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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민 물음에 단체장 답하다] “광주 예산 10%만 절감해도 1000억… 교육·농업 알뜰히 챙길 것”

    [주민 물음에 단체장 답하다] “광주 예산 10%만 절감해도 1000억… 교육·농업 알뜰히 챙길 것”

    “오직 시민만 바라보고 모든 것을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장애인과 노인 등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광주를 만들겠습니다.” 방송PD 출신 신동헌(66) 경기 광주시장은 시장선거에 두 차례 도전했으나 모두 고배를 마시고 이번에 2전 3기의 주인공이 됐다. 신 시장은 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부부 증가로 광주가 젊어지고 똑똑해지고 있으며 이는 좋은 기회”라며 “살고 싶은 도시, 공정한 사회, 꿈이 실현되는 광주를 함께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시 예산 10%만 절감하면 1000억원이다. 이것으로 교육, 농업 분야 등 꼭 필요한 곳에 알뜰하게 챙기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2전 3기 끝에 시장이 됐다. ―믿고 선택해 주신 광주시민들께 감사드린다. 선거 과정에 시민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저를 선택해 주신 한 분 한 분의 마음을 소중히 간직하겠다고 다짐했다. 2000년 방송PD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2002년부터 정치를 시작했다. 3번 만에 어렵게 시장이 됐다. 18년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왔다. ‘오직 광주’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시민들이 왜 신동헌을 선택했을까. ―오랜 세월 광주에서 시장이 되기 위해 준비해 왔다. ‘깨끗한 월급쟁이 시장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깨끗한 정치, 깨끗한 행정을 펼쳐보고 싶었다. 시민들이 정직하고 바른 행정을 희망했다. 그리고 PD출신인 저의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사고가 역동적인 광주를 만드는 데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다. →행정경험이 없다는 우려가 있다. ―광주시에는 1300명이라는 행정 전문가들이 있다. 공무원들의 사기를 진작시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연출가가 필요한 것이다. 행정 전문가보단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시장이 필요하다. PD 출신으로 다른 분들보다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높다. 도시양봉, 도시농업박람회 등 많은 아이디어를 냈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을 행정에 접목시킬 것이다. 그리고 2007년 총리실 산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촌문화정보센터 소장으로 2년여 근무한 경험도 있다.→광주시의 최대 현안은 무엇인가. ―교통과 교육 문제가 우선이다. 지난 10여년간 계획성 없는 난개발로 광주 구석구석이 후유증을 앓고 있다. 출퇴근 때마다 교통 정체로 아우성이다. 도로는 울퉁불퉁하고 아이들의 통학마저 위협받고 있다. 학생들이 공부할 공간도 없다. 학급당 인원이 30명이 넘어섰고 이대로 가면 40명에 육박한다. 광명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1508명으로 최근 몇년 사이 337명이 늘었다. 초과밀학급 문제가 심각하다. 신현초등학교 신설이 늦어짐에 따라 광명초 초과밀학급 문제가 계속될 전망이다. 아이들의 교육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담당 공무원에게 신현초 개교가 더 늦어지지 않도록 태스크포스(TF)를 만드는 등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기업 유치와 일자리 만들기도 큰 숙제다. ―광주에는 6000여개의 기업이 있다. 기업인들이 많이 어려워하고 있고 실제로 떠나는 기업도 있다. 세일즈맨 시장이 돼 국내와 해외시장 확보에 발 벗고 나서겠다. 기업과 행정이 한 팀이 돼 기업 활동을 한다는 생각으로 지원하고 시장개척과 제품홍보 전도사가 되겠다. 행정력을 총동원해서 ‘기업애로 제로’ 도시로 만들겠다. 그리고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광주지역에서 우선 소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 시에서 주관하는 새해 해돋이와 줄다리기 행사에 가니 지역의 우수한 막걸리를 두고 공무원들이 서울지역 막걸리를 쓰는 것을 보고 실망했다. 공공기관부터 앞장서겠다. 아울러 가구산업을 특화산업으로 발전시키겠다. 가구거리 조성과 특구 지정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세계가구박람회를 추진하는 한편, 지역 우수기업에 대한 지원과 육성에 필요한 제도를 마련해 기업을 하기 좋은 광주를 만들어 나가겠다. 이와 함께 팔당호, 남한산성, 조선백자 도요지 등 광주가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과 천년고도의 역사문화자원을 연계하고 지역농업과 지역음식까지 융합된 문화관광산업을 육성하여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힘쓰겠다. →교육예산 200억원을 공약했다. ―중·고생 무상교복, 친환경 무상급식 확대, 안전한 통학로 확보 등을 위해 교육예산 200억원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학교 밖 아이들과 대안학교 아이들의 급식문제까지 챙길 것이다. 올해 교육예산은 81억원에 불과하다. 200억원도 많은 게 아니다.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 시장은 무한책임이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인데 교육청만의 책임이 아니다. 예산이 부족하면 이재정 도교육감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국회의원·도의원과 소통해서 국가예산·도예산을 유치하도록 하겠다. 향후 건립 예정인 체육관·주차장 등 학교시설의 복합화 추진으로 학생들에게는 쾌적하고 다양한 교육활동 공간을 제공하고 지역주민들이 편리한 공공시설로 활용할 수 있게 하겠다. 기획예산담당관에게 첫 업무 지시로 광주시 1조원 예산 중에서 10% 절감 방안을 내놓으라고 했다. 10%면 1000억원이다. 이것으로 꼭 필요한 곳에 써 보자고 했다. 외진 마을에서는 수돗물 공급을 받지 못하는 곳도 있다. 교육·농업분야 등 꼭 필요한 곳에 알뜰하게 지원할 계획이다. →임기 중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광주에는 마땅한 장애인 복지시설이 없다. 전국 최고의 복지시설을 짓고 창조적인 콘텐츠를 기획해서 오직 광주에서만 누릴 수 있는 세계적인 장애인 복지시설을 구상하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하겠지만 일등 광주를 대표하는 장애인 복지시설을 기대해도 좋다. →시정철학과 시민 의견이 충돌하면 어떻게 풀 것인가. ―소통이 우선이다. 어떤 악성 민원도 대화로 풀겠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면 대화가 안 된다. 대표를 만나고 현장에 직접 찾아가겠다. 광주지역 순례를 하면서 민원에 귀를 기울이겠다. 민원이라는 것은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다. 행정조직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해결해야 한다. 억울함과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신동헌 시장은 ‘농어촌 지금’ PD 출신답게 농촌 전도사…‘꿈틀학교’도 그의 작품 독립운동가이자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헌신한 해공 신익희 선생 후손인 신동헌(66) 광주시장은 경기 광주시 쌍령동 출생으로 광주초, 광주중, 광주종고(현 광주중앙고)와 한영고를 거쳐 한양대 법학과와 언론정보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광주농고에 수석으로 입학해 도비 장학금으로 공부했고 당시 광주 출신으로는 드물게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중앙일보, 동양방송을 거쳐 KBS PD로 20여년간 활동했다. ‘농어촌 지금’, ‘맛따라 길따라’, ‘문화가 산책’ 등을 연출했다. 그는 광주시장 후보로 두 차례 출마했으나 모두 고배를 마셨다. 중앙무대에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실무위원, 전국농민단체협의회 사무총장, 국무총리실 산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촌문화정보센터 소장, 도시농업포럼 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를 전파하는 데 노력했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야 의원 50명이 참여하는 ‘국회생생텃밭’과 어린이들이 텃밭활동을 통해 생명존중과 인성을 함양하기 위해 만든 ‘꿈틀학교’도 그의 작품이다.
  • 서울시 남북협력추진단 신설

    내년 전국체전 평양과 공동개최 추진 서울시가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국 단위 ‘남북협력추진단’을 만든다. 추진단은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제100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를 평양시와 공동으로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서울시는 1일 ‘내 삶을 바꾸는 10년 혁명’을 내세우며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민선 7기 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추진단은 윤준병 행정1부시장 직속으로 둔다. 기존 과장(4급)이 이끌던 남북협력담당관을 국장(3급)을 단장으로 하는 조직으로 격상했다. 추진단은 제100회 전국체전을 포함해 시정 전반의 서울·평양 교류협력사업을 총괄·조정하는 역할을 전담한다. 서울·평양 전국체전 공동 주최는 박원순 시장이 구상해 온 남북 교류 사업의 핵심이다. 박 시장은 지난 2월 국립극장에서 열린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에 참석한 자리에서 만난 북한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에게 평양시의 전국체전 참가와 경평축구 부활을 제안하기도 했다. 추진단의 하위 조직으로 기존 남북협력담당관 외에 개발협력담당관을 새로 꾸린다. 남북협력담당관은 사회·문화 분야의 협력 사업을 전담하고, 개발협력담당관은 상하수도 개량, 도로 등 평양의 인프라 협력 사업을 담당한다. ‘서울미래 혁신성장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할 ‘거점성장추진단’도 경제진흥본부에 신설된다. 혁신지구, 마곡,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 홍릉 바이오 클러스터 같은 지역 기반 거점 조성·활성화를 전담한다. 보육 문제 등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만큼 ‘돌봄담당관’(4급)도 여성가족정책실 내에 새로 마련한다. 성폭력·성희롱 근절을 위한 ‘젠더 폭력 예방팀’과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성평등노동팀’도 생긴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안전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2015년 신설된 ‘안전총괄본부’는 노후화하고 있는 도시 인프라, 하도급 혁신 등 구조적 안전관리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보강하게 된다. 이 밖에 ‘지진안전팀’을 신설해 지진 때 수습·복구를 총괄하는 기능을 전담케 하고 ‘지진안전센터’ 건립도 추진한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與 지도부 초선이 채우나… 최고위원에 3명 출사표

    與 지도부 초선이 채우나… 최고위원에 3명 출사표

    중진·기초단체장·女의원 등 입성 촉각더불어민주당의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오는 25일 열리는 가운데 각축전을 벌이는 당대표 선거와 달리 최고위원 선거는 무관심 속에 깜깜이로 치러지고 있다. 5명을 뽑는 최고위원 후보로는 김해영(기호 순)·박주민·설훈·박광온·황명선·박정·남인순·유승희 후보 등 8명이 나섰다. 한 후보는 1일 “컷오프(예비 경선) 없이 본선이 치러지다 보니 최고위원 선거에 대한 관심이 덜하다”고 토로했다. 무관심 속에 치러지는 최고위원 선거에서 주목할 부분은 ‘초선 최고위원’의 선출 여부다. 8명의 후보 중 김해영·박주민·박정 후보 등 3명이 초선이다. 현재 민주당 의원 129명 중 초선은 66명으로 절반을 넘는다. 때문에 민주당 내 최대 계파는 ‘친문’(친문재인)이 아닌 ‘초선’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한 초선 의원은 “초선 비중이 높은데도 당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당의 존재감이 없다는 지적이 많아 초선이 최고위원 선거에 나서게 된 것”이라며 “2명 이상은 당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 후보는 현재 민주당 의원 중 가장 젊다는 점이, 박주민 후보는 세월호 변호사라는 인지도가, 박정 후보는 오랜 원외지역위원장 경력으로 조직력이 각각 강점으로 꼽힌다. 당대표 선거가 아닌 최고위원 선거로 마음을 돌린 4선 중진 설훈 후보가 초선의 도전에 맞서 지도부에 입성할지도 관심사다. 설 후보는 당대표 후보 중 송영길·이해찬 후보에겐 호평을 김진표 후보에겐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노선을 정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31일 라디오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의 탈당을 촉구한 김진표 후보에 대해 “대단히 심각하다. (김 후보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고 비판했다. 현역 3선 논산시장인 황 후보가 선출될지도 관전 포인트다. 지방분권을 강조하는 그가 당선된다면 기초단체장 출신으로는 처음 지도부에 입성하게 된다. 여성 의원인 남 후보와 유 후보의 경쟁도 관심 있게 볼 부분이다. 두 후보 모두 5위 안에 들지 못하면 다득표자를 여성 몫의 최고위원으로 뽑게 되고 대신 5위 남성 후보는 탈락하게 된다. 두 후보 모두 자력으로 지도부에 입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주요 친문 의원이자 최고위원 후보 중 유일한 호남 출신인 재선의 박광온 후보는 당대표 후보로부터 구애를 받고 있다. 박 후보는 ‘문재인의 대변인’을 자칭하며 권리당원 전원투표제 도입을 공약하는 등 친문 권리당원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이호준의 시간여행] 징검다리를 건너며

