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세습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그네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544
  • 아사히신문 유권자 1,100명 대상 조사

    ◎“日 차기총리 고이즈미 선호”/18%로 1위… 가지야마 1% 차로 2위/오부치·고노 동률 3위­미야자와 5위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 자민당 총재와 함께 다음 일본 총리 후보로 고이즈미 쥰이치로(小泉純一郞) 후생상이 일단 관심을 끌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13,14일 일본의 유권자 1,100명을 대상으로 차기 총리감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고이즈미 후생상이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외상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고이즈미 후생상은 지지율 18%를 차지했고 가지야마 세이로쿠 전 관방장관이 17%로 뒤를 이었다.당내외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돼 온 오부치 외상은 14%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외상과 동률 3위에 그쳤다.그는 자민당 최대 파벌인 오부치파 회장이다.한편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전 총리는 6%로 네번째였다. 그러나 이들 상위권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율은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들을 지지하지 않는 부동표가 31%나 됐다.하나같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갈 리더십이 결여되어 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일단은 오부치 외상이 유리한 고지에 올라 있다.최대 파벌의 회장 이며 주류인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미야자와파) 간사장,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와타나베파) 정조회장 등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오부치 외상에게는 인상을 남길 만한 업적이 없다는 게 약점이다.한 TV방송은 오부치 외상이 지금의 일본 왕이 즉위할 당시 관방장관으로 연호가 ‘헤이세이(平成)’으로 정해졌다고 발표한 것이 유일한 ‘업적’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고이즈미 후생상은 3대째 의원을 세습하고 있는 정치명문 출신으로 직설적인 발언,우편저금을 비롯한 우정사업의 민영화론 등으로 유권자들의 신망을 얻었다.그러나 당내에서는 ‘한마리 이리’로 취급당할 만큼 지지기반이 취약하다. 가지야마 전 장관은 경제적 비전을 제시한 점,비주류의 지지를 받는 점,경제계에서 지지가 높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당내에서 지지기반이 약하기는 마찬가지.당내에서 안정 세력 구축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점쳐진다.
  • 에스트라다 比 대통령 오늘 취임

    ◎‘빈민층의 대변인’·‘무식쟁이’ 찬사·비난 동시에/외국수반 초대 않고 교회서 조촐하게 취임식 ‘자격’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조지프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통령 당선자(61)가 30일 피델 라모스 대통령의 후임으로 제13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빈민층의 대변인’‘필리핀의 레이건’ 등 찬사와 함께 ‘필리핀을 재앙에 빠뜨릴 무식쟁이’란 비난을 동시에 받은 영화배우 출신의 에스트라다는 앞으로 6년 동안 필리핀을 이끈다. 취임식은 외국 수반들을 한 명도 초대하지 않은 채 필리핀 북부의 한 교회에서 조촐하게 치러진다. 국가 경비 절감이 이유.‘빈민들의 대통령’이라는 이미지에 맞춘 것이라는 평가도 있으나 그 보다는 7년래 최대의 실업률(13.3%)을 기록하는 등 경제가 급속히 추락하는 시점을 고려,강력한 경제개혁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분석이 더 강하다. 실제로 지난 15∼19일 라모스 대통령이 유네스코 평화상을 받기 위해 필리핀을 비운 사이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은 에스트라다는 강력한 정치·경제개혁 의지와 구상을 드러냈다. 그가보여준 일련의 통치행위는 그동안 그에게 쏠리던 우려를 기대로 바꿔 놓았다. 파업중인 필리핀항공(PAL)문제와 관련,전격적인 민영화 계획을 밝히는 것으로 공세입장을 취했다. 액션스타 출신답게 저돌적인 면모를 과시한 에스트라다는 자신과 대립하고 있는 구 정권및 엘리트층을 흡수하는 주도면밀함도 보여줬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 유해를 영웅묘지에 안장하는 문제를 놓고 대립한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과 전격 화해,27일 그녀를 ‘30인 자문단’수석 고문으로 추대했다. 피델 라모스 대통령 그룹과도 손을 잡았다. 47%의 압도적인 지지로 부통령에 당선된 라모스의 라카스 당 출신 경제통 마파카발 아로요(여·51) 의원을 사회복지 장관에 겸임 발령했다. 두 전직 대통령세력과의 제휴는 아키노를 중심으로 한 민주세력과 하원을 장악한 라모스의 라카스당 의원들로부터 개혁정책을 펴나가는데 있어 정치적 협조를 얻겠다는 의도. 기득권층과의 이같은 화해정책은 세습적인 정치가문이 아닌 대중 스타 출신의 에스트라다가 필리핀을 이끌어 가는데 큰 힘을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 재벌 변칙상속 중과세해야(社說)

    대기업 총수가 2세에게 변칙적으로 재산을 상속 또는 증여하는 행위는 부의 세습화를 막고 공평과세를 통한 조세정의 실현을 위해서 근절되어야 한다. 金大中 대통령은 지난 19일 경제대책조정회의와 모범유공자 초청 다과회에서 “아버지가 재벌이라고 해서 아들은 손가락에 물도 안묻히고 부자가 되는데 이것이 민주주의고 시장경제냐. 미국 등 선진국은 상속세를 엄청나게 물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지적대로 우리 재벌들은 2세나 3세에게 손쉽게 부를 변칙 상속 또는 증여하고 있다. 최근 주식가격이 크게 내리자 변칙증여가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주식증여의 경우 증여가 이뤄질 때 증시의 주식가격으로 증여세가부과된다. 현재 주식가격이 폭락,시가가 액면가격보다 크게 낮아지자 이 때를 이용해서 증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재벌총수나 특수관계자는 또 수년간에 걸쳐 특정기업 주식을 친인척에게 매각해도 양도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가 부과되지 않은 점을 이용,형식적인 매매절차를 거쳐 우량주식을 넘겨주고 있다. 재벌들은 변칙증여 뿐 아니라법을 어기면서 상속과 증여를 하는 것도 서슴지 않고 있다. 재벌총수는 먼저 재무구조가 나쁜 계열기업 주식을 자녀에게 증여,증여세 부담을 낮춘 뒤 계열사간 부당한 내부거래를 통해 주식가치를 상승시키는 교묘한 방법도 동원하고 있다. 또 자산재평가를 통해서 무상주를 나눠주고 기업 합병 및 공개를 통해서 변칙적인 증여를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상속과 증여세의 최고세율이 낮고 세율구조도 단순화되어 있어 재벌들은 이런 변칙적인 방법을 쓰면 세금을 얼마 내지 않으면서 재산을 2세에게 고스란히 넘겨 줄 수가 있다. 한국은 상속과 증여세 최고 세율이 40%,누진단계는 4단계로 단순화되어 있다. 미국은 17단계에 최고세율 55%,일본은 9단계에 최고 세율 70%,대만은 18단계에 최고 세율 60%이다. 재정경제부는 높은 세율이 오히려 탈세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지난 94년 세법을 개정, 최고세율을 내리고 누진단계를 단순화한 바 있다. 재정경제부는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따라 상속세법 등 재산세제 개선에 착수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당국은 최고 세율과 누진구조를 상향 조정하고 재벌총수가 친인척에게 일정범위를 넘어서 주식을 양도한 경우 고율의 양도세를 부과할 것을 당부한다. 주식을 통한 변칙증여를 억제하기 위해 증여세납부기한(현행 3개월)을 단축하고 상속과 증여세 합산과세기간(현행 5년)도 최대한 연장해야 할 것이다.
  • 세발심 부동산세제개선안 주요 내용

    ◎부유층의 변칙 증여·상속 차단/기업구조조정 감면제도 유지/증여·상속 합산 과세기간 연장/소득 줄여 올 종토세 인상 안해 정부와 세제발전심의위원회가 마련한 양도소득세제 개편안은 취득단계의세부담을 줄이고 보유단계의 세부담을 늘리는 게 골자다.부동산거래의 활성화를 겨냥한 것이다.상속·증여세제 개편안은 부유층의 변칙 증여와 상속에제동을 걸어 부(富)의 세습을 차단하겠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도세율을 낮춘다=세율을 종합소득세 수준으로 낮추거나 양도차익을 종합소득과 합쳐 세금을 매기는 방안이 추진된다.종합소득에 합산할 경우 누진세율이 적용돼 고소득층과 부유층의 세부담이 늘 전망이다.그러나 30∼50%인 개인의 양도소득세율을 20∼40%로 낮추고 20%인 법인의 특별부가세율은 15%로 내리는 방안이 유력하다. ■감면은 축소하거나 폐지한다=양도세율 인하에 따라 현재 25(토지의 국가수용)∼50%(사업장 이전)인 감면율을 △25% 감면율의 경우 폐지하고 △35∼50% 감면율의 경우 10∼25%로 축소한다.농지에 대한 비과세나기업구조조정관련 감면제도 등은 유지한다. ■취득단계 세금은 내린다=취득세와 등록세에 부가되는 농특세(0.2%)와 교육세(0.6%)는 단계적으로 폐지해서 취득단계 세부담을 5.8%에서 5%로 낮춘다.지가 하락과 소득 감소 등을 감안해 올 종합토지세는 올리지 않는다. ■변칙증여에 대한 과세를 강화한다=현재는 세법에 열거돼 있지 않은 사례에 대해서는 증여가 이루어져도 증여세를 과세할 수 없게 돼있다.그러나 앞으로 변칙증여가 발생할 경우 즉시 과세하는 포괄주의가 채택된다.세법에 정한 사례만 세금을 물리는 조세법률주의에 어긋나 위헌소지가 있다. ■대주주 등의 상장주식 양도차익도 세금을 매긴다=대주주(특수관계자 포함)가 일정기간 양도한 주식수가 발행주식수의 일정비율을 초과하면 양도차익에 양도세를 물린다.대주주가 재무구조가 나쁜 계열법인 주식을 자녀에게증여,증여세 부담을 낮춘뒤 계열법인간 내부거래를 통해 주식가치를 높게 만드는 등 상장주식을 통한 부의 무상세습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경영권 이전을 수반하는 주식양도 차익도 일시 재산소득으로 간주,종합소득에 합산 과세한다. ■합산과세 기간을 연장한다=현재 상속개시 전 5년이내 증여분은 상속세와 합쳐 세금을 매기고 같은 사람으로부터 5년간 받은 증여분은 모두 더해서증여세를 매기고 있다.이 합산과세 기간을 10년이나 평생으로 연장한다.
  • 租稅체계 간결·투명하게(社說)

