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세월
    2026-02-16
    검색기록 지우기
  • 소총
    2026-02-16
    검색기록 지우기
  • 산성
    2026-02-16
    검색기록 지우기
  • 비타민
    2026-02-16
    검색기록 지우기
  • 약사
    2026-02-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8,038
  • [이창기의 예술동행] 예술에는 정년이 없다/서울문화재단 대표

    [이창기의 예술동행] 예술에는 정년이 없다/서울문화재단 대표

    때 이른 초겨울 추위를 가르며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공연장을 찾았다. 전축과 첼로, 그랜드피아노가 무심하게 놓인 무대 위로 배우 박정자가 덤덤히 등장했다. ‘브람스라 부르자’는 클래식 모놀로그 작품이다. 그윽하지만 강렬한 눈빛으로 객석을 응시하며 그는 대사의 첫 음절을 떼었고,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가 순식간에 무대를 장악하며 소름을 돋게 했다. 성실하고 올곧게 걸어온 연극 인생 60년을 보이기라도 하듯 정확한 발음과 발성, 관록 넘치는 연기는 극의 몰입을 더했다. 최근 원로 예술가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지난 8월 배우 손숙의 데뷔 60년 기념작인 창작 연극 ‘토카타’가 무대에 올랐다. 10월에는 구순 나이가 무색할 만큼 매섭고 에너지 넘치는 김우옥 연출의 한층 더 실험성 깊어진 ‘겹괴기담’이 성황리에 끝났다. 합산 나이 315세로 표현되는 배우 신구, 박근형, 박정자는 ‘고도를 기다리며’로 다가오는 12월부터 두 달간 매일 무대에 서서 연극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다. 한 분야에서 60년 이상의 시간을 지속한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을 여섯 번이나 갈아치울 만큼의 세월 동안 온갖 실패와 성공, 좌절과 기쁨을 수없이 반복하며 예술적 정체성을 견고히 해 나갔을 것이다. 뚜벅뚜벅 걸어온 그들의 예술 여정 속에서 쌓여 온 작품을 경험하는 후배들은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 원로 예술가의 경험과 지혜는 다음 세대에 전달돼 예술의 연속성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세대를 아울러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예술계를 위해서는 신진, 중견 예술가뿐만 아니라 원로 예술가의 창작활동도 계속될 수 있는 울타리가 필요하다. 나이에 의해 활동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자신의 창작 의지에 따라 예술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원로 예술가에게 활동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과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지난 2년간 서울에서 예술 활동을 계획한 원로 예술가의 지원 신청이 연간 63%나 증가할 만큼 예술계에서 원로 예술가 지원에 대한 현장 수요는 분명했다. 전국적으로 60대 이상의 예술가는 약 18%로 3만여명(예술활동 증명 기준)에 이른다. 초고령화 시대를 앞둔 한국 사회의 고령화 시계를 감안한다면 원로 예술가의 비율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술에는 정년이 없다. 평생에 걸쳐 예술은 계속되고 발전해 나간다. 예술가에게 예술 활동은 삶의 반려로서 끊임없는 탐구와 창조의 과정을 통해 미래 예술가들에게 이어질 무한한 영감과 지혜를 제공한다. 오랜 세월 자신의 무대를 통해 쌓아 온 예술적 기반은 예술가로서의 철학과 예술성을 형성하고, 깊고 폭넓은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예술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정수를 맛보게 한다. 구순을 앞둔 배우 이순재가 지난해 세계 최고령 리어왕이라는 기록을 세운 데 이어 연출가로 도전하던 중 한 방송 인터뷰에서 “예술에는 완성이란 없다”고 말했다. 정년퇴직 없는 예술가의 삶을 바로 보여 주는 ‘여전히 현역’과 같은 그의 모습에서 끝없는 도전이란 바로 이런 것임을 본다.
  • [단독] 사형 선고엔 신중한 태도… 증거 중심 엄격한 의견 내

    [단독] 사형 선고엔 신중한 태도… 증거 중심 엄격한 의견 내

    원칙주의자로 불리는 조희대(66·사법연수원 13기) 대법원장 후보자는 사형제에 신중한 입장을, 과거사 재심 사건 등에 증거 중심의 엄격한 의견을 보인 것으로 분석됐다. 조 후보자가 대법관 시절 전원합의체(전합)에서 낸 의견을 보면 법조문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적용하기보다는 문헌에 충실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월호 구조조치 의무 대상 의견 달라 13일 서울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조 후보자는 대법관 시절인 2016년 부대 내 괴롭힘을 당하다 동료 등 5명을 살해하고 7명에게 중상을 입힌 ‘고성 군부대 총기 난사’ 사건에서 범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양형이 부당하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당시 조 후보자는 “피고인 본성이 잔인하거나 포악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범행 동기에 참작할 사정이 명백히 없다고 볼 수 없다”면서 “범행 결과가 매우 중하다고 해서 사회적 파장과 형벌의 일반예방적 목적 등을 내세워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게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관련법상 구조 조치 의무 규정 대상에 대해서도 조 후보자는 다수와 다른 의견을 냈다. 당시 쟁점은 수난구호법상 ‘신속 구조 조치를 해야 하는 선박의 선장과 승무원’의 적용 범위에 세월호 승무원이 해당되느냐였다. 전합은 다수의견으로 ‘신속 구조’라는 입법 취지 등을 고려했을 때 포함된다고 결론 냈지만, 조 후보자는 “조난된 선박 내부 사람들 상호 간의 구조 지원 내지 구조 조치 의무를 규정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당시 전합은 퇴선 명령 등 필요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아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보고 세월호 선장에게 무기징역 등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여순사건 재심 개시에 반대 의견 조 후보자는 또 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인 ‘여순사건’ 재심 개시와 관련해 2019년 “수사 기관의 범죄 사실에 대한 확정판결이 있거나 이를 대신할 만한 정도의 증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재심 개시를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 재심 개시를 결정한 원심은 자유심증주의(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판단에 맡기는 원칙)의 한계를 현저하게 벗어나 위법하다는 취지다. 무죄가 선고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과 관련해서는 유죄 취지의 소수의견을 냈다. 당시 재판에서는 항공보안법이 ‘항로’의 범주를 따로 정의하지 않아 활주로에서 비행기를 돌리게 한 혐의를 어떻게 판단할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조 후보자는 “승객 탑승 뒤 항공기의 모든 문이 닫힌 때부터 내리기 위해 문을 열 때까지 지상에서 항공기의 이동 경로는 모두 항로로 볼 수 있다”며 조 전 부사장이 임의로 항로를 변경하게 한 것은 유죄라고 봤다.
  • 원칙주의자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사형에 신중, ‘좌우’ 없는 사법 소신

    원칙주의자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사형에 신중, ‘좌우’ 없는 사법 소신

    ‘원칙주의자’로 불리는 조희대(66·사법연수원 13기) 대법원장 후보자는 ‘사형제’에 신중한 입장을, 과거사 재심 사건 등에는 증거 중심의 엄격한 의견을 보인 것으로 분석됐다. 조 후보자가 대법관 시절 전원합의체(전합)에서 낸 의견을 보면 법조문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적용하기보다는 문헌에 충실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3일 서울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조 후보자는 대법관 시절인 2016년 부대 내 괴롭힘을 당하다 동료 등 5명을 살해하고 7명에게 중상을 입힌 ‘고성 군부대 총기난사’ 사건에서 범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양형이 부당하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당시 조 후보자는 “피고인 본성이 잔인하거나 포악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범행 동기에 참작할 사정이 명백히 없다고 볼 수 없다”면서 “범행 결과가 매우 중하다고 해 사회적 파장과 형벌의 일반예방적 목적 등을 내세워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게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관련법상 구조조치 의무 규정 대상에 대해서도 조 후보자는 다수와 다른 의견을 냈다. 당시 쟁점은 수난구호법상 ‘신속 구조 조치를 해야하는 선박의 선장과 승무원’의 적용 범위에 대해 세월호 승무원이 해당되느냐였다. 전합은 다수 의견으로 ‘신속 구조’라는 입법취지 등을 고려했을 때 포함된다고 결론냈지만, 조 후보자는 “조난된 선박 내부 사람들 상호 간의 구조지원 내지 구조조치의무를 규정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당시 전합은 퇴선명령 등 필요 구호조치를 하지 않아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보고 세월호 선장에게 무기징역 등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조 후보자는 또 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인 ‘여순사건’ 재심 개시와 관련해 2019년 “수사기관의 범죄 사실에 대한 확정판결이 있거나 이를 대신할 만한 정도의 증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취지로 재심 개시를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 재심 개시를 결정한 원심은 자유심증주의(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판단에 맡기는 원칙)의 한계를 현저하게 벗어나 위법하다는 취지이다. 무죄가 선고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과 관련해서는 유죄 취지의 소수 의견을 냈다. 당시 재판에선 항공보안법이 ‘항로’의 범주를 따로 정의하지 않아 활주로에서 비행기를 돌리게 한 혐의를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한 의견이 갈렸다. 조 후보자는 “승객 탑승 뒤 항공기의 모든 문이 닫힌 때부터 내리기 위해 문을 열 때까지 지상에서 항공기의 이동 경로는 모두 ‘항로’로 볼 수 있다”며 조 전 부사장이 임의로 항로를 변경케 한 것은 유죄라고 봤다.
  • 33년 전 그 손으로 다시 짓다… 건축가와 건축물의 인연을 짓다 [건축 오디세이]

    33년 전 그 손으로 다시 짓다… 건축가와 건축물의 인연을 짓다 [건축 오디세이]

