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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S, 이번엔 햇볕정책 맹비난

    도쿄 최광숙특파원 일본을 방문중인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현 정부를 강도높게 비난하면서 ‘정치재개’ 의사도 내비침에 따라 한나라당 내 PK(부산·경남)지역 의원들이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김전대통령은 5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과의 회견에서 “김대중(金大中)정권의 햇볕정책으로 한·미·일 3국간의 대북협력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햇볕정책을 신랄히 비판했다. 그는 남북문제와 관련,“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일 세 나라가 철두철미하게 협력하는 것이지만 햇볕정책 때문에 잘 협조가 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김전대통령은 이어 “북한은 한국에 상당수 간첩을 보냈는데 DJ정권들어서는 한명의 간첩도 잡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전대통령은 이 신문이 94년 무산된 김정일(金正日)주석과 회담에서 무엇을 제안하려고 했느냐고 묻자 “비밀로 하겠다”면서 “10년후 다음 지도자중 누군가 정상회담을 하게 된다면 말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확답을 피했다. 이처럼 YS의 정치적 행보가 점점 가시화되자 PK의원들은 ‘냉가슴’을 앓는다.내년 총선을 앞두고 자칫 선택의 기로에 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전대통령은 최근 측근인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의원을 통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를 돕겠다고 한 적이 없다”는 얘기를 흘려 이 지역 의원들을 심란하게 하고 있다. 경남 출신인 윤한도(尹漢道)의원은 “김전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PK지역 사람들도 자제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지난 3일 김포공항에서의 페인트 세례는 그래도 전직대통령인데 너무 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라고 지역 정서를 전했다. bori@
  • YS ‘페인트 세례’ 박의정씨 구속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에 대한 페인트 투척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강서경찰서는 4일 박의정(朴義鼎·71·미국 캘리포니아주 거주)씨를 폭행혐의로구속했다. 이에 앞서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한 서울지법 남부지원 형사 6단독 홍진원(洪鎭元) 판사는 “박씨는 재미교포로서 친구집에 거주하고 있어 도주할 우려가 있고 자신이 잘한 일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어 재범의 가능성이 높아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경찰은 박씨가 친구 윤모(70·의사·종로구 평창동)씨 집에서 30일간 머물면서 접촉한 인물과 휴대폰 통화내역도 조회,배후세력 및 공범이 있는지 여부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박씨가 현장에서 뿌린 ‘김영삼씨는 국민 앞에 속죄하라’는 A4용지 30장의 유인물을 지난달 중순 성동구 금호동에서 자신이 아는 전 국회의원의 부하직원을 시켜 제작했다고 주장함에 따라 사실로 확인되면 수사를 벌일방침이다. 김성수기자 sskim@
  • [사설] 김영삼씨의 봉변·망발

    김포공항에서 일어난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페인트 세례 봉변은 전직대통령 등 요인 경호에 있어 심각한 문제점을 제기했다.재미동포 박의정(朴義鼎)씨가 던진 것이 달걀이 아니고 흉기였다면 어떻게 됐겠는가.생각만 해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경호는 퇴임후 7년간은 대통령 경호실이 맡게 돼 있으며 전직 대통령쪽의 요청이 있을 경우 경찰이 별도로 경호를 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이날 김전대통령쪽에서는 별도의 경호요청을 하지 않아 공항경찰은평상근무를 했다고 한다.달걀을 던진 박씨는 현장에 뿌린 유인물에서 “나라를 망친 김씨는 오늘 당한 봉변을 국민이 내리는 응징으로 알고 깊이 반성하고 자숙하기 바란다”고 주장했다고 한다.문제는 우리 전직 대통령들이 국민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데도 정치적 언동으로 국민들의 격분을 사고 있다는데 있다.그렇기 때문에 경호당국은 더욱더 전직들에 대한 경호에 만전을 기함으로써 불측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박씨는 당연히 법에 따라 처벌을 받겠지만,달걀 속에 페인트까지 넣어서 던진 것은 국민정서상 너무 지나쳤다는 느낌이다.김전대통령은 이 사건을 배후가 있는 정치 테러라고 주장,“김대중(金大中)정부가 자기 무덤을 깊이 판것”이라고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이 사건에 배후가 있는지 없는지는 경찰조사에서 밝혀지겠지만,모든 것을 김대통령과의 대결구도에서 해석하는 김영삼씨의 발상이 신기할 지경이다.김씨는 일본에 가서도 “김대중 정권은 살인정권”이라는 등 막말을 해댔다.한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지도자의 언동치고는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전대통령의 망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는 올 말로 정치적으로 끝나야 하며,올해 안에 반드시 내각제 개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90년 3당합당 때 ‘내각제 각서’를 휴지로 만들고 대통령제를 고수했던 김씨로서는 엉뚱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그러면서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을 뿐이라며 정치 재개의 뜻을 분명히 했다.내각제 아래 부산·경남지역의 정치적 지분을 행사하겠다는 뜻으로 읽혀진다.그러나 그것은 국민을 너무 우습게 보는 짓이다.국민들은 지난 30여년간 우리를 옭죄어온지역할거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마당이다.김씨가 특정지역을 볼모로 정치를 재개하려는 것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다.김씨는 그같은망상을 버리기 바란다.
  • 金대통령 지시,YS 페인트세례 철저수사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4일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에 대한 전날 ‘페인트 달걀세례 사건’과 관련,“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며 경찰이 사건을 철저히수사하고,배후가 있다면 밝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또 전직대통령에 대한 경호에 만전을 기하라고 경호실에 지시했다고 박준영(朴晙瑩)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모스크바大 강연 이모저모

    ?綬凋뵀㈈? 유민특파원?瘦兀陸?(金大中)대통령이 모스크바대학을 찾은 것은28일 방문으로 3번째다.93년 이 대학 명예교수로 위촉됐고 1년 뒤 강연차 방문했다. 김대통령은 모스크바대학측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학생들로부터는연설도중 여러차례 기립박수를 받는 등 환영열기가 뜨거웠다. 김대통령이 본관 앞에 도착하자 사도브니치총장부부와 소콜로프부총장이 김대통령을 맞았다.대학측은 귀빈을 맞는 전통환영식도 펼쳤다.쟁반에 올려진빵조각을 김대통령이 소금을 찍어 먹는 시늉으로 ‘환영절차’를 마쳤다. 김대통령이 2층 대강당으로 들어서자 대학 교수,학생 등 25명으로 구성된합창단이 ‘고다무스’(세계 학생가)를 합창했다.사도브니치총장은 “수 많은 투옥과 역경을 딛고 한국대통령으로 우뚝선 김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의뿌리”라고 600여명의 교수·학생에게 소개,박수세례가 펼쳐졌다. 김대통령은 연설에서 “모스크바대 명예교수로 이 자리에서 강연했었는데한국 대통령이 되어서 여러분을 만나니 금의환향한 심정”이라고 소감을 피력했고 이는 모스크바 대학의 친구들이 과거 나의 외로운 민주화투쟁을 지원해줬기 때문이라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김대통령은 “나는 옥중생활에서 푸슈킨 레르몬토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등 거의 모든 러시아 고전을 섭렵했다”면서 “그때마다 위대한 문학을 만들어낸 러시아의 저력과 예술성에 탄복했다”고 말했다.이어 “러시아문학을 읽은 것만 가지고도 감옥에 간 보람이 있었다”고 말하자 장내에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김대통령의 연설은 ‘러시아찬양’으로 이어졌다.문학 뿐아니라 막강한 군사력,첨단 과학기술,기초·응용과학을 갖춘 보기드문 나라라고 러시아를 치켜세웠다. 바로 이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했고 러시아가 우리측이 제안한 남북한이 공존공영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포괄적 협력 방안’을 지지해줬다고 정상회담 내용도 알렸다. 김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운명은 21세기를 어떻게 대응하느냐에좌우될 것”이라면서 한-러간 유대강화를 역설했다.
  • 獨피셔외무 녹색당시위대에 봉변

