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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의 책방’에 앉아 여여한 시월愛 추며들다… 파사성에 서서 유유한 여강에 물들다

    ‘왕의 책방’에 앉아 여여한 시월愛 추며들다… 파사성에 서서 유유한 여강에 물들다

    10월은 십월이 아니라 시월이라 읽는다. 한글맞춤법의 속음을 따라 그렇다. 이 경우 속음은 말하는 대로의 소리, 틀에 갇히지 않은 유연한 음성이다. 경기 여주의 가을은 시월을 닮았다. 자음 하나 덜어낸 자리를 따라 무심한 낙엽처럼 유유히 여행하면 좋다. 하늘과 맞닿은 파사산의 단단한 바윗돌 위에 근심일랑 툭 소리 나게 내려놓고, 강변 고찰의 고목 아래 부도처럼 고요히 나를 마주하고, 책방으로 변신한 왕릉의 옛 재실에 앉아 여여(如如·있는 그대로의 모습)한 바람에 가만히 마음을 내어줄 만하다. 그럼 단풍처럼 세월 익은 자리에 시심이 물들 것이다. 그때 여주의 시월은 ‘시월’(詩月)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여주에는 세종대왕릉(英陵)과 효종대왕릉(寧陵)이 있다. 두 능을 합쳐 영녕릉(英寧陵)이라 부른다. 영녕릉은 지난해 10월 9일 재단장을 마쳤다. 6년 2개월에 걸친 ‘세종대왕릉 제 모습 찾기’ 정비 사업이었다. 그사이 방문한 적이 없다면 한글날을 맞아 찾아봄 직하다. 읽고 쓰는 것의 의미가 한층 각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꼭 한글날 때문만은 아니다.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은 ‘신들의 정원’이라 불린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 조경가, 예술가, 사상가가 한데 모여 왕의 마지막 쉼터를 고심했을 것이다. 그러니 ‘신들의 정원’이란 수사가 과장일 수 없다. 영녕릉이 특별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재실이다. 왕릉의 재실은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제사에 쓰일 향과 제기를 간수하고, 왕과 제관이 의복을 갖추는 곳 역시 재실이다. 제례의 마음가짐이 이곳에서 시작된다. 영녕릉의 재실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책방과 노거수가 가치를 더한다. ‘신들의 정원’ 속 책방이고 재실보다 오래 산 아름드리나무다.●권위 내려놓고 넉넉한 품 내어준 세종의 ‘작은 책방’ 세종대왕릉은 재실이 두 곳이다. 옛 재실은 1970년대 ‘영릉 성역화 사업’ 당시 건립했다. 새 재실은 지난해 마무리한 정비 사업에서 문헌의 위치를 확인해 다시 지었다. 새 재실은 세종대왕의 위엄에 걸맞게 재방, 향안청, 전사청 등 요건을 제대로 갖췄다. 왕릉의 제례를 준비하던 과정을 꼼꼼히 살펴볼 수 있다. 옛 재실은 본래 기능을 상실했지만 올해 봄에 ‘작은 책방’으로 변신했다. 이 ‘작은 책방’이 세종대왕릉 가을 여행의 백미다. 권위를 내려놓고 책방이 된 옛 재실은 각별하다. 격식과 역할은 새 재실로 넘겼지만 40년 남짓한 세월의 주름은 쉽사리 무시할 수 없다. 왕의 권좌보다는 기품 있는 어른의 넉넉한 품 같다. 북촌한옥마을이나 어느 숲속 정원에 있었다면 좀더 유명세를 탔을 것이다. ‘작은 책방’은 책이 있는 방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세종대왕 때 출판과 인쇄를 담당한 관청 ‘책방’(冊房)의 의미도 땄다. 책방 안은 좌식과 입식 좌석이 공존한다. 실내화를 갈아 신고 들어간다. 과거이기는 하나 재실의 문턱을 넘는다는 설렘에 걸음이 조심스럽다. 대청마루에 앉으면 느린 바람이 토닥토닥 등을 다독인다. 귓가를 스칠 때는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라는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이 들리는 듯하다. 다시금 세종대왕릉의 재실을 실감한다. 그러다 슬며시 고개를 들면 막 가을로 접어드는 수목들이 간신히 붉다. 고즈넉해서 사색의 시간을 갖거나 생각을 글로 정리하며 보내기에도 알맞다. 얼마간은 자리를 옮겨 가며 그 정취를 느껴 보는 것도 좋다. 열람실은 재실 중심의 안채와 마당 지나 대문 좌우의 두 행랑채, 총 3곳으로 나뉜다. 최대 36인이 이용할 수 있는 규모다. 다만 서가의 구성은 아쉽다. 요즘 책방의 생명은 ‘큐레이션’이다. ‘작은 책방’의 장서 500여권은 구성의 세심함이 떨어진다. 그러니 읽을 책 한 권 정도 미리 챙기는 게 좋다. ‘작은 책방’은 상주하는 이는 따로 없고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원형 보존된 효종대왕릉 재실, 조선왕릉 유일 보물 효종대왕릉 재실은 세 그루 고목이 세종대왕릉의 ‘작은 책방’에 견줄 만하다. 먼발치부터 어렵잖게 알아챌 수 있다. 담장 위로 우뚝 솟은 향나무 한 그루가 랜드마크다. 기세가 등등하다. 사주문으로 들어서면 이번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다. 둘레가 한 아름은 족히 넘고도 남는다. 제기고와 재방 사이에서 양쪽 마당 쪽으로 몸을 기울여 자라는데 위태로울 만큼 경이롭다. 추정 수령은 약 500년으로 재실이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고목이었던 나무다. 그 앞쪽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평범한 나무 한 그루가 담장 곁에 소담하다. 유별날 게 없지만 회양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담장 높이로 자란 회양목은 좀체 보기 힘들다. 그 세월이 무려 300년이다. 노거수의 나이가 곧 재실의 역사인 셈이다. 천연기념물(제459호)이 괜스럽지 않다. 재방 마루에 걸터앉으니 세 노거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효종대왕릉 재실은 보물 제1532호다. 조선왕릉의 재실 가운데 유일한 보물이다. 조선왕릉의 재실이 대부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훼손됐으나 효종대왕릉 재실만은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있다. 그래서 나이 든 나무를 보는 건 마치 나무의 세월을 읽는 것 같다. 그 몸에 새겨진 풍파를 읽는 것 같아 ‘자연적’이고, 그 몸이 새긴 사건을 보는 것 같아 ‘역사적’이다. 각자의 짧은 생을 노거수에 비춰 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시월 말에는 느티나무 단풍이 고와 또 잠깐 들뜨기도 할 것이다.●‘신들의 정원’ 따라 세종·소헌왕후 조선 최초 합장릉 재실 외에 새로이 단장한 영녕릉도 돌아볼 일이다. 세종대왕릉은 세종대왕의 유지에 따라 세종대왕과 소헌왕후가 함께 묻혔다. 조선 최초의 합장릉이다. 정비를 마친 후 가장 크게 변한 것은 향어로다. 이전에는 가운데 향로를 두고 양옆에 어로가 있는 세 길이었다. 발굴 조사를 통해 향로와 어로 하나씩만으로 이뤄진 두 길로 바뀌었다. 중간 지점에서 방향을 꺾는 구간이 있었으나 현재는 사선으로 곧다. 효종대왕릉은 효종과 비 인선왕후의 능이다. 상하로 조영한 쌍릉이 눈길을 끈다. 수라간 옆으로 난 길은 세종대왕릉과 달리 봉분 앞까지 올라갈 수 있어, 능의 석물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또한 금천교는 다른 왕릉과 달리 홍살문 안쪽 향어로 중간에 위치한다. 영릉길 초입의 연지도 새로이 복원 조성했다. 세종대왕역사관도 새단장하며 들어섰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휴관 중이다. 세종대왕역사관은 여강길 6코스 ‘왕터쌀길’의 출발점이다. 여주는 여강이 도시를 가로지른다. 여강은 여주사람이 여주를 지나는 남한강에 붙인 이름이다. 그들이 여강이라 부를 때, 남쪽을 가리키며 흐르던 한강은 여주사람의 마음속으로 방향을 튼다. ‘왕터쌀길’은 10.2㎞, 3~4시간 구간으로 여강을 곁에 두고 걸을 수 있다. 4코스인 ‘5일장터길’ 역시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을 지난다. 신륵사가 출발점이고 세종대왕릉역이 종점인 13㎞, 5~6시간 코스다. 걷는 수고는 싫고 그저 여강을 그윽하게 바라보기 원할 때는 곧장 신륵사로 간다. 고찰은 대개 산중에 있기 마련인데 신륵사는 여강 옆에 뿌리내렸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고 고려 때는 나옹선사가 입적했다 한다. 신륵사의 첫 번째 명소는 여강이 내려다보이는 정자 강월헌(江月軒)이다. 강월헌은 나옹선사가 머물던 회암사 거처의 당호를 땄다. 강월은 ‘강에 비친 달’이라는 의미다. 그 달은 나옹선사에게 부처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네…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라던 나옹선사의 선시가 떠오른다. 강월헌 옆에는 삼층석탑이 자리한다. 나옹선사가 입적한 자리다. 신륵사에는 차분하게 머물 만한 곳이 또 있다. 조사당 뒤편 계단을 오르면 나옹선사의 사리를 안치한 부도탑과 탑비, 석등이 나온다. 모두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다. 그 가운데 부도탑인 보제존자석종은 탑신이 석종 형태다. 오래 바라보면 종소리가 마음에 울리는 듯하다.●체험·전시·쇼핑 ‘도예 세상’… 미술관은 예약제 신륵사 초입은 여주도자세상공원이다. 여주는 광주, 이천과 더불어 도예를 대표하는 고장이다. 마침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가 10월 1일부터 11월 28일까지 ‘다시_쓰다 Re: Start’라는 주제로 열린다. 여주도자세상과 경기도자생활미술관은 여주의 주 행사장이다. 미술관은 8~9월 휴관을 거쳐 비엔날레 기간 다시 문을 연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예약제로 운영한다. 1일 7회, 회당 65명이 입장 가능하다. 잔여분이 있을 경우 현장 방문으로 관람할 수 있다. 대신 올해 비엔날레는 예년과 달리 입장료가 무료다. 도예에 관심이 있다면 이도 여주세라믹스튜디오도 들러볼 만하다. 전시, 체험, 쇼핑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 여주 동쪽 북내면의 한갓진 시골에 자리한다. 도자기를 할인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고 너른 야외 잔디밭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즐길 수 있다. 900개 머그컵으로 만든 모자이크 작품 ‘감각의 확장’과 앙리 루소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꿈꾸는 정글’ 등 전시도 단박에 시선을 끈다. 코로나19로 인해 투어프로그램은 중지 상태다. 일요일은 쉰다.●작은 책방의 여운 잇는 여주 핫플 ‘수연목서’ 세종대왕릉 ‘작은 책방’의 여운은 북카페 수연목서에서 이어 갈 만하다. 수연목서는 여주 ‘핫플’이다. 여주 북서쪽 끝 산북면에 있어 수도권에서 가벼운 나들이 삼는 이들이 많다. 건물은 카페와 사진 책방 그리고 사진가이자 목수인 최수연 작가의 개인 작업실 두 동으로 나뉜다. 건물과 건물은 구름다리가 잇고 있다. 내부는 복층 구조라 1층은 천장이 높아 시원스럽고 2층은 다락처럼 아늑하다. 남북 입면은 유리 커튼 월로 바깥의 산세가 그림처럼 안긴다. 카페와 책방 곳곳에 무심한 듯 전시된 사진과 카페의 가구는 최 작가의 솜씨다. 건물은 이충기 건축가 지었으며 2021 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건축물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박공지붕의 적고벽돌 외관이 단정하고 아름답다. 여강이 남한강의 일부라는 사실을 확인하고플 때는 파사성에 오른다. 정상까지는 주차장에서 도보로 약 30분이 걸린다. 파사성은 신라 파사왕 때 조성하고 임진왜란 당시 승려 의암의 승군이 증축했다 전한다. 중반부까지는 산길을 오르고, 능선에 다다라서 성벽 위를 걸어 이동하는데 몇 번씩 멈춰 서기를 반복한다. 먼발치 무태산, 양자산, 주봉산이 한데 어울려 춤을 추고, 그 곁으로 여강이 물길을 열며 양평 두물머리를 향한다. 그때 비로소 남한강이 보인다. 풍경이 광활하고 아득해서 가슴이 탁 트인다. 파사성 역시 여강길의 일부다. 여강길 8코스 ‘파사성길’은 당남리성입구에서 출발해 파사성 정상을 거쳐 원점으로 돌아온다. 5.4㎞ 순환구간으로 약 2~3시간이 걸린다. 파사성 주차장에서 출발해도 무방하다.여주대교 남단 영월루도 전망이 빼어나다. 무엇보다 여주 여행을 갈무리하기에 알맞다. 영월루는 마암(馬巖) 위 언덕에 들어선 2층 누각이다. 일몰과 야경을 감상하기 좋은 전망 명소다. 해는 여주 시가지 너머 서쪽으로 기우는데 그 어디 즈음에 세종대왕릉이 있다. 여주라는 지명은 세종대왕릉을 천릉할 때 새로 지은 이름이다. 그 지명을 따서 남한강은 여강이 됐을 것이다. 영월루에 서면 여주사람이 남한강을 여강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법하다. 시가지는 여강에 기대 촘촘하다. 여주의 삶 또한 오랜 시간 그러했을 것이다. 영월루가 옛 여주관아 정문이어서 감회가 남다른 것일 수도 있다. 해가 지고 시가지 불빛이 하나둘 켜질 즈음에는, 여행의 하루가 여주의 시월 속으로 스며드는 듯하다. 박상준 여행작가 seepark1@naver.com
  • [배민아의 일상공감] 집의 재발견/미드웨스트대 교수

