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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씨 수사검찰발표

    ◎전씨 뇌물공여자·측근·친인척 등 430명 조사/집권후기 고위직 동원 대선자금 명목 거액 거둬/출처불명 비자금 조성 경위·은닉 재산 계속 추적 ▷수사경위◁ 1.수사착수배경 ○서울지방검찰청은 오늘 전두환전대통령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과한 법상의 뇌물수사 혐의로 공소제기하였음 ○검찰이 12·12사건,5·18사건의 수사와 병행하여 전두환전대통령의 뇌물수수사건을 수사하게 된 것은 ­동인이 지난 1988년 11월23일 국민여론의 지탄 속에 백담사로 출발하면서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대국민사과성명을 통하여 『연희동 집 두채,서초동 땅 2백평,용평콘도(34평)1개,골프회원권 2개,금융자산 23억원 및 여당총재로서 사용하다가 남은 잔액 1백39억원 등 자신의 전재산을 국고에 헌납하고 숨겨진 다른 재산이 있으면 어떠한 책임추궁도 감수하겠다』고 공언하였음에도 ­퇴임후 계속하여 측근들을 관리하는 등 그 씀씀이가 거의 달라지지 않아 「동인이 재직중 엄청난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하였고 퇴직후에도 이를 은닉해 두었을 것」이라는세간의 의혹이 끊어지지 않고 있던 중 ­금융실명제 실시 이래 끊임없이 나돌았던 「정체불명 비자금설」및 「전직대통령 4천억원 비자금설」이 그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면서,마침내 지난해 10월 「노태우전대통령 부정축재등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전두환전대통령의 수뢰혐의와 관련된 구체적 자료들이 입수되었기 때문임. ­검찰은 이 사건 역시 노태우전대통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 헌법사상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권력형 부정부패사건」임을 직시하고,그 진상을 낱낱이 밝혀 엄정하게 처리함으로써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고 아울러 정경유착의 폐해를 뿌리뽑아 왜곡되어 온 우리의 역사를 바로 잡겠다는 사명감에서 이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를 개시하게 된 것임. 2.수사경과 ○이에 따라 서울지방검찰청은 ­1995년 12월7일부터 전두환전대통령의 뇌물수수와 관련,뇌물공여자인 기업체 대표 42명등 기업관련자 1백60여명을 조사하였고 ­수수된 자금의 조성 및 관리와 관련하여,전 청와대 경호실 경리과장 김종상,전 은행감독원장 이원조를 비롯하여 전두환전대통령의 측근,친·인척,금융기관 관계자등 2백70여명을 조사하였고 ­압수수색영장에 의하여 1백83개의 시중 금융기관 계좌 및 5백50매의 채권증서등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자금추적을 실시함과 아울러 ○전두환전대통령 본인에 대하여도 6회에 걸쳐 심문,조사를 실시하였음. ▷금품수수◁ 1.수수규모 ○전두환전대통령은 검찰이 특별수사부 검사 6명등 수사력을 집중투입하여 추적의 강도를 더해가자 수수금원의 조성경위에 관하여 『재임기간중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까지 포함한 기업체의 대표들로부터 일해재단·새세대육영회 기금,새마을성성금의 모금등과는 별도로 자금 7천억원 상당을 수수하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였음. ○이에 따라 검찰은 금원 재공자,뇌물성 여부,자금의 행방등을 철저히 수사하였으나 ­범행후 15년 내지 8년 이상이 경과되어 관계자료의 폐기,보유 금융자산의 무기명 내지 가·차명화,관련자의 소재불명,기억소멸등으로 수사에 어려움이 있어 그 정확한 액수와 성격은 계속 추적중에 있고 ­현재까지 증거를 바탕으로 뇌물죄의 성립을 밝혀낸 금액은 기업체 대표 42명으로부터 최고 2백20억원,최저 2억원을 교부받아 조성한 총 2천1백59억5천만원임 *전두환전대통령은 위 7천억원과 별도로 기업인들을 상대로 새마을성금 1천4백95억여원,일해재단 기금 5백98억원,새세대육영회 찬조금 2백23억원,심장재단 기금 1백99억원 등 합계 2천5백15억원의 각종 성금 및 기금등을 조성함으로써,동인이 제5공화국 기간동안 기업인들로부터 거두어들인 금액은 총9천5백억원을 상회함. 2.기업 등으로부터 공여된 자금의 성격과 형태 ○전두환전대통령이 기업인등으로부터 수수한 위 2천1백59억5천만원은 기업체 대표등으로부터 특정사업의 수주나 세금의 감면등 이권과 관련하여 대통령의 권한 또는 영향력행사에 대한 대가로 제공되었거나 포괄적으로 기업경영과 관련하여 선처해 달라는 등의 취지에서 제공된 것으로서,모두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하여 수수한 뇌물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바 ○동인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행정각부의 장들을 지휘·감독하여 각종 재정·경제정책을 수립,시행하는 과정에서 국책사업자 선정,신규사업의 인·허가,금융지원,세무조사 등 기업활동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직무와 지위에 있음을 이용하여 ○주로 기업체 대표들을 은밀히 단독으로 만나 특정사안에 대하여 특혜를 부여하거나 해당기업의 현안문제에 관심을 표명하는 등의 방법으로 거액의 금품을 수수하였으며,이를 대별하여 보면 첫째,뇌물공여기업측이 공사발주등 특혜를 받은 사안으로 ­1986년 12월께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동아그룹 회장 최원석으로부터 4회에 걸쳐 1백80억원을 수수하였는바,동아그룹은 전두환전대통령 재임중 인천매립지의 정부매수 회피,원자력발전소 건설,댐 건설등 대형 국책공사를 수주하였고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으로부터는 7회에 걸쳐 2백20억원을,전 삼성그룹 회장 이병철로부터는 8회에 걸쳐 2백20억원을,대우그룹 회장 김우중으로부터는 6회에 걸쳐 1백50억원을 각 수수하였는바,이들 기업들 역시 고속도로 건설공사수주,차세대 전투기 사업,반도체 사업,율곡사업등 각종 대형 이권사업에 본격진출한 것으로 나타났음. 둘째,세무조사등 선처명목으로 기업체 대표 등으로부터 금품이 공여된 사안으로 ­미원그룹 회장 임창욱은 1986년 12월경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에서 70억원을 전두환전대통령에게 공여하고 조사중이던 세무조사와 관련,부과추징되어야 할 세금 2백억원을 감면받은 사실등이 확인되었으며 셋째,한진그룹 회장 조중훈으로부터는 1983년 10월께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그무렵 소련영공에서 발생한 대한항공 소속 케이이(KE)007 여객기 격추사고에 대한 불이익 방지의 취지로 제공하는 30억원을 교부받은 것을 비롯하여,김포공항 여객기 추락사고에 대한 무마등 명목으로 5회에 걸쳐 1백60억원을 수수하였는바,이는 사건·사고에 따른 불이익 방지차원에서 제공된 뇌물이라 할 것이고 넷째,각종 인·허가와 관련하여서도 금품이 제공되었는 바 ­1984년 11월 하순경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에서,국제그룹 회장 양정모로부터 통도골프장 건설 내인가를 해주어 사업승인을 받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여 준 데 대한 대가로 3개월 만기의 10억원권 약속어음 1매를 교부받은 것을 비롯하여,골프장 설립과 관련하여 애경그룹 회장 장영신 등 4개 기업체의 대표로부터 합계 45억원을 수수한 것이 그 예라 할 것임. 끝으로,기업경영에 수반되는 각종 금융·세제,국책사업 참여등 기업전반의 경영상의 불이익 방지 차원에 선거자금 명목으로 제공된 뇌물의 예로는 ­전두환전대통령은 특히 집권후기에 이르러 안현태전경호실장,안무혁전국가안전기획부장,사공일전재무부장관,이원조전은행감독원장등 고위공직자들을 동원하여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대선자금 지원 명목으로 거액의 자금을 집중적으로 수수한 사실등이 이에 해당됨. *기업체별 뇌물수수내역은 별첨 3.뇌물수수의 방법 ○전두환전대통령은 청와대 경호실장 등으로 하여금 기업체 대표들과의 비공식 면담을 주선하게 하여 본인이 직접 뇌물을 수수하거나,국세청장·은행감독원장·안기부장등에게 지시하여 기업인등으로부터 자금을 조성하게 하였는 바 ○현재까지의 수사결과 밝혀진 뇌물수수의 방법중 특이한 경우로는 ­경호실장 안현태가 위와같이면담을 주선하여 전두환전대통령이 수수한 금액은 4백억원,경호실장 장세동의 주선으로 수수한 금액은 2백억원 ­국세청장 성용욱,국가안전기획부장 안무혁등으로 하여금 조성하게 하여 수수한 금액은 1백14억5천만원 ­은행감독원장 이원조의 주선으로 수수한 액수는 30억원으로 밝혀졌음. 4.조성관여자들의 행위 ○안현태(전청와대경호실장) ­1985년 2월20일부터 1988년 2월25일까지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근무하면서,전두환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대기업 회장들에게 금원을 제공하도록 적극적으로 권유하거나 전두환전대통령과의 비공식 단독면담을 주선하는 방법으로 ­1985년 7월부터 1987년 10월까지 동아그룹 회장 최원석등 9개 기업체 대표들로 하여금 전두환전대통령에게 합계 4백억원을 제공하게 하였고 ­1986년11월 하순경 미원그룹 회장 임창욱으로부터 당시 미원그룹에 대하여 실시하고 있던 국세청 세무조사와 관련하여 대통령에게 세금감면을 부탁할 수 있도록 면담을 주선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5천만원의 뇌물을 수수하였음. ○성용욱(전국세청장) ­1987년 5월27일부터 1988년 3월5일까지 국세청장으로 근무하면서 기업체 대표들이 자신의 요구를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점을 이용하여 ­1987년 10월경 대한전선그룹 회장 설원량으로부터 세무업무와 관련하여 선처하여 달라는 취지로 제공하는 15억원을 교부받은 것을 비롯하여 11개 중견 기업체 대표들로부터 합계 54억5천만원의 뇌물을 교부받아 전두환전대통령에게 대선지원금으로 상납하였고,2개 기업체 대표들로 하여금 전두환전대통령에게 합계 60억원을 제공하게 하였음. ○안무혁(전국가안전기획부장) ­1987년 5월27일부터 1988년 5월7일까지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재직하던중 1987년 10월경 전두환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세청장인 성용욱으로 하여금 위와같이 11개 기업체 대표들로부터 합계 54억5천만원의 자금을 조성하게 하였음. ○사공일(전재무부장관) ­1987년 5월26일부터 1988년 12월4일까지 재무부장관으로 재직하던중 1987년 8월께 전두환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대농그룹 회장 박용학등 5개 기업체 대표들로 하여금 합계 1백억원을 제공하게 하였음. ○이원조(전은행감독원장) ­1986년 1월13일부터 1988년 4월15일까지 은행감독원장으로 재직하던중 1987년 8월경 전두환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코오롱그룹 회장 이동찬등 2개 기업체 대표들로 하여금 전두환전대통령에게 합계 30억원을 제공하게 하였음. ▷자금관리·사용◁ 1.재직중의 관리 ○전두환전대통령은 재직중 위와 같이 조성한 자금을 본인이 직접 총괄하면서 1985년 2월24일경까지는 경호실장 장세동에게,그 이후는 경호실장 안현태에게 각 관리하도록 지시함과 아울러 당시 총무수석 이재식 및 경호실 경리과장 김종상으로 하여금 은행,신탁회사 등 금융기관의 입·출금업무를 전담하게 하였음. ○김종상이 관리한 예금계좌에서는 ­한국·대만·국민 등 3개 투자신탁회사와 서울·조흥·제일·신한 등 8개 시중은행 38개 점포에서 「경호실」,「박경호」,「김경호」등 가명을 사용하여 거래하였음이 판명되었다. ­자금의 관리방법으로서 최대한 외부노출을 피하면서도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매회 20억원 내지 50억원을 수억원 단위로 나누어 금리가 높은 개발신탁예금,수익증권정축,기업금전신탁,정기예금으로 분산예치하거나 양도성예금증서(CD)또는 무기명채권 등을 매입하면서 이자소득세가 면제되는 「경호실」등 기관의 사업자등록번호를 위장사용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1987년 4월중순경부터 그해 12월말까지 대부분 1천만원권 또는 1억원권 고액수표로 집중 인출되어 무기명채권 구입자금으로 사용되었음. ○한편 전 청와대 총무수석 이재식은 김종상이 관리한 규모 이상의 자금을 관리하면서 투자신탁회사의 장·단기 공사채 매입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추정되자,1995년 12월14일 검찰이 김종상에 대한 조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하자 같은 날 캐나다로 출국,도피하여 동인이 관리해 온 자금 전부를 규명하는 것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전망임. 2·자금의 사용 및 퇴임후 남은 돈의 관리 전두환전대통령은 위 7천억원 상당의 조성자금에 대하여 구체적 사용항목의 진술을 거부하면서 ­퇴임시까지 친·인척 관리자금,정당 창당자금 등으로 사용하고 남은 자금은 약1천6백억원 상당이고 ­그 내역은 한국산업은행 발행 산업금융채권 약9백억원,장기신용은행 발행 장기신용채권 약2백억원,현금 및 예금 약5백억원 등 항시 처분가능하고 유동성 있는 금융자산으로 보유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음. ○검찰은 위와같이 전두환전대통령이 현재 채권과 예금 등 상당액의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사용처와 보유형태 등에 대하여는 밝히기를 거부하면서 자료제출 요구에 불응하고 있어 자금의 구체적인 사용처 및 현 보유재산 은닉상황 등을 밝히기 위하여 김종상이 관리한 계좌 및 퇴임전후에 매입한 금융채권 등을 중심으로 계속 추적중에 있음. ▷관련자 조치◁ ○뇌물수수자인 「전두환전대통령」에 대하여 ­1996년 1월12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으로 추가기소하고 ­동인의 현 보유재산 상황을 파악,「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특례법」에 따라 몰수·추징의 보전청구를 할 방침임. ○뇌물수수를 방조하거나 수수한 뇌물을 상납한 관련자중 ­그 죄질이 중한 안현태·성용욱은 각 같은 날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등으로 구속기소하고 ­안무혁은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의 공범으로,사공일·이원조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방조로 각 같은 날 불구속기소하며 ­장세동은 1984년 12월 이전의 범행으로 공소시효 완성되어 불입건 조치하였음. ○뇌물공여 기업체 대표들에 대하여도 공소시효 완성으로 법리상 처벌이 불가능하여 불입건 조치하였음. ▷향후 수사 계획◁ ○검찰은 그동안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적 근간을 뿌리채 흔들어 놓은 전직대통령 등의 부정축재와 정경유착 등 비리를 과감히 척결함으로써 흐트러진 국가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역사적 소명의식 아래 최선을 다하여 수사에 주력해 왔음. ○그러나 전두환전대통령이 아직도 모든 진실을 털어놓지 아니하고 있고 자금추적에 어려움이 따르는 등 전체적인 진상확인에는 장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므로 일단 전두환전대통령을 비롯한 일부 자금조성 관여자들을 우선 기소하고 ○앞으로도 계속 수사력을 집중하여 아직까지 명백히 밝혀지지 아니한 이 사건 자금의 나머지 조성경위와 자금의 사용처 및 현재의 보유재산 은닉상황 등을 계속 수사해 나갈 것임.
  • 비자금 규모·세탁수법 노씨보다 “한수위”/전씨 수뢰혐의 기소안팎

