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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평창에 날아든 사람 얼굴을 한 새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평창에 날아든 사람 얼굴을 한 새

    지난 9일 저녁 평창에서는 상원사 동종에서 시작해 달항아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유산을 소재로 창작된 미디어아트가 현란하게 펼쳐졌다. 전통과 현대를 통합한 연출력이 돋보인 이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특히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시작 부분에 무대 중앙에 등장해 춤을 춘 사람 얼굴을 한 새, 곧 인면조였다. 2시간 15분 정도 진행된 개막식에서 2분여의 짧은 시간 동안 출연했는데도 큰 화제가 된 것은 이것이 뜻밖의 출연자였기 때문이다. 그 앞에 나온 청룡이나 백호, 주작이나 현무 같은 사신(四神)만 해도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지만 인면조는 우리에게 매우 낯설다. 인면조가 한반도에 처음 나타난 것은 지금부터 1609년 전 평양의 남서쪽에 있는 덕흥리 고분에서다. 이 무덤은 양력으로 409년 1월에 만들어져 1976년 발견되기까지 실로 오랜 시간 깊이 잠들어 있었다. 무덤으로 들어가면 진입 통로인 연도와 전실, 전실과 후실을 연결하는 짧은 통로 그리고 후실, 관을 안치한 널방이 차례로 나온다. 북한과 중국 지안(集安) 등지에 1만 3000여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고구려 고분들 가운데 이 고분이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연도와 통로의 천장을 제외한 내부 공간 전체가 벽화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덕흥리 고분의 전실에는 둥그런 궁륭식 천장을 씌웠는데 그곳에 날개 달린 물고기, 꼬리가 여러 개인 새, 몸은 하나인데 얼굴이 둘인 괴물 등 다양한 모습의 기괴한 동물 18마리를 그려 놓았다. 바로 그 천장의 서쪽 부분에 천추(千秋)와 만세(萬歲)라는 이름이 적힌 인면조 두 마리가 있다. 두 인면조는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데 발 모양만 다르다. 천추는 짐승의 발, 만세는 새의 발을 가졌다. 천년만년 산다는 그 이름에 걸맞게 아늑한 무덤에서 장구한 세월을 보내던 그 인면조를 21세기의 예술가들이 흔들어 깨워 평창으로 날아들게 한 것이다. 덕흥리 고분을 비롯해 북한의 네 지역에 모여 있는 63기의 고분이 2004년 ‘고구려 고분군’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그 가운데 16기의 고분에 벽화가 남아 있다. 북한에는 ‘고구려 고분군’과 2013년에 등재된 ‘개성의 역사 기념물과 유적’, 이렇게 두 건의 세계유산이 있다. 세계유산 등재 당시 이코모스(ICOMOS)는 고구려 고분군의 가치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 유산이 매우 중요한 것은 고구려 왕국의 문화가 가진 중요성에서 비롯되는데, 그 중요성은 고분 천장의 구조적 해법과 벽화에 묘사된 일상생활의 증거에만 남아 있다.” 우리의 문화유산에서 얻은 소재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공연예술을 보여 준 평창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옛것을 토대로 새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은 동아시아의 오래된 예술창작 방법론인데, 오늘날 그것에는 두 가지의 이점이 있다. 하나는 작품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만일 이번에 인면조를 현대 예술가가 전적으로 창작했더라면 그것의 정체성에 대해 논란이 많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생뚱맞다는 비판에 시달렸으리라. 그런데 1609년 전부터 이 땅에 실재한 디자인을 근거로 하니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그것의 정체성을 문제 삼기보다 그 역사, 그리고 상징과 의미를 알고 싶어 했다. 문화상품으로 만들자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다. 또 하나는 극히 현실적인 이점으로, 문화유산이라는 옛 소재를 사용하면 저작권료가 전혀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저작권료는 저작권자의 사후 70년까지만 보호된다. 만일 평창올림픽에 사용된 수많은 문화유산의 디자인과 아이디어에 대해 모두 저작권료를 내야 했다면 제작비가 껑충 뛰었을 것이다. 올림픽 개막식의 감동은 송승환 총감독의 인터뷰를 보는 순간 아찔한 걱정으로 바뀌었다. 개·폐회식 예산이 700억원 정도로, 10년 전 베이징올림픽 개·폐회식 예산 6000억원의 12%에 불과하다니…. 이렇게 문화예술에 돈을 아껴서는 덕흥리 고분 같은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유산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 그러면 우리는 조상의 유산을 활용하기만 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은 만들어 내지 못한 부끄러운 조상이 되고 말 것이다.
  • 재난안전 공무원 수 8.36% 늘어…전체 공무원 증가율의 4배

    재난안전 공무원 수 8.36% 늘어…전체 공무원 증가율의 4배

    제천·밀양 등 최근 발생한 대형 화재로 재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정부의 재난안전 관리조직은 그동안 대형 사건 등을 통해 안전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커졌다. 하지만 잦은 개편이나 기관명 바꾸기 등 땜질식 대응이었다는 비판이 크다. 재난 현장에 대한 이해력이 높은 지방에 보다 많은 권한과 책임이 이양돼야한다는 분석이다.15일 한국방재학회에 따르면 1953년부터 2016년까지 재난 및 안전관리 분야 공무원 수는 연평균 8.36% 늘었다. 같은 시기 전체 공무원 증가율(2.03%)의 4배가 넘는다. 이들이 정부조직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연평균 6.22%씩 늘어났다. 1953년 5명에 불과했던 재난안전 공무원은 2016년 788명이 됐다. 재난안전 관리 부서가 몸집 불리기를 시작한 건 1990년대부터다. 대형 재난사고가 잇달아 터지며 안전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내무부·국토건설청·건설부 등에서 맡던 재난업무는 1990년 집중호우로 인한 경기 일산의 한강 제방 붕괴로 내무부에서 다시 전담하기 시작했다. 이어 성수대교 붕괴(1994년)와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도 이어졌다. 이후 재난관리법이 제정됐으며 재난관리국 및 각 정부부처에 재난관리 하부조직이 생겨났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로 국가 재난안전조직은 한 차례 변혁을 맞는다. 우리나라 최초로 재난전담 조직인 ‘소방방재청’이 탄생했다. 2008년에는 행정자치부를 ‘행정안전부’로 개칭, 산하에 재난전담 부서를 설치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에는 ‘안전행정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를 계기로 산하 재난전담 조직이 ‘국민안전처’라는 이름으로 분리됐다. 이때 해양경찰청은 해체를 당해 조직이 대폭 축소되는 풍파를 겪기도 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민안전처가 다시 행안부로 합쳐지고 해경청은 해양수산부 산하 기관으로 부활했다. 이때 소방청은 외청으로 독립하며 오랜 염원을 이룬다. 대형 재난으로 충격에 휩싸인 민심을 수습하고자 정부는 이리저리 조직을 개편하며 환골탈태 각오를 보여왔다. 기관명을 바꾸거나 인력·예산을 대폭 편성하는 것으로 재난을 근절하겠단 의지를 드러냈다. 그 과정에서 안전 담당 조직은 총 5번 이름이 바뀌었다. 재난은 1차적으로 현장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중앙정부 조직 개편이 근본적 문제해결엔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향수 건국대 행정학부 교수는 “지역이나 재난 현장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중앙의 단일 컨트롤타워가 모든 재난을 관리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지방분권으로 중앙의 권한을 지방에 넘겨줘서 직접 재난에 대응하는 역량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산불 등 재난이 한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 발생하는 일도 잦다. 이럴 땐 중앙에서 개입해 조정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럴 때도 해당 지역의 특색을 이해하고 있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요구된다. 배귀희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는 “중앙의 재난조직은 지방에 대해 높은 이해를 갖고 있어야 한다”면서 “지방과 네트워크를 잘 쌓아놓은 조직과 협업을 통해 정보교류를 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월드피플+] 아픈 아내 위해 ‘늦깎이 면허’ 딴 79세 할아버지

