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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씨 비자금」과 과거청산의 불가피성/김석준이대교수(시론)

    전두환씨가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천문학적인 거액의 비자금을 정치인은 물론 공직자와 언론인등에게까지 뿌렸다는 검찰발표와 언론의 보도는 모든 국민들에게 분노와 충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군사반란과 내란의 수괴」혐의로 고향집에서 수사관들에 의해 서울로 압송되고 구속후 단식을 벌일 때 일부 국민들이 인간적으로 동정심을 보냈었다면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이번 사건이 잘 말해주고 있다.또한 그의 옛 부하들이 「골목성명」이나 골프모임에 떼지어 몰려다니며 위세를 과시하고 전씨 대신 감옥에 드나들 때 일부 언론과 국민들은 이들의 인간적인 의리를 부러워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 이들에게 얼마나 철저히 속았던 것인가를 이번 사건은 밝혀주고 있다. 전씨가 여론무마용으로 1백50억원을 언론인에게 건네고 여·야정치인 2백여명에게 5백억원을 뿌렸으며 자신의 경호실장이었던 장세동씨가 감옥에 다녀온 대가로 34억원을,그리고 안현태씨에게 10억원을,그리고 부하들과 골프모임을 가질 때마다 자신의 2년치 연금에 해당하는 2억원씩을 한번에 쓰는등 1천억원에 가까운 비자금을 사용해왔다는 검찰발표는 국민들을 아연실색케 하고 있다.만일 노씨와 전씨의 사건이 밝혀지지 않고 당초 그의 계획대로 금년 2월에 「원민정당」을 걸성하고 4·11총선 등에 참여하는 정치활동을 허용하였다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어떤 이는 그가 5·18특별법에 대한 위헌심판을 청구하였듯이 헌법이 보장한 결사의 자유에 따라 자기돈으로 정당을 자유롭게 만들고 정치활동을 할 수 있다고 강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과연 그러한가.그가 동원하여 사용하는 비자금이 자신의 돈인가.그는 12·12와 5·17의 두차례 쿠데타를 통해 헌법질서를 파괴하고 내란과 군사반란을 통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국가를 개인의 것으로 삼는 국가사유화를 통해 정치자금과 국가권력을 행사했던 사람이 아닌가. 이번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과거청산의 불가피성을 거듭 확인하면서 새로운 역사의 전개를 위해 각자 최소한 해야할 일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검찰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전씨 비자금의 사용처를 철저히 추적하여 밝혀내야 한다.특히 5공신당의 창당과 관련하여 돈을 받았다는 2백여명의 정치인과 여론무마용으로 돈을 받았다는 언론인,공직자,야당 인사등의 명단과 액수를 밝혀야 한다. 둘째,여·야정당은 이 사건을 계기로 여기에 관련된 정치인들을 정계에서 추방하고 관련자들은 스스로 사퇴하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여·야정당의 색깔논쟁이나 보수경쟁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민족사에 죄악을 짓는 것인가를 냉철히 반성해야 한다.이 시대의 정치인들은 과거청산과 새역사 창조에 모든 노력을 집중하여 경쟁해야 할 때임을 깨달아야 한다. 셋째,언론도 이번 사건의 진상을 스스로 밝히는데 언론 특유의 능력을 발휘하여 언론의 명예와 품위를 지킴은 물론 언론본연의 기능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최근 벌이고 있는 「역사바로세우기」의 경우 언론도 주체적으로 언론 자신의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5·17 이후 언론사 강제통폐합,언론인 숙정,5·6공 정당성 홍보도구로의 전락,살아남은 언론기관의 재벌화등이 비판받고 있는 만큼언론의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과거청산과 역사바로세우기 노력이 있어야 한다. 넷째,전두환씨와 관련인사들의 민족과 역사에 대한 반성과 속죄가 있어야 한다. 쿠데타로 헌정을 파괴하고 5·18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위에 국가권력을 장악하여 국가사유화와 부정축재를 일삼았다면 자숙하고 법의 심판을 겸허히 기다려야 할 것이다.백담사로 떠나면서 보였던 참회의 눈물이 위선이었음을 더 이상 폭로하지 말고 진실로 다시 참회하는 모습을 실천을 통해 입증하기 바란다. 우선 가장 시급한 일은 누구에게 얼마를 주었는지 명확히 밝혀 정계와 언론계등이 국민의 신뢰를 조속히 회복할수 있게 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은 더욱 냉철히 민주주의의 주인으로 당당히 서야하겠다.충격과 분노에서 벗어나 이성과 합리의 정치가 조속히 정착되도록 이번 선거부터 철저히 주인의 역할을 해야 한다.검찰과 언론,그리고 전씨가 밝히지 않더라도 누구가 관련되었을지를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 전씨와 관련된 사람이 누군지를 여당과 공직은 물론 야당과 언론계에서도 국민이 찾아 밝혀낼수 있을 것이다.시민단체와 야당 및 언론 스스로가 이 일을 맡을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청산을 보수의 이름으로 가로막거나 이성의 정치를 지역주의나 감성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정치세력과 여론주도층의 활동을 철저히 김시하여야 한다.전씨 비자금은 과거청산 대상의 일부일 뿐이다.이 사건을 검찰과 전씨가 앞장서서 책임있게 밝혀야 한다.여·야당과 언론도 진상규명을 통해 스스로의 결백과 죄과를 밝혀야 한다.이에 대한 심판은 국민의 몫이다.
  • 「전씨 신당」 어디까지 진척됐었나

    ◎“90년부터 5년간 준비… 「창당 주비위」 구성”/지구위장도 내정… 법절차 마무리 직전까지 간듯 전두환전대통령이 창당하려했던 「원민정당」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창당작업이 구체화됐을까. 검찰이 밝힌대로라면 「원민정당」은 전씨 자신이 총재 또는 대표를 맡기로 하고 지역별로 지구당위원장까지 거의 내정한 상태였다는 분석이 가능하다.지난해말 전씨 및 측근들의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지 않았다면 총선을 2달정도 앞둔 지금쯤은 수면위로 부상할 만큼 골격을 갖췄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관계자는 이 부분에 대해 뚜렷한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하지만 전씨측이 신당창당 움직임을 가시화한 3당합당 직후인 90년 2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5년여동안의 준비과정을 통해 「창당주비위」까지 구성했던 것으로 암시하고 있다.즉 신당창당에 따른 법적절차를 거의 마무리짓기 일보직전에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이 불거지면서 느닷없이 검찰의 수사망에 걸려 들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씨가 관리해 왔다고 진술한 여·야정치인과 언론인 등 각계인사 2백여명도 지구당창당에 따른 최소한의 필수인력이 아니었겠느냐는 분석이다. 돈과 정치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전씨가 이 과정에서 정치자금으로 뿌린 돈은 확인된 액수만 자그만치 8백80억원이다. 8백80억원은 돈의 성격에 따라 대략 90년 2월 전과 후로 나눠 다르다. 13·14대에 2백30억원을 지원한 것과 88년 11월 5공청산과정에서 여·야정치인과 언론계 중진 인사들에게 살포한 1백50억원 등은 엄밀히 말하면 전직대통령의 신분으로 자신이 창당했던 민정당소속 의원들을 국회의원에 한명이라도 더 당선시킬 목적과 함께 백담사로의 「유배」를 막아 보려는 안간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90년 2월이후부터 구속직전까지 뿌린 5백억원은 전씨가 본격적으로 신당창당만을 위한 돈이었음이 분명하다.검찰은 『전씨가 5공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6공세력에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2백여명의 정치권인사들에게 구속직전까지도 골프회동과 비밀집회 등을 통해 돈을 지원해 온 것으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전씨에게 돈을 받은 인사 2백여명이 누구이며 얼마씩을 지원받았는지에 대해 전씨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그러나 전씨로부터 돈을 받은 인사 2백여명은 ▲88년 13대 총선에 출마한 당시 민정당의원 ▲92년 14대 총선에 나선 민자당소속 민정계의원 ▲88년 11월 당시 신문·방송에 몸담고 있던 언론계 중진인사 ▲장세동·안현태씨 등 핵심측근등으로 구성됐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 「전씨 창당 시도설」… 김성호부장검사 문답