    ◎1백80여계좌 조사 불구 잔액은 못밝혀/비리로 처벌된 친인척 사법처리서 제외 전두환전대통령의 비자금 수사가 12일로 사실상 일단락됐다.검찰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수사를 한다는 방침이지만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번 사건 수사 결과 전씨의 비자금 조성 수법 등은 노태우전대통령에게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밝혀졌다.전씨 역시 노씨와 마찬가지로 안현태전청와대경호실장 등 주변 인물들에게 기업총수들과의 비공식 면담을 주선케 하거나 성용욱전국세청장,사공일전청와대경제수석,이원조전은행감독원장 등에게 지시해 기업인 등으로부터 한번에 2억∼50억원씩의 돈을 건네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씨가 조성한 비자금은 일해재단,새세대육영회 등의 성금을 포함해 무려 9천5백억원을 웃돈 것으로 나타나 액수만을 단순 비교해 봐도 전씨가 노씨에 비해 비자금 조성에 더 적극적이었음이 입증됐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노씨 비자금 사건과 마찬가지로 군사정권 시절 정경유착의 골과 뿌리가 어느 정도 깊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검찰이수사 발표문을 「전두환전대통령 수뢰 및 부정축재 등 사건」이라고 밝힌 것도 이번 사건에 대한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검찰은 전씨 비자금 수사에서는 기업인들의 진술에 의존,수사를 진행해 왔다.검찰은 지난달 15일부터 김종상전청와대경호실 경리과장 등이 관리·운영해 온 전씨의 1백80여개 계좌를 추적했으나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수사를 계속하더라도 전씨가 보유한 잔액을 밝히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계좌 추적 수사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고난도의 기법을 필요로 하는 데다 검찰의 수사의지 또한 그리 강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검찰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노씨 비자금 사건 때와는 달리 언론은 물론 국민들도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고 여러차례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전씨에 대한 비난 여론이 기대에 못미친다는 것이다.더욱이 김종상씨보다 더 많은 비자금을 관리해 온 것으로 알려진 전청와대총무수석 이재식씨가 지난달 14일 캐나다로 도피 출국한 것도 수사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라고 검찰은 밝혔다. 전씨의 비자금을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진 핵심 측근들과 친형 전기환씨,처남 이창석씨,동서 홍순두씨 등 친인척들은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됐다.전씨가 구속돼 있는 상황에서 처벌하는 것은 법 감정에 맞지 않으며 5공 비리 청산 당시 이미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장세동씨는 경호실장으로 근무하면서 기업인들과 전씨와의 면담을 주선해 모두 2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도록 한 혐의가 확인됐지만 지난 84년 12월 이전의 일이어서 공소시효가 완성돼 불입건 조치됐다. 그러나 전씨 측근 가운데 일부 인사는 축재 등 개인 비리로 5·18 사건을 기소할 때 함께 처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전씨 뇌물성 비자금 2천억 확인/검찰수사 마무리 안팎

    ◎총규모 5천억넘어… 1천억 은닉/장세동씨·친인척 사법처리 제외 검찰이 11일 전두환전대통령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혐의를 적용,추가기소키로 함에 따라 한달여 동안 계속된 전씨의 비자금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됐다.검찰은 앞으로도 수사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끝내기」수준에 머물 전망이다. 12·12 및 5·18사건에 대한 수사는 다음주말쯤 종결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3일 전씨를 군사반란 혐의로 구속하고 전씨의 개인비리를 캐기 위해 전씨의 친인척뿐만 아니라 측근,기업인들까지 줄줄이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이들에 대한 조사와 계좌추적을 통해 전씨가 뇌물성 자금 2천억원을 비롯,5천여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으며 이 가운데 1천억원을 부동산이나 양도성 예금 형태 등으로 은닉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은 전씨의 실제 비자금 조성 규모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그러나 단기간내에 이를 캐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 수사결과를 발표키로 했다.이 정도로도 수사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는 판단인 것이다.여기에는 막바지 단계에 이른 5·18 수사에 대한 부담감을 하루 빨리 덜겠다는 의도도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씨가 검찰의 수사에 거의 협조하지 않고 있는 것도 비자금 수사를 서둘러 끝내려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와 함께 전씨의 비자금에 연루된 관계자들에 대한 사법처리에 상당한 고심을 해왔다. 검찰은 이와 관련,10일 안현태전청와대경호실장과 성용욱전국세청장을 구속하고 안무혁전안기부장을 불구속 입건함으로써 전씨의 비자금과 연루된 관계자들에 대한 사법처리의 수위를 드러냈다. 안 전경호실장과 성 전국세청장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노골적으로 기업들로부터 금품을 챙겼거나 금품을 받아 상납한 것으로 드러나 구속 대상에 포함됐다. 사법처리 대상자는 여기에다 이원조전의원과 사공일전청와대경제수석 등 2명이 추가돼 불구속기소될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노태우전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이미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하지만 전씨의 비자금 조성에도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 추가로 기소됐다.노씨 비자금 사건 때처럼 직접 챙긴 사실은 밝혀지지 않아 불구속 기소키로 했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공씨는 8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 재벌총수들을 상대로 전씨가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도록 알선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전씨의 핵심측근인 장세동전청와대경호실장은 비자금 조성에도 개입한 사실이 어느 정도 드러났으나 이미 5공비리 등과 연루돼 두차례나 복역한 전력을 감안해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전씨의 친인척 상당수도 같은 맥락에서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 구속된 안현태·성용욱씨는 누구인가

