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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거리마다 환영현수막·깃발… 대회장 인근엔 검은 세단 수백대”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거리마다 환영현수막·깃발… 대회장 인근엔 검은 세단 수백대”

    제3차 조선노동당 대표자회가 열린 28일 북한 평양에서 각종 관련 행사가 펼쳐져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중국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반면 북한 매체는 이날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 총비서로 재추대됐다는 소식 이외에 다른 보도를 전혀 내놓지 않았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당 대표자회 개최를 알리는 현수막과 플래카드, 깃발 등이 평양 전체를 뒤덮은 가운데 도심 주요 거리는 곱게 차려입은 여성들로 가득차 대표자회 성공적 개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평양역과 평양대극장 등 공공시설 주변에서는 다양한 야외공연이 마련돼 근처를 오가던 평양 시민들의 주목을 끌었다. 대회장소로 추정된 만수대 의사당에서 멀지 않은 4·25 문화회관 밖에서는 경찰이 교통을 일부 통제한 가운데 버스 수십대가 주차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인근 인민문화궁전 밖에도 검은색 세단 수백대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신화통신은 또 평양의 주요 거리에는 붉은 색깔의 인공기들과 노동당기, 소형 인공기들이 어우러져 붉은 물결을 이뤘다고 전했다. 이른 아침부터 평양 시민들이 몰려 나와 거리 청소를 하고 도로 주변 가로수를 정비했다. 김일성광장에는 수천명의 학생들이 소형 인공기를 흔들며 각 지역 대표들을 환영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반면 조선중앙TV 등 북한 매체들은 이날 오후 2시 ‘중대 방송’을 통해 김 위원장의 총비서 추대를 전했을 뿐 다른 내용은 함구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밤 늦게 김 위원장의 노동당 총비서 재추대를 축하하는 평양시 청년학생들의 경축무도회가 평양체육관과 개선문 광장 등에서 열렸다고 보도했으나 당 대표자회 진행 관련 보도는 없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韓 “급변 없을 것”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韓 “급변 없을 것”

    북한의 3대 권력세습 움직임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김정은에게 대장을 달아준 것은 후계 공식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면서 “선군정치 체제 속에서 후계 승계의 안정화를 꾀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의 대남 정책 등 남북관계에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체제가 바뀐 것이 아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당 총비서로 다시 추대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3대 세습’이 이뤄진다고 해서 대남 정책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을 것이며, 남북관계에도 당분간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여야 정치권은 북한 독재 체제의 3대 세습 움직임에 대한 우려와 함께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을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한나라당 안형환 대변인은 “왕조국가를 제외하고 독재권력을 3대에 걸쳐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면서 “21세기 세계화·개방화 시대에 한반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정말로 안타깝다.”고 논평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민주당 간사인 김동철 의원은 “현대 민주사회의 눈으로 볼 때 3대 세습이라는 것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우리 정부는 북한 내부의 변동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대북 봉쇄 기조를 바꿔 대화와 교류를 통해 북한 정권과 주민에게 우호적인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김성수·김상연·홍성규기자 sskim@seoul.co.kr
  •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日 “전방위 분석”

    일본 정부는 28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셋째 아들 정은을 인민군 대장으로 임명한 데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간 나오토 총리는 이날 오후 “북한의 내부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에하라 세이지 외무상도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이 김정은에게 대장 칭호를 부여한 것과 관련, “(후계와 관련해) 명확한 의사표현의 하나임에 틀림없다.”면서 “어떤 체제가 확립될지, 북한의 권력구조에 변화가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에하라 외상은 “앞으로 김정은이 어떤 당의 포지션(요직)에 중용되는지를 잘 지켜보고 여러 가지 분석을 깊게 하겠다.”고 말했다. 북한의 새로운 체제 출현이 일본의 득실 관계를 따지는 질문에도 “어떤 포지션에 김정은이 취임하는지가 중요하다.”며 북한을 예의 주시하겠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그는 “핵, 미사일, 일본인 납치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것이다.”고 말했다. 또 6자회담에 대해서는 “북한이 전향적 자세를 약간 보이고 있다.”면서도 한국의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관여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6자회담 재개엔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이런 차원에서 6자 회담을 열기까지 한·미·일의 연대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3대세습 어떻게 가능한가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3대세습 어떻게 가능한가

