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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무일 총장, 박종철 열사 부친에게 과거사 사과

    문무일 총장, 박종철 열사 부친에게 과거사 사과

    문무일 검찰총장이 20일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90) 씨가 입원한 병원에 찾아가 과거사에 대해 사과했다. 현직 검찰총장이 과거사 관련 피해자를 직접 만나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문 총장은 이날 오후 공식 일정으로 부산 수영구 ‘남천 사랑의 요양병원’을 방문해 박 씨를 만났다. 문 총장은 상체를 숙여 병상에 누운 박 씨와 눈을 맞추며 “그동안 너무 고생을 많이 시켜드려서 죄송하다”며 “저희가 너무 늦게 찾아뵙고 사과 말씀을 드리게 돼 정말 죄송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긴 세월 고생 많았다.(검사) 후배들이 잘 가꾸어서 제대로 된 나라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총장의 사과에 박 씨는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까 (괜찮다)”고 답했다. 척추 골절로 수술을 받고 지난해 2월 요양차 입원한 박 씨는 거동이 불편해 온종일 누워 지내는 상태다.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던 박 열사의 대학 1년 후배이자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인 이현주(52·여) 씨는 눈물을 쏟았다. 문 총장은 20여 분 간의 병문안 뒤에 병원 1층으로 내려와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었다. 문 총장은 “저희는 1987년의 시대정신을 잘 기억하고 있다.당시는 민주주의냐 독재냐를 놓고 사회적 격론이 이뤄졌고 대학생의 결집된 에너지가 사회 에너지가 됐다”며 “그 시발점이자 한가운데 박종철 열사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후 (박 열사의) 부친께서 아들이 꿈꾸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평생 노력을 다 해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오늘 저희는 새로운 다짐을 하기 위해 이 자리 왔다”며 “과거의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고 이 시대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 사명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이날 현장에는 대검찰청 관계자를 비롯해 박 열사의 형인 종부(59) 씨와 누나인 은숙(55·여) 씨를 비롯해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김세균 회장과 변종준·이강원 이사, 김치하 박종철 30주년 기념행사 추진위원회 기획팀장 등이 함께했다. 1984년 서울대 언어학과에 입학한 박 열사는 사회사상연구회라는 서클에 가입,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1987년 1월13일 자정 무렵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분실(용산구 남영동) 수사관 6명에 의해 연행됐다. 당시 경찰수사관들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운동권 선배인 박종운씨의 행방을 추궁하며 전기고문과 물고문으로 숨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문] 문재인 대통령의 헌법 개정안 발표문

    [전문] 문재인 대통령의 헌법 개정안 발표문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6일 발의를 앞두고 있는 대통령 개헌안 전문(前文)에 4·19혁명,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20일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이와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대통령 개헌안 중 전문과 기본권 부분을 먼저 공개했다.다음은 문재인 대통령의 헌법개정안 발표문 전문이다. ▲개헌 필요성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오는 6월 13일 지방동시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할 것을 주장해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민개헌자문특별위원회의 개헌 자문안을 받는 자리에서 “헌법은 국민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헌법이 국민의 뜻에 맞게 하루빨리 개정되어 국민의 품에 안갈 수 있도록 정치권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헌법을 바꾼 지 벌써 30여 년이 흘렀다. 그동안 IMF 외환위기, 세월호참사를 거치면서 국민의 삶이 크게 바뀌었고, 촛불집회와 대통령탄핵 이후 새로운 대한민국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고 강조했다. ▲기본권 및 국민주권 강화 관련 조항 개헌안의 취지 국민이 중심인 개헌을 지향한다. 국민이 바라는 대한민국은 국민의 자유와 안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는 나라다. 국가는 국민의 뜻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국민들은 국민주권과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을 보여준 바 있다. 따라서 이번 개헌은 기본권을 확대해 국민의 자유와 안전, 삶의 질을 보장하고 직접민주주의 확대 등 국민의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의 개헌이 되어야 한다. ▲헌법 전문 개정안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짐은 물론 법적 제도적 공인이 이미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인 4·19혁명과 함께 부마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명시한다. 다만 촛불시민혁명은 현재 진행 중이라는 측면에서 포함시키지 아니한다. ▲현행 기본권 개선 ◇기본권 주체 확대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는 인권의 수준이나 외국인 200만명 시대의 우리 사회의 모습을 고려해 ‘인간의 존엄성, 행복추구권, 평등권, 생명권,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정보기본권, 학문·예술의 자유’ 등 국가를 떠나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천부인권적 성격의 기본권에 대하여는 그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했다. 다만 직업의 자유, 재산권 보장, 교육권, 일할 권리와 사회보장권 등 사회권적 성격이 강한 권리와 자유권 중 국민경제와 국가안보와 관련된 권리에 대하여는 그 주체를 ‘국민’으로 한정한다. ◇기본권 규정방식 변경을 통한 기본권 강화 선거권, 공무담임권, 참정권에 대하여는 규정형식을 변경하여 법률에 따른 기본권 형성 범위를 축소하여 해당 기본권의 보장을 강화한다. ◇노동자의 권리 강화 및 공무원의 노동 3권 보장 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대우와 양극화 해소,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노동자의 기본권을 획기적으로 강화한다. 일제와 군사독재시대 사용자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수정한다. 국가에게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수준의 임금’ 지급 노력 의무를 부과한다.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고용안정’과 ‘일과 생활의 균형’에 관한 국가의 정책 시행 의무를 신설한다. 노동조건의 결정과정에서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노사 대등 결정의 원칙’을 명시하는 한편 노동자가 노동조건의 개선과 권익보호를 위해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공무원에게도 원칙적으로 노동3권을 인정하면서 현역군인 등 법률로 정한 예외적인 경우에만 이를 제한할 수 있도록 개선한다. 이를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국제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신설되는 기본권 ◇생명권과 안전권 신설 세월호 참사, 묻지마 살인사건 등 각종 사고와 위험으로부터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 이에 헌법에 생명권을 명시하고, 모든 국민이 안전하게 살 권리를 천명하는 한편 국가의 재해예방의무 및 위험으로부터 보호의무를 규정한다. ◇정보기본권 신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자유나 언론·출판의 자유와 같은 소극적 권리만으로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충분히 대처하기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알권리 및 자기정보통제권을 명시하고 정보의 독점과 격차로 인한 폐해의 예방·시정에 관한 국가의 노력의무를 신설한다. ◇성별·장애 등 차별개선노력 의무 신설 국가에 성별·장애 등으로 인해 차별상태를 시정하고 실질적 평등 실현을 위한 노력 의무를 지워 적극적 차별해소 정책 근거를 마련한다. ◇사회안전망 구축 및 사회적 약자의 권리 강화 모든 사회 구성원이 각자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면서 건강하고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사회보장을 국가의 시혜적 의무에서 국민의 기본적 권리로 변경하여 사회보장을 실질화하고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주거권 및 국민의 건강권을 신설한다. 어린이·청소년·노인·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도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는 한편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삭제되는 헌법조항 ◇검사의 영장청구권 조항 삭제 OECD 국가 중 그리스와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헌법에 영장청구주체 규정을 두고 있는 나라가 없다. 이에 다수 입법례에 따라 영장청구주체에 관한 부분을 삭제한다. 검사의 영장청구권 규정을 삭제하는 것은 영장청구 주체와 관련된 내용이 헌법사항이 아니라는 것일 뿐 현행법상 검사의 영장청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검사의 영장청구권 규정이 헌법에서 삭제된다 하더라도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는 현행 형사소송법은 그대로 유효하다. ◇이중배상금지 조항 삭제 군인 등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군인 등의 국가배상청구권 제한 규정은 삭제한다. ▲ 국민주권강화 : 국민발안제와 국민소환제 신설 국회의원은 명백한 비리가 있어도 법원의 확정판결에 따라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기 전까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세월호 특별법’ 입법 청원에 600만명의 국민이 참여했지만 입법발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 헌정사에서는 1954년 헌법에 헌법에 대한 국민발안제만 규정됐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권력의 감시자로서, 입법자로서 직접 참여하고자 하는 국민의 요구에 따라 국민이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과 국민이 직접 법률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직접민주제 대폭확대를 통해 대의제를 보완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는 취지다. ▲국민과 국회에 드리는 간곡한 당부말씀 문 대통령은 “이번 개헌은 기본권 및 국민의 권한을 강화하는 국민 중심 개헌이 되어야 한다”며 “‘국민의 뜻’에 따라 국가가 운영되고 국민 모두가 ‘자유롭고’ ‘안전하게’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대한민국을 상상해 보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헌법이 바뀌면 내 삶이 바뀐다. 개헌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길이 열릴 것”이라고 대국민 메시지를 전했다. 문 대통령은 국회를 향해서는 “기본권 및 국민주권 강화와 관련된 조항들은 이미 국회에서도 대부분 동의한 바 있는 조항들”이라며 “양보와 타협을 통해 국민의 희망을 이루어 주실 것을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 드린다”고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재석, 조용필 데뷔 50주년 축하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아냐”

