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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노씨 선고 26일로 연기/법정TV 촬영 5분간 허용/재판부

    12·12 및 5·18사건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사건 담당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는 14일 『오는 19일 열기로 했던 선고공판을 1주일 뒤인 26일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 작성량이 워낙 방대해 작업 진척도가 예상보다 늦다』고 연기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따라 오는 21일 1심 구속 만기일이 끝나는 장세동·최세창·박준병피고인 등 3명은 석방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또 법정 촬영과 관련,『상오 10시 공판개시 직후 피고인들의 입정부터 착석까지 5분동안 방송용 카메라와 사진 카메라 각 3대를 피고인석 앞 두 곳과 방청석 한 곳 등 모두 세곳에 나누어 설치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혀 전두환·노태우 피고인 등에 대한 정면 촬영이 가능하게 됐다.
  • 김영일 「12·12」 「5·18」 담당 재판장 일문일답

    ◎“설득력 있는 판결되도록 최선”/변호인단 고의 파행 인상… 중도사임 아쉬워/「12·12」 등 관련선고 상오에 「비자금」은 하오에 12·12 및 5·18사건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담당 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는 6일 『사건의 발단은 정치적 문제에서 비롯됐지만 (검찰이) 기소한 이상 법원이 전적으로 판단해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다음은 김부장판사와의 일문일답. ­재판 경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재판을 하고 싶었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진행됐다.재판장인 내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그러나 변호인단이 고의로 파행으로 몰고 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특히 (일부 변호인들이) 사임한 것은 상당히 아쉽다.끝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법정에서 싸웠어야 했다. ­피고인들의 법정태도는. ▲일부 피고인들의 대응방법이 서투르기도 했다.그러나 대체로 좋았다.정호용 피고인이 증인신문 때 간혹 도를 넘어서기는 했지만…. ­선고 일자를 19일로 잡은이유는. ▲(동의를 구하듯)모두들 다 지치지 않았느냐.일부 피고인들(박준병·최세창·장세동)의 1심 구속기간이 21일로 끝나는 점도 감안했다. ­선고공판의 진행은 어떻게 하나. ▲12·12 및 5·18사건은 상오에,전·노피고인의 비자금 사건은 하오에 선고하겠다.사건의 중요도를 감안해서 순서를 정했다.두 사건으로 함께 기소된 전·노피고인과 정피고인은 상오 공판 때 병합해서 선고하겠다. ­판결문은 완성됐나. ▲세 판사가 모두 매달려 만들고 있다.비자금 사건 판결문은 주문을 포함해 거의 완성됐다.법률적용과 양형이유 등을 자세히 밝혀 분량이 꽤 된다.혹시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가 나면 더 늘어날 것 같다.(김부장판사는 이와 관련,일부 피고인들에 대해 무죄가 선고될 것이라고 앞서 해석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판결문을 다 읽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텐데. ▲사실 관계를 요약해서 읽을 것이다.설득력 있는 판결이 되도록 하겠다.판결문과는 별도로 설명문을 작성할 계획이다.판결문만으로는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법정 촬영을 허용할것인가. ▲첫 공판 때처럼 허용할 계획이다.일부 언론사의 요청에 따라 생중계 또는 녹화 중계를 허용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선고 2∼3일 전에 촬영 허가,시간 제한 여부를 결정하겠다. ­시민들로부터 재판과 관련해 격려전화를 받았나. ▲전화는 오지 않았다.그러나 관대하게 또는 엄하게 처벌해 달라는 진정서는 여러 장 왔다.
  • 전씨 사형·노씨 무기 구형/반란수괴·내란혐의 등 적용

    ◎전씨 2천2백억·노씨 2천8백억 추징/정호용·황영시씨 등 14명 무기∼10년형/전두환씨 최후진술­“과거 잘잘못 본인 책임 어떤 처벌이든 받겠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사형과 무기징역이 구형됐다. 서울지검 형사2부 김상희 부장검사는 5일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심리로 열린 12·12 및 5·18 사건 및 비자금 사건 결심공판에서 이같이 구형했다. 전 피고인에게는 추징금 2천2백23억1천6백66만원을, 노 피고인에게는 추징금 2천8백38억9천6백만원을 함께 구형했다. 전피고인에게는 반란 및 내란수괴·내란목적살인·살인·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수수 등 10개 죄목을, 노 피고인에게는 반란 및 내란중요임무종사·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수수 등 9개 죄목을 적용했다. ◎19일 선고공판 황영시·정호용 피고인에게는 반란 및 내란중요임무종사·내란목적살인죄 등을 적용,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이희성·주영복·허화평·허삼수·이학봉·유학성·차규헌·최세창 피고인 등 8명에게는 반란 및 내란중요임무종사죄 등으로 징역15년을 구형했다. 장세동 피고인은 반란중요임무종사로 징역12년을,박준병·신윤희·박종규 피고인 등 3명도 같은 죄목으로 각각 징역 10년을 구형받았다. 검찰은 논고문에서 「12·12 및 5·18 사건은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과 헌정질서를 파괴한 내란,비자금 사건은 사상 최대의 권력형 부정축재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총제적으로는 국가권력을 불법적으로 이용,군의 통수체계 및 민주헌정질서를 뿌리채 와해시키고 건전한 경제구조를 왜곡시킴으로써 국민에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고 역사 발전의 수레바퀴를 오욕과 퇴보의 늪으로 떨어뜨린 반국가적·반역사적·비인도적·반민주적 범죄』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전 피고인은 반란 및 내란의 수괴로서 정권을 장악한 뒤 「정의사회 구현」을 외치는 등 도덕성과 청렴성을 표방하면서도 43개 기업체로부터 2천2백억원 이상의 뇌물을 수수했다』며 『그럼에도 일말의 뉘우침도 없이 억지와 변명으로 자신의 범행을 합리화하려는 태도로 일관하는 등 전혀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다』고지적했다. 검찰은 또 『노피고인도 12·12 및 5·18사건, 5공화국 출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로로 전피고인에 이어 대통령에 취임한 뒤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국정의 슬로건으로 내걸고도 2천8백38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뇌물을 받았다』며 『그런데도 겉으로만 사죄한다고 말할 뿐 실제로는 자신의 잘못을 숨기고 합리화하는데 급급했다』고 밝혔다. 전 피고인은 최후 진술에서 『현정권은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구호 아래 과거 정권의 법통과 정통성을 심판하고 있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실의 권력이 제아무리 막강하더라도 역사를 자의로 정리하고 재단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전 피고인은 이어 『본인의 부덕으로 본의 아니게 정책수행이 불투명해져 국민에게 불편과 피해를 준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 한사람에게 있으므로 본인의 처벌만으로 국론분열과 국력의 낭비를 막을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노 피고인도 최후진술에서 『국정의 책임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 없다』며 『그러나 역사는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지 지울 수도 다시 쓸 수도 없는 것이며, 평가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심판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오래된 정치적 관행을 고치지 못한 점이나 수많은 자금을 명예롭게 처분하지 못한 점은 송구스럽지만 단한번도 뇌물이나 개인적인 축재를 위해 돈을 받은 적이 없고,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국선변호인인 김수연 변호사는 최후변론을 통해 『12·12 및 5·18 사건은 역사의 심판에 맡겨야할 사건이지 재판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더욱이 16년전의 사건이므로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고,공소시효를 정지시킨 5·18 특별법도 소급입법금지의 원칙에 어긋나는 위헌법률』이라며 면소판결 또는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인식 변호사도 전·노 피고인의 비자금 사건과 관련,『수뢰죄는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뇌물을 받았다는 증명이 있어야 하는데도 검찰은 직무관련성을 전혀 명시하지 않았다』며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지만 실정법규에는저촉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재판부는 이날 상오 5·18 당시 김경일 1공수1대대장(현역 소장)에 대한 증인신문과 피고인들에 대한 보충신문을 마쳤다.선고 공판은 오는 19일 상오 10시에 열린다.〈황진선 기자〉
  • 「세기의 재판」 진기록·진풍경

