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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닥 드러낸 댐 상류… 흉물스런 모습만

    ◎“의혹 투성이” 평화의 댐… 그 시말 재점검/파헤쳐진 원시림… 쓰던장비 녹슨채로/“이게무슨댐” 찾아온 관광객 분노·허탈 ▷현장르포◁ 「평화의 댐」은 이날따라 유난히 적막감이 감돌았다.착공 7년만에 심판대에 오른 「평화의 댐」을 찾은 16일 하오 이날도 평소처럼 1백여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흉물스런 모습의 댐을 지켜볼 뿐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에서 도로변 절개지로부터 돌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험난한 길을 따라 해발 1천m 가까운 높은 산 몇 개를 지루하게 넘어 차량으로 1시간여 동안 달리다보면 화천군 화천읍 풍산 2리 세칭 애막골에 도착한다. 이 곳이 바로 지난 87년2월부터 88년 5월까지 북한의 수공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가운데 불도저등 각종 중장비를 동원해 산과 산을 가로막는 거대한 평화의 댐을 건설한 현장이다. 북한의 수공의 위협을 막기위해 높이 80m, 길이 4백20m의 「평화의 댐」이 축조됐던 바로 그 장소이다.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평화의 댐은 온데간데 없고 윈시림으로 우거진 산을 함부로 파헤쳐 놓은 황무지 벌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지금쯤이면 어느새 높이 80m,길이 1천1백m의 웅장한 댐과 절경을 이룰 호수는 5공 최대의 낭비와 불신의 기념비적 공사로 지탄만 받은채 세월의 흐름속에 묻혀 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상류로 4㎞를 거슬러 올라가면 북한이 건설하고 있다는 금강산 댐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평화의 댐 성금의 현장을 확인하고자 찾는 관광객들이 찾아올 뿐 당시의 떠들썩함도 세인들의 관심도 발길도 뚝 끊겨 있다.이 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하나같이 마치 국토를 황폐시키려는 공사라도 한듯 함부로 파헤쳐진 공사현장을 확인하고는 분노만 되새기며 발길을 돌릴 뿐이다. 안보관광 안내소는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평화의 댐 축조 등을 설명해주고 있지만 금강산 댐의 수공위협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 관광객은 전혀 없다. 댐 공사현장에 들어서는 방문객들의 출입신고를 받는 이곳의 한 경비병은 『댐을 밟고도 댐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하는 관광객들이 많다』고 귀뜸해 준다.댐 주변에는 부식된 철근과 부서진 합판 등 각종 공사자재가 어지럽게 쌓여 있다.당시 댐공사로 파헤쳐진 절개지는 짙은 황토색을 드러내고 있고 댐상류는 거의 바닥까지 드러낸 채 평화스럽던 옛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건설공사에 투입됐던 41억원 상당의 불도저·굴삭기 등 각종 중장비는 53대.쌍용과 대림산업이 사용했던 36대의 각종 중장비는 회수해 다른 건설공사에 활용되고 있지만 삼성과 삼환이 쓰던 17대가 아직도 인근에 그대로 버려져 있어 더욱 을씨년스런 분위기다. 「평화의 댐」건설공사가 표류하면서 지난 91년부터 추진돼 왔던 안보관광 사업도 함께 흐지부지됐다.당초 지난해 말로 완공예정이었던 안보전시관 공사는 올 5월말로 완공시일이 늦추어졌다.그러나 전시관 공사도,댐 축조공사 뒷마무리 작업과 조경공사도 중단됐다. 특히 안보전시관은 댐 상류지역에 조성돼 2차공사 추진의사가 없음을 스스로 입증해 주고 있다.그동안의 국민들의 무관심을 입증하듯 안내판과 공사 진척 상황판의 색이 바랜 가운데 먼지만 뿌옇게 쌓인썰렁한 모습만 드러내고 있다. 평화의 댐을 안보관광지로 운영하고 있는 (주)동일관광의 한 안내원은 『관광객은 하루에 1백명 가량으로 황량하기만 한 평화의 댐 건설 현장을 가리켜 낚시조차 할 수 없는 저수지거나 또는 국민 성금모아 자연만 훼손한 3류 관광지라며 크게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광객 김모씨(47·충북 제천시)부부는 『이것이 무슨 댐인가.국민 성금모아 원시림을 마구 파헤쳐 자연만 훼손한 황량한 현장 바로 그것』이라며 『정부는 댐 축조과정의 의혹을 밝혀내고 댐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 주도자·성금사용내역 등에 초점/“정치적 사안”… 진상규명으로 매듭질 듯 ▷특감 방향◁ 감사원이 평화의 댐 건설이라는 정치색 짙은 사안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평화의 댐 건설이 결정되고 추진되던86년말과 87년 당시는 13대 대통령선거를 겨냥한 여야세력이 개헌과 호헌의 양극으로 치닫던 시기다.그리고 평화의 댐 건설은 이러한 정치상황을 어느정도 반영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따라서 그에대한 감사도 실무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이번 감사의 초점은 매우 단순해진다. 그것은 과연 금강산댐의 건설로 인한 북한의 수공위험이 있었느냐하는 것과 누가 평화의 댐 건설을 주도했는가에 집중된다. 감사원은 이와함께 ▲지금까지 성금모금사상 최대액수인 6백52억4천만원의 사용처 ▲정부예산 1천3백여만원의 집행내역 ▲설계및 시공상태 ▲공사중단이유등에 대해서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부분은 거의 다 드러난 사실이다.이미 88년 2월 한차례 감사를 마친바 있다. 감사원은 지금까지의 자료수집및 내사결과 당시 평화의 댐 건설사업은 국가안전기획부가 주도한 것으로 보고있다. 감사원은 당시 평화의 댐 설계를 담당했던 산업기지개발공사가 안기부가 제시한 자료를 근거로 도면을 작성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금강산댐을 폭파하는 등 저수된 물을 한꺼번에 쏟아낼 경우 16시간만에 서울이 50m 깊이의 물속에 빠져들고 수도권 1천5백만명의 시민이 수장될 것이라는등의 당시의 안기부 자료는 상당히 과장된 것이라는 판단을 감사원은 내리고 있다. 감사원은 또 댐의 규모등을 결정하면서도 금강산댐의 담수용량및 지형등 구체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하지않고 안기부의 요구에 따라가는 식으로 일을 처리해왔다는 관계자의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이 부분을 감사하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안기부에 손을 댈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은 건설부와 한전,수자원공사등관계기관에 대한 조사를 거쳐 안기부에 관계자료를 요구하고 필요할 경우 안기부를 방문,현장감사도 벌인다는 방침이다.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이와관련,『관련자료를 요청할 경우 안기부가 비밀을 이유로 거부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김영삼대통령이 이기택민주당대표와의 회동에서도 평화의 댐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다짐한만큼 별다른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안기부장은 장세동씨(구속중)였으며 이학봉제2차장도 정책결정과정에 일부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감사원은 이와함께 86년 11월 평화의 댐 건설방침을 공동발표했던 이기백전국방부장관,이규효전건설부장관,허문도전통일원장관,이웅희전문공부장관(현민자당의원)들로부터도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진술을 들을 예정이다. 그러나 평화의 댐 건설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책임자 처벌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감사가 많은 국민이 의혹을 갖고 있는대로 정치적 이유에서 시작된 사업이란 결론이 나온다하더라도 이를 사법처리할 법적근거는 매우 애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감사는 책임자처벌보다는 진상규명을 위한 감사가 될 전망이다. ◎87년 착공… 1단계 축조뒤 중단/총1천6백억 소요… 국민성금 1백34억 남아/지명경쟁·수의계약 통해 11개사 공사 맡겨 ▷공사 경위◁ 북한의 「금강산 댐」 건설로 인한 수공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긴급 축조된 「평화의 댐」공사는 지난 87년 2월28일 착공됐다. 금강산 댐에서 4㎞ 정도 떨어진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에 1년여만인 88년 5월 높이 80m,길이 4백10m,저수용량 5억9천만t 규모의 1단계 댐이 축조됐다.직경 10m의 배수 터널도 4개가 설치됐고 양구 및 화천과 통하는 2개 노선의 도로(69·9㎞)도 뚫렸다. 건설부 발표에 따르면 수자원공사의 발주로 시작된 1단계 댐 건설비는 총 1천5백95억원으로 각계 각층에서 모아진 성금 6백39억원,국방부 예산 9백56억원으로 집행됐다. 평화의 댐 건설지원 범국민추진위원회가 86년12월∼88년6월 모금한 성금은 원금 6백61억1천3백만원과 은행이자 1백12억4천9백만원을 합쳐 총 7백73억6천2백만원이며 공사비로 쓰고 남은 1백34억6천만원은 현재 상업·부산·강원·경기·전북은행 등 5개 은행에 연 14∼15%의 이자를 받는 특정금전신탁에 예치돼 있다. 건설 당시 해외건설 사업장에서 3년이상 쓴 초대형 불도저와 덤프트럭등 66대를 들여와 사용했고 등록말소된 13대를 제외한 53대 중 36대를 국방부의 자유로 사업에 활용 중이다.나머지 17대는 평화의 댐 현장에 그대로 방치돼 녹슬어가고 있다. 1단계 공사가 끝난 후 5년 동안 그대로 방치된 평화의 댐은 저수능력이 전혀 없다. 당초 설계부터 수공을 막는다는 취지여서 수문이 없을 뿐더러 비가 내려 유수량이 늘어나도 모두 배수 터널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1천6백억원 짜리 거대한 시멘트 벽이 쓸모없이 서 있는 셈이다.관리할 필요도 없지만 형식상 수자원공사 소양강댐 관리사무소가 관리 책임을 맡고 있다. 건설부 관계자는 『당초 북한의 금강산댐 진척 상황에 따라 2단계 댐 추진 여부를 결정키로 했으나 현재 금강산댐 공사가 「미미하다」고만 알려져 있어 2단계 사업 시행여부나 착공 시기등은 전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재인자
  • 「떠오르는 태양」서「사정낙엽」으로/「6공 황태자」박철언의원의 성쇠

