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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미진진 견문기] 수목원 담 너머 낙우송 자태 보며 아쉬움 달래

    [흥미진진 견문기] 수목원 담 너머 낙우송 자태 보며 아쉬움 달래

    태풍을 뚫고 투어는 진행됐다. 정릉천 다리 아래 짙은 녹색의 잡목이 빼곡하게 천을 따라 이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홍릉 수목원의 일부를 볼 수 있는 지점에 잠시 멈췄다. 태풍 경보에 공원들이 다 입장 금지가 돼버려 아쉬움이 컸으나 담장 너머로 보이는 낙우송과 문배나무에 관한 이야기로 마음을 달랬다. 수목원은 나무끼리 서로 부딪히는 가지들을 치지 않는다고 했는데 자연 상태로 두면서 생장하는 모습을 연구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은행나무잎은 아직 푸른데도 길바닥엔 노란 낙엽들과 열매들이 꽤 떨어져 있어서, 밟힌 열매에서 시쿰하면서도 고린 냄새가 올라와 피해가며 발길을 옮겼다. 김수근 작품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본관은 공사 중이어서 들어가 볼 순 없었지만 해설사가 가져온 사진자료로 건물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올해까지 옛 모습대로 건물을 복구한다니 그 모습이 기대됐다.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을 지나 2015년 나주시로 이전하기까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었던 건물에 도달했다. 이 건물도 김수근의 설계작이다. 지금은 새로 의료, 바이오 벤처산업단지로 새롭게 단장 중으로 외부인의 접근은 금지돼 있었다. 붉은 벽돌의 깔끔하고 산뜻한 모습을 바라본 뒤 다음 행선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국 콘텐츠진흥원에선 연극이 진행되고, 아카데미에선 다양한 문화콘텐츠에 대한 온·오프 무료강좌가 있다고 한다. 가로수 중에 커다랗고 나무 둥치가 부분적으로 유난히 튀어나온 우람한 활엽수 한 그루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중에 사람으로 치면 암 덩어리 같은 부분으로, 바이러스가 유입되면 그걸 떼어낼 수도 없으니 한 부분을 아예 양보하는 식이 돼 부풀려져 공생하는 것이라는 해설을 숲 전문가 임혜란 해설사로부터 들었다. 말도 못하고 뿌리박고 꼼짝없이 살아야 하는 나무에도 이런 지혜가 있구나 싶어 탄성이 절로 나왔다.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은 미래유산인 세종대왕 기념관이었다. 투어를 마치며 나오는 길에 플라타너스의 낙엽들이 바람에 나뒹구는 모습을 보니 이젠 정말 완연한 가을인가 싶었다. 김윤정 서울도시문화지도사
  • [미래유산 톡톡]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 미래유산 지정 기대

    [미래유산 톡톡]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 미래유산 지정 기대

    고려대역에서 정릉천을 지나 홍릉수목원으로 가는 길은 아름드리 가로수길이다. 중간에 만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본관건물은 건물 뼈대인 기둥과 보 등이 겉으로 드러나는 노출콘크리트 공법과 미술작품처럼 보이는 조형미가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건물 중앙의 중정을 중심으로 방향성을 갖도록 배치된 사무공간이 거대한 톱니바퀴를 연상시킨다. 올해까지 전면 보수공사를 통해 옛 모습대로 복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홍릉수목원은 국립산림과학원 부속 전문 수목원으로 1922년 서울 홍릉에 임업시험장이 설립되면서 조성된 한국 최초의 수목원이다. 명성황후의 홍릉이 있던 곳에 자리해 홍릉수목원이라 이름이 붙었다. 국내외 다양한 식물 자원을 수집하고 관리하며 우리나라 식물 분야의 발전을 위해 조성된 시험 연구림이다. 연구를 위한 산림이니만큼 개방이 제한적이지만,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무료로 개방해 시민들의 자연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홍릉수목원을 지나 서울바이오허브(옛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건물을 찾았지만 이 역시 공사 중이어서 출입이 제한됐다. 1981년 제3회 한국건축가협회상 수상작이며, 2013년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건물 모든 곳에서 녹색 공간이 인지되는 점이 특징이다. 내년에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아름다운 내부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태풍에 쫓기듯 세종대왕기념관으로 들어갔다. 강풍에 휑한 분위기였지만 기념관입구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옛 영릉 석물에서 위안을 얻었다. 기념관은 건축가 송민구가 설계한 건축물로 한국 고전 건축을 연상시키는 장방형의 입면 구성이 돋보이는 구조다. 태풍의 영향으로 수목원이 일시 폐쇄돼 투어길이 험난했지만 다행히 태풍이 서울에 도착하기 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번 투어를 진행하며 홍릉수목원도 우리나라 제1세대 수목원인데 미래유산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미래유산에 시민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느낄 수 있도록 국책기관 안에 있는 미래유산을 적극 개방해 시민들이 편하게 돌아볼 수 있길 바란다. 임혜란 숲 해설가
  • 홍릉 없는 홍릉길… 숲내음과 연구단지가 공존하다

    홍릉 없는 홍릉길… 숲내음과 연구단지가 공존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0회 홍릉숲길 산책’ 편이 지난 7일 동대문구 청량리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한반도를 강타한 제13호 태풍 ‘링링’의 북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려대역에 집결했다. 이날 코스는 정릉천~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KAIST 경영대학~옛 한국농촌경제연구원~세종대왕기념관 순이었다. 그러나 역대 태풍 중 최대 순간 풍속 5위를 기록한 링링의 맹렬한 기세 앞에 홍릉수목원은 폐장됐고, 정릉천 입장도 통제됐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작 KIST 본관과 옛 농촌경제연구원 건물은 공사 중이어서 직접 볼 수 없었다. 전북 나주로 이전한 옛 농촌경제연구원 건물은 서울바이오허브로 변신하기 위해 마무리 리모델링 공사 중이었다. 참석자들은 홍릉수목원 해설을 위해 특별 초빙한 임혜란 숲 전문가에게서 듣는 숲과 생태 이야기로 아쉬움을 달랬다.1922년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제1세대 수목원 홍릉수목원이 자리한 동대문구 청량리는 조선시대 흥인지문(동대문) 밖 청량리계에서 기원한다. 신라 말에 창건된 고찰 청량사에서 이름을 땄다. ‘동국여지승람’과 ‘고려사절요’ 등 옛 문헌에 따르면 청량사는 삼각산 아래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지금의 홍릉수목원과 영휘원 일대가 옛 절터였다. 명성황후가 묻혔던 홍릉을 조성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비켜났다. 일제강점기 만해 한용운이 잠시 머물기도 했다. 조선시대 흥인지문과 혜화문, 광희문에서 중랑천까지 10리를 동교라고 불렀다. 이 중 성북천과 정릉천, 석관천을 낀 청량리에는 왕실소유의 논(적전)을 두고 왕이 농사를 짓는 선농단과 국립 구휼기관이자 공용숙소였던 보제원을 뒀다. 용두동, 제기동, 전농동이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청량리는 제례의 공간이었다.청량리는 능행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선왕의 무덤을 찾아가는 능행은 ‘조선 최대의 정치쇼’였다. 왕은 능행을 통해 선왕의 권위를 물려받기를 원했으며, 백성들은 능행에서 왕의 존엄을 실감했다. 청량리는 왕실 최대의 묘역 동구릉으로 향하는 길목이었기에 행차 구경 기회가 많았다. 능행길은 대개 창덕궁~흥인문~우장현(장위동 고개)~안락현(봉화산 뒷길 화랑로)~동구릉으로 이어졌다. 통상 3000명에서 6000명의 인원이 동원됐으니 동시대인에게는 엄청난 구경거리였다. 그 장관과 화려함은 청계천변 광교와 삼일교 사이에 조성된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에서 짐작할 수 있다. 청량리는 명성황후의 홍릉과 더불어 유명세를 떨쳤다.명성황후가 비명에 간 지 2년째 되던 1897년 11월 21일에야 국장이 거행됐다. 이날 새벽 4시 100개의 황등롱과 2600개의 홍등롱, 40개의 대철촉롱 불이 밝혀진 상태에서 상여는 경운궁(덕수궁)을 출발했다. 상여는 청계천 신교~혜정교~이석교~초석교를 차례로 지나 흥인문을 통과한 뒤 동관왕묘(동묘)~보제원(안암동 로터리)~한천교(중랑천 다리)를 거쳐 청량리 홍릉에 도착했다. 1907년 10월 7일 순종의 능행기록에는 오전 8시에 경운궁 대한문을 나서 종로~흥인문~안감천(성북천)~용두리~청량리를 거쳐 홍릉에 도착했으며 오후 6시에 환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19년 고종 국장 때 명성황후의 능이 남양주 금곡 홍유릉으로 이장돼 합장될 때까지 22년간 능행 때마다 청량리 일대는 인파로 북적였다. 홍릉의 신화는 짧았지만 강렬했다.청량리의 장소성은 전차의 등장과 함께 변모했다. 1899년 개설된 청량리선 전차는 1911년 경원선, 1939년 경춘선 및 중앙선 철도 개통과 함께 청량리의 장소성을 서울 동부지역 교통요충지로 바꿨다. 1974년 지하철 1호선의 개통은 또 한 번의 변신이었다. 서대문~종로~동대문~청량리를 연결하는 8.1㎞ 구간의 청량리선 전차는 고종의 능행 편의와 능행 비용을 줄이려고 부설한 것이었다. 정작 고종은 전차가 상여를 닮았다는 이유로 탑승을 꺼렸다. 실제로 고종이 전차를 타고 홍릉에 행차한 기록이 거의 없다. ‘독립신문’ 1899년 10월 17일 자에 “금번 능행하실 때 전차를 타신다는 말이 있다더라”는 기사가 남아 있을 뿐이다. 1994년에 발간한 ‘동대문구지’에 따르면 명성황후의 국장이 치러질 무렵 혜화동 주민 홍태윤이 자비를 들여 동대문 밖에서 홍릉에 이르는 길의 양편에 배롱나무를 심었는데, 이 가로수는 성 안팎을 통해 유수한 가로수길로 손꼽혔다고 한다. 아쉽게도 1933년 도로를 넓히면서 모두 베어 버렸다. 1917년 ‘신문계’ 제5권 제2호에 발표된 ‘경성유람기’라는 글에 함경남도 금성에 사는 이승지가 평양역에서 경원선 기차를 타고 청량리역에 내린 뒤 전차 편으로 종로까지 가는 행로가 그려져 있다. 미국인 여행가 버튼 홈즈가 쓴 ‘홈즈의 동방나들이’에도 옛 청량리 전차풍경이 일부 묘사돼 있다. 정류장도 없이 아무 곳에서나 전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많아 사고가 빈발했다고 한다. ‘홍릉시대’는 옛말이 됐다. 동대문~신설동 로터리~경동시장~청량리 로터리에 이르는 간선도로의 이름은 홍릉로가 아니다. 1966년 시내 35개 주요 가로의 이름을 정하면서 1908년 13도에서 모인 항일의병을 이끌고 ‘서울진공작전’을 지휘한 의병장 허위의 호를 따 왕산로라고 명명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됐던 홍릉은 축소됐다. 지금의 흥릉길은 왕산로와 청량리 로터리가 만나는 지점에서 좌회전하면 나타나는 500m의 샛길에 불과하다. 명성황후가 떠난 홍릉에는 임업시험장, 영휘원(순헌황귀비 엄씨의 능)과 숭인원(영친왕의 맏아들 진의 능)이 스며들었다. 이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1966년), 세종대왕기념관(1970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1978년), 한국국방연구원(1979년), 카이스트 경영대학원(1996년), 한국콘텐츠진흥원(2009년) 등 각종 기관단체가 속속 들어서면서 교육과학안보연구단지로 변모했다. 문학작품 속의 청량리는 어떤 모습일까. ‘벙어리 삼룡’의 작가 나도향은 1924년 ‘개벽’에 실린 ‘전차 차장의 일기 몇 절’에서 “오늘은 동대문서 청량리를 향해 떠나게 되었다. … 시골 나무장사와 소몰이꾼들의 ‘어디여, 이놈의 소’하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탑골승방 영도사 또는 청량사 들어가는 어구는 웬일인지 전보다 더욱 쓸쓸해 보인다”고 1920년대 어느 전차 차장의 시선을 통해 한적한 시골동네 청량리를 묘사했다.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도 1935년 ‘삼천리’에 발표한 ‘이성 간의 우정론’이라는 글에서 “… 날도 따뜻합니다. 우리 청량리로 산보나 가십세다. … 맑고 푸르고 높은 늦은 봄날 오후에 청량리 공기는 시원하였다”라고 청량리를 예술가들의 인기 산책코스로 소개했다. ‘탁류’의 작가 채만식은 1932년 ‘동광’에 실린 ‘청량리의 가을’에서 “청량리를 나가서 지금 경기도 임업시험장이 된 숲속으로 들어섭니다. … 내가 이곳을 처음 간 것이 작년 가을인데 미상불 서울 근교에서 하루의 산책지! 더욱이 가을날로는 매우 좋은 곳인 줄 여겼습니다”고 청량리의 가을을 예찬했다. 1960년 ‘사상계’에 연재된 황순원의 장편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는 “… 청량리 밖 떡전거리에다 양계장을 꾸며 놓은 것은 지난해 이른 봄이었다. … 후생주택을 비롯해 인가들이 들어서서 한 해 동안에 일대가 아주 변모해 버렸다. … 양계장에서 가깝대야 회기동 파출소 앞까지 한참 나가야만 다방이 있는 것이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50년대 후반 공공주택의 공급과 함께 양계장에서 주거지로 조성되기 시작하는 청량리의 변화상을 보여준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21차 정릉천 따라 ■일시 및 집결장소 : 9월 14일(토) 오전 10시 우이신설선 북한산보국문역(서경대) 2번 출구 구내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
  • 손학규 “국민 심판받은 세력이 문재인 정권 단죄? 말이 안 된다”