    요시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이 13일 독일 서부 빌레펠트시에서 열린 녹색당특별 전당대회장에서 나토공습 중단을 요구하는 과격 시위대로부터 붉은 페인트 세례를 받고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녹색당 대의원들은 당초 나토 공습의 즉각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려다 피셔 장관이 장관직 사퇴의사를 밝히며 강하게 반발하자 내용을 대폭 완화해 나토 공습 잠정 중단을요청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베를린 연합
  • 맥도널드, 체인점업계 ‘불멸의 위업’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국의 햄버거 체인업체인 맥도널드사가 다음 달시카고에서 2만5,000번째 점포를 열기로 함으로써 체인점 업계에 깨지지 않을 기록을 만들었다. 맥도널드사의 이 위업은 점포 수로 다음 순위인 세븐 일레븐이 1만8,625개인 것을 보더라도 엄청난 기록이 아닐수 없다. 점포수가 많은 것뿐만 아니라 맥도널드의 점포들은 곳곳에서 엄청난 이익을 내면서 지난달 말 최고경영자인 잭 그린버그회장이 보너스만 110만달러를받은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린버그 회장은 이렇게 많은 이익을 내자 손수 작성한 감사의 편지를 각점포 대표들에게 보내 “이 업적은 여러분 모두가 함께 이뤄낸 것”이라면서 격려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해 말부터 미국내 경기가 보다 빠른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매수세는 치솟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때문에 지난 회계년도 전체 이익이 전년도보다 9%가 증가,124억 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맥도널드를 성장시키는 요인이 무엇인가.자연스럽게 미국 기업들은 이를 들여다 보게 된다.이에 대해 그린버그회장은 우선“맥도널드사 자체가 위대한미국을 암암리에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미국의 상징 가운데에서도 어두운 면이 아니라 자유를 비롯한 희망,효율성,첨단문명 등을 대변하고 있어 이를 동경하는 사람 심리를 끌어모으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의 분석을 설명한다. 때문에 아무리 소득수준이 낮은 나라이거나 심지어 미국과 적대관계를 가졌던 옛소련에도 점포를 차리고 영업할 수 있었으며 사람들을 불러모으는데 성공했다는 분석이다. 때에 따라서는 이 상징성 때문에 반미감정 해소의 대상이 돼 점포가 불에타거나 돌세례에 유리가 깨지는 사고도 많이 당했다는 것. 그러나 이미지가 아무리 좋아도 영업방식이 뒷바침되지 않으면 사상누각. 크로크회장이 일리노이주 데스플래인에서 44년 전 문을 연 이래 맥도널드의 점포운영 방식은 철저한 효율성과 청결,그리고 친절을 무기로 삼는다.식단을 단순화한 것을 비롯해 조리과정을 전부 계량화해 전문성이 없는 직원이라도 쉽게 조리 할 수 있다. 이같은 이점은 점포수 1만2,000여개인 피자헛이나 1만423개의 캔터키프라이드 치킨,또 같은 햄버거업체인 점포1만개의 버거킹에 철저한 모델이 되고 있으며 전세계 후발 페스트 푸드 업체의 전형이 되고 있다. 매장의 절반 가량이 미국내에 있는 맥도널드는 자동차 문명에 맞는 위치와서비스 방식을 취한 것도 초기 성장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지만 핵가족 추세에 따라 어린이 놀이공간과 장난감선물을 마련하는 등 가족 문화를 포용한 것이 지속적인 성장을 낳은 요인으로 지적된다. hay@
  • 폭발 증시 대기물량 40조 ‘찬물세례’

    기세좋게 나가던 주식시장이 폭락국면으로 돌변했다. 폭락세가 이어질 지,지수 750선을 전후해 조정을 거칠 지 속단하기 어려우나 일단 폭등세가 꺾였다는 게 중론이다.최근의 주가 폭락세는 이달부터 내달말까지 예정된 8조원의 유상증자 등 주식 공급물량 증대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감 때문으로 볼 수 있다.증시로의 자금유입도 둔화조짐이다. ■주식 공급물량 얼마나 되나 자금에 쪼들리는 기업들이 증시를 통한 자금조달에 적극 나섬으로써 올해 30조∼35조원 정도의 주식물량이 시장에 공급될 전망이다.정부 보유주식 등대기매도 물량도 11조원 정도에 이른다.모두 합치면 40조원이 넘는 물량이어서 주가 상승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증권시장과 정부 일각에서는 물량공급이 넘쳐 주식 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며 주식공급을 조절해야 한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그러나 재정경제부 당국자는 13일 “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주식시장에 개입할 의도도,수단도 없다”고 시장의 자율흐름을 존중하겠다는 원칙을 밝혔다. 올해 상장기업의유상증자 예정액은 모두 25조∼30조원으로 4월말까지 8조원의 주식이 발행됐다.특히 5,6월에는 유상증자가 급증,두달간 8조원이 몰리며 나머지 9조∼14조원은 하반기로 예상되고 있다. 코스닥 시장의 경우 신규 등록규모와 증자액을 합쳐 올해 모두 3조∼5조원의 물량이 나올 전망이다.여기에다 예금보험공사가 갖고 있는 주식이 서울,제일은행 각 7,500억원을 비롯해 6조8,700억원에 달한다. 또 정부가 국고에서 보유하는 주식은 한국전력 1조6,700억원 등 4조3,639억원에 달한다. ■자금유입도 둔화세 주식시장으로 시중자금 유입은 계속되고 있다.그러나 금리 상승과 주가 하락으로 자금의 유입속도는 둔화되고 있다. 11일 현재 주식형 수익증권의 잔고가 20조4,324억원으로 올들어서만 12조1,169억원이 늘었다.지난 3월말부터는 하루에 4,000억∼5,000억원씩 늘었다. 그러나 금리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증시로의 자금유입속도가 둔화되기 시작했다.7일 증가액이 1,890억원으로 2,000억원 아래로 내려갔고 8일 250억,10일 2,483억원,11일 1,553억원 증가에 머물렀다. 고객예탁금은 12일 현재 9조1,665억원으로 전날보다 1,256억원이 늘었지만증가속도는 둔화됐다.4월중 하루에 800억원에서 2,000억∼3,000억원씩 증가할 때와는 달리 5월 들어서는 지난 3일 1,451억원,11일 1,818억원 증가한 것을 제외하고는 262억∼489억원 증가에 머물렀다.4일은 오히려 2,291억원이줄었고 8일에도 746억원이 감소했다. 증권관계자들은 “주식 공급물량이 늘어나고 증시로의 자금유입이 둔화되고있다는 것은 주가의 추가하락 가능성을 예고해주는 징후”라고 조언한다. 이상일 김균미기자 bruce@
  • ‘본상’

    □ 면려상-청주교도소 교위 서동식 지난해 1월 폭력혐의로 구속된 오모씨의 아들이 대학에 합격했으나 가정형편 때문에 진학을 망설인다는 말을 듣고 입학금 130만원을 대주는 등 불우재소자 가족을 돕는데 앞장서왔다.의무과에 근무하던 83년에는 수용자들의무료 치과진료와 보철시술을 주선하기도 했다. 92년에는 교무과에 근무하면서 악대반 운영에 필요한 색소폰 등 악기 550만원 어치를 구입해 주고 지난해에는 안양의 한 교회로부터 사물놀이 악기를지원받아 수형자 사물놀이반을 만들기도 했다. □ 박애상-홍성교도소 종교위원충남 대천 삼현교회 목사로 지난 25년 동안 수용자 1인1교 갖기운동,자매결연 상담 등 교화활동을 해왔다.84년부터는 수용자들에게 매년 찬송가 250권을 지원하고 있다.출소자들에게 취업을 알선하는 것은 물론 이들에게 대학입학금도 대주고 있다. 93년부터는 독후감 발표회 및 웅변대회 등을 통해 수용자들의 올바른 가치관 정립에 힘쓰고 있으며 매년 인근 중·고교에 지원하는 장학금도 2,000여만원에 이른다.재소자는 물론 교도대원들의 사기진작에 기여한 공로로 법무부장관 표창을 두 차례 수상했다. □ 성실상-마산교도소 교위 이성대29년간 근속하며 어려운 가정생활에도 불구하고 80년부터 85년까지 벌금을내지 못해 노역장에 유치된 7명의 벌금을 대신 내주고 귀향여비까지 지급,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했다.결핵환자 사동 근무때는 300여명의 환자를 친형제처럼 보살펴 환자완치율을 종전의 17%에서 30%까지 끌어올렸다.95년에는 운동장에서 졸도한 재소자를 재빨리 병원으로 이송,조기에 치료받을 수 있게했다.5남의 장남으로 교통사고와 치매로 병석에 누운 노부모를 18년 동안 극진히 모셔 97년 마산시민 효행상을 받기도 했다. □ 자비상-인천구치소 종교위원 연광조계종 법사로 22년 동안 수용자들에게 자비정신을 전파하는데 힘썼다.재범을 방지하기 위해 85년부터 출소자 28명에게 취업을 알선했다.93년 9월에는‘자비의 전화 상담실’을 개설,청소년 선도 및 범죄예방에 기여하고 있다.96년부터 ‘피안사회복지관’을 운영하면서 매월 120명의 무의탁 노인에게 무료 점심을,지난해에는 ‘IMF식당’을 차려 하루 30∼40명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올해에는 무료 이동목욕차량과 가정방문 무료 간병,초·중·고 결식학생 점심배달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 창의상-청주소년원 소년보호주사 위정숙 91년 원생 등 90여명에게 한달간 금연침 무료시술을 받게 해 금연을 유도하는 등 건강증진에 기여했다.93년 보호자대기실에 안락의자 8개,공중전화기 1대,안내현황판을 부착,민원인의 불편을 덜어주는 한편 민원실 TV 등을 통해소년원 교육활동을 소개해 기관홍보에 앞장섰다.부산소년원 근무때는 원생 6명이 검정고시에 합격하도록 도왔고 91명이 미용기술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89년 취사원 김모씨가 가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쌀 1가마와 의류 등을 전달하기도 했다. □ 자애상-영등포교도소 종교위원 강순분‘영원한 도움의 성녀 수녀회’ 소속 수녀로 94년부터 매년 세례식을 거행,불우수용자 240여명이 영세를 받고 참다운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도했다.95년 7월에는 성가연습용 전자오르간 3대와 종교서적 등을 기증해 수용자들이 개인 종교생활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왔다. 같은해 12월에는 한자교육이 수용자 정서순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한자교재 1,700여권을 기증했다.지난해에는 2만여명의 수용자에게 신앙심을 심어준 공로로 법무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 교화상-수원구치소 교회사 이태희 93년 소년수용자들이 수형생활을 건전하게 할 수 있도록 한자교육제도를 도입,모두 4만2,000명에게 한자를 가르쳤다.97년에는 한자 성적 우수자 87명을 선정해 합동으로 가족 접견을 시키고 검찰 등에 양형자료로 통보했다.월 1회 한자를 병용,효도편지를 쓰게 하는 등 교화선도에 애쓰고 있다.96년부터각계에 호소,도서 1만6,900권을 기증받기도 했다.동료 직원의 자녀가 선천성 심장병을 앓는 사실을 알고 모금활동을 주도,550만원을 전달했다. □ 공로상-대구교도소 교화위원 하영태대구 유신섬유 대표이사로 재직하면서 14년동안 수용자 정신교육 지도에 앞장섰다.93년에는 전국 최초로 대구지방청 교화연합회를 창립,법무부장관의표창을 받았다.수용자에게 매년 100만원 상당의 교재를 기증해 150여명이 중·고교 입학자격 및 졸업자격 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도왔다.이밖에 교정시설에 서화용품과 악기구입비를 지원,수용자의 심성순화는 물론 수용자들이 교정작품 전시회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했다.
  • 침례교 선교 110돌 오늘 화합·전진대회