    예상은 했었지만 막상 눈으로 보니 놀랍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공산사회주의 국가를 막론하고 세계 어떤 나라도 해내지 못한 3대 세습을 북한 김정일 정권은 결국 단행했음이 28일 공식화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떻게 전 세계가 조롱하고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일을 감행할 생각을 했을까. 김정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소련 연방 붕괴 당시 레닌 동상이 허망하게 쓰러지는 것을 목도한 김정일은 후대(後代)의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무엇보다 두려워했을 법하다. 따라서 믿을 사람은 역시 핏줄뿐이라는 생각을 했고,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무리수를 뒀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그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자신에게 권좌를 물려준 결정적 이유가 이번에도 그대로 작동한 셈이다. 절대권력의 속성은 세월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전 세계가 혀를 차는 3대세습을 북한 주민들은 수용할까. 속으로는 불만을 갖는 부류가 없지는 않겠지만 겉으로 조직적인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북한 사회는 그만큼 철저히 통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공산주의 국가였다 하더라도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의 곁불이라도 쬤던 동구권에서는 소련 붕괴 후 독재정권을 향한 민중봉기가 가능했다. 하지만 북한 주민은 유교식 왕조시대의 전통에 외부에서 사회주의가 강제 이식된 공동체여서 자유와 인권의 개념이 약하다. 여기에 김일성 시대부터 체계적으로 가해진 주민들에 대한 세뇌와 총구를 앞세운 철권적 감시 시스템으로 조직적 봉기의 여력이 부재하다는 분석이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북한 주민들은 민중봉기를 조직화할 여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만약 김정일 정권이 무너진다면 남한의 10·26사태와 같은 식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세계가 갈수록 개방되는 추세에서 3대세습이 궁극적으로 성공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아무리 세뇌된 주민이라도 3대세습에는 선뜻 수긍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민들의 열악한 생활고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체제불안이 악화될 소지는 다분하다. 안 그래도 탈북 러시가 점증하고 있는 추세다. 김정일이 여동생 김경희 부부를 중용해 김정은을 옹위하는 구도를 구축한 것은 그만큼 3대세습이 간단치 않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정치국·중앙군사위 거쳐 2012년 상무위원 선출 유력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정치국·중앙군사위 거쳐 2012년 상무위원 선출 유력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셋째 아들 김정은이 27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인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조선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으면서 사실상 후계가 확정됐다. 지난해 김정은을 우상화하는 노래로 알려진 ‘발걸음’ 속에 나온 ‘청년 대장’이 실제 조선인민군 대장이 된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28일 “그동안 직함이 없던 김정은이 매체를 통해 언급되고 공식적인 직위를 받은 것은 처음”이라면서 “후계 구도 공식화 여부는 당 대표자회 결과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20대 청년 김정은이 아무런 직책이 없던 민간인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대장 칭호를 달면서 존재를 드러냈지만 정부가 후계 구도 등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며 예의주시하는 것은 그의 후계 구축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음을 방증한다. 대북 소식통은 “최근까지도 김정은에게 군 직위를 줄 것이라는 첩보가 없었는데 이날 새벽에 전격 발표가 나온 것은 그만큼 다급했고 고심한 흔적을 보여준다.”며 “전날 밤새 토론하다가 김 위원장이 결심한 뒤 공개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노동당 대표자회에 앞서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은 것은 당 대표자회를 통해 직위를 받아 후계자의 길로 들어서기 위한 수순으로 보인다. 특히 당 중앙위원회와 함께 당 중앙군사위원회 선거도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김정은이 정치국뿐 아니라 당 중앙군사위에 진입할 가능성도 있다. 당 중앙군사위는 국방위원회보다는 힘이 약하지만 조명록·김영춘 등이 국방위와 함께 직책을 갖고 있어 당과 군에 함께 발을 디딜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군 칭호를 받은 김정은이 당 대표자회에서 어떤 직함을 갖게 되더라도 외부로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김정은에게 대장 칭호를 준 것은 선군정치 노선을 고수하면서 후계 구축시 필요한 군에서의 영향력, 성과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라면서 “후계를 이으려면 총비서직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때까지 당 활동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중앙위 명단에는 들어가지만 얼굴이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대신 김정은과 함께 대장 칭호를 받은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 남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측근인 최룡해 전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 등의 역할에 관심이 쏠린다.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징검다리 역할을 맡김으로써 김정은의 권력 기반을 만드는 ‘섭정체제’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대장 칭호는 김정은의 우상화 노래인 ‘발걸음’에 나온 ‘청년 대장’을 실제 타이틀로 바꿔 인민들에게 익숙함을 확산시키는 효과가 있다.”며 “칭호가 생겼으니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를 공식 수행하면서 본격적인 후계 수업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력 승계의 첫걸음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김정은의 권력 승계 과정은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은이 이번 당 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등 최고위직까지 올라가지 않고 중앙위 위원이 된 뒤 강성대국 건설을 목표로 한 2012년 상무위원이나 비서국 비서 등으로 공식 선출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1~2년 정도 과도기를 거친 뒤 이르지만 권력 승계 과정을 밟아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뿐 아니라 후계 구축의 후견인이기는 하지만 권력에 뜻을 품고 있는 김경희·장성택 등과의 관계 설정과, 이들보다 훨씬 개혁·개방론자로 알려진 경제라인, 국방위 핵심들과의 조율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대북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38세에 후계자로 공식화되는 등 차근차근 권력 승계 과정을 밟은 것에 비해 김정은은 김 위원장의 건강 악화, 경제난 가중, 권력 암투 가능성 등 불리한 점이 많다.”며 “향후 몇 년간의 과도기가 3대 세습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대장칭호 의미

    김정은은 27일 ‘대장’이란 ‘군사칭호’를 부여받았다. 순수 민간인에게 ‘인민군 대장’ 칭호가 주어진 것은 전례가 없다. 따라서 군의 상위 정책지도기관인 당 중앙군사위원회나 국방위원회로 가기 위한 형식적 절차라는 분석이다. 인민군 장성 계급은 ‘원수-차수-대장-상장(한국군의 중장격)-중장(소장)-소장(준장)’의 6단계로 구분된다. 원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이을설 호위사령관 등 2명, 차수는 조명록 총정치국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등 8명이다. 대장은 30명에 이른다. 20대의 김정은이 대장 직에 오른 것은 엄청난 파격이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20代의 후계자… 北 ‘3대세습 모험’ 시작됐다