    [배민아의 일상공감] 집의 재발견/미드웨스트대 교수

    5년 전 딱 이맘때였다. 산자락 동네를 산책하다 폐가로 보이는 낡은 빈집을 만났다. 입구의 잡풀을 헤치고 들어가니 가벽을 세우고 합판으로 천장을 얹어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뉜 실내가 문틈 사이로 보인다. 찢어진 장판과 내려앉은 천장, 곰팡이 핀 벽지 등이 방치된 세월을 담고 있었고, 깨진 창문은 들고양이들의 출입구였다. 버려진 물건들을 살피다 집을 등지고 돌아서는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장관이다. 산자락까지 올라오며 흘린 땀을 기분 좋게 식혀 주는 상쾌한 바람과 가까운 산과 먼 산이, 올망한 산동네의 정겨움과 멀리 보이는 아파트촌의 새초롬한 모습이 마주 보듯 펼쳐지고 바탕색을 칠한 듯 보이는 파란 하늘과 몽실구름이 마치 캔버스 안의 풍경화 같았다. 정말 풍경이 다 했다. 곧바로 동네 부동산을 찾았고, 마침 매매를 원하는 집주인과 연결이 됐으며, 아주 좋은 가격에 계약까지 마쳤다. 멋진 집을 상상하며 몇몇 집수리 업체에서 받은 견적은 최소 집 구매 가격의 2배 이상이다. 배보다 배꼽이 커질 판이었고, 대출까지 받아 고칠 여유와 이유도 없었기에 가끔 올라가 풍경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니, 큰비가 내리거나 세찬 바람이 분 다음 날이면 행여 집이 무너지지는 않았는지 점검차 가 보는 것이 일이 됐다. 그렇게 3년을 묵혀 둔 후 때마침 작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일상이 일시 정지되고 시간 여유도 생겼을 때 셀프 집수리를 결심했다. 막상 시작은 했으나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무너질 듯 위태로운 집의 면면을 보니 대략 난감이었다. 지인들에게 자문을 하고, 저녁마다 인터넷과 동영상을 통해 집수리 선배들의 노하우를 배워 하루하루 일을 했다. 화장실도 없어 계단 위까지 정화조를 굴려 올리느라 한나절을 보내기도 하고 질통에는 모레를, 지게에는 벽돌을 지고 하루에도 수십 번 계단을 오르내렸던 중년 부부의 고된 셀프 집수리는 4개월 뒤 남자의 몸무게가 12㎏ 빠진 후에야 마무리됐다. 타일 줄눈이 삐뚤어도, 마감재 나무가 수평이 안 맞아도, 샤워 후 덜 빠진 물을 밀대로 밀어야 하는 번거로운 수고가 뒤따라도 대만족이다. 순전히 우리의 활용 목적과 필요에 의해 만든 집, 소재와 내부 구조까지 알고 있는 완벽한 우리의 공간이기에 볼 때마다 뿌듯하고 편안하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증가하며 심리적 안정을 주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공간으로서 집의 가치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덕분에 집수리 업계도 호황이다. 온라인 화상 교육이나 미팅으로 사적 공간이 노출되고 재택근무로 집 내부를 기능적으로나 미적으로 수리하려는 욕구가 늘어난 데다 폭등한 집값에 걸맞은 인테리어로 변경하려는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공간으로서의 집의 의미가 점차 확장돼 이제는 집이 회사이고 학교이자 여가활동, 휴식, 취미, 카페, 레스토랑의 공간이 됐다. 그래서 집에서 할 수 있는 활동에 관심이 커지고, 집 안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바람도 커지고 있다. 집이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언택트 시대에 개인의 생활 방식에 적합하고 모든 생활의 원천이 되는 맞춤형 복합 문화와 생활공간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스마트한 첨단 시설이 아니더라도 나의 필요에 의한 공간을 직접 꾸미고 만드는 내 마음대로의 집은 각별한 의미다. 내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가구와 소품들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기쁨이요 힐링이기 때문이다. 공간을 만들며 살이 빠진 남자는 이제 공간을 즐기며 다시 살을 찌운다. 떠나지 않고도 여행지에서 누리던 설렘과 나른함을 즐기고, 하늘을 보며 커피를 마시며, 낮은 조명의 거실에서 직접 만든 요리와 담소를 즐기는 것이 언택트 시대의 소소한 행복이지 않을까.
  • “‘거창 수승대‘ 명칭 유지해야”…거창군 문화재청에 건의

    “‘거창 수승대‘ 명칭 유지해야”…거창군 문화재청에 건의

    경남 거창군이 문화재청의 ‘거창 수승대(搜勝臺)’ 명칭 변경 예고와 관련해 수승대 명칭을 현행대로 유지할 것을 문화재청에 요청했다.거창군은 최영호 거창군 부군수와 김종두 거창군의회 의장이 27일 대전 정부청사 문화재청을 방문해 김현모 문화재청장에게 수승대 명칭 유지 공동건의문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군은 문화재청의 명칭변경 예고와 관련해 지난 24일 거창군 기관·단체 간담회를 열고 거창 수승대 명칭 유지 공동 건의문을 채택했다. 군은 이날 수승대 명칭 유지 공동 건의문과 함께 주민 의견서, 언론보도 내용 등 변경예고에 대한 거창군과 거창군민 입장을 문화재청장에게 직접 전달했다고 밝혔다. 최 부군수는 “수승대는 유래에 의미를 포함한 내용이 명확하게 기록돼 있고 수많은 세월을 겪으면서 안착된 고유의 이름이다”며 “현재는 거창을 대표하는 상징어로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고 있어 군민 삶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의장은 “주민 대부분은 명칭을 변경해야 할 사유가 없다는 의견이다”며 현행 명칭 유지를 요청했다. 거창군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2019년 명승 제35호로 지정된 서울 성북구 ‘성락원’이 역사성 논란으로 국가 문화재 지정 해제로 이어짐에 따라 전국 명승 별서정원을 대상으로 역사성 고증 및 검토를 한 뒤 지난 2일 결과를 공개했다. 당시 공개된 내용에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제명시를 따라 지어 현재까지 사용해 오는 ‘수승대’를 그 이전 삼국시대부터 ‘수송대(愁送臺)’로 알려져 왔다는 역사 고증 및 검토 결과에 따라 명칭을 변경한다고 돼 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명칭 변경 사항을 다음달 5일까지 공고하고 예고기간을 거쳐 최종 결정을 할 예정이다. 거창 수승대는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있는 경치가 빼어난 원학동 계곡 한가운데 넓은 화강암 암반으로 이뤄진 계곡이다. 암반 위를 흐르는 물과 계곡, 숲이 어우러진 자연경관이 빼어나 2008년에 명승 제53호로 지정됐다. 수승대가 있는 곳은 삼국시대 때 신라와 백제의 국경 지역으로 신라로 가는 백제 사신들이 돌아오지 못할 것을 걱정해 수심에 차서 송별하는 곳이어서 수송대라 불렸다고 전한다. 그 뒤 퇴계 이황이 수송대에 대한 내력을 듣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며 풍경을 예찬하는 시를 지어 명칭을 고칠 것을 권해 빼어난 경치가 근심을 잃게 한다는 뜻의 수승대로 바뀌었다고 한다.
  • [이해영의 쿠이 보노] 아프간전쟁, 누가 ‘승리’한 전쟁인가/한신대 교수