    ◎인사·북방정책·합당과정 “실세중 실세”/“권력지향… 노 정권 망쳤다” 비난 받기도 박철언의원이 2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사와 마주 앉았다.단지 조사를 받는다는 차원을 넘어 사법처리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검찰 고위직 인사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몇년 전을 생각하면 그로서는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6공초·중반 정확히 3당합당직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권력의 황태자」였다.주변의 모 인사는 「떠오르는 태양」이라고까지 치켜세웠다.정상급 인사들까지 그의 눈치를 살폈고 권력지향의 사람들은 그에게 줄을 대려고 애를 썼다.노태우전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그는 주요 인사와 정책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그의 힘은 말 그대로 「무소불위」였다. 힘이 지나치면 부작용도 클 수 밖에 없다.그는 권력핵심부에서 독주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었다.가까울 수 밖에 없었던 인사들도 어느 순간 그에게 등을 돌렸다.그는 자신의 몰락에 대해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그를 아는 상당수 사람들은 「자업자득」「사필귀정」이라고 평가했다.방자하다고까지 비친 독선적 행동이 부른 당연한 결과라는 시각이다.한 여권인사는 그가 철저하게 권력지향적이었고 지나치게 권력을 즐겼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80년 국보위 법사위원으로 차출되면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서울지검 평검사로 재직하던 시절이었다.당시 국보위에 참여한 검사는 불과 3명 뿐이었다.발탁의 배경에는 노전대통령의 처고종사촌이라는 관계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5공이 출범하면서 그는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들어갔고 얼마후 법무비서관을 맡았다.당시 정치풍토쇄신법·학원안정법등 권력기반 강화를 위한 법안을 구상하는데 이론적 기초를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후 장세동 전청와대경호실장이 안기부장에 임명되면서 전두환전대통령에게 특별히 요청,그는 안기부장특보로 자리를 옮겼다.5공 핵심부의 두터운 신임에 따른 결과였다.검찰에도 적을 두고 있던 그는 얼마후 검사장급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했다.그는 사시 8회 출신으로 동기들은 아직 한사람도 검사장에 오르지 못했다.안기부에 재직하면서 그는 권력의 주요정보를 당시 민정당대표이던 노전대통령에게 전해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그는 87년 대선 당시 월계수회를 구성,노전대통령의 당선에 큰 기여를 했고 노전대통령의 핵심참모로서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6공출범과 함께 청와대정책보좌관을 맡은 그는 노전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속에 국정전반을 주도했다.13대 전국구 의원을 겸직한 그는 89년에는 정무제1장관에 취임,당정업무 전반을 장악했다.그는 각종 인사에 관여했고 특히 서열을 중시한 검찰등 권력기관의 인사에 깊이 개입,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13대 공천에서의 5공인사 대거 탈락,뒤이은 5공청산,정호용의원파동에 막후역할을 한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그는 전전대통령이 말한 『손좀 봐야 할 사람』가운데 첫 손가락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는 3당통합 직후까지도 막강한 위치에 있었다.이른바 「신TK」의 중심으로 한때 그의 주변에는 30∼40여명의 의원들이 모였다.차기대권후보로 까지 거론되기도 했다.그의 정치적 야망은 노전대통령이 사조직인월계수회를 관리하라고 지시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민자당대표이던 김영삼대통령과의 대립은 그의 정치적 위상을 급전직하시켰다.그는 90년 3월 김대통령의 구소련행을 수행하고 귀국,『내 한마디면 정치생명을 끊을 수도 있다』고 말해 김대통령과의 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었다.그 여파로 그는 정무장관에서 물러나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91년 4월에는 월계수회에서도 손을 떼야만 했다.이후 민자당 대권경선에서 반YS노선을 걸으며 재기를 노렸지만 실패를 거듭하다 지난해 10월 민자당을 탈당,국민당에 입당했다.6공후반 그는 노대통령으로부터도 따돌림을 받는 처지가 됐다.아직도 민자당의 많은 민정계 의원들과 6공시절의 각료들은 『노대통령의 초반은 박철언씨가 망쳤다』고 비난하고 있다.
  • 정호용·박희도씨 등 19명/12·12사태관련 추가 고발(조약돌)