    20代의 후계자… 北 ‘3대세습 모험’ 시작됐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셋째 아들 김정은에게 인민군 대장 칭호를 부여했다. 북한 정권의 김일성, 김정일에 이은 김정은 3대 후계구도 구축의 신호탄으로 보인다. 최고 정치권력의 3대 세습은 전 세계 근·현대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가 순조롭게 이행될지, 북한 내부적으로 어떤 변화를 유발할지, 나아가 남북관계는 물론 동북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28일 새벽 “김정일 동지께서 27일 인민군 지휘성원들의 군사칭호를 올려줄데 대한 명령 제0051호를 하달하셨다.”면서 “명령에는 김경희(노동당 경공업부장), 김정은, 최룡해(전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 등 6명에게 대장의 군사칭호를 올려준다고 지적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방송은 오전 6시 보도에서 이들 외 나머지 3명을 현영철(인민군 중장·8군 단장), 최부일(인민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김경옥(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라고 전했다. 김경희 부장·김정은·최룡해 전 비서·김경옥 제1부부장은 모두 민간인으로, 김 위원장이 민간인에게 대장 칭호를 준 것은 처음이다. 또 북한이 매체를 통해 김정은의 이름을 거론하고 공식 직함을 준 것도 처음으로, ‘포스트 김정일’ 시대의 후계를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김정은이 이날 개최된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정위원을 넘어 정치국 상무위원이나 위원, 비서국 비서, 당 중앙군사위 위원 등 고위직에 오를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으로 관측된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 부장과 남편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최측근인 최룡해 전 비서 등이 대장 칭호를 받은 것은 김정은으로의 후계 구도 구축을 위한 친족 지도체제를 구축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북한 권력 엘리트층 재편의 시작으로도 풀이된다. 북한 노동당은 이날 제3차 당대표자회를 열어 김 위원장을 당 총비서로 추대했다고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방송이 전했다. 이들 매체는 오후 “노동당 대표자회는 온 나라 전체 당원과 인민군 장병, 인민의 한결 같은 의사와 염원을 담아 김정일 동지를 조선노동당 총비서로 높이 추대하였음을 내외에 엄숙히 선언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난 1997년 10월8일 당 중앙위원회와 중앙군사위원회 공동 명의 특별보도를 통해 총비서로 추대됐으며, 이번에 재추대된 것이다. 이들 매체는 그러나 김 위원장의 대표자회 참석 여부와 대표자회가 언제까지 열리는지, 전원회의가 열려 김정은이 직함을 받았는지 등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았다. 정부 소식통은 “대표자회가 하루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며 “전원회의 결과를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북한의 후계구도 구축과 관련, “선군정치 체제 속에서 후계 승계의 안정화를 꾀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하고 “북한의 대남 정책 등 남북관계에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김정은에 대내정책 맡겨 주민결속·체제안정 노릴 듯”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김정은에 대내정책 맡겨 주민결속·체제안정 노릴 듯”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7일 셋째아들 김정은에게 인민군 대장이란 공식 직함을 부여함으로써, 후계구도가 공식화됐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번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당 정치국 상무위원이나 위원, 비서국 비서 등 당 고위직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출신인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 소장은 “북한 체제상 후계자는 노동당과 군을 쥐고 통솔해야 하기 때문에 (후계자는) 당과 군에서 합당한 최고의 직책을 부여받아야 한다.”면서 “김정은이 인민군 대장 직을 맡은 것은 그가 당 대표자회에서 당 정치국과 당 중앙군사위 위원으로 선출되는 것을 예고하며 이는 김정은의 후계 공식화를 선언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 소장은 또 “김 위원장의 여동생이자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부인인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과 장 부위원장의 측근인 최룡해 전 황해북도 당책임비서를 인민군 대장으로 임명한 것은 김정은 후계구도의 후견인으로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한 조치”라면서도 “특히 김정은 후계과정에서 권력이 부상한 장성택 부위원장을 견제하고, 김일성 혈통의 권력 세습을 정당화하는 측면에서 김경희를 인민군 대장으로 임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도 “김정은에게 인민군 대장이라는 칭호가 수여된 것은 북한이 선군정치, 즉 인민군이 혁명의 주체가 돼 사회주의 혁명을 완성하고 2012년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의미와 공개적으로 김정은에게 공식 직함을 부여, 후계자 공식화를 예고한 측면이 크다.”고 했다. 특히 “이번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에게 당 중앙위원회 위원직을 부여하고, 29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개최해 김정은에게 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 비서국 조직담당비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등 3가지 직책을 부여해 김정은이 후계자로 전면에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 교수는 이어 “김정은과 함께 인민군 대장 칭호를 부여받은 김경희는 김 위원장과 김정은의 교량 역할, 최룡해 전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는 당과 군과의 교량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 지명되더라도 향후 북한의 대내외 정책 방향이 바뀔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 등장하더라도 당장 북한의 대내외 정책 변화는 없을 것”이라면서 “대내 정책은 김정은에게 맡겨 주민 결속 등을 노리고, 김정일은 대남·북미 정책 등 대외정책을 총괄하면서 당장 큰 변화를 도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김정은에게 첫 공식직함으로 인민군 대장을 부여한 것도 북한 체제가 워낙 군사중심이기 때문”이라면서 “김정은이 나이도 어리고 군사 경력도 전혀 없지만 군 관련 직책을 맡겨 주민들에게 후계자로서 군을 통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음을 인식시키기 위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김정은이 후계자로서 공식 출발선에 서게 되더라도 북한의 대내적 정책 변화가 크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김정은이 당대표자회 등을 통해 당 조직 담당 비서나 정치국 상무위원 등 당 내 인사와 조직 부분의 직함을 맡음으로써 활동 범위를 넓힐 것이며 당분간은 김정은 후계 체제의 안정화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베일에 싸인 김정은 누구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베일에 싸인 김정은 누구

    김정은은 김정일의 성격과 외모를 쏙 빼닮아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다. 야심이 강하고 저돌적인 성격으로 알려진다. 이복형 정남에 대해 암살을 기도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성품이 포악하고 잔인하다는 얘기도 있다. 김정은은 당초 1983년 1월8일생으로 알려졌지만 지난해 중반부터 북한 당국은 1982년생이라는 말을 은근히 퍼뜨려 왔다. 할아버지 김일성(1912년생)의 출생 100주년인 2012년에 김정일이 70세(1942년생)가 되고 김정은은 30세가 된다는 북한 특유의 ‘끝자리 맞추기’ 식 우상화 논리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28일 “김정은의 진짜 나이는 1984년생이라는 정보도 있다.”고 했다. 김정은은 형 김정남이 2001년 디즈니랜드를 가려다 일본에서 위조 여권으로 붙잡힌 사건 등으로 김정일의 눈밖에 나면서 후계자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둘째 형 김정철은 록 콘서트에 자주 가는 등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어 김정일의 인정을 못 받았다. 김정은은 어머니 고영희의 관저가 있는 평북 창성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엔 두 형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98년 형 정철과 함께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로 유학, 2000년까지 공부했다. 스위스에서 김정은은 ‘자본주의에 물들면 안 된다.’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학교와 집을 오가며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지만 저택 안에 음악단원들을 상주시키다시피 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다. 미성년자 시절부터 술·담배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평양으로 돌아온 김정은은 2002~2007년 군 간부 양성기관인 김일성군사종합대 특설반에서 공부했고 2009년 후계자로 낙점된 것으로 알려진다. 10년간 김정일의 요리사를 지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자서전에서 “김정은이 악수할 때 험악한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이 녀석은 증오스러운 일본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듯한 왕자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기술했다. 또 “김정은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특히 농구를 좋아했다. 미국 프로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맨의 팬으로 항상 로드맨의 등번호가 새겨진 시카고 불스 티셔츠를 입고 농구를 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영화광으로 알려진다. 키는 175㎝라는 얘기도 있고 168㎝라는 설도 있다. 몸무게가 90㎏을 넘어 20대인데도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세계 장기 독재자들] 北 현대사 첫 3代세습 착수…이집트·카자흐도 대물림 수순