    [이해영의 쿠이 보노] 아프간전쟁, 누가 ‘승리’한 전쟁인가/한신대 교수

    브레진스키. 카터 행정부 시절 백악관 안보보좌관이었다. 그는 5월 광주와도 인연이 깊다. 1980년 5월 22일 백악관 관계기관대책회의. 대통령 카터를 제외하고 미 행정부 관련 최고위 인물이 전부 모여 이렇게 결정했다. “단기적 지원, 장기적 정치발전 압박.” 무슨 말인가? 누구보다 브레진스키가 제안한 방식이었다.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민주화운동 무력 진압을 ‘지원’한다는 말이다. 1980년 5월 전남도청 시민군의 운명은 이렇게 결정됐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1998년 브레진스키가 프랑스의 누벨 옵세르바퇴르지와 인터뷰를 했다. 미 CIA 국장이 회고록에서 아프간전쟁 공식 발발 6개월 전부터 CIA가 무자히딘에 무기를 공급했다고 밝힌 뒤였다. 사실 여부를 묻는 질문에 브레진스키가 답한다. “카터 대통령이 카불의 친소련 정권 반대파에 대한 비밀 지원 명령에 처음 서명한 날이 1979년 7월 3일이었다. 바로 당일 나는 대통령에게 메모를 보냈다. 나는 설명하기를 ‘제 의견으로는 이 지원은 소련의 군사 개입을 유도하게 될 것입니다’.” 덧붙여 말하길 “우리가 러시아인들이 개입하도록 민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그럴 확률이 커질 것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다.” 다시 질문이다. “당시 소련이 아프간 침공을 미국의 비밀작전을 격퇴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이 어느 정도는 진실이었다는 것 아닌가. 지금 당신은 여기에 대해 후회하진 않는가?” 답. “후회할 게 무엇이 있는가? 그 비밀작전은 탁월한 생각이었다. 그것은 러시아인들을 아프간 덫(trap)에 유인하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 소련이 공식적으로 국경을 넘는 날 난 대통령에게 이렇게 썼다. 본질적으로 ‘이제 우리는 소련에 소련의 베트남전쟁을 제공할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근 10년 동안 모스크바는 … 지속가능하지 않은 전쟁을 수행해야 했다.” 질문. “이슬람 근본주의를 지원한 것, 미래의 테러리스트에게 무기와 자문을 제공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단 말인가?” 답. “세계사에서 도대체 무엇이 더 중요하단 말인가? 탈레반인가, 아니면 소련 제국의 붕괴인가. 일부 선동된 모슬렘인가 아니면 중부 유럽의 해방과 냉전 종식인가.” 이 인터뷰가 있은 몇 년 뒤 2001년 9월 11일 미 CIA의 첩보자산이자 미국이 체스판의 졸(卒)로 키운 오사마 빈라덴이 미국을 공격했다.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불법적으로 아프간을 침공해 탈레반 정권을 축출했다. 소련은 그 생산력이 냉전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됐을 때 붕괴했다. 미국이 ‘유도’한 소련의 베트남전쟁이라는 덫이 붕괴를 가속화했다는 점에 크게 반론을 제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미국이 소련의 아프간전쟁을 유도했듯이 오사마 빈라덴은 미국의 아프간전쟁을 ‘유도’했다. 미국은 스스로 아프간전쟁의 덫에 빠진 것이다. 지난 20세기 이래 이렇게 긴 전쟁이 있었나. ‘20년’ 아프간전쟁의 성적표는 참담하다. 자신이 세우다시피 한 탈레반 정권을 타도하고, 다시 20년에 걸쳐 이 집단에 쫓겨나기 위해 그 엄청난 자원을 투입한 것인지. 그래서 이 긴 전쟁은 하나의 세기적 부조리극이다. 미국이 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탈레반은 과연 승리한 것이 맞는 것이며, 이로써 아프간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 건가. 평화가 아니라면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의 계속 혹은 잘해야 ‘차가운 평화’가 아프간의 미래 아닌가. 아프간전쟁을 포함해 20년 테러와의 전쟁 사망자는 보수적으로 잡아 90만명 전후로 추정된다. 9·11테러 희생자의 300배에 달하고, 이 중 민간인 사망자가 3분의2에 달한다. 어떤 연구팀의 추산에 의하면 테러와의 전쟁에 우리 돈으로 1경가량 소요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 돈의 가장 큰 몫은 미국의 군산복합체(방산업체) 혹은 그 하청업자들에게 돌아갔고, 이들은 이 기간 동안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면서 미국 자본주의를 지탱해 왔다. 이른바 ‘군사 케인스주의’라 할 수 있다. 이들이야말로 최장 전쟁의 최종 승자였던 것이다. 20년 전쟁은 20세기 미국의 외교와 그 인식론적 기초를 이루는 지정학적 사고가 초래한 예정된 파국이었다. 브레진스키의 대소 아프간전쟁 ‘유도론’이 그 하나의 전형이고, 광주의 유혈 진압 묵인·방조도 이런 사고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그런 미국 패권주의에 편승한 우리 외교 역시 아프간의 진정한 평화와 재건에 일단의 책임이 있다고 해야 한다.
  • [인사]

    ■교육부 △고등교육정책실 이운식△고등교육정책실 김보경△국외훈련 파견 김관중△4·16 세월호참사 피해자지원 및 희생자 추모사업지원단 파견 이진영△경북대학교 전성우 ■농림축산식품부 ◇국장급 공모직위 임용△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질병관리부장 이명헌 ◇과장급 개방형직위 임용△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질병관리부 질병진단과장 구복경 ◇국장급 명예퇴직△명예퇴직 위성환 ■고용노동부 ◇개방형 직위 임용△양성평등정책담당관 윤정화 ■한국수력원자력 △성장사업본부장 남요식△품질안전본부장 이승철△한빛원자력본부장 천용호△한울원자력본부 제2발전소장 이광석△한울원자력본부 제2발전소 운영실장 오흥재 ■국가철도공단 ◇1급 승진△비서실장 이명석△자산개발처장 정현숙△토목설계처장 김명규△신호처장 윤학선△통신처장 권유철△품질관리처장 구욱현△수도권본부 재산지원처장 양동범 ◇2급 승진△청렴감찰부장 김기철△윤리경영부장 정지은△재무부장 정회헌△복지후생부장 이은미△신호처 KTCS-2부장 박지하△유럽아메리카TF부장 황희정△해외사업2부장 박노민△영남본부 용지부장 신주경△영남본부 시설개량부장 김대근△호남본부 호남권사업단 시스템PM부장 윤승배△강원본부 용지부장 박양배△한국철도공사 파견 백영수△한국철도공사 파견 권호철 ■한국환경공단 ◇본부장 임용△환경시설본부장 최철식 ■산업연구원 ◇보직(임)△부원장 김인철△산업정책연구본부장 이준△산업정책연구본부 산업혁신정책실장 조재한△중소벤처기업연구본부장 지민웅△국가균형발전연구센터장 허문구△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 기계·방위산업실장 박상수△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 소재·산업환경실장 이재윤△서비스산업연구본부 서비스미래전략실장 구진경△서비스산업연구본부 서비스산업혁신실장 이상현△산업통상연구본부 통상정책실장 민혁기△산업통상연구본부 해외산업실장 김동수△국가균형발전연구센터 지역정책실장 변창욱 ■연합뉴스TV △보도국장 맹찬형 ■연합뉴스 △편집총국장(편집국장 겸임) 조채희△기획조정실장 강의영△경영지원국장 변태수△미디어기술국장 김태한△디지털콘텐츠국장 유경수△DB·출판국장 도광환△논설위원실장 신지홍△콘텐츠책무실장(고충처리인 겸임) 최이락△콘텐츠비즈국장 윤근영△한민족센터본부장 김재홍 ■DB금융투자 ◇보임△금융소비자보호총괄(CCO) 김찬구△준법감시팀장 고승원 ◇전보△상품심사감리팀장 김추수
  • 이국 땅에 선 목월의 핏줄, 놓지 않았던 모국어 젖줄