    ◎돈받은 사람 아직 구체적 확인 못해/아들 회사설립에도 돈쓴 흔적 발견 서울지검 특수3부 김성호부장검사는 3일 『전두환전대통령은 6공세력이 5공의 정통성을 부인하자 정치재개를 시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정치인등에게 모두 8백80억원을 제공했다』고 밝혔다.다음은 일문일답. ­전씨가 창당계획 등에 대해 언제 진술했나. ▲장세동전경호실장에 대한 계좌추적이 끝난 때로 기억된다.한번에 진술을 다한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에 걸쳐 조금씩 얘기했다. ­전씨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을 사법처리할 것인가. ▲그 문제는 일단(사용처내역이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난 다음 생각할 문제다.정치자금법 위반은 공소시효가 3년이기 때문에 92년 전에 돈을 받았다면 처벌할 수 없다.또 당시 현금으로 전달됐기 때문에 돈을 받은 사람을 밝혀내기조차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전씨가 「원민정당」이란 정당 가칭까지 만들어놓았을 정도라면 정치재개를 위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준비했다는 느낌이 드는데. ▲창당 뒤 누구를 영입할 것인지 정도는 계획한 흔적이 있다.그러나 더이상 구체적인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88년 총선때는 2백억원을 지원해 놓고 92년에는 30억원밖에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노태우전대통령이 88년 총선결과를 낙관했으나 전씨가 보기에는 위태로워 많이 지원했다고 밝혔다.반면 92년에는 전씨로부터 등을 돌린 사람은 빼고 신임이 가는 의원에게만 돈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전씨가 창당하려 한 신당에서 전씨의 위치는. ▲전씨 스스로가 대표나 총재라고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주도적인 위치에 있으려 한 것은 사실이다. ­회사설립자금에도 전씨 돈이 사용됐다는데 아들 재국씨가 운영하는 출판사 「시공사」가 그 사용처인가.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어쨌건 그렇게 큰 회사는 아니다. ­비자금사용처 수사에서 전씨로부터 돈을 받은 사람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장세동·안현태전경호실장 두 사람밖에 없다. ­그 외 현재 계좌추적중인 사람은. ▲아직 없다. ­돈을 받은 사람의 명단은 나중에 밝힐 것인가. ▲밝혀지면 발표할 수도 있지만….일단 그때가서 판단해야 할 것같다. ­신당창당하는 데 최소 2천억∼3천억원이 든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전씨가 보유하고 있는 돈도 그 정도 된다는 얘기 아닌가. ▲글쎄요.
  • 「전씨돈」받은 2백여명 밝혀질까/「5공 신당자금 살포」 수사전망

    ◎백담사 가기전 여론무마용 150억 뿌려/정치법 적용 거액받은 정치인 사법처리 가능성/명단 밝혀지면 사회전반 큰 파장일듯 전두환전대통령이 재임중 모은 비자금 가운데 8백80억원을 신당창당 준비를 위한 정치자금으로 사용한 사실이 검찰수사과정에서 드러남에 따라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킬 전망이다. 특히 오는 4월11일 15대 총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불거져 나온 전씨의 「신당창당 기도설」은 총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전씨가 대통령직을 퇴임한 이후인 88년 4월 13대 총선,88년 11월 백담사에 들어가기 전,92년 4월 14대 총선등을 거쳐 지난해 12월3일 구속되기 직전까지 5공 출신 정치인을 포함,사회 각계인사 2백여명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왔다는 진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기간동안 순전히 정치목적으로 사용한 돈이 8백80억원이라는 것이다. 전씨는 90년 2월 3당합당으로 민정당이 해체되고 5공 정부의 정통성이 부인되기에 이르자 흩어진 5공 인사를 규합하여 정치 재개를 결심했다는 게검찰관계자의 설명이다. 검찰은 전씨가 오는 2월 구민정당을 부활시킨다는 의도에서 당명을 가칭 「원민정당」으로 정한 뒤 4월 총선에도 참여,정치 전면에 나서기 위한 정지작업을 벌여왔다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전씨가 측근들과의 골프회동 등을 통해 정치재개를 꾀하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검찰은 이에 따라 전씨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과 사회인사들을 파악하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이와 관련,『수사진을 보강해서라도 비자금의 사용처를 밝혀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어 조만간 돈을 받은 정치인등의 이름이 차례차례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 현시점에서 공소시효가 3년인 정치자금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정치인에 대해서는 돈의 액수에 따라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물론 전씨가 돈을 건넨 사람의 명단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어 계좌추적에 의존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현재 검찰은 장세동전안기부장과 안현태전경호실장이 전씨로부터 각각 34억원과 10억원을 받은 사실은 확인만확인했을 뿐이다. 여하튼 15대 총선을 목전에 두고 공천까지 확정된 이 시점에서 전씨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이 드러날 경우,정치권은 다시 한번 사법적인 처벌은 떠나서라도 도덕적 타격을 피하기는 어렵게 됐다. 이와 함께 전씨가 88년 8월 백담사로 떠나기 전 여론 무마용으로 여·야 정치인과 언론계 인사들에게 1백50억원을 뿌렸다고 진술,정치권외에도 파장은 이어질 전망이다. 검찰의 이번 수사발표 배경과 관련,일각에서는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구속된 전씨를 비롯한 5공 세력들에대한 동정론을 차단하기위해 검증되지도 않은 수사 사실을 공개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전씨의 첫공판이 26일로 연기된 것과 관련,담당재판부는 비자금 사건의 재판이 3주 늦춰졌지만 12·12 및 5·18사건에 대한 재판진행은 차질없을 것으로 전망했다.재판부는 『5·18특별법에 대한 위헌제청등에의 결정이 나오는데 2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보여 3월말이나 4월초로 예상된 두 사건의 공판은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전씨 「5공신당」 창당 기도/비자금 880억 뿌렸다

    ◎정치인 등 2백여명에/전씨 등 진술/검찰 “사실여부 자금추적 해봐야” 전두환전대통령은 지난 88·92년 총선 당시 민정당의원과 민자당내 민정계소속의원들에게 개별적으로 2백30억원을 지원한 것을 비롯,여·야 정치인과 언론인 등 각계인사 2백여명에게 모두 5백여억원의 정치자금을 지원하는 등 모두 8백80억원을 신당창당 등을 위한 정치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12·12 및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3일 전씨와 측근인사들을 상대로 비자금 사용처를 조사한 결과 『5공세력을 규합,당을 만들어 정치를 재개하는 사전 정지작업으로 각계인사 2백여명에게 5백여억원을 지원했다』는 진술을 받아 냈다고 밝혔다. 이본부장은 그러나 『전씨로부터 직·간접으로 지원금을 받은 여·야의원이나 언론인 등의 명단과 개별적인 지원액수는 장세동전안기부장과 안현태전경호실장을 제외하고 전혀 확인된 바 없으며 이는 전적으로 전씨의 진술내용이기 때문에 사실의 신빙성여부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자금추적 등을 통해 밝혀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본부장은 또 『전씨가 정치자금의 대부분을 현금으로 지원했기 때문에 누구에게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밝혀내기는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며 『설령 명단이 확인된다고 하더라도 정치자금법상 공소시효 3년이 거의 끝난 사안이므로 사법처리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덧붙였다. 검찰에 따르면 전씨는 88년 4월 총선당시 민정당의원들에게 개별적으로 2백여억원을 지원했으며 92년 총선때도 민자당소속 민정계의원들에게 개별적으로 30억원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92년 총선때의 지원금이 급격하게 줄어든 이유를 『일부 괘심죄에 걸린 인사들이 제외된 때문일 것』으로 분석했다. 전씨는 특히 88년 11월 5공비리수사가 진행되자 자신에게 쏟아지는 사회적 비난여론을 막을 목적으로 여·야정치인과 언론계인사들에게 자신이 직접 또는 측근들을 통해 모두 1백50억원을 지원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전씨는 이와 함께 90년 2월 3당합당이후 민정당이 해체되고 5공의 정통성이 부인되자 흩어져 있던 5공인사들을 규합,골프회동 등 전국에서 비밀집회를 갖는 등 신당창당을 구체화했다고 밝혔다. 전씨는 신당의 명칭을 가칭 「원민정당」으로 정했으며 올 2월에 창당,4월 15대 총선에 참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검찰은 전씨가 퇴임후 남긴 1천6백억원 가운데 9백97억원의 사용처를 밝혀 냈으며 이중에는 정치자금 8백80억원과 측근인 장세동씨와 안현태씨에게 각각 30억원과 10억원 등 40억원을 비롯,경북 봉암사건축비 10억원 등 국가에 헌납한 89억원 등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밖에도 전씨가 형 전기환씨 등 친·인척들의 부동산구입비와 생활비 및 아들 재국씨의 회사설립자금등으로 모두 20억3천4백50만원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했다.
  • 정호용·허삼수·허화평의원 영장/내란목적 살인 등 혐의