    [세계 장기 독재자들] 北 현대사 첫 3代세습 착수…이집트·카자흐도 대물림 수순

    28일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윤곽을 드러낼 김정일 후계체제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 것인지가 관심의 핵심이다. 민주 발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서 부자나 형제가 권력을 이어받는 사례는 적지 않다. 그러나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권력의 3대 세습은 근대 역사에서 유례가 없다.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를 계기로 지구촌 독재권력의 실상을 긴급 점검한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7·8월호와 미국 중앙정보국(CIA) 팩트북을 바탕으로 10년 이상 장기집권 중인 독재자 22명과 장기독재자 자리를 세습한 독재자 3명 등 모두 25명의 면면과 유형을 추적했다. 세습은 전·현직 독재자 집권기간을 합산했다. 장기 집권하는 독재자들을 권력쟁취 과정을 기준으로 보면 먼저 옛 소련에서 분리독립한 4개국과 과거 김일성 국가주석이 통치하던 북한에서 보듯 ‘건국의 아버지’라는 정통성에 기대어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혁명이나 쿠데타를 통해 기존 체제를 뒤엎고 권좌를 차지한 경우도 있다. 아프리카는 대부분 여기에 해당한다. 독재자 중에서도 가장 퇴행적인 경우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독재자가 된 경우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46년간 ‘건국의 아버지’로서 통치하던 아버지 김일성 국가주석이 사망한 뒤 16년째 북한을 지배하고 있다. 두 사람을 합하면 집권기간이 무려 62년이나 된다.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은이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후계자가 될 경우 3대 세습이라는 현대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북한과 혈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역시 아버지였던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의 뒤를 이었다. 쿠데타 성공 이후 29년간 권력을 갖고 있던 아버지가 2000년 사망한 뒤 아들 바샤르는 국민투표에서 97.2% 찬성으로 대통령이 됐다. 2007년에도 97.6% 찬성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과거 한국의 군사독재정권에서나 보던 득표율을 대내외에 자랑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북한과 시리아뿐이라는 비아냥을 받는다.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은 대통령이던 부친 게이다르 알리예프가 숨진 뒤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올랐지만 대규모 부정선거란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소련공산당 정치국원 겸 소련 제1부총리를 지냈던 게이다르는 아제르바이잔이 옛소련에서 분리독립한 뒤 권력을 잡았다. 그의 아들 일함은 국영석유회사 부사장으로서 1994년 서방 에너지기업들과 석유개발 계약을 성사시키며 존재감을 드러낸 이후 국회의원과 총리 등을 거치며 꾸준히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카스피해에 위치한 전략적 입지와 석유자원 등을 바탕으로 2006년에는 미국을 방문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도 했다. 쿠바는 조금 특이한 경우다. 전임자인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과 라울 카스트로 현 의장 모두 바티스타 친미 군사정권을 몰아낸 혁명지도자였다. 동생 라울은 형 피델이 집권한 49년 동안 국방장관 등을 거치며 정권의 한 축을 담당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집권한 사람’으로 기네스북에까지 오른 형 피델이 2008년 물러난 뒤 자리를 이어받은 동생 라울 의장은 현재 경제개혁조치를 연달아 발표하는 등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라울 의장은 지금도 국가평의회 회의장에 형의 자리를 비워놓고 자기는 두 번째 자리에 앉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때 한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아프리카 대통령은 단연 가봉의 ‘봉고’였다. 1975년과 1984년, 1996년, 2007년 등 무려 네 차례나 한국을 방문했다. 2003년 부성(父姓)을 의무적으로 덧붙여 쓰게 하는 민법 통과 이후 봉고온딤바로 성을 바꿨다. 지난해 그가 사망한 뒤 아들 알리 벤 봉고온딤바는 41.7%의 득표로 대통령 자리를 이어받았다. 장기집권 중인 독재자 가운데 세습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차남 사이프 알 이슬람 무아마르 알카다피는 일곱 아들 가운데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차남으로 후계수업 중인 차남 가말도 내년 대선이 후계 여부를 가릴 분수령이 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카자흐스탄을 20년째 통치 중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맏딸 다리가 나자르바예프는 오는 2012년 대선에서 대권을 이어받을 후보로 꼽힌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씨줄날줄] 백두산 폭발/김성호 논설위원

