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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광장 3.7배 확대… 시청까지 지하 연결·GTX역 만든다

    광화문광장 3.7배 확대… 시청까지 지하 연결·GTX역 만든다

    세종문화회관 앞 차로 없애 보행성 회복 6만㎡ 규모… 역사·시민광장으로 재탄생 이순신 장군상·세종대왕상 이전도 추진 도시鐵 5개 노선 환승 초대형 역사 건설 1040억 투입… 서울시 “연말까지 공론화”차로 한가운데 떠 있어 ‘거대한 중앙분리대’로 전락한 광화문광장이 시민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올해 설계를 끝내고 2021년 5월 완공한다. 광장은 세종문화회관 앞 차로를 흡수해 3.7배 더 커진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런 내용을 담은 ‘딥 서피스(깊은 표면): 과거와 미래를 깨우다’를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국제설계공모 당선작으로 선정했다고 21일 밝혔다. CA조경기술사사무소 등 컨소시엄은 70대1 경쟁을 뚫었다. 광화문 광장이 지닌 600년의 역사성, 3·1운동부터 촛불혁명을 잇는 시민성, 지상과 지하를 이어 보행성을 회복하는 게 목표다. 먼저 지상을 비워 시민 일상에 돌려주고 지하를 연중 문화 이벤트를 선사하는 휴식, 문화, 교육, 체험 공간으로 채운다. 경복궁 앞에는 역사광장(3만 6000㎡), 역사광장 남측에는 시민광장(2만 4000㎡)이 자리한다. 역사광장 초입에는 지상과 지하를 잇는 선큰공간(지하층에 채광이나 접근성이 좋도록 입체적으로 조성한 구조)을 조성해 자연스럽게 시민들이 북악산의 녹음과 광화문 전경을 보며 역사광장과 만나게 한다. 지하에는 시청까지 350m를 연결해 1만㎡의 거대한 지하도시를 만든다. 광화문~시청~을지로~동대문 4㎞엔 지하보행로도 만든다. 설계공모 심사위원장인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은 “교통섬처럼 놓인 광장의 600년 역사와 현대 여러 사건까지 담으며 대한민국 중심 공간으로 상징적 가치를 잘 구현했다”고 평가했다. 광장 어디서든 막힘없이 북악산을 볼 수 있도록 이순신 장군상은 옛 삼군부 터(정부종합청사 앞), 세종대왕상은 세종문화회관 옆으로 이전하는 방안이 나왔다. 박 시장은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사안이라 당선작 의견대로 될 일도 아니고 심사위원들 논의로 결정됐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연말까지 공론화를 거쳐 시민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 진행하겠다”고 말했다.또 시청까지 이어지는 지하 공간을 활용, 광화문우체국과 프레스센터 사이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노선의 광화문 복합역사 신설을 추진한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과 1·2호선 시청역, GTX-A,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선까지 5개 노선이 합류하는 초대형 역사가 될 전망이다. 대통령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은 보류됐지만 역사를 되살리고 광화문~경복궁~북악산을 연결해 시민들에게 되돌려주는 계획은 이어진다. 일제 때 훼손된 월대(月臺·궁전 건물 앞에 놓는 넓은 단)와 의정부 터를 연내 발굴해 복원하고 월대 앞을 지켰던 해치상도 원래 위치인 광장 쪽으로 옮긴다. 정부서울청사 별관 앞 세종로공원 부지에는 클래식 콘서트홀을 새로 짓는다. 아울러 해치광장, 세종이야기, 충무공이야기 등 세 곳으로 나뉜 지하공간을 한데 합치는 작업도 벌인다. 사업에는 예산 1040억원(서울시 669억원, 문화재청 371억원)이 투입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광화문광장, 3.7배 키우고 지하도시 조성…세종·이순신 동상 이전 아이디어도

    광화문광장, 3.7배 키우고 지하도시 조성…세종·이순신 동상 이전 아이디어도

    2021년까지 1천억 투입 광화문광장 재구조화5개 노선 초대형 역사 조성…차로 절반 없애서울 광화문광장이 2021년까지 보행자 중심의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서울시청에서 광화문까지 지하로 연결하고, 광화문광장 지하에 도시철도 5개 노선을 품은 초대형 역사가 생긴다. 세종문화회관 쪽 차로를 광장으로 편입해 광장 면적이 3.7배 늘린다. 또 광화문과장에 세종대왕상은 세종문화회관 옆으로, 이순신장군상은 정부종합청사 옆으로 이전하는 제안도 나왔다. 서울시는 21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국제설계공모전 결과를 발표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작품 ‘Deep Surface’(딥 서피스)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의 목표는 광장의 △600년 ‘역사성’ △3·1운동∼촛불혁명의 ‘시민성’ △지상·지하를 잇는 ‘보행성’을 계승·회복하는 것이다.이를 위해 당선작은 지상을 비우고 지하를 채우는 공간 구상으로 서울의 역사성을 지키고, 다양한 시민 활동을 품을 수 있게 했다고 서울시는 설명했다. 경복궁 전면에 3만 6000㎡ 규모 ‘역사광장’, 역사광장 남측에 2만 4000㎡ 규모 시민광장을 새로 조성하고, 기존 질서 없는 구조물을 정리해 광장 어디에서든지 경복궁과 북악산 전경을 막힘없이 볼 수 있게 할 예정이다. 당선작은 세종대왕상은 세종문화회관 옆, 이순신장군상은 정부종합청사 옆으로 이전할 것을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두 동상의 이전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며 “시민의견 수렴이라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충분히 논의해 이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상광장 바닥에는 종묘마당의 박석포장과 촛불 시민혁명 이미지를 재해석한 다양한 모양·크기의 원형 패턴을 적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종합청사 별관 앞 세종로공원 부지에도 클래식 콘서트홀을 건립하고, 광장변 건물 앞에도 테라스·바닥분수·미니공원 등을 조성한다. 지상과 지하는 계단식·개방형의 성큰(sunken)공간으로 연결되며 단차를 이용한 테라스 정원이 꾸며진다. 지하에는 서울시청까지 연결된 대형 ‘지하 도시’가 조성된다. 콘서트, 전시회 등이 연중 열리는 휴식·문화·교육·체험 시설을 설치한다는 구상이다.특히 서울시는 시청까지 이어지는 지하 공간을 활용해 GTX-A(파주 운정∼서울∼화성 동탄)의 광화문 복합역사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 1·2호선 시청, GTX-A는 물론 노선·선로를 공유하는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선(용산∼고양 삼송)까지 총 5개 노선을 품는 초대형 역이다. 서울시는 이와 함께 일제강점기 때 훼손됐던 월대(月臺·궁전 건물 앞에 놓는 넓은 단)와 현재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의정부’터 복원을 추진한다. 광화문 재구조화 사업에는 서울시 예산 669억원, 문화재청 예산 371억원 등 총 1040억원이 투입된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올해는 3·1운동 기폭제 된 고종 승하 100주년…모르는 사람 많아 안타까워”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올해는 3·1운동 기폭제 된 고종 승하 100주년…모르는 사람 많아 안타까워”

