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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가 손끝서 과학자 손길로… 아픈 곳 다듬는 수리수리 미술

    예술가 손끝서 과학자 손길로… 아픈 곳 다듬는 수리수리 미술

    미술 작품은 예술가의 손끝에서 태어나지만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건 과학자의 손길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충격에 의한 물리적 파손이든, 세월의 흐름에 따른 자연적인 노화 현상이든 상처나 질병 없는 작품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치료하고 보살피는 ‘미술품 의사’의 존재 역시 필연적이다. 미술계 전문 용어로 ‘보존과학자’(콘서베이터)가 그들이다.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 영화 ‘인사동 스캔들’ 등 대중 매체에서 보존과학자가 매력적인 직업으로 등장한 적은 있으나 미술 전공자나 관계자가 아닌 일반 관람객에게 여전히 보존과학은 흥미롭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미지의 세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인공을 빛낸다는 점에서 무대로 치면 백스테이지에 해당하는 미술관 보존과학실을 엿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마련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보존과학자 C의 하루’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보존과학의 내막을 속속들이 관객에게 펼쳐보인다는 측면에서 얼핏 연극무대와도 닮았다. 미술품 수장과 보존·복원에 특화된 청주관의 성격을 십분 살린 영리한 기획이다. 전시는 보존과학자 C의 일상과 고민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C는 콘서베이터(conservator), 청주(Cheongju), 3인칭 대명사 ‘씨’를 두루 아우르는 약칭이다. ‘C의 도구’는 보존과학자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수백 종류의 안료와 현미경 등 광학기기, 분석자료를 다양하게 배치해 보존과학실의 풍경을 재현했다.전시장 한쪽 벽에 걸린 오지호 작가의 1927년 작품 ‘풍경’ 실물과 이 그림을 자외선, 적외선, X선으로 각각 촬영한 세 장의 사진은 마치 숨은 진실을 파헤치는 탐정 같은 보존과학의 묘미를 선사한다. 원본은 물론 자외선, 적외선 촬영에서 보이지 않던 여인 전신상 밑그림이 X선 촬영에선 마술처럼 뚜렷이 드러난다. ‘시간을 쌓는 C’에선 소장품 실물과 복원 과정을 담은 기록 영상을 함께 전시해 보존과학의 이해를 돕는다. 이갑경 작가의 ‘격자무늬의 옷을 입은 여인’(1937)은 두 번의 대수술을 거쳤다. 캔버스 천이 찢어지고 물감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는 등 중병 상태가 확인돼 1989년 집중 치료가 이뤄졌다. 이후 2011년 보존처리에 사용된 재료가 들뜨거나 변색된 것이 관찰돼 2014년 재보존처리했다. 오랜 야외전시로 표면 변색이 심했던 니키 드생팔의 조각 ‘검은 나나(라라)’를 복원하기 위해 니키 드생팔 재단 측과 보존처리 방향을 협의하는 과정은 현대미술품 보존처리의 원본성과 진정성에 대한 의미를 숙고하게 한다.어디까지가 작품의 원본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일까. 보존과학자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과제다. ‘C의 고민’은 바로 이 어려운 질문 앞에 선 보존과학자의 실존적 고뇌를 우종덕 작가의 설치 영상 ‘The More the better’(다다익선)로 풀어낸다. 단종된 브라운관 TV 부품 문제로 가동을 중단한 백남준의 ‘다다익선’(1988) 보존처리에 관한 3가지 의견을 배우 한 명이 3개 채널에서 각기 다르게 개진하는 영상은 보존과학자의 치열한 내적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우종덕 작가 외에 류한길, 김지수, 정정호, 주재범, 제로랩이 소리, 냄새, 도구 등을 주제로 보존과학의 다양한 면모를 해석한 신작을 출품해 자칫 실험실처럼 딱딱할 수 있는 전시가 한층 풍부해졌다.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해야 관람할 수 있다. 10월 4일까지. 청주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대학이 사라진 자리… 청춘의 고뇌가 추억 되어 켜켜이

    대학이 사라진 자리… 청춘의 고뇌가 추억 되어 켜켜이

    대학로에는 대학이 없다. 인근 성균관대생이나 방송통신대생이 들으면 크게 노할 주장이다. 그러나 대학로에는 대학로를 잉태하게 한 대학은 없다. 더 슬픈 것은 대학로에 대학이 있었다는 역사적 실체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많지 않다는 것이다. 대학로, 한때 이 땅의 최고 지성들이 똬리를 틀었던 곳, 그러나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대학로는 현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혜화동, 명륜동 일대, 옛 서울대 문리대 캠퍼스 주변을 말한다. 상대나 공대가 주목을 받기 전 이른바 낭만의 시대, 사람들은 문리대가 대학의 중심인 줄 알았다. 당연히 이 땅의 젊은 수재들은 문리대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울대 문리대가 있었다. ‘문리대’란 말은 이 땅의 지식인들에게 묘한 느낌을 주는 말이다. 몹시도 가난했던 1960, 70년대 그 시절을 주름잡았던 한국의 주역들은 대개 문리대 출신이었다. 정치인은 너무 많아 언급조차 어렵다. 문학과 지성(문지) 창간 4K로 불리던 김병익, 김현, 김치수, 김주현이 그렇고 미학과에 다녔던 김민기가 그렇다. 4·19세대의 좌절과 슬픔을 노래한 시인 김광규도 문리대 출신이다. 이처럼 당시 문리대는 곧 이 땅의 지성과 동일시되는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학로를 곧 서울대 문리대의 고향 정도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세월은 모든 것을 앗아 간다. 하지만 문리대 옛터는 이제 서울미래유산만이 화려했던 과거를 증거하고 있다. 그래서 대학로에는 이 땅의 남녀노소 누구나 한 번쯤 가 봤을 명소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그 명소들은 이제 과거에서 문화유산이란 이름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누가 뭐래도 그 첫 번째는 일찌감치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학림다방이다. 별칭이 문리대 제3강의실이다. 서울대 문리대의 축제인 학림제가 이 다방의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그럴듯한 설이 있을 만큼 상징성이 크다. 1956년 문을 연 다방은 6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보란 듯이 남아 그 시절을 추억하고 있다. 여러 사람을 거쳐 80년대 이후 이충렬씨가 경영하다가 지금은 아들인 영우(28)씨가 다방을 지키고 있다.학림에 관한 숱한 전설은 워낙 넘쳐 지면이 부족해 보인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1956년, 학림다방’이라는 간판의 아우라에 사로잡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기 바쁘다. 영화 ‘강원도의 힘’, ‘번지점프를 하다’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사람들은 이곳에 와 커피를 마신다기보다는 선배 세대들의 추억을 마시게 된다. 이십대 젊은 사장이 맡고 난 뒤부터 아버지 세대의 슬픔을 공감하려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그 시절에는 기쁨보다 슬픔이 많았다. 학림에는 이 땅의 정치, 문학, 예술인들의 지도가 선명하게 그려진다. 방명록에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학림은 안 잊었노라’는 홍세화의 글과 ‘그 이름 오래 이어지소서’라는 고은의 글이 눈길을 끈다. 노무현의 친필도 남아 있다. ‘오늘 또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기쁩니다.’ 역시 노무현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 가수 김민기씨와 함께 얘기하다 갔다”고 주인이 기억을 더듬었다. 속이 출출하면 가야 할 곳이 있다. 진아춘(進雅春). 그 시절 문리생들의 신입생 환영회, 종강 파티, 졸업 사은회가 단골로 열렸던 중국집, 역시 서울미래유산이다. 1925년 문을 연 진아춘은 학림과 함께 대학로를 대표하는 가게다. 100년에 가까운 오랜 세월을 대학로와 함께했다. 산둥성 출신 화상인 주인 형원호(65)씨가 30년 넘게 꾸려 가고 있다. “해가 갈수록 힘들다.” 주인장의 목소리에는 ‘우아한 봄을 선사한다’는 낭만적인 가게 이름과는 대조적으로 수심이 배어 있다. 대학로의 무게를 더하는 것은 또 있다. 바로 건축가 김수근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건축가인 김수근은 유독 대학로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래서 건축계는 대학로를 ‘김수근밸리’라고 부른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부근에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대부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짧은 생을 살다 간 김수근은 평생 벽돌과 담쟁이를 사랑한 사람이다. 그의 많은 작품들이 벽돌과 담쟁이를 오브제로 탄생됐다. 경동교회가 그렇고, 공간 사랑(현 아라리오뮤지엄)이 그렇고, 드물게 지어진 단독주택 세검정 세이장도 벽돌과 담쟁이로 처리돼 있다.그중 대학로의 랜드마크는 당연히 공공그라운드(구 샘터 사옥)이다. 1979년 완공된 샘터 사옥은 적벽돌과 담쟁이로 처리돼 따스함과 포근함을 주는 김수근의 걸작이다. 역시 김수근의 작품인 아르코미술관(구 문예회관)의 벽면에 불규칙하게 튀어나온 벽돌은 보는 이에게 묘하게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마로니에 공원이 자리한 대학로에는 60, 70년대 가난한 나라의 지성들의 슬픔이 진하게 숨겨져 있다.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우며 샹송을 노래하고 민주주의를 외친 이 땅의 장년 세대들의 좌절과 슬픔, 고뇌가 녹아 있는 곳이다. “입학 당시 대학로 중간에는 개나리꽃이 무성하던 실개천이었습니다. 문리대 교정은 대학로 중간쯤에 있던 다리에서 시작됐고 당시 문리생들은 볼품없던 시멘트 다리를 미라보 다리로, 실개천을 센강이라고 부르며 파리를 동경했습니다. 아침부터 술에 취한 채 다리 밑에 떨어져 고래고래 고함지르던 문리생들도 많았습니다. 마로니에가 무성하면 그 그늘 밑에서 헤리 벨라폰테와 손시향의 노래를 불렀죠.” 대학로를 배경으로 한 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로 널리 알려진 김광규 시인의 회고다. 시인은 “지금은 없어진 쌍과부집에 가서 막걸리를 퍼마시거나 아니면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 학림에 가서 죽치고 앉아 LP판을 듣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며 “그때 들었던 베니아미노 질리의 ‘귀에 익은 그대 음성’이 지금도 귓전에 생생하다”고 덧붙인다. 대학로 중심 마로니에 공원 일대는 이제 한국의 대표적인 연극촌으로 자리매김했다. 관악 캠퍼스로 이전하기 전 서울대의 모습을 축소시켜 재현해 놓은 청동모형만 그 옛날 마로니에가 무성하던 시절을 증언해 준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귓가에 속삭여 줄 사람은 가고 어디에도 없다. 정신의 리버럴리즘을 추구하던 고단한 몸짓은 이제 더이상 이곳에서 찾기 어렵다. 별을 보고 길을 찾았던 시대는 행복했다는 루카치의 한 구절이 남루하다. 짙푸른 플라타너스는 옛사랑이 피를 흘린 곳에서 제 무게에 겨워 넓은 잎을 늘어뜨리고 있고 마로니에의 풍성한 그늘에서는 버스킹을 하는 십대들의 노랫소리만 허공에 맴돈다. 학전소극장 부조에 새겨진 요절 가객 김광석의 노래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중략…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그렇다. 머물러 있는 청춘은 없다. 우리 모두 매일 이별하며 살아가고 있다. 초여름 햇살이 마로니에 공원에 뭉텅뭉텅 쏟아지고 있다. 글 김동률 서강대 교수(매체경영)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 ‘전두환 전 대통령 아호 딴 ‘일해공원’ 이름 바꿔라’ 기자회견