    1989년 노출 콘크리트·벽돌 활용기하학적 스퀘어 외관으로 설계옥상엔 ‘ㄷ’ 자형 주택·쌈지 마당새 건물주, 33년前 건축가 수소문‘창’ 살린 리모델링, 새롭게 탄생“혼을 불어넣은 작업, 다시 찾아와”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국악고등학교 사거리에서 한 블록 안쪽으로 들어온 골목, 비슷비슷한 외관의 4~5층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른바 ‘근생(근린생활시설)’으로 분류되어 지어진 건물들이다. 건물들의 나이는 엇비슷해 보인다. 이 가운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레트로 스타일의 건물이 있다. 흰색 격자무늬 프레임에 붉은 벽돌과 유리창으로 외관을 마무리한 것이 범상치 않다. 일반적인 ‘강남 근생건물 리모델링’ 케이스겠거니 할 테지만 33년 전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가 리모델링을 맡아서 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 세대라는 시간을 넘어선 건축가와 건물의 ‘인연’이 만들어 낸 ‘헤즈 빌딩’의 이야기다.디자인 회사 헤즈(HEAZ)는 강남구 논현로12길에 있는 ‘락 빌딩’을 매입해 리모델링한 뒤 본사의 둥지를 틀었다. 건물은 서울올림픽 이듬해인 1989년 지어졌고 2023년 리모델링을 마쳤다. 설계와 리모델링을 한 건축가는 백문기(75) 더스튜디오 공동대표다. 42세 때의 그가 설계하고 75세의 그가 리모델링을 했으니 한 세대의 시간 차가 존재한다. 잊힐 법도 한 시간인 데다 크기나 규모와 관계없이 건축물을 짓고 나면 건축가의 존재는 사라져 버리는 대한민국의 풍토에서 정말 보기 드문 일인지라 백 대표는 얼마 전 동료 건축가들을 초대해 ‘Before(1989) and After(2023)’라는 제목으로 작은 차담회 겸 오픈 하우스 행사를 갖기도 했다. “42세 때 설계한 건축물을 내가 33년 뒤에 리모델링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는 백 대표는 “리모델링 의뢰를 받고는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가 ‘인연’이었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건축가에게 맡긴 작업 3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잘나가는 대형 설계사무소에 다니던 백 대표는 40대 초반인 1987년 독립해 ‘인토(人土)’라는 이름의 설계사무소를 열고 강남 일대에 ‘ATTIC 시리즈’를 짓고 있었다. 주거와 상업 시설을 겸하는 근린생활시설 건물이 강남의 골목마다 생겨나던 시절, 당시 유행하던 노출 콘크리트와 벽돌을 이용해 기하학적인 스퀘어 외관을 하고 옥상 공간의 주거 활용도를 높인 그의 디자인은 꽤 반응이 좋았다. “어느 날 건축주 한 분이 찾아오셔서 서초동에 있는 ‘ATTIC1’을 봤다면서 의뢰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건축가에게 맡길 테니 다 짓고 나서 열쇠만 넘겨 달라 하고 갔어요. 설계비는 적었지만 한창 의욕적으로 일할 때이고, 내 마음대로 하라고 하니 더욱 책임감이 생겨서 열심히 공간을 쪼개 가며 연구해서 완성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주소로 강남구 포이동에 있던 부지는 이면도로에 저밀도 주거단지로 조성돼 조용한 편이었다. 대지 면적은 80평 정도이고 건축 면적은 30평 정도. 백 대표는 지하층의 일부에 성큰(sunken·지하 공간을 만들어 자연광을 유도하는 구조)을 두고 옥상에는 1.5×1.5m 크기의 안마당을 가진 15평 규모 작은 주택이 있는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건물을 설계했다. “평당 공사비는 80만원 선으로 당시 시세로도 부족한 편이어서 공정과 공사비를 줄이려 머리를 짜내고, 설계하면서도 참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질서가 있는 가구식 구조에 벽을 끼워 넣고 구조 간의 사이를 벽으로 막으며 600㎜ 공간을 두어 H빔으로 창틀을 수직으로 세운 디자인을 하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내 집을 짓는 심정으로 무엇이든 꼭 맞는 치수로 설계해서 용적률을 최대한 살리고, 재료도 최대한 아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철골 창호, 콘크리트와 테라코타, 성큰 가든, 마당이 있는 옥탑방으로 요약되는 원 건물은 조형성과 경제성을 고려한 결과였다. 현관홀이 좀 좁은 듯해서 시각적으로 트이게 하기 위해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일직선의 수직 계단으로 만들었다. 반층마다 생기는 공간에는 화장실을 두고, 마지막 층에는 외부 마당을 통해 주택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어 주거의 독립성을 확보했다. 옥상의 주택을 ‘ㄷ’ 자형 평면으로 설계하니 작은 쌈지 마당이 생겼다. 집은 작아도 마당에서 하늘이 그대로 보여 공간감이 있다. 마당의 배수구를 막으면 수(水) 공간이 되어 여름에는 물을 담아 수증기를 만들고 겨울에는 마당에서 눈 내리는 것도 볼 수 있게 했다. 세월이 흘렀다. 한 세대가 지나니 건물은 낡았고 H빔은 녹이 슬어 매번 페인트 칠을 새로 하기도 버거워질 무렵이었다. 2003년 회사를 설립하고 이곳저곳으로 회사를 이전하면서 사옥을 마련하려 강남 구석구석을 뒤지던 헤즈의 배명섭 대표는 이 건물 사진을 보고 간단치 않은 아우라에 눈길이 갔다. 배 대표는 “이 건물을 보자마자 위치나 컨디션과는 상관없이 이 건물과 함께하는 회사의 긍정적인 모습이 보였다”면서 “하나의 건물에도 인생과 같은 시간의 척도가 적용되는 거라면 이 건물은 한 세대를 살아 충분히 나이가 들었음에도 앞으로 뭔가 새롭게 보여 주고 싶은 게 있는 것처럼 살아 있는 에너지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애정을 가지고 관리해 온 건물주를 설득해 건물 매입을 결정했다. 그리고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온 이 건물을 디자인한 사람은 누구일까, 혹시 지금도 현업에 있다면 조언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건축가를 찾았다. 원 건물주의 소개로 어렵지 않게 건축가와 새 건물주가 연결됐다. 백 대표는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건물을 설계하고 나면 끝나는 게 아니라 인연이 이어져서 언젠가 나를 찾아온다, 그러니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후배 건축가들에게 보여 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건물을 처음 지을 때 건물주가 모든 것을 맡겼던 것처럼 리모델링도 디자인 감각이 있는 젊은 새 건물주 덕분에 순조롭게 진행됐다.백 대표가 리모델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창’이었다. 기존에는 간 사이를 좌우의 세로형 창과 벽으로 막았었지만 리모델링을 하면서는 개방감 있게 유리창으로 개구부를 냈고 벽돌면으로 마감했다. 격자 틀마다 위에는 큰 통창을 내고 아래에 작은 창 2개를 냈다. 백 대표는 “위의 창은 바라보는 것이고, 아래의 창은 환기하면서 숨을 쉬는 창”이라고 설명했다. 위 창과 아래 창 사이에는 검은색 오석 통돌을 가로로 놓아 안정감을 취했고 나머지 외벽과 내부를 붉은색 벽돌로 마무리해 레트로하고 안정감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기존 노출 콘크리트의 각진 프레임은 새 건물주의 희망에 따라 백색으로 처리했다. 옥상 주택에 있던 작은 마당을 없앤 뒤 마루를 깔고 유리 천장을 설치해 아늑한 느낌이 나는 회사 대표의 집무실로 만들었다. 대신 옥상에 시멘트 블록으로 정사각형의 내부 담을 쌓아 산책로와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옥상에서는 구룡산이 아름답게 조망된다. 현관 오른쪽으로 25평 정도의 점포가 있던 공간은 직원 휴게실 겸 전시실로 만들어 직원들이 손님을 만나 상담하거나 휴식할 때 이용하도록 했다. 붉은 벽돌을 실외에서 실내까지 연속해 사용함으로써 지하에서부터 지상, 그리고 사무실 내부까지의 여정이 만들어졌다. 백 대표의 오랜 관심사인 ‘골목길을 건물 내부에 들여놓기’가 현재의 건축에서 더욱 완성된 듯하다.●리모델링으로 골목에 생기 불어넣어 엄격한 구조미의 격자 틀은 이 건축물이 지속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백색의 격자형 프레임, 격자 틀 안의 붉은 벽돌과 유리창들이 만들어 내는 파사드가 골목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골목 안에서 노년을 맞았던 ‘락 빌딩’은 오래전 이 건물을 태어나게 했던 노련한 건축가의 손에 의해 젊고 감각적인 디자인 회사의 미래 비전을 담은 ‘헤즈 빌딩’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생명이 없는 것들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에는 영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영혼은 시간이 갈수록 드러나기도 하고 어느 때인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디자인의 우월을 떠나서 33년 전 단순히 일로서 처리한 것이 아니라 혼을 불어넣어 작업했던 것이 영혼이 되어 나를 찾은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백문기 건축가는 서울 정동제일감리교회(1978), 원주 만종감리교회(1995), 경기 고양의 원당성당(2005), 대전 이응노미술관(2007) 등을 설계했으며 정림건축 수석부사장(1998~2005)과 디자인 담당 사장(2007~2008), 공간 스페이스그룹 사장(2008~2011)을 지냈다. 승효상, 조성룡, 이일훈 등과 함께 건축가 그룹 4·3 동인이기도 한 그는 종로구의 공공 건축가로 활동하며 건축을 통한 세대 간의 원활한 소통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 검사 실명 언급한 민주 “김건희 수사 편파”…檢 “강도 높은 수사했다”