    [월드피플+] 아픈 아내 위해 ‘늦깎이 면허’ 딴 79세 할아버지

    아픈 아내의 병수발을 위해 79세의 나이에 운전대를 처음 잡은 할아버지의 순애보가 감동을 선사했다. 메트로 등 영국 현지 언론의 12일 보도에 따르면 잉글랜드 북부 웨스트요크셔에 사는 케이스 림버트(79)는 동갑내기 아내 앤과 58년 째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잉꼬부부다. 3년 전인 2015년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통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내를 위해 운전면허를 따기로 결심했다. 약 60년의 결혼생활 동안 운전은 오로지 아내의 몫이었지만, 아내가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게 됐을 뿐만 아니라 택시나 대중교통으로 병원을 오가는 것이 아내에게 부담일 수 있다고 생각한 그가 ‘늦깎이 드라이버’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16살 때 처음 만나 백년해로를 약속한 두 사람에게 서로는 가장 오래된 친구이자 반려자다. 림버트는 “아내가 1972년 운전면허를 딴 뒤 무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날 위해 운전을 도맡아줬다”면서 “날 태우고 함께 경마대회를 구경 가기도 했고, 내가 술을 마시면 데리러 오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아내를 향한 사랑으로 70세가 훌쩍 넘은 나이에 운전면허 시험에 도전했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림버트는 아내가 쓰러진 해인 2015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여러 차례 면허시험에서 낙방하고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 그는 79세의 나이에 정식 면허를 따는데 성공하면서 아내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림버트는 “아내는 이미 충분한 시간동안 나를 돌봤다. 이제는 내가 아내를 돌볼 차례”라면서 “우리 부부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사라 키즈 ’와 협연 사라 장 “젊은 거장에 배워요”

    ‘사라 키즈 ’와 협연 사라 장 “젊은 거장에 배워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38)이 후배 연주자 17명과 함께 예술의전당 30주년 기념 무대에 오른다. 사라 장이 국내 무대에 서는 건 2014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크리스티안 예르비의 앱솔루트 앙상블과 협연한 이후 4년 만이다.예술의전당은 13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사라 장과 17인의 비르투오지’를 개최한다. ‘비르투오지’는 연주 실력이 뛰어난 거장을 일컫는 말로, 사라 장과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17명의 젊은 연주자가 함께한다. 사라 장은 공연 하루 전날인 12일 예술의전당 음악당 리허설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어릴 때부터 꾸준히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하고, 한국에 올 때마다 콘서트홀을 찾으니 집에 온 느낌이 든다”면서 “특히 이번 공연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것이 아니라 개성 넘치는 솔리스트들과 함께 연주해 더욱 뜻 깊다”고 밝혔다. 한국계 미국인인 사라 장은 4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9세 때 링컨센터에서 주빈 메타 지휘의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하며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뉴욕 필하모닉을 비롯해 베를린 필하모닉, 런던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명 악단과 협연하며 화려하고 낭만적인 연주를 선보여 왔다.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을 기념한 이번 공연은 사라 장과 예술의전당이 공동으로 기획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신아라· 김다미·김지윤·윤동화·김덕우·양지인·양정윤·김계희, 비올리스트 이한나·정승원·윤소희·홍윤호, 첼리스트 박노을·이정란·심준호, 더블베이시스트 성미제·최진용이 협연한다. 사라 장을 보며 꿈을 키웠던 젊은 연주자들은 그녀와 함께 무대를 꾸미게 된 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악장을 맡은 신아라는 “우리는 사라 장이 연주하는 것을 보고 자랐고 이번 공연을 통해서도 많이 배우고 있다”며 “이번 공연은 한국 클래식 발전에 큰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이한나는 “어렸을 때 사라 장의 연주를 보러 예술의전당을 찾은 기억이 있는데 세월이 흘러 3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같이 열게 돼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정란은 “사라 장이 차이콥스키 콘체르토를 연주하는 모습을 TV로 보면서 꿈을 키웠다”면서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음악만 생각하고 귀한 자리가 빛이 날수록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비탈리의 ‘샤콘’, 비발디의 ‘사계’, 피아졸라의 ‘사계’ 등 전통적인 클래식 레퍼토리에 현대적 해석을 더해 선보인다. 사라 장은 “1년에 연주를 120개씩 몰아서 하는 것보다 의미 있는 연주를 자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오히려 제가 많이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문학이야말로 남북문제 풀 수 있는 힘이죠”

    “문학이야말로 남북문제 풀 수 있는 힘이죠”

    “제가 1956년생인데 그 시대는 민족 또는 국가의 정체성이 상실되고 새롭게 구축되는 시기였습니다. 폐허에서 뭔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구구절절한 상황이었죠. 정신적인 구원의 버팀목이 없었던 ‘아버지 없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지난 70여년간 과연 우리의 정체성을 구축할 자원이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저의 학문적·예술적인 질문을 두 번째 소설에 담았습니다.”지난해 장편 ‘강화도’로 소설가로 데뷔한 사회학자 송호근(62) 서울대 교수가 10개월 만에 두 번째 작품을 내놨다. 일제강점기 소설가 김사량의 파란만장한 삶을 오늘날 시각으로 풀어낸 장편 ‘다시, 빛 속으로- 김사량을 찾아서’(나남)다. 12일 기자들과 만난 송 교수는 “개인적으로 일제강점기를 거친 우리나라가 정체성에서 어떤 혼란을 겪었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다”면서 “자신의 작품을 통해 당시 상실된 주체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정체성 즉 ‘빛’을 찾기 위해 애썼던 김사량이라는 인물이야말로 나의 관심사를 온몸으로 구현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김사량(본명 김시창·1914~1950)은 일본 도쿄제국대학 재학 중인 25세에 집필한 소설 ‘빛 속으로’로 일본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문학적인 자질을 갖춘 작가였다. 조선의 하층민들이 살아가는 풍속과 생존에 대한 끈기에 주목한 작품을 많이 선보였다. 1945년 일본 황군 위문단으로 북경에 파견된 그는 일제의 억압을 벗어나고자 연안의 태항산으로 탈출했고 그곳에서 조선의용군 선전대에 가담했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남하해 북한 인민군 종군작가로 활동하면서 쓴 작품의 이념적 편향성 때문에 그의 작품은 한국문학사에 편입되지 못했다. “김사량이 민족의 비애를 그린 1939년작 ‘빛 속으로’와 북한 체제 내에서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1950년 종군기 사이의 거리는 어마어마합니다. 이렇듯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김사량이 예상치 못하게 변한 데 무슨 까닭이 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자율적인 변화일까. 예술을 총으로 만들어버린 사회주의 체제의 결과일까. 만약에 후자라면 예술가로서 김사량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에게 구원의 길은 있었을까 등의 복잡한 질문들이 떠올랐습니다. 소설 속에서 신문기자로 등장하는 김사량 아들의 시선으로 김사량의 정신세계를 탐사해보았습니다.” 송 교수는 최근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화해 무드가 조성된 남북을 보면서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문학으로부터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고대와 미래를 마구 왔다 갔다 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 상상력의 미학이야말로 남북문제를 풀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이 작품을 쓰면서 했던 생각 중 하나는 ‘핵무기는 핵무기로 풀리지 않는다. 트럼프는 견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 무엇으로 (핵문제를) 풀 것인가’였습니다. 사회과학자로서 너무 낭만적인 생각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눈물이 핑 도는 교감으로부터 그 출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누군가의 처벌로 끝나는 게 아니라 뿌리깊게 박힌 문제 함께 고민해야”

