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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시풍속
    202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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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비용 부정」 6일까지 모두 고발/선관위,검찰수사와 별도로

    ◎추석연휴 총선 사전운동 단속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31일 6·27 지방선거 부정사범에 대한 검찰수사와 별도로 선거비용 부정지출등 선거법을 위반한 후보자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모두 고발키로 했다. 선관위는 이날 전국 시·도 선관위 관리과장회의를 소집,이를 위해 지방선거 출마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선거비용 실사 결과를 토대로 위법 혐의가 드러난 후보자에 대해 오는 6일까지는 고발 등의 조치를 매듭짓기로 결정했다. 선관위는 선거비용과 관련한 고발대상을 ▲선거비용을 허위로 기재했거나 ▲고의적으로 누락신고를 했거나 선관위가 요구한 자료제출을 거부한 사람 ▲법정한도액을 2백분의 1이상 초과지출한 사람 등으로 구분,처리키로 했다. 한편 중앙선관위는 오는 추석연휴를 전후해 내년 총선 입후보 예정자들이 세시풍속을 빌미로 선물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이를 철저히 단속,사전선거운동을 초기에 근절하도록 각급 선관위에 지시했다. 선관위는 특히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기관이 아닌 개인 이름으로 추석선물을 보내는 것도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하며 정당이 개편대회 등 정당행사 현장에서 입당원서를 받는 것도 선거법 위반으로 단속하라고 시달했다.
  • 입춘(외언내언)

    눈속에서 매화가 피고 동백꽃이 자태를 뽐낸다.한강이 꽁꽁 얼어붙고 아직은 영하의 추위가 한참 남아있지만 봄은 얼음밑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오늘은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동양의 24절기가운데 입춘은 첫번째에 해당한다.중국에서는 입춘추위속에 봄을 알리는 징조로 언땅을 녹이는 동풍,땅밑에서 움직이는 벌레,얼음밑을 회유하는 물고기떼의 세가지를 들었다. 옛날에는 입춘을 한해의 첫날로 삼았다.모든것이 시작되는 원점으로 여긴 것이다.그렇기에 입춘 전날을 절기의 마지막 밤이라해서 콩을 방과 문에 뿌려 역귀를 쫓는 풍습이 있었다.또 입춘날에는 눈밑에서 싱싱한 나물을 캐 양념에 무쳐 먹었다. 무엇보다도 입춘은 농사가 시작되는 날,이날부터 88일째가 되는 날 밭에 씨앗을 뿌리도록 돼있다. 입춘에는 덕담같은 글씨를 써서 대문이나 기둥,문설주등에 내다붙인다.입춘축 또는 춘련이라 불리는 이 글귀는 「입춘대길 건양다경」 혹은 「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여니 만복이 들어온다)가 가장 많다. 그러나 현대의도시인들에게는 오래전 사라진 세시풍속이다.아파트공간에 입춘축을 붙일 마땅한 장소도 없지 않은가.속담에 「입춘 거꾸로 붙였다」는 말이 있다.입춘뒤 날씨가 몹시 추워졌을때 쓰는 말이다. 휴일엔 또 한차례 한파가 닥쳐온다는 기상청의 예보다.그러나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나뭇가지 끝마다/푸른 혈액이 감돌고」있는 대춘의 끝머리에 계절은 와있다.지난 여름이후 겨우내 계속된 가뭄으로 저수지 바닥이 드러나고 격일제 급수에 공장문까지 닫고 있다는 영호남의 실정이 안타깝다.우수도 멀지 않았는데 비나 흠뻑 뿌려주었으면 좋겠다.
  • 다식판·떡살·약과판 이용/설상에 옛 정취 되살린다

    ◎「한국의 집」서 세수용품 장터 열려/흰떡·다식에 선·꽃문양 새겨 아름답고 먹음직/다식판 1만∼5만원선·떡살은 2만원 민속명절 설을 앞두고 제기와 함께 전통 세수용품인 다식판과 약과판 떡살등으로 옛 정취를 되살리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한 장터가 마련되고 있다.「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떡살은 무심한 흰떡에 여러 문양을 박아넣어 음식에서까지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조상들의 미적 감각이 그대로 전해지는 생활용품. 약과판이나 다식판도 마찬가지로 각종 곡물가루의 반죽에 아로새긴 부귀영화와 장수를 의미하는 요철의 문양들이 때론 먹어버리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만큼 아름다운 것이 특징이다. 서울 필동 한국의집안에 마련된 전통생활공예관에서는 23일부터 「95새해설날 세시풍속 생활상품전」을 열어 주부들을 부른다. 떡살이나 약과판 다식판 등은 옛살림에서는 필수품으로 동네의 큰 잔치등 여러 사람이 모여 떡을 만들 때는 바뀔 것을 염려,뒷면에 주부의 이름까지 새겨둘 정도로 사랑받았다.그러나 식생활의 서구화로 용도가 줄고 골동품 붐 이후에는 값이 올라 아예 자취를 감추어 버린 것.따라서 『이번 기획전의 세수 상품들은 전국의 전승공예가들이 만든 양질의 작품임에도 각 가정에 전통생활용품을 확산하자는 뜻에서 염가로 나왔다』고 전통생활공예관 신동철과장은 밝힌다. 떡살이나 약과판 다식판은 모두 대추나무를 이용해 조각한 것으로 다식판이 크기에따라 1만1천∼5만3천원,연화차탁과 과식접시는 각 1만1천원,표주박찻잔이 2만4천원이다. 떡살은 가래떡처럼 긴 떡에 선문양·꽃문양·길상문양등의 연속무늬를 찍어 적당한 크기로 잘라먹는 것이 보통이나 떡을 일정한 크기로 자른다음 그 크기에 맞는 크기로 도장을 찍듯 문양을 새겨내는 떡손도 있다.가격은 개당 2만원 정도.기획전에는 이밖에 노리개 복주머니 목기 제기등도 준비돼 있다.
  • 문:하(서울 6백년 만상:55)