    [이호준의 시간여행] 징검다리를 건너며

    시인의 집을 찾아가는 길이었다.하지만 마을로 들어서기도 전에 엉뚱한 것에 먼저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내(川)를 가로지르는 징검다리. 얼마나 반갑던지 거기까지 간 목적도 잊어버린 채 어린아이처럼 징검돌 위를 뛰어다녔다. 모처럼 만나는 ‘진짜’ 징검다리였다. 요즘은 도시에서도 하천을 정비하면서 흔히 징검다리를 놓지만 너무 인위적인 모습이라 정이 가지 않는다. 그저 박제된 표본일 뿐이다.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동네마다 지천이었던 게 징검다리였다. 이 땅의 마을은 어느 곳이나 비슷한 풍경을 품고 있었다. 마을 뒤로 나지막한 산들이 어깨를 겯고 달리고, 앞으로는 작든 크든 내가 흘렀다. 그리고 산자락을 따라서 산처럼 둥글둥글한 초가집들이 점, 점, 점 들어서 있었다. 농경을 기반으로 하는 촌락이 형성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강 또는 내였다. 마을 앞을 흐르는 내는 한 가지 공통점을 품고 있었다. 바로 징검다리였다. 큰 강과 달리 깊지 않은 내에는 대개 징검다리를 놓았다. 징검다리는 돌을 사람의 보폭에 맞게 듬성듬성 놓아 내를 건널 수 있도록 한 가장 원시적인 다리다. 과거에는 징검다리가 사람끼리 소통하고 왕래하기 위한 기본적 요소였다. 장에라도 가려면 징검다리를 건너야 하는 것은 물론 냇물이 나누어 놓은 마을과 마을을 이어 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징검다리는 영구적인 다리가 아니었다. 폭우라도 쏟아져 큰물이 지나고 나면 징검돌이 저만치 휩쓸려 내려가거나 위치가 들쑥날쑥해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물이 빠진 뒤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징검다리부터 보수했다. 강이나 내는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터였다. 특히 여름이면 종일 물속에서 살다시피 했다.내는 꽤 깊은 곳도 있고 넓고 얕게 흐르는 곳도 있어서 놀기에 지루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물장구도 치고 자맥질도 하고 수초 사이에 손을 넣어 물고기도 잡았다. 엄마 몰래 고추장을 덜어다가 매운탕을 끓이는 건 조금 큰 아이들이었다. 물속에서 놀다가 지치거나 추워지면 징검다리 위에 나란히 앉아 옥수수 서리나 수박 서리를 모의하기도 했다. 오랜 세월 발길에 단련된 징검다리는 검게 빛났고 햇볕을 온몸에 품어 무척 따뜻했다. 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였다. 강과 내가 어머니의 젖줄처럼 은혜롭다고 해서 늘 베풀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큰비라도 내리면 온화하던 내는 무섭게 변했다. 시뻘건 흙탕물이 세상을 삼킬 듯 쿵쾅거리며 내달렸다. 논과 밭을 유린하고 심지어 사람도 꿀꺽 삼켰다. 산에 나무가 별로 없던 시절에는 폭우가 쏟아지면 냇물이 눈 깜짝할 사이에 불어났다. 그 와중에도 날마다 다니던 길이니 설마 하는 마음으로 머리만 남은 징검다리를 건너는 아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물은 순식간에 불어나고 비명도 못 지르고 빨려 들어가기도 했다. 그런 악몽을 품고 있어도 고향의 내와 징검다리는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슴에 새겨져 있다. 봄이면 수양버들 푸른 머리 풀어 물에 헹구고 여름엔 아이들의 함성이 병아리 챈 솔개처럼 솟아오르던 냇가. 하지만 이제 어디에 가도 내를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보는 건 어려워졌다. 건널 일도 건널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냇물에 몸 담그고 물장구를 치거나 징검다리 위에 벌거벗고 앉아 깔깔거리던 아이들도 보이지 않은 지 오래다. 어른이 된 그 아이는 여전히 꿈마다 징검다리를 불러내는데….
  • [민선7기 단체장에 듣는다] “구민 복지 강화·석수역 일대 개발… ‘살맛 나는 금천’ 만들 것”

    [민선7기 단체장에 듣는다] “구민 복지 강화·석수역 일대 개발… ‘살맛 나는 금천’ 만들 것”

