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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 대리인단 “세월호 참사날 대통령 지시내용 담긴 녹음파일 있다”

    朴 대리인단 “세월호 참사날 대통령 지시내용 담긴 녹음파일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심리 사건 피청구인인 박근혜 대통령의 법률 대리인단이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에서 구조 지시를 내린 것을 녹음한 파일이 있다고 밝혔다. 베일에 싸인 ‘세월호 7시간 행적’에 대한 납득할 만한 해명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대리인단에 속한 이중환 변호사는 10일 서울 종로구 헌재에서 열린 3차 변론기일 휴정 중 기자회견을 열고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발생 당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내린 지시 내용이 들어있는 녹음파일이 있다”고 밝혔다. 시간대별로 박 대통령의 지시 내용이 나오는지를 묻는 질문에 이 변호사는 “네”라고 답했다. ‘세월호 7시간 행적’은 박 대통령이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30분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지시를 내린 뒤로 오후 5시 15분 청와대로부터 5분 거리에 있는 중대본을 방문하기 전까지 승객들의 구조와 관련한 지시가 전혀 없었던 행적을 가리킨다. 그 7시간 동안 대통령이 재난 수습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시간대별 녹음파일이 있다는 이 변호사의 발언은 박 대통령이 관저 집무실에 있었던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쯤까지 김장수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에게 세월호 참사 수습을 지시한 것이 녹음돼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육성이 들리는 파일인지는 현재까지는 불분명하다. 이 변호사는 “(박 대통령이) 김 실장과 어떤 경로로 통화했는지 확인은 못 했다”면서 “추후 (통화기록을) 헌재에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헌재에 제출한 ‘세월호 7시간 행적 답변서’에서 김 실장과 오전에 3차례, 오후에 4차례 등 총 7차례에 걸쳐 세월호 승객 구조와 관련한 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또 해경청장에게 전화를 걸고, 낮 12시 50분쯤에는 최원영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당일 박 대통령이 통화했다고 스스로 밝힌 사람은 김 실장과 김 청장, 최 수석 등 이렇게 3명이 전부다. 그러나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답변서에서 고용복지수석과의 연락에만 ‘통화 기록이 있다’고 적시했다. 이는 지시 녹음 파일이 있다고 한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설명과 상충해 의문을 낳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구명조끼 입었다는데…” 朴대통령 발언은 “물에 떠 있을 것이라는 취지”

    “구명조끼 입었다는데…” 朴대통령 발언은 “물에 떠 있을 것이라는 취지”

    ‘세월호 7시간’ 논란을 낳았던 박근혜 대통령의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드냐” 발언에 대해 박 대통령 측 탄핵심판 대리인단이 해명을 내놨다. 대리인단은 10일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을 공개하고 해당 발언이 “배가 일부 침몰해 선실 안이 침수됐더라도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으니 물에 떠 (선실 내부에) 있을 것이므로, 특공대를 투입해 발견할 수 있지 않으냐는 취지의 질문이었다”고 밝혔다. 대리인단은 이어 전체 대화 내용을 보면 맥락상 이상한 점이 없는데, 일부만 거두절미해 사실이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오후 5시 15분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한 것으로 그가 참사 발생 7시간이 지났음에도 구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심을 산 바 있다. 이미 세월호는 오전 11시 30분쯤 뱃머리만 남기고 완전히 물속에 잠긴 상태였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朴대통령 측 “청와대는 출퇴근 개념 아냐…24시간 재택근무”

    朴대통령 측 “청와대는 출퇴근 개념 아냐…24시간 재택근무”

    박근혜 대통령 측이 청와대는 24시간 체제로 출퇴근 개념이 아닌 ‘24시간 재택근무’라는 주장을 폈다. 박 대통령 측은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 오전 기일 직후 ‘세월호 7시간 행적’에 대한 소명 자료를 배포하고 “대통령이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서 서면 보고만 받았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어디든 보고받고 지시·결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으며 대통령의 일상은 출퇴근의 개념이 아닌 24시간 재택근무 체제라는 것. 그러면서 “국가의 통수권자로서 24시간 대통령 그 자체로서 근무하는 것이지 어떠한 장소적 개념에서의 행위, 즉 본관 집무실에서의 행위만이 정상적인 업무라는 개념은 대통령 직무의 특수성에 비추어 성립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박 대통령 측은 노무현·김대중 대통령 등 과거 대통령의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 측은 이들 역시 관저에서 집무를 볼 때가 많았다면서 가족이 없는 박 대통령은 더 관저-본관-비서동을 오가며 집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언급했다. 또 “박 대통령에게는 관저가 ‘제2의 본관’”이라며 “세월호 사고와 같이 분초를 다투는 업무는 현장 지휘 체계와 신속한 인명 구조 활동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준비에 시간이 걸리는 대면회의나 보고 대신 20∼30분마다 직접 유선 등으로 상황 보고를 받고 필요한 업무 지시를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 측은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수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며 “직무에 태만하였다는 비판을 받을 일을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7시간 답변 부족하다” 헌재, 대통령 측에 자료 재요구

    “세월호 7시간 답변 부족하다” 헌재, 대통령 측에 자료 재요구

    헌재, “세월호 사고 최초 인지시점은? 통화 입증할 기록은?”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이 제출한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 답변서를 보완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진성 헌법재판관은 10일 오전 헌재 1층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사건 3차 변론기일에서 “박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에 대해 언제 처음 알게 됐는지조차 담겨있지 않다”며 “이 답변서는 요구에 못 미친다. 부족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답변서에는 박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근무하던 오전 10시쯤 세월호 사고 발생 보고를 처음으로 받았고 했다. 이 재판관은 “답변서에는 우선 대통령의 세월호 침몰에 대한 최초 인지 시점이 언제인지가 나와있지 않다”며 “TV 등을 통해서 (사고가) 오전 9시 조금 넘어서부터 보도됐는데, 대통령이 TV를 통해서 확인하지 않았는지를 밝혀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 재판관은 지난달 22일 열린 탄핵심판 1차 준비절차기일에서 대통령 측에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에 대한 답변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대통령 측은 헌재의 요청이 있는지 19일이 지난 이날 오전에야 답변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또 이 재판관은 “답변서에는 대통령이 국가안보실장과 수차례 전화를 했다고 돼 있는데, 국가안보실에서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보낸 보고서만 첨부돼 있다”며 “통화기록도 제출해달라”고 지적했다. 대통령 측의 답변서에는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대통령과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과의 전화통화를 뒷받침할 통화기록 등과 같은 자료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대통령 대리인단 소속 이중환 변호사는 답변서를 보완해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7시간’ 朴대통령 측 “관저 집무실서 평균 20분 간격으로 상황 점검”

