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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총련 「김 추모」 집회/정부 단호 대처해야/여야성명

    민자당의 박범진대변인은 19일 「한총련」이 김일성의 장례일을 맞아 추모성격의 집회를 갖겠다고 밝힌 데 대해 『북한의 권력세습독제체제에 대해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한총련」 소속 학생들은 대학생으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 선을 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하며 이들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박지원대변인도 이날 성명을 통해 『한총련이 전국 1백여개 대학에서 조의를 표하기 위해 검은띠를 두른 플래카드를 내걸겠다고 밝힌 것은 실정법을 어기는 것은 물론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일로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장례식」 보다 관심끄는 「추도대회」

    ◎김정일지지 과시용… 주민 대거 동원/“새진용 윤곽… 어떤정책 내밀까” 촉각 북한당국이 김일성장례식과 분리시켜 20일 별도로 열기로 한 추도대회에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추도대회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김일성사후 북한의 새로운 지도부가 어떤 진용으로 짜여질 지 그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장례식에서 추도대회를 분리한 것은 장례는 김일성에 중심을 맞춰 충성심을 유발하고 추도대회는 후계자인 김정일의 권력세습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는 자리로 활용하려는 의도라는게 북한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에따라 추도대회는 「민족의 태양」인 김일성사후 북한내부의 정정불안 요소를 제거하는 방편으로 대규모 종교행사처럼 장중하면서도 군중들의 열기를 고조시키는 성격을 띨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추도대회에서는 특히 김정일이 북한권력체제의 밑그림을 엿볼수 있는 「공개연설」을 할 것인지가 주목된다.왜냐하면 동양윤리상 장례식에서 상주가 등장해 인사말 이외의 말을 하는 것은 예절에 어긋나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가장 큰 관심사항은 김정일의 총비서직및 국가주석직 취임을 공식 선언하느냐의 여부다.여기에 혁명1세대와 군부등 주요 인물들의 권력서열이 어떻게 바뀌느냐 하는 것도 이번 행사의 중요한 변수다. 특히 새 지도부가 대남정책등 향후 정책노선에 관해 어떤 원칙이나 입장을 밝힐 것인지도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수 없다. 이때문에 우리 정부당국 뿐 아니라 미국·일본·중국·러시아등 주변국들도 이날 열리는 김일성추도대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추도대회 장소로는 대규모 군중동원이 가능한 만수대 언덕의 김일성광장이 유력한 것으로 관측된다.이곳은 평양시내에서 1백만명 이상을 집합시킬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며 추도행사의 상징성도 살릴수 있기 때문이다. 추도대회는 김정일에 대한 대를 이은 충성을 맹세하면서 그의 1인자 등극을 기정사실화 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1인자로 추대하는 행사로 진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추도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누가 어떤 내용의 추도사를 할 것이냐에 모아지고 있다. 추도사를 할 인물은 차기 권력질서 재편과정에서 새로운 실세로 부상할 가능성이 큰데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인 박성철부주석과 강성산정무원총리,최광군참모장등이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당·정·군대표들은 정책노선에 대해 언급하더라도 김일성노선을 지속적으로 유지·발전시키겠다는 식의 원칙적인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대외정책도 『자주성을 옹호하는 세계 여러나라 인민들과의 친선단결을 강화할 것』이라는 원론을 되풀이 하겠지만 대미관계나 대남관계 등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게 북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일성사후 사실상 권력승계절차를 마친 최고권력자 김정일이 어떤 말을 할지도 큰 관심사이다.전문가들은 그가 추도식 성격상 주민들의 허탈감을 달래주는 모종의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정일은 그러나 구체적인 시정방침을 발표하기 보다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계승·발전시키자』는 내용의 원론적인 발언을 하는 선에 머물 것으로 관측된다. 어쨌든 이번 추도대회는 김일성의 「권위의 공백」을 메우며 10일 남짓만에 김정일이 권력을 얼마나 확고하게 장악했는지를 가늠할수 있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 통일 전망/“북 공산체제 붕괴 멀지 않다”(김일성 사후:10·끝)

    ◎경제난·권력암투등이 촉진 요소/등소평사망땐 중지원도 기대난 김일성의 돌연한 죽음,그리고 김정일의 세습으로 이어진 북한의 권력구조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상황은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북한은 지난 15일부터 한때 중단했던 대남비방 방송을 재개하는가 하면 조문 문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소모적인 공방을 「조평통」이 넙죽받아 성명을 내는등 전략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우리 사회의 모든 움직임을 저들의 체제유지에 유리하게 꾸며대는 북한 관영방송들의 그릇된 보도 행태 또한 여전하다.『남쪽의 대학생과 사회 각계각층이 김일성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시하고 있다』는 터무니 없이 조작된 보도를 연일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달라지기는 커녕 김일성보다 더 적화노선을 따르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내부만 「조문외교」니,「국론분열」이니 하는 쓸데 없는 논쟁으로 어수선 하다.김일성이 죽었다고 해서 통일의 기대치가 갑자기 높아진 것도 아닌데 괜히 야단법석을 떠는 셈이다. 북한문제전문가들도 현재의 상황에서 한반도의 장래를 점치기는 매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지금 나타나고 있는 흐름들은 아직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한반도의 정책적 중요 변수,바꿔 말해 새 권력자로 지목되고 있는 김정일의 협상력및 통치 스타일,정권의 향배,주변 열강과의 역학관계,핵문제의 해결방식등 장래를 가늠할 핵심 요소들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북한문제연구소는 『과연 북한정권이 안정 속에서 순항할 것인지,치열한 내부 권력투쟁으로 혼란에 빠질 것인지,또 김정일은 어떤 식으로 북한을 이끌어 갈 것인지등 모든 게 불확실한 상태에 놓여있다』고 지적하면서 너무 우리식대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 했다.김정일에 대한 평판 또한 사실인지,아니면 지어낸 소문인지 모를 무수한 얘기들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국내외의 많은 전문가들은 비록 김정일체제가 들어선다 해도 안팎의 여러가지 어려움 때문에 북한에서 공산체제 또는 공산정권이 무너질 날은 그리 멀지 않은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경제난등 북한이 당면한 심각한 내부사정이 주된 이유였다.이를 치유할 시험기간은 대략 2∼3년 가량으로 점쳐진다.이 기간 김정일이 그의 집권을 안정시키지 못하면 북한은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주변 상황이 결코 북한에 호의적이 아닌 점도 변수로 꼽혔다.중국도 멀지않은 장래에 등소평의 사망을 맞게될 것이고,이에 따라 권력계승문제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그렇게 되면 지금과 같은 북한의 보호막이 되기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미국과 일본도 핵문제의 해결을 모색하면서 동시에 북한의 체제변화를 유도할 개연성이 큰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북한은 이처럼 매우 중요한 변동의 처지에 직면해 있다.그러나 북한 체제의 붕괴나 큰 동요는 우리에겐 통일의 호기임을 뜻한다.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우리 사회가 좀더 냉정하게 북한체제의 변화를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특히 그 변화를 유도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강조한다. 김학준단국대교수는 『북한의 체제가 끝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끝나느냐가 주요 관건』이라고 전망했다.북한이 한반도 주변에 엄청난 여진을 남기고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어느 때보다 우리의 인내와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다.또 우리정부는 취약점이 많았던 역대 정권들과는 달리 도덕성·정통성 측면에서 북한을 훨씬 능가하고 있으므로 한반도,특히 남북관계에 있어 주도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북한의 인권(김일성 사후:9)