    “누군가의 처벌로 끝나는 게 아니라 뿌리깊게 박힌 문제 함께 고민해야”

    2009년 등단한 김현(38) 시인은 ‘리얼리스트’, ‘참여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곧잘 호명된다. 시를 통해 사회의 편견과 불의에 저항할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적극적으로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고발에 앞장선 시인은 최근 최영미 시인의 고발로 이 문제가 다시 거론되면서 새삼 주목받고 있다. 시인은 2016년 문학계간지 ‘21세기 문학’ 가을호에 실린 ‘질문 있습니다’라는 글에서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지적하고 자정의 목소리를 촉구한 바 있다.●朴정권ㆍ세월호의 참담함 담아 최근 서울 마포구 창비 사옥에서 만난 그는 “당시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들로부터 터져 나온 증언들이 심각했기 때문에 작가들 스스로 점검해 보자는 의미에서 발표한 글이었는데 이렇듯 많이 회자될 줄 몰랐다”면서 “다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누군가의 폭로나 누군가의 처벌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단 내부에) 뿌리 깊게 박힌 문제를 같이 들추고 고민해야만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학하는 사람으로서 운동에 동참하는 것, 글을 쓰는 것, 설사 뒷담화라고 하더라도 문학장 안에서 개선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 젠더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요즘 젊은 작가들과 교류하는 등의 작은 일들을 앞으로도 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저항하는 시인으로서의 행동성은 두 번째 시집 ‘입술을 열면’(표지·창비)에서도 드러난다. 2014년 첫 시집 ‘글로리홀’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이 시집에는 2013~2015년에 쓴 시 53편이 담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 시인이 느꼈던 참담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불온서적’과 박근혜 정권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쓴 ‘열여섯 번째 날’이 각각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 “박근혜 정권 하에서 시민, 페미니스트, 사회적 약자, 노동자로서 제가 느꼈던 다양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싶었어요. 특히 ‘열여섯 번째 날’은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진행하는 ‘304낭독회’(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작가와 시민들이 함께하는 낭독회)를 소재로 삼은 작품인데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언급하면서 희망적으로 맺고 싶었어요.” ●“사회적 약자 목소리 내고 싶었죠” 이 시에 나오는 “말해버렸다/입술은 행동할 수 있다/사람이라는/진실은 이토록 정처 없이 희망차고”라는 마지막 부분이 뜨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또 다른 시 ‘생명은’에서도 “입술소리로 한평생 진실을 읽는다/뽀뽀의 순리//생명은 뽀뽀함으로 가볍다//우리는 그 길로 사람을 이해하므로/생명의 첫 지름을 깨우친다”라는 구절처럼 ‘입술’은 생동한다. 시집의 제목인 ‘입술을 열면’ 뒤에 ‘미래가 나타나고 ’가 숨겨져 있다고 한 시인의 말이 이해를 돕는다. “제가 이번 시집에서 입술, 목소리와 관련한 시어를 많이 썼더라고요. 입술을 열어야 발화하고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되잖아요. 나와 타인이 서로 마주 앉아 입술을 열어 이야기하고, 또 누군가 입술을 다문 채 침묵하고 저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피겨 퀸’ 러시아 집안싸움

    ‘피겨 퀸’ 러시아 집안싸움

    평창동계올림픽 ‘피겨퀸’ 자리를 놓고 러시아의 집안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19)와 알리나 자기토바(16)는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전초전 격인 팀이벤트(단체전)에서 2위 그룹과는 격이 다른 퍼포먼스로 자신이 바로 ‘피겨 여왕’ 김연아의 후계자임을 자처했다.자기토바는 12일 강원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팀이벤트 경기에서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의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주자로 나와 기술점수(TES) 83.06점, 구성점수(PCS) 75.02점으로 개인 최고 점수인 158.08점을 받았다. 레온 밍쿠스의 발레곡 ‘돈키호테’ 선율에 몸을 맡긴 그는 초반 ‘스텝 시퀀스’와 ‘플라잉 카멜 스핀’으로 예열한 뒤 트리플(3회전) 러츠와 트리플 루프 등 고난도 점프로 연기를 이어 갔다. ‘너무나 가볍게 점프를 뛰어 이렇게 쉬웠나’라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앳된 얼굴과 달리 기술적으로 ‘퍼펙트’였다. 마지막 스핀 연기를 마친 뒤 입술을 살짝 벌리고 미소를 띤 모습에서 마치 ‘금메달은 나의 것’이라고 속삭이는 듯했다.전날 메드베데바도 쇼트프로그램 세계기록을 갈아치웠다. 쇼팽의 ‘녹턴’에 맞춰 물 흐르듯 연기한 그는 TES 42.83점, PCS 38.23점을 합쳐81.06점을 받았다. 자신의 종전 최고점(80.85점)을 0.21점 끌어올렸다. 러시아 10대 소녀들은 경쟁자이면서 닮은 점이 적지 않다. 가냘퍼 보이는 외모와 달리 강력한 체력을 토대로 후반부에 고난도 점프를 뛴다.대부분 피겨 선수들은 초반에 점프한다. 그나마 힘이 빠지지 않은 시간에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다. 이들처럼 후반부에 점프를 뛰면 수행점수(GOE) 10%를 더 받는다. 자기토바는 프리 점프 7개 모두를, 메드베데바도 쇼트 점프 3개 모두를 후반부에 배치해 ‘폭풍 GOE’를 받아냈다. 이들은 점프 동작에서 팔을 머리 위로 올리는‘타노 점프’로 GOE를 또 챙겼다. 다만 표현력에선 ‘소녀 감성’의 자기토바보다 ‘성숙미’가 엿보이는 메드베데바가 한수 위다. 메드베데바가 쇼트와 프리에서 모두 클린한다면 자기토바보다 금메달에 더 가깝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난달 유럽선수권대회에서는 점프 실수가 있었던 메드베데바가 2위, 완벽한 클린 연기를 보여 준 자기토바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들은 2위 그룹보다 상당한 격차로 앞서있다. 이날 프리 2위는 미라이 나가수(137.53점·25·미국)로 자기토바보다 20.55점이나 낮았다. 메드베데바도 점수 구성이 프리의 절반 수준인 쇼트에서 2위 카롤리나 코스트너(75.10점·31·이탈리아)보다 5.96점 높았다. 새 피겨퀸은 오는 23일 가려진다. 이들의 선전에도 팀이벤트 금메달은 남자 싱글과 페어에서 1위를 차지한 캐나다에 돌아갔다. 여자 싱글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OAR이 은메달, 미국이 동메달이다. 특히 캐나다 남자 싱글의 ‘베테랑’ 패트릭 챈(27)은 이날 프리에서 두 차례 쿼드러플(4회전) 점프를 성공해 승리의 1등 공신이 됐다. 지난 소치대회에서 은메달만 2개(남자 싱글, 팀이벤트)를 땄던 그로서는 금메달의 한도 풀었다. ‘흘러간 물’로 여겨졌던 챈의 강력한 모습에 하뉴 유즈루(24·일본)와 네이선 천(19·미국) 등 우승 후보들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평창을 은퇴 무대로 예고한 챈은 16일 쇼트, 17일 프리에서 마지막 연기를 펼친다. 챈이 ‘세월의 물’을 거슬러 오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강릉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길섶에서] 모국어/최광숙 논설위원