    유재석, 조용필 데뷔 50주년 축하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아냐”

    방송인 유재석이 ‘가왕’ 조용필의 데뷔 50주년을 축하하며 조용필에 대한 강한 애정이 담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는 20일 오전, 조용필 50주년 기념 축하 영상 ‘50& 50인-유재석 편’을 조용필 공식 홈페이지 및 SNS 채널들을 통해 공개했다. 영상 속 유재석은 “어렸을 때 학교에서 조용필 선배님의 노래를 친구들하고 많이 따라 불렀고, 연말 가요대상에 상을 타실까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학창시절부터 조용필의 열혈 팬이었음을 밝혔다. 특히 자신의 애창곡이 조용필의 ‘단발머리’라고 밝히면서 노래의 후렴구를 흥겹게 따라 불렀고, “이 노래를 초등학교 때 정말 많이 불렀고, 조용필 선배님의 많은 노래 중에서 유독 좋아했던 노래”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유재석은 조용필의 음악에 대해 “세월이 지나도 젊은 사람도 좋아할 만한 리듬과 느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하며, 전세대의 사랑을 받는 조용필 음악의 비결에 대해 꼽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유재석은 “50주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조용필 선배님이 아닌가 싶다”며, “앞으로도 저희를 위해 좋은 노래, 멋진 노래를 계속 해서 들려주셨으면 좋겠다”는 등 조용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응원을 더했다. 또한 조용필은 오늘(20일) 오후 2시, 인터파크 티켓을 통해 오는 5월 12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개최 예정인 조용필의 50주년 기념 투어 ‘땡스 투 유(Thanks to you)’의 서울 공연 티켓을 오픈한다. 조용필의 이번 투어 ‘Thanks to you’는 지난 50년간 조용필의 음악을 사랑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한 공연으로, 긴 시간 쉼 없이 노래할 수 있었기에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던’ 조용필의 진심이 담긴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Thanks to you’ 투어의 연출을 맡은 김서룡 교수(청운대)는 “‘고맙다 말하고 싶은’ 사람은 아티스트 본인만이 아니다. 연출자로서 또 공연을 만드는 모든 스태프들도 조용필의 음악인생을 존경하고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라고 공연을 준비하는 소감을 전했다. 덧붙여 그는 “조용필은 50년 그의 음악을 팬들의 덕으로 돌리며 레퍼토리를 준비했다. 조용필 음악의 역사와 시대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감사하고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축제가 되도록 연출하려 한다”며, 50주년 기념 공연답게 화려하고 감동적인 무대가 될 것을 예고했다.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은 조용필은 50주년 기념 투어 ‘땡스 투 유(Thanks to you)’를 개최, 오는 5월 12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을 시작으로 5월 19일 대구 월드컵경기장, 6월 2일 광주 월드컵경기장 등에서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한편 조용필의 50주년 기념 투어 ‘Thanks to you’의 서울 공연 티켓은 오늘(20일) 오후 2시부터 인터파크 티켓을 통해 예매 가능하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문 대통령 개헌안…5·18 전문에 수록, 국민소환제 신설 의미는

    문 대통령 개헌안…5·18 전문에 수록, 국민소환제 신설 의미는

    청와대가 20일 공개한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에는 한국 사회의 실질적 민주화를 이끈 5·18 광주민주화 운동과 부마항쟁, 6·10 민주항쟁이 헌법 전문으로 수록됐다.문 대통령은 민주이념 계승이라는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 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5·18, 부마항쟁, 6·10 항쟁을 전문에 반영했다. 1987년 9차 개헌 당시 그대로인 기본권 조항 역시 시대상황의 변화를 반영해 기본권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했다. 외국인 200만 시대를 맞은 우리 사회의 변화에 맞게 국적에 관계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천부인권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 반영된 것이다.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바꾼 것도 의미있는 대목이다. 근로는 일제와 군사독재시대 사용자의 관점에서 사용됐던 용어다. 공무원의 노동3권을 원칙적으로 인정한 것은 공무원이 갖는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확인하는 의미를 갖는다. 현행 헌법 33조2항은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예외적으로만 노동3권을 허용하고 있다.국민의 생명과 안전 최우선하는 정부 역할 강조 무엇보다 생명권·안전권·정보기본권·주거권·건강권을 신설함으로써 기본권을 향상시켰다. 모든 국민이 안전하게 살 권리를 헌법에 천명하고 국가의 재해예방의무와 위험으로부터 보호의무를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정보기본권의 등장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자유나 언론·출판의 자유와 같은 소극적 권리만으로는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충분히 대처하기 어렵다는 상황인식에 터잡은 것으로, 알 권리와 자기정보통제권을 명시한 것이 핵심이다. 주거권과 건강권은 사회보장을 국가의 시혜적 의무에서 국민의 기본적 권리로 변경했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가진다. 이번 개헌안에서 기소독점주의를 상징하는 검사의 영장청구권 조항이 삭제된 점도 특별한 점이다. 이는 헌법에 영장 청구 주체 규정을 두지 않고 있는 주요 선진국들의 입법례에 따른 것으로, 비록 헌법에서 빠지더라도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는 현행 형사소송법은 그대로 유효하다는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는 영장청구를 검사 외의 다른 주체가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뒀다는 점에서 향후 검경 수사권 조정과 맞물려 주목된다.국민발안제·국민소환제 신설로 직접참여 폭 확대 국민발안제와 국민소환제를 신설함으로써 국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폭을 확대하게끔 했다. 국회의원은 명백한 비리가 있어도 법원의 확정판결에 따라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기 전까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치외법권적 ‘특권’을 더이상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세월호 특별법 입법청원에 600만 명의 국민이 참여했지만 입법 발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청와대는 지적했다. 이에 따라 헌법에 대해서만 국민발언제를 허용하는 기존 조항을 바꿔 국민이 입법자로서 직접 법률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권력의 감시자로서 국민이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조국 수석은 “이번 개헌은 기본권과 국민의 권한을 강화하는 국민 중심의 개헌”이라고 강조하고 “국민의 뜻에 따라 국가가 운영되고 국민 모두가 자유롭고, 안전하게,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대한민국을 상상해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윤하의 라이너노트] 추억을 소환한 ‘재결합’… 그러나 씁쓸한