    ◎권력암투로 숙청늘땐 「심각한 상황」/정치범 15만… 수용소 이미 “포화상태”/구타·굶주림 심해 한해 수백명 사망 북한의 요덕정치범수용소에 있다가 탈출한 안혁씨(26)와 강철환씨(26)는 지난 92년 8월 귀순 직후 인터뷰에서 요덕 한곳에만도 5만여명의 정치범들이 수용되어 있다고 전했다.이들 가운데 해마다 3백여명이 수용소를 지키는 보위요원들의 구타나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20여명이 공개 처형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은 이미 잘알려져 있다.아마도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인권 사각지대일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특히 「특별 독재대상구역」으로 불리는 정치범수용소는 북한의 인권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의 보고서와 귀순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북한엔 14개의 독재대상구역에 15만2천여명의 정치범들과 그 가족들이 집단수용되어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모두 북쪽 함경남북도와 평안남북도 산간오지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곳의 인권과 생활이 가히 어떤 상태일지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북한이 정치범수용소를 설치하기 시작한 것은 죽은 김일성이 1인독재체제를 강화하던 지난 60년대 초로 알려지고 있다.1인독재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저항세력을 숙청했고 이들을 한데 수용하려고 6개의 수용소를 지었다는 것이다.70년대 중반들어 김부자의 세습에 반대한 세력을 수용하기 위해 4개를,70년대 후반 김정일의 후계구도 확립에 반대한 김평일 지지세력등 정적숙청 과정에서 또 4개를 지었다. 이처럼 북한의 인권은 내부 권력체제와 밀접한 관계속에서 생겨난 특수한 문제이다.북한의 새 권력자로 부상하고 있는 김정일은 아직까지 숙청식의 탄압을 자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때문에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이 새 권력자로 들어선다고 해서 북한의 인권상황에 조금도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지적이다.외교안보연구원의 유석렬교수는 『내부의 권력승계 작업이 어려움을 겪게되면 대규모 숙청등에 따라 인권상황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인권탄압 대명사로 불리는 국가안전보위부와 사회안전부 두 기관은 이제껏 김정일의 수하에 있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반체제 세력의 색출과 정보파악,주민감시가 주임무인 국가안전보위부는 주석의 직속기관으로 있다가 지난해부터 김정일이 위원장인 국방위원회 산하로 옮겼다.부장은 아직 공석이라는 얘기와 함께 김정일이 맡고있다는 추측이 함께 나돌고 있으나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아무래도 국방위원회 산하이기 때문에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 한다. 벌목공의 감시등 일반치안을 맡고 있는 사회안전부는 비록 정무원 산하기관이긴 하지만 부장이 김정일의 심복으로 알려진 백학림이다.그는 이번 장의위원 명단에 서열 53위로 올라있다. 이처럼 북한의 인권문제는 김정일이 직·간접으로 관여해왔고 앞으로도 더욱 통제를 강화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세습에 대한 불만세력과 내부의 동요,족벌 사이의 암투가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고 이를 막으려면 통제를 보다 강화해 나갈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에 식량부족과 에너지 사정 악화등 경제난의 가중으로 주민들의 동향도 나날이 심각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러모로 볼때 북한의 인권상황은 새 권력체제가 들어선다 해도 지금보다 나빠졌으면 나빠졌지,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이런 점에서 핵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북한 인권문제에 조심스러웠던 우리정부가 민족 전체의 복지차원에서 북한의 인권개선 문제를 우선 순위에 올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 인권 대북정책 우선과제로/정부 방침

    ◎“7천만 민족안전에 주도권 행사”/김정일세습으로 한반도상황 변화 판단 정부는 북한주석 김일성이 죽고 그 아들 김정일이 권력을 세습하게 된 것을 계기로 북한주민의 인권문제를 대북정책의 우선순위에 올리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정부의 이같은 검토 작업은 김일성체제 때와는 달리 앞으로는 우리측이 북한 주민의 생명과 인권,복지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뜻으로 대북정책의 일대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와 관련,김영삼대통령은 최근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변화에 대응,우리의 북한정책 및 「한국대통령의 역할」을 재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이날 『북한에 장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김정일체제가 등장함에 따라 한반도문제의 주도권을 우리가 행사해야 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풀이하고 『이에 필요한 전반적인 대북정책의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현재의 상황전개로 미루어 지금까지 일부러 외면해왔던 북한주민의 인권문제를 대북정책의 우선순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논의가 정부안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전하고 『김대통령도 우리가 북한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북한주민의 인권과 생명의 안전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특히 『김대통령이 지난 9일의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7천만 민족의 안전을 지키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한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9일 김일성의 사망에 따라 소집된 임시국무회의에서 『앞으로 보름뒤면 남북정상이 만나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흉금을 털어놓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예정이었으나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아쉽게 생각한다』면서 이같이 밝혔으며 청와대측이 「7천만 민족의 안전」을 정책과제로 제시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한편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김대통령이 김일성의 사망과 관련,기존의 대북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그들은 우리대학생이 아니다(사설)

    김일성분향소와 함께 전남대에서 발견된 찬양및 추모유인물은 김일성에 대한 최고의 찬사와 김정일에 대한 충성까지 다짐하고 있어 우리를 경악시키고 있다. 특히 추모사는 북한이 공식발표한 김일성사망관련 문건보다 강도 높게 김부자의 주체사상과 생애를 찬양하는 내용이었다.도대체 이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한국의 대학생들인가 아니면 북의 공산독재정권을 추종하는 앞잡이들인가 분간하기 어렵게 되었다. 김일성을 가리켜 「민족의 태양」이니 「전체조선민중의 심장」이니 하는 따위의 망언을 서슴지않고 「그의 서거에 남한민중은 하염없이 통곡한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는 이른바 주사파학생들은 단순히 친북좌경세력이라고만 할 수는 없게 되었다.그들은 맹목적인 김일성의 추종세력일뿐만 아니라 우리의 국기를 뒤흔들어놓고 북한을 이롭게 하려는 이적행위의 실천자들임에 틀림없다. 최근에 발생한 서총련학생들의 경찰서·파출소습격사건이나 남총련학생들의 불법적인 열차세우기및 전경의 납치·감금사건등 일련의 공권력에 대한 도전은 이들의 의도를 극명하게 부각시켜주고 있다. 불법적인 폭력과 파괴를 일삼는 도시게릴라 같은 이 과격학생들을 우리는 더이상 한국의 대학생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며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기를 포기한 존재들이 아닌가.언필칭 민주와 진보의 미명으로 위장한 채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하고 북한이 획책하는 통일전선에 기여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운동권 특히 주사파학생들을 더이상 대학생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추모유인물의 작성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전남대 학생회는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검찰은 주사파들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추모사에서는 김일성찬양과 함께 김정일에 대한 찬양과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부자간의 정권세습이라는,현대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해괴한 처사에 온 세계가 빈축하고 있음에도 이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북한정권의 충실한 대변자요,나팔수의 역할을 맡고 있음을 뜻한다.이제는 어떤 이유로든 이들을 관용하거나 방치해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본다.운동권이나 주사파의 위장된 가면을 벗기고 그들의 실체를 국민앞에 드러내 보여줘야만 한다.그들의 정체는 무엇이가,그들의 배후는 누구인가가 분명하게 밝혀져야만 한다.당국은 이번 사건을 엄중히 다스리겠다고 밝혔다.운동권과 주사파학생들의 반국가적 행위는 위험수위를 넘긴 지 오래다.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을 불안케 하고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불순세력들에 대한 단호한 응징이 있어야 할 것이다.
  • 권력안정·대남교란 “다목적 책략”/북은 장례식 왜 연기 했을까