    백두산은 ‘열점(熱點)화산’이란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다. 많은 화산들이 판(板·plate)과 판이 만나는 경계에 선 것과는 달리 산 자체가 판의 내부에 자리잡았다. 당연히 폭발력과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전문가들은 10세기 폭발 당시 분출물의 양이 지난 4월 유럽을 공황상태에 빠뜨린 아이슬란드 화산의 1000배에 달했다고 본다. 지구상에서 발생한 화산 피해 중 가장 큰 규모다. 화산재가 1500㎞ 떨어진 일본 홋카이도에서까지 발견됐다니 동북아 전역이 영향권인 셈이다. 전문가들이 제기해 온 백두산 폭발 임박설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천지를 비롯해 주변에 번지는 전조 때문이다. 2002년 이후 지진이 10배 이상 잦아지는가 하면 주변지형이 매년 3㎜씩 높아지고 화산가스 방출이 감지된다. 폭발시기의 주장도 2012년, 2014∼15년 등 코앞이다. 폭발설 때문인지 백두산을 찾는 관광객도 부쩍 늘었단다. 어떤 전문가는 ‘하늘에서 고동소리가 들렸다.’는 ‘고려세가’의 정종 원년(946년) 기록이며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났다.’는 ‘일본략기(947년)’의 관련사료를 들춰 경고 수위를 높여간다. 전문가들의 거듭된 경고에도 관련국들의 대비 움직임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중국만 하더라도 과학적 신빙성이 없다며 폭발 임박설을 일축한다. 대신 비행장을 설립하고 화산지역 내에 원자력 발전소를 세우려는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시 3대 세습을 앞두고 만주지역 철도여행을 하면서도 백두산 폭발엔 관심이 없는 듯하다. 한국도 폭발설을 일축하다 지난 6월에야 조사에 착수한 형편이다. 지진에 민감한 일본이 그나마 앞섰지만 접근의 한계 탓에 난감한 입장이기는 마찬가지다. 화산 폭발로 최후를 맞은 역사의 기록은 적지 않다. 79년 베수비오 화산은 로마 폼페이를 매몰시켰고 1783년 아이슬란드 라키화산 폭발 후 몰아닥친 기상이변과 대기근은 프랑스혁명의 원인이 됐다고 한다. 발해 멸망의 연원을 백두산 화산폭발에 두는 학설도 고개를 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백두산 화산이 다시 폭발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낳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제 공개된 소방방재청의 조사자료도 전문가들이 주장해 온 분출 규모와 피해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섬뜩하다. 늦었지만 백두산 폭발의 가능성 인정과 피해 실태 조사가 반갑다. 북한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의 그 어느 나라도 지금 눈앞의 이익에 머물 때가 아닐 터인데….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일본 정신 ‘사무라이’를 해부하다

    구마모토 성(城)은 나고야 성, 오사카 성과 함께 일본 3대 명성 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일본의 대표적 명소다. 이 구마모토 성에서 1877년 2월21일 오후 1시15분 총성이 울린다. 메이지 정부에 반기를 들고 도쿄로 진격하던 가고시마 현 사쓰마번(薩摩藩)의 사무라이 부대를 향해 정부군이 발포한 것. 일본 역사에서 ‘세이난(西南) 전쟁’으로, 서구의 역사에서는 ‘사쓰마 반란’으로 기록된 사무라이 최후의 전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사무라이 부대를 이끈 지휘관은 사이고 다카모리.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 시대를 무너뜨리고 천황 중심의 왕정복고를 이룩한 메이지 유신의 일등공신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이고는 구마모토 공성전(攻城戰)에서 자신의 ‘지분’이 적지 않은 정부군에 패하고 만다. 겨우 몇백명의 사무라이들과 함께 정부군의 포위망을 뚫고 가고시마로 돌아온 사이고는 그러나 결국 ‘할복’으로 세상을 마감한다. 그의 죽음과 함께 일본을 호령했던 사무라이 시대도 막을 내린다. ‘사무라이’(스티븐 턴불 지음, 남정우 옮김, 플래닛 미디어 펴냄)는 이처럼 사무라이의 기원과 역사를 되짚으면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인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사무라이 정신을 탐색한 책이다. 다소 미화되고 과장된 사무라이에 대한 평가도 낱낱이 해부한다. 책에 따르면 ‘시중드는 자’(侍)라는 뜻의 사무라이들이 처음 등장한 건 10세기 무렵이다. 처음에는 수도를 호위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을 지칭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이묘(大名)라 불리는 각 지방의 영주를 호위하는 무사를 이르는 말이 됐다. 이후 사무라이는 지극히 귀족적이고 세습적인 특성을 갖게 된다. 이들 중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물들이 포함돼 있다. 재미있는 것은 최초의 사무라이가 기마궁수였다는 사실. 오늘날 일본도로 상징되는 사무라이의 이미지와 거리가 있는 대목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전국시대(戰國時代)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아시가루(足輕), 즉 보병 출신이었다고 책은 전한다. “반드시 죽는다는 생각을 날마다 되새겨야 한다. 매일 화살과 조총, 창과 칼에 갈가리 찢기고/…/또 수천 길의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거나, 질병이나 할복 등으로 죽을 때의 심경을 상상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죽어 두는 것이다.” 책이 인용한 일본 고전 ‘하가쿠레’에 실린 사무라이의 죽음에 관한 글이다. 오싹하지 않은가. 이것이 ‘이웃’ 일본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니 말이다. 1만 98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김정일 후계자 자리, 여동생 김경희가 노릴 수도”