    ◎「5·18」 재수사 사실상 마루리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30일 정호용5·18 당시 특전사령관,허삼수보안사 인사처장,허화평보안사령관 비서실장 등 현역 국회의원 3명에 대해 형법상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반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정의원에게는 내란목적살인죄가 추가 적용됐다. 이로써 이 사건으로 사법처리된 사람은 추가기소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비롯,이학봉·유학성·황영시씨 등 구속기소자 3명,이희성·주영복·차규헌씨 등 불구속 기소자 3명을 합해 모두 11명으로 늘어났다. 검찰은 지난해 11월말 5·18 사건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한 지 2개월여만에 사건수사를 사실상 마무리지었다. 검찰은 5·18 당시 20사단장을 지낸 박준병의원은 5·18사건보다 12·12사건에 더 깊이 연루돼 있다고 최종 판단,5·18특별법의 위헌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사법처리를 유보키로 했다. 당직판사인 서울지법형사합의22부 유해판사는 31일 새벽 2시가 지나도록 영장관련 서류를 면밀하게 검토했으며 최욱서울지검장 등 검찰관계자들은 지난 18일 장세동·최세창씨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됐던 전철이 되풀이될 가능성에 대비, 검찰청사에 남아 영장발부를 기다렸다. 이종찬본부장은 이날 영장청구사실을 발표하면서 『일부 의원의 경우 부정비리에 대해서도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혀 이날 영장이 청구된 의원 3명의 비리에 대해서도 수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검찰에 따르면 허삼수·허화평의원은 5·18 당시 전두환보안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신군부측의 집권시나리오인 「시국수습방안」을 직접 기획하고 전군지휘관회의와 계엄확대·국회봉쇄 등 일련의 집권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호용의원은 시국수습방안 논의에 개입하는 한편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특전사령관으로 정상적인 군의 지휘명령계통을 무시하고 현지로 직접 내려가 계엄군으로 투입된 3·7·11공수여단 등의 유혈진압작전을 진두지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 정호용의원은 이날상오 검찰에 출두하면서 『사전 집권시나리오를 작성하거나 광주민주화운동을 강경진압토록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 「5·18의원」 사법처리 이모저모

    ◎영장보류 전례의식… 검찰 긴장속 대기/“세사람 모두 총선에 쓸 홍보물 제작” 검찰은 30일 하오 정호용·허삼수·허화평의원 등 국회의원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뒤 지난 23일 장세동·최세창씨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된 점을 의식한 듯 밤 늦게까지 영장 발부 여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정의원 등 현역의원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이날 자정이 넘도록 발부되지 않자 최환서울지검장과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장인 이종찬3차장 등 검찰 관계자들은 검찰청사에 남아 긴장된 모습으로 영장이 발부되기를 기다렸다. 최지검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피하며 『오늘도 밤늦게까지 남아 영장 발부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고 이차장도 31일 새벽까지 차장실에서 두문불출. 검찰의 한 관계자는 『법원이 5·18사건에 대해 지난 18일 이학봉씨 등에 대한 구속영장 심사과정에서 공소시효 기산일이 비상계엄 해제일인 81년 1월24일이라는 검찰측 주장을 받아들였으므로 이번에도 같은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본다』고 자신하면서도 『그러나 법원은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지켜지는 검찰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서 일말의 불안감을 내비치기도. 한편 당직판사인 서울지법 유해용판사는 30일 자정쯤 『심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니 새벽 2시까지는 판사실로 전화하지 말아달라』고 기자들에게 당부. ○“개인 비리도 수사” ○…검찰이 이날 브리핑에서 질문도 받지 않고 『구속된 세 의원의 부정비리 혐의도 수사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그 배경을 두고 설왕설래. 검찰주변에서는 전두환전대통령을 비롯한 5·18사건 관련자들이 끝까지 당시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대응,이들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이날 허화평의원이 검찰에 출두하면서 『옥중출마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힌 대목과 연관지어 옥중당선을 막기 위한 포석으로 평가하기도. ○“다시 시민 곁으로” ○…검찰은 이와관련,『이들 세명이 옥중출마에 대비해 총선기간동안 주민들에게 배포할 자신들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 등을 제작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 특히 허화평의원은 검찰에 출두하면서 옥중출마 의사를 명백히 밝힌 뒤 유인물을 통해 『14대 총선에서 포항시민의 공천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신한국당에 입당했으나 이제 다시 포항시민 곁으로 돌아가겠다』고 주장,출두를 앞두고 구속에 대비했음을 입증. 정의원이 출두할 때 서울지검 정문앞에는 정의원의 대구 서갑 지역구민 50여명이 몰려와 『정호용선생님 사랑합니다』『정의원님 건강하십시오』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박수를 치며 청사 현관까지 따라오기도.
  • 전씨 하사금 30억원 장세동씨 자진 헌납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26일 전두환전대통령의 비자금 조성과 관련,장세동전경호실장이 전전대통령으로부터 위로금 명목으로 받은 30억원이 예금된 통장과 도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이와 관련,『장씨가 보관하고 있던 30억원이 전씨 비자금에서 지출된 사실이 확인됐고 장씨가 국고헌납의사를 밝힘에 따라 유죄판결이 나면 추징 또는 몰수할 것에 대비,보전절차를 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 전씨 등 내란죄 기소­수사검사 문답