    ‘전두환 전 대통령 아호 딴 ‘일해공원’ 이름 바꿔라’ 기자회견

    경남지역 시민단체가 9일 경남 합천출신 전두환 전 대통령 아호 ‘일해’(日海)를 따 지은 합천군 ‘일해공원’ 앞에서 공원명칭변경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합천군을 방문해 공원명칭변경을 요청했다.‘적폐청산과 민주사회 건설 경남운동본부’는 이날 오후 합천군을 방문해 문준희 군수와 간담회를 갖고 일해공원 명칭 변경을 요구했다. 적폐청산 경남본부는 “세월이 많이 흘러 시대가 변했음에도 일해공원 명칭을 유지하는 것은 합천 이미지를 왜곡할 소지가 있다. 당장 내일이 아니어도 되니 군수가 결단해서 군민 의견을 수렴하면 좋은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한다”며 일해공원 명칭 변경을 건의했다.문 군수는 “시대가 변했으니 공원 명칭 변경과 관련해 군민 의견을 모아 문제를 풀어보겠다”면서 “다만 합천은 전 전 대통령 고향이라 위인이든 죄인이든 군민들은 그에 대해 어머니의 마음을 갖고 있는 점을 고려해달라”며 군민의견을 수렴해서 변경여부를 검토해 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 군수는 “합천은 과거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자부심을 가졌는데 날이 갈수록 꺾여 지금은 바닥 수준”이라며 “자랑스러운 대통령이 되지 못해 곤혹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전두환 생가를 국·공유 재산 목록에서 제외하라는 시민단체 요청에 대해서는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문 군수는 “다른 전직 대통령들은 수백억짜리 기념관이 있으나 합천은 초가 하나다”면서 “군산에서는 울분이 생기지만 일제시대 흔적을 그대로 보존해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 있다”는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생가 관리에 해마다 1000만원쯤 들지만 많은 돈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좋은 대통령의 생가인지 나쁜 대통령 생가인지는 사람들의 판단에 맡기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적폐청산 경남본부는 이날 오전 합천읍 일해공원 표지석 앞에서 일해공원 역사왜곡 규탄과 명칭변경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표지석을 대형 현수막으로 덮어 가리는 퍼포먼스를 했다.이 시민단체는 “전국 곳곳에서 전두환 흔적 지우기와 역사바로세우기가 진행되고 있지만 합천에서는 일해공원 명칭이 유지되고, 국민 세금으로 전두환 생가를 보존하고 있으며 생가 안내판에는 ‘국가 위기를 수습해 대통령으로 추대 되었다’는 역사왜곡이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적폐청산 경남본부는 “내란 등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전두환 생가를 국·공유 재산 목록에서 삭제하고 일해공원 명칭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참회없는 전두환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가르쳐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으로 전 전 대통령 친필 휘호가 새겨진 공원 표지석을 덮었다.합천군은 2004년 황강변에 ‘새천년 생명의 숲’을 조성해 개원한 뒤 2007년 공원 이름을 전두환 전 대통령 아호를 딴 일해공원으로 바꾸었다. 공원입구에 전 전 대통령 친필휘호가 새겨진 표지석도 설치했다. 표지석 뒷면에는 ‘전두환 대통령이 출생하신 자랑스러운 고장임을 후세에 영원히 기념하고자 표지석을 세웁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공원 이름을 바꾼 뒤 여러 단체가 일해공원 이름을 반대하는 활동을 하며 명칭변경을 요구하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합천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제주법원 4·3 행방불명 수형인 유족 재심 청구 첫 심문

    제주법원 4·3 행방불명 수형인 유족 재심 청구 첫 심문

    제주 4·3 행방불명 수형인 유족들의 재심 청구 절차가 시작됐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장찬수 부장판사)는 8일 오전 201호 법정에서 4·3행불인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첫 심문을 했다. 앞서 지난해 1월과 6월 두차례에 걸쳐 4·3 수형인명부에 등록된 2530명 중 행불인 유족 349명이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 청구 대상자들은 1948~1949년 사이 내란실행과 국방경비법 위반 등 혐의로 적법한 절차없이 군사재판에 회부돼 형무소에서 숨졌거나 행방불명된 이들이다. 이번 재심 청구는 지난해 무죄나 다름없는 공소기각을 받아낸 생존 수형인과 달리 재심 당사자들이 직접 재판에 참여하지 못해 배우자나 직계 자손들이 대신해서 재판에 참여한다.유족 변호인은 현재 실종 상태인 행불 수형인들이 법적으로 사망했는지도 증명해야 한다.재판부는 심문을 마친 후 재심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4·3 행불인유족협의회는 이날 심문을 앞두고 제주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72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유족들이 원통함을 가슴에 안고 돌아가셨거나 나이가 들어 앞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청구인이 살아있을 때 결론을 볼 수 있도록 빠른 진행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제주지법은 지난해 1월17일 4·3수형인 18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군법회의 재심 청구사건 선고공판에서 당시 수형인들에게 적용된 국방경비법 위반과 내란실행죄가 근거가 없다며 사실상 무죄 취지로 공소를 기각했다.공소기각이란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공소가 적법하지 않다고 인정해 사건의 실체를 심리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하는 것을 말한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윤미향 “동지들 생각하며 버텨…나보고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

    윤미향 “동지들 생각하며 버텨…나보고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

    “이런 지옥의 삶 살 지 생각도 못해”언론·검찰에 분노 표출 “매일 괴롭혀”“소장님 영혼 살피지 못했다” 토로도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전날 사망한 서울 마포구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소장 A(60)씨와 관련해 “나랑 끝까지 가자고 해놓고 그 고통, 괴로움 홀로 짊어지고 가셨으니 나보고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고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다. 윤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 추모사에서 “악몽이었다”며 “2004년 처음 우리가 만나 함께 해 온 20여년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런 날이 닥칠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다. 우리 (김)복동 할매 무덤에 가서 도시락 먹을 일은 생각했었어도 이런 지옥의 삶을 살게 되리라 생각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렇게 힘들어 하면서 ‘대표님, 힘들죠? 얼마나 힘들어요’ 전화만 하면 그 소리를 했다”며 “나는 그래도 잘 견디고 있다고 하면 ‘미안해서 어쩌나요’라고 했던 우리 소장님”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자들이 쉼터 초인종 소리 딩동 울릴 때마다, 그들이 대문 밖에서 카메라 세워놓고 생중계하며, 마치 쉼터가 범죄자 소굴처럼 보도를 해대고, 검찰에서 쉼터로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하고, 매일같이 압박감, 죄인도 아닌데 죄인의식 갖게 하고, 쉴 새 없이 전화벨 소리로 괴롭힐 때마다 홀로 그것을 다 감당해 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말도 적었다. 그는 “저는 소장님과 긴 세월을 함께 살아온 동지들을 생각하며 버텼다”며 “뒤로 물러설 곳도 없었고 옆으로 피할 길도 없어서 앞으로 갈 수밖에 없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버텼다”고 했다.윤 의원은 “내 영혼이 파괴되는 것 부여잡고 씨름하느라 우리 소장님 영혼을 살피지 못했다”며 “정말로 미안합니다”라고도 했다. 그는 “쉼터에 오신 후 신앙생활도 접으셨고, 친구관계도 끊어졌고, 가족에게도 소홀했고, 오로지 할머니, 할머니”라며 “명절 때조차도 휴가 한 번 갈 수 없었던 우리 소장님. 당신의 그 숭고한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내 가슴 미어진다”고 전했다. 윤 의원은 “외롭더라도 소장님, 우리 복동 할매랑 조금만 손잡고 계시라”며 “우리가 함께 꿈꾸던 세상, 복동할매랑 만들고 싶어 했던 세상, 그 세상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편히 쉬소서”라는 글로 끝을 맺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남북부터” 문 대통령 ‘선순환 정책’에 北 “달나라 타령” 비아냥

    “남북부터” 문 대통령 ‘선순환 정책’에 北 “달나라 타령” 비아냥

    北 매체 우리민족끼리 ‘달나라 타령’ 비판“말만 그럴듯…실천은 북미 관계 앞세워”문 대통령에 ‘남조선 집권자’ 수위 조절북한이 탈북민들의 전단 살포를 남측 정부 탓으로 돌리며 강하게 반발하는 가운데 7일 남북 관계 개선을 앞세운 문재인 대통령의 ‘선순환 관계’ 정책에 대해 “달나라 타령”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 관계 개선에 힘쓰면 자연스럽게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관계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라며 남북 관계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이날 ‘달나라 타령’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문 대통령이 집권 초기부터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대화 진전의 ‘선순환 관계’를 강조한 것을 두고 “아마 남조선 집권자가 북남합의 이후 제일 많이 입에 올린 타령을 꼽으라고 하면 ‘선순환 관계’ 타령일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선순환 관계를 남조선 당국자는 북남관계와 조미 관계를 서로 보완하며 추진해 나가는 것이라고 그럴듯하게 해석하는데, 말이 그렇지 실천에 있어서는 북남관계가 조미관계보다 앞서나갈 수 없으며 조미 관계가 나빠지면 북남 관계도 어쩔수없는 관계로 여기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북한은 남한의 선순환 정책에 대해 핵문제 중심으로 다루는 북미협상이 진전되지 않으면 남북 관계 개선도 추진하기 어렵다는 입장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다만 문 대통령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은 채 ‘남조선 집권자’라고 수위를 조절해 표현했다. 매체는 이어 “북남 관계는 북과 남이 손잡고 평화와 번영,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우리 민족의 내부문제라면 조미관계는 말 그대로 우리 공화국과 미국과의 관계문제”라고 강조했다.그러면서 “지금까지 북남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사건건 미국에 일러바치고 미국이 승인해주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손들고 나앉아 아까운 시간을 허송세월한 것이 남조선당국”이라며 “이것이 상식적으로 ‘악순환 관계’이지 어떻게 ‘선순환 관계’인가”라고 지적했다. 또 “성격과 내용에 있어서 판판 다른 북남 관계와 조미 관계를 억지로 연결시켜놓고 ‘선순환 관계’타령을 하는 그 자체가 무지와 무능의 극치”라며 “달나라에서나 통할 ‘달나라타령’”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남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면 그 자체로도 좋을 뿐만 아니라 북미 대화에 좋은 효과를 미치는 선순환적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면서 북미 대화의 교착과 맞물려 다소 소강상태를 보이는 남북 관계의 개선에 더욱 힘쓰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바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취중생] 커닝 속출 온라인 시험, 대학은 정말 책임 없나요