    ‘황사손’ 이원이 말하는 고종 승하 100주년“올해가 고종광무태황제 승하 100주년입니다. 3·1만세운동 100주년인 것을 알면서도 만세운동의 직접적 도화선이 된 고종 황제의 붕어 100주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황사손으로서 안타깝고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고종 황제는 1919년 1월21일 오전 6시30분쯤 일제에 의해 독살되셨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이지만 해마다 이날 정오에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홍릉에 가서 제향을 봉행합니다. 고종 황제가 당시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는데, 나라를 잘 못 이끌었다는 오해를 아직도 받고 있습니다. 역사교육이 잘 못된 점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21일 정오 고종 왕릉인 남양주서 ‘홍릉제향’ 봉행 그를 만나면 무엇부터 질문할까 고민했다. ‘군주국이 아닌 나라에서 황위 계승자 제1순위로서의 삶’을 먼저 물어볼까하다 ‘고종 사망 100주년의 소회’를 물었다. 황사손(皇嗣孫·(대한제국)황실의 적통을 잇는 후손) 이원(57·본명 이상협)은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만감이 교차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제5대 대한제국 황실의 수장으로, 사단법인 대한황실문화원 총재,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총재도 겸하고 있다. 고종의 증손자인 이원 총재는 2005년 영친왕계의 이구 황태손이 타계한 이후 3년상을 치르고 그의 계자(系子)로 입양돼 황가의 법통을 이어가고 있다.- 고종 황제의 승하 당시 어땠나요. -> 고종이 항일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기에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역적 매국노들은 눈엣가시 같은 고종을 독살했든 겁니다. 1919년 1월 21일 아침 6시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에서 한약·식혜·커피를 드시고 30여분만에 시해되셨습니다. ‘윤치호 일기’에 의하면 황제는 식혜를 마신지 30분도 안 되어 심한 경련을 일으켰고, 사후에 보니 혀와 치아가 타 없어지고, 30cm 가량 되는 검은 줄이 목 부위에서 복부까지 길게 나 있었으며, 온몸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는 것입니다. 독살됐다는 확실한 증거 기록입니다. “고종, 21일 아침 6시 한약·커피·식혜 마시고 승하심한 경륜 후…혀·치아 타 없어져 독살 시해 증거고종 시해 이유…항일독립 망명정부 차단하려고”- 고종 승하에 백성들은 왜 ‘만세(萬歲)’라고 외쳤을까. -> 만세가 요즘이야 축하나 환호할 때 외치는 소리이지만, 그때만 해도 황제에게만 사용하는 경칭이었고, 죽음이란 단어를 꺼렸습니다. 국호가 ‘대한제국’이었으니 자연스럽게 ‘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대한광복군정부(大韓光復軍政府)의 수장이었던 황제가 억울하게 독살당하자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염원한 백성들이 공분을 일으킨 것입니다. 고종의 항일 투쟁의 뜻을 기리는 백성들이 인산일(因山日·왕과 왕가의 장례일)인 3월 3일에 앞서 자발적으로 모여 만세를 외쳤던 것입니다. 인산일에 맞추려다 국장날 소요는 예가 아니다고 미루고, 전날인 3월2일은 일요일이어서 하루 늦췄다고 합니다. 결국 1일로 날짜가 맞추진 것이 3·1독립만세운동입니다. - 고종의 독립운동 가운데 일반인이 잘 모를 법한 이야기는. ☞ 고종 황제는 1897년 황제국을 선포한 것도 지금보면 여러모로 의미있는 일입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을 1894년 갑오개혁때 공식적인 국문 즉 ‘나랏글’로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근대 문명의 초석이 된 겁니다. 한글을 이용한 잡지와 신문 발간도 적극 권장했지요. 서울신문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도 출간도 가능했던 겁니다. 또 일본보다 2년 빠른 1884년 미국 에디슨전기회사와 협약해 창덕궁에 전기등소를 설치하고 종로에 전차를 도입했습니다. 종로를 아시아에서 가장 번쩍이며 화려한 명소로 탈바꿈시키셨던거죠. 친일역적 매국노들이 고종 황제를 철저히 암군(暗君·어리석고 아둔한 군주)으로 묘사했지만 최근 학자들에 의해 개명군주(開明君主)로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고종, 한글 공식 나랏글 선포…개명군주 역할 많아대한광복군정부 수장…항일 구국 독립운동 구심점- 대한광복군정부에 대해 설명하면. ☞ 고종 황제는 1907년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황위에서 강제로 퇴위되셨습니다만 1914년 이상설(1871~1917)을 중심으로 설립된 첫 망명 정부인 대한광복군정부의 수장이 되어 항일구국 운동을 지원하셨습니다. 대한광복군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규군으로, 다시 대한민국국군의 모체가 됩니다. 간접적인 독립활동에 한계를 느끼신 황제는 이상설과 이회영(1867~1932)의 계획 아래 중국에 망명해 항일구국 독립투쟁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려 하셨습니다. 이런 망명 계획을 첩보로 입수한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민병석·송병준·이완용·윤덕영·한상학이 고종의 망명을 차단하려고 암살을 한 겁니다. - 군주국이 아닌 공화국에서 황사손의 역할은. ☞ 가장 대표적인 직무는 종묘대제·사직대제·환구대제(대한제국 황실 선포 및 국태민안 기원 제사)·조경단대제(조선왕실 시조 즉 전주이씨 시조묘 제사) 그리고 연중 66회의 왕릉제향의 초헌관(初獻官)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연간 70번 거행되는 제사에서 왕과 왕비 신위에 술잔을 처음으로 올리는 제관 역할을 하는 겁니다. 왕실 초헌관은 조선시대 때부터 국왕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만 이구 황태손 저하를 이어 제가 그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조선왕실과 대한제국황실의 그 유구한 역사·문화적인 유산을 지금도 계승하고 있으며, 대한제국황실이 그 정통성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공화국이 된 나라에서 황제 계승자라는 직위는 다른 분들에겐 사실 설명하도 이해를 잘 못하는, 그래서 외로운 면이 있습니다. “황사손 역할, 연중 70회 대제·제향 초헌관 맡아유구한 역사 계승…대한민국 정통성 뒷받침 자부”- 황실 최고령인 이해경씨 환국은. ☞ 제게는 고모님이 되시는 해경 황녀님은 1930년 태어나셨서 올해 구순이 됩니다. 고종 황제의 다섯째 왕자이신 의친왕(1877~1955)의 5녀입니다. 조선왕실 법도로 보면 의친왕의 공주가 되고, 대한제국 황실 법도로 보면 황녀가 됩니다. 1956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신 이후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한국학 사서로 조선의 기록을 많이 발굴해 내셨습니다. 1996년 정년퇴직하신 이후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거주하고 계십니다. 뉴욕의 한인사회 주요 행사에 참석하시며 교민들에게 정신적 구심점이 된다 들었습니다. 뉴욕에서는 황녀라는 호칭보다 ‘한국 공주님’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계십니다. 독립한 조국이 있는데 이역만리에서 홀로 생활하시는 게 너무 마음에 걸립니다. 더 늦기 전에 환국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환국시 친모이신 의친왕비가 생활하셨던 안동별궁이나 사동궁이 좋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습니다. 황실의 상징성을 고려해 이구 황태손 저하와 영친왕비, 그리고 덕혜옹주께서 기거하셨던 창덕궁 낙선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황사손으로 보람을 느꼈던 일은. ☞ 2017년과 작년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있는 스미스소니언박물관 관계자들과 오하이오주에 사는 고종 황제의 주치의였던 호러스 알렌 박사 후손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소개되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관계자들은 저를 ‘His Imperial Highness’(저하)로 경칭해 놀랐습니다. 또 알렌 박사의 고향에선 ‘한국의 황태자가 온다’는 소문에 알렌 박사의 증조카 며느리의 집에 동네사람들이 저를 만나려 몰려왔습니다. 그들도 저를 ‘Your Highness’로 높여 불러주었습니다. 한 이웃은 오찬 음식점까지 자신의 자녀들을 데려와 소개시켜주면서 “오늘 한국의 황태자를 알현하는 것은 저희 가족에게는 큰 영광이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대한제국 황실의 수장으로서의 뿌듯한 마음을 갖게 됐고 또한 큰 위로도 받았습니다. 황사손에 대한 마땅한 영어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해외왕실교류수석위원이신 김영관 박사는 제1위 황위 계승자이니 영어로 ‘The Crown Prince His Imperial Highness’(황태자 저하)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고, 현재 영어로는 그렇게 호칭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알렌 후손들로부터 환수된 문화재는 서울시에 기증하였습니다. “황실 최고령 이해경 황녀, 늦기 전에 환국해야사직대제·환구대제·왕릉제향 유네스코 등록 추진”- 앞으로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은. ☞ 올해는 특히 국민을 섬기며 대한민국의 문화 융성에 이바지하려고 합니다. 종묘대제와 종묘제례악이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가장 큰 이유는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즉, 민주공화정에서도 종묘에 모셔진 역대 왕과 왕비의 직계손이 제향에 초헌관으로 참여함으로서 그 뿌리와 원형이 인정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사직대제와 환구대제 그리고 왕릉제향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올해도 지속적인 노력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뉴욕한인축제나 에딘버러축제에서 어가행렬을 재현하는 행사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종묘제례악이나 어가행렬은 단순한 제례의식의 절차를 뛰어 넘어 대한민국만이 보유한 역사·종교·문화 유산으로서 그 가치가 지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우리의 역사문화 유산에 큰 자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또 알렉 박사의 후손들을 올해 직접 방문해 작년에 환수하지 못한 나머지 유물 환수와 숨겨진 역사적 사실들은 발굴할 계획입니다. 이런 여정을 영상으로 남길까합니다. 그는 황사손이라고 하지만 궁궐이 아니라 서울 성북동의 한 아파트에 산다고 했다. 황사손이 되기 전에는 그도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상문고와 뉴욕공과대(NYIT)를 마치고 미국 케이블사 홈박스오피스(HBO)의 PD로 일하다 1990년 귀국했다. 금강기획을 거쳐 현대방송 PD, 현대홈쇼핑 디지털방송본부장으로 있다가 황사손으로 선정됐다. ‘직장인으로 승승장구했는데, 미련이 많겠다’고 하자 그는 “하늘의 부름이죠”라며 말끝을 흐렸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공짜 공공 이모티콘 알고 보니 ‘혈세 먹는 하마’였다

