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세습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미러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544
  • 권력안정·대남교란 “다목적 책략”/북은 장례식 왜 연기 했을까

    ◎「후광」 더 이용 세습체제 구축 강화/「조문파문」 부추겨 국론분열 속셈/김정일 권력승계에 이상기류 관측도 북한이 16일 돌연 김일성장례식을 연기한다고 발표해 그 배경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이 그토록 우상화해온 신성불가침적 존재인 김일성의 장례식을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이틀이나 연기한데다 그간의 사회주의국가 최고지도자들의 장례식에서 일정이 연기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북한 국가장의위원회는 『전국각지의 각계인민들의 김일성수령에 대한 조의참가가 날로 늘어남에 따라 이같은 인민들의 절절한 심정과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그 배경을 밝히고 있긴 하다.하지만 북한정권의 종래 행태나 속성으로 보아 이같은 피상적인 설명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때문에 정부당국과 북한전문가들은 ▲세습체제구축강화를 위한 내부결속 다지기 ▲조문파문확산을 겨냥한 대남교란목적 ▲김정일후계체제의 이상기류 등 크게 3가지 측면에서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있다. 다만 현재로선 외부보다는 그들 내부의 필요성에 따라 장례식을 연기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한 편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우선 김일성장례식을 김정일의 후계체제강화에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연기했다는 시각이 제기된다.아직 입지가 불안한 김정일로선 그에게 권력을 물려준 아버지 김일성의 「후광」을 좀더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주민들의 조문행렬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바랄 것이라는 관측이다. 장례식을 영결식(19일)과 추도대회(20일)로 2원화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일 수도 있다.즉 일단 실제장례식은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주석궁 등에서 간단히 치르고 김정일의 후계체제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군중집회성격의 대규모추도대회를 별도로 갖기 위한 계산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평양의 김일성광장 등에서 북한의 정당·사회단체 등을 총망라한 가운데 열릴 추도대회는 곧 김정일추대식의 성격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이 경우 1백만명이상의 군중집회를 소집하기 위해선 북한의 원시적 교통체계 등을 감안한다면 상당한 준비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장례식일정의 연기가 불가피한것으로 추측된다.물론 김정일의 요즈음 건강상태가 무더운 날씨속에 2∼3시간을 버틸 형편이 아니라는 점도 또 다른 연기배경일 수 있다. 북한의 과거행태로 보아 김일성조문과 관련한 논쟁이 확산되고 있는 우리측을 겨냥해 교란 내지 선동을 더욱 부추기려는 복선도 상당히 깔려 있는 것으로 감지된다.이는 북한이 최근 김영삼대통령에 대한 비방을 재개하고 학생운동권등에 대해 조문단파견을 선동하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특히 북측이 장례식을 주사파등 남쪽의 극렬반정부운동권행사와 연계해 치르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첩보도 있다.이는 경직된 북한식 사고로는 남한이 그 정도의 선전선동에는 흔들리는 체제가 아니라는 것을 의외로 간과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김정일로의 권력승계의 이상기류를 반영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즉 김정일이 김일성만한 권력장악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핵심요직인사문제에 대한 북한 권력핵심부간 내부적 합의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이를테면 김정일이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직을 모두 차지할 것인지,아니면 국가주석직은 이른바 혁명1세대에게 물려줄 것인지 내부입장정리가 덜 끝났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결정적 이상이 생겼다고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장례식연기발표 이후에도 북한방송들을 통한 김정일받들기 분위기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김정일이 장례식추도사 등을 통해 밝힐 향후 북한체제의 지향노선에 대한 당정치국위원들간의 이견해소차 좀더 시간을 갖기 위해 장례식이 연기됐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장례식연기의 정확한 진상은 폐쇄적인 북한사회의 속성상 어차피 시간이 지나야만 드러나게 마련이다.다만 정부로선 이 여러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장례식이 미뤄졌을 경우 북한체제의 불안정성이 그만큼 확대될 것으로 보고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김 일가 30여명 핵심요직 포진/「김정일 친인척」의 현주소

    ◎당·행정·입법·사회단체 노른자위 독식 앞으로 김정일체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세력은 그를 둘러싸고 권력핵심에 포진해 있는 친인척들이다 사망한 김일성이 체제장악과 세습체제 구축을 위해 그동안 핵심 요직에 앉혀놓은 친인척은 약 30여명에 이르고 있다.북한권력의 핵심부인 노동당을 비롯,행정과 입법 사회단체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요직을 맡고 있는 것이다. 당에서는 당정치국원이자 부주석인 김영주(김일성의 친동생)박성철(김일성의 4촌동생 남편)을 비롯,당비서인 황장엽(김일성의 고종4촌동생 남편)당중앙위원회 부부장이자 3대혁명소조 사업부장 장성택(김정일의 매부)등이 버티고 있다. 정무원등 행정분야에 포진해 있는 인사는 정무원 총리 강성산(김일성의 이종사촌동생)을 필두로 부총리 김창주(김일성의 4촌)경제사업부 부부장 김정우(김일성의 고종4촌동생)화학공업부부장 강린수(김일성의 외4촌)등이다.이밖에 사회안전부 정치국장 장성우(장성택의 형)인민무력부 작전국 3처장 강운룡(김일성의 외5촌 조카),노농적위대장 강성룡(〃)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외교쪽에는 핀란드대사 김평일(김정일의 이복동생)오스트리아 대사 김광섭(김정일의 이복여동생 김경진의 남편)등이 있다. 또 입법기구인 최고인민회의 의장엔 김정일후계체제의 이론적 토대를 세운 양형섭(김신숙의 남편)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 친인척들은 김정일 체제에서 상당한 자리바꿈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이들중 김정일의 숙부인 김영주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게될 지 주목되며 그동안 김정일과 사이가 좋지않은 것으로 알려진 계모 김성애와 김평일은 한직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 김정일의 「논문」 통해본 사상관

    ◎최고 수뇌로 집단체제 대표… 무조건 충성을/지도자관/육체생명은 부모·사회생명은 수령에 받아/인민관/당영도·계승성 보장… 「우리식 사회주의」를/체제관/개혁·개방에 긍정적… 동구붕괴이후 “후퇴”/경제관 아버지 김일성의 사망으로 권력을 세습한 김정일은 북한의 발표대로라면 대단한 이론가요 저술가이다.그가 썼다는 논문은 자그만치 4백여편.김일성이가 썼다는 1천2백여편에는 크게 못미치지만 대단한 양이다. ○논문 4백여편 그가 김일성대학을 졸업하면서 낸 논문은 「사회주의 건설에서 군의 위치와 역할」로 알려져 있으며 북한이 그의 논문이라고 해서 처음으로 82년 3월에 공개한 것은 「주체사상에 대하여」였다. 그가 이처럼 많은 논문들을 직접 쓴 것인지,아니면 그의 측근 이론가나 학자들을 동원해 대필한 것인지 알길이 없다.그러나 이 논문들은 앞으로 북한을 이끌어 나갈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김부자가 이렇게 많은 논문을 낸 것은 그들이 대단한 사상가이자 이론가임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사상학습을 통해 북한 주민들을 무장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민족통일연구원 책임연구원인 김병로박사는 풀이했다. 김정일은 권력을 순조롭게 물려받기 위해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수령론」을 체계화하는데 주력해왔다.수령을 정점으로 하여 당과 인민대중을 하나로 결합,사회정치적으로 「영생하는 존재」라는 것을 이론화한 것이다.수령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최고수뇌로서 집단의 생명을 대표하고 있는 만큼 수령에 대한 충성심과 동지애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이라는 주장이다.이는 대외 자주성 강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이른바 「주체사상」을 수령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론화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인민을 수령의 종속집단으로 본 그는 인민에 대해 자유로운 의사를 표시할수 있는 개인으로 독립시키지 않고 조직·집단속에서만 존재하는 개체로 보고 있다.자유주의사회에선 인민을 시민으로 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집단적 성격을 갖는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그의 논문에선 인민을 수령·당·인민대중의 삼위일체적 관점에서 생명체의 한 요소로 중시하는 듯 하고 있지만 내용적으론 수령과 당에 철저하게 충성·복종해야 하는 봉건시대의 신민의 입장으로 이해하고 있다.인민은 부모로부터 「육체적 생명」을 부여받지만 수령으로부터는 「사회적 생명」을 부여받는다는 주장이다. 김정일은 체제관을 정립하는데도 힘썼다.공산권 개방·개혁물결의 흐름을 보고 위기감을 절감한 나머지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것을 부르짖고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우리식 사회주의에 대해 91년5월 당중앙위에서 발표한 담화를 통해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하고 3대 혁명으로 사회주의건설을 추진하며,수령·당·대중이 하나가 되는 집단주의 원칙과 당의 영도및 계승성을 보장하는 사회체제』라고 규정하고 있다.「우리식 사회주의」란 동구의 몰락에 대응하기 위한 북한 나름의 국가체제관이라 할수 있다. 그는 경제와 관련,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켜 그 바탕위에서 경공업과 농업을 발전시킨다는 중공업 우선주의라는 전통적 사회주의 경제관을 강조해왔다.김일성과 마찬가지로 기게공업을 비롯한 중공업을 자력갱생의 기반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그는 83년 중국의 경제특구를 둘러보고 돌아온 뒤 경공업의 중요성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그는 84년 「인민생활을 높일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신경제정책 논문을 발표하면서 평양의 광복거리 등 신주거단지를 조성하는 등 주민들의 인기를 끌 수 있는 의식주문제에 눈을 돌려 경제발전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그는 개혁·개방에 대해선 비교적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이었으나 동구의 붕괴가 가속화된 시점부터는 이를 경계하기 시작하는 논조를 보였다.
  • 김정일의 핵정책은(김일성 사후:6)