    [취중생] 커닝 속출 온라인 시험, 대학은 정말 책임 없나요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기자님, 저희 학교만 그런 거 아니잖아요.” 지난 2일, 1학기 기말고사를 비대면(온라인)으로 진행할 예정인 서울 한 사립대 관계자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한 얘깁니다. ‘온라인 시험 부정행위 방지 대책이 있느냐’는 질문에 얼버무리다 내놓은 대답이 이랬습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으면서 대부분의 대학은 이달 말 예정된 기말고사를 비대면 시험으로 전환했습니다. 아무리 방역과 소독을 철저히 해도 학생들이 한꺼번에 모여 시험을 치는 건 위험부담이 크다고 본 겁니다. 온라인 시험 친다면서 커닝 방지책은 “…” 문제는 비대면 시험의 공정성입니다. 지난 중간고사 때 이미 온라인으로 시험을 치른 일부 학교에서 학생들이 집단으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인하대 의대에서는 무려 91명의 학생이 의학과 과목 단원평가와 중간고사에서 답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습니다. 건국대와 서강대, 연세대, 한양대 등 서울 시내 주요 대학에서도 중간고사 기간 학생들이 모여서 시험을 보거나 대리시험을 봤다는 제보가 속출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작 대학 당국에서는 온라인 부정행위를 막을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서울신문이 서울시내 대학 10여곳에 물어본 결과 대다수의 대학이 커닝, 대리시험 등 부정행위에 대한 대책이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화상회의 시스템을 이용해 학생 얼굴을 확인하겠다는 대학은 ‘양반’이었습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엄격한 관리가 가능한 경우에만 온라인 시험을 허용한다”고 했는데, 엄격한 관리 기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논의 중”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대학 관계자는 “우리 학교 학생들은 부정행위를 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는 황당한 답을 내놨습니다. 대다수 대학이 선택한 답은 ‘교수 재량에 맡긴다’였습니다.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시험이든 보고서든 모든 결정을 교수나 강사 개인에게 떠넘기는 겁니다. 이에 서울 한 사립대 교수는 “학생들에게 기말고사 진행에 대해 의견을 물었는데, 너무 다양한 의견이 나와 고민스럽다”면서 “부정행위 방지도 문제지만, 수업을 열심히 들은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어떻게 구분할지도 문제”라고 전했습니다. 공정성 논란을 막을 수 없는 온라인 시험 대신 아예 보고서만 제출받아 평가하겠다는 교수도 많습니다. 학생들 “교육권 침해…등록금 반환해야”학생들 사이에선 “온라인 시험이 ‘인싸’와 ‘아싸’를 구분하는 기준이 됐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이렇게 별다른 방지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온라인 시험을 치면 절대 부정행위를 막을 수 없다는 겁니다. 한 학생은 “친한 친구가 많으면 (답안을 서로 공유하니) 시험을 잘 보고, 친구가 없으면 혼자 망하는 식”이라면서 “커닝 안하는 사람만 바보된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대학 당국에 등록금 환불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와 청년단체 ‘청년하다’, 이화여대·숙명여대 학생회 등은 5일 국회 앞에서 등록금을 반환해달라며 10시간 연속 발언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교육권이 침해되는 상황에서 교육부는 ‘대학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며, 각 대학본부는 ‘교육부의 가이드가 없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을 할 수 없다’며 서로 책임 미루기만 한다는 겁니다. 수개월째 “우리도 어쩔 수 없다”며 답만 반복하며 수업에서도, 시험에서도 책임을 회피하는 대학. 이게 정말 최선일까요?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금요칼럼] 우리가 몰랐던 다산 정약용/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금요칼럼] 우리가 몰랐던 다산 정약용/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산 정약용을 잘 안다. 나 역시 유명한 그 실학자를 꽤 잘 안다고 은근히 자부했으나 내가 모르는 사실이 너무 많다. 얼마 전 한 권의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일제강점기에 최익한 선생이 쓴 글인데 낯선 이야기가 많았다(‘여유당전서를 독함’, 송찬섭 편, 서해문집, 2016). 현대인이 전혀 모르는 정약용에 관한 설화들이 구한말까지도 널리 퍼져 있었다. 최익한은 정약용 연구를 시작한 학자였는데 월북했기 때문에 남쪽에서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는 어린 시절 고향인 울진에서 한문을 배웠다. 그때 훈장님들로부터 정약용에 관한 일화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눈치 빠르고 재기발랄한 재담꾼 정약용의 모습이 담긴 이야기들이었다. 최 선생이 기록한 설화를 좀 소개해 볼까 한다. 정약용은 열다섯 살 때 풍산 홍씨와 결혼했다. 처가 쪽 친척인 홍인호가 “사촌 매부가 삼척동자구나”라고 정약용을 놀렸다. 그 당시 정약용의 키가 작았다. 나중에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컸다고 하는데, 그렇게 놀림을 당하자 정약용은 바로 말폭탄을 던졌단다. “중후한 장손이 경박한 소년일세.” 축하객들은 신랑이 대담한 데다 재치가 뛰어나서 모두 혀를 내둘렀단다. 정조와 정약용의 재주를 비교하는 이야기도 있다.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말장난을 주고받았다는 설화가 강원도와 경상도의 식자층에 널리 퍼져 있었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주목할 일이다. 정조가 말장난을 시작했다는데, “말이 마치(馬齒) 하나둘 이리(一二)”라고 했단다. 곧 정약용이 응수하기를 “닭의 깃이 계우(鷄羽ㆍ겨우) 열다섯 이오(一五)”라 했다. 다시 정조가 “보리 뿌리 매끈매끈(麥根)”이라고 말을 이었다. 이에 정약용은 “오동 열매 동실동실(桐實)”이라고 화답했다. 정말로 정약용과 정조가 이런 말장난을 벌였는지는 확인할 길은 없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은 두 가지 점을 시사한다. 첫째, 당시 사람들은 정조와 정약용의 사이가 매우 돈독하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조정에는 인재가 넘쳐났으나 정약용만큼 정조의 아낌을 받은 신하는 없었다는 뜻이다. 둘째, 정조와 정약용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재기발랄한 수재라는 뜻이다. 그럼 두 사람 중에서 누가 더 똑똑하다고 사람들은 판단했을까. 설화에 따르면 단연코 정약용이 한 수 위였다. 어느 날 둘이서 다시 내기를 벌였단다. 같은 글자를 세 번 반복해 만든 한자를 찾기로 했다. 수정 정(晶), 간사할 간(姦), 물 아득할 묘(?) 등 이런 글자가 많아 쉽게 끝나지 않을 시합이었다. 문득 정약용이 왕에게 말을 걸었다. “전하께서는 이 한 글자를 모르실 것입니다.” “그게 무엇인가.” “석 삼(三)입니다. 일(一) 자를 세 개 모은 것입니다.” 과연 정조가 쓴 답안에는 이 글자가 없었다. 정약용의 승리였다. 선비들은 정약용의 재주를 부러워한 나머지 그를 골탕 먹이기 위해 꾀를 냈다. 그들은 함께 모여서 한 장의 편지를 썼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괴상망측한 옛날 글자(古字)만 골라서 지면을 메웠다. 인편에 그 편지가 정약용에게 배달됐다. 정약용은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단숨에 답장을 써 주었다. 답장을 받은 선비들은 한 글자도 읽지 못해 함께 자전을 뒤적이며 가까스로 해독했다. 정약용은 그들이 보낸 편지를 또 다른 옛 글자로 옮겨 적은 것이었다. 정약용은 하늘이 내린 재상감이었다. 설화에는 그런 안타까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이후의 실제 역사는 모두가 아는 대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는 긴 세월 동안 유배객의 쓰라림을 겪어야 했다. 불행 중 다행은 그가 절망하지 않고 학문에 힘써 503권의 저서와 함께 역사 앞에 우뚝 섰다는 사실이다.
  • 코로나 후 인문학 길 찾아요 답