    ◎두전대통령 동시 재판 세계 처음/1심공판 34회·사건기록 20만쪽/군출신 피고인들 별 합치면 50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사건과 12·12 및 5·18사건이 지난해 11월16일 노 전 대통령이 구속된 이후 9개월여에 걸친 「대장정」끝에 5일 피고인 16명에 대한 검찰의 구형이 내려졌다. 노·전 피고인이 구속수감된 지 각각 2백3일, 1백85일만이다. 이 과정에서 「세기의 재판」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각종 진기록과 진풍경을 양산했다. 우선 최다 1심공판횟수. 5일의 27차 공판에서 구형이 내려졌으므로 오는 19일의 선고공판까지 합하면 무려 28차 공판이 된다. 여기에 전·노 피고인의 비자금사건 공판이 각각 3차례 열린 것까지 합하면 34차의 공판으로 1심재판이 막을 내리는 셈이다. 지금까지는 지난 89년의 「우지라면사건」 재판이 가장 많은 공판횟수를 기록했다. 피고인이 불구속상태였기 때문에 무려 4년2개월여동안 심리했다.하지만 공판은 22차례 열렸을 뿐이다. 지난 93년 박철언씨의 「슬 롯머신사건」도 1심 구속만기 6개월을 다 채웠지만 7차공판만에 끝났다. 피고인들의 화려한 면면도 미증유의 기록으로 남게 됐다. 최고권좌에 오른 전직대통령 두명이 동시에 법정에 섰다. 12·12 및 5·18사건의 나머지 피고인 14명도 모두 군장성 출신이다. 전·노 피고인 등 대장 출신 10명(유학성·황영시·이희성·차규헌·정호용·박준병·최세창·주영복)과 중장 1명(장세동),소장 2명(신윤희·박종규),준장 3명(이학봉·허삼수·허화평)이다.합하면 자그마치 별이 50개에 이른다. 정승화 전 육참총장·노재현 전 국방장관·윤성민 전 합참의장 등 증인까지 합하면 1백여개를 족히 넘는다.말 그대로 「별들의 전쟁」이었다. 검찰·변호인·피고인 등 등장인물의 수도 최대다. 공판 참여검사는 문영호 대검중수2과장(이하 전직책)·김성호 특수3부장·김상희 형사3부장 등 20여명에 이른다. 변호인단은 더 많다.이양우·한영석·김유후 변호사 등 40여명이다. 피고인은 노씨 비자금사건을 포함해 35명, 법정에 선 증인도 41명이다. 여기에 재판부까지 포함해 모두 1백40여명이 등장한 형사재판사상 유례가 없는 초매머드급이었다. 피의자 및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사람도 1천여명을 넘는다. 12·12 및 5·18사건에서는 5백16명이 조사를 받았다. 노 피고인과 전 피고인 비자금사건과 관련해서도 각각 4백여명과 1백여명이 검찰에 출두했다. 사건기록도 엄청나다. 12·12 및 5·18사건 18만여쪽에 비자금사건기록을 합하면 20만쪽을 넘는다. 밤을 꼬박 새워 30초에 1장을 읽는다 치더라도 70여일이 걸린다.〈박은호 기자〉
  • 「12·12」 「5·18」 결심공판/구형공판 이모저모

    ◎내외신기자 몰려 북새통/연희동 자택 측근발길 끊겨 적막감/5·18유족 “살인마” 고함… 전씨 “깜짝” 12·12 및 5·18사건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비자금사건에 대한 결심공판이 열린 5일 한동안 한산했던 서울지법 주변은 이른 아침부터 사건 관계자들과 내외신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전두환 피고인에게 사형이 구형되는 등 대부분의 피고인들에게 중형이 구형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탓인지 법정을 들어서는 피고인들과 방청객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법정◁ ○…피고인들은 최후진술을 통해 자신의 성장배경과 당시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며 재판부에 「공정한」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청. 차규헌·장세동·허삼수·이학봉·이희성 피고인은 다른 피고인들과는 달리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더 말할 것이 없다』, 『죄가 있다면 달게 받겠다』는 말로 최후진술을 대신. 신군부측의 대표적인 「논객」으로 통하는 허화평피고인은 『5·18특별법이라는 이름으로 헌법정신이 유린됐다』며 『사법부마저 이를 따른다면 결국 우리사회는 힘이 지배하는 사회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며 재판부에 「훈계성」 최후변론을 개진. 정호용 피고인은 『검찰의 무기징역 구형을 듣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심경을 토로한 뒤 『그러나 검찰이 광주현지 지휘관들을 사법처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감사드린다』고 진술. 반면 박준병 피고인은 검찰이 논고문을 읽어내려 가는 동안 수시로 변호인석을 바라보며 도움을 요청하는 눈길을 보내는 등 불안한 표정이 역력. ○…피고인들은 1시간여동안 검찰의 논고가 계속되는 동안 대부분 별다른 동요없이 차분히 경청하는 모습. 정호용 피고인은 줄곧 발끝을 내려다 보았으며 허삼수·허화평 피고인 등은 눈을 감고 있다 이따금 법정 천장에 달린 대형 샹들리에를 응시. ○…전두환 피고인의 사선변호인으로 선임됐다 사임계를 제출한 이양우 변호사는 이날 하오 4시쯤 각 언론사와 법원 기자실 등으로 5쪽 분량의 전 피고인의 최후진술서를 배포. 피고인들의 최후진술이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미리 배포한 것은 신문에 전 피고인의 최후진술 내용이 빠지면 여론에 「불이익」을 입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추정. ○…이날 변호인석에는 국선변호인인 민인식·김수연 변호사와 주영복·이희성·박준병 피고인의 사선 변호인 등 6명만 자리를 지켰고 사임계를 제출한 이양우 변호사 등은 불참. 검사석에는 12·12 및 5·18사건의 주임검사인 김상희 부장검사와 노 피고인 비자금사건 주임검사인 문영호 부장검사·김진태 검사 등 9명이 출석했으며, 하오에는 전 피고인 비자금 주임검사인 김성호 부장검사도 가세. ○…전 피고인은 재판장이 호명하자 평소처럼 엷은 미소를 띠며 입정했으나 공판이 진행되면서 간간이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문지르는 등 초조한 모습을 보이기도. 전 피고인은 상오 공판이 끝나자 허화평 피고인 등에게 환한 웃음을 지으며 몇마디를 건넨 뒤 피고인 출입문을 나서다 5·18 피해자들이 『살인마』라고 소리치자 화들짝 놀라는 모습. ○…전 피고인은 김영일 재판장이 『12·12사건에 대해 보충신문을 하는데 먼저 전두환 피고인에게 묻겠다』고 하자 『보충신문에 답변하지 않을테니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며 답변을 거부. ▷연희동◁ ○…서울 서대문구 연희2동 전 전 대통령의 자택은 부인 이순자씨와 장남 재국씨만 집을 지키고 있고 측근들의 발길도 끊어져 한산한 분위기. 사형구형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비서진은 『왜 그런 것을 묻느냐』며 신경질. 전씨 비서관은 『재국씨 등 3형제가 어제 안양교도소를 찾아 어른을 면회한 뒤 이 여사를 위로했다』며 『이 여사는 최근 2∼3일 동안 2층침실에서 두문분출하고 있다』고 전언. 전씨 집에서 6백여m 떨어진 연희1동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집도 부인 김옥숙씨만 집을 지키고 있어 적막한 분위기는 마찬가지. 노씨 비서진은 기자들이 무기징역 구형에 대한 소감을 묻자 『아 그렇습니까』라며 시치미.〈박홍기 기자〉
  • 피고인 최후진술내용