    “주민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 주민 목소리를 듣겠습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불문율을 실천하며, 생활밀착형 행정을 통해 주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습니다.” 유성훈 서울 금천구청장의 다짐이다. 유 구청장은 3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소통하는 현장 중심 구정을 통해 ‘살맛 나는 금천’을 만들겠다”고 했다. 구청장이 되기 전보다 더 낮은 자세로 구민들에게 다가가 금천 발전을 이끌고 미래를 열어나가겠다는 것. 다음은 일문일답.→지난 지방선거 때 유권자들은 어떤 당부를 했나. -소통하는 구청장이 돼 달라고 하셨다. 선거 기간에도 항상 소통을 강조했다. 소통을 통해 ‘나(주민)에게 힘이 되는 구청장’이 되겠다. →선거 당시 현장에서 접한 민심은 어땠나. -지역 발전과 생활 안전 등 구체적인 삶의 질 개선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 예산이 없어 대규모 개발 플랜은 희망고문이자 헛공약일 뿐이다. 주민 안전과 삶의 질 향상이 구청장의 기본 임무다. 거창한 것보단 주민들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하나라도 더 발굴, 추진하겠다. 민선 7기는 어느 때보다 공직자들의 치열한 노력이 요구될 것 같다. →구민들이 가장 원하는 건 뭔가. -복지다. 금천구엔 서민들이 많다. 가산동은 1인가구가 많고, 독산동엔 맞벌이 부부와 노년층이 많다. 이들은 추상적 복지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복지지원 체계를 원한다. →구민들 바람을 어떻게 실현해 나갈 건가.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 달라. -‘태아부터 행복한 금천’을 만들려 한다. 태아부터 영유아, 초등학교까지 ‘돌봄시스템’을 구축하고, 출산·양육비 절감을 통해 출산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 주겠다. 임신부 건강과 태아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친환경 식재료를 제공하고, 자연 친화적 태교 프로그램인 ‘태아와 함께 숲에서 소풍하기’를 운영해 엄마와 태아가 안정적으로 교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 온종일 돌봄 체계를 초등학교 전 학년으로 확대하겠다.→삶의 질을 개선하려면 주민 속으로 들어가야 할 텐데. -‘골목길 구청장’이 되려 한다. 금천은 서민 주거지 밀집지역이라 꼬불꼬불한 옛길부터 소방차도 못 들어가는 좁은 길까지 골목이 굉장히 많다. 골목에서 항상 만날 수 있는 구청장이 돼 주민들과 호흡하며 소통하겠다.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건 개발 아닌가. -민선 5·6기 8년간 교육·복지 쪽을 강화하다 보니 개발이 좀 느슨한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개발에 방점을 두고, 도시 디자인을 재설계하려 한다. 금천구는 준공업지역이 많다. 서울 자치구 중 상업지 비율이 최하위다. 이걸 재설계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주민들이 살기 편한 환경을 만드는 게 민선 7기 관건이라 할 수 있다. →도시 디자인 재설계, 청사진은 있나. -금천구는 1번 국도와 석수역을 중심으로 한 서남권 관문도시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실제 서울로 들어오는 길은 1번 국도’라고 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돼 관문도시로서의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이 지역을 개발해 서남권의 명실상부한 서울 출입구로 만들어 관문도시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 한다. 주민들 최대 숙원인 공군부대 이전도 속도를 내려 한다. 3만평 정도 되는데 서울에 남아 있는 마지막 미개발지다. 공군부대는 금천구 정중앙에 위치하며 구를 남북으로 나누고 있다. 크게 시흥동과 독산동이 공군부대로 나뉘어 있다. 공군부대는 지(G)밸리와 연계, 일자리 창출과 경제 거점 기능을 할 수 있는 지역으로 향후 금천의 미래를 열어 갈 곳이다. 공군부대를 이전하고, 이곳을 개발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첨단산업 스마트 융·복합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다. 현재 공군부대 부지는 개발 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을 추진 중이다. 국방부·서울시·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와 함께 군부대 이전 방식, 개발 구상안 마련 등을 협의하고 있는데 임기 내에 가시적인 결과를 도출하겠다. →요즘 자영업자들의 힘들다는 호소가 끊이지 않는다. 소상공인들 지원책은 있나. -소상공인은 생산하는 ‘소공인’과 장사하는 ‘소상인’이 있다. 정부는 소상공인을 묶어 ‘두루뭉수리 정책’을 펴고 있는데, 소공인과 소상인을 분리해 맞춤형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금천엔 패션봉제업체들이 많다. 봉제는 고용창출 효과도 다른 업종에 비해 크다. 1인 기업도 적지 않지만 하청기업까지 합쳐 최대 40~50명이 일하는 업체도 있다. 봉제업 종사자들은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로 떠나버렸는데, 서울에서 봉제업을 한다는 건 생산력이 검증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분들이 요즘 어렵다. 최근 소공인지원센터를 만들었는데 더욱 확대하려 한다. 이런 식으로 소공인들에 대한 정책을 특화하려 한다. 그리고 지벨리엔 소매업 아웃렛몰이라고 해서 소매상가는 잘 형성돼 있지만 도매상가가 없다. 앞으로 ‘생산-소매-도매’ 체계를 만들려 한다. 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 일자리도 창출될 수 있다고 본다. 소상인들 공동체인 재래시장 활성화도 중요하다. 재래시장을 관광형 문화시장으로 만들거나 주차장·화장실 같은 환경을 개선해 주민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정비하려 한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과의 지자체 간 교류 논의도 활발하다. 구청장께선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예전 정보기술(IT) 분야 남북교류업체인 ‘북남교역’ 대표를 6개월간 한 적이 있다. 당시(2004년) 북한이 기획·개발한 모바일 게임 ‘독도를 지켜라’를 수입해 와 국내에 선보였다. 해당 게임은 독도를 침입하는 왜구를 막아내는 슈팅게임인데, 1년여간 북한 기업인들과 채팅을 하면서 북한의 경제관념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밸리에 산업단지관리공단(산단공)이 있는데, 산단공에서 개성공단을 관리한다. 지밸리 기업인들 중에는 북한에 진출하고자 하는 이들도 많다. 과거 북한 기업과의 교역 경험을 살려 산단공 및 지밸리 기업단체와 협의해 지밸리 기업인들이 북한에 진출할 때 일조하고 싶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유성훈 금천구청장은 소통·참여민주주의 중시하는 ‘서민 대변인’ 유성훈 금천구청장은 서민들의 대변인이자 변호인으로 통한다. 서민들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정치를 시작했다. 유 구청장에게 금천구는 어린 시절부터 꿈을 키워 온 동네다. 오랜 세월 주민들과 동고동락하며 지냈기에 누구보다 금천구 생활 전반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늘 금천구 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그 기회를 얻기 위해 여러 번 문을 두드렸다.  소통 참여민주주의를 늘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다. 구민과 항상 소통하며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모든 일을 이해하고 해결하려 한다.  20대 중반 평화민주통일연구회 활동을 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고, 지난 18대 대선 땐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대위 총무본부 부본부장을 맡았었다. 3명의 대통령을 보좌하며, 그들의 경륜을 보고 배웠다. 청와대 행정관 재임 시절 대통령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는 ‘실력파 행정관’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오랜 국정 경험을 바탕으로 중앙정부와 서울시 협력을 어떻게 이끌어내 금천구를 발전시켜 나갈지 주목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13회] “인민군 치하에서 지옥 같은 삶… 학생선도·치안확보 등 호국 활동”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13회] “인민군 치하에서 지옥 같은 삶… 학생선도·치안확보 등 호국 활동”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한영희는 1934년 10월 20일 인천 답동 5번지에서 태어나서, 인천서림국교를 졸업하고, 인천여자상업중학교 3학년 때 인천학도의용대 용동분대 대원으로 호국(護國)활동을 하다가, 후발대를 따라서 1950년 12월 24일 원저호를 타고 인천항을 출발하여 부산항에 도착하여 부산육군통신학교에서 신봉순 교육대장의 보살핌으로 5개월 머무르다가 1951년 5월 인천으로 귀향하였다. ■한영희 인터뷰 일시 1998년 10월 2일 장소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편집실 대담 한영희 이경종(6·25 참전사 편찬위원)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 6·25 사변의 발발과 지옥 같았던 인공 치하 인천여자상업중학교 3학년 때 6·25전쟁을 맞은 나는 북한 인민군(人民軍) 치하에서 지옥 같은 삶을 겪었다. 9·15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우익학생 이계송(고려대 2학년생)의 주도로 인천학도의용대가 생겨나서, 우리 동네에 조직되어 있는 용동 분대에 가입하여 호국활동(학생선도, 치안확보, 피난민 안내 등)을 하였다. 당시 용동 분대장은 인천동산중 6학년 신현기였고, 감찰부장은 인천공업중 5학년 최기준이었다. 대원으로는 인천해성중 3학년 한세창이 기억난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의 남하 압록강까지 북진했던 국군과 UN군이 갑작스런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하여 후퇴를 거듭하여 1950년 12월 중순이 되었을 때 인천학도의용대가 남쪽으로 내려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인천학도의용대가 남하하기로 결정되었으니 남하 집결 장소인 인천축현국교로 1950년 12월 18일 날 모두들 모이라는 전갈이 왔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축현국교에 가보니 인천학도의용대 대원 약 3000명이 모여서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인천학도의용대 여학생 대원들이 남학생 대원들과 같이 따라간다고 말하면서 가는 것을 봤지만 나는 따라가지는 않았다.1950년 12월 24일 배(윈저호)를 타고 남하 남자 대원들을 배웅하고 집에 돌아와 며칠 있으려니까 이번에는 인천상업중학교 밴드부와 여학생들이 인천항에서 윈저호라는 배를 타고 부산을 향하여 후발대로 남하하는데 나에게 같이 남하하자고 나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때 나는 남하 할 준비를 하고 인천항에 나가 인천상업중학교 밴드부와 여학생들과 같이 배에 올라탔다. 이후 서해 바다를 거쳐 남해를 지나 부산항에 도착하여 부산극장 옆에 있는 가마니 공장 창고에 들어가게 되었다. 추운 겨울 가마니 창고 안에서 가마니를 바닥에 한 장을 깔고 한 장은 덮고 자면서 지냈다. 그렇게 며칠 지나려니까 이번에는 부산육군통신학교로 우리 인천학도의용대 여학생 대원들을 보내는 것이었다. 당시 부산육군통신학교에는 우리들보다 먼저 내려와 자원입대한 인천학도의용대 대원들이 육군통신학교에서 통신병 교육을 받고 있을 때였으며 그때 우리 여학생 대원들은 육군통신학교 옆의 농림부 관사에서 지내게 되었다. 사실 그때 부산까지 내려온 여학생들은 딱히 머물 곳이 없었는데, 마침 다행히도 부산육군통신학교에 신봉순 교육대장님이 계셨었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신봉순 선생님의 도움 그때 부산육군통신학교에 있었던 신봉순 대위님은 8·15 해방 후 공립인천상업중학교에서 과학 선생님을 하시다가 뜻하신 바 있어 교직을 사직하시고 육사 8기로 임관하여 그때 마침 부산육군통신학교에서 교육대장으로 근무 중이셨다. 그런 인연으로 오갈 데 없었던 인천학도의용대 여학생 대원들의 숙식을 해결해 주신 잊지 못할 선생님이셨다. 5개월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다 나와 이인숙(인천여중 1학년), 전전숙(박문여중 2학년), 박경순(박문여중 4학년), 이은영(인천여중 3학년) 등 5명은 인천항에서 원저호를 함께 타고 부산항에 도착하여 부산육군통신학교에서 같이 행동했던 여학생들이었다. 당시 우리들이 숙소로 쓰던 방은 부산육군통신학교 장교 침실 일부로 칸을 만들어 주어 그곳에서 지냈으며 여자들이 입는 군복과 담요로 만든 자주색 잠옷도 보급 해 주어 우리 인천학도의용대 여학생들은 비교적 편하게 지냈다. 그리고 식사 시간이 되면 장교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이후 군산 헌병대에 근무하고 있었던 아버지로부터 인천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여러 여학생과 같이 고철을 실어 나르는 한양호라는 배를 부산항에서 타고 인천으로 왔다. 그때가 1951년 5월 말쯤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슬픈 일 1951년 2월 부산육군통신학교 옆 농림부 관사에 머무를 때 있었던 일이었다. 3년 선배 언니가 간호장교 시험을 치를 때 나도 그 간호장교 시험을 치러서 합격하였다. 그때 사정으로 내가 가지를 못 하고 박문여자중학교에 다니는 박경순이 나 대신 간 일이 있었는데, 나중에 철원 전쟁터에서 포위되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많은 죽음이 항상 곁에서 발생했던 어두운 시대였는데, 가까운 친구의 죽음은 세월이 48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아프다. 자원입대하여 전사한 친구들 인천학도의용대 용동분대에서 같이 활동하였던 학생들이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 후 참전하여 몇 명이 전사했다고 하는데, 그때도 많이 슬펐고,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 지금까지도 이름이 잊혀지지 않는 전사 학생은 이중수이다.6·25 참전 전사 인천학생 이 중수 인천영화중학교 4학년(당시 대건고교 1학년) 재학 중이던 1950년 12월 18일 인천축현국민학교를 출발하여 마산까지 20일간 걸어가서 해병 6기로 지원하여 입대 후 참전하여 1952년 6월 12일 서부전선 문산지구전투에서 전사하여,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서-16-911)에 묻혀있다.남기고 싶은 말 너무 오래전이고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지만, 6·25 당시 인천 중학생이던 우리들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나름 호국활동(학생선도, 치안확보, 피난민 안내 등)을 했었고, 자원입대하여 많이 전사했다. 웬일인지 다른 지역의 학도병들은 많이 알려져 있고 기념관도 있다는데, 인천은 기록도 없고, 기념관도 없고… 늦었지만 나와 같은 인천서림국민학교를 졸업한 이경종 동창생과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이 우리들의 슬펐던 옛날 일을 기록하여 준다니 기쁘기 그지없고, 그저 고마울 뿐이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호에 14회 계속
  • “기무사, 盧대통령·국방장관 통화 엿들었다”

    군인권센터 “민간인 수백만명 사찰” 진보인사는 대공수사 용의선상 올려 특별수사단, 수사 한 달 연장하기로 국군기무사령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통화 내용을 감청하고 민간인 수백만명을 사찰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는 30일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무사 요원 제보 등에 따르면 기무사는 2005~2006년 노 전 대통령이 윤광웅 당시 국방부 장관과 통화하는 것까지 감청했다”면서 “장관이 사용하는 군용 유선전화를 감청한 것으로, 대통령과 장관의 지휘를 받아야 할 기무사가 지휘권자까지 감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당시 통화에서 문재인 민정수석에 관한 업무를 장관과 논의했다고 한다”면서 “통상의 첩보 수집 과정에서 기무사가 대통령과 장관의 긴밀한 국정 토의를 감시할 까닭이 없다”고 강조했다. 센터는 또 기무사가 지금까지 수백만명에 이르는 국민의 개인정보를 보관하고 사찰해 왔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군부대, 군사법원, 군병원 등 군사시설을 방문한 민간인이 위병소에 제시한 개인정보를 기무사가 모두 취합한 다음 군시설 출입자들의 주소나 출국 정보, 범죄 경력 등을 열람하는 방식으로 부당하게 개인정보를 수집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센터는 “기무사가 진보 인사, 운동권 대학생, 기자, 정치인 등에 대해 갖가지 명목을 붙여 대공수사 용의선상에 올렸다”면서 “중국으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에게는 ‘적성국가 방문’이라는 명목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기무사의 세월호 민간인 사찰과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 의혹을 수사하는 특별수사단(단장 전익수 공군 대령)은 다음달 10일로 예정됐던 수사 기한을 한 달 연장키로 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관련기사 10면
  • [이종수의 헌법 너머] 계엄의 유혹과 교훈