    기독교한국침례회(총회장 이봉수 광천침례교회 담임목사)가 한국선교 110주년을 맞아 5일 오후 2시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침례교회 110주년 대회’를 개최한다. 이날 대회에는 10만여명의 전국 침례교인들이 모여 새 천년을 앞두고 화합과 전진을 다짐하는 한편 어려운 이웃과 나눔을 실천할 계획이다.특히 올해대회는 밀레니엄시대를 앞두고 새로운 교단 발전과 교회상을 정립하기 위해40여년동안 사용해왔던 서울 동자동 총회 사무실 시대를 마감하고 구로구 오류동에 새 건물(대지 1,000평,건평 1,000평)을 마련한데 대한 감사의 축제를 겸해서 열린다. 대회준비위원회(위원장 최보기·한명국목사)는 특히 행사일이 어린이날인것을 감안,온 가족이 함께 참여해 즐기는 대회가 될수 있도록 텔레토비와 동물인형이 등장하는 놀이동산,얼굴 페인팅,브레이크 댄스한마당,개그맨 특별공연,청소년 사진콘테스트 등 흥겨운 식전행사를 마련해놓고 있다.또 본행사에서도 축구묘기,태권도선교단의 시범,한스밴드 공연 등을 펼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날 모인특별헌금을 북한 비료보내기 운동기금과 소년소녀 가장 장학금에 쓸 예정이며 대회가 열리는 동안 헌혈 및 장기기증 운동도 펼친다. 침례교는 1897년 캐나다 출신 말콤 펜윅 선교사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래된개신교의 한 교파로 특히 민주적인 교회운영을 강조하고 있다.2,000여년전세례 요한으로부터 시작된 전통적인 침례(浸禮:온 몸에 물을 끼얹어 죄를 씻는 의식)를 유지하는 교단으로 전세계적으로 1억명 이상의 신자가 있으며,한국에는 2,245개 교회에 3,000여명의 목사,65만명 가량의 신도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날 대회에는 이봉수 총회장을 비롯해 김종필 국무총리,고건 서울시장,박세직 2002년 월드컵 조직위원장,김영진 국가조찬기도회장,길자연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총회장,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헤리 먼로 아시아침례교연맹 총재 등이 참석할 예정이며 50년대초 한국 선교에 헌신한 초기 선교사 부부 20여명도 초청한다. 박찬기자
  • [정직한 역사 되찾기](33)재일 친일파 거두 박춘금