    ◎전두환 피고인/“「정치보복 재판」 본인으로 끝나야” 본인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이 법정에 서게 된 것을 본인의 부덕의 소치로 생각하며 이러한 일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국민여러분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이 재판을 이끌어 온 재판부에 대해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검사 여러분에게도 같은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이 사건은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구호아래 과거정권의 법통과 정통성을 심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실의 권력이 제아무리 막강하다 하여도 역사를 자의로 정리하고 재단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또한 국가의 계속성과 헌정사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서도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여 그 정권의 정치적 시각과 역사관에 의해 과거 정권의 정통성을 시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한 시대의 역사는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그들 나름대로 나라를 위해 노력한 처절한 삶의 기록입니다. 우리나라가 건국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과 국정담당자는 온갖 역사적 시련을 그때마다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였기에,오늘날 우리나라가 민족의 역사상 처음으로 자급자족하며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갈 기틀을 만들어 놓았다고 본인은 확신합니다. 건국이후의 우리나라 역사가 독재와 부정축재로만 뒤덮인 암흑의 시기였다면,어떻게 오늘날의 번영이 가능하였겠습니까. 따라서 지난 반세기의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런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하며 의도적으로 매도만 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본인은 지난 89년12월30일 당시 여야 4당의 합의에 의해 국회의 증언대에 섰을때 이미 과거에 있었던 모든 잘잘못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 한사람에게 있으며 이를 위해 국민이 원한다면 감옥이든 죽음이든 그 무엇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말씀을 드린바 있습니다. 그러한 본인의 마음은 5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개인적으로는 버마에서 수많은 국가의 인재들을 잃고 이땅에 홀로귀국했던 그날부터 하루 하루의 삶을 국가를 위해 봉사하라는 뜻으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여분의 인생이라 생각하고 보내왔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본인은 생명에 연연하거나 처벌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없으며 오직 바라는 것은 본인 하나의 처벌로 국론분열과 국력의 낭비를 막을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입니다. 끝으로 본인은 과거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적인 재판이 본인에서 끝이 나고 앞으로는 과거정권을 긍정적으로 승계함으로써 이를 바탕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높이고 보다 밝은 미래를 향하여 온 국민이 매진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 입니다. ◎노태우 피고인/“역사는 심판대상 아닌 평가 대상”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으로 국정의 책임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참담한 심경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일이 이제 이루어진데 대해 국민여러분에게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역사와 국민에 무한한 책임을 지고 있던 전직 대통령으로 제 개인적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법정은 개개인의 잘잘못을 판단하는 것이아니라 우리 국민이 함께 살았던 한시대의 역사를 사법심판하는 자리가 돼 버렸습니다. 역사는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으로 지울 수도 다시 쓸 수도 없는 것입니다. 역사는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언정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역사는 항상 암과 명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떠나서 어제의 일을 오늘에 기준해서 판단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우리사회가 겪었던 그 어려웠던 여건을 돌아보면서 당시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있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16년전에 있었던 역사를 그것도 국민적인 정치적인 심판이 끝난 일을 구태여 심판하려고 한다면 본인은 이것도 우리 역사의 한 장이라고 믿고 무엇이든 감내하겠습니다. 다만 사법적 책임이 어떻든 그 책임은 전직대통령에게 묻는 것으로서 끝내야지 다른 사람에게 묻지 말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국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 돈문제는 기본적으로 제 불찰에서 비롯된것입니다. 우리 정치사의 오래되고 잘못된 관행을 고치지 못한 점, 수많은 자금을 명예롭게 처리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는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지난 10개월동안 수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다만 돈을 한번도 뇌물이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개인 축재를 하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대통령을 퇴임한 이후 이 세상을 하직하는 날까지 공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러한 돈을 개인적으로 쓸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이 재판은 노태우 개인 재판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역사의 문제로 남게 됩니다. 오늘의 이 아픔이 더 밝은 내일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타 피고인/“본분 충실… 잘못 있다면 겸허히 수용” ▲유학성 피고인=12·12 사건 당시 부대 상호간 충돌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이를 위해 최규하 대통령에게 가서 결재해 달라고 건의도 했습니다. 그것이 죄가 된다면 처벌을 받겠습니다. 시국수습 방안도 구속되기 이틀 전 검찰에서 들어서 알게됐고 이전에는 듣지도 알지도, 설명을들은 바도 없었습니다. 권정달 증인의 증언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황영시 피고인=12·12 및 5·18사건과 관련해 심판을 받게된 것은 저의 부덕의 소치로 생각합니다. 당시 군인으로서 조국을 지킨다는 일념으로 임했고 이후 평생을 야전 군인으로서 지내오며 그때나 현재나 정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도 잘못한 것이 있다면 겸허히 처벌을 받겠습니다. ▲차규헌 피고인=본인의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겠습니다. ▲박준병 피고인=제일 큰 고통은 직업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송두리째 빼앗아 버린 군사반란죄로 기소된 것입니다. 12·12 당일 저녁을 먹는줄 알고 30경비단에 들어 갔지만 총장 연행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고 논의한 바도 없으며 참여한 적도 없었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최세창 피고인=박종규 피고인은 12·12 당시 여단장인 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죄가 있다면 여단장인 제가 받아야 합니다. 더 이상 그에게 불이익이 없기를 바랍니다. ▲장세동 피고인=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허화평 피고인=12·12 및 5·17,5·18 등 일련의 사건에서 특별한 목적보다는 군인으로서 명령을 따라 수행했을 뿐입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이 공방은 이미 16년전의 일인데다 그간 4차례에 걸친 합의가 있었고 지난해 7월에는 검찰에 의해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된 사건입니다. 지난 87년 개정된 헌법에는 엄연히 소급입법이 금지돼 있는데도 지난해 12월 5·18 특별법을 제정한 데 이어 헌법재판소마저 이 법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려 헌법정신을 유린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허삼수 피고인=지난 80년 당시 제가 알게 모르게 한 행위가 죄가 된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이학봉 피고인=더 이상 말할 것이 없습니다. ▲박종규 피고인=당시 정병주 사령관을 체포하라는 최세창 여단장의 지시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며 군인으로서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었습니다. ▲신윤희 피고인=12·12 당시 보안업무 수행과정에서 하소곤 장군님께 부상을 입힌 것에 대해 하 장군님께 사죄드립니다. ▲이희성 피고인=더 이상 하고싶은 말이 없습니다. ▲주영복 피고인=광주 사태 당시 계엄군과 광주 시민간에 인명피해가 나지 않도록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정호용 피고인=지금까지 구차한 변명이나 권모술수, 비열한 거짓말로 인생을 살지 않았습니다. 재판에서 진술한 내용은 모두 사실입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재판장이 진실에 입각해 증거에 따라 판단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 소설가 이순원씨 전·노씨 구형공판 방청기