    ‘세월호 7시간’ 朴대통령 측 “관저 집무실서 평균 20분 간격으로 상황 점검”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 측이 “신체 컨디션이 좋지 않아 관저 집무실에서 근무했다”며 “오전 10시에 세월호 첫 보고를 받았으며, 오후 3시쯤 피해 상황이 심각함을 인식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 측은 헌법재판소가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을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요구한 지 19일 만인 10일 답변을 제출했다. 해당 답변서에서 박 대통령 측은 “그날따라 신체 컨디션도 좋지 않았기에 관저 집무실에서 근무하기로 결정했다”며 “관저 집무실은 업무를 보는 공식적인 집무실”이라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은 평소처럼 기상해 아침 식사를 한 후 관저 집무실에서 그간 밀렸던 보고서를 검토했다고 밝혔다. 이어 오전 10시쯤 국가안보실로부터 세월호 참사에 대해 처음 서면보고를 받았으며, 그 후 박 대통령은 짧게는 3분, 평균 20분 간격으로 쉼 없이 상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지시를 했다고 전했다. 답변서에 따르면 오후 2시 50분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박 대통령에게 전화로 전원 구조는 사실이 아니라고 정정보고 했고, 이에 오후 3시쯤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방문 준비를 지시했다. 머리 손질 논란에 대해서는 “당일 오후 3시 35분 미용담당자가 들어와 20분간 머리 손질을 했다”고 밝혔다. 세월호 당일 관저 출입은 가글액을 가져왔던 간호장교(신보라 대위)와 중대본 방문 직전 들어왔던 미용담당자 외 없다고 말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오후 5시 15분쯤 중대본에 방문했으며, 질문 외 지시도 있었다고 말했다. 당일 오전은 안봉근 당시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이, 점심 후에는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이 관저 대면 보고 했다고 밝혔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 답변서를 보완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진성 헌법재판관은 이날 오전 헌재 1층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사건 3차 변론기일에서 “대통령 측의 답변서는 상당 부분 대통령이 주장하는 세월호 참사 당일 보고 지시에 대한 것만 기재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재판관은 “헌재가 요구한 것은 대통령의 기억을 살려서 당일 행적에 대해서 밝히라는 것으로 답변서가 (헌재의) 요구에 좀 못 미치는, 부족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문]박근혜 대통령 측 세월호 7시간 관련 석명