    일제강점기 친일파는 조선내는 물론 일제의 영향력이 미치는 전 지역에서 활동하였다.만주사변 이듬해인 1932년 수립된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이나 일본 본토도 그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다.이들은 대개 군부나 행정기관 등 일제의 권력기관에서 일제통치의 수족으로 활동하였다.만주군관학교나 일본 육사를 나와 고급장교로 활동한 친일 군인들이 이에 속하며 또 일본이나 만주국의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고급엘리트 관료로 활동한 자들을 들 수 있다.한 단계 낮은 직급에서는 밀정이나 행동대원 등 앞잡이로 활동한 자들을 거론할수 있겠다. 일본 본토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친일파로 박춘금(朴春琴·1891∼1973)을 들수 있다.그는 조선인으로서 일제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두 번씩이나 대의사(代議士·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이다.그의 친일성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극력 친일파 가운데 일제말기 일제가 임명한 귀족원 의원을 제외하면 일제통치 전 기간을 통해 일본 국회에 진출한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박춘금은 여러 형태의 친일파 가운데서상당히 드문 유형에 속한다.친일파 가운데는 지식을 팔아 일제에 아부한 집단이 있는가하면,경제적 기반을 일제통치에 제공한 대가로 기득권을 보전하고 일제와 유착관계를 형성해온 부류도 있다.그러나 박춘금은 그도저도 없는 자였다.그는 오직 몸뚱이 하나로친일대열에서 성공한 자였다.그는 수하에 폭력조직을 거느린 소위 ‘정치깡패’ 집단의 우두머리였다.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하수인으로 폭력집단이 존재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나 식민지시절에도 이같은 집단이 존재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주먹으로 친일배의 정상에 오른 그의인생역정을 더듬어 보자. 박춘금은 1891년 경남 밀양 태생으로 본관도 밀양이다.부 박금득(朴今得)과 모 박차연(朴且連)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자세한 가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청년시절 그는 일본인 술집에서 심부름을 하며 일본말을 배운 것을 밑천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판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가 일본으로건너간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자세하지가 않다.다만 그가 한 연설에서 토로한 말에 따르면,일본에 도착할 당시 수중에 가진 돈은 1원 49전뿐이었으며 당시 일본에는 관비유학생 50명인가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했다. 1920년경 그가 이기동(李起東) 등과 함께 도쿄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을 모아 ‘상구회(相救會)’라는 단체를 조직한 사실은 확인된다.이기동은 오랫동안 그와 함께 활동한 대표적인 재일 친일파다.상구회는 1921년말 ‘상애회(相愛會)’라는 사회사업단체로 개편되는데 23년 요코하마·나고야·오사카 등에 지부를 조직,조직을 확대하였다.그럴듯한 이름의 간판을 내건 이 ‘상애회’가 바로 박춘금 일당의 일본내 친일활동의 모태가 된다. 막노동판의 주먹패 박춘금이 일제로부터 인정을 받아 재일 조선인 사회에서 두각을 드러내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1923년 9월 1일 도쿄 인근 지역을 강타한 ‘관동(關東)대지진’이었다.수 십만 명의 인명피해는 물론 재산피해도 엄청났던 이 천재(天災)를 맞아 일제는 동요한 민심을 수습하고 조선인을탄압할 목적으로 당국의 개입하에 유언비어를 유포하였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거나 방화를 일삼는다는 것이 그것이다(여기에는 미즈노(水野鍊太郞) 당시 내무상의 조선인에 대한 개인감정이 개입됐다는 지적도 있다.미즈노는 1919년 9월 사이토(齋藤實)총독을 따라 정무총감으로 조선에 부임하기 위해 서울역에 첫 발을 디뎠다가 강우규(姜宇奎)의사의폭탄세례를 받은 인물). 이에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조직,관헌과 함께 조선인에 대한 무자비한 체포와 학살을 자행하였는데 최소 6,000명이 이때 희생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바로 이때 박춘금은 상애회 회원 300여명을 동원,‘노동봉사대’를 조직하여 조선인 희생자 시체처리와 복구작업을 자청하였다.이 무렵 박춘금 일당은이미 일제당국의 비호를 받고 있어서 상호 자연스레 교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일을 계기로 박춘금은 일제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상애회 본부 사무실을 마련하는 등 입지를 넓혀갔다.28년 박춘금은 상애회를 재단법인으로 만들고는 이사장에 총독부 경무총감 출신의 마루야마(丸山鶴吉)를 영입했다.회장에는 이기동을 앉히고 자신은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사실상 실권을 행사하였다.이 무렵 상애회는 일본내 주요도시에 지방본부를 설치하였고 회원수도 2만명을 헤아렸다.이듬해 29년 상애회관을 지어 사무실도 독립하였고 마루야마 취임 1주년때는 사이토를 기념식 행사장에 초청하는 등 그 위세를 과시하였다.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세력가로 부상한 그는 상애회 조직을 바탕으로 정계진출을 추진하였다.32년 2월 실시된 제18회 총선때 그는 도쿄 5구(區)에 출마,처음으로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놀라운 것은 조선인 유권자가 1,236명뿐인 이곳에서 6,966표를 얻었다는 점이다.그의 열렬한 친일성이 일본인 유권자들을 설득시킨 점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일본정계 실력자들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거직후인 2월 23일자로 그가 사이토 전 조선총독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불초 이번에 중의원 의원에 당선의 영관(榮冠)을 얻게 된 것은 모름지기 귀대(貴台,손위사람의 높임말)의 두터운 정과 성원을 입은 것이라 여기며 깊이 감사드립니다…”라고 한데서 이같은 점을 엿볼 수 있다.이후 그는 한 차례 낙선했다가 40년 제20회 총선에서 재선하였으나 그의 정치인생은 여기서 막을 내렸다.이후 그는 활동무대를 조선으로 옮겨 친일대열의 선봉장을자처했는데 이 시기가 바로 그의 친일활동이 절정을 이룬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인 학생들에 대한 학도병 징집이 시작되자 그는 매일신보 주최 학병격려대연설회에 참석하여 “고이소(小磯)총독이 (조선)군사령관 시절 군사령부를 방문,내선일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도인에 대한 병역의무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고 밝히고는 “(학도병)4천이나 5천이 죽어 2천5백만 민중이 잘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고 외쳤다(매일신보 1943.11.19). 당시 일제가 학도병을 전선으로 내몬 것은 그 이면에는 조선의 미래의 지식분자를 제거하려는 의도가 숨겨진 것이었다.그가 이같은 일제의 의도를 대변한 것인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는 없으나 그에게는 그런 혐의를 둘만한 사건이 하나 있다. 8·15 해방을 불과 50일 앞둔 1945년 6월 25일.그는 경성부민관(현 서울시의회 청사)에서 당대의 내로라하는 친일파들을 동원,대의당(大義黨)을 결성하고 그 자신이 당수에 취임하였다.당시 전세는 이미 기울어 일본은 패퇴를거듭하였고 미군의 일본 본토공격이 임박한 시기였다.대의당은 바로 이 때‘최후결전’의 자세로 결성된 것이다. 대의당은 ‘강령’에서 “모든 비(非)결전적 사상(事象)에 대해서는 단연이를 분쇄한다”고 밝혔는데 여기서 ‘비결전적 사상’이란 ‘반전·반일’의 총칭이다.해방후 친일파들의 죄상을 조사,폭로한 ‘민족정기의 심판’에따르면 대의당은 항일·반전 조선민중 30만명을 학살하려 했던 ‘살인단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이는 당시 총독부 경무국이 세운 ‘요시찰인에 대한조치계획’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해방후 그는 살길을 찾기 위해 수하를 시켜 건국준비위원회 등에 돈봉투를보내기도 했으나 여의치 않자 일본으로 밀항하였다.이 때문에 그는 반민특위의 체포,조사를 피할 수 있었다.특위에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그를 송환하려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모두 3번 결혼했는데 첫째,둘째 부인은일본여자였고 66년 75세때 세번째로 결혼한 여자는 당시 60세의 한국여자(82년 사망)였다.두번째 일본인부인과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장남 박춘남(朴春男·89년 일본에서 사망)은일본 릿교(立敎)대학 3학년 재학중 자진하여 학도병에 출진했었다. 일제당시 일본에서 박춘금과 교류한 적이 있다는 한 일본군 장교출신 제보자의 증언에 따르면,그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은 마약중독으로 거의 폐인이돼버렸다고 한다.73년 3월 31일 박춘금은 일본 게이오대학 병원에서 사망,현지에 묻혔다.친일 반민족자 박춘금의 일생은 그제서야 막을 내렸다.죽어서도 그는 고국보다 일본을 택한 것인가,아니면 죽어서도 고국으로 올 수가 없었던 탓일까. 정운현기자 jwh59@
  • [부활절 특집]“예수의 부활생명 나눠 민족위기 극복”