    ◎체제존망 걸린 문제… 불투명성 여전/3단계회담 지켜봐야 속셈 드러날듯/“경제 살리려 핵해결 불가피” 낙관도 북한주석 김일성이 죽었다고 해서 겉으로 보면 변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김일성체제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 말고는 핵문제도 그대로 있고 한반도에 대한 미·중·일·러등 주변국가들의 이해관계도 여전하다.김일성의 사망후 주변 4나라의 움직임을 보면 김정일체제가 굳어져 가고 있는데 대한 대응책에 부심하고 있는 듯하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권력세습이 이처럼 별무리 없이 이루어진다면 김일성이 죽기 직전 강경노선에서 대화쪽으로 선회했던 핵정책 또한 게속성을 지닐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적절한 타결책이 모색되리라는 긍정적인 분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그러면서도 김정일이 오랫동안 실무를 지휘해왔다고는 하나 그의 일처리 방식이나 개성,사고구조가 전혀 노출되지 않아 어떤 방식으로 나올지를 궁금해 하고 있다. 김일성 사망후,바꿔말해 새로 출범하는 김정일체제하에서 북한핵문제가 굴러갈 방향을 짐작하게 해주는 유일한 실마리는 지난 10일 미국과 북한의 3단계 고위급 회담 미국측 대표인 갈루치 국무부 차관보와 북한측 대표 강석주외교부 부부장사이에 이루어졌던 합의이다. 북한과 미국은 이때 미국과 북한의 고위급회담을 김일성장례식후 속개할 것에 합의했으며,특히 북한은 기존의 노선을 견지할 것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이러한 합의가 일정의 연기에 관한 것일뿐 그동안의 쟁점사항에 대한 합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에서 북한핵문제의 해결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라고 할수있다. 게다가 김일성이 죽어버린 현재의 상황은 북한으로서는 분명히 위기상황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주민들을 자극,인위적인 단결을 도모해야 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또 이번 합의는 대화의 불씨를 살려두었다는 점에서 당분간 대화국면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만을 가능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이 김일성의 장례도 치르지 않은 와중에서 미국과의 3단계 고위급회담과 심지어 남북정상회담도 가질 의사를 표명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결과를 낙관적으로만 바라본다는 것은 성급한 일이란 지적도 나온다. 대부분의 북한핵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카드를 생존 차원에서 다루고 있는 만큼 그리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있다.이제껏처럼 밀고당기는 지루한 싸움이 당분간 계속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아직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김정일체제로서는 외부에 국력을 분산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적인 이유와 경제개발과 개방에 힘을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체제의 한계 때문에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핵문제의 해결점을 찾아 나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특히 북한의 핵문제는 「김일성의 사망」이라는 충격으로 국제사회에서의 초점이 흐려지고 있지만 이는 앞으로 김정일체제의 존망과도 직결되어 있는 중요한 현안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앞으로 있을 미국과 북한의 3단계회담이 성사되면 남북정상회담에 임할 북한의 태도까지 미루어 짐작할 수있는 중요한 가늠자 구실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회담의 성과와는 별도로 외부에서 궁금해 하는 김정일의 사고성향,핵문제등에 있어서의 역할,체제의 안정수준,그리고 앞으로 그의 정책방향에 대해 많은 단서를 제공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 3대혁명 소조/만경대혁명학원/김정일 버팀목 “쌍벽의 두집단”

    김일성 사망후 북한의 세습군주로 부상하고 있는 김정일에게는 그를 지탱해주는 2개 특수집단이 있다.만경대혁명학원 출신집단과 3대혁명소조가 바로 그것이다.만경대학원 출신들이 일종의 두뇌집단이라 한다면 혁명소조는 친위조직으로서 김정일을 돕고 있다. ◎김의 모교… 소장졸업생 대부분 직계 활약/주도권 쟁탈전땐 「돌격대」역 맡을 가능성 김정일의 모교로 졸업생들 가운데 소장그룹 대다수가 김정일의 측근을 형성하고 있다.극소수 김정일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40∼50대는 대개 김정일파로 분류된다.김정일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만경대혁명학원이다. 만경대혁명학원은 혁명유가족의 자녀들과 당·정 고위간부들의 자녀들에게만 입학이 허용되는 특수학교다.아니 귀족학교라는 표현이 더 옳다.북한의 특수학교로는 또 강반석혁명유자녀학원 해주혁명유자녀학원이 있다. 만경대혁명학원은 지난 47년 10월21일 평남 대성군에서 문을 열고 3백35명을 수용했다가 다음해인 48년 현재의 평양 만경대로 이전하면서 수용인원도 5백22명으로 늘렸다.요즈음 학생수는 9백여명.교육기간은 유치원 상급반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을 포함해 모두 11년이다.인민무력부 소속으로 학생들은 재학기간동안 장교복장을 하고 의무적으로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한다.졸업후 최우선적으로 김일성종합대학에 진학하거나 장교임관 또는 당·정의 초급간부로 기용된다.원하면 해외유학을 갈 수도 있다.이 학교에 입학만 하면 북한사회의 엘리트코스를 밟을 수 있다. 졸업생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정일말고도 강성산(정무원총리)서윤석(평남도당책겸 인민위원장) 전병호(당비서) 최태복(당비서) 연형묵(자강도당책겸 인민위원장) 김환(부총리겸 화학공업부장) 윤기정(재정부장) 오극렬(전군총참모장) 김광진(인민무력부부부장)등이 있다.김정일 오진우(인민무력부장)에 이어 당서열 3위인 강성산과 연형묵 오극렬 최태복 전병호 김광진등 사방을 둘러봐도 대부분 김정일의 직계들이다.정무원총리를 역임했으며 남북고위급회담 단장으로 서울에 왔던 연형묵도 김정일의 사람으로 분류된다.김정일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젊은 층은 당·정에 폭넓게 포진해 김정일이 혁명 1세대들에 맞서 권력을 쟁취해가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앞으로 북한 내부에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질 때 김정일의 돌격대로 나설 공산이 크다.상류층의 자제들로 구성돼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개방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김정일의 술친구들은 대부분 김정일 또래의 만경대혁명학원 동창생들이다. ◎혁명2세대 「친위조직」… 2인자부상 기여/총10여만명… 73년 김영주 축출에 앞장도 이른바 북한의 혁명 2세대는 바로 3대혁명소조를 가리키는 것이다.김정일이 김영주 김성애를 누르고 김일성 다음가는 2인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데는 3대혁명소조의 뒷받침이 눈부셨다.김정일이 책임자인 부장에 매제인 장성택을 임명한 것을 보아도 그가 얼마나 이 조직에 애착을 갖고 있는지 금새 알 수 있다.장성택은 김정일과 함께 김정숙에게서 태어난 김경희의 남편이다.당서열 1백위권 밖에 머루르고 있지만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 3대혁명소조는 지난72년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규정된 「3대혁명」에 따라 73년 2월 발족됐다.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72년 12월 노동당 중진들의 비밀회의가 있은지 두달남짓만이다.「3대혁명」이란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이르는 것으로 3대혁명소조 역시 이들 3분야로 나누어져 있다.소조원은 당원과 국가기관종사원 대학생 대학교원 기술자 과학자 가운데 미혼남녀로 구성돼 있다.지난 83년 9월 개최된 3대혁명소조원 대회에서 현인원 4만6천명,소조를 거쳐간 인원 11만명으로 발표된 바 있으나 그 뒤에는 정확한 숫자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3대혁명소조는 당정책의 관철이라는 표면적인 명분 아래 간부들의 보수주의 경험주의 요령주의 기관본위주의 관료주의를 개조하기 위한 사상투쟁을 활동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중국으로 치자면 문화혁명을 주도한 홍위병인 셈이다.김정일의 직접 지휘 아래 각급 생산단위는 물론 행정기관 문화기관 학교등에 파견돼 기존의 당조직과 더불어 활동해왔다.하지만 사상투쟁의 실질적인 목적은 김정일의 반대세력 견제와 그의 후계체제 구축이다.3대혁명소조는 사실상 노동당 조직과는 따로 움직이는 김정일의 사조직인 것이다. 김정일은 3대혁명소조를 김영주를 제거할때 제일 먼저 이용했다.73년 당시 당조직부장이었던 김영주를 그릇된 사상의 찌꺼기를 가진 사람으로 몰아 마침내 한직으로 축출하는데 성공했다.김정일은 여맹위원장이었던 계모 김성애를 견제하는 데도 3대혁명소조를 동원했다. 하지만 유사시 김정일의 명령에 따라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준비가 돼있는 김정일의 수족으로 알려져 있다.
  • 김정일체제와 남북정상회담(사설)

