하기엔 밋밋했나 보다. ‘봄’이 왔다고 다그치듯 ‘봄봄’이라고 했다. 더하여 현실을 ‘보라’는 뜻도 담지 않았을까. ‘삶’이 ‘살다’의 명사형이듯 ‘봄’은 ‘보다’의 명사형 같다. ‘봄’은 세종대왕 때도 ‘봄’이었는데, ‘봄’이 ‘보다’에서 온 것이 너무 당연해서 다른 흔적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불’의 옛 형태인 ‘블’과 ‘오다’의 명사형인 ‘옴’이 합쳐져 ‘봄’이 됐다는 얘기도 있다. 불이 따듯함을 가지고 있으니 그럴듯해 보인다.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봄놀다’는 ‘뛰놀다’의 옛말이다. ‘봄’에 ‘뛰고 움직이다’라는 의미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봄’은 희망이다. wlee@seoul.co.kr
  • 조선 명종의 태실, 첫 보물 승격

    조선 명종의 태실, 첫 보물 승격

    조선 중종 33년(1538)에 건립된 뒤 480년간 한자리를 지킨 조선 제13대 왕 명종(1534~1567)의 태실(胎室)이 보물이 됐다. 태실은 조선 왕실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태를 항아리에 봉안한 뒤 조성하는 시설을 의미한다. 문화재청은 충남 유형문화재인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976호로 지정했다고 26일 밝혔다. 태항아리와 망자의 인적 사항을 적은 지석(誌石)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 고양 서삼릉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조선 태실 유적 중에는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이 사적 제444호로 지정됐지만, 보물로 지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은 팔각형 난간석에 둘러싸인 태실과 태를 모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태실비 3기. 서산 연합뉴스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평생 ‘울울한 삶’을 산 지식인… 생육신으로 절개를 지키다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평생 ‘울울한 삶’을 산 지식인… 생육신으로 절개를 지키다

    생후 8개월 만에 글을 알고 세 살에 시를 짓고 다섯 살 때 ‘중용’, ‘대학’에 통달해 신동으로 불렸던 사람. 이런 기이한 재주를 세종 임금이 전해 듣고 직접 불러 시험하고 ‘뒷날 크게 쓰겠노라’ 다짐했던 사람. 그러나 평생 울분과 방랑으로 전국을 떠돌아다니다 충청도 허름한 절간에서 생을 마감했던 사람. 우리 한문소설의 명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은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다.그가 쓸쓸한 삶을 살게 된 계기는 거듭된 가정사의 참극으로 지쳐 가던 중 접한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사건이었다. 불의의 소식을 들은 젊고 순수했던 21세 김시습은 문을 걸어 잠근 채 몇 날 며칠을 통곡했다. 그러다 돌연 서책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나서 승려의 행색으로 전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어린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영월로 쫓아 보낸 뒤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의 반인륜적 행위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국을 방랑하던 끝자락, 경주 금오산 용장사에서 한동안 지내며 금오신화를 지었다. 그리고는 “뒷날 반드시 나, 김시습을 알아줄 자가 있으리라”면서 그 책을 석실에 감췄다. 당대 현실과 화해할 수 없던 자신의 고뇌, 그리고 한번도 펼쳐보지 못했던 자신의 꿈을 기이한 이야기에 은밀하게 담아두었음을 짐작게 하는 일화이다. 그런 점에서 금오신화는 울울한 삶을 살아간 한 중세 비판적 지식인의 소설적 독백이라 일컬을 만하다. 우리는 지금 그의 바람처럼, 그의 이름과 삶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산사를 전전하던 자의 자기 초상 평생 전국을 전전하며 지내던 김시습은 충청도 홍산 무량사에서 59세를 일기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런 최후는 자신이 젊은 시절 썼던 ‘금오신화’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너무도 닮았다. 