    ◎이제 국민이 심판할 차례다/전·노씨는 구형순간 터진 박수의 의미 알아야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에게 법원이나 검찰청은 왜 그 주변분위기부터 삼엄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서울 형사지방법원 417호 대법정.10시부터 열리는 이 역사적 재판을 구경하기 위하여 진작부터 입장한 방청객들은 숨소리를 죽이고 조용히 앉아 있다.늦게 들어갔는데도 방청석 제일 앞에 자리를 잡고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소복차림의 아주머니들과 베잠방이를 입은 나이드신 촌로들,묻지 않아도 어디에서 올라온 누구인지 알겠다.목발을 짚고 뒤늦게 자리를 찾는 40대 남자의 모습도 눈에 아프게 들어온다.그래서 더 엄숙하게 보이는 법정은 마치 긴 회랑의 한 부분을 잘라놓은 것 같다. 잠시 후 검사들이 들어오고 변호인들이 자리를 채우고,부장판사를 포함한 세명의 판사가 들어왔다.늘 그렇듯 재판부 판사들의 얼굴은 근엄하다.가운데 앉은 재판장이 이 재판의 성격이 피고인들에 대한 반란수괴,내란수괴,내란중요임무 종사,반란중요임무 종사 등에 대한 것임을 알리며 개정을 선언하고 한사람 한사람 피고인을 호명해 법정 안으로 불러들였다. 전두환.그와 그 이름에 대한 어떤 선입견 때문이었을까.그는 하늘색 수의를 입고도 재판장보다 더 근엄한(?)얼굴로 꼿꼿이 들어와 재판부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하곤 지정된 피고인석 앞에 서서 잠시 허리춤에 두 손을 짚어보았다간 자리에 앉았다.검찰이나 방청석을 향해선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였다. 노태우.안으로 들어서며 그는 재판부를 향해 인사를 하고 방청석을 향해서도 조금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인사를 했다.어쩌면 그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보고 들어 알고 있는 두 사람의 성정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뒤를 이어 유학성,차규헌,박준병,최세창,장세동 등 16명의 피고인이 수의를 입거나 양복을 입은 채로 차례로 들어와 피고인석을 채웠다. 상오 중 공판에선 김경일 전1공수1대대장에 대한 증인신문과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부 보충신문이 있었다.재판부 보충신문에 대해 전두환 피고인은 『답변을 하지 않겠다』고 했고,다시 재판장이 『노태우 피고인도 답변을 않겠느냐』는 물음에 그는『아직 그런 결심을 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해 작은 웃음을 자아냈다. 전두환 피고인은 마치 봉건시대의 상왕과도 같은 태도로 반란 및 내란 수괴의 피고인이 아닌 한때 만인지상의 권력자로서의 오로지 자신의 옛 영화와 명예만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피고인석에 앉아서도 그토록 자신의 그릇된 명예만을 중시하는 그가 이 재판이 열리기까지 16년간이나 땅에 떨어져 있던,한때는 스스로 「폭도」로까지 몰았던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명예를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을까.그리고 상오 공판의 휴정과 함께 터져나온 죽은 사람들의 목숨도 아니고 『어디에 묻었는지도 모를 뼈다귀를 돌려달라』는 유가족들의 절규를 들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재판은 하오2시에 속개되어 검찰측의 논고로부터 시작되었다.「현대사의 오욕」이 나오고 「잘못된 과거에 대한 철저한 청산」이 나오고,「역사와 국민 앞에 심판받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사건을 수사했으며,「법은 만민에게 평등하며 어떤 권력을 가진 자라도 법의 천강을 벗어날 수 없다는 교훈을 주는역사의 심판장이 되어야 한다」던 검찰 논고는 그 자체로서는 더없이 준엄하다.그러나 94년과 95년 두 차례에 걸쳐 공식적으로 12·12사건에 대한 기소유예와 5·18 사건에 대한 공소권 없음 등 결정을 내렸던 검찰이 아니던가.그래서인지 그 논고문의 울림까지 준엄하게 들리지는 않았다.논고 도중 전두환 피고인은 애써 검사와의 시선이 마주치길 피했고,노태우 피고인은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이윽고 구형순간이 다가왔다. 전두환 피고 사형.속으로야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그 순간에도 그는 미동조차 않고 있었다.방청석도 숨을 죽이고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노태우 피고 무기징역.그는 움찔 몸을 떨었다.유학성 징역 15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호용 피고 무기징역. 검찰의 구형이 끝나는 순간 커다란 박수소리가 들렸다.어쩌면 그 박수는 15년만에 처음으로 그렇게 터져 나온 것인지 모른다.우리는 지켜볼 것이다.그들의 죄과도 이 재판도 결국은 우리가 심판할 것이다.
  • 「12·12」 「5·18」 결심공판/재판부 신문내용

    5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27차 공판에서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 김영일 재판장은 검찰의 구형에 앞서 마지막으로 피고인을 직접 신문했다. 재판부는 전두환 피고인이 신문에 대한 답변을 거부함에 따라 허화평 피고인부터 신문했다. 피고인 별 신문내용을 간추린다. ▷허화평 피고◁ ▲김 부장판사=보안사가 수집한 정보는 분석내용 및 대응책을 함께 묶어 상부에 보고하는게 상례 아닙니까. ▲허 피고인=그렇습니다. 대응책 등이 자동적으로 수반돼 보고됩니다. ▲김 부장판사=12·12 당시 신군부병력이 출동해 국방부까지 장악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허 피고인=저로선 잘 모르는 일입니다. ▲김 부장판사=노재현 국방장관의 결재는 자의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까. ▲허 피고인=답변하기 곤란한 사안입니다만, 참고적으로 국방장관으로서는 12·12사건 자체가 합수본부장과 직접 관계된 일이고 따라서 사안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합수본부장과 접촉할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강제로 결재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 부장판사=전방부대가 서울로 출동하는 건 이례적인 일 아닙니까. ▲허 피고인=통상에 비춰 그렇습니다. ▲김 부장판사=5·16때 전방부대가 서울로 출동했었나요. ▲허 피고인=출동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 부장판사=10·26 이후 중앙정보부가 퇴락한 후 보안사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죠. ▲허 피고인=그렇습니다. ▲김 부장판사=전두환 피고인이 10·26 이후 12·12까지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정승화 총장의 눈치를 살필 정도라고 진술했는데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허 피고인=…. ▲김 부장판사=「K­공작계획」이라는 게 그 당시 있었죠. ▲허 피고인=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김 부장판사=80년 4월14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서리가 됨에 따라 정부조직법상 국방부장관이나 계엄사령관 등 보다 서열이 높아진 것 아닌가요. ▲허 피고인=서열은 잘 모르지만 영향력은 매우 컸던 것으로 압니다. ▷이학봉 피고◁ ▲김 부장판사=육참총장이 10·26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총장의 계엄업무 수행과정에가시적으로 큰 장애요인이 된다고 간주했습니까. ▲이 피고인=업무수행에 큰 영향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태우 피고◁ ▲김영일 부장판사=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면 12·12와 같은 사태가 일어날 줄 몰랐습니까. ▲노 피고인=내란방조 혐의가 있는 정총장을 연행하는 것은 적법하기 때문에 그런 사태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주영복 피고◁ ▲김 부장판사=당시 계엄사 산하 합수본부장인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정부장서리까지 맡게된 후 국방부장관인 증인과의 관계가 힘들게 됐죠. ▲주 피고인=중정부장서리가 된 후에는 전 보안사령관을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임무수행에 곤란한 일은 없었습니다. ▷이희성 피고◁ ▲김 부장판사=광주사태 때 광주시민에게 몇차례 선무전단을 살포했습니까. ▲이 피고인=계엄사령관 이름으로 3∼4차례 살포했습니다. ▲김 부장판사=선무전단은 계엄사에서 만들었습니까. ▲이 피고인=계엄사 참모가 만들었는지, 다른 기관에서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호용 피고◁ ▲김 부장판사=광주에서 상황보고를 받기 위해서나 지휘참고 등을 위해 특전사 여단장들을 만난 적 있습니까. ▲정 피고인=제가 정식지휘 계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황보고를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여단장들이 저를 만나면 대충의 상황에 대해서는 얘기 했으나 지휘혼란을 막기 위해 지시는 하지 않았습니다. ▲김 부장판사=그렇다면 왜 여러차례 광주에 내려갔습니까. ▲정 피고인=예하 부대가 파견돼 있는 저로서는 내려가 보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부장판사=서울에서 광주를 오르내린 것은 시위진압에 대한 기밀사항을 전달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까. ▲정 피고인=검찰에서 그런 얘기를 하고 있으나, 기밀사항을 가지고 갔다면 어딘가에 전달을 했어야 하는데 검찰조사 과정에서도 그런 것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김 부장판사=광주에 갔다 오면 계엄사령관 보다 보안사령관을 먼저 찾아갔다는데 사실입니까. ▲정 피고인=사실이 아닙니다.서울에서 광주에 오르내릴 때마다 계엄사령관에게 보고했습니다.〈박은호·김상연 기자〉 ◎검찰의 피고인별 구형 이유/전씨­최고책임자에 법정 최고형/노씨­「2인자」 고려 전씨와 차등 검찰은 5일 전두환 피고인 등 16명의 피고인에 대해 법정 최저형량 10년을 기준으로 차등해 사형까지를 구형했다고 밝혔다.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의 김원치 본부장(서울지검 1차장)은 피고인들에 대해 작량감경(범죄의 정상을 참작해 형을 낮추는 것) 없이 구형했지만 노태우 피고인은 상관살해 미수죄의 「미수」 부분을 고려해 법률에 따라 감경했다고 설명했다. 이희성·주영복 피고인은 검찰이 재량으로 감경했으며 형법에 따라 사안의 경중과 가담경위, 기여도, 사후 태도, 개인정황 등을 고려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피고인별로 차등구형 했다고 강조했다. 개인별 구형 이유를 간추린다. ◇전두환 피고인=반란 및 내란의 모든 과정에서 최고책임자로서 수괴에 해당된다. 거액의 뇌물수수를 고려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한다. ◇노태우 피고인=거액의 뇌물을 수수했으나 반란 및 내란과정에서 2인자의 위치에 있었다. 이를 고려해 전 피고인과 달리 무기징역을 차등 구형한다. ◇황영시·정호용 피고인=내란과 5·18 진압과정에서 강경진압을 주도했다. 내란목적 살인죄의 최저형인 무기징역을 각각 구형한다. 황씨는 12·12에도 관여했고, 정씨는 뇌물 3백억원을 수수한 사실도 감안했다. ◇이희성·주영복 피고인=내란과 5·18 진압에 소극적으로 간여했다. 그 가담경위와 (다른 피고인과 달리 변호인이 사퇴하지 않은) 재판태도 등을 감안, 각각 징역 15년으로 작량감경했다. ◇허화평·허삼수·이학봉 피고인=12·12 및 5·18사건의 주요 계획에 대한 입안과 실행을 주도해 각각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유학성·차규헌 피고인=군 선배로서 신군부의 후견인 역할을 하며 범행에 가담했다. 차 피고인의 경우 검찰 조사에서 시인한 내용을 법정에서 부인한 사실을 참작해 각각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최세창 피고인=3공수여단을 직접 동원해 특전사령부를 공격하고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했다. 하극상을 주도한 패륜적 범죄를 저질러 대표적으로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장세동피고인=30경비단을 지휘부로 제공했으나 직접 범죄의 실행에 가담한 정도가 적어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신윤희·박종규 피고인=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체포작전을 직접 지휘했다. 패륜적 범죄에 속하나 상관의 명령에 복종한 점을 감안해 각각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박준병 피고인=법정태도와 범행의 가담경위, 피동적인 가담사실을 감안해 징역 10년을 구형했다.〈박선화 기자〉
  • 「12·12」 「5·18」 비자금사건 일지