    김정일의 권력 승계가 예상보다 빠르고 순조롭게 마무리되고 있는 것같다.김일성사망 이후 나타나고 있는 북한사회의 동태를 보면 김정일이 당·정·군의 실권을 거의 완벽하게 장악했음이 확실해지고 있다. 김일성사후 북한의 권력이 그의 아들에게 세습될 것이란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 이상할 것도 없고 놀랄일도 아니다.우리로서는 북한의 부자세습체제를 비판해왔고 또 KAL기폭파사건등 김정일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무자비한 대남도발만행 때문에 그가 북한의 새로운 독재자로 등장한 것에 대해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서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김정일이 당·정·군의 전권을 장악한 이상 그를 북한의 통치자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그것은 하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김정일체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그리고 북한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그체제가 안정기반을 다지기까지는 그의 아버지 김일성의 대외및 대남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미·북고위급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의 계속추진을 희망하고 있는것이 그것을 입증한다.미·북고위급회담은 오는 18일 뉴욕에서 재개될 예정이며 남북정상회담은 8월에 개최할수 있도록 하라고 김정일이 직접 지시했다고 한다.김정일이 미국과의 고위급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을 서두르는 이유는 이 두회담이 자신의 체제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노리는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는 불투명하다.미·북고위급회담이 예정대로 재개될 경우 이 회담을 지켜보면 김정일의 진의가 어느정도 파악될 것으로 생각한다.또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그의 자세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가 이 시점에서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남북정상회담의 절차와 조건이다.미·북고위급회담은 기존의 원칙에 따라 진행하면 되겠지만 남북정상회담은 상대가 바뀐 이상 회담의 절차나 조건을 새로 논의하고 합의해야 하는 것이 순서요,도리일 것이다. 우리는 김영삼대통령과 김정일의 정상회담을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그러나 김일성과 합의한 사항이 김정일과의 회담에서 그대로 적용되어서는 안된다.김일성과의 합의에서는 우리정부가 그의 나이와 건강을 고려,회담장소를 평양으로 정하는데 동의하고 상호주의원칙도 일부 양보했으나 김정일과의 회담에서는 상호주의원칙이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만약 김영삼대통령이 평양에 간다면 김정일은 반드시 서울에 온다는 것을 약속해야 할 것이다.아니면 제3의 장소를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상회담을 우리가 서둘 필요는 없다고 본다.김정일체제의 정착및 정책방향을 당분간은 지켜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북한 주체예술/세습 정당화 도구로 이용

    ◎60년대 김정일이 사회주의리얼리즘에 속도전 이론 접목/혁명가극­집단창작 통해 김일성 신격화/김정일 직접지도… 후계자능력 인정받아 김정일은 지난 60년대 후반부터 김일성 주체사상을 선전·선동하는 방편으로서 북한의 문예활동을 선도해 왔다. 73년 9월 북한의 당 중앙위원회 제5기 7차 전원회의에서 조직 및 선전·선동 담당 비서로 선출되면서 그는 김일성의 후계자로 부각됐으나 이미 67년 당 중앙위원회 제4기 15차 전원회의를 계기로 각종 문화분야에서 이른바 「지도」를 본격화했다. 특히 김정일은 김일성이 내세우는 마르크스·레닌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예관을 북한 특유의 주체문예관으로 변경시켜 김일성의 신격화운동을 직접주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먼저 연극분야에서 1970년대초 김정일은 『연극혁명을 일으켜 낡은 연극에 종지부를 찍고 혁명연극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혁명가극의 시대를 개척했다. 항일 유격대원의 이야기를 다룬 가극 「피바다」를 71년 초연하기위해 김정일의 지도가 있었다. 김일성을 비롯한 빨치산 출신의 당시 북한 권력층 원로들이 이 「피바다」 공연을 보고 김정일의 능력을 크게 평가,후계자로 정하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김일성 신격화 작업의 상징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정일은 1980년 혁명연극 「혈분만국회」를 직접 제작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미술 부문은 1970년대에 김정일의 지도에 따라 주체미술의 대전성기를 맞았다고 북한은 선전해 왔다. 그때까지 역사적 사실 속의 한 인물로 형상화되던 김일성이 70년대 북한의 회화에서는 현실적이며 인민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또 혁명적 기념비 미술은 거의 김정일의 업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조선 노동당 창립 30주년 기념으로 1975년부터 5년에 걸쳐 만들어진 「왕재산대기념비」의 경우 김정일이 비행기까지 동원하는 관심 속에 진행되었다. 70년대의 「평양 지하철 벽화」,「삼지연 대기념비」등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주체사상탑」,「개선문」등 80년대의 혁명적 기념비 미술로 이어진다. 음악의경우 혁명가극 「피바다」가 혁명의 무기로 생산 현장에서 공연됐다. 김정일의 음악관이 비교적 늦게 정립된 탓인지 87년 「행복의 노래」와 88∼89년 평양예술단이 창조한 민족가극 「춘향전」등이 김정일의 지도에 따라 무대공연 형식으로 발표됐다. 김은 오케스트라연주중 연주자의 반음 착오까지 지적할 정도로 조예가 깊다. 김정일은 또 4.15창작단,왕재산창작단,백두산창작단등을 만들어 문학분야에 집단창작제를 제도화시켜 「조선의 별」등의 대하소설을 기획하게 했다. 그는 『우리가 건설해야할 새로운 혁명문학은 명실공히 수령을 형상화한 문학을 말한다』고 역설했다. 무용에서도 「피바다식 가극무용」이 보통명사로 사용될 만큼 가극 「피바다」에서 구사된 수법이 정형으로 자리잡았다. 북한에서 4대 명무용의 하나로 꼽는 「키춤」은 원래 「피바다」의 3장 2경에서 물방아간 가무로 나오는 것을 떼어 내 72년에 군무로 개작한 작품이다. 이처럼 북한의 각종 예술활동을 지도해온 김정일은 특히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입각한 속도전이론등을 가미한 새로운 문예이론을 만들어 부자 세습에 대비한 신격화운동에 문화 예술을 적극 활용했다.
  • 세습체제 국제평가(김일성 사후:5)

    ◎김정일 공식지지 아직은 중국뿐/대권승계 공식발표까진 입장 유보 「초읽기에 들어간 김정일체제가 언제 공식 출범할 것인가」­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관심은 온통 여기에 쏠려 있다.그러나 김정일체제에 대한 전망이나 분석,공식 평가는 아직 내리지 않고 있다.일단 공식 출범 때까지 기다린뒤 그때 가서야 발표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만에 하나 변수라도 고려하는 것이 국가 사이의 외교 생리이다.괜스레 잘못 평가했다가 다른 체제가 들어서거나,또는 그 체제가 갑자기 무너져버리면 자국의 이익은 물론 치명적인 외교적 상처를 입게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중국 말고는 어느 국가나 김정일체제를 정식으로 인정할지 좀더 두고봐야 한다.다만 지금까지 김정일체제의 출범 움직임에 대해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나라는 거의 없어 보인다. 지난 73년 김일성이 그의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세우려는 움직임을 보일 때만 해도 국제사회,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는 「부자 세습」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었다.같은 사회주의 국가였던소련이나 중국도 처음에는 비슷한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20년 가까이 흐르면서 자국의 이해득실에 따라 모두들 변해버렸다.실리를 좇아 분주히 움직이는 국제사회의 모순된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국제사회의 평가를 파악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북한은 장례식에 외국 조문사절을 받지 않기로 했으나 조전이나 조의성명까지를 거부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12일까지 김일성의 사망에 조전을 보낸 국가는 모두 35개국으로 집계되고 있다.캐나다·인도·스위스·파키스탄·몽골·인도네시아·베트남·캄보디아등 그동안 북한과 가깝게 지내던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중국은 김정일이 장의위원장으로 발표된뒤 최고지도자 등소평 말고도 강택민주석·이붕총리·교석전인대위원장등 3인의 공동 명의로 『조선인민이 김정일동지를 중심으로 단결,계속 전진할 것을 믿는다』는 내용의 조전을 보냈다.중국이 최초로 김정일체제의 출범을 공식 인정한 셈이다. 클린턴 미국대통령도 김일성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마자 『미국민을 대표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조의성명을 발표했고,한걸음 더 나아가 북한의 새체제와도 대화를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김정일체제를 사실상 인정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나섰다. 이렇게 볼때 김정일체제는 공식 출범만 하면 국제사회의 공인을 받고 대화파트너로 자리잡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인다.생각보다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쉽게 김정일체제 인정 쪽으로 기운데는 핵문제를 지나치게 의식한 클린턴대통령의 태도가 크게 작용한 것 같다.그러나 그것 또한 일시적일 수 밖에 없다.언젠가는 정상을 회복하고 지난날의 잘못을 되짚어 보게 된다.따라서 김정일체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정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 취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
  • 대화상대로는 김정일쪽이…(송정숙칼럼)