    ◎전씨 비자금 등 관리… 경호실장 지내­안씨/아웅산사건 수사뒤 출세가도 달려­성씨 10일 뇌물수수혐의 등으로 구속된 안현태씨는 육사 17기 출신으로 5공 때 장세동씨가 안기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경호실 차장에서 경호실장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는 「보스」인 전두환전대통령이 1공수여단장 시절 대대장을 지냈고 훗날 1공수여단장도 거쳤다. 전임 장씨와 마찬가지로 「주군」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충성을 다하는 전형적인 무골형으로 알려져 있다. 안씨는 노태우전대통령 비자금사건으로 구속된 육사동기 이현우전경호실장과 마찬가지로 비자금과 군인사 관리 등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따라서 안씨도 이씨처럼 개인적인 뇌물수수혐의 외에 「보스가 뇌물을 수수할 수 있도록 재벌에 대해 뇌물액수를 할당하고 자리를 주선한 혐의」가 적용됐다. 안씨와 함께 구속된 성용욱씨는 육사 15기 출신으로 중위 때인 65년부터 20여년간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한 정보통.83년 발생한 아웅산사건을 현지에서 수사지휘하면서 신임을 얻어 감사원 사무총장,안기부 1차장,국세청장,마사회장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 93년 9월 마사회장 때 25억여원의 재산을 신고하면서 자신의 상가건물을 불법 용도변경한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안현태씨 영장내용 요지 1.위 전두환이 대기업 회장들로부터 뇌물을 수수함에 있어,동인의 지시에 따라 대기업 회장들로부터 금원을 교부받아 동인에게 전달하거나 대기업 회장들로 하여금 금원을 제공하도록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한편,대기업 회장들과 대통령간의 금원제공을 위한 비공식 단독면담을 주선행위를 용이하게 하기로 마음먹고,1986년 11월 하순경 청와대 경호실장 사무실에서 미원그룹 회장 임창욱으로부터 금원제공을 위한 대통령과의 단독면담을 주선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위 전두환에게 보고하여 면담일시,장소 등을 결정받아 위 임창욱에게 통보한 다음,같은해 12월경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 위 임창욱과 위 전두환이 면담을 하도록 주선함으로써 위 전두환으로 하여금 위 임창욱이 미원그룹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조기에 종결하여 주고 세금을적게 부과하도록 국세청장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달라는 취지로 제공하는 금70억원을 교부받게 한 것을 비롯하여 1986년 9월경부터 1987년 10월경까지 사이에 같은 방법으로 위 전두환으로 하여금 한화그룹,쌍용그룹,동아그룹,대림그룹,금호그룹,대농그룹,진흥기업 주식회사등 8개 기업 회장등으로부터 합계금 2백80억원을 교부받게 하여 위 전두환의 뇌물수수행위를 방조하고 2.1986년 11월 하순경 청와대 대통령 경호실장 사무실에서 미원그룹 회장 임창욱으로부터 미원그룹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건에 대하여 대통령에게 선처를 청탁하기 위한 단독면담을 주선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이를 승낙한 다음 그 사례의 취지로 금 5천만원을 교부받아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한 자로서 구속하지 아니하면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자임. ◎성용욱씨 영장내용 요지 1.1987년 10월경 당시 안전기획부장인 상피의자 안무혁의 사무실에서 동인으로부터 당시 대통령인 상피의자 전두환이 피의자에게 세금부과와 징수 및 세무조사 등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국세청장의 지위를 이용하여 기업체대표들로부터 제13대 대통령선거지원 등 명목으로 금원을 모금하도록 지시하였다는 사실을 통보받고 이를 승낙한 다음 위 안무혁과 함께 금원을 제공받을 대상기업체를 선정하고 피의자가 직접 대상기업체의 대표들에게 금원제공을 요구하여 이를 교부받기로 함으로써 위 전두환 및 안무혁간에 피의자의 직무에 관하여 금원을 수수하기로 순차 공모하여 1987년 11월경 서울 종로구 수송동 소재 국세청장 사무실에서 주식회사 삼천리회장 이장균으로부터 각종 세금부과 및 징수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위 회사에 대하여 선처하여 달라는 취지로 제공하는 금5억원을 교부받은 것을 비롯하여 같은해 10월 초순경부터 12월중순경까지 사이에 같은 장소에서 한일시멘트주식회사,동아제약주식회사 등 11개 기업체대표 등으로부터 같은 취지로 합계금 54억5천만원을 교부받아 국세청장으로서의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하고 2.위 전두환이 대기업회장들로부터 뇌물을 수수함에 있어 동인의 지시에 따라 대기업회장들로 하여금 금원을 제공하도록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한편 당시 경호실장 안현태 등을 통하여 금원제공을 위한 대통령과의 비공식 단독면담을 주선하여 위 전두환으로 하여금 대기업회장들로부터 금원을 수수하도록 하는 등의 방법으로 위 전두환의 뇌물수수행위를 용이하게 하기로 마음먹고 1987년 9월경 서울 종로구 수송동 소재 국세청장 사무실에서 롯데그룹회장 신격호에게 대통령의 지시로 롯데그룹 및 신격호 개인에 대하여 세무조사를 위한 기초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면서 전두환대통령에게 50억원정도만 제공해 달라고 요구하여 승낙을 받은 다음 위 안현태를 통하여 같은해 10월경 청와대 대통령접견실에서 위 전두환으로 하여금 위 신격호가 금융·세재운용 등 기업경영등과 관련된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롯데그룹에 대하여 선처하여 달라는 취지로 제공하는 금 50억원을 교부받게 한 것을 비롯하여 같은해 9월경으로부터 10월경까지 2개 기업회장들로부터 합계금 60억원을 교부받게 하여 위 전두환의 뇌물수수행위를 각 방조한 자로서 구속하지 아니하면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자임.
  • 「경복궁 모임」가담자 기소불가피/5·18수사막바지…사법처리 수위

    ◎보안사 4인방·정호용의원 포함/비자금 관련 전씨측근 3∼4명도 12·12 및 5·18사건과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자금조성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의 사법처리윤곽이 이번주중으로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이번주말까지 이 사건 피고소·고발인에 대한 소환조사를 마무리지으면서 사법처리 대상자를 선별,구속·불구속 기소 등 신병처리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어 20일쯤 전씨를 5·18사건에 따른 내란혐의로 추가기소하면서 다른 공범자들도 함께 사법처리한다는 시간표를 세워 놓고 있다. 현재 12·12 및 5·18사건과 관련,고소·고발된 사람은 구속기소된 전·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비롯,모두 82명이다. 우선 12·12와 5·18 두사건에 모두 주도적으로 참여한 허화평·허삼수·권정달·이학봉씨 등 「보안사 4인방」과 황영시·차규헌·유학성·박준병·박희도·최세창·장기오씨 등 「경복궁 모임」 가담자는 기소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함께 12·12사건 수사 당시 「부화뇌동」의 혐의만이 인정됐으나 5·17 비상계엄확대조치를주도하고 5·18 당시 특전사령관으로 광주 현장에 내려갔던 정호용의원도 기소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미국에서 귀국하지 않고 있는 박희도·장기오씨를 제외하면 구속자를 포함,두 사건으로 법정에 서게 될 기소대상은 10명 정도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전씨의 비자금 조성과 퇴임후 자금 운용에 깊숙이 개입한 전씨 측근들도 일괄사법처리한다는 내부방침을 정해놓고 있다. 지금까지 전씨 비자금수사와 관련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인사는 장세동·안현태·최세창·유학성·사공일·안무혁·이상연씨 등이다.이들은 검찰에 의해 모두 출국금지조치됐다. 이 가운데 장세동·최세창·유학성씨 등 3명은 이른바 「경복궁 모임」에 가담한 핵심인물이며 특히 최씨는 이 사건과는 별도로 국방부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방위산업진흥회로부터 수천만원의 돈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이 전씨에 대해 5·18사건 및 수뢰혐의와 관련해 추가기소할 때 비자금 사건 관련자 3∼4명도 사법처리될 가능성이 높은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 「5·18」 10여명 20일께 일괄 기소

    ◎이번주 관련자 소환조사 마무리/비자금 관련 전씨 하순 추가기소 12·12 및 5·18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7일 이번주중으로 5·18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마무리짓기로 하고 이들 관련자들의 사법처리수위와 적용법률 검토작업에 착수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정호용당시특전사령관,허문도국보위문공분과위원,이상재보안사 언론대책반장 등 아직 조사를 받지 않은 10여명의 피고소·고발인에 대한 조사를 이번주초에 끝맺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또 지난달 27일부터 광주지검과 합동으로 벌이고 있는 광주현장조사도 이번주중으로 완료하기로 했다. 검찰은 사법처리대상자를 결정한뒤 오는 20일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5·18내란사건 추가기소에 맞춰 일괄사법처리할 방침이다. 사법처리대상자는 전씨와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보안사4인방」 「경복궁모임」 광주진압관련자 등 10명선인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전·노씨를 제외한 나머지 관련자들은 불구속기소,기소유예,불기소처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또 비자금과 관련,이달 하순쯤 전씨를 뇌물혐의로 추가기소하면서 비자금조성 및 개인비리에 관련된 장세동·안현태·최세창씨등 3∼4명의 측근인사도 함께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한편 검찰은 8일 이학봉전보안사 대공2과장 등 4명을 불러 조사하기로 했다.
  • 현대차 2천년대 세계화 전략