    공짜 공공 이모티콘 알고 보니 ‘혈세 먹는 하마’였다

    55개 기관서 4년 동안 80회 이상 제공 16억 ‘줄줄’… 1회 제작비 최대 3630만원 복지부·질병관리본부·교육부 1억 지출 “예쁘지 않아서 잘 안 쓴다” 실효성 의문최근 카카오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모티콘을 만들어 나눠 주는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무료를 앞세우고 있지만 수천만원대 비용이 들어가는 데다 효과도 크지 않아 실효성에 의문도 제기된다. 15일 서울신문이 각 기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결과에 따르면 2015~2018년 4년 동안 적어도 55개 기관에서 80회 이상 이모티콘을 무료로 배포했다. 퀴즈를 풀거나 이벤트에 참여하면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기관이 운영하는 SNS 계정을 구독하면 이모티콘을 주는 식이다. 그렇다면 ‘무료 이모티콘’은 정말 공짜일까. 전 공공기관 전문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유행처럼 이모티콘 제작 열풍이 일고 있다”면서 “SNS에 내는 배포 비용 외에 기존 캐릭터를 활용할 경우 지불하는 저작권 비용이나 자체 캐릭터를 만드는 비용 등 전체 비용은 수천만원대”라고 밝혔다. 네이버나 텔레그램을 통해 이모티콘을 주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용층이 넓은 카카오를 쓴다. 판매용이 아닌 기업이나 기관이 만드는 브랜드 이모티콘 사업에서 공공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아 별도 담당자까지 둘 정도다. 카카오에 따르면 브랜드 이모티콘은 개당 배포 비용이 400~1400원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최소 구매금액이 1000만원이어서 적어도 1만~2만개를 배포한다. 디자인 업체에 따로 내는 제작비는 회당 최소 200만원에서 최대 3630만원에 달한다. 정보공개 청구 결과에 따르면 최근 4년 동안 적어도 16억 6185만원의 예산이 이모티콘 제작과 배포에 투입됐다. 이 중 절반이 넘는 9억 7599만원이 지난 한 해 동안 쓰였다. 1억원 이상 쓴 기관은 보건복지부(1억 3564만원), 질병관리본부(1억 450만원, 제작비 제외)와 교육부(1억 763만원) 등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도 9930만원을 썼다. 이모티콘에 얼마를 썼는지조차 모르는 기관도 적지 않아 실제 투입된 예산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가족부는 정보공개를 요구하자 “이모티콘을 제작한 적이 없다”고 했다가 2016년 8월에 여가부가 만든 이모티콘을 제시하자 1620만원을 썼다고 정정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2015년과 2016년에 적어도 2차례 만들었지만 “해당 사항 없다”고 답했다. 2017년 3월 이모티콘을 배포했던 국립중앙박물관은 “문화재단에 해당 사업을 했던 직원이 퇴사해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2015년 제작 사실이 확인됐지만 “모든 부서가 회신을 하지 않았다”며 정보가 없다고 처리했다. 적잖은 세금이 들더라도 효과가 크면 장려할 만하다. 그러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모티콘을 받은 사람 대부분은 “한 번 받고 예쁘지 않아서 잘 쓰지 않는다”, “친구를 추가해 이모티콘만 받았다가 도로 친구에서 삭제했다” 등의 반응이다. 이 때문에 SNS로 정책이나 행사를 홍보하려던 기관은 구독자수(플러스 친구수)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차례 이모티콘을 만들게 된다. 서울시 한 구청 관계자는 “재난 관련 정보를 카카오로 제공하겠다는 지자체나 기관도 있지만 모든 주민이 카카오를 쓰는 것도 아닌 데다 이미 문자로 재난 등은 폭넓게 알릴 수 있어 카카오 계정 자체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심지어 이모티콘 디자인이 기획 의도와 상충되거나 오히려 홍보하려는 정책에 반감만 키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세종시는 지난해 10월 한글날에 세종대왕 얼굴을 딴 ‘내가 이러라고 한글을 만들었나’라는 이모티콘을 내놨다. 그런데 말풍선에 담긴 문구에 세로쓰기를 적용하면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도록 잘못 썼다. 이모티콘을 받은 A씨는 “세로쓰기 방향이 틀려 이모티콘을 받고 황당했다”면서 “한때 다운로드가 멈췄기에 디자인을 수정할 줄 알았는데 디자인은 그대로였다”고 지적했다. 2015년 고용노동부는 이모티콘으로 임금피크제 등을 홍보하려다 구설에 올랐다. 당초 10만개를 배포하려 했지만 6만 5000명이 받는 데 그쳤다. 물론 카카오톡으로 이용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거나 도움을 주는 기관들도 있다. 우편 도착 정보를 알려주는 우체국은 이날 기준 730만명이 친구로 등록돼 있다. 여러 질환에 대한 예방법 등을 알리는 질병관리본부도 15만 2000여명이 구독 중이다. 카카오톡은 문자 발송 비용의 절반으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다만 이모티콘으로 공공기관의 딱딱한 이미지를 탈피해 친근함과 인지도를 높이는 것 외에도 SNS 자체 활용도를 높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는 신용보증기금(2월), 경기 안양(상반기), 경기 광주(하반기) 등의 기관이 카카오 이모티콘을 배포할 계획이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주민이 만드는 ‘창신문화밥상’…봉제 장인들 생활예술가로 성장 도와”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주민이 만드는 ‘창신문화밥상’…봉제 장인들 생활예술가로 성장 도와”

    이순녀 논설위원이 만났습니다 창신동 봉제골목 문화실험가 신현길 아트브릿지 대표 낡은 집과 골목을 일시에 허물고 새로 짓는 뉴타운식 재개발이 사라진 자리에 낙후 지역의 지속가능한 사회·경제적 재생을 모색하는 도시재생이 둥지를 틀고 있다. 서울시는 8년 전부터 도시재생사업을 선도적으로 추진해 왔고, 문재인 정부도 도시재생 뉴딜정책을 중점사업으로 펼치고 있다. 도시재생은 지역 공동체 활성화, 지역 문화·역사 발전 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문화적 도시재생’이란 용어도 낯설지 않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은 도시재생 1번지로 꼽힌다. 한국 패션산업의 모태인 동대문과 인접해 수천 개의 소규모 봉제공장이 들어선 창신동은 옆 동네 숭인동과 함께 뉴타운 지역으로 지정됐다가 주민들의 반대로 해제된 뒤 2014년 전국 최초의 도시재생 선도 지역으로 선정됐다. 2017년 말 지원 사업이 종료된 이후에는 주민 중심의 도시재생사업을 이어 가고 있다.문화예술 사회적기업 ‘아트브릿지’는 창신동의 문화적 도시재생을 이끄는 중심 역할을 하는 단체다. 2012년 창신동과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 지금까지 주민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해 왔다. 신현길(47) 아트브릿지 대표를 만나 지역 문화예술활동의 의미와 성과 등에 대해 들어봤다.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 낙후된 동네가 남아 있다니 놀랍다. -조선시대에는 한양 도성 밖 첫 마을이어서 종로 토박이들의 자부심이 컸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채석장으로 쓰였고, 한국전쟁과 산업화 시기에 피란민과 봉제공장 노동자들이 모여들면서 가난한 동네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하지만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묘하게 힐링되는 느낌이었다. 오래된 건물과 좁은 골목 사이로 봉제 짐을 실은 오토바이가 위태롭게 질주하는 이 동네만의 활기가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공연예술의 메카인 대학로가 바로 옆인데 이곳에 자리잡은 이유가 있나. -정동극장과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공연기획을 하다 2007년 대학로에 아트브릿지를 설립했다. 역사 소재 콘텐츠 개발에 관심이 많았다. 첫 번째 작품인 고구려 고분 탐험극 ‘박물관이 살아있다’가 대박을 쳤다. 뒤이어 제작한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관련 공연도 잘됐다. 돈 잘 벌고, 유명한 프로듀서가 되겠다는 꿈에 부풀었던 시절이다. 그러다 2012년 야외 고궁 뮤지컬 ‘천상시계’가 태풍 볼라벤 영향 등으로 흥행에 실패하면서 큰 빚을 지게 됐다. 모든 것을 잃고 좌절한 상태에서 창신동에 왔다가, 그때 받았던 위로 덕분에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외지인이어서 정착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에 와 보니 아이들이 놀 공간이 없더라. 오르막 언덕이 많고, 계단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지 않나. 그래서 ‘뭐든지 예술학교’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아이들과 같이 연극하고 놀았다. 아이들이 오니 부모들도 오고, 그러다 어느 순간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이 됐다. 물론 한동안 고깝게 보는 어르신들도 계셨다. “문화예술단체라고 동네에 들어와서 땅값만 높이는 것 아니냐”고 혀를 차셨다. 하도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얘기가 언론에 부각되다 보니 안 좋게 보신 거다. 하지만 나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다. 지금은 많은 분이 진정성을 믿어 주시는 것 같다. →2017년, 2018년 진행했던 ‘창신문화밥상’이 큰 호응을 얻었다. -성벽 너머 대학로에선 하루 100여편의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 하지만 창신동 주민은 평생 연극 한 편 볼까 말까다. 온종일 봉제 공장에서 일하는 주민들이 문화 혜택을 누리긴 쉽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가 있는 날’ 사업 지원을 받아 봉제를 테마로 한 주민참여형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동네 주민들이 도시락을 만들고, 배우들이 봉제공장에 도시락을 배달하면서 막간 공연을 했는데 다들 무척 좋아했다. 최종원, 김동수 선생 같은 원로 배우들을 마을에 모셔와 공연을 했을 때는 눈물 펑펑 쏟는 어머니들이 많았다. →봉제 장인들이 직접 패션쇼도 했다고 들었다. -창신문화밥상은 전문가가 알아서 차리는 게 아니다. 주민들과 함께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창신동에서 30년 넘게 봉제 일을 하신 분들은 그야말로 장인이다. 이분들을 생활예술가, 주민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아트브릿지의 주요 임무이기도 하다. 지난해 ‘창신동 런웨이’라는 이름으로 주민패션쇼를 열었는데 평생 디자이너한테 지시만 받다가 스스로 옷을 만들어 남들 앞에 선보인 것에 자부심이 대단했다. 어떤 분은 “내 삶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이뤄졌다”고 감격해 하시더라. 처음엔 관심을 안 보이던 분들이 뒤늦게 “나도 할 수 있겠다”, “나도 하고 싶다”고 말할 때 가장 뿌듯했다. 내가 창신동에서 하려고 했던 목표이기 때문이다. 문화나 예술을 어렵게만 생각할 필요가 있나. 연극, 패션쇼도 마찬가지다.→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창신동에 다양한 예술가들의 흔적이 있다는데. -봉제골목, 돌산마을 등으로 불리지만 알고보면 창신동은 원조 예술인 마을이다.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50년까지 창신동 99칸 기와집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화가 박수근도 이곳에서 10여년간 작업했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연기자 양성원인 ‘조선배우학교’와 나운규의 영화사가 자리하기도 했다. 또 가객 김광석이 이 동네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집터가 지금도 남아 있다.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재발견하는 문화적 도시재생이란 관점에서 아트브릿지가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창신동으로 거점을 옮기면서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예술프로그램으로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지역을 혁신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창신동 이야기를 테마로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박수근 화백의 삶을 무대화한 ‘쪽마루 아틀리에’, 창신동에 이주한 네팔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실 끝에’ 등이 대표적이다. 앞으로 백남준, 전태일 열사를 소재로 한 작품도 만들 생각이다. 지역 주민, 특히 아이들에게 자부심과 애착을 길러 줄 작업을 하는 데서 얻는 보람이 크다. →창신동은 뉴타운 해제와 도시재생지역 선정 과정에서 주민 간 갈등이 컸던 곳이다.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해소하는 데 문화예술의 역할이 크다는 점을 실감했다. 문화예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문화는 주민의 상처를 보듬고, 화합을 만들어 내며, 행복한 삶을 찾게 해 주는 데 도움이 된다. 도시재생에서 문화예술이 필수 요소가 돼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현실은 현란한 수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예술단체가 지역에 들어왔다가 정착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러면 주민 신뢰를 얻지 못한다. 문화예술단체로서, 또 사회적기업으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갖지 못한 채 하나둘 빠져나가는 모습을 볼 때면 씁쓸하다. →사회적기업이지만 정부 지원 사업만으로는 지속적인 운영이 어렵지 않나. -정부 지원만 바라보고 지역에 들어가면 못 버티고 나오는 게 당연하다. 아트브릿지는 다행히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여러 개 확보하고 있다. ‘세종, 인재를 뽑다’, ‘소년 이순신, 무장을 꿈꾸다’ 같은 작품을 정기적으로 공연해서 수익을 얻는다. 작년엔 새 작품 ‘고종의 꿈’도 내놨다. 아트브릿지가 창신동에 오래 남아 있을 수 있는 힘이다. →앞으로 계획은. -궁극적으로는 문화예술과 사회적경제, 도시재생이 조화롭게 융합한 모델로서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고 싶은 꿈이 있다. 창신동을 소재로 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봉제 기술자들을 생활예술가로 좀더 많이 배출하는 데도 힘쓸 것이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창신동에 대한 자부심을 키우는 데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coral@seoul.co.kr
  • 전주 영화종합촬영소 인기