    ▲95년10월19일=민주당 박계동 의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4천억원 시중은행예치 폭로 ▲10월20일=대검 중앙수사부 수사착수 ▲11월16일=노 전 대통령 구속수감 ▲11월24일=김영삼 대통령 5·18특별법 제정발표 ▲11월30일=「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발족 ▲12월2일=전두환 전 대통령 대국민성명발표 후 경남 합천행 ▲12월3일=전 전 대통령 연행, 안양교도소 구속수감 ▲12월4일=조홍 전 수경사헌병단장·노재현 전 국방부장관 등을 시작으로 관련자 본격소환 ▲12월8일=최규하 전 대통령 출석요구서 전달 ▲12월12일=최 전 대통령 1차 방문조사 무산 ▲12월15일=헌법재판소 5·18헌법소원사건에 대한 사건종료결정 ▲12월16일=최 전 대통령 2차 방문조사 무산, 최 전 대통령 대국민성명발표 ▲12월21일=단식중이던 전 전 대통령 안양교도소에서 경찰병원으로 후송.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제정·공포 ▲12월27일=5·18사건 광주현장조사 및 광주지검과 공조 ▲96년1월17일=장세동·최세창·유학성·황영시·이학봉 등 구속영장청구 ▲1월18일=12·12사건 위헌심판제청(서울지법).장세동·최세창 구속영장 보류 ▲1월23일=전·노 두 전직대통령과 유학성·황영시·이학봉·이희성·주영복·차규헌 등 기소 ▲1월30일=정호용·허삼수·허화평 등 국회의원 3명 구속영장청구 ▲2월16일=5·18특별법 「합헌」결정 ▲2월22일=박준병 의원 구속영장청구. 최세창·장세동 구속 ▲2월28일=12·12 및 5·18사건 수사종결 ▲3월11일(1차 공판)=전두환·노태우 등 피고인 16명 출석 ▲4월22일(5차〃)=전피고인 직접신문. 전상석·이양우 변호사 검찰신문에 항의, 퇴정 ▲5월20일(8차〃)=변호인측의 반대신문 시작. 변호인측 재판부의 야간재판에 반발해 퇴정 ▲6월13일(13차〃)=전 피고인측 변호인단 주2회 재판에 항의,집단퇴정. 재판파행 ▲6월24일(16차〃)=재판부 최 전 대통령 등 44명 증인채택 ▲6월27일(17차〃)=윤성민 전 육참차장을 시작으로 증인신문 ▲7월1일(18차〃)=최 전 대통령 증언거부 ▲7월4일(19차〃)=전·노 피고인측의 변호인단 집단불출석,재판부 국선변호인 선임▲7월8일(20차〃)=전·노 피고인측 이양우 변호사 등 변호인 8명 집단사퇴. 전·노 피고인 출정거부선언 ▲7월11일(21차〃)=전·노 피고인 다시 출석, 국선변호인 선임해 공판진행 ▲7월16일=유학성·황영시·이학봉 피고인 법원의 구속집행정지결정으로 석방 ▲7월22일(23차〃)=권정달 의원 증인출석 ▲7월25일(24차〃)=재판부 8월5일 결심공판 발표 ▲7월29일(25차〃)=유학성·황영시 피고인측 정영일 변호사 등 변호인 6명 또 집단사퇴 ▲8월1일(26차〃)=이희성 피고인 등 증인 7명 신문 ▲8월5일(27차〃)=김경일 12·12 당시 1공수 1대대장(현역 소장)증인을 끝으로 사실심리 종료. 검찰 전·노 피고인 비자금사건과 병합해 구형
  • 국회 전문위원 인사

    ◎운영위 수석 한세동/건교위 수석 이승훈/보건위 수석 강천구/교육위 수석 정부영/여성특위 수석 강영소 국회는 3일 차관보급인 국회 운영위 수석전문위원에 한세동 보건복지위 수석전문위원,건설교통위 수석전문위원에 이승훈 법제예산실장,보건복지위 수석전문위원에 강천구관리관을 각각 임명했다. 또 교육위 수석전문위원에는 정부영 관리국장이,여성특위 수석전문위원에는 강영소 예결특위 전문위원이 승진 임명됐다.
  • 「12·12」 「5·18」 26차 공판/증인신문 지상중계