    우리나라의 현행 세제(稅制)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고속성장을 주도하기 위해 갖가지 조세감면등의 감세(減稅)특혜규정을 마련하고 탈세봉쇄,특정기업 처벌 또는 지원등의 목적으로 세법을 이곳저곳 자주 뜯어고침에 따라 각 세법의 내용과 양(量)이 방대하며 복잡하다.때문에 정부가 23일 발표한 조세체계간소화방안은 현행 세제의 문제점을 시정,투명성을 높임으로써 경제운용의 세계화추세에 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볼수 있겠다. 특히 교육세·농특세·교통세등 본세(本稅)에 붙는 목적세를 대부분 없애기로 한 것은 불필요한 심리적 조세저항을 해소함은 물론 재정운용의 탄력성과 신축성을 극대화(極大化)할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개편방안으로 평가된다.사실 그동안 징세편의적 발상에 따라 각종 목적세가 신설됐고 그 비중이 전체의 18.7%에 이를 정도로 비대해졌던 것이다.선진국의 1% 안팎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게다가 각 목적세가 칸막이식으로 운용됨으로써 세입예산 집행의 신축성이 크게 결여됐던 것으로 지적된다.때문에 이번 방안에서 종전 목적세부문의 세수분(稅收分)을 경제구조조정과 실업대책의 용도로 사용키로 한 것은 경제위기상황을 맞아 조세의 경기(景氣)대응기능을 높이고 예산운용의 우선순위를 바로잡는다는 점에서 올바른 방향선택인 것으로 분석된다. 세제의 간소화는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고 통상마찰을 줄이는 데도 적잖이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난해한 조세체계는 까다로운 행정규제와 함께 외국인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이었기 때문이다.통상과 관련,무려 7종의 세금이 부과되는 승용차의 예에서 보듯 수입(輸入)을 가로막는 정책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많았던 것이다. 다만 세제간소화와 함께 세부담의 감소가 이뤄지지 않은 점은 ‘작은 정부’지향 정책을 고려할 때 향후 보완이 필요한 대목임을 강조한다.부가가치세가 폭넓게 적용됨에 따라 고소득·저소득계층 가릴 것 없이 부과되는 간접세비중이 커짐으로써 조세의 역진성(逆進性)이 나타나는 것도 시정이 요구되는 사안이다.특히 불법적인 부(富)의 세습을 차단할수 있게끔 상속·증여세정밀추적을 뒷받침하는 금융실명제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갑종근로소득세의 합리적 세부담을 위해 세율적용의 소득구분을 다단계화(多段階化)하는 작업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이와 함께 일반국민들도 납세도의의 앙양이 세제간소화·투명화에 불가결한 요소임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 서울서 4·3사건 진혼 굿판

    제주 4·3사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유족의 아픔을 달래주기 위한 진혼 굿판이 서울 한복판에서 펼쳐진다.제주4·3항쟁 50주년기념사업 범국민추진위원회(상임대표 김중배·김찬국·강만길·정윤형)와 서울제주도민회의 공동주최로 4일과 5일 이틀동안 서울 연강홀에서 열리는 추모굿 ‘설우신 한라의 넋들이여 바람타고 살려옵서’가 그것. 그동안 제주도에서는 해마다 합동위령제나 문화·학술사업 등이 있어 왔지만 올해로 사건발생 50년을 맞음에 따라 범국민적 행사로 격상시키는 뜻에서 서울에서 굿판을 열게 됐다. 이번 굿공연에는 제주의 ‘놀이패 한라산’과 서울의 ‘굿패 무(巫)’가 출연,세습무이며 섬마을 무굿의 특이함을 간직한 무혼굿·영등굿 등 제주도굿과 우리나라의 대표적 강신무인 진오귀굿과 철무리굿 등 황해도굿을 각기 선보인다.4·3 희생자에 대한 진혼과 아울러 남도굿과 이북굿의 합일을 통해 통해 통일에의 염원을 고양시킨다는 취지에서 택한 구성이다. 제주 칠머리당굿 전수생이며 마당극배우로도 활동중인 제주 심방 정공철과 96년 세계샤머니즘대회 한국대표로 참가했던 황해도 무녀 정순덕이 두 굿판을 선도한다.이틀 모두 하오 5시.3672­2097.
  • 재벌시대 끝내려면(사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재벌이 원하든 원치 않든 이제 재벌시대는 지났다’고 선언하고 ‘재벌과 대기업들은 이제 완전한 자유시장경제에 던져지게 되었다’고 밝혔다.김당선자가 독일 시사주간지와의 회견에서 ‘재벌들은 은행에서 엄청난 돈을 가져다 계열 기업수를 늘리는 데 사용하는 등 국가권력과의 유착을 통해 터무니없는 특혜를 누렸으나 이제 이같은 목적으로는 한푼의 돈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당선자가 ‘재벌시대가 끝났다’고 밝힌 것은 재벌특혜시대가 끝났다는 말이지 재벌이 한국경제를 지배하는 시대가 종언을 고하게 됐다는 발언으로 이해되지는 않는다.재벌의 현주소를 보면 재벌시대가 그렇게 쉽게 끝나리라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30대 재벌집단은 무려 719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연간 매출액이 국내총생산(GDP)의 90%에 달할 만큼 공룡화되어 있다. 재벌이 작년부터 정경유착을 통한 금융특혜가 어렵게 되면서 도산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마침내는 나라경제를 ‘국가부도’ 직전까지 몰고가는데 큰 몫을 했다.새정부는 재벌의 비대화로 인한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재무구조개선 약정·상호지급보증폐지·결합재무제표작성·재벌총수의 경영책임강화 등 갖가지 제도개선을 현재 추진하고 있다. 대기업 구조조정은 재벌의 경영전문화를 추진하기 위한 착수단계이지 그시대가 끝났다고 말하기는 이르다.재벌들은 이핑계 저핑계를 대 정부가 추진하는 구조조정을 회피하고 있다.정부가 바라는 대로 업종수를 3∼6개로 줄일 생각은 전혀 없는것 같다.몇몇 한계계열사를 줄이는 선에서 구조조정을 끝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재벌은 현재 제조업뿐만 아니라 지방은행·증권·보험 등 막강한 경제력을 소유하고 있어 정부가 재벌의 금융자금 독과점을 봉쇄하기가 힘든 실정이다.정부가 재벌시대를 끝내게 하려면 중장기 플랜을 갖고 구조조정을 일관성있게 추진하는 한편 부의 세습화를 차단하기 위한 상속세법 개정 등 과감한 개혁조치들을 꾸준히 개발해야 할 것이다.
  • 재벌은 소유·세습욕 버려라(경제평론)