    ◎터키 교두보로 유럽정복 노린다/12만대 생산규모 현지공장 97년에 완공/연수요 40만대… 중동·동구권 진출도 용이 터키 제1의 상업·관광 도시 이스탄불에서 동쪽으로 80㎞ 남짓 떨어진 인구 10만의 소도시­이즈밋시. 요즘 이곳은 공장 터를 닦는 불도저 소리로 요란하다.현대자동차가 터키의 앗산사와 합작한 자동차공장,현대­앗산 자동차사의 건설현장이다. 이즈밋시 외곽 30만평의 광활한 목축지위에 건립될 현대­앗산 자동차 공장은 현대자동차의 해외 수출 전초기지이다.이곳은 또한 현대의 유럽 자동차시장 정복을 위한 교두보이며 자동차수출 20년 역사의 결실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기공된 이 공장의 건설기간은 2년으로 97년 9월 완공된다.현대자동차의 최초이자 최대의 현지 생산거점이 탄생하는 것이다.생산규모도 12만대나 돼 터키도 주요 자동차 생산국으로 부상한다. ○영국 현지공장도 추진 현대­앗산 자동차 합작공장 건설 계획은 현대그룹의 「2천년대 세계화 전략」의 일환이다. 세계 곳곳에 자동차 공장을 비롯한 현지 공장을 세워세계를 무대로 한 판매전략을 새로 짜겠다는 야심찬 구상이다.『국내 인건비가 올라가고 무역장벽이 갈수록 높아져 해외투자를 확대할 것이며 특히 시장잠재력이 큰 나라에 투자하겠다』는 것이 정세영 현대그룹 회장의 생각이다. 현대­앗산 공장은 해외 진출의 시발점일 뿐이다.터키에 이어 유럽에서는 영국에 대규모 공장 건립을 추진중이다.그렇게 되면 터키와 영국을 하나의 축으로 묶어 전유럽을 커버하게 된다.영국에는 유명한 롤스로이스 자동차사가 있지만 현재 종이호랑이일 뿐이다.게다가 적극적인 개방책을 펴고 있어 영국 진출도 시간문제다. 현대가 터키를 유럽지역 최대의 생산 거점으로 지목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터키는 인구가 6천2백만명이나 되고 국토의 넓이도 한반도의 9배나 돼 잠재력이 무한하다.자동차를 4백만대나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자국 브랜드 자동차가 없는 터키의 연간 자동차 수요는 연간 30∼40만대로 상당한 규모이다. 특히 좋은 지정학적 조건이 매력적이다.국토가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동과 유럽 양쪽에 걸쳐있어 교통의 요충지이기 때문이다.여기에다 유럽연합의 관세동맹에 가입해 관세 조건이 다른 유럽 국가와 똑같다.인건비도 싼 편이다. ○국토넓이 한반도 9배 현대­앗산 공장에는 터키의 대재벌사인 키바 그룹과 현대가 50대 50으로 4억달러를 투자한다.현대는 엔진과 트랜스미션 등 핵심 부품을 공급하고 타이어와 밧데리 등 30%의 일반 부품은 현지에서 조달한다.20 02년까지는 현지 조달율을 60%까지 끌어 올린다. 공장근로자는 거의 모두 터키 현지인을 고용할 계획.터키는 그만큼 고용창출 효과를 얻는다.완공 첫해인 내년에 9백명이 고용되고 3년안에 2천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얻는다.현대에서는 16명 정도의 기술지도 인력만 파견할 예정. 현대는 이 자동차회사를 오는 97년까지 완공해 첫해에 액센트와 그레이스를 연간 5만대 생산한다.97년 이후에는 수출 주력차종인 아반떼를 추가 생산,생산규모를 9만대로 늘리고 2천년에는 12만대로 대폭 확대한다. 생산 초기에는 터키에 우선 공급한다.터키에는 현재 포드,피아트,르노,오펠 등의 외국 회사가 진출해 연간 25만대를 공급하고 있다. ○77년 포니3백대 수출 현대­앗산사는 이 물량의 일부를 우선 충당하고 중동과 유럽지역에도 진출할 생각이다.중동지역에서는 올해 현대자동차가 수입 승용차로서는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할 만큼 터를 닦아 놓은 상태.루마니아나 불가리아 등 동구권 국가나 구 소련지역 국가로의 진출도 용이하다. 현대는 터키를 거점으로 해서 점차로 현지 제작 또는 조립 생산하는 국가를 늘려가겠다고 한다. 네덜란드에는 상용차 조립공장이 완공돼 가동중이며 헝가리에도 상용차 조립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이 공장들은 상용차 수출의 거점이다.네덜란드 남부 오르스베이크에 있는 상용차 현지 조립공장에서는 지난해 3.5t 트럭 3백대를 생산했고 올해 1천대를 생산·공급할 계획이다.6t 트럭을 생산할 능력도 가진 이 공장의 연간 생산대수는 2천대.1백% 현지투자로 만들어졌다. 동구지역의 거점은 헝가리.한해에 2.5t과 3.5t 트럭을 1천대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의 조립공장이 올 하반기까지 건설된다.이 공장에서는 올해 2백대를 생산하고 내년 5백대,98년 1천대로 늘려갈 방침이다.또 현지 딜러망을 통한 판매 경과를 보아가며 미니버스를 생산할 계획도 있다. 터키 공장을 비롯한 현지 생산 체제가 갖춰지면 유럽 수출이 본궤도에 들어선다.유럽 지역이 최대의 자동차 수출 시장으로 탈바꿈하게 될 전망이다.유럽 진출 첫해인 77년 현대가 그리스에 수출한 포니 승용차는 3백대.95년 판매 예상 대수는 14만7천대.엄청난 양적 팽창을 기록했다.현대차가 거리를 누비고 있는 국가도 35개나 된다. ○알파·베타엔진 개발 90년대 이후 독일과 프랑스 진출의 성공으로 현대 자동차의 유럽 시장 수출 물량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현대­앗산 공장이 완공되는 97년이후 현대의 점유율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수출 대수는 20만대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현대측은 이만한 시장 확보가 결국 품질경쟁에서 이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알파·베타 엔진과 같은 첨단 엔진 개발의 성공이 그 예이다.그러나 터키 공장과 같은 현지 생산체제를 앞당겨 완비하는 것,이것이 수출시장 확대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 자동차시장의 전망이 결코 장미빛만은 아니다.기술력을 앞세운 외국 자동차들의 끊임없는 도전이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무역보복 조치도 기다리고 있다. 기술개발과 완벽한 현지 생산 체제야 말로 이런 장애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최상의 수단임에 틀림없다.
  • 잠적 전씨사돈 출국금지/검찰 비자금­5·18수사

    ◎장세동씨 어제 소환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29일 전두환 전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관련,장세동 전청와대경호실장을 재소환,전씨가 조성한 비자금 규모 및 사용처 등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이날 소환될 예정이었던 전씨 장남 재국씨의 장모 김경자씨가 잠적함에 따라 소재 파악에 나서는 한편 법무부에 출국금지 조치를 요청했다. 검찰은 전씨 비자금 관리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재국씨도 금명간 소환할 방침이다. 이본부장은 이날 전씨 친인척의 사법처리와 관련,『수사 과정에서 혐의가 드러나면 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말해 친인척 가운데 일부도 사법처리될 것임을 시사했다. 한편 주임검사인 김상희 부장은 이날 하오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노태우 전대통령을 방문,그동안 5·18사건 수사에서 드러난 노씨의 당시 역할 등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또 당시 시민수습대책위원이었던 조비오신부(60·5·18기념재단이사장)와 최평욱 전국보위운영분과위원,이용상 당시 전교사 정보처장 등 3명을 불러 조사했다. 이본부장은 『앞으로 수사의 비중을 광주 현장조사에 두고 검사 1명씩을 교대로 파견,광주지검과 철저한 공조수사를 펼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방위산업진흥회가 지난 92년 최세창 전국방장관 등 국방부 고위관계자들에게 군수물자 납품 대가로 거액의 뇌물을 준 혐의를 잡고 관련 은행계좌를 추적하고 있다.
  • 전씨 비자금 관련 39명 출금 저변

    ◎「5·18」­「12·12」 핵심 사법처리 수순인듯/검찰 “혐의 확인됐거나 재수사 대상” 설명/이상연씨 등은 비자금 조성에 개입 추정 12·12 및 5·18과 전두환전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관련,검찰이 출국금지한 39명의 명단이 드러남에 따라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들 가운데에는 12·12사건과 5·18사건의 핵심 관련자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어 검찰이 사법처리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 마저 나오고 있다. 출국금지자는 ▲전씨 등을 비롯,12·12 및 5·18사건 중복 피고발인 12명 ▲12·12사건 피고발인 5명 ▲5·18사건 피고발인 12명 ▲5공 당시 사공일 청와대 경제수석·안무혁 사회정화위원장·이상연 안기부장 등 나머지 10명이다. 검찰은 5·18사건과 관계 없는 안현태 전경호실장과 김종상 전청와대 경호실 경리과장 등은 전씨의 비자금 조성과 분산예치에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역할한 사실이 밝혀져 출국금지를 했다는 것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지난번 수사에서 어느정도 혐의가확인되었거나 소환한 사람 중 재수사의 필요성이 있는 사람 등을 출국금지시켰다』면서 『사법처리 수위는 다르겠지만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법 처리 대상에 들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따라서 출국금지조치의 시기도 소환 직전과 직후에 한 셈이 된다. 12·12사건의 경우,12·12사건을 모의하기 위해 경복궁 30경비단에 모인 유학성 전국방부 군수차관보,황영시 1군단장,장세동 30경비단장,허삼수 보안사 인사처장 등 「경복궁 모임」참석자 8명과 정승화 전육참총장 연행 계획을 세운 이학봉 보안사 대공처장,권정달 보안사 정보처장,정도영 보안사 보안처장 등 3명이 포함되어 있다. 검찰은 이들이 구속기소된 전두환·노태우 두전직대통령과 함께 12·12사건의 핵심 지휘부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판단,사법처리의 1차 대상으로 이들을 꼽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고명승 대통령 경호실 작전담당관과 구창회 9사단 참모장,박종규 3공수여단 15대대장 등은 지휘계통을 거치지 않고 병력을 멋대로 이동,총리공관·국방부·육군본부등을 점령,이 사건의 주요 피의자로 분류되어왔다. 5·18사건의 관련 출국금지자 24명은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에서부터 광주사태 진압,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등에 이르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핵심 인물이다. 광주사태 과잉진압에 직접 투입되거나 주남·송암마을 등에서 양민학살에 연루된 정호용 전특전사령관,소준렬 전교사 사령관,최웅 11공수여단장,안부웅 11공수 61대대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5·6공 당시 사공일 전경제수석과 안전사회정화위원장,이전안기부장 등은 지금껏 12·12사건 등에서 전혀 거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씨의 비자금 조성에 개입됐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 장기 무기명채권에 거액 묻어/전씨 비자금 은닉 수법

    ◎서울·경기도일대 부동산 70여곳 매입/돈세탁 거친뒤 친인척 계좌에도 숨겨 전두환 전대통령은 아들까지 동원,비자금을 현금화하는 등 치밀한 「은닉작전」을 편 것으로 검찰조사결과 속속 드러나고 있다. 노태우 전대통령보다 한발 앞선 전씨의 은닉수법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장기 무기명채권의 대량매입.전씨는 퇴임을 1년 가까이 남겨둔 87년 4월부터 산업금융채권,장기신용채권,양도성예금증서(CD)등을 무더기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들 금융상품은 소유주가 드러나지 않는데다 상환기간도 길어 안정적으로 비자금을 숨길 수 있는 곳이다.또 만기가 되면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 돈세탁을 거친뒤 현금화하기도 쉽다. 최근 검찰은 그 전형적인 사례를 잡아냈다. 금융실명제 실시 직후인 93년12월 동북아전략연구소장 김승환씨(47)는 평소 거래가 있던 부국증권 장옥수 상무(51)를 찾아가 『출처를 밝힐 수 없는 돈이니 돈세탁을 거쳐 현금화시켜달라』며 1억원짜리 산업금융채권 20장을 건넸다.장상무는 이를 주변증권회사의 고객및 직원 계좌에분산 예치시킨 뒤 5차례에 걸쳐 현금으로 인출,트렁크에 담아 김씨에게 넘겨주었다.김씨는 미국 유학시절 전씨의 아들 재국·재용씨와 사귄 인물로 이번 검찰수사과정에서 이 돈은 전씨 비자금의 일부로 드러났다. 거액의 가·차명계좌를 보유하고 있다 덜미를 잡힌 노씨와 달리 전씨에게서 묵직한 계좌가 발견되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검찰은 전씨가 측근을 통해 금융실명제 실시 정보를 사전입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가·차명계좌를 정리,다른 은닉처로 옮길 수 있는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검찰은 이와 관련,전씨가 친·인척 명의로 소유하고 있는 서울·경기일대 70여곳의 부동산 가운데 20여곳이 실명제 실시 이후 집중매입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나머지 부동산은 재임중인 82년부터 88년까지 사들인 것으로 현시가로 1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전씨의 주요 비자금 은닉처가 부동산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최근에는 서울 방배동 799의 10 대지와 J빌라를 안현태 전청와대경호실장 명의로 소유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또 전씨 비자금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친·인척 명의의 계좌 14개가 검찰에 포착됐으며 검찰조사를 받은 처남 이창석·동서 홍순두씨 등 친·인척과 28일 출국금지 조치된 장세동·안현태 전경호실장,사공일 전청와대경제수석,안무혁 전국세청장 등 측근들도 비자금 조성 및 관리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전씨 CD 최소 250억어치 매입/검찰 “채권등 대량매입 확인”