    “김정일 후계자 자리, 여동생 김경희가 노릴 수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 노동당 경공업부장이 김 위원장의 후계자 자리를 노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고이케 유리코 전 일본 방위상은 ‘준비중인 김정일의 여동생’이라는 제목의 언론 기고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관련 글은 지난 16일자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실렸다. 고이케 전 방위상은 “김 위원장은 김경희를 권력세습의 관리인으로 지명했을 수 있지만 김경희는 스스로 후계자가 되려는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6월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알려진 리제강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교통사고 사망 사건을 근거로 들었다. 고이케 전 방위상은 “당시 이 사건에 김경희가 연루돼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며 “이는 김경희가 김 위원장 사후에 권력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암시한다.”고 설명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사설] 北 비축 군량미 100만 t 사실이라면…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그제 “북한이 전쟁 비축미 100만t을 보유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쌀 100만t은 북한 인구 2300만명의 3개월치 식량이다. 북한이 식량난과 수해에도 대규모 군량미를 비축하고 있다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어제 이명박 정부 들어 민간단체 차원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쌀 203t 지원이 시작됐고, 대규모 대북 쌀 지원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집권당의 원내대표가 근거 없이 이런 중대 발언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세한 것은 밝힐 수 없고 근거가 있으니 얘기한 것”이라고만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쌀을 지원 받으면 군량미로 비축하고 기존의 비축 쌀을 푸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정부는 현재 북한이 군부 전용 ‘2호창고’ 여러 곳에 군량미를 분산, 보관 중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우선 발언의 중대성에 비춰 볼 때 진위 여부가 가려져야 할 것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북한 군량미의 규모에 대해 한번도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다. 김 대표는 국가정보원을 통해 군량미를 비롯한 현 북한 내부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명확한 근거를 대는 것이 필요하다. 통일부라도 공식적으로 북한 실태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최근 대한적십자사가 북한의 수해 지원 명목으로 쌀 5000t을 보내기로 한 결정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납득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북한이 저렇게 많은 쌀을 비축하고 있다면 배 곯는 북한 주민들에게 먼저 군량미를 푸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양의 군량미는 결국 대북 식량 지원이 정작 북한 주민들에게는 혜택이 가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북한은 굶주리는 주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든지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야욕을 버리지 않고 군량미를 비축하고 있는 것이다. 김 대표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무리 쌀 재고 처리가 고민이 된다 하더라도 ‘통 큰’ 대북 지원은 안 된다. 사실 지난 정권 10년간 무분별한 대북지원 덕분에 북한은 우리가 보낸 쌀 240만t 대부분을 군량미로 전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우리의 쌀이 3대 세습을 위해 중국 방문길에 오른 김정일 부자의 배만 채워주고, 그들의 세습정치를 지속시켜 주는 기반이 된다면 남북관계의 진정한 진전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 [서울광장] 눈물잔치로 끝나선 안될 이산가족 상봉

    [서울광장] 눈물잔치로 끝나선 안될 이산가족 상봉

    아버지와 형제들을 북에 두고 1996년 탈북한 L씨의 얘기다. 가을이면 해마다 이북5도민 체육대회가 열린다. 여기서 고향사람을 만나면 반갑기 그지없지만,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80·90대 실향민들을 보노라면 절로 눈시울이 붉어진단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가요의 한 소절처럼 말이다. 며칠 새 탈북자 몇 분과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이들은 북측이 올 추석을 앞두고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한 의도에 대해 하나같이 “남측의 지원을 유도하려는 수순”이라고 입을 모았다. 탈북자 출신의 세계북한연구센터 안찬일 박사는 “(금강산 상봉 잔치로)외화벌이 수단인 금강산관광을 재개하려는 의도”라고 추측했다. 북한당국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이 가을에 또다시 ‘눈물 바다’가 펼쳐질 참이다. 이산가족의 상봉 장면은 지난 1985년 첫 고향방문단을 교환한 이래 언제나 온 겨레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무대였다. 한(恨)은 신바람과 함께 한민족의 독특한 정서를 나타내는 어휘가 아닌가. 그러나 한 차례 눈물잔치로 이산의 한을 전부 ‘카타르시스’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혈육이나 부부 간 반세기 넘는 생이별 끝의 짧은 재회가 다시 기약없는 이별로 이어진다면 이보다 더 참혹한 트라우마가 어디 있겠나. 이산가족들이 상봉 때마다, 떠나는 피붙이가 버스 차창 밖으로 내민 손을 차마 놓치 못하던 장면을 떠올려 보라. 아마 그들 모두는 이제 이승에선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으로 온몸을 떨었을 것이다. 까닭에 이산가족 문제는 가장 인도적이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북한당국이 유감스럽게도 게임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북한은 언제나 뭔가 반대급부를 줘야만 시혜를 베풀듯이 이산가족 상봉 ‘이벤트’에 응한다는 차원에서다. 여기엔 세습체제의 안위에 대한 북한지도부의 두려움이 깔려 있다. 강성대국이나 지상낙원의 허구성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될 것을 저어한다는 말이다. 더욱 비극적인 일은 그나마 그런 게임을 할 시간조차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탈북자 L씨는 이북5도민 행사 때마다 줄어드는 실향민과 늘어나는 탈북자로 역비례하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착잡해진다고 한다. 통칭 일천만 이산가족이라지만 1988년 이후 상봉신청자 12만 8000여명 중 4만 4000여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이 중 70세 이상이 6만여명이고, 매년 1000명씩 상봉해도 66년이 걸린다. 결국 상봉을 상시화·정례화해 제도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이산의 아픔을 달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이산가족 문제는 이론상 생사확인-서신교환-상봉-재결합이란 4단계를 거쳐 완전 해결된다. 재결합이야 통일에 버금가는 숙제지만, 3단계까진 남북 양쪽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능한 일이다. 금강산면회소 등 이를 위한 인프라도 어느 정도 깔려 있다. 문제는 실행의 일차적 열쇠를 북측이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측은 예나 지금이나 그들의 필요에 따라 이산가족 카드를 빼어들 뿐이다. 인륜에 어긋나는 짓이지만, 그런 태도는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3대 세습이 이뤄진 이후엔 달라질까? 김일성과 김정일이 못하던 일을 허약한 리더십의 김정은이 하기는 더욱 어려울 듯싶다. 그래서 이산의 한을 풀고 또다른 민족정서인 신바람을 일으키는 일도 결국엔 우리의 몫이다. 북에 비해 가진 게 많은 우리라도 천륜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 아마 북측은 우리 측의 지원을 “3대 세습에 대한 (남조선 인민들의)축하”라고 강변하는 구태를 연출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북이 내민 카드가 야만적이라 할지라도 일정부분 전향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반대급부를 쥐여주더라도 담대하게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상시화를 제안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통독 전 서독이 동독의 정치범 석방이나 가족 간 상호 방문을 위해 상당한 대가를 지불한 사례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kby7@seoul.co.kr
  • [씨줄날줄] ‘위수동’ vs ‘친지동’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우리 사회에서 ‘위수동’, ‘친지동’이란 말이 자주 입에 오르내렸던 적이 있었다. 주사파들이 운동권 헤게모니를 쥔 1980년대 후반 무렵이다. ‘위수동’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줄인 말이고, ‘친지동’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축약어다. 줄이기 전엔 김 부자에 대한 북측의 찬양의 뜻이 담겼을 게다. 반면 줄임말들은 북측의 우상화 놀음을 추종하는 남쪽 주사파를 겨냥한다. 그런 개인숭배 동조자에 대한 비아냥이란 말이다. ‘위수동’의 주인공이 고 김일성 주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바뀌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제 ‘미국의 소리(VOA)’는 최근 방북했던 기독교선교단체 ‘오픈 도어즈’ 관계자의 말을 인용, “방북 기간 중 관찰해 봤더니, 과거 김일성을 가리켰던 ‘위대한 수령’이란 호칭을 김정일에게 썼다.”고 보도했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북한 주민과 안내원들이 김일성은 ‘위대한 수령’으로, 김정일은 ‘친애하는 지도자’로 구분해 호칭했다고 전제하면서다. 북한 당대표자회의 개최 여부가 주목되는 가운데 이 보도가 나와 관심을 끈다. 3대 세습 정지작업의 수위를 짐작하게 하는 까닭이다. 보도대로라면 ‘친애하는 지도자’란 호칭은 이제 3대 후계자 김정은의 몫임을 시사한다. 김일성 주석을 ‘영원한 주석’으로 바꿔 불렀다는 보도도 세습의 진전 징후다. 북한은 1994년 김 주석이 사망한 후 1998년 헌법개정으로 주석직을 폐지한 바 있다. 프로야구 대스타의 등번호처럼 영구결번으로 남겨놓았던 주석직을 김일성에게 다시 ‘헌정’한 꼴이다. 대신 김정일을 ‘위대한 수령’으로, 김정은을 ‘친애하는 지도자’로 한 단계씩 올려 세습의 정통성을 강변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호칭들은 모국어를 오염시키는 낯간지러운 헌사일 뿐이지만, 그 이상의 안타까운 정치적 함의도 담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체제가 단시일 내에 개혁·개방이란 세계문명사의 큰 흐름를 타기 어렵다는 징표라는 점이다. 권력의 혈연적 승계는 봉건성의 강화로, 시대착오일 뿐이다. 러시아처럼 시장경제로의 대변화와도,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로의 진화와도 무관하다는 얘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3대 권력세습이 어떤 형태로, 언제쯤 완결될지를 점치기란 어렵다. 왕정이 아닌 ‘공화국(共和國)’에선 유례가 없는 탓이다. 분명한 것은 세습 성공이 곧 체제의 안착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북 지도부는 개혁·개방만이 고사 직전의 체제를 살리는 외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kby7@seoul.co.kr
  • “김정은 어떤사람인지 몰라, 3대세습은 북한내부 문제”