    ○IMF파군 책임 느껴야 한국 재벌총수는 소유와 부의 세습화에 과도한 욕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총수들은 산하에 회장실 또는 기조실을 두고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과 부당한 내부거래를 통해서 해마다 계열사를 늘리는 한국특유의 선단경영을 해왔다. 그렇게 해서 늘린 부를 변칙적인 방법으로 2세나 3세에게 증여,세습화하고 있다.빚으로 부의 성을 쌓아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에 몰두한 나머지 금융기관에서 빌린 빚을 갚는 일은 소홀히 했다.이로 인해 97초부터 대기업이 도산하기 시작,지난해 11월 한국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라는 국가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오늘의 경제위기는 대기업의 선단경영과 이를 효과적으로 억제하지 못한 정부의 무책임에서 비롯된 것으로 결론나고 있다.그동안 정부는 고도성장에 도취되어 재벌이익이 곧 국민이익인 양 착각한 것이다.재벌이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독과점시장구조 아래서는 기업의 기술개발과 효율극대화를 통한 국제경쟁력 향상은 이뤄지지 않는다. 재벌들이 지금까지 경제의 국제화나세계화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은 바로독과점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국제무역기구(WTO)가 95년 출범하고 한국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96년 가입하면서부터 정부가 국내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제거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재벌은 국내시장 점유율확대와 선단경영을 지속한 것이 오늘의 파국을 초래한 것이다. 재벌 총수는 뒤늦기는 했지만 경제위기를 초래한 데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한다.그런데도 재벌들은 정부와 IMF가 기업구조조정을 재촉한다고해서 마지못해 기업구조조정안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국내외적인 경제환경이 크게 달라졌는데도 아직도 제조업은 물론 건설·백화점·병원·골프장·호텔·증권·보험·은행 등 거의 모든 업종을 소유하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개혁 뒷전 변칙증여 늘듯 재벌이 구조조정에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자 정부는 금융기관이 재벌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는 것을 의무화하여 재벌의 무분별한 차입경영을 억제하는 동시에 결합재무제표작성과 상호지급보증제 조기폐지 등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재벌이 더 이상 선단경영을 할 수 없도록 개혁을 서둘고있는 것이다.이제 재벌총수는 기업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그룹을 살리고 국가경제을 살리는 진정한 의미의 자구노력임을 인식하고 스스로개혁에 나서기 바란다. 한편 정부가 재벌의 업종전문화와 총수의 경영에 대한 책임강화 등개혁에 박차를 가하면 일부 재벌총수들은 부의 세습화를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최근 주식가격이 크게 내리면서 대기업 지배주주가 주식을 이용한 변칙증여를 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주식가격이 내렸을 때 증여를 하는 변칙 상속과 증여는 조세정의의 구현과 재벌의 소유분산을 위해 철저히 차단해야하나 그동안 제도미흡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앞으로 소액주주의 권리행사가 강화된다해도 변칙증여를 통한부의 세습화를 근절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국세청은 주식값이 내릴 때 증여를 했다가가 오르면 취소하고 다시 내리면 재증여를 하는 방식을 반복하는 지능적인 변칙 증여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국세청이 매년 법인세 확정신고때 변칙적인 상속이나 증여여부를 조사하고 있지만 변칙증여는 현행 상속세법으로는 막기어려우므로 법개정 조치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현행법은 증여를 했더라도 6개월이내에 이를 취소할 수 있고 주식증여의 경우 증여가 이루어질 때 주식가격으로 증여세가 계산되어 변칙증여의 길을 터주고 있는 셈이다.경제위기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한보그룹 정태수전회장은 이런 허점을 이용,2세들에세 주식을 증여하면서 무려 77억원을 절세한 바 있다.정전회장은 증여·취소·재증여·재취소·재재증여를 하는 방식까지 동원했다. ○상속세법 강화로 봉쇄를 관계당국은 이같은 합법을 가장한 변칙증여을 막기 위해 상속세법을 개정,증여세 납부기한을 현행 3개월에서 1∼2개월로 단축할 필요가 있다.변칙증여가 분명한데도 절세형식이 되는 현행제도는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 상속세와 증여세의 부과는 공정한 분배를 실현자는 데 그 취지가 있다.재벌의 부의 세습화를 막고 소유분산을 위한상속세법 강화는 재벌개혁의 핵심적인 사항이 되어야 한다.재벌들은 비단 주식의 변칙증여 뿐아니라 자산재평가를 통한 무상주 분배와 기업합병 및 공개를 이용,변칙적인 증여를 하고 있다. 정부는 소유구조개혁차원에서 상속세법상 4단계로 되어있는 누진구조를 다단계화하고 최고세율 40%를 상향조정하기 바란다.대만은 18단계에 최고세율이 60%에 달하고 있다.재벌총수 스스로가 경제위기를 초래한 데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소유집중과 부의 세습화 욕구를 버릴 것을 거듭 촉구한다.
  • 출병의 현장 의란(흑룡강 7천리:21)

    ◎청­러전 참전 조선군 함성 들리는듯/효종,청 지원요청 따라 포수부대 262명 파견/1658년 ‘송화강 전투’서 러시아군 270명 섬멸 지난해 12월 2일 나는 하얼빈에서 가목사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96년 여름 송화강 답사차 가목사로 갈 때는 장장 9시간을 밤기차를 탔고 1년 전 가목사에서 하얼빈으로 갈 때만 해도 택시로 근 10시간을 달려야 했던길이다. 그런데 이제는 국가 1급 도로가 완공돼 화장실까지 갖춰진 독일제 호화버스로 345㎞를 4시간만에 닿았다. 신나는 여행이었다.하지만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조선족역사 연구’(고영일 저)에서 인용했던 ‘이조실록’의 한 토막이 자꾸 머리에 떠오르면서 역사의 귀곡성이 가슴을 울렸던 것이다. 효종 5년(1654년) 2월 이상진이 국왕에게 상소했다. “지금 나선(러시아를 가리킴)의 정형은 걱정거리로 되었나이다.만일 강변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또 어떤 군대로써 이를 방어하겠나이까. 신하의 소견은 문신중에서 덕재를 겸비한 자에게 북노병마사의 직책을 지우고 그 지방의 백성으로 하여금 조정의염려의 덕택을 알도록 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군정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보나이다” ○영고탑서 청군과 합류 효종은 찬동을 표시했다. 1643년 외흥안령 야크츠크의 보야코브가 흑룡강을 넘어 살륙을 시작하면서부터 침략이 빈번해지자 청 정부는 경차도위 명안달례를 파견,‘송화강전투’를 발동하게 하면서 조선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청군 주력이 모두 관내에 진출한 불리한 조건이라 청원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조선의 지원군은 150명.그들의 행군노선을 보면 함북 회령에서 두만강을 넘어 오늘의 연변지역을 경과하여 8일만에 영고탑(오늘의 흑룡강성 영안시)에 도착,거기서 청군과 합류하여 목단강 뱃길로 닷새만에 회통강(송화강)에 이르렀다고 한다. 목단강이 송화강과 합수하는 곳이면 바로 오늘의 흑룡강성 의란현의 소재지 의란이다.하얼빈에서 235㎞,가목사로 가는 길옆에 있는 현성인데 36만 인구중 조선족은 겨우 4천592명이 살고 있다.서쪽은 소흥안령,동과 북은 완달산,남쪽은 장광재령에 둘러싸인 분지다.만족의 조상이 거주했던곳이라 청실의 ‘조종발상중지’라고도 한다.의란을 만족어로는 ‘의란허라’라 부른다.의란은 셋,허라는 성이라는 뜻으로 의란의 원이름은 삼성이다.지금도 도시 안에는 ‘삼성전화공사’ ‘삼성관상대’ ‘삼성상점’ 등 간판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온다. 삼성이란 갈,노,호씨인데 청나라 천명원년(1616년)에 태조 고황제의 초무를 받아 기적에 든 허저족 커이거러(갈의극륵),누예러(노업륵),허리(합리)씨족을 지칭한다.이들은 만주 팔기에 들어 누르하치,황태극,순치 등을 따라 명나라를 정벌하는데 전공을 세웠다.그 공으로 천명 5년에 의란땅을 세습지로 하사받았던 바 영고탑,훈춘과 나란히 길림삼변으로 유명했다. ○오국성유적 그대로 12월 3일 의란현성에 이르자 나는 당시 청군과 조선 지원군이 러시아군과 혈전을 벌였으리라 짐작되는 목단강과 송화강의 합수목으로 달려갔다.얼어붙은 항구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봄이 오고 강이 녹으면 배들은 짐을 싣고 송화강을 거슬러 하얼빈으로 가기도 하고 또 물결을 따라 흑룡강으로 가기도 한다.그런데 애석하게도 송화강 물결을 따라 의란과 가목사로가는 항로에는 암초가 많아서 큰 배는 통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하지만작은 배는 무난히 오갈 수 있다고 했다. 조선 지원군이 적선에 불벼락을 안겼던 곳인 목단강과 송화강의 합수지점엔 오국성 유적이 남아 있다.의란진 북쪽 변두리에 ‘오국성옛터’라고 쓴 커다란 시멘트판이 서 있다.그 뒤로 세월의 흐름속에 겨우 흔적을 알아볼 수 있는 흙으로 쌓은 성벽이 낙엽진 버드나무의 쓸쓸한 형상을 띠고 언 대지위에 누워 있었다.역사의 기록에 보면 오국성 성벽의 둘레는 2천210m,높이 4m,기관 8m,정관은 1.5m였다고 한다. 오국성이 유명해진 것은 중국 역사상 ‘정강지란’이 이곳에서 있었기 때문이다.의란진에 있는 자운사의 용왕묘 옆에 세워진 시멘트 푯말에는 ‘휘흠이제유금지지’라고 적혀 있다.바로 여기서 송조 말기의 두 황제가 연금생활 끝에 1133년 한많은 생을 마쳤다. 자운사가 선 때가 1928년,바로 용왕묘 자리는 의란 부도통의 포병진지였다고 한다.1900년 러시아가 중국을 침략하면서 포격으로 이곳을 초토화시켰다고 한다.17세기 중반 조선 지원군의 포화에 쫓겨갔던 러시아는 20세기 초입에 다시 포화로 진격해왔다.역사는 톱질과 같이 밀고 당기는 것인지도 모른다.그런 와중에 인간은 애향심에 울며 세상을 떠나갔다. ○아군 8명 전사 25명 부상 1658년 6월 조선정부는 신류를 대장으로 소관 2명,포수 200명,고수와 화정 60명의 군사들에게 군량 3개월분을 휴대시켜 두만강을 넘어 영고탑으로 진군시켰다.이들은 6월 5일에 출발,10일 흑룡강에 이르렀다.전투는 도착날인 6월 10일(양력 7월 11일) 흑룡강과 송화강의 합수지점(오늘의 흑룡강성 동강시)에서 벌어졌다.싸움은 저녁까지 계속됐는데 쓰제바노브의 러시아군은 270명이 섬멸되고 47명이 겨우 도망했다.아군은 8명이 전사하고 25명이 부상했다. 그들이 이름 석자도 남기지 못하고 거친 북만주에서 시신으로 쓰러진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던 순간 나는 분명 애끓는 귀곡성을 들었다.
  • 세습 경영의 그림자/김영만 경제부장(데스크 시각)