    고등학교와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한국을 떠난 조카 둘은 한국말을 잘한다. 하지만 유치원 때 떠난 조카는 알아듣기는 하는데 발음은 영 시원찮아 마치 외국인처럼 한국말을 한다. 모국어도 오랜 기간 현지에서 습득해야 하는구나 싶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고려인 화가 안 블라디미르(90)씨가 보여 줬다. 얼마 전 ‘고려인 이주 80주년’을 맞아 제작된 한 방송의 프로그램에 나온 그는 또박또박 한국말로 말했다.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9살 때 연해주에서 우즈베키스탄행 기차에 올랐던 그는 북새통에 부모를 잃어버리는 비극을 겪고도 한국말은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감동을 준 것은 그의 조국애다. “나는 열렬한 애국자예요. 우리 민족을 사랑해요. 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맺혔다. 고국은 고려인을 잊고 지냈지만 그들은 결코 고국을 잊지 않았다. 그 먼 곳에서 오랜 세월 모국어 등 한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고스란히 지켜 가는 그들에게 조국은 어떤 존재인가. 그들을 위해 조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고려인의 한국말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김여정 “특사로 왔습니다” 文대통령 “北, 美와 적극 대화를”

    김여정 “특사로 왔습니다” 文대통령 “北, 美와 적극 대화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태운 두 대의 검은 세단이 지난 10일 오전 10시 59분 청와대 본관 앞에 차례로 멈춰 섰다. ‘백두혈통’ 김일성 일가의 일원과 역대 최고위급 북한 인사가 청와대에 처음 발을 디딘 순간이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본관 현관 밖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현관 안에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맞았다.문 대통령은 김 제1부부장, 김 상임위원장과 전날 개막식을 지켜봤던 터라 “밤늦게까지 고생하셨다. 추운데 괜찮으셨나”라고 물었고 김 제1부부장은 “대통령께서 마음을 많이 써주셔서 괜찮았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문 대통령과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의 만남은 오찬 63분을 포함해 2시간 50분간 진행됐다. 북측에선 고위급 대표단 단원인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이, 남측에선 조명균 통일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임 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이 배석했다. 김 제1부부장은 이날 접견에서 자신이 김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왔다고 밝히고, 파란색 서류철 속 친서를 전달했다. 이어 “문 대통령을 빠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 주실 것을 요청한다”는 김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도 전달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미 간의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길 주문했다. 또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자”고 밝혔다. 북한 고위급 대표단은 문 대통령의 말을 경청하는 분위기였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김 제1부부장은 청와대 방명록에 “평양과 서울이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서 더 가까워지고 통일 번영의 미래가 앞당겨지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다소 독특한 필체로 글을 남겼다. 문 대통령과 북한 대표단의 오찬은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63분간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건배사에서 “오늘 이 자리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남북에 거는 기대가 크다”면서 “남북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하여”라고 건배를 제의했다. 김 상임위원장은 “불과 40여일 전만 해도 이렇게 격동적이고 감동적인 분위기가 되리라고 누구도 생각조차 못 했는데 개막식 때 북남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역시 한 핏줄이라는 기쁨을 느꼈다”며 “올해가 북남 관계 개선의 획기적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김 제1부부장은 오찬에서 재차 “빠른 시일 내에 평양에서 뵈었으면 좋겠다. 많은 문제에 대해 의사를 교환하면 어제가 옛날인 것처럼 빠르게 북남 관계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께서 통일의 새 장을 여는 주역이 되셔 후세에 길이 남을 자취를 세우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 대표단에 조 장관과 서 원장을 소개하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때 북을 자주 방문했던 분들이다. 이 두 분을 모신 것만 봐도 제가 남북 관계를 빠르고 활발하게 발전시켜 나가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찬에서 문 대통령은 “젊었을 때 개마고원에서 한두 달 지내는 것이 꿈이었다”며 “이렇게 오신 걸 보면 맘만 먹으면 말도 문화도 같기 때문에 쉽게 이뤄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90세의 김 상임위원장에게 건강관리 비법을 묻고 장수를 기원했다. 그러자 김 상임위원장은 “조국이 통일되는 그날까지 건재했으면 한다”고 말해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김 제1부부장은 “한 달 하고도 조금 지났는데 과거 몇 년에 비해 북남 관계가 진행됐다. 북남 수뇌부의 의지가 있다면 분단 세월이 아쉽고 아깝지만 빨리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과 김 제1부부장, 김 상임위원장은 이날 저녁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경기장에서도 만나 같은 열에 앉아 단일팀을 응원했다. 문 대통령과 김 제1부부장과의 만남은 9일 개회식, 10일 접견과 남북 단일팀 경기 관람, 11일 서울국립극장 삼지연관현악단 공연 동반 관람까지 모두 네 차례 이뤄졌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집사부일체’ 육성재, 최불암 사부에게 머리채 잡힌 사연은?

    ‘집사부일체’ 육성재, 최불암 사부에게 머리채 잡힌 사연은?

    ‘집사부일체’ 육성재가 최불암 사부에게 머리채를 잡혔다.11일 오후 방송되는 SBS ‘집사부일체’에서 이승기, 이상윤, 육성재, 양세형 등 멤버들은 사부 최불암과 함께 서울 명동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과거 최불암의 어머니가 명동에서 운영했던 주점 ‘은성’을 재현한 의미 있는 장소. 최불암 사부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멤버들에게 50-60년대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던 주점 ‘은성’과 시인 박인환, 천상병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에 육성재는 사부님을 위해 박인환의 시로 만들어진 노래 ‘세월이 가면’을 준비했다. 최불암 사부는 노래를 시작하기 전, 감정을 잡는 육성재에게 다가가 “내가 연출할게. 엎드려 봐”하며 다소 거친 손길로 육성재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이를 지켜보던 멤버들은 “사부님 지금 머리채 잡으신 건 아니죠?”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최불암 사부의 감정지도 후 육성재의 노래가 이어졌고, 사부와 멤버들뿐만 아니라 함께 있던 제작진까지 큰 감동을 받았다는 후문. ‘세월이 가면’을 부른 육성재의 모습은 이날 오후 6시 15분 공개된다. 사진=SBS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문 대통령 “평양은 못 가봤다”... 김여정 “통일 새장 여는 주역되시길”

    문 대통령 “평양은 못 가봤다”... 김여정 “통일 새장 여는 주역되시길”