    ◎숙정문/「대문」 칭호 못얻은 4대문 중의 북문/“열어두면 부녀자 풍기문란” 속설에 거의 닫아/사적10호로 76년 복원… 요즘은 데이트코스로 서울의 4대문중 「북대문」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서울 종로구 삼청터널위에 자리한 숙정문이 바로 북문이다. 태조 5년(1396년)에 4대문의 하나로 세워졌던 숙정문은 지금도 그렇지만 한적한 산속에 위치한데다 큰길로 이어지지 않는 까닭에 이용하는 사람마저 드믈어 불행하게도 남대문·동대문처럼 「대문」이란 이름을 얻지는 못했다. 연산군 10년(1504년)에 현 위치인 동쪽으로 조금 옮겨 다시 지었다가 세월의 풍상을 못이겨 스러졌었으나 지난 76년 서울시가 백악산일대의 성곽을 복원하면서 창건당시의 문루를 세우고 「숙정문」이란 현판을 내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숙정문을 열어 놓으면 음기가 들어와 성안의 부녀자들이 음란해진다는 음양설과 나라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풍수설까지 겹쳐 항상 문을 닫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순조때 실학자 이규경은 그의저서 오주연문장잔산고에서 「양주 북한산으로 통하는 숙정문이 지금 폐하고 쓰지 않으니 언제부터 막았는지 알수 없다.이 성문을 열어두면 성안에 상중하간지풍이 불어댄다 하여 이를 폐했다 한다」고 적고 있다.여기서 「상중하간지풍」이란 부녀자의 음풍,즉 풍기문란을 뜻하는 것으로 숙정문의 폐문은 최소한 순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감을 알수 있다. 옛 서울의 세시풍속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당시 부녀자들 사이에서는 정월대보름 전에 숙정문까지 세번 다녀오면 그 해의 액운이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이 풍속은 이후 정월대보름에만 국한되지 않고 연중 언제라도 세번만 숙정문을 다녀오면 효험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널리 퍼졌다.그만큼 부녀자들의 숙정문 왕래는 무척이나 빈번했다. 숙정문은 이러 저러한 이유로 「꽃밭」으로 변했고 유독 벌·나비가 많이 날아들었다.부녀자들의 안식처였던 숙정문일대의 자유분방함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수 있다. 『못난 사내 북문에서 호강 받는다』는 옛 서울의 속담에서도 알수있듯 못난 사내라도 숙정문에 가면 어여쁜 부녀자들로부터 많은 추파와 환대를 받았다.도덕과 규범이 통하지 않던 이곳 북문에서 짓궂은 사내들과 음담패설과 수작을 벌이던 성안 부녀자들의 도색풍경.「남녀칠세 부동석」이 강조되던 당시 숙정문 일대에서 벌어졌던 이같은 풍기문란이 대단한 사회문제를 일으켰으며 급기야 조정에서는 이곳에서의 풍기문란을 막기위해 숙정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요즘도 전에 뽕밭자리였던 문밖에는 삼청각 대원각등 장안 최대의 요정이나 풍류음식점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문안쪽의 삼청공원일대 역시 젊은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소문나 있어 북정문에 전해내려 오는 속설과 무관하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숙정문은 지금 인적이 뚝 끊긴채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굳게 닫혀 있다.군부대가 이곳에 들어오면서부터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는 것이다.이 문을 둘러 보려면 삼청터널 시내쪽 입구 오른쪽에 있는 군부대 경비초소에 사전에 신고를 해야한다. 숙정문은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남대문·동대문과 같은 별도의 문화재가 아니다.사적10호인 서울내성곽의 일부분일 뿐이다.
  • 풍자·해학의 한마당/대규모 탈춤판 연다

    ◎예술의 전당,8월까지 매월 마지막 일요일 한국정원서/강령탈춤·송파산대놀이등 8종목 공연/청소년들에 전통문화 이해의 계기 제공 우리 민족의 독특한 삶의 흔적이 녹아있는 탈춤에 관한 모든 것을 한 눈에 조감할 수 있는 대규모춤판이 5∼8월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 하오 3시 예술의 전당 한국정원에서 펼쳐진다. 「놀이속의 의식,탈춤」이라 명명된 이번 무대는 예술의 전당이 우리 전통문화의 복원을 위해 기획한 「한국의 소리와 몸짓」시리즈의 하나로 마련된 것.민속학자 심우성씨의 사회로 ▲29일 강령탈춤,남사당 덧뵈기 ▲6월 26일 발탈,봉산탈춤 ▲7월 31일 송파산대놀이,은율탈춤 ▲8월 28일 북청사자놀음,양주별산대놀이 등 8개 종목에 걸쳐 다양한 춤사위를 선보인다.이번 무대에서는 특히 규격화된 서양공연형식에 익숙한 청소년들에게 우리민족의 대표적 연희양식인 탈춤을 함께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역점을 뒀다.김귀자 박계순 이동안 양소운씨 등 각 분야 기능보유자들이 대거 출연,2시간동안 신명나는놀이마당을 꾸민다. 강령탈춤은 황해도일대에서 행해지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안지대형」 탈춤.사실적 형상의 인물탈과 잿빛 칙베장삼을 기본으로 하는 이 춤에서는 무엇보다 긴 장삼소매를 고개 너머로 휘두르는 느릿한 춤사위가 볼만하다.또 남사당 덧뵈기는 조선시대 유랑예인 집단이었던 남사당패의 다섯번째 순서로 진행되던 놀이로 완벽한 민중극 형식을 띠고있는 것이 특징이다. 발탈은 문자 그대로 발에 탈이 씌워진 채로 추는 독특한 춤이며 봉산탈 춤은 단오날의 세시풍속으로 5일장이 섰던 모든 장터에서 거의 1년에 한번씩 연희됐던 놀이.특히 봉산탈춤의 대사는 어느 가면극보다도 한시 구절을 많이 인용하고 있으며 시문을 풍자적으로 개작한 것이 많아 눈길을 끈다. 송파산대놀이는 조선시대 송파에 큰 장이 설 무렵이나 5월 단오,8월 한가위등때 추었던 춤으로 가면이 33개나 동원된다.한편 파계승에 대한 풍자,양반에 대한 조롱,서민생활상의 묘사등을 주요 테마로 하는 은율탈춤은 등장인물의 성격면에서 특이함을 드러낸다.일례로 모든 가면극에서 노승은 시종 말이 없지만 이 춤에서 만은 노승이 국화주를 취하게 마시고 비틀거리며 등장해 중타령과 진언을 소리내어 외는가 하면 대사도 다른 가면극에 비해 호색적인 표현이 많다는 것. 8월 한여름 더위를 식혀줄 북청사자놀음은 현존하는 민속사자춤중의 으뜸으로 함경북도 북청군 전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에 행해졌던 의식춤.백수의 왕인 사자를 통해 잡귀를 쫓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뜻을 담고있다.또 양주별산대놀이는 중국 사신의 영접때나 궁중행사때 행해졌던 놀이로 평범한 일상 회화조의 대사가 운문억양을 고집하는 봉건탈춤의 대사와는 또다른 감흥을 준다. 우리 전통예술의 진수인 탈춤의 세계를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서 접할 수 있는 이번 행사는 우리것에 대한 국민의 다양한 문화적 요구를 상당부분 충족시켜 줄 것으로 기대된다.
  • 「단체장」 직무행위 기준마련

    ◎대검,전국시달/“자신명의 선물은 사전 선거 대검 공안부(최환 검사장)는 1일 「시장·도지사등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이 자신의 명의로 유권자인 지역주민들에게 기념품 성격의 금품을 지급·배포하는 것은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된다」는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이 내려짐에 따라 검찰의 불법선거 단속기준이 되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직무행위 한계에 대한 기준」을 마련,전국 지검 및 지청에 시달했다. 이날 마련된 기준에서 직무행위를 벗어난 행위에 ▲시정설명회,의정보고회등의 참석자들에게 금품을 제공하거나 ▲기공식·준공식·체육대회 참석자에게 기념품제공 ▲세시풍속 명목으로 노인정등에 선물제공 ▲어린이날,입학및 졸업등 명목으로 불특정다수 학생에게 학용품등 금품을 제공하는 행위가 포함됐다.검찰은 대외접촉,공식행사등 통상적 직무행위라 하더라도 선거운동과 관계된 언동을 하거나 구호적(구호적)성격,또는 보상적 성격의 금품을 제공하는 경우에도 「자신의 명의」로 지급하는 것은 사전선거운동으로 분류키로했다.
  • 서울정도 6백년 기념행사/대보름 다리밟기로 “스타트”