    ○…지난 12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12·12사태」의 책임자로 지목,내란죄혐의로 대구지검에 고발했던 민주당 성주·칠곡지구당위원장 도호기씨(33)가 15일 당시 50사단장이었던 정호용의원등 19명을 반란죄(내란·살인)로 대구지검에 추가 고발했다. 대구지검은 사건을 공안부 김원윤검사에게 배당했으나 법무부의 사건일괄처리방침에 따라 서울지검으로 이송할 것으로 알려졌다. 고발된 사람들의 이름과 당시 직책은 다음과 같다. ▲정호용 ▲박희도(1공수여단장) ▲최세창(3공수여단장) ▲이필섭(9사단 29연대장) ▲안병호(9사단작전참모) ▲유학성(군수차관보)▲차규헌(수도군단장) ▲황영시(1군단장) ▲박준병(20사단장) ▲백운택(71방위사단장) ▲장기오(5공수여단장) ▲장세동(30경비단장) ▲김진영(33경비단장) ▲이학봉(보안사 대공처장) ▲허삼수(보안사 인사처장) ▲우경윤(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함환옥(육군본부헌병감실 기획과장) ▲최석립(33헌병대장) ▲이종민(육군본부 헌병대장)
  • 광주진압 군지휘관 16명이 하나회장교/민주,진상조사 촉구

    민주당의 광주특위(위원장 김원기최고위원)는 15일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자체 진상규명을 위해 특위내 진상조사소위를 재가동하고 「광주진압 핵심지휘자중 16명이 하나회 장교」라는등 6개항의 주장에 대한 정부측의 해명을 요구했다. 특위는 또 자체조사 결과,▲광주진압 핵심지휘자중 16명이 하나회 장교출신이며 ▲현 김동진 육참총장도 광주진압 당시 투입된 부대의 연대장이었고 정부의 각종 문서에 아직도 「내란」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주장하고 정부측에 이에 대한 해명과 시정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공개한 하나회출신 장교16명의 명단은 ▲전두환 보안사령관(11기) ▲노태우 수경사령관(11기) ▲정호용 특전사령관(11기) ▲박준병 20사단장(12기) ▲장세동 특전사 작전참모(16기) ▲이학봉 보안사대공처장(18기) ▲신우식 7공수여단장(15기)▲최웅 11공수여단장(12기) ▲최세창 3공수여단장(13기) ▲함덕선 20사단작전참모(20기) ▲김완배 3공수12대대장(22기) ▲박종규 3공수15대대장(23기) ▲길영철 20사단60연대3대대장(23기) ▲강영욱 20사단61연대4대대장(24기) ▲유효일 20사단62연대3대대장(22기) ▲이종구 계엄사령부 작전처장(14기)
  • 되돌아본 79년 12월12일

    ◎거사일 암호명 「생일집잔치」로 잡아/총리공관 등 3곳에서 동시에 행동/정승화 전 총장 연행과정서 총격전 1979년 12월12일. 이날은 「생일집 잔치」가 벌어진 날이었다. 「생일집잔치」는 쿠데타음모를 꾸민 12·12주동자들이 잡은 거사일의 암호명이었다. 이 「잔치」는 경복궁 30경비단장실·한남동육군참모총장공관·삼청동총리공관등 3곳에서 동시에 벌어졌다. 하오6시 경복궁 장세동경비단장방에는 유학성중장,1군단장 황영시중장,수도군단장 차규헌중장,9사단장 노태우소장,20사단장 박준병소장,71사단장 백운택소장,정동호경호실장대리,고명승상황실장,박희도,최세창,장기오공수여단장,김진영33단장등이 모였다. 같은시간 정승화총장의 직계인 정병주특전사령관 장태완수경사령관 김진기헌병감은 헌병대장 조홍대령의 장군진급축하연인 연희동 축하 술자리에 초대되어 발이 묶여 있었다. 또 같은시간 한남동 정총장공관에는 전두환합수부장으로부터 『정중히 모셔오라』는 지시를 받고 허삼수대령과 우경윤대령이 정총장을 연행하러 갔다. 정총장은처남의 장군진급축하연에 가기위해 부인과 함께 사복차림으로 외출하려던 길에 허대령과 우대령의 연행팀과 부딪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총장 경비병력과 연행팀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지고 우대령이 총상을 입자 허대령이 권총을 빼들고 정총장을 연행했다.정총장의 연행이 끝난시간이 7시30분쯤. 7시55분 장사령관의 명령으로 경장갑차 1대와 헌병특공대 1개소대 규모의 특공대가 정총장을 구출하러 총장공관에 파견되고 8시7분 헌병1개소대,전차1대,경장갑차 1대,사이드카 2대,앰뷸런스 1대,트럭 1대의 특공대가 2차로 파견됐다. 정총장의 강제연행소식을 들은 정특전사령관과 장태완수경사령관 이건영3군사령관은 부대로 들어와 병력출동을 지시했으나 사령부내의 핵심부대와 참모들은 이미 경복궁에 가 있거나 쿠데타군의 편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하소곤작전참모부장과 정특전사령관은 휘하여단의 장병에게 총상을 입고 부상을 당한채 체포됐다. 국방부장관실에는 노재현장관,김용휴차관,김종환합참의장,유병현대장등 10여명의 장성과 30여명의 경호헌병이있었으나 공수특전단의 총격으로 13일 상오1시30분 점령됐다. 12·12사태는 군의 지휘체계가 교란되었을때 군의 비상통수기능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무력화 될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 단일통화 유지 “발등의 불”/CIS 정상회담 긴급소집 배경