    [김윤하의 라이너노트] 추억을 소환한 ‘재결합’… 그러나 씁쓸한

    가요계에 재결합만큼 달콤한 유혹은 없다. 과거의 한 시기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던 이들이 있고, 그들이 가장 빛나던 한때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대상과 대중 사이 애정과 시간이 만든 서사가 차곡차곡 쌓이고, 그사이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약 없는 희망의 씨앗이 자리를 잡아 자라난다. 그렇게 자라난 꽃과 열매가 담은 향기와 맛은 재결합의 대상이 활동 당시 얻었던 인기만큼 짙고 이별이 급작스러웠던 만큼 달다.가요계에 본격적인 ‘재결합 붐’을 가져온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는 그런 재결합 카드가 가진 힘의 원천을 정확히 꿰뚫은 기획이었다. 2014년 터보, 쿨, 지누션, 김현정, 이정현, 조성모, 김건모 등 9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을 중심으로 선보인 첫 번째 시리즈가 한국 대중음악계에 끼친 영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토토가를 통해 오랜만에 방송을 찾은 추억의 가수들이 총출동했던 마지막 무대는 순간 최고 시청률 35%를 넘겼고, 프로그램 종영 후 각종 음원 사이트는 추억의 90년대 히트곡들로 도배됐다. 무편집 공연 영상이 따로 편성돼 방영됐고, 음악 순위 프로그램 차트 상위권도 이들의 차지였다. 심지어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았던 가수들까지 한 세대 앞선 7080 통기타 음악가들이 그랬듯, 한데 어울려 모여 방송에 나오거나 합동 공연을 열기도 했다.동일한 콘텐츠를 활용해 이 이상의 흥행을 이끌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여길 즈음, 젝스키스가 등장했다. ‘토토가2’(2016)를 통해 무려 16년 만에 부활한 이 1세대 아이돌 그룹이 전한 열기는 ‘토토가1’의 고르고 넓은 반향과는 궤를 달리했다. 짧지 않은 세월, 이들과의 기억을 여전히 가슴에 품고 있던 팬들은 빠르고 강하게 결집했고, 그 기세는 젝스키스가 데뷔한 지 한참 후에 태어난 10대 팬층까지 흡수했다. 예상관객 5000명을 훌쩍 넘어선 팬들 앞에서 다시 한번 하나의 모습으로 선 이들은, 방송 종료 후 정식 재결합을 선언하며 YG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었다. 추억 되짚기를 넘어선 ‘추억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이러한 결과는 올해 2월 H.O.T의 재결합마저 성사시켰다. 무한도전 제작진의 삼고초려가 낳은 역사적 순간이자 첫 기획 이후 5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유효한 재결합 카드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향기로운 추억에만 한없이 젖어 있을 수 있다면 행복하겠지만, 현실은 전혀 녹록하지 않았다. 재결합을 기다린 이들의 간절함, 실제로 재결합이 이루어진 순간의 짜릿함을 제하고 나면 다시 만난 세계가 남기고 간 뒷맛은 모조리 쓴맛뿐이다. 긴 공백을 딛고 다시 대중 앞에 선 이들의 대부분은 과거의 영광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급급했고, 재결합 후 신곡을 발표한 터보와 NRG는 자신들의 전성기 스타일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오히려 퇴보한 인상을 전했다. 대형 소속사와의 계약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던 젝스키스 역시 스페셜 싱글, 리믹스 앨범, 정규 5집 발매까지 활발한 활동을 보였지만 높은 판매량에 미치지 못하는 (음악적) 결과물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원조 아이돌 그룹’이라는 별명으로 자주 소환되던 그룹 소방차는 멤버 이상원의 개인 파산 선고 후 채권자 가운데 같은 멤버인 김태형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재결합이 사실상 무산되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이들이 다시 만난 건,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오는 22일, 삼인조 그룹 솔리드가 1997년 4집(Solidate) 발표 이후 21년 만에 새 음반을 발표한다. 많은 이들이 기다리던 또 하나의 재결합이 이루어진 셈이다. 추억을 되살린다는 게, 그리운 사람들이 다시 만난다는 게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모두가 알아버린 지금. 이제부터의 가요계 재결합 논의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결과와 방향으로부터 시작되어야만 할 것이다. 대중음악평론가
  • ‘세월호 보고조작 의혹’ 방문조사 시도, 박근혜 거부로 무산

    ‘세월호 보고조작 의혹’ 방문조사 시도, 박근혜 거부로 무산

    검찰, 현재까지 수사 내용만으로 세월호 당일 행적 등 밝힐 예정 세월호 참사 보고시간 조작 의혹과 관련, 검찰이 1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하려 시도했으나 무산됐다.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자용)는 이날 오후 신자용 부장검사가 직접 서울구치소를 찾아 박 전 대통령을 면담했으나 박 전 대통령의 거부로 조사를 진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은 현재까지의 수사 내용만을 바탕으로 보고시간 조작 의혹의 결론과 박 전 대통령의 참사 당일 행적 등을 조만간 밝힐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사고 발생일인 2014년 4월16일 오전 10시 30분쯤 세월호 참사 첫 보고를 받았지만 이후 ‘늑장대응’ 비판이 일자 청와대가 나중에 보고시간을 오전 10시로 무단 수정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전 정부의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세월호 사고 발생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최초의 보고서인 ‘진도 인근 여객선(세월호) 침수, 승선원 474명 구조작업중(1보)’에 나온 보고시각을 ‘2014년 4월 16일(수) 09:30’에서 ‘2014년 4월 16일(수) 10:00’으로 사후 수정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그간 김관진·김장수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을 공개 소환해 조사했다. 김관진 전 실장의 경우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계 잊은 그들, 잊지 못할 열정… 뜨거웠던 열흘간의 축제

    한계 잊은 그들, 잊지 못할 열정… 뜨거웠던 열흘간의 축제

    빗속 반다비 12마리 카운트다운 황연대 성취상에 애덤 홀·시니 피 다음 대회 베이징 10분간 공연 “장애를 극복한 모습에 큰 감명”빗방울이 떨어지는 가운데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을 지키던 평창동계패럴림픽 대회기가 게양대에서 내려왔다. 대회기는 심재국 평창군수의 손에서 시작해 앤드루 파슨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위원장을 거쳐 차기 대회 개최지인 중국 베이징의 천지닝 시장에게 건네졌다. 이희범 평창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장은 폐회 연설에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 서로 잊지 말자’는 의미의 장무상망(長毋相忘)을 강조했다. 이윽고 대회를 빛낸 환희와 감동의 순간들이 화면에 등장하더니 김수연 명창의 구슬픈 소리와 함께 성화 불씨가 자취를 감췄다. 열흘간 뜨거웠던 축제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우리가 세상을 움직이게 한다’(We Move the World)를 주제로 한 평창패럴림픽 폐회식은 18일 평창 올림픽플라자에서 마스코트인 반다비 12마리의 카운트다운과 함께 시작됐다. 대회 6종목을 대표하는 한국 선수들이 태극기를 들고 입장해 게양한 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인 ‘영월동강합창단’과 함께 애국가를 불렀다. 이어 김창완 밴드가 아리랑 연주를 펼치며 80여명의 연기자가 올림픽 때보다 일부러 작게 꾸며진 무대에서 뒤섞여 하나가 되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1988년 서울장애인올림픽에서 처음 만들어진 황연대 성취상이 30년 세월을 지나 다시 이 땅에서 수여되는 의미 있는 시간도 있었다. 한국인 최초 장애인 여의사로서 한국 장애인 재활운동에 평생을 헌신한 황연대(80) 박사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이 상의 평창 대회 수상자는 애덤 홀(31·뉴질랜드)과 시니 피(29·핀란드)였다. 황연대 박사는 수상자들에게 직접 메달을 걸어 줬다. 30주년을 맞이해 역대 수상자들의 대표 6명이 “박사님이 쌓으신 유산을 이어 나가겠다”며 황연대 박사에게도 감사패를 전달했다.차기 대회 개최지인 베이징을 소개하는 문화공연도 펼쳐졌다. 장애인 선수들의 경기 장면이 전광판에 비치더니 휠체어를 탄 소녀가 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꽃을 형상화한 무용을 펼친 뒤 “베이징에서 만나자”고 말하며 10분간의 공연을 마쳤다. 이날 폐회식장에는 줄곧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3월 중순임에도 체감 온도가 0도까지 떨어졌다. 쌀쌀한 날씨지만 3만 5000여석을 빼곡히 채운 관객들은 열흘간 격정을 쏟은 선수들에게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다. 김요한(40)씨는 “장애인 선수들이 비장애인 선수보다도 박진감 넘치고 격렬한 경기를 선보여서 정말 멋졌다”며 “장애를 극복하고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큰 감명을 느낄 수 있는 뜻깊은 대회였다”고 말했다. 평창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평창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이영하에게 36년 전 성추행당해”…미스코리아 출신 여배우 ‘미투’

    “이영하에게 36년 전 성추행당해”…미스코리아 출신 여배우 ‘미투’