    ◎시민 수만명,원효대교 밟으며 안녕 기원 서울정도 6백년을 기념하는 첫 공식행사인 「다리밟기행사」가 정월 대보름인 24일 하오 5시부터 원효대교와 한강시민공원·석촌호수등지에서 3만여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1·2·3부로 나뉘어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는 다리밟기와 함께 제기차기·널뛰기등의 세시풍속놀이등 각계각층의 시민이 참여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려 대보름달 아래에서 6백년 서울을 기념하는 한바탕의 시민대잔치가 펼쳐졌다. 하오5시부터 한강시민공원등에서 시작된 1부행사에서는 여의도지역 주민들이 대거 참여,제기차기·널뛰기·닭싸움·연날리기등이 열렸고 이어 하오 6시부터는 행사개막을 알리는 북에 맞춰 시립무용단의 축원기원무용이 선보였다. 2부행사는 지름 5m·높이 4m의 달집이 타오르는 가운데 막이 오르면서 곧바로 다리밟기로 들어갔다. 횃불과 손전등을 든 시민들은 쌀쌀하지만 화창한 날씨에 보름달이 비치는 가운데 이원종서울시장과 함께 원효대교를 건너면서 1년동안의 무병·안녕을 기원했고 행렬 맨앞에는 새울이등 4명의 서울6백년 마스코트와 6백년 엠블럼기가 국방부 취타대가 연주하는 흥겨운 우리가락에 맞춰 행진,축제분위기를 돋웠다. 행렬도중 원효대교 중간지점에서 이시장등 궁사6명이 국궁으로 불화살을 쏴올려 한강위에 마련된 「서울 새로운 탄생」이란 불글씨를 태워 올렸고 이에 시민들이 환호와 탄성으로 서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했다.다리 양편 고수부지에 놓여있던 길이 25ⓜ짜리의 강북룡(용)과 강남룡이 승천하면서 폭죽이 터져오르자 축제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손자 손녀의 손을 잡고 이날 행사에 참가한 백대렬씨(72)는 『어릴때 수표교에서 아버지와 다리를 밟은 기억이 생생한데 오늘 다시 다리밟기를 해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즐거워 했다. 뒤이은 3부행사에서는 뒤풀이 놀이로 한강 야외무대에서 달타령·서울의 찬가등의 노래공연이 열렸고 강강수월래놀이가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펼쳐져 남녀노소가 함께 어우러져 한바탕 춤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리밟기는 지난 20년대까지 서울에서 성행했던 민속행사로 정월보름에 다리(교)를 밟으면 일년동안 다리(각)병을 앓지 않는다는 건강기원 세시풍속이다.
  • 내일 대보름… 풍성한 세시풍속/한해의 복·풍년 기원

    ◎약식·오곡밥에 9가지 나물 먹고/더위팔기·복토 훔치기 등 놀이도/새벽 부럼 깨물며 귀밝이술 마셔/식료품값 오름세… “비싼 명절” 예상 24일은 정월 대보름.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이날이 되면 한해의 복과 풍년을 기원하며 다양한 민속놀이와 세시풍속을 즐겼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부럼.부럼은 정월 대보름날 이른 새벽에 호두 은행 날밤등을 깨물며 이를 튼튼히 하고 종기나 부스럼을 예방하는 동시에 은행등을 깨물때의 요란한 소리에 잡귀가 놀라 달아나라는 의미의 풍습 이다.또 귀밝이술이라 하여 청주 한잔을 차갑게 마셨는데 이는 정월 대보름 아침 차가운 술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고 귓병이 생기지 않으며 한햇동안 기쁜 소식을 듣게된다는데서 연유한 것이다.이밖에 더위팔기와 볏가릿대세우기·복토훔치기·백가반먹기등도 잘 알려진 이 날의 기복행사이다. 이밖에 세시음식으로는 약식과 오곡밥·아홉가지 묵은나물이 손꼽힌다. 오곡밥은 찹쌀과 팥·수수·콩·기장 다섯가지의 곡물을 혼합,밥을 지어 먹는 것으로 단백질등 영양의 균형을 잃기쉬운 겨울철 원기회복을 겨냥한 세시음식이다.이것은 아홉가지 묵은나물 요리도 마찬가지로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웠던 옛날 한 겨울에 비타민을 공급하기위한 것으로 지난해 말려둔 무청(시래기)·아주까리·고사리·도라지·취·호박고지·고구마순·가지·토란줄기와 무 나물 등이다. 요리연구가 박경신씨(한국식생활연구회 부원장)는 오곡밥을 지을땐 오곡을 각각 잘 씻고 돌을 가려 소쿠리에 건졌다가 밥을 짓되 팥은 별도로 삶은후 팥 삶은물에 소금을 약간 넣어 밥물을 잡으라고 일러준다.이때 오곡밥은 일반밥에비해 차지기 때문에 밥물을 보통밥을 할때보다 적게 잡아 만일 오곡의 분량이 1이면 물은 그의 8할 정도만 부어주면 된다. 또 묵은나물은 삶아서 물에 담가 검게 우러난 물을 모두 제거한 다음 껍질이 질긴 것은 벗겨서 갖은 양념을 하여 볶아낸다.묵은나물은 볶을땐 육수를 조금 넣으면 나물이 부드럽고 맛있어 진다. 한편 대보름을 앞두고 요즘 재래시장은 물론 백화점 지하 식품부에도 각종 나물류와 오곡밥 재료 및 피땅콩·피호두·피밤등의 부럼류가 가득 쌓여 있는것을 볼 수 있는데 상인들은 전년대비,2∼3배이상 모든 가격이 올랐다고 말한다.업소에따라 차이는 있으나 찹쌀 수수 기장등이 혼합된 오곡이 4백80g당 5천원,묵은나물류가 4백g당 취 4천8백원,도라지 1천4백원,고사리 3천∼4천5백원,고구마순이 1천원선이다.부럼은 재래시장에서 한되에 피밤이 3천∼4천원,피땅콩이 2천원,피호두가 6천∼7천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 제주주민 이사철 「신구간」 시작/25∼새달 1일 8일간

    ◎“신 모두 승천… 액운 막을수 있다”/올해도 2만여가구 이주 북새통 제주도 주민들의 대이동이 25일부터 시작됐다.제주지방 고유의 세시풍습인 「신구간」이 이날부터 들기 때문이다. 「신구간」은 신들이 없는 기간으로 24절기 가운데 대한후 5일째 날부터 입춘전 3일까지의 8일간.이 기간중에는 지상의 인간사를 수호 관장하던 신들이 한해의 임무를 다하고 옥황상제로부터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 버려 일시적으로 신의 부재현상을 빚는다는 것이다. 예부터 각종 신을 섬겨왔던 제주민들은 이 신의 부재기간중에 거주하는 집안에 관한 대소사를 마음대로 하더라도 신의 간섭을 받지 않게돼 동티등 액운을 막을 수 있다고 굳게 믿어왔다.이에따라 제주에서는 예부터 이사를 하거나 집 수리는 물론 부엌이나 집울타리 수리,심지어는 변소수리나 조상의 묘를 옮기는 일도 이 기간을 택해 왔다. 이같은 풍습에따라 제주에서는 해마다 「신구간」이면 많은 주민들이 이사를 하거나 집안정리등을 해왔고 올해도 역시 마찬가지이다.제주에서는올 「신구간」을 맞아 2만여가구가 이사채비를 마쳐 이사짐센터의 용달차량이 이미 동이났고 한국통신에는 전화를 옮기는 신청이 쇄도해 전화국측이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하는 등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제주 민속학자들은 『신구간은 한꺼번에 이사를 해야하는 등 부정적 요소도 있지만 일정기간을 정해 우리 생활을 정돈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로 삼는 뜻이 있다』며 『제주만의 좋은 송구영신 세시풍속』이라고 말했다.
  • 내일 「애동지」 팥죽시식 “액운설”(세시풍속)