    “금강산과 개성만 가보고 평양은 못 가봤습니다. 금강산 이산상봉 때 어머니를 모시고 이모를 만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개성공단도 가봤습니다. (2007년)10·4 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총괄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백두산 관광도 합의문에 넣었는데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대화로 평양과 백두산에 대한 기대가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문재인 대통령) “빠른 시일 내에 평양에서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문 대통령께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님을 만나서 많은 문제에 대해 의사를 교환하면 어제가 옛날인 것처럼 빠르게 북남관계가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께서 통일의 새장을 여는 주역이 되셔서 후세에 길이 남을 자취를 세우시길 바랍니다.”(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겸 김정은 국무위원장 특사)10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고위급대표단의 오찬은 이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63분간 이어졌다. ‘백두혈통(김일성 일가)’으론 최초로 청와대를 방문한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특사’답게 대화를 주도했다. 김 제1부부장은 오찬에 앞서 청와대 방명록(사진)에 “평양과 서울이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서 더 가까워지고 통일 번영의 미래가 앞당겨지기를 기대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문 대통령은 건배사에서 “오늘 이 자리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남북에 거는 기대가 크다”며 “어깨가 무겁고, 뜻깊은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북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하여”라고 건배를 제의했다. 북한 고위급 대표단 단장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우리를 따뜻하고 친절하게 환대해 줘 동포의 정을 느낀다”면서 “불과 40여일 전만 해도 이렇게 격동적이고 감동적인 분위기가 되리라고 누구도 생각조차 못 했는데 개막식 때 북남이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역시 한 핏줄이라는 기쁨을 느꼈다”고 화답했다. 김 상임위원장은 “올해가 북남관계 개선의 획기적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께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서훈 국정원장을 소개하면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때 북을 자주 방문했던 분들”이라며 “이 두 분을 모신 것만 봐도 제가 남북관계를 빠르고 활발하게 발전시켜 나가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장관이 “김영남 위원장이 1928년, 2월 4일생”이라고 설명하자, 문 대통령은 “제 어머니가 1927년생인데 대통령이 되는 바람에 자주 찾아뵙지를 못하고 있다. 아흔을 넘기셨는데 뒤늦게나마 생신 축하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김 상임위원장의 장수를 기원하자 김 상임위원장은 “조국이 통일되는 그날까지 건재했으면 한다”고 말해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이어 문 대통령은 “저는 등산과 트레킹을 좋아하는데 히말라야 5900m까지 올라갔다”고 소개한 뒤 “젊었을 때 개마고원에서 한 두 달 지내는 것이 꿈이었고, 집에 개마고원 사진도 걸어놨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게 이뤄질 날이 금방 올 듯 하더니 다시 까마득하게 멀어졌다”면서 “이렇게 오신걸 보면 맘만 먹으면 말도 문화도 같기 때문에 쉽게 이뤄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김여정 제1부부장은 “이렇게 가까운 거리인데 오기가 힘드니 안타깝다”면서 “한 달 하고도 조금 지났는데 과거 몇 년에 비해 북남관계가 진행됐다. 북남 수뇌부의 의지가 있다면 분단 세월이 아쉽고 아깝지만 빨리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개회식을 지켜본 소감을 묻자 김 제1부부장은 “다 마음에 들었다. 특히 우리 단일팀이 등장할 때가 좋았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도 “처음 개막식 행사장에 들어와 악수를 했는데 단일팀 공동입장 때 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다시 축하 악수를 했다”고 호응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잘 수도 쉴 수도 없어…간병하던 손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잘 수도 쉴 수도 없어…간병하던 손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간병 살인마이니치신문 ‘간병 살인’ 취재반 지음/남궁가윤 옮김/시그마북스/252쪽/1만 4000원#. 2012년 8월 잠을 이루기 힘든 열대야에 아이스팩을 싼 수건을 목에 두르고 있던 기무라 시게루(75·가명). 그는 충동적으로 수건의 양끝을 잡고 반백년 가까이 해로한 아내 사치코(71·가명)의 목을 졸랐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약을 털어 넣었다. 아내는 숨을 거뒀고 그는 살아남았다. 아내는 숨지기 3년 전부터 치매와 파킨슨병을 동시에 앓고 있었다. #. 요시코(73·가명)의 아들 다카유키(44·가명)는 생후 3개월 때 선천성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다. 그 이후 요시코는 40년이 넘는 세월을 모조리 다카유키의 간병과 양육에 바쳤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진 요시코는 병원에서 우울 상태를 진단받고 항우울제를 복용했고, 건망증도 심해 알츠하이머형 치매가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14년 극한에 내몰린 요시코는 결국 제 손으로 아들의 목숨을 끊었다.평균 기대수명 82세. 의료 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연장되는 상황은 마냥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고령화와 장수화는 부모나 자식, 배우자 등 병에 걸린 가족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누구에게나 닥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끝이 언제인지 모르는 간병 생활이 길어지면서 비극적인 사건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신간 ‘간병 살인’은 2015년 12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일본 마이니치신문에서 연재한 기획 시리즈 ‘간병 살인’의 취재팀이 한순간에 사랑하는 가족의 목숨을 앗은 가해자가 된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이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고령 사회의 덫’을 파헤친 심층 취재기다. 취재팀이 2010~2014년에 일어난 간병 살인 중 재판 기록을 확인할 수 있거나 관계자를 취재할 수 있었던 44건을 뽑아 사건 배경과 동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가해자들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든 공통적인 요인은 ‘불면’이다. 치매나 통증을 수반하는 질병 환자나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는 환자는 수면장애를 앓는 경우가 많다. 한 정신과 의사에 따르면 “간병 살인의 방아쇠가 될 가능성”이 높을 정도로 불면으로 인한 간병인의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취재팀이 인터뷰한 가해자들은 처음에는 몸도 건강하고 간병도 잘해냈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수십년간 간병에 몰두한 탓에 기력이 쇠약해지는 것은 물론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한계에 다다랐다고 고백했다. 노후 빈곤으로 인해 재정적인 면에서 한계를 느끼는 것은 물론이다. 특히 문제는 간병이 이제 세대와 관계없는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노인이 된 자식이 늙은 부모를 돌보는 ‘노노 간병’뿐만 아니라 조부모를 돌보기 위해 젊은 나이에 간병 생활에 시달리는 어린이나 젊은이를 가리키는 ‘영 케어러’, ‘청년 케어러’도 늘고 있다. 학교생활이나 취업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나머지 자신의 꿈이나 목표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서 가족 여러 명을 간병하는 ‘다중 간병인’의 비중도 꽤 높은 편이다. 핵가족화와 저출산 현상으로 간병을 담당할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탓에 다중 간병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의사와 간병지원전문원 등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간병인의 마음을 돌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취재팀이 간병 지원단체를 통해 간병인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의 20%가 자신의 고민이나 스트레스를 일상적으로 의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없다고 답했다. 몸과 마음이 비명을 지르는데도 혼자서 끙끙 앓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 우울 상태를 겪게 되는 것이다. 취재팀은 영국의 ‘레스핏 케어’를 참고 사례로 든다. 레스핏은 ‘일시적인 중단’, ‘한숨 돌리기’라는 뜻으로, 간병인을 간병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쉬게 하고 그 기간 전문 시설이나 도우미가 간병을 대신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취재팀은 간병인이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간병인의 권리와 행정기관이 간병인을 지원할 의무를 법률로 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도 똑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재택 간병을 둘러싼 현실과 대책을 재검토해야 할 때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용서, 복수보다 빠른 ‘상처 치료제’입니다