    [이종수의 헌법 너머] 계엄의 유혹과 교훈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국군기무사령부가 비밀리에 마련했다는 계엄 준비 문건 기사가 마치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 연일 새롭게 터져 나오고 있다. 그 시나리오는 섬뜩하고 기괴한 납량특집 드라마 같은지라 간담이 서늘해지다가도 되새겨 보면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불쾌지수를 높인다.평화로운 촛불집회와 합헌적인 탄핵 절차가 진행되던 중에 국가 안보에 그 나름 만전을 기하려는 기무사의 지나친 염려증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치밀하다. 대체 뭘 수사하려는지도 불분명한 합동수사본부 설치, 국회 무력화 계획, 야간 통행금지, 언론검열 등 마치 시곗바늘이 40여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이 기각되더라도 정권의 남은 임기와 차기 정권의 재창출을 고려하면 정상적인 헌정으로는 도저히 무망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도 의심된다. 게다가 기무사가 군의 방첩활동과는 전혀 무관한 세월호 유족 사찰까지 한 이전의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국가 안보가 아니라 정권 안보 유지에 골몰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국가긴급권의 하나인 계엄은 질서유지를 위해 경찰력이 아닌 병력이 동원되는 가장 극단적인 비상적 조치이고, 이는 정상적인 헌법 정치의 잠정 중단을 뜻한다. 한마디로 국가비상사태에 직면해 군사통치를 합법적으로 용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행 헌법은 여러 국가긴급권들 중에서 유독 계엄에 대해서만 따로 계엄법을 마련해 그 발동 요건과 절차 및 권한을 나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계엄을 포함한 국가긴급권은 헌법학에서 그간 오랜 난제이자 고민이었다. 헌법이 규범적으로 예정하는 기본권의 보장, 권력분립과 법치주의 등은 정상적인 헌정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마련된 장치들이다. 그런데 천재지변 또는 전시·사변과 같은 국가비상사태에 당면해 헌법 정치의 통례적인 메커니즘의 작동으로 사태의 신속한 극복을 기대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이러한 까닭에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국가긴급권을 헌법에 규정하면서 예외적인 비상사태의 규범화를 도모하고 있다. 고대의 로마공화국에도 이 같은 고민이 똑같이 주어졌었다.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침공하자 원로원은 집정관을 한시적으로 독재관으로 임명하면서 원로원의 견제를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전권을 부여했다. 오로지 목적은 외적을 물리치고서 로마를 하루빨리 평화체제로 다시 되돌리는 것이다. 오늘날 독재자를 뜻하는 ‘Dictator’가 이 로마의 독재관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번 주어진 이 비상적인 독재권력이 쉽사리 그리고 자발적으로 회수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바로 권력과 독재의 유혹 때문이다. 이로써 로마의 카이사르와 긴급조치로 일관했던 박정희는 유감스럽게도 같은 비극적 운명을 겪었다. 기무사의 계엄 관련 문건이 사전 검토에 그친 것인지 아니면 구체적인 실행계획인지는 추후의 사법적 판단에 맡기겠지만, 해당 문건의 작성 주체들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과 함께 조용히 타올랐던 촛불이 마치 들불로 크게 번지기를 내심 기대했던 듯도 싶다. 히틀러의 집권과 독재체제 구축에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독일 공산당 당원들이 1933년 제국의사당 방화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일소됐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참으로 아찔하다. 게다가 문건 작성 지시자가 당시 국방장관이라는 내부 증언을 접하고서는 더욱 황당하다. 그간 여러 차례의 군사 쿠데타 경험도 그렇듯이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 나라들의 헌법은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요청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걸프전쟁의 영웅이었던 콜린 파월 장군이 이후에 국방장관이 아니라 국무장관을 맡았고, 역대 유명한 국방장관인 로버트 맥나마라는 기업인 출신이었다. 독일에서도 주요 정치인이 국방장관을 맡는 것이 군에 대한 문민통제 원칙상 확립된 오랜 관행이고, 노동장관을 역임한 여성 정치인이 현재 국방장관을 맡고 있다. 우리의 경우에 국방부 대변인에 민간인 출신이 임명된 것도 불과 최근의 일이다. 이번 사건을 거울삼아 향후 기무사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은 물론이거니와 그간 줄곧 불거진 방산비리의 근절, 군 내부의 정치적 통제를 위해서라도 민간인 출신의 국방장관 임명을 통해 헌법이 요청하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에 더욱 충실을 기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라오스 댐 붕괴] “국민 혈세 쓰는 개도국 개발원조, 주민들 터전 붕괴 자금 돼선 안돼”

    [라오스 댐 붕괴] “국민 혈세 쓰는 개도국 개발원조, 주민들 터전 붕괴 자금 돼선 안돼”

    라오스 댐 초기 수천명 보상 없이 쫓겨나 사업 재개 뒤 환경 파괴·강제 이주 여전 돈만 주고 책임 미루는 정부 원조 변해야“라오스의 세피안·세남노이댐 사고는 우리 국민 세금으로 집행되는 공적개발원조(ODA)가 개발도상국 주민들의 삶과 터전을 파괴하는 끔찍한 자금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한국 정부의 ODA 사업을 감시하는 비정부기구(NGO) ‘발전대안 피다’(옛 ODA와치)의 이재원 애드버커시팀장은 2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또는 한국 기업에 대한 신뢰도를 걱정하기에 앞서 개도국 원조에 대한 인식부터 꼬집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밤 사고가 난 라오스 수력발전 댐은 정부 원조와 민간 기업의 수출이 결합된 첫 복합 사업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개도국 개발도 지원하면서 수익도 거두는 모델이었다. 이 팀장은 세피안·세남노이댐 사업 초기부터 문제가 많았다고 지적한다. “세남노이댐은 1990년대 후반 동아건설이 처음 사업을 추진하면서 당시 수천명의 주민들을 보상 없이 강제 이주시켰어요. 원래 어업을 했던 주민들은 터전에서 쫓겨나 커피농장에서 일하다 외환위기(IMF) 이후 동아건설의 부도로 공사가 중단되자 고향으로 돌아갔어요. 그 사람들이 이번 참사를 겪은 거에요.” 세피안·세남노이댐 건설은 2013년 한국 정부의 유상원조 지원인 한국수출입은행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등과 SK건설·한국서부발전, 태국 전력회사 등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10억 달러(약 1조 1000억원) 규모로 재개한 초대형 사업이다. 상당한 세월이 흘렀지만 이 팀장은 과거의 문제들이 반복됐다고 말한다. 소수민족인 지역 주민들은 다시 강제 이주 위협을 받았고, 환경파괴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초기 투자를 검토했던 아시아개발은행(ADB)은 부적절한 환경영향 평가를 지적하며 투자를 철회했다. 이 팀장은 “부실한 환경영향 평가와 공사 강행이 맞물리면서 정작 우리 국민들의 세금이 개도국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우려가 참사로 현실화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라오스 댐은 건설 계획부터 건설 과정, 피해 발생까지 그 어떤 정보도 현지 주민들에게 제공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 대책회의도 했지만 실제 모습은 ‘우리(정부)는 돈만 빌려 준 것으로 역할을 다했고, 사업 진행과 모니터링, 후속 조치에 대한 책임은 관심 없다’로 요약됐다”며 “민관협력(PPP) 사업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책임을 미루는 경향이 더 심각한 문제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국내외 국제협력개발 분야 NGO들은 이번 라오스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한 연대를 추진하고 있다”며 “개도국 경제와 국민들의 삶의 발전을 위한다면서 정작 그곳 사람들의 목소리와 생명을 배제하는 방식의 한국 원조 사업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북·미 갈등 얘기만 나오면 피가 말라, 6·25때 헤어진 세 언니 못 만날까 봐”

    “북·미 갈등 얘기만 나오면 피가 말라, 6·25때 헤어진 세 언니 못 만날까 봐”

    “100명만 참석 안타까워… 정례화 추진” 경쟁률 569대1 달해… 고령가족들 눈물“북한에 큰형님이 살아 계시는 걸로 확인됐습니다.” 박경서 대한적십자사(한적) 회장은 지난 27일 오전 10시쯤 서울 용산구에 사는 이산가족 이수남(75)씨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이씨는 갑자기 집에 찾아온 한적 회장을 보고 한 번 놀랐고, 큰형(이종성·86)이 살아 있다는 얘기를 듣고 또 한 번 놀랐다. 이씨는 “정말이냐”고 박 회장에게 몇 번을 되묻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로또 된 것보다 더 기쁘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적 회장이 이산가족을 직접 찾아가 북한 가족의 생사를 알려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엔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에게 우편으로 생사 여부를 통보해 주는 게 전부였다. 지난해 8월 취임한 박 회장은 29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5만명이 넘는 남쪽 이산가족 중에 다음달 20~26일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100명뿐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한 분이라도 직접 찾아뵙고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모처럼 찾아온 한반도 해빙무드로 이씨처럼 다음달 북쪽 가족과 상봉할 수 있는 남쪽 이산가족은 100명밖에 안 된다. 직전 상봉 이후 2년 10개월 만에 열리는 이번 상봉은 경쟁률이 569대1에 달했다. 이씨의 표현대로 상봉 대상자로 뽑히는 것은 이산가족 입장에서는 로또 당첨만큼 기적 같은 일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특히 세월과 비례해 고령화가 계속된다는 점에서 이산가족 입장에서는 피가 마른다. 실제 남한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 5만 7059명 중 4만 8559명(85.1%)이 70세 이상이다. 종전선언이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니 하는 거창한 어휘와 함께 북·미 관계에서 갈등이 돌출될 때마다 이산가족들은 남몰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보통사람에겐 단순한 시간 지연 내지 교착 상태일 수 있지만 이산가족에겐 살아생전 가족을 만날 기회가 영영 사라질지 모른다는 절망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경남에 사는 김금녀(82)씨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번 상봉 신청에서도 떨어졌지만 다음 번엔 혹시 (당첨)돼서 고향인 함경북도 단천에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도 “매일 뉴스를 보면서 뭔가 잘못되는 거 같으면 6·25 때 헤어진 세 언니를 못 만날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박 회장은 “이번 금강산 상봉 행사 때 북측과 상봉 행사 정례화, 참가인원 확대, 고향방문단, 화상상봉 등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활자가 지나간 자리… 눈으로 읽고 손으로 읽는 김소월

    활자가 지나간 자리… 눈으로 읽고 손으로 읽는 김소월

    한 권의 시집이 전하는 여운이 묵직할 때가 있다. 지친 마음을 보듬는 한 줄을, 미로 같은 삶을 헤쳐 나갈 지혜의 한 줄을 길어 올렸을 때가 아닐까. 우리의 내면을 정화하는 시의 아름다움을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시집을 만난다면 그 여운이 더 오래갈지도 모르겠다. 천연염색으로 독특한 색감을 머금은 표지와 활판인쇄로 찍어내 글자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시집들이 나와 눈길을 모은다.출판사 겸 책방인 ‘청색종이’를 운영하는 김태형 시인은 지난해부터 백석, 윤동주, 이상 등 국내 대표 시인들의 초간본 시집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현한 수제본 시집을 만들고 있다. 최근 제작한 시집은 1925년 매문사에서 출간된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다. 천연염색 재료를 이용해 광목 등의 천에 염색하고 수세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쳐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는 듯한 고풍스러운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총 127편의 시가 실린 이번 시집은 초간본 판형(가로 10.5㎝, 세로 14.9㎝)과 페이지 배열 순서를 그대로 따랐다. 세로 쓰기는 물론이고 1920년대 고어도 그대로 표기했다. 다만 읽기 어려운 한자는 한글 위에 덧말을 달아 가독성을 높였다. 제본 역시 사철 기계를 쓰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실을 꿰 바느질하는 방식을 택했다. 일반 책과 달리 제작 기간이 긴 탓에 하루에 최대 5권 정도 만들 수 있다. 김 시인은 힘들고 번거로운 시집 제작을 고수하는 이유에 대해 “천연 재료를 사용해서 사람이 정성 들여 만든 책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느낌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이 세상에서 이런 책을 만드는 곳이 별로 없다는 자부심에 작업을 이어 오고 있다”고 말했다.2015년 강원 춘천에 ‘책과인쇄박물관’을 세운 전용태 관장은 1970년대 이후 쇠퇴한 활판인쇄 방식을 사용한 김소월 시집 두 권을 최근 출간했다. 박물관 설립 3주년 기념으로 선보인 ‘활판인쇄로 다시 읽는 진달래꽃’과 ‘활판인쇄로 다시 읽는 못잊어’다. 활판인쇄는 글자틀에 납물을 부어 활자를 하나하나 만들고(주조), 원고에 쓰일 활자를 하나씩 찾아 뽑아낸 뒤(문선), 활자를 심어 인쇄판을 짜는(조판) 과정을 거친다. 컴퓨터 덕에 인쇄 공정 역시 간단해지면서 활판인쇄 방식은 자연스레 자취를 감췄다. 지난 40여년간 인쇄 관련 업종에 종사한 전 관장은 도시에서는 사라진 활판인쇄 기계를 공수하기 위해 전국을 수소문했고 70~80대 인쇄 장인도 어렵게 모셨다. 전 관장이 옛날 방식을 고집하는 건 책의 무게감과 깊이를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는 “종이에 잉크를 꾹꾹 눌러서 찍어내 눌림 자국이 고스란히 드러난 시집을 보면서 책을 읽는 즐거움에 대해 새롭게 느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으로 “활자가 지나간 자리를 눈으로 한 번, 손으로 한 번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다는 전 관장은 오는 8월에는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활판인쇄로 발간할 예정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박근혜 주방집사’ 김막업씨가 전한 대통령 일상…“업무시간에도 관저”