    22일은 일년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 「작은 설」이라 불리며 역귀를 쫓는다는 의미에서 팥죽·팥떡등을 먹는 동지시식을 하고 국물을 문설주등에 뿌리는 풍습이 내려온다.동짓날이 음력 11월초순에 들면 애동지,중순에 들면 중동지,그믐께 들면 노동지라 하는데 애동지에는 오히려 액운이 온다하여 동지시식을 먹지않는 습속이 전해지기도 한다.올동지가 바로 애동지로 팥죽·팥떡등 동지시식을 해먹는 가정은 별로 없을 듯하다. 동지는 북반구를 중심으로 볼때 태양이 가장 남쪽에 이르고 정오 남중고도가 1년중 가장 낮아져 해가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어지는 날. 이날로부터 태양이 다시 하루하루 북으로 올라오는데 옛날에는 태양이 복원한다고 하여 동서양 모두 축일·길일로 쳤다. 크리스마스도 4세기 후반 로마서 성행하던 태양신 숭배의 미드라교 축제일인 동지제에서 연유한다고 전해지기도한다.
  • 전국 공공도서관·중앙박물관·사상연 등 다양한 강좌 개설

    ◎즐거운 겨울방학 뜻깊고 알차게/고전·독서·민속 등 교양프로그램 다채/초중고교·대학생·교사 등 대상 겨울방학에 맞춰 박물관·도서관을 비롯한 각 학술·사회단체에서 각종 교양 프로그램을 활발히 준비하고 있다.프로그램의 내용이 독서지도·고전강좌등 다양하고 기간도 5일에서 석달에 이르는등 갖가지여서 자신에게 알맞는 것을 골라봄직하다.대표적인 프로그램 몇가지를 소개한다. ▷공공도서관 겨울독서교실◁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한 전국의 각급 공공도서관이 새해 1월10일부터 어린이독서교실을 연다.도서관 관계자들이 도서관 이용법,원고지 쓰는 법,올바른 독서법,좋은 책 선택법,독후감 작성법등 독서 및 도서관 이용에 따른 전반적인 사항을 지도한다.각 도서관 사정에 따라 개설시기·기간등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개 국민학생 3∼6학년과 중학생 대상으로 6∼10일 일정이다.이번에 48번째 개설되는 독서지도 프로그램으로 지난 겨울강좌에서는 전국 1백55개 도서관에서 8천8백50명이 수강했다.문의(02)569­5638. ▷어린이·청소년 박물관교실◁ 국립중앙박물관이 국민학생 4∼6학년 4백명,중학생 2백명을 대상으로 개설한다.기간은 국민학생이 새해 1월10∼14일,17∼21일 두차례,중학생이 1월24∼28일등 각 5일씩이다. 전통문화에 대한 강의와 전시실 학습,유적답사,실습등 다양하게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참가비 5천원.문의(02)739­3872. ▷고전강좌◁ 한국사상사연구소(소장 김용옥 전고려대교수)에서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사서를 강의하는「도올서원의 동양학겨울서당」이 있다.일반적인 교양강좌와는 달리 수강자 자격을 엄격히 제한해 희망자는 소속대학·학과·배우려는 목적등을 적은 자기소개서를 보내 입학허가를 받아야 한다.개설기간은 새해 1월10일부터 2월4일까지 주5일 2시간씩이다.등록금 5만원.강의장소 서울 동숭동 성좌소극장건물 4층 도올서원.문의(02)395­09 80 기초한문을 배우려는 사람은 전통문화연구회(02­762­8401)에서 개설한 교양강좌를 수강하는 것이 손쉬울 듯 하다.지난 2일 시작돼 2월 말까지 계속된다. ▷국립민속박물관 청소년민속강좌◁ 고교생을대상으로 13일부터 17일까지 박물관 3층 민속공방에서 열린다.전통적인 관혼상제의 예,족보 및 친족관계,농경세시풍속과 무속신앙·민담·전설등을 전문가들이 강의한다.수강료는 받지 않으며 접수순으로 2백50명만 받는다.문의(02)720­3137. ▷기 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각급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한국인과 문화」를 주제로 한 전통문화강좌를 연다.기간은 새해 1월10∼15일이며 프로그램은 전통문화개론·한국고미술·한국의 전통예술·건축과 조경등에 대한 강의와 창덕궁,충주·중원지역 답사로 구성돼 있다.수강료 5만원.문의(02)266­6938. 이밖에 아람연구원에서 13일부터 새해 2월말까지 3차례로 나누어 개설하는「성경원어 특강」이 있다.국내 대학등의 교과과정에 포함되지 않은 헬라어·히브리어·수메르어등 고대 중근동지방의 언어를 가르친다.문의(03 43)69­3123.
  • 진도 작은마을 이야기「침계리 동지」 탄생

    ◎이동네 출신 박병술씨 주도,15개월만에 결실/1357년 제주계씨 정착하며 마을 형성/부락의 역사·풍속·인명록 등으로 구성 대도시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의 이야기를 한권의 책으로 엮겠다며 이집저집 돌아다니며 「식구들의 이름은 무어냐」「가장의 직업은 무어냐」고 묻고 다니면 아마 수상한 사람으로 여겨 파출소에 신고하기 십상일 것이다.혹은 그에 앞서 대문조차 열어주지않아 물어볼 기회마저 얻지 못할는지도 모른다.그러니 요즘 그런 책이 나왔다고 한다면 이웃의 숫가락·밥그릇 숫자까지 훤히 아는 고향마을의 이야기일수 밖에 없다. 「침계리 동지」가 바로 그런 책이다.전남 진도군 의신면,육지쪽으로 면한 진도의 작은마을 침계리는 시골출신의 도시민들에게는 누구나 고향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 책은 그 침계리의 어제와 오늘을 담은 향토지이다. 최근에는 면지를 낸곳도 있다.그러나 일개 이에서 이처럼 체계적인 향토지를 펴낸 것은 거의 전례가 없다.더구나 침계리는 지난해 말 현재 모두 52가구에 1백51명 밖에 살지않는 작은마을이고 보면동지를 펴낸 마을사람들의 고향에 대한 애정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동지를 펴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박병술씨(63)이다.이 마을 출신으로 이웃 섬의 격도국민학교교장선생님인 그는 「누군가가 우리마을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미래에 대한 밝은 햇불을 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지난해 6월 이일을 시작했다. 이 동지는 마을전경과 오늘날까지 이 마을을 부양한 마을앞 들녘,그리고 마을의 당나무인 뒷솔나무와 마을을 지나 흐르는 침계천등을 담은 화보로 시작된다.내용으로 들어가면 부락의 지리적 위치에서 부터 부락의 역사,주요 세시풍속,마을의 현황과 인명록을 크게 4편으로 나누어 담았다. 이 동지는 5백권이 인쇄되어 동네 모든 가구에 돌려져 소중하게 대우받고 있다. 동지를 쓰고 인쇄비를 부담한 박씨는 『우리세대가 가고나면 그나마 이만한 기록물 조차 남길수 없을 것 같아 아쉬우나마 이 책을 펴냈다』면서 『앞으로 힘이 닿는대로 자료를 더 찾고 고증을 더해 향토역사를 보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수릿날(외언내언)