    검사 실명 언급한 민주 “김건희 수사 편파”…檢 “강도 높은 수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12일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 연루 의혹이 불거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의 실명을 언급하며 “김건희 특검을 통해 편파·봐주기 수사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노골적인 봐주기 수사로 김건희 여사를 대한민국의 치외법권으로 만든 주역이 ‘친윤 사단’ 김영철 검사”라며 “김영철 검사가 이끌었던 반부패수사2부는 그동안 검찰인지 변호인인지 헷갈릴 정도로 김건희 여사에 대한 ‘무죄 릴레이’를 펼쳐왔다”고 밝혔다. 이어 “야당 대표에 대해선 400여 차례에 달하는 무자비한 압수수색과 수차례 소환조사로 일관했던 검찰이 김건희 여사에 대해선 소환조사, 압수수색, 강제수사 한 번 한 적이 없다”며 “지난 3월 코바나콘텐츠 ‘대기업 협찬’ 의혹에 대한 무혐의 처분을 시작으로 삼성전자의 아크로비스타 뇌물성 전세권 설정 의혹, 도이치파이낸셜 주식 저가 매수(뇌물수수) 의혹도 모조리 무혐의 처분했다”고 말했다. 특히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경우 “2021년 12월부터 주범인 권오수 회장의 재판이 시작되고 김건희 여사의 계좌가 주가조작에 활용됐다는 법원 판결까지 나왔음에도 2년 동안 김건희 여사에 대한 수사는 진행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무죄 제조기로서 임무를 마친 대가일까. 반부패수사2부에 있던 김영철 부장검사는 최근 대검 반부패1과장으로 영전했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김영철 검사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박영수 특검단 소속이었다. 2018년 삼성바이오 수사 때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김영철 검사의 참여를 강하게 요청했을 정도로 손꼽히는 ‘친윤 검사’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교롭게도 김영철 검사는 2011년 윤석열(당시 대검중앙수사1과장) 대통령과 함께 대검중앙수사부에 근무한 이후 ‘귀족 검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고 부연했다. 대책위는 끝으로 “앞으로도 대통령 가족 앞에서만 약해지는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국민께 낱낱이 드러내겠다”며 “정권의 ‘호위무사’ 노릇을 하며 권한을 남용해 온 검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모두 남기겠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전날에도 김 여사 일가가 연루된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 실명을 언급하며 대통령 일가 봐주기 수사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김 여사와 관련한 사건들의 경우 적법한 절차에 따른 강도 높은 수사가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2020년 4월 고발장 접수 후 총 6회·50여 곳에 대한 압수수색, 5회에 걸친 거래소 심리분석, 약 150명에 이르는 관련자 조사 등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해 6명을 구속하는 등 총 16명을 기소했다”면서 “재판 진행 상황 등을 참고해 추가 수사를 면밀히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코바나·도이치파이낸셜 사건은 협찬사 사무실 압수수색, 기업 관계자 조사 및 회사자료 분석 등 통상 절차에 따라 수사한 결과, 협찬 및 주식 매수과정의 대가관계나 특혜가 인정되기 어려워 혐의없음 처분했다”며 “이에 대해 고발인 측의 항고 등 어떤 이의제기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김 부장검사를 향한 비판에는 “2011년 저축은행 사건 당시 파이시티 관련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최시중·박형준 등에 대한 수사를 비롯해 세월호, 국정농단, 삼성 이재용 회장, 기무사 계엄령, 삼성 바이오 사건 등을 담당하는 등 진영과 상관없이 묵묵히 맡은 바 직무를 다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 비틀스 첫 영국 싱글 1위 차지한 뒤 60년 세월을 건너 1위

    비틀스 첫 영국 싱글 1위 차지한 뒤 60년 세월을 건너 1위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비틀스가 지난 2일(현지시간) 발표한 마지막 노래 ‘나우 앤드 덴’이 영국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다. 1963년 ‘프롬 미 투 유’로 처음 1위를 차지한 뒤 60년 만의 일이라 영국 역사상 가장 긴 시간을 뛰어넘어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뮤지션으로 기록되게 됐다. 영국의 집계기관인 오피셜 차트 컴퍼니에 따르면 영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팔린 싱글 앨범이란 기록도 남긴다. ‘나우 앤드 덴’은 존 레넌이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써놓은 곡으로 지난해 완성됐다. 폴 매카트니는 “정신이 혼미하다. 깜놀했다. 아울러 내겐 매우 감격적인 순간이다. 너무 좋아!”라고 반응했다. 비틀스가 이전에 마지막으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던 것은 1969년 발표한 ‘발라드 오브 존 앤드 요코’였으니 이 때를 기준으로 하면 54년 만이다. 이번에 발표한 노래로 6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것은 케이트 부시가 ‘Wuthering Heights’(1978)로 1위를 차지한 뒤 Running Up That Hill’(2022)로 44년의 세월을 건넌 것을 앞지르게 됐다. 아울러 매카트니가 82세, 링고 스타가 83세여서 영국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최고령 밴드로 기록된다. 아울러 두 사람은 싱글 1위를 기록한 고령 뮤지션 두 번째와 세 번째를 차지하게 되는데 최고령 뮤지션의 영예는 참전용사 톰 무어 전 대위로 지난 2020년 마이클 볼과 함께 부른 커버곡 ‘You‘ll Never Walk Alone’이 싱글 1위를 차지했다. ‘나우 앤드 덴’은 지난 2일 발표되자마자 10시간 판매고만으로 42위로 진입해 일주일 만에 41계단을 뛰어올랐다. 비틀스 멤버 4명이 모두 참여해 발표한 노래로는 18번째 싱글 1위 곡이다. 영국 뮤지션 최다인데, 미국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21곡으로 가장 많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영국 차트에 집계되는 실물과 스트리밍을 통틀어 7만 8200장을 기록, 그 중 실물 앨범 판매 3만 8000장을 기록, 2014년 엑스 팩터 우승자 벤 해이나우의 ‘Something I Need’가 4만 7000장을 팔아치운 이후 9년 만에 일주일 최다 실물 판매량으로 근접한 기록을 남겼다.
  • “애인이 산낙지 먹고 질식사”…남자는 보험금 챙기고 연락 끊었다[전국부 사건창고]

    “애인이 산낙지 먹고 질식사”…남자는 보험금 챙기고 연락 끊었다[전국부 사건창고]

    男 “목에 통낙지 걸려 손으로 빼냈지만”경찰 ‘사고사’ 처리유족 시신 화장, ‘직접’ 증거 사라져 ‘캄보디아 만삭 아내’·‘여수 금오도 선착장 아내’ 살해 혐의를 받던 남편들이 혐의를 벗고 각각 95억원과 12억원의 보험료를 타는 재판이 잇따른다. 교도소와 돈더미 사이 담을 걷다 거금을 받는 일이 잦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10여년 전 이른바 ‘산낙지 살인사건’도 마찬가지다. 세월이 지나도 보험살인 의심 사건은 끊이지 않고, 진실규명 능력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11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1~3심 판결문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사건은 김모(당시 31세)씨와 윤모(당시 22세)씨가 1년간 연인관계로 지내다 헤어진 뒤 다시 만난지 두 달도 안 된 2010년 4월에 발생했다. 김씨는 4월 19일 오전 4시 20분쯤 묵고 있던 모텔 프런트에 객실 전화로 “여자친구가 낙지를 먹고 숨을 쉬지 않는다”고 다급히 전하면서 119에 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모텔 종업원 A씨는 119에 신고한 뒤 1층으로 내려온 김씨와 함께 7층 객실로 올라갔다. 윤씨는 객실 출입구 쪽에 쓰러져 있었고 2m 정도 떨어진 객실 안쪽에는 술잔, 잘려진 낙지가 담긴 일회용 그릇, 통낙지 한 마리가 들어 있는 검은 비닐봉지, 작은 수건이 있었다. 쓰러진 윤씨 옆에는 큰 수건과 함께 통낙지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A씨는 김씨에게 “근처에 병원이 있으니 옮기자”고 했고, 김씨는 윤씨를 둘러업고 맨발로 계단을 내려가 병원 쪽으로 뛰었다. 신고한 지 10분 만에 119구조대원을 만나 윤씨를 병원으로 후송했다. 오전 5시가 좀 넘어 윤씨의 여동생과 자기 형에게 “윤씨의 목에 낙지가 걸려 숨을 못 쉰다”라고 연달아 알렸다. 윤씨는 자가호흡을 하지 못한 채 병원 치료를 받다 사고 발생 16일 만인 5월 5일 질식사로 사망했다. 딸 이름 보험 2억 드러나자 재수사 요청사망 2년 만에 ‘남자 친구’ 구속 김씨와 윤씨는 사고 하루 전인 18일 만나 영종도를 다녀오고 영화를 본 뒤 이 모텔을 예약하고 오후 11시 20분부터 인근 주점에서 술을 마셨다. 둘은 ‘지는 사람이 술 먹는 게임’을 했다. 윤씨는 만취했다. 이튿날까지 술을 계속하다 오전 3시쯤 편의점에서 추가로 소주 2병·맥주 1병과 횟집에서 낙지 4마리를 사 모텔로 함께 들어갔다. 2마리는 토막을 쳤고, 2마리는 산 채로 바닷물이 담긴 비닐봉지에 넣었다. 김씨는 윤씨의 가족 등에게 “윤씨가 살아 있는 통낙지를 먹다 목에 걸려 내가 손가락으로 빼냈으나 숨을 못 쉬어 병원으로 후송했다”고 말했다. 사망 당일 윤씨의 시신을 검안한 검안의는 ‘변사자(윤씨)의 기도가 약 10분가량 막혀 숨을 쉬지 못하면서 뇌에 산소 공급이 안 돼 사망했다. 타살 점이 없어 사체를 유족에게 인도함’이란 의견을 적었다. 경찰은 사고사로 종결 처리했다. 윤씨 가족은 경찰 수사와 김씨의 ‘산낙지 사고’ 주장을 믿고 딸의 시신을 부검하지 않고 화장했다.묻히는 듯했던 사건은 김씨가 윤씨 명의로 든 보험금 2억원을 수령한 사실이 드러나고 연락이 끊기자 윤씨 가족이 “딸이 김씨에게 살해된 것 같다”고 사망 5개월 만에 재수사를 요구해 수면 위로 떠올랐다. 1심 무기징역↔2심·대법원 ‘무죄’ 검경 조사결과 윤씨 명의의 보험은 사망 한 달 전쯤 보험설계사인 김씨의 고모를 통해 가입했다. 보험금 수령자는 법정상속인에서 사망 보름 전쯤 김씨로 바뀌어 있었다. 김씨는 윤씨에게 “암보험을 들어주겠다. 우선 혼인신고라도 하자”고 했고, 윤씨는 못 이겨 “보험만 들어달라”고 말했다. 김씨는 고모에게 “센 사망보험을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고모는 동료를 통해 매달 13만원을 내는 윤씨 명의의 보험을 가입해줬다. 윤씨는 김씨가 건넨 가입서류에 자필 서명했다. 그의 가족은 전혀 알 수 없었다. 김씨는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수익자 변경은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다’고 윤씨 스스로 원했다”고 진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씨는 윤씨가 병원에 옮겨진지 이틀 만에 통장을 개설한 뒤 보험료를 2차례 납부했고, 사망 1주일 후쯤 보험금을 청구했다. 같은해 7월 23일 이 계좌로 보험금 2억원을 송금받은 김씨는 빚을 갚고 전세금을 지급한 뒤 또다른 애인 B(당시 26세)씨에게 승용차를 선물하며 대부분 탕진했다. 김씨는 2008년 3월부터 여성 C(당시 27세)씨와 연인관계로 지내면서 이듬해 2월 윤씨와 만나기 시작했다. 윤씨와 교제한지 1년 후인 2010년 2월부터 B씨를 새로 사귀었다. 이즈음 김씨와 윤씨는 헤어졌지만 얼마 안 가 예전 관계로 회복됐다. 김씨는 B씨 등 애인을 사귀면서 “돈이 나올 곳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윤씨가 사경을 헤매는데도 B씨와 만나고 그의 가족과 등산도 했다고 판결문은 적었다. 인천지검 형사4부는 2012년 4월 김씨를 살인 및 보험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윤씨가 사망한지 2년 만이다. 검찰은 산낙지가 아니라 김씨가 윤씨의 입과 코를 수건 등으로 막아 질식사시켰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살인 및 보험 사기 혐의 모두 무죄가 선고됐고 그대로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남친이 코·입 막아”↔“저항 흔적 없다”“낙지 커 해물탕용”↔“머리 45㎜, 입에 가능”프런트 연락 “시간끌기”↔“구호조치” 재판은 ‘중범죄는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는 전제가 같았지만 ‘산낙지 질식사’와 ‘김씨의 살해’에 대한 증거능력, 즉 얼마나 명확히 진상규명할 수 있느냐를 놓고 치열했다. 1심을 맡은 인천지법은 2012년 10월 “산낙지가 목에 걸렸다면 몸부림 쳐 현장이 흐트러졌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숨진 윤씨의 표정도 평온했다”며 “이는 김씨가 만취한 윤씨를 압도적인 힘으로 제압했기 때문이고, 흔적이 남지 않은 것은 수건 등 부드러운 천으로 코와 입을 막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반면 2심을 진행한 서울고법은 이듬해 4월 “여러 정황을 보면 윤씨의 의식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증명되지 않는 한 김씨의 살해가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갑자기 질식됐다고 반드시 강한 몸부림이 있을 수 없고, 의식을 잃으면 표정이 펴져 평온하게 보일 수 있다”고 했다. 통낙지를 먹을 수 있느냐에 대해 1심은 “김씨가 구입한 통낙지는 해물탕용으로 쓰는 큰 것이어서 통째로 먹을 수 없는 크기이고, 두 마리 다 먹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며 “게다가 윤씨는 치아우식증으로 양 어금니의 저작기능이 현저히 떨어져 평소에도 잘 안 먹던 낙지를 먹었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김씨가 손가락으로 윤씨 입에서 낙지를 빼냈다고 주장하지만 법의학자의 증언처럼 음식물을 밀어 내리는 연하작용을 감안하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2심은 “당시 낙지의 머리는 너비가 43.6~48.3㎜로 무심코 입에 넣으면 머리와 다리 모두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낙지 빨판이 입안에 붙어 있거나 기도 위쪽에 걸렸다면 손가락이 인후두부까지 닿기 때문에 꺼낼 수도 있다. 윤씨가 호흡곤란에 본능적으로 뱉어내 버렸을 수도 있다”고 보았다. 신고 부분을 놓고 1심은 “김씨가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데도 모텔 종업원에게 연락해 119에 신고를 부탁한 것은 윤씨가 사망할 때까지 시간을 끌면서 목격자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판단했다. 2심은 “윤씨가 16일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김씨가 신속히 구호조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흉악 범죄가 급증합니다. 우리 사회와 공동체가 그만큼 병들어 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직시하고 아우성치지 않으면 나아지지 않습니다. 사건이 단순 소비되지 않고 인간성 회복을 위한 노력과 더 안전한 사회 구축에 힘이 되길 희망합니다.1심 재판부는 “애인의 신뢰와 애정을 이용하고 살인을 계획한 점에서 지극히 비인간적이고 잔혹하다”고 무기징역을, 2심은 “증거가 합리적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지 않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범죄”라며 “김씨의 범행 수법이 거의 완벽해 제2·3의 동일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이런 범죄가 사라지도록 엄벌해야 한다”고 사형을 구형했었다. 2심 후 윤씨의 아버지는 포털사이트 토론방에 “한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잔인하게 죽어야 했던 우리 딸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고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며 무죄 판결을 비판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2013년 9월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데 김씨가 신속한 구조조치를 했다고 단정한 부분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김씨가 윤씨의 코와 입을 막아 질식사시켰다는 증명 정도가 확신을 주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의심스러워도 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다만 김씨는 절도 혐의가 인정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2011년 자신의 벤츠 승용차를 1100만원에 판 뒤 6개월 후 이 차를 담보로 빚을 얻기 위해 판매했던 벤츠를 구입자 몰래 훔친 혐의 때문이다. 김씨는 일정한 직업 없이 애인인 B·C씨 등을 통해 대출을 받거나 돈을 빌려 생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도선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과 검찰의 인력이 부족한 상태인데 증원이 어려우면 중대사건 전담 검사·경찰을 둬 정밀 수사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면서 “판사도 미국처럼 수사판사를 두면 현실감이 좋아져서 보험살인과 같은 중대 사건의 진실규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그놈 목소리에 속수무책’ 당하던 사람들, 이제 달라진다[취중생]