    ‘박근혜 주방집사’ 김막업씨가 전한 대통령 일상…“업무시간에도 관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철저하게 혼자 있기를 원했다. 최순실도 내실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관저에서 자고 간 적도 없다.” “머리를 올리지 않으면 외부 사람을 만나지도, 외부 활동을 하지도 않았다.” 대통령에게도 최소한의 사생활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달라야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날, 박 전 대통령이 왜 관저에서 보고를 받았는지 국민들은 궁금해했다. 이상하게 생각했다. 온갖 억측이 쏟아졌다. 청와대에서 박 전 대통령의 일상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겪은 인물, 요리연구가 김막업씨가 있었다. 그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이 수요일이었던 세월호 참사 당일 왜 그렇게 늦게, 관저에서 보고를 받았는지, 그리고 평소 어떤 생활을 해왔는지 세상에 드러났다. 주간동아는 지난 3월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세월호 보고 시각 조작 사건’ 수사기록에 있는 김막업씨 진술서를 입수해 28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막업씨는 2013년 2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소속 계약직으로 근무했다. 월급은 300만원대였고, 휴가는 따로 없었다. 김막업씨는 “원래 식사를 담당하려 했는데, 관저 내실에서 직접 조리할 형편이 안 됐기 때문에 조리한 식사를 대통령에게 올리는 일을 했다. 그 밖에 24시간 관저에 대기하면서 세탁과 방 청소, 심부름 등 시중을 들었다”고 자신의 업무에 대해 설명했다. 김막업씨에 따르면 당시 대통령 관저는 내실과 별채로 나뉘었다. 내실은 박 전 대통령과 김막업씨 및 윤전추 전 행정관이 사용하고, 별채에는 경호관이 상주했다.내실은 침실, 서재, 피트니스룸, 소식당, 한실, 파우더룸 등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김막업씨와 윤전추 전 행정관의 거주 공간이 더해졌다. 윤전추 전 행정관은 초기에는 본관 부속비서관실에서 출퇴근했는데 점차 관저에서 자는 날이 많아졌다고 한다. 대통령 침실에는 침대, 화장대, 서랍장, TV, 책상, 노트북, 인터폰 등이 비치됐다. 피트니스룸에는 러닝머신 등 운동기구를 들여놓았다. 박 전 대통령은 여기서 윤전추 전 행정관 도움을 받아 매일 한 시간씩 운동했다. 6인용 식탁과 TV를 갖춘 소식당에는 전자레인지, 커피메이커 등 간단한 조리기구가 비치됐다. 박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혼자 식사하면서 TV를 봤다고 했다. 한실은 청와대 무단출입 논란을 불러왔던, 또 ‘무속 신앙’ 의혹을 일으킨 단초가 됐던 ‘기 치료’를 받는 곳이었다고 한다. 파우더룸은 정송원, 정매주 자매가 와서 박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 등을 해주던 곳이었다. 이 곳에서 의무실장과 주치의로부터 치료를 받기도 했다. 별채에는 경호실 외에 조리실, 대식당, 접견실 등이 있었다. 회의용 탁자(8인용), 원형 식탁(6인용), TV 등이 설치됐다. 이 곳이 ‘비선 실세’의 회의가 이뤄진 곳이었다. 최순실씨가 접견실에서 정호성 전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전 제2부속비서관,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과 회의했던 곳이다. 정작 ‘청와대의 주인’인 박 전 대통령은 이 회의에도 길게 참여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김막업씨는 “박 전 대통령도 더러 이 회의에 참석했지만 오래 있지는 않았다”고 증언했다. 오히려 최순실씨가 접견실의 주인 같았다. 김막업씨 기억에 최순실씨는 2014년부터 주말마다 관저를 방문했다. 그렇지만 “박 전 대통령이 철저하게 혼자 있기를 원했기에 최순실씨도 내실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관저에서 자고 간 적도 없었다”고 김막업씨는 전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의 ‘혼자 있기’는 업무에도 영향을 미쳤다. 김막업씨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주로 침실에서 업무를 봤다. 서류가 놓인 침실 책상에서 노트북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평일에도 본관 집무실에서 근무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 특별한 행사가 없는 경우 대부분 관저 침실에 있었다. 일주일에 4일은 관저에서 일을 보고, 3일은 외부 활동을 했다. 외부로 나갈 때나 본관 집무실에 갈 때는 반드시 정씨 자매를 불러 머리를 올리고 화장을 했다. 머리를 올리지 않으면 외부 사람을 만나지도, 외부 활동을 하지도 않았다. 본관에 출근하더라도 볼 일만 보고 바로 관저로 돌아왔다.” 김막업씨가 전한 박 전 대통령의 일상 업무 모습이었다. 김막업씨는 “대통령이 관저에 머물 때 보좌진이 내실까지 와서 보고한 적은 없다”면서 “대통령은 최순실이 와서 비서관들과 회의할 때를 빼고는 접견실에 거의 가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관저에서 대통령에 대한 업무 보고는 거의 없었지만, 보고할 일이 있으면 서면으로 이뤄졌다”고 기억했다. 서면으로 이뤄지는 과정도 간단하지 않았다. 김막업씨는 “경호실 직원이 내게 인터폰으로 연락해 ‘보고서 갖다 올려놓으라’고 하면 내가 밀봉된 서류봉투를 들고 가서 대통령 침실 입구 팩스가 놓인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면 대통령이 나와서 들고 들어갔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때 외에는 보고 서류가 올라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이 평소 오후 11시쯤 취침에 들어가서 오전 5시쯤 일어났다고 김막업씨는 전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 “누구보다 국민 두려워하는 군대 돼야”