    TV를 보던 딸 아이가 물었다.『창포가 무엇이에요?』마침 창포의 성분과 향을 첨가했다는 샴푸선전이 나오고 있었다. 순간 당황했으나 「이때다」싶어 40대의 엄마는 어린 시절의 아스라한 기억의 꼬리를 붙잡고 사전까지 들추어 가며 열심히 설명을 했다.「창포과에 속하는 다년초.특이한 향기가 있고 근경은 비후하며 마디가 많은데…」음 이런 설명은 안되겠고 『응,난초나 아이리스하고 닮은 풀인데 말이야 옛날 우리 선조들은 단오날 그 잎과 뿌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았어요.그때는 샴푸도 린스도 없었거든.창포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에 윤기가 나고 잘 빠지지 않는다고 했지.창포물로 머리감고 세수하고 창포뿌리에 수·복의 글자를 새겨 붉은 연지를 칠한 비녀를 머리에 꽂고 붉고 푸른옷을 입기도 했는데 이걸 「단오비음」이라고 해요』 『단오날엔 또 여자들은 그네를 타고 남자들은 씨름을 했지.성춘향이 이도령을 만난 것도 단오날이래요.익모초·쑥등 약초를 뜯어 말리고 햇쑥으로 쑥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이 떡을 수리떡이라고 부른단다.아 참,단오란 말은 원래 중국말이고 우리말로는 수릿날이라고 하지.수리란 위(상)나 높은것(고)을 가리키는 말이야.그리고 또…』단오는 몰라도 서양명절인 밸런타인데이는 기억하는 아이는 모처럼 전통문화교육을 시키려는 엄마의 장황한 설명을 더이상 듣지 않는다. 오늘(24일)은 단오.조선조엔 설·정월보름·추석과 더불어 4대 명절로 지켜졌건만 이제 박제화된 행사나 상품으로서만 존재한다. 정겨운 우리의 세시풍속을 생활속에 되살리는 방법은 없을까? 창포물에 머리감기는 어렵겠지만 「단오선」으로 에너지 절약과 환경보호에 앞장 설 수 는 있을듯 싶다.본격적인 여름을 대비해 부채를 선물하던 아름다운 풍습을 되살려 평소 못 찾아 뵙던 집안 어른들을 부채나 여름과일을 들고 찾아 뵙는다면 아이들도 단오를 쉽게 기억할수 있을 것이다.
  • 강릉 단오제 행사의 백미/강릉부사 영신행렬 축제

    ◎역전∼공설운동장 3㎞ 구간서 펼쳐/횃불놀이·강릉농악·관노가면극 등장 강릉 단오제가 오는 22일 서제로 막이 오른다.동해안에서 가장 큰 향토신사인 강릉단오제는 음력 4월15일 대관령에서 신목을 베는 행사로 시작돼 단오(24일)다음날 소제를 지내고 서낭신을 다시 대관령으로 봉송하기까지 26일동안 이어지는 향토신제로 중요무형문화재 13호로 지정된 강릉지방의 세시풍속이다. 서울신문사와 (주)금성사는 올해 강릉 단오제행사의 백미가 될 강릉부사영신행렬을 오는 22일 공동주최한다. 지역축제의 독창성과 전시민이 화합하는 축제의 장으로 펼치는 강릉부사영신행렬은 조선시대에 강릉부사가 대관령에서 모셔온 국사서낭신을 화개와 취타대,대고,의장대등을 앞세워 맞이하는 화려하고도 장엄한 행렬이다. 영신행렬에는 신목의 길을 밝혀주기 위한 횃불놀이와 강릉농악,관노가면극등이 등장한다. 강릉부사영신행렬은 22일 하오6시30분 역전을 출발해 터미널,교동사거리,옥천오거리,금성로,성내동광장을 지나 공설운동장에 이르는 약3㎞ 구간에서1시간 펼쳐진다. 이번 행사에는 강릉고 학생 2백30여명을 포함해 강릉대 관노가면극팀,국민학교 농악대,남원상고 취타대등 모두 4백67명이 참여하며 말 2필도 동원된다. 축제분위기를 북돋우기 위해 농악대가 선두에 서서 행렬을 선도하고 횃불놀이,영산홍가,화개,관노가면극,취타대,대고,의장대가 뒤따르며 부사행렬이 대미를 장식한다. 횃불놀이는 신목을 맞이하기 위해 강릉지역 주민들이 두편으로 갈라 횃불을 밝힌 채 싸워 이긴 팀이 화개를 앞세우고 신목맞이를 출발하면서 장관을 이룬다. 영산홍가는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토속민요로 대관령신목을 받쳐들고 행진할 때 부르는 노래. 화개란 여러 색깔의 비단을 물고기비늘처럼 연이어 오색찬란하게 만든 뒤 장대끝에 매달아 우산처럼 드리운 것이며 대고는 직경 1.5m의 대형북으로 행렬의 완급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의장대는 정2품인 강릉부사의 권위와 방위를 나타내는 기행렬로 군기및 의장기로 나뉜다. 이번 행렬을 구성·연출한 축제예술(회장 허규)은 무당이 굿을 할 때 타령이나 노랫가락으로 흥겹게 신을 찬양하는 전통제의인 가무오신의 정신적 맥락이 살아 숨쉬도록 구성했다고 밝혔다. 또 강릉지방의 향토민요인 학산영산홍가,강릉아리랑등을 통해 청각·시각적인 요소를 살렸으며,성내동 광장에서는 축제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벤트를 연출,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하는 신명나는 한판으로 꾸몄다고 한다. 강릉단오제는 고대 부족국가의 제천의식이나 부락제의 잔형으로 원형에 가장 가깝게 보존돼 있는 우리나라의 향토신제로 알려져 있다.
  • 「민속적인 삶의 의미」(화제의 책)

    ◎민속속에 담긴뜻 수필형식으로 정리 우리 조상들의 생활을 통해서 전승해온 민속속에 담긴 의미와 기능에 대해 수필형식으로 정리한 민속수필집. 지은이는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로 20여년동안 구비문학과 민속학을 강의해온 경험을 쌓아왔다.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통과의례·세시풍속·속담·옛날이야기 등에 담긴 의미를 되새김질해준다. 예를 들면 「오리고기를 먹으면 손가락·발가락이 붙은 아이를 낳는다」같은 임신부의 금기사항이 들어있다.아이의 첫돌때 하는 돌잡이의 속뜻,「쥐뿔도 모른다」는 속담의 유래,동지때 팥죽과 새알심을 먹는 이유등 우리가 생활속에서 행하는 민속에 대한 글 69편이 포함됐다. 최운식지음 한울 5천5백원.
  • 수원성 축성 197돌“민속잔치”/연날리기·윷놀이 등 6개종목 진행