    ◎퇴임전후 비자금 분산 은닉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 3차장검사)는 26일 전두환 전대통령이 퇴임을 전후해 최소 2백50억의 이상의 산업금융채권,장기신용채권,양도성예금증서(CD)등 무기명 채권 및 증서를 대량으로 구입,재임중 조성한 비자금을 분산 은닉한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이에따라 이들 채권및 CD의 유통경로를 추적하는 한편 이미 만기가 지난 채권에 대해서는 은행에서 인출한 수표의 흐름을 추적,사용처를 캐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조사결과 전씨는 재임말기인 87년 4월부터 퇴임직후인 88년 9월까지 신한·충청·한일은행 등에서 CD(최소발행단위 5천만원) 5백여장 최소 2백50억원어치를 매입하는 등 90년 초까지 1천여장의 채권 및 증서를 무더기로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특히 전씨가 백담사에 머물던 때에도 채권 및 CD를 집중 매입한 사실을 밝혀내고 전씨의 핵심측근들이 퇴임 뒤에도 계속 비자금을 관리해온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전씨 비자금 조성및 관리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장세동·안현태 전청와대비서실장 등 측근인사 3∼4명에 대한 소환조사를 통해서도 이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창석·전경환씨 재산 중점 추적/전씨 친인척 비자금수사 안팎

    ◎모두 6∼7명 조사… 일부혐의 확인한듯 전두환 전대통령이 조성한 비자금을 변칙 실명전환해 주거나 은닉처를 제공한 의혹을 받고 있는 전씨의 친·인척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전씨 비자금 수사는 가·차명계좌,명의신탁된 부동산 등 두갈래로 진행되고 있다.검찰은 전씨가 재임중에 조성한 비자금의 총액이 3천억원 이상일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그러나 수사의 무게중심은 조성 비자금 총액 보다는 잔액쪽에 쏠리고 있다. 전씨 사돈들에 대해 수사의 손길이 미치고 있는 것도 전씨의 돈이 흘러들어간 부동산을 찾아 내기 위한 수순으로 풀이된다.검찰은 노태우 전대통령이 그랬듯이 전씨 비자금 역시 사돈들의 부동산에 흘러들어갔다는 물증을 이미 상당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전씨가 친·인척들에게 명의신탁하는 등의 방법으로 매입한 부동산은 서울·경기 일대에 퍼져있으며 액수는 노씨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다.23일 소환된 손아래 동서 홍순두 전항공화물협회장은 경기도 기흥의 모골프장 입구에서 운영하고 있는 음식점 매입 자금에 전씨 비자금이 유입됐는 지를 추궁당했다. 검찰은 또 상당수의 친·인척들이 부동산 뿐 아니라 전씨의 비자금을 변칙실명화할 수 있도록 명의를 빌려준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금까지 6∼7명을 불러 조사했으나 구체적인 혐의사실을 밝힐 단계는 아니다』라면서 몇 사람에 대해서는 혐의 사실을 이미 확인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주요 수사선상에 오른 인물로는 우선 전씨의 동생 전경환 전새마을중앙회장과 처남인 이창석씨,홍순두씨 등 3명을 꼽을 수 있다.이 가운데 홍씨와 이씨는 지난 23일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그러나 이씨의 소환은 노출되지 않았다. 이종찬 본부장은 지난 23일 『이씨의 소환은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시치미를 떼기는 했으나 『수사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좀 더 두고보자』고 말해 재소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씨는 지난 93년 8월 금융실명제 실시 직후 전씨의 비자금 수백억원을 실명전환하는 데 개입했는 지 등을 추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히 장세동전청와대경호실장과 김종상 전경호실경리과장 등이 최근에는 전씨의 비자금 관리를 맡지 않은 것으로 보고 친·인척 등 제3의 인물을 찾고 있다. 전씨는 퇴임 이후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제3의 인물에게 비자금 관리를 맡겨 소액씩 수십여개의 계좌로 비자금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93년 8월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자 가·차명 계좌와 만기 상환된 양도성예금증서를 친·인척명의로 실명전환하거나 다시 매입한 뒤 다양한 금융 자산을 이용해 수시로 돈세탁을 해 온 혐의가 짙다고 검찰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
  • 서울신문 선정 1995년 10대뉴스/국내

    ▷노·전 전대통령 구속◁ 노태우 전대통령이 11월16일 대통령재직 중 기업인들로부터 거액을 받아 비자금을 조성하고 착복한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12월4일에는 전두환 전대통령이 12·12사건 관련,군사반란죄로 전격 구속됐다.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 2명이 구속기소되면서 정경유착 등 고질적인 비리를 척결하고 12·12에서 5·18에 이르는 정권찬탈의 역사를 단죄하는 계기가 됐다. ▷대구지하철공사장 폭발◁ 4월28일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에서 가스가 폭발해 등교길의 학생과 출근길의 시민 등 무려 1백1명이 숨졌다. 인근 백화점 공사장에서 가스관에 구멍을 뚫은 것이 원인이었다. 이구멍으로 새어나온 가스가하수관을 타고 지하철 공사장으로 흘러들어가 폭발이 일어났다. 우리사회에 만연한안전불감증과 적당주의를 보여준대표적인 사고였다.▷북에 쌀 15민t 무상제공◁ 정부는 6월17일부터 나흘동안 북경에서 북한과 차관급 쌀회담을 열고 북한의 어려운 식량사정을 돕기 위해 북한측에 쌀 15만t을 전량 무상제공키로 합의했다.그러나 첫 선적분을 싣고 청진항에 들어간 씨아펙스호에 북측이 인공기를 강제로 게양한 데다 삼선비너스호 억류사건 등으로 남북간 대화가 중단됐다.북한은 올 7,8월 계속된 홍수로 50만명의 이재민과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내 전세계에 구호를 요청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서울의 대표적인 삼풍백화점이 영업중 붕괴한 사고는 우리 건설문화의 총제적 비리와 부실공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전형적인 인재(인재)였다.이 사고로 사망 4백58명,부상 9백33명,실종 1백4명 등 1천5백여명의 사상자를 냈다.1백여명은 시신도 찾지 못했으며 그나마 생존자들도 그때의 악몽에 시달려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등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김대중씨 정계 복귀◁ 지난 7월18일 김대중씨가 정계복귀를 공식선언하며 정치권에 재진입했다.92년12월 14대대선에서 패배,정계를 은퇴한 뒤 2년7개월만에 복귀한 그는 곧바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정치권을 민자당(현 신한국당)·국민회의·민주당·자민련의 4당체제로 만들고 3김시대를 재현했다.이에 앞서 2월9일에는 김종필전민자당대표가 탈당을 선언한 뒤 3월30일 자민련을 창당했다. ▷대입·교육제도 대폭 개편◁ 「5·31 교육개혁조치」로 불리는 교육개혁위원회의 「신교육을 위한 교육개혁방안」은 열린 교육사회와 평생학습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국공립대의 본고사 폐지 및 97학년도부터 종합생활기록부 도입 등을 통한 입시제도 개선과,초·중등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 설치,중·고교 96학년 학군내 복수지원을 비롯한 학습자의 교육선택권 확대 등을 통해 종래의 교육틀을 완전히 바꿀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민선단체장 34년만에 부활◁ 시장·도지사를 주민 손으로 뽑는 지방자치선거가 34년만에 부활됐다.민선단체장선거는 지난 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중단됐으나 지난해 「6·27」지방선거에서 되살아났다.선거결과 15개 시·도지사중 민자(현신국) 5,민주(현국민회의 포함) 4,자민련 4,무소속 2명이 당선됐고 기초단체장도 민자 71,민주 84,자민련 23,무소속 52명이 당선돼 여당이 참패했다. ▷강택민 중국가주석 내한◁ 올해 우리 외교분야의 가장 큰 성과라면 강택민중국주석의 방한을 꼽을 수 있다.중국은 북한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다.그동안 중국은 「정치 북한,경제 남한」이라는 이중적인 대한반도 정책을 추진해왔다.그러나 중국은 지난 11월13∼17일 강주석 방한을 통해 이제 북한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세계에 전했다고 할 수 있다. ▷“반란 응징” 5·18특별법 제정◁ 지난 11월24일 김영삼 대통령의 5·18특별법 제정지시에 따라 「역사바로잡기」가 시작됐다.신한국당(옛 민자당)은 내란·반란죄등을 저지르고 집권한 전두환·노태우씨등의 공소시효가 남아 있음을 명확히 하는 특별법안 제정에 착수했다.이 법안은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2월19일 신한국당·국민회의·민주당 합의로 통과돼 내란과 군사반란에 대한 사법적 단죄의 근거를 마련했다. ▷구 조선총독부 중앙돔 첨탑 철거◁ 지난 8월 15일 광복절 50주년 경축 기념식 행사의 하나로,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는 옛 조선총독부건물의 중앙돔 첨탑이 세동강이 난채대형 크레인에 의해 제거됐다.일제 통치 36년의 상징인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해체는 조선조 정궁인 경복궁 복원계획에 따라 민족정기의 회복을 위해 이루어진것.우선 건물의 상투격인 중앙돔이 철거되고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철거작업에 들어가 1년간에 걸쳐 모두 헐리게 된다.
  • 두환­노태우 군사반란죄 공소장 전문