    코로나 후 인문학 길 찾아요 답

    최근 서점가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를 들라면 ‘포스트 코로나’를 꼽을 수 있다. 코로나19가 무엇인지를 넘어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논하는 책들이다. 특히 최근에는 여러 석학을 통해 코로나19를 돌아보고 답을 제시하는 기획서들이 눈길을 끈다.●의료 현장에서 인류학적 고민 ‘포스트 코로나 사회’(글항아리)는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와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 교수, 박한선 전문의 등 12명이 의료 현장에서 인류학까지 코로나19를 성찰한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차출돼 대구로 내려가 환자 곁을 지킨 김수련 간호사의 ‘어떤 하루’를 시작으로 필자들은 코로나19 사태를 여러 부분에서 점검한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헝가리 유람선 침몰 등 여러 사회적 재난의 심리 지원을 맡았던 심민영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장이 ‘바이러스가 남긴 트라우마’를 통해 감염병 이후 트라우마를 이야기한다. 우 대표는 ‘불평등한 세계에서 팬데믹을 응시하다´에서 기울어진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코로나19가 큰 타격을 줄 것이라 경고한다.●코로나를 보는 다양한 의료인문학 시선 경희대 인문학연구원 HK와 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이 손잡고 낸 ‘코로나19 데카메론’(모시는 사람들)은 의료인문학으로 범위를 좁혔다. 의료·인문 부문 연구자들이 관련 주제를 서로 다르게 분석한 점이 돋보인다. 예컨대 박지영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선임연구원이 코로나19에 관해 인간이 야생동물 서식지를 침범한 결과로 봤다면, 이향아 교수는 감염병 확산과 증폭에 따른 이동성과 감금공간을 논한다. 감염병이 사람들의 이동성으로 전파되면서도 이동성이 멈추어서는 이른바 ‘감금공간’에서 증폭한다는 설명이 의미심장하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K방역에 관해 최성민 교수는 신속한 대처와 발 빠른 진단 키트 개발에 관해 말하고, 이상덕 연구교수는 이와 관련해 ‘한국인은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있을지’를 묻는다. 그는 아테네 지도자 페리클레스의 연설을 들어 성숙한 시민의식을 과제로 내건다.●팬데믹 속 인간의 새로운 삶 조명 ‘코로나 사피엔스’(인플루엔셜)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표 석학 6인을 내세운 책이다. CBS 프로그램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기획해 방송을 탔던 인터뷰를 책으로 묶었다. 저자들은 코로나19 시대 이후를 살아갈 인류를 ‘코로나 사피엔스’로 명명하고, 앞으로 무엇이 중요한지에 초점을 뒀다. “화학백신이 아닌 생태백신과 행동백신”을 답으로 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비롯해 코로나19 시대 이후 요동치는 세계 경제 속에서 “성장은 수단일 뿐 모든 국민을 잘살게 하는 게 목표”라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말을 곱씹어 볼 만하다. 이 밖에 문명의 전환에 관해 이야기한 최재붕 성균관대 교수,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체제를 논하자는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과 김누리 중앙대 교수의 글, 그리고 이제는 나의 행복에 관해 생각해 보라는 김경일 아주대 교수의 글도 시사점을 던진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 기자 질문에 21초 동안 머뭇거린 트뤼도 캐나다 총리

    “…” 기자 질문에 21초 동안 머뭇거린 트뤼도 캐나다 총리

    대략 21초 동안 그는 답을 하지 못했다. 말을 가려서 해야겠다는 듯 몇 번 입술을 달싹거리기만 했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나 총리가 2일(현지시간) 기자회견 도중 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가혹행위로 흑인이 사망한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가 일주일째 이어지는 것과 관련해 질문을 받았다. 기자의 질문을 들어보자. “총리는 그동안 미국 대통령의 말과 행동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주저해 왔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시위대에 군대를 투입해야 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어제 우리는 대통령이 사진 찍는 행사를 위해 경찰이 시위대에 최루탄을 발사하는 것을 봤다. 난 총리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또 언급하고 싶지 않다면 총리는 어떤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낸다고 생각하는가?” 트뤼도 대통령은 몇 차례 망설인 끝에 느릿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공포와 경악 속에 지켜보고 있다. 지금은 사람들을 끌어모을 때이다. 하지만 귀기울여 들을 때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과 수십년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정의롭지 못한 일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게 되는 때이다. 우리 캐나다인들도 우리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있다. 흑인 캐나다인과 소수인종 캐나다인들이 매일 현실로서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고 답을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넬슨 와이즈먼 토론토 대학 교수는 “트뤼도 총리는 이런 질문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의 대답은 트럼프를 언급하지 않은 채 트럼프를 비판한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자신을 “법과 질서의 대통령”이라고 선언한 뒤 군대를 동원하겠다는 강한 진압 의지를 천명하고 “특별한 장소로 이동하겠다”며 백악관 입구를 걸어서 나갔다. 이때 길 건너 라파예트 공원에서는 수천명이 평화로운 시위를 열고 있었다. 경찰은 로즈가든 연설이 진행되던 중 섬광탄, 고무탄, 최루탄 등을 쏴가며 강제 해산했다. 그 뒤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가 두렵지 않다고 과시하듯 공원을 거쳐 인근 세인트 존스 성공회 교회로 걸어갔다.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만큼, 트뤼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지 않으려고 신중한 모습을 보여왔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캐나다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75% 에 이른다. 트뤼도 총리는 지난해 12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0주년 기념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뒷담화하는 듯한 영상이 공개돼 입방아에 올랐다. 트뤼도 총리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대화하면서 “‘그’의 팀원들조차 매우 놀라워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는 등 트럼프 대통령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발언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위선적인 사람”이라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사설] 통합당 ‘약자와의 동행’, 정책으로 진실성 보여 줘야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어제 공식 출항했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 첫 공식 회의 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면서 “진취적으로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회의에서는 통합당을 ‘진취적인 정당’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진취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한 점이 특이한데 앞서 예고한 ‘깜짝 놀랄 만한 변화’의 시동을 걸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진보 진영보다 더 진보적인 정책을 내놓을지도 주목된다. 통합당 비대위는 정책 슬로건을 ‘약자와의 동행’으로 정하고 당의 보수노선에 큰 변화를 예고했다. 일각에서는 기본소득제 도입 등 기존 보수 진영에선 상상하기 힘든 파격적 정책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창조적 파괴와 파괴적 혁신을 통해 통합당을 회생시킬 계획인 김 위원장은 당내 인사들에게 진보·보수·중도라는 표현을 쓰지 말자고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꼴통보수’, ‘꼰대’로 고착화된 통합당 이미지를 이번 기회에 완전히 바꿔 보겠다는 의욕일 것이다. ‘약자와의 동행’ 약속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통합당은 지난 총선에서 영남 일부와 서울 강남3구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참패했다. 통합당은 재벌과 기득권을 대변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유시장경제 논리를 내세워 노동자 안전을 위한 규제 신설 등에는 인색했고 종합부동산세 강화 등 부자증세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가 총선 성적표로 나타났다. 이제는 사회적 약자, 서민, 노동자와 함께 가겠다고 약속은 하는데,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다. ‘약자와의 동행’이란 약속은 그럴듯해도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나 그 유가족을 ‘불순세력’으로 폄훼하고 세월호 유족을 조롱하며, ‘죽음의 일터’로 매일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외면해 온 과거와 ‘김종인 비대위’는 완전히 단절해야만 한다. 혹여 지지층 확대를 위한 분식(粉飾)이라면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 필망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말이 아니라 행동과 정책으로 변화를 입증해야 한다.
  • 경계에 집을 짓다…아버지 삶을 잇다

