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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기업 개혁은 왜 안 하나/이상일 호원대 초빙교수·언론인

    [열린세상] 기업 개혁은 왜 안 하나/이상일 호원대 초빙교수·언론인

    요즘 보도되는 기업 뉴스를 보면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높아져 심지어 ‘반(反)기업적’인 정서가 확산될까 우려될 정도다. 이런 뉴스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백화점식 기업의 비리에 관한 것이다. 정치권에 돈을 줬다는 기업 회장의 자살 직전 메가톤급 폭로가 나오는가 하면 비리의 온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지목되고 있다. 탈세, 회계 조작과 비자금 조성은 물론 오너가 횡령한 자금을 오너 가족에게 주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비리의 덩어리를 들어내야 하는’ 대상에 이런저런 기업들이 집중 거론되고 있다. 건설사들이 서로 짜고 대규모 공사 입찰에서 담합한 사실은 걸핏하면 적발돼 온 단골 비리 중 하나다. 게다가 어느 기업주는 해외 도박판에서 거액의 카지노 도박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부정적인 뉴스는 경영진과 오너들의 행태에 관한 것이다. 직원은 감원하면서 회장 연봉을 올린 금융지주사가 세간에 비난의 대상이 됐다. 기업 오너들은 보유 주식의 엄청난 가치 상승에 더해 엄청난 배당금과 수십, 수백억원의 연봉을 챙겼다. 기업들은 흑자가 나도 근로자들을 적게 채용하고 장시간 근로로 혹사시키고 있어 비판의 도마에 올라 있다. 그런데 오너가 경영 성과에 따른 주가 차익도 벌면서 그렇게 많은 연봉을 챙기는 것에 대한 근로자들과 서민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은 작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있고 기업들이 조기에 방출한 대량의 인력들이 자영업자로 전업해 생사의 기로에서 허덕이고 있다. 보도된 한국 기업들의 부정적인 면은 기업 자체의 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물론 사회 분노를 촉발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기업의 첫째 목표는 장사를 해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칼같이 이익을 챙기고 수익을 기반으로 근로자를 채용해 고용에 이바지하는 것이 기업의 존재 목적일 것이다. 기업의 목표는 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른바 ‘사회적 책임’이 있다. 장사를 하되 그 영업 활동이 법과 규제를 준수하고 탈법하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윤리적 기준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사회공헌과 자선활동도 하도록 선진국에서는 기업들에 요구하고 있다. 비자금, 탈세와 담합은 사회질서와 법을 위반한 점에서 처벌받을 뿐 아니라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 해도 직원 감원 후 회장 연봉을 올린 행동이 비난받는 이유다. 한국 기업들은 국제적 기준에서 볼 때 사회적 책임 수준이 낮다. 툭하면 나오는 기업들의 비리를 단순히 정치적인 사정 탓만으로 돌릴 수 없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장사한다’는 의식이 한국 기업들에는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이는 기업인들이 정치인이나 관료들과 유착관계를 가질 경우 얻을 수 있는 반대급부, 즉 ‘떡’이 크기 때문일지 모른다. 로비로 나눠 줄 수 있는 기업 보조금이나 혜택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닌가 검토해 이를 줄여 나가야 한다. 기업 지배구조에서 회장이나 사장을 견제하는 장치가 허술한 것도 문제다. 사외이사는 들러리 수준이고 감사의 위치는 약하다. 법적으로는 감사가 사장에 준하는 지위를 갖는 것으로 돼 있지만 대부분 기업에서 감사 위치는 실제 ‘상무급 이하’ 수준이다. 감사에게 영업 등 실적을 요구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오너가 엄청난 연봉을 받는 것을 아무도 견제할 수 없다. 오너가 받을 연봉 수준을 스스로 정하게 돼 있다. 오너가 계열사 여러 곳에서 월급을 타 가도 누가 막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오너들의 전횡이 심하고 자식들까지 경영진으로 끌어들여 부사장이나 상무 자리를 차지한 상황에서 기업 내부의 견제 세력은 전혀 없다고 봐야 한다. 이는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견 기업들도 오너의 2, 3세까지 끌어들여 재벌처럼 세습경영을 하고 있다. 정부는 공공, 노사, 금융, 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의 성공적 추진을 강조했다. 요즘 분위기로 보면 기업 개혁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내부로부터 개혁을 않거나 게을리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응징하고 허술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경제 기여도’ 운운하며 슬슬 넘어가니 한국 기업 비리는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기업의 탈법, 비윤리적인 경영이 국민들의 끓어오르는 분노를 촉발해 사회문제화되는 것을 미리 막아야 한다.
  • 계산된 코믹포인트 연기甲의 무기라오

    계산된 코믹포인트 연기甲의 무기라오

    “저희 집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처음엔 엄청 넓었는데 이젠 좀 좁아 보이는 것 같네요.(웃음)” 지난 9일 경기도 남양주의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극본 정성주· 연출 안판석)의 세트장. 총 300평에 7억 5000만원을 들여 지은 세트장의 중앙에 선 주인공 유준상과 유호정은 마치 자신의 집처럼 취재진을 맞았다. 벽 한쪽에 걸린 가족 사진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유준상은 “이렇게 고가의 소품이 많은 세트장은 나도 처음이다. 슬리퍼까지도 격에 맞추느라 최고급”이라며 웃었다. “그동안 작품에서 ‘갑’의 역할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거의 ‘을’이었죠. 이번에는 연기하면서 때론 이 집이 내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하하. 한정호(극중 인물)는 아직도 파헤쳐지지 않은 부분이 많아요. 우리 사회에 필요악인 인물이지만 실제로 이런 인물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연기를 합니다.” 인기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제왕적 권력을 누리는 로펌 대표 변호사 한정호를 맡아 열연하고 있는 유준상(46). 대한민국의 ‘슈퍼갑’으로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상류층의 면모를 때로는 서늘하게, 때로는 코믹하게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등 주로 건강하고 자상한 역할을 맡아 온 그는 “이렇게 복잡한 캐릭터도 처음이지만 이렇게 지적인 역할도 처음”이라면서 말문을 열었다. “변호사들에 관한 책도 읽어 보고 팟캐스트에서 관련된 내용을 들어 보기도 했죠. 드라마 대사에 나오는 인물들을 지식백과에서 찾아보다 보니 지식이 쌓여 가고 있어요, 하하. 한정호는 말 한 줄조차 문법에 최적화된 단어를 구사하는 캐릭터라서 어법 하나, 장단음까지 틀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아기를 좋아하는 것을 빼고는 실제 자신의 성격은 한정호와 비슷한 점이 거의 없다는 그다. “코미디와 깊이 있는 연기 사이에서 표현의 ‘줄타기’를 하는 게 가장 어려워요. 한정호는 여러 가지 상황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지만 집에서는 조금만 아파도 꾀병을 부리잖아요. 큰 사건은 쥐락펴락하면서 작은 통증에는 참을성이 없는 아이러니한 인물이죠.” 그는 “잔인한 장면이나 욕설 하나 나오지 않고서도 보는 사람을 쥐었다 놨다 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힘”이라고 자평했다. 이 작품은 부와 권력이 세습되는 과정을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다. 연기자로서 그의 생각은 어떨까. “저도 연기하면서 마음이 편치는 않아요.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사회의 민감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면서도 신랄하게 풍자하는 것이 드라마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바라보는 한정호는 된 사람, 난 사람, 든 사람의 면모를 전부 다 갖고 있어서 더 어렵고 입체적이다. 그래서 최대한 애드리브를 자제하고 대본에 충실해 인물을 표현하려 한다. “대본을 보고 약간은 꾸민 듯한 연극 투의 말투를 떠올렸죠. 감독님도 과장된 몸짓은 마음껏 하라고 했어요. 드라마에서 대사 외적인 애드리브는 한 단어도 해 본 적이 없어요. 공연을 많이 하다 보니까 정확하게 계산된 작품으로 승화해서 웃음을 주는 데 더 익숙하거든요.” 그래서 정작 그는 웃지 않는데 주변 배우들이 웃는 바람에 NG가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딱 하나 애드리브가 들어간 장면은 한정호가 사돈 앞에서 자신을 욕보이는 아들 한인상(이준)을 잡아채려고 난간을 넘어가려다가 가랑이가 끼는 이른바 ‘낭심 사건’이다. 그는 “리허설 때 그 ‘사건’이 일어났는데 스태프들이 배꼽을 잡자 즉석에서 감독이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그 상황을 추가했다”고 귀띔했다. 올해 데뷔 20년째. 배우로서 그의 원동력은 연출자와의 교감에 있다. 그는 “배우는 연출자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제멋대로 만들면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작품이 잘 보여야 하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배우”라고 말했다. 책을 쓰고 음반을 발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모두가 더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한 밑거름이다. “뮤지컬을 하다 보니 노래가 좋아졌고, 기타를 배우다 보니 노래를 만들게 됐어요. 감성이 메마르면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노래를 통해 젊은 친구들과 교감하고 감성을 키우려고 노력합니다. 그게 저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나 할까요?(웃음)”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서울&평양 경제 리포트] 북한의 외환보유고 얼마나 될까