    ◎“임무 받고 출동때 부대원들에 실탄 지급”·“차량통행 저지해도 계속 다가와 사격”­김광택 증인/“승용차에 대한 총격 어떻게 발생했나”­재판장 12·12 및 5·18사건 제26차 공판이 1일 서울지법 제417호 대법정에서 열렸다.지난 6월27일 제17차 공판이래 마지막 공판은 김광택 당시 20사단 61연대 2대대 6중대장에 대한 증인신문으로 시작됐다.채택증인 91명중 40명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날로 마무리 됐다. ○김광택 증인 ▲박봉식 검사=증인이 소속됐던 20사단 61연대 2대대 6중대는 80년 5월21일 하오6시 광주와 목포간 도로를 봉쇄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죠. ▲김증인=그렇습니다. ▲박검사=임무를 부여받고 출동할 때 실탄을 수령해 부대원들에게 지급했습니까. ▲김증인=그렇습니다. ▲박검사=5월21일 밤 10시10분쯤 효천역 부근에서 도로 차단임무를 수행하던중 목포쪽에서 차량 6대에 탑승한 시위대와 교전한 적이 있습니까. ▲김증인=있습니다. ▲박검사=5월22일 새벽 1시쯤 같은 지역에서 근무하던중 광주쪽에서 버스 5∼6대를 타고 오는시위대와 교전한 적이 있습니까. ▲김증인=예. ▲박검사=5월22일 상오 8시30분쯤 효천역 부근에서 광주쪽에서 오던 승용차 1대에 총격을 가해 왕씨 성을 가진 사람을 사망케한 사실이 있습니까. ▲김증인=먼저 총을 뺐기때문에 총격을 가했습니다. ▲김영일 재판장=5월22일 상오 8시쁨 승용차에 대한 총격은 어떻게 발생했습니까. ▲김증인=사병이 차량통행을 막으려 해도 계속 다가와 사격을 했고 총격이 끝나고 가보니 승용차에 탄 4명이 모두 사망했으며 그중 1명이 총일 갖고 있었습니다. ○최규진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당시 11공수여단 62대대 4지역대장이던 증인은 5월21일 하오 1시 전남도청앞에서 11공수여단 병력이 장갑차와 버스를 타고 돌진해 오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최증인=알고 있습니다. ▲김부장검사=5월24일 하오 2시븜 증인의 부대가 주남마을에서 송정리 비행장으로 철수하던중 효천역 부근에 이르렀을때 매복중이던 보병학교 병력이 증인의 부대에게 90미리 무반동총으로 사격을 가했습니까. ▲최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당시 보병학교병력이 신분확인이나,사전경고를 했습니까. ▲최증인=폭도로 오인해서 사전경고는 없었습니다. ▲김부장검사=증인은 보병학교 병력의 당시 총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최증인=잘못된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서익원 변호사=사병들에게 실탄을 분배한 시점은 언제입니까. ▲최증인=구체적으론 기억이 나지 않으나 5월 21일쯤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상균 증인 ▲박태식 검사=당시 20사단 62연대 2대대 5중대장이던 증인이 소속돼있던 2대대는 80년 5월21일 하오 광주 서구 화정동소재 광주통합병원 앞돌고개로 출동해 시위대와 대치한 사실이 있지요. ▲이증인=그렇습니다. ▲박검사=다음날인 22일 하오 연대로 부터 광주통합병원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받고 통합병원쪽으로 이동하던중 이를 저지하던 무장시위대와 민가지역에서 교전한 사실이 있나요.또 당시 대대장의 지시에 따라 병력들은 응사를 하면서 통합병원으로 이동했나요. ▲이증인=교전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대장의 발포지시가 있었던것이 아니고 상대편에서 발포함에 따라 병사들이 스스로 자위권을 위해 총을 쏜 것으로 생각합니다. ▲서익원 변호사=5월22일 돌고개 작전 전후에 자위권 발동 지시나 관련지침을 받은 사실이 있나요. ▲이증인=총기 사용은 지시가 있을 때까지 절대 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또 출동에 앞서 중대장과 병사들의 작전에 임하는 자세애 대한 설명도 있었습니다. ▲서변호사=당시 총기를 일체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만 있었고 총기사용 허가는 22일 통합병원으로 이동할 당시 이후의 일이지요. ▲이증인=그렇습니다. ○박종규 증인 ▲이부영 검사=당시 3공수여단 15대대장이던 증인은 3공수여단 병력이 5월22일 새벽 0시40분 광주교도소 앞에서 시위대와 교전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시위대의 서종덕등이 총상으로 사망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박증인=알고 있습니다. ▲서익원 변호사=광주에 있을 동안 정호용 특전사령관이나 상급부대로부터 자위권 발동 지시를 받거나 계엄사령관의 자위권천명 방송을 본적이 있습니까. ▲박증인=지시를 받거나 방송을본적은 없었고 광주교도소로 이동하고난뒤 교도소에 뿌려진 삐라를 보고 알았습니다. ○박준병 증인 ▲이부영 검사=당시 20사단장이던 증인은 5월22일 광주 효천역앞에서 20사단 병력이 승용차에 총격을 가해 민간인 3명을 사살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박증인=알고 있습니다. 시신을 광주 국군 병원에 인계했습니다. ▲이검사=5월26일 광주 재진입 지시는 최종적으로 누가 했습니까. ▲박증인=전교사령관이 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세동 증인 ▲김수연 변호사=달시 특전사 작전참모였던 증인은 광주사태 기간 정호용 특전사령관을 수행해서 광주에 내려간 사실이 있습니까. ▲장증인=세차례 수행했습니다. 5월21일과 23일,26일 세차례 내려가 각각 다음날 올라왔습니다. ▲이부영 검사=7공수여단장이 전교사에 머문 사실을 알고 있죠. 7공수 33대와 35대대는 31사단에 작전배속돼 여단장에게는 작전 지휘권이 없는데도 7공수여단이 전교사에 상황실을 만든 사실은 틀림없죠. ▲장증인=상황실인지 여단장의 통신축선을 유지하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상황판과 무전기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 장세동 피고­국선변호인 「불협화음」/26차 공판 이모저모

    ◎방학 맞은 여고생들 재판 참관 “눈길” 12·12 및 5·18사건의 피고인과 증인들을 상대로 한 사실심리가 1일의 26차공판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5개월에 걸친 「마라톤 재판」이 막바지에 접어든 이날 방청석에는 방학을 맞은 여고생 3∼4명이 나란히 앉아 재판과정을 지켜봐 눈길. 대원외국어고 김수현양(17)은 『역사적인 재판을 직접 보는 것이 살아있는 공부라고 생각해 반 친구들과 함께 방청하게 됐다』고 소감을 피력. 전남대 송기숙 교수 등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문인 10명도 공판시작 20여분 전부터 일찌감치 방청석에 자리잡고 재판과정을 유심히 지켜봤다. ○…박종규 피고인은 증인신문 말미에서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진술강요나 협박을 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한참동안 뜸을 들이다 다분히 감정적인 목소리로 『그렇다』고 답변.박피고인은 『나이도 어린 검사가 「이 사람아,그게 아니잖아」,「당신,밤새워 조사받아도 좋아?」라는 등 반말조의 말을 해 모욕감을 느꼈다』며 『협박은 아니지만 검찰로부터 자백을 유도받은 사실이 있다』고 주장. ○…장세동피고인은 국선변호인의 신문내용이 헬기의 내부구조등 지엽적인 문제로 흐르자 『변호인께서 무엇을 물어보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퉁명스럽게 답변해 변호인과 「불협화음」을 내기도. ○…현역군인(육군 중령)으로 증언대에 선 김광택 전20사단 61연대 6중대장은 『당시 시위대를 진압하면서 검문에 불응했을 경우 경고­하퇴부 조준사격이라는 수칙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고 진술,계엄군이 무차별 진압을 했다고 증언. ○…최규진 전11공수여단 62대대 4지역대장은 증언을 마친뒤 『계엄군으로 참가한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숙연한 표정. 최씨는 80년 5월24일 보병학교 병력이 철수중인 자신의 부대에 총격을 가한 사건과 관련,『사전에 아무런 신분확인 조치없이 중화기로 공격을 받아 많은 희생자가 났다』며 『육군장교로서 한없이 부끄러운 일이었으며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회고. ○…김영일재판장은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12·12 국정조사 국방위원회 7차회의록 등 20여점과 12·12 사건당시사용된 38구경 권총탄환·M16 소총탄환 등 5점의 압수물을 증거로 채택. 특히 우국일 전보안사 참모장의 업무일지와 일기사본이 증거물에 포함됐으나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5공전사」는 피고인들이 모두 채택에 부동의,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박은호·김상연 기자〉
  • 「12·12」­「5·18」 사실심리 종결