    경계에 집을 짓다…아버지 삶을 잇다

    한국인 건축가 유동룡(庾東龍). 그는 일제강점기 때 징용 간 경남 거창 출신의 부모 밑에서 2남 7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다. 당시 한국인들은 대부분 조선학교를 다녔지만 장남으로서 동생들을 돌봐야 할 책임 때문에 일본학교로 보내졌다. 일본학교를 다녔을지언정 유동룡이라는 한국이름과 한국국적을 고수했던 그였기에 유소년 시절부터 차별이라는 족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1968년 작가 활동을 앞두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국을 찾은 그는 한국의 수려한 강산과 문화에 매료된다. 이후 자연과 조화를 꾀하면서 환경에 순응하는 한국 전통공간의 아름다움은 이타미 준의 건축 철학 근간이 됐다. 민화를 시작으로 가구, 도자기 등 고미술품이 주는 조형의 순수함과 따뜻한 온기에 빠졌다. 틈날 때마다 전국을 여행하면서 전통건축물들을 손수 도면화했다. 일본에서 ‘이조의 민화’(1975), ‘이조의 건축’(1981), ‘조선의 건축과 문화’(1983), ‘한국의 공간’(1985) 등 저서들을 연달아 출간하며 조선의 예술미를 찬미했다. 이 책들은 아직까지도 조선 건축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소중한 연구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건축가로서 ‘어머니의 집’이라는 작품 데뷔를 앞두고 성씨인 유가 일본 활자에 없어 곤란해지자 그는 ‘국제인’이 돼 살기로 결심한다. 뿌리를 찾기 위해 고국을 처음 방문할 때 출발했던 이타미공항에서 ‘이타미’라는 성을, 그리고 당시 의형제처럼 지내며 ‘요시아 준’이라는 예명으로 일본에서도 활동하던 작곡가 길옥윤 선생의 ‘준’에서 이름을 따서 작가명 ‘이타미 준’을 만들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일본경제 활황기에 서구화, 근대화를 지향하며 반짝거리는 첨단건축을 선보였던 다른 건축가들과 달리 이타미 준이 본인만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존재의 근원을 질문하는 모노하의 예술가들과 의식을 공유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모노하의 대부 곽인식(1919~1988) 선생은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곽인식이라는 작가가 없었다면 지금의 이타미 준은 없다”라는 말을 종종 할 정도였다. 사물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봄으로써 존재의 근원에 도달하려는 모노하의 정신은 이타미 준의 작가세계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소재 그 자체의 물성을 찾기 위해 의식적으로 흙, 돌, 금속, 유리, 나무 등의 소재를 콘크리트와 대비시켜 조화와 대립을 꾀했다. 이타미 준이 데뷔한 1980년대 일본 건축계는 유리와 철이 중심을 이루는 획일화된 건축이 주류였다. 그때 그는 “현대건축에 본질적인 무언가가 결여돼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체온과 야성미일 것”이란 말을 남긴다. 표현할 시대정신마저 잃어버리고 현대건축을 구성하는 건축언어조차 애매하고 뒤죽박죽인 상황은 그에게 표현할 주제의 상실이자 온기의 상실이었다. 당대의 획일화된 산업사회 시스템 속에서 반근대적인 태도로 현대건축을 실천하고자 했던 이타미 준은 “토착 재료를 사용해서 그 땅이 지닌 오래된 가치를 오늘날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면서 산업사회 이전의 조형의 순수성을 추구했다. 돌을 이용한 ‘각인의 탑’, ‘석채의 교회’, ‘M빌딩’, 그 지역의 황토를 현장에서 직접 찍어내어 만든 ‘온양민속박물관’ 등은 자체의 물성만으로 그 존재를 강하게 드러낸다. 도쿄의 아카사카라는 도시 한복판에 세워진 M빌딩에서는 깨어진 면이 살아 있는 돌을 외벽에 그대로 사용해 그 야성이 드러나도록 함으로써 “획일화된 도시의 흐름을 거역하기 위해 도시의 빈틈에 기둥이 되라는 뜻”을 담고자 했다.1990년대 이후 건축에서는 비교적 강인한 조형과 토착 소재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진다. “사람의 생명, 강인한 기원을 투영하지 않는 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는 건축물은 태어날 수 없다. 사람의 온기, 생명을 작품 밑바닥에 두는 일. 그 지역의 전통과 문맥, 에센스를 어떻게 감지하고 앞으로 만들어질 건축물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다.”(이타미 준·‘Architecture and Urbanism 1970~2011’ 중에서) 그는 일찍이 한국의 전통 건축이 지닌, 자연과의 조화와 환경에 순응하는 건축물에 매료됐다. 제주도를 포함한 자연을 캔버스 삼아 작업 활동을 펼치며 대지에서 인간과 자연의 매개로서 건축 역할을 고민한다. 그에게 건축은 “자연과 대립하면서도 조화를 추구해야 하며, 공간과 사람, 자신과 남을 잇는 소통과 관계의 촉매제”여야 했다. 재료 자체가 날것 그대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풍경과 융합될 수 있고 온기가 있는 고요한 작품을 추구했다. 특히 제주에서의 작업들은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환경과 풍경에 조화를 이룰 뿐 아니라 바람이 많은 자연환경에도 순응해야 하는 건축을 강조했다. 건축 자체가 주인공이기보다 바람에 의해서 조각된 건축물로 남아 그대로 그 대지에 스며들기를 추구한 것이다. 제주도는 그에게 제2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바닷가에 있는 마을인 시즈오카 시미즈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에게 제주의 바닷가는 말년을 보내고 싶을 만큼 고국의 품과 같은 곳이었다. 이타미 준은 “국제적이며 보편적인 세계에서 독창성이란 그 지역의 고유한 문화에서 생성된 사상이 아니면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그리고 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제주에 건축가로서의 정점을 찍는 대표 작품들을 연달아 남긴다. ‘포도호텔’, ‘수, 풍, 석 미술관’, ‘두손 미술관’, ‘방주의 교회’, ‘비오토피아’ 등은 일본 건축계도 그를 주목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외국인에게는 수상의 기회가 전혀 없었던 무라노 도고 건축상을, 한국에서는 김수근 건축상 등의 영예를 안겨 줬다. 이러한 작품들을 쏟아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단지 우연한 건축주와의 만남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긴 세월 간직해 온 제주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이해가 바탕이 되고, 오랜 세월 굳건히 다져온 건축에 대한 그의 확고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풍토, 경치, 지역의 문맥(context) 속에서 어떻게 본질을 뽑아내고 건축에 스며들 수 있게 하는지를 고려합니다. 경치와 건축이 대립해도 좋고 조화가 돼도 좋습니다. 거기서부터 발생해서 새롭게 펼쳐지는 세상을 저는 보고 싶습니다.”(통일일보 이우환 작가와의 대담 중) 이타미 준의 건축에서 시간은 공간만큼이나 중요한 요인이다. 시간의 흐름과 역사성 속에서 유효할 때만 현대에도 유효할 수 있고, 그저 단순히 이념적으로만 말하는 것은 유행에 불과하며, 시간적인 두께가 없는 현재란 시제에만 머물 뿐 정착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새로운 대지를 접할 때나 복잡한 세상에서 새로운 행위를 하고자 할 때면 그 지역의 문화성과 역사성을 배경으로 하여 콘텍스트를 현재로 이끌어 내지 않고서는 사실성을 획득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 그 땅이 내는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한 신념과 정성이 있었기에 수십 년이 지난 작품에서도 사실성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자연에 저항하지 않는 유기체를 추구하고 그 지역의 풍토와 자연과 환경이 조화를 이루어 내며 언젠가는 결국 흙으로 다시 돌아갈 건축을 생각하며 시간의 흐름을 담담히 반영한다. “완만한 기복을 보이는 산과 우리 전통의 마을이 조화를 이뤄 춤추는 듯하다”며 예찬했듯이 그는 이 땅에 없지만 그의 건축은 그렇게 바람과 함께 숨 쉬며 넉넉히 살아가고 있다. “나 같은 재일동포 2세들은 한국에서는 일본인으로, 일본에서는 한국인으로 늘 경계에 서 왔다. 그러나 가슴속에는 늘 태극기를 품고 살아왔다”고 가슴을 치며 이야기하시는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어눌한 한국말로 ‘조국’이라는 어려운 발음을 하실 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이 단어를 끌어내셨다. 건축 이야기를 안 하실 때면 “백자는 나의 스승”이라며 오로지 한국의 도자기 예찬만을 하셨던 분이다. 백자와 같이 따뜻한 온기를 품으며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그런 푸근함과 고귀함을 지닌 건축을 하고 싶으셨던 분이다. 그렇게 한국의 백자는 아타미 준 건축철학의 바탕이 됐고, 대지에 순응하며 겸허한 자세로 존재하는 한국의 전통건축 또한 그의 건축 철학의 근간이 됐다. “시대 조류에 흔들리지 말고 너만의 감성을 키우고 역사 위에 서는 건축가가 되라”라는 말씀은 내게 귀한 유산이 됐다. “예순을 넘으니 이제 건축이 뭔지 알 것 같고, 일흔이 넘으니 나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신 분. 일흔살까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는 현재대로 복잡성이 일상화됐고, 그것이 오히려 장르가 돼 가는 이 시대에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찾기 위한 노력은 매우 쉽지 않지만 멈출 수 없는 소명이다. 더이상 도시엔 그 지역의 문맥이나 지역성 따위를 찾아내기 힘들다. 그러나 아버지가 건축을 대하는 태도와 정신만큼은 이 복잡한 시대에서도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나 또한 아버지를 이어 현재도 미래에도 목소리를 내기를 멈추지 않고자 한다. 건축가 유이화
  • 청와대, ‘세월호 전면 재수사’ 청원에 답하다…“신중해야”

    청와대, ‘세월호 전면 재수사’ 청원에 답하다…“신중해야”

    청와대가 ‘대통령 직속’ 세월호 조사단을 설치해야 한다는 청원에 난색을 표했다. 청와대는 1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대통령 직속 특별수사단’을 설치해 전면 재수사를 하자는 내용의 국민청원에 대해 “수사의 중립성과 객관성 차원에서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기헌 시민참여비서관은 청원 답변을 통해 “현직 검사의 대통령비서실 파견을 금지한 검찰청법 등의 취지를 고려해 봐도 대통령 직속 수사단 설치는 신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비서관은 “현재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와 대검찰청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이 각각 엄정하게 조사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크고, 문재인 대통령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한 조사와 수사가 진행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 1일 올라온 ‘세월호 전면재수사’라는 제목의 청원에는 총 216,118명이 동의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산초 튀랑 조던 세리나 해밀턴 모두 “플로이드에 정의를”

    산초 튀랑 조던 세리나 해밀턴 모두 “플로이드에 정의를”

    “오늘 세상에는 우리가 반드시 언급하고 변화를 위해 도와야 하는 중요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달콤쌉싸래한 순간입니다. 정의를 위해 싸워요.”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활약하는 잉글랜드 대표팀의 ‘젊은 공격수’ 제이든 산초(20)가 최근 경찰관의 강압적 체포 과정에 숨진 미국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골 세리머니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번 주말 플로이드를 기리는 행동한 스포츠 스타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도르트문트와 파더보른의 2019~20 분데스리가 29라운드가 치러진 1일(한국시간) 독일 파더보른의 벤틀러 아레나에서 펼쳐진 산초의 골 세리머니는 TV로 지켜보던 팬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산초는 팀이 1-0으로 앞선 후반 13분 페널티 지역 왼쪽 측면에서 율리안 브란트가 내준 땅볼 크로스를 골 지역 정면에서 오른발 슛으로 결승 골을 터뜨렸다. 산초는 유니폼 상의를 벗었는데 속옷에는 ‘조지 플로이드를 위한 정의(Justice for George Floyd)’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물론 주심은 상의 탈의와 정치적인 표현을 금지하는 축구 규정을 좇아 옐로카드를 선사했다. 첫 골을 옐로카드와 바꾼 산초는 후반 29분과 후반 추가 시간 잇달아 득점에 성공하며 해트트릭을 달성했고, 도르트문트는 파더보른을 6-1로 완파했다. 2017년 8월 도르트문트에 입단해 2018~19시즌 분데스리가에 데뷔한 산초의 프로 통산 첫 해트트릭이었다. 특히 프랑스 리그앙 캉에서 뛰었던 브라이언 스타인(63)이 1989년 5월 31일 칸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달성한 이후 무려 31년 만에 해외 빅리그 무대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한 영국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경기가 끝난 뒤 산초는 자신의 트위터에 “프로 통산 첫 해트트릭”라고 기쁨을 표현한 뒤 맨 앞의 문장을 적고 “우리가 함께하면 더 강해집니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같은 리그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뛰는 마커스 튀랑은 득점한 뒤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려 플로이드를 추모했다.다른 종목 스타 선수들도 가만 있지 않았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57) 미국프로농구(NBA) 샬럿 호니츠 구단주는 입장문을 통해 “많은 사람의 고통과 분노, 좌절에도 공감한다”며 “난 뿌리 깊은 인종 차별, 유색 인종에 대한 폭력에 저항하는 이들과 함께한다. 우리는 충분히 (이런 일들을) 겪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조던은 다만 “평화적인 방법으로 불의에 저항하는 우리의 뜻을 표현해야 한다”며 “우리의 하나 된 목소리는 우리의 지도자에게 법률을 개정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하고, 그게 실현되지 않으면 투표로 제도적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테니스 스타 세리나 윌리엄스도 인스타그램에 긴 글과 함께 흑인 소녀가 피부색 때문에 다른 취급을 받는 이유를 묻는 동영상을 올리고 “마음이 무겁고 할 말을 잊는다”고 적었다. 두 차례 메이저 챔피언을 지낸 오사카 나오미는 트위터에 “당신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것은 아니다”고 적었다. 지난해 윔블던 대회를 통해 이름을 알린 코코 가우프(16)는 트위터 팔로어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조지 플로이드를 위한 정의를 요구하자”고 촉구했다. 그는 최근 몇년 동안 경찰 등과 백인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흑인들의 사진들을 올리고 “다음은 나?”라고 물었다. 인스타그램에도 사진들을 올린 가우프는 “언제 이런 일을 멈출래? 언제 우리는 위협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 비치게 될까?”라고 물었다. 과거 숱한 인종 차별 경험을 털어놓았던 잉글랜드 프로축구 리버풀의 리안 브루스터는 트위터에 긴 글을 올려 “수많은 세월과 세대를 거쳐 우리 모두는 변해야 한다고 외쳐왔고 목소리들을 들었는데 고통은 여전하다. 특별한 위세를 부리겠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말 좀 들어라. 흑인목숨도소중하다(#BlackLivesMatter)”라고 적었다. 지난해 헬리콥터 참사로 세상을 떠난 코비 브라이언트의 미망인 바네사는 남편이 예전에 ‘숨을 쉴 수 없어요’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공유하고 “남편은 몇년 전 이 셔츠를 입었는데 지금 또다시 우리는 입고 있다. 삶은 너무도 깨지기 쉽다.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삶은 너무 짧다”고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자동차 도로일주 대회 포뮬러원 챔피언 루이스 해밀턴(35·영국)은 이쪽 계통에서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 현실을 개탄했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유색인종은 나뿐이라 난 지금도 홀로 서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유를 여러분이 알게 될 것이라고 지금까지는 생각해왔을지 모른다. 그리고 여러분이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 말고는 드릴 말씀이 별로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11년 만에 다시 출근… ‘제2의 무쏘’ 만들 생각에 떨려