    이국 땅에 선 목월의 핏줄, 놓지 않았던 모국어 젖줄

    지난 8월 말 열흘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머물렀다. 지난해에 하려다가 감염병 사태로 연기됐던 미주한국문인협회 여름캠프에 강연자로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미주문협은 일상적으로는 이중언어 환경에 놓인 이민자 문인들이 모국어에 대한 사랑을 굳건하게 견지하면서 문학 활동을 해가는 모임이다. 이분들이야말로 문학을 통해 오래고 오랜 이민자로서의 기쁨을 누리고 슬픔을 견뎌 올 수 있었을 것이다. 성황리에 막을 내린 여름캠프 후 라스베이거스를 여행하며 올해 제23대 미주문협회장에 선임돼 이 행사를 주관한 김준철 시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400여명의 회원을 둔 미주 최고 문학단체 기관장으로서 남다른 포부를 하나하나 들려주었다.●막내 세대 회장의 젊은 생각 “한국문학의 영어권 이입을 위한 교두보 역할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줌 강의를 정기적으로 마련하고 계간 미주문학은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이국 땅에서 글을 쓰는 문인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기 위해 한국 문단은 물론 다른 문학 단체와 교류해 온 미주문협은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활동과 소통을 늘려 가겠다고 했다. 김준철 시인과 미주문협의 인연은 그가 이민 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까지 올라간다. 30년 가까운 세월이다. 당시 그는 이민 1세대 삶을 헤쳐 가던 청년이었고, 미주문협에서는 그야말로 ‘젊은 피’로 환영과 예우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막내 세대다. 그는 “막내가 회장을 맡았다는 의미는 어쩌면 미주문협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의미를 담았다. 세월에 따른 자연스러운 노령화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분들을 이끌고 한국에까지 이민문학의 활력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고도 했다. 김 회장의 젊은 생각은 미주문협에 ‘한영문학 분과’나 ‘뉴 콘텐츠 분과’를 신설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나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더없이 맞춤한 선택이자 지향이었다.●‘시인 김준철’의 탄생 그는 무엇보다 박목월 시인의 외손자로 유명하다. 목월 선생의 외동딸 박동명씨가 그의 어머니다. 워낙 거장의 핏줄이다 보니 후광도 부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는 그런 부담은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부분이라면서 “마치 살과 뼈에 박혀 불편하지만 빼낼 수 없는 어떤 느낌이라고나 할까”라면서 “이제 나이가 들면서 부담의 꼬리표가 책임의 무게감으로 변해 가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했다. 왜 안 그랬겠는가. 결국 그는 시인의 후손이자 스스로 시 안에서 삶을 살아내고 있던 시인이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목월 선생이 재직하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김준철 시인과 나는 목월 선생의 ‘후손-후임’이라는 숨겨진 인연도 있었던 셈이다. ‘소년 김준철’은 무척 장난꾸러기였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에는 외할아버지댁에서 살았는데 목월 선생이 돌아가시고 나서도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동네에서 사고가 생기면 사람들이 일단 우리 집으로 왔어요. 거의 저나 제 동생이 범인이었죠.” 이 장난꾸러기는 목월 선생 별세 후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글을 쓴다.“대충 ‘물고기야, 물고기야, 우리 할아버지는 어디 계시니?’로 시작하는 거였는데, 할머니께 보여 드렸더니 다 읽으시고는 잠깐 웃으시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시는 거예요. 덩달아 저도 할머니 품에서 울었습니다. 그 기억이 저를 지금까지 붙잡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자신이 쓴 글이 누군가에게 공감을 주고 웃고 울게끔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상당한 충격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그때 외할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우리 준이는 시 써야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중고등학생 때 퍽 염세적이고 소심하며 내성적인 학생이 돼 간 그는, 비록 불안정한 사춘기를 지냈지만 그 나름대로 ‘시인 김준철’을 예비한 빛나는 시간을 지냈다. 내내 문예반에서 글을 쓰면서 장래 희망을 줄곧 시인으로 생각했다. 지금도 그는 ‘진짜 시인’이 되는 게 소원이다.●‘슬픔의 모서리’는 왜 뭉뚝한가 그는 그 소원을 앞당기고자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한다. 미친 듯이 시를 쓰고 쌓고 버리고를 반복했지만 친구들조차 그가 그렇게 시를 열망했는지 몰랐다고 한다. 지독한 불면증을 겪으면서도 그는 습작을 멈추지 않았고 겨울 바다를 찾아가 그때까지 쓴 원고를 불태우며 통곡하기도 했다.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부끄러움에 온몸이 떨려요. 당시 지도교수님께서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써 보면 어떻겠는가 하셨어요. 이유인즉 아무리 열심히 써도 외할아버지의 산을 넘기 어려울 테니 다른 장르를 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며칠 후 교수님께 “이것은 제 시이고 제 산”이라고 말씀드렸다고 한다. 그 고집과 열망이 그를 ‘시인’이 되게끔 채찍질한 셈이다. 지난 6월 그는 네 번째 시집을 냈다. 지난번 시집 이후로 무려 12년 만이다. 시집 ‘슬픔의 모서리는 뭉뚝하다’는 미국에서 살아온 40대 이후 중년의 삶이 담긴 셈이다. “중년으로 살아가면서 얻어 온 것들과 잃어 간 것들, 그것들을 새겨 가는 웅성거림 같은 것이 시집에 흐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를 언제나 삶의 중심으로 이끌어 주는 가족들과 언제나 그 아래로 잡아당기는 과거 사람들이 눈에 밟혀요. 그 사이의 휘청거림 같은 것이 시집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 휘청거림의 의미가 ‘살아감’보다는 ‘살아냄’에 있었다고 귀띔한다. 아닌 게 아니라 시인은 이민 오기까지의 번민과 고통, 이민 와서 겪은 난경(難境)들을 고백하면서 그것을 아름다운 인생론으로 승화해 간다. 이제 정말 ‘시인 김준철’이 성숙한 모습으로 탄생한 것이다. 비애와 불안이 배경음으로 깔려 있기는 하지만 그는 이번 시집에서 특유의 미학적 집념으로 그것들을 넘어선다. 슬픔의 힘으로 자신의 실존적 조건을 힘껏 응시하는 그의 시를 통해 우리는 왜 ‘슬픔의 모서리’가 뭉뚝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게 된다. 때로 비극적이고 때로 풍자적인 “잠과 잠 사이/ 빛이 스치는/ 순간이라는 하루”(‘낮달은 밤에 속한다’ 중)를 힘겹게 살아온 그의 언어와 “글이 밥이 되고 옷이 되고/ 지붕이 되고/ 언덕이 되고/ 그렇게 나도 될 수 있기를”(‘작작(作作)하다’ 중) 바라는 그의 깊은 열망이 김준철을 ‘진짜 시인’으로 만들어 줄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그는 문화예술지 ‘쿨투라’의 미술평론 부문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쿨투라’ 미주지사장으로 미주의 소식을 전하고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들을 인터뷰하며 기고하고 있다.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그들만의 세계를 통해 새로운 영감을 받기도 한다”는 그는 “역량과 열정을 겸비한 아티스트들이 미주에서도 이렇게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국 독자들에게 더 풍부하고 정확하게 알리고 싶다”고 했다. 과연 이러한 역동성을 가능하게 해준 ‘슬픔의 모서리’는 전혀 날카롭지 않고 뭉뚝하기만 하다.●한인 사회 넘어 美 주류문단과 교류 미주문협은 1982년 미주에 흩어져 활동하던 문인들이 문학을 통해 한인 사회를 결속하고 나아가 언어적, 정신적 가치를 공급하자는 취지로 창립됐다. 내년이면 40주년이 된다. “미주 문인들은 아직도 문학의 열정을 뜨겁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이민사회 안에서 한인들의 삶에 참여하고 관여하며 그들에게 힘이 되는 협회로 거듭날 계획입니다.” 미주문협의 회장으로서 그는 한인 사회를 넘어 미국 주류 문단과도 교류하면서 한국문학을 이곳에 알리는 역할도 감당하려고 한다. “타국에서 모국어로 글을 쓰는 저희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져 주신다면 큰 위로와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는 미주 문인들이 모국어에 대한 애착을 통해 자신들의 글쓰기를 존재론적 사건으로 만들어 간다고 말했다. 이민생활을 관통하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으로서 이민문학이 그 중심에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는 이국에서 살아온 이민자로서의 고국에 대한 그리움도 가로놓여 있을 것이다. “뿌리를 멀리 두고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곳에서 이민문학이라는 작고 목마른 나뭇가지로 문학을 다시 시작하게 된 거지요.” 문학을 통해 스스로 위로받고 누군가를 위안하는 문인들을 만나면서, 그 소리는 작을지라도 이분들의 이민문학이 더없이 중요한 한국문학의 자산이라는 생각을 더 굳건하게 한 여름날이었다. 이국 땅에서 만난 모국어의 어엿한 희망이었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한 손에 꽃다발 든 채 “사랑해” 외친 그 남자 누구?…멍완저우 남편에 쏠린 관심

    한 손에 꽃다발 든 채 “사랑해” 외친 그 남자 누구?…멍완저우 남편에 쏠린 관심

    화웨이 멍완저우 부회장의 귀국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의 남편에 대한 이목도 덩달아 집중됐다. 지난 25일 밤 중국 선전시 국제공항에 중국국제항공 전세기를 타고 모습을 드러낸 멍 부회장을 환영하는 인파 속에 그의 남편으로 알려진 리우 샤오 종이 대중 앞에 처음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멍 부회장의 두 번째 남편으로 알려진 리우 샤오 종은 지난 2007년 결혼 후 약 14년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해오고 있는 인물이다.  멍 부회장은 앞서 전 남편이었던 화웨이 고위급 임원과의 사이에서 세 명의 아들을 출산했지만, 이혼 직후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재혼했다.  다만, 멍 부회장의 두 번째 남편으로 알려진 리우 샤오 종은 지금껏 단 한 차례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멍 부회장의 남편인 리우 샤오 종이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기업가이자 해외 유학파 출신의 인재라고 보도한 바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날 그가 멍 부회장을 환영하는 인파 속에서 꽃다발을 든 채 환호하는 모습이 현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현지 누리꾼들은 그를 가리켜 ‘로맨티스트 멍의 남자’라는 별칭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분위기다.  특히 그가 환영 인파 속에서 한 손에는 꽃다발을 든 채 “(나는)너를 사랑해”라고 외치는 장면이 연일 현지 언론에 보도되면서 장막 속에 숨겨져 있었던 리우 샤오 종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폭된 상황이다.현지 언론에 보도된 리우 샤오 종은 20대 시절을 해외에서 유학하며 보내던 중 화웨이에 신입사원으로 입사, 30세 무렵 화웨이 해외 파견직으로 또다시 외국에 파견돼 해외 근무를 이어왔던 인물로 전해졌다.  그러던 중 2007년 멍 부회장을 만나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인연을 이어준 인물로는 멍 부회장의 가족들로 알려졌는데, 첫 만남 당시 리우 샤오 종의 사업가적 마인드를 크게 산 멍 부회장의 가족들이 전적으로 만남을 주선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결혼 직후 그는 화웨이 그룹에서 퇴사, 선전시를 기반으로 한 와이너리와 와인 유통업을 시작했다. 그는 이어 중국 민간 교육 업체들에 대규모 자본을 투자, 유학생 출신인 자신의 사례를 참고해 다수의 유학 사업에 투자하는 데 성공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멍 부회장이 지난 2년 9개월 동안 가택 연금됐던 시기, 남편인 리우 샤오 종은 모든 사업 분야에서 물러난 뒤 자녀 양육을 전적으로 담당했다.  특히 멍 부회장의 석방 판결이 내려지기 직전 약 600일 동안 리우 샤오 종은 아내의 석방을 위한 증언과 자료를 수집하는데 전력을 다했다는 평가다. 또 이 시기 진행됐던 멍 부회장의 재판에도 모습을 드러내는 등 완벽한 외조를 했다.  또, 무려 84억 원에 달하는 멍 부회장의 보석금 마련을 위해 리우 샤오 종은 자신 명의의 두 채의 캐나다 소재 부동산을 매각, 보석금을 마련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한편, 멍 부회장은 현재 중국 선전시의 해외 입국자 격리 방침에 따라 14+7일의 격리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귀국 직후 전용차에 탑승해 선전시 화웨이 본점 전용 호텔에서 14일 동안의 집중 격리 후 7일간의 추가 자가 격리를 할 예정이다. 그는 공항 도착 직후 “천 일 이상의 고난 끝에 마침내 조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면서 “이 긴 기다림은 투쟁과 고통으로 가득 찼지만, 발이 조국의 땅에 닿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뭉클한 감정이 차올랐다”고 귀국 소감을 밝혔다. 그는 지난 2018년 12월 1일 캐나다 밴쿠버 공항에서 체포된 직후 지난 24일까지 가택 연금된 후 풀려났다. 멍 부회장은 귀국 직후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조국이 우리의 가장 강력한 지원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면서 “조국이 번영해야만 기업도 꾸준히 발전할 수 있고, 사람들 역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거듭 중국 당국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 미국은 왜 핵폭격기 B-21 개발에 올인할까 [밀리터리 인사이드]

    미국은 왜 핵폭격기 B-21 개발에 올인할까 [밀리터리 인사이드]