    4일은 부활절이다.부활절은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을 축하하는 날로 성탄절과 함께 기독교가 가장 중히 여기는 축일이다.부활절을 맞아 국제대학생선교회(C.C.C) 원로 디렉터인 김준곤(金俊坤·75)목사로 부터 부활절의 의미와 부활절을 맞는자세 등을 들어보았다. ▒부활이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인데 요즘 일반인에게는 물론 일부기독교인조차도 이를 관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복음의 핵심입니다.그러나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없지 않은 것같습니다.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공적이면서도 증인과 증거를 내세울 수 있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믿는 자들은 결코 그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특히 예수님의 부활은 4가지 진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4가지 증명이란? 먼저 진리가 거짓에 승리한 것을 증명합니다.그리고 선이 악에 승리한 것을 입증하고 있고,사랑이 증오를 극복하고 승리한 것을 입증합니다.마지막으로 생명이 죽음에 승리한 것을증거하고 있습니다.때문에 부활을 단순히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특히 IMF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을 나누는 일입니다.이 부활생명이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 역사할 때 우리 민족이 처한 총체적위기는 극복될 것입니다. ▒부활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요. 부활은 더 이상 기독교인들에게만 의미있는 일이 아닙니다.십자가에 매달렸던 예수께서 다시 부활하신 것은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주려는 뜻이었습니다.사랑과 화해,희생,봉사,나눔,섬김의 메시지이지요.그리고 절망에서 소망을 볼수 있도록 해줬습니다.오늘날 세계가 봉착한 인종문제나 종교갈등,도덕적 타락은 물론 우리의 남북문제나 지역감정,노사,빈부,세대간,계층간 갈등문제 등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문제들은 이같은 예수님의 부활의 메시지속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가난하고 고통받는,소외된 자들이 부활의 축복을 받을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굶주리는 북녘동포들을 도와주고 우리사회에 만연된 문제를 풀기 위해 특히 믿는 자들이 불씨가 돼 이웃과 고통을 나누는 운동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또 살벌한 사회분위기를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분위기로 바꿔가야 할 것입니다.이를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자기 자신과의 관계,타인과의 관계,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그렇게 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처한 신앙문제나 도덕적 타락,자연환경의 파괴문제에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절을 맞아서 특별히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은? 우리는 현재 남북통일의 강가,21세기의 강가에 서 있습니다.우리는 새로운천년을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맞이해서는 안됩니다.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가 처한 위기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믿는 자들이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십자가의 신앙과 부활의 능력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21세기를후손들에게 존경받는 유산으로 남겨주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죠. 부활절을 맞아 예수님의 부활 메시지를 사랑과 화해와 도덕의 부활로 맞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김목사는 올해 초 3일동안 여의도에서 금식기도회를 개최,여기서 모아진 1억원의 헌금을 결식아동돕기에 쓰는 등 몸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오고 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사우스웨스턴 침례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80년 복음화성회 대회장,84년 세계교회기도성회 준비위원장을 맡은 바 있으며 현재 기독교21세기운동 한국대표,한국대학생선교회 총재를 맡고 있다.저서로 ‘예수칼럼’ ‘영원한 생명언어’ ‘김준곤 문설집’(전6권)등이 있다. 朴燦 - 부활절 교리와 풍습 ‘부활’은 기독교의 중심 교리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지 3일째 되는 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며 그리스도가 이렇게 죽음을 정복함으로써 모든 신자들이 ‘죄와 죽음·악마’를 물리친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하게 되리라는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부활절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성탄절과 함께 그리스도교회의주요축일이다.영어이름 ‘Easter’의 기원은 정확히 알수 없으나 8세기 앵글로색슨족의 사제인 비드는 앵글로색슨족이 숭배하는 봄의 여신 ‘에오스터(Eostre)’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했다. 매년 날짜가 바뀌는 절기가 실린 교회력 전체가 부활절 날짜에 따르고 있어 한 해 예배를 위한 전례력도 부활절을 중심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부활절은그리스도교에서 1년중 가장 중심이 되는 절기이다. ▒부활절의 날짜 서방 그리스도인들은 춘분(3월21일경) 무렵이나 춘분 다음만월(滿月 부활절 달)이 지난 후 첫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기념한다.그러나 만월이 일요일인 경우 다음 일요일이 부활절이 된다.따라서 부활절은 대개3월 22일과 4월 25일 사이가 된다. 부활절 날짜를 산출하는 방법은 8세기까지 기독교 여러 분파에서 많은 논쟁을 거친 끝에 결정됐다.그러나 동방정교회에서는 다른 계산법을 따라 서방교회와 일치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1주나 4주,5주 후에 해당된다. ▒종교의식 부활절 전야예배는 2세기경 기독교 예배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할무렵 주일성찬에 앞서 성서를 읽고 ‘시편’을 노래하는 주말 전야예배에서비롯됐다.예배순서는 ‘새로운 불의 강복’ ‘부활절 촛불점화’ ‘성구봉독’ ‘세례반 강복’ ‘세례’ ‘부활절 미사’ 등으로 이루어진다. 새벽예배는 주로 개신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부활절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부활의 영광’을 보여준다는 믿음에서 시작됐다.미국 펜실베이니아베들레헴에서 시작된 새벽예배는 이제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 초교파적으로열리는데 TV와 라디오로 중계될 정도로 관심이 높다. ▒부활절의 관습 유럽인들의 고대의식과 상징 표현에서 전래된 것이 많지만그중에서도 새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는 ‘계란나누기’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관습이다.‘계란나누기’는 십자군전쟁에서 유래했다.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십자군부대로 출정한 남편을 가진 한 여인이 고향을 떠나 방황하던중 자신을 정착하게 해준 마을 이웃들의 따뜻한 정에 대한 감사표시로 계란을 삶아 줬는데 바로 그 날이 부활절 날이었다.그녀는 그 계란으로 전쟁에서 돌아와 자신을 찾아 헤매던 남편을 만나게 됐는데이후 매년 부활절이면 부부는 계란에 아름다운 그림과 글씨를 써서 사람들에게 선물했고이것이 부활절에 계란을 나누는 유래가 됐다고 한다. 朴燦- 부활절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1885년 부활절 아침,외국선교사들이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한국 개신교회는 일제하에서도 교파별,지역별 연합예배를 갖고 ‘민족의 부활’을위해 기도했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부활절 연합예배는 1947년 조선기독교연합회가 서울남산에서 1만5,000명의 기독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것이 처음이다. 한국전쟁 중에는 피난지 부산에서 고통받는 민중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도록 역할을 했으나 4.19 혁명을 거치면서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나 1962년부터 10년동안은 정치적 상황과 연합예배에 대한 개신교내 교파간 입장 차이로 분열된 가운데 부활절 연합예배를 갖기도 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가맹교단과 비가맹교단이 각각 남산과 덕수궁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렸던 것. 70년대 유신체체하에서도 분열과 갈등을 겪었다.그러나 75년부터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보수와 진보교단이 연합하여 예배를 갖다 96년부터는 장충체육관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갖고 있다. 한편 지난 90년부터는 남북교회간에도 부활절 축하 메시지를 나누어 오고 있다. 朴燦- 개신교 오늘 138개지역 연합예배 4일은 기독교 최대의 경축일인 부활절이다.이날은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난 날.20세기의마지막 부활절을 맞아 개신교 가톨릭 성공회 등 기독교계 교단은 부활절 연합예배,예수부활 대축일 미사 등을 통해 부활의 기쁨과 함께 그리스도의 부활에 담긴 참뜻을 새겼다. 개신교는 오전 5시30분 서울 장충체육관을 비롯한 전국 138개 지역에서 예년과 같이 연합예배를 올렸다.부활절 연합예배는 수많은 교파와 교단으로 나뉘어 있는 개신교계가 이를 초월해 함께 하는 유일한 행사.올해는 예장통합과 합동,감리교 등을 비롯한 30여개 주요 교단들이 참여했다. 장충체육관에서는 이날 0시부터 철야기도회에 이어 오전 4시30분 목회자와신학생들을 중심으로 신앙간증과 찬양,기도회로 시작,5시30분부터 1만여명의 신자들이 함께 한 가운데연합예배가 거행됐다. 길자연(예장합동 총회장·왕성교회 당회장)부활절 연합예배 대회장의 사회로 시작된 연합예배는 강만원 기장 총회장의 기도와 김삼환 명성교회 담임목사의 설교,이경운 예장대신 총회장,김재룡 예성 총회장의 축도 순으로 이어졌다. 연합예배위원회는 이에 앞서 지난 3월27일부터 일주일동안 ‘남산 걷기대회’‘찬양 대축제’‘민족화합을 위한 한국교회 지도자 회개기도회’‘십자가 대행진’등 갖가지 축하행사를 펼쳐 부활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가톨릭도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각 교구별로 4일 정오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예수부활 대축일 미사’를 올린다.가톨릭은 부활절 일주일전부터 시작되는 성주간(Holy Week)의 전례에 따라 성(聖)목요일 성유축성 미사,성금요일주님 수난예식에 이어 토요일 오후 8시부터 9시30분까지 성토요일 부활 성야미사를 드렸다. 성공회도 4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의 대한성공회 대성당을 비롯한 전국의 150개 성당에서 ‘부활 대미사’를 올린다.성공회는 고난주간(성주간)동안 매일 예식을 올렸다.월화 수요일은 미사와 함께 기도,신앙강화에 힘쓰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성금요일에는 수난예식,토요일 오후 7시 중심예식인 부활밤 예절을 드렸다. 한편 기독교 신자들은 사순절에서 부활절까지 40여일동안 매일 정해진 시간 성경을 읽으며 자기근신의 시간,기도,묵상의 시간을 가졌다.기간중 특별금식과 단식을 하면서 이를 통해 모아진 헌금은 불우이웃을 위해 쓴다.성공회도 사순절 기간동안 금식을 권장하면서 신자들에게 미리 주어진 극기헌금함에 모인 동전등 헌금을 불우이웃과 북한동포돕기에 쓸 계획인데 지난해는 동전으로만 4,000여만원을 모았다고 밝혔다. 朴燦
  • 英·獨 포함 동구권 첫 무대