    피고인 전두환은 1955.9 육군사관학교를 제11기로 졸업하고 육군소위로 임관한 이래 제1공수여단장,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제1사단장등을 거쳐 1979.3부터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하던 중 10·26 중앙정보부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인 세칭 「10·26사건」(이하 「10·26사건」이라한다)이 발생함에 따라 10·27 비상계엄 선포와 동시에 계엄사령부소속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부」라한다) 본부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면서 1980.4.14부터 7.17까지 중앙정보부장서리를 겸임하고 5.31부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으로 근무하다가 8·6 최규하 대통령의 사임으로 8·27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되어 9.1,취임하고 다시 1981.2.25 개정헌법에 따라 새로 구성된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해 제12대 대통령에 선출되어 3.3 취임한후 1988.2.24까지 대통령직에 있던 자, 같은 노태우는 위 전두환과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으로서 1955·9 육군 소위로 임관한 이래 제9공수여단장,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등을 거쳐 「10·26사건」당시에는 제9사단장으로 근무하였으며 그후 수도경비사령관,국군보안사령관을 거쳐 1981·7 육군대장으로 전역한후 정무제2장관,체육부장관,내무부장관등을 역임하고 1985.2 제12대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및 총재로 재직하다가 1987·12·16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1988·2·25 취임한후 1993·2·24까지 대통령직에 있던자로서 1995·12·5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으로 서울지방법원에 구속기소되어 현재 재판계속 중에 있는자 등인바, 「10·26 사건」이후 국내정치상황은 유신헌법을 개정하여 점진적인 민주화를 추진하여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에 따라 1979·11·8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개정을 통한 정치발전을 약속하고 11·21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헌법질서의 창출이 모색되는 가운데 12·8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의 비방행위를 금지하는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가 해체되어 유신체제의 폐지가 기정사실화되고군 내부에서도 육군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비롯한 군수뇌부가 계엄의 성격과 목적을 「10·26사건」이후 발생한 사회혼란을 수습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데 국한함으로써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등 정국이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피고인 전두환이 계엄업무 수행과정에서 「10·26사건」과 관련하여 직무유기혐의로 구속된 이재전 대통령경호실 차장의 석방,청와대에서 발견된 금원의 처리,부정축재자의 처리 및 재산몰수,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출국허가 문제 등을 둘러싸고 정승화 총장과의 사이에 잦은 의견대립으로 인해 마찰을 빚어 오던중,11월 중순경에 단행된 군인사에서 비정규육사 출신들이 군요직에 배치되고 정규육사 출신의 피고인등이 중심이 된 소위 「하나회」소속 장교들이 배제되자 자신들의 군내 입지에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고 12월 초순경 군 일각에 피고인 전두환이 잦은 월권행위와 군지휘체계 문란행위 등으로 곧 실권이 없는 한직으로 인사조치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정승화총장이 국방부장관 노재현에게 피고인 전두환의 인사조치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지자,피고인등은 위 전두환에 대한 인사조치를 차단하고 「하나회」소속 장교들의 군내입지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군의 주도권 장악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정승화총장이 「10·26 사건」당시 박대통령 시해 현장부근인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의 본관 식당에 있다가 김재규와 육군본부(이하「육본」이라한다)로 동행한 사실로 인한 일부 군인들 사이에 정승화총장이 위 사건에 연루되어 있을 지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을 기화로 이미 그동안의 수사과정에서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정승화총장을 김재규와의 관련 혐의에 대해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강제연행하여 그 지휘권을 박탈하는 한편,군의 정식지휘계통이 이를 저지할 경우 무장병력을 동원하여 제압함으로써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로 결의하고 12·7경 국군보안사령부(이하 「보안사」라한다)에서 서로 만나 정승화총장의 연행.조사 문제를 논의한 끝에 그 연행일을 12·12로 결정하고 피고인 전두환이 보안사 대공2과장겸 합수부 수사1국장 육군중령 이학봉에게 연행장소등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여 그 검토결과를 토대로 12·8경 육군참모총장 공관(이하 「총장공관」이라 한다)을 연행장소로 결정한후 12·9경 위 이학봉,보안사인사처장 겸 합수부 조정통제국장 육군대령 허삼수,육본 헌병감실 범죄수사단장겸합수부 수사2국장 육군대령 우경윤 등에게 구체적인 연행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정승화총장의 연행에 대응하여 병력을 동원할 가능성이 있는 특수전사령관 육군소장 정병주,수도경비사령관 육군소장 장태완,육본 헌병감 육군준장 김진기 등을 12·12 당일 만찬 초청 명목으로 유인하여 부대지휘를 사전 차단키로 하고 피고인 노태우 등 소위 「하나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지역 주요부대 지휘관들은 그날 저녁 경복궁 구내 수도경비사령부(이하 「수경사」라 한다)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필요시 자신들의 지휘하에 있는 병력을 동원하기로 하고 국방부 군수차관보 육군중장 유학성,제1군단장 육군중장 황영시,수도군단장육군중장 차규헌,제20사단장 육군소장 박준병,제71훈련단장 육군준장 백운택,제1공수여단장 육군준장 박희도,제3공수여단장 육군준장 최세창,제5공수여단장 육군준장 장기오,수경사 제30경비단장 육군대령 장세동,수경사 제33경비단장 육군대령금진영,국군보안사령관 비서실장 육군대령 허화평,위 이학봉·허삼수,보안사 정보처장 육군대령 권정달,위 우경윤,육본 헌병감실 기획과장 육군대령 성환옥,수경사 제33헌병대장 육군중령 최석립,육본 헌병대장 육군중령 이종민,대통령 경호실장 직무대리 육군준장 정동호,대통령 경호실 작전담당관 육군대령 고명승,수경사 헌병단장 육군대령 조홍,수경사 헌병단부단장 육군중령 신윤희,보안사 보안처장 육군대령 정도영,제30사단장 육군소장 박희모,제30사단 제90연대장 육군대령 송응섭,제2기갑여단장 육군준장 이상규,제9사단 참모장 육군대령 구창회,제9사단 제29연대장 육군대령 이필섭,제9사단 작전참모 육군중령 안병호,제1공수여단 제2대대장 육군중령 서수열,제1공수여단 제5대대장 육군중령 박덕화,제3공수여단 제15대대장 육군중령 박종규등과 순차로 공모하여, ○피고인 노태우는 사전계획에 따라 위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박준병·백운택·박희도·최세창·장기오·장세동·김진영 등과 함께 12·12 18·00경부터 19·00까지 사이에 위 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하는 한편,위 허화평·권정달·정도영 등은 보안사 상황실을 거점으로 하여 각급부대 지휘관의 전화를 도청하는 등의 방법으로 부대동향과 병력이동 상황을 파악,수시로 위 지휘부에 보고하는 체제를 갖추고, ○위 조홍은 미리 계획한대로 12·초경 계엄업무로 수고하는 수도권 주요지휘관들을 보안사령관이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위 장태완·정병주·김진기등을 저녁식사에 초대하여 12·12 18·30경 약속장소인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소재 상호불상 한정식집에 오게하여 유인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12 오전 국군보안사령관 사무실에서 현직 육군 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체포하려면 그 중대성에 비추어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사전승인을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절차를 무시한채 총기와 실탄을 준비하여 강제적인 방법으로 연행하라고 위 허삼수등에게 지시하고 이에 따라 허삼수·우경윤·성환옥·최석립·이종민등은 같은날 18·00경 합수부수사관 7명,경복궁 구내 주둔 수경사 제33헌병대 3개 제대 병력 60여명을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소재 보안사 서빙고분실에 집결시켜 총장공관 경비병등을 제압하는 임무를 부여하고 권총과 엠(M)16 소총으로 무장케 한 다음 18·50경 정당한 이유없이 위 부대를 인솔하고 수소를 이탈하여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총장공관에 도착,각자 분담한 임무에 따라 무장한 합수부 수사관들을 총장공관 부관실,공관입구 헌병초소,공관현관등을 제압하고 제33헌병대 병력은 퇴로를 확보하고 19:10경 허삼수·우경윤이 총장공관 응접실로 들어가 정승화 총장에게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에 대하여 진술을 받아야 하겠으니 녹음준비가 되어 있는 곳으로 가주셔야 하겠습니다』라고 요구하였으나 정승화 총장이 이를거부하면서 수행부관 육군소령 이재천에게 국방부장관이나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재가여부를 확인하라고 지시하여 동인이 부관실에서 전화를 걸려고 하자 합수부 수사관 육군소령 김대균,육군소령 한길성,육군상사 박원철등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권총을 난사하여 상관인 이재천과 경호장교 육군대위 김인선등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그들의 머리와 허리 등에 총상을 입히는데 그쳐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그 무렵 허삼수·우경윤은 정승화 총장을 끌고 나오던 중 우경윤이 성명불상자로부터 총격을 받고 쓰러지자 부관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길성이 허삼수를 도와 정승화 총장의 양팔을 붙잡고 박원철은 엠(M)16소총 개머리판으로 응접실 대형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정승화 총장을 위협하면서 함께 끌고 나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태워 19·30경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연행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12 18·20경 위 이학봉,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 정동렬과 함께 서울 종로구 삼청동소재 국무총리공관으로 가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총장이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은 새로운 혐의 사실이 발견되어 연행.조사하여야 하겠으니 재가하여 주십시오』라고 요구하였다가 현직 계엄사령관을 연행.조사하는 것은 중대한 사안이므로 국방부장관의 의견을 듣지 않고서는 재가를 해줄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20:20경 위 정동호·고명승에게 국무총리공관을 장악하여 출입을 통제하라고 지시하고 정동호·고명승 등은 그시경 대통령의 승인이나 대통령 비서실과의 협의 없이 청와대 경비업무를 담당하는 제55경비대대 부대대장 육군소령 권중원 및 5분대기조 24명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출동하여 20·40경 대통령 특별경호대장 육군중령 구정길과 그 대원들의 무장을 해제시킨후 그곳 막사에 억류하고 위 제55경비대대 2개 제대 병력 64명을 추가로 출동시켜 그 일대에 배치함으로써 국무총리공관을 장악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12 21·30경 위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백운택·박희도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가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집단으로 정승화 총장의 연행. 조사를 재가해 달라고 재차 요구하였으나 다시 거절당하고 그무렵 육군 정식지휘계통에서 정승화 총장의 원상복귀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피고인등을 반란군으로 규정하여 진압할 움직임을 보이자 피고인등은 계엄지역에서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사전승인을 받지 아니하거나 명시적인 병력출동 금지명령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지휘하에 있는 병력을 동원하여 선제공격하기로 하고 그 사실을 숨긴채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지시에 따라 출동할 가능성이 있는 제9공수여단,제26사단,수도기계화사단등에 전화를 걸어 그 부대장이나 참모들에게 병력을 출동시키지 말아 달라고 회유하여 각 부대의 출동을 사전에 저지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12 23·00경 위 박희도에게 제1공수여단 병력을 출동시켜 국방부와 육본을 점령하고 국방부장관을 보안사로 연행해오라고 지시하고 위 조홍에게는 수경사 헌병단 병력을 출동시켜 수경사에 있는 육본 지휘부와 수경사령관을 체포하라고 지시하고 위 최세창에게는 특전사령관을 체포한후 제3공수여단 병력을 경복궁으로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24·00경 위 장기오에게는 제5공수여단 병력을 출동시켜 국방부와 육본을 점령하라고 지시하고 피고인 노태우는 12·12 24·00경 위 구창회에게 중앙청으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황영시는 12·13 00·30경 위이상규에게 중앙청으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01·10경 위 박희도에게 고려대학교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위 박희도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12·13 00·05경 서울 강서구 공항동소재 제1공수여단 연병장에서 제 1,2,5,6대대 병력 1천5백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행주대교·능곡·수색을 거쳐 01·35경 용산 삼각지에 도착한후 제1,2대대 병력은 육본 정문에 근무중인 헌병등을 무력으로 제압한후 무장을 해제시키고 안으로 진입하여 육본 건물을 점령하고 제5,6대대 병력은 국방부정문에 근무중인 헌병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국방부 청사를 점령하고 그 과정에서 제5대대 제15지역대 소속 성명불상 장병들이 국방부 초소에 근무하는 초병 육군병장정선엽에게 총격을 가하여 살해하고 02·40경 국방부장관실에 난입하여 합동참모의장육군대장 김종환등 장성 8명의 무장을 해제시킨 다음 국방부 청사를 수색한 끝에 03·50경 지하 1층 상황실 입구에서 국방부장관 노재현을 발견하여 보안사로 연행하고, ○위 최세창은 12·12 23·30경 특전사령부(이하 「특전사」라 한다) 제3공수여단 육군중령 박종규에게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 육군소장 정병주를 체포하라고 지시하고 박종규는 24·00경 서울 송파구 거여동 소재 특전사에서 제3공수여단 제15대대 소속 1개 지역대 병력 38명으로 하여금 사령부 외곽을 포위케 한 다음,육군대위 김흥열,육군대위 나영조,육군중사 신현수,육군하사 성명불상 6명과 함께 안으로진입하여 위 정병주와 비서실장 육군소령 김오랑이 집무실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육군하사 성명불상 6명이 이들에게 엠(M)16 소총으로 집중사격을 가하여 상관인 김오랑을 살해하고 상관인 정병주를 살해하려 하였으나 제1수장골무지우부개방성분쇄골절상을 입히는데 그쳐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위 최세창은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12·13 02·00경서울 송파구 거여동 소재 제3공수여단 연병장에서 2개 대대 병력 6백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천호대교·강북로·한남동을 거쳐 03·00경 경복궁으로 진주하고, ○위 장기오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제5공수여단 제23대대장육군중령 정낙준과 제26대대장 육군중령 장용주에게 병력출동을 지시하고 정낙준·장용주 등은 12·13 02·00경 인천 북구 부평동 소재 제5공수여단 연병장에서 제23대대 및 제26대대 병력 4백80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경인고속도로,제1한강교를 거쳐 03·25경 용산 삼각지에 도착하였으나 국방부와 육본이 제1공수여단에 의해 이미 점령되어 있어 효창운동장으로 이동하여 진주하고, ○위 조홍은 12·12 23·30경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에게 당시 서울 중구 필동 소재 수경사에 모여 있던 위 장태완·윤성민,육본 작전 참모부장 육군소장 하소곤,합동참모본부장 육군중장 문홍구 등 육본측 장성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하고,신윤희는 12·13 03·00경 헌병단 소속 육군대위 임대식·윤태이 등으로 하여금 헌병 55명을 지휘하여 사령부 외곽과 1,2층 복도를 포위케 한 후 03·40경 육군대위 한영수,육군대위 이재우,헌병단 정보과장 군무원 최순호,성명불상 헌병 5명과 함께 사령관실로 진입하여 장태완·윤성민·하소곤·문홍구 등을 체포하고 그 과정에서 한영수가 엠(M)16 소총 1발을 발사하여 상관인 하소곤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좌흉부관통상을 입히는데 그쳐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위 이필섭은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구창회의 지시를 받아 12·13 02·20경 경기 고양군 벽제읍 소재 제29연대 연병장에서 제29,30연대 병력 1천3백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구파발·홍은동을 거쳐 03·30경 중앙청으로 진주하고, ○위 이상규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제16전차대대 대대장 육군중령 김호영에게 병력출동을 지시하고 김호영은 12·13 02·30경 경기 파주군 금촌읍 아동리 소재 제2기갑여단 연병장에서 제16전차대대 전차 35대와 병력 1백80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통일로·구파발·서대문 등을 거쳐 03·25경 중앙청으로 진주하고, ○위 박희도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위 송응섭에게 병력출동을 지시하고 송응섭은 12·13 03·30경 고양시 신도읍 삼송리에 집결한 제90연대 병력 1천1백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홍은동·세검정을 거쳐 06·20경 고려대학교 운동장으로 진주함으로써 계엄지역에서 각 지휘관이 권한을 남용하여 부득이한 사유없이 부대를 각 진퇴시키고 정당한 이유없이 부대를 인솔하여 각 수소를 이탈하고 상관인 김오랑을 살해하고 상관인 이재천·김인선·정병주·하소곤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각 미수에 그치고 초병인 정선엽을 살해함과 동시에 피고인 전두환은 수괴로서,같은 노태우는 중요업무종사자로서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것이다.
  • 「12·12전 최 전대통령 조사」 자료 내용