    문재인 대통령 “누구보다 국민 두려워하는 군대 돼야”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취임 후 처음으로 주재한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국군기무사령부의 세월호 유족 사찰과 계엄령 검토 등을 거론하며 “누구보다 국민을 두려워하는 군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가진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국방개혁 2.0’ 보고를 받기에 앞서 “기무사의 세월호 유족 사찰과 계엄령 검토는 그 자체만으로도 있을 수 없는 구시대적이고 불법적인 일탈행위”라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여 국방력 강화에 기여하는 기무사가 돼야 한다”며 “기무사 개혁 방안에 대해서도 별도로 조속히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기무사간 ‘진실 공방’과 하극상 논란까지 빚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전날 군에 강한 경고를 한 데 이어 전군 지휘관회의에서 기무사를 재차 질타하면서 기무 개혁에 나선 송 장관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방위사업 비리 역시 국민을 배신한 중대한 이적행위”라며 “군이 충성할 대상은 오직 국가와 국민이라는 점을 명심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국민들은 군대 내 성비위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생각한다”며 “불미스러운 일로 사기를 떨어트리는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특단의 노력을 강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달 들어 육군 소장·준장, 해군 준장,·공군 중령 등의 부하 여군에 대한 준강간 미수, 성추행 등 성비위 사건이 연이어 드러나고 있는 군기강 해이에 대한 강한 경고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지휘관부터 솔선수범해 민주적이고 성평등한 조직 문화를 확립해주길 바란다”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국방개혁 2.0’에 대해 “그 기본 방향은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라도 대비할 수 있는 군대가 되는 것”이라며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한반도 비핵화 노력이 진행 중이지만 그 끝이 어디일지 여전히 불확실하다. 안보 환경 변화에 유연하고 신축성 있게 대응하도록 군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문 대통령은 “질적으로 강한 군대를 건설해야 한다”며 “최근에 안보 환경은 재래식 전쟁은 물론 사이버테러·국제범죄에도 전방위적으로 대응해야 할 상황이다. 현존하는 남북 대치 상황과 다양한 불특정 위협에 동시에 대비하도록 포괄적 방위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를 위해 군의 체질 자체를 바꾸고 양적 재래식 군 구조에서 탈피해 첨단화·정예화된 군을 만들어야 한다”며 “더 멀리 보고 더 빠르게 더 강력하게 작전할 수 있게 첨단 감시 정찰 장비, 전략무기 자동화, 지휘통제체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주시기 바란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 “스스로 책임지는 국방 태세를 구축해야 하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그 출발”이라며 “우리 군을 독자적·획기적으로 강화해 전시작전통제권을 조기에 전환하고 한·미 연합방위 주도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국방개혁은 정권 차원을 넘어 국가 존립에 관한 것으로 나는 군 통수권자로서 국방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예산과 제도의 기반을 강화해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개혁을 성공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방개혁 2.0’은 10년도 더 전에 우리 군이 마련했던 ‘국방개혁 2020’을 계승하고 있지만 2006년 당시 목표로 했던 정예화·경량화·3군 균형발전이 목표연도인 2020년을 2년 앞둔 지금도 요원하다.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며 “그동안 국민께 실망과 좌절을 주는 군 관련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았는데 군 스스로 조직의 명운을 걸고 국방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은 정전협정 65주년으로 최후의 평화적 해결 달성을 목표로 정전에 합의했고 한반도의 막대한 고통을 초래한 전쟁을 멈췄다”며 “오늘에 맞춰 미군 유해 55구가 북한에서 송환돼 오는 좋은 일도 있었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오늘 ‘국방개혁 2.0’ 보고대회를 하게 돼 아주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사설]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표출된 문 대통령의 강력한 국방개혁 의지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취임 이후 처음으로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를 주재했다.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전군 주유지휘관 회의에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정경두 합참의장, 육·해·공 3군 참모총장, 육군 1·2·3군 사령관, 서주석 국방부 차관 등 18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는 최근 박근혜 정부 시절 기무사령부의 ‘계엄문건’ 작성의 의도와, 문건 보고를 둘러싼 국방장관과 기무사 수뇌부간 진실 공방 등 하극상 양상이 노출된 상황에서 군통수권자가 전군 지휘관에게 기무사 등 국방 개혁의 시급함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국방 개혁안 ‘국방개혁 2.0’을 보고받기에 앞서 “누구보다 국민을 두려워하는 군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무사 개혁과 관련해서는 “기무사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과 계엄령 검토는 그 자체만으로도 있을 수 없는 구시대적·불법적 일탈 행위”라고 질타한 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 국방력 강화에 기여하는 기무사가 돼야 하고, 기무사 개혁 방안은 별도로 조속히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군이 충성할 대상은 오직 국가와 국민”임을 강조했다. 이는 군 내부의 하극상 양상과 기강해이 현상을 방치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로 읽힌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국방개혁에 대한 저항은 결단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경고’로도 볼 수 있다. 군 수뇌부들은 이날 최근 군에 쏟아진 따가운 눈총을 의식한 듯 회의 시작에 앞서 대통령에게 “충성”이라는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까지 했다. 우리는 이날 군의 대통령에 대한 충성 구호가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는 다짐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군은 상명하복과 기강이 조직의 근간이다. 따라서 국민이 지켜보는 생방송에서 국방부 장관과 기무사 간부들이 정면으로 충돌한 일은 어떤 이유로도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군은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군 내부의 문제점을 철저히 점검하고 기무사는 전면적인 개혁에 나서야 한다. 송 장관 지시로 지난 5월 꾸린 국군기무사령부 개혁위원회는 다음 달 초 최종 개혁안에 이 같은 방안을 담아야 할 것이다. 또 하나, 군은 대통령의 주문대로 바뀐 시대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국방개혁에 조직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국방개혁 2.0의 비전과 목표를 “전방위적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강한 군대, 국민에게 신뢰받는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는 것으로, 그 기본 방향은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라도 대비할 수 있는 군대가 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국방개혁 2.0은 2006년 당시 2020년 달성을 목표로 설정한 정예화, 경량화, 3군 균형발전방안을 계승한 개혁방안이다. 하지만 국방개혁 2020을 2년 앞둔 지금도 달성이 요원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 군이 처한 안보환경은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재래식 전쟁은 물론 사이버테러, 국제범죄 등에도 대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지휘통제 체계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한반도 비핵화 노력이 진행 중이지만 안보환경은 여전히 불확실한 만큼 유연하고 신축성 있게 대응하도록 군을 개혁하는 일은 시급하고도 중차대한 일이다.
  • 문 대통령, “누구보다 국민을 두려워하는 군대가 돼야”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취임 후 처음으로 주재한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국군기무사령부의 세월호 유족 사찰과 계엄령 검토 등을 거론하며 “누구보다 국민을 두려워하는 군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가진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국방개혁 2.0’ 보고를 받기에 앞서 “기무사의 세월호 유족 사찰과 계엄령 검토는 그 자체만으로도 있을 수 없는 구시대적이고 불법적인 일탈행위”라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여 국방력 강화에 기여하는 기무사가 돼야 한다”며 “기무사 개혁 방안에 대해서도 별도로 조속히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기무사간 ‘진실 공방’과 하극상 논란까지 빚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전날 군에 강한 경고를 한 데 이어 전군 지휘관회의에서 기무사를 재차 질타하면서 기무 개혁에 나선 송 장관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방위사업 비리 역시 국민을 배신한 중대한 이적행위”라며 “군이 충성할 대상은 오직 국가와 국민이라는 점을 명심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국민들은 군대 내 성비위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생각한다”며 “불미스러운 일로 사기를 떨어트리는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특단의 노력을 강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달 들어 육군 소장·준장, 해군 준장,·공군 중령 등의 부하 여군에 대한 준강간 미수, 성추행 등 성비위 사건이 연이어 드러나고 있는 군기강 해이에 대한 강한 경고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지휘관부터 솔선수범해 민주적이고 성평등한 조직 문화를 확립해주길 바란다”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국방개혁 2.0’에 대해 “그 기본 방향은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라도 대비할 수 있는 군대가 되는 것”이라며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한반도 비핵화 노력이 진행 중이지만 그 끝이 어디일지 여전히 불확실하다. 안보 환경 변화에 유연하고 신축성 있게 대응하도록 군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문 대통령은 “질적으로 강한 군대를 건설해야 한다”며 “최근에 안보 환경은 재래식 전쟁은 물론 사이버테러·국제범죄에도 전방위적으로 대응해야 할 상황이다. 현존하는 남북 대치 상황과 다양한 불특정 위협에 동시에 대비하도록 포괄적 방위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를 위해 군의 체질 자체를 바꾸고 양적 재래식 군 구조에서 탈피해 첨단화·정예화된 군을 만들어야 한다”며 “더 멀리 보고 더 빠르게 더 강력하게 작전할 수 있게 첨단 감시 정찰 장비, 전략무기 자동화, 지휘통제체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주시기 바란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 “스스로 책임지는 국방 태세를 구축해야 하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그 출발”이라며 “우리 군을 독자적·획기적으로 강화해 전시작전통제권을 조기에 전환하고 한·미 연합방위 주도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국방개혁은 정권 차원을 넘어 국가 존립에 관한 것으로 나는 군 통수권자로서 국방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예산과 제도의 기반을 강화해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개혁을 성공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방개혁 2.0’은 10년도 더 전에 우리 군이 마련했던 ‘국방개혁 2020’을 계승하고 있지만 2006년 당시 목표로 했던 정예화·경량화·3군 균형발전이 목표연도인 2020년을 2년 앞둔 지금도 요원하다.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며 “그동안 국민께 실망과 좌절을 주는 군 관련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았는데 군 스스로 조직의 명운을 걸고 국방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은 정전협정 65주년으로 최후의 평화적 해결 달성을 목표로 정전에 합의했고 한반도의 막대한 고통을 초래한 전쟁을 멈췄다”며 “오늘에 맞춰 미군 유해 55구가 북한에서 송환돼 오는 좋은 일도 있었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오늘 ‘국방개혁 2.0’ 보고대회를 하게 돼 아주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전문] 문희상·이정미·심상정·김호규 노회찬 의원 영결식 조사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영결식이 27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국회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서는 국회장 장의위원장인 문희상 국회의장이 영결사를 맡았으며,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심상정 의원, 김호규 금속노동자가 조사를 낭독했다. 다음은 영결사와 조사 전문. 문희상 의장 “어떻게 하다가 이 자리에서 노회찬 의원님을 떠나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까?” 노회찬 의원님! 이곳 국회에는 한여름 처연한 매미 울음만 가득합니다. 제가 왜 이 자리에 서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다가 이 자리에서 노회찬 의원님을 떠나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까? 태양빛 가득한 계절이건만 우리 모두는 어두운 터널에 들어선 듯 참담한 심정으로 모여 있습니다. 둘러보면 의원회관 입구에서 본청입구에서 노회찬 의원님의 모습이 보일 듯합니다.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 속에서도 여유 가득한 표정의 우리 동료, 노 의원님을 만날 것만 같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믿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라는 것에 황망함과 비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슬픔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이 가시질 않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항상 시대를 선구했고 진보정치의 상징이었습니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만류에도 거대 권력과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남긴 메시지에서도 노동자의 삶을 함께 아파했고 사회적 약자의 승리를 함께 기뻐했습니다. 정치의 본질이 못가진자, 없는 자, 슬픈 자, 억압받는 자 편에 늘 서야 한다고 생각했던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경기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서슬 퍼렇던 유신에 항거했습니다. 보장된 주류의 편안한 삶 대신 민주주의와 노동현장에서 온몸을 던져 투쟁했습니다. 낡은 구두, 오래된 셔츠와 넥타이가 말해주는 대중정치인의 검소함과 청렴함은 젊은 세대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한국 정치사에 진보정치와 생활정치의 깃발을 세워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 서민의 버팀목이 돼주었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답설야중거 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마치 이 말씀을 온 몸으로 실천하듯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명예를 중시하고 신중했던 삶이었습니다.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은 22일 저녁 병상의 어머님을 찾아뵙고 동생의 집을 들렀지만, 만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 누구도 꿈속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마지막 밤을 보내고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차마 이 길을 선택한 노회찬 의원님의 고뇌와 번민, 회한과 고통을 생각하면 주체할 수 없는눈물만 흐를 뿐입니다. 당신은 여기서 멈췄지만 추구하던 가치와 정신은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노회찬 의원님! 지난 닷새 동안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수많은 이들이 눈물 속에서 꽃을 건넸습니다. 흐드러지게 꽃피었어야 할 거인과의 갑작스런 작별을 온 국민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지막을 동료들과 함께 국회장을 치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유가족 여러분께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감사의 말씀과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노회찬 의원님, 이제 평생을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영원한 평안을 누리십시오. 당신이 한국정치사에 남긴 발자취와 정신은 우리 국회와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길이 빛날 것입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이정미 대표 “‘여기서 멈추겠다’고 했던 노회찬은 결코 멈추지 않고 우리와 함께 ‘당당히 나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표님! 수만의 시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대표님을 추모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등학생부터 구순 어르신까지. 막 일을 마치고 땀자국이 선연한 티셔츠를 입고 온 일용직 노동자부터 검은 정장을 정중히 입은 기업 대표까지.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이 오셔서 원내대표님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했습니다. 나이도 성별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이 분들이 저의 손을 잡고 울먹이며 하시는 말씀은 모두 같습니다.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꼭 필요한 사람’. 이보다 노회찬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노회찬 원내대표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단체가 추모 성명을 냈습니다. 그들은 해고 노동자이고, 산재로 자식을 잃은 어미이자 아비였으며,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였습니다. 노회찬이 우리 정치에 없었다면 ?간절한 외침을 전할 길이 없었던 약자들이 노회찬의 죽음에 누구보다 슬퍼하고 있습니다. 노회찬의 정치 이력은 바로 이들을 대변하고, 이들의 삶을 바꾸는 길이었습니다. 대학생 노회찬은 노동 해방을 위해 용접공이 되어 인천으로 향했고, 일하는 사람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해,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든 진보정치 단체들을 두루 이끌며 청춘을 바쳤습니다. 진보정당 탄생 후에는 그 성공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 그가 만들고 키워 온 정의당을 위해 그의 삶을 통째로 바쳤습니다. 그래서 노회찬을 잃은 것은 그저 정치인 한명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약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가능성 하나를 상실했습니다. 노회찬, 당신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인은 아닐지라도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2013년 2월 14일 삼성 X파일 대법원 선고로 의원직을 상실한 날, 억장이 무너진 당직자들에게 당신이 처음 했던 말이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였습니다. 분노의 눈물을 삼킨 동료들에게 오히려 웃음과 유머를 보였습니다. 당신은 하늘이 주신 이 재능으로 시민들에게 정치의 통쾌함과 즐거움을 안겼습니다. 그 유쾌함은, 위기와 역경을 낙관으로 이겨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노회찬은 불같은 분노와 강직함을 함께 갖고 있었습니다. 2013년 의원직 상실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시 그날로 돌아가도 삼성 X파일을 공개 하겠다”고 말하는 지독한 고집쟁이였습니다. 마지막 유품인 10년이 넘은 양복 두벌과 낡디 낡은 구두 한 켤레에서, 스스로에게 엄격했지만 너무도 소박했던 노회찬을 봅니다. 우리 정치를 이상적이고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노회찬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국민들은 이런 노회찬을 보며 저기 국회에도 자기 편이 한명 쯤은 있다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한결 같은 노회찬을 보며, 많은 정치인들은 정당과 정견은 다르더라도 그를 존중했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노회찬이, 무겁고 무거운 양심의 무게에 힘겨워 할 때 저는 그 짐을 함께 나눠지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오직 진보정치의 승리만을 염원하며 스스로가 디딤돌이 되겠다는 선택을 할 때도 그 곁에 있어주지 못했습니다. 당원들과 국민들께 너무나 죄송합니다. 정의당은 약속드립니다. 조문 기간 백발이 성성한 어른께서 저의 손을 잡고 “정의당 안에서 노회찬을 반드시 부활시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저와 정의당은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노회찬의 정신은 정의당의 정신이 될 것이며, 노회찬의 간절한 꿈이었던 진보집권의 꿈은 이제 정의당의 꿈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문희상 의장님과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노회찬 대표의 2012년 정의당 창당대회 연설을 기억합니다. 노 대표는 투명인간들에 대해 말했습니다. 매일 새벽 4시 서울 구로구에서 6411버스를 타고 강남의 빌딩으로 출근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진보정당에서조차 투명인간이었다고, 그는 반성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함께 가져가자”고 했습니다. 노회찬의 이 다짐이 정의당만의 다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한국 정치가 너나 ?없이 투명 인간으로 취급해 온 일하는 사람들, 소수자들, 약자들을 향해 이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정치개혁과 시민의 삶을 바꾸는 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여기서 멈추겠다.”고 했던 노회찬은 결코 멈추지 않고 우리와 함께 “당당히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 정치 변화의 상징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벗, 존경하는 나의 선배 노회찬 이시여. 부디 영면하십시오. 먼 훗날 다시 만나면, 수많은 노회찬의 부활로 진보정치의 큰 꿈을 이루고 이 나라가 평등 평화의 새로운 대한민국이 됐다고 기쁘게 이야기 나눌 것입니다. 심상정 의원 “노회찬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있었습니다.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노회찬 대표님! 나의 동지, 사랑하는 동지, 영원한 동지여! 지금 제가 왜? 왜? 대표님께 조사를 올려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싫습니다.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뒤로 숨고만 싶습니다. 생각할수록 자책감에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쉬운 길 놔두고 풍찬노숙의 길을 자임한 우리들이었기에, 수많은 고뇌와 상처들을 기꺼이 감당해왔던 믿음직한 당신이었기에, 우리 사이의 침묵은 이심전심이고 믿음이며 위로였기에, 지금껏 그래왔듯 그저 침묵으로 기도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저의 아둔함에 가슴을 칩니다. 칠흑 같은 고독 속에 수 없는 번민의 밤을 지새웠을 당신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돌아보니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이 30년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인천에서, 저는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가로 알게 되어 이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그리고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노회찬, 심상정은 늘 진보정치의 험준한 능선을 걸어 왔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패배로 점철되었던 진보정치의 역사에서 함께 좌절하고, 함께 일어섰습니다. 그 간난신고의 길,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던 시간이었습니다. 당신이 열어주셨기에 함께할 수 있었고 당신과 함께였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역사와 국민의 부름 앞에서 주저 없이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의 뜻을 국민들께서도 널리 공감해주시기 시작한 이 때, 이렇게 황망하게 홀로 떠나시니 원통합니다. 당신 없이 그 많은 숙제를 어찌 감당해야 합니까? 그러나 이제 슬픔을 접으려 합니다. 당신을 잃은 오늘, 우리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깨끗하고 정의로운 정치를 위해 당신이 감당했던 천근만근 책임감을 온몸으로 받아 안을 것입니다. 저와 정의당이 그 유지를 가슴깊이 아로새기겠습니다. 당신이 목숨보다 아꼈던 진보정치, 정의당은 더 강해지겠습니다.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아름답고 품격 있는 정당으로 발돋움 하여 국민의 더 큰 사랑 받겠습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노회찬 없는 진보정당,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노회찬과 함께 할 것입니다. 당신이 끝끝내 지켜내고자 했던 진보정치의 꿈, 정의로운 복지국가, 저와 정의당 당원들이 함께 기필코 이뤄낼 것입니다. 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나의 동지여! 마지막으로 생전에 드리지 못한 말을 전합니다. 노회찬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있었습니다.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늘 지켜보고 계실 것이기에 ‘보고싶다’는 말은 아끼겠습니다. 대신 더 단단해지겠습니다.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2011년 대한문 앞에서 함께 단식농성하며 약속했던 그 말, ‘함께 진보정치의 끝을 보자’던 그 약속, 꼭 지켜낼 것입니다. 정의당이 노회찬과 함께 기필코 세상을 바꿔낼 것입니다. 노회찬 대표님,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소서. 국민들과 함께 소탈하고 아름다운 정치인 노회찬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김호규 금속노동자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의 후배로서 선배의 유지를 받아안고 산 자의 결기로 나아가겠습니다.” 노회찬 선배께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너무나도 소박한 요구를 밤새 가르방으로 긁어 유인물로 만들고 새벽찬 어둠을 뚫고 잰걸음으로 인천, 부천지역 공단 주변 집집마다 돌리고 먼 길을 돌아 출근했던 노동자 생활이 떠오릅니다. 서로 얼굴도 모른 채 가명으로 활동한 1986년 늦가을이 생각납니다. 벅찬 가슴안고 뚜벅뚜벅 걸었던 노동자의 길을 기억 합니다. 그 길에서 만난 노회찬 선배. 30년이 지난 오늘 영원한 안식의 길에서 만나게 되는군요. 제가 부족했습니다. 노동운동의 노선과 조직이름이 바뀌어도, 함께했던 선배였기에,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 양날개론을 증명해보고자 실천한 선배였기에, 온갖 시련과 갈등이 혼재된 진보정당운동에서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우뚝 선 선배였기에, 그저 믿었습니다. 저희가 안일했습니다. 예전 조직활동을 했던 때처럼 분명하게 비판하고 조직적으로 결정했다면 이렇게 허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필요할 때만 전화했던 이기심이 부끄럽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선배의 고민을 함께하지 못했던 얄팍함을 반성합니다. 그래도 노동자 민중의 정치를 위해 희망을 만들었던 선배를 존경합니다. 푸근한 호빵맨으로, 적절한 비유로 비판의 경지를 한 단계 높여 대중적인 진보정치의 새로운 길을 열어낸 선배의 열정을 사랑합니다. 낮은 울림이 큰 첼로를 연주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온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 할 수 있는 나라를 꿈꿨던 선배의 감성을 배우겠습니다. 1986년 부천에서 노동자의 길을 시작한 저에게 지난 30여 년 동안 선배와의 인연은 일선의 현장활동가로서 가까웠지만 사안에 따라 다소 멀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울산에서의 다양한 활동에 대한 선배의 지도는 늘 좋았고 명쾌했습니다. 갈등했던 기억은 잠시 뒤로 미루고, 울산 바닷가에서 의기투합했던 도원결의는 간직하겠습니다. 선배를 보내는 이 자리는 회한과 슬픔이 앞서지만 넋 놓지 않고 다시 한 번,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의 후배로서 선배의 유지를 받아안고 산 자의 결기로 나아가겠습니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선배를 통해 체득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활동하는 동안 놓치지 않고, 노동자의 길로 나아가는 발걸음마다 나지막이 퍼져가도록 하겠습니다. 장례기간 동안 선배를 추모하는 긴 추모행렬을 보았고, 다양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제 노동자의 길을 걸었던 노동운동가에서 진정한 정치인으로 우뚝 선 선배이기에 영원한 안식의 공간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광화문 정동길 금속노조 사무실 옥상에서 선배를 기억하며 서성이는데 붉은 고추잠자리가 제 주위를 맴도네요. 추억과 동심의 잠자리 모습에서 씨익 웃는 선배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번뜩 내려와 ‘귀로’라는 노래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노래 중에 이런 대목이 다가옵니다. “무지개가 뜨는 언덕을 찾아 넓은 세상 멀리 헤매 다녔네 그 무지개 어디로 사라지고 높던 해는 기울어가네 새털구름 머문 파란 하늘 아래 푸른 숨을 쉬며 천천히 걸어서 나 그리운 그 곳에 간다네 먼 길을 돌아 처음으로” 엄혹했던 노동운동가에서, 치열한 진보적 대중 정치인으로. 이제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국민들의 가슴 속에 첼로의 운율을 남긴 만큼 먼 길 돌아왔습니다. 처음처럼, 아가처럼 편히 쉬십시오.
  • 북한 미군 유해 55구 송환에 트럼프 “김정은에 고맙다”...비핵화 협상 탄력 받나