    ◎5일 구형·19일 선고 예정 12·12 및 5·18사건 제26차 공판이 1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심리로 열려 증인 7명에 대한 신문이 진행됐다.〈관련기사 19면〉 이로써 피고인 16명과 증인 40명에 대한 사실심리가 사실상 종결됐다. 오는 5일에는 검찰의 구형이,19일에는 재판부의 선고가 내려진다. 재판부는 『오는 5일 공판에서는 80년 당시 1공수 1대대장이던 김경일씨에 대한 증인신문을 마친 뒤 검찰과 변호인측의 의견을 들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출석한 증인은 이희성·박준병·장세동 피고인을 비롯,박종규 당시 3공수여단 15대대장,김광택 20사단 61연대 2대대 6중대장,이상균 20사단 62연대 2대대 5중대장,최규진 11공수 62대대 4지역대장 등이다.
  • 전·노씨 선고공판 새달 19일에 열려/44명 증인채택 취소

    12·12 및 5·18사건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의 선고공판이 다음달 19일 열린다. 담당 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는 26일 『8월21일이 12·12사건과 관련해 구속된 박준병·최세창·장세동 세 피고인의 구속만기 석방일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재판부는 이와 관련된 재판일정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혀 19일이 선고공판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재판부는 또 현재 채택된 89명의 증인 가운데 다음달 1일까지 신문이 이루어지지 않는 44명의 증인에 대해서는 증인채택을 취소한다고 밝혔다.이에 따라 이들 증인들에 대해 모두 증인신청을 기각할 방침이다. 재판부는 특히 증인으로 채택되었으나 법정출두를 하지않는 최규하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최씨의 증언이 없어도 판단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며 『재소환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덧붙였다.〈박상렬 기자〉
  • “「5·17」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안보사서 소집 지시”

    ◎「5·18」 22차 공판 12·12 및 5·18 사건 22차 공판이 15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재판에는 당시 유병현 합참의장,임헌표 전교사 교육훈련부장,김기석 전교사 부사령관,이귀호 기갑학교장,김준봉 2군사령부 작전차장,백남이 전교사 작전참모,김충우 보안사 대공처장 등 7명이 증인으로 참석했다.정도영 보안사 보안처장은 출석하지 않았다. 유 전합참의장은 증인 신문에서 『80년 5월17일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 앞서 국방장관실에서 주영복 당시 국방장관이 엄지손가락으로 어깨 너머를 가리키며 「외부의 요청에 의해 회의를 개최하며,안건이 특별하다」고 말했다』며 『불확실하지만 당시의 분위기로 보아 「외부」는 보안사나 합수부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씨는 『계엄 확대 당시 군의 정치개입은 헌법위반이라고 반대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날 장세동 당시 특전사 작전참모 등 검찰과 변호인단이 신청한 9명을 5·18사건 증인으로 채택했다.〈박상렬 기자〉
  • 재판부 “파행상태속 강행” 천명/일정 차질 재판 향후 전망

    ◎공정성 훼손·역사적 의미 퇴색 좌시 못해 12·12 및 5·18 사건의 「역사적」 재판이 파행으로 얼룩졌다. 전두환·노태우 피고인의 변호인단이 재판 진행에 불만을 품고 8일 전격 사임했다.전·노피고인은 하오 재판에서 법정 출두를 거부했다. 공판 개시 6개월 만에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공정성」이 훼손되는 심각한 국면을 맞았다.재판부,검찰 모두가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재판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품위도 크게 퇴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재판 일정에도 적지 않은 차질이 예상된다. 충격의 여파로 이날 증인 8명에 대한 신문은 절름발이 식으로 진행됐다.변호인단의 신문을 생략된채 검찰의 신문만 진행된 것이다. 재판부는 거규헌·장세동·박종규·신윤희 피고인에 이어 전·노피고인의 국선변호인으로 민인식·김수연 변호사를 선임했다.그러나 국선변호인들은 「기록검토」를 이유로 신문을 다음 기일로 연기했다. 전피고인은 『국선변호인으론 불안해』,노피고인은 『건강을 살펴달라』는 입장을 밝히고 출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파행으로 앞으로 남겨놓은 증인신문과 검찰의 구형,재판부의 선고 일정이 영향을 받게 됐다. 우선 증인신문 과정에서 전·노피고인의 출정 거부 사태가 예상된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1심에서는 피고인이 출정해야 개정이 되기 때문에 재판부는 어떤 방식으로든 전·노피고인을 법정에 나오도록 해야 한다.하지만 강제로 출정시키는 것 자체가 재판부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검찰의 입장도 비슷하다.한 고위관계자는 『피고인이 거부할 경우 물리적 충돌을 감안하지 않으면 법정에 세울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난감해 했다.공판 도중 두 피고인이 퇴정하는 볼썽사나운 사태도 우려한다. 앞으로의 증인신문 과정에서 국선변호인들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피고인들의 방어권을 행사할지도 주목거리다. 재판부는 이날 국선변호인을 전·노피고인 등 6명의 피고인으로 선임함으로써 파행 상태에서도 재판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이달 중에는 증인신문을 끝낼 참이다. 반면 전·노씨측의 변호인단은 1심은 포기하고,2심에서 승부를 걸겠다고 벼른다.또한 전·노씨외 다른 피고인의 변호인 14명이 뒤따라 사퇴할지 여부도 관심거리다.〈박선화 기자〉
  • 「반쪽재판」 당분간 불가피할 듯/변호인 불참… 향후 공판 전망

    ◎재판부 “효율적 재판” 단호한 의지 표출/1심선고 새달 중순으로 보름쯤 지원 4일 열린 12·12사건 19차 공판에 전두환·노태우 피고인 등 피고인 14명의 변호인 19명이 대거 불참함에 따라 또 다시 재판이 파행적으로 진행됐다. 이양우·전상석 변호사 등은 이날 재판부에 낸 주 1회 재판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재판을 준비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불참했다.변호인단은 그동안 공판에서도 비슷한 이유 등으로 집단 퇴정하거나 불참했었다.공판 파행은 이번이 네번째다. 변호인단은 그러나 오는 8일을 비롯,매주 월요일 열리는 재판에는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이에 대응,국선변호인 51명 가운데 형사 합의30부에 배당된 서울변협 소속의 김수연·민인식 변호사를 국선변호인으로 선임해 재판을 강행했다.월요일에는 사선변호인이,목요일에는 국선변호인이 참석하는 반쪽재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김영일 재판장은 『이 재판이 반드시 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사건임을 감안,형사소송법에 따라 직권으로 이들을 선임했다』고 밝혔다.공정성에 다소 상처를 입더라도 효율적인 재판을 위해 더 이상 변호인들에게 끌려갈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출이다. 그러나 이들 국선변호인들은 노재현 전국방부장관 등 증인들에 대한 반대신문과 관련,『재판 하루전에 국선변호인으로 임명됐으니 참석해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사건의 내용을 알지 못해 신문하지 못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법정에서는 김재판장이 피고인의 입장에서 궁금한 점을 증인들에게 반대신문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와 관련,장세동 피고인은 『국선변호인과 피고인들이 최소한 만나 대화라도 나눈 뒤 신문이 이뤄져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다.허화평피고인도 『품위있는 재판진행을 위해 국선변호인과 협의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으나 재판부는 거부했다. 재판부와 변호인단의 이같은 갈등으로 앞으로 증인신문 등 1심 선고까지의 재판 일정이 보름 정도 차질을 빚게됐다. 증인은 모두 67명.이 가운데 윤성민·이건영씨와 신현확·최광수·우국일·구정길씨에 대한 증언이 마무리된 데 이어 이날 노재현·장태완·정승화·백동림씨에 대한 신문이 끝났다.나머지 57명에 대해서는 주 2회 공판,1회 공판 시 10명 안팎의 증언이 이뤄지는 것을 감안할 때 6∼7회 추가 공판을 거쳐 이달 하순이면 신문이 끝날 전망이다. 이어 이달말 검찰의 구형이 있고 재판부의 판결문 작성기간(2주 정도)을 거쳐 다음달 중순쯤 1심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법원 주변에선 『재판부는 오는 9일 1심 구속 기간이 끝나는 안현태·성용욱 피고인 등을 석방해 재판할 수밖에 없겠지만 장세동·최세창·박준병 피고인 등 3명의 구속만기일인 8월21일 전에는 재판을 끝낼 것』으로 보고 있다.〈박선화 기자〉
  • 재판장 증인신문 직접하며 “1인2역”/19차공판 이모저모