    손학규 “국민 심판받은 세력이 문재인 정권 단죄? 말이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철회해줄 것을 촉구하고 있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이미 국민의 심판을 받은 세력이 문재인 정권을 단죄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면서 자유한국당 등 보수 진영에서 제기되는 문재인 정권 퇴진 주장을 비판했다. 손학규 대표는 1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조국 장관 임명 문제로) 정국은 경색됐고 나라는 분열했다. 문재인 정권의 향방을 결정하는 문제가 됐다”면서 “사람만 바꾼다고 개혁이 완수되는 것은 아니다. 국회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혹자는 이번 사태를 이유로 정권 퇴진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통령 탄핵까지도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는데, 저와 바른미래당은 분명히 말씀드린다. 대립과 대결의 정치는 똑같은 비극이 반복될 뿐이고 이 사태를 이념 대결로 몰아가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미 국민의 심판을 받은 세력이 문재인 정권을 단죄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면서 “바른미래당은 이념 편가르기를 멈추고 국민과 함께 특권층 비리를 척결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손 대표는 “사회 안정과 통합을 바라는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바른미래당이 앞장서서 대통령의 결단을 이끌어낼 것”이라면서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해 조국 장관의 임명을 철회해달라. 철회해줘. 분노한 국민의 마음을 추스르고 진정한 국가개혁을 이루어 갈 수 있는 방법은 그 길뿐“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손 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임명 철회’ 결단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매주 토요일 광화문에서 열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바른미래당은 토요일인 오는 14일과 함께 추석 연휴 첫날인 오는 12일 오후 7~8시에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조 장관 임명 철회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기로 했다. 촛불집회와 함께 ‘조국 임명 철회 촉구 서명운동’도 진행할 계획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한국·바른미래 “총력투쟁” 反조국 동맹… 홍준표, 탄핵도 거론

    한국·바른미래 “총력투쟁” 反조국 동맹… 홍준표, 탄핵도 거론

    洪 “새달 광화문서 ‘문재인 아웃’ 외치자” 하태경 “朴정권 말기 드라마 재방송같아”평화당 “산으로 가” 대안정치 “정국 우려” 곽상도 “딸 출생신고자는 조국… 위증”문재인 대통령이 9일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하자 야권은 문 대통령의 탄핵까지 언급하며 강력 반발했다. 조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제출, 국정조사 및 특검 추진, 장외 집회 등 전방위적인 대정권 투쟁도 예고했다. 추석 연휴 이후 정국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시계 제로’ 상태가 됐다. 이날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조 장관 임명과 관련해 투쟁 방안을 논의한 뒤 국립현충원에서 참배하며 대정부 투쟁 의지를 다졌다. 이후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해 의원 30여명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으로 자리를 옮겨 ‘국민명령 임명철회’ 피켓을 들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황 대표는 “조 장관 임명은 국민 뜻을 거스른 폭거로 이땅의 민주주의는 종언을 고하게 됐다”며 “국민과 함께 반드시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되찾겠다”고 했다. 나 원내대표는 “결국 이 정권은 공정과 정의를 내팽개치는 결정을 했고 이는 대한민국 역사와 헌정사에 가장 불행한 사태로 기록될 것”이라며 “국회를 버리지 않고 원내외를 병행하며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겠다”고 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젠 재야가 힘을 합쳐 국민 탄핵으로 갈 수밖에”라며 “10월 3일 광화문에서 모이자. 우리도 100만이 모여서 ‘문재인 아웃’을 외쳐 보자”고 했다. 바른미래당은 당론으로 법무부 장관 해임건의안 제출, 국정조사·특검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오신환 원내대표는 “국민 절반 이상이 반대하는데도 조 장관을 택한 건 문재인 정권의 도덕성 파탄 선언이자 검찰을 좌지우지하겠다는 선전포고”라고 했다. 그러면서 “바른미래당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조국 퇴진 운동’에 나서겠다”며 “조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표결을 즉각 추진하고 국정조사를 통해 조국 일가의 진상을 규명하겠다. 만약 문 대통령이 검찰 수사 방해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면 특검으로 맞서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태경 최고위원은 “박근혜 정권 말기 때 펼쳐졌던 드라마가 주인공만 바뀌고 재방송되고 있다. 우병우 자리에 조국이 있고 최순실 자리에 정경심이 있고 정유라 자리에 조국의 딸이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은 “승자 독식의 싸움질 정치에 특화된 구태 정치인들과 극렬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인 문재인호가 산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안정치연대 장정숙 수석대변인도 “향후 정국 운영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여야 간 기존 합의에 따라 추석이 끝난 뒤 교섭단체 대표연설,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내년도 예산안 심사 등이 잇달아 진행될 예정이지만 조 장관 임명 강행에 ‘도미도 파행’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야당이 정기국회 보이콧이라는 최악의 수단을 선택하지 않아도 모든 상임위원회 안건이 정기국회 내내 ‘조국 블랙홀’에 빨려들어 갈 수 있다. 선거제 개편과 검경 수사권 조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처리도 난항이 예상된다. 한편 한국당 곽상도 의원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조 장관의 딸 출생신고는 아버지인 조 장관이 직접 한 것으로 나타났다. 딸이 2011년 KIST에 인턴십 허가를 신청하면서 낸 기본증명서에 신고인은 ‘부’(父)로 기재돼 있다. 곽 의원은 조 장관이 인사청문회 당시 딸 출생신고를 자신의 부친이 했다는 발언이 거짓이었다며 위증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덕수궁·창경궁서 한가위 보름달 보세요