    ◎“김재규에 「계엄」 알려줘 내란방조” 추궁/“시해범 체포지시 왜 안했나” 압박­신군부/약점잡혀 정 총장 연행 재가→하야­최씨 최규하 전대통령이 12·12사건이 일어나기 12일전인 79년12월1일 신군부측에 의해 내란방조혐의로 처음 조사받았다는 사실은 최근 최전대통령의 「진술거부」와 관련,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6월과 8월 2차례 검찰에서 소환조사를 받은 이학봉 전의원의 피의자 신문조서내용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측의 정권탈취음모가 이때부터 이미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된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사상 유례가 없는 피의자조사는 그 이후의 12·12 정승화 육참총장연행 재가강요,80년 4월14일 전보안사령관의 중앙정보부장 겸직발령 실현 등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12·12사건의 실체와 그 성격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검찰은 전씨를 비롯한 핵심측근들의 내란죄 성립을 지난해 파악하고도 군사반란죄부분만 혐의를 인정한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문조서에서 신군부측은 최전대통령에게 시해범 김재규 체포를 지시하는 등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다음 날 새벽 4시부로 계엄이 선포된다는 사실을 김재규에게 알려 주는 등 내란을 방조한데 대한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따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따라서 결정적인 약점을 잡힌 최전대통령이 이후 12월12일 정승화 육참총장의 연행재가와 5·17비상계엄확대 등 신군부측의 계속된 강압적 요구에 이끌려다니다 결국 하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지금까지 신군부측이 최전대통령을 피의자신분으로 조사한 사실이 공개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검찰의 12·12 및 5·18사건발표에도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12·12사건 재수사가 막바지에 이른 지난 14일 민주당 강창성의원이 『최전대통령은 80년3월12일 전 당시보안사령관·이 당시보안사대공처장겸 합수부 수사1국장에 의해 대통령집무실에서 박대통령시해사건의 방조혐의로 4시간동안 조사받았다』고 폭로했으나 근거를 대지는 못했다. 따라서 최전대통령의 조사를 직접 담당한 이학봉전의원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의 공개로 강의원이 주장한 것보다 무려 석달전에 신군부가 최전대통령을 직접조사한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그렇다면 검찰이 이같은 사실을 지난해 12·12사건조사당시 밝혀 놓고도 공개하지 않고 은폐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엇갈린다.우선 당시 「조사의 한계」를 안고 있던 검찰이 이 사건을 불기소처분하기 위해서는 신군부측의 내란죄 입증에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최대통령조사사실을 숨길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같은 질문을 이학봉·장세동·유학성·허삼수·허화평씨 등 전씨의 핵심측근 5명에게 모두 던졌으나 이씨만 구체적으로 답변했을뿐 나머지 4명은 『모른다』고 잡아뗀 것으로 피의자신문조서에는 기록돼 있다. ◎최규하 전대통령 성명서 요지 친애하는 국민여려분.작금의 상황으로 말미암아 부득이 국민앞에 본인의 입장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게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88년 국회광주특위 이래 지난 7월 검찰에서의 12·12와 5·18고소·고발에 이르기까지 국회와 검찰에서는 본인에 대한 증인 또는 참고인 조사를 요구하였으며 본인은 그때마다 당국요구에 그대로 따르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온 바 있습니다.보도를 통해 다 아시겠지만 이를 다시 요약하면 『대통령 재임중의 공적인 행위,즉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책무에 따라 처리된 국정행위에 대해 일일이 조사를 받아야 한다면 국정은 소신대로 처리할 수 없으며 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전례를 남기는 것이고 또 그러한 전례는 앞으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마저 없지 않아 이러한 전례는 앞으로 수많이 탄생할 대통령들의 직무수행에 두고 두고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예상되는 바 전직대통령으로서는 후임 대통령들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전례를 남겨 부담을 줄 수 없다는 점과 비록 일시적 비난의 화살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국가의 정통성과 계속성을 유지함과 아울러 대통령직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택해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라고 생각하여 왔고 지금도 그 소신과원칙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소신 때문에 본인이 검찰에 직접 진술은 하지 않았으나 진실규명의 협조차원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진상이 알려지도록 노력한 바 있습니다.12·12사건 조사에 있어서도 그날 밤을 같이 지새며 공관접견실에서 사태에 대처한 국무총리와 재임시 보좌하던 분들이 이미 참고인 자격으로 대통령에 관한 사항까지 소상히 진술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5·17사태의 조사 경우에도 그동안 검찰은 본건과 관련하여 80년 당시 국무총리·관계장관·측근보좌관·각군 사령관·관계 공무원 및 기타 장병들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참고인들의 진술을 청취하여 당시 상황이 파악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10·26사건이라는 우리 역사상 유례없는 국가적 비극과 비상사태에서부터 1980년 여름에 이르는 격동기는 첨예한 남북간 군사적 대치상황 속에서의 안보문제의 심각성 뿐만 아니라 제2차 석유파동의 엄습에 의한 경제적 난국,극심한 사회혼란 등 참으로 예측불허의 국가적 위기였으며 본인과 정부는 이 일련의 위기상황을 극복하는데나름대로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검찰 2차방문 조사 시도 안팎/최씨 평소 생각 전달한 듯/최씨측근 전언/“금품수수설엔 진노” ○…서울 서교동 최규하씨의 사저에는 이날 하오 3시 28분쯤 김상희부장과 이문호검사 등 수사팀 3명이 도착,대기중이던 최흥순비서실장 등의 안내로 최씨를 2차 방문. 김부장과 이검사는 질문자료가 담긴 파란색 봉투를 들고 차에서 내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최비서실장과 악수를 나눈 뒤 『오랜만입니다』라고 짧게 인사말을 건네고 부속실로 직행. ○…최비서실장은 『최씨가 전두환씨로부터 1백75억원을 받았다는 민주당 강창성의원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수사가 끝나면 밝혀질 것인데 왜 미리 지레 짐작등을 하느냐』고 반문. 한 측근은 『이기창 변호사와 평소 친분관계가 있던 강의원이 서교동측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금품수수설을 제기해 어르신이 몹시 분노했다』면서 『명예훼손혐의로 소송을 제기키로 하는 등 법적대응을 신중히 검토한 것으로 안다』고 전언. ○…검찰수사팀이 2차 방문한지 1시간여만인 이날 4시30분쯤 최비서실장과 이검사가 최씨 집을 나와 검찰수사가 끝난 것이 아니냐는 분위기가 팽배.그러나 검찰조사가 이루어졌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최비서실장이 『아니야』라고 답해 검찰수사가 순조롭지 못함을 간접 시사. ○…최전대통령에 대한 2차 방문조사를 마친 검찰수사팀은 하오 4시50분쯤 최씨 집을 나서면서 『수사가 잘 됐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최씨는 검찰의 수사에 응했다.다만 질문내용에 대해서는 종전 입장과 같이 국민과 국익을 위해 아직 밝힐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면서 답변을 회피. 최씨 측근들은 기자들과의 전화통화에서 『최 전대통령이 검찰의 2차방문 조사에서는 나름대로 평소생각을 전달한 것 같다』고 전언,1차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조사가 진행됐음을 시사.
  • 「대쪽판사」부친 이어 학계서 두각/「이수성 총리 4형제」 스토리