    수원성 축성 1백97년을 기념하는 대보름민속놀이한마당이 7일 상오 11시부터 수원시 연무대일원에서 펼쳐진다. 수원문화원이 주최해 올해로 8회째를 맞는 이 행사는 수원성을 축성한 정조대왕의 효심을 기억하고 잊혀져가는 고유의 민속놀이와 세시풍속을 계승해 발전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민속놀이한마당은 전국민속연날리기와 윷놀이,제기차기,활쏘기,널뛰기,한복맵시자랑등 6개 종목으로 진행되며 입상자들에게는 상장과 푸짐한 부상이 주어진다.특히 한복맵시자랑은 한복을 바르게 입을줄 알고 한복입은 자태가 유난히 고운 사람을 선정하는 행사로 남녀노소 누구나가 참여할 수있다. 이 행사는 이날 상오 10시 농악대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개회식과 시범경기,그리고 각 종목별 예선 및 결승에 이어 하오 4시 시상식을 겸한 폐회식으로 막을 내린다.참가신청은 수원문화원 사무국 44­2161.
  • 세시풍속·놀이 무대서 재현/이경호,「계수나무…」2월9∼10일 공연

    달의 운행과 이에 순응해 살아가는 선조들의 모습을 통해 새해풍속도를 그린 한국무용이 신년무용계의 첫 장을 장식한다. 신진무용가 이경호씨가 경희대동문들과 함께 2월9∼10일 양일간 동숭동 학전소극장(763­8233)무대에 올리는 「계수나무 한나무 토끼한마리」가 바로 그것. 섣달 그믐밤부터 대보름까지 보름동안의 풍속을 독무 또는 군무로 펼쳐간 이 작품은 널뛰기,쥐불놀이,거세배,활쏘기,물길어오기,돌쌈,달집태우기등 잊혀져가는 세시풍속과 놀이를 무대에서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최근의 한국무용이 지나치게 철학적인 주제에 치중,일반인들의 이해에서 멀어져가는데 비해 이 작품은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통해 관객과의 정서적 교감을 꾀하고 있다. 섣달 그믐밤,설날,12지일,보름전야,대보름등 시간적 순서에 따라 5장으로 나뉘어진다.지난해 「연,연,연」이란 작품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 이씨는 경희대 대학원을 마치고 현재 인천전문대 무용과에서 강사로 재직중이다. 연출은 연극연출가이며 대본작가인 김태수씨가 맡았고 음악은「슬기둥」대표를 지냈던 조광재씨가 만들었다.
  • 올바른 세배법/남­왼손·여­오른손을 위로

    ◎무릎꿇을때 발등이 바닥에 닿아야/아랫사람이 먼저 덕담하는 것 금물 설날아침이면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의 세시풍속.가족·친지들간에 훈훈하고 정겨운 덕담이 오가는 설날을 맞아 세배드리기의 올바른 예법을 청년여성교육원 예절교육실 김복진실장으로부터 들어본다. 원래 우리나라의 예법은 가가례)로 지방·집안에 따라 다르지만 세배는 서울·경기지방의 풍속에 맞춰 평절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자의 경우 오른손이 위로 가도록 양손을 마주잡고 섰다 팔을 양옆으로 자연스럽게 늘어뜨린다.왼발을 발길이의 반정도 뒤로 살짝 빼면서 왼무릎을 꿇고 오른무릎을 세운다.손가락을 가지런히 붙인 상태에서 양손을 꽃잎모양으로 펴서 바닥에 대는 동시에 목이 옷깃에서 떨어지지 않을만큼(15도 정도)허리전체를 굽혀서 절한다.이때 팔꿈치를 구부리지 않아야 단정해 보인다.일어나서 양손을 잡고 가볍게 목례한 후 어른의 정면에서 비껴 앞에 양다리를 사선이 되도록 모아 앉는다.양장을 입었을 때는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절한다. 남자는 왼손이 위로 오도록 두손을 마주잡고 섰다가 자연스럽게 손을 풀고 무릎 꿇고 앉는다.두손을 앞으로 뻗어 엎드렸을때 코정도에 오도록 왼손을 위로 하여 마주잡는다.몸을 일으키면서 두손을 자연스럽게 옆으로 풀고 일어나 목례한 후 다시 앉는다.남자들이 절할때 주의할 점은 무릎을 꿇었을때 발을 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발등이 바닥에 닿도록 눕혀야 엉덩이가 올라오지 않고 자연스런 자세가 된다. 세배가 끝난후 어른으로부터 덕담을 듣는다.덕담은 잘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으로 아랫사람이 절하면서 먼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든지 「건강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어린이들에게는 절값으로 세뱃돈을 주는데 아이의 나이에 맞게 적절하게 주어야 한다.부모들은 세뱃돈이 어린 자녀들에게 큰 액수인만큼 저축을 하거나 제대로 잘 사용하도록 지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아랫 사람이 윗사람으로부터 덕담을 듣거나 세뱃돈을 받았으면 반드시 「감사합니다」라고 답하고 공손한 자세로 물러선다. 가장 웃어른에게 세대별로 세배를 드린 다음 형제·동서 지간에 맞절을 올리고 어린 자녀들이 있는 경우 부부맞절을 하고 자녀들로부터 세배받는 것이 자녀교육에도 좋고 아름다운 우리 풍습이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19)