    전북 전주시가 영화촬영지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6일 (사)전주영상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주 영화종합촬영소가 국내 영화 제작의 산실로 주목 받을 전망이다. 전주 영화종합촬영소는 지난해 한국영화산업 위축에도 불구하고 64편의 영화·영상물 촬영을 유치했다. 올해도 이미 205일분의 촬영이 예약됐다. 특히, 이병헌·이성민 주연의 ‘남산의 부장들’ 등을 비롯한 기대작들이 대거 제작될 예정이어서 많은 영화인들이 전주를 찾게 된다. 이 영화는 1970년대 정치공작을 주도하며 시대를 풍미한 중앙정보부 부장들의 행적과 그 이면을 조명한 것이다. 같은 이름의 책을 원작으로 한다. 이선균·설경구 주연 ‘킹메이커’도 전주 로케이션을 타진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가 ‘설국열차’ 이후 6년 만에 호흡을 맞춘 ‘기생충’과 한글 창제 과정을 그린 송강호(세종대왕)·박해일(신미 대사) 주연의 ‘나랏말싸미’는 최근 전주에서 촬영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전주가 영화 촬영지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종합촬영소가 스튜디오와 야외세트장 등 각종 시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촬영 이후 편집 등 후처리 작업을 하는 시설과 배우와 스?들에게 제공되는 음식이 좋은 것도 인기 비결이다. 서배원 전주시 문화정책과장은 “전통과 현대 문화가 공존하는 전주가 영화인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면서 “영화, 드라마 마케팅을 통한 관광객 유치와 도시이미지 홍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인 촬영 지원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주시는 올해 지역 영화인들에게 장편 영화제작의 기회를 주는 ‘지역 영화제작지원’ 사업을 처음으로 시행하는 등 각종 지원책도 추진한다. 단편영화·다큐멘터리 제작 지원, 시나리오 스쿨 운영, 영상 콘텐츠 구축 등 지역 영상산업 기반 조성과 영화산업 육성을 위한 사업이 함께 추진된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글로벌 In&Out] 임정 100년 다시 초심으로, 2019년 대한민국 만세/알파고 시나씨 하베르 코레 편집장

    [글로벌 In&Out] 임정 100년 다시 초심으로, 2019년 대한민국 만세/알파고 시나씨 하베르 코레 편집장

    2019년은 한국의 5대 국경일 중 하나인 3ㆍ1절이 100주년이 되는 해다. 2019년에 서울은 물론 한국인들이 엄청 화려한 기념 행사들을 개최할 것이다. 한국인과 해외동포는 100주년인 올 3ㆍ1절을 평소와 다르게 여길 것이 틀림없다. 나에게도 2019년 3ㆍ1절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터키 출신 쿠르드족인 필자는 2018년 여름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올해 처음 ‘한국 시민으로서’ 3ㆍ1절을 축하하게 된다. 필자에게는 첫 3ㆍ1절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100주년이다. 이를 계기로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그다음에 한국 역사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들에게 유의미한 작업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한국에서 학습했던 정치외교학적 배경과 외신 기자로 활동하며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3ㆍ1절에 대해 색다른 방식으로 책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책을 쓰는 과정에서 이상한 현상을 보게 되었다.최근 3ㆍ1운동의 열매로 역사 무대에 등장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가 정치권의 논쟁거리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현재 대한민국의 기원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과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임정이 무슨 대한민국의 기원이야’는 반박이 맞서고 있다. 예전에도 학계에서는 이 같은 논란이 있었지만, 정치권에서 이렇게 크게 다루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 논란이 이렇게 확대된 이유는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누가 이 나라의 주된 세력이냐’의 싸움으로 전개된 탓이다. 흔히 보수우파는 임정의 중요성을 부정하며 대한민국 건국은 오직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정치적 활동에 의존한 세력을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본다. 반면 진보좌파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오직 임정 등 독립운동 세력으로 설명하여 광복 이후에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세우려고 한 인물들의 공을 저평가한다. 이 주제로 오랫동안 연구해 온 교수와 연구원 등 학자들이 이러한 논쟁을 학문적으로 다루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정치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학문적 논쟁거리를 활용한다면 과연 국가를 위해 옳은 일인가. 한국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보수와 진보가 국익 앞에서 쉽게 뭉치지 못하는 것이다. 더 아쉬운 것은 정치권이 위험한 논쟁으로 여론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한 국가를 국가로 만드는 것은 돈도 아니고, 군부도 아니고, 영토도 아니고, 국기도 아니다. 국민 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봤자 그것이 국가인가. 21세기에는 국민 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자금도 모으고, 자기네 나라를 세운다. 정치권이 손대면 제일 위험한 것이 국민 의식을 형성하는 요소로 여론을 뒤흔드는 것이다. 태극기, 세종대왕, 3ㆍ1운동, 이순신 장군, 6ㆍ25 전쟁, 한글, 백두산 등의 요소로 현재 한국인은 뭉친다. 이런 상징을 남용해 정치하면 단기적으로는 이득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손해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6ㆍ25전쟁 이후 휴전선 남쪽의 한국인은 사상이나 종교를 떠나서 대한민국의 ‘주인’이다. 정치권이 편을 나눠 정통성 싸움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나는 현대 대한민국의 공식적이고 법적인 출발은 1948년 8월 15일이고, 그 정신적인 출발은 1919년 3월 1일 운동을 계기로 형성된 임정이라고 본다. 이것은 한국 주재 외신 기자가 한 정리가 아니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연설에도 몇 차례로 언급된 내용이다. 형제간의 싸움에서 부모를 부정한 순간 형제들의 싸움이 아니고, 적대적인 싸움으로 전환된다. 프랑스에서 프랑스 혁명에 대한 논란이 많아도, 그 누구도 혁명 기념일을, 터키에서 케말 파샤에 대한 논란이 있어도, 그 누구도 터키 공화국 수립 기념일을 논쟁거리로 삼지 않는다. 2019년 새해에는 정치인들이 더는 부모를 부정하는 듯한 논쟁에 여론을 이용하지 말고 국민대통합 위주로 활동하기를 기원한다.
  • 김용균씨 어머니 “책임자 처벌 않으면 문 대통령 만나지 않겠다”

    김용균씨 어머니 “책임자 처벌 않으면 문 대통령 만나지 않겠다”