    북한 미군 유해 55구 송환에 트럼프 “김정은에 고맙다”...비핵화 협상 탄력 받나

    북한이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을 맞이한 27일 북·미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미군 유해를 송환했다.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의 한 항목인 유해송환이 이뤄진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안전보장 등 북·미 간 후속 협상이 탄력을 받게 될 지 관심이 쏠린다. 미국 백악관은 이날 공식 성명을 통해 “전사한 미군 병사들의 유해를 실은 미 공군 C-17 글로브마스터 수송기 한 대가 북한 원산을 출발했다”면서 “오늘 이뤄진 조치는 북한으로부터의 유해송환,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약 5300명의 미군을 찾기 위한 북한 내 발굴 작업이 재개되는 중대한 첫 걸음”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가 대통령에게 한 약속의 일부인 미군 전사자 유해송환을 이행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북한의 행동과 긍정적 변화를 위한 동력에 고무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5시 55분 오산 미군기지를 이륙해 북한 원산으로 갔던 미 수송기는 미군 유해 55구를 싣고 오전 11시 전투기 2대의 엄호를 받으며 오산으로 복귀했다. 수송기에는 유엔사 관계자들과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 관계자들이 동행했다. 송환된 유해는 오산 공군기지에서 DNA 테스트 등 최종 유해 확인 절차를 밟은 뒤 하와이로 이송할 것으로 전해졌다. 공식 유해송환(추모식) 행사는 다음달 1일 오후 5시 오산 기지에서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 주관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북·미는 앞서 이달 중순 판문점에서 유해 송환 실무회담을 갖고 미군 유해 50여구를 27일 송환하기로 합의했다. 송환 준비와 관련 북한은 그동안 확보해놓은 미군 추정 유해 200여구에 대해 자체적인 감식작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해 송환은 비핵화와 직접 관련 있는 조치는 아니지만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첫 이행 조치다. 당초 미군 유해 송환은 이달 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때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송환 시기와 규모, 비용 등을 놓고 양측이 입장차를 보이며 송환 작업이 지연됐다. 이번 유해 송환은 2007년 4월 11일 빌 리처드슨 당시 미국 뉴멕시코주 주지사의 방북으로 미군 유해 6구를 송환한 이후 11년 3개월 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미군 병사들의 유해가 곧 북한을 떠나 미국으로 향할 것”이라면서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취해진)이번 조치는 많은 (미군)가족에게 위대한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김정은(국무위원장)에게 고맙다”라고 덧붙였다.한편 이날 미 CNN방송은 북한이 미국에 유해송환에 상응하는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비핵화에 앞서 체제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그 일환으로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직 미 국방부 관리인 밴 잭슨은 이날 워싱턴포스트에 “이렇게 쉬운 목표를 이행하는 데도 이렇게 오래 걸렸다는 것은 북한이 과거의 협상 태도로 되돌아가려 하는 안 좋은 신호”라고 지적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4차 산업혁명 시대 도서관, 아크로폴리스 같은 지역문화 중심 돼야”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4차 산업혁명 시대 도서관, 아크로폴리스 같은 지역문화 중심 돼야”