    [서울&평양 경제 리포트] 북한의 외환보유고 얼마나 될까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3623억 7000만 달러(약 396조 8600억원)로 전달에 비해 1억 8000만 달러가 증가했다. 이는 중국(3조 8430억 달러), 일본(1조 2611억 달러), 사우디아라비아(7345억 달러), 스위스(5854억 달러), 대만(4159억 달러), 러시아(3762억 달러)에 이어 7번째로 많은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북한의 외환보유고는 어떻게 될까? 북한 경제는 2011년 이후 소폭이지만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최근 광산물 수출액 급증과 해외파견 근로자 소득 확보 등으로 인해 외화 수급 흑자를 달성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북한 경제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그렇지만 특유의 폐쇄성으로 인해 외환보유고를 추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10일 “외환 수급을 둘러싼 중앙은행의 기능이 사실상 붕괴되면서 외환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추정하는 것이 북한 연구자들의 오랜 시도”라며 “그래서 여러 가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추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北 특유의 폐쇄성 영향 외환보유고 추정 불가 북한의 외환보유고와 관련해 비교적 믿을 만한 연구를 한 사람으로는 한양대 경제금융학과 장형수 교수를 꼽을 수 있다. 장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북한은 국제사회와의 교역을 통해 1991~2012년 22년 동안 모두 179억 달러(약 19조 6000억원)가 넘는 무역적자를 봤다. 특히 2005년 이후 북한의 무역수지 적자는 2011년을 제외하고 매년 1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2008년에는 사상 최대인 15억 500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외환보유고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항목별 추정치를 구성해 이를 더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우선 코트라가 북한의 교역상대국 무역통계를 역추정해 발표하는 KDI시리즈가 비교적 믿을 만한 통계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무기수출입과 외국 항공기의 북한 영공 통과료 등으로 구성된 서비스수지, 개성공단 외화수입, 해외에 파견된 북한 근로자의 수입 등이 북한이 보유한 외환보유고를 추정할 수 있는 주요 요소로 볼 수 있다. 북한은 1990년 구 소련이 달러나 파운드 등으로 무역 결제를 하겠다고 선언한 뒤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달러가 필요 없이 무상원조 개념으로 받던 것이 사라지면서 1991년부터 1995년까지 5년간 8억 4000만 달러의 적자를 본 것으로 추정됐다. 외환보유고가 충분하지 않았던 북한은 1995년 ‘한국판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같은 북한판 IMF 사태를 맞을 뻔한 고비를 겪었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북한은 1998년까지 연속 적자를 기록하다 그해 국제사회의 무상지원이 계속되면서 처음으로 외화수급에서 흑자를 맞았다. 이후 2000년까지 3년간 17억 8000만 달러의 돈이 북한으로 순유입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외화수급 흑자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2년 10월 북핵 문제가 불거지면서 미국의 중유공급 중단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인해 경제적 타격이 심각해지면서 외화는 다시 부족해졌다. 여기에 무기 수출과 불법 거래 역시 타격을 받았다. 2002년 3억 4100만 달러로 추정됐던 외화수급 흑자는 2003년 9억 9000만 달러, 2004년 6억 3000만 달러 등으로 급감했으며 2006년에는 결국 마이너스 2억 9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런 추세는 2007년 영변 핵시설 불능화 단계 조치 이후 이뤄진 미국과 북한의 2·13 합의 등으로 인해 중유공급이 이뤄지면서 2007년과 2008년 각각 3억 2000만 달러와 2억 4500만 달러의 흑자로 돌아섰다. ●1995년 IMF 사태와 같은 외환위기 겪어 이명박 정부 들어 비료와 쌀 지원이 중단되고 2008년 7월 박왕자씨가 금강산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지만 북한의 외화수급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2008년 6자회담 결렬과 2009년 5월 북한의 제2차 핵실험으로 인해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된 것이 외화수급에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인지 2009년과 2010년 외화수급은 각각 마이너스 8200만 달러와 마이너스 26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북한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2009년 11월 화폐개혁을 통해 개인과 기관의 외화 보유를 금지해 지하경제에 남아있던 외화를 짜내는 데 주력했다. 일부에서는 당시 화폐개혁이 북한 정권의 외화통제력 약화와 관련 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지만 북한의 외화수급은 생각보다 견고한 것으로 보인다. 2011년 12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집권한 뒤 세습 확립을 위해 외화수요가 평소보다 많았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중국 경제의 성장으로 인한 해외자원 수입 및 수요 증가에 따른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북한 역시 혜택을 보게 됐다. 이와 관련해 연간 최소 3억 달러 이상의 외화가 북한으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권이 구 소련 붕괴 이후에도 줄곧 건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외환보유고가 얼마나 됐건 간에 일정 액수 이상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무역 규모가 증가하면 외환보유고도 증가하게 된다. 그런데 북한의 무역 규모는 1997년부터 증가 추세다. 다만 전체 외환보유고 중에서 장거리 미사일과 핵 개발 비용은 일정 부분 제외해야 한다. 즉 총액이 얼마일지는 몰라도 대략 28억~32억 달러 정도의 미사일과 핵 개발 비용은 제외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는 별도로 지하경제에 숨어든 외화 역시 상당 액수일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은 무역회사를 정리하고 노동당, 군에 대한 감찰, 외화 사용 금지 등을 통해 외화 통제력 확보를 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최근 북한에서 유행하고 있는 휴대전화 보급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외화를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즉 북한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외화로 구입해야 하며 서비스 가입비도 외화로 납부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입비는 140달러이며 휴대전화 가격은 2012년 평균 300달러 정도인데 원가는 대략 80달러 정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근거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대략 240만명의 휴대전화 가입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할 때 가입비로만 3억 3600만 달러, 휴대전화 판매 차익으로 5억 2800만 달러 등 모두 8억 6400만 달러의 외화가 주민에서 당국으로 이동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상당한 액수로 북한의 외화수급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휴대전화 보급도 시중의 외환 모으기 일환 북한 내 외화 유통현상이 확산되면서 북한 경제에도 여러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달러나 중국 위안화의 유통이 확산되면서 초기에는 물가상승이 수반되지만 외화 통용현상이 상당 정도로 진행되면서 안정적 가치를 가진 거래수단이 확보되는 효과가 발생했다. 오히려 이 때문에 불안정이 해소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긍정적 영향 외에 부정적 영향도 있다. 북한 화폐를 이용한 경제정책 집행이 힘들어지면서 계획경제 및 국영기업에 대한 재정지원 수단이 상실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으로 기업의 유동자금을 지원하던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현대경제연구원 홍순직 통일경제센터장은 “북한의 수출입 비율을 굳이 비교하자면 1대2에서 최근에는 2대3으로 늘어나면서 외화수급 역시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구본영 칼럼] 북한이 무너지지 않는 기막힌 이유

    [구본영 칼럼] 북한이 무너지지 않는 기막힌 이유

    핵 문제로 인한 경제 제재가 얼마나 힘겨웠을까. 며칠 전 미국과의 핵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에 이란 수도 테헤란은 “긴 겨울은 끝났다”며 환호하는 시민들로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영국 유학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실용적 결단이 불러들인 ‘이란의 봄’이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하려고 핵 카드를 내려놓으면서…. 이란이 핵을 포기하면 북한은 이제 지구촌 유일 ‘불량국가’로 남게 된다. 스위스 유학을 다녀온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개혁·개방에 유연하리라는 기대와 달리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매달리면서다. 그가 핵 개발을 고집하는 이유는 세습체제 유지를 위해 다른 대안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어리석은 판단이다. 옛 소련이 어디 핵탄두 수가 적어 무너졌던가. 미국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최근 보고서가 눈길을 끈다. 김정은 체제가 심각한 경제 쇠퇴와 정치·군부 엘리트의 균열, 외부 압력에 의해 향후 25년 내에 무너지거나 붕괴 직전 상태로 갈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핵을 끌어안은 채 말이다. 북 3대 세습정권이 언젠가 붕괴할 것이란 ‘예언’과 마찬가지로 25년간 더 버틸 것이란 전망 또한 새로울 건 없다. 김일성 사후 일부 전문가들은 북이 짧으면 반년, 길면 3년 이내에 붕괴할 것이라고 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가지 않았나. 분명한 건 핵이 북한 체제의 안전판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북 세습체제를 지탱하는 메커니즘은 대체 무엇인가. 정답은 날로 번성해 가는 장마당이다. 기본 생필품 배급마저 끊긴 북한 주민들의 생명줄이란 차원에서다. 물론 이런 암시장은 김정은의 권력 승계 이전에도 있었다. 김정일 사망 전에 “최악의 경제난 속에서 북한 체제가 유지되는 것은 이른바 ‘병렬사회’(혹은 제2사회)가 형성됐기 때문”(서재진 전 통일연구원장)이란 분석도 나왔었다. 제2사회란 붕괴 전 동구 사회주의권에서도 나타났듯 제1사회인 사회주의 체제와 병존한 원시시장경제를 가리킨다. 비공식 시장경제인 장마당이 배급제의 붕괴로 고장난 ‘주체 경제’, 즉 ‘우리식 사회주의’를 지탱하고 있다면 기막힌 역설이다. ‘김씨 조선’의 3대 후계자 김정은은 아버지보다 더 장마당을 묵인하는 편이라고 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게다.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 제재를 받고 있는 데다 천안함 폭침 이후 5·24 조치로 남북 경협을 통한 돈줄도 말라들었지 않은가. 최근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각지의 장마당에는 없는 게 없단다. 남한산 초코파이에서 금서인 성경책까지…. 지금 북한에선 부정부패가 만연한다고 한다. 당 간부들이 뇌물을 받고 온갖 암거래를 못 본 척하면서다. 장마당이 천민자본주의의 양상을 띠기 시작하고 있는 건 북한 내부 문제라 치자. 우리에겐 장마당이 ‘평양의 봄’을 만개시킬 만한 개혁·개방을 이끌, 제대로 된 시장경제로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쉬울 뿐이다. 국제 제재를 받을 때마다 중국이 뒷문을 열어 주고 장마당이란 완충 공간이 있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렇다. 까닭에 북한이 이란의 길을 걷도록 하려면 물샐틈없는 국제 공조와 북 장마당의 진일보가 필수다. 이란의 실용적 선택도 미·중·러를 포함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을 더한 주요 6개국(P5+1)이 똘똘 뭉쳤기에 가능하지 않았는가. 중국이 계속 뒤를 봐주는 한 북한이 핵을 포기할 리 없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미·중 양측에서 러브콜을 받은 상황은 골칫거리가 아니라 축복”이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큰소리는 그래서 공허하다. 이제 우린 북한의 개혁·개방 견인에 집중해야 한다. 괜한 허장성세를 부린다고 중국의 오만한 훈수가 사라지겠나. 중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반대한다고? 그렇다면 외려 중국에 북핵 억지 역할을 당당하게 주문해야 한다. 북한 체제를 개혁하려면 대북 지원도 필요하다. 석학 새뮤얼 헌팅턴도 민주화는 경제발전이 토대라고 했다. 다만 과거처럼 남북 정상회담 착수금을 찔러 주는 식으로 북한 정권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하는 대신 북의 장마당을 풍성하게 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kby7@seoul.co.kr
  • 홍준표 “무상급식 중단으로 상처받는다는 것은 좌파의 저급한 감성논리”