    ◎“「자위권」 선언직후 진압군에 실탄 지급”/“황영시씨 「탱크진압·헬기 위협사격」 지시/전씨 등 내란상황 계엄해제날까지 지속” 23일 5·17 및 5·18사건 관련자들을 기소한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의 김상희부장검사는 기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수사경위와 성과 등에 대해 설명했다. ­전두환씨 등 4명에 대해 내란목적살인을 적용한 것은 이들이 광주에서 발포명령을 내렸음을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인가. ▲이들이 치밀한 사전계획에 따라 발포명령을 내렸다고는 볼 수 없다.그 누구도 발포명령을 명시적으로 한 사람은 없다.그러나 이희성계엄사령관이 TV연설을 통해 『자위권 보유를 천명한다』고 한 뒤 곧바로 계엄군에게 실탄을 지급했다.이와 함께 시위대에 대한 3회이상 경고,사전 위협사격실시,생명보호를 위한 하반신 조준 등 자위권행사요건의 준수여부에 대해 누구도 확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내란목적살인의 「미필적 발동」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명백한 지휘체계 이원화가 이루어졌다고 보긴 어려운데. ▲이원화여부를 한마디로 말하면 「없다」고 해야한다.이계엄사령관으로부터 광주지역 정웅30사단장 등에 이르는 정식 라인에 전·정호용씨 등이 중간에서 끼어들었기 때문에 사실상의 이원화는 있었지만 뚜렷한 이원화 체계는 없었다. ­불법진퇴,지휘관 계엄지역수소이탈 등의 혐의는 전·노태우씨에게만 적용됐는데. ▲이들의 혐의는 국무회의 병력동원과 김영삼씨 가택연금 등 두가지 범죄사실에서 발견했다.다른 사람들도 이같은 혐의는 인정되나 대통령재임기간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되기 때문에 전·노씨에게만 적용했다. ­내란목적살인에 황영시씨가 포함된 이유는. ▲당시 참모차장으로서 내란을 목적으로 한 시국수습방안 논의에 참여했으며 탱크진압을 지시했고 헬기기총위협사격을 전교사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는 등 광주 강경진압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의 명령을 받고 실제 발포를 했던 군인들은. ▲계엄군은 명령을 받아 진압에 나섰던 생명 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따라서 계엄군 전체를 공범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또 단순살인은 공소시효도 지났다. ­구속과 불구속의 차이는 무엇인가. ▲주도적 역할 및 적극적인 행동 여부 등이 판단의 기준이 됐는데 차규헌씨 등 불구속자들은 관여정도가 다른 피고인들보다 떨어진다고 판단했고 이희성씨는 고령이 감안됐다.이외에 개전의 정과 범행후 정상 등이 참작됐다. ­전씨가 80년 9월 대통령에 취임해 사실상 내란의 목적을 완성했으면 이 때가 공소시효 출발점이 되는 것 아닌가. ▲전씨 등은 대통령 취임후에도 자신들의 위치에 대해 크게 불안을 느끼고 계엄을 해제했을 경우의 위험에 대해 꾸준한 논의를 벌여왔다.따라서 계엄을 다음해 1월에서야 해제한 것이므로 이때까지는 내란상황이 계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번 수사때와 비교해 이번에 새로 드러난 사실은 무엇인가. ▲비상계엄해제시점까지가 신군부 폭동의 종료시점이라고 봤으므로 지난번 소홀했던 부분을 많이 보완할 수 있었다.초법적 비상기구를 설치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국보위설치령」을 발동한 것을 비롯해 국무회의장에 병력을 배치하고 전화선을 끊어버려 분위기를 조성한 사실등이 새로 밝혀졌다.또 K공작과 시국수습방안은 물론,언론통폐합·국가보위입법회의 등의 실체도 이번에 드러났다. ­광주현지조사의 성과는. ▲수사가 다 끝나지 않아 말하기는 어렵다. □「12·12」 「5·18」 재수사 일지 ▲95년 11월24일=김영삼대통령,5·18특별법 제정 및 관련자 의법처리 지시. ▲11월29일=정동년씨 등 고소·고발인들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취하서 제출. ▲11월30일=검찰,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발족. ▲12월1일=검찰 전두환씨 출두통보. ▲12월2일=전씨,대국민성명 발표직후 합천행.전씨에 대한 군형법상 반란수괴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 발부. ▲12월3일=전씨 안양교도소에 전격구속수감,1차 방문조사. ▲12월5일=유학성국방부 군수차관보 소환. ▲12월7일=정승화육참총장 등 소환. ▲12월9일=허삼수보안사인사처장 등 소환. ▲12월10일=권정달보안사정보처장,황영시1군단장,정도영보안사보안처장,허화평보안사비서실장 등 소환. ▲12월12일=최규하전대통령 1차 방문조사 시도.장세동수경사30경비단장,정승화육참총장 등 소환. ▲12월16일=신현확국무총리,김진기육본헌병감 소환. ▲12월17일=장태완수경사령관 등 소환. ▲12월20일=전씨 경찰병원에 이감. ▲12월21일=전·노씨 반란수괴 등 혐의로 구속기소. ▲12월27일=광주현장조사단 구성. ▲12월28일=검찰,사공일·이상연·안무혁씨 등 39명 출국금지. ▲96년 1월9일=정호용특전사령관,소준렬전남북계엄분소장 소환. ▲1월10일=허문도중앙정보부비서실장,유학성국방부군수차관보,주영복국방장관,박영수통일주체국민회의사무총장 소환. ▲1월17일=장세동·황영시·최세창·유학성·이학봉씨 반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청구.전씨측,서울지법에 위헌제청신청. ▲1월18일=서울지법(당직판사 김문관) 전씨측 위헌제청 인용,장세동·최세창씨 영장기각. 황영시·유학성·이학봉씨 영장발부. 전씨측.5·18 재수사 헌법소원. ▲1월22일=노씨측,5·18 재수사 헌법소원. 헌재,「5·18특별법 위헌심판사건 및 5·18 재수사 헌법소원」 심리착수.
  • 전씨 “내란죄 추가기소 예상했던 일”/연희동·검찰 이모저모

    ◎전씨 “단식 않겠다” 건강회복 강한 의지/검찰 “특별법 적용안해 공소유지 자신” ▷전씨측 반응◁ ○…경찰병원에 34일째 입원중인 전두환전대통령은 23일 검찰에 의해 내란혐의로 추가기소된데 대해 『예상했던 일』이라며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병원측은 전했다. 전씨는 면회온 가족들로부터 추가기소 소식을 들은 뒤 『오는 2월5일 공판 때에는 하루종일 앉아있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해야 할텐데』라고 말하는 등 건강회복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병원 관계자가 전언. ○…이날 상오 10시부터 10여분간 전씨를 면회한 부인 이순자씨와 재국씨 등 아들 3형제,이양우변호사 등도 『추가기소에 대해 위로의 말을 전했으나 전씨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차남 재용씨의 득남소식을 전해듣고 『장세동씨의 귀가조치에 이어 올들어 두번째로 즐거운 일』이라고 말하는 등 흐뭇한 표정을 지었으며 『이제는 우둔한 짓(단식)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 ▷검찰측 반응◁ ○…검찰은 이날 공소장의 적용법조에 5·18특별법이 포함되지 않은 점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자 『특별법은 이 사건의 공소시효를 정지하는 기능만 있을 뿐 구체적인 범죄행위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며 『통상 시효를 규정한 법조항은 공소장에 기재하지 않는다』고 설명. 또 전직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군형법상 반란죄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5·18특별법의 위헌여부에 관계없이 이날 기소된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유지는 가능하다는 입장. 검찰은 내란의 완성시점을 최규하대통령 하야일에서 비상계엄해제일로 늦춘 점과 관련,『법원의 인정을 받을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수사검사가 확신 없이 어떻게 기소하느냐』며 자신감을 피력. ○…검찰은 기소된 8명의 죄목을 정하기 위해 그동안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돼온 5·17사건과 5·18사건을 별개의 사건으로 엄밀히 구분. 5·18은 광주민주화운동 진압행위를 말하며 5·17은 이를 제외한 비상계엄확대부터 해제까지의 일련의 사건을 지칭하는 것으로 전자에만 내란목적살인죄가 인정된다는 것. ◎전·노씨 등 재판 일정/「12·12」 「5·18」사건 병합심리/헌재 결정따라 일정 바뀔수도/비자금 사건은 공판일 달리해 병행심리 23일 5·18사건에 대한 검찰의 공소제기로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가 맡은 사건은 5·18사건을 비롯,전두환·노태우 두전직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12·12사건 등 모두 4건이다.하나같이 초대형 사건에다 관련 피고인만 해도 모두 26명에 이른다.재판부는 앞으로의 재판일정과 관련,몇가지 원칙을 세워놓았다. 우선 전·노씨 비자금사건은 피고인들이 서로 겹치지 않으므로 공판일자를 달리해 병행해서 심리한다는 것.노씨 비자금사건 3차공판은 오는 29일,전씨 비자금 사건의 첫 공판은 다음달 5일 열기로 이미 일정을 잡아 놓은 상태다. 재판부는 그러나 12·12와 5·18사건에 대해서는 전·노씨가 함께 관련됐고 성격상 분리할 수 없는 측면이 강해 두 사건을 병합해 같은 날 공판을 진행키로 잠정 결론을 지었다.두 사건의 첫 공판은 지난 18일 전씨측이 특별법에 대한 위헌신청을 낸 데 이어 전·노씨측이 두 사건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라 헌법재판소의 판단 전에는 일정을 잡기 어렵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특별법의 위헌여부를 최대한 빨리 결정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면 다음 달말이나 3월초쯤 첫 공판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헌재의 심리가 늦어지더라도 『위헌제청이 있을 경우 해당 소송사건의 재판은 정지되지만 긴급하다고 인정되면 법원은 선고공판 전단계까지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 헌법재판소법 42조에 근거,심리를 앞당길 수는 있다.그러나 검찰은 장세동전청와대경호실장 등 아직 기소되지 않은 12·12사건 관련자들에 대해 헌재결정에 따라 기소여부를 판단할 방침이어서 재판부도 헌재의 결정을 끝까지 지켜볼 가능성이 크다.
  • 검찰의 전씨측 위헌공세 대응