    [전문]박근혜 대통령 측 세월호 7시간 관련 석명

    재판부 석명 사항에 대한 답변 사 건 2016 헌나 1 대통령(박근혜)탄핵 피청구인 대통령 박 근 혜 위 사건에 관하여 피청구인의 대리인들은 다음과 같이 재판부의 석명에 대하여 답변합니다. … 다 음 … - 세월호 7시간 피청구인의 행적에 대하여 1. 세월호 사고 당일 피청구인의 행적 정리 가. 전제 사실 ○ 청와대는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인 대통령의 거주 및 집무 공간으로 적의 공격이 예상되는 중요 국가 안보시설1) 과거 북한의 청와대 무장 침투 공격 시도가 있었고, 최근에도 북한에서 계속하여 ‘청와대 타격’ 운운 하는 협박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내부 구조나 배치, 특히 대통령의 위치와 동선은 국가기밀에 해당하며 어떤 나라, 어느 정부에서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 대통령등의경호에관한법률 제9조(비밀의 엄수) ① 소속공무원[퇴직한 사람과 원(原) 소속 기관에 복귀한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은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소속공무원은 경호실의 직무와 관련된 사항을 발간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공표하려면 미리 실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 세월호 사고와 무관하게 당일 대통령의 행적에 관해 각종 유언비어가 횡행하여 결국 국회 국정조사, 특검 수사,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로까지 이어졌기에 더 이상 국민이 현혹?선동되고 국가 혼란이 가중되지 않도록 부득이 대통령의 집무 내용을 공개한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절실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나. 일반적 설명 ○ 2014. 4. 16.은 대통령(이하, 피청구인이라 합니다.)은 공식 일정이 없는 날 대통령은 공식 행사가 없는 경우에도 쉬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집무실)에 머물며 비서실과 행정각부로부터 보고를 받고 지시를 하는 등 업무를 처리합니다. 따라서 대통령의 근무처는 대통령이 현존하는 그곳이 근무처로 보는 것이 통상 헌법학자들의 견해입니다. 이었고, 그날따라 피청구인의 신체 컨디션도 좋지 않았기에 관저 집무실에서 근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관저 집무실은 피청구인이 업무를 보는 공식적인 집무실입니다. ○ 피청구인은 평소처럼 기상하여 아침 식사를 한 후 관저 집무실에 들어갔습니다. 이 집무실은 역대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빈번하게 이용해 온 사무공간으로 책상과 컴퓨터, 서류철로 가득하며, 대통령이 그곳에서 전자결재를 하거나 주로 보고서를 읽고 행정부처, 비서실 등과 전화를 하며 각종 보고를 받고 업무 지시를 하는 곳입니다. ○ 피청구인은 그날 역시 공식 일정이 없을 때의 평소와 다름없이 집무실에서 그간 밀렸던 각종 보고서를 검토했고 이메일, 팩스, 인편으로 전달된 보고를 받거나 전화로 지시를 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하였습니다. ※ 피청구인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안봉근, 정호성 등 비서진은 별도의 사무공간이 있고 그곳에 텔레비전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내용이 보도되면 직접 혹은 전화나 쪽지 메모로 피청구인에게 보고하는 경우가 있음. 사고 당일 오전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직접 관저 집무실로 피청구인을 찾아와 세월호 상황을 대면보고 하였고, 점심식사 후 즈음에도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으로부터 세월호 관련상황을 대면보고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 피청구인은 10:00경 국가안보실로부터 08:58 세월호 침수 사고에 대해 처음 서면보고 국가안보실 보고서는 인편으로 부속실에 전달되고, 즉시 대통령에게 보고됩니다. 를 받았고, 서면보고 내용은 사고 원인, 피해 상황 및 구조상황이었습니다. 구조상황은 56명이 구조되었고 09:00 해군함 5척, 해경함 4척, 항공기 5대가 현장에 이동했으며, 09:35 상선 3척, 해경함 1척, 항공기 2대가 추가로 현장 도착해서 구조 중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 그 후 인명 구조를 위해 수시로 보고받고 지시를 하는 과정에서 피청구인은 짧게는 3분, 평균 20분 간격으로 쉼 없이 상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지시를 하였습니다. 관계기관의 잘못된 보고와 언론의 오보가 겹쳐 나라 전체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피청구인이 계속 상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국가안보실장이 오후 2시 50분경 승객 대부분이 구조되었다는 보고가 잘못되었고 인명 피해가 심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고하였습니다. 피청구인은 동 보고를 받고서 바로 정부 대책을 총괄, 집행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이라 합니다) 방문을 지시하였고 경호실의 외부 경호 준비, 중대본의 보고 준비 및 중대본 주변의 돌발 상황 때문에 17:15경 중대본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 그날 관저 출입은 당일 오전 피청구인의 구강 부분에 필요한 약(가글액)을 가져온 간호장교(신보라 대위)와 외부인사로 중대본 방문 직전 들어왔던 미용 담당자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 이상의 개괄적 상황이 당시의 피청구인 정확한 행적입니다. 시간 피청구인 행위 장소 증거, 증빙 09:53 . 외교안보수석 서면보고 수령하여 검토 - 국방 관련 사항(세월호와 무관한 내용) 집무실 10:00 . 국가안보실로부터 세월호 사고 상황 및 조치 현황 보고서(1보) 받아서 검토 - 사고 상황 개요 정리 - 해경 조치 현황 : 상선 3척, 해경함 1척, 항공기 2대가 현장 도착해 구조 중, 해군함 5척, 해경함 4척, 항공기 5대 현장 이동 “ 보고서 10:15 .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하여 상황 파악 및 지시 - 안보실장 보고 : 선체가 기울었고 구조 진행 상황 및 구명조끼가 정원보다 많이 구비되어 있다 - 피청구인 지시 : “단 한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에 만전을 기)할 것. 여객선 내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하여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할 것” “ 안보실 행정관이 대통령 지시사항을 중대본안전관리본부장,해경청장(상황실)에 즉시 전달함 10:22 . 피청구인이 국가안보실장에게 다시 전화하여 ‘샅샅이 뒤져서 철저히 구조해라’고 강조 지시 “ 10:30 . 피청구인이 해경청장에게 전화해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 지시 ※ 당시 해경은 10:24 이미 특공대를 투입했고, 세월호는 기울어져 갇힌 승객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나 피청구인에 보고되지 않았음 집무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2차에 걸쳐 대통령의 안보실장, 해경청장 상대 지시 내용 언론 브리핑 10:36 . 사회안전비서관의 여객선 침몰 사고 상황 보고서(1보)받아 검토 - 471명 탑승, 09:50 현재 70명 구조 완료 “ KBS TV에 중대본 발로 ‘구조는 신속하고 순조롭게 진행, 사망 위험 비교적 낮다’ 보도 10:40 . 국가안보실 보고서(2보) 받아 검토 - 10:40 현재 106명 구조, 왼쪽으로 60도 기운 상태, 해군 3척, 해경 2척, 항공기 7대 및 민간선박 11척 현장 도착 구조 중 - 합참 탐색구조본부(09:39), 중대본(09:45) 가동 “ 보고서 10:57 . 사회안전비서관의 여객선 침몰 상황 보고서(2보) 받아 검토 - 총 476명 탑승, 10:40 현재 133명 구조 완료 “ 보고서 11:20 . 국가안보실 구조 상황 보고서(3보) 받아 검토 - 11:00 현재 161명 구조, 10:49 선체 전복(침몰 선체 사진 첨부) “ 보고서 11:23 . 국가안보실장의 유선보고(4보) 받고 통화 “ 김장수 11:28 . 사회안전비서관의 여객선 침몰 상황 보고서 (3보) 받아 검토 - 탑승자 현황 및 구조 상황 “ 보고서 11:34 . 외교안보수석실 보고서 받아 검토 - 000 대통령 방한 시기 재조정 검토 “ 보고서 11:43 . 교육문화수석실 보고서 받아 검토 - 자율형 사립고 관련 문제점 “ 보고서 12:05 . 사회안전비서관의 여객선 침몰 상황 보고서 (4보)받아 검토 - 11:50 현재 162명 구조, 사망자 1명 확인 “ 보고서 12:33 . 