    정직하게 말해서 김일성이 사망하기 전에 예정됐던 정상회담이 우리는 다소 불안했었다.그무렵 항간에서는 김일성을 만나고 온 사람은 모두가 좋지않은 운과 만나거나 다녀온 뒤에 「망했다」는 말이 이것저것 떠돌기도 했었다.조국이 통일만 된다면 조용히 시골로 낙향하여 과수원이나 돌보며 여생을 살고 싶다고 한 김구선생의 욕심없는 감회까지를 두고두고 모양사납게 만들어버렸고,독립지사 조소앙선생도 그에게 기만당했다.하려고만 들면 자신과 만난 사람들을 여지없이 곤란한 함정에 빠뜨리는 노회한 독재자가 김일성이다.그를 상대로 합리적이고 결이 곧은 민주주의 사회의,누가뭐래도 순진한 모범생격인 김영삼대통령이 마주 앉는다는 것은 국민으로선 조심스런 일이다.또 김일성은 김대통령과 한세대가 차이나는 노인이었다.경로사상에 물들어 성장하는 한국인에게는 노인을 거역못하는 체질이 유전되어 있다.게다가 유난히 효성스럽고 노인에게 다정한 김대통령이,자신의 부친과 동년배인 그 노욕 강한 늙은이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에 우리는 노파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김일성의 죽음소식을 듣고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무산되는 아쉬움은 들면서도,그런 노파심때문에 「아마도 우리가 운이 좋을 징조인가보다」하는 마음과 함께 은연중 고개를 드는 안도감같은 것을 체험했다. 이제 싫든좋든 정상회담의 상대는 김정일로 정해지는 것같다.김정일은 작가 최인훈의 표현처럼 『우리를 슬프게 하는 지체와 지각』속에서 희극처럼 만들어진 권력세습의 작품이긴 하다.그래도 그가 북을 장악한 실세라면 우리는 그와 대화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그는 누구인가.그가 입을 열고 했다는 말로 우리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사회주의 무엇무엇에 영광있으라』라고 외친 외마디소리가 전부다.알아듣기도 어려운 우물거리는 발음으로 내뱉은 이 한마디로는 도무지 그 사람됨이나 지적 수준같은 것을 짐작할 수가 없다.부시시한 몰골로 지척지척 걷는,언제나 자다가 끌려나온 것같은 모습이 비치는 화면만 보았을뿐 제대로 된 연설문 하나도,그를 짐작할 단서는 없는 것같다.그저 옹색한 정보를 토대로 해서나마 아마추어식 분석을 해보면 그는 『CNN뉴스를 시청하고 서방영화를 즐기며 「난쟁이 똥자루」같은 자기 희화의 말투를 서슴지않는』,말하자면 자본주의식 사고가 약간 침투된 과육을 지닌 「준비된」독재권력의 주인공인 것같다. 그런 상대가 정상회담의 새 상대로 불리할지 유리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몇가지 예측은 가능하다.우선 그와는 같은 문법의 말놀이(랭귀지 게임)가 가능하지 않을까싶다.그의 아버지인 김일성은 『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살면 최고』인 인민을 만들려고 반세기를 군림해온 그러나 그걸 이루지도 못한 통치가였다.그러나 아들인 김정일은 다소 퇴폐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자본주의의 정보가 입력된 세대다.그가 즐겨 시청한다는 CNN의 정보만으로도 지구촌이 어떻게 개방이 불가피한 곳인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가 병약하고 기형적인 안하무인의 무능한 예비독재자인지,영특하고 완결된 권력승계자인지 제대로 알길은 없지만 그래도 그가 그의 부친보다 대화상대로 다소 나을 수 있을 몇가지 기본 조건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이를테면 적어도 그는 직접 전범은 아니다.권력을 세습했으므로 죄의 책임도 「대를 이어야」한다는 이론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는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는 아닌 것이다.김일성의 경우 그 이름만 듣고도 치가 떨리는 것이 우리의 오랜 정서다.그런 분노를 털어보지 못하고 김일성을 저세상에 보낸 일에 허탈해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다.그런 대화상대를 마주하면 감정의 기복을 겪게 된다.그건 쌍방에 좋을 일이 아니었다.김정일로서도 스스로 직접 지은 과오가 아니므로 비교적 부담이 덜할 수 있다.그러므로 깨끗이 시인하고 청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같은 문법을 사용하는 그에게는 「혁명 1세대」가 갖는 시대착오적 집념의 몽매성을 설득해볼 수도 있을것이다.이미 조종이 울린 이념을 안고 언제까지 버틸수 있을지에 대해서 그도 내심 회의를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른다.그가 개방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설은 우리로 하여금 그런 기대를 하게한다.아버지의 너무 커다란 외투를 걸치고,춥고 배고픈 채 허망한 충성심만 그득한 인민을이끌고 출발해야 하는 그는 자신의 공화국의 미래에 다소 당황해 있을 수도 있다.그런 그에게는 이쪽의 거짓없는 충심과 성의를 이해시키기가 덜 어려울 것이다.형제적 우애를 기울여 정직하고 진실된 통일논의를 하기에는 차라리 그가 그의 부친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만만히 생각하고 경박한 대응을 한다면 그것은 또다른 오산을 초래한다.무슨 일만 생기면 물색없이 앞질러가다가 안해도 좋을 실수를 하는 약점을 우리는 지니고 있다.겉으로는 어벙해 보이지만 금세기가 낳은 가장 질긴 독재자가 수십년 빚어 만든 회심의 후계작이 김정일이다.만만하게만 여길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 김정일 조기승계/“대안없다” 지도층공감대 반영

    ◎“내부분열땐 붕괴위험” 체제지키기/김일성정책 노선 단기적 유지 신호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것은 한반도에서 중대한 힘의 공백이 생겨났음을 의미한다.그가 없는 북한은 이미 반쯤은 붕괴된 것이라는 분석도 어느정도 설득력을 지닌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김정일체제」의 조기출범을 서두르고 우리를 비롯한 주변 열강들이 그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한반도에 관련된 나라 가운데 누구도 힘의 균형이 절대적으로 파괴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지도층 인사들은 내부분열로 체제 유지가 어려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김정일을 중심으로 일단 뭉치는 수 밖에 없다고 느낀 듯하다.일종의 「대안불재론」이며 「현상유지정책」인 셈이다.우리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다섯 나라도 북한 지역에 힘의 공백이 생겼다해도 어느 누구든 혼자 그것을 차지할 수 없다고 판단,북한의 현상을 지켜주는 쪽으로 잠정타협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둘째,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모두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김정일로의 권력승계가 조기에,또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을때 생기는 플러스요인보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최악의 사태를 걱정하고 있다. 우리로 볼때도 그렇고 국제적으로도 권력의 부자세습은 부자연스럽다.열악한 인권상황아래서 권력세습이라는 후진양태가 벌어지는 것을 용인할 정도로 국제사회는 관대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우리와 주변국가들은 김정일체제를 인정하기 시작했다.그가 실패했을때 혹시 군부등 강경세력이 전면에 나서거나 혼란의 와중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염려하기 때문이다.다소의 위험이 있더라도 북한을 흔들어 민중봉기 혹은 쿠데타를 통해 북한의 붕괴및 통일을 목표로 해보자는 목소리는 어디서도 나오지 않고 있다. 셋째,같은 맥락에서 이번 사태는 한반도 통일의 방식까지 제시하고 있다.정부는 북한을 흡수통일하려는 적극적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었다.주변 여건탓도 있겠지만 정부는 김일성 사망 초기부터 북한 체제의 안정을 희망한다는 견해를 밝혔다.동서독처럼 막바지에 가서 흡수통일의 형식을 띨수는 있을지언정 미리부터 무리는 않겠다는 생각인 것같다. 넷째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하려는 주변국의 노력이 증가되는 조짐이다.김정일이 조기에 권력세습체계를 갖춘다 하더라도 김일성보다 안팎의 위상이 낮아질 것이 틀림없다.국제적 위상약화는 핵문제를 둘러싼 줄타기외교를 하기 어렵게 하리라 전망된다.주체사상의 고집도 꺾이기 시작할 것이다.그 틈에 여러 나라가 끼어들 수 있다.김정일은 내부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도 외부의 힘을 빌리려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에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 있다.그 다음 미국도 핵문제와 수교등을 묶어 이제까지보다는 훨씬 더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늘릴 가능성이 짙다. 우리도 남북정상회담을 지렛대로 활용하면 남북관계를 주도할 수 있다.정부도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북한및 통일정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볼수 있는 것은 북한의 정책과 연관된 것이다.김정일의 조기권력승계는 단기적으로 북한의 김일성 정책노선의 유지를 의미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예상이다.김일성이 시작한 남북대화의 국면도 그대로 이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 “화해·교류가 사는길” 일깨우자/나종일(대북정책 새 접근)