    홍준표 “무상급식 중단으로 상처받는다는 것은 좌파의 저급한 감성논리”

    홍준표 “무상급식 중단으로 상처받는다는 것은 좌파의 저급한 감성논리” 홍준표 무상급식 중단 무상급식 중단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3일 “무상급식 지원 중단으로 아이들이 상처를 받는다는 진보좌파들의 말은 저급한 감성논리”라고 말했다. 홍 지사는 이날 오후 부산시 부산진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1세기 포럼의 ‘무상급식,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의 특강에서 계층에 따른 선별적 급식을 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홍 지사는 “서민들에게 복지재원을 집중하는 것이 좌파정책인데 우리나라의 진보좌파들은 거꾸로 주장하며 보편적 복지를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지사는 이어 “차상위 130%의 학생들은 이미 국비로 무상급식을 지원받고 있다”면서 “전면 무상급식 확대로 서민층 학생들에게 돌아갈 공교육의 기회를 빼앗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 지사는 “지난해 부유층과 서민층의 교육비 차이가 8배였다”며 “갈수록 양극화가 심해지고 신분의 세습화, 가난과 부의 대물림이 계속되는 현실에서 무상급식에 쓰일 예산을 서민 자녀들의 교육지원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홍 지사는 “무상급식 찬성파가 스웨덴 등 북유럽 3국의 무상제도를 언급하는데 이는 우리 현실과 전혀 맞지 않다”며 “수입의 절반가량을 세금으로 내는 북유럽 3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과세율이 20% 정도로 낮고 빈부격차도 큰 데 보편적 복지를 말하는 것은 이성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경남도 교육청의 한해 쓰지 않고 남은 예산이 1350억원이나 되지만 급식비를 지원하지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다”며 “1년에 학사관리로 4조원의 예산을 쓰는 도교육청이 지자체에 무상급식 예산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정상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무상급식 문제를 여론조사로 결정하자는 분위기에 대해 홍 지사는 “이건 설득의 문제이고 지도자의 결단 문제이지, 대중의 눈치를 보다가 결단을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무상급식 지원 중단이 노이즈 마케팅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한국 복지의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는데 일부 언론이 수준 낮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무상급식 지원 중단에 반발이 많지만 흔들릴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홍 지사는 “진정한 복지는 부자가 제대로 세금을 낼 만큼 내면서 남 눈치 안보며 살 자유를 주고 서민에게는 기회를 주고 쓰러지면 도와주는 것”이라며 “서민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예산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당甲 vs 속물乙 가려운 곳 긁었소…SBS ‘풍문으로 들었소’ 인기 비결

    허당甲 vs 속물乙 가려운 곳 긁었소…SBS ‘풍문으로 들었소’ 인기 비결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이하 ‘풍들소’)의 인기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자체 최고 시청률(12%)을 경신하며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청춘 스타나 화려한 화면을 앞세우지 않은 이 드라마가 입소문을 타고 있는 이유는 뭘까. 상류사회의 허위의식을 꼬집고 있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일반적인 홈드라마들과는 달리 유머 코드를 유지하면서 날카로운 풍자를 구사한다는 데 있다. 정성주 작가는 드라마 ‘아줌마’(2000)에서부터 상류층이나 특권 계급을 풍자해 온 내공이 있다. 전작인 ‘아내의 자격’에서는 강남 아줌마들의 모습을 통해 부에 의해 세습되는 교육 문제를, ‘밀회’에서는 음악대학을 무대로 상류층에 편입되려는 엘리트 중산층을 조명했다. 부와 권력을 세습하려는 대한민국 초일류 상류층의 위선을 까발린 ‘풍들소’에서는 전작들보다 코믹한 터치가 늘었다. 고등학생인 아들의 혼전 임신으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서민 며느리를 받아들이지만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보여주고 번번이 예상 밖의 일이 터져 당황하는 집안의 가장이자 법무법인 대표 한정호(유준상)와 그의 부인 최연희(유호정)의 모습에는 시종 상류층의 위선에 대한 풍자와 조롱이 깃들어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 작품에서 한정호는 다소 과장스러운 표정과 몸짓을 하는데, 그 자체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시대적 ‘괴물’을 상징한다. 겉으로는 타인을 배려하는 척하지만 뒤로는 얄팍한 계략을 꾸미는 한정호의 가면을 벗겨내는 재미가 작품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선영 드라마평론가는 “지금까지는 주로 현실을 비판하거나 세태를 풍자하는 드라마는 사회고발극이나 장르물의 성격이었다. 하지만 ‘풍들소’는 홈드라마의 익숙한 틀거리를 하고서 상류세계의 속성을 파헤치는 파격이 있다”면서 “그것이 바로 웬만한 사회풍자극을 뛰어넘는 파괴력을 나타내는 배경”이라고 평가했다. ‘풍들소’의 인기로 새롭게 부상하는 용어가 이른바 ‘갑을 드라마’다. 권력의 갑을 관계를 드라마의 추동 소재로 삼되 이분법적 단순 논리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강점이다. 서민 며느리 서봄(고아성)의 초라한 친정집 등 드라마 속에는 다양한 갑을 관계가 등장하지만, 초반에는 그 집안이 꿋꿋이 거대 권력 사돈집에 굴하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며 서봄 역시 틀에 박힌 신데렐라 유형이 아니라 주체적 인물로 그려진다. 그 파격의 묘미는 갈수록 더해진다. 권위의식에 찌든 시댁의 문화에 물들어 어느 순간부터 덩달아 ‘갑질’하는 서봄, 서서히 사돈의 경제력에 기대를 하는 친정식구들의 모습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 속물근성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김선영 평론가는 “‘풍들소’에 등장하는 상류층에는 계급이 세분화돼 있어 인물 유형이 다양하다. 대부분의 갑을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은 갑의 횡포에 분노하게 되는데, 이 드라마는 을의 속물근성을 함께 파헤쳐 모두가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고 짚었다. 또한 리얼리즘을 강조한 관찰형 드라마로서 끊임없이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도 인기 요인이다. 한옥과 양옥이 결합된 극중 한정호의 집은 그 자체로 근현대에 걸친 상류계급의 세습화를 원색적으로 은유하고 있다. 안판석 PD는 인물의 클로즈업보다는 풀샷을 이용하고 집의 창문이나 문 등 다양한 프레임으로 일정 거리를 두면서 시청자들이 등장인물들을 관찰하도록 화면을 만든다. 환한 세트 조명이 아닌 어두운 일반 조명을 쓴 데도 이유가 있다. 드라마의 한 관계자는 “상류층의 허위의식에 현실감을 보태고, 그 사회의 기괴한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라면서 “그런 장치 덕분에 시청자들은 드라마 자체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고 귀띔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박문각 남부 고시학원과 함께하는 실전강좌] (3)한국사

    [박문각 남부 고시학원과 함께하는 실전강좌] (3)한국사

    서울신문은 가장 많은 수험생이 응시하는 7, 9급 국가직 및 지방직 공무원시험에 대비해 국어·영어·한국사 등 시험 필수과목에 대한 실전강좌 시리즈를 새롭게 마련했다. 공무원시험 전문학원인 박문각 남부고시학원 강사들의 도움을 받아 과목별 주요 문제와 해설을 싣는다. 한국사는 과거 7차 교과과정 범위 안에서 출제되고 있다. 시기별로는 전근대사 70%, 근·현대사 30%의 비중으로, 분야별로는 정치 50%, 경제·사회 30%, 문화 20%의 비중으로 출제되고 있다. 우선 최근 공무원시험에서 어떻게 출제되는지 파악해 공부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1960년대 전반 남북한에서 각기 조사 발굴되어 한국사에서 구석기 시대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 유적들을 바르게 짝지은 것은? (2014년 국가직 9급) <남한> <북한> ①제주 빌레못 유적,상원 검은모루 유적 ②공주 석장리 유적,웅기 굴포리 유적 ③단양 상시리 유적,덕천 승리산 유적 ④연천 전곡리 유적,평양 만달리 유적 (정답) ② (해설) 선사시대 및 국가 형성, 구석기 유적지 파악 공주 석장리 유적은 1964년에, 웅기 굴포리 유적은 1963년에 발굴됐다. 2014년 많은 수험생이 당황했던 문제였다. 2014년이 공주 석장리 발견 50년이 되는 해로 시기적으로 주목되는 점이 있었던 점을 고려해야 하는 문제다. 공무원시험에서 선사시대와 관련해 이러한 유형의 문제는 자주 출제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사 시대를 공부할 때는 발견연대까지 파악하면서 공부할 필요는 없다. (문제)(가), (나) 시대의 사회상과 유적이 바르게 연결된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2014년 국가직 7급) (가) 동물의 뼈나 뿔로 만든 뼈 도구와 뗀석기를 가지고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생활하였다. (나) 고인돌이 만들어지고 계급이 형성되는 한편 군장국가가 등장하였다. <보기> ㄱ. (가) - 동굴 유적지로 덕천 승리산, 제천 점말, 청원 두루봉이 있다. ㄴ. (나) - 금속을 다루는 전문 장인이 나타나고 사유 재산제도가 발달하였다. ㄷ. (가) - 반달 돌칼과 구멍 뚫린 돌자귀를 만들어 농경에 활용하였다. ㄹ. (나) - 서울 암사동과 황해도 봉산 지탑리가 주요 유적지이다. ① ㄱ, ㄴ ② ㄱ, ㄷ ③ ㄴ, ㄹ ④ ㄷ, ㄹ (정답)① (해설)선사시대 특징 이해 공무원시험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선사(先史)는 역사 이전의 시대, 즉 문자 이전의 시대로 이 시기를 물어보는 문제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의 주요 유적과 유물을 물어보는 식으로 출제된다. 이 단원을 공부할 때는 각 시대의 주요 특징과 주요 유적, 유물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 구석기, (나) 청동기 ㄷ - 청동기, ㄹ- 서울 암사동과 황해도 봉산 지탑리는 신석기 유적지. (문제)(나)는 (가)의 결과이자, (다)의 원인이 되었다. (나)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2014년 사회복지직) (가)위만 왕조는 철기 문화를 기반으로 자신의 세력을 점차 확대하였다. (나) (다)한 무제의 대규모 무력 침략을 받아 마침내 왕검성이 함락되었다. ① 부왕, 준왕과 같은 강력한 왕이 등장하여 왕위를 세습하였다. ② 위만은 준왕의 신임을 얻어 서쪽 변경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③ 고조선은 요령 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하여 점차 한반도까지 발전하였다. ④ 고조선은 중국 대륙과 한반도 남부의 직접 교역을 막아 중계무역의 이익을 독점하였다. (정답)④ (해설)고조선 및 초기 국가, 위만 조선 발전과정 이해 (가) 위만 조선 건립(기원전 194) (다) 고조선 멸망(기원전 104) ① ② ③은 (가) 이전의 상황이다. 선우빈 박문각 남부고시학원 강사
  • [싱가포르 국부 리콴유 사망] “죽거든, 내 집 허물라”… 貧國을 富國 만든 ‘反부패 독재자’