    ◎「후광」 더 이용 세습체제 구축 강화/「조문파문」 부추겨 국론분열 속셈/김정일 권력승계에 이상기류 관측도 북한이 16일 돌연 김일성장례식을 연기한다고 발표해 그 배경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이 그토록 우상화해온 신성불가침적 존재인 김일성의 장례식을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이틀이나 연기한데다 그간의 사회주의국가 최고지도자들의 장례식에서 일정이 연기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북한 국가장의위원회는 『전국각지의 각계인민들의 김일성수령에 대한 조의참가가 날로 늘어남에 따라 이같은 인민들의 절절한 심정과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그 배경을 밝히고 있긴 하다.하지만 북한정권의 종래 행태나 속성으로 보아 이같은 피상적인 설명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때문에 정부당국과 북한전문가들은 ▲세습체제구축강화를 위한 내부결속 다지기 ▲조문파문확산을 겨냥한 대남교란목적 ▲김정일후계체제의 이상기류 등 크게 3가지 측면에서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있다. 다만 현재로선 외부보다는 그들 내부의 필요성에 따라 장례식을 연기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한 편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우선 김일성장례식을 김정일의 후계체제강화에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연기했다는 시각이 제기된다.아직 입지가 불안한 김정일로선 그에게 권력을 물려준 아버지 김일성의 「후광」을 좀더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주민들의 조문행렬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바랄 것이라는 관측이다. 장례식을 영결식(19일)과 추도대회(20일)로 2원화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일 수도 있다.즉 일단 실제장례식은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주석궁 등에서 간단히 치르고 김정일의 후계체제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군중집회성격의 대규모추도대회를 별도로 갖기 위한 계산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평양의 김일성광장 등에서 북한의 정당·사회단체 등을 총망라한 가운데 열릴 추도대회는 곧 김정일추대식의 성격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이 경우 1백만명이상의 군중집회를 소집하기 위해선 북한의 원시적 교통체계 등을 감안한다면 상당한 준비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장례식일정의 연기가 불가피한것으로 추측된다.물론 김정일의 요즈음 건강상태가 무더운 날씨속에 2∼3시간을 버틸 형편이 아니라는 점도 또 다른 연기배경일 수 있다. 북한의 과거행태로 보아 김일성조문과 관련한 논쟁이 확산되고 있는 우리측을 겨냥해 교란 내지 선동을 더욱 부추기려는 복선도 상당히 깔려 있는 것으로 감지된다.이는 북한이 최근 김영삼대통령에 대한 비방을 재개하고 학생운동권등에 대해 조문단파견을 선동하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특히 북측이 장례식을 주사파등 남쪽의 극렬반정부운동권행사와 연계해 치르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첩보도 있다.이는 경직된 북한식 사고로는 남한이 그 정도의 선전선동에는 흔들리는 체제가 아니라는 것을 의외로 간과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김정일로의 권력승계의 이상기류를 반영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즉 김정일이 김일성만한 권력장악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핵심요직인사문제에 대한 북한 권력핵심부간 내부적 합의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이를테면 김정일이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직을 모두 차지할 것인지,아니면 국가주석직은 이른바 혁명1세대에게 물려줄 것인지 내부입장정리가 덜 끝났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결정적 이상이 생겼다고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장례식연기발표 이후에도 북한방송들을 통한 김정일받들기 분위기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김정일이 장례식추도사 등을 통해 밝힐 향후 북한체제의 지향노선에 대한 당정치국위원들간의 이견해소차 좀더 시간을 갖기 위해 장례식이 연기됐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장례식연기의 정확한 진상은 폐쇄적인 북한사회의 속성상 어차피 시간이 지나야만 드러나게 마련이다.다만 정부로선 이 여러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장례식이 미뤄졌을 경우 북한체제의 불안정성이 그만큼 확대될 것으로 보고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김 일가 30여명 핵심요직 포진/「김정일 친인척」의 현주소

    ◎당·행정·입법·사회단체 노른자위 독식 앞으로 김정일체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세력은 그를 둘러싸고 권력핵심에 포진해 있는 친인척들이다 사망한 김일성이 체제장악과 세습체제 구축을 위해 그동안 핵심 요직에 앉혀놓은 친인척은 약 30여명에 이르고 있다.북한권력의 핵심부인 노동당을 비롯,행정과 입법 사회단체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요직을 맡고 있는 것이다. 당에서는 당정치국원이자 부주석인 김영주(김일성의 친동생)박성철(김일성의 4촌동생 남편)을 비롯,당비서인 황장엽(김일성의 고종4촌동생 남편)당중앙위원회 부부장이자 3대혁명소조 사업부장 장성택(김정일의 매부)등이 버티고 있다. 정무원등 행정분야에 포진해 있는 인사는 정무원 총리 강성산(김일성의 이종사촌동생)을 필두로 부총리 김창주(김일성의 4촌)경제사업부 부부장 김정우(김일성의 고종4촌동생)화학공업부부장 강린수(김일성의 외4촌)등이다.이밖에 사회안전부 정치국장 장성우(장성택의 형)인민무력부 작전국 3처장 강운룡(김일성의 외5촌 조카),노농적위대장 강성룡(〃)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외교쪽에는 핀란드대사 김평일(김정일의 이복동생)오스트리아 대사 김광섭(김정일의 이복여동생 김경진의 남편)등이 있다. 또 입법기구인 최고인민회의 의장엔 김정일후계체제의 이론적 토대를 세운 양형섭(김신숙의 남편)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 친인척들은 김정일 체제에서 상당한 자리바꿈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이들중 김정일의 숙부인 김영주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게될 지 주목되며 그동안 김정일과 사이가 좋지않은 것으로 알려진 계모 김성애와 김평일은 한직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 김정일의 「논문」 통해본 사상관

    ◎최고 수뇌로 집단체제 대표… 무조건 충성을/지도자관/육체생명은 부모·사회생명은 수령에 받아/인민관/당영도·계승성 보장… 「우리식 사회주의」를/체제관/개혁·개방에 긍정적… 동구붕괴이후 “후퇴”/경제관 아버지 김일성의 사망으로 권력을 세습한 김정일은 북한의 발표대로라면 대단한 이론가요 저술가이다.그가 썼다는 논문은 자그만치 4백여편.김일성이가 썼다는 1천2백여편에는 크게 못미치지만 대단한 양이다. ○논문 4백여편 그가 김일성대학을 졸업하면서 낸 논문은 「사회주의 건설에서 군의 위치와 역할」로 알려져 있으며 북한이 그의 논문이라고 해서 처음으로 82년 3월에 공개한 것은 「주체사상에 대하여」였다. 그가 이처럼 많은 논문들을 직접 쓴 것인지,아니면 그의 측근 이론가나 학자들을 동원해 대필한 것인지 알길이 없다.그러나 이 논문들은 앞으로 북한을 이끌어 나갈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김부자가 이렇게 많은 논문을 낸 것은 그들이 대단한 사상가이자 이론가임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사상학습을 통해 북한 주민들을 무장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민족통일연구원 책임연구원인 김병로박사는 풀이했다. 김정일은 권력을 순조롭게 물려받기 위해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수령론」을 체계화하는데 주력해왔다.수령을 정점으로 하여 당과 인민대중을 하나로 결합,사회정치적으로 「영생하는 존재」라는 것을 이론화한 것이다.수령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최고수뇌로서 집단의 생명을 대표하고 있는 만큼 수령에 대한 충성심과 동지애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이라는 주장이다.이는 대외 자주성 강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이른바 「주체사상」을 수령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론화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인민을 수령의 종속집단으로 본 그는 인민에 대해 자유로운 의사를 표시할수 있는 개인으로 독립시키지 않고 조직·집단속에서만 존재하는 개체로 보고 있다.자유주의사회에선 인민을 시민으로 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집단적 성격을 갖는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그의 논문에선 인민을 수령·당·인민대중의 삼위일체적 관점에서 생명체의 한 요소로 중시하는 듯 하고 있지만 내용적으론 수령과 당에 철저하게 충성·복종해야 하는 봉건시대의 신민의 입장으로 이해하고 있다.인민은 부모로부터 「육체적 생명」을 부여받지만 수령으로부터는 「사회적 생명」을 부여받는다는 주장이다. 김정일은 체제관을 정립하는데도 힘썼다.공산권 개방·개혁물결의 흐름을 보고 위기감을 절감한 나머지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것을 부르짖고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우리식 사회주의에 대해 91년5월 당중앙위에서 발표한 담화를 통해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하고 3대 혁명으로 사회주의건설을 추진하며,수령·당·대중이 하나가 되는 집단주의 원칙과 당의 영도및 계승성을 보장하는 사회체제』라고 규정하고 있다.「우리식 사회주의」란 동구의 몰락에 대응하기 위한 북한 나름의 국가체제관이라 할수 있다. 그는 경제와 관련,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켜 그 바탕위에서 경공업과 농업을 발전시킨다는 중공업 우선주의라는 전통적 사회주의 경제관을 강조해왔다.김일성과 마찬가지로 기게공업을 비롯한 중공업을 자력갱생의 기반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그는 83년 중국의 경제특구를 둘러보고 돌아온 뒤 경공업의 중요성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그는 84년 「인민생활을 높일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신경제정책 논문을 발표하면서 평양의 광복거리 등 신주거단지를 조성하는 등 주민들의 인기를 끌 수 있는 의식주문제에 눈을 돌려 경제발전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그는 개혁·개방에 대해선 비교적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이었으나 동구의 붕괴가 가속화된 시점부터는 이를 경계하기 시작하는 논조를 보였다.
  • 김정일의 핵정책은(김일성 사후:6)