    ?맏灌茅鵝뵈? 任泰淳특파원?맙痢?나라 전통 음악인 정가·정악이 음악의 본고장 유럽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지난달 8일 체크를 시작으로 유럽 순회공연에 들어간 국립 국악원 정가·정악단은 30∼31일 베를린 공연을 끝으로 예정됐던 독일,영국,헝가리,프랑스,스페인 등 7개국 9개도시에서의 15회 공연을 모두 마쳤다. 이번 공연은 여러가지 가능성과 함께 한계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공연단은 국립 국악원 정예 연주자 15명,스태프 2명 등 모두 17명으로 구성돼 있다.통상 정악단이 40∼50명의 대규모 인원으로 편성되는 것에 비하면미디엄 사이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연단은 간편체제로도 정악의 묘미를 그런대로 살려내 청중들의 호응을 받았다.비록 시조를 노래하는 정가는 언어장벽 등으로 인해 눈길을 끌지 못했지만 궁중음악과 무용으로 구성된 정악은 볼만 하다는 반응을 받았다.영국,헝가리에서는 현지 언론으로부터 ‘감동과 환희의 연속’이라는 의례적인 공치사도 받았지만 “미지의 세계로 부터 들려오는 소리는 유럽 음악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준다”,“움직임이 느린 춤은 우아하고위엄이 있었으며 동양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체크,헝가리 등 동유럽에는 정악이 처음으로 소개된 것이어서 우리 전통음악의 씨앗이 뿌려졌다고 할 수 있다. 공연단은 또 공연 말미에 현지 민요를 들려 줘 현지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영국에서는 영국 민요 ‘그린 슬리브즈’를 들려주자 청중들이 5분간 기립박수를 보냈으며 독일 뮌헨에서의 1차공연에서도 앙코르 세례를 받았다.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도 청중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프로그램 중 청중들의 인기를 끈 것은 황병기씨의 가야금 산조 ‘침향무’로 유럽인들은 크레셴도에서 데 크레셴도로 이어지는 가야금 소리에 많은 박수를 보냈다. 조성래 단장은 “사물놀이,판소리 등 민속악의 유럽 공연은 1,000여회에 이르지만 중규모 정악단의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그러나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반응이 좋아 프로그램을 다양화시키면 중규모의 정악단으로도 유럽 공연이 가능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악이 전통문화 소개의 차원을 넘어 민속악처럼 문화상품으로 받돋음하기 위해서는 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유럽인들의 음악에 대한 정서가 기본적으로 동적이기 때문이다. 문화사절단에 대한 해외 공관의 지원도 차이를 보였다.이기주 독일대사는“구미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사물놀이 팀을 왜 보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상식이하의 발언을 해 공연단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반면 영국 공연에서는 한국음악 전공교수가 20여분간 설명을 해 줘 청중들의 이해를 도왔다.
  • 마음으로 보는 ‘느낌’이 있는 전시회/이인수·신한철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작가란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그가 지적했듯이 작가는 독자의 마음에 감성의 씨앗을 뿌리고,독자는 그 씨앗을 자신의 내면에서 키워나가는 것이다.미술작가와 관객의 관계도 마찬가지다.미술품은 관객에 의해 수많은 의미가 덧붙여지고,그 각각의의미들은 관객의 마음을 살찌운다.그러나 이른바 추상의 형태를 띠는 작품에서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때론 무모한 ‘관념의폭력’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24일부터 4월 6일까지 서울 갤러리 현대에서 동시에 열리는 ‘이인수 회화전’과 ‘신한철 조각전’은 무엇을 보여주기 보다는 뭔가를 느끼게 한다.파리 보자르 국립미술대학에서 회화와 재료학을 공부한 이인수(45)는 프랑스앵포르멜 미술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앵포르멜(informel)’은 원래 부정형 또는 비정형이란 뜻.제2차대전 뒤 정형화된 기하학적 추상에 반발해 일어난 추상회화의 한 경향으로,자발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을 중시한다.미국의 추상표현주의가 동작에 비중을두는데 반해 앵포르멜은 마티에르(matiere), 즉 표현 대상 고유의 재질감에 중점을 둔다.앵포르멜의 세례를 받은 이인수는이미 만들어진 기성물감을 사용하지 않는다.대신 자연 그대로의 흙가루,돌가루,연탄가루,나무재 등을 이용해 자연의 고유색상을 낸다.“회화는 하나의물질로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프랑스 현대화가 이브 클라인의 청색 단채화(單彩畵)도 바로 그런 데서 비롯된 것이다.이번 전시에서는 오래된 벽화의 질감을 느끼게 하는 초현실주의적인 작품 30여점을 선보인다. 한편 올해 41세인 신한철은 구(球)를 기본 단위로 한 독특한 조형세계를 보여준다.그의 작업은 구의 크기를 미리 정한 다음 점토로 성형,석고를 뜨고수정한 뒤 주물작업을 해 구를 만들고 용접을 하는 등 여러 단계를 거친다. 단지 공모양의 덩어리를 늘어놓은 것 같은 그의 작품에서 어떤 삶의 은유를끌어낼 수 있을까.95년부터 구를 화두로 작업을 벌여온 그는 “구는 모성적에로티시즘의 상징”이라고 말한다.모두 15점이 출품됐다.(02)734-8215
  • 北·美대표 문답

    ┑워싱턴 崔哲昊특파원┑만 18일 만에 협상을 타결지은 미국과 북한측 회담대표들은 16일 오후 2시10분쯤(현지시간)부터 회담장인 유엔주재 미 대표부에서 20분 정도 합의내용을 브리핑했다. 모처럼 밝은 표정으로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들어선 찰스 카트먼 미 한반도평화회담특사와 金桂寬 북한 외무성 부상은 공동보도문 발표 뒤 간략한 질문답변 절차를 가졌다. 다음은 회견내용. ▒경제제재 해제의 방법과 정도는. 카트먼 농업 분야에서 공동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것을 논의했다.북한이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기 때문에 감자생산에 미국이 참여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협의했다. ▒금창리가 핵과는 무관한 시설이라고 했는데 현재 그곳에서 진행되는 일은. 金桂寬 말한 대로 핵과 무관하다.물론 이것은 군사보안상 민감한 대상인 것은 사실이다. ▒협상 결과에 만족하나. 우리가 바라는 회담 결과는 공동보도문에 있다.회담 결과에 만족한다. (이후 金桂寬은 귀국을 이유로 자리를 뜨고 카트먼이 몇가지 질문에 더 답함)▒‘만족할 만한 방문’이란. 두세가지요소가 있다.첫째는 횟수를 필요한 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이며 둘째 추후 사용목적이 명백해질 때까지 방문할 수 있고 셋째 우리가 확신할 정도로 현장시설 모두를 자유롭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미칠 영향은. KEDO 관계국 모두가 금창리에 의혹을 갖고 있었던 만큼 이번 합의가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내 실질적 효과를 낼 것으로 믿는다. ▒금창리 외에 또 다른 시설이 있다면 협상이 또 필요한가. 이번 합의가 그런 의혹 해결에 보장을 제공할 것으로 믿는다. ▒경제제재 해제의 구체적 내용은. 제재해제에 대해 우리는 구체적 내용을 제시해왔다.미사일 프로그램을 폐기한다든가 또는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분명한 조치를 시작한다는 것이다.이 가운데 하나라도 이행된다면 우리는 상응하는 제재를 해제하거나 완화할 것이다. ▒북한이 허용한 방문횟수는. 방문시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들이 있다. 방문단의 적정 규모를 비롯해 무엇을 논의할 것인지에 북측과 합의가 있었다.
  • [외언내언]가짜 반성문

    지난 11일자 신문에 난 흐뭇한 기사 하나가 독자들의 눈길을 끌었다.서울대 총학생회가 지난달 26일 졸업식에 참석한 金鍾泌총리의 경호차량 유리창을깬 학생들을 대신해서 사과문과 함께 배상금 30만원을 보내왔으며,총리실은‘사과만으로 충분하다’며 돈은 돌려보내라고 지시했다는 것. 金총리가 학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굳이 졸업식에 참석한다는 보도를 보면서 많은 국민들은 92년 한국외대 교정에서 일어났던 鄭元植총리의 ‘밀가루세례’사건을 떠올리며 불상사를 우려했다.그러나 金총리의 서울대 졸업식참석은 작은 충돌이 있었을 뿐 비교적 무사히 끝나,국민들은 안도의 한숨을내쉬었다.더구나 서울대 총학생회의 뒷마무리는 얼마나 깨끗한가! 그러나 이 사과문은 관악경찰서 학원담당반장 李모경장이 허위로 작성한 ‘가짜 반성문’임이 밝혀져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李경장은 서울경찰청 등 상부에서 학생들로부터 반성문을 받아오라고 계속 지시하는 바람에 고민을 하다가 ‘가짜 반성문’을 쓰고 총학생회 사무국장 南모학생의 도장을 파서 찍은 뒤총리비서실과 서울경찰청에 제출했다는 것. 반성문과 배상금 독촉과 관련해서는 경찰과 총리비서실의 주장이 엇갈린다. 관악경찰서는 서울경찰청으로부터 “차량파손 주동학생을 밝혀내고 책임소재를 규명하라는 총리실 요구가 있었다”는 지시를 받고,총학생회쪽에 반성문과 배상금 30만원을 요구했으나 학생회쪽이 거부했다는 것이다.그러나 총리비서실은 “경호차량 유리창 파손에 대해 경찰이 학생들을 의법조치하겠다고 해서 ‘변상을 받고 사과받으면 된다’고 얘기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그리고는 “총리가 ‘학생들이 욱하고 한 일을 시비하지 말라’고 지시해서 변상금도 받지 않았다”고 덧붙인다. 어느쪽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으나 “경찰이 가짜 반성문을 만든 것도 문제지만 무리한 지시를 내린 것이 더 큰 문제”라는 金永俊관악서장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 크다.걸핏하면 반성문부터 떠올리는 발상이 문제인 것이다.총리 경호차량의 유리창파손사건은 어떻게 보면 가벼운 문제일 수도 있다.그럼에도 구시대의 관료적 발상이 작은 일을 크게 만들고 만 것이다.그래서 경찰에 당부한다.어차피 경찰 체면을 구긴 마당에 주동자를 찾아내 손봐 주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장윤환 논설고문
  • [제2공화국과 張勉](2)-국토건설사업(下)