    음악회·수문장 교대의식 등 행사 마련 제기차기 등 민속놀이도 즐길 수 있어 문화재청은 추석 연휴인 12~15일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과 종묘, 조선왕릉을 무료로 개방한다고 3일 밝혔다. 평소 시간제 관람으로 운영하는 종묘는 자유 관람을 할 수 있다. 덕수궁과 창경궁 야간 관람도 무료다. 다만, 경복궁 야간 특별관람과 창덕궁 후원 관람은 입장료를 내야 한다. 고궁과 왕릉을 찾은 관람객을 위해 다양한 문화행사도 열린다. 경복궁에서는 대취타 정악과 풍물 연희를 공연하는 고궁음악회, 궁중 약차와 병과를 선보이는 생과방 체험, 수문장 교대의식을 운영한다. 창덕궁에서는 봉산탈춤과 줄타기가 벌어지고, 덕수궁에서는 전통춤 공연 ‘풍류’와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행사가 관람객을 맞는다. 창경궁 고궁음악회, 종묘 모형 만들기도 진행한다. 종묘에서는 15일 ‘해설과 함께하는 종묘 모형 만들기’를 한다. 연휴 기간에 다양한 전통 민속놀이를 즐길 수도 있다. 덕수궁과 세종대왕유적관리소에서는 제기차기·투호·윷놀이·팽이치기 등을 준비했고, 12~14일 충무문 앞 광장에선 굴렁쇠 굴리기·전통 딱지치기 등 민속놀이 마당을 펼친다. 충남 금산군 칠백의총관리소도 같은 기간 민속놀이 체험 행사를 연다. 전북 전주시 국립무형유산원은 7일과 14일 송편 만들기 등을 진행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13~14일 ‘해양문화재와 함께하는 민속놀이 체험’을 마련했다. 섬마을에서 행해졌던 명절 민속행사를 소개하는 민속 행사 사진전과 대형윷놀이, 대보름 강강술래 등을 진행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2차 동해 영토수호훈련, 日 대응따라 앞당겨질 수도

    2차 동해 영토수호훈련, 日 대응따라 앞당겨질 수도

    해군 이어 해경 주관 1차 훈련은 마무리 독도와 울릉도에서 역대급 규모로 진행됐던 ‘동해 영토수호훈련’이 26일 비군사적 대응 훈련을 끝으로 종료됐다. 비군사적 훈련이란 군사 위협이 아닌 일본 극우단체 등 민간단체 선박 침범에 대응하는 것이다. 해군 관계자는 26일 “전날 해군 주관의 군사적 대응 훈련에 이어 오늘 해경 주관의 비군사적 대응 훈련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날 훈련에는 해경 1500t급 대형 경비함정 3척과 500t급 중형 함정 1척, 해경 해상초계기 1대, 헬기 2대, 해양경찰 특공대 4명 등이 투입돼 차단 기동훈련을 실시했다. 이번에 진행된 동해 영토수호훈련은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되며 강한 대일 메시지를 내는 데 중점을 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군은 이번 훈련에 최초로 수상전투함 중 가장 큰 이지스함 세종대왕함(7600t급)과 해군 최정예 전력인 제7기동전단을 파견했다. 육군 특수전사령부 요원들도 처음 참여해 울릉도에서 상륙훈련을 실시했다. 훈련 참가 전력은 예년보다 2배가량 늘었다. 올해 한 차례 더 시행할 훈련의 시기와 명칭에도 관심이 쏠린다. 독도방어훈련은 그간 전반기와 후반기를 나눠 2회 실시했지만 올해부터 시기와 상관없이 연 2회 실시하도록 지침을 바꿨다. 따라서 이번과 같이 일본의 움직임을 살피며 당분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국방부는 아직 추가 훈련 일정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2차 훈련이 통상 시행됐던 12월보다는 앞당길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입장 변화 없이 한일 관계가 계속 악화된다면 2차 훈련이 대일 압박 카드로 고려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독도 영유권에 대한 도발이 지속되거나 독도 인근에서 중국과 러시아 항공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침범 움직임 등이 발생한다면 이번처럼 고강도 훈련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2차 동해 영토수호훈련, 日 대응따라 앞당겨질 수도

    해군 이어 해경 주관 1차 훈련은 마무리 독도와 울릉도에서 역대급 규모로 진행됐던 ‘동해 영토수호훈련’이 26일 비군사적 대응 훈련을 끝으로 종료됐다. 비군사적 훈련이란 군사 위협이 아닌 일본 극우단체 등 민간단체 선박 침범에 대응하는 것이다. 해군 관계자는 26일 “전날 해군 주관의 군사적 대응 훈련에 이어 오늘 해경 주관의 비군사적 대응 훈련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날 훈련에는 해경 1500t급 대형 경비함정 3척과 500t급 중형 함정 1척, 해경 해상초계기 1대, 헬기 2대, 해양경찰 특공대 4명 등이 투입돼 차단 기동훈련을 실시했다. 이번에 진행된 동해 영토수호훈련은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되며 강한 대일 메시지를 내는 데 중점을 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군은 이번 훈련에 최초로 수상전투함 중 가장 큰 이지스함 세종대왕함(7600t급)과 해군 최정예 전력인 제7기동전단을 파견했다. 육군 특수전사령부 요원들도 처음 참여해 울릉도에서 상륙훈련을 실시했다. 훈련 참가 전력은 예년보다 2배가량 늘었다. 올해 한 차례 더 시행할 훈련의 시기와 명칭에도 관심이 쏠린다. 독도방어훈련은 그간 전반기와 후반기를 나눠 2회 실시했지만 올해부터 시기와 상관없이 연 2회 실시하도록 지침을 바꿨다. 따라서 이번과 같이 일본의 움직임을 살피며 당분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국방부는 아직 추가 훈련 일정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2차 훈련이 통상 시행됐던 12월보다는 앞당길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입장 변화 없이 한일 관계가 계속 악화된다면 2차 훈련이 대일 압박 카드로 고려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독도 영유권에 대한 도발이 지속되거나 독도 인근에서 중국과 러시아 항공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침범 움직임 등이 발생한다면 이번처럼 고강도 훈련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독도방어훈련, 하반기 또 한다…훈련시기 당겨질 듯

    독도방어훈련, 하반기 또 한다…훈련시기 당겨질 듯

    올해 첫 독도방어훈련이 25일 오전부터 시작해 이틀간의 일정을 마치고 26일 오후 마무리될 것으로 알려졌다. 독도방어훈련은 1년에 2회 실시하는데 올해는 첫 훈련 일정이 다소 늦어진 데다 한일 갈등 국면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도발 행보가 더욱 노골화될 가능성이 있어 훈련 시점이 더욱 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해군 주관으로 실시된 첫날 일정과 달리 이날 훈련은 해경이 주관하고 해군이 지원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첫날 훈련에는 해군·해경 함정 10여 척, 공군의 주력 전투기 F-15K를 포함해 UH-60 해상기동헬기, CH-47 치누크 헬기 등 육·해·공 항공기 10대가 투입됐다. 특히 사상 처음으로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7600t급)을 포함해 해군 최정예 전력인 제7기동전단 전력과 육군 특전사가 참가했다. 해군특수전전단(UDT/SEAL) 요원들도 동원됐다. 정부는 훈련 종료와 함께 올해 두 번째 독도방어훈련 시기와 규모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방어 의지를 과시하고 외부세력의 독도 침입을 차단하는 전술 강화 차원에서 매년 두 차례 독도방어훈련을 해왔다. 지난해 훈련은 6월 18~19일, 12월 13∼14일로 6개월 정도의 간격을 두고 실시됐다. 그러나 올해는 일본의 독도 도발 행보가 잦아지고 있어 훈련 시점이 더 당겨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훈련에서 처음 사용된 ‘동해 영토수호훈련’이라는 명칭은 독도 영유권 수호 의지뿐 아니라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과 같은 사건이 반복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군의 강력한 ‘육해공 입체방어’ 의지가 투영돼 당분간 계속 사용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사설] 당연한 독도훈련, 일본 추가 보복 대비해야

    군이 어제부터 이틀간 일정으로 독도방어훈련에 들어갔다. 이는 매년 상·하반기에 해 왔던 훈련으로 애초 지난 6월에 할 예정이었으나 한일 관계를 고려해 미뤄졌었다. 군은 불필요한 외교적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명칭을 ‘동해 영토수호훈련’으로 바꿨으나 영토 수호 의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훈련 규모는 두 배로 늘렸다. 해군의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 육군 특전사 등이 처음으로 훈련에 참가했다. 예상됐던 대로 일본은 즉각 외교부와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독도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서도, 국제법상으로도 분명이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억지 주장을 했다. 일본의 억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20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올림픽 공식 사이트 지도에 표시된 독도를 지우지 않겠다고 한다. 지난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 때 한반도기에 독도가 표시된 것에 대해 ‘올림픽 정신에 반한다’고 주장했던 자신들 논리를 뒤집은 것이다. 당시 한국은 일본측 요구를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했으나 일본은 그 선의를 거칠게 돌려줬다. 일본의 국제적 질서에 반하는 행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수출우대국가(백색국가)에서 제외한 조치가 28일 발효된다. 고순도불화수소(에칭가스),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등 3개 품목에 한해 진행됐던 수출허가제가 어느 품목으로 확대될지를 일본 정부가 결정하는, 신뢰로 구축된 국제분업을 일본 정부가 훼방할 수 있는 상황이 돼 버렸다. 그동안 정부는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해 연구개발(R&D) 예산 투입, 소재부품 조달처 다원화 등을 발표했다. 정책이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지난 19일부터 가동 중인 수출규제현장지원단에 접수된 기업들의 어려움은 무엇인지를 면밀히 점검해 필요하다면 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상 초유의 경제보복을 자행하는 일본에 그 어떤 성과도 안겨서는 안 된다.
  • 육해공군, 2배 늘린 전력 투입… 외교적 해결 외면 日에 경고장