    ‘그놈 목소리에 속수무책’ 당하던 사람들, 이제 달라진다[취중생]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도 세대도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지난 8월 18일, 서올 종로구에 위치한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신고대응센터’(센터)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겁에 질린 목소리로 A씨는 ‘검사’로부터 “은행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는 전화를 받고 있다며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하지만 일단 보호관찰 조치를 취하고 두고 보겠다”며 A씨를 협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융감독원 담당 과장은 ‘은행 계좌는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안내했다고 A씨는 전했습니다. 보이스피싱을 의심한 A씨가 이러한 내용을 112로 신고하자 센터에서 근무하는 통신사 직원에게 신고 내용이 전달됐습니다. A씨는 전화 한 번에 소액결제와 번호도용차단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은행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센터는 A씨를 은행 핫라인으로 연결했습니다. 센터 관계자는 A씨가 무사히 조치를 끝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6차례 걸었지만 A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센터 측은 추가 피해를 우려해 112에 신고자 위치추적을 요청했습니다. 출동한 경찰관은 A씨로부터 현금 4000만원을 받으려던 보이스피싱 인출책을 검거했습니다.‘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신고대응센터’가 지난 7월 문을 연 이후부턴 이처럼 112 신고 한번 만으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신고부터 피해구제 절차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곳에선 경찰청, 금융감독원,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방송통신위원회, 통신사 등 총 32명이 함께 근무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본인의 휴대전화에 악성 애플리케이션(앱)이 설치됐다면 112에 전화를 걸어도 보이스피싱 조직이 전화를 가로챌 수 있으니, 다른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상담해야 합니다. 센터에서는 경찰의 초동 조치 이후 피해구제와 범행수단 차단, 추가 피해 예방 등을 상세히 알려줍니다. 개인정보가 필요한 업무의 경우 센터에서 바로 진행할 수 없기에 특히 고령자를 대상으로 조치가 잘 이뤄졌는지를 후속 상담 등을 통해 확인하는 절차도 마련됐습니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다 보니 센터를 찾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10월 마지막 주에는 하루 평균 상담 1116건이 이뤄졌습니다. 센터에 접수된 신고 종류별로는 보이스피싱(34%), 미끼문자(25%), 스미싱(13%) 순으로 많습니다. 주로 금융기관(33%)이나 기관(33%)을 사칭하는 수법이 과반을 차지합니다. 센터에 설치된 전광판에는 실시간으로 발생유형과 답변유형이 많은 순서대로 표시됩니다. 장기적으로는 센터로 들어온 신고 자료를 세밀하게 분석해 범죄 추세를 파악해 예보나 경보를 내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나옵니다. 가령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이나 이후, 월요일에는 스미싱 신고가 평소(12.8%)보다 높은 16.8~24%로 나타났습니다. 공휴일에는 공공기관이 운영하지 않아 공공기관이라고 속이기 어려운 만큼 스미싱 문자를 대량 살포하기에 스미싱 신고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꾸준히 스미싱 수법으로 쓰이는 부고장·청첩장(37.3%)은 늘 주의가 필요합니다. 10·20대는 수사기관을 사칭(93.8%)하거나, 40대(81.5%)나 50대(73.1%)는 대환 대출 등으로 속이는 수법에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60대는 지인을 사칭(19.5%)한 보이스피싱으로 피해를 많이 입었습니다. 30대는 피해 비중은 전체의 6.3%로 낮았지만 피해 금액은 1868만원으로 높습니다. 센터가 정식으로 출범한지 한달만에 안착되어 가는 모습이지만 보이스피싱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선 아직 과제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경찰은 내년에는 ‘통합대응플랫폼’을 구축해 보이스피싱 신고 대응을 더욱 유기적으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상담이 늘어나는 만큼 상담인력을 확충해 응대율(93%)이 지나치게 떨어지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도 있습니다. 또한 경찰은 장기적으로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 센터도 장기적으로는 24시간 운영한다는 구상입니다. 현재는 센터가 운영하지 않는 시간대에는 112 종합상황실을 통해 경찰이 초동 조치 등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보이스피싱이 아닌 다른 사기 범죄까지 대응하기 위해 경찰은 ‘사기정보분석원’ 신설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영국에는 ‘사기정보분석원’, 싱가포르에는 ‘사기대응센터’를 참고한 것입니다. 사기정보분석원을 설치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사기방지기본법 제정안은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해 국회에서 논의 중입니다.
  • [지방시대] ‘반백 살’ 소양강댐의 명과 암/김정호 전국부 기자