    11년 만에 다시 출근… ‘제2의 무쏘’ 만들 생각에 떨려

    쌍용자동차 마지막 복직 대상자 35명이 지난 4일 일터로 돌아갔다. 2009년 쌍용차가 2646명을 구조조정한 지 10년 11개월 만이다. 이들은 두 달 교육을 거쳐 7월 1일부터 현장에 배치된다. 길고 지난했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복직 투쟁은 사회안전망이 미흡한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난 14일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5월에 복직한 조문경(57), 김성국(52), 이민영(44)씨를 만나 그간의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복직자들은 교육을 받으면서 현장에 적응하려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02년 쌍용차에 입사한 이씨는 “빨리 현장에 돌아가 차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차량 정비사로 일하다 1994년 입사한 조씨는 “처음 회사 들어갔을 때는 주어진 일을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항상 있었는데 현장을 11년 동안 떠나 있었으니, 작업 속도나 과정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지 좀 두렵다”고 말했다. 복직 노동자 교육을 맡은 강사가 이들에게 처음 던진 질문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냐”였다. 건설 현장 일용직이나 자영업으로 입에 풀칠하느라 바빴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11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김씨는 “충남 천안, 경기 안성 등에서 노가다(막일) 현장도 뛰고,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도 했다”면서 “시설관리공단에서 일할 때도 있었는데 잠을 재워 주고 4대보험도 나와서 좋았다”고 기억했다. 이씨는 “일하느라 전국에서 제주 빼고는 다 가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낙인 탓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라는 타이틀은 주홍글씨처럼 이들을 따라다녔다.조씨는 “쌍용차에 다녔다는 이력을 알고 나면 그만두라고 하더라. 그러니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막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대출금을 갚기도 막막했다. 적금이나 애들 앞으로 들어 둔 얼마 안 되는 보험까지 모조리 해약했다”고 회상했다. 2009년 4월 8일 회사가 인력 감축을 발표할 때만 해도 해고는 실감나지 않는 단어였다. 하지만 전체 인원(7130명)의 36%인 2646명이 쫓겨날 것이라는 얘기가 돌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너 아니면 내가 해고”될 판이었다. 어느 날 해고를 알리는 ‘노란 봉투’가 날아왔다. 조씨는 “사장이 주는 상도 받고 성실히 일했는데, 나까지 잘리진 않겠지 생각했었다”면서 “상 받은 사람들도 한꺼번에 잘렸다”고 말했다. 이씨도 해고 통지를 받자마자 “‘내가 왜 대상이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함께 공장에서 일하던 김씨의 동생은 “형 거야”라면서 노란 봉투를 건넸다. 그의 동생 역시 일자리를 잃었다.날벼락 같은, 납득할 수 없는 해고를 통보받은 1000여명의 노동자들은 평택 공장에서 77일간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파업에 돌입했다. 김득중 지부장은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보다는 물리적인 충돌만 부각됐다”고 기억했다. 당시 시위에 투입된 경찰특공대는 크레인을 타고 공장 옥상에 진입해 방패와 진압봉을 휘둘렀고 수십명이 크게 다쳤다. 경찰은 유독성 최루액과 테이저건 등 대테러 장비와 헬기까지 동원하는 등 전쟁을 연상케 할 정도로 강경하게 대응했다. 경찰이 쌍용차 파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50명의 ‘인터넷 대응팀’을 운영하고 조현오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이 강희락 당시 경찰청장의 반대에도 직접 청와대 고용노동 담당 비서관에게 전화해 공장 진입을 승인받은 사실 등은 2018년에야 밝혀진 사실이다.해고 노동자들은 경찰의 강제 진압이 남긴 트라우마와 싸워야 했다. 조씨는 경찰에 두들겨 맞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여러 번 봤다. 그는 “세어 보니까 27대를 맞았다. 원 없이 맞았다”면서 “뒤쪽으로 끌려가서 니킥으로 가슴을 맞기도 했다”고 했다. 이씨는 “첫날에는 정신이 없으니 아픈 줄 몰랐는데, 다음날부터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고 했다. 김씨는 위독한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파업 현장에서 일찍 나왔지만, 헬기 진압 장면을 목격한 뒤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는 “집에서 공장이 보이는데 헬기 소리가 귀에서 맴돌았다”면서 “유서를 쓸 생각도 했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2009년 정리해고 이후 해고자와 가족 30명이 목숨을 잃었다. 김승섭 교수팀의 ‘2015 함께 살자 희망 연구’에 따르면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50.5%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렸다. 걸프전에서 포로로 잡혔던 미군(48.0%)보다 높은 비율이다. 2018년 발표된 쌍용차 해고자 배우자 실태조사에서는 해고자 배우자(28명)의 절반인 12명(48.0%)가 ‘지난 1년간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김 교수 연구팀은 “급격한 사회경제적 지위의 하락과 사회적 지지의 단절 속에서 해고자는 모든 부담을 신체적·정신적으로 감내했다”면서 “그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돕는 것이 국가와 정책 입안자의 책무이자 역할”이라고 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정부 고용센터로부터 구직 과정에서 실질적 도움을 받은 경우는 9.1%에 불과했고, 60%는 친구나 지인, 가족들의 도움을 받았다.경찰은 2019년 강제 진압과 관련해 노조에 사과했지만 당시 노동자들이 새총으로 쏜 너트와 볼트에 기중기·헬기 등이 파손됐다며 해고 노동자와 노조에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은 철회하지 않았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노조 지부장은 “폭력 진압에 대한 사과는 받았지만 지연 이자를 포함해 100억원에 달하는 손배·가압류 문제를 같이 처리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면서 “2016년 (경찰의 손을 들어 준) 2심 판결이 내려진 뒤에 2018년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가 나온 만큼 대법에서 빠르게 파기 환송을 해 법리를 다퉈야 한다”고 말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제자리로 돌아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70m 높이 굴뚝에서 89일간 머물고, 두 팔꿈치, 양 무릎, 이마까지 바닥에 대는 오체투지 행진도 했다. 노력 끝에 2016년 18명을 시작으로 2017년 19명, 2018년 79명이 복직했다. 2020년 복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47명까지 163명(12명 휴직)이 회사로 돌아갔다. 회사로 돌아가지 않거나, 세상을 떠나거나 정년을 넘겨 회사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도 있다.복직을 선택한 이유는 저마다 달랐다. 김씨는 명예회복을 꼽았다. 2014년 2월 서울고등법원은 쌍용차 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9개월 뒤 ‘양승태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김씨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4, 5년쯤 지나니까 ‘그만하자’고 했다. 내가 옳았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면서 “옛날처럼 동료들과 원만하게 지내면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회사를 사랑해서 마지막까지 좋은 차를 만들고 싶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더라”면서 “전국을 다니면서 일하면 돈은 더 많이 벌 수 있지만 가족들과 평택에서 자리 잡고 지내고 싶었다”고 했다. 쌍용차의 존속은 안갯속이지만, 복직자들은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져 도로를 누비던 차를 떠올렸다. 김씨는 평생 무쏘의 거북등(차체)을 만들었다. 2002년 뉴렉스턴 조립 라인에서 일을 시작한 이씨는 차도 뉴렉스턴만 몰았다. 품질관리(QC)와 조립 라인에서 일했던 조씨는 동료들 이야기를 듣더니 쌍용차 대표 모델의 역사를 줄줄이 읊었다. “2001년 렉스턴이 처음 양산될 때는 대한민국 상위 1% 차였죠. 저는 뉴 훼미리를 팔 때쯤 입사했는데, 무쏘가 히트를 칠 때는 품질 관리에서 일했습니다. 그다음에 체어맨이 나왔는데….” 글 사진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전파포럼 ‘문 정부 대북정책 무엇을 남길까’ 속기록 4