    육해공군, 2배 늘린 전력 투입… 외교적 해결 외면 日에 경고장

    세종대왕함 등 해군 7기동전단 처음 참가 軍함정 10여척·항공기 10대까지 총출동 예년과 달리 정예전력 사진 등 적극 공개 기존 日 자극 자제 ‘로키’ 진행서 급선회25일 독도·울릉도 일대에서 시작된 ‘동해 영토수호훈련’은 이전까지 일본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기 위해 ‘로키’(저강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과 달리 한국군의 정예전력을 상당 부분 투입하면서 영상을 적극 공개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선언 이후 불과 사흘 만에 실시된 이번 훈련이 강제징용 문제 등과 관련한 외교적 해결을 외면하는 일본에 맞서는 한국 정부의 두 번째 카드라는 점과 맞닿아 있다. 해군 관계자는 “해군 및 해경 함정 10여 척과 육해공군 항공기 10대가 참가해 규모가 예년에 비해 늘었다”고 설명했다. 전체 투입 전력은 예년과 비교해 배 정도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상 처음으로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7600t급)을 포함해 해군 제7기동전단 전력과 육군 특전사가 참가했다. 2010년 창설된 제7기동전단은 세종대왕함을 비롯해 이지스 구축함 3척과 충무공이순신급(4400t급) 구축함 등을 보유한 해군의 최정예 전력이다. 통상 3200t급 구축함이 독도방어훈련에 참여해 왔지만 규모가 큰 수상전투함을 보강한 것이다. 해군 특수전 요원(UDT)도 파견했다. 그동안 해병대와 UDT가 번갈아 참여했지만 이번에는 함께 전개했다. 육군 특수전사령부도 최초로 참여해 울릉도에서 상륙훈련을 진행했다. 육군은 통상 독도방어훈련에 경비정과 항공전력 정도만 투입해 왔지만 상륙 인원을 파견한 건 처음이다.이번 훈련에 육해공군 전력이 모두 참여하며 ‘전방위적 방어’를 기획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한 일본 정부가 2014년 ‘방위백서’에 유사시 독도에 마이즈루항에 위치한 제3호위대군 본대를 파견해 방어한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어 한국도 대응 차원에서 독도에 정예화된 최신 전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군 관계자는 “독도 방어가 가능한 각 군의 정예화 전력들이 모두 참여했다는 점에서 강력한 영토수호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했다. 군은 지난 6월 실시하려던 독도방어훈련을 한일 관계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두 달 넘게 미뤄왔다. 지난달 일본의 경제보복을 계기로 광복절 전후 실시하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지만, 기상 상황과 한미 연합연습 일정을 고려해 일정을 재조정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군 당국이 한일 관계 등을 고려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국방부는 최근까지도 “시기와 규모는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일본이 경제보복 기조를 누그러뜨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 기류도 지소미아 연장 불가와 맞물려 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해 영토수호 훈련은 건국 초기부터 해군 단독으로 진행해왔다. 1996년 ‘동방훈련’이란 이름으로 지금과 같은 합동 훈련으로 진행되다 2008년 독도방어훈련으로 이름을 바꿔 지난해까지 진행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독도서 전격 영토수호훈련…日보복 정면돌파

    독도서 전격 영토수호훈련…日보복 정면돌파

    해군 이지스함·육군 특전사 처음 투입 정부, 유감 표명 日에 “우리 영토” 일축 日 28일 추가 보복 땐 ‘원전 맞불’ 관측도 “외교 채널 통한 대화 창구 여전히 유효”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종료하기로 결정한 지 사흘 만인 25일 ‘동해 영토수호훈련’에 전격 돌입했다. 일본이 민감하게 여길 만한 ‘영토수호훈련’이란 이름을 쓴 것도,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7600t급)과 육군 특수전사령부 병력을 동원한 것도 1996년 독도방어훈련이 틀을 잡은 이후 처음이다. 지난 22일 지소미아 중단이란 초강수를 둔 데 이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왔던 독도 훈련 카드마저 꺼내 들면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겨냥한 ‘메시지’를 분명하게 발산한 셈이다. 오는 28일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 제외를 시행하면서 추가 경제보복 조치를 취하는지 지켜본 뒤 훈련 여부를 결정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정면 돌파를 택한 것이다. 이에 일본 정부가 훈련 중단을 요구하면서 강력 반발함에 따라 갈등 국면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해군은 이날 “26일까지 동해 영토수호훈련을 실시한다”며 “훈련에는 해군·해경 함정과 해군·공군 항공기, 육군·해병대 병력 등이 참가한다”고 밝혔다. 특전사는 울릉도에 병력을 전개하고 해군과 해병대는 독도에서 상륙훈련을 했다. 갑작스러운 독도 점령을 가정한 훈련으로, 일본에 대한 경고 성격이 짙다는 평가다. 군은 기존 독도방어훈련에서 동해 영토수호훈련으로 이름을 바꿨다. 해군 관계자는 “독도를 비롯한 동해 영토 수호 의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훈련 의미와 규모를 고려했다”고 말했다. 다만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올해만 하는 게 아니라 정례적 훈련”이라며 “영토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모든 세력에 대한 훈련으로 특정 국가를 상정하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번 훈련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문근식 한국국방안보포럼 대외협력국장은 “일본이 대화 제의를 무시한 상황에서 독도방어훈련을 더 미룰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도쿄·서울 외교 채널을 통해 “다케시마(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이며 이번 훈련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극히 유감”이라며 훈련 중지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에 외교부는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이며 일본 항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했다. 정부는 강경 대응을 하면서도 외교 채널은 열어 놓고 대화·협의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일본이 28일 추가 경제보복 조치를 취한다면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 문제를 적극 제기하는 등 맞불을 놓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훈민정음, 신미대사가 만들었다고?… 창제가 아니라 보급에 이바지했죠”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훈민정음, 신미대사가 만들었다고?… 창제가 아니라 보급에 이바지했죠”