    ◎“5·18재수사는 「사정변경」 해당돼 정당”/법원의 공소시효 인정도 검찰 입장 “부축” 5·18특별법에 대한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측의 위헌공세가 가열되고 있다.검찰의 5·18사건 기소를 하루 앞둔 22일 전씨측은 「헌법소원 보충이유서」를 통해 또다시 검찰수사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등 집요한 법리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전씨측은 지난 18일 장세동전안기부장 등에 대한 법원의 영장심사 단계에서 전격적으로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특별법의 위헌성에 대해 「포문」을 열었다.또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헌재에 위헌심판을 제청한데 고무돼 이틀 뒤인 20일에는 새로운 시각에서 검찰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94년과 지난해에 12·12와 5·18사건에 대해 각각 「기소유예」와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리고도 검찰이 이를 뒤엎고 재수사에 착수,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하려는 것은 부당한 공소권행사라는 주장이었다. 노씨 역시 22일 한영석변호사를 통해 같은 취지의 헌법소원을 냈다. 전씨측은 특히 이날 헌재에 낸 「보충이유서」에서 『헌재의 결정은 법원의 확정판결과 마찬가지로 「기판력」이 있으므로 검찰은 재수사 및 공소제기 등 어떠한 결정이나 처분도 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지난해 1월 헌재가 12·12사건에 대한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은 타당하다고 결정했으므로 검찰은 재수사나 공소제기 등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전씨측은 그 근거로 「헌법소원의 인용결정은 모든 국가기관을 기속한다」는 헌법재판소법 75조를 제시했다. 전씨측은 23일 5·18사건 관련자들이 기소되고 담당재판부가 정해지면 또 다시 위헌법률제청신청 또는 헌법소원을 낼 계획이다.이 때에는 노씨측도 전씨측과 공동전선을 펼 것으로 보인다.전씨측 변호인인 석진강변호사는 이날 『검찰의 공소장을 면밀히 검토한 뒤 담당재판부를 통해 내란죄에 대한 위헌신청을 할지,아니면 헌재에 곧바로 헌법소원을 낼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전씨측의 이같은 공세를 일축하고 있다.특별법 제정 등 「사정변경」의 사유가 있었으므로 재수사의 부당성을 따지는 전씨측의 주장은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검찰은특별법에 규정된대로 12·12 및 5·18사건과 헌정질서파괴사범에 대해서는 국가소추권의 행사에 장애가 존재한 기간동안 공소시효가 중단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즉 내란주동자가 정치권력을 장악한 경우 비록 범죄는 성립했지만 공소시효는 정당한 국가기관이 그 기능을 회복한 이후부터 비로소 진행된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특히 5·18사건에 대해서는 특별법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현행법에 따라 법원이 시효기산점을 비상계엄해제일인 81년 1월24일로 인정했으므로 부담이 없다는 입장이다. ◎위헌법률심판제청과 헌소의 차이점/법원만이 신청 가능­위헌심판/사건 당사자가 청구­헌법소원 위헌심판제청과 헌법소원은 어떻게 다른가. 우선 위헌법률심판제청은 법원만이 할수 있다.헌법 제111조는 법률의 위헌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때에는 법원이 직권 또는 사건 당사자의 신청을 받아 헌법재판소에 위헌여부를 제청,헌재의 심판에 따라 재판하도록 하고 있다.「재판의 전제가 된 때」의 재판에는 영장 심사도 포함된다는 것이 헌재의 판례다.전씨측이 지난 17일 장세동·최세창씨등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위헌제청신청서를 낸 것도 이에 근거한 것이다.또한 법률의 위헌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됐기 때문에 헌재의 결정이 나기까지 일반적으로 재판이 중지된다. 따라서 전씨측은 앞으로 5·18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가 재판의 전제가 되면 특별법이 위헌이라든가 5·18 사건의 공소 시효가 만료됐다는 이유로 다시 담당 재판부에 위헌제청 신청서를 낼 수 있다. 헌법소원은 법원이 아닌 사건 당사자가 직접 헌법재판소에 낸다는 점에서 위헌제청과 다르다.또 법률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헌법소원이 제기되더라도 재판은 중지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법 68조는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또는 위헌여부 심판의 제청 신청이 법원에 의해 기각된 때에는 헌재에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전씨측이 지난 20일 낸 「검사의 공소권 행사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는 바로 이 조항을 근거로 한 것이다.전씨 주장에 따르면 12·12 및 5·18 재수사 및 공소 제기는 「공권력의 행사로 기본권을 침해」당한 것이 된다.또한 전씨측은 5·18로 기소된 뒤 재판부가 5·18 특별법 등에 대해 위헌제청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이 조항을 근거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
  • 전씨측,「5·18 재수사」도 헌소/“불기소사건 기소는 위헌”

    전두환전대통령측의 변호인인 전상석·석진강·이양우변호사는 20일 전두환·장세동·유학성·황영시씨 등 「신군부 인사」 27명을 대신해 20일 헌법재판소에 검사의 공소권행사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냈다. 전변호사 등은 이날 『검찰이 12·12와 5·18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기소유예 및 공소권없음 결정을 내렸고 이 사건 고소·고발인들이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소를 취하한데다 검찰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합법적인 처분으로 종결된 것』이라면서 『이제 두 사건 관련자를 재수사해 기소하는 것은 재소금지 및 검사 동일체의 원칙 등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검찰은 5·18 특별법의 제정을 재수사 및 공소 제기의 사유로 들고 있으나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위배되는 특별법이 공소제기 등의 사유가 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에대해 『불기소 처분을 했더라도 재범을 했거나 개전의 정이 없고 또다른 범죄의 단서가 발견되면 얼마든지 다시 수사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 헌재에관련자료를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특히 전·노씨는 군형법상 군사반란죄의 공소시효가 남아 있어 기소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5·18법」 위헌심판 헌재,내일 심리착수 헌법재판소는 이에따라 이 사건을 오는 22일쯤 재판부에 배당,본격 심리에 착수하도록 할 방침이다. 헌재는 이와 함께 이날 서울지법이 제청한 5·18 특별법 위헌심판 사건이 공식 접수됨에 따라 김문희재판관에게 배당했다. 헌재는 이들 두 사건을 같은 성격으로 해석,한 재판부가 병합 심리토록 하는 등 집중심리방식을 채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는 우선 이번주초에 법무부,검찰,국회 등에 이들 사건에 대한 의견서를 보내 줄 것을 요청한 뒤 매주 한차례씩 전원 재판부 평의를 열어 가급적 한두달에 종결한다는 방침이다.
  • 「특별법 위헌 심판」 제청이후 수사 전망

    ◎검찰 「12·12」 사법처리 궤도 수정 불가피/관련자 기소 헌재결정 이후로 늦춰져/5·18 사건은 재판 일정에 큰 차질 없어 법원이 5·18특별법에 대해 「내란과는 달리 군사반란은 국가의 존립과 안전등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정면으로 유린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위헌심판을 제청함으로써 사법 처리의 궤도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헌법재판소가 특별법의 위헌여부를 최종결정할 때까지 검찰이 12·12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단행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법원이 장세동씨등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를 보류하고 위헌심판을 제청하기는 했으나 검찰은 12·12관련 피고소·고발인 38명 가운데 5·18과 중복되지 않은 나머지 20명에 대해 불구속 기소,공판을 청구할 수는 있다.그런데도 검찰이 헌재결정 이후로 기소 시점을 미루게 된 배경에는 독자적 의견만을 내세워 이들을 기소할 경우 법원이 김문관판사의 결정에 준해 관련자들의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5·18사건과 관련해서도오는 22일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과 이학봉·황영시·유학성씨 등 5명을 구속기소하고 이희성전계엄사령관등 3∼4명만을 불구속 기소키로 하는등 사법처리의 범위를 대폭 줄였다 이는 5·18 사건의 수뇌부를 제외하고는 공수부대 여단장 등 현장지휘관들이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국헌을 문란케 할 목적」으로 유혈 진압에 가담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위헌제청으로 향후 재판일정 등은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5·18사건 재판이 연기되거나 공전될 가능성은 적은 편이다. 담당재판부인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가 12·12 및 5·18사건을 심리하기에 앞서 전·노씨 비자금사건을 종결한다는 방침을 세운데다 현재 노씨 재판이 예상보다 가열돼 결심공판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또 전씨측이 5·18의 공소시효를 비상계엄해제일인 81년 1월24일이라고 본 법원의 결정에 불복,헌법소원을 내기로 방침을 굳힘에 따라 특별법의 위헌문제와 관련해서 재판이 지연될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법원이 위헌심판을 제청한 경우와는 달리 신청인들이 위헌신청 기각결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면 재판은 헌재결정과는 무관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전씨측의 5·18관련 위헌신청을 받아들여 위헌제청을 하더라도 「긴급한 사정이 있을 때는 헌재결정이 나오기 전이라도 심리를 진행할 수 있다」고 헌법재판소법에 규정돼 있어 재판부의 의지 여하에 따라 신축적으로 재판일정을 조정할 수도 있다. 한편 재판부는 지난 18일 전씨가 낸 12·12사건 위헌신청에 대해 『헌재의 결정을 기다려야 할지 적극적으로 헌재에 위헌을 제청해야 할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고 밝혀 내부적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있음을 내비쳤다.그러나 지난 18일 같은 사안에 대해 위헌심판이 제청된 상태이고 이 사건에 대한 전씨의 공소시효가 남아 있어 위헌제청의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 언론통폐합 경위 조사/5·18수사/이상연·허만일씨 어제 소환