사회안전비서관의 여객선 침몰 상황 보 고서(5보) 받아 검토 - 12:20 현재 179명 구조, 사망자 1명 확인 “ 보고서 12:50 .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의 전화를 받아 10분간 통화 - 기초연금법 관련 국회 협상 상황 긴급 보고 “ 최원영, 통화 기록 12:54 . 행정자치비서관실의 여객선 침몰 관련 중대본 대처 상황 보고서 수령, 이후 검토 - 탑승 인원 현황, 178명 구조, 사망 1명 - 해군 특수구조대, 해경 특공대 투입하여 침몰 선체에 생존자 여부 확인 중 집무실 보고서 13:07 . 사회안전비서관의 여객선 침몰 상황 보고서(6보) 받아 검토 - 13:00 현재 370명 구조, 사망자 2명 확인 - 행정선 구조 인원 신원 파악으로 구조자 증가됐다고 보고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잘못된 보고 “ 보고서 13:13 . 국가안보실장이 피청구인에게 전화하여 보고(5보) - 190명 추가 구조, 총 370명 구조(사망자 2) “ 김장수 13:30 이후 .국가안보실에서 13:30 팽목항 입항 예정 보고됐던 190명 탑승 진도 행정선이 입항하지 않자 해경에 관련 상황 확인 독촉 - 13:45 해경에서 190명 추가 구조가 아닌 것 같다는 취지를 청와대에 보고 14:11 . 피청구인이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 상황 파악 - 정확한 구조 상황 확인토록 지시 집무실 김장수 14:23 . 해경에서 190명 추가 구조는 잘못 보고라고 최종 확인 - 서해해경청과 해경 본청간 구조 인원 확인 과정에서 오류 또는 중복 계산 14:50 . 국가안보실장이 피청구인에게 전화, 370명 구조 인원은 사실 아니라고 정정 보고(6보) 집무실 김장수 14:57 .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지시 - 구조 인원 혼선 질책, 정확한 통계와 구조 상황 재확인하도록 지시 “ 김장수 15:00 . 피청구인이 비서관에게 중대본 방문 준비 지시 - 경호실, 중대본, 해난 담당 비서관실 등 전파 “ 부속비서관 15:30 . 사회안전비서관실의 여객선 침몰 상황 보고서(7보) 받아 검토 - 15:00 현재 탑승자 459명 중 구조 166명(사망 2) - 해경, 해군, 민간 특수구조요원 300여명이 선체 수색 예정이나 조류 심해 난항 등 상황 “ 보고서 15:35경 . 미용 담당자가 들어와서 머리 손질(약 20분 소요) - 청와대 체류 : 15:22~16:24 관저 15:42 . 외교안보수석실 서면 보고 받아 검토 - 주한 일본 대사와 오찬 회동 결과 집무실 15:45 . 사회안전비서관실에서 대통령의 중대본 방문 말씀자료 준비하여 피청구인에게 보고 “ 부속실 수령 16:10 .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 구조 방안, 실종자 가족 대책, 대통령 조치, 총리 팽목항 방문 등 논의 BH 회의실 회의 결과는 정리하여 대통령 보고 16:30 . 경호실, 중대본의 대통령 방문 준비 완료 보고 집무실 17:11 . 사회안전비서관실의 여객선 침몰 상황 보고서(8보) 받아 검토 - 향후 잔류자 구조 계획 등 차량 이동 보고서 17:15 ∼ 17:30 . 피청구인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하여 구조 상황 등 보고받고 지시 - 지시사항 : ① 많은 승객들이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음. 생존자를 빨리 구할 것 ② 중대본 중심으로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할 것 ③ 피해자 가족들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할 것 ④ 일몰 전에 생사 확인해야 하니 모든 노력 경주 - 질문 사항 : ① 특공대 투입했다는데 구조 작업 진척 정도는? ②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든가? ③ 구조자 숫자가 200명이나 큰 차이 나게 된 이유는? 중대본 비서실장, 정무수석 등 수행/ 피청구인이 중대본 방문하여 지시 및 질문한 내용은 녹화 파일 있음 다. 소위 세월호 7시간 관련 피청구인의 구체적 행적 정리 . 이후에도 피청구인은 청와대로 돌아와서 국가안보실, 관계 수석실, 해경 등으로부터 세월호 관련 구조 상황을 계속 보고받고 구조를 독려하다가 23:30 직접 진도 팽목항 방문·지원을 결심하고 안전 업무를 담당하는 정무수석실에 준비토록 지시 . 2014. 4. 17. 01:25(진도 방문 말씀 자료), 02:40(진도 방문 계획안), 07:21(여객선 세월호 전복 사고 종합 보고) 등 보고를 받으며 상황 파악, 대책 검토한 후 14:00 진도 구조 현장 방문, 16:20 진도 실내체육관 실종자 가족 위로 방문 및 요구 사항 청취 . 4. 17. 22:00 피청구인이 실종자 가족(단원고 실종학생 문지성양 부친)과 전화 통화하여 정부의 약속이 지켜지고 있는지 묻고 구조와 수색 작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 ※ 피청구인의 중대본 방문 직전 주변에서 발생한 사고 관련 : 사고 동영상이 있음 2. 청구인 측 주장에 대한 검토 가. 대통령이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아 직무유기에 가깝고 헌법 제10조에 의해 보장되는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배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 위 사고당일 구체적 행적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피청구인은 청와대 내 집무실에서 근무하던 중 10시경 세월호 사고 발생 보고를 처음으로 받았고, 직후부터 구조 상황을 보고받고 보고된 상황에 따른 지시를 하는 등의 대처를 하다가 15:00경 피해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한 즉시 중대본 방문을 결심하고 준비가 완료된 시점에 중대본을 방문하여 동원 가능한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구조에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하는 등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 그날은 엄청난 참사 와중에 구조 상황에 대한 관계기관의 잘못된 보고와 언론의 오보가 겹쳐 나라 전체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 11시 6분 경기도 교육청이 학부모에게 ‘전원 무사 구조’란 내용의 문자 발송을 시작으로 11시 25분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해경 공식 발표’란 문자 재차 발송하였습니다. <4월 16일 사고 당일 혼선을 극적으로 보여준 언론사 사과문> 사과드립니다 문화일보는 16일 오전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 1·3면을 통해 ‘477명 탄 여객선 침몰... 대형 참사 날 뻔했다’ ‘독도함 동원 군·경 신속구조... 승객 차분 대응. 화 막았다’는 제목으로 경기 안산시 단원고 학생 325명 전원 구조 등의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이 같은 보도는 이날 오전 경기교육청 대책반이 ‘학생 전원을 구조했다“는 문자를 발송한 사실과 조난자 구조가 속속 이뤄지고 있다는 안전행정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및 해양경찰청 측의 발표를 토대로 한 것이지만 정부는 오후 이같은 내용을 번복했습니다. 이에 따라 오전 상황을 전달한 문화일보의 보도는 결과적으로 사실과 다른 보도가 됐으며, 독자 여러분과 사고 관련자 여러분께 혼선을 드리고 심려를 끼쳐 드렸습니다. 이 점 머리 숙여 깊이 사과 드립니다. 문화일보는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더 정확하고 신중한 보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과 사고 관련자 여러분의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 이 같은 혼란은 오후까지 이어져 정부에서도 오후 1시 7분과 13분 피청구인에게 ‘370명이 구조되었다’는 잘못된 보고를 하였습니다. 피청구인은 계속 상황을 확인하였고, 안보실장이 오후 2시 50분 ‘190명 추가 구조가 잘못된 보고’라고 최종 확인하자 피청구인은 오후 3시 중대본 방문을 바로 지시하였습니다. ? 그간 수차에 걸쳐 이런 경과를 공개적으로 밝혔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월호 사고 원인이 대통령의 7시간인 것처럼 몰아가는 악의적인 괴담과 언론 오보로 국민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 처음에는 ‘정OO를 만났다’ 하더니 다음은 ‘굿판을 벌였다’고 하고, 그다음은 ‘프로포폴 맞으며 잠에 취했다’ 하였고, 그 다음은 ‘성형시술을 받았다’는 식으로 의혹은 계속 바뀌어가며 괴담으로 떠돌고 있습니다. 나. 대통령이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서 서면보고만 받았다는 주장 ○ 청와대에는 대통령의 집무 공간으로 본관 집무실, 관저 집무실, 위민관 집무실이 있으며 이날은 관저 집무실을 이용했습니다. 