    배우 이영하에게 36년 전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가 나왔다.18일 TV조선 뉴스7에는 1980년대 이영하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등장했다. 앞서 이날 낮 조선일보와의의 인터뷰를 통해 과거 성폭력 피해를 털어놓은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김모씨다. 인터뷰에 따르면 1980년대 초반 미스코리아 전속이 끝나고 방송사 공채 탤런트에 합격해 연예계 데뷔를 앞둔 김씨는 여의도 야외에서 배우 이영하씨와 가을 의상 화보 촬영을 했다. 당시 김씨는 대학에 막 입학한 나이였다. 이미 유명한 배우였던 이영하씨는 먼저 촬영을 끝내고 떠난 뒤 김씨에게 따로 연락해 심부름을 시키면서 여의도의 한 관광호텔로 오라고 했다. 김씨는 집도 여의도이고 호텔 로비 커피숍에서 만나겠거니 하고 갔다가 호텔 방으로 올라오라는 연락을 받고 방에 올라갔다. 방에 들어갔을 때 이영하씨에게서 술냄새가 났던 것으로 김씨는 기억했다. 김씨에 따르면 이영하씨는 강압적으로 김씨를 침대에 눕혀 목과 가슴을 압박하고 온 몸을 더듬으면서 청바지를 벗기려고 했다. 김씨가 “저 좀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부탁입니다”라고 애원했지만 이영하씨는 멈추지 않고 온몸으로 김씨를 짓눌렀다. 현재 50대 중반인 김씨는 이 일이 36년 전 일이라고 했다. 김씨는 그간 이영하씨나 그 아내를 TV 등 매체에서 볼 때마다 무척 힘들고 눈물이 났다고 전했다. 당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도망쳐서 집에 온 김씨는 어머니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어머니는 “지금 당장 쫓아가겠다”고 했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뭘 어쩌지 못 했다고 했다. 문제는 이영하씨와 계속 마주쳐야 했다는 점이다. 그 일을 당한 지 몇달 뒤 김씨는 이영하씨와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게 됐다. 드라마 대본 연습 때 자신을 본 이영하씨가 당황한 표정이었다고 김씨는 기억했다. 신인인데다 공채 탤런트로서 첫 출연작이라 드라마를 안할 수도 없었다. 당시 드라마 배역에 따라 친인척 호칭으로 이영하씨를 불러야 했다고 김씨는 떠올렸다. 드라마 촬영 기간은 김씨에게 고역의 나날이었다. 이영하씨가 또래 남자 배우들과 키득키득 웃기라도 하면 김씨는 괜시리 주눅이 들었다. 그게 너무 괴로워서 나중에 연습에 참가하지 않다보니 작가에게 미운털이 박히기도 했다. 결국 종영을 앞두고 김씨가 먼저 작가에게 드라마 하차를 부탁했다. 더 끔찍한 일은 동료 여자 연예인과 결혼한 이영하씨의 집들이에 간 일이었다. 회식 자리며 그 부부가 애를 낳았을 때에도 갈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이런 데도 와야 되는 거구나. 이런 데 와 있는 게 맞나. 이게 정상인가’라고 생각하며 비참해했다. 그런 자리를 빠지면 따돌림을 당하는 분위기라 빠질 수 없었다고 했다.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밝게 대답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김씨는 전했다. 결국 김씨는 드라마보다는 오락 프로그램에 눈을 돌렸고, 가요 프로그램 MC로도 활동했다. 그러다가 김씨를 아끼던 한 PD의 드라마에 캐스팅됐는데 하필이면 이영하씨의 아내가 함께 출연하게 됐다.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이후에는 이영하씨나 그 아내가 출연하지 않은 단막극에만 출연했다. 지금도 회자되는 장수 드라마 출연도 여러 번 제안받았지만 할 수 없었다. 김씨는 결국 연예계를 떠났다. 이 일을 묻어두지 말자고 결심하게 된 건 딸 때문이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딸과는 비밀이 없는 사이라 딸도 오래 전 이 일을 알고 있었다. 최근 비슷한 일들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김씨는 딸에게 “그 일이 생각난다. 채널 돌리자”라고 했다. 이에 딸은 “엄마 아픈 거 싫다. 이건 엄마가 해야 한다”고 엄마를 설득했다. 딸에게 피해가 갈까봐 걱정하는 엄마에게 딸은 “엄마가 편해야지. 지금까지도 많이 아팠는데 엄마가 앞으로도 아프면 어떻게 해”라고 용기를 줬다. 그래서 김씨는 최근 이영하씨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피해를 겪었던 일을 언급하며 아직도 고통스럽고 잊혀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영하씨가 보내온 답장에 김씨는 분노했다. 이영하씨는 “정말 오래간만이네요! 35년 됐나요? 얼굴 보고 식사라도 하며 사과도 하며~ 편한 시간 주시면 약속 잡아 연락드릴게요”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 말에 화가 난 김씨가 답장을 하지 않자 이영하씨는 재차 “진심을 담아 사과하고 싶네요. 너무 힘들어 꼼짝 못하고 누워 있네요!”라고 답을 보내왔다. 김씨는 “나는 지난 세월 얼마나 아팠는데, 지금 ‘너무 힘들고 아파서 누워 있다’라니. 어쩌라는 건가? 그건 이영하씨 몫이지 왜 내가 그것까지 생각하고 배려해야 하나. 식사하자고요? 그게 사과인가요?”라며 분노했다. 김씨는 “시간이 길면 너무 아프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이제는 해야 한다”면서 “(이 일을 이야기한 지금은) 편하다. 이야기에 귀 기울여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이영하씨와 매니저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했지만 “외국에 가 있어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답만 받았다고 전했다. 이영하씨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 사진을 올렸다가 성추행 폭로 이후 사진을 돌연 삭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부 탤런트로 유명했던 남자배우도 미투 폭로당해

    부부 탤런트로 유명했던 남자배우도 미투 폭로당해

    부부 탤런트로 유명했던 남자 배우에게 성폭력 의혹이 제기됐다.18일 조선일보는 1980년대 미스코리아 대회에 입상해 방송사 공채 탤런트로 활동한 김현미(가명)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김씨가 겪었던 성폭력 피해를 보도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1980년대 초반 미스코리아 전속이 풀려 연예계 데뷔를 앞둔 김씨는 여의도 야외에서 문제의 남자 배우 A씨와 가을 의상 화보 촬영을 했다. 당시 김씨는 대학에 막 입학한 나이였다. 이미 유명한 배우였던 A씨는 먼저 촬영을 끝내고 떠난 뒤 김씨에게 따로 연락해 심부름을 시키면서 여의도의 한 관광호텔로 오라고 했다. 김씨는 집도 여의도이고 호텔 로비 커피숍에서 만나겠거니 하고 갔다가 호텔 방으로 올라오라는 연락을 받고 방에 올라갔다. 방에 들어갔을 때 A씨에게서 술냄새가 났던 것으로 김씨는 기억했다. 김씨에 따르면 A씨는 강압적으로 김씨를 침대에 눕혀 목과 가슴을 압박하고 온 몸을 더듬으면서 청바지를 벗기려고 했다. 김씨가 “저 좀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부탁입니다”라고 애원했지만 A씨는 멈추지 않고 온몸으로 김씨를 짓눌렀다. 현재 50대 중반인 김씨는 이 일이 36년 전 일이라고 했다. A씨는 나중에 다른 여자 배우와 결혼했다. 김씨는 그간 A씨나 그 아내를 TV 등 매체에서 볼 때마다 무척 힘들고 눈물이 났다고 전했다. 당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도망쳐서 집에 온 김씨는 어머니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어머니는 “지금 당장 쫓아가겠다”고 했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뭘 어쩌지 못 했다고 했다. 문제는 A씨와 계속 마주쳐야 했다는 점이다. 그 일을 당한 지 몇달 뒤 김씨는 A씨와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게 됐다. 드라마 대본 연습 때 A씨가 김씨를 보고 당황한 표정이었다고 김씨는 기억했다. 신인인데다 공채 탤런트로서 첫 출연작이라 드라마를 안할 수도 없었다. 당시 드라마 배역에 따라 친인척 호칭으로 A씨를 불러야 했다고 김씨는 떠올렸다. 드라마 촬영 기간은 김씨에게 고역의 나날이었다. A씨가 또래 남자 배우들과 키득키득 웃기라도 하면 김씨는 괜시리 주눅이 들었다. 그게 너무 괴로워서 나중에 연습에 참가하지 않다보니 작가에게 미운털이 박히기도 했다. 결국 종영을 앞두고 김씨가 먼저 작가에게 드라마 하차를 부탁했다. 더 끔찍한 일은 동료 여자 연예인과 결혼한 A씨의 집들이에 간 일이었다. 회식 자리며 그 부부가 애를 낳았을 때에도 갈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이런 데도 와야 되는 거구나. 이런 데 와 있는 게 맞나. 이게 정상인가’라고 생각하며 비참해했다. 그런 자리를 빠지면 따돌림을 당하는 분위기라 빠질 수 없었다고 했다.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밝게 대답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김씨는 전했다. 결국 김씨는 드라마보다는 오락 프로그램에 눈을 돌렸고, 가요 프로그램 MC로도 활동했다. 그러다가 김씨를 아끼던 한 PD의 드라마에 캐스팅됐는데 하필이면 A씨의 아내가 함께 출연하게 됐다.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이후에는 A씨나 그 아내가 출연하지 않은 단막극에만 출연했다. 지금도 회자되는 장수 드라마 출연도 여러 번 제안받았지만 할 수 없었다. 김씨는 결국 연예계를 떠났다. 이 일을 묻어두지 말자고 결심하게 된 건 딸 때문이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딸과는 비밀이 없는 사이라 딸도 오래 전 이 일을 알고 있었다. 최근 비슷한 일들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김씨는 딸에게 “그 일이 생각난다. 채널 돌리자”라고 했다. 이에 딸은 “엄마 아픈 거 싫다. 이건 엄마가 해야 한다”고 엄마를 설득했다. 딸에게 피해가 갈까봐 걱정하는 엄마에게 딸은 “엄마가 편해야지. 지금까지도 많이 아팠는데 엄마가 앞으로도 아프면 어떻게 해”라고 용기를 줬다. 그래서 김씨는 최근 A씨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피해를 겪었던 일을 언급하며 아직도 고통스럽고 잊혀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나 A씨가 보내온 답장에 김씨는 분노했다. A씨는 “정말 오래간만이네요! 35년 됐나요? 얼굴 보고 식사라도 하며 사과도 하며~ 편한 시간 주시면 약속 잡아 연락드릴게요”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 말에 화가 난 김씨가 답장을 하지 않자 A씨는 재차 “진심을 담아 사과하고 싶네요. 너무 힘들어 꼼짝 못하고 누워 있네요!”라고 답을 보내왔다. 김씨는 “나는 지난 세월 얼마나 아팠는데, 지금 ‘너무 힘들고 아파서 누워 있다’라니. 어쩌라는 건가? 그건 A씨 몫이지 왜 내가 그것까지 생각하고 배려해야 하나. 식사하자고요? 그게 사과인가요?”라며 분노했다. 김씨는 “시간이 길면 너무 아프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이제는 해야 한다”면서 “(이 일을 이야기한 지금은) 편하다. 이야기에 귀 기울여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A씨와 매니저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했지만 “외국에 가 있어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답만 받았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국가기록물 엄정 관리 만시지탄이다