    張勉정부의 국토건설사업은 국토개발이라는 고유목적 외에도 공공사업을 통한 고용증대,산업활성화,국가 인재충원제도 확립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경제적,제도적 파급효과를 거두었다. 국토건설사업본부(이하 본부)는 중앙청 서남쪽의 목조 2층 건물에 자리잡았다.민(民)과 관(官)이 함께 참여한 이질적인 집단이지만 당대 엘리트를 모은 데다 대우도 좋아 본부는 활기차게 돌아갔다.본부 간사이던 朴敬洙씨(69·작가)는 “월간 ‘사상계’에서 받은 봉급이 일반직장인보다 훨씬 많았는데본부는 그 두배 정도를 주었다”고 회고했다. 본부가 처음 한 일은 국토개발사업을 현장에서 지휘·감독할 일꾼을 뽑는 것이었다.국무원사무처(총무처 격)는 ‘병역을 마친 30세 미만의 대학졸업자’를 대상으로 국토건설추진요원(이하 건설요원)을 공개 모집했다.석달 동안건설현장에서 근무하고 나면 국가공무원 4∼5급이나 지방공무원 3∼4급으로임용한다는 조건이었다.말하자면 공무원을 공채로 뽑은 것인데 이는 해방 후 처음 있는 일이다. 모집공고가 나자 대졸자 ‘1만수천명’(당시 鄭憲柱국무원사무처장 증언)이지원했다.그 무렵 전국에 대학이 63군데,대학생 정원이 9만7,819명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였다.합격자는 사무직 1,614명,기술직 452명 등 모두 2,066명이었다.여성도 21명 포함됐다. 건설요원들은 61년 1월9일부터 교육을 받았다.교육장에는 종교인 咸錫憲과朴鍾鴻 서울대 교수 등 당대의 지성들이 나와 그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었다.이들은 2월27일 중앙청광장에서 수료식을 가진 데 이어 각 군(郡)에 15∼17명씩 배치돼 3월1일부터 현장근무에 들어갔다. 국토건설사업은 전국 각지에서 커다란 성과를 불러왔다.건설현장에는 배고픈 국민들이 새벽 5시쯤부터 몰려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늘어섰다.하루 일을 끝내면 이들은 품삯으로 돈과,쌀·보리·비누·광목 같은 물건을 섞어 받고 만족한 표정으로 귀가했다.품삯에 현물(現物)이 포함된 까닭은 미국의 잉여농산물이 이 사업의 주요 재원이기 때문이다. 장면정부는 잉여농산물을 품삯으로 지급하면서도 다른 산업에 미치는 효과를 계산했다.쌀·보리는 정미소에서 찧었고 면화는 방직공장에 보내 광목으로가공했다.유지(乳脂)는 비누로 만들었다.따라서 건설현장에 나온 국민은 구하기 힘든 생필품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정미소나 방직공장·비누공장 등은 가동률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그만큼 장면정부의 경제정책은 정교했다고평가해줄 만하다. 국토건설사업은 차근차근 실적을 쌓아나갔다.일부 지역에서 잡음이 없었던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됐다.3월30일 농림부는 25일까지의실적을 공개했다.2만6,089정보에 조림(造林)을 해 계획의 50%를 달성했으며,산·바닷가의 흙·모래가 무너져내리는 것을 막고자 나무를 심거나 돌을 쌓는 사방(砂防)사업도 목표의 51%인 2만8,958정보를 끝마쳤다. 국토건설사업은 이같은 업적말고도 공무원 공채의 초석이 됐다는 점에서 큰의미를 갖는다.당시는 공개 채용 없이 기관장이 발탁해 쓰면 시일이 지남에따라 자동 승진하는 구조였다. 정헌주옹(84)은 “건설요원 선발 이후 공무원사회에 공채제도가 자리잡았다“면서 그 뒤 일반기업체에도 퍼져 나갔다고 회고했다.또 “공채가 공고되자 61년 들어 대학가에서 시위횟수가 크게 주는 등 사회안정에도 큰몫을 했다”고 강조했다. 첫 공무원 공채는 학계에서도 높이 평가받는다.이는 당시 재무부 예산국장이었고 그 뒤 숭전대총장·부총리를 역임한 李漢彬의 논저 ‘사회변동과 행정’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전부총리는 건설요원 채용이 “관료제에 새로운 사회세력,특히 젊은이들을 흡수하는 기본적인 통로로서 활용됐으며 이 젊은이들은 점진적으로 승진해 관료제 전반에 걸쳐 눈에 띄는 활력을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공무원 공채 1기’는 5·16쿠데타 후에도 지위를 보장받았으며 우리 사회 정·관계,경제계를 주도하는 인물로 성장했다.鄭寅用전부총리,金泰鎬국회의원(내무장관 역임),崔同燮전건설부장관,金昌甲전교통부차관,朴進球울주군수들이 ‘1기 출신’이다. 그러나 장면정부의 국토건설사업은 5·16쿠데타로 정권을 빼앗기는 바람에끝을 맺지 못했다.사업을 이어받은 쿠데타세력은 61년 말 “연인원 2,500만명을 고용해 계획의 94%를 완수했다”고 공식발표했다.장면정부의 공을 가로챈 것이다. 그 과정은 安京模전교통장관(82)의 증언에서 분명해진다.안옹은 본부 기술부 차장으로 일하다 5·16세력에게 불려가 국토건설사업 계획을 브리핑했다.이후 같은 업무를 계속하다 64년 교통부장관,67년 수자원개발공사사장으로 발탁돼 소양강댐 충주댐 안동댐 대청댐 등을 직접 건설했다. 60년대 국토개발의 주역인 안옹은 “장면정부도 국토건설사업을 완수할 수있었다”고 단언하고 그 근거로▒정부 의지가 굳건했고▒미국이 적극 지원했으며▒사업에 참여한 관료들이 능력을 갖추었음을 들었다.그는 쿠데타세력이 국토개발에 성공한 것도 장면정부의 사업계획을 그대로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張勉총리의 생애▒1899년 8월28일=인천세관에 근무하는 張箕彬과 黃누시아 사이에 장남으로출생.본관 玉山,호는 雲石▒1906년=인천성당 소속 박문학교 입학▒14년=수원농림학교 입학▒16년 5월20일=金商集의 딸 金玉允과 결혼▒17년=수원농림 졸,서울 중앙기독청년학관 영어학과 입학▒20년=청년학관 수석 졸업,도미▒21년=뉴욕 맨해튼가톨릭대 입학▒25년=맨해튼대 졸업(교육학),한국천주교청년회 대표로 로마에서 열린 ‘한국 79위 시복식’에 참석 후 8월 귀국▒29년=천주교 평양교구에서 교회 일에 전념▒31년=동성상업학교 교사 시작▒36년=동성 교장으로 취임(광복 때까지 근무)▒46년=민주의원·입법의원으로 피선▒48년=서울 종로 을구에서 제헌의원 당선,9월 파리에서 열린 제3차 UN총회에 한국수석대표로 참석,12월 맨해튼대에서 명예법학박사 받음▒49년=초대 주미대사 부임▒50년=6·25 발발하자 유엔군 파병에 큰몫▒51년=2월에 제2대 국무총리 취임,11월 제6차 UN총회 한국수석대표▒52년=총리 사임▒55년=申翼熙 趙炳玉 등과 함께 민주당 창당,최고위원 피선▒56년=민주당 후보로 부통령 당선.9월에 피격,경상▒59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 피선,▒60년 3월15일=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낙선▒4월22일=李承晩 규탄하며 제4대 부통령직 사임▒7월29일=서울 용산 갑구에서 국회의원 당선▒8월19일=국무총리 인준▒8월23일=1차 조각 마치고 내각 출범▒61년 3월1일=국토건설사업 기공▒5월16일=쿠데타로 정권 빼앗김▒이후=신앙생활 몰두하다 66년 6월4일 서거,국민장으로 포천 가톨릭묘지에 안장됨■張勉은 누구인가 한국 현대사에서 張勉이 갖는 위치는 독특하다.그는 4월혁명의 결과로 태어난 제2공화국의 총리였다.尹潽善대통령이 있었지만 내각책임제였기에 제2공화국을 장면정부라고 부른다. 장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훌륭한 인격자요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그러나 “무능하고 나약했다”는 평도 따른다.이는 5·16세력이 조작해 전파한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장면은 어떤 사람인가.장면은 부모 양쪽 다 가톨릭 신앙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다.세례명 요안인 그는 인천성당 소속인 박문학교에서 정식 교육을 받기 시작해 이후 해방 전까지 신앙인·교육자로서 충실한 삶을 산다[연표 참조].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의 면모는 5·16이 나자 피신처로 선택한 곳이 수녀원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그만큼 그의 신앙심은 남다른 측면이 있다. 정치인으로서의 장면은 철저한 민주주의 신봉자였고 온건하고 합리적인 길을 택했다.따라서 그가 이끈 민주당 신파 출신 중에는 기나긴 朴正熙시대에도뜻을 굽히지 않고 민주화투쟁에 앞장선 이들이 유난히 많다.金大中대통령을비롯해 金相敦 鄭一亨 鄭憲柱 金判述 金應柱 吳洪錫 등이 그들이다. 해방 후 장면은 미 군정하의 민주의원으로 정계에 투신한다.건국 직후 열린UN총회에 한국수석대표로 참석,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라는 법통(法統)을 인정받은 것과 초대 주미대사를 지내면서 6·25때 UN군 파병에 큰몫을 한 것은 그를 전국적인 지도자로 부상케 했다.그 결과 제2대 총리로 취임하지만 이제는 정치적으로 너무 성장한 그를 李承晩이 견제하는 바람에 1년여 만에 총리직을 사퇴한다. 그후 야당지도자로 변신해 55년 창당한 민주당의 최고위 지도자 중 한사람이 됐고 56년에는 부통령에 당선됐다.부통령 시절인 1956년 9월28일 장면은 명동 시공관에서 암살범의 저격에 왼손을 맞았다.그런데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주위사람들을 안심시키려고 애썼다.민주당 최고위원인朴順天은 훗날 회고록에서 “그때 지켜본 장박사의 모습은 태연자약했고 너무도 의연했다”면서 거인다운 풍모를 소개했다. 4·19혁명 후 제2공화국을 맡은 장면은 8개월23일 만에 쿠데타를 만나 정권을 빼앗긴다.교과서에 나오는,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던 그의 꿈은 좌절되고 그는 “국민 앞에 저지른 잘못을 속죄의 심정으로 사과할 뿐”(회고록 표현)이라며 신앙생활에 몰두하다 66년 6월4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서 서거한다.李容遠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한하운 문화 빨치산사건(3회)