    ◎체제존망 걸린 문제… 불투명성 여전/3단계회담 지켜봐야 속셈 드러날듯/“경제 살리려 핵해결 불가피” 낙관도 북한주석 김일성이 죽었다고 해서 겉으로 보면 변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김일성체제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 말고는 핵문제도 그대로 있고 한반도에 대한 미·중·일·러등 주변국가들의 이해관계도 여전하다.김일성의 사망후 주변 4나라의 움직임을 보면 김정일체제가 굳어져 가고 있는데 대한 대응책에 부심하고 있는 듯하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권력세습이 이처럼 별무리 없이 이루어진다면 김일성이 죽기 직전 강경노선에서 대화쪽으로 선회했던 핵정책 또한 게속성을 지닐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적절한 타결책이 모색되리라는 긍정적인 분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그러면서도 김정일이 오랫동안 실무를 지휘해왔다고는 하나 그의 일처리 방식이나 개성,사고구조가 전혀 노출되지 않아 어떤 방식으로 나올지를 궁금해 하고 있다. 김일성 사망후,바꿔말해 새로 출범하는 김정일체제하에서 북한핵문제가 굴러갈 방향을 짐작하게 해주는 유일한 실마리는 지난 10일 미국과 북한의 3단계 고위급 회담 미국측 대표인 갈루치 국무부 차관보와 북한측 대표 강석주외교부 부부장사이에 이루어졌던 합의이다. 북한과 미국은 이때 미국과 북한의 고위급회담을 김일성장례식후 속개할 것에 합의했으며,특히 북한은 기존의 노선을 견지할 것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이러한 합의가 일정의 연기에 관한 것일뿐 그동안의 쟁점사항에 대한 합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에서 북한핵문제의 해결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라고 할수있다. 게다가 김일성이 죽어버린 현재의 상황은 북한으로서는 분명히 위기상황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주민들을 자극,인위적인 단결을 도모해야 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또 이번 합의는 대화의 불씨를 살려두었다는 점에서 당분간 대화국면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만을 가능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이 김일성의 장례도 치르지 않은 와중에서 미국과의 3단계 고위급회담과 심지어 남북정상회담도 가질 의사를 표명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결과를 낙관적으로만 바라본다는 것은 성급한 일이란 지적도 나온다. 대부분의 북한핵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카드를 생존 차원에서 다루고 있는 만큼 그리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있다.이제껏처럼 밀고당기는 지루한 싸움이 당분간 계속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아직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김정일체제로서는 외부에 국력을 분산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적인 이유와 경제개발과 개방에 힘을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체제의 한계 때문에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핵문제의 해결점을 찾아 나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특히 북한의 핵문제는 「김일성의 사망」이라는 충격으로 국제사회에서의 초점이 흐려지고 있지만 이는 앞으로 김정일체제의 존망과도 직결되어 있는 중요한 현안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앞으로 있을 미국과 북한의 3단계회담이 성사되면 남북정상회담에 임할 북한의 태도까지 미루어 짐작할 수있는 중요한 가늠자 구실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회담의 성과와는 별도로 외부에서 궁금해 하는 김정일의 사고성향,핵문제등에 있어서의 역할,체제의 안정수준,그리고 앞으로 그의 정책방향에 대해 많은 단서를 제공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 3대혁명 소조/만경대혁명학원/김정일 버팀목 “쌍벽의 두집단”

    김일성 사망후 북한의 세습군주로 부상하고 있는 김정일에게는 그를 지탱해주는 2개 특수집단이 있다.만경대혁명학원 출신집단과 3대혁명소조가 바로 그것이다.만경대학원 출신들이 일종의 두뇌집단이라 한다면 혁명소조는 친위조직으로서 김정일을 돕고 있다. ◎김의 모교… 소장졸업생 대부분 직계 활약/주도권 쟁탈전땐 「돌격대」역 맡을 가능성 김정일의 모교로 졸업생들 가운데 소장그룹 대다수가 김정일의 측근을 형성하고 있다.극소수 김정일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40∼50대는 대개 김정일파로 분류된다.김정일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만경대혁명학원이다. 만경대혁명학원은 혁명유가족의 자녀들과 당·정 고위간부들의 자녀들에게만 입학이 허용되는 특수학교다.아니 귀족학교라는 표현이 더 옳다.북한의 특수학교로는 또 강반석혁명유자녀학원 해주혁명유자녀학원이 있다. 만경대혁명학원은 지난 47년 10월21일 평남 대성군에서 문을 열고 3백35명을 수용했다가 다음해인 48년 현재의 평양 만경대로 이전하면서 수용인원도 5백22명으로 늘렸다.요즈음 학생수는 9백여명.교육기간은 유치원 상급반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을 포함해 모두 11년이다.인민무력부 소속으로 학생들은 재학기간동안 장교복장을 하고 의무적으로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한다.졸업후 최우선적으로 김일성종합대학에 진학하거나 장교임관 또는 당·정의 초급간부로 기용된다.원하면 해외유학을 갈 수도 있다.이 학교에 입학만 하면 북한사회의 엘리트코스를 밟을 수 있다. 졸업생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정일말고도 강성산(정무원총리)서윤석(평남도당책겸 인민위원장) 전병호(당비서) 최태복(당비서) 연형묵(자강도당책겸 인민위원장) 김환(부총리겸 화학공업부장) 윤기정(재정부장) 오극렬(전군총참모장) 김광진(인민무력부부부장)등이 있다.김정일 오진우(인민무력부장)에 이어 당서열 3위인 강성산과 연형묵 오극렬 최태복 전병호 김광진등 사방을 둘러봐도 대부분 김정일의 직계들이다.정무원총리를 역임했으며 남북고위급회담 단장으로 서울에 왔던 연형묵도 김정일의 사람으로 분류된다.김정일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젊은 층은 당·정에 폭넓게 포진해 김정일이 혁명 1세대들에 맞서 권력을 쟁취해가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앞으로 북한 내부에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질 때 김정일의 돌격대로 나설 공산이 크다.상류층의 자제들로 구성돼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개방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김정일의 술친구들은 대부분 김정일 또래의 만경대혁명학원 동창생들이다. ◎혁명2세대 「친위조직」… 2인자부상 기여/총10여만명… 73년 김영주 축출에 앞장도 이른바 북한의 혁명 2세대는 바로 3대혁명소조를 가리키는 것이다.김정일이 김영주 김성애를 누르고 김일성 다음가는 2인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데는 3대혁명소조의 뒷받침이 눈부셨다.김정일이 책임자인 부장에 매제인 장성택을 임명한 것을 보아도 그가 얼마나 이 조직에 애착을 갖고 있는지 금새 알 수 있다.장성택은 김정일과 함께 김정숙에게서 태어난 김경희의 남편이다.당서열 1백위권 밖에 머루르고 있지만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 3대혁명소조는 지난72년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규정된 「3대혁명」에 따라 73년 2월 발족됐다.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72년 12월 노동당 중진들의 비밀회의가 있은지 두달남짓만이다.「3대혁명」이란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이르는 것으로 3대혁명소조 역시 이들 3분야로 나누어져 있다.소조원은 당원과 국가기관종사원 대학생 대학교원 기술자 과학자 가운데 미혼남녀로 구성돼 있다.지난 83년 9월 개최된 3대혁명소조원 대회에서 현인원 4만6천명,소조를 거쳐간 인원 11만명으로 발표된 바 있으나 그 뒤에는 정확한 숫자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3대혁명소조는 당정책의 관철이라는 표면적인 명분 아래 간부들의 보수주의 경험주의 요령주의 기관본위주의 관료주의를 개조하기 위한 사상투쟁을 활동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중국으로 치자면 문화혁명을 주도한 홍위병인 셈이다.김정일의 직접 지휘 아래 각급 생산단위는 물론 행정기관 문화기관 학교등에 파견돼 기존의 당조직과 더불어 활동해왔다.하지만 사상투쟁의 실질적인 목적은 김정일의 반대세력 견제와 그의 후계체제 구축이다.3대혁명소조는 사실상 노동당 조직과는 따로 움직이는 김정일의 사조직인 것이다. 김정일은 3대혁명소조를 김영주를 제거할때 제일 먼저 이용했다.73년 당시 당조직부장이었던 김영주를 그릇된 사상의 찌꺼기를 가진 사람으로 몰아 마침내 한직으로 축출하는데 성공했다.김정일은 여맹위원장이었던 계모 김성애를 견제하는 데도 3대혁명소조를 동원했다. 하지만 유사시 김정일의 명령에 따라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준비가 돼있는 김정일의 수족으로 알려져 있다.
  • 김정일체제와 남북정상회담(사설)