    용서, 복수보다 빠른 ‘상처 치료제’입니다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마리나 칸타쿠지노 지음/김희정 옮김/부키/308쪽/1만 3800원 아들을 죽인 소년을,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를,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 간 자살 폭탄 테러범을 용서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런 이가 있다면, 그는 왜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받고도 용서를 결심했을까. 새 책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에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있다.책엔 세계적인 자선단체 ‘용서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용서 경험을 공유한 46명의 이야기가 담겼다. 학대, 폭력, 테러, 학살, 전쟁 등으로 신체적, 정신적 외상을 입었지만 복수 대신 용서와 씨름해 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책을 관통하는 정서는 스스로 가장 빨리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용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용서란 그 행동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 내재한 불완전성을 용서하는 것이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손에 어머니를 잃은 미국 여성 서맨사 롤러가 한 말이다. 스코틀랜드의 흑인 여성 막달리나 마콜라는 자신을 납치한 남성에게 “나는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 이처럼 용서의 형태와 그 행동에 스민 정서는 조금씩 다르다. 보스니아의 케말 퍼바닉처럼 “모든 인간은 다른 인간을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갖고 있다”고 여전히 믿는 이도 있다. 분명한 건 글쓴이들 모두 치유의 과정에 용서, 혹은 최소한 그리하려는 마음들이 늘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이해나 망각 등과는 다소 다른 감정으로 보인다. 스스로의 치유를 위해 용서를 수단으로 삼았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 해도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게 분명하다. 책엔 글쓴이들, 그러니까 ‘용서한 자’들의 사진이 담겨 있다. 남아공의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의 말을 빌리자면 “복수할 권리를 내려놓고 분노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능력”을 실천해 보인 이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보일 듯 말 듯, 잔잔한 미소를 입에 걸고 있다. 눈빛엔 관조와 달관이 늘 머무는 듯하다. 이 표정 뒤에 숨겨진 건 아픔과 인고의 세월일 것이다. 그 때문에 사진을 하나하나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차분해지는 듯하다. 한국 성인의 50%가 분노조절 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의사가 밝힌 내용이다. 굳이 주장의 정확성 여부를 따지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에 분노와 혐오가 폭증하고 있다는 건 누구나 체험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책이 던지는 의미가 깊고 무겁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김유민의 노견일기] 사랑이자 아픔이었던 베컴이에게

    [김유민의 노견일기] 사랑이자 아픔이었던 베컴이에게

    만 14년을 내 발목을 붙잡던 녀석이 떠났다. 더운 날은 더워서 추운 날은 추워서 기다리고 있을 모습이 걱정돼 발걸음을 재촉하게 하던 베컴이. 떠올리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었는지. 떠난 뒤 밀려올 눈물과 아쉬움, 그리움이 두려워질 정도의 긴 시간들이었다.젖도 못 떼고 온 꼬물이가 자라서 강아지가 되고 어느새 깜짝 놀랄 정도로 늠름한 모습을 보여줬다. 높은 곳에서 위험하게 뛰어내리기도 했었지만.. 무척 건강해 늘 기특해했더니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보다. 다시 아가처럼 약해지고 숨차고 힘들어하던 네 모습에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났다. 조용히 한 내 말을 듣고 정말로 그렇게 홀연히 떠나버린 녀석. “너무 힘들면 보는 엄마도 아프니까 자면서 갈래... 우리 베컴이, 사랑하는 베컴이.” 너무 차고 맑은 아침. 한 달만 있으면 만으로도 14년인데. 네가 준 수 만 가지 행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작은 몸짓 하나하나 눈에 밟히고 아른거리는데, 하늘에서 다른 엄마아빠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우리가 너무 오래 붙들고 있어서 이제야 왔다고 가족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는 걸까. 새해가 되자마자 급히 가버린 베컴아. 남은 우리는 텅 비어버린 것 같은 세상에서 너를 기억하며 아파하고 있어.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르면 조금씩 옅어지겠지. 네가 우리에게 준 행복과 사랑만은 잊지 않고 기억할게. 너도 이 세상에서 우리와 살았던 시간들을 좋았다고 기억해주라.정말 고맙고 또 고마웠어. 네가 우리에게 선물한 14년이란 시간. 천사 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온 너는 작고 예쁘고 씩씩했고 고집도 셌고 애교도 많았지. 베컴아, 네가 얼마나 소중한 엄마의 애기이자 단짝이자...마지막엔 아픔이었는지 몰라. 억지로 잊으려하지 않고 서서히 잊어볼게. - 2018년 1월 18일 늦은 10시 30분. 베컴이는 떠났다. 맑고 쨍한 추위 속에 다음날 아침 9시 정말로 연기가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 그날 오후 호수공원에는 커다란 해가 지고 있었고 우리는 하늘에 대고 “베컴아, 잘가~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라고 작게 소리치며 하늘에서 보고있을 것만 같은 녀석에게 손흔들어 인사했다. 채워지지않는 빈자리는 공허와 아쉬움, 보고픔이 자리잡았다. 이제 생각날 때마다 편지를 쓰려한다. 적막한 집안에서 아주 지겨워질 때까지. - 베컴이 엄마의 편지로부터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 [장관의 책상] 생명을 살리기 위한 첫걸음/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장관의 책상] 생명을 살리기 위한 첫걸음/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죽음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다. 특히 자살은 더욱 그렇다. 아무리 여러 번 겪어도, 오랜 세월이 지나도 받아들여지지도 익숙해지지도 않는다. 자살의 직접적 피해자는 사망자와 유가족이다. 생명을 잃은 당사자의 아픔이야 말할 것도 없고, 유가족도 슬픔과 상실감뿐 아니라 사회적 낙인에 의한 수치감 등에 시달린다. 2016년 서울대병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유가족은 우울증(41.7%), 불면증(37.5%), 호흡곤란·두근거림(59.7%) 등 정신적·신체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의 자살 위험이 일반인의 8.3배나 된다는 보고도 있다. 사회경제적 비용도 적지 않다. 2014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자살 사망자의 기대소득 손실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자살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연간 6조 5000억원으로 추정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우리나라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문제다. 정부는 2011년 ‘자살 예방 및 생명존중 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을 제정한 이래 맹독성 농약에 대한 생산·판매 금지 조치,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발굴·상담 체계 구축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다행히 우리나라 자살률은 2011년 10만명당 31.7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점차 줄어들어 2016년 25.6명으로 19.2% 줄었다. 그러나 자살률을 획기적으로 줄이기에는 부족하다. 정부는 지난달 23일 ‘자살 예방 국가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2022년까지 자살률을 10만명당 17명까지 줄이는 것이 단기 목표다. 자살 원인과 추세 분석으로 자살률을 획기적으로 줄인 일본, 핀란드 사례와 국내 지방자치단체 성공 사례를 참고했다. 관계 부처와 지자체, 전문가, 현장 실무자 의견을 수렴하고 자살 유가족 실태조사 결과, 심리부검 등을 통해 확보한 자살 시도자들 사례도 분석했다. 자살 예방 국가 행동계획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과제는 심층적이고 대대적인 자살 원인 분석이다. 경찰 수사 기록을 활용해 과거 5년간 발생한 자살자 7만명을 전수조사할 계획이다. 그간 확보할 수 없었던 읍·면·동 단위 자살 동향과 정확한 사망 지점별 자살 현황, 자살 사망자 주변인의 객관적 정보를 얻으면 지역별 자살 특성이나 집중 발생 지점 등을 고려한 전략적 접근을 할 수 있게 된다. 자살 고위험군 발굴을 위해 지역사회 풀뿌리 조직을 중심으로 자살 예방 게이트키퍼 100만명을 양성하고, 40·66세에 실시하던 국가건강검진 우울증 검진은 40세부터 매 10년마다 한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향후 5년간 추가로 1455명의 상담 인력을 확충할 예정이다. 응급실에 온 자살 시도자에 대한 상담 지원을 확대하고 자살 유가족 자조모임과 심리 치료비에 대한 지원도 할 계획이다. 전담 조직인 ‘자살예방과’도 신설해 관련 정책을 집중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자살은 해결할 수 있고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올해 업무보고에 참석한 유가족이 ‘자살 위험 신호를 미리 알았다면 아버지를 지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이 기억난다. ‘자살은 개인 문제이며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국민 모두 ‘주변의 소중한 사람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할 때다. 정부도 함께하겠다.
  • 인천 귀환 해경… 시민들도 환영