    “김정은 어떤사람인지 몰라, 3대세습은 북한내부 문제”

    이명박 대통령이 10일 러시아 TV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김정은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적인 언급을 했다. 김정은이 권력세습을 할 경우 ‘카운터파트(맞상대)’로 만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이 대통령은 “차세대 지도자가 됐다고 해서 카운터파트가 되는 것은 아니고….”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김정은은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사실상 대화상대가 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대통령은 또 “(김정은에 대해서는) 거의 잘 안 알려져 있어 잘 모르며, (TV)화면에 보니까 사진도 아주 어릴 때 사진이라서 현재 어떤 모습인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3대 세습과 관련해서는 “김일성에서부터 김정일 위원장, 그 다음 3세대 세습이 되겠지만, 세습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북한 내의 사정이기 때문에 우리는 뭐라고 언급할 수 없고 또 잘 알지 못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제2의 개성공단’을 조성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은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해빙무드에 접어들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역시 “북한이 천안함 사태에 대해서 먼저 사죄해야 한다.”는 단서가 있지만, 북한과 평화관계를 맺고 이후 경제협력을 통해 관계 정상화를 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이 ‘통일세’에 대해 설명하면서 “북한이 어느날 붕괴돼 통일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도 “통일세가 북한의 급변사태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일부의 비판을 일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또 한·러 간 핵심 경제현안인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반도 종단철도의 연결사업에 대해서는 “북한을 통과해야 하는데 아마 북한도 얼마 있지 않아서 서로 이해가 맞기 때문에 동의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앞서 열린 이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청와대와 크렘린의 외교안보 관계자 간 수시전략 대화 채널을 구축하기로 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특히 북한의 미사일 개발과 관련,“러시아도 우려하고 있다.”고 밝힌 뒤 양국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또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정상회의에서 한 세션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고,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흔쾌히 수락했다. 야로슬라블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붉은 어린왕자의 등극”

    “붉은 어린왕자의 등극”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가 6일(현지시간) ‘건강 악화된 김정일, 붉은 어린 왕자 등극 준비’라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를 통해 북한 권력 이양 작업을 분석했다. 이 기사는 북한 조선노동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을 정권의 전면에 세우기 위한 당대표자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하고 “올해 27세인 김정은이 공산당 역사상 전례가 없는 상황에 도전하고 있는데 이는 3대에 걸쳐 한 가족이 한 국가의 최고 권력을 잡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며칠 전 북한군이 국경지대가 아닌 평양으로 이동하는 의문스러운 움직임을 미국 정찰위성이 포착했을 정도로 북한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면서 “특히 비밀에 싸여 있는 김정은을 찬양하는 ‘발걸음’이라는 새로운 노래가 다시 울려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인민대학 시인훙 교수는 “김정은이 이번에 공산당 정치국원 직책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베이징 공산당 당교 장량위 교수는 “북한에서 실제 권력과 직위는 상관이 없기 때문에 김정은이 직위를 얻지 못하더라도 후계절차에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이영선 경제프리즘] 통일정책의 중도실용주의