    ◎전·노씨 내란혐의 22일 추가기소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19일 오는 22일 전두환·노태우 두전직대통령과 유학성·황영시·이학봉씨 등 5명을 내란 및 내란중요임무종사혐의로 구속기소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들 이외에도 같은날 3∼4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나 기소 시점은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러나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됐던 최세창씨와 장세동씨에 대해서는 5·18 관련 혐의를 추가하지 않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사법처리를 유보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와 함께 피고소·고발인 가운데 12·12 사건에만 관련된 25명 안팎도 사법처리를 보류하기로 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5·18 당시 서울지구 보안부대장이었던 이상연씨와 문공부 문화공보국장 허만일씨 등 2명을 소환,80년 당시 보안사가 직접 기획한 언론통폐합 경위 등에 대해 조사했다.
  • 5·18 특별법 헌재 결정 시기와 전망

    ◎수사기록 검토 최소 2개월 소요/사안 성격상 합헌·위헌중 택일 가능성 높아/여권선 총선 악영향 우려 3월말 결론 희망 총선을 앞둔 정국에 한바탕 위헌회오리를 몰고 온 「5·18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은 어떤 절차를 거쳐 언제쯤 어떻게 결정이 내려질까. 헌법재판소는 19일 대법원으로부터 위헌법률심판제청서가 도착하면 소재판부에 배당,제청서가 요건을 갖추었는 지를 검토한 뒤 곧바로 전원재판부에 회부할 방침이다.다른 사안과 비교할 때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빠르다. 현 시점에서 헌재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점은 결정의 내용이 미칠 파장보다는 오히려 촉박한 시간이다. 헌재의 한 관계자는 『법원에 접수된 수사기록만 9만여쪽이어서 실제 헌재에 접수될 기록은 이보다 휠씬 많을 것』이라면서 『여기에다 외국의 판결사례 및 법무부측의 변론자료 등을 모두 검토하려면 기록검토에만 최소한 2개월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연 검찰과 법원으로서는 답답해질 수 밖에 없다.헌재의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12·12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의 사법처리와 이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이 중단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여권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신한국당은 4·11 총선 전에 12·12및 5·18사건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해소되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사건이 장기화될 수록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다.헌재의 여러가지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늦어도 3월말까지 결론을 내려주기를 바라고 있다. 앞으로 헌재 결정과정에서 최대 쟁점이 될 부분은 12·12사건 관련자들을 소급해 처벌할 수 있는 지 여부와 5·18사건의 공소시효문제다. 장세동씨와 최세창씨에 대한 영장발급이 유보된 데서도 드러나듯이 법원은 12·12가 지난 94년 12월12일로 15년의 공소시효를 넘긴 것으로 보고 있다.다만 지난해 말 국회에서 제정된 특별법에 근거해 처벌할 수 있는 지 여부를 헌재는 판단해야 한다. 5·18내란행위의 공소시효문제도 난제중의 난제다.헌재는 지난번 5·18헌법소원사건에서 내부적으로 최규하전대통령의 하야일인 80년 8월16일을 공소시효의 만료일로 잡은 바있으나 소취하와 상황변화로 기속력을 상실했다.따라서 헌재가 검찰이 다시 제시하고 법원이 인정한 81년 1월24일(비상계엄해제일)을 5·18사건의 공소시효만료일로 받아들일 것인지가 관심사다. 이 문제에 대해 헌재가 내릴 수 있는 결정으로는 ▲위헌 ▲합헌 ▲한정합헌 ▲한정위헌 ▲헌법불합치 등이 있다.그러나 사안의 성격상 「어정쩡한」 변형결론을 내릴 가능성은 예상하기 어렵다.「도 아니면 모」로 위헌 혹은 합헌 둘중 하나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위헌결정을 내릴 경우 5·18특별법은 자동 폐기되며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관련자는 처벌할 수 없다.단 5·18내란관련자의 경우 공소시효의 판단에 따라야 한다.공소시효가 남았다고 판단하면 현행 법률로 처벌할 수 있으며 공소시효가 완료됐다고 결정할 경우 전·노씨는 물론 나머지 관련자도 내란죄로는 처벌받지 않게 된다.
  • 이종찬 12·12특수본부장 인터뷰

    ◎“5·18관련자 기소는 예정대로 할것”/법원결정 존중… 위헌제청 대응책 마련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장인 이종찬서울지검3차장은 18일 법원이 전두환전대통령측의 5·18 특별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받아들인 것과 관련,『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법원이 위헌법률제청 신청을 받아들였는데 대응책은. ▲전전대통령측에서 특별법이 공표될 때 위헌제청 신청을 할 것으로 예상했었다.따라서 영장청구·기소 등 각 단계별로 위헌제청에 따른 대응책을 나름대로 대비해 왔다.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 생각한다. ­구속영장이 보류된 장세동씨와 최세창씨에 대해 오는 22일 이학봉씨 등 구속 피의자 3명과 함께 기소할 것인가. ▲기소에 제약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22일 기소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난 뒤 기소와의 장단점을 검토해 보라고 지시해 놓았다.장씨와 최씨에 대해 다른 혐의를 추가하는 방안은 현단계에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5·18사건에 대한 관련자 기소는 예정대로 하는가. ▲원래대로 할 것이다.구속피의자와 두전직대통령을 기소할 계획이다.불구속기소자가 있는지 여부는 말할 수 없다.따라서 사법처리 대상자가 몇명인지 말하기 힘들다. ­5·18관련 현역의원의 처리는. ▲(웃으며)있다면 임시국회가 끝나는대로 하겠다. ­귀가조치한 최세창씨는 12·12사건 이외에 5·18사건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던데.사법처리여부는. ▲최씨에 대해서는 12·12와 함께 5·18부분에 대해서도 법률적용을 했다고 봐야한다.5·18쪽은 법률평가를 할 것이 없었던 것이 아니냐.다른 혐의가 있다면 모르지만…. ­12·12사건 관련자의 기소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헌재의 판단을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헌재의 판단이 빨리 내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씨에 대한 비자금 수사는. ▲진전이 있다. ­광주 현장조사는 마무리되었는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가혹행위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조사결과를 조만가 보고서로 받을 예정이다.
  • 「5·18법」 위헌심판 제청/서울지법

    ◎장세동·최세창씨 영장 보류/유학성·황영시·이학봉씨 수감 5·18특별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이 법원에 의해 받아 들여져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랐다. 서울지법 김문관판사는 18일 전두환전대통령측의 변호인 전상석변호사가 낸 5·18 특별법에 대한 위헌제청신청에 대해 『12·12 군사반란사건의 공소 시효는 이미 만료된만큼 특별법상의 공소 시효 정지 조항을 적용해 처벌하는 것은 형벌 불소급의 원칙을 위배한 것』이라며 받아들였다. 김판사는 이에따라 검찰이 장세동전수경사30경비단장과 최세창3공수여단장에에 대해 12·12 군사반란혐의만으로 청구한 구속 영장의 발부를 보류했다.검찰은 장·최씨를 이날 상오 귀가시켰다. 김판사는 그러나 『특별법에서 5·18 내란 사건 관련자에 대해 공소시효를 정지한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회복이라는 헌법상의 요청에 의해 가능한 것으로 본다』며 12·12 및 5·18사건에 함께 연루된 유학성 당시 군수차관보,황영시육참차장,이학봉보안사대공처장 등 3명에 대해서는 영장을 발부했다. 유·황씨는 서울구치소에,이씨는 영등포구치소에 각각 수감됐다. 검찰은 또 법원의 이같은 결정에 따라 12·12 사건 피고소·고발인 38명 가운데 5·18 사건과 중복 관련된 13명을 제외한 25명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사법처리를 보류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장세동·최세창씨에 대해서도 5·18 관련 및 개인 비리 혐의 등을 추가 적용하지 않고 헌재의 결정이 나올때까지 사법처리를 유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러나 5·18 사건 피고소·고발인과 5·18 사건에 중복 관련된 피고소·고발인은 오는 22일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을 내란죄로 기소하면서 일괄 기소하기로 했다. 한편 전전대통령은 이날 다시 전변호사를 통해 12·12 및 5·18 사건 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에 5·18 특별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서를 냈다. ◎내주 전원재판부 회부/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소장 김용준)는 18일 최세창·장세동씨 등의 변호인이 『5·18특별법이 위헌요소가 있다』며낸 위헌심판제청 신청을 서울지법이 받아들임에 따라 사건을 접수하는 대로 19일 중 재판부를 지정,위헌심판 제청 요건의 미비 여부 등을 판단하도록 한뒤 빠르면 다음주 초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하기로 했다. 헌재 관계자는 이와 관련,『국민적 관심도와 12·12 및 5·18 사건의 재판 진행 등 여러 사정을 고려,재판부가 빠른 시일안에 심리를 마쳐 위헌 여부 결정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영장보류」와 검찰·헌재 표정