    김정일의 권력 승계가 예상보다 빠르고 순조롭게 마무리되고 있는 것같다.김일성사망 이후 나타나고 있는 북한사회의 동태를 보면 김정일이 당·정·군의 실권을 거의 완벽하게 장악했음이 확실해지고 있다. 김일성사후 북한의 권력이 그의 아들에게 세습될 것이란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 이상할 것도 없고 놀랄일도 아니다.우리로서는 북한의 부자세습체제를 비판해왔고 또 KAL기폭파사건등 김정일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무자비한 대남도발만행 때문에 그가 북한의 새로운 독재자로 등장한 것에 대해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서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김정일이 당·정·군의 전권을 장악한 이상 그를 북한의 통치자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그것은 하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김정일체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그리고 북한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그체제가 안정기반을 다지기까지는 그의 아버지 김일성의 대외및 대남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미·북고위급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의 계속추진을 희망하고 있는것이 그것을 입증한다.미·북고위급회담은 오는 18일 뉴욕에서 재개될 예정이며 남북정상회담은 8월에 개최할수 있도록 하라고 김정일이 직접 지시했다고 한다.김정일이 미국과의 고위급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을 서두르는 이유는 이 두회담이 자신의 체제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노리는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는 불투명하다.미·북고위급회담이 예정대로 재개될 경우 이 회담을 지켜보면 김정일의 진의가 어느정도 파악될 것으로 생각한다.또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그의 자세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가 이 시점에서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남북정상회담의 절차와 조건이다.미·북고위급회담은 기존의 원칙에 따라 진행하면 되겠지만 남북정상회담은 상대가 바뀐 이상 회담의 절차나 조건을 새로 논의하고 합의해야 하는 것이 순서요,도리일 것이다. 우리는 김영삼대통령과 김정일의 정상회담을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그러나 김일성과 합의한 사항이 김정일과의 회담에서 그대로 적용되어서는 안된다.김일성과의 합의에서는 우리정부가 그의 나이와 건강을 고려,회담장소를 평양으로 정하는데 동의하고 상호주의원칙도 일부 양보했으나 김정일과의 회담에서는 상호주의원칙이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만약 김영삼대통령이 평양에 간다면 김정일은 반드시 서울에 온다는 것을 약속해야 할 것이다.아니면 제3의 장소를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상회담을 우리가 서둘 필요는 없다고 본다.김정일체제의 정착및 정책방향을 당분간은 지켜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북한 주체예술/세습 정당화 도구로 이용

    ◎60년대 김정일이 사회주의리얼리즘에 속도전 이론 접목/혁명가극­집단창작 통해 김일성 신격화/김정일 직접지도… 후계자능력 인정받아 김정일은 지난 60년대 후반부터 김일성 주체사상을 선전·선동하는 방편으로서 북한의 문예활동을 선도해 왔다. 73년 9월 북한의 당 중앙위원회 제5기 7차 전원회의에서 조직 및 선전·선동 담당 비서로 선출되면서 그는 김일성의 후계자로 부각됐으나 이미 67년 당 중앙위원회 제4기 15차 전원회의를 계기로 각종 문화분야에서 이른바 「지도」를 본격화했다. 특히 김정일은 김일성이 내세우는 마르크스·레닌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예관을 북한 특유의 주체문예관으로 변경시켜 김일성의 신격화운동을 직접주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먼저 연극분야에서 1970년대초 김정일은 『연극혁명을 일으켜 낡은 연극에 종지부를 찍고 혁명연극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혁명가극의 시대를 개척했다. 항일 유격대원의 이야기를 다룬 가극 「피바다」를 71년 초연하기위해 김정일의 지도가 있었다. 김일성을 비롯한 빨치산 출신의 당시 북한 권력층 원로들이 이 「피바다」 공연을 보고 김정일의 능력을 크게 평가,후계자로 정하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김일성 신격화 작업의 상징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정일은 1980년 혁명연극 「혈분만국회」를 직접 제작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미술 부문은 1970년대에 김정일의 지도에 따라 주체미술의 대전성기를 맞았다고 북한은 선전해 왔다. 그때까지 역사적 사실 속의 한 인물로 형상화되던 김일성이 70년대 북한의 회화에서는 현실적이며 인민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또 혁명적 기념비 미술은 거의 김정일의 업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조선 노동당 창립 30주년 기념으로 1975년부터 5년에 걸쳐 만들어진 「왕재산대기념비」의 경우 김정일이 비행기까지 동원하는 관심 속에 진행되었다. 70년대의 「평양 지하철 벽화」,「삼지연 대기념비」등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주체사상탑」,「개선문」등 80년대의 혁명적 기념비 미술로 이어진다. 음악의경우 혁명가극 「피바다」가 혁명의 무기로 생산 현장에서 공연됐다. 김정일의 음악관이 비교적 늦게 정립된 탓인지 87년 「행복의 노래」와 88∼89년 평양예술단이 창조한 민족가극 「춘향전」등이 김정일의 지도에 따라 무대공연 형식으로 발표됐다. 김은 오케스트라연주중 연주자의 반음 착오까지 지적할 정도로 조예가 깊다. 김정일은 또 4.15창작단,왕재산창작단,백두산창작단등을 만들어 문학분야에 집단창작제를 제도화시켜 「조선의 별」등의 대하소설을 기획하게 했다. 그는 『우리가 건설해야할 새로운 혁명문학은 명실공히 수령을 형상화한 문학을 말한다』고 역설했다. 무용에서도 「피바다식 가극무용」이 보통명사로 사용될 만큼 가극 「피바다」에서 구사된 수법이 정형으로 자리잡았다. 북한에서 4대 명무용의 하나로 꼽는 「키춤」은 원래 「피바다」의 3장 2경에서 물방아간 가무로 나오는 것을 떼어 내 72년에 군무로 개작한 작품이다. 이처럼 북한의 각종 예술활동을 지도해온 김정일은 특히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입각한 속도전이론등을 가미한 새로운 문예이론을 만들어 부자 세습에 대비한 신격화운동에 문화 예술을 적극 활용했다.
  • 대화상대로는 김정일쪽이…(송정숙칼럼)