    B-1B, B-2 순차 퇴출…전력 공백스텔스 갖춘 장거리 전략폭격기 필요비용 상승 억제하며 고성능 기체 개발초음속 폭격기 B-21 탄생…2025년 도입B-2보다 높은 스텔스 기능…가격은 저렴미국이 개발 중인 차세대 스텔스 전략폭격기 ‘B-21’ 레이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탄도미사일(SLBM)과 더불어 ‘3대 핵전력’으로 이 기체를 개발한다는 목표입니다. 별칭인 ‘레이더’는 진주만 공습으로 충격을 받은 미국이 곧바로 장거리 폭격기로 일본 주요 대도시를 폭격해 사기를 높인 ‘두리틀 공습’에서 따왔습니다. 기체를 자세히 보면 노스롭그루먼이 개발한 스텔스 전략폭격기 ‘B-2’ 스피릿과 비슷합니다. 이름도 흡사합니다. B-2는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1기당 7억 달러(한화 8200억원)라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만든 ‘세계에서 가장 비싼 폭격기’입니다.무장과 각종 부가 장비까지 합하면 1기당 생산 가격이 20억 달러(2조 3500억원)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래서 1980년대 말부터 개발을 시작해 1999년까지 겨우 21대만 생산됐습니다. 개발 초기엔 미래 지향적 디자인에 스텔스 기능까지 갖춰 호평을 받았지만, 이후에는 ‘돈 먹는 하마’로 불렸습니다. ●1기에 2조원…“이젠 ‘비효율’ 용납 못한다” 그러고보니 B-21도 노스롭그루먼이 개발 중입니다. 그럼 심각한 비효율과 시행착오도 그대로 승계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이 이 폭격기 도입에 전력을 다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미 공군 글로벌타격사령부(AFGSC)는 캘리포니아주 에드워즈 공군기지에서 퇴역하는 초음속 전략폭격기 ‘B-1B’ 랜서의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최근 한꺼번에 퇴역한 17대 중 마지막 기체였습니다. 이제 B-1B는 45대만 남았습니다.B-1B는 1984년 초도비행을 한 낡은 폭격기로, 개발 당시엔 저고도 침투용 초음속기라는 기술이 부각됐습니다. 그러나 AFGSC는 B-1B의 순차 퇴출을 선언하면서 “이제 정비사들이 다른 항공기를 정비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기체는 1988년 100기를 마지막으로 생산이 중단됐습니다. B-2보다 앞선 1970년대부터 개발을 시작해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B-2 대비 낮은 스텔스 기능에도 가격이 그다지 저렴하지 않습니다. 1기당 도입 비용은 3억 1700만 달러(3700억원)였습니다. 운용비와 정비 비용까지 감안하면 최근엔 비효율을 더이상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B-1B나 B-2는 1시간 운용하는데 무려 5000만~6000만원의 비용이 듭니다. 미국의 전략폭격기 1기를 한반도로 띄우는데 10억원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미국은 과거 ‘세계의 경찰’을 천명하며 국방비를 쏟아부었지만, 최근엔 이런 낭비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데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B-21인 겁니다. ●손자도 탄 B-52 계속 간다…가성비 끝판왕‘성층권의 요새’로 불리는 전략폭격기 B-52는 1952년에 초도비행을 시작해 7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운용됐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은 기종을 조종했다는 전설같은 얘기도 있습니다. 기체 가격은 1기당 5400만 달러(640억원)로 비교적 ‘저렴’합니다. 정비 부담도 적죠. 대륙간 고공비행이 가능해 이른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아주 좋습니다. 그래서 미 공군은 공군력 우세를 유지하기 위해 2040년대까지 B-52를 계속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렇지만 B-52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스텔스 기능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단점입니다. B-52는 길이만 48.0m, 폭은 56.4m에 이릅니다. ‘레이더 노출 면적’(RCS)이 무려 100㎡로 은밀한 침투는 불가능합니다. B-1B는 길이 44m, 폭 41m로 적지 않은 크기이지만 RCS가 10㎡입니다. 길이 20.9m, 폭 52.1m인 B-2는 RCS가 0.75㎡로 ‘큰 새’ 정도로 보입니다. 새로 개발하는 B-21은 ‘골프공’ 크기 정도로 RCS를 낮춘다는 목표입니다. 기체 폭도 45.7m로 B-2에 비해 작습니다.B-1B는 거대한 무장량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내부에 34t, 날개 등 외부에 27t을 실을 수 있습니다. B-52의 2배입니다. 스텔스 기능이 핵심인 B-2는 내부에 무장을 모두 넣어야 하지만 무장량이 B-52에 맞먹는 27t입니다. ●더 싸고 더 좋게…신형 폭격기 개발 이유 그런데 새로 개발하는 B-21은 무장량이 13.5t으로 B-2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 폭격기 공격 방식은 넓은 무장창에 재래식 폭탄을 싣고 먼 거리를 날아가 쏟아붓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레이더파가 도달하지 못하는 먼 거리에서 5m도 안 되는 오차로 폭탄을 꽂아넣는 ‘정밀유도폭탄’이 대세가 됐습니다. 실제로 B-21은 ‘B61-21 전술핵폭탄’과 장거리 순항미사일 등 스마트 폭탄을 주로 운용할 예정입니다.미 의회에 따르면 B-21은 이런 첨단 기능을 갖추고도 1기당 도입 예산이 평균 5억 5000만 달러(6500억원)가 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B-2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더 성능이 좋은 스텔스 전략폭격기를 도입할 수 있다는 겁니다. B-1B와 단순 비교하면 비싼 것 같지만, 1980년대 물가와 고도화된 스텔스 기능을 감안하면 가성비는 훨씬 높습니다. 이는 기존 B-2, U-2, F-22 등 첨단 기체에서 사용했던 플랫폼을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이라고 의회 보고서는 설명했습니다. 또 개발 초기에는 유인기로, 이후에는 ‘무인기’ 개발도 가능하도록 한다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B-21은 장거리 비행에 초점을 맞춘 B-2와 달리 ‘초음속 비행’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은밀하게 빠른 속도로 치고 빠지는 전략에 사용할 목적인 겁니다. 미 의회와 공군은 B-1B와 B-2를 순차적으로 퇴역시키면서 2025년부터 B-21을 100여대 도입한다는 계획입니다. 이것이 세계 힘의 균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잘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 서울 광진구, 우리 지금 안전한가요? 국가안전대진단 10월까지 추진

    서울 광진구, 우리 지금 안전한가요? 국가안전대진단 10월까지 추진

    서울 광진구가 지역 내 안전 위해 요인을 점검하고 안전에 대한 구민 의식을 제고하는 ‘국가안전대진단’을 10월 29일까지 추진한다고 23일 밝혔다. 국가안전대진단은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한 사회 실현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도입된 범국민적 재난예방 활동이다. 광진구는 지역 내 총 109곳을 점검대상으로 선정, 9월 1일부터 점검을 시행하고 있다. 주요 점검 대상은 공연장, 영화상영관, 공공체육시설 등 문화체육시설을 비롯해 집단급식소, 숙박업소, 전통시장 등 구민 생활과 밀접한 시설 및 장소다. 점검은 안전총괄부서와 시설관리부서,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합동점검반이 수행하며, 지역 주민의 참관 하에 이루어진다. 합동점검반은 유형 및 분야별 안전점검표와 가이드를 활용해 시설별 특성에 맞는 점검을 시행한다. 또 구는 일반 구민과 단체의 참여 활성화를 촉진한다. ‘안전신문고’ 앱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는 자율점검표를 이용해 주민이 스스로 점검에 참여하도록 홍보하고 더시민 안전모임, 안전보안관, 자율방재단 등 주민단체가 직접 지역 내 위해요소를 발굴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구는 올해 국가안전대진단이 코로나19의 대유행 속에서 진행되는 만큼 전 과정에서 방역 수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대민 접촉을 최소화하며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점검 결과 경미한 사항은 즉시 시정하고, 중대한 문제점이 발견될 경우 신속한 보수·보강, 위험구역 설정, 사용금지 등 강력하게 조치할 예정이다. 또한 진단과정에서 불합리한 법령 및 제도를 발굴?개선하고, 필요에 따라 공사중지 또는 시정명령 등 행정조치를 병행한다. 점검이 완료되면 ‘안전정보 통합공개시스템’에 점검결과를 공개하고, 지적사항에 대한 처리결과와 추진사항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이력을 관리할 계획이다. 김선갑 광진구청장은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구정 운영의 최우선 과제” 라며 “이번 국가안전대진단을 통해 모든 구민이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나가겠다” 라고 말했다.
  • [열린세상] 아동회의에 아동인권이 없다/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열린세상] 아동회의에 아동인권이 없다/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추석이 돼야 겨우 집에 갈 수 있는 아이가 있었다. 아동복지법은 그 아이를 보호 대상 아동이라 불렀다. 아빠와 있다가 학대를 당해서 갑자기 시설로 분리된 아이는 분명히 엄마와 살고 싶다고 했다. 엄마와 서로 사랑하며 지내 온 십 년의 세월이 그리웠고, 고향과 친구들도 그리웠다. 그래서 아이를 엄마의 집으로 복귀시킬지에 대한 어떤 회의가 열렸다. 결론적으로 아이는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끝까지 키우지 않고 이혼한 전 남편인 아이의 친아빠에게 아이를 보낸 엄마의 행위가 일종의 방임에 해당한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고, 진짜 이유는 엄마의 무학 그리고 가난이었다. 그래서 아이는 추석과 설날, 생일처럼 특별한 날만 시설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다른 시설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몰래 엄마를 만나야 하는 신세가 됐다. 아빠한테 맞은 것도 서러운데 갑자기 낯선 시설에 갇혀 살면서 어쩌다 한 번만 엄마를 봐야 하는 이 아이의 당혹감만큼 나에게도 절망적이었던 것은 이 아이를 집에 갈 수 없게 결정한 그 어떤 회의였다. 어디에서, 누가, 어떤 내용의 회의를 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 아이의 인생을 결정한 사람들은 아이를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은 낯선 사람들이었다. 회의 참석자들은 아이를 고작 몇 번 보거나 며칠 관찰한 관계자들이 급하게 작성한 서류를 건조하게 읽고 30분 정도 논의를 했다. 이어 ‘집에 가지 말고 그냥 시설에 살라’라는 결정에 쓱쓱 서명을 하고 회의비를 받아 각자 집에 돌아갔다고 한다. 아이는 자기 인생을 한순간에 바꿔 놓은 이 회의가 개최됐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그냥 시설에서 살아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설에 입소하자마자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돼 학교와 병원 외에는 어떤 외출도 불가능한 시간을 2년째 보내고 있다. 2020년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동은 43명으로 전체 아동학대 피해 아동 숫자 중 사망아동 비율은 0.19%이다. 나머지 99.81% 비사망 사건의 스펙트럼은 은하수만큼 넓다. 모두 각각 다른 상황을 다른 모양새로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유독 사망 사건만 집중적으로 보도되고 사람들의 공분이 그 보도되는 사건을 중심으로 폭발한다. 부랴부랴 0.19%에게만 적용 가능한 수준의 설익은 정책들, 위헌적인 입법들이 쏟아진다. 어쩔 수 없이 나머지 99%의 사건은 그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고 굴러가다 넘어지고 망가지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아이를 집에 돌아가지 못하도록 했던 그때 그 회의는 지금은 더 복잡하고 알 수 없는 회의들로 분화됐다. 경찰에서는 ‘내부전수합동조사’라는 자체 회의를, 지방자치단체 산하 아동복지심의위원회에서는 ‘사례결정위원회’라는 회의를 한다. 아동 사건에 대해 직접 수사권도 없는 검찰은 난데없이 ‘사건관리회의’를 열어 현장에서 아동을 지원해야 하는 인력들을 불러 댄다. 그래도 부족하다 싶으면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등이 모여 ‘통합사례회의’라는 거창한 회의를 열기도 한다. 공적 체계가 전문성과 책임을 가지고 아이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해 직접 결정하면 될 일을 낯선 ‘전문가’들을 모아 놓고 회의에 위임하는 방식으로 대충 ‘퉁’치는 것이다. 개최 자체에 의미를 두는 실적 중심의 회의는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를 만든다. 아동의 인생을 결정하는 이 수많은 회의 가운데 그나마 아동복지법상 근거를 가지고 하는 회의는 ‘사례결정위원회’가 유일하지만, 그 회의조차도 아동의 권리를 묵살한다. 회의 안건에 대한 아동 자신의 의견을 진술할 권리는커녕 정보 제공을 받을 권리나 심지어 회의에 배석할 권리도 없다. 가장 목소리를 내야 할 사람이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학대로 분리됐다가 다시 집에 가고 싶어 했던 또 다른 아이는 매일 눈물로 집을 그리워하다 결국 시설을 몰래 빠져나와 원래 살던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 가까스로 목숨만 붙어 있는 그 아이를 추석을 앞두고 만나고 왔다. 그렇게 어떤 아이들의 인생은 얼굴도 모르는 낯선 어른들의 영문도 모를 결정으로 바스러지고 있다.
  • ‘文 전용기’로 모신 유해 2구… 뒤에서 귀국길 지킨 증손녀