    ◎검찰­“헌의결정 지켜보자” 관망속 애써 태연/헌의­“예고된 위헌신청… 1∼2개월안에 결정”/관련자­구속3인 “난 5·18과 무관” 억울함 호소 18일 장세동·최세창씨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되면서 5·18특별법에 대한 위헌시비가 본격화되자 검찰은 일단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지켜보겠다는 관망적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들은 위헌제청이 이미 예상됐던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앞으로의 심리과정 등에 대한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검찰은 전두환씨측의 5·18특별법 위헌제청이라는 「기습공격」으로 장씨 등 2명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되자 당황해 하는 모습. 그러나 이종찬특별수사본부장은 『5·18특별법은 제정 당시부터 끊임 없이 위헌소지와 관련한 잡음이 일었기 때문에 위헌문제는 언젠가는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었다』면서 괘념치 않겠다는 뜻을 피력. 또 다른 검찰관계자는 『12·12와 5·18사건은 신군부측이 정권을 장악해 나가는 일련의 한 과정이고 관련자 대부분이 두 사건에 모두 연루돼 있기 때문에 관련자들의 사법처리에는 별다른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모습. ○…이날 상오 구속집행이 된 유학성씨 등 구속자 3명은 각기 대조적인 표정으로 억울함을 호소. 상오 10시52분쯤 서울지검 10층 조사실에서 1층 로비로 내려온 유씨는 굳은 표정으로 사진촬영 포즈를 취한 뒤 『나는 5·17과는 무관하다』고 짤막하게 항변했으며 곧이어 내려온 황영시씨도 『나는 5·18관련 회의에 참석은 많이 했지만 강경진압을 주도한 적은 없다』고 주장. 이들과 대조적으로 이학봉씨는 웃음을 띤 채 5분 남짓 손짓·몸짓을 곁들여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했는데 『나에게 적용된 내란 혐의는 전혀 인정할 수 없다』면서 『이를 내란이라고 한다면 국가 위기 상황에서 누가 앞장서 일을 하겠느냐』고 언급. 이씨는 이어 장세동씨와 최세창씨가 풀려난 것과 관련,『동지들이 풀려나 기쁘다.특히 최세창씨는 건강도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한 뒤 구치소행 승용차에 탑승. ○…검찰은 구속영장발부가 보류된 장씨와 최씨에 대해 『귀가하는 마당에 보도진들에게 공개해 곤혹스럽게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본인들의 의사를 물어 몰래 귀가시키기로 결정. 장씨는 상오 10시를 전후해 검찰청사를 빠져나갔으나 15분쯤 뒤 청사 지하1층을 통해 귀가하려던 최씨는 보도진과 조우. 최씨는 『영장이 보류된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미소를 지으며 『나쁠 것이야 없지 않느냐』고 말한 뒤 『오늘 바깥 날씨가 춥냐』고 여유를 보이기도. ○…헌법재판소 관계자들은 서울지법의 김문관판사가 위헌심판제청 신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지자 「예상했던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이날 상오부터 대책을 숙의. 한 관계자는 『법률적으로 이 사건 영장 판사 또는 담당 재판부가 위헌제청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건 관련자가 직접 헌재에 헌법소원을 낼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한 헌재의 판단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고 설명. 이 관계자는 헌재의 결정 과정과 관련,『구속 사건에 대한 위헌 심판 제청 사건인데다 온국민의 관심이 집중돼 있고,국력의 낭비를 줄인다는 차원에서도 가급적 빨리 결정을 내릴 것』이라면서 『기왕에 상당히 검토를 마친 사건이므로 대법원을 거쳐 헌재에 사건이 접수된 뒤 빠르면 1∼2개월 안에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헌재 관계자들은 12·12 및 5·18 사건에 대한 위헌제청신청 사건이 들어오기까지는 법보다는 물리력을 앞세우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법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 한 관계자는 『지난해 11월말 5·18 사건 등에 대한 헌재의 선고를 앞두고 이 사건의 피해자들이 소취하를 해 헌재 결정이 무산된 것은 문제가 있었다』고 강조하고 『만약 그때 헌재가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특별법이 제정됐더라면 오늘과 같은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전씨 65회 생일맞아 ○…경찰병원에 입원 중인 전두환전대통령이 18일 5·18특별법에 대한 위헌제청이 법원에 의해 수요외면서 측근인 장세동·최세창씨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된데 대해 밝은 표정을 보였다고 가족과 측근들이 밝혔다. 특히 전씨는 지난 16일 65회 생일을 맞아 부인 이순자씨, 아들 재국·재용·재만씨와 딸 효선씨, 손자·손녀들, 이량우·석강진변호사 등의 생일축하 인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세창·장세동씨 「영장보류」 전말/전씨측 핵심 5인 구속에 위헌시비 제기/서울지법, 서류요건 미비 불구 신청 접수/영장 담당판사 14시간 숙고끝 “위헌제청” 12·12 및 5·18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놓고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에서 밤낮 없이 공방을 전개해 왔던 전두환전대통령측과 검찰은 지난 17일 결전의 장소를 서울지법으로 옮겼다. 이학봉·장세동씨 등 5공실세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전씨측이 5·18특별법에 대한 위헌시비를 전격적으로 제기하고 나온 것이다. 전씨측은 제정된지 한달여가 지나도록 특별법의 위헌여부에 대해 별달리 문제제기를 하지 않다가 이 법으로 측근들이 무더기로 구속될 위기에 처하자 영장이 접수된 직후인 이날 하오 3시40분쯤 화급히 서울지법 2층 접수실을 찾아와 「위헌여부심판제청신청서」를 냈다. 법원이 위헌소지가있다고 판단,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제청하면 이들에 대한 영장은 기각되기 때문에 전씨측과 검찰은 서로 물러설 수 없는 한판승부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법원측은 장씨 등 영장청구 피의자 5명에 대한 변호인선임계가 제출되지 않는 등 서류상 요건이 미비했으나 별달리 문제삼지 않고 신청을 접수한 뒤 12·12 및 5·18사건 담당재판부인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로 보냈다.전씨가 이미 12·12사건으로 기소됐고 장씨 등도 추후 기소될 예정이므로 심사주체가 30부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신청서를 받아든 재판부는 전씨는 이미 기소된 상태이므로 문제가 없지만 장씨 등은 영장심사단계에 있어 영장당직판사가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판부는 이에 전씨측 변호인인 전상석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신청취지를 명확히 해달라고 요청했다.전변호사는 이날 하오 8시20분쯤 장씨 등 5명에 대한 변호사선임계와 함께 『신청목적은 검찰측의 영장청구가 합헌적인지를 가려달라는 것』이라는 보정서를 제출했다. 영장당직판사인 합의21부 김문관판사는 이때부터 9만여쪽의 수사기록과 5·18특별법의 위헌여부를 가리기 위한 숙고에 들어갔다.검찰이 보내온 위헌제청신청에 대한 의견서도 함께 검토했다.기자들이 판사실로 전화를 걸어 진행상황을 물어보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18일 상오 5시20분.신청서가 접수된지 14시간여나 걸린 숙고 끝에 김판사는 12·12와 관련해 군형법상 반란죄로만 영장이 청구된 장씨와 최세창씨에 대해 『공소시효가 완성된 사람에 대해 소급해서 시효를 정지,배제하는 법률은 위헌소지가 있다』고 판단,영장발부를 보류하고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5·18법 위헌심판 제청 결정문 ◇주문=피의자 장세동·최세창 영장사건에 대해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2조의 위헌여부에 관한 심판을 제청한다.신청인 이학봉·유학성·황영시의 위헌심판 제청신청을 기각한다. ◇위헌신청의 대상이 된 법률규정=5·18 특별법 제 2조 1항 「79년 12월12일과 80년 5월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사범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제 2조의 헌정질서 파괴범죄행위에 대해 국가의 소추권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 것으로 본다」.제2조 2항 「제1항에서 국가의 소추권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이라 함은 당해 범죄행위의 종료일로부터 93년 2월24일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장세동·최세창의 신청에 대한 판단=헌법 제12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속 압수 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 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헌법 제 13조 1항은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해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동일한 범죄에 대해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이러헌 적법절차 원리와 법률불소급의 원칙에 비추어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사람에 대해 소급해서 그 시효를 정지 내지 배제하는 내용의 법률은 위헌이라 생각한다. ◇이학봉·유학성·황영시의 신청에대한 판단=신청자에게 적용된 반란중요임무 종사죄는 군형법 제5조 2호에 의하면 사형,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범죄로서 공소시효가 15년인 바 영장이 청구된 1월17일은 범죄행위가 종료한 때로부터 15년이 경과되었음이 기록상 명백하다. 이에 대해 검찰은 내란 등이 일단 성공하여 정치권력을 장악한 경우 그 공소시효는 정당한 국가기관이 그 기능을 회복한 이후부터 비로소 진행된다고 주장한다.즉 5·18 특별법에서 국가의 소추권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인 범죄행위 종료일로부터 93년 2월24일까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고 규정하는 것은 이같은 법리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특별법이 합헌이라는 것이다. 검찰의 이같은 공소시효 관련 주장은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형사소송법 등 어떤 법률에도 없었다.그렇다면 군사반란죄의 경우 그 주도세력 등이 집권한 경우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볼 수 있는지 문제가 될 것이다. 형법상 내란죄는 헌법 또는 법률이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거나,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로서 신청인들에게 적용된 군형법상의 반란죄와는 여러가지 면에서 성격을 달리한다.즉 내란죄의 보호법익이 국가의 존립과 안전이라고 할 때,군사반란죄의 보호법익은 군대의 조직과 기율유지,전투력 유지 등이라고 보여지고 그 외에도 내란죄와는 목적·요건 등을 달리한다.결국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정면으로 유린하는 내란죄의 경우 국가권력의 장악에 성공한 내란행위자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정당하게 국가권력을 위탁받은 국가기관이 그 기능을 회복하기까지 사실상 처벌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공소시효가 그 기간동안 정지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회복이라는 또다른 헌법상의 요청에 의해 가능하다고 보더라도 성격을 달리하는 군사반란죄에 대해서까지 기존의 적법절차 원리나 법률불소급 원칙과의 부조화를 감수하면서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내란죄부분은 특별법과는 관계없이 아직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인정되므로 특별법의 위헌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고,신청인들에 대해 내란죄부분만으로도 구속사유가 있다고 판단되어 각기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이상 피의사실 중 군사반란죄 부분 역시 더이상 재판의 전체가 될 수 없으므로 신청인들의 제청은 이유없다고 판단된다.
  • “내란죄시효남아 3명은 제청기각”/2명영장보류 김문관판사 인터뷰