    ◎키르기스공 자체통화 도입 대응책 모색 독립국연합(CIS)긴급정상회담이 당초 예정보다 2주 앞당겨진 14일 모스크바에서 개최된다.회담이 긴급소집된 이유는 지난 10일 키르기스공화국이 자체 통화인 「솜」을 도입하며 루블권으로부터의 탈퇴를 전격선언했기 때문.이로 인해 지금까지 루블화로 해온 CIS국간 결제방식에 심각한 균열이 불가피해졌고 이의 대응방안 마련 역시 시급해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의 주의제는 회원국간 공동결제방식등 경제협력방안과 함께 전반적인 CIS강화방안에 대한 토의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각국 전문가들로 구성된 회담준비실무위는 12일 1차회담을 갖고 루블화를 단일결제수단으로 계속 사용하기 위한 서유럽식의 통화동맹 창설안을 집중토의했다. 러시아측이 제안한 이 안은 궁극적으로 CIS내 단일경제공간 창설을 목표로 관세동맹,단일 세제도입,단일 대외경제정책 수립등을 골자로 하는 경제동맹체 구상을 담고 있다.각국의 이해가 엇갈려 있기는 하지만 단일결제방안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어느 정도 마련돼 있기 때문에 각국간 조정·협의위원회 설치까지는 이번 회담에서 합의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키르기스의 자체통화 도입으로 현재 구소련에서 루블화사용을 금지하고 자체통화만 통용시키는 나라는 에스토니아와 함께 2개국으로 늘어났다.그리고 우크라이나,리투아니아,라트비아 3국은 루블사용전면금지 직전에 와있고 벨로루스,몰도바,아제르바이잔 등 3개국은 두 화폐 병용,우즈베크,투르크멘,그루지아,아르메니아는 자체통화를 만들어 놓고서도 통용시키지 않고 루블화를 공식화폐로 사용하고 있다.러시아 외에 루블화만 통용시키는 나라는 카자흐,타지크,두 나라뿐이다. 키르기스의 자체통화 도입은 루블화를 공식화폐로 통용시키는 이 지역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카자흐는 12일 대통령포고령을 발표,출입국자들의 루블소지 한도를 10만 루블 이하로 정했고 우즈베크는 「화폐유통규제와 소비시장보호에 관한 포고령」을 통해 자체통화를 도입한 모든 국가와의 거래는 우즈베크중앙은행에 상응하는 예탁금을 요구키로 했다. 루블화와 자체통화를 병행하거나 자체통화를 갖지 않은 나라들은 러시아와의 경제관계가 긴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다.따라서 이들은 러시아가 제의하는 소위 화폐동맹 등의 구성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다.반면 정치는 물론 경제분야에서도 러시아의 주도권 행사를 원치 않는 우크라이나 등의 태도가 회담의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창당방해 부인/장세동씨 첫 공판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일명 용팔이사건)을 배후조종한 혐의로 지난달 17일 구속기소된 장세동전안기부장(57)과 이택돈전의원(58)에 대한 첫 공판이 26일 하오2시 서울지법 남부지원 형사합의1부(재판장 김영기부장판사)심리로 열렸다. 이날 1시간30분에 걸친 검찰측 심리에서 장전안기부장은 『통일민주당 창당선언이 발표된 직후인 87년 4월10일경부터 4월23일경까지 안기부 안가에서 두 이전의원을 3∼4차례 만난 것은 사실이나 시국향방이나 국가발전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오갔을뿐 창당방해를 공모한 사실은 없다』고 진술했다.
  • 인 여객기 추락 최소 94명 사망

    【뉴델리 AFP AP 연합】 승객 1백12명과 승무원 6명을 태운 인도항공 소속 여객기가 26일 인도 서부지역의 아우랑가바드 공항에서 이륙직후 추락,최소한 94명이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항공사측과 현지관리들이 전했다. 이들은 국내선을 운항하는 보잉 737기가 중간 기착지인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두드 공항에서 하오 1시50분(한국시간 하오 5시20분) 이륙한 뒤 7분만에 이 도시에서 7㎞ 떨어진 곳에 추락했으며 지상에 충돌한 후 기체가 세동강나면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현장에서 승무원 전원과 승객 등 모두 19명이 구조됐으나 다른 승객들은 대부분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이승완씨 소환/검찰