    [싱가포르 국부 리콴유 사망] “죽거든, 내 집 허물라”… 貧國을 富國 만든 ‘反부패 독재자’

    “죽거든 내 집부터 허물어라.” 23일 사망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자신의 집이 ‘국가 성지(聖地)’로 보존되면 주변의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 이웃 주민들이 경제적 손실을 볼까 걱정해서다. 양식은 말할 것도 없고 먹을 물조차 구할 수 없던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50여년 만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 5만 6113달러(IMF·2014년 기준), 세계 8위의 경제부국으로 끌어올린 ‘국부’(國父) 리콴유.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법치국가’를 세운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와 달리 이처럼 세심함도 갖춘 지도자였다. 리콴유는 1923년 싱가포르의 부유한 화교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46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1951년 귀국해 변호사로 활동했다. 노동운동을 펼치며 정계의 주목을 받은 그는 1954년 ‘인민행동당’을 창당해 사무총장에 올랐다. 1959년 35세의 나이에 영국연방 자치정부의 초대 총리가 됐다.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까지 무려 26년간 총리를 지냈다. 총리 시절 유교적 철학에 바탕을 둔 ‘아시아적 가치’를 전파한 것으로 유명한 그는 싱가포르를 선진국으로 끌어올린 ‘공로자’와 개발독재를 펼친 ‘독재자’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교차한다.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했을 때만 해도 국민 대부분이 제대로 된 집조차 없이 떠돌이 생활을 했고, 실업률도 10~12%에 달했다. 리콴유는 자유경쟁과 과감한 개방정책을 실행해 ‘기적’을 일궈 냈다. 외국의 투자를 끌어들이고자 규제를 풀었고, 외국 기업이라도 사업을 승인받으면 연구개발비를 지원했다. 못 배운 국민이 숙련된 노동자가 될 수 있도록 교육정책을 개발하고,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했다. 그의 통치가 찬사만 받은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깨끗하고 범죄가 드문 성공한 도시국가의 이면에는 강력한 억압통치가 자리 잡고 있다. 길거리에서 흡연하거나 껌만 뱉어도 큰 벌금을 매겼고, 마약 소지자는 사형에 처했다. 서구 언론들은 지금까지 싱가포르를 태형과 벌금의 나라라는 꼬리표를 달고 소개하며, 그를 ‘동남아시아의 작은 히틀러’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장남 리셴룽(李顯龍)이 2004년 8월부터 제3대 싱가포르 총리로 재직하면서 세습정치라는 비판도 받았다. 장기 집권, 가부장적 통치, 개발독재라는 공통점 때문에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마하티르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와 자주 비견됐다. 다만 리콴유는 무력이 아닌 법규와 교육을 통치 기반으로 적극 활용했다는 게 차이다. 이 과정에서 지나친 엘리트 지상주의를 앞세웠고 “똑똑한 사람들끼리 결혼해야 한다”는 우생론에 집착했다. 일각에선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는 국가를 이웃으로 둔 인구 530만명의 작은 섬나라가 택한 당연한 길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생존’이었다는 이야기다. 덕분에 플라톤의 철인정치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현대에 구현한 실용주의 정치가로 규정되기도 한다. 올해로 독립 50주년을 맞은 싱가포르의 사회 분위기는 리콴유 사후 사뭇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리콴유의 타계는 표현의 자유와 정치 참여를 통제하던 억압의 시대에 종말을 고하고 자유와 변화의 새 시대를 여는 분기점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국부’ 그는 누구인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국부’ 그는 누구인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23일 타계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작지만 강하고 잘사는 싱가포르의 기적과 신화를 이룬 인물로, 아시아의 대표적 지도자로 통한다. 정치,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동시에 달성한 사례가 드문 동남아시아에서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최고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 금융 및 물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고, 부정부패가 드문 깨끗한 사회로 건설한 리 전 총리는 국부(國父)로 일컬어진다. 그는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1959년부터 자치정부 총리를 지냈다.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할 때까지 26년간 총리로 재직했다. 자치정부 시절까지 합하면 31년 동안 총리로 재직해 세계 사상 가장 오랫동안 총리로 재직했다.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었던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그가 총리직에서 퇴직한 1990년에 1만2천750달러를 달성했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5만6천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이며, 세계경제포럼(WEF) 조사 국가경쟁력은 세계 2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 국가청렴도는 세계 5위이다. 오늘의 싱가포르를 있게 한 주인공이 리콴유라는 데 이견이 없다. 리콴유는 1923년 영국 식민지 시절 싱가포르에서 부유한 화교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4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소속인 피츠윌리엄 칼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51년 귀국해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1954년 인민행동당(PAP)을 창당하고 사무총장에 올랐다. 1959년 자치정부 총리가 됐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35세였다. 그가 독립 싱가포르의 총리로 취임했던 1965년 싱가포르는 부존 자원은커녕 마실 물조차 부족해 이웃 말레이시아에서 사와야 할 정도로 암울했다. 하지만 현재 싱가포르는 ‘아테네 이후 가장 놀라운 도시국가’로 불리고 있다. 그는 집권 후 재정 안정화, 서민주택 보급, 공직비리조사국 설치, 해외투자 유치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개발도상국이 소홀히 하기 쉬운 환경보호에도 노력을 기울여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중 하나가 됐다. 그는 싱가포르 항만공사를 설립해 세계 일류 수준의 컨테이너 항구를 건설했고, 석유파동 속에서도 미래에 대비해 창이 국제공항을 건설하는 등 주요 사업에는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이 같은 장기적 안목의 투자는 싱가포르를 물류 중심지, 동서양 항공의 요충지로 만들었다. 또 세계 유명 금융기관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에는 비판과 논란도 뒤따랐다. 싱가포르가 세계적으로 깨끗하고 범죄율이 낮은 도시가 된 배경에는 무거운 벌금, 태형 등 강력한 처벌이 자리잡고 있다. 마약 소지자는 엄벌에 처하고 껌만 뱉어도 벌금을 부과하는 등 엄격한 통제를 국가경영에 도입했다. 이 때문에 그는 아시아의 히틀러로 불리기도 했으며, 경제적인 부에도 한때 싱가포르의 국민행복지수는 150개국 중 149위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의 이런 통치 방식은 ‘온건한 독재’, ‘가부장적 통치’로 불렸다. 그러나 동남아의 다른 독재자들처럼 무력을 동원하거나 경제개발 과정에서 착취나 인권침해 논란을 초래하지 않았다. 노조활동과 임금인상을 억제했지만 성과급 제도를 적극 도입했다. 유능한 인재의 공직 진출을 유도하고, 공무원들이 부정부패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보수를 공무원들에게 지급했다. 그를 지지하는 정치 전문가들은 그의 독재적 방식이 국가통치를 효율화하는 수준을 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리 전 총리 자신은 독재적이라는 비난에 대해 서구에 비해 개발이 뒤진 아시아가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했다. 이는 당시 아시아에 만연했던 독재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 등이 아시아적 가치에 동조했으나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져 아시아의 정치,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자 더 이상 아시아적 가치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리콴유는 세계와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녀, 덩샤오핑에서 시진핑 주석에 이르기까지 중국 지도자들의 스승 역할을 했다. 또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들도 그에게 조언을 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리콴유는 1990년 고촉동 전 총리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줬다. 2004년 14년간 총리로 재임했던 고 전 총리가 물러나 리콴유의 첫째 아들인 리셴룽(李顯龍)이 새 총리로 취임했다. 리셴룽 총리의 등장은 또다른 형태의 권력세습이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오랫 동안 정치, 행정 분야 요직을 거치면서 지도자 교육을 받았던 리셴룽 총리는 싱가포르 국민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대체로 존경받는 지도자로 통한다. 리콴유는 2010년 세상을 먼저 떠난 부인 콰걱추(柯玉芝) 여사와 2남 1녀를 뒀으며 한국도 수차례 방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타계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누구?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23일 타계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작지만 강하고 잘사는 싱가포르의 기적과 신화를 이룬 인물로, 아시아의 대표적 지도자로 통한다. 정치,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동시에 달성한 사례가 드문 동남아시아에서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최고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 금융 및 물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고, 부정부패가 드문 깨끗한 사회로 건설한 리 전 총리는 국부(國父)로 일컬어진다. 그는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1959년부터 자치정부 총리를 지냈다.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할 때까지 26년간 총리로 재직했다. 자치정부 시절까지 합하면 31년 동안 총리로 재직해 세계 사상 가장 오랫동안 총리로 재직했다.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었던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그가 총리직에서 퇴직한 1990년에 1만2천750달러를 달성했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5만6천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이며, 세계경제포럼(WEF) 조사 국가경쟁력은 세계 2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 국가청렴도는 세계 5위이다. 오늘의 싱가포르를 있게 한 주인공이 리콴유라는 데 이견이 없다. 리콴유는 1923년 영국 식민지 시절 싱가포르에서 부유한 화교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4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소속인 피츠윌리엄 칼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51년 귀국해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1954년 인민행동당(PAP)을 창당하고 사무총장에 올랐다. 1959년 자치정부 총리가 됐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35세였다. 그가 독립 싱가포르의 총리로 취임했던 1965년 싱가포르는 부존 자원은커녕 마실 물조차 부족해 이웃 말레이시아에서 사와야 할 정도로 암울했다. 하지만 현재 싱가포르는 ‘아테네 이후 가장 놀라운 도시국가’로 불리고 있다. 그는 집권 후 재정 안정화, 서민주택 보급, 공직비리조사국 설치, 해외투자 유치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개발도상국이 소홀히 하기 쉬운 환경보호에도 노력을 기울여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중 하나가 됐다. 그는 싱가포르 항만공사를 설립해 세계 일류 수준의 컨테이너 항구를 건설했고, 석유파동 속에서도 미래에 대비해 창이 국제공항을 건설하는 등 주요 사업에는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이 같은 장기적 안목의 투자는 싱가포르를 물류 중심지, 동서양 항공의 요충지로 만들었다. 또 세계 유명 금융기관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에는 비판과 논란도 뒤따랐다. 싱가포르가 세계적으로 깨끗하고 범죄율이 낮은 도시가 된 배경에는 무거운 벌금, 태형 등 강력한 처벌이 자리잡고 있다. 마약 소지자는 엄벌에 처하고 껌만 뱉어도 벌금을 부과하는 등 엄격한 통제를 국가경영에 도입했다. 이 때문에 그는 아시아의 히틀러로 불리기도 했으며, 경제적인 부에도 한때 싱가포르의 국민행복지수는 150개국 중 149위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의 이런 통치 방식은 ‘온건한 독재’, ‘가부장적 통치’로 불렸다. 그러나 동남아의 다른 독재자들처럼 무력을 동원하거나 경제개발 과정에서 착취나 인권침해 논란을 초래하지 않았다. 노조활동과 임금인상을 억제했지만 성과급 제도를 적극 도입했다. 유능한 인재의 공직 진출을 유도하고, 공무원들이 부정부패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보수를 공무원들에게 지급했다. 그를 지지하는 정치 전문가들은 그의 독재적 방식이 국가통치를 효율화하는 수준을 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리 전 총리 자신은 독재적이라는 비난에 대해 서구에 비해 개발이 뒤진 아시아가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했다. 이는 당시 아시아에 만연했던 독재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 등이 아시아적 가치에 동조했으나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져 아시아의 정치,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자 더 이상 아시아적 가치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리콴유는 세계와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녀, 덩샤오핑에서 시진핑 주석에 이르기까지 중국 지도자들의 스승 역할을 했다. 또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들도 그에게 조언을 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리콴유는 1990년 고촉동 전 총리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줬다. 2004년 14년간 총리로 재임했던 고 전 총리가 물러나 리콴유의 첫째 아들인 리셴룽(李顯龍)이 새 총리로 취임했다. 리셴룽 총리의 등장은 또다른 형태의 권력세습이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오랫 동안 정치, 행정 분야 요직을 거치면서 지도자 교육을 받았던 리셴룽 총리는 싱가포르 국민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대체로 존경받는 지도자로 통한다. 리콴유는 2010년 세상을 먼저 떠난 부인 콰걱추(柯玉芝) 여사와 2남 1녀를 뒀으며 한국도 수차례 방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상지대, 교육부 총장 해임 요구에 총장 장남 이사로