    ‘훈민정음학 박사’ 김슬옹 원장이 전하는 한글 창제 전후“훈민정음을 신미대사가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신미대사 그분을 욕뵈는 일입니다. 훈민정음을 누가 창제했는지 모르거나 불분명할 때 소설이나 영화에서 신미대사가 만들었다고 주장한다면 상상예술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글은 훈민정음 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세종대왕이 창제했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신미대사는 훈민정음 창제에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불교 지식으로 불경의 한글화 등을 통해 훈민정음에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훈민정음 창제에 신미대사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영화와 소설이 최근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훈민정음학 해례본 간송본 원본을 최초로 직접 보고 해설한 훈민정음학 박사 김슬옹(58)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은 여러모로 답답해 한다. 인터넷에도 신미대사 창제설이 넘쳐나고 있다. 훈민정음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하면 훈민정음에 대해 제대로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사직로에 있는 연구실로 찾아갔다. “훈민정음 창제는 세종, 실록·해례본 기록 명확세종, 신미대사 창제 후 이름 들어… 문종 실록불경을 먼저 한글로 낸 이유?… 소헌왕후 명복”- 신미대사는 허구의 인물인가? 아니면 조선왕조실록, 특히 세종실록에 등장하는 사람인가. “신미대사는 당연히 왕조실록에 나오는 실존 인물입니다. 세종대왕이 신미대사를 만났다는 기록은 세종실록에 나옵니다. 1446년 5월 27일, 운명한 왕비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대재암에서 금으로 베껴쓴 불경 봉정식을 할 무렵 세종이 신미대사를 만났을 겁니다. 금사 불경 봉정식에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승려 2000여명이 모였답니다. 불사는 7일간 계속됐습니다. 세종을 가장 가까이 지켜본 문종도 훗날 ‘대행왕(세종)께서 병인년(1446)부터 비로소 신미의 이름을 들으셨다’고 증언합니다.” - 세종이 신미대사를 처음 만난 게 1446년 5월이면, 훈민정음 창제 이후이고 반포 직전의 시기다. “그렇죠. 세종은 훈민정음을 1443년 완성하고, 시험 기간을 거쳐 1446년 9월 상순에 반포했습니다. 그 사이 즉 반포 6개월 전인 1446년 3월 소헌왕후가 운명합니다.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불경을 금사했고, 그때 신미대사를 만났다는 것이 실록의 기록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세종대왕이 신미대사를 비밀리에 만났을 수도 있겠지만, 세종 대신 섭정을 했던 문종이 이런 주장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문종 실록 1450년 4월 6일자 기록에서 문종이 직접 말하기를 ‘대행왕께서 병인년부터 비로소 신미의 이름을 들으셨었는데…’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 창제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신미대사는 무슨 역할을 했나. “운명한 소헌왕후를 위한 대법사가 있은지 4개월쯤 뒤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완성됩니다. 이와 거의 동시에 불경을 통해 훈민정음 보급을 시도하자 사대부들의 반발에 부딪칩니다. 최만리, 하위지와 같은 많은 학자들의 반대로 훈민정음 보급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세종이 내세운 논리를 요약하면 ‘왕비가 죽었지 않느냐. 괴롭고 외로운 내 처지를 이해해 달라’며 감성적으로 호소하면서 한글로 풀어쓴 언해 불경을 낸 것이지요. 명복도 더욱 빌고, 세종 자신도 위로하고, 새 문자도 보급하는 다중 포석을 놓은 겁니다. 불경 언해를 펴내기 위해서는 불경과 관련된 산스크리트말에 능통하고 훈민정음 취지를 잘 아는, 이미 불사를 통해 검증된 신미대사와 그의 동생 김수온이 있어 마음 든든했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온 이후 가장 먼저 나온 한글 보급서가 1447년 완성되고 1449년 간행된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입니다. 불교지식이 넓은 신미대사가 불경의 한글화를 통해 훈민정음 보급에 앞장 섰지만 한글 창제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훈민정음 산스크리트 모방?…한글은 차원 달라범어·파스파·티벳 곡선… 한글은 점과 직선 위주문자 비슷해?… 해례본서 자모 모양 근거 밝혀”어려서 천자문을 배웠던 그는 학교에서 ‘한자 박사’로 통했다. 외솔 최현배 선생의 영향을 받아 한글과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고교시절 부모님이 주신 이름 김용성에서 ‘슬기롭고 옹골차다’는 뜻의 우리말 ‘슬옹’으로 이름지었다. 대학교 2학년때 법적으로 개명했다. 대학시절인 1984년 당시 흔히 부르던 ‘서클’을 ‘동아리’로 바꾸는데 앞장섰다. 새내기(신입생), 해오름식(창단식) 등도 그가 앞장서 보급한 우리말이다. 유별난 한글 사랑에 인터뷰 당일 훈민정음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 신미대사가 범어 전문가라고 하는데 훈민정음에 범어 흔적이 남아있지 않나. “신미대사가 범어 즉 산스크리트말에 능통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당시 뛰어난 스님이니까 불경을 공부하면서 범어를 익히지 않았을까 추정합니다. 세종대왕이 문자를 창제할 당시 오늘날 사용하는 모든 언어의 문자가 다 나와있었습니다. 세종은 소리문자를 만들고 싶어하셨고, 소리문자인 산스크리트 문자, 티벳 문자, 파스파 문자를 당연히 참고했겠지요. 그렇다고 모방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문자는 도형(모양)과 음가(소리)가 중요한데, 이들 문자는 곡선 위주입니다. 곡선은 쉽고 간단하게 쓸 수가 없습니다. 배우기 어려워 지금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거나 사어나 다름없게 됐어요. 그러나 한글은 점과 직선 위주입니다. 곡선은 동그라미, 즉 이응(O) 밖에 없어요. 그리고 산스크리트 문자와 마찬가지로 한글은 초성·중성·종성으로 되어 있지만 산스크리트 문자는 모음이 어떤 자음과 대응하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져요. 한글은 그런 게 없잖아요.” - 그러면, 훈민정음이 산스크리트 문자를 모방했다는 주장은 어처구니가 없는 것 아닌가. “모방설을 주장하는 이들의 가장 큰 근거는 글자 모양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훈민정음은 글자 모양이 왜 그런 형태가 되었는지를 해례본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음은 발음기관, 모음자는 하늘과 땅, 사람의 상형이라고 분명히 밝혀두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방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서로 닮은 사람을 보고 형제라고 우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방은 그 기원이 같고, 그 차원이 같다는 것이지만 한글은 그 어떤 문자와도 차원이 다릅니다. 민족주의 차원에서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과학입니다. 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 용비어천가,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 동국정운 등 관련 책을 보면 서로 연결되면서 서로의 관계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 한글 창제에 집현전 학자들의 역할은 얼마나 컸나. “훈민정음은 세종이 주도적으로 창제한 것입니다. 집현전 학자들은 한글 창제 과정에서 자료를 찾아주거나 하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었겠지만, 창제 아이디어, 직접적인 연구는 절대로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그 증좌로 집현전 학자 8명이 개인적으로 훈민정음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공동 창제라면 안 쓸 리가 없잖아요. 당시 집현전 학자 대다수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20대 중반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에 힘쓸 때 이들은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10대였을 겁니다. 굳이 도왔다고 한다면 정인지와 최항 정도였을 겁니다. 하기야 소통을 중시했던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과 18~19세기 실학자들도 한글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들은 한자 이외의 문자를 상상하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창제에 개입했겠습니까.” “배익기 소유 해례본… 몇쪽 남았는지 밝혀야상주본 공개사진 보니 글자 획 간송본과 같아상주본 주석은 경상도 방언에 18세기 표기법조선시대 훈민정음 연구사·소장자 규명길 열려”한글과 훈민정음, 해례본을 칭송하지만 정작 훈민정음 해례본 전공자는 국내에서 5명이 채 되지 않는 실정이다. 대학의 국문과 및 국어교육과 과정에서도 훈민정음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 반면에 그는 우리말과 관련해 80권의 책을 냈고 12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국어교육학 및 훈민정음학 2개의 박사학위 취득자인 그는 20여개 대학에서 40여차례 임용에서 퇴짜를 맞았다. 대학에서 훈민정음 전공자를 뽑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 책을 내고 두 달 간 강의하는 강좌를 개강했다. 유튜브로 훈민정음대학교 채널을 만들어 방송도 하고 훈민정음 해례본 한글본 손바닥책을 만들어 학생신문사와 함께 온국민 읽기 운동을 벌이겠다고 한다. - 훈민정음 해례본과 관련해 배익기씨가 보관하고 있다는 상주본이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실물을 본 적이 있나. “2016년 11월 배익기씨를 경북 상주에서 한글운동 단체 대표로 이대로, 최기호 선생님과 같이 만난 적이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실물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배씨가 소장한 해례본을 통상 ‘상주본’이라고 하는데, 절반 정도만 남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66쪽 전체 갸운데 30~40쪽 남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정확히 밝혀주면 좋은데…, 배씨가 공개한 일부 사진 등을 보면 남아있는 상태가 비교적 좋고, 주석 같은 기록이 여백에 쓰여 있습니다. 글자에 삐친 획이라든지, 계선이 간송본과 똑같아요. 여백의 주석은 경상도 방언으로, 18세기 이후 표기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경상도 선비가 소장하면서 연구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 배씨 소장본 가치가 1조원이라는데, 어떻게 그런 어마어마한 금액이 나왔을까요. “해례본은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해 무가지보(無價之寶)라고 합니다. 서울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해례본이 2016년 40일간 전시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하루 보험료가 1억원이었습니다. 이는 보험회사가 평가한 것으로 유럽의 고문서나 대가의 그림 작품 등의 가치를 감안해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루 1억원의 보험료라면 최소 1조원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지요. 상주본이 간송본과 같다면 가치가 그렇겠지만, 남아있는 상태가 같지 않으니 가치가 꼭같지 않을 겁니다. 다만 서지학적으로 상주본은 위아래 여백이 간송본보다 온전히 남아 있어 해례본의 원래 크기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상주본의 여백에 남은 주석 기록이 조선시대 한글 연구 및 소장자의 역사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해례본, 세종 당시 딱 한번 발행돼간행 50여년만에 희귀서적으로 변해문자 기득권, 해례본 빨리 폐기한 듯”- 해례본, 왜 이렇게 귀한 책이 됐나. “지금까지는 간송본과 상주본 두 권의 존재가 확인됐습니다. 1446년 딱 한번 인쇄되었지요. 해례본은 간행 후 50여년 만에 희귀 서적으로 변했습니다. 당시 목판으로 500권 정도를 발간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그만큼 빨리 책들이 사라진 것지요. 이는 아마 문자 기득권층인 양반들이 해례본을 보고 하층민들이 문자 공부하는 것을 싫어해 폐기하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합니다. 어딘가 또 해례본이 나올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는 세종대왕 서문이 온전히 남아있는 해례본이 발견되면 빅뉴스가 될 겁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세종대왕상 화염병 투척 50대 “소송 패소, 하소연하고 싶었다”

    세종대왕상 화염병 투척 50대 “소송 패소, 하소연하고 싶었다”

    “빚보증 소송 패소해 억울한 마음 있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종대왕상에 화염병을 투척한 5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김모(52)씨를 현행범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21일 밝혔다. 김씨는 이날 오전 4시쯤 가방을 든 채 세종대왕상 주변을 배회하던 중 소주병에 심지를 넣어 만든 화염병에 불을 붙여 세종대왕상을 향해 투척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현장에서 근무하던 경찰관들이 곧바로 세종대왕상 하단에 붙은 불을 껐고, 김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세종대왕상은 기단부가 불에 약간 그을리는 피해를 입었다. 다만 불이 크게 번지지 않아 큰 손상은 없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지인과 빚보증 문제로 소송에서 패소해 억울한 마음이 있었다”면서 “누군가에게라도 하소연하고 싶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특정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정치적인 동기 없이 단독으로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구속영장 신청 여부는 검토 중”이라면서 “보강 수사를 진행한 뒤 신청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에 화염병 투척한 50대 남성 체포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에 화염병 투척한 50대 남성 체포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종대왕상에 화염병을 투척한 5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김모(52)씨를 현행범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21일 밝혔다. 김씨는 이날 오전 4시쯤 가방을 든 채 세종대왕상 주변을 배회하던 중 소주병에 심지를 넣어 만든 화염병에 불을 붙여 세종대왕상을 향해 투척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현장에서 근무하던 경찰관들이 곧바로 세종대왕상 하단에 붙은 불을 껐고, 김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세종대왕상은 기단부가 불에 약간 그을리는 피해를 입었다. 다만 불이 크게 번지지 않아 큰 손상은 없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화염병을 던진 이유 등에 대해 별다른 진술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김씨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Focus人] ‘죽음 속 인권과 정의를 보다’ 유성호 법의학자