    ○어느 창업주의 경계론 유력한 어느 재벌그룹의 창업주는 우리경제의 위기원인중 상당부분이 2세 경영인들에 있다고 믿고 있다.여러가지 여건이 좋지 않았다는 점과 정부의 정책 잘못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재벌 2세들이 기업경영을 취향대로 재단하는 바람에 오늘의 위기가 왔다는 설명이다. 그는 창업주와 2세 경영인의 차이를 쉽게 설명한다.“창업주는 적자가 나는 사업체에 들러보면 적자의 원인이 어디 있는가를 바로 안다.때문에 문제 해결이 빠르고,실패할 확률이 낮다.그러나 현장을 모르는 2세들은 아랫사람의 눈을 거쳐야만 문제를 파악할 수 있고,그들의 머리를 거쳐야만 해결방안도 찾을 수 있다.능력없는 2세들이 전문가들의 머리를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게 되면 망하는 일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경영일선에서 뛰고 있는 이 창업주의 해석이 100% 맞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제위기의 많은 구체사례들의 뒤안에는 뜻밖에도 2세 경영인들의 독단적인 결정들이 근원적인 단초를 제공하고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지난해 줄줄이 무너진 재벌들의 대부분이 2세 경영인들의 능력을 넘어선 사업확장에서 비롯된 점을 감안하면 2세 경영인 책임론은 좀더 설득력을 갖는다. 술 한가지로 재벌의 성을 쌓았던 A사는 전문경영인들의 만류를 물리치고,유통업 등에 뛰어들었다가 성을 허물어버린 대표적인 경우다.A사의 2세 경영인이 당시 신규업종 진출에 반대하던 임원들에 대한 홀대는 재계에 화제가됐을 정도로 유명했다. B사의 2세 경영인은 자신의 전문영역과는 상관이 없는 정보관련 업종진출을 놓고 전문경영인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그러나 2세 경영인은 그보다 더 강력한 카리스마로 이 업종에의 진출에 성공했다.많은 사람들이 2세 경영인의 정보업종 진출이 오직 허세를 부리기 위한 것으로들 생각했다.새 업종에의 진출은 이 그룹을 현재 해체상태로 몰아 넣고 있다. ○독단이 부른 피해 네 유형 자동차에 관한 C사의 진출 역시 전문막료들의 반대속에서 행해졌고,그로 인해 그룹의 자금줄이 경색되고 있다는 점에서 A.B사의경우와 다르지 않다.이 그룹이 자동차업에 진출할 때는 이미 국내 최대업체인 현대자동차의 공장가동율이 낮아지던 때였다.항간에는 재고누적때문에 근로자들의 파업을 경영주가 즐긴다는 이야기까지 하던 참이었다.신규진입을 반대하던 관계장관까지 물러나게 만든 끝에 진출한 자동차사업은 이 그룹의 부담이 되고 있다. D그룹은 2세가 승계한 이후 스키장과 자동차사업에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투입했다.이 두개사업은 결국 그룹과 관련은행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말았다.지금은 바뀌었지만 이그룹의 2세는 스키와 자동차모형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2세 경영인이 그런 것은 아니다.E그룹의 3세 경영인은 아버지 밑에서 부회장으로 있을 당시 자동차 산업진출과 언론사 소유를 강력하게 주장한바 있다.그는 얼마 뒤 그룹총수로 취임했지만 전문경영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부분 진출의지를 없었던 일로 만들었다.누구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수는 없는 일이지만 어쨌던 이그룹은 재벌중에서 현재 상태가 매우 좋은 편에 속한다. 불행하게도 우리 재벌들은 몇개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2세 체제로 들어가 있고,3세 4세로 이어질 것이다.더 불행하게도 2세들은 중요한 결정을 전문가들의 머리를 거치기보다는 자신의 머리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많다. 총수자신의 취미가 거름장치 없이 경영의 형태로 전환된는 것은 지극히 한국적인 형상이다. 우리의 재벌구조가 세계의 관심속에 수술대에 올라 있다.상호지급보증으로 대표되는 재벌들의 ‘차입경영’이 수술의 주대상으로 부각되는 참이다. 그런가하면 재벌의 장점도 적지 않게 거론된다. 오너의 경력한 리더십,계열사간 상호보완을 통한 복합적 위기관리능력 등은 재벌을 순기능이다. 빚의 많고 적음도 경영능력의 한계안이냐 아니냐로 판단할 일이다. 좋은 기능은 살리고 나쁜 기능은 죽여야겠지만 능력이 확인되지 않은 2세들의 무제한적인 경영세습을 막을 수 있는 장치는 우선적으로 만들어야 한다.창업주보다 뛰어난 2세가 없을 리 없다.그러나 2세들의 실패확률은 현장에서 커 온 창업주나 전문경영인보다 몇배 높을 수 밖에 없다.최소한 이들의독단을막을 수 있는 제도라도 마련해야 한다.
  • 대북 전략목표 북의 민주화로/홍승길(서울논단)

    남북한이 각기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그 방법상 극단적으로 판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남한에서는 15대대통령을 뽑는데 4-5명의 후보자들이 반년여에 걸쳐 경쟁을 벌이면서 ‘총공격’‘핵폭발’등 전쟁용어까지 난무하는 치열한 선거절차를 밟고 있다. 이에 비해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당총비서에 취임하면서 당규약상의 선거절차를 아예 무시한채 이른바 ‘추대’라는 희귀한 방법을 동원하였다.그리고는 “실무적 수속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당적인 일대 정치사업으로서 추대한 것”이라고 선전,김정일에 대한 신임은 그 어떤 절차를 초월한 절대의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하긴 선거가 시비를 가리는 절차일진대 하늘이 내린 ‘천출’의 지도자이자 김일성의 교시로 결정된 후계지도자를 놓고 한낱 인간이나 당원들이 왈가왈부하는 일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남북한 모두 정권 변화기 국가권력이양의 방법이 한 나라가 지향하는 가치관의 총체적 표현으로 된다고 할 때 남북한간의 양극단적인 양상은 같은 한 민족,같은 한반도라는 통일의 전제를 새삼 무색케 한다.우리의 선거와 경쟁 그리고 북한의 세습과 추대로 상징되는 양 가치관간의 상반성과 불용성을 또한번 확인했기 때문이다.이러한 형국에서 우리는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나라의 통일을 추구해야 하는 입장이다.지난한 일이 아닐수 없다.여기서 우리에게는 우선 난북한간에 존재하고 있는 양극단간의 차이와 간격을 좁혀야 하는 일이 중심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지금 이 시점,그 좁힐수 있는 방안이 우리의 대북정책목표로 분명히 제시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현재 북한은 김정일 자신의 정책을 구상중에 있는 시점이고,우리 역시 정권변화기라는 적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 노선 수립에 압박 김일성 사망이후 북한은 체제의 생존과 김정일의 권력기반구축에 급급한 나머지 정책과 관련해서는 이른바 ‘유훈통치’를 내세우면서 새로운 노선을 수립하지 못해왔다.그간 김정일에 의한 ‘현지지도’의 대상이나 ‘노작’의 내용이 거의가 체제관련분야에 집중됐을뿐 정책관련분야까지는 이르지 못했다.이제 김정일이 당총비서에 취임할 정도가 되어 “현재 김정일이 새 조국의 면모를 그리고 있다”는 주장대로 새로운 정책노선을 수립해 나가려는 중이다. 남북한간의 차이와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는,국토분단이후 50여년을 거쳐 남북한간에 나타난 현실을 볼때,우리가 시이고 의이며 북한은 비이자 불의임이 확증되고 있으므로 당연히 북한을 우리에게 접근시켜야 할 것이다.그러자면 북한사회의 민주화가 이룩돼야 하나 이 일은 북한 김정일이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면서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말라”고 버티고 있어 결국 우리의 몫으로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대북전략목표를 북한사회의 민주화로 명확히 정립하고 그 실천의지를 북한에게 확고히 주지시키는 것이 현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우리는 북한이 필요로 하는 물질적인 부와 경험을 갖고 있다.또한 단계적인 민주화기준을 마련,북한에 제시·강요하면서 수용여하에 따라 대북 강·온정책을 구사해 나가야 할 것이다.이렇게 할때 대북정책의 일관성 시비를 극복할수 있고 특히 근래들어 매우 오만불손해진 북한의 대남태도에도 경고를 줄수 있다.북한이 “통일투쟁에서 확고한 주도권을 장악했다”는 식의 자만으로 우리에게 기세를 부리는 한 순조로운 남북관계의 진행은 기대할 수가 없다. ○민간차원 운동도 병행을 이와같은 정부의 대북전략과 함께 언론 및 사회단체를 비롯한 민간차원에서의 북한사회민주화실현운동도 필수적이다.정부의 입장에서 할 수 없는 부분을 민간이 맡아 해야 한다.정부와 민간이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해나가야 내외의 여론이 결집되면서 대북압력으로 작용하게 되어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북한사회의 민주화는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민족통일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그 기본전제로 되는 것이다.
  • 조선시대 신분사연구/한영우 지음(화제의 책)