소설 속 주인공들도 모두 깊은 산속으로 홀연 자취를 감춰 버리거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삶을 마감했는데, 김시습은 자신의 비극적 최후를 젊은 시절부터 그렇게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궁벽한 산사에 몸을 의탁하고 지내며 자신의 초라한 몰골을 직접 그림으로 그린 뒤, 거기에 다음과 같은 찬시를 적어두기도 했다. 나의 초상에 쓰다(自寫眞贊) 俯視李賀(부시이하) 이하(李賀)도 내려 볼 만큼 優於海東(우어해동) 조선에서 최고라고들 했지. 騰名譽(등명만예) 높은 명성과 헛된 칭찬 於爾孰逢(어이숙봉) 네게 어찌 걸맞겠는가. 爾形至(이형지묘) 네 형체는 지극히 작고 爾言大閒(이언대동) 네 언사는 너무도 오활하네. 宜爾置之(의이치지) 너를 두어야 할 곳은 丘壑之中(구학지중) 이런 산골짝이 마땅하도다. 흔히 이백을 ‘적선’(謫仙)으로 부르듯, 당나라 시인 이하는 ‘귀재’(鬼才)로 불리던 천재 시인이었다. 김시습은 찬시 첫머리에서 당시 사람들이 자신을 ‘오세 신동’으로 부르며, 그런 이하와 견주었던 어린 시절을 회고한다. 아름다운 과거였다. 하지만 이하가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처럼 그 자신도 뛰어난 재주를 타고났음에도 세상에 한번도 쓰이지 못한 자신의 현실에 몸서리치고 있다. 깊은 자괴, 아니 자조와 자기 경멸이 뼛속까지 배어들었다. 실제로 김시습의 문집 ‘매월당집’에는 이런 소외된 자의 울울한 심경을 담아낸 작품이 많다.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이라고는 오로지 시밖에 없었던 셈이다. 그의 “마음이 세상살이와 어긋나기만 하니, 시를 빼놓으면 즐길 것이 없다네(心與事相反, 除詩無以娛).”라는 고백은 결코 허투가 아니었다. 불의에 영합하지 않고 평생 방외인, 곧 ‘아웃사이더’로 살아간다는 것은 혹독한 일이었다. 물론 그런 대가를 치러낸 덕분에 지금 우리는 그를 생육신(生六臣)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지만.#서울로 복귀한 또 다른 삶의 면모 김시습을 기억하는 우리 대부분은 머리를 깎고 승려의 복색을 한 채, 평생 산사를 전전했던 행적만을 주목한다. 그러나 김시습은 삶의 가장 중요한 장년기에 서울의 저잣거리를 누비며 다니기도 했다. 그가 38세 때인 성종 3년(1472년)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 49세 때인 성종 14년(1483년) 다시 관동으로 떠날 때까지다. 이 12년 동안 수락산에 거처를 정해 놓고 종종 도성으로 내려와 당대 인물들과 교유했다. 어린 시절 교분이 있던 서거정, 김수온과 같은 고관대작도 만났지만, 진정 마음으로 교유한 부류는 자기보다 스무 살쯤 어린 젊은 선비들이었다. 그들 중 가장 절친했던 남효온은 그런 사실을 ‘사우명행록’에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사람들은 김시습의 행동을 위태롭게 여기고는 교유하던 자들이 모두 절교하고 왕래하지 않았다. 그러자 홀로 저잣거리의 미치광이 같은 자들과 놀다가 술에 취해 길가에 쓰러져 자기도 하고, 바보처럼 웃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뒤에 설악산에 들어가기도 하고 춘천 산에서 살기도 하여 드나듦에 일정함이 없었으니 사람들이 그 종말을 알지 못했다. 그가 좋아한 사람은 이정은, 우선언, 안응세 그리고 나 남효온이다.” 남효온은 김시습이 영의정 정창손의 행차를 만나자 길거리에서 “너 같은 놈은 벼슬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소리쳤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모두 위태롭게 여겨 절교할 만하지만, 이정은, 우선언, 안응세, 남효온 등과는 절친하게 지냈다. 이들은 모두 20대의 젊은이들이다. 수양대군 왕위 찬탈을 용납할 수 없어 서울을 떠났던, 바로 그 혈기 왕성한 나이들이었다. 김시습은 그런 맑고 순수한 그들에게 자신이 20대 때 목도한 반인륜적인 비화를 들려줬다. 성종대의 젊은 신진사류들이 세조대의 일그러진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분투를 시작하는 결정적 계기도 생겼다. 김시습보다 스무 살 어린 남효온은 성종 9년(1497년) 스물다섯 나이에 단종의 생모인 소릉을 복위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림으로써, 모두 침묵하고 있던 세조의 행태를 역사 무대 위로 끄집어냈다. 