    국가기록원은 앞으로 중대 사건의 기록물이 파기되지 못하도록 관련 기관에 제동을 거는 ‘기록처분동결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어제 이런 내용을 담은 국가기록물 관리 혁신안을 발표했다. 이는 5·18 민주화운동 등 역사적 사건의 관련 기밀자료를 기무사가 모두 불태웠다는 문건 등이 드러나면서 더 엄격한 국가기록물 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역사의 현장 기록들이 어떤 통제도 받지 않고 제멋대로 파기된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기록원이 뒤늦게라도 나선 것은 다행이다. 중요한 사건이라도 당시에는 정치적 이유로 진실이 왜곡되거나 파묻힐 수 있다. 하지만 후대에라도 진상을 밝히려면 원자료가 있어야 하는 만큼 기록물의 폐기 움직임이 있으면 바로 중단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관련법이 시급히 개정돼야 한다. 사실 국가기록물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로의 이지원(문서관리시스템) 이관, NLL 대화록 유출 등 대통령 기록물을 둘러싸고 얼마나 나라가 떠들썩했는가. 얼마 전에도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한 건물 창고에서 청와대 문건이 다수 발견돼 충격을 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세월호 7시간 의혹’ 등과 관련된 문건들을 서둘러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해 논란이 됐다. 대통령 유고 때의 기록물 관리 규정이 미비하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현 정부 출범 초 청와대 캐비닛에서 전 정부의 기록물이 수천 건 나오기도 했다. 특히 기록원은 대통령 기록물을 놓고 벌어진 혼란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 원장이 “ ‘봉하 이지원 이관’, ‘NLL 대화록’ 등 기록으로 촉발된 정치적 사건에서 해당 사안이 올바른 방향으로 논의되도록 안내해야 할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반성한 이유다. 기록원의 중립적·전문적인 일 처리도 중요하지만 먼저 기록물을 생산하는 기관들이 기록물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청와대, 국정원 등 권력기관에서 생산하는 기록물은 기록원으로 이관되기까지 투명하게 관리하고 엄격히 다뤄야 한다. 또한 폐기돼도 기록원이 관여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다. 국가기록물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근거 없이 파기하거나 사적으로 보관할 경우 엄한 처벌이 따라야 할 것이다.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99세 철학자’의 건강한 노년… “100을 할 수 있으면 90에서 멈추세요”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99세 철학자’의 건강한 노년… “100을 할 수 있으면 90에서 멈추세요”

    한국은 전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다. 앞으로 7~8년 뒤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국가와 사회 차원의 대책 못지않게 개인도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시대다. 한국 1세대 철학자이자 명수필가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올해 백수(白壽·99세)를 맞았다. 100세가 코앞인 요즘도 일주일에 두어 번 강연을 하고, 신문사 두 곳에 칼럼을 연재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팡이도 아직은 필요 없고, 보청기의 도움도 받지 않는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지만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유지하면서 일도 계속할 수 있는 축복을 누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건강한 노년의 삶을 영위하는 비결이 궁금했다. 최근 출간한 산문집 ‘남아있는 시간을 위하여’를 핑계로 인터뷰를 청했다.-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시나요. “아침 6시쯤 일어나서 신문 읽고, TV뉴스 보다가 집 뒤 야산으로 산책을 갑니다. 한 50분쯤 걸으면서 원고나 강연 내용을 구상해요. 동네 주민들이 내가 걷는 산책로를 ‘철학자의 길’이라고 부른다더군요(웃음). 점심 먹고 오후에는 책을 읽고, 원고를 씁니다. 저녁에는 강연을 하거나 강연이 없는 날엔 책을 읽어요. 그리고 밤 11시쯤 잠자리에 듭니다. 일주일에 두 번 수영도 하고요. 30여년 전 정년퇴직하기 전이나 똑같아요.” 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나 일본 조치대 철학과를 졸업한 김 교수는 1947년 월남해 서울 중앙고 교사를 거쳐 1954년부터 1985년까지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남4녀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노모, 병석에 누운 아내와 셋이 살다 두 여인을 차례로 떠나보내고 나선 17년째 연희동 집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가장 행복했던 때는 70대 중반이었죠” -남다른 건강 비결이라도 있으신가요. “신체적인 건강은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평소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긴장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적당한 운동과 일이 있어야 해요. 50대까지는 바빠서 운동을 못 하다가 50대 후반에서야 가벼운 운동 하나 해야겠다 싶어서 시작한 게 수영이에요. 아무리 피곤해도 수영을 하고 나면 다 풀려요. 그래도 무리는 안 합니다. 좀더 하고 싶을 때 그만두는 게 철칙이죠.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것도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운동은 건강을 위해서 하고, 건강은 일을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거예요. 일도 무리해서 하지는 않아요. 100을 할 수 있으면 90 정도에서 멈춥니다. 항상 여유를 두는 게 내 생활의 특징이라고 할까요.” 어릴 적 그는 유난히 몸이 약했다. 모친은 “우리 장손이 스무 살까지만 사는 것을 봤으면 좋겠다”며 노심초사했다. 건강에 자신이 없다 보니 과로나 무리를 하지 않았다. 매사 절제하고 조심하는 게 습관이 됐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십 년, 이십 년을 살다 보니 어느덧 100세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번 산문집 제목이 ‘남아있는 시간을 위하여’입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90이 넘으니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 심지어 후배와 제자들도 먼저 보내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제는 남은 게 세월이 아니고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시간 동안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어머니와 아내가 떠났을 땐 외로움과 서글픔 속에서도 두 분에게 받은 사랑을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새 출발을 했어요. 50년 지기인 김태길 교수와 안병욱 교수, 두 친구가 옆에 있어서 힘이 됐죠. 그런데 두 친구마저 떠나고 나니 세상이 비어 버린 것 같아요. 그래도 아직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에는 산문 25편이 실렸다. 표제작 ‘남아있는 시간을 위하여’는 새로 쓰고, 나머지는 지금까지 쓴 글 가운데 골랐다. 김 교수는 1960~70년대 김태길(1920~2009) 서울대 교수, 안병욱(1920~2013) 숭실대 교수와 함께 ‘철학자 겸 수필가’ 트로이카로 불렸다. 첫 수필집 ‘고독이라는 병’과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당대 젊은이들의 필독서로 통했다. 재작년 출간한 ‘백년을 살아보니’는 13만부가 팔렸다. -인생에서 어느 시기가 가장 좋으셨나요. “가장 행복했던 때는 70대 중반이에요. 내가 나를 믿어 줄 수 있는 성숙한 시기였죠. 김태길, 안병욱 교수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시절이 언제인지 얘기한 적이 있는데 60세에서 75세 사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봤어요. 사람은 누구나 노력하면 75세까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아요. 우리 사회는 일찍 성장을 포기하고, 빨리 늙어 버립니다. 우리 셋은 90이 다 돼서도 늙었다는 얘기를 안 했어요.”●“항상 여유 두는 게 내 생활의 특징” -어떻게 하면 덜 늙을 수 있나요. “감정이 풍부해야 합니다. 안 교수는 공부, 여행, 연애 3가지를 하면 늙지 않는다고 했는데 마찬가지예요. 예술가들이 상대적으로 젊게 사는 이유도 정서적으로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젊을 때 문학작품을 많이 읽으세요.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보는 것도 좋습니다. 예술적 정서를 모르는 사람은 어딘가 비어 있어요. 잘 쓴 글이라도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읽고 싶은 마음이 안 생깁니다.” -행복의 정의나 기준은 무엇인가요. “행복은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지 누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백 사람이 백 가지 행복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죠. 개인적으론 일이 즐겁고, 항상 여유를 갖고 사는 게 행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버스 기사에게도 먼저 인사합니다” -노년의 지혜라고 할까요, 인생 선배로서 팁을 주신다면요. “나이 들어서 가까운 사람들이 멀리하면 큰일입니다. 그렇게 안 되려면 뭐든 주변 사람보다 나은 점을 보여 줘야 합니다. 나는 가족들과 외식할 때 식당 종업원에게 꼭 고맙다고 인사를 해요. 손자들이 그걸 보고 놀랍니다. 버스 기사에게도 먼저 인사를 건네요. 젊은이들이 버릇없다고 불평하는데 우리가 모범을 보여 주지 못한 잘못도 큽니다. 사회생활 여러 분야에서 좀더 나이 든 사람들이 후배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모범은 얼마든지 있고,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책임이기도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취업, 결혼, 출산 등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고 있습니다.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으신가요. “우리가 병을 만들고, 우리가 앓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정치가 풀 수 있는 부분은 적극 해결하고, 개인도 내 인생을 어떻게 살지 충분히 고민해야 합니다.”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으신가요. “6년 전쯤인가 자다가 문득 깨서 이런 메모를 남겼어요. ‘나에게는 두 개의 (길잡이) 별이 있었다. 하나는 진리에 대한 그리움, 다른 하나는 겨레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 짐은 무거웠지만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행복했다.’ 나를 위해서 사는 건 남는 게 없어요. 돈, 명예 다 남지 않지만 민족과 국가를 걱정하는 마음은 남습니다. 더불어 살아야 행복합니다. 이웃과 나라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아직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1시간 40분 동안 쉼 없이 얘기를 하고서도 김 교수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인터뷰 내내 잔잔한 미소와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오래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다는 당연한 진리를 김 교수는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모범이 되는 원로의 존재가 많아질수록 고령사회는 재앙이 아닌 축복에 더 가까워지리라. coral@seoul.co.kr ■김형석 교수는 ▲1920년 평안남도 대동 출생 ▲1943년 일본 조치대 철학과 졸업 ▲1947년 월남 ▲1947~54년 서울 중앙중·고 교사 ▲1954~85년 연세대 철학과 교수 ▲1990년 제1대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회장 ▲2011년 한림대 일송기념사업회 일송상▲2016년 제12회 유일한상 ▲주요 저서: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 ‘현대인의 철학’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백년을 살아보니’
  • [태극전사 스토리] 北서 다리 잃고 韓선 마음의 상처…‘꽃제비 남매’ 희망의 아이스하키