    정직하게 말해서 김일성이 사망하기 전에 예정됐던 정상회담이 우리는 다소 불안했었다.그무렵 항간에서는 김일성을 만나고 온 사람은 모두가 좋지않은 운과 만나거나 다녀온 뒤에 「망했다」는 말이 이것저것 떠돌기도 했었다.조국이 통일만 된다면 조용히 시골로 낙향하여 과수원이나 돌보며 여생을 살고 싶다고 한 김구선생의 욕심없는 감회까지를 두고두고 모양사납게 만들어버렸고,독립지사 조소앙선생도 그에게 기만당했다.하려고만 들면 자신과 만난 사람들을 여지없이 곤란한 함정에 빠뜨리는 노회한 독재자가 김일성이다.그를 상대로 합리적이고 결이 곧은 민주주의 사회의,누가뭐래도 순진한 모범생격인 김영삼대통령이 마주 앉는다는 것은 국민으로선 조심스런 일이다.또 김일성은 김대통령과 한세대가 차이나는 노인이었다.경로사상에 물들어 성장하는 한국인에게는 노인을 거역못하는 체질이 유전되어 있다.게다가 유난히 효성스럽고 노인에게 다정한 김대통령이,자신의 부친과 동년배인 그 노욕 강한 늙은이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에 우리는 노파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김일성의 죽음소식을 듣고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무산되는 아쉬움은 들면서도,그런 노파심때문에 「아마도 우리가 운이 좋을 징조인가보다」하는 마음과 함께 은연중 고개를 드는 안도감같은 것을 체험했다. 이제 싫든좋든 정상회담의 상대는 김정일로 정해지는 것같다.김정일은 작가 최인훈의 표현처럼 『우리를 슬프게 하는 지체와 지각』속에서 희극처럼 만들어진 권력세습의 작품이긴 하다.그래도 그가 북을 장악한 실세라면 우리는 그와 대화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그는 누구인가.그가 입을 열고 했다는 말로 우리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사회주의 무엇무엇에 영광있으라』라고 외친 외마디소리가 전부다.알아듣기도 어려운 우물거리는 발음으로 내뱉은 이 한마디로는 도무지 그 사람됨이나 지적 수준같은 것을 짐작할 수가 없다.부시시한 몰골로 지척지척 걷는,언제나 자다가 끌려나온 것같은 모습이 비치는 화면만 보았을뿐 제대로 된 연설문 하나도,그를 짐작할 단서는 없는 것같다.그저 옹색한 정보를 토대로 해서나마 아마추어식 분석을 해보면 그는 『CNN뉴스를 시청하고 서방영화를 즐기며 「난쟁이 똥자루」같은 자기 희화의 말투를 서슴지않는』,말하자면 자본주의식 사고가 약간 침투된 과육을 지닌 「준비된」독재권력의 주인공인 것같다. 그런 상대가 정상회담의 새 상대로 불리할지 유리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몇가지 예측은 가능하다.우선 그와는 같은 문법의 말놀이(랭귀지 게임)가 가능하지 않을까싶다.그의 아버지인 김일성은 『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살면 최고』인 인민을 만들려고 반세기를 군림해온 그러나 그걸 이루지도 못한 통치가였다.그러나 아들인 김정일은 다소 퇴폐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자본주의의 정보가 입력된 세대다.그가 즐겨 시청한다는 CNN의 정보만으로도 지구촌이 어떻게 개방이 불가피한 곳인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가 병약하고 기형적인 안하무인의 무능한 예비독재자인지,영특하고 완결된 권력승계자인지 제대로 알길은 없지만 그래도 그가 그의 부친보다 대화상대로 다소 나을 수 있을 몇가지 기본 조건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이를테면 적어도 그는 직접 전범은 아니다.권력을 세습했으므로 죄의 책임도 「대를 이어야」한다는 이론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는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는 아닌 것이다.김일성의 경우 그 이름만 듣고도 치가 떨리는 것이 우리의 오랜 정서다.그런 분노를 털어보지 못하고 김일성을 저세상에 보낸 일에 허탈해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다.그런 대화상대를 마주하면 감정의 기복을 겪게 된다.그건 쌍방에 좋을 일이 아니었다.김정일로서도 스스로 직접 지은 과오가 아니므로 비교적 부담이 덜할 수 있다.그러므로 깨끗이 시인하고 청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같은 문법을 사용하는 그에게는 「혁명 1세대」가 갖는 시대착오적 집념의 몽매성을 설득해볼 수도 있을것이다.이미 조종이 울린 이념을 안고 언제까지 버틸수 있을지에 대해서 그도 내심 회의를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른다.그가 개방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설은 우리로 하여금 그런 기대를 하게한다.아버지의 너무 커다란 외투를 걸치고,춥고 배고픈 채 허망한 충성심만 그득한 인민을이끌고 출발해야 하는 그는 자신의 공화국의 미래에 다소 당황해 있을 수도 있다.그런 그에게는 이쪽의 거짓없는 충심과 성의를 이해시키기가 덜 어려울 것이다.형제적 우애를 기울여 정직하고 진실된 통일논의를 하기에는 차라리 그가 그의 부친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만만히 생각하고 경박한 대응을 한다면 그것은 또다른 오산을 초래한다.무슨 일만 생기면 물색없이 앞질러가다가 안해도 좋을 실수를 하는 약점을 우리는 지니고 있다.겉으로는 어벙해 보이지만 금세기가 낳은 가장 질긴 독재자가 수십년 빚어 만든 회심의 후계작이 김정일이다.만만하게만 여길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 세습체제 국제평가(김일성 사후:5)

    ◎김정일 공식지지 아직은 중국뿐/대권승계 공식발표까진 입장 유보 「초읽기에 들어간 김정일체제가 언제 공식 출범할 것인가」­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관심은 온통 여기에 쏠려 있다.그러나 김정일체제에 대한 전망이나 분석,공식 평가는 아직 내리지 않고 있다.일단 공식 출범 때까지 기다린뒤 그때 가서야 발표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만에 하나 변수라도 고려하는 것이 국가 사이의 외교 생리이다.괜스레 잘못 평가했다가 다른 체제가 들어서거나,또는 그 체제가 갑자기 무너져버리면 자국의 이익은 물론 치명적인 외교적 상처를 입게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중국 말고는 어느 국가나 김정일체제를 정식으로 인정할지 좀더 두고봐야 한다.다만 지금까지 김정일체제의 출범 움직임에 대해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나라는 거의 없어 보인다. 지난 73년 김일성이 그의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세우려는 움직임을 보일 때만 해도 국제사회,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는 「부자 세습」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었다.같은 사회주의 국가였던소련이나 중국도 처음에는 비슷한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20년 가까이 흐르면서 자국의 이해득실에 따라 모두들 변해버렸다.실리를 좇아 분주히 움직이는 국제사회의 모순된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국제사회의 평가를 파악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북한은 장례식에 외국 조문사절을 받지 않기로 했으나 조전이나 조의성명까지를 거부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12일까지 김일성의 사망에 조전을 보낸 국가는 모두 35개국으로 집계되고 있다.캐나다·인도·스위스·파키스탄·몽골·인도네시아·베트남·캄보디아등 그동안 북한과 가깝게 지내던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중국은 김정일이 장의위원장으로 발표된뒤 최고지도자 등소평 말고도 강택민주석·이붕총리·교석전인대위원장등 3인의 공동 명의로 『조선인민이 김정일동지를 중심으로 단결,계속 전진할 것을 믿는다』는 내용의 조전을 보냈다.중국이 최초로 김정일체제의 출범을 공식 인정한 셈이다. 클린턴 미국대통령도 김일성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마자 『미국민을 대표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조의성명을 발표했고,한걸음 더 나아가 북한의 새체제와도 대화를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김정일체제를 사실상 인정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나섰다. 이렇게 볼때 김정일체제는 공식 출범만 하면 국제사회의 공인을 받고 대화파트너로 자리잡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인다.생각보다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쉽게 김정일체제 인정 쪽으로 기운데는 핵문제를 지나치게 의식한 클린턴대통령의 태도가 크게 작용한 것 같다.그러나 그것 또한 일시적일 수 밖에 없다.언젠가는 정상을 회복하고 지난날의 잘못을 되짚어 보게 된다.따라서 김정일체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정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 취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
  • “후계구도 완성” 안팎 과시/김일성 시신공개·김정일 참배의 함축