    [지방시대] ‘반백 살’ 소양강댐의 명과 암/김정호 전국부 기자

    ‘한강 기적의 주역’, ‘근대화의 상징’…. 올해로 준공 50돌을 맞은 강원 춘천 소양강댐을 꾸미는 수식어는 화려하다. 수도권에 용수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홍수 조절, 전력 공급까지 도맡으며 1970년대 산업화를 이끌어서다. 소양강댐이 연간 흘려보내는 물의 양은 12억t으로 수도권 용수 공급량의 절반에 가깝다. 소양강댐이 ‘수도권의 젖줄’로 불리는 이유다. 1978년을 포함해 5차례 전국에 심각한 가뭄이 있던 해에도 끄떡없이 수도권에 안정적으로 용수를 공급하며 진가를 발휘했다. 1970년대 후반 제2차 석유파동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당시 전국 수력발전 총량의 3분의1을 담당하면서 전력난 해소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소양강댐은 앞으로 춘천 수열에너지 융복합 클러스터에 물을 대주며 역할을 더 넓힌다. 소양강댐의 명(明)이다.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암(暗)도 있다. 1967년 4월부터 1973년 10월까지 소양강댐 건설 공사가 이뤄진 6년 6개월 동안 매일 12시간 이상 고된 노동이 이어져 근로자 37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 유역 면적이 2703㎢에 달하는 거대한 소양강댐이 지어지면서 춘성군(현 춘천시) 동면·북산면, 양구군 양구면·남면, 인제군 인제면·남면 등 3개 군 6개 면 38개 리가 일부 또는 전부 수몰됐다. 여기 살고 있던 3153가구, 1만 8546명은 정든 고향을 반강제로 떠나야만 했다. 서로 인접한 춘천과 양구를 직통하는 길도 없어져 이동 거리가 47㎞에서 93.6㎞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 소양강댐으로 인한 피해는 여전하다. 소양강댐 건설 뒤 주변 지역 연간 안개일수가 2배 이상 늘어 주민들의 건강을 해치고, 농작물 생육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양강댐은 주변 지역을 이중삼중 규제로 묶어 ‘규제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한다. 강원연구원이 낸 연구보고서에서 소양강댐 건설 뒤 주변 지역이 본 피해액은 최대 10조원으로 추산됐다. 소양강댐이 만들어진 지 반세기가 지났으니 세상도 많이 바뀌었다. 개발독재와 권위주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국가 운영체제도 중앙집권에서 지방에 권한을 넘겨주는 지방분권, 지방자치로 차츰 바뀌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정부가 맡고 있는 댐 운영·관리에 지자체를 참여시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강원도는 충북도와 함께 지난해 말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댐 주변 지역의 정당한 지원을 보장하라”며 기치를 올렸다. 강원도의회는 소양강댐 주변 지역 피해지원 연구회를 만들며 거들고 나섰다. 하지만 댐 운영·관리권을 나누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소양강댐에 수도권 2000만 시민의 식수가 걸려 있어서다. 더욱이 소양강댐은 안보와 직결되는 가급 국가중요시설이다. 그렇다고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갈 일은 아니다. 소양강댐 건설로 인한 아픔과 피해가 ‘진행형’이어서다. 모르는 척 덮어 두며 보낸 세월이 벌써 50년째다.
  • 절박함이 사는 집, 나의 일부가 된 집

    절박함이 사는 집, 나의 일부가 된 집

    집에 관한 이야기 8편 묶은 김혜진 소설주거·계급·세대 등 다양한 화두 표출해세입자·집주인… 인물 내면 세밀한 묘사누구나 겪었을 법한 핍진한 현실 환기팍팍한 인생 속 희미하게나마 희망 그려 ‘사는 것으로서의 집’의 가치가 ‘사는 곳으로서의 집’의 의미를 압도하는 것이 작금의 우리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집을 둘러싸고 각 주체들 간에 빚어지는 천태만상은 주거, 노동, 계급, 지역, 세대 등 다양한 화두와 마찰을 표출시킨다. 김혜진(40)의 새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은 바로 이런 현실에 발붙인 이야기들로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그 안에서 살아가는 ‘나’와 ‘당신’의 안녕을 묻는다. 소설집은 2021·2022년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목화맨션’과 ‘미애’, 지난해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축복을 비는 마음’을 비롯해 ‘이남터미널’, ‘산무동 320-1번지’ 등 단편 8편을 모아 묶었다.김혜진의 단편들은 집을 배경으로 하지만 집을 통해 희망을 키워 가거나 풀썩 주저앉거나 죽을 힘을 내 보는 인물들의 내면을 세밀하게 드러낸다. 임시 거주자이거나 세입자이거나 집주인이거나 한 갑을관계와는 상관없이 각자의 위기와 불안에 내몰리는 사정을 속속들이 살피는 서사들은 집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한민국의 누구나 겪었을 법한 핍진한 현실을 환기시킨다. 집을 매개로 돈독해졌다가 부서지고 와해되는 인물 간 관계의 변화에 집중하며 소통과 단절의 문제도 부각시킨다. 직장도 없고 집도 없는 이혼녀 미애는 친구에게 사정사정해 그의 아파트 임대동에서 딸과 함께 3개월 말미를 얻어 살게 된다. 아파트 독서 모임에서 만난 선우와는 아이를 맡기고 궁색한 처지를 터놓을 정도로 친해진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독서 모임 속 엄마들이 설파하고 추구하는 천편일률적이고 형식적인 선한 가치에 당장 살 집도 없는 미애는 숨이 막히는 느낌이다. 미애를 배려하고 돕던 선우는 어떤 사건에 직면하자 미애를 완벽히 차단하는 것으로 관계를 끊어 낸다.(‘미애’) ‘그녀’는 남편과 사는 연후동 20평대 빌라를 수년째 헐값에 내주는 장 선생이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내는 것으로 주거 문제와 밥벌이 문제를 해결한다. 건물 여러 채를 소유한 장 선생 대신 빌라를 관리하고 세입자들에게 밀린 월세를 받아 내는 게 주업무다. 두 달치 월세가 밀린 명진빌라 204호를 찾아간 ‘그녀’는 돈을 독촉하러 갔다가 모친상을 당했다는 세입자에게 되레 조의금을 건네고 온다. 하지만 비슷한 처지의 세입자들에게서 월세를 따박따박 받아 내겠다는 의지는 더 굳게 다진다.(‘산무동 320-1번지’) ‘고개를 들면 두 사람처럼 삶의 막바지에 이른 건물들이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처럼 길고 긴 세월을 견디며 어떤 고비와 위기를 지나고 나름의 그늘과 비밀을 간직한 채, 이젠 빈곤과 곤궁이 굴러다니는 골목에서 푼돈을 줍고 다니는 그들 부부를 지켜보는 듯했다.’(‘산무동 320-1번지’ 170쪽) 강퍅한 현실이 옥죄어 와도 희미하게나마 희망의 기미는 감지된다. 편입하고 싶었던 세계에서 쫓겨난 미애는 작지만 단단한 아이의 손을 그러쥐며 새로이 발걸음을 옮긴다(‘미애’). 집 하나 갖고 싶다는 마음에 부동산 실패담의 주인공이 될 위기에도 또다시 들려 온 개발 소식, ‘기회와 희망인 척 다정하게 손을 흔드는 무엇’에 가슴은 다시 뛴다.(‘이남터미널’) 작가는 “어떤 시절에 내가 머물렀던 집들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단련시키며 기꺼이 나의 일부가 되었다”면서 “각자가 간직한 유일하고도 개별적인 집을 떠올릴 수 있다면 기쁠 것 같다”고 했다.
  • 켜켜이 쌓인 그리움, 알알이 여문 정겨움… 묵묵히 버틴 옛 성곽, 넉넉히 담은 옛 풍경 [권다현의 童行(동행)]

    켜켜이 쌓인 그리움, 알알이 여문 정겨움… 묵묵히 버틴 옛 성곽, 넉넉히 담은 옛 풍경 [권다현의 童行(동행)]