    [태극전사 스토리] 北서 다리 잃고 韓선 마음의 상처…‘꽃제비 남매’ 희망의 아이스하키

    “경기 도중 저격당하는 것 아니냐고 하던데요.” 장애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최광혁(31)의 여동생 은경(28)씨는 이렇게 말하며 살짝 웃었다. 오빠와 알고 지내는 이가 던진 농담을 떠올린 것이다.●국대 선발 후 펑펑 울어… 체코전 데뷔 탈북자인 최광혁이 태극기를 가슴에 새기고 평창패럴림픽에 나가니 북한에서 해코지할 수도 있겠다는 우스갯소리였다. 정작 최광혁은 국가대표에 선발된 뒤 홀로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지난 11일 체코전에서 패럴림픽 데뷔 무대를 치른 뒤엔 “대한민국 선수로 뛰어 승리(3-2)해 영광스러웠다”며 감격했다. 최광혁은 먼 길을 돌아 태극 마크를 달았다. 1987년 함경북도 화성에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일곱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해 각자 탈북 길에 올랐다. 아홉 살 때부터 먹을 것을 찾아 유랑하는 ‘꽃제비’ 생활을 하던 중 여동생이 단속에 걸려 고아원으로 가면서 헤어졌다. 30년 남짓한 삶에서 가장 쓰린 사건은 2000년 5월 발생했다. 함북 청진역 부근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무거운 통을 들고 누비다 기차 바퀴에 왼발이 깔려 뭉개졌다. 마취도 없이 수술을 해 왼쪽 무릎 아래를 절단했다. 13세 소년이 홀로 견디긴 어려운 고통이었다. ●13세때 기차 바퀴에 왼발 뭉개져 ‘꽃제비’로 돌아가 힘겨운 나날을 보낼 무렵 한 브로커가 접근했다. 먼저 탈북한 아버지가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에 선뜻 그를 따라나섰다. 아이를 데려다 장기를 판매한다는 괴소문이 돌았지만 ‘어차피 죽어도 그만’이라고 여겼단다. 중국을 거쳐 2001년 8월 남쪽 땅을 밟았다. 은경씨도 얼마 뒤 삼촌과 함께 북한을 떠나 오빠와 만났다. 감격적인 상봉을 예상했지만 은경씨는 “다시 만나고도 굉장히 어색했다”고 돌아봤다. 너무 어릴 때 헤어져 나눌 추억을 찾을 수 없었다. 처음엔 오빠의 의족을 눈치 못 채 ‘왜 절뚝거리지’라고 궁금했다고 한다. ●여동생 “아버지 재혼… 함께 못 살아” 은경씨는 “당시엔 부모님을 많이 원망했다. 더군다나 재혼한 아버지에게 자녀가 생기면서 한국에 와도 함께 살지 못하게 됐다. 탈북해서도 보살핌을 못 받자 불만만 쌓였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광혁은 한국에서도 방황했다. 탈북과 장애를 대하는 곱잖은 시선에 괴로워 자꾸 움츠러들었다. 학업을 멀리하고 목표를 잃은 채 게임으로 세월을 보냈다. 한국복지대 의료보장구학과에 진학한 최광혁은 주변 소개로 2014년 아이스하키에 입문하며 확 달라졌다. 목표가 생기자 무섭게 몰두했다. 2016년 강원도청 입단에 이어 지난해 7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보란 듯이 경쟁을 뚫었다. 은경씨는 “골초에다 술꾼이었는데 담배를 끊고 술도 조절한다.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것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날 듯하다”고 귀띔했다. 또 “언젠간 물을 갖다 달라는 오빠에게 ‘손이 없냐 발이 없냐’고 대들자 ‘다리가 없으니까 떠 달라’고 농담을 하더라. 힘든 일이 많았으니 이젠 웃었으면 좋겠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강릉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국가 중요기록물 대통령도 폐기 못한다

    국가 중요기록물 대통령도 폐기 못한다

    국가기록원이 지난 정부에서 기록관리 전문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며 신뢰를 회복하고자 철저히 반성하고 혁신하겠다고 사과했다. 국가기록물 관리혁신을 위한 ‘기록처분 동결 제도’ 등 여러 가지 추진 과제도 내놨다.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국가기록원의 약속’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 원장은 “국가기록원은 봉하 이지원(참여정부 문서관리시스템)과 ‘NLL 대화록’ 등 기록으로 촉발된 정치적 사건에서 해당 사안이 올바른 방향으로 논의되도록 안내해야 할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면서 “대통령 유고 시 대통령 지정기록의 지정·해제 권한에 관한 입법적 미비 상태를 장기간 방치해 정치적 논란이 확산됐고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고 반성했다. 그는 입장문 발표 전후로 2차례 사죄의 뜻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국가기록원은 지난해 말 활동을 마무리한 국가기록관리 혁신 태스크포스(TF) 권고를 받아들여 ‘기록성찰 백서’를 내기로 했다. TF가 백서에 담을 것을 권고한 주요 사건은 대통령기록물 유출 위반 논란이 있었던 ‘봉하마을 이지원 시스템 이관’과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등 11건이다.또 세월호 사건 등 국가적 중대 사안의 경우 기록물 이관이나 파기 등 일체 절차를 중단시키는 기록처분 동결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제도는 국가기록원장이 요청하면 해당 사안과 관련해서는 사소한 영수증이나 메모지 한 장조차도 폐기할 수 없도록 해 대통령이나 정부부처 등이 기록물을 훼손할 수 없게 하려는 것이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국가기록원은 이달 안에 혁신과제를 확정하고 오는 6월까지 내부 의견수렴을 거쳐 세부 실행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대통령기록물 지정 권한은 있으나 대통령 사망이나 탄핵 시 해제 권한이 없어 문제가 됐다는 판단에 따라 국가기록원이 해제 권한을 갖는 방안도 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기록원이 ‘블랙리스트’(일부 전문가들 요직 배제)를 만들었다며 당시 기록원장을 수사 의뢰하라는 혁신 TF 권고에 대해 이 원장은 “아직까지 확실한 증거를 못 찾았다. 위법 사실이 확인되면 고발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또 청계재단 소유 영포빌딩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문건이 다량 발견된 것과 관련해서는 “검찰이 수사를 마친 뒤 압수기록물을 국가기록원에 반환할 수 있도록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세월호 생존학생 26%, 2년간 외상후 스트레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에서 생존한 학생 상당수가 20개월이 지난 뒤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15일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과 김은지(전 단원고 스쿨닥터) 마음토닥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20개월째인 2015년 12월 단원고 생존학생 57명의 PTSD를 분석한 결과 26.3%가 임상적 위험군이었다. 세월호에서 구조된 단원고 학생 4명 중 1명은 20개월이 지나도 의료진이 진단할 수 있을 정도의 PTSD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의미다. 연구결과는 대한의학회가 발간하는 국제학술지(JKMS) 최근호에 실렸다. 김 원장은 “대개 사고 후 2년 가까이 지났으니 이제 괜찮아지지 않았겠냐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 기준으로 적지 않은 아이들이 PTSD에 시달렸다”며 “이같은 결과로 보아 48개월이 지난 지금도 많은 수가 일상으로 완벽히 돌아갔을 것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 원장에 따르면 설문조사에서 PTSD 위험군으로 나온 생존 학생들은 배는 물론 비행기나 버스, 지하철 등을 회피하거나 친구를 잃은 경험 때문에 새로운 관계 형성을 두려워하는 경향을 보였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문재인이 내 책을 읽다니 영광”…미국 노작가 페이스북 화제