    전파포럼 ‘문 정부 대북정책 무엇을 남길까’ 속기록 4

    지난 27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조동호 원장)의 제1회 전파(前派)포럼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 무엇을 남길 것인가‘ 속기록 네 번째다. 남북 대화와 협력을 이끌어낼 묘안 찾기가 논의 내용의 중심이다.서주석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북한의 행동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가장 근본적이겠지만 북한 정권의 성격이나 내구성 문제, 제재의 내구성을 둘러싸고도 인식의 차가 있다. 대화 상대로 인정하느냐 안하느냐로까지 번지는데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박철희 교수가 네 가지 얘기한 것에 더해 앞으로는 정말 북한 문제나 대북 정책이 정치적인 이용의 대상이 돼선 안된다. 과거보다 좋아진 부분은 물론 있다. 대북정책이 통일부만 하는게 아니다. 국방부도 튼튼한 안보 국방을 통해 북한에 대한 우리 나름대로의 견제도 하면서 협력도 한다. 외교부도 평화체제 등등 할일이 있다. 진보정부라 해서 안보국방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큰 그림은 같이 간다. 많은 부분에서 동의하는 게 있는데 인식 부분에서의 이해를 일치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상황이 정말 바뀌었다고 김성한 원장이 말했는데 정말 그렇다. 외교안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뚝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 북핵, 평화체제 등이 상대적 덜 주목되는데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정책 현안의 동력을 얻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때가 아닌가 싶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초당적인 정책, 방향이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현실적이다. 규범적으론 좋겠지만 우리 같은 분단국가에서, 애를 써볼 수는 있지만, 각자의 철학적 비전과 소신에 따라야 한다. 단지 인간이기에 한계가 있으니 반대 진영의 얘기를 경청하면서 필요에 따라 조정하면서 하면 된다. 때로는 전쟁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경우는 전쟁은 안된다고 하는 것이 초당적인 것이다? 글쎄. 경우에 따라서는 붕괴의 길을 걷도록 공조하겠다거나 북한이 제대로 나오면 제대로 퍼주겠다고 할 수도 있다. 김기정 연세대 교수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국가로서의 북한도, 민족으로서의 북한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제3의 시각을 제안한 것이 보수에도 먹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시장으로서의 북한’이었다. 그 제3의 시각을 제안할 때가 되지 않았나. 보수와 진보가 오래 얘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균형 찾기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조동호 원장 현안을 얘기해보자. 한반도 비핵화프로세스 어떻게 해야 하느냐. 북한 핵 억제력 강화 밝혔는데, 왜 우리는 대북정책 드라이브를 거느냐. 전략 도발을 한다면 시기나 수위는 얼마나 예상하나. 윤덕민 한국외국어대 교수 북한의 궁극적 목표는 뭐겠나?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ICBM을 완성하면서 마지막 승부수 던지는 쪽으로 가지 않겠냐는 것이다. 정부가 만지고 있는 남북 철도, 금강산 등등 공허하게 느껴진다. 지금은 정부가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국민들의 안정을 어떻게 지킬지다. 일차적으로 플랜B는 북핵에 대한 효과적 억제력을 갖추는 일이라 생각한다. 둘째로 제재를 해제하면 북한이 뭘 할 수 있다는 판타지는 벗어나야 한다. 제재를 해제하고 협력관계 맺고 대화 모드를 하면 북한은 알아서 핵을 포기할 것이라 보는 건 지나치게 순진하다. 세 번째는 북한 체제를 개혁과 개방으로 끌기 위한 인게이지다. 제재 채찍과 북한 체제를 전환할 수 있는 당근을 고루 구사해야 한다. 서주석 책임연구위원 전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군사적 안정성은 오히려 더 커졌다고 확신한다. 우리도 실험하고 전력을 배치하고 있다. 인도적 지원이든 여태까지의 남북관계에서 풀리지 않았던 것을 더 적극적으로 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동호 원장 남북관계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김기정 교수 현 정부가 이전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일종의 부담 하나는 핵 능력이 더 고도화된 북한을 상대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비핵화를 목표에서 배제할 수도 없고. 미국은 비핵화를 한 뒤 평화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우린 북미 끝날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평화를 통한 비핵화를 맞물려 함께 가는 것이 현 정부 입장이며 다음 정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속셈이 다를 수 있다. 조동호 원장 독자적인 남북협력은 어떻게 가능한가? 김성한 원장 북한의 시선은 여전히 워싱턴을 향해 있다. 서울이 아니다. 그걸 잊어선 안 된다. 김정은이 새로운 길 언급했지만, 결국 이 상태로 11월 3일까지 기다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름 대규모 전략도발 얘기도 나오고, 북한이 워싱턴을 움직여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데 99.9% 가있다. 그런 상황에 5·24 해제한들, 교류협력법 개정한들 무슨 의미가 있나.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은 제가 볼 땐 거의 0이다. 우리 정부가 북미관계의 촉진자 역할을 포기해선 안 된다. 대변인들 얘기를 보면 거의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 개선으로 성과를 내보겠다는 것인데 어떤 전략적 계산 아래 나오는지 내 머리로는 계산이 안 된다. 하노이 노 딜 때 북한은 평화체제 구축을 목표로 한다고 모두가 분석했지만 사실은 제재 완화에 집중이 돼 있었다. 이혜정 중앙대 교수 북한을 처벌과 보상의 대상으로 보는 한 남북관계 진전은 없다. 우리는 북핵을 컨트롤할 능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억지도 하고 제재도 하고 동시에 개입을 한다는 건 판타지다. 북한이 어린아이인가? 잘하면 보상해주고? 그건 국제정치의 논리가 아니다. 전형적인 군축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서주석 책임연구위원 최근 통일부의 여러 대책은 정말 꽉 막혀서 나오는 얘기라고 본다. 내부적으로 동해북부선 철도나 교류협력법 개정이나 정말 이런 것이 안되니까 국내 상황부터 정리를 해보자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통일부는 통일부대로 할 일 하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워낙 독특하다. 북한은 봉쇄됐고 우리는 거리 두기를 하고 있어 상황이 다르다. 국제 외교 다 안 된다. 남북만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 대북제재가 있는데 남북이 할 수 있는 것은 의료보건이라고 본다. 6·15 20주년인데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 하나가 인도적 지원 아니겠는가? 이산가족 늘 제안했고, 성사된 적도 있고 안된 적도 있는데 상시 화상 상봉 준비해서 가자. 인도적 문제가 해결의 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국제제재가 직접 관여되지 않는 부분이 군사적 긴장완화에 일정하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한미가 동의한 부분이다. 정리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취중생] 정의연 사태 3주간 공지글 27개…의혹과 해명 돌아보니

    [취중생] 정의연 사태 3주간 공지글 27개…의혹과 해명 돌아보니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회계 부정, 기부금 횡령 등의 의혹에 휩싸인지 3주가 지났습니다. 정의연은 지난 8일부터 28일까지 20일 동안 정의연 공식 홈페이지에 부고, 연대 성명, 기자회견 공지 등을 포함한 총 27개의 자료를 올렸습니다. 하루에 1개 이상의 게시글을 올린 셈입니다. 정의연이 올린 27개의 자료를 중심으로 정의연과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정의연 이사장)을 둘러싼 의혹과 해명을 되짚어보겠습니다. 게시글 절반이 의혹 해명 목적의 설명자료 정의연이 홈페이지에 올린 27개 게시글 가운데 절반은 설명자료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설명자료가 14개, 입장문이 4개, 언론 규탄은 2개입니다. 그 외에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부고, 연대 성명, 기자회견 공지 등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만큼 정의연이 터져나오는 의혹에 대해 계속해서 해명하려 했던 모습이 보입니다. 정의연 사태는 지난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연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면서 시작됐습니다. 이 할머니는 이날 “(정의연이) 그동안 모은 성금이 피해 할머니를 위해 쓰인 적이 없다”면서 “앞으로 수요집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 윤미향씨는 국회의원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정의연은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 바로 다음날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에 대한 입장문과 이를 소명하는 기자회견을 갖겠다는 공지사항을 올렸습니다. 정의연이 사태 촉발 이후 처음으로 올린 게시글은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에 대한 입장문입니다. 정의연은 지난 8일 올린 입장문에서 이 할머니가 제기한 후원금 문제에 대해 간략하게 입장을 밝히고, 후원금 사용 내역에 대해서는 “정기적인 회계감사를 받고 공시절차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이달 11일에는 예고한대로 서울 마포구 인권재단사람 건물에서 정의연의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이날부터 언론을 중심으로 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이 쏟아졌습니다. 기부금 수혜 인원을 ‘999’, ‘9999’ 등으로 표기하거나 회계 공시에서 누락한 금액 등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 때문에 사태 초기 정의연은 일부 언론이 기자회견에 대해 왜곡 보도를 하고 있다며 규탄하고, 회계 공시 누락에 대해 설명하기 바빴습니다. 지난 14일에 2016~2019년 결산 재무제표와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명세보고서 등을 올린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안성 쉼터 매각·국고보조금 공시 등에 해명 집중 15일부터는 정의연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마련한 쉼터와 여성가족부로부터 지원을 받은 국고보조금 사업에 대한 논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안성 쉼터 고가 매입·헐값 매각 논란과 윤 의원의 아버지가 안성 쉼터의 관리인으로 있으면서 월급을 받았단 사실, 여가부 국고보조금 회계 공시를 누락하고 국고보조금 사업을 피해 할머니를 위해 쓰지 않는 등 사용 용도 관련 논란 등이 불거져 나왔습니다.15일부터 28일 사이의 게시글을 살펴보면 안성 쉼터 관련 해명이 5번, 국고보조금 관련 해명이 5번 있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 장례식 조의금 논란 등 다른 논란도 많았지만 논란 가운데에서도 안성 쉼터와 국고보조금에 해명을 집중하고 있단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정의연은 안성 쉼터 관리인으로 윤 의원의 아버지를 채용한 사실은 사과하면서도 나머지 의혹에 대해서는 직접 사업 금액을 공개하는 등 적극적으로 의혹 해소에 나섰습니다. 그만큼 안성 쉼터와 국고보조금 사업은 언론에서 크게 다뤄졌고, 현재 정의연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에서도 집중적으로 보고 있는 사안입니다. 지난 26일 윤석열 검찰총장은 정의연 사태에 대해 “공적자금이 투입된 것과 동일한 성격의 사건”이라면서 정의연과 관련된 모든 의혹에 대한 신속한 수사를 지시했습니다. 의혹 규명은 검찰에게로 정의연 사태의 핵심 인물인 윤 의원은 지난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 없이 검찰 수사에 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달 18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입장을 밝힌 것을 마지막으로 11일 간 잠행 후 공식 석상에 등장한 윤 의원은 정의연이 그동안 계속해온 해명 내용을 반복했습니다. 30일 윤 의원은 당선자 신분에서 공식적으로 현직 국회의원 신분이 됩니다. 윤 의원이 정의연의 해명을 반복하면서 결국 의혹 규명은 검찰의 몫으로 돌아갔습니다. 정의연과 윤 의원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서부지검 형사4부(부장 최지석)는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검찰은 지난 20~21일 이틀에 걸쳐 정의연 사무실과 정의연의 전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주소지인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평화의 우리집(마포 쉼터)을 압수수색 했습니다. 검찰은 현재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부동산 거래 관련 자료와 계좌 입출금 내역 등을 보고 있습니다. 대검찰청은 서부지검에 자금추적 전문 수사관을 파견하기도 했습니다.정의연은 검찰이 21일 마포 쉼터를 압수수색한 직후 입장문을 내고 “변호인들과 활동가들이 미처 대응할 수 없는 오전 시간에 길원옥 할머니께서 계시는 쉼터에 영장을 집행하러 온 검찰의 행위는 일본군 위안부 운동과 피해자들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며 인권침해 행위”라고 규탄했습니다. 검찰은 이제 현직 국회의원 신분이 된 윤 의원에 대한 조사 방법과 시기는 신중하게 고려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정의연 사태와 관련해 검찰이 조사한 사람은 한 명뿐입니다. 검찰은 지난 26일과 28일에 정의연 회계 담당자 A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습니다. 두 차례 모두 별도 조서를 쓰지 않는 면담 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전해졌습니다. 정의연 사태가 시작된지 3주가 지나고, 그 사이 핵심 인물인 윤 의원은 현직 국회의원 신분이 됐습니다. 이제는 검찰의 시간입니다. 정의연과 윤 의원의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검찰이 앞으로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이용수 할머니는 딱 3차례 언급한 ‘윤미향 해명문’