    ◎동경대수석졸업 외삼촌 영향 “학문의 길”/모두 서울대 출신… 세동생부인도 강단에 이수성 국무총리 내정자는 명문가 출신으로 4형제 모두 그 맥을 잇고 있다.맏아들로 서울대 총장출신인 그에 이어 수인(54)수윤(52)씨는 교수로,수억씨(50)는 언론인으로 재직하고 있다. 부친 이충영씨(6·25때 납북·작고)는 일제 때 동경제대를 나온 법조인 출신.일제때 평양 복심법원 판사로 재직중 창씨 개명을 거부하고 판사직을 내던지는 등 「대쪽 판사」로 명성을 날렸다. 어머니 강금복여사(85)도 일본 여자대학 국문과를 졸업한 재원이다.외삼촌 강정택씨 역시 제일고보(현 경기고)를 거쳐 동경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동경대 강단에 섰던 인물이다.이총리 내정자 가족들이 학문의 길을 택하게 된 것도 외삼촌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4형제는 모두 서울대를 나왔다.이총리 내정자는 법대,수인씨는 경제학과를 나와 정치학과로 학사편입,수윤씨는 문리대 철학과를 나와 정치학과로 학사편입,수억씨는 정치학과 출신이다.이총리 내정자와 수인·수윤씨는 서울고 동문이고,수억씨는 경기고를 나왔다. 이총리 내정자 집안은 대부분이 교수로서의 길을 가고 있다.그에 이어 수인씨는 영남대 정외과,수윤씨는 교원대 철학과 교수다.또 수인씨의 부인 김인자씨는 영문학,수윤씨의 부인 권희경씨는 음악전공으로 대학강단에 서고 있으며 수억씨의 부인 전수용교수도 경희대 영문과 교수로 있다. 하지만 4형제가 걸어온 길은 저마다 다르다.형법학자로 지난 72년 이후 서울대 교수로 재직해 온 이총리 내정자는 지난 1월 직선 최다득표로 서울대 총장에 선출되는 등 교수들로부터 신망이 두텁다. 영남대 교수인 둘째 수인씨는 인혁당 사건과 관련,「청맥회」에 연루돼 구속되기도 했다.수인씨는 젊은 재야 학자들의 모임인 「한국정치연구회」회장을 지내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였다.이때의 인연으로 국민회의 김대중총재에게 발탁돼 지난 90년 밀입북혐의로 구속된 서경원의원이 내놓은 전남 함평·영광지역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영남사람임에도 당선돼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셋째 수윤씨는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해온 두 형과는 달리 학문에만 몰두해 왔다.지금은 교원대 교수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있다.서울고 시절에는 「교내 제일의 주먹」으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넷째 수억씨는 서울대 대학신문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고 미국 시카고대에 유학했다가 SBS출범 때 언론계에 몸담았다.
  • “최 전 대통령은 역사의 죄인”/장태완 전 수경사령관 인터뷰

    ◎헌법의무 위반… 피의자로 조사 받아야/늦게나마 역사 재정립 이루어져 다행 『12·12당시 대통령이자 군최고통수권자였던 최규하 전대통령은 군사반란을 막지 못한 역사의 죄인이며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일부 정치군인들의 쿠데타를 막지 못한 저 또한 역사의 죄인입니다』 지난달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재향군인회총회에 참석했다가 16일 귀국한 장태완 전수경사령관은 이날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우성1차아파트에서 서울신문기자를 단독으로 만나 『이제서야 바로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잡는 계기가 마련됐다』며 16년동안 억눌렸던 소회를 피력했다. 다음은 장씨와의 일문일답. ­전두환씨가 5공 정통성수호를 외치며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정당성이 전혀 없다.12·12 및 5·18 희생자들에게 진정으로 먼저 사과해야 한다.16년이나 흘렀다고 하지만 국민정서를 모른다고 하는데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최전대통령이 검찰조사를 거부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최전대통령과 정승화 전총장 그리고 나는 12·12를 막지 못한 역사의 죄인들이다.헌법에 규정된 국권수호의무를 지키지 못한 최전대통령은 참고인으로서가 아니라 죄인으로서 검찰의 조사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최전대통령이 12·12를 진압하지 못한데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말인가. ▲문관 출신이지만 최전대통령에게는 당시 국군통수권이 있었다.국방장관이 없었다고 하지만 총리공관에서 1㎞쯤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을 직접 수습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대통령에게는 그런 모든 능력과 권한이 부여돼 있다.군령권행사를 전혀 안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간다. ­12·12 당시와 지금 최전대통령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이 있는가. ▲최전대통령은 근본적으로 대통령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그 당시 곧바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었어야 했다. ­장세동 전경호실장과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는데. ▲장씨는 대위때부터 데리고 있어 인간관계는 좋다.12·12 이후에도 명절때는 가끔 찾아왔다.나도 12·12를 진압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는데 전씨도 희생자들에게 사과해야 하는것 아니냐. ­이번 사건이 어떻게 처리됐으면 하는가. ▲반란죄를 엄정하게 다스림으로써 12·12와 같은 쿠데타가 다시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역사바로세우기가 실제로 이렇게 이루어질지는 몰랐다.늦었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생각한다.
  • 전씨 비자금 규모 조만간 밝혀질듯

    ◎“실명제 대비 분산예치” 소문 설득력/양도성 예금증서만 2백억 넘어/장세동·안현태씨 깊이 관여 시사 검찰이 1백83개의 전두환 전대통령 비자금계좌에 대해 압수수색에 들어감으로써 전씨의 비자금전모도 조만간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검찰이 이처럼 전씨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계좌에 대해 무더기로 추적에 들어감에 따라 전씨측이 실명제에 대비해 비자금을 분산예치했다는 항간의 소문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계좌가 분산된 금융기관만 해도 지방은행을 포함한 1금융권이 15곳,투금사 9곳,증권사 5곳 등 29개 금융기관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수십개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검찰이 전씨의 계좌로 1백83개나 적시된 것으로 보아 비자금규모도 처음 추정되던 것보다는 월등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테면 신한은행 본점에서는 88년6월 2백34장이나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가 거래된 것으로 나타났다.당시 CD의 최소거래단위가 5천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1백10억원이상이 움직였다는 계산이 나온다.이번 압수수색영장에 명기된 CD가 모두 4백54장이므로 CD를 이용한 거래규모만 2백억원이 넘는 셈이다. 물론 1백83개 계좌중 상당수는 입금된 돈이 거쳐간 연결계좌일 수도 있고 전씨 측근의 계좌일 수도 있다.그러나 계좌가 다양한 형태로 광범위하게 관리된 것으로 보아 전씨의 비자금규모가 항간의 소문처럼 1조원까지는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노태우씨 못지 않을 것이라는 게 검찰주변의 얘기다. 또 이들 계좌를 전청와대경호실 경리과장 김종상씨가 관리해온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노씨 비자금사건과 마찬가지로 청와대경호실이 비자금관리의 산실이었음을 입증하기 때문이다.특히 이는 전씨의 핵심측근인 장세동·안현태 5공 청와대경호실장이 비자금문제에 깊이 관여돼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면 검찰은 어떻게 전씨의 비자금계좌를 이처럼 한꺼번에 파악할 수 있었을까. 이종찬 특수부 본부장은 15일 『당초 12·12 및 5·18사건을 재수사할 때는 과거와는 다른 무엇이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해 검찰이 사전에 상당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검찰주변에서는 김종상씨를 소환한 다음 날 대규모 압수수색이 이뤄진 점으로 미뤄 노씨 비자금사건의 단초가 된 이태진(이태진)전청와대경호실 경리과장과 마찬가지로 김씨의 진술이 검찰의 계좌파악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 범국가적 안보태세 강화를(사설)

    최근 북한이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전투기와 각종 중화기들을 전진배치하는 등 6·25이후 처음보는 이례적인 군사행동을 취하고 있는 사실로 한반도긴장이 갑자기 고조되고 있다.북한의 행동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대통령주재 통합방위중앙회의가 개최되는가 하면 한미안보평가회의가 소집되었으며 15일엔 안기부장의 국회 안보위원회 북한정세동향 보고회도 열리는등 분석과 평가가 분주하다. 현재로선 일반적으로 심각한 대남도발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평가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보는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그러나 안기부장의 보고는 북한의 책동으로 볼 때 금년 겨울과 내년 춘궁기가 한반도위기 관리의 중요기간이며 경제파국의 상황에서도 전쟁준비만 강화하는 기이한 체제를 지속하고 있는 북한은 전쟁준비가 완료된 상태로 김정일의 의지에 따라 대남도발을 감행할 위험한 상황이라는 종합평가를 내리고 있다.남북한의 국내정세와 주변여건을 종합분석한 안보위기의 결론인 것이다. 그러한 평가에 우리는 전적으로 공감한다.북한의 의도가 어디에 있건 공격적 군사태세 강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안보에 대한 군사위협의 강화를 의미한다는 제로섬의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있어 지금 중요한 것은 북한의 의도가 실제 도발에 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북의 도발을 전제로 하는 만반의 대응태세를 강구해 나가는 일이라 생각한다. 정부의 신속한 상황분석과 대응은 당연한 일이다.정부는 물론 국민의 올바른 상황인식도 중요하며 안보의 경우도 말아닌 실천이 중요함을 잊어서는 안된다.안보위협을 지적하면서도 행동적 대응이 따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일선장병들이 실제의 안보위기의식을 느끼도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뿐만 아니라 북이 제기하는 군사위협의 정치적 의미도 강한만큼 사회적 안보분위기 조성 및 민관군의 범국가적 총력안보태세 확립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EU,오늘 남미 메르코수르와 경제·무역협정

    ◎세계시장 석권 교두보 마련/브라질 등 4국 가입 관세동맹… 통합땐 GDP 8조달러로/지중해·서남아 이어 미 「안마당」도 선점 유럽연합(EU)이 적극적인 세계시장 공략에 나섰다.미국·일본과 함께 세계시장을 3분하고 있는 EU가 내부 결속을 다지며 공격적인 세계경영으로 돌아선 셈이다. 첫 신호로 EU는 15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EU 정상회담에서 남미의 자유무역그룹 메르코수르와 2000년초 상호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목표로 경제·무역 협정을 체결한다.이번 협정으로 두 블록이 자유무역지대로 통합될 경우 인구 5억5천만명,국내총생산(GDP)7조9천4백억달러로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의 6조6천억달러,일본 3조3천4백80억달러보다 큰 세계최대의 경제블록이 형성된다. 메르코수르는 남미의 빅 4국인 브라질과 아리헨티나,우루과이,파라과이등이 지난 1월 EU형 공동시장 건설을 목표로 결성한 관세동맹.인구 1억9천만명,국내총생산(GDP)4천2백억달러의 시장으로 조만간 칠레와 볼리비아도 가입시켜 남미전체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관세는 물론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이 최종 목표다. 이번 EU­메르코수르의 협정체결로 EU가 미국의 안마당격인 남미시장에 교두보를 확보,미국에 뼈아픈 일격을 가한 것으로 분석된다.당초 미국은 부시 전대통령이 제창한 미주 활성화 구상(EAI)에 따라 지난해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의 결성에 이어 올들어 메르코수르와 본격적인 시장통합 협상을 진행중 EU에 선수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세계시장 석권을 위한 EU의 글로벌전략은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지난 13일엔 EU의회가 EU­터키간 관세동맹협정을 승인했다.중동의 관문,동·서양의 길목에 위치한 터키를 EU정회원으로 가입시켜 서남아시아 시장공략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다는 전략이다.EU는 또 최근 이집트와 이스라엘등 지중해 연안국 12개국과 정상회담을 갖고 경제통합 방안을 논의했다. 경제전문가들은 이번의 EU­메르코수르간 통합협정을 계기로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놓고 앞으로 미국,일본,EU간의 힘겨루기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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