청와대는 어디서든 보고를 받고 지시, 결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으며 대통령의 일상은 출퇴근의 개념이 아닌 24시간 재택 근무 체제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통수권자로서는 24시간 대통령 그 자체로서 근무하는 것이지 어떠한 장소적 개념에서의 행위 즉 본관집무실에서의 행위만이 정상적인 업무라는 등의 개념은 대통령의 직무의 특수성에 비추어 성립될 수 없다 하겠습니다. ※ 역대 대통령들은 가족관계와 성향에 따라 관저에 머무는 시간이 달랐을 뿐 모든 대통령이 관저 집무실에서 업무를 처리하였습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령과 질병으로 평소 관저에서 집무할 때가 많았고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오전 10시 이전 회의나 저녁 회의, 휴일 업무를 대부분 관저에서 봤음. 2004. 6. 이라크 무장 단체가 우리 국민 생명을 담보로 촌각을 다투던 김선일씨 납치 사건 당시도 관저에 머물며 전화와 서면으로 보고를 받았고, 심지어 ‘관저 정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치인이나 지인을 관저에 불러 대소사를 논의하는 일이 흔했으며 참모들과의 아침회의를 관저에서 개최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하였다(2003. 12. 3. 한국일보 ‘한나라·민주 “관저 정치, 안방 정치, 386 정치 중단하라”, 2007. 11. 27. 매일경제 “노대통령 특검엔 대못질 못했다” 등등) ※ 당시 민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측근들을 관저로 불러 맞담배 피며 국정을 논하는 안방 정치를 하고 있다. 국무회의나 비서실 회의는 장식용이고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던 사례가 있고, 대연정 제안 직전에는 3일 동안 관저에서 두문불출, 한 발자국도 안 나오고 면담도 일절 하지 않았던 적이 있다. 비서실장이나 정책실장도 안 만나니 뭘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김병준 회고록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 제4장 참조) ※ 피청구인 박근혜 대통령은 특히 관저에 거주하는 가족이 아무도 없어서 다른 대통령보다 더 관저와 본관, 비서동을 오가며 집무하는 경우가 많았음. 피청구인에게는 관저가 ‘제2의 본관’이라고 할 수도 있음 ○ 세월호 사고와 같이 분초를 다투는 업무는 현장 지휘 체계와 신속한 인명 구조 활동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준비에 시간이 걸리는 대면회의나 보고 대신 20~30분마다 직접 유선 등으로 상황 보고를 받고 필요한 업무 지시를 했던 것입니다. 다. 중대본 방문 시 ‘뜬금없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아 전혀 상황 파악이 안 되어 있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 피청구인은 중대본 방문 시 관계자들에게 ‘피해 가족들을 위로하고, 생존자 구조에 총력을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단 1명의 생존 가능성도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 중대본을 중심으로 동원 가능한 모든 인력과 장비를 동원하여 보다 세밀한 수색과 구조를 해 달라.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조치라면 조금도 망설이지 말고 적극 협조하라. 사고 현장의 가족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세밀하게 살펴 달라’는 취지로 지시와 독려를 하였고, ○ 그런 연후에 ‘특공대를 투입했다는데 구조 작업 진척 정도는? 구조자 숫자가 큰 차이가 나는 이유는?’ 등 궁금한 사항을 담당자에게 물으면서 중간에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든가?’(배가 일부 침몰하여 선실내에 물이 침범하여 침수되었더라도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으니 물에 떠(선실내부에서) 있을 것이므로 특공대를 투입하였으면 발견할 수 있을 것이 아니냐라는 취지의 질문임)라고 물은 것이어서 전체 대화 내용을 보면 전후 맥락상 이상한 점이 없는데 일부만 거두절미하여 사실을 왜곡, 오도한 것입니다. 라. 소위‘대통령의 성실한 직책 수행 의무’(헌법 제69조) 위반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 수행 의무’는 헌법적 의무에 해당하나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와는 달리, 규범적으로 그 이행이 관철될 수 있는 성격의 의무가 아니므로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확고한 판례입니다(헌법재판소 2004. 5. 14. 2004헌나1). ○ 청구인측은 위 헌재 판례가 ‘경제 정책 실패’와 같은 추상적 사유를 대상으로 한 것인데 반해 세월호 문제는 ‘구체적 직무 태만’ 여부가 문제되기 때문에 생명권 보호 의무 외에 대통령의 직책 성실 수행 의무 위반도 앞으로 심리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 하지만 앞서 본 바와 같이 피청구인은 세월호 사고 수습과 인명 구조, 재발 방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고 직무에 태만하였다는 비판을 받을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마. ‘세월호 7시간’ 진실 규명 요구에 비협조와 은폐로 일관, 국민들의 알권리를 침해하였다는 주장 ○ 피청구인은 세월호 사고 당일 청와대(관저 집무실)에서 정상 근무하면서 피해자 구조와 사태 수습을 위해 국가안보실, 비서실, 중대본, 해경 등 유관기관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상황을 보고받고 필요한 지시를 하는 등 최선을 다해 대처하였습니다. ○ 이런 경과는 이미 2014. 7. 7. 국회 운영위원회 보고, 2014. 7. 10.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특별위원회 보고, 2014. 10. 28. 청와대에 대한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소상하게 밝힌 바 있습니다. ※ 이렇게까지 설명했음에도, 사고 당일 피청구인이 청와대 외부에서 제3자와 밀회했다는 차마 입에 담기도 창피한 이야기가 언론에까지 보도되고,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을 통해 근거 없음이 밝혀지자 청와대 경내에서 굿을 했다는 황당한 이야기, 성형 시술을 했다는 터무니없는 악의적 유언비어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음 3. 향후 주장 및 입증 계획 ○ 피청구인이 ‘생명권 보호 의무’ 및 ‘성실한 직책 수행 의무’를 위배하여 헌법을 위반하였다는 주장에 대한 법리적 반박은 차후의 준비서면을 통하여 상세히 진술할 예정입니다. ○ 세월호 사고 당일 피청구인의 행적에 관련된 사실관계 입증을 위하여 가. 증인신청 :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 김규현 안보실 차장, 박준우 정무수석비서관, 구은수 사회안전비서관, 김석균 해경청장 등 나. 입증취지 : 피소추인의 소명과 관련하여 세월호 관련 보고내용, 대통령 지시사항 및 피소추인의 행적 관련 사항들입니다. ○ 이외 추가로 증거서류 제출 및 사실조회신청을 하겠습니다. 4. 결어 세월호 사고로 인하여 소중한 생명을 잃은 피해자와 유족, 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과 여론을 모르는 바 아니고 피청구인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슴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다만, 피청구인의 대리인단의 입장에서는 피청구인이 대응과정에서 미흡한 점이 설사 있다 하더라도 국민의 직접 투표에 의하여 선출된 민주적 정당성이 있는 대통령을 파면시킬 정도의 탄핵사유에 해당될지는 사실적, 법률적 양면에서 다툼의 여지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피청구인은 재판부의 석명요청에 따라 세월호 사고 당일 피청구인의 행적을 시간대별로 밝히며, 소위 세월호 7시간의 문제는 대통령의 동선이 국가기밀사항임으로 인하여 그동안 소상히 밝힐 수 없었던 관계로 이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오해와 동 오해가 만들어낸 각종 유언비어로 인한 왜곡된 인식에 기한 것으로서, 이 사건 탄핵사유는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도 아니할 뿐 아니라 법리적으로도 헌법적, 법률적 측면에서 탄핵사유가 될 수 없다고 사료됩니다. 이와 같은 사정을 혜량하시어 공정하고 엄격한 판단을 하여 주시기를 재판부에 부탁드립니다. 끝. 첨 부 서 류 1. 진도 인근 여객선(세월호) 침수, 승선원 474명 구조작업 중(1~3보) 2017. 1. . 위 피청구인 대리인 변호사 이 중 환 변호사 전 병 관 변호사 서 석 구 변호사 송 재 원 변호사 서 성 건 변호사 손 범 규 변호사 이 상 용 변호사 채 명 성 변호사 황 성 욱 변호사 배 진 혁 헌 법 재 판 소 귀 중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朴대통령 ‘세월호 7시간’ 행적 헌재에 제출