    교육부로부터 총장 해임을 요구받은 상지학원 이사회가 김문기(83) 상지대 총장의 아들을 신임 이사로 선임했다. 아들을 이사회에 합류시킨 것은 결국 김 총장이 해임되더라도 학교의 족벌경영을 이어가겠다는 꼼수라는 비판이 학교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교육부는 상지학원 측으로부터 신임 이사 3명을 승인해 달라는 신청이 들어왔다고 20일 밝혔다. 신임 이사들은 김 총장의 장남 성남(51)씨와 김일남 전 상지여고 교장, 최선용 전 대관령고 교장이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 10일 사학분규를 겪고 있는 상지대에 대한 특별종합감사 결과에 따른 조치로 재단에 김 총장에 대한 해임을 요구했다. 이사회는 다음 날 김 총장에 반대한 교수협의회 전·현직 대표 4명을 중징계하기로 의결하고, 공석이던 이사 자리를 모두 채우기 위해 4명의 신임 이사를 선임했으며 이들 가운데 결격 사유가 발견된 한명을 제외한 3명을 교육부에 승인 신청했다. 이들이 모두 이사로 승인받으면 전체 이사 9명 가운데 김 총장 측 인사가 8명에 이른다. 총장 해임을 위한 이사회 의결정족수는 전체 이사의 3분의 2 이상이다. 만약 이사회가 김 총장에 대한 해임요구에 불응하면 교육부는 사립학교법에 따라 현행 이사들의 임원취임승인을 취소하고 임시이사를 파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상지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이사회가 장남을 이사로 선임한 것은 세습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도”라면서 “대학 정상화를 위해 공정한 임시이사를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사립학교법상 이사의 결격 사유가 없고, 총장 해임을 위한 이사회의 의결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절차에 하자가 없을 경우 승인을 해줄 수밖에 없다”며 “최종적으로 장관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열린세상] 테러사태, 한·미동맹 공고화의 계기로 삼아야/윤지원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남북한문제연구소장

    [열린세상] 테러사태, 한·미동맹 공고화의 계기로 삼아야/윤지원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남북한문제연구소장

    지난 3월 5일 62년 된 한·미동맹에 날벼락이 쳤다. 한 종북·반미주의자가 주한 미국 대사에 테러를 한 것은 바로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이었다. 김기종의 칼날이 아슬아슬하게 치명적 부위를 벗어났고, 리퍼트 대사가 의연하게 대응했으며, 양국 국민이 지혜롭게 대처함으로써 동맹의 파열을 피했다. 오히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집니다, 같이 갑시다”라는 리퍼트 대사의 퇴원 일성(一聲)이 함축하듯이 한·미동맹은 더욱더 굳건해지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것으로 동맹이 저절로 강화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확실한 전화위복을 위해서는 동맹의 균열과 파열을 노리는 도전 요소를 정확히 가려내고 이에 한·미 양국이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우선, 이번 테러 사태는 우리 사회 내부의 반미 극단주의에 대한 엄정한 대처로 환기돼야 한다. 민주화 이후 급속히 결집한 ‘민족지상주의’와 이를 신봉하는 자들의 반미주의적 도발을 우리 정부와 한국 지성은 너무 안이하게 대처해 오지 않았나를 반성해야 할 시점이다. 작금의 사태는 민족을 맹목적으로 ‘신성화’(神聖化)시키고, 한국 현대사의 모순을 외세의 책임으로 돌림으로써 ‘반미’를 정치화시킨 세력의 모험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기종의 테러를 ‘외톨이 늑대’(Lone Wolf)의 개인적 일탈행위로 규정하려는 일각의 판단은 사태의 본질을 호도(糊塗)하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위헌 결정으로 인해 종북파가 사멸되고 반미도발이 종식될 리 만무하다. 지금부터 우리는 ‘테러’까지 포함한 극단적 반미도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한 정책적 및 지성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둘째, 이번 테러사태는 핵·미사일로 무장한 북한의 각종 반미 도전, 그리고 한국 내 종북세력에 대한 반미교사(反美敎唆)에 입체적으로 대처해야 함을 시사한다. 북한은 김기종의 테러 직후, 이를 “전쟁광 미국에 대한 응징”으로 규정했다. 3대 세습과 핵무장으로 국제적 고립이 심화된 북한이 핵력을 통한 대미 모험주의와 대남 위협전략을 구사함으로써 한·미동맹의 파열을 기도한 것은 자명하다. 이 테러가 일어나기 전에 북한은 한·미 간에 연례적으로 실시됐던 방어적 연합훈련인 키리졸브 훈련을 전쟁도발이라고 전례 없는 강도로 비난하지 않았던가. 북한의 강변과 김기종의 백주 테러를 오비이락(烏飛梨落)의 우연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세습권력의 폭압화, 핵 모험주의, 외교적 고립에 의해 점증되는 북한체제의 불안정은 대한민국 내부의 제2, 제3의 반미 폭력사태의 개연성을 높일 수 있다. 한·미 양국의 정부와 국민은 점증하는 북한의 대미·대남 도전에 대응하여 동맹의 강도와 기민성을 제고해야 한다. 셋째, 중국의 대국화, 그리고 일본의 우경화, 군사화가 초래하는 동북아 국제질서의 유동성 증가는 한·미 양국에 힘든 선택을 강요할 수 있다. 강대국화한 중국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의 한국 배치에 대해 우리 정부에 거의 내정간섭 수준의 반대를 노골화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조야(朝野)에 탈미접중(脫美接中)을 압박하고 있다. 한편, 일본 아베 정권의 극단적 우경화 정책은 영토 및 과거사 문제와 군사대국화로의 이행을 가속화함으로써 미국의 대일·대한 동맹정책의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그 양상은 다르지만 한·미동맹의 결속을 파고드는 소위 ‘쐐기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미동맹은 대한민국 내부의 종북·반미세력의 준동, 북한의 핵 강압전략, 중국과 일본의 세력경쟁이라는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도전 요인은 동맹이 균열이 아니라 한반도의 태풍을 잠재우고 동시에 동북아 질서의 소용돌이를 안정화시키는 현존하는 강력한 국제정치의 기제가 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결합을 넘어선 자유민주주의적 체제가치, 자유시장과 문화와 인권의 보편주의가 공유된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테러사태에 직면하여 한·미 양국 정부와 국민이 보여준 성숙한 대응은 동맹에 대한 어떤 도전도 물리칠 수 있다는 양국의 결합력과 대응력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 국민은 이번 테러사태를 통해 대내외적 도전에 양국이 창조적으로 응전할 것이라는 신뢰를 다지고, 한·미동맹 공고화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확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 [씨줄날줄] ‘대동강 기적’ 대망론의 허실/구본영 논설고문