    ◎유년시절:7/20일 머무른 중강진 혁명사적지로/“단오씨름판서 일본아이 뉘어” 자랑/독립운동가 비밀연락원으로 자처/임강이주시기 1919년 5월 아닌 6월이후 김형직은 일제기록에 의하면 3·1운동때 평북 중강진에서 활약하였다.따라서 그는 3·1운동때보다 훨씬 이전에 이 중강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그는 3·1운동 후에는 일제의 감시를 받게 되어 5월에 대안인 임강으로 이주하였다. 이런 기록을 보면 김형직 일가는 북한이 지금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1919년 초가을에 만경대에서 중강진으로 간 것이 아니고 3·1운동 이후에 갔다.그런데 임강으로 떠난 달이 5월이라는 것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5월 도강설 모순 「무지개 비낀 만경봉」에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1)씨름­김일성은 임강에 있었던 어느날 부친의 혁명사업을 돕기 위해 연락임무를 받고 나루터를 건너 중강진으로 나왔다.이날은 바로 5월 단오날이었다. 명절날이어서 중강진에서는 씨름판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때마침 조선아이들과 일본아이들이 씨름하고 있었다.김일성은 조선아이들이 지고 모욕당하는 것을 보고 참을 수가 없어서 씨름판에 뛰어들었다. 그는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몸집도 큰 일본아이를 조선식 씨름으로 이겼다.일본아이가 이 씨름은 일본식이 아니라고 트집을 잡자 그는 너희들은 너희식대로 하고 조선사람인 나는 조선식으로 하는데 무엇이 잘못이냐 하고 또다시 덤벼드는 일본아이를 보기 좋게 넘겨버렸다… 이 책에서는 김일성이 씨름판에 든것을 1920년의 단오날이라 하고 있다.당시 그는 임강에 있었는데 일부러 「연락임무」를 띠고 중강진으로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5월 단오는 우리 세시풍속에 있어서는 추석·정초에 못지않는 3대명절의 하나다.부모는 자식을 슬하에 두고 집근처에서 놀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필자는 이렇게 추측하며 「감일성평전」에서 김형직 일가는 음력 5월의 단오날에는 중강진에 있었고 그후에 임강으로 이사했다고 기술하였다. 필자의 이러한 추측은 적중하였다.「세기와 더불어」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를 도와 망도봐주고 여인숙에 찾아오는 독립운동자들의 시중도 해주고 중상·중덕 등지를 다니면서 비밀연락도 하였다. 중강진 인상 가운데서 잊혀지지 않는 것은 나보다 몸집이 더 큰 일본아이와 씨름을 하며 그 아이를 배지기로 넘어뜨리던 일이다.나는 그때 조선아이들을 못살게 구는 일본아이가 있으면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일제타도에 집중 객주집 주인은 후환이 두려워서 걱정했지만 아버지는… 내 배짱을 지지해 주었다」 김일성은 여기서 일본아이와 씨름한 것은 김형직이 중강진 여인숙에 있었을 시기였다고 하고 있다.결국 임강에 넘어간 후 맞이한 단오가 아니라 1919년의 단오날 일이었던 것이다. 1919년 음력 5월5일은 양력으로는 6월2일이 된다.김형직 일가는 중강진에서는 여인숙에 살면서 적어도 양력 6월초순까지 이곳에 체재하였다.일본 관헌 기록에서 5월에 김형직이 임강으로 넘어갔다는 것은 음력 5월의 오기였다. 김일성의 중강진 시기란 여인숙에서 20일정도 살던 시기이므로 그가 한 일이라고는 별로 없었을 것인데 현재 중강진은 김일성의 혁명적 사적 투성이다. 이상의 「일화」들을 보면 김일성은 만7세이면서 벌써 자수성가한 혁명가처럼 되어 있다.모든 이야기가 「일제 타도」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어떤지는 둘째 문제이다. 이상 지금까지 어린시절에 관한 북한의 김일성전기 서술내용을 소개하였다.그 내용은 그의 어린시절의 사실을 사실대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정권의 교양방침에 따라 그 어린시절 이야기를 「창작」하고 있는 것이 거의 전부이다. ○정권에 의한 창작 북한 어린이들을 김일성의 의도대로 어떻게 사상개조하는가에 초점을 맞춘 김일성 어린시절 설화는 한국에서 보면 끔찍하기 짝이 없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이야기」로 북한 어린이들은 김일성부자에게 「충성」을 바치게 되고 그들에게 반대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투쟁」하는 심성을 키우게 된다.그들의 「투쟁대상」은 「왜놈」이나 일본군국주의자뿐아니라 미제국주의자,「남조선괴뢰놈들」그리고 「보수반동」과 「종파놈」에게까지 확대되어 있는 것이다. ①「무지개 비낀만경대」148면 이하 ②평전 36면 ③「세기와 더불어 1」55면
  • 국립민속박물관/민족긍지 서린 서민문화메카로(국정탐방)