    ◎오진우·강성산대동… 군·정장악 시위/자연사 비춰 “모반세력은 없다” 부각 북한이 11일밤 김일성시신을 공개하고 김정일이 권력핵심요원들을 대동하고 참배하는 장면을 공개한 것은 후계구도의 안착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즉 북한주민들과 북한권부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외부세계에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이상이 없음을 시위하기 위한 사전각본에 따른 것이다. 이같은 연출의 한 가운데에는 김정일이 있다는 것은 현재로선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그가 김일성사망 나흘만인 이날 북한의 고위당·정·군 핵심간부들을 거느리고 빈소에 출현한 것이 그 가시적 증거다. 이날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의사당(주석궁)에는 북한의 권력서열과 일치하는 장례위원 2백73명 거의 전원이 나타났다.특히 평양주재 외교사절들의 조문시 오진우인민무력부장·강성산정무원총리·김영주·이종옥·박성철부주석과 최광총참모장·김영남외교부장 등 핵심인물들이 김정일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시립」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두드러졌다. 더욱이 북측이 이날 공개한 TV화면 속의 김일성시신은 그의 사인이 자연사라는 심증을 갖게 할 만큼 훼손된 흔적이 없었다.따라서 여기서도 쿠데타나 모반세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것과 함께 김부자간 후계세습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지적이다. 이날 김일성유해 옆에는 국방위원장과 군최고사령관명의로 된 김정일의 화환이 놓여져 있어 일단 당총비서직과 국가주석직 승계절차는 거치지 않는 것으로 유추된다. 그러나 이날 빈소에서의 여러 정황들을 종합할 경우 김일성의 사망직후인 8일 내부적으로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확정했을 가능성이 크다.즉 북한정권의 핵심인물들인 오진우·강성산 등 당정치국위원들이 비밀회합을 통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주변국중 북한지도부와 교감이 가장 깊은 중국의 강택민·이붕 등이 「조선인들이 김정일동지를 수반으로 굳게 뭉쳐 전진하기를 기대한다」는 조전을 보낸 것도 이 때문에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당중앙위와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김정일의 권력승계절차를 밟기 위해 당중앙위원들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을 11일 평양으로 소집해놓고 있다. 하지만 당중앙위와 최고인민회의가 열렸느냐 여부와 관계없이 이들 북한의 핵심기득권세력들이 일단 김정일추대에 합의했다면 그의 당총비서 또는 국가주석취임은 시간문제일 뿐이다.북한권력의 속성상 주요의사결정은 어차피 하의상달식이 아니라 상층부의 지침에 따라 일방통행식으로 결정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날 짧은 시간의 화면에서 김용순대남비서와 계응태공안비서 및 장성택3대혁명소조부장은 물론 지난해 강등된 김달현전부총리 등 김정일의 핵심측근으로 알려진 인사들이 대거 「클로즈업」된 사실도 눈여겨볼 대목이다.이들이 김정일시대에 중용이 예상되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건재사실이 곧 김정일체제구축을 역으로 입증한다는 것이다. 이날 빈소에는 또 김정일의 숙부인 김영주와 함께 김과 갈등관계이던 김성애,확실치는 않지만 이복동생 김평일의 모습도 보였다.이러한 광경 역시 이들의 속마음이야 어떻든 김일성이라는 선장을졸지에 잃은 마당에 일단 한배를 탓다는 위기의식으로 인한 잠정적 결속이 이뤄졌음을 시사한다는 관측이다.
  • 김정일체제 정착되면 개방 “노크”/러서 본 「김일성사후 북한」

    ◎집권초기 대외교류 가능성은 거의없어/현재론 주민 욕구분출 조짐 안나타나/세습정권 장기통치 힘드나 식량위기 해소 주력할듯 러시아는 김일성 사후 북한의 장래를 ▲김정일이 권력을 순조롭게 장악해 일정기간뒤 개방정책을 추진할 가능성 ▲김정일이 초기단계부터 개방정책을 주도할 가능성 ▲김정일이 집권초기에 실각할 가능성 ▲일반주민들의 개혁욕구가 폭발하는 경우 등 모두 4가지 대안을 상정하고 있다고 러시아 외무부의 한 당국자가 11일 밝혔다. 평양주재 러시아대사관에 근무하다 최근 모스크바로 출장중인 알렉산더 말렌코프씨(40·가명)는 이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그러나 군부를 포함,현재 북한내에서 반금정일 세력은 전무하며 적어도 초기단계에 김정일의 권력장악은 기정사실』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4가지 대안중 러시아는 김정일이 일정기간 권력을 공고히 한 뒤 집권층 내부에 개방여부를 둘러싼 내분이 표출되면서 불가피하게 개방정책을 시작하는 첫번째 대안을 가장 가능성이 큰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 권력강화기간에는 김정일추종세력들이 단결해 체제강화를 위한 억압정책을 계속할 가능성이 크지만 대부분의 전체주의정권의 경우에서 보듯 일정기간이 지나면 집권층내에서 주도권 쟁탈을 둘러싼 내분이 일어나 이 단결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그는 분석했다.권력강화기간을 거치면서 경제력이 바닥나고 사회적 불만이 극에 달해 변화가 불가피한 시기가 온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소위 김정일 일족내 반란예비세력으로는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세력,군부 등이라고 이 시나리오는 상정하고 있다. 두번째 김정일이 초기단계부터 개방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은 소위 김정일 일파내에서 개방파의 목소리가 우세할 경우이다.그러나 이 경우는 그동안 김일성이 유지해온 체제의 보수성등을 감안,큰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이 시나리오는 전망하고 있다. 세번째는 최악의 대안으로 김정일이 집권초기 권좌에서 밀려나는 것인데 이 경우는 북한권력이 곧바로 내부의 대결국면으로 치닫게돼 자칫 유혈사태 등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것을 의미하고 있다. 마지막 대안은 국민들사이에 개혁욕구가 분출돼 소위 고르바초프 말기의 소련상황이 북한에서 재연될 경우다.그러나 이는 개방개혁에 대한 인식이 어느정도 심어져 있는 북한내 일부 식자층과 일반국민들의 인식차가 워낙 커 개방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기대하기 어렵다. 한편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지는 12일자 김일성사망과 관련한 특집기사에서 김정일은 오래 권좌에 머물지는 못할 것이며 가까운 장래에 김정일의 퇴진,북한의 대외개방,국내 자유화 등이 잇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신문은 『김일성사후 북한에서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것은 스탈린 사망직후 소련의 혁명적 변화를 예견하기 어려웠던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붕괴된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험으로 볼때 김정일이 오랫동안 북한을 통치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신문은 특히 김정일은 아버지와 같은 능력을 거의 갖고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나라전체가 자신에게 복종할 것이라는 망상속에서 자신의 천재성을 굳게 믿고 있다면서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의 오류를 깨닫게 될 것이며 앞으로 대외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외국인들에게 북한입국을 허용하고 국내적으로도 주민생활 향상을 위해 일부 제약을 철폐하는 한편 특히 식량위기 해결에 노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김정일이 실권할 경우와 관련,이 신문은 『(만일 김정일이 물러났을 경우) 그의 퇴진을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의 새 지도부가 김일성정권의 범죄행위에 대해 자주 언급하게 될 것이며 이 모든 것들은 북한이 새로운 방향으로 출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들』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 신문은 앞으로 10년후쯤 러시아 동북국경에 인구 7천만의 산업잠재력이 높은 강력한 민주국가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며 통일한국의 등장을 전망하고 통일한국은 세계에서 4번째의 경제중심지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 김정일 조기승계/“대안없다” 지도층공감대 반영