    ◎조선초 사회계층·신분이동 다룬 연구서 조선초기 사회계층과 신분이동에 관한 시론적 성격의 연구서.특히 조선초기의 신분계층구조에 관해 상세히 설명한다.조선초기에는 무엇보다 노비세습제를 강화하고 양인과 노비의 혼혈과 상호이동을 막는 데 주력했다.다만 혈통에 의한 노비세습이 강요되었지만 그들의처우는 전대에 비해 많이 개선됐다.국가의 적극적인 변정사업에 의해 본래 양인이었다가 노비가 된 자나 양천의 피가 섞인 자는 상당수가 다시 양인으로 환원된 것이다.양인과 노비의 구별이 중세적 신분유형에 가까운 귀속적 성격의 것이라면,양인 자체내의 신분구별은 근대적 계급유형에 가까운 성취적 성격의 것으로 볼 수 있다는게 지은이의 견해다. 이 책에서는 조선초기 양반의 개념에 대해서도 폭넓게 살핀다.조선초기의 양반은 문무 관료집단을 총칭하는 대명사로 쓰였다.문반과 무반,유품관과 서리,실직과 산직을 구분하지 않고 품질을 가진 자는 모두 양반이라고 불렀다.심지어는 아전중에서 가장 미천한 존재인 일수에게까지도 ‘일수양반이라는 호칭을 붙여 주었다.양반은 때로는 사대부로도 불렸다.사대부는 사,곧 5품 이하의 관리와 대부,곧 4품 이상의 관리의 합칭으로 ‘주례’의 사대부 개념을 빌어온 것이다.한편 조선초기 신분이동 측면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던 것은 공신과 당상관,그리고 일부 참사관의 자제였다.이들에게는 문음의 혜택이 있어서 간단한 시험만 거치면 남행출사가 가능했다.그러나 고급관료가 되려면 어차피 문과와 청요직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남행출사는 초입사의 길을 유리하게 열어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집문당 1만원.
  • 누구를 위한 내각제인가(사설)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DJP연합,즉 두 당의 후보단일화 협상에 매듭을 짓고 공동집권과 내각제 개헌을 골자로 한 합의사항을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보도된 합의문에 따르면 김대중(DJ) 국민회의 총재가 두 당의 연합 대통령후보가 되고 집권시 김종필(JP)자민련총재가 총리를 맡으며 각료는 50대 50으로 균분토록 돼있다.또 99년말까지 내각제 개헌을 완료하고 내각제하의 첫 대통령과 총리에 대한 선택권은 자민련측이 갖는 것으로 돼있다.결론부터 말해 두 야당이 정권교체와 내각제를 구실로 권력나눠먹기 담합을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는 처사에 아연할 따름이다. 이 합의문대로라면 이번 15대 대선은 헌법에 보장된 임기 5년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내각제 개헌을 위한 과도정부를 이끌 임기 2년여의 임시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된다.이렇게 헌법을 왜곡하는 중차대한 문제를 소수당 멋대로 결정하여 박두한 대선의 성격을 변질시켜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DJ대통령’ 다음에 사실상 ‘JP총리’시대를 설정한 합의도 새로운 리더십을 바라는 시대적 요청을 외면하고 낡은 3김정치의 연장을 노린 신판 ‘권력세습’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정권선택은 국민의 몫이지 결코 두 김씨의 담합으로 좌지우지할 사안이 아니다. ○2년 임기대통령 뽑자는 것 물론 대통령제니 내각제니 하는 권력구조 개편문제가 불가촉의 성역일 수는 없다.하지만 그쯤 되는 국가대사라면 적어도 국가와 민족의 장래와 관련된 비전으로서 거론하고 추진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예컨대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민족통일을 추구하는데 있어 현행 대통령중심제가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해 권력구조를 언급한다면 누가 나무라겠는가.그런 차원이 아니고 권력을 잡기 위한 방편으로써 내각제 개헌을 추진한다는 것은 우선 그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인정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개헌은 국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된다.국민적 컨센서스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내각제 개헌이라는 이야기다.지금 국민이 대통령제보다도 내각제를 더 선호한다는 어떠한 명백한 증거도 우리는발견할 수 없다.국민들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국력결집이나 정치부패추방에 오히려 내각제가 비효율적이라고 믿고 있는 형편이다. ○국민적 컨센서스도 없다 내각제 추진은 불과 1년반전 대통령중심제 표방 정당들의 압도적 승리로 끝난 4·11총선의 민의에도 반하는 것이다.당시 국민회의 김대중총재가 내각제 개헌음모를 저지해야 한다며 지지를 호소했던 일을 국민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정치권의 현 판세를 놓고 본다면 DJP가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여소야대 국회에 직면할 전망이다.대선후 또 한차례 정계개편이 이루어져도 두 야당이 개헌에 필요한 3분의2 의석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또 ‘DJ대통령’이 내각제 실현을 위해 과연 도중하차의 약속을 지킬지도 의문이다.그런 상황에서 국민적 컨센서스조차 없는 내각제 개헌을 추진한다는 것은 국론분열과 정치혼란만 가중시킬 우려가 크다. 그럼에도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그들의 이성적 판단을 더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면 이제 남은건 12월 대선에서의국민의 현명한 심판뿐이다.
  • 북 경제난 타개 외교공세 강화 예상/오코노기 마사오(지구촌칼럼)

    ◎남북대화 재개 제의 등 한국측 대응 주목 김일성 사후 3년3개월을 거쳐 지난 10월8일 김정일이 간신히 북한 노동당 총비서에 취임함에 따라 김정일 체제와 북한의 미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정일의 이번 총비서 취임은 ‘만3년’의 복상기간이 끝나 국내적으로 더이상 취임을 늦출 구실이 없다는 점,최고지도자의 부재가 대외적으로 여러가지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12월 한국 대통령 선거 이전에 정식으로 당총비서에 취임해 내년 이후의 남북관계 타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점등이 그 주요한 이유일 것이다.또 내년 이후 보다 적절한 취임시기가 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첫 권력 세습이라는 논평도 있지만 80년대 후반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라는 유기체적 국가론이 출현한 이후 북한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적인 사회주의 국가는 아니게 됐다.오히려 김일성 사후의 ‘(수령) 영생론’에 따라서 북한은 의사 종교국가로 변질돼 갔다.최고지도자의 생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것은 이데올로기 활동이 아니라 종교활동이라고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북한이라는 국가의 최대의 특징이 ‘정치 체제와 경제 체제의 비대칭성’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북한 경제가 대단히 취약해 이미 파탄했다는데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그렇다면 왜 그 국가체제는 옛소련이나 동유럽 여러나라처럼 붕괴하지 않는 것인가.경제체제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강인한 정치체제가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외교의 유연성이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바꿔 말하면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정점(교조)으로 하는 종교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정치체제의 존재가 경제체제의 파탄을 떠받쳐온 것이다. 다만 필자도 북한의 정치체제가 만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경제 파탄과 식량위기가 장기화하면 머지않아 경제위기가 정치위기로 전환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이번 김정일의 당총비서 취임에 있어서도 이와같은 조짐이 몇가지 나타나고 있다. ○북 경제재건 급선무 예를 들면 김정일의 총비서 취임의 절차는 상당히 변칙적인 것이었다.9월 하순의 평안남도 당대표회와당 인민군 대표회의 결의 이후 그 밖의 당조직의 대표회가 차례차례 열려 김정일을 총비서로 ‘추대’했지만 중앙 차원의 당대표자 회의가 열렸다는 흔적은 없다.중역과 지점장으로부터 위임장을 받아 그대로 이사에 취임한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러한 변칙적인 절차가 취해졌다는 것은 권력투쟁 때문이 아니라 모든 당조직의 일치된 추대를 필요로 하면서도 당대표자 회의를 개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를 개최하면 김정일 자신이 활동보고를 담당하지 않을수 없지만 심각한 경제정세를 하나하나 보고하는 것도,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방침을 제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경제적 어려움이 총비서 취임의 절차를 왜곡시키고 만 것이다. 따라서 총비서에 취임한 김정일로서 경제 재건이야말로 급무다.그러나 외부로부터의 자본과 기술의 도입,즉 경제개방 없이는 이것도 불가능하다.따라서 앞으로 김정일이 우선 노력할 것은 폐쇄적인 대외관계 특히 북·일관계를 타개해 경제의 대외개방이 가능하도록 국제관계를 정비하는 일일 것이다.이것 없이는 새로운경제 계획의 발표도,북한의 ‘살아남기’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올해 8월,9월에 뉴욕에서 열린 4자회담 예비회담도,같은 8월에 열린 북·일 교섭재개를 위한 예비회담도 김정일 총비서 취임과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향후 2∼3년이 중요 특히 북한의 대일자세는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일본정부에 의한 인도적 식량지원 결정에 이어 앞으로 일본인 처의 고향방문,여당 3당대표단의 평양방문 등도 잇따라 실현될 듯하다.그렇게 되면 북·일교섭 재개도 시간문제가 된다.사실 7월 문명자(미국에 있는 한국언론인)씨에 보낸 공개서한과 8월의 논문 가운데 김정일 자신이 ‘일본과의 선린우호관계’에 기대를 표명해놓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관심의 초점은 북한측이 언제 남북대화의 재개를 제의하는가이다.한국으로서는 4자회담 본회의에 응하지 않은채 북한이 북·일교섭을 재개한다든지,중국 정상과의 상호방문을 실현한다든지,북·미교섭을 진척시키려는 사태도 예상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그 이상 중요한 것이 남북대화 재개 가능성이다.내년 2월 이후 그밖의 일련의 외교를 추진해 나가면서 북한이 남북대화를 제의할 경우 한국의 새 정권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북한으로서는 앞으로 2,3년간이 장래를 결정하는 기로가 될 것이다.김정일이 대외관계를 타개하면서 파탄된 경제를 재건의 궤도에 올려 놓는데 성공하면 남북한은 상당기간 공존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에 실패하면 경제적인 파탄이 이윽고 정치 체제의 불안정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그렇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명확한 의사 결정이다.
  • 개천에서 난 ‘조선족 용’(흑룡강 7천리:10)