    남북이 분단된 지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도 방법론만 무성할 뿐 통일로 가는 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런 차에 그제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정책대학원 교수가 새로운 통일 담론을 제기했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우리의 경험을 북에 전수해 통일전에 ‘대동강의 기적’부터 이루자는 게 요지다. 좌 교수는 “(북한에) 자유경쟁시장을 요구하면서 ‘너희의 일당 독재 체제는 언급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현 북한 지배층이 이른바 ‘대동강의 기적’을 이끌도록 기회를 주자는 얘기다. 즉 북한이 “완전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는 아니지만 한국의 개발연대(1960∼80년대)처럼 비민주적 정치 체제하에서 ‘정부 주도하의 통제된 시장경제 체제’를 통해 경제 도약을 이루게 하자”는 취지다. 일단 김정은 체제를 용인해 북이 ‘박정희식 경제성장’을 이룩한 이후로 통일을 유보하자는 뜻으로도 들린다. ‘대동강의 기적’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이 잊었던 기억을 부른 건가. 1990년대 중반 독일 통일을 기획 취재하기 위해 고도(古都) 드레스덴을 찾았을 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2차대전 당시 폭격 흔적이 남은 낡은 빌딩들이 옛동독 사회주의 경제의 피폐함을 웅변하고 있었다. 저 멀리 엘베강 건너 편에서 누드로 해바라기를 하면서 자유를 만끽하는 청춘 남녀들을 보고 겨우 통독이 실감날 정도였다. 그런 드레스덴이 이제 독일에서 손꼽히는 미래산업도시로 발돋움했단다. 독일인들이 서독 시절 ‘라인강의 기적’에 이어 통독 후 다시 ‘엘베강의 기적’을 일군 셈이다. 독일의 두 기적은 구성원의 자유와 대외적 개방이 전제됐기에 가능했을 법하다. 그러지 못했기에 동독 시절에는 엘베강의 기적은 싹트지 못했을 게다. 두 가지 측면에서 동독이 지금의 북한보다는 훨씬 여건이 나았는데도 말이다. ‘대동강 기적’이 바람직하긴 하지만 비현실적 희망 사항으로 비치는 이유다. 좌 교수는 “북한은 한국의 중화학 산업을 인계받고, 한국은 정보기술(IT) 융복합, 고급 서비스 산업에 특화하면 상호 시너지 극대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경제적 효율성의 관점에서 볼 때 얼핏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극심한 경제난을 타개하려면 남한과 외부 세계에 문을 열어야 하나 그럴 때 체제가 흔들리는 북한의 진퇴양난을 간과한 느낌이다. 이는 오랜 인권 탄압과 우상화 선전이라는 북 정권의 원죄 탓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핵·개방 3000’ 구상이 헛발질로 끝난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에 나서면 1인당 주민소득 3000달러가 되도록 협력을 하겠다고 했지만, 세습 체제 유지가 1순위인 북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동강 기적 대망론이 또 다른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으려면 북한의 ‘개방 울렁증’을 치유하거나 세습 정권의 체질을 바꾸는 방안을 먼저 찾아야 할 듯싶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퇴직자 자녀 면접땐 5% 가산점…장기근속자 가족 우선 채용도

    12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4년 단체협약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자리 세습 규정을 단체협약안에 명시하는 행위는 제조업 분야(134곳)에서 노조 규모와는 관계없이 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 26곳, 의료보건 22곳, 기타산업 20곳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특히 퇴직자 등이 아니라 장기근속한 노조원 가족을 우선적으로 채용하거나, 채용 과정에서 퇴직자 자녀에게 가산점을 주는 등 불공정 채용 규정도 다수 발견됐다. 실태조사 보고서는 ‘실제 산업현장에서 이러한 조항이 얼마나 실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파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자리 세습에 대한 노사 간 명문 규정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채용을 둘러싼 집단이기주의와 모럴해저드를 반영하는 것으로 청년 구직자들의 박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가족에 대한 채용 혜택을 단협에 명시한 221곳 가운데 업무상 질병이나 사고를 당한 퇴직자 가족을 우선 채용하는 규정을 둔 기업이 156곳으로 가장 많았다. 이 밖에도 정년퇴직자 가족, 업무 외 질병 및 사고 사망자 가족, 정리해고자 가족에게 혜택을 주도록 한 곳도 있었다. 특히 퇴직하지도 않고 업무상 재해자도 아닌 현직 조합원의 가족과 장기근속자 가족을 우선 채용토록 한 기업도 13곳에 달했다. A사의 단체협약안에는 ‘정년퇴직자 및 업무상 재해자의 요구가 있으면 피부양 가족을 우선 채용한다’고 명시돼 있었고, B사의 경우 퇴직자 자녀에게는 면접 시 5%의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 구체적인 일자리 세습 방안이 단협안에 포함됐다. 아울러 전체 조사 대상 기업 727곳 가운데 24.9%인 181개 기업은 직원의 전근·전직 등 배치전환을 할 때 노조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일자리 세습 등은 노조로 인한 경영권 제한 사례”라면서 “기업의 생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편 노동자 복리후생·임금 등과 관련한 내용을 단협안에 규정한 경우는 미미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통상임금의 범위에 대한 규정이 단협안에 포함된 경우는 727곳 가운데 174곳(23.9%)에 그쳤다. 연봉제 규정을 둔 경우는 36곳(5.0%)이며 이 가운데 능력, 성과, 업적 등 평가를 통해 연봉을 결정하는 기업은 8곳(1.1%)에 불과했다. 단협안에 남녀고용평등 규정이 있는 경우는 28.0%,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규정하고 있는 경우는 14.7%에 불과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청년은 고용 절벽 노조는 고용 세습

    청년은 고용 절벽 노조는 고용 세습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맺은 국내기업 10곳 가운데 3곳은 퇴직자나 업무상 재해자 등의 가족에 대한 채용 혜택을 단체협약에 명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단 대기업뿐만 아니라 노조 규모가 100명 안팎인 기업도 해당됐다.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공정한 채용 절차를 거치지 않고 노조 조합원 가족에게 채용 혜택을 주는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은 2013년 말 기준으로 유효한 단체협약을 맺고 있는 727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2014년 단체협약 실태조사 결과’를 12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배우자와 직계자녀에게 채용 혜택을 주는 내용을 단협안에 적시한 곳은 전체 조사대상 727개 가운데 30.4%인 221개에 달했다. 이 가운데 채용과정 등에서 퇴직자나 업무상 재해자 등의 가족을 우선채용을 하도록 한 곳은 201개, 업무상 사망 또는 1~6등급 장애자의 가족을 특별채용을 하도록 정해 놓은 곳은 20개로 집계됐다. 우선채용의 경우 조합원 규모 1000명 이상은 36곳, 500~1000명 43곳, 300~500명 42곳, 100~300명 45곳, 100명 미만 35곳으로 노조 규모와 상관없이 전반적으로 고용승계를 단협안에 포함하고 있었다. 특별채용을 단협안에 규정하고 있는 기업은 조합원 규모 1000명 이상이 8곳으로 가장 많았고, 500~1000명 4곳, 300~500명 6곳, 100~300명, 100명 미만이 각 1명씩으로 집계됐다. 권영순 고용부 노동정책실장은 “일자리 세습은 많은 청년이 고용 절벽 앞에서 좌절하는 상황에서 노사가 사회적 책임을 갖고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구본영 칼럼] ‘서울 수’와 김기종, 그리고 ‘외로운 늑대’

    [구본영 칼럼] ‘서울 수’와 김기종, 그리고 ‘외로운 늑대’

