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조직 대수술 시급
중국산 마늘의 미수입분 처분을 둘러싸고 지난 4월 한·중 마늘분쟁이 재연됐을 때의 일이다.통상교섭을 담당하고 있는 외교통상부는 뒷짐만 지고 있었고,농림부와 산업자원부는 첨예하게 대립했다.
결국 마늘 수입비용을 농림부와 산자부,정통부가 3분의 1씩 분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중국과의 마늘협상에서 보여준 우리 정부의 협상자세는 국민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기본도 안 갖춰 실수 연발=한·중 마늘협상은 우리 통상교섭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낸 사례였다.발단부터 협상과정까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저질러진 실수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지난해 7월 합의때 합의문을 국제 통용어인 영어로 작성하지 않고 각각 자국어로 하는 바람에 ‘관세할당’의 해석을 놓고 논란의 소지를 남겼으며,민간차원에서 해야 할 3년간의 중국산 마늘수입을 정부가 직접 보장하는 ‘친절’까지베풀었다.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를 철회할 경우에 대비한 연계규정도 넣지 않아 앞으로 우리나라가 세이프가드 조치를 풀더라도 무조건 중국산 마늘을 약속한 양만큼 사줘야 할 형편이다.
중국산 마늘에 대한 우리 정부의 성급한 긴급수입제한 조치로 중국수출에 타격을 입었던 휴대폰 제조업체의 관계자는 “서로 책임을 전가하다 의사결정이 지연되고,내줄 것은 다 내주는 정부의 협상자세를 보면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통상조직이 비효율적이고,전문성이 부족한 탓이다.
◆눈치 보기에 현안은 뒷전=현재의 통상조직은 부처간 갈등을 키우기에 딱 알맞다.
그때문에 요즘에는 일단 통상문제가 불거지면 관련부처 담당자들은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린다.조금이라도 부처의 입장을 대변했다가는 ‘부처간 갈등’이나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는 것이 두려워서다.통상현안은 뒷전이다.
눈치보기에는 장관이나 사무관이나 구분이 없다.
장재식(張在植) 산자부 장관은 지난 24일부터 50여명의 통상사절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미 상무부 장관 등 관계인사들을 만나 통상현안들에 대한 원만한 해결을 도모할 계획이었다.그러나 민노총의 파업과 가뭄이 겹치면서 ‘한가로운 외유’로 비춰질까봐 미국 출장을 10월로연기했다.
◆전문성 확보 시급=정부 내에 통상전문가가 없는 것도 피해를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기구는 국가간 분쟁해결을 해당국의 정부 관계자가 담당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복잡한 통상법에 따라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국가가 있을 것에 대비,민간인 변호사(국적 불문)가 대리할 수있도록 하고 있다.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WTO 제소·피제소사건 14건을 모두 유럽이나 미국의 법률회사에 의뢰했다.
한 통상 전문가는 “미국·유럽연합과의 주세분쟁에서 호주인 변호사가 우리 정부를 대리했다”면서 “서양 사람이WTO 패널들 앞에서 위스키는 소주와 달라 매운 한국음식과함께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소주 값을 올리라는 미국 등의 요구에 밀릴 수밖에 없었던것도 결국 우리의 입장을 정확하게 전달하고,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없었던 탓이다.
아웃소싱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차원에서 통상전문가를 키우고 국제기구 진출을 지원해야 할 필요성이 높은 것이다.우리나라는 141개 WTO회원국 중 11번째로 많은 분담금을내고 있지만,550명을 수용하는 WTO사무국에 한국출신은 불과 2명뿐이다.
함혜리기자 lo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