    태안화력발전소 작업 도중 사망한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29일 아들의 죽음에 관련된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전날 청와대가 문 대통령이 김씨 모친 등 유족을 만나 위로와 유감을 뜻을 전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데 대한 대답이다. 김미숙씨는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이렇게 밝혔다. 연단에 오른 김씨는 “왜 생때 같은 내 아들을 잃어야 하는지 엄마는 억울해 미치겠다”며 “긴긴밤 홀로 그 많은 일을 하느라 고군분투하고, 배고프면 짬내서 겨우 컵라면 하나로 때우고 또 일했을 것을 생각하니 억울함이 미치도록 가슴을 후벼 판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러면서 “용균이의 억울한 죽음은 문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졌다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었다”며 “말로만 하는 약속, 위로는 필요 없다.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책임자 처벌이 안 된다면 대통령을 만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유경근 4·16 세월호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발언을 마치고 내려간 김씨를 바라보며 “용균이 부모님께 고언을 드린다”며 “대통령을 무조건 만나야 한다. 만나서 용균이가 원했던 것, 부모님이 바라는 것 당당하게 얘기하셔야 한다”고 말했다. 유 집행위원장은 “용균이 권리였고, 부모님이 당연히 하실 수 있는 얘기니까 부탁하거나 호소하지 말고 당당하게 요구하시라”며 “그러고 나서 다음 만날 약속도 정해야 한다. 다음에 만날 때 제대로 실현했는지, 용균이 뜻 이뤄졌는지 점검하겠다고 말하시라”고 권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5천여 명(주최측 추산)이 모여 ‘우리가 김용균이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 김용균과 함께 가자’ 등 구호를 외쳤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화문광장에 31운동 100주년 기념탑 세운다

    광화문광장에 31운동 100주년 기념탑 세운다

    유공자 후손 도울 봉사 프로그램 발굴내년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서울 광화문광장에 기념사업 홍보탑이 세워진다.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20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홍보탑을 공개하고 한국자원봉사협의회, 한국자원봉사센터협회 등과 함께 독립운동 관련 자원봉사 활성화 업무협약을 체결한다. 이날 제막식을 하는 홍보탑은 3·1운동을 상징하는 형태로 마련됐다. 홍보탑은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모티브로 했다. 기념탑 외벽은 임시정부가 활동했던 중국 상하이 현지에서 생산된 적색 벽돌을 사용했다. 출입문도 임시정부 수립 이후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질감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홍보탑 상단에는 3·1운동의 비폭력 평화정신과 임시정부의 민주주의 가치를 계승하는 의미로 100, 태극, 악수, 불꽃 등을 형상화한 엠블럼과 슬로건을 설치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한완상 위원장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위원회 홍보대사인 래퍼 비와이 등이 참여한다. 추진위는 홍보탑 주변지역을 ‘100주년 광장’으로 이름 붙였다. 또 ‘동상 행위예술가’들이 제막식에 참여해 과거 임시정부 요원들의 모습을 재현한다. 홍보탑은 내년 4월까지 운영할 예정이다. 자원봉사 업무협약은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원봉사 프로그램 발굴과 국민 이해와 관심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협약기관인 자원봉사협의회와 자원봉사센터협회는 전국 규모의 자원봉사단체협의체로 자원봉사 문화 확산을 맡고 있다. 이들 기관에 소속된 자원봉사자들이 나서 독립운동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일 예정이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GS칼텍스, 어린이 역사체험 초대형 벽화 완성

    GS칼텍스, 어린이 역사체험 초대형 벽화 완성

    GS칼텍스의 여수지역 역사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제작한 초대형 벽화가 마침내 완성돼 위용을 드러냈다. GS칼텍스는 지난 4일 여수시 충무동 벽화골목에서 ‘2018년 GS칼텍스 희망에너지교실 큰바위 얼굴 역사체험 타일벽화 제막식’을 개최했다고 5일 밝혔다. 제막식에는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장, 변정옥 도예가, 여수지역아동센터 임직원 및 어린이, 김영완 GS칼텍스 지역협력팀장 등 40여명이 참석했다. GS칼텍스 희망에너지교실은 GS칼텍스가 미래 세대의 주역인 여수 어린이들의 꿈과 비전을 키우기 위해 2010년부터 매년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회공헌활동이다. 이날 공개된 벽화는 가로 14m, 세로 10m 크기의 대작이다. 전국 관광객이 몰리는 여수시 충무동 벽화마을에서 가장 큰 작품이다. 벽화 상단부는 한국의 위인 4명을 그린 큰바위 얼굴(가로 14m, 세로 7.5m)이 그려졌다. 하단부에는 어린이들이 제작한 타일벽화(가로 14m, 세로 2.5m)로 구성됐다.타일벽화는 지난해와 올해까지 400명의 어린이들이 여수지역 문화유적을 그린 가로·세로 20㎝의 소형 타일을 한데 이어 붙여 제작됐다. 상단부의 큰바위 얼굴 그림은 어린이들이 한국의 위인 4명(단군, 세종대왕, 이율곡, 이순신 장군)과 같은 위대한 인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2017년부터 시작된 GS칼텍스 여수지역 역사체험 프로그램에는 올해도 지난해와 동일하게 여수 지역아동센터 10곳의 300여명의 어린이가 참여했다. 지난 5~8월 총 16회에 걸쳐 왕바위재 고인돌, 진남관, 왜교성, 흥국사 등 여수지역 대표 유적 50여곳을 탐방했다. 어린이들은 역사체험 소감을 재능기부에 나선 도예가 변정옥 전 한국예총 여수지회장의 지도 아래 소형 타일 위에 그렸다. 유적 답사 전 미리 GS칼텍스가 제작한 255쪽의 여수역사 교육자료집을 여수지역사회연구소의 강의를 통해 공부하며 지식을 쌓고, 역사체험 소감을 표현하는 미술 기법을 전문 화가에게서 배웠다. GS칼텍스는 역사체험 외에도 1박2일의 여름방학 캠프, 화재 대응 교육 등도 진행하며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체험 활동을 제공했다. 회사 관계자는 “여수 지역 어린이들이 지역 역사의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미래 세대의 주역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여수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한국 고천문 강국 가능성 충분…그러자면 고천문박물관이 필요하죠”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한국 고천문 강국 가능성 충분…그러자면 고천문박물관이 필요하죠”