    ◎한때 중국 행정부·군 최고자리 올라/“30∼40년대 한족간부와 항일운동·해방전쟁 참가 정치적으로 한자리씩 감투…” 흑룡강이 가음현에 이르면 그야말로 도도한 강을 이루었다.가음하와 결렬하,오운하 등 26갈래의 지류를 품에 안아 강폭이 바다처럼 넓어지기 시작했다.강 저쪽 러시아의 바스커워가 가물가물하게 시야로 들어왔다.극동 시베리아의 대철도가 지나는 화물집산지라서 중국쪽 흑룡강 대안은 가음통상구가 되었다. 그 흑룡강에는 20만t급 화물선들이 드나들고 있다.그런데 강폭이 넓은 가음현 경내의 흑룡강은 이름 그대로 용이 살던 곳인지도 모른다.강변공원에는 ‘공룡가족’과 ‘공룡세계’ 조각품이 들어선 것을 보면 태고때 공룡이 살았던 모양이다.그래서 가음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룡화석 발굴지역이라는 것이다.1915년부터 지금까지 가음현 용골산에서는 모두 6마리몫의 완형 공룡화석이 발굴되었다.러시아 레닌그라드박물관과 흑룡강성박물관 등이 보관하고 있다. ○성 행정 최고간부도 배출 강변공원 입구에 세운 안내판에는 ‘중화민족은 용의 자손’이라는 글귀를 담았다.중화민족은 물론 한족을 가리키는 말이다.용의 후손들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족들은 뿌리깊은 용문화를 지키고 있다.음력 설날부터 보름까지는 아직도 용춤을 추고 단오날에는 용주를 타는 민족이다.그리고 용은 지고의 권력을 상징했다.임금의 옷을 용포,얼굴은 용안,앉는 의자를 용상이라 하지 않았던가.우리 민족도 용을 우러르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한족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한족의 용은 어마어마한 권력의 상징물이다.그 권력은 타고난 것이거니와,세습이었다.그래서 여느 사람이 출세해서 높은 자리에 오르면 ‘개천에서 용이 났다’는 말을 한다.한족사회에서 조선족의 출세는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그런 조선족으로는 전 중앙민족사무위원회 문정일주임과 전 중국인민해방군 총후군부장 조남기상장을 꼽을수 있다.이들은 중국의 행정부와 군부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조선족들인 것이다. 흑룡강성에서 고위직에 올랐던 조선족중에는 전 성민족사무위원회 이민주임이 있다.그녀의 남편 진뢰는 성장이었는데,부가 항일투사였다.지금은 항일과 해방전쟁 출신의 조선족 간부들은 다 퇴직하고 새로운 조선족 세대들이 들어섰다.그러나 옛날처럼 정치적인 출세라기보다는 기술직과 전문행정직이 대부분이다.흑하시에 사는 퇴직간부 한정순씨(64)는 조선족들이 기술이나 전문직에서만 출세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의 조선족 간부들은 한족 간부들과 어울려 항일이나 해방전에 함께 참여한 동지이자 전우였디요.기래서리 정치적으로 길이 열려 한 자리씩을 했던거우다.요즘은 사정이 달라져 한족 틈새에서 간부를 하자면 실력이 뛰어나지 않고는 퍽 어렸습네다.개천에서 용이 나던 세월도 다 갔디요.” 그도 역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한족들과 함께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한 조선족이다.평북 신의주 태생인 그는 1958년 대퇴한 이후 흑룡강성 밀산현 농업개간국에서 근무하다 1964년 흑하시 당학교로 전근했다.중학교를 졸업했으나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했던 덕분에 지식인 대접을 받았다.그러나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아내의친척들이 남과 북에 산다는 이유로 조선간첩 누명을 썼다.당시 흑하시의 조선족 간부 13명 모두 간첩이 되었다.조선족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북한도 백안시했던 때라 기쁜 소식을 말하는 ‘해보’를 통해 ‘김일성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어떻든 조선족은 연변과 같은 자치구역이 아닌 한족구역 공공직장에서 제1인자가 되기는 점점 어렵게 되었다.용은 감히 바라지도 못하고 이무기만 되어도 다행스럽게 여길 정도로 조선족 위치가 변했다.자리가 높아진다 해도 자리를 지키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치치하얼시에서 12년간 물자국장으로 일했던 성영석씨(58)의 회고담에는 그런 어려운 사연이 역역히 들어있다.소수민족이 다수민족 사이에서 홀로 서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만했다. “물자국 직원은 600명이나 됐드랬디요.그런데 조선족은 내 혼자였디요.내가 총경리가 되고 나서리 밑에 있는 직원들이 상급기관에 고자질하기를 밥먹듯 합데다.그때 고자질 내용이 흑룡강신문에도 났디요.시에서 전문조사단을 통해 1년동안 검사를 해봤디만 헛물만 켠꼴이 되었댔습네다.내가 청렴하게 살았는데 걸려들 것이 있을리 만무했디요.내 인물이 잘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부에 아첨 잘한 것도 아닙네다.오로지 실력과 청렴으로 버틴 것이우다.” ○물가국장 12년간 봉직 그는 1964년에 치치하얼 물자국에 배치되어 1982년 총경리로 올라갔다.그리고 1994년까지 꼭 12년간 국장을 지냈다. 그는 당시 북한의 유일한 공과대학이었던 김책공대 출신의 기술엘리트다.흑룡강성 용강현에서 태어나 내몽골 우란하오터에서 중학교를 나온 뒤 1960년에 하얼빈공업대학에 입학했다.그런데 3학년때 북한으로 도망을 가서 김책공대에 시험을 쳤다.북한은 조선족을 무조건 받아주고 공부도 시켜주는 때라 김책대학에 들어가 매달 20원의 생활비도 받았다.김책공대를 졸업하고 잠깐 집에 들렀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중국에 주저앉아 버렸다. 오늘날 흑룡강유역에서 현직으로 활동하는 ‘개천의 용’은 겨우 두 손가락을 꼽을수 밖에 없다.막하현 기술감독국 박청천 국장(50)과 흑하시 우전국 서리희 국장(53)이 그들이다.그런 현실을 보면 기술전문분야를 파고들지 않고는 조선족중에서 ‘개천의 용’이 나올수 없다는 사실이 예견되었다.2백만 조선족을 대변할 정치적 ‘용’은 영영 나오지 않을 것인가.그 숙제는 조선족의 부단한 노력과 단결력에 달려있을 것이다.
  • 황장엽씨 ‘김정일 승계 비판’ 기고