    전국에는 공공도서관 1010개를 비롯해 총 2만 2000여개의 도서관이 있다. 초중고 학교도서관이 1만 2000여개로 절반을 차지하고, 작은 도서관이 5900여개로 두 번째로 많다. 대학도서관과 전문도서관, 장애인도서관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도서관은 물론 병영도서관, 교도소도서관까지 다양하다. 이 모든 형태의 도서관을 아우르는 도서관 정책을 수립하고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기구가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다. 2007년 6월 발족해 올해로 11년째를 맞았다. 2년 임기의 위원회 조직도 6기에 접어들었다. 지난 4월 9일 출범한 6기 위원회의 수장은 뜻밖에도 신기남(66) 전 국회의원이다. 1기 위원장인 한상완 연세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이전 위원장들은 모두 문헌정보학이나 영문학을 전공한 학자였다. 신 위원장은 4선 경력의 중진 정치인으로 대중에 각인돼 있지만, 알고 보면 도서관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2006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도서관협회연맹 주최 세계도서관대회 조직위원장을 지냈고, 이를 계기로 위원회 창설을 주도했다. 한국도서관협회장도 두 차례나 역임했다. 취임 100일을 넘긴 신 위원장을 지난 18일 만나 6기 위원회의 현안과 포부를 물었다.→위원장 자리를 제안받고 고심했다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노무현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출범한 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 위원회 중에 경제 빼고는 다 없애라는 지시 때문에 폐지 위기에 몰렸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총리 소속으로 위상 축소가 추진되는 등 굴곡을 겪었다. 도서관계가 합심해 존속은 시켰지만 활동이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유명무실해진 위원회에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컸다. 하지만 결자해지라고 하지 않나. 위원회를 만드는 데 앞장섰으니 위원회를 살리는 일도 결국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3개월 가장 역점을 둔 일은 무엇인가. -10년간 위원회가 상당히 위축됐다. 위상도 저하됐고 체제도 허물어졌다. 위원회 내에 법적 기구로 두기로 한 사무기구는 고사하고 위원들이 회의할 사무실조차 없다. 우선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데 조직과 예산이 필요한 일이다 보니 쉽진 않다. 일단 리모델링 중인 국립중앙도서관에 공간을 확보해서 사무실 문제는 다행히 해결됐다. 도서관 발전 장기계획 수립 등 위원회가 할 일이 많은데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는 준비 작업을 해 왔다. 도서관계 현장 목소리도 최대한 많이 들으려고 애쓰고 있다. →도서관의 중요성은 누구나 동의하지만 굳이 대통령 소속 위원회까지 둘 필요가 있나.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서 도서관은 핵심적인 사회 인프라다. 우리는 경제 수준에 비해 도서관 체제가 미흡하고, 투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도서관 정책은 문화부가 주무 부처이긴 하나 모든 부처와 연관돼 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은 행안부, 대학도서관은 교육부, 병영도서관은 국방부가 담당한다. 때문에 범정부 차원에서 도서관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 해외 사례를 조사해 보니 미국이 대통령 소속 위원회를 두고 있더라. 그래서 세계도서관대회가 끝난 뒤 청와대에 위원회 설치를 건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큰 관심을 보이면서 도서관법이 전면 개정됐고, 그에 따라 각 부처 장관을 당연직 위원으로 하는 대통령 위원회가 설립됐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마자 겨우 명맥만 유지한 상태로 10년 세월을 보냈으니 안타깝다. →위원회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도서관 발전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을 점검하는 일이 가장 큰 임무다. 도서관법에 따라 5년마다 종합계획을 수립해 발표해야 하는데 내년부터 시행될 3차 계획(2019~2023)이 당장 발등의 불이다. 1차, 2차 계획은 구체적인 계획이라고 하기엔 미흡했고 실제로도 큰 구실을 못했다. 3차 계획은 우리 도서관계 전반의 현안을 두루 살펴서 미래지향적이면서 실효성 있는 정책을 수립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태스크포스도 새로 꾸렸다. 도서관의 인적·물적 기반 확충과 지역 격차 해소, 전문인력 배치 기준 등 과제가 쌓여 있다. →6기 위원회에는 이전에 없던 ‘4차 산업혁명’ 소위원회와 ‘남북교류’ 소위원회가 신설됐다. -새로운 시대 조류인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도서관 정책을 연구할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한층 고도화하는 지식정보사회에 맞춰 도서관의 개념과 역할에 대해서도 한 차원 높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단순히 책을 읽는 조용한 공간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같은 지역문화의 중심체가 돼야 한다.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도서관의 위치, 건축양식, 부대 시설 같은 하드웨어의 변화가 중요한 이유다. 남북 교류도 시대적 과제의 하나로 빼놓을 수 없다. 4·27 남북 정상회담 이후 활발해진 문화예술 교류 추세에 발맞춰 도서관 교류도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다. →남북 도서관 교류와 관련해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이 있나. -세계도서관대회를 앞두고 2005년 방북해 북한 도서관 관계자들과 만난 적이 있다.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과 이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 최희정 인민대학습당 총장 등을 면담하고 서울대회에 참가하겠다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 이동도서관 지원, 남북도서관 고전적(古典籍) 조사 등 8가지 교류 사업도 제안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그런데 대회 직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때 추진했던 교류 사업을 다시 해 보려고 한다. 우선 다음달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세계도서관대회에서 북한 측 인사들과 접촉해 의사를 타진할 계획이다. 오는 10월 강원 정선에서 개최되는 전국도서관대회에 북한 대표를 초청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두 대회를 계기로 교류 사업의 물꼬를 틀 생각이다. →대학들이 경영난에 처하면서 대학도서관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초·중·고 학교도서관도 전담 사서가 없는 곳이 태반이다. -대학도서관과 초·중·고 학교도서관 문제가 정말 심각한데 그동안 위원회가 신경을 못 썼다. 도서관은 대학의 상징이자 경쟁력이다. 재정이 어렵다고 자료 구입비 줄이고 사서 인력 줄이는 게 말이 되나. 대학평가에 도서관 항목을 넣어 달라고 교육부에 요구하고 있는데 총장들이 반대하고 있다. 그래도 위원회가 지속적으로 나서겠다. 초·중·고 학교도서관의 경우 전문 사서 배치 비율이 10%에 불과하다. 임시계약직 사서를 합해도 30%대다. 책 읽는 사회를 만들려면 어릴 때부터 전문가에게서 올바른 독서 지도를 받는 게 중요하다. 교육 예산을 늘려 내실 있는 독서교육 환경을 만드는 것도 위원회가 해야 할 일이다. coral@seoul.co.kr ■신기남 위원장은 누구 변호사·정치인… “마지막엔 소설가일 것”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하다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16대, 17대, 19대 의원을 지냈다. 2001년 도서관계의 간곡한 권유로 한국도서관협회장을 맡으면서 도서관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도서관발전 국회의원 포럼’을 구성해 국회 차원에서 도서관계 지원에 적극 나섰다. 2016년 ‘로스쿨 아들 구제 의혹’으로 징계를 받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민주당 소속으로 20대 총선에 나섰지만 낙선했다. 로스쿨 졸업시험에 떨어진 아들을 구제하려 학교 측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은 지난해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는 “정치는 충분히 했다”면서 “원래 꿈이 작가였다. 위원장 일 때문에 당분간 집필은 어렵겠지만 마지막 직업은 소설가일 것”이라고 말했다.
  • 文대통령 “계엄문건 본질은 진실…기무사 개혁 필요성 더 커져”

    “수사 최우선…관련자 엄중 책임 묻겠다 기무사 개혁TF, 서둘러 보고서 내달라” 개혁위, 새달 9일까지 개혁안 제출 방침 文 “宋장관 책임 따져봐야” 문책도 시사 軍특수단 ‘계엄 문건’ 소강원 참모장 소환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문건’ 논란과 관련해 “본질은 계엄령 문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으로, 왜 문서를 만들었고 어디까지 실행하려 했는지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며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하며, 합동수사단의 철저한 수사가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또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계엄령 문건 보고 경위와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잘잘못을 따져 봐야 한다”고도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보고를 받은 뒤 “계엄령 문건이 공개된 뒤 여러 논란이 이어지고, 국회 국방위에서 진실 공방까지 벌어져 국민에게 큰 혼란을 주고 있다.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가닥을 잡아서 하나하나 풀어 갈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언급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송 장관과 이석구 기무사령관 등이 공개공방을 벌이면서 계엄령 문건의 본질은 가려진 채 군 기강 논란 및 ‘진실게임’ 양상으로 치닫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국방부와 기무사 간 대립만 부각된다면 기무사 개혁을 포함한 국방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기무사 개혁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며 “기무사 개혁 태스크포스(TF)는 논의를 집중해 기무사 개혁안을 서둘러 제출해 줬으면 한다”고도 말했다. 이와 관련, 국방부 기무사 개혁위원회는 다음달 9일까지 개혁안을 국방부에 제출하기로 했다. 장영달 위원장은 “명칭이 바뀔 가능성이 있고, 기무사를 외청으로 만드는 방안은 건의 형태로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송 장관 문책론에 대해서도 처음 입장을 밝혔다. 다만 “기무사 개혁TF 보고 뒤 책임의 경중에 대해 판단하고 합당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합당한 조치’가 경질을 포함한 것인지를 묻자 김 대변인은 “책임을 따져 보고 판단하실 것”이라고 답했다. 지금껏 청와대는 송 장관 책임론에 선을 그어 왔지만, 처음으로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엄중한 상황인식이 엿보인다. 보고 경위에 대한 진실을 파헤쳐 실책이 드러난다면 경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국방부 특별수사단은 기무사 계엄령 문건 작성을 위한 TF를 이끌었던 소강원 기무사 참모장(육군 소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소환 조사했다. 기무사가 세월호 사고 직후 유족을 사찰했다는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기무사 및 예하부대를 압수수색했다. 국방부는 소 참모장과 기우진 기무사 5처장(육군 준장)을 직무 배제 조치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녹색지대와 함께하는 ‘순천고들빼기 작은 음악회’ 개최

    녹색지대와 함께하는 ‘순천고들빼기 작은 음악회’ 개최

    순천시 별량면 개령 마을에서 ‘고들빼기를 찾아가는 만남 여행’을 주제로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개랭이고들빼기 영농조합과 아시아뉴스통신 광주전남본부가 주관하는 음악회는 오는 31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개랭이웰컴센터 특설무대에서 진행된다. 이곳은 고들빼기 마을로 유명한 지역이다. 참석한 관객들에게는 순천에서 생산되는 친구사이(막걸리)를 제공하고, 음악회가 끝난 뒤에는 영화 상영도 예정돼 있다. 산골마을의 깊은 밤에서 음악과 영화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랑을 할거야’로 유명한 녹색지대 권선국과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홍보대사로 활동했던 ‘세월 참 잘도 가네요’의 정하윤 씨가 출연해 더운 여름밤을 시원하게 해준다. 문홍렬 색스폰 연주, 이정화 레크리에이션(쉬어가는 코너) 등 시민과 함께 호흡하면서 소통할 수 있는 음악회를 만날 수 있다. 유성진 순천고들빼기영농조합 대표는 “순천고들빼기를 널리 알리고자 작은 음악회를 추진하게 됐다”며 “많은 분들이 오셔서 행복한 여름밤의 향연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도움주신분과 참여해주신 모든분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고들빼기홍보를 위해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조용호 아시아뉴스통신 본부장은 “이번 작은 음악회를 시작으로 지역사회의 공연문화 다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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