    고천문학자 민병희 연구원이 말하는 고천문박물관 필요성 “기술은 집중 투자하면 단시간 추격…과학은 기초부터”“천문 관련 유물 복원·전시…단편 아닌 통시적 이해”“정체 파악 힘든 유물은 목륜…北은 이미 복원 전시중”“놀라운 유물은 경주 첨성대…1300여년된 동양 最古”“18세기 제작 아스롤라베에 서울 위도 새겨…日서 환수”“복원중인 옥루엔 당시 최첨단 과학 총동원…우주 담겨”“관상감 천문대, 현대건설 사옥 건설 탓에 위치 이동”“우리나라는 고천문(古天文)의 강국이 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2천년 동안 꾸준히 적은 천문현상 기록도 수만건으로 풍부하고, 독창적인 유물도 많습니다. 기록으로만 전하는 고천문 유물을 복원해보니 오늘날 사용해도 될 정도로 정확도가 높습니다. 일반인들이 과학 지식과 그 발달 과정에 대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고천문박물관 설립이 필요합니다.” 인류가 만든 구조물이 달을 거쳐 태양계를 넘어가는 21세기, ‘미신’처럼 보였던 고천문학을 연구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현대의 천문우주 연구도 벅찰텐데 고천문이라니…. 천문학자들은 인적이 없는 산꼭대기에 설치된 천문대에서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거나 별자리 운행을 계산하느라 컴퓨터와 씨름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천문학자는 이런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한자로 된 책만 파고들지 않을까하는 선입견이 들었다. 지난 14일 서울 출장길에 오른 민병희(45)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을 만났다. - 고천문, 어떤 사람들이 연구하나.☞ 대학에서 천문우주를 공부하고, 석·박사 과정도 이쪽으로 전공한 사람들입니다만 고천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국내에서 여남은 명뿐입니다. 큰 돈벌이가 되지 않으니…. 그리고 고천문학은 아주 한국적 표현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천문기록을 통해 현대 천문학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사천문학’, 역사를 통해 천문학 발전 과정을 탐구하는 ‘천문역사학’, 유물 등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고대 천문학적 문화를 추척하는 ‘고고천문학’ 등이 뒤섞인 말입니다. 천문학적 지식이 생활이 끼친 영향을 연구하는 ‘민속천문학’도 아우르고 있습니다. - 그런데, 고천문학과 점성술은 뿌리가 같지 않나.☞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 즉 별자리, 해와 달의 움직임을 통해 날짜를 정하고 시간을 계산했던거죠. 날짜를 정하는 것이 역법 곧 달력이었고, 국가나 개인의 운명을 예지하는 게 역술 내지 점성술이었던거죠. 한국 최초의 이학박사였던 이원철(1896~1963) 초대 국립중앙관상대 대장은 “점술은 미신”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후 천문학은 점성술을 제외했습니다만 최근에서야 점성술은 천문역사학이나 민속천문학에서 다뤄야 할 중요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점성술을 어떻게 과학적 코드로 받아들일 것이냐가 사실 고민거리입니다. - 고천문학을 하게 된 계기는.☞ 대학에서 전공을 천문우주로 하다보니…. 고천문학을 하고싶은 열병이나 심한 무병을 앓았던 것은 아니고, 한국천문연구원에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은 2009년쯤 세종대왕의 소간의(小簡儀·행성과 별의 좌표와 시간, 고도와 방위를 측정하는 기구) 복원 작업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조선에서는 소간의를 바탕으로 혜성이나 객성(초신성·신성)을 관측하고 ‘측후단자(測候單子·관측한 내용을 기록한 문서)’를 남겼지요. 이들 천문현상 기록 중에는 한국에만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고천문학에 서서히 물들었던 거죠. 한글판 조선왕조 실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원문을 보게 되었고, 한문을 더 잘 읽어내기 위해서 사서삼경도 읽기 시작했죠. 한문을 독학으로 공부했습니다만 요즘도 관상감에서 펴낸 책들을 읽으면서 한문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고천문박물관 건립 필요성을 주장하는데.☞ 현대도 마찬가지이지만 천문학은 과학 지식의 출발이자 발달 과정을 품고 있으며 집대성된 분야입니다. 과거 천문학을 통해 지식을 찾아가는 인류의 도전과 그렇게 얻은 지식을 인류 문명을 위해 접목한 과정을 미래 세대에 전달하기 위해 고천문박물관이 필요한 거죠. 기술은 집중적으로 투자하면 금방 선진국 수준으로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과학은 기초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가야 합니다. 과거 지식을 아는 것이 필수고요. 그래야 과학지식은 조금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의 천문 관련 기구나 유물을 복원해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이를 통해 부분적 스토리가 아닌 통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전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고천문박물관은 영국, 중국, 오스트리아, 일본 심지어 터키까지도 있습니다. - 고대 천문학은 왕이나 왕실이 주도했다.☞ 왕은 하늘이 정한다거나 하늘의 아들이니 뭐니 해도 농경시대 일반 백성은 오늘의 무슨 날이며, 언제 씨를 뿌리고 거두는가 가장 중요했던 거죠. 이걸 왕이 역서(달력)를 만들어 오늘은 여름시작(立夏), 오늘은 동지(冬至) 등으로 알려줬습니다. 한양에선 시간도 북을 쳐서 알려주곤 했습니다. 왕의 역할이었던 거죠. 역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관측하고, 자료를 모아 계산하고, 예측을 했던 거죠. 이게 과학의 토대지요. 왕이 없는 지금도 날짜의 시작과 계산법은 국가가 정합니다 대한민국의 연호는 서력기원(서기)로 한다는 ‘연호에 관한 법률’이 그 증좌입니다. 1948년 제헌국회는 단기(檀紀)를 사용한다며 연호에 관한 법률을 처음으로 정했다가 1962년에서야 서기로 변경한 겁니다.- 복원했던 천문관측 기구 가운데 가장 놀라웠던 것은.☞ 현종 10년(1669년), 송이영이 만든 자명종 시계인 혼천시계(渾天時計·고려대 소장)입니다. 이 시계는 매우 특이한 기계 시계로, 추를 동력으로 한 장치는 서양적이지만 혼천의가 달려 있는 건 한국 고유의 형식이지요. 이 시계의 근원을 쫓아가면 세종이 기획하고 장영실이 제작하였다는 ‘흠경각루(欽敬閣漏)’에 이릅니다. 흠경각루에는 물시계인 옥루기륜(玉漏機輪·일명 옥루)이 있었는데 현재 국립중앙과학관과 한국천문연구원이 복원 중에 있습니다. 당시 최첨단 과학이 다 집대성된 겁니다. 물시계인 옥루는 15세기 이슬람 과학이 유행시켰던 자동운행 인형을 응용한 것으로 동아시아의 걸작입니다. 외형은 산의 형태로, 시계 장치를 가리고 있습니다. 위에는 혼천의, 중간에는 시각을 알려주는 인형들, 아래에는 12지신과 농사짓는 백성이 있습니다. 이것 자체가 하나의 우주이고, 한글 창제 원리인 천지인(天地人) 정신이 녹아들어 있죠. 옥루는 북한이 1990년대 후반에 복원해 전시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는 옥루 내부의 자세한 설명이 없어 복원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복원한 옥루와 국립중앙과학관 등이 개발하는 옥루가 서로 차이가 크게 날 것으로 보입니다. 남북한이 옥루 복원에 교류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 요즘 가장 복원에 공들이는 천문기구는.☞ 조선의 많은 천문관측기기 가운데 여전히 그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것이 많습니다. 1525년(중종 20년)에 개발한 목륜(目輪)이 대표적인 난제지요. 왕조실록에는 “이순이 전에 혼의-혼상 감수관으로 관상감에 있으면서 ‘목륜’의 제도에 의해 제작한 것을 오늘 진상했습니다(李純向以渾儀渾象監修官, 在觀象監, 因‘目輪’之制, 而造作, 今日進上矣)’라고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과학사학자들은 목륜이 이슬람 천문 관측기기 가운데 하나를 본 뜬 것이라는데 의견이 대체적으로 모입니다. 목륜의 대상이 아스트롤라베(astrolabe·천체 관측기구)인지, 토르퀘툼(torquetum·우주를 입체적으로 축소해 만든 천문 관측기구)인지 논란이 분분하지만, 최근에는 토르퀘툼이라는데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놀라운 우리 천문 기구는.☞ 실학박물관이 소장한 ‘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입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류금(1741~1788)이 제작한 이건 우리에겐 ‘아스트롤라베’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아랍에서 유래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에 다 보급됐을 텐데, 아직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발견됐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이 아스트롤라브가 ‘벽면사분의’로 개선되고 유럽에 전해져 ‘케플러 법칙’이 만들어지게 하는 등 현대 천문학을 열어젖힌 관측기구의 원형입니다. 세계적인 유물이죠. 일본인의 손에 들어갔다가 환수된 문화재여서 더욱 애착이 갑니다. 이 기구의 고리 위쪽에 ‘한양의 위도와 함께 약암 선생을 위해 만든 것(北極出地三十八度 乾隆丁未爲約菴尹先生製)’이라는 기록이 적혀 있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한양 즉 서울의 위도가 38도로 적혀있었던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가장 놀라운 것은 저는 뭐니뭐니해도 경주 첨성대라고 생각합니다. 축조된지 1300여년이 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지요. 한자리에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경주 첨성대(국보 31호)는 우리 고천문학의 역사와 깊이를 반증합니다. 서울 한양에도 첨성대가 있다는 사실 아세요? - 한양에도 첨성대가 있었다고?☞ 세종대왕이 그 유명한 칠정산을 만들기 위해 경복궁에 관상감 하나를 더 만들었는데, 이 때부터 한양에는 두 개의 관상감이 있었던 거죠. 관상감에는 첨성대가 있었고, 이게 순조 18년(1818년)즈음 ‘관천대’로 불립니다. 그 이전에는 첨성대로 불린거죠. 지금 우리는 첨성대 그러면 경주 첨성대를 가르키는 고유명사로 바뀌었지만, 조선 중기만 해도 첨성대는 천문현상을 관찰하는 곳이란 의미의 보통명사였다고 봅니다. 관상감 첨성대(보물 제1740호)는 현재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현대그룹 본사 부지에 있습니다만 여기에도 곡절이 있습니다. 현대그룹 본사 사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 시절 착공에 들어갔는데 그곳이 당시 휘문고교 자리로, 조선시대 관상감 터였습니다. 여기에 있던 첨성대가 사옥 건립에 걸림돌이 되었던 거죠. 이 첨성대를 원서공원으로 옮긴다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에 과거에 있던 자리에서 남쪽으로 10m, 동쪽으로 50m를 옮겨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았던 겁니다. 이 과정에서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과학사 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보존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과거 천문기록 얼마나 잘 맞나.☞ 조선왕조 실록에 나와 있는 천문기록은 대부분 실제로 관측하여 남긴 것입니다. 당시에는 오늘날의 15분을 시각의 단위로 측정하였기 때문에 지금처럼 정밀한 기록이라고 말할 수 없지요.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조선에서만 기록된 자료들이 종종 키맨 역할을 합니다. 세종실록에 기록된 1437년 전갈자리 신성이나 선조실록에 기록된 1604년 케플러초신성의 일부 기록은 전세계적으로 유일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과거 천문기록은 나름의 큰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별들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데, 그 변화가 활발히 진행되는 시기가 적어도 수백만년입 걸립니다. 그러니까 망원경이 발견되기 이전의 기록자료까지 동원해야 별들의 변화과정을 좀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고요, 이런 측면에서 우리의 과거 천문기록이 돋보이죠.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사람이 중심이 되는 행복한 여주를 꿈꾼다...여주시, 민선7기 63개 공약 확정