    ◎북 정권 승계에 정책변화 기대는 ‘환상’/시대 뒤떨어진 세습 감추려 3년3개월간 고심 흔적 ‘역력’/쇄국·민족배타 노선 버리고 평화 통일 ‘열린 길’로 나서라 오늘 북한 통치자들은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를 놓고 마치 새로운 태양이 솟아 오른 우주의 대사변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떠들고 있다. 후계자의 권력승계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오래전에 시작되었으며 적어도 1974년 2월 노동당 조직비서로서 제2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자기 삼촌(김영주)을 내쫓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사실상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수령의 유일독재체계는 후계자의 유일적 영도체제를 통해서만 실현된다는 원칙이 전면적으로 관철되게 되어 실권은 완전히 후계자가 장악하고 수령은 더욱 신격화되었을뿐 좋은 경우에 후계자의 최고 고문의 역을 담당하게 되었다.그러므로 수령이 사망하였다고 하여 통치자가 달라진 것이 아니며 권력승계를 공식화한다고 하여 김정일의 지위가 더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김정일이 공식승계를 서두르지 않은 이유의 하나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실제 승계 23년전 마감 그러면 북한 통치자가 3년3개월이나 공식승계를 미루는 남다른 변덕을 부리다가 오늘은 또 공인된 정상적 선거절차도 밟지 않고 공식승계를 슬쩍 해버린 의도는 어디에 있겠는가? 첫째로 김정일에게 가장 아픈 약점은 현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세습승계를 한다는 점이다.이 문제를 무마시켜 보려고 매우 고심해왔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쇠퇴 몰락이 그 이론이나 그것을 구현한 사회체제의 본질적 결함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수령의 후계자를 잘못 선발한데 있다는 그릇된 주장을 내놓고 저들의 세습적 승계를 정당화해보려고 하였다.그들은 이러한 논리적 기만술책만으로는 부족하여 후계자인 ‘광명성’은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 ‘태양’의 지위를 승계할 운명을 지니게 되었다는 허황한 미신까지 만들어 냈던 것이다.김정일은 공식승계를 미루면서 부친의 방조없이도 자체의 힘으로 능히 영도자의 지위를 지키고 나라를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다.○신격화된 계승 중요시 둘째로 김정일은 총비서라든가 국가주석 같은 공식적인 법적 지위보다는 절대적으로 신격화된 수령의 초법적인 지위를 계승하는 것을 더 중요시 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수령의 지위를 계승하는데서 첫째가는 조건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기 때문에 김정일은 수령에 대한 자기의 충성과 효성을 과시하여 수령의 지위 승계를 위한 도덕적 권위를 높이는데 1차적 의의를 부여하였다.따라서 수령의 사망후 굶어죽어가는 수많은 주민들은 돌보지 않고 부친의 시신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화려한 궁전을 건설하는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였던 것이다. 또 그는 ‘탁월한 사상이론가’라는 영상을 높이기 위하여 글만 쓰는 학자들도 무색케 할 정도로 연이어 글을 발표하였으며 수령에 대한 우상화 수준과 후계자에 대한 우상화 수준을 비등하게 만들기 위하여 모든 선전수단들을 동원하였다. 이러한 준비에 기초하여 김정일은 당규약과 세계가 공인하는 선거절차를 무시하고 총비서 추대를 선포함으로써 자기가 초법적이며 초국가적인 존재라는 것을 시위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정권 본질은 결코 불변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기대하여야 하겠는가? 물론 우리가 바라는 것은 김정일이 봉건적인 개인독재체제를 버리고 개혁 개방의 길로 나오는 것이며 무모하고 범죄적인 무력통일노선을 버리고 남북대화와 교류의 길로 나오는 것이다.그러나 김정일 정권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은 것만큼 큰 정책적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첫째로 북한통치자들은 세계 어떤 경제적 파동에도 끄떡하지 않는 ‘자립적 민족경제’를 건설하여 놓았다고 호언장담하여 왔는데 그것을 누가 다 망쳐먹고 북한땅을 가장 가난한 나라,빌어먹는 나라로 만들었는가에 대하여 밝히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권력을 다 틀어쥐고 있는 북한 통치자가 민생고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북한 인민은 수령복을 누린다고 하는데 수령복의 내용이 주민이 헐벗고 굶주리는 것인가? 우리는 1995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만 하여도 수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굶어죽어 가고 있다. 북한당국자들은 어째서 세계 각국에 식량을 구걸하면서도 이 사실을 숨기고 있으며 실태를 조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가? 더욱이 엄중한 것은 남한동포들이 순결한 동포애적 심정으로부터 북한동포들의 민생고를 책임지고 풀어주려고 하는데 그것을 왜 가로막는가? 앞으로 남한동포들이 보내는 식량과 의약품 등 구제물자들을 판문점을 통하여 무조건 받아들이겠는가,않겠는가? 우리는 이것이 알고 싶다. 둘째로 북한 통치자들은 오늘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자유가 없고 인권이 유린된 일대 감옥으로 만든데 대하여 응당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최고 인권유린국 반성 조선민족을 ‘김일성 민족’으로 부를 권리를 누가 주었는가? 조선사람은 수령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하면서 수령을 옹위하는 총폭탄이 될 것을 강요하고 있는데 이 이상 더 큰 인권유린이 어디 있으며 인민을 노예화하는 정책이 아니고 무엇인가? 수령을 우상화하기 위하여 모든 선전수단을 동원하고 역사를 왜곡하다 못해 이제는 우리민족의 자랑인 금강산·묘향산·백두산 같은 명승지에 자연경치까지 못쓰게 만들고 있는데 이 죄과를 인정하는가? ○언제까지 굶길 것인가 셋째로,북한 통치자는 무엇 때문에 굶주린 북한주민들을 계속 전쟁준비에만 내몰고 있는가? 북한 사람들을 굶겨죽이다 못해 전쟁의 폐허 속에서 행복과 번영을 쟁취한 남한동포들까지 죽일 작정인가? 북한 주민도 먹여살리지 못한 통치자가 무슨 염치로 전조선을 통치해 보겠다는 망상을 가지려고 하는가? 청년학생들이 군사훈련과 충성의 무슨 운동 때문에 재학기간에도 공부할 시간이 없는데 13년간이나 군대에 복무하면서 수령옹위의 총폭탄이 되는 연습만 하다보면 그들이 어떻게 청춘의 희망을 꽃피울수 있단 말인가? 청년들의 희망을 짓밟는 만행을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는가? 넷째로.북한 통치자는 입으로는 ‘민족대단결’이요 ‘민족통일’이요 떠들지만 남한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 여기에 무슨 평화통일의 의지가 있단 말인가? 미국이나 일본하고는 회담을 하자고 하면서 동족끼리는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는 속셈이무엇인가? 일본인 처는 고향방문을 허용하면서 남북간에는 편지거래조차 못하게 하고 이산가족 상봉도 절대 반대하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 ○‘벼랑끝’ 외교전술 중단 다섯째로 북한 통치자들은 인민들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리우고 손쉽게 개인독재를 실시하기 위하여 쇄국정책을 계속 실시하고 있는데 쇄국정책이 망국의 길이라는 역사적 진리를 왜 외면하고 있는가? 북한 통치자들은 주변대국들의 모순을 조장시켜 어부지리를 취하고 전쟁과 테러로 평화애호 인민들을 위협하여 양보를 얻어내는 ‘벼랑끝 전술’을 김정일이 발명한 대단한 외교지략인 것처럼 떠들고 있는데 이렇게 한 모든 선행자들의 말로가 비참하였다는데 대하여 왜 교훈을 찾지 못하는가?북한 통치자들의 사상은 인간중심의 사회주의 사상과 인연이 없을뿐 아니라 스탈린주의로부터도 멀리 후퇴·변질하였다.그들의 사상은 무자비한 계급투쟁을 신봉하는 계급주의이고 쇄국주의를 주장하는 민족배타주의이며 철저한 개인숭배에 기초한 전제주의적 개인독재 사상이며 폭력을 신성화하는 군국주의 사상이다.계급투쟁과 폭력혁명의 역겨운 자화자찬으로 가득찬 이른바 ‘고전적 노작’들을 대담하게 버리고 보다 겸손한 자세로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길,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길로 일대 방향전환을 하여야 할 것이다.
  • 4자회담 적극적 호응 기대/미국측 시각

    ◎실용노선으로 미·북 관계개선 가속화 미국은 마지막 스탈린식 공산 독재국가인 북한에서 김정일이 사회주의 국가 최초로 부자 권력세습을 이뤄 노동당 총비서에 취임한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미국은 이같은 긍정적인 평가를 배경으로 북한이 앞으로 4자회담이나 미국과의 관계개선 등에 보다 실용주의적 접근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은 김정일이 ‘노동당 총비서’에 취임함에 따라 예상돼온 일이 어그러지지 않고 이뤄졌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으며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에 부정보단 긍정적인 영향이 더 우세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일의 총비서 취임은 북한을 움직이는 기존의 메카니즘이 한단계 상승해 총결집한 것이므로 지금까지 오던 길을 거꾸로 가리라는 걱정보다는 오던 길을 더 빠르게 달릴 수도 있다는 기대를 더 강하게 한다.이것이 미국에게 우려보다는 희망사항을 피력하게끔 만들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한층 심한 고립주의 노선을 걷는다든가,핵동결 약속을 파기하려 한다든가,4자회담 참여를 없는 것으로 한다든가,군사적 모험주의 색채를 강화한다든가 하기 보다는 김정일 ‘총비서’가 이전에 없는,변화를 인정하는 정책을 내놓을수도 있다는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물론 이 기대는 ‘일말’의 기대란 한계가 있고,더 나아가 내용상으로 잘해야 ‘실용적’ 노선을 택하리라는 것에 그치긴 한다.북한이 하루아침에 개방,개혁노선을 걷거나 남북한 관계개선을 통해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정착과 긴장완화를 꾀하리라는 그런 기대일 수는 없다.김정일의 실용노선은 지금처럼 한국을 따돌리고 미·북 관계 위주인 채 예측불가능한 성향을 그대로 안고있긴 하겠지만 보다 현실에 입각하고,점진적인 변화를 모색하고,국제사회 진출에 적극성을 띠울수 있을 것으로 미국은 기대하고 있다. 미국은 김정일 총비서 취임을 계기로 예전부터 지녀온 이런 기대를 한거풀 더 밖으로 표출하고 있다.
  • 식량·경제난 해결 최대과제/북 김정일 총비서시대 전망