    ◎「변화와 연속성」 북이 어떻게 조절할지 관심 지난 며칠동안 우리나라는 마치 김일성의 사망 이외에는 세상에 중요한 일이 없는 것처럼 온통 모든 관심이 이 문제에만 집중되어 있었다.온갖 추측과 예상들이 난무하는 사이에도 정작 앞으로의 남북관계나 통일에 관한 착실한 의견의 합일점은 도출되지 않은 셈이다. 이것은 물론 지난 반세기에 걸쳐서 김일성이 차지해온 중요성에 비추어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그러나 따지고 보면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어 있는 것이고 김일성의 죽음은 오랫동안 예상되어오던 것이 아니겠는가.특히 남북한의 정부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만큼 대비 또한 게을리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 죽음이 돌발적인 사건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또 그 시기에 공교로운 면이 있었을지라도 우리의 반응은 정부나 일반시민이거나를 막론하고 좀더 차분할 수 없었겠는가.「차분하다」는 것은 물론 반응이 그저 물 끓듯하지 않고 가라앉는 듯하면서도 멀리 보면서 실속이 있어야한다는 뜻이다. 먼저 북한의 경우를 생각해보자.김일성의 죽음은 북한체제의 변화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어떤 체제이건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변화함으로써만 그 기본적 성격을 유지할 수 있다.그리고 북한의 정상권력층이 지난 20여년에 걸쳐 「부자세습」의 말을 들으면서 주의를 기울여온 것이 바로 김일성이후에 그 독특한 체제를 어떻게 유지하는가 하는 문제이었다.말하자면 「변화와 연속성」의 완급을 새로운 지도체제가 조절하는 문제이었을 것이다. 둘째로 따지고 보면 북한체제나 대외정책변화는 김일성의 생존시에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마찬가지로 남한의 내부나 남북한관계의 기본적 성격도(적어도 우리의 고정관념보다는 훨씬 더 빨리) 현실에 있어서 상당한 변화를 겪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요체는 한마디로 양체제 사이의 「모순·대립·갈등·경쟁」의 제양상에 겹쳐서 「공존·화해·교류·협력」의 양상이 부상한다는 것이다.이것은 단순한 평면적인 이야기가 아니다.예를 들어서 이것은 남북한간에 갈등이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다.남북한간은은 여전히 갈등의 관계이며 이것이 「협력」이나 「화해」보다 더 두드러진 양상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대립이나 갈등 또는 경쟁의 관계라고 하여서 반드시 협동이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것은 평면적인 사고의 소치다.때로는 갈등이나 대립에서 전체적으로 차원 높은 성취가 이루어질 수도 있고 사이가 좋다고 해서 반드시 전반적인 발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남북한관계나 궁극적으로 통일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입체적 사고」일 것이다.남북한은 각기 자기들의 단순한 생각대로 쉽게 통일을 이룰 수 없으며 화합을 할 수도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립과 갈등과 함께 화해와 교류,그리고 협력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단계에 이르러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우리가 비록 사건들의 와중에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였을지라도 농지개혁이나 경제발전,민주화… 등을 비교적 빨리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북한의 위협」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개혁과 발전을 이룩하지 못하면 체제전체가 이 위협 아래 놓이게 되는 것이다.그 반면에 항상 우리를 「위협」해온 북한은 그만큼 정체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이다.이것은 다른 모든 문제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특히 양측의 지도층이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점이라고 여긴다.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와중에도 현재 북한은 전형적으로 「왕은 죽었다.전하만세」의 예다.변화속의 연속,그리고 연속속의 변화가 당분간 남북한관계에 기본적인 틀이다.그러나 우리들의 생각이나 처신은 적어도 지금까지보다는 좀더 창의적이고 적극적이며 긍정적이어야 한다.
  • “후계구도 완성” 안팎 과시/김일성 시신공개·김정일 참배의 함축

    ◎오진우·강성산대동… 군·정장악 시위/자연사 비춰 “모반세력은 없다” 부각 북한이 11일밤 김일성시신을 공개하고 김정일이 권력핵심요원들을 대동하고 참배하는 장면을 공개한 것은 후계구도의 안착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즉 북한주민들과 북한권부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외부세계에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이상이 없음을 시위하기 위한 사전각본에 따른 것이다. 이같은 연출의 한 가운데에는 김정일이 있다는 것은 현재로선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그가 김일성사망 나흘만인 이날 북한의 고위당·정·군 핵심간부들을 거느리고 빈소에 출현한 것이 그 가시적 증거다. 이날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의사당(주석궁)에는 북한의 권력서열과 일치하는 장례위원 2백73명 거의 전원이 나타났다.특히 평양주재 외교사절들의 조문시 오진우인민무력부장·강성산정무원총리·김영주·이종옥·박성철부주석과 최광총참모장·김영남외교부장 등 핵심인물들이 김정일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시립」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두드러졌다. 더욱이 북측이 이날 공개한 TV화면 속의 김일성시신은 그의 사인이 자연사라는 심증을 갖게 할 만큼 훼손된 흔적이 없었다.따라서 여기서도 쿠데타나 모반세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것과 함께 김부자간 후계세습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지적이다. 이날 김일성유해 옆에는 국방위원장과 군최고사령관명의로 된 김정일의 화환이 놓여져 있어 일단 당총비서직과 국가주석직 승계절차는 거치지 않는 것으로 유추된다. 그러나 이날 빈소에서의 여러 정황들을 종합할 경우 김일성의 사망직후인 8일 내부적으로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확정했을 가능성이 크다.즉 북한정권의 핵심인물들인 오진우·강성산 등 당정치국위원들이 비밀회합을 통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주변국중 북한지도부와 교감이 가장 깊은 중국의 강택민·이붕 등이 「조선인들이 김정일동지를 수반으로 굳게 뭉쳐 전진하기를 기대한다」는 조전을 보낸 것도 이 때문에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당중앙위와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김정일의 권력승계절차를 밟기 위해 당중앙위원들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을 11일 평양으로 소집해놓고 있다. 하지만 당중앙위와 최고인민회의가 열렸느냐 여부와 관계없이 이들 북한의 핵심기득권세력들이 일단 김정일추대에 합의했다면 그의 당총비서 또는 국가주석취임은 시간문제일 뿐이다.북한권력의 속성상 주요의사결정은 어차피 하의상달식이 아니라 상층부의 지침에 따라 일방통행식으로 결정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날 짧은 시간의 화면에서 김용순대남비서와 계응태공안비서 및 장성택3대혁명소조부장은 물론 지난해 강등된 김달현전부총리 등 김정일의 핵심측근으로 알려진 인사들이 대거 「클로즈업」된 사실도 눈여겨볼 대목이다.이들이 김정일시대에 중용이 예상되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건재사실이 곧 김정일체제구축을 역으로 입증한다는 것이다. 이날 빈소에는 또 김정일의 숙부인 김영주와 함께 김과 갈등관계이던 김성애,확실치는 않지만 이복동생 김평일의 모습도 보였다.이러한 광경 역시 이들의 속마음이야 어떻든 김일성이라는 선장을졸지에 잃은 마당에 일단 한배를 탓다는 위기의식으로 인한 잠정적 결속이 이뤄졌음을 시사한다는 관측이다.
  • 김정일체제 정착되면 개방 “노크”/러서 본 「김일성사후 북한」

    ◎집권초기 대외교류 가능성은 거의없어/현재론 주민 욕구분출 조짐 안나타나/세습정권 장기통치 힘드나 식량위기 해소 주력할듯 러시아는 김일성 사후 북한의 장래를 ▲김정일이 권력을 순조롭게 장악해 일정기간뒤 개방정책을 추진할 가능성 ▲김정일이 초기단계부터 개방정책을 주도할 가능성 ▲김정일이 집권초기에 실각할 가능성 ▲일반주민들의 개혁욕구가 폭발하는 경우 등 모두 4가지 대안을 상정하고 있다고 러시아 외무부의 한 당국자가 11일 밝혔다. 평양주재 러시아대사관에 근무하다 최근 모스크바로 출장중인 알렉산더 말렌코프씨(40·가명)는 이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그러나 군부를 포함,현재 북한내에서 반금정일 세력은 전무하며 적어도 초기단계에 김정일의 권력장악은 기정사실』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4가지 대안중 러시아는 김정일이 일정기간 권력을 공고히 한 뒤 집권층 내부에 개방여부를 둘러싼 내분이 표출되면서 불가피하게 개방정책을 시작하는 첫번째 대안을 가장 가능성이 큰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 권력강화기간에는 김정일추종세력들이 단결해 체제강화를 위한 억압정책을 계속할 가능성이 크지만 대부분의 전체주의정권의 경우에서 보듯 일정기간이 지나면 집권층내에서 주도권 쟁탈을 둘러싼 내분이 일어나 이 단결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그는 분석했다.권력강화기간을 거치면서 경제력이 바닥나고 사회적 불만이 극에 달해 변화가 불가피한 시기가 온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소위 김정일 일족내 반란예비세력으로는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세력,군부 등이라고 이 시나리오는 상정하고 있다. 두번째 김정일이 초기단계부터 개방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은 소위 김정일 일파내에서 개방파의 목소리가 우세할 경우이다.그러나 이 경우는 그동안 김일성이 유지해온 체제의 보수성등을 감안,큰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이 시나리오는 전망하고 있다. 세번째는 최악의 대안으로 김정일이 집권초기 권좌에서 밀려나는 것인데 이 경우는 북한권력이 곧바로 내부의 대결국면으로 치닫게돼 자칫 유혈사태 등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것을 의미하고 있다. 마지막 대안은 국민들사이에 개혁욕구가 분출돼 소위 고르바초프 말기의 소련상황이 북한에서 재연될 경우다.그러나 이는 개방개혁에 대한 인식이 어느정도 심어져 있는 북한내 일부 식자층과 일반국민들의 인식차가 워낙 커 개방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기대하기 어렵다. 한편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지는 12일자 김일성사망과 관련한 특집기사에서 김정일은 오래 권좌에 머물지는 못할 것이며 가까운 장래에 김정일의 퇴진,북한의 대외개방,국내 자유화 등이 잇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신문은 『김일성사후 북한에서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것은 스탈린 사망직후 소련의 혁명적 변화를 예견하기 어려웠던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붕괴된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험으로 볼때 김정일이 오랫동안 북한을 통치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신문은 특히 김정일은 아버지와 같은 능력을 거의 갖고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나라전체가 자신에게 복종할 것이라는 망상속에서 자신의 천재성을 굳게 믿고 있다면서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의 오류를 깨닫게 될 것이며 앞으로 대외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외국인들에게 북한입국을 허용하고 국내적으로도 주민생활 향상을 위해 일부 제약을 철폐하는 한편 특히 식량위기 해결에 노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김정일이 실권할 경우와 관련,이 신문은 『(만일 김정일이 물러났을 경우) 그의 퇴진을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의 새 지도부가 김일성정권의 범죄행위에 대해 자주 언급하게 될 것이며 이 모든 것들은 북한이 새로운 방향으로 출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들』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 신문은 앞으로 10년후쯤 러시아 동북국경에 인구 7천만의 산업잠재력이 높은 강력한 민주국가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며 통일한국의 등장을 전망하고 통일한국은 세계에서 4번째의 경제중심지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 김일성,「후계자 정일」 의도적 찬양