    서울지검 남부지청 특수부 조성욱검사는 19일 상오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용팔이사건)과 관련,이승완 전호국청년연합회 총재(53)를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장세동 전안기부장(57·구속)으로부터 사후 신분보장을 약속받았는지등에 대한 보강수사를 벌였다.
  • 명분을 최고의 가치로(한국정신의 원류를 찾는다:9)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캠페인/원한국인의 실천덕목 선비정신/실생활에서는 검약·절제·청렴을 미덕으로/역사의식에서는 춘추철학과 지조를 신봉 지난 대선은 여러모로 한국현대사의 이정표를 제시하였다.우선 「신한국인」이라는 용어를 탄생시켰고 우리사회가 아무리 자본주의화했다지만 돈만으로는 안되는 심리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신한국인」이라는 구호는 우리 모두 구태의연한 남루를 벗어 던지고 새롭게 태어나야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살아온 지난 세월이 결코 자랑스럽지도 떳떳하지도 못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돈아닌 가치관 보여줘 과연 우리민족이 살아온 지난 세월의 자취가 그렇게 초라하고 부끄러워 타기해버려야만 하는 대상일까? 그렇다면 강대국사이에서 민족고유문화를 지키고 오늘날까지 살아 남은 저력과 문화국가로서의 자부심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오히려 현재의 한국인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지나친 자기반성이 부작용을 초래하게 되지 않을까 일말의 걱정이 앞서는 것은 노파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우리 역사상 미증유의 이민족 통치인 일제식민지시대에 잃어버린 민족적 자부심이 아직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지난 몇년사이 매스컴을 통해서 전개된 한국인의 자기반성을 짚어 보는 여러 기획들이 일제치하에서 이광수가 부르짖은 민족개조론의 변형이 되지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에 「신한국인」논의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대재벌의 총수가 막강한 재력과 조직력을 앞세우고 돌풍을 일으키는듯 하더니 막상 선거결과는 예상득표수에 훨씬 못 미치는 15%에 불과하였다.『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외에 무슨 기준이 있느냐』는 말이 교수사회에까지 공공연하게 통하는 현 시점에서 돈으로 승부하려던 재벌총수의 참담한 패배는 현한국인에게 잠재해 있는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의 실마리를 확인하게 한다. 그러므로 신한국인상을 세우기 위해서는 현한국인상의 객관적인 이해·분석이 필요하고 현한국인의 원형이라할 역사속의 원한국인상을 재조명할 필요가 제기된다.흔히 전통을 단절시켰다고 진단되는 일제시대 전시기,다시 말하면 조선후기의 인간형이야말로 원한국인이며 그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재조명하고 그 시대의 시대정신을 밝히는 노력이야말로 한국정신의 원류에 접근하는 첩경이라 생각된다. 조선후기사회는 유교사회였다.유교는 시대에 따라 발전·변화하였는데 송나라 때에 이르러 형이상학적 우주론인 이기론을 성립시켜 성이학의 문호를 개창하였다.조선시대는 바로 이 성리학을 국학으로 수용하고 그 이념을 시대정신화한 시대였다.성리학을 공부하여 체질화시킨 학자들이 선비(사)이며 선비의 복수개념이 사림이다.이들은 수기치인을 기본으로 하여 수기의 단계에서 치열한 학문연마와 인격을 닦고나서 남을 다스리는 치인의 단계로 가는 사대부의 삶을 사는 것이 정석이었다.전자가 사의 단계라면 후자는 대부의 단계이므로 학자관료들이니 조선시대는 바로 학자관료들이 지배층이 된 시대였다.그들이 추구한 정신이 선비정신이라면 그 사회는 그것을 실천하는 장이었다. 선비정신은 의리와 지조를 중요시하는 정신이다.어떻게 인간으로서의 떳떳한 도리인의리를 지키고 그 신념을 흔들림없이 지켜내는 광조를 일이관지하게 간직할 수 있느냐가 최대 관심사였다.인간이 짐승의 무절제한 욕망이라는 차원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위한 방법론으로서의 인성론을 발전시킨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조선전기의 인심도심설이나 후기의 인물성동이론은 인간학에 대한 이론적 심화과정이며 정신적 가치에 대한 인식체계였다. ○조선 지식인들의 상식 인간의 본능과 물질을 최고가치로 인정하는 현대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 조선시대이다.제2차 세계대전후 전세계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체제와 소련을 주도국으로 하는 공산주의체제로 양분되었다고 하지만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물질·물적 기초를 우선가치로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유물주의의 공통점을 내포하고 있다.특히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하고 그에 따른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성장하여 왔던 것이다. 바로 이 물적 기초를 추구하고 그러한 체제의 유지논리인 공리주의나 실용주의에서 도출한 실리주의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삶의 기준이라면 조선후기사회는 명분을 최우 선으로 하는 명분주의 사회였다.어떤 일을 처리할 때 그것이 나나 내가족,내가 속해있는 집단이나 조직에 이득이 되느냐 해로우냐가 현대적 판단기준의 우선척도가 된 것이다.이러한 이해관계기준은 인간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메마른 인간관계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조선시대 사람들의 판단기준은 그 일이 명분에 맞느냐 안맞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그리고 명분을 얻느냐 잃느냐는 그 지식인의 사활이 달린 지식인사회의 상식이었다. ○실리사회 탁류 휩쓸려 그러나 현대적 실리주의 가치관은 조선시대의 가치덕목들을 하나같이 평가절하하였다.명분은 핑계로,의리는 깡패용어로,선비의 기개를 뜻하던 사기는 군대용어로 전락해 버렸다.소비가 미덕이 되고 청빈은 낡아빠진 구시대의 덕목으로 조소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동기나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결과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그 시대 지식인의 사명감과 책임의식으로 대변되는 선비정신은 실제생활에서 검약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고 청렴과청빈을 우선 가치로 삼았다.시류에 영합하는 것을 비루하게 여겼고 역사의식에 있어서는 시시비비의 춘추정신을 신봉하였다.그들은 「청」자를 선호하여 청의,청백이,청요(현)직,청명등의 용어를 즐겨 썼다.이러한 가치관은 지식인사회에만 유효하였던 것이 아니고 사회저변에 확산되어 일반백성들도 「염치없는 놈」이란 말이 최악의 욕으로 인식하였고 예의와 염치는 인간으로서 갖추어야할 기본덕목이 되었던 것이다.또한 상부상조의 평화공존의 성리학적 이념은 개인생활이나 농촌공동체 뿐만 아니라 국가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러한 논리로 편제되어 있던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무력으로 흔들어 놓은 일본이나 여진족의 청을 「오랑캐」라 폄하하였던 것이다.또한 이미 망한 명나라가 임진왜란때 파병한 사실을 「재조지은」이라하여 국가간의 의리도 지켜야한다는 것이 그들의 세계관이었다.그것은 문화가치,특히 유교적 문화질서인 중화문화질서를 지키려는 의지로 표현되었고 조선이 명을 계승하여 그 문화의 정수를 답지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나타났다. ○국민적 자존심 찾을때 19세기 서세동점의 세계질서 재편과정에서 서양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질서를 인정하고 거기에 적극 편입하려는 개화운동이 서양제국주의와 그에 편승한 일본세력을 인정하여 결국 친일파의 양산으로 종결되었다면,중화문화 보존논리인 위정척사운동은 시대의 흐름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일관된 자긍성을 견지하였던 것이다. 조선이 미개하다는 암시를 깔고 있는 개화사상은 일제시대에 확고한 우위성을 확보하였고 광복후에는 서양에의 일방적 경도로 인한 근대화이론과 맞물려 대표적인 근대사상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제 세계가 제국주의적 힘의 논리에 회의를 품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모색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시급한 일은 손상된 국민적 자존심을 회복하여 한국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그것을 토대로 민족문화를 선양하는 것이다. □약력 정옥자 서울대교수·국사학 ▲1942년 강원도 춘천출생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졸업 ▲동 대학원졸업(문학박사)▲현 서울대 교수 ▲저서 「조선후기문화운동사」 「조선후기문학사상사」 「조선후기지성사」 등 다수.
  • 장세동·이택돈씨 기소/창당방해사건 수사 종결/검찰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용팔이사건)을 전면 재수사해온 서울지검 남부지청은 15일 지난달 25일과 지난 9일 각각 구속된 이택돈 전신민당의원(58)과 장세동 전안기부장(57)을 업무방해혐의와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장씨는 87년 4월 4차례에 걸쳐 궁정동 안가에서 이택돈전의원과 이택희 전신민당의원(59)을 만나 통일민주당 창당을 방해키로 의견을 모으고 행동자금 6억원을 제공하는 한편 폭력배동원을 담당한 이승완 전호국청년연합회 총재(53)등에게 신변보장을 약속,이들의 지시를 받은 행동대원들이 폭력을 행사했다』고 기소이유를 밝혔다. 검찰이 이들을 이날 기소함으로써 이사건은 사건발생 5년 11개월여만에 공식 종결됐다.
  • 「용팔이」 김씨 재소환/“배후 모른다” 진술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을 재수사중인 서울지검 남부지청은 12일 이사건의 행동대원「용팔이」김용남씨(43)를 참고인 자격으로 다시불러 보완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이날 김씨가 창당방해 현장에서 안기부원과 접촉했는지와 지난 9일 구속된 장세동 전안기부장으로부터 사후신병보장에 대해 약속이나 언질을 받았는지를 집중추궁했다. 김씨는 이에 대해『장씨나 이택돈전의원과 이택희 전의원이 이사건을 조종했는지를 전혀 몰랐다』면서 『미국으로 달아난 이용구 전신민당총무부국장(60)과 이승완 전호국청년연합회 총재(53)의 부탁으로 1천1백50만원을 받고 일을 했을 뿐 그이상의 배후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진술했다.
  • 안기부 개편에서 보는 「변혁」의 실체(사설)