    ◎유훈통치 지속… 남북관계 등 급격한 변화 없을듯/지도층 세대교체… 강경·온건파 조화여부도 주목 김정일의 당총비서 추대 발표는 전격적으로 이뤄졌다.지난 66년 10월13일 노동신문은 김일성이 하루전 열린 중앙위전원회의에서 당총서기에 추대됐다고 갑자기 발표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김의 당총비서직 승계가 ‘선출’이 아니라 당중앙위와 당중앙군사위의 ‘추대’로 발표돼 승계절차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이날 북한 중앙방송의 보도만으로 볼때 당중앙위 전원회의가 개최됐다는 부분이 없어 이는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당총비서를 선출하도록 규정된 노동당규약 제24조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다. 이와관련,정부의 한 관계자는 “김정일은 선출할 인물이 아니라는 인식으로 당규약도 무시하고 추대형식을 활용한 것 같다”면서 “지난달 21일 평안남도 당대표회를 시작으로 총비서 추대를 해왔던 것은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한 궐기대회”라고 분석했다.또 다른 당국자는 “중앙위와 군사위가 공인된 총비서로 추대했다는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 말은 곧 당이 전원회의 등 일종의 형식을 거쳤다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쨋던 김정일은 당 중앙군사위원장에 이어 총서기직을 거머쥠으로써 김일성 사망이후 3년 3개월동안의 과도기 체제를 마치고 북한의 ‘공식적인’지도자로 등장했다.김정일의 유일지배체제와 ‘김정일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아직 주석직 승계가 남아 있지만 북한전문가들은 주석직 승계에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주석직을 폐지하거나,상징적인 인물을 내세워 형식적인 권한만 남겨둘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김정일 체제의 시급한 과제는 당·군·정 등 내부체제 정비이다.여기에는 김일성의 ‘빨치산 세대’에서 김정일의 ‘만경대 혁명학원세대’로의 세대교체도 예상되고 있다.오진우 사망이후 공석으로 남아있는 인민무력부장(국방장관에 해당) 등의 자리도 메우는 등 권력기반인 군부의 자리바꿈도 예상된다. 이런 내부정비는 북한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세대교체와 혁명1세대와의 공존,강경파와 온건파의 조화 여부에 따라 김정일 체제가 튀는 방향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김정일은 식량난과 경제난을 해소해 북한 주민들로부터 새로운 지도자로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김정일체제가 공식 출범했으나 가까운 시일내에 북한의 대외정책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북한전문가들은 전망한다.우선 김정일은 올해 주체연호를 사용함으로써 김일성 유훈을 받들어 나갈 것임을 공공연히 해온 탓이다.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을 주장하면서 한국과는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들것이다. 이런 까닭에 남북한 관계보다는 대외 관계의 변화가 빨리 올 것으로 예측된다.김정일은 소강상태에 있는 4자회담을 가동해 식량난 등의 내부 과제와 대외정책의 돌파구를 찾을 것으로 여겨진다. ◎외국반응/미­예정된 세습… 실용노선 채택 예상/러­“북 내부문제… 주민결정 존중” 논평/중­강택민 “우호관계 발전 기대” 축전/일­대일본 관계개선 속도 빨라질듯 미국무부는 김정일의 권력승계는 일찌감치 예상되어온 ‘부자세습’의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점에서 향후 북한에 이렇다할 극적인 변화는 초래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그러나 김정일의 총비서 취임으로 북한내 최고권력의 ‘표면적 공백’상태가 메워짐에 따라 향후 어떤 형태로든 북한이 변화를 향해 나아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와관련,최근 “김정일은 대외적으로 베일에 가려진 인물로 그에 대한 평가는 여러갈래로 나오고 있지만 그동안 북한이 취해온 정책으로 미루어 실용적인 노선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북한 김정일의 총비서 선출과 관련,러시아외무부의 한 대변인은 8일 “러시아 외무부는 북한국민의 결정을 존중하며,김의 총비서 선출은 순수한 북한 내부의 일로 간주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중국정부와 공산당은 8일 김정일의 총비서(총서기)취임결정에 대해 당 총서기를 겸하고 있는 강택민 주석의 축전과 함께 외교부 대변인의 신속한 공식논평을 통해 환영 입장을 밝혔다.심국방외교부 대변인은 발표에서 “김정일 동지의 ‘조선노동당’총서기 취임을 열렬히 환영한다”고 밝혔다.심대변인은 “중·북 두나라와 두나라 공산당은 전통적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이를 발전시키는 것이 두나라 공동이익 및 동북아 평화·안정에 도움이 되며 두나라 우호관계가 반드시 한단계 발전할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계는 북한이 김정일의 총비서 취임으로 체제가 정비됨에 따라 식량난 등 내부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 페루신문 북한체제 비판/엘솔지 “세습왕조·우상화등 이상한 나라”

    【부에노스아이레스 연합】 페루의 일간지 ‘엘 솔’은 2일자 신문에서 ‘북한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북한은 이해할 수 없는 일만 벌이고 있으며 마르크스­레닌주의와도 동떨어진 독특한 사회주의를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이 신문은 북한 사회주의가 지난 50년동안 세습왕조를 추구해왔으며 이 과정에서 김일성주석과 아들 김정일비서의 우상화에 치중해 왔을 뿐만 아니라 주체사상이야말로 불과 수십년동안에 전세계를 지배하고 인류를 매료시키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고 비꼬았다. 북한정권은 특히 우상화 작업에 열을 올려 김주석이 태어났던 1912년을 기준으로 주체전과 주체후로 달력을 변경하는가 하면 주민들이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상황에서도 궁전을 짓기위해 연간 9억달러를 탕진하고 있다고 ‘엘 솔’은 전했다. 특히 ‘엘 솔’은 일반대중의 기본적 자유조차 거론되지 못하고 가뭄과 최악의 경제운영,무능한 후계자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북한의 주민들을 생각할 때 평양지도자들이 내놓은 여러가지 주장들은 조롱거리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 현안 떠오른 탈북자문제(김정일의 북한:6)

    ◎탈북사태 남북문제 넘어 국제쟁점으로/2년새 탈출 급증… 식량난 심각성 반증/대량 난민발생 가능성에 중·서방 주시/통일과 연계한 장기적 대책 마련 필요 90년대 들어 북한문제와 관련해 가장 중대한 쟁점의 하나로 대두한 것이 바로 탈북자 문제다.탈북자 문제는 한국 정부당국에 획기적인 정책수립을 요구하는 과제이자,한국 일반대중의 정서를 건드리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그리고 탈북자 문제는 한반도 두나라에 한정된 민족내부의 문제를 넘어 국제적인 성격을 띠는 차원도 있다.당장 탈북자들의 주요 경로가 되고 있는 중국에 정책적 현안이 되는 문제이며,탈북자들의 수용,인권문제 등과 관련해서는 서방국가들과 민간단체들이 관심을 갖는 사안이기도 하다. ○경제사정이 탈출 동기 70년대와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귀순한 사람들은 그 동기와 원인이 주로 정치적인 성격을 띠었다.즉 억압적이고 독재적인 북한체제가 밀어내는 요인으로,한국의 자유가 끌어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그때만 하더라도 탈북자의문제가 그 수나 남한사회내 미치는 파장이라는 측면에서 미미했기 때문에 그렇게 중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90년대들어 양상은 크게 바뀌었다.북한의 경제사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탈북의 동기가 변했다.정치적인 동기로 탈북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고 궁핍을 못이겨 탈북을 감행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됐다.특히 근년에는 익히 알려진바 대로 식량난이 탈북의 주원인이 됐다.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의 땅을 떠나야 하는 것이 오늘날 탈북의 주된 양상이 된 것이다. 탈북자 문제가 중대한 사안인 것은 그 숫자가 전에 비교할수 없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중국 접경지역에서 조사한 바로는 지난 2년사이에 배고파 중국으로 넘어오는 북한인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지금과 같은 감시체제 아래서 북한을 탈출,중국까지 올수 있는 사람들은 선택된 소수라고 볼 수 있다.그러나 이미 평양의 권력 심장부까지 파급되고 있다는 식량난은 사실 북한체제를 동요시키는 중대한 요인이 되기 때문에 향후 대량 탈북자 발생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식량난은 구조적 문제 농업의 피폐,예견되는 자연재해,김정일체제의 무능력 등을 감안할 때 북한의 식량난은 당분간 지속되거나 한층 악화될 것이 명백하다.북한의 식량난은 이미 구조적인 성격을 갖춰 버린듯 하다.이런 구조적 문제는 인위적인 노력이 아무리 진지하더라도 해결하기가 무척 어렵다.북한의 식량난이 해결되지 않는 한 탈북자는 발생할 것이고,향후 식량난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한다면 탈북자 문제도 한층 막대한 과제로 우리들에게 해결을 요청할 것임에 틀림없다. 현재 탈북자들은 일종의 난민으로 볼수 있다.극소수만 남한으로 들어오고 대다수는 중국내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거나 접경지역에서 몇 끼니를 해결하고 다시 북한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이런 악순환을 그리면서 탈북자 문제는 우리에게 해결해야할 중대한 과제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탈북자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우선 탈북자 문제는 식량난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따라서 두가지 문제를 분리해 다뤄서는 안된다.식량난이 극도로 악화돼 대규모 탈북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로서,현재 우리로서는 전혀 대비가 돼 있지 않다. ○중·국제기구는 방관자 그래서 식량난의 악화를 막는 정책을 현명하게 구사하는 것이 대량 탈북에 의해 초래될 일대 혼란을 막는 첩경이라고 할 수 있다.앞서도 강조한 바와 같이 지금 북한의 여러 여건들을 감안할 때,식량난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내키지 않더라도 우리가 적극 개입하는 수밖에 달리 묘책이 없다. 둘째 탈북자 문제를 중국이나 국제기구에 맡기는 안이한 사고를 해서도 안된다.중국정부는 탈북자 문제에 대해 단호한 정책을 채택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북한과 접하고 있는 중국 길림성의 경우,탈북자는 일단 보호한 뒤 북한으로 되돌려보내야 한다는 정책을 중국내 조선족에게 분명하게 천명하고 있다.중국은 이 골치아픈 문제를 떠맡지 않겠다는 것이다.다른 국가나 국제기구도 제한적인 역할밖에 담당할 수 없다.탈북자 문제를 결국 우리의 문제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탈북자 문제는 우리의 궁극적인 과제인 통일과도 무관하지 않다.우리 정부 통일정책의 근본은 평화통일이다.이 정책에는 아마도 변함이 없을 것이며,또 변해서도 안된다.우리는 통일을 이야기할 때 “땅의 통일”에 주된 관심을 두는듯 하다.하지만 진정한 통일은 “땅의 통일”과 더불어 “사람의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사람의 통일’ 이뤄야 외국의 사례에서 보듯 “사람의 통일”이 매우 어렵다.전쟁이나 분쟁을 통해 통일한 베트남과 예맨의 사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평화적 통합을 이뤘다는 독일의 경우에도 극심한 “사람의 분단”이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사람의 통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이며,“사람의 분단”이 지속되는 한 사회적 통합이 깨지게 마련이고 사실적 통합이 결여된 상태에서 건전하고 역동적인 국가가 생길수 없다. 지금 우리가 부러워하고 있는 통일국가들은 비록 “땅의 통일”에는 성공했지만 한결같이 “사람의 분단”때문에 여러가지 사회문제를 드러내고 있다.그런 사회문제들은 높은 사회적 비용을 요구해해당 국가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편이다.우리의 경우 탈북자 문제를 미봉책으로 해결하고자 하지 말고 통일과 연관지워 생각하는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죄는 평양의 세습권력과 국가를 망친 엘리트들에게 있지,초근목피로도 생명부지가 힘들어 사활을 걸고 탈북을 감행하는 사람들에게 있지 않다.〈이수훈 경남대 교수·사회학〉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