    ◎“내부분열땐 붕괴위험” 체제지키기/김일성정책 노선 단기적 유지 신호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것은 한반도에서 중대한 힘의 공백이 생겨났음을 의미한다.그가 없는 북한은 이미 반쯤은 붕괴된 것이라는 분석도 어느정도 설득력을 지닌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김정일체제」의 조기출범을 서두르고 우리를 비롯한 주변 열강들이 그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한반도에 관련된 나라 가운데 누구도 힘의 균형이 절대적으로 파괴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지도층 인사들은 내부분열로 체제 유지가 어려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김정일을 중심으로 일단 뭉치는 수 밖에 없다고 느낀 듯하다.일종의 「대안불재론」이며 「현상유지정책」인 셈이다.우리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다섯 나라도 북한 지역에 힘의 공백이 생겼다해도 어느 누구든 혼자 그것을 차지할 수 없다고 판단,북한의 현상을 지켜주는 쪽으로 잠정타협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둘째,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모두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김정일로의 권력승계가 조기에,또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을때 생기는 플러스요인보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최악의 사태를 걱정하고 있다. 우리로 볼때도 그렇고 국제적으로도 권력의 부자세습은 부자연스럽다.열악한 인권상황아래서 권력세습이라는 후진양태가 벌어지는 것을 용인할 정도로 국제사회는 관대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우리와 주변국가들은 김정일체제를 인정하기 시작했다.그가 실패했을때 혹시 군부등 강경세력이 전면에 나서거나 혼란의 와중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염려하기 때문이다.다소의 위험이 있더라도 북한을 흔들어 민중봉기 혹은 쿠데타를 통해 북한의 붕괴및 통일을 목표로 해보자는 목소리는 어디서도 나오지 않고 있다. 셋째,같은 맥락에서 이번 사태는 한반도 통일의 방식까지 제시하고 있다.정부는 북한을 흡수통일하려는 적극적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었다.주변 여건탓도 있겠지만 정부는 김일성 사망 초기부터 북한 체제의 안정을 희망한다는 견해를 밝혔다.동서독처럼 막바지에 가서 흡수통일의 형식을 띨수는 있을지언정 미리부터 무리는 않겠다는 생각인 것같다. 넷째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하려는 주변국의 노력이 증가되는 조짐이다.김정일이 조기에 권력세습체계를 갖춘다 하더라도 김일성보다 안팎의 위상이 낮아질 것이 틀림없다.국제적 위상약화는 핵문제를 둘러싼 줄타기외교를 하기 어렵게 하리라 전망된다.주체사상의 고집도 꺾이기 시작할 것이다.그 틈에 여러 나라가 끼어들 수 있다.김정일은 내부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도 외부의 힘을 빌리려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에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 있다.그 다음 미국도 핵문제와 수교등을 묶어 이제까지보다는 훨씬 더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늘릴 가능성이 짙다. 우리도 남북정상회담을 지렛대로 활용하면 남북관계를 주도할 수 있다.정부도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북한및 통일정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볼수 있는 것은 북한의 정책과 연관된 것이다.김정일의 조기권력승계는 단기적으로 북한의 김일성 정책노선의 유지를 의미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예상이다.김일성이 시작한 남북대화의 국면도 그대로 이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 “화해·교류가 사는길” 일깨우자/나종일(대북정책 새 접근)

    ◎「변화와 연속성」 북이 어떻게 조절할지 관심 지난 며칠동안 우리나라는 마치 김일성의 사망 이외에는 세상에 중요한 일이 없는 것처럼 온통 모든 관심이 이 문제에만 집중되어 있었다.온갖 추측과 예상들이 난무하는 사이에도 정작 앞으로의 남북관계나 통일에 관한 착실한 의견의 합일점은 도출되지 않은 셈이다. 이것은 물론 지난 반세기에 걸쳐서 김일성이 차지해온 중요성에 비추어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그러나 따지고 보면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어 있는 것이고 김일성의 죽음은 오랫동안 예상되어오던 것이 아니겠는가.특히 남북한의 정부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만큼 대비 또한 게을리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 죽음이 돌발적인 사건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또 그 시기에 공교로운 면이 있었을지라도 우리의 반응은 정부나 일반시민이거나를 막론하고 좀더 차분할 수 없었겠는가.「차분하다」는 것은 물론 반응이 그저 물 끓듯하지 않고 가라앉는 듯하면서도 멀리 보면서 실속이 있어야한다는 뜻이다. 먼저 북한의 경우를 생각해보자.김일성의 죽음은 북한체제의 변화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어떤 체제이건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변화함으로써만 그 기본적 성격을 유지할 수 있다.그리고 북한의 정상권력층이 지난 20여년에 걸쳐 「부자세습」의 말을 들으면서 주의를 기울여온 것이 바로 김일성이후에 그 독특한 체제를 어떻게 유지하는가 하는 문제이었다.말하자면 「변화와 연속성」의 완급을 새로운 지도체제가 조절하는 문제이었을 것이다. 둘째로 따지고 보면 북한체제나 대외정책변화는 김일성의 생존시에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마찬가지로 남한의 내부나 남북한관계의 기본적 성격도(적어도 우리의 고정관념보다는 훨씬 더 빨리) 현실에 있어서 상당한 변화를 겪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요체는 한마디로 양체제 사이의 「모순·대립·갈등·경쟁」의 제양상에 겹쳐서 「공존·화해·교류·협력」의 양상이 부상한다는 것이다.이것은 단순한 평면적인 이야기가 아니다.예를 들어서 이것은 남북한간에 갈등이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다.남북한간은은 여전히 갈등의 관계이며 이것이 「협력」이나 「화해」보다 더 두드러진 양상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대립이나 갈등 또는 경쟁의 관계라고 하여서 반드시 협동이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것은 평면적인 사고의 소치다.때로는 갈등이나 대립에서 전체적으로 차원 높은 성취가 이루어질 수도 있고 사이가 좋다고 해서 반드시 전반적인 발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남북한관계나 궁극적으로 통일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입체적 사고」일 것이다.남북한은 각기 자기들의 단순한 생각대로 쉽게 통일을 이룰 수 없으며 화합을 할 수도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립과 갈등과 함께 화해와 교류,그리고 협력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단계에 이르러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우리가 비록 사건들의 와중에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였을지라도 농지개혁이나 경제발전,민주화… 등을 비교적 빨리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북한의 위협」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개혁과 발전을 이룩하지 못하면 체제전체가 이 위협 아래 놓이게 되는 것이다.그 반면에 항상 우리를 「위협」해온 북한은 그만큼 정체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이다.이것은 다른 모든 문제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특히 양측의 지도층이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점이라고 여긴다.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와중에도 현재 북한은 전형적으로 「왕은 죽었다.전하만세」의 예다.변화속의 연속,그리고 연속속의 변화가 당분간 남북한관계에 기본적인 틀이다.그러나 우리들의 생각이나 처신은 적어도 지금까지보다는 좀더 창의적이고 적극적이며 긍정적이어야 한다.
  • 김일성,「후계자 정일」 의도적 찬양

    ◎“강한 배짱·신념 소유자” 공사석서 자주 칭찬/「지도력」에 만족… 세습체제에 대한 지지 강조 김일성은 마음 편히 눈을 감았을까.그는 생전에 아들이자 후계자인 김정일의 능력을 얼마나 신뢰했을까. 김일성은 김정일을 후계자로 정한 뒤 아들의 통치능력과 성품을 높이 인정하고 후계체제를 낙관하는 발언들을 기회가 있을때마다 해왔다.아들에 대해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것처럼 공사석을 통해 얘기해 온 것이다. 그는 올해 초 『김정일 조직비서만큼 신념이 강하고 배짱이 센 사람은 처음 보았다(평양방송 94·3·10)』고 말해 김정일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감을 표시했다.3일 뒤 노동신문은 김일성이 『항상 수수한 잠바 차림으로 다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 온다』며 아들의 검소한 생활을 본받을 것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 해 3월에는 『김정일 동지가 혁명 사업을 훌륭히 계승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모든 일이 잘 돼 나가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잘 돼 나갈 것』이라며 김정일이 주도할 북한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지난 92년 2월 김정일의 50회 생일을 맞아 김일성이 직접 지었다는 「광명성 찬가」라는 한시에서 후계자에 대한 평가는 극치를 이룬다.이 시에서 김일성은 『김정일이 백두산의 정기를 받아 태어났으며 만민이 그를 칭송하고 있다』고 주장,김정일에 대한 더 할 수 없는 신뢰와 애정을 표현했다. 그러나 김정일에 대한 이 같은 평가가 김일성의 진심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문란한 사생활과 돌출적인 행동에 대해 수차례 질타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더욱이 지난 해 18년만에 동생인 김영주를 부주석으로 복권시켜 김정일의 후견인 역활을 맡긴 것은 그가 김정일의 지도력과 권력 계승능력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따라서 김일성이 아들을 자랑하는 「팔불출」역을 자임했던 이유는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사후에 있을 반발과 혼란을 막고 안정적인 세습체제 구축하기 위한 「의도성 칭찬」으로 볼 수 있다. 이 밖에 북한 언론이 틈나는대로 보도한 김일성의 김정일에 대한 찬사를 소개한다. 『김정일 동지와 같이 권위있는 철학가,이론가가 있는데 대해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올해 유난히 김정일에 대해 자주 언급해 김일성이 후계체제를 비롯한 통치권 인계작업과 신병정리에 어느 때보다도 높은 관심을 보였음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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