    해경이 2014년 세월호 참사 대처 미흡을 이유로 해체됐다가 부활한 데 이어 본청의 인천 환원 방침이 지난 5일 결정된 데 대해 인천시민들은 어떤 입장일까. 전반적으로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서해 5도민을 비롯한 인천시민들은 중국어선 불법조업 증가를 우려해 각계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해경 부활과 본청의 인천 환원을 호소해왔다. 시민단체들은 포럼과 세미나 등을 통해 해경 해체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또 인천지역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떠나 동참했다. 인천시와 시의회,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해경 부활·인천 환원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8일 “해경 부활과 본청 환원은 인천 시민들이 이뤄낸 값진 성과”라고 밝혔다. 시 관계자는 “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국들이 해양주권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반대로 갔는데 원점으로 돌아와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모(38·인천 송도동)씨는 “지난해 12월 발생한 낚싯배 전복사고 당시 해경은 미흡하게 대처했다”면서 “심층적 진단을 토대로 진정한 체질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한 해경 간부는 “국민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며 “보답하기 위해 지난 일을 반면교사 삼아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코레일 해고자 98명 전격 복직

    코레일 해고자 98명 전격 복직

    철도 노사가 철도구조 개편과 철도 민영화 반대 투쟁 등으로 해고된 98명에 대한 복직에 합의했다. 해고자 복직 문제는 지난 대선과 문재인 정부 출범을 거치며 꾸준히 제기돼 오다가 지난 6일 오영식 사장 취임 뒤 이틀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코레일과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은 8일 노사 대표자 간담회를 열고 해고 조합원 복직과 철도발전위원회 구성, 안전대책 및 근무여건 개선, 평창올림픽 성공적 개최 등에 합의했다. 철도구조 개편과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며 진행된 파업에서 해임·파면된 뒤 복직하지 못한 해고자는 98명이다. 2003년 철도공사 전환에 반대한 6·28 파업 40명, 2009년 4차례 파업에 참여한 44명, 2013년 수서발 KTX 민영화에 반대해 22일간 이뤄진 12·9 파업 10명과 2007~2008년 해고된 4명 등이다. 앞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철도 해고자 복직은 마땅하며 새 사장 선임 뒤 노사 협의를 통해 복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철도 노사는 철도정책의 한계로 야기된 파업 등으로 발생한 해고자에 대해 조속히 복직 조치에 나서고 구체적 이행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다만 해고 당시 부서로 복귀하는 원칙은 정해졌지만 이들의 직급과 호봉 등을 놓고는 다소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철도 해고자 복직 합의를 계기로 KTX 승무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KTX 해고 여승무원 복직과 직접 고용 문제는 철도 노사와 전문가로 구성된 노사전문가협의체에서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철도 노사는 또 전문가·시민사회 등과 함께 철도발전위원회(가칭)를 구성해 철도 재도약을 위한 혁신활동에도 나설 계획이다. 노사 갈등을 불러온 각종 현안과 과제는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해 대립과 갈등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데도 합의했다. 강철 철도노조 위원장은 “복직 합의가 최장 14년 해고의 세월을 모두 보상해 줄 수는 없지만 그동안의 아픔을 치유하는 첫걸음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6일 오 사장은 취임식 뒤 코레일 본사 앞에서 149일째 천막농성 중인 해고자들을 찾아 “이른 시일 내에 복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뒤 곧바로 철도노조와 자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연극리뷰] ‘3월의 눈’ 봄 눈처럼 처연한 노부부의 인생

    [연극리뷰] ‘3월의 눈’ 봄 눈처럼 처연한 노부부의 인생

    이른 봄바람에 꽃비가 온다 여겼다. 여느 인생처럼 찬란하지 않아도 그저 꽃처럼 흐드러져 의지하며 살아온 노부부의 삶은 3월에 내리는 눈처럼 서늘하고 처연하기만 했다.관객의 찬사를 받으며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운 2015년 공연 후 3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연극 ‘3월의 눈’은 그만치의 세월이 흘러서일까, 묵은 만큼 더 시리고 아프다. ●연기 인생 50년 오영수·정영숙 깊은 여운 극은 손자의 빚을 갚기 위해 평생의 터전이자 유일한 재산인 한옥을 팔고 떠날 채비를 하는 노부부 ‘장오’와 ‘이순’의 하루를 비춘다. 볕 좋은 툇마루에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이어 가는 노부부와 그들을 품어 온 삶의 무대인 한옥은 운명을 같이한다. 독재에 항거하다 실종된 아들을 가슴에 묻은 부부는 아비 없이 큰 손자의 상처를 제 탓인 양 품는다. 한옥 마루와 문짝을 떼내 팔아 치우는 개발업자의 욕망도 덤덤히 받아들인다. 모든 걸 내어 준 장오와 그 곁에 머무는 아내 이순이 ‘눈 녹듯이 꽃 지듯 간 걸게야’던 낮은 읊조림이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집과 공명한다.●생성과 소멸에 대한 헌사이자 삶의 사유 7일 막을 연 ‘3월의 눈’은 자극적이지 않다. 무대 위 호흡은 느리고 시종일관 담담하다. 무대를 꽉 채우고 있는 건 ‘침묵’과 ‘여백’이다. 지난해 연기 인생 50년을 맞은 장오 역 오영수(74)와 올해 50년이 된 이순 역 정영숙(71), 두 배우의 연기는 종갓집 된장처럼 깊은 맛을 낸다. 억지로 힘을 주지도, 소리를 높이지도 않지만 묵직하다. 두 배우가 자신의 호흡으로 끌어가는 무대에 포개지는 존재는 하나가 아니다. 이 땅의 수많은 아버지와 어머니들이다. 까무룩 잠든 어린 시절 머리맡에서 두런두런 새 나오던 부모 세대들의 아픔과 상처, 번민이 전해진다. ●노부부역 오현경·손숙 더블 캐스팅 ‘3월의 눈’은 연극만의 미덕을 품고 있다. 무대와 현실, 연기와 인생이 ‘합일’(合一)되는 느낌을 좇다 보면, 손진책 연출가가 왜 “생성과 소멸에 대한 헌사이자 삶을 사유해 볼 수 있는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는지 알 만하다. 죽어서도 집을 떠나지 못하던 이순이 흥얼거리던 노랫가락이 처연하게 맴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올해 첫 국립극단 작품인 ‘3월의 눈’은 장민호(1924~2012), 백성희(1925~2016), 박혜진, 박근형, 변희봉, 신구 등이 이어받아 열연해 왔다. 이번 공연은 한국 연극의 산증인인 오현경, 손숙, 오영수, 정영숙이 노부부로 번갈아 무대에 선다. 오영수는 2011년 초연에서 장오 역으로 인연을 맺었고, 손숙은 2015년 이후 두 번째 이순 역으로 복귀했다. 오는 3월 11일까지. 명동예술극장, 2만~5만원. (02)1644-2003.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생각나눔] “포화 대비한 납골당 시급” “묘역 흠집 관통도로 안돼”