    이용수 할머니는 딱 3차례 언급한 ‘윤미향 해명문’

    개인계좌 사용 건 제외하면 대부분 반박의원직 사퇴여부에 대해서도 확답 안 해 사과 대신 개인 의혹해명 집중한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기부금 집행 과정에서 회계 부정 의혹을 받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당선자가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해명했다. 윤 당선자가 지난 18일 CBS와의 인터뷰 후 잠행한지 11일 만이다. 윤 당선자는 이날 줄 곳 언론을 통해 드러난 의혹에 대해 소명하는 데 집중했다. 윤 당선인은 크게 정의연 활동에 관한 문제와 윤 당선자 개인 계좌로 후원금을 모은 문제, 딸 유학자금 등 가족 의혹 관련 문제에 대해 해명했다. 반면 윤 당선자에게 가장 먼저 의혹과 비판의 목소리를 던진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언급은 기자회견문에서 단 세차례만 등장했다. 사과보다는 해명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안성힐링센터 의혹 사실 아냐 먼저 윤 당선인은 먼저 ‘모금한 돈을 할머니한테 안쓴다. 전달하지 않는다’ 는 지적에 대해 “정의연은 이미 5월 8일에 2017년 국민 모금한 1억원을 전달한 영수증과 1992년 당시 모금액을 전달한 영수증을 공개한 바 있다”며 “이용수 할머니의 여러 지적과 고견을 깊게 새기는 것과 별개로, 직접 피해자들에게 현금지원을 목적으로 모금한 돈을 전달한 적이 없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또 안성힐링센터와 관련한 의혹에 대해서는 “일부 언론이은 정대협이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주택’을 시세보다 4억 이상 비싸게 매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윤 당선자는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주택’은 실 평수 60평의 신축 건물이었다. 당시 주택 소유자는 건축비가 평당 600만원이 넘는 스틸하우스 공법으로 지어졌고, 토목 및 건축공사에 총 7억 7000만 원이 들었다면서 9억에 매물로 내놓았다. 당시 매도희망가를 최대한 내려보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매도인은 힐링센터의 설립 취지를 듣고 ‘좋은 일 한다’면서 최종적으로 매매가격을 7억 5000만원으로 조정하는데 동의하여, 매매에 이르게 된 것”고 해명했다. 2015년 한일합의 내용을 알았는지에 대해서는 “누차 밝힌 바처럼 이는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라며 “이런 사실은 외교부의 입장발표를 통해서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류경식당 해외 종업원 월북 권유 관련 의혹에 대해서도 “‘금전을 지원했다, 월북을 권유했다’는 등 일부 언론보도는 모두 사실이 아닌 허위임을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밝힌다”고 정면 반박했다. 개인 명의 계좌 사용은 잘못 판단 반면 개인명의로 후원금을 모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일부 인정하고 사과했다. 윤 당선자는 “정대협 활동을 하면서 제 개인명의 계좌 네 개로 모금이 이루어진 사업은 총 아홉 건”이라며 “전체 할머니를 위한 것이 아닐 경우, 대표인 제 개인 계좌로 모금을 했다. 특별한 경우라서, 이제보니, 제 개인 명의 계좌를 사용한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밝혔다. 윤 당선자는 “일시적인 후원금이나 장례비를 모금하기 위해 단체 대표자 개인명의 계좌가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저도 크게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 같다. 금액에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행동한 점은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반면 윤 당선자는 인터뷰 내내 윤 당선자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기자회견문을 통틀어 윤 당선자는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 세 차례 언급했다. 기자회견문에 사과는 없었고, 기자들이 질문을 하자 그제서야 사과를 시작했다. 할머니 출마, 중요하게 안 받아들여 윤 당선자는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용수 할머니에게 제가 배신자돼있는데 사실 1992년부터 이용수 할머니와는 30여년 활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이란 세월과 달리 할머니께 충분히 소통하지 못했고 배신자라고 느낄만큼 신뢰를 못 드렸다. 지금이라도 사죄 말씀 드리고 싶고 할머니에게 사죄 드리려 몇차례 시도했지만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 마음 전하는 노력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윤 당선자는 이용수 할머니가 비례대표로 출마하려는 것을 막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제가 말렸다기보다 녹취가 있어서 기사 실렸단 것을 기사로 접했다. 그 때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할 순 없지만 할머니께서 거리에서 일본대사관에서 저에게 전화했고 전화 목소리 통해 만류했다고 나오고 있는데 구체적인 정황 기억 나지 않지만 아마 그냥 할머니가 진짜로 그렇게 국회의원을 하고자 한다고 받아들이지 않고 중요하지않게 받아들이고 말씀드린 것 같다“고 해명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오늘을 살아내는, 그 이름 노동자

    오늘을 살아내는, 그 이름 노동자

    철도직 근무한 3대 가족 이어 굴뚝서 고공농성 증손자까지 노동으로 풀어낸 100년 현대사철도원 삼대/황석영 지음/창비/620쪽/2만원 기차를 보고 첫눈에 반했던 철도공작창 기술자는 아들의 이름을 한쇠로 지었다. 그다음 태어난 아들의 이름은 두쇠였다. 이들을 민적에 올리면서 이름은 일철이, 이철이가 되었다. 이들의 아들까지 더해 삼대는 철도 노동자가 됐고, 증손은 해고 노동자로 공장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한다. 한국을 넘은 세계적인 거장, 황석영 작가가 직조한 한반도 백년 역사의 단면이다.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는 이백만, 일철, 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동자 삼대와 오늘날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백만의 증손이자 공장 노동자인 진오의 이야기가 큰 축을 이룬다. 철도공작창 기술자 아버지 뒤를 이어 형 일철은 철도종사원양성소를 거쳐 당시 드물었던 조선인 기관수가 됐다. 일철이 백만의 자랑이 되는 동안 동생 이철은 철도공작창에 다니다 해고당한 뒤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 옥고를 겪는다. 증손인 진오에 와서는 오늘날에 이른다. 아파트 16층 높이의 발전소 공장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 중인 해고노동자 진오는 페트병 다섯 개에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각각 붙여 주고 그들에게 말을 걸며 굴뚝 위의 시간을 견딘다.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600쪽 상당 묵직한 장편소설의 등장은 오랜만이라 더욱 반갑다. “염상섭의 ‘삼대’와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를 함께 읽는 데서 한국문학의 근현대가 완성된다”(한기욱 문학평론가)는 말처럼. 그중에서도 작가는 산업노동자에게 천착해 무명씨인 그들에게 이름 붙여 주는 데 골몰한다. 애당초 소설은 “단편소설에 비해 훨씬 질과 양이 떨어지는 장편소설 부분과 그중에서도 근대 산업노동자들의 삶을 반영한 소설이 드물다는 점”(615쪽)에서 출발했다.더불어 어려운 시기를 사는 여성 인물들의 활약과 연대도 눈여겨볼 만하다. 백만의 아내 주안댁이 일찍 세상을 뜨자 백만의 누이동생 막음이 올케인 주안댁과 혼으로 소통하며 어린 일철·이철 형제를 돌본다. 일철의 아내 신금은 시동생 이철과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신여성이다. 이철과 아지트 부부였다가 실제 부부 연을 맺어 아들 장산을 낳는 한여옥, 이철의 독립운동 연락책을 맡았던 박선옥 등도 당대를 살아가는 주체적인 여성상이다. 굴뚝에 오르는 진오를 향한 어머니 윤복례의 말은 익히 이들 가족의 내력을 알게 한다. “한두 달 새 내려올 생각 아예 마라. 쩌어 예전부터 지금까정 죽은 사람이 숱하게 쌨다.”(111쪽) 소설은 1989년 작가의 방북에서 비롯됐다. 당시 작가는 북한 당국의 안내로 방문한 평양백화점에서 부지배인 노인을 만나 한참 얘기를 나눴다. 뜻밖에 옛날식 서울말을 쓰는 노인은 작가가 유년기를 보냈던 서울 영등포 출신이었고, 노인은 아버지가 영등포 철도공작창에 다니던 이야기와 그가 철도학교에 들어가던 이야기, 기관수로 대륙을 넘나들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삼십여년 세월이 흘러 그 이야기는 ‘철도원 삼대’가 됐다. “그것은 아마도 삶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지속된다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늘은 살아낸다.”(207쪽) 이 모든 세월을 건너 고공농성에 나선 진오의 생각이자, 역사를 관통하는 가장 자명한 진실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세월호 특조위 방해 의혹 靑·해수부 인사 11명 기소

    세월호 특조위 방해 의혹 靑·해수부 인사 11명 기소

    박근혜 정부에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진상 규명 활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당시 청와대 인사들과 해양수산부 장차관이 재판에 넘겨졌다. 관심을 끌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관여 여부는 수사 과정에서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28일 대검찰청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단장 임관혁)은 특조위 조사권을 방해한 이병기(73) 전 청와대 비서실장, 현정택(71) 전 정책조정수석, 현기환(61) 전 정무수석, 안종범(61) 전 경제수석, 정진철(65) 전 인사수석 등 9명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김영석(61) 전 해수부 장관과 윤학배(59) 전 해수부 차관 등도 함께 기소됐다. 이 전 실장 등은 2015년 11월 특조위가 사고 당일 박 전 대통령의 행적조사 안건을 의결하자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특조위 진상규명국장 임용 절차를 중단한 혐의를 받는다. 추가 파견이 필요한 공무원 12명도 파견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특조위 활동을 강제로 종료한 혐의도 있다. 이들은 특조위 활동 기간 연장 논의를 전면 중단하고 2016년 6월 파견 공무원을 복귀시키거나 하반기 예산을 집행하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특조위 활동을 강제 종료한 것으로 드러났다. 새누리당 추천 위원이었던 이헌 전 특조위 부위원장의 사퇴를 추진한 혐의도 적용됐다. 당시 청와대 행적조사에 대한 항의 표시로 여당 추천위원 전원 사퇴 방침이 정해졌다. 그러나 이 전 부위원장이 사퇴를 거부하자 이 전 실장 등은 교체 방안을 검토해 추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현 전 정무수석이 2016년 2월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자리를 제안한 뒤 이 전 부위원장이 사직한 사실을 확인했다. 조대환(64) 전 특조위 부위원장도 2015년 1월 특조위 설립준비단을 해체할 목적으로 특조위에 파견된 해수부 공무원의 복귀를 요청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요청을 받고 복귀 조치를 한 김 전 장관은 이미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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