    미군 장병들은 6·25전쟁 중 그녀를 ‘서울 시티 수(Sue)’라고 불렀다. 북한 방송에서 정확한 미국식 발음으로 이념 공세를 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서다. 미 아칸소주 출신으로 일제 말 기독교 선교차 이 땅에 들어왔다가 좌익 활동가 서균철과 사랑에 빠진 ‘애나 월리스 서’. 미군 병사들에겐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웠던 조국을 버린 수수께끼 같은 여성이었다. 휴전 후 그녀는 북한에서 미군 포로들을 상대로 이념 교육을 전담했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 유전은 ‘사랑에 속고 돈에 운’ 신파극으로 막을 내렸다. 한때 전쟁영웅 예우도 받았지만, 1969년 이중간첩으로 몰려 총살되면서다. 하긴 ‘원조 종북인사’ 격인 그녀가 더 오래 살았더라도 그리 행복했을 것 같진 않다. 사회주의 체제라고 하기도 민망한 3대 세습 왕조로, 그것도 세계 최빈국 반열로 전락한 북한을 보며 외려 절망했을 법하다. ‘우리마당’ 대표 김기종씨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공격한 배경이 새삼 궁금하다. ‘서울 수’는 세 치 혀로 고작 미군 병사의 사기를 약화시키는 데 그쳤다. 반면 김씨는 한국에서 미 정부를 대표하는 대사를 과도로 난자했다. 그가 북의 사주로 이런 테러를 감행했다고 예단하는 건 성급하겠지만, 적어도 자생적 종북주의자의 면모는 드러낸 꼴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대남 도발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이 방어 차원의 한·미 연합훈련을 전쟁연습이라고 하는, 북의 주장만 앵무새처럼 복창하면서 말이다. 스탈린의 공산 독재에 환멸을 느낀 철학자 칼 포퍼가 그랬다. “젊어서 좌파에 관심을 가져 보지 못한 사람은 심장이 없는 것이고, 어른이 되고도 그 생각을 바꾸지 못하면 머리가 없는 것”이라고. 김씨가 강산이 세 번 바뀔 세월 후에도 자신의 여생마저 망칠 테러를 저지를 정도로 1980년대 운동권의 반미·자주파의 정서에 박제돼 있다는 게 불가사의하다. 남루하기 짝이 없는 그의 신상이 하나둘 드러나자 의문은 다소 풀렸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그가 세든 다세대주택의 건물주는 “최근 네댓 달 집세도 밀렸다”고 했다. 같은 대학을 다닌 그를 잘 안다는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대변인은 “워낙 돌출적 행동을 많이 해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고 했다. 이 말대로라면 586 운동권에서도 부담스런 존재였다는 얘기다. 까닭에 어쩌면 그에겐 시대착오적인 반미 행각 이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50대 중반의 독신남인 그가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려 다른 퇴로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북한 당국조차도 궁지에 몰린 그를 이용하는 데만 급급해 있지 않은가. “정의의 칼세례”(노동신문)라는 식의 망발로 반인륜적 테러를 역성들어 외려 그의 종북 혐의만 더욱 짙게 하면서…. 그럼에도 김기종씨가 결딴낸 것은 한·미 동맹이 아니라 그러잖아도 절망적이었던 그의 인생이었을 듯싶다. 그렇다면 그의 ‘오버’를 방관하거나, 은근히 부추기며 즐긴 사람들이 있다면 마땅히 죄책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식의 종북 척결보다 우리 사회의 막다른 골목에서 극단적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주목하고 대책을 세우는 게 더 시급하다. 이들 ‘외로운 늑대’들이 종북적 사고에 젖지 않게 하는 첩경은 뭘까. 경제력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안전망과 복지에서도 남이 북을 압도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입증하는 일이다. 통독 전 서독이 그랬듯이. 물론 문제는 방법론이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어려운 계층부터 돕는 ‘소득재분배형’ 복지 대신 성급하게 ‘무상 시리즈’ 경쟁에 골몰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부유층까지 전면 무상 급식·보육 혜택을 주면서 필요한 재원을 충당하려고 저소득층의 혜택을 줄이는 역설이 빚어지고 있지 않은가. 복지엔 공짜는 없고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공동 부담만 있을 뿐이다. 당과 수령이 전 인민에게 뭐든 무상으로 준다는 ‘지상락원’ 북한에서 당정군 고위 간부가 아닌 보통 사람들만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는 걸 보면서 재확인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그래서 필자는 솔직히 김기종씨가 빼든 과도가 아니라 오로지 표 계산만 하는 ‘포퓰리즘 복지’가 나라를 거덜낼까 더 두렵다. kby7@seoul.co.kr
  • 한발 물러선 피케티

    지난 200여년 동안 부의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내용을 담은 ‘21세기 자본’의 저자인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가 오는 5월 발간할 새 책에서 이른바 ‘피케티 공식’을 도출해 낸 자료에 일부 오류가 있음을 인정하고, 수정할 계획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러나 피케티는 ‘갈수록 세습 자본주의가 강화되고 있다’는 핵심 아이디어는 유지할 생각이라고 WSJ는 덧붙였다.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을 웃돈다’(r>g)는 말로 요약되는 피케티 공식은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전체 경제성장률을 압도한다’는 뜻으로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빈부 격차가 줄어든다’던 주류 경제이론에 대한 반론이 됐다. 피케티는 200년 동안 30개국의 자료를 수집해 지난 세기 호황기인 1945~1975년 이후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는 줄곧 성장했지만, 불평등은 심화됐다는 점을 입증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21세기 자본’이 출간되고 7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파이낸셜타임스는 “피케티가 공식을 유도할 때 일부 수치를 생략했거나 잘못 기입했고, 이를 수정하면 1970년 이후 유럽 내 불평등은 상향 추세로 나타나지 않는다”며 오류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그동안 피케티는 “일부 오류로 인해 부의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결론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해 왔다. 하지만 피케티는 새로운 저작인 ‘21세기 자본에 대해’에서 기존의 입장을 다소 누그러뜨릴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신간에서 “r>g 공식이 20세기 소득과 부의 변화를 설명하거나 21세기 불평등의 궤적을 예측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날 부의 불평등은 100년 전보다는 훨씬 덜 심각하다”며 한발 물러섰다고 WSJ는 전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열린세상] 철 지난 반미구호와 종북테러/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열린세상] 철 지난 반미구호와 종북테러/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서울 한복판에서 주한 미국대사를 테러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 김기종은 개인적으로 아무 관계없는 마크 리퍼트 대사에 대한 테러를 10여일 전부터 준비했고, 민화협 조찬강연회 당일 이를 자행했다. 현장에서 그는 한·미 동맹을 비난했고 미국의 전쟁 준비로 이산가족이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철 지난 반미 구호를 외쳤다. 대다수 국민과 언론, 외신들은 ‘있을 수 없는 일’, ‘반인륜적 테러’, ‘한·미 동맹에 대한 테러’ 등 비판적 견해를 쏟아내면서 배후세력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북한 조평통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는 종북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리퍼트 대사에 대해 ‘북침 전쟁을 몰고 올 흉악한 기도’, ‘함부로 혓바닥을 놀리다가 종말을 맞이할 것’, ‘리퍼트는 긴 혀는 제 목을 감는다는 말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라는 위협적 발언을 반복해 왔고, 특히 사건 당일 새벽에는 ‘…명줄을 완전히 끊어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건 직후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이 사건을 ‘정의의 칼 세례’, ‘남녘 민심을 반영한 응당한 징벌’이라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북한이 남한의 종북주의자들을 대상으로 리퍼트 대사에 대한 테러를 지속적으로 선동해 온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이 종북세력에 의한 기획 테러인지는 수사의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이 원하는 것을 수행할 극단적 종북세력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그것이 한·미 동맹과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이러한 반응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한 언론은 ‘미 대사 습격사건, 드러난 것도 없는데 테러?’라는 제목을 뽑았다. 검찰이 이번 사건을 ‘테러로 간주’하고 수사하는 것의 적절성을 문제 삼은 것이다. 중국이나 야권도 외교관에 대한 테러로 정의하는데도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에 테러로 간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 미국 정부도 테러 대신 개인의 일탈행위나 공격, 폭력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제시됐다. 미국이 테러라는 표현을 자제한 것은 이 사건의 본질이 테러가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다. 정치적, 이념적 입장에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은 분명 테러행위다. 미국이 테러라는 표현을 피하는 것은 가장 안전한 우방국이었던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자국 대사가 당한 테러가 공식화되는 것이 외교정책상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지, 결코 김씨의 행위가 테러가 아니어서가 아니다. 이 사건은 통일운동을 가장한 한 종북주의자에 의한 일탈적 행위라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채택해 운영해 온 지난 수십년 동안 북한의 주장에 무조건 동조하고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확산시키기 위해 정치적 폭력이나 테러를 서슴지 않는 세력이 자라났고 그들은 통일운동, 독도지킴이 등 우리의 염원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한·미 동맹이 없어져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그들이 소수라고 해서 그 위험도 별것 아닐까? 또 이러한 행위를 할 사람들이 김씨 하나만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데도 ‘개인의 일탈행위’로 정의하고 말아야 할까? 물론 이 사건이 무분별한 공안정국으로 확대되거나 특정 정치세력의 이익을 위해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핵무기로 무장하고 시도 때도 없이 우리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을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로서는 아무리 작은 사건이라도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것에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사자인 리퍼트 대사의 의연함과 한·미 양국의 성숙한 태도다. 김씨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비난하며 사실상 한·미 동맹에 대한 테러를 자행했지만 오히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고 양국의 처리과정은 한·미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왜 이렇게 조용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입만 열면 인권과 자유, 평화를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사표시가 없다. 마치 북한의 3대 세습이나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해 입을 닫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 [사설] 反테러법 제정 필요성 일깨운 美대사 피습