    ‘文 전용기’로 모신 유해 2구… 뒤에서 귀국길 지킨 증손녀

    유엔총회 참석 등 방미 일정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한국전쟁 참전용사 유해 2구를 전용기인 공군 1호기 좌석에 모시고 귀국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하와이 호놀룰루 히캄 공군기지에서 ‘한미 유해 상호 인수식’을 주관했는데, 한국 대통령이 6·25 전사자 유해 인수식을 해외에서 주관하고 공군 1호기로 함께 돌아온 것은 처음이다. 국가를 위한 희생에 무한 책임을 지고 최고 예우를 다한다는 의미다. 이날 오후 귀국한 문 대통령은 서울공항 도착 직후 봉환식을 열었다. 봉환식은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이름 아래 유해 하기, 유해 운구 및 임시 안치, 국민의례, 분향 및 참전기장 수여, 묵념, 유해 운구, 유해 전송 순으로 이뤄졌다. 전사자 중 신원이 확인된 고 김석주·정환조 일병의 유가족 8명도 현장을 찾았다. 청와대는 “70여년 세월을 돌아 1만 5000㎞에 달하는 긴 여정을 거친 호국 용사들을 위한 최고의 예우”라고 설명했다. 경북 출신으로 미 7사단 카투사에 배속됐던 고 김석주·정환조 일병은 장진호 전투(1950년 11~12월)에서 숨졌다. 장진호 전투 덕에 흥남철수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고, 문 대통령의 부모도 10만여명의 피난민과 함께 자유를 찾았다. 김 일병은 2018년에, 정 일병은 1990~1994년에 발굴돼 미측에 인도됐다가 뒤늦게 한국군으로 판명됐다. 김 일병의 외증손녀 김혜수(간호사관 61기) 소위는 인수식부터 봉환식까지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인수식에서 “장진호 용사들에게 남은 마지막 임무인 고국 귀환에 함께하게 돼 감회가 깊다”면서 “영웅들께서 가장 바라는 것은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라고 말했다. 또 “비무장지대를 비롯해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용사들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이들 외에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66구의 유해는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시그너스(KC330)로 옮겨졌다. 봉환식 행사에서는 사진이 없는 김 일병을 위해 ‘고토리의 별’과 일병 계급장을 새긴 위패를 특별 제작하기도 했다. ‘고토리의 별’은 장진호 인근 고토리에 떴던 별로, 포위당했던 미군이 철군을 앞둔 밤 갑자기 눈보라가 개고 별이 떠오른 일화 때문에 혹독했던 장진호 전투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하와이 이민 세대로 독립운동 공적이 확인된 고 김노디·안정송 지사에게 훈장을 추서하고 이들의 큰딸과 손녀에게 직접 건넸다. 대통령의 독립유공자 훈장 추서가 해외에서 이뤄진 것도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독립에 헌신한 분들에 대한 예우는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책무”라고 말했다.
  • 문 대통령 “저도 한때 낭인, 암담한 시절…청년문제는 국가 책임”

    문 대통령 “저도 한때 낭인, 암담한 시절…청년문제는 국가 책임”

    문재인 대통령이 제2회 청년의날을 맞아 청와대 상춘재에서 특별대담을 갖고 청년들의 문제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14일 녹화된 이번 대담은 당초 청년의날인 18일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기술적 문제로 19일 오전 0시를 조금 넘긴 시각에 공개됐다. 약 34분 분량의 영상에서 문 대통령은 배성재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걸그룹 브레이브걸스의 리더이자 리드보컬 민영, 래퍼 한해, 윤태진 아나운서와 함께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문 대통령의 상춘재 소개를 시작으로 이들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상춘재는 ‘늘 푸르른 봄과 같은 집’이란 뜻으로, 한편으로는 국민의 삶이 늘 따뜻했으면, 또 편안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 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외국) 국빈들 외에는 아주 귀한 손님만 모시는 곳”이라고 말하며 이날 참석자들을 치켜세우며 웃음을 터뜨렸다.힙합 가수의 꿈을 안고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해 사무보조, 식당 서빙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래퍼 한해의 소개 때 문 대통령은 “(같은) 부산 사람입니다”라며 주먹 인사를 건넸다. ‘브브걸’ 민영을 소개할 때엔 대표곡 ‘롤린’의 하이라이트 소절을 직접 불러 좌중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4년간 국정 운영을 하면서 청년 정책과 관련해 가장 아쉬운 점을 질문받자 코로나19로 인한 여러 제약을 꼽았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될 때부터 국민들 속으로 함께 들어가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코로나 전까지는 청년들 손을 잡기도 하고 셀카도 찍었는데 코로나 이후 전혀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고통을 가장 전면에서 먼저 받고, 가장 무겁게 고통을 느끼는 세대가 바로 청년”이라며 “이는 청년들의 책임이 아니다. 우리 사회 모두와 국가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이날 대담 녹화 사전에 청년들이 각자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직접 이야기한 영상이 준비됐다. 청년들의 집세, 내집마련 등 주거 문제에 대해 문 대통령은 “양질의 주택을 많이 공급하는 것이 기본”이라며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미아리에 조그마한 호텔을 리모델링해 1인 청년주택으로 개조해 인기를 끌었다. 그런 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청년들이 일자리 문제로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서는 “저도 과거 대학에서 제적을 당하고 구속되면서 꽤 긴 세월을 낭인처럼 보낸 때가 있었다. 옳은 일을 했다는 자부심은 있었지만 개인적인 삶의 측면에서는 암담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긴 인생을 놓고 보면 몇 년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며 “‘내가 선택한 길을 잘 걷고 있다’고 스스로 희망을 주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브브걸 민영은 무명 시절 겪었던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밖에도 청년 창업 문제,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 및 학자금 대출 문제, 장기화된 코로나 일상의 어려움, 진로에 대한 고민 등에 관한 청년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청년들이 학자금 지원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는 “정부가 반성해야 될 점”이라며 “필요한 사람이 신청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필요한 분에게 찾아가는 복지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이번 대담 영상에 대해 네티즌들은 문 대통령이 청년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진솔하게 청년 문제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호평했다. 다만 주거 문제 등에 대해 미리 준비된 듯한 정책 설명에 치우쳤다는 지적도 있었다. 문 대통령은 “청년들의 어려움을 청년들이 홀로 감당하지 않도록 정부가 최대한 지원할 것이고, 청년의 고민이 대한민국의 현재이며 청년의 도전이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아주 마음이 무겁다”며 “정부가 뒷받침을 해준다면 청년들이 대한민국을 더 뛰어난 나라로 이끌어 줄 것”이라며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 [다이노+] 도마뱀 같은 피부를 가진 ‘육식 황소’ 공룡 카르노타우루스