    [이영선 경제프리즘] 통일정책의 중도실용주의

    천안함 침몰 이후 한·미 공조를 강화한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세를 만들어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더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 국가주석으로부터 후속 세대에 대한 지원을 약속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은 오는 것일까? 미국의 대역사학자이며 외교가였던 라이샤워 교수는 한반도가 독일보다 먼저 통일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독일을 둘러싼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데 비해 한반도의 주변국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그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의 오류는 주변국의 이해관계에만 주목한 데서 비롯되었다. 독일과 한반도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의식과 태도를 비교했어야 올바른 예측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독일 통일의 본질은 무엇인가? 흔히 독일 통일을 흡수통일로 규정한다. 과연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한 것인가? 독일 통일의 직접적 기폭제는 동독 주민들의 움직임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동독주민들이 투표를 통해 동독을 서독에 통합하자는 국민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물론 통일 후 동독에는 서독의 법과 제도가 도입되었다. 피상적으로 보면 서독의 법과 제도가 동독을 흡수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반대로 동독주민이 서독의 제도와 법을 요구한 것이다. 동·서독 사이의 국경이 허물어지자 동독인들은 “서독이 돈을 보내지 않으면 우리가 서독으로 넘어간다.”라고 소리쳤다. 일시적으로 동독 사람들이 서독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서독이 동독인들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돈을 보내자 대부분의 동독인들은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동독인들이 동독에 머물면서 서독과 대등한 생활수준을 누리게 하는 데 필요했던 것이 바로 독일의 통일비용이다. 서독은 통일 이후 매년 국민소득의 5% 정도를 통일비용으로 동독에 보냄으로써 지금은 평균적으로 동독인의 생활수준이 서독인의 80% 이상에 도달하게 되었다. 한반도는 어떻게 통일될 수 있을까? 북한주민들이 동독과 같은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지금은 상상할 수 없다. 그렇다면 북한 권력층의 내분에 의해 통치체제가 붕괴되는 급변사태가 통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북한의 권력승계 시에 급변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미국 정보당국이 내비친 것처럼 북한 내부의 급변사태는 어떤 형태이든 중국의 개입을 불러올 것이다. 이 경우 남한의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 노력은 남북한 간뿐 아니라 세계 초강대국 간의 충돌을 야기할 것이다. 중국은 결코 남한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을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반도에서의 정세 불안정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중국이 북한의 3대 세습을 눈감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통일을 포기해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길고도 먼 여정이지만 평화적 통일의 길을 준비하고 또 헤쳐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중국과 타이완 간 관계발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과 타이완 사이에는 이제 군사안보상의 문제는 제기되지 않는다. 양국 간 ‘경제협력기본협정’을 체결하는 등 물적·인적 교류가 크게 확대되고 있다. 국가 간에 통일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실질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정부는 중도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통일정책에 관한 한 중도실용주의가 보이지 아니한다. 금강산 관광객의 불상사와 천안함 사건으로 정부가 택할 수 있는 정책의 폭이 좁아진 것은 사실이나 통일에 대한 비전이 있다면 장기적이고 합리적인 통일정책은 유지해 가야 한다. 국가의 안보는 철저히 지키되 상업적인 교류와 인도적 지원은 확대하는 것이 옳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쉽사리 닫지 못한 점에 유의해야 한다. 동독이 서독을 불러들인 것처럼 북한주민이 남한을 초청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북한에 대한 과도한 지원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을 무시한 결과 남한에서의 통일에 대한 의견 분열을 초래하였다. 이제 이명박 정부는 통일에 대한 중도 실용주의적 접근방법을 표방하여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통일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그것이 통일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 [사설] 우리는 北 김정은 연구 얼마나 돼있나

    북한이 9월 상순 개최를 예고한 당대표자회가 임박했다. 44년 만에 개최되는 만큼 정권의 향배를 좌우할 중대한 결정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까지 징후로 봐선 후계구도를 가시화하는 선택이 이뤄질 공산이 크다. 세계 문명사의 큰 흐름을 역류하는 3대 세습이 북한정권의 미래를 보장할 순 없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에 대한 철저한 연구로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에 대비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북한이란 폐쇄회로 사회에서 실제로 무엇이 이뤄질지 예단하기란 어렵다. 다만 최근 정황으로 보건대 3대 세습을 기정사실화하는 조치를 취할 것으로 점쳐진다. 물론 당기관지인 노동신문은 당대표자회를 앞두고 중국의 경제발전을 칭송하는 사설을 내보내긴 했다. 그러면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론을 중국의 도약 원동력으로 꼽았다. 하지만 북한당국이 덩의 개혁·개방 노선에 깔린 실사구시 사상이나 위민(爲民) 정신을 따라 배우려는 정황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큰 물난리를 겪은 신의주 주민을 위해 우리 측이 지원을 제안했는데도 묵묵부답이다. 김씨 가계 우상화에 이용되는 김일성화(花)와 김정일화를 가꾸기 위한 전용비료가 개발됐다는 조선신보의 보도를 보라. 만성적 비료 부족으로 인한 식량난 해소보다는 세습 정지작업이 우선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김정은이 헐벗은 북한주민의 구세주가 될 리는 만무하지만, 그에 대한 연구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한반도의 급변사태 가능성에 대한 대비가 긴요하다는 점에서다. 그런데도 그에 대한 정보라곤 해외 언론에서 보도한 그의 어릴 적 사진 한 장이 전부다. 관계 당국에서 충분히 자료를 확보한 뒤 보안상의 이유로 공개를 미루고 있는 게 아니라면 심각한 사태다. 그가 어떤 성향의 인물인지, 그가 이어받을 정권이 어디를 향할 것인지 철처한 사전 탐구와 대비가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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