    ◎국선변호인 “내용 잘 모른다” 변론 포기/전씨 혼자만 긴팔수의 입어 “건강이상”설 ○…재판장인 김영일 부장판사는 국선변호인을 선임,피고인들이 반발할 가능성을 의식한 듯 『피고인들의 편에서 증인에게 묻는다』는 말을 두어차례 강조하고 증인들을 직접 신문,재판장과 변호인의 1인2역을 자임.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된 김수연 변호사(56·고시16회)와 민인식 변호사(57·사시2회)는 신문 차례가 돌아오자 재판부에 『신문할 사항이 없다.증인을 상대로 피고인들이 질문할 것인지 물어봐 달라』고만 말한 뒤 공판진행을 지켜보기만 했다. 김변호사는 『내용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신문하면 오히려 피고인들에게 불리할까봐 아예 물어보지 않았다』고 설명. ○…전두환 피고인은 다른 구속 피고인들과 달리 반팔 수의가 아닌 긴팔 수의를 입고 나와 건강에 이상이 있지 않느냐는 말이 나돌기도. 한때 설사 때문에 지사제를 먹고 출정한 것으로 알려졌던 전피고인은 수감 7개월째를 맞아 부쩍 야윈 얼굴이었으나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굳게 입을 다물고공판상황을 지켜봤다. ○…장 전 수경사령관은 증인신문 말미에서 울음섞인 목소리로 『30여년동안 함께 군복을 입고 지낸 선·후배 전우들과 피고인과 증인이라는 신분으로 만났지만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조차 못해 인간적으로 죄송하다』고 진술.장씨는 이어 『감정에 북받쳐 지나치게 악의적인 진술을 했는지도 모르겠다』며 피고인측의 「이해」를 구하는 듯한 발언. ○…전두환 피고인과 장세동·허화평·이학봉 피고인은 변호인단의 집단 불참으로 재판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쪽으로 진행되자 재판부에 불만을 토로하거나 검찰 신문에 답변을 거부하며 반발. 전피고인은 건강이 좋지 않고,재판의 신속한 진행에 협조한다는 차원에서,그리고 변호인 앞에서 신문을 받고 싶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검찰의 신문을 받지 않겠다고 진술. 이어 일어선 이피고인은 『국선변호인들이 왜 (변호인석에) 앉아 있는지 피고인들 보기에 민망할 것』이라며 『너무 발가벗고 재판을 받는 기분인데 재판장은 이를 헤아려 달라』고 간접적으로 불만을 토로. 장·허피고인도상오 공판에서 『국선변호인과 잠시 이야기 할 틈을 달라』,『국선변호인 선임은 형식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변호인과 사전에 의견을 교환할 수 있도록 해야 재판의 품위가 올라갈 것』이라고 요청.〈박은호 기자〉
  • 올 상반기 연극 최우수작/「날보러 와요」 선정

    ◎최우수 연출가엔 「어머니」 김명곤씨 연극평론가협회는 올 상반기 공연된 연극 가운데 「날보러 와요」(극단 연우무대)를 최우수작품으로 뽑았다.최우수연출가로는 「어머니」(극단 아리랑)를 연출한 김명곤씨를 골랐다. 이와 함께 「어머니」,「봄이 오면 산에 들에」(극단 미추),「얼굴 뒤의 얼굴」(극단 전망),「슬픔의 노래」(극단 열린무대 동수)등을 우수작품으로,「날보러 와요」의 김광림,「봄이 오면…」의 손진책,「얼굴 뒤…」의 한태숙,「슬픔의 노래」의 김동수씨등을 우수연출가로 선정했다. 최우수작 「날보러 와요」는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인간본연의 심리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유머를 적절하게 조화시킨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어머니」는 한국의 보편적 어머니를 사회 및 역사속의 어머니상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이 평론가들의 중론. 한편 연기자 가운데는 「얼굴 뒤…」의 예수정,「어머니」의 나문희·김민희,「꽃뱀이 나더러 다리를 감아보자 하여」(극단 즐거운 사람들)의 한명희씨 등이 우수여자연기자로 뽑혔다. 또 「날보러 와요」의 유태호,「슬픔의 노래」의 박지일,「얼굴 뒤…」의 강신일,「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극단 신화)의 최종원,「날보러 와요」의 김세동씨 등이 우수남자연기자로 인정됐다.〈김재순 기자〉
  • 전씨 지나친 안보논리에 눈살/「5·17」 첫 반대신문 이모저모

    ◎“당시 북한남침 막았기에 이런 재판도 열린것”/허화평씨,국회선서 할수있게 구속정지 간청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에 관한 첫 반대신문이 열린 3일의 11차 공판에서 전두환피고인은 시종일관 「안보논리」로 5·17조치의 정당성을 역설했다.12·12사건 반대신문은 이 날 상오 공판에서 모두 끝났다. ○…전피고인은 5·17사건 첫 반대신문에서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이건영 3군사령관 등 정승화계열의 장성들이 합수부의 조사과정에서 『정총장의 연행배경을 오해하고 12·12때 병력을 동원했다』고 진술해 관용을 베풀었다고 주장. 전피고인은 또 검찰측이 사용하는 「신군부」라는 용어는 지난 88년 5공 청산문제가 대두되면서 정치권이 만들어 낸 신조어라며 『신군부 세력이 12·12사건 이후에 군주도권을 장악한 뒤 내란을 주도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잘못됐다고 지적. ○…이양우 변호사는 극심한 학원소요 등으로 80년 5월의 시국상황은 「무정부 상태」로 치달았다고 설명하면서 『당시 정국과 사회가 안정돼 있었다』는 검찰측의 주장을반박. ○…전피고인은 80년 5월의 시국수습 방안의 정당성을 역설하면서 안보논리를 지나치게 강조,오버 페이스 했다는 지적이 일기도. 전피고인은 『당시 북괴의 남침을 막았기 때문에 오늘 이처럼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좋은 나라를 만들었다』고 말해,자신이 법정에 선 것과 자신의 과거 업적을 연결시키는 논리적인 비약도 전개. ○…피고인 중 유일하게 15대 총선에서 당선된 허화평피고인은 『오는 5일 국회개원식에서 선서를 할 수 있도록 2∼3일만이라도 풀어달라』고 재판부에 구속집행 정지를 간청. 허피고인의 변호인인 김재철 변호사도 『수십만의 지역주민들에 의해 선량으로 뽑혔는데 실제로 의정활동을 못하더라도 선서만큼은 하게 해 달라』고 거듭 요청. ○…장세동피고인은 반대신문에서 당시 직속상관이던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정총장을 원색적인 용어로 싸잡아 비난. 장수경사령관의 경복궁 포격지시와 관련,『반란행위 이상의 정신이상 상태에서 명령을 내렸다』고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정총장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기회주의자」,『총장의 직분에 걸맞지 않은 추한 모습을 보였다』고 극언. 장피고인은 특히 정총장을 겨냥해 『12·12사건의 원인제공자이며 검찰의 이중잣대와 헌재의 이중판결,5·18특별법의 소급입법 등 나라의 어리석은 꼴을 있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모든 책임을 전가하며 맹공. 그러나 자신이 5공 청산과정과 신민당 창당방해 사건 등으로 세번 구속된 사실과 관련해서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느냐.결과적으로 역사의 발전과정으로 생각한다』고 변명. ○…이양우 변호사는 『5·17사건과 관련해 전피고인에 대한 신문항목은 8백∼9백여개』라며 4백여 항목이었던 12·12사건보다 곱절이 넘는다고 소개. ○…12·12 및 5·18사건 재판에 대한 관심이 공판횟수가 늘어날 수록 현격히 줄어드는 추세. 이날 상오 방청권을 배포한 서울지법 정문에는 5·18관련 재야단체 관계자 20여명만이 눈에 띄는 등 썰렁한 분위기.〈박은호·김성수·김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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