    안기부 개편은 시대적 요청이다.밖에선 탈냉전의 새 역사가 전개되고 안엔 문민의 새 시대가 도래했는데도 안기부가 여전히 냉전과 권위주의 체제의 너울을 쓰고 있다면 이는 시대역행이요,직무유기다.그런 점에서 안기부가 시대 변화를 반영한 자체 조직및 운영쇄신 방안을 내놓은 것은 시의적절했다고 생각된다.특히 안기부가 기구 개편 작업을 속히 진행시켜 이달중 완료키로 한것은 김영삼대통령의 개혁 의지와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심중을 잘 헤아린 처사라고 본다. 안기부 쇄신계획이 신임 부장의 지휘 아래 안기부에 의해 성안되고 안기부에 의해 추진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의미있게 받아 들인다.만일 안기부 개편안이 여야간의 정치협상 줄다리기 끝에 나왔다거나 여론 공세에 밀린 형국에서 나온 것이었다면 그 내용에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구석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또한 「10·26」이후처럼 국가최고의 정보기관인 안기부의 개편이 다른 기관에 의해 주도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았을 것이다.안기부가 자체 개편작업을 주도한다는 건 안기부에 책임과 자부심을 부여하면서 국민에겐 국익수호를 위한 안기부 본연의 업무가 한시도 차질없이 계속 수행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안기부의 대공활동및 정보수집·분석기능은 국가보위와 국익수호를 위해 절대 필요한 것이다.특히 동서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국제적인 경제·기술전쟁이 가열되면서 안보에서 차지하는 정보기관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이번 개편안에서 안기부가 대북정보및 해외정보 수집활동에 전념키로 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라고 본다. 최근 장세동전안기부장 구속으로 다시 상기된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이 말해주듯이 과거 안기부는 정권안보의 첨병이요,공작정치의 산실이었다.안기부가 이번 개편안에서 정치공작과 정치사찰은 물론 시국사범 수사 기능등을 제도적으로 철폐한 것은 정권안보 기구로서의 과거 청산이요 민주화에의 부응이라고 우리는 평가한다. 안기부의 진정한 개혁은 기구 개편이나 기능 조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의지와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구성원들의 의식개혁이다.무소불위의 월권행위를 일삼았던 과거에 연연하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그렇다고 심리적으로 위축될 이유도 없다고 본다.이제 안기부원들은 권력의 부끄러운 하수인이 아니라 국가를 보위하고 국가의 경쟁력을 키우는 전문가·기능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의식개혁 뿐 아니라 의식전환도 있어야 한다.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은 유연한 사고 구조를 가져야 낡은 냉전의 논리나 선입견의 포로가 안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 용팔이사건 수사 종결/검찰,장세동씨 16일께 기소방침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용팔이사건)을 재수사해온 서울지검 남부지청은 10일 장세동 전안기부장을 이 사건의 배후로 구속수감한데 이어 장씨를 이 사건과 관련,구속된 이택돈 전의원(58)의 구속기간이 만료되는 16일 이전에 기소,수사를 종결하기로 했다. 검찰은 이날 『이 사건은 87년 당시 여야의 첨예한 대립과 강성야당의 출현으로 불안한 정국을 안정시키는데 의견을 같이한 장씨와 이씨등이 일으킨 일이다』고 사건을 규정짓고 『안기부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다면 회유공작을 폭로하는 양심선언이 잇따랐겠지만 그렇지 않았던 점으로 미루어 이 사건에는 장씨이외의 조직이 개입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 「용팔이사건」5년11개월만의 대단원/박희준 사회1부기자(오늘의눈)

    검찰이 9일 장세동전안기부장을 구속함으로써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에 대한 수사는 5년11개월만에 막을 내렸다. 검찰은 장씨라는 배후를 규명해 이번 수사는 목적을 달성했다는 자평을 하면서 내심 흡족해하고 있다. 서울지검 남부지청 관계자들은 이번수사는 「뜻하지 않은 선물」이었으나 예상밖의 성과를 거둬 『남은 것은 끝마무리』라며 수사를 사실상 서둘러 종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5공의 대표적인 정치공작을 그런대로 해결한 검찰의 공을 이 시점에서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없다.하지만 수사재개 시기와 사법처리의 대상선정등 마무리짓는 방식을 두고 검찰측 주장을 액면 그대로 쉽게 받아 들이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검찰은 이택돈전신민당의원등 사건관련자들이 법망을 교묘히 피해다녀 검거에 시간이 걸렸으나 사건 발생이후 수사는 계속돼왔음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그동안 줄곧 안기부개입에 대해서는 하나의 「설」로 일축하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건드리기를 꺼려왔다는 지적이 많았었다. 검찰은 대통령취임식을 하루 앞둔 지난달 24일 「우연히」 잡힌 이택돈씨와 또 소환에 쉽게 응한 이택희전신민당의원이 사건의 배후가 장씨라는 사실을 털어놓아 장씨를 사법처리하게 된 것일뿐이라고 외부의 시각을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검찰수뇌부가 바뀌고 정권이 문민정권으로 탈바꿈하는 미묘한 시점에 철저한 보안속에 수사를 재개해 공작정치 척결에 대한 검찰의 단호한 의지를 스스로 의심하게 하는 우를 범했다. 또한 장씨를 소환 철야조사를 하던 순간까지 사법처리에 신중하던 검찰이 검찰총수의 자리바꿈과 동시에 구속방침을 세워 장씨를 구속한 것은 정치적인 결정에 따라 예정된 길을 간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이밖에 이번 사건 관련자가 이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세간의 추측을 명쾌하게 밝히지 못한 부담감을 안고 있다. 이런 의구심의 선상에서 본다면 이번 수사결과는 뜻밖의 선물이라기보다는 시의적절한 「의도된 선물」으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검찰은 정권교체기에 맞춰 다시한번 특유의 「정치적 본능」을 발휘,이 사건을 매듭지었다는일부의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고 할 수 있다.
  • “문민시대 공작정치 척결” 신호탄/장세동씨 전격구속의 의미