    ◎전씨는 담당재판부서 결정하는게 적합 장세동·최세창씨에 대한 구속영장발부를 보류한 서울지법 형사합의21부 김문관판사(32)는 18일 상오 5시20분 14시간여나 걸린 마라톤 심사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김판사는 인터뷰를 한사코 사양했으나 기자들이 『결정문에 대해서만 질문하겠다』고 조건을 달자 대화에 임했다.다음은 일문일답. ­내란중요임무종사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학봉씨 등 3명에 대해서는 위헌제청을 기각했는데. ▲내란죄의 공소시효 기산점을 81년1월24일 비상계엄해제일로 본 검찰측의 판단을 받아들였다.따라서 내란죄부분은 특별법과는 관계없이 아직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내란죄만으로도 구속사유가 된다고 판단했다. ­검찰측이 구체적으로 어떤 법에 근거해 장씨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해 왔나. ▲검찰이 17일 하오 8시쯤 특별법에 근거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보내왔다. ­전두환전대통령도 위헌심판제청신청을 함께 냈는데 이에 대한 판단이 결정문에서 빠진 이유는. ▲변호인측에서 이학봉씨 등 5명에 대해서만 위헌심판을 제청한다는 보정서를 제출했다.전전대통령은 이미 12·12사건으로 기소돼 재판부가 정해진 만큼 담당재판부인 합의30부에서 결정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전전대통령의 위헌심판제청신청은 현재 30부에 계류돼 있다. ­변호인측이 구체적으로 특별법의 위헌조항을 적시했는가 아니면 김판사의 독자적 판단인가. ▲변호인측이 특별법 제2조1항과 2항 등 항목을 명시했다. ­변호인들이 처음 제출한 신청서는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씨 등 5명에 대한 변호인선임계가 누락돼 있었다.그런데 법원측이 서류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신청에 대해 기각하지 않고 변호인선임계 등 요건을 갖춰 다시 제출하라고 요청한 이유는. ▲위헌제청신청 절차는 민사소송법 절차를 따르도록 돼 있다.민사소송에서 소장에 미비한 점이 있을 경우 법원은 당사자에게 서류를 완비할 것을 요청한다.이와 마찬가지다. ­결정이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데. ▲사건기록이 방대했기 때문이다. 김판사는 『오늘 재판이 있다.집에 가서 잠깐눈을 붙여야겠다』고 말하면서 자리를 떴다.부산 배정고와 서울대 법대대학원을 나온 뒤 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김판사는 사법연수원(23기)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 「5·18특별법」 위헌제청 신청하면…

    ◎「12·12」 연루자 사법처리 차질/위헌여부 헌의 결정때까지 재판 중단/비자금 사건은 별개… 전·노씨 재판 계속 5·18 특별법을 둘러싼 위헌 논란이 본격화되면서 12·12 및 5·18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막바지 진통을 겪고 있다. 서울지법 김문관판사는 18일 『5·18 특별법이 12·12 군사반란죄에 대해 공소시효가 중단된다고 규정한 것은 법률 불소급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며 장세동·최세창씨에 대한 구속영장의 발부를 보류했다. 그는 그러나 5·18 내란 사건에 대해서는 『국가권력의 장악에 성공한 내란행위라 하더라도 국민으로부터 정당하게 국가권력을 위탁받은 국가기관이 기능을 회복하기까지는 공소 시효가 중지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두 사건에 동시에 연루된 유학성씨 등 3명에 대해서는 영장을 발부했다. 김판사의 이같은 결정은 헌법재판소가 지난 93년 3월 형법 제241조에 대한 위헌심판사건에서 『영장 심리도 재판에 해당되므로 영장발부 단계에서도 위헌여부심판제청을 할 수 있다』고 선고한데 따른 것이다. 김판사뿐 아니라 이 사건을 맡은 서울지법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도 앞으로 12·12와 5·18 사건에 대해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위헌 여부를 제청할 수 있다.전두환전대통령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5·18 사건과 관련한 내란혐의 역시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거나,「성공한 내란」이라는 등의 이유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재판부가 위헌심판제청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는 전씨측 인사가 직접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도 있다.따라서 헌법재판소가 5·18 특별법에 대해 위헌 여부 심사를 한다는 것은 이미 예고됐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검찰이 장씨 등에게 12·12 군사반란사건만을 적용한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대응이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때문이다. 담당 재판부가 위헌 여부 제청을 할 때는 물론 김판사의 결정만으로도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은 헌재의 결정이 나기까지 중지된다.이 때 재판부는 12·12 사건에 대해서만 재판을 중지하고 5·18 사건은 그대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하지만 효율적인 재판 진행을위해 재판부가 직권으로 12·12 및 5·18 사건 전체를 중지시킬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은 별개의 사건이므로 그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통령은 내란·외환을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 소추되지 않는다」는 헌법 규정에 따라 군사반란죄의 공소 시효는 재직중 정지되는 것이므로 전·노씨를 처벌하는데에는 별 문제가 없다. 김판사의 결정에 따라 검찰이 기소까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검찰은 장씨와 최씨에 대해 5·18 및 개인비리 관련 부분을 추가하지 않는 것은 물론 헌재의 결정이 나기까지는 12·12 사건으로도 기소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12·12 사건에만 연루된 관계자 역시 군사반란혐의로 기소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다만 구속 대상자로 알려진 정호용·허삼수·허화평·박준병의원 등도 두 사건에 모두 연루돼 있어 신병 처리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을 넘겨받으면 가급적 1∼2개월 안에 위헌 여부 결정을 내린다는 방침이다.헌재의 한 관계자는 『기왕에 한번 검토한 사건인 만큼 내용은 물론 관련 법이론에 대해서도 잘 파악하고 있다』면서 『다만 이제까지는 현행법 테두리내에서 판단했으나 이번에는 특별법의 위헌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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