    사람이 중심이 되는 행복한 여주를 꿈꾼다...여주시, 민선7기 63개 공약 확정

    경기 여주시가 ‘사람중심 행복여주의 실현’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시는 지난 7월 이항진 시장 취임이후 인수위원회 격인 사람중심위원회를 거쳐 시청 내 실무부서들의 검토를 통해 다듬어진 공약사업은, 5대 분야, 7개 과제, 63개 공약사업으로 최종 결정됐다고 1일 밝혔다. 아이키우기 좋은 여주, 일자리가 넘치는 여주, 농촌과 도시가 조화로운 여주, 문화와 예술이 풍성한 여주, 시민과 소통하는 여주라는 5대 시정목표와 교육, 복지, 경제, 농촌, 도시, 문화, 소통 등 7개 분야로 공약사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추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시에서 공표한 5대 시정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아이 키우기 좋은 여주’는 교육과 복지 분야로 이항진 시장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정책운영에 임하는 분야이다. 주요 공약으로 여주시청소년 수련관 건립, 방과후 돌봄 서비스 확대운영, 시니어클럽 설치, 국공립어린이집 확대, 지역복지 허브 완성 등 14개 사업으로 구성됐다 둘째 ‘일자리가 넘치는 여주’는 청년활동지원센터, 공동체경제지원센터, 전통시장 활성화, 물류·산업단지 육성 등 7개 사업으로 구성됐으며, 셋째 ‘농촌과 도시과 조화로운 여주’는 도시지역인 동지역과 농촌지역인 읍·면·동지역을 균형있게 발전시키고자 다양한 농업지원 사업, 농촌용수 개발, 상·하수도 정비, 하천변 주민편의시설 확충, 각종 도로망 확장과 역세권 개발을 포함한 도시개발 사업 등을 담아 26개 사업으로 확정하였다. 넷째 ‘문화와 예술이 풍성한 여주’는 세종대왕 참배길 완성, 강천섬 친환경 쉼터 개발, 흔암리 선사유적지 발굴조사, 주어사지 주변 정비 등 관광자원 개발과 문화재 정비를 위한 10개 사업을 통해 관광 먹거리 마련에 힘쓴다는 계획이다 다섯째 ‘시민과 소통하는 여주’는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정환경 마련을 위해 여주시민행복위원회, 여주시의회와 소통강화, 시민청원방 설치, 점동면사무소 신축 이전 등 6개 사업으로 구성됐다. 이 시장은 “공약사업이란 시민들과의 약속이다. 모든 공직자들이 우선사업으로 적극 추진할 것” 이라며 “사람중심 행복여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한글로 38개국 세계평화지도 제작” 한한국 세계평화작가, 2018글로벌 자랑스러운 인물대상 수상

    “한글로 38개국 세계평화지도 제작” 한한국 세계평화작가, 2018글로벌 자랑스러운 인물대상 수상

    경기 김포시는 한한국 세계평화작가가 지난 21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2018‘글로벌 자랑스러운 인물대상’ 시상식에서 세계평화공헌대상을 받았다고 25일 밝혔다. 한 교수는 “먼저 위대한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께 감사드리고, 세계평화작가로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응원과 사랑을 보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세계평화발전을 위해 헌신과 노력하는 세계평화작가가 되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글로벌자랑스러운인물대상 조직위원회는 “한한국 세계평화작가는 평화의 시대에 맞춰 24년간 6개종의 한글서체를 개발해 세계 38개국 ‘세계평화지도’작품을 제작했다”며, “유엔과 북한 등에 기증해 한글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한반도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 크게 공헌한 공로로 뽑혔다”고 밝혔다. 김포시 홍보대사인 한 교수의 세계평화지도 작품들은 UN 22개국 대표부에 전시돼 있다. 북한 문화성으로부터 감사서한과 유엔 21개국으로부터 ‘세계평화지도 기증증서’ 외교문서를 받아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 한국에 평화의 가치와 중요성을 지구촌에 알리고 있다. 나아가 세계평화작가로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다. 한 교수는 세계평화작가 공적을 인정받아 ‘제4회 경기도를 빛낸 자랑스런 도민賞’을 수상한 바 있다. 이 밖에도 제26회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과 제5회국제평화언론대상, 통일부장관 표창, 김포문화상 등 60여 차례 넘게 굵직한 상을 수상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조용필 50주년 기념 메달 공개, 어떻게 생겼나 보니...5050개 한정판

    조용필 50주년 기념 메달 공개, 어떻게 생겼나 보니...5050개 한정판

    가수 조용필 데뷔 50주년을 기념하는 메달이 공개돼 눈길을 끈다. 23일 한국조폐공사는 ‘가왕 조용필 데뷔 50주년 기념 메달’ 공개 기념식을 열고, 기념 메달을 공개했다. 조폐공사 측은 이날 행사에서 “한류라는 국가 브랜드 확산에 기여하고자 국내 대중음악에서 기념비적인 역할을 한 조용필을 주인공으로 기념 메달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조용만 조폐공사 사장은 “이번 기념 메달이 ‘한류 문화’ 확산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멋과 문화를 담은 고품격 메달을 선보여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데 힘쓰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조용필도 감개무량한 마음으로 이날 자리에 함께했다. 그는 “처음에 연락이 왔을 때 너무 놀랐고 의아했던 것 같다. 주화라는 것은 역사에서 특별한 사람들, 세종대왕 같은 분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의 기념 메달을 만든다고 하니 ‘해도 되는 건가’란 걱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데뷔 50주년 소감으로는 “50주년이 긴 시간이지만 너무나 빨리 지나간 것 같다.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남은 시간에 음악을 열심히 하겠다. 감사드린다”고 전했다.한편 이날 조폐공사가 공개한 조용필 50주년 기념 메달은 ‘무대 위의 가수 조용필’을 표현한 것으로, 앞면에는 조용필이 공연하는 모습이 담겼다. 특히 그의 시그니처인 기타, 마이크, 선글라스가 함께 새겨졌다. 뒷면에는 위조 방지를 위한 잠상과 50주년 기념 엠블럼이 담겼다. 해당 메달은 총 5050개 한정 수량으로 제작돼 판매된다. Δ 고급형I(금, 중량 31.1g, 순도 99.9%, 직경 40mm, 가격 275만 원) Δ고급형II(금, 중량 15.55g, 순도 99.9%, 직경 28mm, 가격 143만 원) Δ콜렉션형(은, 중량 31.1g, 순도 99.9%, 직경 40mm, 가격 16만 5000원) 등 3종으로, 디자인은 동일하되 사이즈와 패키지가 다르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는 11월 4일까지 조폐공사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예약 접수를 진행한다. 판매 수익금 중 일부는 문화 진흥 발전에 쓰일 예정이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미래유산 톡톡] 긴 역사만큼이나 갖은 사연 품은 광진교

    지난 13일 투어단이 찾은 광나루 일대의 서울미래유산은 천호대교와 강변테크노마트, 한국점자도서관 등 3곳이었다. 점자도서관은 탐방했지만 코스 사정상 천호대교와 테크노마트는 광진교 쉼터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한국점자도서관은 1969년 시각장애인 육병일 선생이 사재를 털어 종로5가에 설립한 게 모체이다.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1979년 지금의 장소로 이전했다. 당시 문교부에 등록한 우리나라 최초의 점자도서관이다. 1980년대 찾아가는 이동도서관, 시각장애인들의 사회 참여를 위한 정부간행물 보급, 인터넷 전자도서관 개관 및 디지털 토킹 북을 도입했다. 1985년부터는 중도실명자를 위한 상담도 했으며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촉각도서와 점자라벨 도서를 활용해 독서에 지장이 있는 사람을 위한 서비스도 제공한다. 시각장애인의 특성상 방문객은 거의 없고, 대부분 전화 문의 후 우체국 무료 택배로 도서를 대출받고 반납한다. 이곳을 예약 방문하면 점자와 녹음도서의 제작 과정을 볼 수 있다. 역사사료관에서 점자관련 기기 관람도 가능하다. 점자를 발명한 프랑스의 루이 브라유(1809~1852)는 5살 때 시력을 잃은 뒤 15세 때 6개의 점으로 알파벳을 고안해 점자체계를 완성했다. 우리나라도 브라유 점자를 도입, 1926년 박두성 선생이 ‘훈맹정음’을 만들었다. 그는 맹인들의 세종대왕이다. 광진교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지 못한 이유가 궁금하다. 1936년 준공된 광진교는 광진구 광장동과 강동구 천호동을 잇는 다리다. 광나루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걸맞게 서울에서 한강대교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다리이지만 한국전쟁 때 폭파됐다가 1952년 복구됐다. 1994년 철거된 뒤 2005년 새로 지었다. 서울에서 유일한 보행전용도로를 지향했으나 차량통행이 없는 보행자 전용다리가 되지 못하고 차량보다 사람이 우선하는 자리로 자리를 잡았다. 잠수교를 제외한 서울의 모든 다리에 ‘대교’라는 호칭이 붙었지만 광진교는 제외됐다. 서울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광진교 8번가를 비롯, 이 다리가 품고 있는 사연만큼은 미래유산에 손색이 없는 것 같다.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명경재의 DNA세계] 노벨상과 세종대왕