    ◎“강한 배짱·신념 소유자” 공사석서 자주 칭찬/「지도력」에 만족… 세습체제에 대한 지지 강조 김일성은 마음 편히 눈을 감았을까.그는 생전에 아들이자 후계자인 김정일의 능력을 얼마나 신뢰했을까. 김일성은 김정일을 후계자로 정한 뒤 아들의 통치능력과 성품을 높이 인정하고 후계체제를 낙관하는 발언들을 기회가 있을때마다 해왔다.아들에 대해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것처럼 공사석을 통해 얘기해 온 것이다. 그는 올해 초 『김정일 조직비서만큼 신념이 강하고 배짱이 센 사람은 처음 보았다(평양방송 94·3·10)』고 말해 김정일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감을 표시했다.3일 뒤 노동신문은 김일성이 『항상 수수한 잠바 차림으로 다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 온다』며 아들의 검소한 생활을 본받을 것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 해 3월에는 『김정일 동지가 혁명 사업을 훌륭히 계승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모든 일이 잘 돼 나가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잘 돼 나갈 것』이라며 김정일이 주도할 북한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지난 92년 2월 김정일의 50회 생일을 맞아 김일성이 직접 지었다는 「광명성 찬가」라는 한시에서 후계자에 대한 평가는 극치를 이룬다.이 시에서 김일성은 『김정일이 백두산의 정기를 받아 태어났으며 만민이 그를 칭송하고 있다』고 주장,김정일에 대한 더 할 수 없는 신뢰와 애정을 표현했다. 그러나 김정일에 대한 이 같은 평가가 김일성의 진심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문란한 사생활과 돌출적인 행동에 대해 수차례 질타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더욱이 지난 해 18년만에 동생인 김영주를 부주석으로 복권시켜 김정일의 후견인 역활을 맡긴 것은 그가 김정일의 지도력과 권력 계승능력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따라서 김일성이 아들을 자랑하는 「팔불출」역을 자임했던 이유는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사후에 있을 반발과 혼란을 막고 안정적인 세습체제 구축하기 위한 「의도성 칭찬」으로 볼 수 있다. 이 밖에 북한 언론이 틈나는대로 보도한 김일성의 김정일에 대한 찬사를 소개한다. 『김정일 동지와 같이 권위있는 철학가,이론가가 있는데 대해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올해 유난히 김정일에 대해 자주 언급해 김일성이 후계체제를 비롯한 통치권 인계작업과 신병정리에 어느 때보다도 높은 관심을 보였음을 엿볼 수 있다.
  • 북 새체제 대응방식 시각차(의정초점:11일 상임위)

    ◎외통위/여,“원칙있는 자세” 촉구… 야, 유화책 주문 11일 열린 국회 외무통일위원회에서는 북한의 새체제 등장에 따른 정부의 시각변화와 대응책이 논의의 초점이었다.여야의원들은 정부가 앞으로 김정일체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놓고 미묘한 시각차를 보였으며 일부 야당의원들이 제기한 김일성에 대한 정부의 조의표명문제로 논란을 벌였다. 먼저 남궁진의원(민주)은 『북한 새체제의 권력이 확립될 때까지는 북한의 어느 계층도 자극하지 말고 유화조처를 취해야 한다』면서 『미­북3단계회담의 조속개최및 핵등 북한문제의 일괄타결을 정부가 지원해야 하며 핵과 경협의 고리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부영의원(민주)도 『김정일체제는 우리의 인식과는 상관없이 미·중·일등 국제적으로 인정추세』라면서 『정부는 새체제의 안정에 대비,바로 대화할 준비를 갖추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종찬의원(새한당) 역시 『김일성 사후 미국이 대단히 유화적인데 반해 우리는 다음 현상을 예측하고 조치를 취한 바가 없다』고 지적한뒤 『북한문제는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괄타결방향으로 가는 만큼 대범함을 보이라』고 유연한 태도변화를 주문. 이에반해 노재봉·박정수·서정화의원등 여당의원들은 김일성­김정일 세습체제에 대한 성격규정과 함께 정부의 원칙있는 대응자세를 촉구,성급한 유화책을 경계했다. 먼저 노의원은 『유례가 없는 부자승계정권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면서 『지금의 교류 운운은 김정일체제를 강화시켜 한반도의 영구분단으로 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서의원은 특히 『김일성이 없어진 북한은 이제 가난한 동토에 지나지 않는다』며 『정부는 이러한 실체를 냉철히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했다. 이들에 비해 박찬종의원(신민)은 『북한을 그대로 놔두자』는 특이한 논리를 폈다.그는 『북한의 시행착오는 필연으로,괜히 도와줍네 하고 나서다가는 함부로 부지깽이로 쑤시다 불씨를 꺼뜨리는 우를 범할수 있다』면서 『정부는 단기 과도체제인 김정일시대 이후상황을 설정해 장기적 관점에서 대책을 세우라』고 주문했다.이날 회의는 특히 김원기·이부영·임채정·남궁진의원등 민주당의원들이 정부에 김일성 조문사절단을 보낼 것을 제의,이를 둘러싼 논쟁도 벌어졌다. 이들은 「문상회담」,「조문외교」의 이점을 강조하며 『신뢰회복과 분위기조성을 위해 조문사절단을 파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국민정서등 사절단파견이 여의치 않으면 정부의 공식적인 애도표명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정부의 전향적 검토를 촉구했다. 이같은 여야의원들의 질문과 제안에 대해 이홍구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상황의 이중성」이라는 표현으로 대북관계의 복잡하고 어려운 성격을 설명했다.그는 『북한과는 일면 대결하면서 화해도 추구해야 한다』면서 조문사절단 파견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없음을 들어 분명한 거부의사를 표명했다. ◎국방위/“북지도부동향 집중감시”/“정보 수집능력 허점없나” 신랄히 추궁 11일 국회 국방위에서는 북한주석 김일성의 사망에 따른 우리 군의 「안보시나리오」가 주된 의제로 다뤄졌다. 여야 의원들은 김일성의 급작스런 사망과 관련한 군의 대처능력과 안보태세,정보수집및 예측능력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북한 지도부및 군부의 움직임에 대한 질문과 더불어 북한의 핵개발 저지와 한반도 전쟁방지라는 두가지 명제를 놓고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이루어졌다. 먼저 김일성의 사망 사실을 34시간이나 늦은 북한측의 발표를 듣고서야 알게 된 것은 정보능력의 불재가 아니냐는 야당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민주당의 정대철 나병선 장준익의원등은 『우리 정부의 대북관련 정보의 허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군은 물론 우리측의 모든 정보기관이 『미국의 CIA조차 몰랐다더라』면서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질책했다.『이처럼 정보능력도 없으면서 만일의 사태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고,만반의 태세를 자신할 수 있느냐』는 성토였다.이러한 불만은 김일성의 사인에 대한 추궁으로 이어졌다. 여야 의원들은 북한의 권력공백기에 따른 불안감을 해소하고,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안보태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서로 이론이 없었다.그러나 김일성의 사망이 확인된 직후 정부가 내린 군 비상경계령조치에 대해서는 확연한 시각차를 드러냈다.민주당측은 김영삼대통령이 군사적 평가를 거치지 않고 이병대국방부장관에게 직접 비상경계령을 시달한 절차상의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반면 김종호의원(민자)은 『안보태세강화가 가장 중요한 시점이었던 만큼 단계적 절차에 따라 제대로 대처했다』고 정부측을 옹호했다.정대철의원은 「한·미·일 위기공동관리체제」를 구성할 것을 제의했다. 의원들은 이어 앞으로 한반도정세의 최대 변수는 북한군이라는 인식 아래 북한 군부의 동향및 북한의 핵정책 변화등에 대한 전망등에 대해 질의를 계속했다.『북한의 핵 개발의지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나병선의원),『김영주 김평일등에 의한 궁중쿠데타 또는 군부쿠데타와 주민들의 대거 탈출사태등의 가능성이 있나』(정대철의원),『북한군의 혁명 2세대 실력자에 대한 인사정보는 있느냐』(임복진의원)등. 한반도 안보의 위협요소를 제거하는 방안도 제시됐다.강창성의원은 경제협력 모색을,정대철의원은 장기적인 남북군사교류를,임복진의원은 강경파를 견제하는 대신 온건파를 강화시키는 전략을 방안으로 내놓았다. 이에 대해 이병대국방장관은 『김일성 사망이후 북한측은 군사활동이 저조해지고 대남비방방송을 중지하는 등 특이한 상황이 포착되지 않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장관은 『북한내부의 지도체제 변화등 동향을 집중감시하고 있다』고 밝히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군사적 즉각 대응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새체제 구축 우선”… 순위 미뤄/북의 “무기연기” 통보 배경