    조선 왕족들의 유배지이자피란민들의 터전이 된 섬마을시간마저 더디게 흐르는 곳낡디낡은 대룡시장 골목약방·다방 주인장의 정다운 옛이야기도심의 시간은 잊은 지 오래 인기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던 인천 강화도 북서쪽 나지막한 섬, 교동도. 맑은 날에는 개성 송악산까지 눈에 들어올 만큼 북한과 가까이 자리한 이 섬은 시간마저 느긋하게 흐르는 까닭에 분주한 도시의 삶으로 잊고 지내던 넉넉한 인심과 정겨운 미소를 만날 수 있다. 아이와 함께 여행할 때면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든 전통시장을 꼭 들르는데 특히 교동도 대룡시장은 아담한 크기에 풍성한 이야기가 가득 쌓여 있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전에는 배를 타고 찾아야 했던 곳이지만,섬사람들의 오랜 염원이던 교동대교가 놓인 이후엔 아이와 함께 하루쯤 부담 없이 떠나볼 만하다. 교동도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 ‘달을참’(達乙斬), ‘고목근’(高木根), ‘교동’(喬桐)이란 지명으로 기록돼 있는데, 그중에서도 달을참은 크고 높은 산이 있는 고을이란 의미다. 여기서 크고 높은 산은 지금의 화개산(260m)을 가리킨다. 주민들이 운동 삼아 오르내리던 화개산은 최근 대규모 정원이 조성되고 전망대도 들어섰다. 이곳 전망대에 오르면 북쪽으로는 고구저수지와 교동 벌판, 북한의 연백평야가 한눈에 펼쳐지고 남쪽으로는 석모도와 볼음도 같은 강화도의 수려한 섬들을 조망할 수 있다. 지난 5월부터는 모노레일이 운영을 시작해 교동도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본섬인 강화도가 그러하듯 교동도 또한 고려 중기부터 조선시대까지 유배지로 널리 알려졌다. 연산군과 광해군, 안평대군 등이 이곳 교동도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특히 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 폐비 윤씨의 복수를 명목으로 수십명의 목숨을 빼앗으며 피바람을 일으켰는데 결국 중종반정으로 폐위돼 멀리 교동도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그는 교동도에 유배된 지 64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겨우 31세였다. 한동안 고구리마을로 기록된 연산군 유배지를 찾기 위한 연구가 이뤄졌는데, 최근 화개정원 인근에 유배지를 조성해 위리안치(圍籬安置) 현장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위리안치란 죄인이 유배지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어 그 안에 가두는 형벌이다.●시간을 거스른 듯 마치 영화 세트장 같은 풍경 아이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교동도에서 가장 번화한 대룡시장이다. 교동도 여행의 중심지라고 하지만 웬만한 시골 장터보다 작은 규모다. 500m 남짓한 골목길 두 개가 ‘열 십’(十)자로 이어진 것이 전부라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땐 사거리 길목에서 나도 모르게 “어머, 이게 다인가 봐!” 속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하지만 조금만 걸음을 늦추니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낡은 간판과 허물어진 슬레이트 지붕, 먼지 쌓인 벽시계, 백발 성성한 약방 할아버지 이야기에 눈과 귀를 열면 교동도가 지나온 오랜 시간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교동이발관은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서 은지원의 삭발 장면을 촬영했던 곳으로, 여행자들 사이에서 대룡시장의 랜드마크처럼 여겨진다. 그도 그럴 것이 반듯하게 손으로 적은 철제 간판과 마치 영화세트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이발관 내부가 1960~1970년대 시골 풍경 그대로다. 반들반들하게 잘 닦인 면도칼은 지나온 세월의 내공을 드러내는 듯하다. 이곳에서 직접 이발하는 경험을 꼭 선물해 주고 싶었는데, 하필 아이와 찾았을 땐 주인 어르신 집안에 상이 있어 문이 굳게 닫힌 상태였다. 그렇게 몇 년이 훌쩍 지나 지금은 자녀들이 이발관 내부를 그대로 활용해 식당으로 운영 중이라니, 아쉽게도 아이와 낡은 이발관에서 특별한 경험을 나눌 기회는 영영 사라져 버렸다.●약방 어르신과 다방 이모가 건넨 情에 사르르 이발관 건너편에는 동산약방이 자리하고 있다. 약국이 아닌 약방이란 간판이 어쩐지 더 정겹다. 비타민드링크라도 사 먹을 생각에 안으로 들어섰더니 손때 묻은 나무 진열장에 봉숭아꽃으로 물들이기를 할 때마다 심부름으로 사 왔던 추억의 백반이 두둑하게 채워져 있다. 구수한 보리차 냄새가 풍기는 커다란 주전자와 무심한 듯 입에 툭 씌워진 컵이 정겹다. 낯선 아이의 방문에 주인 할아버지는 어디서 왔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다정하게 묻는다. 아이가 또박또박 대답하자 환한 미소와 함께 딸기맛 비타민을 한 줌 서비스로 내어 준다. “할아버지, 내가 좋아하는 딸기맛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발랄한 인사에 약방에 앉아 있던 동네 어르신들에게까지 웃음이 번진다.느릿한 걸음으로 시장을 둘러보다 달콤한 군고구마 냄새에 이끌려 찾아간 곳은 교동다방이었다. 여행자들을 위해 소소한 먹을거리 삼아 군고구마를 팔고 있다는 마담 아주머니는 달짝지근한 다방커피를 타는 솜씨도 일품이다. 아이는 갓 구워 낸 고구마의 노란 속살에 반해 야무지게 입을 채웠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주머니는 잘 익은 귤을 가져다 난로 위에 올렸다. “우와, 귤을 구워 먹는 건 처음이에요.” 아이가 신기한 듯 난롯가에 서서 귤이 익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문득 약방에서 받은 비타민 하나를 꺼내어 아주머니께 건넸다. 약방 할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거라며 자랑도 잊지 않았다. “나도 감기에 걸리거나 하면 꼭 동산약방 약만 먹어요. 그래야 금방 기운이 나더라고. 교동도 사람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곳이에요.” ●황해도 실향민의 삶 고스란히 손님이 우리뿐이었던 터라 자연스레 교동도에 쌓인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여기 교동도 어르신 대부분은 피란민이에요. 이 대룡시장도 황해도 연백장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고향에 돌아갈 생각으로 밤낮없이 부지런히 일해서 부자도 많아요. 교동도 쌀이 유명해진 것도 그분들 덕분이죠. 세월이 흘러 여기서 결혼도 하고 자식들 낳고 살았으니 정을 붙일 법하건만 그래도 늘 다방에 오시면 고향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실제로 교동도는 고려 때부터 간척이 이뤄져 육지보다 많은 논과 밭을 가졌는데, 광복 직후엔 80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할 만큼 풍요롭고 북적이는 섬이었다. 행정구역상 강화도에 속하지만 실제 생활권은 불과 12㎞ 떨어져 있는 황해도 연백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연백에 살던 사람들 다수가 교동도로 피란했다. 교동도 북쪽 말탄포구에서 바라보면 연백 땅이 불과 2㎞ 바다 너머다. 눈앞에 선명한 고향 땅을 반세기 넘게 바라보기만 할 줄은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을 터. 그 한 맺힌 그리움이 다방 한쪽 구석에 쌓이고 또 쌓였다. 북한과 가까운 지리적 위치 때문에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단다. “어느 날인가 동네 언니가 텅 빈 옥상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올라갔더니 북한에서 탈출한 청년 하나가 숨어 지내고 있었다지 뭐예요?” 믿기지 않는 이야기에 아이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중한다. “여기 사람들은 그런 사건이 있어도 두려워하기보다 안쓰럽고 애틋한 마음이 먼저인가 봐요. 저기 골목길 끝에 해성식당이라고 있는데 안주인이 전라도 출신이라 음식 솜씨가 좋아요. 여기 사람들 사이에선 맛집이죠. 그런데 그 북한에서 탈출한 청년이 발각됐을 때 경찰이 일부러 그 집 육개장을 주문해서 먹였대요. 식당 주인도 음식 배달하면서 울컥했다고 하더라고요.” 마치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 온 것처럼 편안하고 느긋한 분위기 때문인지 어느새 아이의 눈꺼풀이 스르르 감긴다. 얼른 소파 2개를 붙여 아이가 잠시라도 단잠을 즐길 수 있도록 자리를 봐주는 아주머니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노 키즈 존’을 내세운 도시의 화려한 레스토랑에선 느낄 수 없는 코끝 찡한 감동이었다.●117년 한 자리 지킨 교동초 마담 아주머니의 추천으로 찾은 곳은 대룡시장과 어깨를 맞대고 자리한 교동초등학교다. 1906년에 개교했다고 하니 그 역사만 무려 117년에 이른다. 멀끔하게 단장한 모습이라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운동장 한편에는 기억조차 희미했던 이승복 동상과 효자 정재수 동상이 자리하고 있어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겨우 10살의 나이에 눈길에 쓰러진 아버지를 구하려다 매서운 추위에 결국 함께 동사한 정재수 이야기를 들려주자 아이는 감동한 눈치다. 그래도 슬픈 결말은 피하고 싶었는지 “나는 슈퍼히어로가 돼서 엄마도 구하고 나도 씩씩하게 살아올 거야.” 큰소리다. 교동다방에서 꿀맛 같은 낮잠을 즐긴 덕분인지 아이는 널찍한 운동장을 마음껏 뛰며 신나게 놀았다.교동읍성도 교동도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인조 7년인 1629년에 쌓은 고을성으로 둘레는 약 430m, 높이는 약 6m에 이른다. 예부터 교동도는 외세 침략이 잦았던 터라 서해안 방어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조선 후기에는 읍성 내에 삼도수군통어영 본진이 주둔했다고 한다. 원래 동문과 북문, 남문 등 3개의 문루를 갖춘 성문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온전한 형태를 짐작하기 어렵다. 대부분 세월이 흘러 무너졌고 겨우 남아 있던 남문의 유량루도 1921년 폭풍을 맞아 허물어졌다. 다행히 홍예 부분만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데, 이는 돌이나 벽돌을 무지개처럼 휘어진 형태로 쌓은 구조물로 광화문 같은 성문에 주로 사용됐다. 일부 복원된 성곽과 얼기설기 쌓은 옛 성곽이 이곳에 쌓인 시간을 오롯이 드러낸다.교동향교도 아이와 들러 보기 좋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유생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교동향교의 역사는 그보다 앞서 고려 충렬왕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289년 고려 유학자 안향이 원에 사신으로 갔다가 직접 손으로 옮겨 적은 ‘주자전서’와 공자 초상화를 가지고 돌아와 이곳에 모신 것. 한국 성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안향이 처음 배를 댔던 곳이니 교동향교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인 셈이다. 원래는 화개산 북쪽 기슭에 있던 것을 조선 영조 때 지금의 위치로 옮겼는데, 다른 지역 향교들과 비교하면 아담한 규모지만 건축물 하나하나 소박하고 단정한 짜임새가 돋보인다. 홍살문을 지나 향교 안으로 들어서면 공자의 신주와 우리나라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유생들이 배움을 익히고 닦았던 명륜당, 일종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제수용품을 보관하는 제기고, 내삼문이 알뜰하게 들어서 있다. 향교 우측에는 요즘 보기 드문 재래식 화장실이 설치돼 있는데, 얼마 전 뒷간을 소재로 한 전래동화를 읽었던 아이는 직접 오줌도 눠 보며 재밌어했다. ●그림 같은 보호수 자랑하는 화개사 화개산 중턱에는 화개사도 자리한다. 정확히 언제 창건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말의 문신 이색이 머물며 독서를 즐겼다고 하니 고려 때 사찰로 추정된다. 17~18세기 문헌에도 그 이름이 기록돼 있으니 조선 후기까지 강화도의 주요 사찰 중 하나로 규모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에는 전등사의 말사였고 현재 남은 건물은 1967년 화재로 탔던 것을 이듬해 중건한 것이다. 사찰 입구에는 수령 200년을 넘긴 소나무가 자리하고 있는데 그 모양이 아름다워 아이도 “꼭 옛날 그림 속 나무 같다”며 감탄했다. 기름진 논을 자랑하는 교동도에는 두 개의 커다란 저수지가 있다. 난정저수지와 고구저수지다. 여름이면 난정저수지에는 노란 해바라기가, 고구저수지에는 분홍 연꽃이 무수히 피어오른다. 지역주민들이 마을정원으로 꾸민 것인데 널찍한 저수지를 배경으로 수채화처럼 맑은 풍경을 자아낸다. 겨울에는 이들 저수지 모두 얼음놀이터로 변신한다. 아이들은 썰매를 타고 어른들은 얼음낚시의 손맛을 즐긴다. 차창 밖으로 스치듯 지나가더라도 교동도의 밥맛을 책임지는 물줄기라고 생각하니 더욱 넉넉하게 느껴진다.
  • “음식물 쓰레기 먹었다”…강제징용 할머니, 日에 겨우 ‘931원’ 받았다