    ◎내년 2월 새 전시장 개관… 대대적 위상변화 모색/어떻게 달라지나/전래의 생활사 연구·자료기능 확충/보여주는 곳에서 체험적 공간으로 보통사람들의 문화 산실을 표방하는 국립민속박물관이 보통이상의 큰 걸음을 내딛고 있다. 새로운 보금자리로의 이전 개관이 내년 2위로 바짝 다가오는 가운데 최근에는 직제개편에 따라 중앙박물관에서 분리,독립했다.바야흐로 명실상부하게 우리나라를 대표할수 있는 국제수준의 민속박물관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새로운 역사의 장을 펼치는 자리는 경복궁 동쪽 옛 국립중앙박물관 건물.모두 1백10억원을 들여 추진중인 건물 내부개조공사의 공정은 현재 1백% 가까이 이루어져 마무리 손질만을 남겨 놓고있다.옛청사에 보관되어있던 유물은 9월28일부터 신청사로 옮기기 시작해 지난달 24일에는 민속박물관답게 터주신에게 무사히 이사를 끝낸것을 감사하는 고사까지 지냈다. ○최근 직제도 개편 경복궁안 한쪽에 그것도 일제가 지어놓은 낡은 옛청사에서 위풍이 당당한 새청사로 옮긴 것이 외형상의 변화였다면 지난 10월29일 단행된 직제개편에 따라 문화부직속기관으로의 독립은 내용적인 변화였다고 할수있다. ○정신사 중심으로 직제개편에 따라 관장은 4급상당의 학예연구관에서 3급상당의 학예연구관으로 격상됐으며 조직도 관리과·전시과의 2개과에서 관리과·전시운영과·민속연구과등 3개과로 확대 개편됐다.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원이 25명에서 13명의 학예직을 포함한 47명으로 늘어남으로써 연구및 사회교육기능의 확대가 가능해진 것도 내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이종철관장은 『이제 민속박물관의 틀이 갖추어진 만큼 심부름의식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긴 장정을 시작할 것』이라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민속박물관의 변신에 대한 시각은 대체로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첫번째는 지금의 변화가 오래뒤에야 제대로 평가받게될 보이지않는 커다란 치적이라고 반기는 쪽이다.그동안의 박물관정책이 고고미술박물관에만 치우쳤던데 비해 민속박물관의 이같은 위상변화는 물질사중심의 정책에서 정신사쪽으로 옮겨가는 증거로 받아 들여질수 있다는 것이다.따라서 민속박물관만이 가질수있는 전문성과 독창성이 발휘되어 비로소 정상적인 역할수행을 기대할수있는 조직적 정책적 기반이 완성됐다는 점도 높이 평가됐다.두번째는 이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민속박물관의 기능이 아직도 크게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시각이다.오늘날 정치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기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의 하나가 민속박물관이 활발히 기능을 수행하는 것임을 정부나 국민 모두가 아직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다소 불만스런 입장이다. 그러나 얼핏 편차가 큰 것처럼보이는 이 두 시각에서도 「민속박물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공통분모가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이처럼 새 민속박물관이 수행할 역할에 대해서 누구나 큰 기대를 걸고있다. 이에따라 새 민속박물관은 민속에 대한 의미부터 국민들의 마음속에 새롭게 자리잡게 만든다는 것을 당면목표로 삼았다.역사가 대개 왕후장상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 역사의 행간에 민중의 슬기와근면 장엄함이 숨어있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찾는 것이 민속학이고 민속박물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새민속박물관을 고리타분한 고대문화의 창고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문화 생산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위해 새민속박물관은 유형적인 삶의 문화와 함께 정신적인 풍속을 지켜주는 산실로 가꾸기로 했다.이를테면 농경문화의 전시를 통해 「쌀이 생산되기까지는 여든여덟번 손이간다」는 사실을 깨닫게되면 「쌀이란 도저히 훔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울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민족대이동의 설날등 형태가 없는 체험적 문화적 공간까지 포용하는 방안까지 마련해 놓았다. ○미풍양속 등 발굴 이처럼 새민속박물관은 전시기능외에 연구와 자료관으로서의 역할이 크게 강화된다.이에따라 근·현대생활사를 체계적 종합적으로 조사 수집해 전산기록화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또 전통적 미풍양속을 계속적으로 발굴,재현하고 기록화해 영구보존할 방침이다. 이렇게 모아진 생활문화및 문화재에 관한 자료는 대학과 연구소 일반국민을위해 무한봉사 제공함으로써 국립민속박물관이 민족생활문화에 관한한 명실상부한 중심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국립민속박물관 약사 ▲1946년 남산 왜성대자리에 국립민족박물관 개관. ▲1950년 전쟁으로 폐관. ▲1966년 경복궁내 수정전 자리에서 한국민속관으로 출범. ▲1973년 구민속박물관 건물로 이전. ▲1975년 한국민속박물관으로 확장 개관. ▲1979년 국민민속박물관으로 개칭,문화재 관리국에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소속변경. ▲1992년5월28일신청사로사무실이전. ▲1992년10월2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문화부 직속기관으로 독립. ▲1993년2월 이전개관(예정) ◎무엇을 보여주나/선사∼조선시대 서민삶의 모습 재현/서당·회갑연·민속신앙 등 모형 전시/옥외엔 장승·귀틀집·물레방아 설치 문화부산하의 새국립민속박물관은 전시공간 및 연구인력이 늘어난 만큼 전시내용도 크게 확충된다.먼저 민속박물관은 구관의 2천9백60평에 비해 크게 늘어난 1만2천8백50평의 부지를 확보함에 따라 불가능하던 대규모 야외기획전시가 가능해졌다.옥내전시공간은 모두 2천2백24평으로 구관의 6백26평에 비해 4배 가까이 늘어났다.옥내전시공간은 다시 주전시공간과 보조전시공간으로 나뉜다.주전시공간은 3관 15실의 상설전시장과 기획전시가 가능한 특별전시실로 구분시켰다. 보조전시공간에는 국제민속전시실과 영상실을 겸한 강당,민속사랑방등이 포함됐다. 이처럼 전시공간이 확장됨에 따라 전시유물도 2천5백11점에서 4천3백23점으로 크게 늘어나게 된다. 민속박물관은 새 전시관을 ▲진실로 강한 민족문화의 환상적 지평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축적된 공간 구성 ▲삶의 현장이 살아 움직이는 마당으로 만듣다는 기본방향을 설정했다.이에따라 기존의 정적 폐쇄적 전시에서 탈피해 체험적 전시가 될수있도록 디오라마 파노라마 입체음향등 특수전시기법을 적극활용해 역동적 입체적 통시적인 전시가 되도록 했다. 이런 원칙아래 전시장은 한국문화의 과거 현재 미래가 ▲한민족생활사 ▲생활문물과 생산민속 ▲생애의례의 3영역으로 나뉘어 조명된다. 한민족생활사를 담은 전시1관은 선사시대에서부터조선시대까지의 생활사 측면을 역사적으로 다루도록 배려했다. 이 전시관에는 단군신화및 삼국건국신화와 함께 최근 발주된 부안격포제사유적을 재현하는등 한민족의 정신세계를 추적해보는데 중점을 두기도 했다.여기에는 또 가야의 기마인물과 야철공방이 모형으로 재현되고 발해유물이 전시되는 등 민족자존의 회복문제가 비중있게 다루어진다.전시2관은 생산민속과 생활문물로 꾸며진다.이곳에는 우리의 자연환경과 농경문화 생업 세시풍속 수공업 그리고 전통사회의 의·식·주생활을 선보일 계획이다. 생애의례를 주제로한 전시3관은 출생에서부터 상·제례 민간신앙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일생을 체계적으로 전시한다.이에따라 선바위에 아들을 비는 풍습에서부터 출산 의례 돌상 서당 향교 관례 및 혼례 회갑연 상청과 상복 제사와 고사 사당등을 모형으로 꾸민다.또 각 통과의례 사이사이에 아이들의 놀이모습과 과거시험장면 주막 놀이기구 문방구와 책 선유락 한약방 굿청등도 역시 모형으로 만들어져 전시된다. 이밖에 박물관 옥외에는 물레방아와 귀틀집 장승등으로 살아 숨쉬는 서민문화의 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다. 특별전시실에서 열리게 될 개관기념전시는 아직 내용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이다.박물관측은 현재 「잊혀져 가는 과거를 조명해주는 거울로서의 전시」계획을 구상중이다.또 「과거뿐 아니라 미래를 투영해 줄수있는 내용으로 가능하면 보고 느끼고 직접 만져볼수 있는 전시」라는 원칙을 세워놓고 4∼5개의 시안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 것 알기」 교육현장 만들터”/“문화마당 넓히는 계기됐으면”/이수정 문화부장관(인터뷰) 이수정문화부장관은 내년 2월로 다가온 국립민속박물관의 이전 개관을 앞두고 요즘 1주일에 한 두번씩은 꼭 현장을 찾아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이장관은 이 작업이 『침체된 민속박물관의 기능을 정상화한다는 의미와 함께 문화부가 추진하고 있는 「제대로 된 문화공간」확보작업이 성과를 거둔 것이어서 더욱 뜻깊다』고 말한다. 『지금과 같이 높아진 국민들의 문화욕구는 경제 형편이 크게 나아지면서 현실화된 것입니다.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문화예술의 마당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 할 수 있습니다.민속박물관 이전은 그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장관은 그동안 문화공간 자체가 부족했었던데다 국가문화시설은 대부분 위치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남산의 국립극장이나 과천의 현대미술관의 경우 시민들이 쉽게 찾아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더 이상의 기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또 건립이 시급한 자연사박물관은 똑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되겠다는 제 소신이기도 합니다.미군이 떠날 용산기지는 이같은 기간문화시설이 들어설 서울의 마지막 공간인셈입니다.다행히 각 당의 대통령후보들이 모두 이러한 취지에 뜻을 함께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반갑습니다』 이장관은 현재 또 하나의 「제대로 된 문화공간」을 확보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그것은 내년중 완공될 덕수궁 뒤편의 연극 전용극장이다. 『당초 이 땅은 영화진흥공사의 사옥 부지였습니다.그러나 극장을 이곳에 세우고 사옥은 홍릉에 짓도록 했습니다.문화공간은 시민에게 가까이 있어야하지만 사무실은 조금 멀어도 되지 않느냐고 설득했지요』 이장관은 이제 부족한대로 기본적인 문화시설은 어느정도 확보 되고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민속박물관의 이전 개관과 함께 대구와 부여박물관을 신축중이고 김해박물관이 가야유물 중심으로 탈바꿈한다.또 제주박물관도 신축중에 있다. 『그러나 어렵게 세워진 구민회관이나 문예회관이 아직은 문화공간이 아닌 예식장이나 안보교육장으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그럼에도 폭발적으로 증가한 음악인과 극단등은 무대가 없어 아우성입니다.이제는 새롭게 확충된 문화시설을 국민들이 직접 문화를 접할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데도 신경을 써야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이장관은 이를 위해 『국립민속박물관도 현재의 단순한 전시기능에서 연구기능위주로 탈바꿈시켜 국민교육을 위한 중추적인 국가기관으로 키워나가겠다』는 포부를 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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