    朴대통령 ‘세월호 7시간’ 행적 헌재에 제출

    박근혜 대통령 측이 ‘세월호 7시간’ 행적이 담긴 답변서를 10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이날 오전 탄핵심판 3차 변론을 앞두고 헌재에 ‘재판부 석명 사항에 대한 답변서’를 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헌재는 지난달 22일 탄핵심판 사건 1회 준비절차기일에서 박 대통령 측에 참사 당일 행적을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요구했다. 자료 제출이 늦어진 데 대해 박 대통령 측 이중환 변호사는 지난 5일 2차 변론 기일에서 “마지막 기회니까 최선을 다해 완벽하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역시 지난 1일 청와대 출입 기자단과 사실상 간담회를 갖고 “그날 정상적으로 참사가 터졌다 하는 것을 보고 받으면서 계속 그것을 체크하고 있었다”고 했다. 국회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생명권 보호의무와 성실직책수행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면서 전날 97쪽 분량의 준비서면과 1500여쪽 분량의 증거를 헌재에 제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카드뉴스] 당신에게 ‘그날’은 무엇인가요?

    [카드뉴스] 당신에게 ‘그날’은 무엇인가요?

    세월호 참사 1000일이 지났습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충격과 슬픔, 고통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세월호 참사는 어떤 것일까요? 시민 76명이 스케치북으로 응답했습니다.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기억’(48회) 그리고 ‘우리’(14회)였습니다. 우리 모두의 일이며,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시민들의 생각을 담아 봤습니다. 기획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제작 이지원 기자 leejw88@seoul.co.kr
  • 박원순, 정원스님 애도 “새월호 책임자 처벌 이루겠다”

    박원순, 정원스님 애도 “새월호 책임자 처벌 이루겠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9일 세상을 떠난 정원스님을 애도했다. 박 시장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어찌 그리 일찍 가시는지?”라며 “스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꼭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이루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고 글을 적었다. 정원스님은 지난 7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 인근에서 몸에 휘발성 액체를 끼얹고 스스로 불을 붙여 분신했다. 분신 현장에서 발견된 스케치북에는 ‘박근혜는 내란사범, 한일협정 매국질. 즉각 손떼고 물러나라!’,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나의 죽음이 어떤 집단의 이익이 아닌 민중의 승리가 돼야 한다’는 유서 형식의 글이 적혀 있었다. 이후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던 정원스님은 9일 오후 7시 40분쯤 화상으로 인한 다장기부전으로 끝내 사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데스크 시각] 25년 또는 72년, 1000일 그리고 우리의 오늘/최여경 사회부 차장

    [데스크 시각] 25년 또는 72년, 1000일 그리고 우리의 오늘/최여경 사회부 차장

    45년. 박정희 정권 당시인 1968년 중앙정보부(중정)는 젊은 경제학자 권재혁씨를 비롯한 13명에게 반국가단체를 조직한 간첩 혐의를 씌웠다. 불법 구금과 고문을 하면서 진술을 받아 냈고, 이런 조서에 의존해 1969년 사형과 무기징역 등이 확정됐다. ‘남조선해방전략당(전략당) 사건’에 휘말린 이들은 세상을 떠난 뒤인 2014년 5월 45년 만에 무죄를 받았다. 43년. 1969년 중정은 박노수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김규남 민주공화당 의원 등이 유럽에서 간첩 행위를 했다면서 구금하고 강압 수사를 벌였다. 1970년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돼 2년 후 형이 집행됐다. ‘유럽간첩단 사건’으로 박 교수 등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43년 만인 2015년 12월 대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32년. 전략당과 유럽간첩단 같은 대표적인 공안 사건인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이 누명을 벗는 데 걸린 시간이다. 1964년 8월 ‘북괴 지령을 받고 국가 변란을 획책한 인민혁명당 사건’에 대한 중정의 발표 후 10년, 2차 인혁당 사건인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이 발생했다. 관련자로 지목된 김용원씨, 도예종씨 등 8명에 대해 1975년 선고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재심 신청으로 무죄가 선고된 건 2007년 1월, 사형당한 지 32년 만이다. 하지만 25년째 또는 72년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명예 회복은 진행 중이다. 1992년 1월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가 열린 지 꼬박 25년이 지났다. 돈이 아닌 일본의 사과로, 명예를 회복하고자 했던 할머니들의 바람은 2015년 12월 10억엔짜리 한·일 위안부 합의로 오염됐고, 오히려 아득해졌다. 1945년 8월 해방됐지만 할머니들의 삶에는 여전히 일제의 서릿발이 서 있다. 그리고 1000일.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이후로 지나온 시간이다. 과적과 불법 증축,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 초동 대처의 실패를 참사의 원인이라고 했지만 진실을 향한 갈증은 여전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관사 집무실’에서 받았다던 보고와 그 내용, 대면보고가 아니었던 이유, 구조작업이 늦어진 까닭과 해군 함정을 투입하지 않은 배경 등 우리는 궁금한 게 너무나 많다. 정부의 말을 못 믿겠다는 투정이 아니라, 모두의 물음에 낱낱이 대답해 달라는 요청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진실을 찾아 헤매고 싸우고 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에서 일삼은 중앙정보부 용공 조작과 공포정치는 수십 년이 지나서도 자행된다. 여전히 국가정보원이 주도한 간첩사건과 대참사, 정부의 눈가림 속에서 국민이 희생양이 된다. 국가 폭력의 진상 규명, 공안과 조작의 철퇴, 타락한 권력의 정화, 못다 한 친일의 청산, 기회주의 정치의 타파, 좌우 이념의 공존…. 우리에겐 풀어야 할 과제와 극복해야 할 것들도 너무 많다. 하지만 오늘, 그 실타래를 푸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조작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확인했고, 그 배후가 누구인지도 알았다. 진실을 찾고자 하는 열망 또한 높다. 광장에서, 언론에서, 특검과 국회에서 적폐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문을 연 2017년이기에 대한민국 변화의 시작점이 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cyk@seoul.co.kr
  • 세월호 참사 1000일… 다시 읽는 ‘금요일엔 돌아오렴’

    세월호 참사 1000일… 다시 읽는 ‘금요일엔 돌아오렴’

    출판사 창비가 세월호 참사 1000일을 맞아 ‘금요일엔 돌아오렴: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의 평생소장판 e북을 무료로 배포한다. 창비는 9일 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이 쓴 이 책을 오는 15일까지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국내 모든 인터넷 서점을 통해 무료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금요일…’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그해 12월까지 단원고 희생 학생의 부모 13명을 인터뷰한 증언록이다. 2015년 1월 출간된 이 책은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 개인들이 느끼는 국가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 사건 이후 대다수 가족들이 시달리고 있는 극심한 트라우마 등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제56회 한국출판문화상 기획편집 부문을 수상하고, 5·18문학상 제1회 본상을 수상했다. 창비는 작가단과 가족협의회의 동의를 거쳐 2015년 1억 5000만원, 지난해 3300만원 등 책 수익금 전액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활동에 기부했다. 박대우 창비 인문사회출판부 팀장은 “평생 소장판의 무료 배포를 통해 세월호 1000일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세월호 1000일 맞은 野잠룡 “정권교체로 진실 규명” 합창