    [Focus人] ‘죽음 속 인권과 정의를 보다’ 유성호 법의학자

    “유병언을 처음 부검한 건 순천에 있는 병원 의사선생님이셨어요. 노숙자가 아니라 유병언이었다는 걸 시간이 한 참 지난 뒤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알게 된 거예요. 국민들은 당시 유병언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의심하는 상황이었잖아요. 관(官) 혼자서 처리하게 되면 뭔가 음모가 있다거나, 지금도 아마 죽지 않았다고 믿은 분들도 꽤나 있어요. 시신 자체가 엄청나게 부패했기 때문에 사망원인을 밝히지 못한 게 좀 아쉬웠지만 치아와 유전자 등 개인식별 측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의문과 의혹을 자신의 죽음으로 묻어버린 유병언. 그의 ‘확실한’ 죽음을 법의학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증언한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 이렇듯 전 국민적 관심이 모아진 유병언 사망사건, 선임병의 잔인한 폭행으로 사망한 28사단 윤일병에서부터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 속 결핵질환으로 쓰러져 간 어느 이름 모를 부검실의 시신까지, 법의학자로 살아오면서 그와 마주한 죽음은 자그마치 1500여건.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매주 월요일만 되면 시체를 만나러 가는 남자. 서울대 의과대학 4학년 때 스승이신 이윤성, 이정민 교수님의 강의를 듣다 법의학에 매료됐고 의학에선 좀처럼 듣기 힘든 인권, 정의라는 테마에 빠져들어 이 길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하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마주하고 누구보다 죽음을 깊이 성찰했던 그와의 만남을 정리했다.(Q) 법의학자가 된 계기서울대 의과대학 4학년 때 이윤성, 이정민 교수님의 강의를 듣던 중 매우 흥미있는 과목이라 느꼈고, 인권이라는 용어를 의학에선 좀처럼 듣기 어려운데 인권과 정의와 관련된 여러 강의 내용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선택하게 됐죠. (Q) 얼마나 많은 시신을 부검했는지한 달에 보통 적을 때는 6건, 많을 때는 16건 정도 합니다. 지금까지 1500건 이상은 부검한 거 같습니다. (Q) 법의학자들의 인력난은 어떤지현업에 종사하시는 분이 40여명 정도다. 1년에 6000건이 넘는 부검을 하다보니까 한 사람당 거의 150건 가까이 하게 되는 게 현실이다. 원래 인기 있는 직종은 아니지만 현재 사회에서 필요한 거에 비하면 굉장히 적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Q) 법의학자분들은 ‘한 버스에 함께 타지 않는다?’제주도 학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학회가 끝나고 저녁 식사하기 위해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 한 교수님께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씀하셨는데 저도 인상에 깊이 남아서 책에도 썼다. ‘우리들이 한 버스에 타다 큰일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냐’라고 했을 때 웃을 수 만은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대변해 주는 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당시엔 우리나라 법의학자 분들이 30여명 정도밖에 안됐다. 지금도 여전히 한 버스로 움직일 수 있는 숫자라서 버스 숫자가 넘은 사람이 될 때가 언제일까 궁금하고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Q) 법의학자가 유난히 적은 이유요즘 직업을 선택할 때 워라밸, 급여, 서울(근무지) 이 세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저희 직업은 모두를 충족하지 못합니다. 급여는 임상 의사들에 비해서는 반도 안 되죠. 워라밸의 측면에선 ‘법의학이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부검을 주로 하니깐 응급이 없을 거다’라고 생각하는데 일이 상당히 고됩니다. 또한 대부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들어가서 일하게 되는데 지방 순한 근무가 있습니다. 좋은 직업이라고 추천할 만한 요소는 많지 않죠. (Q) 검안만 하는 법의학자도 있다는데검안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서 해부를 하지 않고 체표면을 통해 사망원인, 사망시각 등을 추정하는 걸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1년에 8만 명 정도가 사망하는 데 그중에 변사가 3~4만 명이 됩니다. 저희 입장이야 모두 부검을 하고 사망원인을 밝히는 게 여러모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면도 있고요. 그럴 때 검안하는 의사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법의학에 계시다가 퇴직하시는 분들이 검안을 하게 됩니다. (Q)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는지사망 후 형태학적으로도 검사를 통해 알아낼 수 없는 질병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다른 걸 모두 배제하는 방법을 씁니다. 소거를 하는 거죠. 외인사인지 아닌지에 따라 경찰의 수사의 지속성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외인사를 제거하고 나면 그 다음은 질병에 대한 건데요. 질병도 통계청에 넘어가기 때문에 중요하게 밝혀야 합니다. 부정맥 같은 경우는 모든 질병을 다 소거하고 남은 카테고리 안에서 저희가 임상적으로 판단하게 되는 거죠.(Q) ‘목욕탕 익사’ 관련 논문도 썼는데목욕탕에서 목욕하다가 돌아가시는 노인들이 많아요. 목욕 중 익사인지 아니면 심장질환이나 뇌혈관 질환 때문에 사망한 건지 부검을 했을 경우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만일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으면 보험 분쟁이 됩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물을 흡입하지 않았다. 심장질환이 발생해서 돌아가셨고 마침 그 장소가 물이 있었기 때문에 떠오른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가족 입장에서는 ‘목욕탕에서 돌아가셨으니깐 당연히 익사가 되지 않느냐’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만일 익사로 돌아가신 게 증명되면 이건 상해사망, 재해사망이라고 부르는 카테고리에 속하게 됩니다. 질병과 상해는 보험금의 차이가 매우 큽니다. 유가족 입장에서는 당연히 높은 보험금을 받길 원하는 거죠. (Q) 부검할 때의 마음가짐‘이분이 사람이었고 지금도 사람이라는 거, 나와 같은 인간이었다’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사실을 따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분이라고 해서 그분이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고요. 다만 저는 그분의 사망원인과 사망종류를 밝혀줄 제 직업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신이니깐 무섭다거나 피하고 싶다거나 그런 마음을 전혀 들지 않습니다. (Q) 2014년 윤일병 폭행 사건도 맡았는데당시 KBS 윤진 기자가 사건을 발굴해 가져왔고 단지 의학적인 판단을 제공했을 뿐이다. 처음엔 가해자들이, 음식물 먹고 있던 윤일병의 뒤통수를 쳤는데 캑캑거리며 질식사 했다고 했죠. 하지만 부검을 통해 비장이 파열될 정도의 잔인한 폭행과 출혈이 있었고 그로인해 사망한 건데 그 사실이 숨겨질 뻔 했던 거죠. 결국 기소를 다시 하게 되고 살인으로 판단하게 된 거죠. 마음속으로는 처음 이윤성 교수님의 강의에서 들었던 인권, 정의 이런 게 실현된 게 아닐까 하는, 마음속으로 뿌듯함이 있었죠. 세종대왕이 편찬하신 ‘무언록(無寃錄)’의 말처럼 원한을 없게 하는, 그게 바로 유족에게 드릴 수 있는 작은 위로 그리고 고인한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마지막 정의실현, 인권이라고 생각합니다. (Q) 꽃피는 봄이 오면 더 바쁜 이유는보통 시신은 물에 빠지면 20~30%는 바로 떠올라요. 간혹 입고 있던 옷의 상태 등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가라앉게 되는 경우에는 부패하지 않으면 좀처럼 떠오르지 않게 돼요. 하지만 봄이 오고 따뜻해지면 부패가 진행되면서 시신이 떠오르죠. 어느 날은 익사로 사망해 떠오르게 된 부패가 다 진행된 시신들을 네 건이나 부검한 적도 있고요. (Q) 부검을 통해 시신의 과거모습을 느낄 수 있는지시신의 안쪽 장기를 보게 되면 ‘아, 이분이 어떻게 사셨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어요. 요즘엔 결핵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지 않지만, 생활형편이 어려운 지역에 계셨던 분을 보다 보면 결핵으로 사망한 경우도 있어요. 약복용과 치료를 잘 받았다면 그런 불행한 일을 겪지 않았겠죠. 폐기종이 많은 분들을 보면 ‘아, 정말 담배를 많이 피셨구나’라고 느끼죠. 임상 의사들은 초음파나 CT 등을 통해서 간을 보지만 저는 실물을 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Q) 기억에 남는 유서가 있다면단지 시신만을 보고 알 수 있는 게 한정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료의 해석에 있어서 경찰이 처음에 수집한 모든 상황들을 같이 공유합니다. 유서를 보게 되는 이유죠. 많은 분들은 유서라고 하면 제갈량의 출사표처럼 길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유서는 점점 짧아집니다. 본인의 죽음을 통해서 가족분들에게 미안하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게 제일 많습니다. ‘어렸을 때 때려서 미안하다. 살기 힘들어서 그랬다‘라고 아이에게 남기는 유서도 있고, ‘단골가게에 외상이 있는데 장례 치르고 남은 돈으로 갚아 달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고 여러 가지의 유서 형태를 보게 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Q) 죽음을 통해 느낀 나름의 성찰이 있다면처음에 법의학을 공부하고 부검을 하게 되면 가장 무서운 건, ‘자신이 갑자기 죽게 된다면…’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오래 흘러가다보면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역설적으로 그런 죽음을 오래 경험하다보면 ‘현재의 유한한 나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라고 많이 느끼게 돼요. 많은 분들은 법의학자 만나면 재밌고 미스터리한 사건 얘기해달라고 하는데, 사실 그런 건 기억에 잘 남지 않습니다. (Q) 부검 중 눈물 흘린 이유의정부 한 아파트에서 어떤 여성분이 돌아가셨는데 아이를 끌어안고 화상을 입은채로 발견돼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돌아가셨어요. 그 분 자신도 보육원에서 입양과 파양을 겪으면서 홀로 외롭게 자라왔죠. 인생의 아이러니라고 할까요. 미혼모로서 아이를 홀로 키우다 뜻하지 않는 사고를 당하게 된 거죠. 그 분 한쪽 눈가 끝에 눈물이 말라 붙어 있는 걸 보고 돌아가시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란 생각에 마음이 많이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Q) 인간의 악함에 분노했던 부검 사례가 있다면굉장히 놀란 사건이었어요. 여성이 147번을 칼에 찔렸습니다. 이별 통보받은 남성이 격분해서 찌른 건데 그땐 굉장히 마음이 우울했어요. 잔혹한 것도 잔혹한 거지만 인간이 얼마나 악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이랬을까, 그것도 한 때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서. 인간의 악함에 분노했던 기억이 납니다. (Q) 부검은 중요한 국가적 과제어떤 사람의 형법적 정의, 인권이라는 면에서 굉장히 중요하고요. 또 하나는 국가가 세금을 걷어서 제대로 쓰려면 국민의 인생 마지막 과정인 죽음에 있어서 실제로 어떤 과정에 의해서 일어났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돼요. ‘자살이 많다’면 당연히 그쪽을 예방하기 위해 국가 세금 써야 합니다. 그런 것에 근간이 되는 게 사망원인의 규명이죠. 부검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진 않지만 법의학자가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줘야 그 사회가 형법적 정의는 물론 국가의 세금을 제대로 쓸 수 있는 그리고 그걸 통해서 국민의 수명이 더 늘어나고 기대여명이 더 늘어날 수 있게 되는 거죠. (Q)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저는 직업 때문에 당연히 죽음을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습니다. 시나리오도 여러 개 생각해 봤고요. 안타깝지만 현대사회에서의 죽음은 사실 의사에 의해서 좌우될 때가 많아요. 정신없이 뭔가를 진단받고 치료에 전념하다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나 주변에 본인이 남기고 싶은 죽음에 대한, 죽음을 통해서 얻은 자신만의 성숙한 고찰 등을 전혀 남기지 못하고 그냥 갈때가 많아요. 내가 뭘 원했는지 뭘 안 원했는지를 명확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죽음에 대한 준비, 거창하게 어딘가에 틀어박혀서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를 준비하는 게 진정한 죽음의 준비가 아닐까요. (Q) 앞으로의 계획법의학자가 된 후 살아온 삶보다 앞으로 법의학자로서 살아야 할 삶이 더 길다고 생각해요. 쓰고 싶은 주제의 논문도 많고요. 리서치와 실험 등 해야 할 게 많아서 차근차근 준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 군국주의 아베, 첨단 무기에 ‘혈안’… 日 해·공군 전력 한국에 우위