    ◎복잡한 대외문제 당분간 회피할듯 북한이 11일 남북 정상회담의 무기연기를 공식통보해온 것은 예견된 수순이다. 정상회담을 불과 16일 앞두고 김일성이 사망함으로써 이를 추진해온 북측 주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의 김용순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장이 우리측 이홍구 부총리겸 통일원장관 앞으로 보낸 편지 내용 속에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다.즉 「우리측의 유고로 예정된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연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됐음을 통보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물론 북한이 지난 20여년간 계속해온 부자간 권력세습 스케줄의 연장선에서 김정일체제가 빠른 속도로 정착되고 있긴 하다.하지만 북한으로선 김정일체제의 조기구축이 당면 과제인 만큼 정상회담이나 남북대화에 눈을 돌릴 여력이 사실상 없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북한의 이같은 다급한 사정은 이날 김용순의 편지형식에서도 여실히 감지된다.요식행위에도 문제가 있음은 물론 누구의 위임에 의해 이같은 연기통보를 하는 것인지,언제 정상회담을 재추진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전혀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정황을 감안한다면 당초 예정된 이번 평양정상회담은 일시 또는 잠정 연기된 것이 아니라 무기연기된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특히 『김일성 사망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 개최 원칙은 유효하다』(이영덕총리)는 우리측 입장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 재추진 시기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요컨대 북한은 내부의 권력승계 및 체제 안정화 문제가 초미의 과제인 만큼 적어도 당분간 대외 및 대남문제가 복잡하게 전개되는 것은 회피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다시 말해 새로운 남북정상회담의 추진과 성사는 최소한 김정일이 명실상부한 1인자로 자리를 잡든가,아니면 집단지도체제가 정착되든 북한의 권력구조가 어떤 식으로든 확고히 자리잡는 이후 시점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비단 정상회담 뿐만 아니라 김정일을 중심으로 후계정권을 출범시키면서도 처음에는 일단 공세적인 대남 제의를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한동안 친금정일세력과 반금세력간의 물밑 암투가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 명약관화한 만큼 섣불리 「8·15 범민족대회」개최등 통일전선전술에 입각한 공격적 자세를 취하기 어렵다는 추론이다. 그러나 북한은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체제가 안정화되면 김일성주체사상을 외형적으로 옹호하면서도 실제로는 재해석하면서 남북대화에도 긍정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 김정일체제 인정/우리정부 「적극성」의 배경

    ◎한반도문제 주도권잡기 포석/“주변강국의 대북 영향력 강화 견제/「평양정권」 안정돼야 평화공존 가능” 우리정부에게 있어 북한은 법률상 불법단체다.때문에 정부당국은 새로운 김정일체제에 대해 「인정」이란 표현을 쓸 수 없다.적어도 법률적으로나 이론적으론 그렇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한국정부는 김정일체제를 이미 인정했다.정부가 11일 국회답변에서 『남북한의 정상회담 합의는 유효하다』고 강조한 것이 그 증거다.누가 정권을 잡든 빠른 안정을 바란다고 한,10일 청와대 고위당국자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정부는 북한의 권력세습이 부도덕하다거나,어떤 체제가 우리에게 낫다거나 하는 고정된 시각은 표현하지 있지 않다.그것은 남북한 관계가 희망이나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 있을 뿐이라는 인식의 발로로 풀이된다. 김영삼대통령의 생각에 정통한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11일 몇가지 중요한 코멘트를 했다.그는 김정일체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어떤 선입관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그리고 『우리는 김정일이정권을 안정적으로 계승하는 것이 남북문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그는 이어 『어떤 형태로든 안정이 중요하며 감정이나 도덕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일뿐』이라고 정부의 김정일체제 인정이유를 설명했다. 이 당국자의 설명은 분명하다.김정일이 안정적으로 정권을 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며 지금 진행되고 있는 북한의 권력승계를 환영한다는 것이다. 권력의 세습은 분명 국민감정과 맞지 않는다.또한 북한이 안정되지 못하고 혼란할수록 북한의 힘이 약해질 것이란 점도 분명하다.그럼에도 우리정부는 서둘러 김체제를 인정하는 제스처를 분명히 하고 있다. 무엇이 정부로 하여금 국민감정과 유리될 수도 있는 「김정일지지」를 서둘러 말하게 하고 있을까. 정부가 북한의 현실로 나타난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서둘러 인정하고 이의 안정을 희망하는 데는 두가지의 뚜렷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한반도 문제,북한문제를 우리가 주도하겠다는 이야기다.김일성의 사후 3일동안 우리정부는 북한문제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것이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언급을 회피해왔다.그러다 11일 아침을 계기로 일제히 제뜻을 발표하기 시작했다.정부 차원에서 우리의 뜻을 밝히는 것이 바람직스럽다는 판단이 섰다는 이야기다. 김일성이 「살아있는 신」으로 군림했던 김일성체제에서 북한은 분명하게 독립된 나라였다.그러나 김정일로의 권력승계가 이뤄지고 있는 지금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김정일은 체제안정을 위해 외부의 지원과 승인을 필요로 한다.이는 주변의 강대국들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좋은 기회다.중국과 미국이 서둘러 김정일체제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어려울 때 도와줌으로써 영향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이 원리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김일성사후의 북한은 어차피 우리의 경쟁상대는 아니라고 본다.때문에 우리가 남북문제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고,또 주변강국이 이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못마땅해한다.정부가 김일성의 사망과 새로운 체제의 탄생이란 지각변동을 놓고도 우방국과의 공조체제를 강조하지 않는 것은 이때문이다. 두번째는 북한체제가 안정될수록 남북대화의 길이 빨라지고 한반도체제도 안정된다고 보는 탓이다.정부는 북한의 정상회담연기 통보가 오자마자 「합의된 정상회담원칙의 유효」를 선언했다.이는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다시 밝혀 남북문제의 주도권이 우리에게 있음을 알리는 것과 함께 대화의 상대로 김정일체제를 인정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그만큼 조기안정을 희망한다. 정부는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을 북한체제가 안정되는대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연말이나 연초가 그 시기가 될 수 있겠지만 우리가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조기성사를 추진할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남북문제의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이야기가 흡수통일을 원하는 방향으로의 정책선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남북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 이상은 아니다.
  • 김정일 「호칭」/「당중앙」→지도자동지→위대한 수령 격상

    ◎64년이래 총30여개… 「화려한 수사」 일색 「우리 당과 인민의 영명한 수령이시며 우리 모두의 운명이시고 자애로운 스승이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자주시대의 위대한 태양」「인류가 낳은 걸출한 영웅」…. 자신의 아버지 김일성에 이어 북한 정권 두번째 수장이 될 것으로 보이는 김정일.그에게 그동안 주어진 숨가쁠 정도의 길고 화려한 수사로 다듬어진 숭배의 호칭들이다. 세습후계자 김정일을 떠받쳐온 호칭은 30여개.김일성이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자신에게 붙인 그것을 시차를 두고 물려받거나 재가공해 덧입힌 호칭의 변화과정은 64년 김정일이 김일성 대학을 졸업하면서 시작된 후계작업 30년 역사 그자체로,권력이양의 독도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2∼3년간 등장하기 시작한 「아버지」「수령」등의 호칭은 김정일에 대한 권력승계가 최종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고 특히 김일성 사망 이틀째인 10일 북한 중앙방송에서 나온 「위대한 수령」이란 칭호는 현재까지 「별 무리없이」 북한 정권의 정점에 김정일이안착하고 있음을 내외에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김일성대 졸업후 비공식적으로 후계자수업을 받은 김의 첫 직책은 당 조직사업부 지도원.이후 과장 부부장 부장을 거쳐 당 비서직을 맡게되며 이 직책에 맞게 73년까지 불리게 된다.별다른 수식어가 붙었다는 보고는 없다.62년 김일성이 어느덧 남한에서도 익숙한 「경애하는 수령」이라는 개인 우상화차원의 호칭을 처음 붙인 것에 비추어 볼때 당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권력정지 작업이 한창이었던 70년대의 대표적 호칭은 「당중앙」.김정일이 노동당의 양대 기둥인 조직및 선전선동 비서국을 장악한 73년 9월 당중앙위 제5기 전원회의 직후 처음 사용됐고 이후 80년대까지 가장 흔히 쓰인 호칭이다.그의 생일 2월16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75년에는 「유일한 지도자」가,77년에는 「당중앙」이 우세한 속에 「영명하신 지도자」「경애하는 지도자」등이 등장했다. 김정일에 대한 호칭이 질적으로 변화한 것은 80년대 들어서다.80년의 10월 제6차 당대회서 당정치국 상무위원과 당군사위 위원에 오른 3년뒤인 83년 2월 41회 생일을 계기로 「당중앙」대신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가 자리잡았다.현재까지 보편적으로 쓰이는 이 호칭은 북한 주민들사이에 「친지동」이란 비꼬는 말로 쓰인다. 실제 김정일은 91년 12월 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했음에도 8년전인 83년 5월 「최고사령관」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군의 영향력 강화를 의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호칭을 통한 미화는 「언어창작」을 넘어서 항일빨치산이 백두산의 나무에 새겨놓았다는 「구호나무」의 역사날조에 까지 이어진다.북한은 87년 「백두산에 광명성이 떴다.광명성(김정일 지칭)미래로 민족 존엄 떨치자」라고 새겨져 있다며 「위대한 영도자」라는 호칭을 썼다. 90년대에는 김일성에 버금가는 호칭이 등장한다.90년 12월 「인민의 운명을 책임진 혁명의 지도자」(노동신문)에 이어 91년 김일성과 동격임을 드러내는 「수령」호칭이 등장하나 미래의 수령이란 의미로 사용됐다.93년조선기자동맹 제7차 대회서 현재를 나타내는 「영명한 수령」으로 표현됐고 올해 3월에는 조선대남방송에서 「주석」으로,5월에는 평양방송에서 「두분의 수령」「탁월한 수령」으로 나와 곧 명실상부한 권력이양이 이루어지리라는 추측을 불러일으켰었다. 「수령」과 같은 카리스마조작 비중을 갖는 「어버이」도 최근 2∼3년전부터 두드러진 호칭. 「오늘은 오실까 우리어버이/내일은 오실까 김정일 동지/우리를 키워준 어버이모습/한해가 다르게 그립습니다」 92년 북한이 보급한 「기다렸습니다」라는 노래의 가사 일부이다.그토록 기다려 왔다는 올해 52세 「어버이」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북한 인민에게 다가갈 것인지 궁금하다.
  • 김정일의 북한 어떻게 다룰 것인가/김학준(대북 정책 새 접근)