    ◎5공과의 관계부담 불구 “법대로”/총 5억중 4억 내역 규명 미흡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남부지청이 9일 소환·조사를 받아온 장세동 전안기부장을 전격구속한 것은 문민정부시대를 맞아 정보기관의 공작정치를 척결하겠다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이택돈·이택희 전의원이 장씨가 창당방해를 직접 지시하고 활동자금을 제공하는등 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했다고 털어놓자 장씨를 8일 소환했지만 사법처리여부에 대해서는 지극히 신중한 자세를 보여왔다. 검찰은 철야조사를 받은 장씨가 두 이전의원에게 준 돈은 안기부장으로서 정보제공의 대가로 제공한 것이지 정치공작자금은 아니었다고 엇갈린 진술을 하자 사법처리 방침에는 변함이 없으나 사법처리의 수위와 시기를 두고 고심했었다. 남부지청의 고위관계자가 장씨의 구속여부와 관련,『지청단위에서 쉽게 결정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난색을 표명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검찰이 장씨의 사법처리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장씨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과 업무방해로 구속한 것은 공작정치를 더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새정부의 단호한 의지가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검찰이 방향을 「급선회」한 것은 새정부의 의지외에도 장씨가 5공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5공과의 관계등 위험부담이 따르지만 장씨를 법대로 처리함으로써 이 사건을 명쾌하게 파헤치는 것이 현실적으로 낫다는 정치권내의 계산도 섰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사건발생 5년10개월만에 소문만 무성하던 안기부개입설을 사실로 밝혀내는 개가를 올렸다. 게다가 정보교환이라는 미명하에 안기부가 재야는 물론 여권의 정치인등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면서 정보비 명목의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실도 공식확인돼 안기부의 정치공작이 사실임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씨가 두 이전의원을 만난 계기 ▲두 이전의원이 제공받았다고 주장하는 5억원의 정치자금중 지금까지 밝혀진 1억원이외의 4억원의 전달과정과 내역이 밝혀지지 않은 점 ▲관련설이 제기된 이해구내무부장관과박철언국민당의원을 수사대상에서 제외한점등은 석연찮은 점으로 남아 있다. 검찰이 이 사건을 장씨의 단독범행으로 규정,장씨만 구속함으로써 이사건을 마무리짓는다면 그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수사의 폭을 지나치게 좁혀버려 심층수사를 포기했다는 비판에 당면해야 할 것이다. 검찰은 이와 아울러 전직안기부장의 입으로 입증된 안기부의 정보제공에 따른 보상비 지급문제도 적법성여부를 캐내야 한다는 숙제도 풀어야 할 것이다. □창당방해 사건일지 ▲87년4월8일 김영삼·김대중씨 정국타개위해 신한민주당 탈당,통일민주당 창당선언 ▲87년4월20∼24일 통일민주당 지구당창당대회­20일 인천 중남구 지구당(위원장 명화섭)창당시작,전국 47개 지구당창당,인천 동북구 지구당(위원장 유제연)창당대회방화시작,전국 18개 지구당 창당대회 사무실난입 ▲87년4월24일 관악지구당(위원장 김수한)창당대회 방해사건 ▲88년9월21일 사건 배후조종자 이용구전신민당 총무부국장 일본거쳐 미국으로 도주 ▲88년9월23일 행동대원 용팔이 김용남씨(43·당시 38)검거 ▲89년2월11일 이택희씨 검거 ▲89년2월14일 이택희자금지원 자백,구속 ▲89년2월26일∼92년5월12일 관련자 15명 징역10월∼징역2년6월 실형 ▲93년2월25일 이택돈구속 ▲93년3월2일 김용남씨 이택희전의원,이승완씨등 소환조사
  • 장세동 전 안기부장 구속/검찰/통일민주당 창당방해 자금제공

    ◎본인은 부인… 박철언·이해구씨 소환않기로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일명 용팔이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남부지청은 9일 장세동전안기부장(57)을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공범)과 업무방해혐의로 구속했다. 장씨는 통일민주당이 창당을 선언한 87년4월8일을 전후해 이택돈전신민당의원(58)과 이택희전신민당의원(59)을 궁정동 안가에서 4∼5차례 만나 강성야당이 창당되는것을 방해하기로 모의하고 5억원의 자금을 제공해 창당을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장씨가 제공한 자금을 받은 두 전의원은 김용남씨(43·용팔이)등 행동대원을 동원,87년4월20∼24일까지 열린 통일민주당 48개 지구당창당 대회장중 인천·관악등 6개지구당의 대회장에 쇠파이프등을 들고 난입,창당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검찰조사결과 장씨는 두 전의원에게 정치자금등을 제공하고 두 전의원을 통해 행동대원에게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등 신변보장약속을 해준것으로 밝혀졌다. 장씨는 그러나 검찰에서 『두 전의원을 만난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제공한 자금으로 이들이폭력적인 방법으로 창당을 방해할줄 몰랐다』며 혐의사실을 부인했다. 한편 검찰은 당시 통일민주당 서울 관악지구당(위원장 김수한)의 간부인 홍순원씨(50)가 경찰의 고의적인 늑장출동으로 관악지구당 창당이 지연됐다고 진술함에 따라 당시 관악경찰서서장이었던 서정옥현전남경찰청차장을 조만간 소환해 진상을 규명키로 했다. 검찰은 또 태권도대회관계로 지난달 14일 미국에 간 이승완씨(53·전호국청년연합회총재)가 10일 귀국하는대로 소환해 참고인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당시 안기부장 특보였던 박철언국민당의원과 안기부 1차장이었던 이해구내무부장관은 현재로서는 소환,조사하지 않을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장씨 혼자서 이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나타나 이장관과 박의원을 참고인형식으로 불러 조사하지 않겠지만 장씨에 대한 수사결과 필요할 경우 두사람의 소환·조사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금주중으로 이 사건에 대한 종합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사건을 종결지을 방침이다.
  • 장씨,수감순간까지 「정치개입」 부인/장세동씨 구속… 검찰 표정

    ◎“구속 예상했나” 질문받자 고개 끄덕/검찰,2만쪽분량 사건기록 면밀검토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과 관련,9일 장세동 전 안기부장(57)을 전격 사법처리한 서울지검 남부지청은 긴장감과 함께 장씨 신변처리를 둘러싼 사후 뒷마무리로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서울지검 남부지청은 이날 하오 6시50분쯤 장세동 전안기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하오7시5분쯤 영장을 집행. 장씨는 305호 전상훈검사실에서 담당수사관 2명과 함께 1층복도로 내려와 기다리던 기자들과 5분여동안 간단한 일문일답. 장씨는 전날 하오 지청에 출두할 때와 다름없이 시종 미소를 짓는 등 여유있는 모습. 장씨는 지금 심경이 어떠냐는 질문에 『담담하다』고 짧게 답변. 이어 소환당시 구속될 것으로 예상했느냐는 질문에는 별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 『혐의부분에 대한 모든 사실은 앞으로 밝혀질 것』이라고 의미있는 한마디. 장씨는 또 안기부의 정치개입사실을 확인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정치개입은 아니다』라고 일축. 장씨는 『특별한 생각이나 할말은 없다』면서 『사실은 곧 밝혀질 것이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현관입구에서 잠시동안 사진기자들을 위해 포즈를 취한뒤 수사관2명과 함께 서울2드8441 흰색 스텔라승용차를 타고 영등포구치소로 직행. ○…한편 장씨는 8일 하오부터 밤샘조사를 받은뒤 9일 상오10시쯤 지청내 모처에서 구속영장이 집행된 하오7시30분까지 휴식을 취했다고 지청 직원이 귀띔. 검찰관계자는 8일 하오 늦게 장씨의 구속여부를 묻는 질문에 『지청단위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며 연막전술을 펴 취재기자들은 9일 하오3시까지 장씨의 구속방침을 모르고 있다가 신임 검찰총장의 인터뷰에서 알게돼 서두르기도. ○…지난달 25일 이택돈 전의원의 구속과 함께 전면 재수사에 나선뒤 이 사건의 담당검사인 전상훈검사와 조성욱검사는 2만여쪽의 사건기록 26권을 나눠 밤을 새워 검토. 전검사는 장씨가 구속되던 9일에도 간밤의 철야조사에도 불구,하오6시50분까지 기록검토에 열중하는 등 신중한 모습. ○…최환청장을 비롯,검찰간부들은 이날 하오6시부터 취재진들이 청사로 몰려들자 하오6시30분쯤 청사 1층 현관으로 나와 지나친 취재경쟁으로 장씨가 부상을 입지 않도록 당부하는 등 전직 안기부장에 대해 세심한 배려. ○…장씨는 8일 하오 남부지청에 소환된 뒤부터 구속수감될 때까지 30시간 남짓동안 검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시종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고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며 혐의사실을 계속 부인하자 일부 수사관들은 『일국의 안기부장으로서 한시대를 풍미했던 장씨가 인물은 인물』이라면서도 『5공비리사건에 이어 두차례나 구속되는걸 보니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실감난다』고 한마디. ○…최환지청장은 이날 하오 3시30분쯤 기자들과 만나 『장씨가 영장에 기록된 혐의사실을 계속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면서도 『이택돈·이택희 전의원의 진술로 장씨가 창당방해에 직접 개입됐고 자금도 제공한 사실이 명백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경위를 설명. 최지청장은 그러나 장씨만을 구속함으로써 이번 사건을 장씨의 단독 범행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지적을 의식,그간 언론에서 제기된 당시 안기부 제1차장이었던 이해구내무부장관과 안기부장 특보였던 박철언 국민당의원은 장씨나 두 이전의원의 조사결과,일단 관련사실이 없어 소환은 검토하고 있지않다고 설명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당시 관악서장이었던 서정옥 전남경찰청차장도 조만간 소환,세간에 오르내리는 경찰의 늑장출동여부도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검찰주변에서는 장씨를 사법처리하는 선에서 이 사건을 사실상 종결하려는 분위기.
  • 장세동씨 여유… 검사 고성만 새나와/철저보안속 철야조사 이모저모