    이 무슨 야바우인가.당국이 본격 수사에 착수하겠다던 바로 이튿날인 1953년 11월21일,이성주(李成株)내무부 치안국장은 한하운이 좌익이 아니라고 언명한다.그 사흘 뒤(11.24) 치안국은 한하운사건 조사경위를 밝혔는데 당시거의 모든 신문들이 그 발표요지를 기사화했으나 ‘서울신문’은 침묵하고있다.두 간부의 사직사유가 관계당국에 의하여 부당했음이 밝혀진 찰나였던지라 차마 그 기사를 다룰 수 없었을 것이다. 비교적 냉정했던 ‘동아일보’(53.11.25)는 수사발표를 두가지로 요약 정리해준다.그 첫째는 한하운의 가공인물론으로 이 점은 의심의 여지없이 ‘한하운 시초’를 낸 장본인으로 밝혀졌다고 해명하며,참고로 본명이 한태영(韓泰永)인 그의 간략한 생애와 시 창작의 계기를 밝힌다.두번째는 수사의 초점이 바로 시 ‘데모’에 모아졌음을 밝힌다.원작에 있던 ‘물구비 제일 앞서 핏빛 깃발이 간다/뒤에 뒤를 줄대어/목쉰 조선사람들이 간다.’는 연과 4련 둘째줄에 ‘쌀을 달라! 자유를 달라!는’이란 구절이 말썽이었다.특히 ‘핏빛깃발’은 바로‘적기가’를 연상하는 대목으로 수사의 초점일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이 대목에서 한하운은 자신의 원작엔 그런 구절이 없었는데 편자(이병철)가 임의로 고친 것이라 발뺌했다고 전한다.수사당국은 이 시인의 진술을 믿지도 부인하지도 않은 채 계속 조사하겠다고만 밝혔으나 이제 한하운이 가고 없는 터라 그 진위는 가릴 길이 없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데모’의 원작이 이미 1949년 월간 ‘신천지’에 실렸었고 그게 다시 첫 시집 ‘한하운 시초’에 게재되었으며,그로부터 4년 뒤에 재판이 나왔다는 사실이다.아무리 자신의 작품에 무관심했다 해도 만약 그게원작이 아니었다면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었을 터이다. 다만 이 문제의 시 한편이 매카시즘의 세례를 받은 뒤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그는 1955년 시인 박거영이 경영하던 인간사에서 두번째 시집 ‘보리피리’를 낸 이듬해 6월15일 역시 같은 출판사에서 ‘한하운 시전집’을 냈는데 여기서 시 ‘데모’는 원작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즉 위의 원작에 있던 구절을 삭제해버린 한편 끝 구절 ‘문둥이는 서서 울고 데모는 가고’를 ‘지나가고’로 고친다.이어 맨끝에다‘아 문둥이는 죽고 싶어라’를 첨부했는데 이 구절이야말로 당시 그가 겪었던 설움을 한마디로 토해낸 아픔의 부피를 전해준다.이것만으로도 그는‘자유대한’에서 살아가는 데 부족함을 느꼈던지 시 말미에다 ‘註 ooo(1946.3.13일 함흥학생사건에 바치는 노래)’라고 조심스럽게 사족을 달고 있다. 그렇다고 한하운의 불안의식이 사라질 수 있었을까.1960년 8월15일 신흥출판사 간행 자작시 해설 ‘황토길’에서 그는 ‘데모’의 배경이었던 함흥 시절을 조목조목 풀이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여기서는 매카시즘의 눈치를 살피는 분위기가 느껴진다.이후 시집부터 시 뒤에 붙었던 [주]항목이 부제로 승진하여 앞머리를 장식하게 된 것이다. 시 ‘데모’는 원상복구가 필요하다.그래서 한하운의 문둥이의 서러움이 단순한 그 자신만의 아픔이 아니라 모든 나환자의 고통임을,아니 문둥이처럼버림받은 국민대중의 아픔임을 밝혀주는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그를‘빨갱이’로 몰아세웠던 언론은 관계당국의 수사발표 뒤 어떻게 했을까.‘평화신문’은 한하운이 방문하여 ‘병신인 나를 더 괴롭게 하는 의도를 알고 싶다고 전제하며’ 그 자신이 이병철로부터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고 말했다고 쓰면서도 시종 이런 변명이 자기가 쓰고도 월북하고 없는 이병철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닌가를 조사중이라고 꼬리를 잡고 늘어졌다.바로한하운으로 하여금 ‘데모’의 원작을 훼손시키게 한 요인이다.누군들 1953년 휴전 직후의 매카시즘 체제 아래서 이보다 더 말끔한 양심을 유지할 수있었을까.양심의 문둥이들이 육체의 문둥이에게 내린 린치에 다름아니었다.任軒永 문학평론가
  • 두산경월, 조선대 울리고 4강 진출

    현역 최고참 백상서(두산경월)가 개인 통산 최다골을 터뜨렸다. 두산경월은 7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벌어진 98∼99아디다스코리아컵 핸드볼큰잔치 남자부 B조예선 조선대와의 경기에서 백상서가 혼자 11골을 따낸데 힘입어 39-32로 이겨 4강에 올랐다. 지난 89년 부터 시작된 큰잔치 원년멤버인 백상서는 통산 519골을 터뜨려이호연(전 대구시청)이 갖고 있던 남녀개인 최다골(512골)을 경신했다. 여자부에서는 2연패를 노리는 대구시청이 국가대표 오순열의 골세례(12골)에 힘입어 상명대를 28-25로 제압,3승1무를 마크했다.지난 대회 준우승팀 제일생명도 이상은 곽혜정(이상 8골) 김향옥(7골) 트리오를 앞세워 한체대를 39-28로 물리쳤다.이로써 여자부 4강은 대구시청 제일화재 제일생명 한체대로 확정됐다.김민수
  • 제일생명 초당대에 최다 골세례

    제일생명이 9년만에 한경기 최다골을 뿜어냈고 허영숙(제일화재)은 한경기 개인 최다골 타이기록을 세웠다. 지난 대회 준우승팀 제일생명은 5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벌어진 98∼99아디 다스코리아컵 핸드볼큰잔치 여자부 풀리그에서 국가대표 주포 이상은이 혼자 11골을 터뜨리는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초당대를 45-27로 대파했다. 제일생명이 기록한 45골은 큰잔치 원년인 89년 광주시청이 인천시청을 상대 로 세운 여자부 한경기 팀 최다골(36골)을 9년만에 갈아치운 것이다.또 이날 두 팀은 72골을 폭죽처럼 터져 역시 한경기 최다인 광주시청-인천시청전의 63골도 경신했다. 이로써 제일생명은 2승1패를 기록,4강이 겨루는 본선리그 진출이 유력해졌 고 초당대는 3패째를 당해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제일생명은 초반부터 국가대표 쌍포인 이상은·곽혜정(7골)의 릴레이포가 작 열하고 한선희(6골)가 뒤를 받쳐 이정영(9골)이 분투한 초당대를 시종일관 압도했다. 우승후보끼리 격돌한 대구시청과 제일화재의 경기는 31-3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그러나 두 팀은모두 2승1무로 본선행 티켓을 사실상 움켜쥐었다.해 체팀 동성제약에서 이적한 허영순은 전반 6골,후반 11골 등 모두 17골을 폭 발시켜 지난해 1월9일 유진숙(종근당)이 청주시청을 상대로 수립한 한경기 개인 최다골과 타이를 이뤘다. 한체대는 국가대표 김향기(9골)와 김진순(7골)을 앞세워 김지은(6골)·박신 영(5골)이 버틴 상명대를 30-24로 꺾고 2패뒤 귀중한 1승을 챙겨 기사회생했 다. 김민수 kimms@ [김민수 kim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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