    “음식물 쓰레기 먹었다”…강제징용 할머니, 日에 겨우 ‘931원’ 받았다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2차 손해배상에 나선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정신영(93) 할머니가 법정에서 강제동원 당시를 증언하며 일본 측의 사죄를 촉구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법 제13민사부(부장 임태혁)는 이날 303호 법정에서 정 할머니 등 4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정 할머니는 원고 당사자 증인으로 나와 1944년 일본에 건너가 겪었던 일들을 털어놨다. 정 할머니는 지난 1944년 5월 만 14세 나이에 ‘일본에 가면 좋은 학교도 다니게 해주고 밥도 잘 준다’는 일본 교사의 말에 속아 친구들 25명과 일본으로 갔다. 그러나 일본 교사가 약속한 행복한 학교생활은 없었다. 정 할머니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로 끌려가 도색 작업을 하는 알루미늄판을 배열하거나, 식당 일과 청소를 했다. 월급은 간식 하나 사 먹으면 바닥날 정도로 몇푼 되지 않았다. 정 할머니는 “식사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어야만 했다”며 “다친 손도 치료받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목숨을 위협하는 일도 다반사로 발생해 공습 경보가 울리면 이불을 뒤집어 쓰고 두려움에 떨었다. 미군 폭격기가 폭탄을 떨궈 건물이 불이 나면 직접 올라가 불을 끄기도 했다. 도난카이 지진으로 공장 벽이 무너져 한국에서 함께 건너간 친구 7명이 숨지는 모습도 옆에서 목격했다.정 할머니는 해방 이후에야 부산항을 통해 고향인 전남 나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본 후생연금(노동자 연금보험)이 정 할머니에게 입금한 탈퇴 수당은 달랑 931원(99엔)이었다. 정 할머니 재판은 국제 송달로 보낸 소송 서류를 일본 정부가 미쓰비시 측에 전달하지 않고 미쓰비시 측이 의도적으로 출석하지 않으면서 2020년 1월부터 3년 10개월 가까이 공전됐다. 재판부는 이날 정 할머니의 증인 심문을 마지막으로 원고 4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2억 4000만원 상당 손해배상 소송의 변론을 종결했다. 이날 증인 심문을 마친 정 할머니는 “세월이 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또 말을 하다 보면 당시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며 “수십 년이 지났지만 미쓰비시는 물론 일본으로부터 단 한마디 사죄의 말을 듣지 못해 원통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할머니들 죽기 전에 좋은 소식을 전해주면 좋겠다.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은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고 공판은 2024년 1월 18일 같은 법정에서 오전 9시 50분에 열린다.
  • 절박함이 사는 집, 나의 일부가 된 집…당신의 집·삶은 안녕하신가요

    절박함이 사는 집, 나의 일부가 된 집…당신의 집·삶은 안녕하신가요

    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 지음/문학과지성사/292쪽/1만 6000원 ‘사는 것으로서의 집’의 가치가 ‘사는 곳으로서의 집’의 의미를 압도하는 것이 작금의 우리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집을 둘러싸고 각 주체들 간에 빚어지는 천태만상은 주거, 노동, 계급, 지역, 세대 등 다양한 화두와 마찰을 표출시킨다. 김혜진(40)의 새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은 바로 이런 현실에 발붙인 이야기들로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그 안에서 살아가는 ‘나’와 ‘당신’의 안녕을 묻는다. 소설집은 2021·2022년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목화맨션’과 ‘미애’, 지난해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축복을 비는 마음’을 비롯해 ‘이남터미널’, ‘산무동 320-1번지’ 등 단편 8편을 모아 묶었다. 김혜진의 단편들은 집을 배경으로 하지만 집을 통해 희망을 키워 가거나 풀썩 주저앉거나 죽을 힘을 내 보는 인물들의 내면을 세밀하게 드러낸다. 임시 거주자이거나 세입자이거나 집주인이거나 한 갑을관계와는 상관없이 각자의 위기와 불안에 내몰리는 사정을 속속들이 살피는 서사들은 집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한민국의 누구나 겪었을 법한 핍진한 현실을 환기시킨다. 집을 매개로 돈독해졌다가 부서지고 와해되는 인물 간 관계의 변화에 집중하며 소통과 단절의 문제도 부각시킨다. 직장도 없고 집도 없는 이혼녀 미애는 친구에게 사정사정해 그의 아파트 임대동에서 딸과 함께 3개월 말미를 얻어 살게 된다. 아파트 독서 모임에서 만난 선우와는 아이를 맡기고 궁색한 처지를 터놓을 정도로 친해진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독서 모임 속 엄마들이 설파하고 추구하는 천편일률적이고 형식적인 선한 가치에 당장 살 집도 없는 미애는 숨이 막히는 느낌이다. 미애를 배려하고 돕던 선우는 어떤 사건에 직면하자 미애를 완벽히 차단하는 것으로 관계를 끊어 낸다.(‘미애’) ‘그녀’는 남편과 사는 연후동 20평대 빌라를 수년째 헐값에 내주는 장 선생이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내는 것으로 주거 문제와 밥벌이 문제를 해결한다. 건물 여러 채를 소유한 장 선생 대신 빌라를 관리하고 세입자들에게 밀린 월세를 받아 내는 게 주업무다. 두 달치 월세가 밀린 명진빌라 204호를 찾아간 ‘그녀’는 돈을 독촉하러 갔다가 모친상을 당했다는 세입자에게 되레 조의금을 건네고 온다. 하지만 비슷한 처지의 세입자들에게서 월세를 따박따박 받아 내겠다는 의지는 더 굳게 다진다.(‘산무동 320-1번지’) ‘고개를 들면 두 사람처럼 삶의 막바지에 이른 건물들이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처럼 길고 긴 세월을 견디며 어떤 고비와 위기를 지나고 나름의 그늘과 비밀을 간직한 채, 이젠 빈곤과 곤궁이 굴러다니는 골목에서 푼돈을 줍고 다니는 그들 부부를 지켜보는 듯했다.’(‘산무동 320-1번지’ 170쪽) 강퍅한 현실이 옥죄어 와도 희미하게나마 희망의 기미는 감지된다. 편입하고 싶었던 세계에서 쫓겨난 미애는 작지만 단단한 아이의 손을 그러쥐며 새로이 발걸음을 옮긴다(‘미애’). 집 하나 갖고 싶다는 마음에 부동산 실패담의 주인공이 될 위기에도 또다시 들려 온 개발 소식, ‘기회와 희망인 척 다정하게 손을 흔드는 무엇’에 가슴은 다시 뛴다.(‘이남터미널’) 작가는 “어떤 시절에 내가 머물렀던 집들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단련시키며 기꺼이 나의 일부가 되었다”면서 “각자가 간직한 유일하고도 개별적인 집을 떠올릴 수 있다면 기쁠 것 같다”고 했다.
  • ‘세월호 특조위 방해’ 조윤선, 파기환송심서 징역형 집유

    ‘세월호 특조위 방해’ 조윤선, 파기환송심서 징역형 집유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4·16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설립과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9일 서울고법 형사2부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조 전 수석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윤학배 전 해양수산부 차관에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증거관계에 특별한 변동이 없는 이상 대법원의 환송 판결 취지에 따라 피고인들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또 “조 전 수석은 특조위 활동과 관련된 정치적·법적 쟁점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을 것임에도 윤 전 차관 등에게 ‘해수부에서 대응하라’는 취지로 지시하는 등 사건 범행에 관여했다”고 질책하면서도 “이 사건 이전에 아무런 처벌 전력이 없는 점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조 전 수석과 윤 전 차관은 특조위 내부 상황과 활동 동향 파악, 특조위 활동을 방해할 방안 마련과 실행 등을 실무자들에게 지시한 혐의로 2018년 2월 기소됐다. 1심은 이들의 혐의를 일부 유죄로 인정하고 조 전 수석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윤 전 차관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원심을 뒤집어 조 전 수석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윤 전 차관의 형량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줄였다. 2심은 조 전 수석과 윤 전 차관이 해수부 및 해양수산비서관실 소속 공무원들에게 문건 작성을 지시해 직권을 남용했다고는 인정했지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은 아니라고 봐 무죄로 판단했다. 직권남용죄는 직권을 남용해 상대방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한 때에 성립하는데, 소속 공무원들은 조 전 수석과 윤 전 차관의 직무집행을 보조하는 실무자에 불과하므로 방해받을 만한 ‘법적인 의무’가 없었다는 취지다. 하지만 대법원은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등을 근거로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조 전 수석의 혐의를 일부 유죄로 봐야 하고, 윤 전 차관의 경우 유죄 범위를 넓혀야 한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지난 4월 서울고법에 파기환송했다.
  • “내 무덤에 비석과 동상을 세우지 말라” …베트남에서 가장 존경받는 국부(國父) ‘호 아저씨’ [한ZOOM]  