    [명경재의 DNA세계] 노벨상과 세종대왕

    10월은 프로야구의 열풍이 극에 달하는 때이자 과학자들에게는 또 다른 흥분을 주는 달이다.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때문이다.올해도 여러 분야의 훌륭한 성과를 놓고 어떤 연구가 노벨상을 수상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추측이 있었고 ‘혹시 한국에서도’ 하는 기대도 있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단장 중 한 명인 로드니 루오프 박사의 경우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연구 업적 덕분에 울산과학기술원(UNIST)과 IBS의 많은 연구자들이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 애석하게 올해 노벨화학상은 다른 연구자가 수상했지만 연구의 중요성으로 볼 때 몇 년 안에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올해 노벨과학상도 탁월한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생리의학상은 면역세포를 이용한 항암치료법을 가능케 한 연구가 선정됐다. 이 연구는 이미 실제 환자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암으로 사망 직전까지 갔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도 이 면역치료로 완치가 되면서 기적 같은 치료법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필자는 DNA 상해복구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최근 면역항암치료에 효과가 있는 암종들이 DNA 상해복구 시스템에 이상이 있는 암이라는 결과가 밝혀지면서 면역치료와 DNA 상해복구 과정 간 연관성 연구가 활발하다. 물리학에서는 레이저를 이용해 극미세 물질을 보거나 움직이는 연구가 선정됐다. 이 연구도 현재 많은 분야에 응용돼 쓰이고 있다. 레이저로 시력을 교정하는 라식 수술의 펨토초 레이저 사용이 대표적이다. 필자가 작은 단백질, DNA 등을 조작하는데도 이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노벨화학상은 무작위 돌연변이를 통한 다양한 단백질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해 의학 및 과학 발전에 공헌한 연구에 돌아갔다. 이 연구는 약물의 표적을 찾거나 새로운 항체를 만드는 등 공정에 사용되고 있고 많은 바이오 신약이 이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많은 사람들이 “왜 한국에서는 노벨상이 나오지 않을까”, “한국의 과학정책이나 연구방향이 맞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한국인의 교육 방법이나 성향이 노벨상과 거리가 먼 것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필자가 한국에 돌아온 지난 4년 동안 매년 받는 질문들이다. 필자는 현재 한국에서 진행하는 과학기술 정책, 연구방향, 교육, 한국인의 성향 등은 전혀 문제가 아니라고 답한다. 문제는 과학정책, 연구방향, 교육방향을 너무 자주 바꾼다는 것이다. 일단 방향을 정하면 이것을 꾸준히 지켜나가야 한다. 노벨상을 탈 만한 연구성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한번 믿고 방향을 잡은 연구정책을 10~20년 이상 꾸준히 밀어주는 끈기가 필요하다. 1983년에 나온 일본 이토 준타로 교수 등이 집필한 ‘과학사기술사사전’에 따르면 조선 세종 재위기간 동안 세계를 변화시킨 연구 업적이 21건이나 된다. 이는 유럽, 아랍 19건, 중국 4건, 일본 0건에 견줘 압도적인 성과다. 세종 재위기간 동안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까. 바로 꾸준한 관심을 갖고 밀어주는 정책 덕분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10월 노벨상 수상자 발표와 한글날을 보내면서 세종대왕의 훌륭한 업적을 가능하게 한 국가 경영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흠모하게 된다.
  • 세종대왕 영릉 찾은 文대통령 “한글, 위대한 애민정신 새깁니다”

    세종대왕 영릉 찾은 文대통령 “한글, 위대한 애민정신 새깁니다”

    문화·예술 인사들과 ‘왕의 숲길’ 걸어 13~21일 유럽 5개국 순방… 아셈 참석“한글, 위대한 애민정신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과 572돌 한글날을 맞은 9일 경기 여주시의 세종대왕 영릉을 방문, 방명록에 이처럼 ‘애민’(愛民)의 메시지를 남겼다. 현직 대통령의 세종대왕 영릉 참배는 1994년 김영삼 대통령 이후 24년 만이다. 문 대통령은 세종 영릉을 참배한 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목적은 백성 사이의 소통의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함이었다”며 “백성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것은 왕조시대가 아닌 민주주의 시대에도 본받아야 할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한 참석자와의 오찬에서 “세종 즉위 600주년에 맞는 한글날은 특히 감회가 깊다”며 “해마다 기념식을 치르지만 가능하면 국민과 함께 한글날의 역사성과 현장성을 살릴 수 있는 기념식이길 바라 왔고 오늘 처음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기념식을 개최했다”며 “영릉에서 기념식은 어렵지만 참배라도 하고자 자리를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케이팝을 보면 한글을 모르는 세계인도 모두 따라 부른다”며 “많은 세계인은 한글을 배우길 원하며 대학 내 한국어 강좌는 물론 학원을 다니기도 한다고 들었다. 정말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세종대왕과 한글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지난해 대선 당시 첫 공식 선거운동일인 4월 17일 일정의 마지막을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했다. 당시 “세종대왕의 개혁과 민생, 이순신 장군의 안보와 애국을 잇겠다”고 말했다. 올해 3월 말 발의한 개헌안도 한자가 병기되기는 했지만 국민이 이해하기 쉽도록 한다는 목표 아래 가능한 한 한글 중심으로 작성하도록 했다. 문 대통령은 효종과 인선왕후가 잠든 영릉(寧陵)을 참배한 뒤 ‘왕의 숲길’을 걸어 세종과 소헌왕후가 묻힌 영릉(英陵)을 참배했다. 오찬을 비롯한 이날 행사에는 미술가 임옥상, 시인 박준, 가수 이수현, 디자이너 송봉규, 정보기술(IT) 연구원 김준석씨 등과 한글을 활용해 창작활동을 하는 이들과 세종학당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우승한 외국인 소라비(인도), 몰찬 야나(벨라루스) 등이 함께했다. 한편,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13~21일 7박 9일 일정으로 프랑스·이탈리아·교황청·벨기에·덴마크 등 유럽 순방을 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13∼18일 프랑스, 이탈리아를 각각 국빈 및 공식방문한 뒤 17∼18일 교황청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프란치스코 교황 초청 의사를 전달한다. 교황청은 문 대통령 면담 하루 전인 17일 오후 6시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청 국무총리 격인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 주재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가 진행된다. 문 대통령은 18∼19일 벨기에에서 열리는 아셈(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 참석,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및 장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과 한·EU 정상회담을 갖는다. 덴마크에서 열리는 ‘녹색 글로벌 목표를 위한 연대’(P4G) 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 대응 및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남북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 재개할 것”

    “남북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 재개할 것”

    이낙연 국무총리는 9일 “2005년 노무현 정부가 북한과 함께 ‘겨레말 큰사전’ 공동편찬을 시작했지만 남북관계의 기복으로 멈췄다”며 “문재인 정부는 공동편찬을 이어 가려 한다”고 밝혔다.이 총리는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572돌 한글날 경축식 축사에서 “남과 북이 달라진 것들을 서로 알고 다시 하나 되게 하는 일을 더는 늦출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세종대왕께서 한글과 땅을 주셨을 때 우리 겨레는 하나였는데 세계 냉전은 겨레와 땅을 두 동강 냈다”면서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이어“ 세상에 약 3000개 민족이 7000가지의 말을 쓰지만 글자는 40개뿐이고, 우리처럼 스스로의 말과 글을 모두 가진 민족이 많지 않으며 누가·언제·왜·어떻게 만들었는지가 확실한 것은 한글이 거의 유일하다”고 소개한 뒤 “한글은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 인류가 자랑스럽게 지키고 가꿀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백성이 쉽게 익히고 쓰게 하려고 한글을 만드셨다는 세종대왕의 뜻이 이뤄졌다고 평가한 이 총리는 “한문을 모르던 조선의 여성과 평민도 한글로 제 생각을 남겼고 일제강점기에는 겨레의 얼을 지키고 일깨웠다”며 “해방 이후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것도 국민의 문자 해독률이 높았기에 가능했고, 그것은 한글 덕분”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글의 세계화를 강조하면서 ‘자랑스러운 방탄소년단(BTS)께’로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이 총리는 “한글을 가르치는 세종학당이 세계 57개 나라, 174곳으로 늘었다”면서 “세계의 젊은이들이 방탄소년단의 한글 노랫말을 받아 적고 함께 부른다. 정부는 방탄소년단께 문화훈장을 드리기로 어제 국무회의에서 결정했다”고 전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이항진 시장, 문재인 대통령에 여주발전 지원 요청

    이항진 시장, 문재인 대통령에 여주발전 지원 요청

    이항진 경기 여주시장은 9일 한글날을 맞아 여주 능서면 왕대리에 위치한 세종대왕 영릉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을 맞이하며 여주 발전에 대해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 시장은 이날 문 대통령에게 “여주가 남북평화 바람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고 있다”면서 “상수원보호구역 등 각종 규제에 묶여 있지만 경강선 개통 등으로 한 단계 도약 중인 여주 발전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이 시장은 “여주가 남북평화를 이루어가는 중요 역할의 지역이며 기회를 최대한 살려 사람중심 행복여주를 더욱 알차게 추진해나가는 원동력을 만들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 시장은 이날 신륵사관광지 야외공연장에서 세종대왕문화제 기념식에서 세종대왕과 남북평화통일을 강조하고 이재명 경기도지사와도 세종대왕과 한글을 통한 4차 산업혁명을 선점하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제572돌 한글날을 맞아 9일 방문한 여주 영릉(英陵)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과 그의 비 소헌왕후가 함께 묻힌 합장릉이다. 영릉 옆에는 제17대 임금 효종과 인선왕후가 잠든 영릉(寧陵)이 있다. 사적 제195호로 지정된 두 무덤을 합해 ‘영녕릉’이라 칭하기도 한다. 현직 대통령이 여주 영릉을 방문하기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4년 5월 15일 열린 세종대왕 숭모제전에 참석한 이후 24년 만이다.
  • [서울포토] 여주에서 즐기는 한글날 행사

    [서울포토] 여주에서 즐기는 한글날 행사

    제527돌 한글날인 9일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 관광지에서 열린 ‘2018 세종대왕 문화제’를 찾은 어린이들이 책나루터에서 책을 읽고 있다. 세종대왕 즉위 600돌 기념하여 ‘여주에서 만나는 청년 세종과 한글’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이번 문화제는 세종을 소개하는 다양한 공연, 이벤트, 전시, 체험 등이 열렸다. 2018.10.9 여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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