또한 역적의 이름으로 죽어간 인물들을 충절의 인물로 복권하기 위해 ‘육신전’을 짓기도 했다. 그 대가로 남효온 또한 김시습처럼 평생 전국을 떠돌며 울울한 삶을 살게 된다. 이처럼 김시습은 승려의 행색으로 산사에 숨어 살며 은둔의 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아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시대정신을 당대 젊은이들과 함께 벼려가기도 했다. 뒷날, 선조 임금의 분부를 받아 ‘김시습전’을 지은 율곡 이이는 그런 면모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는 절의를 세우고 윤기를 붙들어서 그의 뜻은 일월과 그 빛을 다투게 되고, 그의 풍성을 듣는 이는 나약한 사람도 용동하게 되니, ‘백세의 스승’이라 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애석한 것은 김시습의 영특한 자질로써 학문과 실천을 갈고 쌓았더라면, 그가 이룬 것은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율곡은 김시습을 미친 자가 아니라 ‘백세의 스승’으로 마음에 간직했다. 실제로 김시습은 서울로 복귀해 지내다 환속해 머리를 기르고 결혼도 하며, 유자의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굳게 다짐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그를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김시습은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승려의 행색으로 관동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꼿꼿한 삶의 자세 덕분에 그가 서울을 떠났다 해도 결코 감춰질 수 없었다. 그 뒤로도 많은 지식인이 그를 추모했던 까닭이다.#마음은 유자, 자취는 불자(心儒跡佛) 율곡은 김시습의 삶을 ‘심유적불’(心儒跡佛)이라는 네 글자로 집약했다. 마음은 유자였지만, 불자의 행적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실제로 김시습은 승려 생활을 하면서도 머리는 깎았지만, 수염은 깎지 않았다. 그 이유를 “머리를 깎은 것은 세상을 피하기 위함이요, 수염을 남겨둔 것은 장부의 뜻을 드러내기 위함”이라 설명하기도 했다. 김시습은 유교와 불교의 삶을 함께 살았다고 할 수 있지만, 도교의 세계에도 조예가 깊었다. 유·불·도에 정통했기에 많은 사람이 그를 다양한 사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자유인으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김시습의 그런 삶은 그 어디에도 심신을 잠시도 누이지 못했던, 극심한 방황의 흔적으로 읽는 게 올바른 독법일 것이다. 정출헌 한국고전번역원 밀양분원장·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매월당집’은 김시습 사후 이자가 첫 유고 수집…선조의 명으로 총 23권 9책 발간 남효온은 ‘사우명행록’에서 “그가 지은 시문은 수만 편이 되는데,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바람에 거의 모두 흩어져 없어졌다. 조정의 신하들과 선배들이 혹 그의 글을 절취해 마치 자신의 작품인 양 하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작품을 도적질해 갔던 것이다. 실제로 김시습의 시문을 그의 사후, 그를 존중하던 이자가 중종 16년(1521년) 여기저기 흩어진 유고를 수습해 겨우 3권으로 묶을 수 있었다. 그 뒤에도 박상, 윤춘년 등이 꾸준히 모아 가며 정식 간행했다고 하는데, 현재 그 매월당집은 사라지고 없다. 지금 전해지는 매월당집은 선조 16년(1583년) 임금의 명을 받아 경진자 활자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분량은 총 23권 9책으로, 시집이 15권이고 문집이 8권이다. 매월당집 서두에는 이산해가 쓴 서문과 이이가 쓴 ‘김시습전’이 실렸다. 1927년 후손이 김시습 관련 기록을 부록으로 덧붙여 신활자로 간행하기도 했다. 1979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5책으로 번역·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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