    [다이노+] 도마뱀 같은 피부를 가진 ‘육식 황소’ 공룡 카르노타우루스

    화석으로 남는 것은 대부분 뼈나 껍데기 같은 단단한 부분이다. 공룡 역시 예외가 아니라서 부드러운 조직은 금방 썩어 없어지고 단단한 뼈만 광물화되어 화석으로 발견된다. 사실 골격이라도 거의 온전하게 보존되면 상당히 보존 상태가 좋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가끔 내부 장기와 피부가 썩지 않고 같이 광물화되어 영겁의 세월을 살아남는 경우도 있다. 덕분에 과학자들은 일부 공룡이 깃털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공룡과 조류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공룡이 깃털을 지녔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오가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생각보다 많은 공룡이 깃털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반면 다른 과학자들은 대형 공룡이 깃털 없이도 체온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물론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매우 드물게 보존되는 공룡 피부 화석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최근 벨기에와 호주의 고생물학자들은 1984년 아르헨티나에서 발견된 카르노타우루스(Carnotaurus)의 피부 화석을 자세히 분석했다. 육식 황소라는 뜻의 카르노타우루스는 몸길이 7~9m의 중대형 육식 공룡으로 보기 드물게 피부 화석이 남아 있다. 연구팀은 카르노타우루스의 어깨, 가슴, 꼬리, 목 부분에 보존된 피부 화석을 분석해 살아있을 때 형태를 최대한 복원했다. 그 결과 카르노타우루스의 몸 어디에도 깃털이 존재했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카르노타우루스의 피부에는 큰 돌기 같은 구조물과 그 주변의 복잡한 비늘 구조가 존재했다. 뉴 잉글랜드 대학 공룡 피부 전문가인 필 벨 박사는 그 형태가 현존 생물 가운데 호주 도깨비 도마뱀(thorny devil lizard)과 가장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이를 토대로 복원한 카르노타우루스의 최신 복원도에는 깃털이 없어 오히려 전통적인 공룡 복원도와 유사한 느낌을 준다. 연구팀은 뾰족한 돌기와 비늘이 있는 피부가 현생 도마뱀처럼 체온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깃털 공룡과 마찬가지로 카르노타우루스의 도마뱀 피부 역시 환경에 적응한 결과일 것이다. 깃털이 공룡에서 얼마나 흔했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지만, 깃털을 지니지 않은 수각류 육식 공룡의 존재는 공룡이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다양하게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 가장 무더웠던 1983년 부산, 야외취침 나선 소년이 납치됐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가장 무더웠던 1983년 부산, 야외취침 나선 소년이 납치됐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들은 지난 5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 시민회관 앞에서 잠 자다 납치된 소년, 3년간 지옥 생활 1983년 8월 부산은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로 가장 무더웠다. 그해 열 살 소년이었던 김수길(48)씨는 “밖에서 잠을 자겠다”고 집을 나서 시민회관 앞으로 갔다. 열대야를 견디려 야외취침에 나선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여럿이었다. 상자를 깔고 잠을 청한 김씨가 눈을 떴을 땐 형제복지원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비극은 소년의 삶을 덮쳤다. 형제복지원에서 소년이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체념’이었다. 잠결에 트럭에 태워져 납치된 김씨는 “집에 보내달라”고 호소했다가 호된 매질만 당했다. 복지원 선생님에게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편지도 전달해봤지만 부모님과 연락이 닿지 못했다. 소년은 하는 수 없이 그곳에서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일하고, 때리는 대로 맞으며 3년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소년은 끊임없이 도망을 꿈꿨고, 시도했다. 하루는 형제원 담벼락을 뛰어 넘어 택시를 잡아탔지만 김씨가 입고 있던 수용복을 본 택시기사가 형제원으로 차를 몰았다. 또 다른 날은 운동장을 헤매다 경비에게 붙잡혔다.미국에서 ‘박사’가 온 날 김씨는 입양을 갈 뻔 했다. 형제복지원은 당시 돈벌이 목적으로 해외 입양을 대거 추진했다. 김씨는 낯선 땅에서 ‘마루타’가 될까 두려워 뒷산으로 도망을 갔지만 똥구덩이에 빠져 경비에게 발견되면서 다시 끌려왔다. 1986년 9월 마침내 김씨는 형제원을 벗어났다. 형제원이 세간에 알려지기 3개월 전이었다. 김씨의 집 연락처를 기억하고 있던 선생님의 도움으로 뒤늦게 부모님과 연락이 닿았다. 3년 만에 마주한 소년과 부모는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35년이 지나 김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며 진술서를 썼다. 그러나 그의 진술서에는 빈 부분이 많다.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트라우마가 심해지자 ‘중도생략’을 했기 때문이다. 진술서에 담기지 못한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형제원에서 구타 당하면서 김씨는 허리가 비틀렸고 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 가족을 건사하고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면서도, 때때로 괴로움과 불안, 분노가 치솟는다.아래는 김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 등은 다듬어 옮겼습니다.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김수길 진술내용: 저는 김수길입니다. 1983년경 부산 최고의 무더위가 찾아온 날이었습니다. 그당시 저희 집에는 아버지만 사용하는 선풍기 한 대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님께 말씀을 드리고 시민회관 앞에서 잠을 잤니다. 그런데 눈을 뜨니 알수도 없는 곳에서 제가 일어난 겁니다. 학교를 가야하는데 아무도 말을 안 하고 있는 게 이상해 물어보니 “이곳은 형제복지원”이라고 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도 묵묵히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갔더니 의무실이었습니다. 그때 의사 선생님께 집에 보내달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 한 분이 저를 신체검사실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아무 말도 없이 때리기만 한 시간. 저는 더 이상 말도 못하고 하는 대로 적응을 하기로 했습니다. (중도생략) 27소대에 배정됐습니다. 저와 같은 또래 아이들이 당시 116명 정도 있었습니다. 그곳의 아이들은 세 부류였습니다. 소대장에게 잘 보이는 애들, 중간쯤 되는 애들, 오줌싸개 애들. 저는 그곳에서 생활하기 위해 두 번째 애들과 어울리기로 했습니다. 단추와 자꾸(지퍼)를 엄청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부터 그 애들과 도망을 갈 수 있는 다른 애들을 물색하며 때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실행하지 않았습니다.저는 마음을 먹고 화장실 환풍기로 도주했는데 길을 몰라 운동장을 헤맸고 결국 경비 아저씨한테 잡혔습니다. 아침에 소대로 인계되면서 엄청 맞았습니다. 온몸에 문신을 한 중대장이 기억납니다. 27소대로 돌아갔다가 이틀 뒤 28소대로 전방을 갔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저에게는 지옥이었지요. 그때 당시 서무를 보던 백사 형님이 계셨는데 애들한테 정말 잘해주셨습니다. (중도생략) 미국서 온 박사, 강제 해외입양 싫어서 도망쳤지만··· 어느 날은 미국에서 박사가 온다고 했습니다. 형제복지원 아이들을 입양보내려는 것이었지요. 저는 또 맞을 각오를 하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산에 똥구덩이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곳에 빠져 2시간 가량 있다 보니 또 경비 아저씨한테 붙잡혔습니다. 몇 번의 도망이 실패한 뒤로 저는 아무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허리가 부서져 나갈 정도로 맞고 소대로 와서 기압과 매밖에 없었습니다. 그 뒤로 모든 걸 포기했습니다. 그냥 애들과 지내고 시키는 대로 하면서 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대장이 수영장에 갈 사람을 집합시켜 수영장에 가기도 했고 매도 덜 맞게 됐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1986년 마지막 수영장에 가는 날 저는 수영장 담을 넘어 도망갈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키고 있는 아저씨들이 많았습니다. 저희가 마지막 수영이었는데 오후 2시 30분쯤 소대장이 저를 불렀어요. “지금 집에 가자”고 하길래 얼떨떨했는데, 아버지가 저 멀리 울면서 서 계시는 걸 보았습니다. 정말 미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1986년 9월 마지막 더위에 귀가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과거 기억에 트라우마가 올라와 더는 표현을 못하겠습니다.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추가 소송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금요칼럼] 시스템의 역설/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금요칼럼] 시스템의 역설/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40년 가까이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아무래도 사회를 보는 안목이 조금씩 깊이를 더하는 느낌이다. 한 예로 “시스템(제도, 규정)은 그 시효 순간부터 변질하기 시작한다”라는, 그 나름대로 터득한 통찰을 들 수 있다. 한 국가사회의 속성이나 성격을 파악하는 지름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제도이다. 법률뿐 아니라 관행화한 다양한 제도를 통해 그 사회를 속성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도 자체에만 몰두하면 아주 엉뚱한 해석을 도출할 수도 있다. 제도가 비록 한 사회를 파악하기 좋은 프리즘임에는 분명하지만, 정작 제도 그대로 사회가 돌아가는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빨간 신호에서 길을 건너면 무단횡단으로 범칙금을 부과한다는 규정을 보고는, 그래서 빨간불에는 사람들이 길을 건너지 않았다는 해석을 도출하면 엉터리라는 얘기다. 여기에 바로 시스템의 역설이 존재한다. 예전 군사독재 시절에 노동부라는 부처가 있었다. 그런데 노동자의 이해보다는 사용자(재벌)를 위한 부서처럼 처신하기 일쑤였다. 노동부가 되레 노동 환경의 개선을 방해하고 노동자를 억압하곤 했다. 민의를 대변하는 특별 권력 기구로 국회라는 제도를 두어 의원들에게 엄청난 특권을 부여하였는데, 과연 국회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오히려 민의를 왜곡하는 일은 없는가? 사법부는 법의 정의 구현을 위해 만든 기구로, 판사에게는 어마어마한 권한을 부여한다. 하지만 판사가 공정하지 않으면 되레 정의 구현을 방해하는 괴물로 언제라도 전락할 수 있다. 전관예우라는 말 자체가 이미 재판을 왜곡하는 범법행위인데도, 그것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는 판사들이 여전히 많아 한심하다. 범법자를 공정하게 기소하라고 검찰을 두었는데, 사익을 따라 수사와 기소를 결정하는 검사가 많을수록 되레 범죄자 소굴로 언제라도 돌변할 수 있다. 지금 생생히 보는 중이다.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조선 시대에도 언로(言路)를 중시하여 대간(臺諫) 또는 언관(言官) 제도를 두었다. 그런데 후기에 이르면 여러 실학자가 대간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타락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약용은 언로를 보장하려던 대간 제도가 지금은 오히려 언로를 막는 장애물이라며 차라리 폐지하는 편이 낫겠다고 역설하였다. 그에 따르면, 고대 중국에서는 대간 제도를 따로 두지 않았다. 임금의 신하라면 어떤 문제를 인지했을 때 누구라도 자유롭게 간쟁(諫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내려오면서 국가의 규모가 커지자 간쟁을 전담할 특별 부서를 두고 거기에 언관을 배치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언관들이 공론(公論)에 힘쓰지 않고 당론(黨論)만 일삼는 바람에 제도 자체가 심각하게 타락하였다. 언관이 아닌 다른 신하들은 간쟁거리가 있어도 자신의 임무가 아니므로 입을 다물고, 언관은 당론을 공론이라 우기니 대간 제도의 취지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러니 차라리 제도를 폐지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간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정약용의 논지였다. 언관 제도가 되레 언로를 막는 쪽으로 기능한다는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현재 우리나라 일부 주요 언론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정론(正論)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공론을 저버리지는 않아야 언론다운 언론으로서 존재 가치가 있을 테다. 언론도 사람이 담당하므로 언론사마다 정견이 다를 수 있고 주안점을 달리할 수 있다. 그래도 합리적 상식에서 벗어나서는 언론이랄 수 없다. 당론으로 먹고사는 언론사에서 무슨 희망을 볼 수 있을까? 검찰 출입 기자들 가운데 정말로 검찰을 주체적으로 취재한 적 있는 기자는 과연 몇 %일까? 언론(대간)이 사적 권력 집단과 결탁했던 조선 후기의 모습이 2020년대 지금 마치 파노라마처럼 자동 재생되는 현실이 암담하다. 언론의 이름으로 언론을 망가트리는 저들을 어찌할꼬?
  • ‘세월호 막말’ 차명진 전 의원 “文 대통령 고맙다 발언은 문제 안삼으면서…”

    ‘세월호 막말’ 차명진 전 의원 “文 대통령 고맙다 발언은 문제 안삼으면서…”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 유가족에 “징하게 해 쳐먹는다”고 한 차명진 전 국민의힘 의원이 재판에서 15일 무죄를 주장했다. 차 전 의원은 이날 인천지법 부천지원 민사2부(부장 이정희)가 진행한 세 번째 변론기일에 출석해 피고 당사자 신문에 임했다. 차 전 의원은 2019년 4월 15일 세월호 참사 5주기를 하루 앞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월호 유가족을 모욕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는 당시 페이스북에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먹고, 찜 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먹고 진짜 징하게 해 처먹는다”고 적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125명은 차 전 의원이 쓴 게시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1인당 300만원씩 모두 4억 1100만원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차 전 의원은 이날 재판정에 출석해 “유가족들께서 기분이 나빴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겠다”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세월호 유가족들이 각종 배·보상을 받은 점 등을 들어 자신의 발언은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가족이 개인적인 일로 큰 슬픔을 당했지만 막대한 국민 헌금이나 국가배상금을 받았다”면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당시 국가권력 어느 기관보다도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공인답게 행동해야 했다”고 진술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팽목항을 방문해 방명록에 세월호 희생자들에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쓴 것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제 발언만 문제로 삼은 건 선택적 분노”라고 토로했다. 그러자 재판을 방청하던 한 유가족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재판이 끝나고서 세월호 유가족들은 항의하겠다며 차 전 의원을 기다렸다. 충돌을 우려한 법정 경위의 중재에 따라 유가족이 떠날 때까지 차 전 의원은 재판정에 앉아있어야 했고, 뒷문으로 나가야 했다. 세월호 유가족 변호인인 류하경 휴먼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이날 “이날 재판에서 차 전 의원의 사과는 가짜 사과였다”면서 “자신이 한 행동 동기가 정당했다고 설명하는데 그쳤다”고 평가했다. 이어 “차 전 의원은 재판을 방청한 유가족들이 돈을 많이 받은 게 맞지 않느냐고 물었다”면서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불량스러운 태도가 판사 앞에 드러나면서 유가족들이 재판에서 더 유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차 전 의원은 지난해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경기 부천병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는 지난해 4월 6일 열린 부천시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후보자 토론회에서 ‘세월호 텐트 막말’ 논란이 됐다. 그는 “혹시 XXX 사건이라고 아세요? XXX 사건”이라며 “2018년 5월에 세월호 자원봉사자와 세월호 유가족이 텐트 안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문란한 행위를 했다는 기사를 이미 알고 있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 [글로벌 In&Out] 벌써 1년인 ‘서울 유학 생활’ 시즌2/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흐따라니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 과정

    [글로벌 In&Out] 벌써 1년인 ‘서울 유학 생활’ 시즌2/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흐따라니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 과정