    군국주의 아베, 첨단 무기에 ‘혈안’… 日 해·공군 전력 한국에 우위

    국방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국가별 ‘군사력’에 대해 의견을 많이 나눕니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인구나 장비 측면에서 선두권인 나라와 일본, 영국 등 우리와 군사력이 비슷한 나라가 있습니다. 언론과 군사전문가들이 기준을 삼는 것은 미국의 ‘글로벌파이어파워’(GFP)라는 사이트인데, 올해 군사력 순위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일본이 근소한 차이로 지난해 8위에서 6위로 뛰어올랐습니다. 우리는 7위를 유지했고 영국은 6위에서 8위로 내려왔습니다. 일본의 전체 병력 규모는 우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하는데 군사력 순위는 더 높다고 하니 화가 나기도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왜 그럴까요.●올해 국방예산 日 55조원·한국 47조원 8일 GFP 사이트를 참고해 직접적인 군사력 비교부터 해보겠습니다. 인구는 일본이 1억 2617만명, 한국이 5142만명으로 일본이 많습니다. 전체 병력은 일본이 24만 7157명으로, 한국(62만 5000명)의 40%에 불과합니다. 예비군 규모는 우리가 520만명, 일본이 5만 6000명입니다. 하지만 ‘머릿수’는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일본은 ‘모병제’ 국가로 25만명에 가까운 병력 전부가 부사관과 장교로 구성돼 있습니다. 최근 수년간 각종 사고로 군 기강이 크게 해이해졌다는 평가가 많지만, 일단 부사관급 이상 인력은 우리보다 5만명가량 많습니다. 지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아베 정권이 지난해 말 마련한 ‘방위대강 및 중기방위력 정비계획’입니다. 한국국방연구원 등의 전문가 분석에 따르면 아베 정권은 최소한의 방위력만 보유하는 ‘전수방위’ 원칙을 ‘적극방위’ 개념으로 바꿔 해마다 군사력 강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아베 정권은 군국주의화를 막기 위해 암묵적으로 정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1%’ 원칙도 깨버렸습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지난해 11월 기자간담회에서 “GDP의 1% 정도로 (방위비를) 유지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는 ‘1% 틀’이라는 것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올해 GDP 1% 수준인 55조원의 국방예산을 내년에 60조원으로 올리기로 잠정 결정했습니다. 2023년까지 70조원으로 늘린다는 계획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올해 우리 국방예산 47조원보다 훨씬 많은 금액입니다. 일본은 특히 함정, 전투기, 미사일 등 첨단 장비 도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GFP에 따르면 연안 경계 임무를 맡는 초계함급이상 함정 수(잠수함 포함)는 우리가 166척, 일본이 131척으로 우리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핵심 전투함인 ‘구축함’은 우리가 12척인데 반해 일본은 3배 규모인 37척입니다. 일본은 지난해 7월 7번째 이지스 구축함인 ‘마야’를 진수시켰는데 미국과 정보공유가 가능한 ‘공동교전능력’을 갖췄다고 합니다. 일본은 조만간 ‘이지스함 8척 체제’를 갖출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건조하는 이지스함에는 사거리가 700㎞에 이르고 탄도미사일을 잡을 수 있는 최신 함대공 미사일 ‘SM3 블록2’를 장착합니다.●한국, 전차·자주포 등 육상전력은 앞서 이를 기반으로 일본은 이지스함 8척과 항공모함형 호위함 4척 등으로 구성된 4개 ‘호위대군’(기동전단)을 2023년 완성할 계획입니다. 1개 호위대군은 항모형 호위함 1척과 이지스함 2척, 구축함 5척으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현재 세종대왕급(7600t) 이지스함 3척을 보유하고 있고 9년 뒤 6척을 보유할 계획이어서 앞으로 해상전력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잠수함은 일본이 19척, 한국이 16척으로 비슷합니다. 일본은 2023년까지 잠수함을 22척으로 늘린다고 합니다. 육상전력은 우리 군이 앞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차는 한국이 2654대, 일본은 1004대로 2.5배 규모입니다. 다만 장갑차량은 일본이 3072대, 한국은 2870대로 양국이 비슷한 수준입니다. 자주포는 우리가 2140문, 일본이 202문으로 10배, 견인포는 각각 3854문과 500문으로 7배 규모입니다. 항공 전력은 양적 측면에서 우리가 앞서지만, 일본은 최신형 장비를 빠르게 늘리고 있습니다. 전체 항공기 수는 한국이 1614대, 일본은 1572대로 비슷합니다. 전투기는 한국과 일본이 각각 406대, 297대이며 폭격기는 466대, 297대로 우리가 많고 공격용 헬리콥터는 112대, 119대로 비슷합니다. 일본은 남서 지역의 방어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2014년 4월 오키나와에 조기경보기(E2C) 부대인 ‘경계항공대’를 창설하고, 2016년 1월 F15 전투기 비행대를 증편하는 등 공군력 강화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2023년까지 최신 스텔스기인 ‘F35A’ 42대를 도입하고 신형 조기경보기, 체공형무인기, 신형 공중급유기 등을 잇따라 전력화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록히드마틴의 첨단레이더 ‘LMSSR’이 포함된 최신형 미사일 요격시스템 ‘이지스 어쇼어’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레이더 2기 도입 예산은 2조 4000억원에 이릅니다. 일본은 ‘북한 탄도미사일 방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 목적은 정보자산 확대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스템을 도입하면 한반도 전역은 물론 중국 동해안까지 일본의 감시망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일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 도입 계획도 마련했습니다.●日, 北미사일 정국 틈타 군사력 확대 꾀할 듯 아베 정권은 자위대 지휘력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에는 육해공군 자위대를 모두 지휘하는 ‘통합사령부’를 창설했습니다. 2016년 3월에는 직접적인 공격이 없어도 자국에 위협이 된다면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해 무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새 안보법을 시행했습니다. 일본은 이즈모호 같은 항모형 호위함을 항모로 개조한다는 야심도 드러냈습니다. 한일 관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초계기 위협’과 ‘독도 출격 도발’ 사건도 우연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최근의 북한 미사일 정국을 틈타 일본은 군사대국 야욕을 더욱 공개적으로 드러낼 것으로 예상됩니다. 각종 행사에서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를 드러내놓고 앞세우기도 합니다. 우리 국민과 군이 주목하고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주말N극장가]“따--따--따따따 따-따-”, “쌍투스”…영화 살린 명대사