    [생각나눔] “포화 대비한 납골당 시급” “묘역 흠집 관통도로 안돼”

    “국립묘지에 납골당을 만들려면 교통 체증을 해소하기 위한 길을 하나 더 뚫어야 한다.”(대전시) “연간 현충일과 명절 때 두세 번 정도 발생하는 교통 체증 때문에 신성한 국가유공자 묘역에 흉하게 구멍을 뚫을 수는 없다.”(대전현충원)7일 대전현충원과 대전시 등에 따르면, 대전현충원이 매장 묘역의 포화상태에 대비해 납골당 건립을 추진하자 허가권을 가진 대전시가 교통난 해소 대책부터 세우라고 조건을 내걸어 갈등이 일고 있다. 서울현충원은 5만 4448기 매장으로 더이상 안장할 땅이 없어 오래전부터 납골당으로 대체해 이미 1만 4537기가 안치됐다. 서울현충원의 대체 국립묘지로 만들어진 대전현충원조차 서울과 같은 처지가 돼 납골당 건립이 추진되고 있으나 자치단체의 승인에 막힌 것이다. 대전현충원은 2021년까지 현충원 내 부지 1만 2000㎡에 총면적 9500㎡의 납골당(유해 5만기 수용 규모)을 건립할 계획이나 대전시가 이견을 보여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건립 예산 390억원은 관리기관인 국가보훈처가 이미 확보해 놨다. 1982년부터 안장을 시작한 대전현충원은 현재 12만여기로 3년 뒤 포화상태가 된다. 박현길 현충원 주무관은 “대전은 아직 매장 형식이라 서울보다 선호도가 높아서 매년 4500기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군인, 공무원은 물론 세월호 순직교사와 같은 의사자들도 안장 대상이다. 현충원은 지난해 10월 납골당 건립 계획을 제출했으나 대전시 도시계획심의위원회는 ‘교통 대책이 없다’는 이유로 부결시켰다. 대전시는 극심한 교통 체증을 우려한다. 매년 현충일에 참배객 6만 1000여명이 몰려 현충원 앞 왕복 6차선 도로는 물론 호남고속도로 유성IC, 계룡산 쪽 길 등이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는 것이다. 설·추석 명절에도 하루 1만여명이 찾아 체증이 심하다. 성현영 대전시 도로계획계장은 “지난해 현충일에 시 공무원 등 400여명이 동원돼 3㎞ 떨어진 월드컵경기장에서 현충원까지 셔틀버스 25대를 운행했고, 버스 임대료 등으로 하루 3100만원이 들었다”며 “그런데도 해마다 시민들의 교통 체증 불만이 폭발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시는 납골당을 지으려면 터널 건설 등을 통해 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서 노은동으로 이어지는 왕복 4차선 도로를 신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길이 1.3㎞로 사업비는 300여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국립인 현충원이 국비로 예산을 확보해 지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충원 측은 대전시 입장대로 하려면 묘역을 가로질러 일부 이장해야 하고 묘역을 자꾸 흠집내는 것도 어렵다고 주장한다. 보훈처 관계자는 “현재 다른 현충원 건설계획이 없어 납골당을 짓지 못하면 국가유공자를 받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서울광장] ‘국정농단 공직백서’를 만들라/박찬구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국정농단 공직백서’를 만들라/박찬구 편집국 부국장

    한 조직에서 개인이 감내할 수 있는 부조리의 무게는 얼마일까. 부패와 부도덕에 물든 집단에서 그 구성원의 양심과 상식은 어떻게 굴절되고 얼마나 비루해지는 것일까. 씁쓸한 단상이 잦아진다.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지는, 지난 권력과 그 추종자들의 민낯 앞에서다. 얼마나 많은 한때의 권세가들이 포토라인에 들어섰는지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여전히 당당한, 때로는 억울해하는 표정과 몸짓들이 생경한 잔상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들이 마음대로 부리고 휘젓고 다녔던 공직 사회의 단면들이 오버랩된다. 부정과 불의 앞에 공직 내부의 방어기제는 왜 그리도 허술하게 무너진 것일까. 최고 엘리트 집단의 하나로 꼽히는 공무원 사회에서 말이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그렇다고 한때의 낙인으로 치부한 채 그냥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젠 위에서 시킨다고 무조건 따르면 안 되겠어요.” 국정농단 수사가 한창 진행될 때 모 부처의 국장급 공직자가 동료들과의 사석에서 넉살 좋게 말했다고 한다. 검찰 수사에서 이름이 오르내린 중앙 부처 가운데 하나다. 조직이 내부에서 썩어 갈 동안 일부 공직자들이 국정농단 세력에 적극적으로 부화뇌동하거나 적어도 침묵하며 순응했다는, 뒤늦은 고백에 다름 아니다. 모든 공직자에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한두 사람에게만 국한된 일도 아닐 테다. 차라리 한직으로 밀려나고 바깥을 맴돌더라도 ‘아닌 건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냈다면 공직자로서 자긍심만큼은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잘나가는 선배와 동료들이 침묵하고 방조하며 때로는 적극적으로 국정농단에 가담하면서 주변의 많은 공직자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이성적으로 따질 새 없이 순간순간 막다른 선택에 내몰렸다. 공복(公僕)의 사명감과 소명의식은 유린당하고 피폐해졌다. 그럴수록 일선의 공직 문화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비선과 윗사람의 지시에 따라 업무와 정책의 선후가 바뀌고 조직 내 공정성이 훼손되면서 불통과 보신 행태, 성과 만능주의가 퍼져 나갔다. 중앙 부처의 한 공무원은 얼마 전 익명을 요구하며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CCTV 속에는 보이지 않는 차별과 수직·권위의 소통 방식, 직장 내 괴롭힘과 소외, 희생양을 만드는 이지메 문화…’라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정상적인 조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들이다. 권력과 실세를 좇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비뚤어지고 왜곡된 공직 사회의 그늘이다. 그렇게 공직이 헛도는 사이 낮은 곳의 이웃이나 국민 생활과 밀접한 정책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관심과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외면당했다. 획일적인 등급 분류로 장애인에게 낙인을 찍는 장애인등급제는 지난해 12월에야 가까스로 ‘단계적 폐지’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행정편의에 치우친 제도를 바로잡기까지 장애인들은 5년 남짓 밤낮으로 광화문 지하도 농성장을 지켜야 했다. 세월호 비극 이후에도 안전불감증은 여전해 제천과 밀양 등 곳곳에서 인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촘촘한 안전망을 제대로 갖추기만 했어도 막을 수 있는 비극이었다. 물론 제대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기 위해 서울과 세종을 오가며 녹초가 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비를 들여 가며 힘든 이웃을 돌아보는 공직자도 한둘이 아니다. 공직 사회에 희망을 갖는다면 이들의 숨은 노력과 일상의 헌신 덕분일 테다. 하지만 일부 구성원의 선의만으로 공직 전반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국정농단 시기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스템이 붕괴되고 그로 인해 무슨 문제점이 발생했으며 이를 치유하고 예방하려면 어떤 실천 방안이 필요한지 면밀하게 따져 봐야 한다. 이를 토대로 국정농단 시기의 잘잘못을 담은 ‘공직백서’를 만들어 스스로 경계하며 후대에 뼈아픈 교훈으로 남겨야 마땅한 일이다. 공직박람회를 찾은 한 대학생은 당차게 말했다. “공직이 안정적이라 도전한다구요.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구무언, 초심을 돌아볼 때다. c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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