    “내 무덤에 비석과 동상을 세우지 말라” …베트남에서 가장 존경받는 국부(國父) ‘호 아저씨’ [한ZOOM]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 살고 있는 사촌동생이 ‘바딘광장’ (Ba Dinh Square)’을 가로 질러 보이는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은 호찌민의 묘소에요. 호찌민은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죠. 수많은 사람들이 방부처리한 호찌민의 시신을 직접 보기 위해 이 곳을 찾고 있어요. 호찌민의 시신은 매년 러시아로 보내서 점검한다고 해요.” 솔직히 그동안 호찌민(Ho Chi Minh, 1890~1969)’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았던 어린 시절에는 사회주의자인 호찌민의 이름을 들어볼 일이 없었다. 게다가 ‘람보’, ‘머나먼 정글’과 같이 베트남 전쟁을 미국의 시각으로 다룬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자랐기 때문에 베트콩(Viet Cong)의 정신적 지주였던 호찌민에 대한 이미지는 긍정적일 수 없었다. 그러나 사촌동생의 말을 듣고 나서는 호찌민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존경하는 이유와, 베트남의 경제도시 사이공을 호찌민의 이름을 붙여 ‘호찌민시티’(Ho Chi Minh City)로 바꾼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호찌민이라는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호 아저씨’의 등장 호찌민은 1890년 5월 19일 베트남의 작은 마을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응우옌 신 꿍(Nguyễn Sinh Cung)’이었다. 호찌민이라는 이름은 독립운동을 위해 사용한 174개의 수많은 가명 중의 하나였다.  한편, 베트남 사람들은 국부(國父)인 호찌민을 ‘박호(Bác-Hồ, 伯胡)’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호 할아버지’ 또는 ‘호 아저씨’라는 의미이다. 호찌민이 태어났을 때에는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원래 프랑스가 식민지로 만들려고 했던 나라는 중국이었다. 하지만 영국이 양쯔강 유역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는 중국에서 내려오는 메콩강(Mekong River)과 홍강(红河, Red River)이 있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프랑스 역시 다른 열강들처럼 식민지 베트남을 세금과 노역으로 착취했다. 1907년 프랑스의 착취에 반발하는 농민들의 봉기가 절정에 이르던 당시 호찌민은 프랑스식 국립학교 학생이었다. 호찌민이 다니던 학교는 졸업만 하면 고위관리가 될 수 있는 곳이었지만, 호찌민은 농민들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었다. 외국어에 능숙했던 호찌민은 자청해서 농민들의 주장을 번역해서 프랑스 당국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농민들의 시위가 점점 과격해지면서 시위에 연루된 호찌민은 퇴학당했고 프랑스 경찰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호찌민은 프랑스 경찰을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어느 작은 마을에 정착해 교사가 되었다. 그러던 1911년 10월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사라졌다. 얼마 후 그는 남부 항구도시 사이공(現 호찌민시티)에 나타났다. 호찌민은 지금 이대로는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프랑스를 포함한 서구의 나라들이 힘을 가진 이유를 직접 보기 위해 주방보조 선원이 되어 프랑스로 가는 배에 올라탔다. 그렇게 호찌민의 세계여행이 시작되었다. 호 아저씨의 성장 프랑스로 가는 배에서 주방보조로 일하며 프랑스에 도착한 호찌민은 이후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했다. 그는 험한 일도 가리지 않고 경험하면서 가난하고, 핍박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삶을 직접 보고 경험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식민지 체제 아래에서 고통받는 조국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키워갔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 호찌민은 사회주의에 심취했다. 원래 베트남은 중국 유교문화 영향을 받은 나라였다. 호찌민 역시 유학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교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호찌민이 경험한 서구의 현실은 탐욕과 부의 착취로 보인 반면, 사회주의의 공동체 의식, 검소함, 평등 등의 가치는 유교문화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호찌민이 사회주의에 심취한 것은 어떠면 자연스러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찌민의 사회주의는 일반적인 사회주의와는 결이 달랐다. 유교는 봉건시대 도덕, 종교는 아편으로 취급하던 사회주의 속에서도 호찌민은 공자,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했다. 또한 호찌민은 규율과 복종에 가치를 두는 사회주의 속에서도 근면, 검소, 정의, 성실의 네 가지 덕목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호찌민은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자였지만 사실상 베트남 민족주의자에 더 가까웠다.  호찌민은 1930년 '베트남 공산당'을 창설했고, 1941년에는 ‘베트민(Viet Minh, 越盟, 월맹)’을 결성해 일본의 동남아시아 침략에 맞서 싸웠다. 1945년 9월 2일 일본이 패망하자 베트남 독립을 선언하고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수립했다. 1954년 5월 6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에 승리하면서 독립을 인정받았지만, 사회주의 국가의 독립을 달가워하지 않은 열강들의 일방적안 결정으로 베트남은 남과 북으로 나눠졌다. 이후 남베트남 정권의 폭정과 무장저항의 확산으로 베트남 전쟁이 발발했다.  호 아저씨의 유언 “내가 죽은 후 웅장한 장례식으로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시신은 화장하고, 재를 셋으로 나누어 베트남의 북부, 중부, 남부에 뿌려 주길 바란다. 내 무덤에는 비석도 동상도 세우지 말라. 대신 넓고 튼튼하며 통풍이 잘 되는 집을 지어 방문객들이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약 방문객들이 나를 추모하는 의미로 나루를 심는다면 세월이 지나 그 나무들이 숲을 이룰 것이다.”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9월 2일 24번째 독립기념일 아침 호 아저씨는 베트남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79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장례식은 검소하게 하고, 화장한 유해를 조국의 땅에 뿌려달라고 부탁한 그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애국자이자 민족주의자였다. 하지만 그의 유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의 시신은 화장하지 않고 방부 처리되어 전시되어 있다.  쿠바의 혁명가로 유명한 ‘체 게바라(1928~1967)’는 호찌민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 호찌민에 대한 대외적인 평가는 다양하다. 하직만 적어도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호 아저씨’, ‘호 할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다정하고 온화한 국부(國父)이자,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친 강인한 지도자였다.
  • 경기도의장 “서울시가 뭐그리 대단한가”…지자체 서울 편입 논란에 강한 유감

    경기도의장 “서울시가 뭐그리 대단한가”…지자체 서울 편입 논란에 강한 유감

    염종현 경기도의회 의장이 “서울특별시가 뭐 그리 대단한가”, “시대착오적 행정구역 개편”이라며 경기 김포발 서울 편입 논란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염 의장은 7일 제372회 정례회 개회사에서 최근 김포시를 비롯한 경기도 일부 시·군의 행정구역 개편 논란이 불거진 데 대해 “서울시로의 편입 문제는 지역 주체인 경기도, 경기도의회와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을뿐더러, 행정구역 개편의 타당성을 가늠할 명확한 정보조차 도민들께 제공되지 않은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경기도는 서울의 ‘주변’이라는 인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주체적이고, 당당한 전국 최대 광역자치단체로 우뚝 서며 위상을 정립해 왔다”며 “서울특별시가 뭐 그리 대단한가 경기도 시·군을 떼어 서울시를 확장하는 것이 정말 대한민국 미래를 살리는 길인지 진심으로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염 의장은 156명 의원들에게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에 한뜻을 모아달라고 했다. 염 의장은 “지금껏 경기도의회와 경기도는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라는 원대한 미래를 한 마음, 한뜻으로 구체화하는 것에 집중해왔다”며 “1400만 주민투표라는 가시화된 단계를 앞두기까지 무려 3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중앙정치권을 중심으로 갑작스레 불거진 행정구역 개편 논쟁이 오랜 시간을 걸쳐 쌓아온 노력의 탑을 무너트리게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우리는 경기도를 아끼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경기도의원이다”며 “이번 행정구역 개편 논란을 오히려 경기도와 경기도민을 하나로 묶는 반전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경기북도 설치를 위해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지난달 30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김포의 서울시 편입에 대해 김포주민 의견이 모이면 당론으로 추진할 수 있단 취지 발언을 한 이후 서울 인접지를 중심으로 편입론이 급부상했다.
  • [길섶에서] 빛 바랜 단풍/황비웅 논설위원

    [길섶에서] 빛 바랜 단풍/황비웅 논설위원

    지난 주말 장인어른을 모신 산소에 성묘를 하러 가족이 총출동했다. 선산 중턱에 있는 장인 산소는 짧은 등산용으로도 안성맞춤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산 중턱에 올라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도 줍고 도토리도 주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성묘를 마치고 근처 충북 진천의 명물인 ‘농다리’를 찾았다. 농다리는 거대한 지네 모양의 형상을 하고 있는 돌다리로, 각기 다른 모양의 돌을 쌓아 만들었다. 석회 같은 접착제를 쓰지 않고도 천년의 세월을 견뎌 냈다고 한다. 농다리를 건너 언덕을 올라가면 한반도 모양의 지형을 감싸고 있는 호수가 나타난다. 호수에 비친 노란 단풍이 절경이었다. 그런데 울긋불긋한 단풍을 기대했건만 빛이 바랜 느낌이다. 왜 그럴까. 관련 기사를 보니 기후변화로 단풍이 제 색깔을 찾지 못한 탓이란다. 단풍이 절정이 되려면 최저기온이 5도 이하로 떨어져야 하는데 9월 전국 평균 최저기온이 19도를 기록했단다. 기후변화로 단풍마저 빛이 바랬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 103세 철학자가 전하는 인생 이야기…7일 양구 인문학콘서트

    103세 철학자가 전하는 인생 이야기…7일 양구 인문학콘서트

    강원 양구군은 오는 7일 오후 2시 양구문화복지센터에서 한국의 1세대 철학자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초청해 ‘인문학 콘서트’를 개최한다고 6일 밝혔다. 올해로 103세를 맞은 김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고교생 300명에게 삶의 철학과 103년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 교수는 1920년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나 일본 조치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1947년 탈북해 서울 중앙고 교사와 교감,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 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후학을 양성했다. 인문학 콘서트에서는 김 교수의 강연 외 샌드아트 공연과 재즈 공연도 진행된다. 샌드아트 공연에서는 원유경씨, 재즈 공연에서는 이연재씨가 각각 무대에 오른다. 양구군 관계자는 “이번 콘서트는 머지않아 사회로 진출하는 학생들에게 오랜 세월 경험한 선배의 철학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다”고 말했다.
  • ‘文에 신발 투척’ 60대男 공무집행방해 무죄 확정… “거리 멀었다”

    ‘文에 신발 투척’ 60대男 공무집행방해 무죄 확정… “거리 멀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던져 재판에 넘겨진 남성에 공무집행방해 혐의 무죄가 확정됐다. 경찰 폭행과 모욕 등 다른 혐의는 유죄가 인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공무집행방해와 모욕, 건조물침입, 상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창옥(61)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일 밝혔다. 정씨는 2020년 7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던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같은 해 8월 광화문광장 집회에서 청와대 쪽으로 이동하던 중 저지하는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와 이듬해 1월 세월호 사망자 유족을 모욕한 혐의도 받았다. 1심은 “신발을 던지는 행위로 대통령 행사 일정에 차질을 초래했다고 인정할 근거가 없다”며 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고 다른 혐의는 유죄를 인정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도 공무집행방해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1심이 유죄로 본 건조물침입 혐의도 무죄로 판단해 형량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줄였다. 2심 재판부는 “정씨가 서 있던 곳에서 대통령이 있던 곳까지는 거리가 멀었다”며 “신발이 대통령이 있는 곳에 미치지 못하고 본관 계단 아래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멈추거나 놀란 기색 없이 곧바로 차량에 탑승했다. 대통령의 연설 일정이나 예정된 공무에 차질이 발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부연했다. 건조물침입 혐의에 대해서는 “국회 본관 앞은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일반인 출입이 허용된 곳에 승낙을 받아 들어갔다면 건조물 침입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형을 확정했다.
  • ‘세월호 구조 실패’ 해경 지휘부 9명 무죄 확정

    세월호 참사 당시 초동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승객들을 구조하지 못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근혜 정부 해양경찰청 지휘부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참사 발생 9년 만의 결과로, 지휘부의 책임을 묻는 형사 사건은 이번 선고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피해 유족들은 “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고 규탄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석균 전 해경청장과 최상환 전 해경 차장, 김수현 전 서해해경청장, 이춘재 전 해경 경비안전국장 등 9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2일 확정했다. 김 전 청장 등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직후 구조에 필요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303명을 숨지게 하고 142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2020년 2월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해경 지휘부에 세월호 현장 상황을 파악한 뒤 지휘·통제로 즉각 승객의 퇴선을 유도하고 선체에 진입해 인명을 구조할 의무가 있었으나 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2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해경에 거짓으로 교신하면서 별다른 퇴선 명령 없이 탈출했고 해경으로서는 다수 승객이 탈출하지 못한 채 선내에 대기 중인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 해경 지휘부가 승객의 사망을 예견할 수 있거나 그 결과를 회피할 수 있는 조치가 있는데도 못한 점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취지다. 대법원도 이날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다만 김문홍 전 목포해경서장과 이재두 전 3009함 함장은 사건 보고 과정에서 ‘초기 퇴선 명령 지시’ 취지의 허위 문서를 작성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각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3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유가족 단체인 4·16연대 등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가 어떤 지시도 구조 계획도 세우지 않아 생명이 무고하게 희생되더라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선례를 사법부가 남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