    “문재인이 내 책을 읽다니 영광”…미국 노작가 페이스북 화제

    파커 J.파머, 문 대통령 사진 페북에 게시“위대한 인물의 여정에 내 책이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했다면 영광” 푸른 눈의 외국인이 14일(현지시간)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장의 사진을 올렸다.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구레나룻부터 하관까지 뒤덮은 까칠한 흰수염, 야윈 얼굴이다. 데님셔츠에 걸린 노란 리본 목걸이가 눈에 띈다. 문 대통령이 지난 2014년 8월 세월호 유족과 함께 단식 농성을 벌일 때 모습이다.문 대통령 앞에는 책 한권이 놓여 있었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었다. 이 사진을 올린 페이스북 주인이 바로 그 책을 쓴 파커 J. 파머다. 미국의 교육 지도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파머는 “작가 지망생과 ‘불가능한 꿈’을 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글을 쓴다”면서 “아마 빈병에 쓰고 싶은 말을 적어 넣은 뒤 바다에 띄워보내는 심정일 것이다. 어느 해안가에 닿아 아무도 읽어보지 않을 것 같은 글 말이다”라고 운을 뗐다. 파머는 20대 중반에 책을 쓰기 시작했지만 마흔살이 될 때까지 한 권도 출판하지 못했던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쓰지 않고선 못 배기겠기에 계속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며 회고했다. 이어 파머는 “10번째 책의 출판을 앞둔 지금, 쓰고자하는 열망이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싶다”면서 “언젠가 당신이 떠나 보낸 빈병이 누군가에게 도착해 열리고 읽힐 것”이라고 적었다.파머는 문 대통령의 사진에 대해 “부패의 시대(국정농단 정국)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를 재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면서 “최근 북한과의 대화를 이끌어 내고 평화올림픽을 치르면서 언론에 많이 등장했다”고 소개했다. 파머는 “사진은 몇년 전 시위현장에서 찍힌 것인데 그의 스마트폰 아래 내 책의 한글 번역본이 놓여 있다”면서 “적어도 빈병 하나가 어느 해안가에 도착한 셈”이라고 적었다. 어느 때보다 심각했던 한반도의 북핵 위기를 누그러뜨리고 남북대화에 이어 역사상 첫 북미대화까지 주선하면서 깊은 인상을 남긴 문 대통령이 자신의 책을 읽었다는 사실에 파머는 큰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대선에서 낙선한 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으로 있던 문 대통령은 세월호특별법 통과와 두달 가까이 단식 농성 중이던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단식 중단을 설득하기 위해 열흘간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을 지켰다. 문 대통령은 당시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기 직전까지 파머의 책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미국에서는 9.11 테러 이후에 진보와 보수,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등 계급간, 계층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며 책의 내용을 한참 설명하기도 했다. 파머의 페이스북 글에는 많은 한국인이 댓글을 남겼다. 한 네티즌은 “한국 국민으로서 당신이 책으로 문 대통령의 삶에 영향을 준 것에 감사드린다”면서 “문 대통령은 지지자들의 마음을 읽고 어루만질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다. 무정한 자본주의와 부패한 정치인들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을 진심으로 위로한 인물이기도 하다. 좋은 글은 정말 세상을 바꾼다”라고 적었다. 이에 대해 파머는 “위대한 인물의 여정에 내 책이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했다면 정말 영광”이라면서 “우리 미국인들도 다음 대통령 선거를 치르려면 한국인들에게 많이 배워야 한다”고 화답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파머가 올린 문 대통령의 사진에 얽힌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사진이 찍힐 당시 문 대통령은 세월호 유족들과 함께였다”면서 “문 대통령은 유족의 단식 농성에 동참했고, 시민들은 부패한 정부에 세월호의 진실을 말해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정부가 세월호 참사에서 많은 부분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이응노와 수덕여관을 넘어서 만나는 예산 수덕사(修德寺)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이응노와 수덕여관을 넘어서 만나는 예산 수덕사(修德寺)

    “모두 같은 민족 아닙니까? 여러분들도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동백림에 간 것은 자식의 소식을 듣고, 거기서 만날 수 있다고 해서 간 것입니다...그 아들을 만나게 해 주겠으니 오라고 했을 때, 거절합니까, 만났다가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그만둡니까.” 세계적인 추상화의 거장, 고암(顧庵) 이응노(李應魯·1904~1989) 화백이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법정 구속되기 전의 마지막 최후 진술이다. 동백림 사건은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간첩단 사건으로 194명에 이르는 유학생들과 교민들이 동베를린에 위치한 북조선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고 간첩교육을 받아 대남적화활동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음악가 윤이상을 비롯하여 천상병 시인 등이 연루되었고, 결국 34명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으나 대법원 최종심에는 간첩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가 한 명도 없는 ‘구름같은’ 간첩단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이응노는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풀려난다. 이후 이응노는 수덕사 앞 수덕여관에서 삶의 한 부분을 내려 놓는다. 이응노의 삶과 수덕여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충청남도 예산 수덕사로 가 보자. 충청남도 덕숭산(德崇山)에 위치한 수덕사(修德寺)는 충청도의 절답다. 겉으로는 무심한 듯 소란스럽게 이름 내지는 않았으나, 내실은 진즉부터 으뜸인 불교 도량임에는 분명하다. 왜냐하면 수덕사는 백제계 사찰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현존하는 유서 깊은 절집일 뿐만 아니라, 맞배지붕 양식으로 이름 알려진 고려시대(1308년)의 대웅전이 세월에 푹 곰삭은 나무 기둥들과 함께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한 때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노래로 불리어 알려질만큼 훌륭한 비구 스님들을 배출하는 명문 선원인 ‘견성암’도 수덕사에 위치한다. 여기에 더해 현재 수덕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5대 총림 가운데 하나인 덕숭총림으로 많은 스님들이 강학과 참선정진하는 종합교육도량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충청남도 내포 일대의 36개 말사를 관장하는 제7교구본사이기도 하니 중부 지역에서는 단연 손꼽히는 사찰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수덕사를 더욱더 유명하게 만든 것이 바로 수덕사 일주문 옆에 위치한 수덕 여관이다. 수덕여관은 이응노 화백이 1945년 3월, 일본 패망을 앞두고 징용을 피해 수덕사 인근 비구니가 쓰던 절집을 손수 구입한 곳이다. 이후 이응노 화백의 처(妻) 박귀희 여사(1909~2001)가 이곳을 여관으로 운영하며 프랑스로 떠나버린 남편을 기다리면서 자식을 길러내었다. 지금도 수덕여관 주변에는 이응노 화백이 동백림 사건의 옥고를 치른 후 이곳에 머물면서 손으로 직접 새긴 문자 추상 암각화가 곳곳에 남아 있다. 만물의 흥망성쇠를 표현한 것으로 알려진 이 암각화는 지금도 50여년 전의 이야기를 생생히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수덕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충청도 근역에는 단연 으뜸인 사찰이다. 수덕여관의 역사를 함께 2. 누구와 함께? - 나이드신 부모님과 천천히 3. 가는 방법은?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안길 79 - 예산버스터미널 → 수덕사 (요금 1,760원/ 1시간 소요) 4. 감탄하는 점은? - 고려시대의 대웅전, 수덕여관 인근의 이응노 화백의 암각화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주말에는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수덕여관 인근의 암각화, 대웅전, 범종루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소머리국밥 ‘한일식당’, 곱창 ‘신창집’, 수제비 ‘대흥식당’, 국수 ‘쌍송국수’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sudeoksa.com/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추사고택, 한용운 생가터, 장영실 과학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수덕사는 가파른 계단이 많은 사찰이어서 천천히 올라가도록. 이응노 화백의 삶을 이해한 뒤 수덕여관을 둘러 본다면 한 예술가의 파란만장한 삶을 예술로 이해할 수 있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귀가하는 이명박 새벽 6시30분부터 마중한 유인촌 누구?