    세월호 1000일 맞은 野잠룡 “정권교체로 진실 규명” 합창

    文 “반칙·특권 세력이 침몰 주범” 김부겸 “국가의 잘못 끝까지 추궁” 安 “책임자 처벌에 정치생명 걸 것” 문재인 차량 막은 보수단체 수사 세월호 참사 1000일째인 9일 야권의 대선주자들은 세월호 진실규명을 약속하면서 정권교체로 참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겠다고 선언했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얼굴)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반칙과 특권을 일삼고 국민을 겁박하고 속여 온 세력이 세월호 침몰의 주범”이라며 “반세기 적폐를 대청소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000일의 슬픔과 1000만 촛불 앞에 대통령 탄핵은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당 김부겸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는 국가의 잘못을 끝까지 추궁해 다시는 국가가 국민을 버리지 않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충남도당 당원대표자대회에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해 정치생명을 걸고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의 조속한 인양과 진상 규명에 힘을 모아야 한다”며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등 야당은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보장하는 ‘4.·16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특별법)을 늦어도 2월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은 물론 온전한 선체 인양, 철저한 진상규명과 처벌에 당력을 집중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경찰은 전날 경북 구미시의회를 찾은 문 전 대표의 차량을 가로막고 행패를 부린 보수단체 회원을 상대로 수사에 착수했다. 주동자급 전원을 소환 조사하고, 특히 차량을 막거나 불법 집회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람은 업무방해 등 혐의로 처벌한다는 방침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세월호 1000일 만에 ‘대통령 7시간’ 오늘 제출… “오전 내내 서류와 싸움”

    윤전추와 개인용무 등 分단위로 외부 접촉 부인… 시술 의혹 반박 최순실·정호성, 오늘 신문 불출석 삼성생명 등 62곳 사실조회 신청 국회측 ‘7시간 탄핵 주장’ 제출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에 관한 상세 자료를 10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9일 “대리인단이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답변서 초안을 완성해 주말 동안 검토를 끝냈다”며 “내일 탄핵심판 변론 기일에 맞춰 헌재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답변서를 낼 경우 지난달 22일 헌재가 시간대별 행적을 자세히 밝히라고 요구한 지 19일 만의 제출이 된다. 답변서는 거의 분 단위로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지난 주말 이 답변서를 직접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 측은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내내 서류 검토를 많이 했다고 한다. 서류를 쌓아 놓고 그야말로 서류와 싸움을 했다는 그런 내용이 반영될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참사 당일 오전 8시 30분쯤 윤전추(38) 행정관을 호출해 개인적인 용무를 처리하고 9시부터 관저 집무실에서 밀린 서류 업무를 챙겼다는 주장이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미용사를 제외한 외부인과의 접촉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해 의료시술 의혹을 반박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관련해 국회 탄핵소추위 측은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이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담은 의견서와 관련 증거문서 1500여쪽을 헌재에 제출했다고 이날 밝혔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이날 헌재에 삼성생명과 CJ 등 관계기관 62곳을 대상으로 사실조회를 해 달라고 신청했다. 재단 강제모금 의혹과 관련해 강요가 있었는지, 기업들의 자발적인 출연이었는지를 관련 기관에 직접 확인하겠다는 취지다. 박 대통령 측은 특히 이명박 정부의 ‘미소금융재단’ 설립과 관련해 서민금융진흥원, 노무현 정부의 삼성꿈장학재단 등에도 사실조회를 신청했다. 미르재단 기금 모금이 과거 정부의 기금 모금과 다를 바 없음을 강조하면서 헌재 심리 일정을 지연시키는 효과를 겨눈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인 최순실(61·구속 기소)씨와 정호성 전 비서관은 10일로 예정된 증인신문에 불출석하겠다며 헌재에 사유서를 제출했다. 헌재 관계자는 “최씨가 본인과 딸이 수사를 받고 있어 진술이 어렵고, 11일 열릴 공판 준비를 위해 증인신문에 출석할 수 없다는 사유를 밝혔다”고 설명했다. 정 전 비서관은 “18일 형사재판 공판기일이 잡혀있으므로 그 이후로 증인신문을 잡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시간 멈춰선 기억교실… 추모 흐르는 눈물교실

    시간 멈춰선 기억교실… 추모 흐르는 눈물교실

    최근 방문객 평균 2배로 늘어 책상엔 꽃·편지·선물로 가득 “그저 어른으로서 미안할 뿐” 교육청 이전 후 유가족 발길 끊어 “기억교실은 아이들의 마지막 숨결과 손길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우리 아들의 손때 묻은 의자에 앉아 깊이 생각에 빠지면 어느 순간 아들과 만나게 됩니다.” 9일 경기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마련된 단원고 기억교실을 찾은 이미경씨는 흐르는 눈물에 말을 잇지 못했다. 아들 이영만군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났다. “애들이 고등학생이었으니 집보다 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잖아요. 기억교실이 너무나 소중한 이유입니다.” 세월호 참사 1000일을 맞은 이날 시민들의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이성대(58)씨는 “예전에 합동분향소를 간 적은 있지만 특별한 날이라도 희생된 학생과 가까이하고 싶어 들렀다”며 “그저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미안할 뿐”이라고 언급했다. 김모(44)씨는 “다시는 이런 참사가 없도록 깊이 반성하고, 국가 안전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건 아이들을 잊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참사 1000일이 다가오자 기억교실을 방문하는 시민들이 하루 평균 50명에서 100명으로 크게 늘었다”며 “대통령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파문 이후 세월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기억교실은 4·16가족협의회 산하 기억저장소가 운영하고 있다. 희생자 부모 10명이 운영위원을 맡아 교실을 관리하고 방문객을 안내한다. 이날 만난 이미경씨도 쉴 새 없이 방문객을 안내하며 교실 곳곳에 새겨진 유가족의 슬픈 사연을 설명했다. 이씨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희생자 어머니들이 방석과 등받이를 직접 떠 아이들의 의자에 놓아 준다. 교실 벽에 걸린 시계의 바늘을 참사 시간에 고정시켜 놓을까 고민했지만 아이들이 살아 있을 때처럼 자연스럽게 놔두기로 했다”고 설명하자 방문객들은 낮은 탄식을 뱉어냈다. 학생들의 흔적이 가득한 책상 위에는 유가족과 추모객이 올려 놓은 꽃, 선물, 편지들로 가득했다. 추모객들은 방명록에 “아무것도 하지 못해 미안하다”, “잊지 않겠다”고 적었고, 몇몇 피해자 유가족은 오히려 추모객들을 위로하며 감사하다는 글을 남겼다. 기억교실은 지난해 8월 단원고에서 교육지원청 별관으로 이전됐다. 교실 내 모든 물품들은 그대로 옮겼지만, 공간이 이전보다 좁아 책상을 다닥다닥 붙이고 사물함은 교실 밖으로 내놓았다. 이씨는 “유가족의 반발에도 기억교실이 이전됐고, 이후 자식의 흔적을 찾던 부모들이 발길을 끊기도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기억교실은 2019년 8월 완공될 4·16 안전시민교육원으로 옮겨 자리잡는다. 생존 학생들은 희생 학생들을 그리워하며 친구의 책상에 글과 선물을 남겨 두기도 했다. 참사 1~2년 후 살아남은 아이들이 친구의 사진을 든 채 촬영한 사진도 곳곳에서 보였다. 고려대 안산병원 관계자는 생존 학생 상당수는 현재 안정적으로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고 직후 심리 치료를 시작한 생존 학생 70여명 중 60여명은 현재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에서 전화상담이나 대면상담 등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 중 일부는 일주일이나 한 달 주기로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청와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보고·지시 기록’ 30년 봉인 시도