    ‘우리마당’ 대표 김기종씨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를 공격하면서 한국사회도 테러의 안전지대가 아님이 확인됐다. 북한은 연일 김씨의 반미 행위를 옹호하고 있다. 북 조국평화통일위는 어제 “전쟁책동을 반대하는 행동이 테러라면 안중근 의거도 테러인가”라고 되물었다. 전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정의의 칼세례’로 비호한 연장선상에서 나온 망발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비이성적 테러가 언제든 재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면 이를 막을 테러방지법 제정 등 제도적 대비도 불가피하다고 할 것이다. 물론 김씨가 북의 사주로 미 대사를 공격했다고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앞두고 펼친 북한의 지속적 반미 공세가 이를 부추긴 측면은 있다. 리퍼트 대사 피습 당일 새벽 북 선동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광증에 걸린 적들의 허리를 부러뜨리고 명줄을 완전히 끊어 놓아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피해 당사자인 리퍼트 대사는 물론 양국 정부와 국민의 의연한 대응으로 한·미 동맹의 대의가 훼손될 것이란 우려는 덜게 됐다. 하지만 북과의 연계 여부를 떠나 우리 사회가 극단적 과격파의 테러에서 100% 안전하지 않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최악의 경제난과 총체적 국력의 열세로 북이 당장 전면전을 감행할 가능성이 희박해진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북 정권이 세습체제를 지키기 위해 테러와 같은 비대칭 도발을 저지를 개연성까지 배제하긴 어려울 게다. 며칠 전 북 매체는 “전쟁이 나면 원전이 많은 남한은 폐허가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이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격추 등 누차 대남 테러를 감행한 전력을 떠올린다면 섬뜩하다. 북의 위협을 떠나서라도 테러 방지를 위한 촘촘한 그물망을 짜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얼마 전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합류하기 위해 김모군이 제 발로 시리아로 떠났다. 최근 피붙이 가족을 겨냥한 총기 사건도 잇따르지 않았는가. 호미로 막을 일을 큰 희생을 치른 뒤 가래로 막으려 해서는 안 될 말이다. 지금 국회에는 3건의 테러방지법안이 길게는 몇 년째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기에 하는 얘기다. 이 법안들은 내용이 다소 다르지만 대부분 과격한 테러의 가능성이 있는 개인의 통신 정보 수집과 출입국을 규제할 수 있는 길을 터놓고 있다. 이들 중 하나라도 입법이 됐더라면 김씨는 사건 전에 위험인물로 분류됐을 법하다. 그랬더라면 그가 이번에 조찬강연장에 들어가 과도로 미 대사를 난자하고 자신의 인생도 망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정보기관의 권한 남용과 인권 침해 소지를 들어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경청할 이유는 많다. 권위주의 정부뿐만 아니라 1987년 이후 역대 직선제 정부 정보기관의 전비(前非)까지 감안한다면 그렇다. 그러나 이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단계를 넘어서야 할 때다. 국가정보원의 사찰 등 권한 남용 가능성 등은 국회 정보위원회 등을 통해 적절히 통제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게다. 국회는 인권 침해 소지를 최소화하면서 자생적 테러를 막는, 엄밀한 감시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조속히 강구하기 바란다.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 재벌 후세 경영인 모럴해저드 방지 방안은

    [재계 인맥 대해부 (2부)] 재벌 후세 경영인 모럴해저드 방지 방안은

    서울신문이 재벌가 스토리를 책으로 묶은 ‘재벌가맥’ 출간 이후 10여년이 지났다. 그동안 재벌가 지형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서울신문은 신흥기업 인맥 해부에 이어 지난 3개월간 삼성, 현대차, SK, LG, GS, 롯데, 한화, 한진, 두산, 대림, 금호아시아나그룹 등 재벌 그룹과 방계 그룹의 후대 경영인들을 심도 있게 조명했다. 큰 변화는 없었지만 각 기업들은 변혁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지난해 삼성을 비롯한 각 그룹의 승계 작업은 급물살을 탔고 덩달아 재벌 3, 4세의 행보도 도드라졌다. 특히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으로 재벌 3, 4세의 인격과 자질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우리 재벌은 어디로 가야 할까. 이종락 서울신문 산업부장의 사회로 박상인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 고려대 학생인 신종식씨와 함께 후대 경영인의 자격 검증과 과연 기업은 누구의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봤다. →지난해 조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이 반재벌 정서에 불을 댕겼다. 재벌 3, 4세의 일탈이 기업의 문화와 가치를 파괴하고 있다는 분석도 많았다. 일단 기업은 누구의 것인지부터 정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박상인 교수(이하 박 교수) 상장 기업을 영어로 퍼블릭 컴퍼니라고 한다. 공공 회사란 뜻이다. 상장을 했다는 건 사업 대다수를 일반인의 자금을 이용해 경영한다는 의미다. 때문에 실제 주인은 주주들이다. 경영과 소유가 분리돼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규제도 충분하지 않다. 상장기업에 대한 규제가 엄한 미국, 유럽과 달리 기업 집단 형태인 재벌이 나타나는 이유다. -박주근 대표(이하 박 대표) 일본의 부호 순위를 보면 최근 20년간 랭킹 100위 안에 신흥 부호가 81%를 차지한다. 매년 10% 정도가 이름이 바뀌는 역동적인 시장이다. 우리는 최근 20년간 자산 순위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 85%가 재벌 일색이고 10% 정도가 신흥기업인데 이마저도 지난 10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 상장은 기업 성장의 모멘텀이다. 그런데 주식회사의 권리 자체에 대한 이해가 많이 떨어져 있다. 기업에 대해 본질적인 정의를 고민할 때다. -박 교수 한국식 재벌 경영을 ‘황제 경영’이라고 한다. 잘되면 황제 덕이고 못하면 신하 탓이다. 권한은 행사하는데 자기 책임은 지지 않는다. 장치가 미비하니까 황제 경영이 가능하고 기업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생기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다. →재벌 3, 4세들은 별다른 자격 검증 없이 기업을 물려받는다. 자격 검증 같은 것을 작동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박 교수 오너 일가가 가장 잘할 수 있다면 오너 일가가 경영하는 게 맞다. 자격이 되고 안 되고를 따지지 않고 그냥 자식에게 물려주니까 문제인 거다. 세습이라고 표현하는데 우리 일부 재벌은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돈을 벌면서 세습을 한다. 물론 최선의 선택이 자식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겨 부를 기대하는 것보다 자식한테 기업을 물려주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다. 이 기형적인 구조를 법으로 끊어야 한다. -박 대표 주주들이 재벌 3, 4세를 검증해야 하는데 이를 검증할 사외이사 제도는 현시점에서 거수기 역할을 할 뿐이다. 실제 대한항공의 예를 들면 사외이사가 5명인데 조양호 회장의 동기동창인 경복고 출신이 3명, 1명은 인하대 쪽이다. -신종식씨(이하 신) 전문 경영인조차 능력을 객관화하는 일이 쉽지 않다. 경영 능력에 대한 검증을 요구하기보단 최소한의 자격 요건을 까다롭게 두고 이사회와 일반 주주, 여론을 납득시켜야 한다. 스웨덴의 발렌베리가에서 후계자들에게 스스로 대학을 졸업할 것을 요구하거나 의무적으로 해군 복무를 시키는 것과 같은 방식을 고려해 볼 만하다. -박 대표 일본의 도요타는 5대가 대표를 맡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일본 내 자산 순위는 50위에 불과하다. 그동안 전문경영인들이 도요타를 대표하는 경우도 많았다. 부의 승계가 아니라 가업 승계가 이뤄진 셈이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현재 일본 자산가 1위는 새로운 개념의 경영방식을 도입해 회사를 창업한 유니클로 사장이다. -박 교수 재벌은 사회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은 계열이지 재벌이라는 표현이 없다. 도요타의 경우에도 이사회의 전략적 판단에 의해 전문경영인과 도요타 가문을 번갈아 대표로 앉히는 거다. 미국의 자동차업체 포드도 마찬가지다. 가업 승계는 사실 중소기업의 이야기다. 경제력 집중의 문제를 막지 않고는 시장경제도 민주주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법조계, 언론, 정치인, 학자에 대해 재벌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사회 전체의 이익보다 재벌의 이익을 중시하니까 법치도 무너지는 것이다. 세습은 경제력 집중을 유지시킨다. →오너 경영의 긍정적인 측면은 없나. -신 오너 경영 환경 아래서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전문경영인은 권한 못지않게 책임도 강조되기 때문에 큰 결단을 내리는 데 주저할 수 있다. -박 교수 전문 경영인이 옳다 오너 경영인이 틀리다가 아니라 감시 감독 체제가 두 환경 모두에서 잘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적합한 사람이 경영을 하면서 내·외부 사회 통제 시스템이 지켜져야 한다. →그렇다면 재벌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박 교수 일감 몰아주기를 일단 막아야 한다. 경제적 논리를 가질 수도 있지만 일감 몰아주기는 터널링(사익 편취)을 하기 때문에 나쁘다. 지난해 6월 법이 제정됐지만 너무 허술하다. 지주회사 구조도 단순하고 투명하게 바꿔야 한다. SK그룹은 SK가 지주회사인데 모든 SK계열사가 그 밑에 없다. SK C&C는 지주회사 밖에 있어 지주회사를 지배한다. 지주회사가 열심히 키워서 SK C&C에 얹으면 승계가 간단하다. SK C&C의 최대 주주는 최태원 회장이다. 탈세, 배임, 횡령의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 재벌들이 편법적으로 세습할 길이 멀어지면 일을 더 열심히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일을 잘하는 후세들이 이윤을 내서 자기 이익을 만드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신 반기업 정서는 대부분 반기업가 정서다. 재벌 정책들이 여론에 떠밀려 난무하고 있으나 막상 의표를 찌르는 정책은 부족한 것 같아 아쉽다. 편법승계 부당이익 편취 등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든다. 재벌 눈치를 보지 않고 법이 좀 더 엄격하게 집행돼야 한다. →서울신문 재벌 인맥 시리즈 2부 ‘후대 경영인의 명암’이 마무리됐다. 총평을 부탁한다. -박 교수 최근 미국의 한 교수가 한국의 재벌 인맥 데이터를 요청했다. 이 기사들을 모아 줬으면 좋았을 뻔했다. 재벌 인맥과 관련한 데이터 지도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시장 경제를 제대로 세워야 혁신이 나오고 시장 경제를 세우려면 경제력 집중을 해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재벌 문제를 심도 있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끼리끼리 만나다 보니 우리 기업들은 진입 장벽이 너무 높다. 정치 세력과 언론 세력이 혼맥으로 얽히면서 담이 생겼다. -박 대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재벌의 부정적인 폐해는 감시를 통해 바로잡아 줘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삼성이나 현대차가 나온다. 지금 구조에서는 혁신적인 기업이 더 크기 어렵다. 잘하고 있는 기업을 키워 주되 잘될 수 있는 기업도 나오게 환경을 바꿔 줘야 한다. 그러려면 언론이 기존의 잘못된 재벌 문화에 대해서는 제대로 지적해야 한다. -신 이번 시리즈를 통해 우리나라 재벌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게 됐다. 언론이 좋은 콘텐츠로 계속해서 소비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줘야 한다. 재벌의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재벌에 대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이에 대항할 유일한 힘은 소비자들의 행동이라고 믿는다. 정리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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