    ◎“개입안했어도 구속되나” 질문/치밀한 답변준비… 수사관 푸념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과 관련,장세동 전안기부장이 소환돼 조사를 받던 8일 서울지검 남부지청은 밤늦게까지 긴장감이 감돌았다. 장씨에대한 사법처리와 함께 검찰수사의 수위에 촉각이 모아졌다. ○…서울지검 남부지청은 이날 장씨가 조사를 받고 있는 3층 특수부에 대해 기자들의 출입을 전면통제하는 등 보안에 필사적. 한편 장씨가 조사를 받고 있는 특수부 전상훈검사 방에서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인 안기부의 장이 야당 창당 방해사건을 사전에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냐』는 등 전검사의 고성이 간간이 새어나와 조사가 난항을 겪고 있는 듯한 인상. ○…장씨는 이날 하오 1시35분쯤 서울3소8343호 임페리얼 승용차를 타고 이양우변호사와 함께 남부지청에 도착. 장씨는 차에서 내려 지청 현관입구에서 미리 기다리던 카메라기자들에게 5분여동안 포즈를 취해주는가하면 기자들의 질문에 15분여동안 큰소리로 또박또박 답변하면서 간간이 미소를 짓는 등 여유있는 모습. 수사관들이 장씨를 청사안으로 데려가기 위해 기자들과 몸싸움을 벌이자 『잠깐이면 된다』며 수사관들을 제지시키기도해 언론에 자신의 입장을 강력히 표명하려는 모습. ○…검찰에 출두하기 위해 하오1시 서울 서초구 서초3동 롯데빌리지 자택을 나선 장씨는 짙은 감색 싱글정장에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는 보도진들과 『수고한다』며 악수를 하는등 여유. ○…장씨는 자신에 대한 사법처리를 둘러싼 보도내용과 관련,『직접 개입되거나 폭력을 사주한 사실이 없는데 왜 구속 되겠느냐』며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애써 태연한척. ○…남부지청 305호 전상훈검사실에서 밤샘조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장씨는 하오7시30분쯤부터 1시간 남짓 이웃 일식집에서 배달된 생선초밥 도시락으로 간단히 저녁식사를 했다. 장씨는 조사중 난감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검사의 질문내용을 일일이 메모해 답변내용을 정리하고 대동한 석·이 두변호사와 면담을 요청,20분씩 두 차례에 걸쳐 자문하는등 치밀한 면모. 이에대해 검찰의 고위관계자는 『장씨가 이번사건이 보도된 신문을 읽고 사전 준비를 치밀하게 해 실마리를 푸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고 푸념. ○…최환지청창은 이날 하오 기자들과 만나 장씨의 사법처리여부에 대해 『아무리 한물간 인물이라도 한나라의 안기부장을 지냈던 사람인만큼 지청장 마음대로 구속수사할 수 없다』면서 『9일 보고절차를 마친뒤 신중히 처리하겠다』고 답변.
  • 장세동씨 정치자금 제공 시인/검찰,철야신문

    ◎“단순 정보제공비” 창당방해 개입 부인/이택돈·이택희씨와 대질… 빠르면 오늘 영장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용팔이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남부지청은 8일 자진출두한 장세동 전안기부장(57)을 상대로 창당방해개입여부와 자금제공등에 대해 철야조사를 벌여 안기부가 정치자금을 지속적으로 제공한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이에따라 장씨를 빠르면 9일쯤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검찰은 그러나 안기부가 제공한 정확한 자금규모와 구속된 이택돈전신민당의원(58)과 이택희전의원(59)외의 자금제공대상은 밝혀내지 못해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장씨는 이날 하오 1시35분쯤 이양우·석진강변호사와 함께 검찰에 출두,조사를 받았으나 검찰의 신문사항을 대부분 부인했다. 장씨는 검찰에서 통상적인 정보수집차원에서 두리씨를 포함,정치인 종교인및 학생등 각계각층의 인사를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정보제공의 보상비조로 다른 액수의 자금을 제공했으나 두리씨를 만난 자리에서는 창당방해를 논의하지 않았으며 이때 제공한 자금이 창당방해에 쓰인 사실은 몰랐다고 진술했다. 장씨는 또 이 자금은 정보제공의 대가로 통상적으로 안기부가 지급하는 것이며 안기부의 공식계좌에서 지출됐으나 정확한 내역과 액수는 기억하지 못하고안기부 조직상 알수 없도록 돼 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두리씨는 검찰조사에서 장씨로부터 1백만원짜리 수표로 1억원의 정치자금을 제공받아 가명계좌에 입금시켜 행동자금으로 사용했다고 진술했었다. 검찰은 그동안 수표추적으로 장씨가 제공한 자금이 모두 5억원대라는 사실을 밝혀내 1억원이외에 4억여원이 장씨로부터 흘러나와 복잡한 돈세탁과정을 거쳐 활동자금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보고 수표추적을 통해 이 부분을 규명키로 했다. 장씨는 이어 자신이외의 다른 안기부원이나 안기부내 어떤 조직도 이 사건에 관련돼 있거나 개입하지 않았으며 두리씨를 만나는 자리에 다른 안기부원이 동석한 사실은 없다고 진술하면서 이해구 현 내무부 장관과 박철언국민당의원은 이 사건과 전혀 무관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곧 두리의원과 장씨를 대질신문해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을 규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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