    코로나 상황에서 두 번째의 유학 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1년이다. 지난해 이맘때쯤에 자가격리가 해제되고 박사 과정 첫 학기를 막 시작했다. 그때를 다시 되돌아보면 어떻게 그러한 용기를 냈나 싶다. 한국에 오기 전에 가장 친한 친구나 동료에게서 늘 들었던 말은 “정말 갈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그때는 특히 한국이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던 시기라서 더 심각했다. 유학준비 과정에서 쉽지 않은 것들을 겪어야 했으나 감사하게도 고생 끝에 낙이 오듯이 마침내 무사히 잘 준비했고 한국에 잘 들어왔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어느새 3학기가 시작됐다. 그동안 어떤 것을 공부하고 무엇을 얻었는지 스스로에게 늘 자문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끔 갖는다. 나의 유학 생활은 서울살이 시즌1과 기교해 어떻게 달려졌을까. 두 번째의 유학 생활은 의외로 편했다. 코로나19 때문에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전보다 훨씬 줄었으나 처음 한국에 왔을 때와 달리 적응하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편했다. 그래도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해야 해서 새로운 친구들과 쉽게 사귈 수 없는 것은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다행스럽게도 전에 알고 지내던 한국 친구와 여기에 거주하는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다. 하지만 만약에 지난해 처음으로 한국에 온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언젠가 마스크 없이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시기가 오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지금도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어서 때로는 지금과 전에 공부했던 경험을 비교하기도 한다. 역시나 공부 환경을 그나마 파악한 상황이고 적응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지도 않았다. 석사 때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만 가지고 출발해 그것에 대해 조금밖에 모른 채 재학하게 돼 상당히 많은 어려움을 겪은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말하자면 석사 1학기 때 생전 처음 겪어 보는 슬럼프를 직면했던 것이다. 눈물 없이 하루를 지내는 게 기록이라 할 만큼 힘든 나날이 이어졌다. 지나고 보니 그런 날들이 있었던 게 엊그제 같다. 그때는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충격의 연속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늘 자책하고 매일매일 후회했다. 감사하게도 그 막막한 순간들을 버티고 1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 지난해 가을 박사 1학기를 시작할 무렵에 이러한 생각도 떠올랐다.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전처럼 그렇게 어려울지. 처음엔 그 생각만 매일 했었다. 박사 1학기도 역시 생각했던 만큼 쉽지 않았으나 감사하게도 눈물 없이 지냈다. 나의 수준을 맞추고 무리하지 않으면서 지내기로 했었다. 그래야 힘든 시간을 직면하게 될 때도 힘을 잃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이번에는 요가도 열심히 했다. 요컨대 예전 글에서 말했듯이 덕질 생활도 마음껏 해 왔다. 공부가 힘들고 지칠 때 그 재미로 다시 힘을 얻고 더 열심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새 친구들과 자연적인 활동에 빠져서 서울둘레길도 둘러보고 등산도 해 봤다.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서 이러한 활동을 통해 건강도 챙기고 서울의 구석구석을 구경할 수 있어 흥미롭고 행복하다. 그러므로 유학 생활 시즌1에서 해보지 못한 색다른 체험이 두 번째의 유학 생활에 아름다운 색깔을 칠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번의 유학 생활을 하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이 과정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과정이다. 즉 내가 공부하고 있는 것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고 내가 배우는 것이 타인에게도 유익한 것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러한 다짐으로 나의 남은 두 번째 유학 생활이 더 바람직하고 유익한 순간으로 가득 찰 수 있기를 바란다.
  • [여기는 중국] 세 자녀 키우다 힘겨운 엄마?…초등교과서 표지 삽화 논란

    [여기는 중국] 세 자녀 키우다 힘겨운 엄마?…초등교과서 표지 삽화 논란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 표지에 한 가정 세 자녀 그림이 등장해 이목이 집중됐다. 최근 중국 대부분의 지역 초등학교가 가을 학기 수업을 개강한 뒤 학생들에 배포한 교과서 표지가 떄아닌 논란의 대상이 된 분위기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삽화는 올해 첫 배포된 초등학교 5~6학년용 어문 교과서다. 해당 교과서 표지에 한 가정 세 자녀의 모습이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논란은 해당 삽화 속 어머니와 아버지로 보이는 두 남녀의 수수한 옷차림과 모습이다. 화제가 된 교과서는 최근 인민교육출판사에서 출간, 중국 교육부의 정식 인가를 받아 전국에 배포됐다. 현지 누리꾼들은 해당 교과서의 삽화 사진을 공유, 삽화 속 가족들 중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의 수수한 옷차림에 대해 조소를 보냈다.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삽화 속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을 지목해 “정부가 무턱대고 강요하고 있는 한 가정 세 자녀 정책의 폐단이 교과서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사례”라면서 “아이를 세 명이나 낳고, 양육하기 위해 부모가 모두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고, 이 여성은 스스로를 꾸밀 사이도 없이 힘들게 살고 있는 모습이다. 아마도 이 여성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매일 초과 야근을 자처했을 것”이라는 등 조롱의 목소리를 냈다. 이와 관련, 한 누리꾼은 “기존 5학년 전용 교과서 표지 그림에 등장한 여성이 똑같은 옷과 똑같은 표정으로 아이만 하나 더 늘어서 총 세 자녀가 등장했다”면서 “정부는 이 삽화를 통해 초등학생들이 한 가정 세 자녀에 대한 인식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을 노렸겠지만, 요즘 아이들이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아이들은 해당 삽화를 보고 이 여성처럼 힘들게 세 명의 자녀를 낳아 키우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을 교훈으로 얻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누리꾼 역시 “정부의 세 자녀 출산 정책은 경제적 능력을 가진 소수의 부모를 위한 정책일 뿐”이라면서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집도 돈도 없는데, 무슨 수로 아이를 세 명이나 키울 수 있겠느냐. 나 역시 어린 시절을 외아들로 자랐지만 외로움을 느낀 적은 없기에 한 가정에 한 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5학년 어문 교과서 표지 속 가족들이 마당으로 보이는 장소에서 바둑을 두며 여유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한 누리꾼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에서는 쉬는 날 집 안에서 바둑을 두며 소일 거리를 하지 않는다”면서 “요즘 같은 세상에 아이들이 외부 활동으로 각종 레크레이션을 배우고, 휴일에는 악기를 배우는 것이 일반적인데 얼마나 아이 키우는 형편이 어려웠으면 자녀와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냐. 허송세월을 보낼 바에야 한 아이만 출산해서 똑똑하게 키우는 편이 낫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중국 당국은 지난달 20일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한 가정당 아이를 세 명까지 낳을 수 있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 삽화가 표지로 실린 교과서는 중국 당국이 세 자녀 출생 정책을 본격화한 후 처음 등장한 변화인 셈이다. 실제로 지난 2019년 출간돼 올 초까지 중국 전역 초등학교에 배포, 사용됐던 기존 교과서 표지가 한 가정 두 자녀 모습의 그림을 실었던 것과 달라진 점이다. 해당 교과서 내의 삽화 역시 지난 2016년 중국이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한 자녀 정책’을 폐지, 두 자녀 정책을 도입하면서 포함됐던 그림이었다.
  • [기고] 시설물 안전 점검과 경험적 감각/윤홍렬 서울시 시설안전과 안전점검팀장

    모든 전문 분야에서 경험이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건설 분야에서는 책상머리에서 배운 지식보다는 현장에서 손발로 만지고 걸어 보면서 익힌 지식이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된다. 독일의 어느 토목 엔지니어가 최근 건립된 콘크리트 옹벽을 점검할 때였다. 그는 완공된 옹벽이 안전한 지를 확인해야 했다. 물론 계측 결과 분석과 도면 검토뿐 아니라 시공 상황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들었다. 그 정도면 기술자로서 필요한 정보는 다 얻었다. 그러나 그가 최종적으로 안전 여부를 판단할 때가 되자, 옹벽에 가만히 손바닥을 댄 후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행동은 그곳의 기운과 힘을 느껴 보는 듯했다. 그러고는 손을 떼면서 이 구조물은 안전하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상세한 계측치, 설계 도면 그리고 시공 상황을 파악했지만 마지막 판단은 기술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감각에 의존했던 것이다. 어쩌면 이는 경험과 초월적 감각을 숭배하는 과장된 일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만큼 기술자의 경험과 감각은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서울시에는 ‘어사대’라는 조직이 있다. 이 조직원들은 지난 수십 년간 공사 현장에서 소장, 안전 관리자 등으로 근무했던 사람들이다. 6개 반으로 편성된 이들은 건설 현장을 매일같이 방문해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키는지, 안전시설을 규정대로 설치했는지를 점검하고 미비된 사항에 대해서 시정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들을 공사장 안전 점검에 투입하는 것은 오랜 경험을 현장에 반영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민선 자치 단체장이 선출되고부터는 지자체의 행정 비중이 공약 사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으나, 안전 점검과 같은 법정 업무의 중요성은 결코 경시될 수 없다. ●국가안전대진단은 전문가의 경험을 필요로 한다 세월호의 비극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2015년부터 매년 2~4월까지 2개월 동안 시행되던 국가안전대진단을 올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8~11월 중 1개월간 지자체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내실 있게 실시하도록 결정 났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25개 자치구는 추석 명절 다중이용시설 점검과 연계해 이달부터 다음달까지 국가안전대진단을 실시한다. 이번에도 민간 전문가와 합동으로 점검하게 되는데, 참여하는 전문가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들의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경험적 판단이다. 그것은 국가안전대진단이 장비를 이용한 정밀 점검이 아닌 육안 점검을 주로 실시하기 때문이다. 이번 국가안전대진단은 위험하고 노후화된, 그리고 과거에 안전사고가 발생했던 시설물을 중점적으로 점검한다. 정부와 자치단체뿐만 아니라 시설물 관리자의 자율적인 점검도 실시된다. 자율점검표를 이용해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미리 차단하고 안전에 대한 의식을 고취해야 할 것이다. 국가안전대진단 결과, 개선이 필요한 시설은 빠른 시일 내에 보수보강을 추진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코로나19 사태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건설 현장에서도 코로나19 방역에 행정력을 집중시키고 있지만, 안전 점검을 할 때도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예로부터 역병이 나돌면 수많은 민중들이 목숨을 잃고 경제 위기까지 닥치곤 했다. 예나 지금이나 위기가 닥쳤을 때 가난한 자의 설움은 더욱 크다. 우리 모두는 과거의 경험을 겸허히 받아들여 작금의 고난을 이겨 나가는 현명함을 길러야겠다.
  • [길섶에서] 추억 서비스/김균미 대기자

    웃을 일이 많지 않은 요즘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는 게 낙이다. 애써 예전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지 않아도 휴대전화가 알아서 오래전 사진을 골라 올려준다. 5년 전 오늘, 10년 전 오늘, 심지어 그보다 더 오래전에 찍은 사진까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때 그 시절이 휴대전화 속 사진 한 장으로 소환된다. 사진 속 그때의 추억과 감정이 고스란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되살아난다. 천진난만한 아이 모습과 친구들 사진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씩 웃는다. 부모님 사진을 보면서는 언제 이렇게 많이 늙으셨지 싶다. 혼잣말을 한다. 싫다고 손사래 치셔도 더 많이 찍어 둘걸 후회가 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프로필 사진으로 흑백사진을 올리는 사람이 주변에 하나둘 늘고 있다. 부모님 젊었을 때 사진도 있고, 어릴 적 수영장에서 찍은 흑백 가족사진도 있다. 색이 바랜 컬러사진에서 세월이 묻어난다. 작고하신 부모님 유품을 정리하다 장롱 깊이 간직해 오던 사진첩을 찾아내 바꿔 가며 사진을 올리는 이도 있다. 사진에서 그리움이 만져진다. 오늘도 휴대전화는 추억의 사진을 추천한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아도 기분 좋다. 내일 웃을 나를 위해 오늘 한 장의 사진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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