    [주말N극장가]“따--따--따따따 따-따-”, “쌍투스”…영화 살린 명대사

    주말 극장가 이슈를 얄팍하게 살펴보는 ‘주말N극장가’ 코너다. 심도 깊은 분석보다 의식의 흐름을 타고 수다 떠는 코너에 가까우니, 딴죽 거시려면 살포시 ‘백스페이스’ 눌러주시면 감사하겠다. 영화를 살리는 것은 무엇일까. 감독일까. 배우일까. 아니다. 다 틀렸다. 바로 명대사다. 어마 무시한 명작이 아닌 이상, 고만고만한 영화는 어차피 영화관 나서면 줄거리와 인상 깊은 장면 몇 개 빼놓고 다 까먹게 마련이다. 그러나 명대사는 영화관을 나서더라도 여전히 당신의 머릿속에서 맴돈다. 이번 주 극장가는 반갑게도 ‘엑시트’, ‘사자’, ‘나랏말싸미’ 세 편의 한국 영화가 승승장구하고 있다. 거미인간도, 아프리카 사자도, 퍼런색 요정도 잠시 숨을 고르는 터에 한국 영화가 상위권에 포진했다. 그래서 세 편의 한국 영화 명대사를 골라봤다. (어차피 외화는 대사 기억하기가 어렵기에...) “내가 생각하는 명대사는 이건데?”라고 하면 할 말 없다. 타인의 취향도 존중해달라. “기X기가 또 스포 하나?” 할 수도 있겠다. (어흑, 이 정도는 좀 봐줘라...ㅠㅠ)우선 ‘엑시트’ 되겠다. 시내에 퍼진 독가스를 피해 용남(조정석 분)과 의주(윤아 분)가 도망간다는 내용이다. 칠순 가족잔치를 마친 뒤 독가스가 퍼지자 옥상으로 올라간 용남의 가족들. 구조를 바라지만 깜깜한 밤이어서 헬기가 이들을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소리를 질러봐도 헬기는 오지 않는다. 그러자 의주가 꾀를 낸다. “휴대폰 꺼내세요!”라고 외친 의주는 한 손으로 휴대전화를 가렸다 뗐다 하면서 “따라하세요!”라고 외친다. 그러면서 입으로 낸 소리. “따--따--따따따 따-따-” 바로 ‘SOS’를 뜻하는 모르스부호다. 영화 보면서 무릎을 탁 쳤던 장면이기도 하다. 잠깐 나오는 장면이지만, 나도 모르게 “따--따--따따따”를 속으로 되뇌는 자신을 보게 될 터다. 그리고 이 부호는 꼭 알아두시길 권한다. 누가 알겠나. 당신이 재수 없게 외딴 섬에 남을 수도 있잖은가.다음 영화는 ‘사자’다. 한국 영화로는 드물게 구마의식을 소재로 한다. 주인공 용후(박서준 분)가 시종일관 진지한 얼굴로 스트레이트와 훅을 날린다면, 바티칸에서 파견 나온 안신부(안성기 분)는 가볍게 잽을 날린다. 처질듯한 영화 분위기를 안 신부가 독특한 애드립으로 살려놓는다. 술을 마시면서 “안주는 다른 거 없나?”라든가, 시종일관 질문에 “다 주님의 뜻이야”라고 받아치는 대사가 눈길을 끈다. 그러나 정작 명대사는 이거다. 마귀에 들린 이의 머리를 부여잡고 외치는 바로 그 말. “쌍투스, 쌍투스, 쌍투스” 외국어임에도 쏙쏙 들어오고, 자칫 웃음까지 유발하는 이 대사. 그러나 뜻밖에 심오한 대사이니 조금 진지하게 바라보자. 라틴어로 “거룩하시도다”라는 뜻이다.마지막으로 최근 ‘핫’한 영화 ‘나랏말싸미’ 되겠다. (핫하긴 한데, 역사왜곡 논란으로 핫해서 문제지만) 영화는 세종대왕(송강호 분)이 승려 신미(박해일 분)를 만나 한글을 창제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세종대왕을 맡은 배우 송강호는 특유 억양으로 수많은 명대사를 히트시킨 이른바 명대사 제조기다. 예컨대 전작 ‘기생충’의 명대사 “아들아, 너는 계획이 있구나~”는 올해 명대사 중 명대사로 꼽힌다. 그러나 이번 영화 명대사는 신미가 거진 책임진다. 역적의 아들이어서 불가에 귀의한 인물로, 인도 글자 등에 능한 똑똑한 인물. 그러나 당시 조선은 유교의 나라였고, 불교는 탄압받는 종교였다. 역적의 아들인 데다가 승려여서 아무래도 속이 배롱나무처럼 배배꼬인 캐릭터로 나온다. 세종대왕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절을 하지 않는 신미. 세종이 “너는 왜 왕을 보고도 절을 하지 않느냐?”고 하자 “개가 어떻게 절을 합니까”라고 기세 좋게 맞받는다. 그래도 언어를 만들어야 하기에, 세종이 “난 공자를 내려놓고 갈 테니 넌 부처를 내려놓고 와라”라고 말한다. 그러자 신미가 던질 말. “아니오. 나는 부처를 타고 갈 테니 주상은 공자를 타고 오시지요.” 신미의 툭툭 던지는 말에 어이없어 하는 세종의 표정도 볼거리다. 상대방의 말을 멋지게 비트는 센스라니!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영화 ‘나랏말싸미’ 역사왜곡에 답하다

    영화 ‘나랏말싸미’ 역사왜곡에 답하다

    동아시아 여러문자와 한글/정광 지음/지식산업사/420쪽/1만 8000원나랏말싸미·맹가노니/이송원 지음/문예출판사/400쪽/1만 5000원훈민정음 창제의 실질적 주역이 세종대왕이 아닌 승려 신미였다는 내용의 영화 ‘나랏말싸미’가 역사왜곡 논란에 휘말렸다. 국어학계와 역사학계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 가운데 이 논란에 관해 설명한 신간 2권이 영화 개봉에 맞춰 출간돼 눈길을 끈다. 정광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가 쓴 ‘동아시아 여러 문자와 한글’은 2015년 저서 ‘한글의 발명’(김영사)을 내놓은 뒤 발표한 논문을 모은 책이다. 정 교수는 앞선 책에서 훈민정음이 한자의 음을 표기하는 ‘발음기호’로 창제됐고, 한글 창제에 불교계 학승들이 가장 큰 도움을 줬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렀다. 그는 이번 책에서는 한발 나아가 “세종 25년(1443년) 제정한 훈민정음 27자 모두 자음이고, 여기에 신미가 인도 산스크리트 문자에 의거해 만든 모음 11자를 추가해 한글 28자를 완성했다”고 주장한다. 정 교수는 그 근거로 훈민정음 창제 다음 해인 1444년 집현전 학자 최만리가 올린 반대 상소에 세종이 호통을 친 ‘세종실록’(권 102호) 내용을 든다. 호통칠 당시 자음에 관한 이야기만 나온다는 설명이다. 정 교수는 세종이 속리산 복천암에 있던 신미를 부른 증거로 “1459년 만든 불서인 ‘월인석보’에 훈민정음 언해본을 첨부해 간행한 것”을 들었다. 영화는 세종이 아예 자음을 만들기 전 신미를 불러 한글 창제를 전적으로 맡긴 듯 묘사했다. 신간 ‘나랏말싸미·맹가노니’는 이 부분을 설명한다. 책은 영화 각본가 이송원이 시나리오를 신별로 구분해 역사 자료를 어떤 방식으로 참고하고, 극적인 요소를 위해 어떤 부분을 부각하고 생략했는지 담았다. 이 각본가는 ‘1441년 신미의 동생 김수온이 뒤늦게 집현전 학사가 된다’는 문종대의 기록과 신미의 동생 김수온이 쓴 ‘복천사기’를 근거로 세종과 신미가 1443년 이전에 만났다고 봤다. 이 각본가는 이와 관련, “1443년 임금이 언문 28자를 만들었다는 실록기사가 난데없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문자 창제에 관한 기록이 전무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런 역사의 공백이 드라마를 짜는 이에게 부여하는 창작의 자유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면서 현 논란을 예상이라도 한 듯 책에 “위대한 성군 세종이 훈민정음 만든 사건을 터무니없는 판타지로 내놨을 때 날아들 역풍과 빈축을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고 썼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19회 여주사랑 걷기대행진 80km 대장정

    19회 여주사랑 걷기대행진 80km 대장정

    ‘제19회 여주사랑 걷기대행진’이 29일 여주시청에서 출정식을 갖고 코스 완주를 향한 행군을 시작했다. 여주시체육회 주최·주관으로 19회째를 맞이한 ‘여주사랑 걷기대행진’은 여주지역의 청소년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걷기를 통해 여주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대행진에 참여한 인원은 50여명이다. 몸풀기 체조를 마친 단원들은 시청을 시작으로 오는 8월 1일까지 걷기를 통해 여주지역 주요 유적지와 명소를 탐방하며 우리고장에 대한 자긍심을 기르고 더불어 극기 정신을 함양할 것으로 기대 된다. 참가자들은 8월 1일 세종대왕릉 역사문화관에서 해단식을 갖고 일정을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이항진 시장은 “젊음과 열정의 계절에 뜨거운 열의와 애향심을 갖고 고된 여정을 겪은 후에 맛보는 협동심과 동료애, 극기와 성취감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이자 경험일 것”이라며 “모두가 무사히 완주해 줄 것을 기원한다”고 격려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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