    ◎평양의 체제안정 도와주라/정정불안 계속땐 강경과 도발 위험 김일성이 마침내 죽음으로써 북한은 변화의 결정적 전기를 맞이하게 됐다.지난 49년동안 북한을 자신의 유일독재체제아래 묶어놓고 강압과 세뇌의 통치를 유지했던 절대권자의 사망은 북한이 옛 노선을 그대로 끌고 나가느냐 아니면 새로운 길을 걸어가느냐의 심각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김일성이 20년이상 심혈을 기울여 길러놓은 후계자 김정일에게 모든 권력이 승계되고 있음이 확실하다.김정일 후계체제의 공식적 등장은 이제 시간문제가 된 것이다. 물론 김정일 후계체제가 잠정체제로 끝날 것이냐 또는 뜻밖에도 장기화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좀더 두고 보아야 할것이다.필자로서는 앞으로 2년정도안에 김정일 후계체제의 운명이 결판나리라고 본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점은 북한의 앞날은,특히 김정일 후계체제의 운명은 우리 대한민국에 대해 직접적이면서도 즉각적인 영향을 주리라는 사실이다.바로 이 연계성때문에 우리는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단순한 호기심이상의 깊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 관심은 물론 대한민국 정부의 북한에 대한 정책,특히 김정일 후계체제에 대한 정책으로 이어지게 된다.바꿔 말해,대한민국 정부가 김일성 사후의 북한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김정일 후계체제는 큰 영향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우선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을 안정시키는 쪽으로 도와주라고 권고하고자 한다.북한 독재체제,김일성­김정일 세습체제를 지지해서가 아니다.독재체제와 세습체제는 역겨운 대상이지만,북한이 안정되는 것이 좁게는 대한민국에 대해,넓게는 동아시아에 대해 유리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필자의 의견을 제시하기로 한다. 만일 김일성이후의 북한이 안정을 찾지 못하고 끊임없는 정치적 격변속에 빠져든다고 치자.그 정치적 격변에 혹시 파벌과 파벌사이의 무력충돌이 포함된다고 치자.그렇다면 북한은 내전상태에 들어가게 된다.이경우,오늘날 북한이 지니고 있는 엄청난 무기들과 파괴력을 고려할때 남북한의 관계는 반드시 긴장으로 치닫게 될것이다.북한 내부에서의 무력충돌이나 내전의 파열음은 분명히 대한민국에 큰 부담을 줄 것이다. 북한에서 주민들의 집단적인 저항운동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이때 북한의 통치세력은 틀림없이 무력으로 누를 것이며,그리하여 불쌍한 우리 동포들만이 죽어가는 참극으로 끝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통치세력은 대한민국에 대해 비록 국부적이고 제한적이나마 무력도발을 모험할 개연성이 있다.그렇게 되면 한반도 상황은 새로운 불행속으로 빠져들게 되며,한반도 상황이 어지러워진다면 동아시아의 정세 역시 불안해질 것이다. 물론 북한 주민 대다수가 의롭게 봉기해서 북한의 독재체제 자체를 붕괴시킨다면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별도의 대책을 세우며 민주통일의 새로운 계기를 열어야 할 것이다.그러나 북한 내부에서의 유혈참극으로만 끝날 정치적 변동은 앞에서 지적했듯 남북관계의 긴장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리라고 짐작된다. 시각을 달리해 북한 독재체제의 급속한 붕괴와 거기에 따른 큰 혼란에 대해 생각해 보자.예컨대,김정일체제가 북한이 오늘날 직면한 안팎의 문제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내전에 빠져드는 가운데 망해버린다고 하자.북한의 이 존폐 위기를 대한민국정부가 슬기롭게 활용함으로써 대한민국 정부의 주도아래 북한을 흡수,통합시키는 계기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바로 그 시점에 북한 극렬강경파들의 맹동주의와 허무주의에 따라 남북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함이 좋겠다. 전반적으로 이렇게 보기 때문에 필자는 앞에서 지적했듯이 김정일체제의 안정성 확보가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에 대해 유리하다고 보는 것이다. 또 그렇게 보기 때문에 대한민국정부는 김정일체제가 체제붕괴의 위기감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 현명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김정일체제를 돕는다고 해서 공개적으로 선언할 필요는 없다.묵시적인 의사표시로 충분하다.간접적으로 그러한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볼때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는 북한에 대해 종전처럼 화해정책을 취하려고 한다.오늘날 한반도에 중요한 것은 평화이다』라고 선언한 것은 적절했다.북한의 권력당국은 이 선언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남북대화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적절했다.앞의 선언과 함께 이 의사표시는 대한민국 정부가 김정일체제를 사실상 받아들인다는 것으로 풀이될 것이며 김정일체제는 안도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 안도감은 정치적 격변기의 북한권력당국으로 하여금 대한민국에 대해 과격한 조처를 취해 긴장을 조성함으로써 북한 내부의 결속을 다지자는 소수의 극렬강경세력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건의를 자신있게 거부하게 만들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고려할 대상은 한반도 주변 열강의 북한정책이다. 미국을 비롯해 일본과 중국및 러시아는 모두 북한이 안정을 되찾기를 바랄 것이다.북한에서 정치적 격변이 벌어져 거기에 대한민국도,주변 국가들도 개입되게 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볼때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을 안정시키는 쪽으로 정책을 구사하는 것은 주변 열강이취하는 정책과도 일치한다고 하겠다.그것은 열강과의 공동보조라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북한은 결국 단계적인 개혁과 개방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를 2개의 기둥으로 삼는 현대 국가로 전환해야 한다.그래야 대한민국과의 평화통일을 위한 접점이 생기게 된다.북한이 종국적으로 이렇게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대한민국 정부의 북한정책과 통일정책의 핵심이 될 것이다.김학준(단국대 이사장·정박)
  • 현대판 왕조(외언내언)

    왕조시대에 왕이나 왕후가 승하하면 국상이라 하여 온국민이 소복을 하고 백립을 쓰며 방방곡곡에 빈소를 차리고 곡반을 편성해서 곡을 하게 했다.19 19년 고종이 승하했을 때는 시민들이 철시하고 대한문앞에서 통곡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임금이 하늘이요,어버이이던 왕조시대의 풍습이었다. 김일성이 죽은 뒤 평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애도의 모습은 우리의 상식을 초월한 「광기」그자체인 것 같다.만수대 언덕위의 김일성동상 앞에는 수만명의 주민들이 몰려와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며 오열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심지어 머리를 땅바닥에 찧어대기도 하며 실신하는 사람까지 있다 한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주민들이 비탄에 빠져 2∼3개월동안 우울증세를 보이다가 집단히스테리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반세기에 걸친 1인독재와 광적인 우상화가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결과일 것이다.정신분석학에서는 「독재자에 대한 우상화는 성인의 이성을 마비시켜 유아의 수준에 머무르게 한다」고 주장한다.북한주민들에게 「살아 있는 신」이었던 김일성의 죽음은 「모든 것의 상실」을 의미할지도 모른다.북한주민들의 통곡과 오열은 49년 동안 폐쇄사회에서 이데올로기에 의해 순치된 가엾은 인간상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북한전역에 세워진 김일성의 동상은 2천여개.그 동상마다 기묘한 애도행렬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조선시대의 국상때보다 훨씬 요란한 애도장면을 보면서 북한은 역시 「김일성왕조」였음을 실감하게 된다.그는 왕이 누린 것보다 훨씬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오지 않았는가.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시킨 것도 그렇다.20세기 어느 국가,어느 체제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세자를 책봉하고 부왕이 죽으면 세자가 등극하는 왕조시대와 다를 바가 없다.김일성의 죽음은 김일성왕조의 실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