    청와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보고·지시 기록’ 30년 봉인 시도

    304명(미수습자 9명 포함)의 생명을 앗아간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박근혜 정부는 실종자 수습과 조속한 선체 인양,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햇수로만 3년이 지나고, 세월호 참사 발생 1000일째를 맞은 9일까지도 정부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출범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활동조차 집요하게 방해했고, 특조위의 자료 제출 요구에도 제대로 응하지 않은 정부는 결국 특조위의 활동을 강제로 종료시키기까지 했다. 그런데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3개월이 지난 시점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통령 기록들을 조직적으로 숨기려 한 정황이 포착됐다. 이 활동의 중심에는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JTBC ‘뉴스룸’이 보도한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따르면 2014년 7월 17일 김기춘 전 실장은 ‘VIP 기록물’을 비공개로 하기 위한 법률적 근거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고 김 전 수석의 비망록에는 ‘민정-대통령기록물 생산접수자료. VIP 비공개 대상자료 법률적 근거, 정리. 외부노출X’라고 적혀 있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 의혹’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전의 일이다.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000일이 지나도록 참사 당일 청와대 안에서 이뤄진 대통령 보고와 구조 지시 내용이 적힌 원본과 사본 기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런 기록물들이 김 전 실장의 지시대로 박 대통령 퇴임 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될 경우 기본적으로 15년 동안 박 대통령 말고는 아무도 볼 수가 없게 된다. 만일 그 기록물 안에 박 대통령의 사생활과 관련한 기록물이 포함돼 있다면 최대 30년까지 전직 대통령 및 그의 대리인 외에는 열람이 불가능하다. 청와대가 왜 서둘러 참사 당일 기록물을 ‘비공개’ 형태의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하려 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신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저는 정상적으로 이 참사, 이 사건이 터졌다 하는 것을 보고받으면서 계속 그것을 체크하고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시점을 기억하지 못하는 발언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박근혜 퇴진’ 정원스님 분신 이틀만에 결국 사망

    ‘박근혜 퇴진’ 정원스님 분신 이틀만에 결국 사망

    지난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및 체포를 촉구하며 분신한 정원스님(서모씨·64)이 이틀 뒤인 9일 저녁 세상을 떠났다. ‘정원스님 분신항거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등에 따르면 정원스님은 이날 오후 7시 40분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다. 앞서 병원 측은 “환자는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었고, 기도를 확보하는 ‘기관절개술’을 시행 후 새벽 2시께 중환자실로 옮겼다”면서 “중한 화상으로 인해 폐, 심장, 콩팥 등이 많이 손상돼 화상치료와 병행치료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보호자 측이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연명치료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위독한 상태였던 정원스님은 눈을 감았다. 서울대병원은 화상으로 인한 다장기부전이 사인이라고 설명했다. 정원스님은 지난 7일 촛불집회가 끝난 밤 10시 30분쯤 종로구 경복궁 앞 광화문시민열린마당에서 몸에 휘발성 액체를 끼얹고 스스로 불을 붙여 분신했다. 분신 현장에서 발견된 스케치북에는 ‘박근혜는 내란사범, 한일협정 매국질. 즉각 손떼고 물러나라!’,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나의 죽음이 어떤 집단의 이익이 아닌 민중의 승리가 돼야 한다’는 유서 형식의 글이 적혀 있었다. 비대위에 따르면 1977년 해인사로 출가한 정원스님은 1980년 신군부의 광주 민주화운동 탄압에 저항하는 불교탄압 공동대책위 일원으로 활동했고, 1987년 6월 항쟁에도 참여했다. 2006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이전반대투쟁, 2008년 광우병 수입소고기 반대 투쟁,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등 다양한 사회운동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카드뉴스] 당신에게 ‘그날’은 무엇인가요?

    [카드뉴스] 당신에게 ‘그날’은 무엇인가요?

    세월호 참사 1000일이 지났습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충격과 슬픔, 고통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세월호 참사는 어떤 것일까요? 시민 76명이 스케치북으로 응답했습니다.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기억’(48회) 그리고 ‘우리’(14회)였습니다. 우리 모두의 일이며,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시민들의 생각을 담아 봤습니다. 기획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제작 이지원 기자 leejw88@seoul.co.kr
  • ‘세월호 7시간 열쇠’ 구순성 靑경호실 행정관 ‘최순실 청문회’ 출석

    ‘세월호 7시간 열쇠’ 구순성 靑경호실 행정관 ‘최순실 청문회’ 출석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의문의 7시간’의 행적을 알고 있을 것으로 알려진 구순성 대통령 경호실 소속 행정관이 9일 오후 ‘최순실 게이트’ 국회 국정조사 7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앞서 국조특위는 안봉근·이재만 전 청와대 비서관을 비롯해 이날 오전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은 증인 19명 중 14명에게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이 중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함께 구 행정관이 동행명령에 응해 오후에 속개된 청문회에 출석했다. 구 행정관은 세월호 참사 발생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진술을 위해 증인으로 채택됐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7일 국회에서 열린 2차 청문회에서 “(2014년) 4월 16일 대통령 행적을 이 사람이 알 것이라는 내부 제보가 있다. 본인이 양심고백을 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고 전해져 왔다”면서 구 행정관을 증인으로 출석시켜 줄 것을 국조특위에 요청한 바 있다. 경찰 출신의 구 행정관은 2012년 대선 직후 경찰에 사표를 제출하고 대통령 경호실 관저팀에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 행정관은 2012년 총선 때도 서울경찰청 소속으로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근접 경호했고, 총선 후에도 경찰로 복귀하지 않고 근접 경호 임무를 계속 수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서울포토] ‘세월호 참사 1000일’ 기억의 교실에 걸려 있는 4월 달력

    [서울포토] ‘세월호 참사 1000일’ 기억의 교실에 걸려 있는 4월 달력

    세월호 참사 1000일을 맞은 9일 경기도 안산시 안산교육지청에 마련된 기억의 교실에 4월 달력이 걸려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서울포토] ‘세월호 참사 1000일’ 분향하는 시민들

    [서울포토] ‘세월호 참사 1000일’ 분향하는 시민들

    세월호 참사 1000일인 9일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분향 헌화를 마치고 영정사진을 둘러보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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