    귀가하는 이명박 새벽 6시30분부터 마중한 유인촌 누구?

    이명박 전 대통령(77)이 검찰 조사를 받고 15일 이른 아침에서야 귀가했다.이 전 대통령은 14일 오전 9시23분쯤 중앙지검에 도착, 9시49분쯤부터 오후 11시56분까지 14시간 동안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후 조서열람을 마친 이 전 대통령은 15일 오전 6시25분 중앙지검을 나와 귀가했다. 서울 논현동에 도착한 이 전 대통령을 마중한 측근인사 10여명 명단 속에는 유인촌 전 문화부장관도 있어 눈길을 모았다. 유인촌은 MBC 드라마 ‘전원일기’ 둘째 아들로 인기를 누렸고 1991년 KBS2TV 주말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이명박 역할을 맡았다. 현대건설 이명박 사장의 중동건설 신화를 모델로 한 작품이 인기를 얻으면서 이명박은 1995년 ‘신화는 없다’라는 책을 출판했고 2000년 서울시장을 하게 됐다. 유인촌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을 당시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맡았고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 후보를 적극 지지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유인촌은 문화체육부 장관에 취임했다. 유인촌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호화 연예인 원정 응원단을 만들어 체류기간 10일 동안 약 2억원을 소비해 논란이 됐다. 같은 해 국정감사에서 한 기자에게 “사진 찍지마 XX”라는 욕설파문이 있기도 했다. 장관직 사퇴이후 유인촌은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남겨 눈길을 끌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민국파 실명공개…정봉주 “민주당 복당심사 통과하겠다”

    민국파 실명공개…정봉주 “민주당 복당심사 통과하겠다”

    7년 전 기자지망생을 성추행한 의혹을 받은 정봉주 전 의원에 불리한 증언을 했던 닉네임 ‘민국파’가 실명을 공개했다. 그는 “양심에 따라 사실을 진술했으며 2012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를 지지한 것이 정 전 의원과 사이가 틀어진 이유”라고 주장했다.정 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15일 민주당 복당 심사를 잘 버티고 통과하겠다”며 정치 행보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전 의원의 팬클럽인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 4대 카페지기인 민국파는 14일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을 통해 ‘봉도사(정 전 의원의 애칭)님께 드리는 글: 위드유에 대한 가해를 멈추는 데 동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입장문을 공개했다. 민국파는 증언에 힘을 싣는 취지에서 자신의 실명(정대일 전 문재인TV 기획팀장)과 얼굴 사진도 공개했다. 정씨는 “프레시안 소속 기자 2명을 포함한 기자 6명을 허위사실 유포죄로 고소한 정 전 의원이 왜 나는 고소 대상에서 제외한 것인지 묻고 싶다”면서 “민국파의 존재를 사건 당일(여성 A씨가 정 전 의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2011년 12월 23일) 지워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씨는 “당일 렉싱턴 호텔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피해자 A씨의 신원도 알지 못한다”면서 “다만 렉싱턴 호텔에 간 사실을 양심에 따라 진술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 전 의원의 주장과 배치되는 사실을 진술하는 것에 대해 인간적 고뇌가 왜 없었겠느냐”면서 “다만 미투(나도 당했다)에 동참한 사람에 대해 종교인의 양심으로 위드유(당신과 함게 하겠다)로 동참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고 적었다. 정씨는 자신이 수감된 정 전 의원의 면회권을 돈 받고 팔아 정 전 의원과 사이가 틀어졌다는 세간의 소문은 음해라고 일축했다. 그는 “2012년 6월 당 대표 경선에서 이해찬 대표를 공식 지지하고 7~9월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공식 지지한 것 때문에 정 전 의원과 결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비슷한 시각 정 전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성추행 의혹에 휘말린 최근 일주일의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감옥 1년, 피선거권, 선거권, 당원자격 10년 박탈, 그 험한 세월을 뚫고 재기하려 한 날, 성추행 의혹으로 온 국민에게 여론 재판을 받았다”면서 “마치 7일이 70년을 살아온 거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팟캐스트 나는꼼수다(나꼼수) 멤버인 김어준, 주진우, 김용민을 언급하며 “당신들이 끝까지 믿어줘 고맙다”면서 “나꼼수에 열광한 시민들이 지난 일주일 동안 정봉주의 작전 사령부였고 전략가였고 내 참모였다”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정 전 의원은 “15일 민주당 복당 심사를 통과하겠다”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소되는 날 재심 청구로 포문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 전 의원이 성추행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 기자를 고소한 사건은 경찰이 맡게 됐다. 이날 서울중앙지검은 전날 고소장이 접수된 정 전 의원 사건을 서울지방경찰청에 내려보내고 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진재선)가 지휘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정 전 의원은 앞서 프레시안 서모 기자 등 언론사 4곳의 기자 6명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 등으로 전날 고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조윤선, 해양수산부에 세월호 조사 방해 지시 혐의…“정부 힘들게 하지 말아달라”

    조윤선, 해양수산부에 세월호 조사 방해 지시 혐의…“정부 힘들게 하지 말아달라”

    조윤선 “세월호 특조위에 해양수산부 공무원 많이 파견하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해양수산부에 세월호 참사 조사를 방해하도록 지시한 혐의가 드러났다.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조성필) 심리로 14일 열린 김영석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윤학배 전 차관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에 대한 1차 공판에서 검찰은 이 같은 공소사실 요지를 밝혔. 검찰에 따르면 조윤선 전 수석은 2015년 1월 19일 서울 소공동의 한 호텔에서 당시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김재원 의원과 조대환 등 여당 추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 특조위) 상임위원들, 해수부 공무원들과 만나 특조위의 조직과 예산 등을 논의했다. 검찰은 “조윤선 전 수석은 특조위원들에게 ‘정부 입장을 도와주고, 정부를 너무 힘들게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고, 해수부 공무원들에게는 ‘특조위가 예산과 조직을 방대하게 추진하지 않도록 관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또 “여당 추천 부위원장의 역할을 강화하도록 사무처장을 두고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여당 특조위원들이 협력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하고, 해수부 파견 공무원 수를 늘려 정부가 통제할 수 있게 하라는 지시도 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조윤선 전 수석의 지시에 따라 김영석 전 장관과 윤학배 전 차관이 특조위의 업무 방해를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김영석 전 장관이 참석하지 않았고, 윤학배 전 차관이 청와대 경제수석실 해양수산비서관 신분으로 자리했다. 김영석 전 장관과 윤학배 전 차관은 해수부 내 ‘세월호 특조위 대응 전담팀’을 만들어 특조위의 예산과 조직을 축소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단계별 대응 전략을 세우도록 주문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영석 전 장관과 윤학배 전 차관 변호인들은 공소사실에서 두 사람의 혐의가 특정되지 않아 무엇을 인정하고 부인할지 명확하지 않다며, 다음 공판 기일 전에 서면으로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특히 윤학배 전 차관 측 변호인은 “전 정권의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의사 결정이 집행 부서에 표출됐다”면서 “블랙리스트 사건, 화이트리스트 사건, 국정원 비리 사건에서 드러난 동일한 의사결정 구조가 이번 사건에도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조윤선 전 수석이나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에 대한 검찰의 추가기소가 예정돼 있다면 알려달라”고 했고, 이에 검찰 측은 “추가기소 여부를 최대한 이른 시간에 결정해서 조치하겠다”고 답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76세 나이로 타계(속보)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76세 나이로 타계(속보)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교수가 76세의 나이로 타계했다고 24일(현지시간) AFP가 보도했다. 스티븐 호킹의 가족 대변인은 이날 “우리는 사랑하는 아버지가 오늘 세상을 떠난 데 깊은 슬픔에 빠졌다”면서 “그는 위대한 과학자였고, 그의 연구 성과와 유산은 오랜 세월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스티븐 호킹 교수의 자녀 루시, 로버트, 팀의 이름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1942년생인 그는 우주론과 양자 중력 연구에 기여했으며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계보를 잇는 물리학자로 불린다. 21세때 전신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이른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으나 연구에 몰두하며 학문적 성과를 꽃피웠다. 그는 1965년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뛰어난 연구성과로 연구원과 교수 등을 거쳐 1979년부터 2009년까지 케임브리지대 수학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1988년 발간한 대중 과학서 ‘시간의 역사’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등극해 세계적으로 1000만 권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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