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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 당권주자 합동토론회… 김한길·이해찬 李·朴연대 공방

    당 대표를 선출하는 민주통합당 6·9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8명의 당권 주자가 17일 지상파 방송 3사가 주관한 첫 번째 TV합동토론회에서 ‘이해찬·박지원 역할 분담론’을 놓고 날 선 공방을 벌였다. 특히 김한길 후보와 이해찬 후보는 언쟁을 벌이다 상대방의 말을 자르거나 코웃음을 치는 등 불쾌한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했다. 김 후보는 이 후보에게 “이·박 연대는 패권적 발상에서 비롯된 담합이다. 정치공학과 계파 정치만 있을 뿐 국민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박 원내대표는 여러 번 (과정상 문제에 대해) 사과했는데 제안자인 이 후보는 사과한 적이 있느냐. 지금도 제안이 잘됐다고 생각하느냐.”고 몰아붙였다. 그러자 이 후보는 “여러 번 사과했다. 나쁜 언론이 당을 이간하는 용어에 세뇌돼 물들지 말고 동지적인 언어로 대화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김 후보는 “이·박 연대 제안이 잘못되지 않았냐고 물어본 것”이라고 말을 자르자 이 후보는 “내가 답변하고 있지 않느냐. 편을 가르기 위해 제안한 게 아니다. 원내대표는 의원들이 뽑는 것”이라며 신경전을 벌였다. 김 후보는 “위기관리 능력을 가진 리더가 필요한 때라면서 오히려 이 후보가 당의 위기를 몰고 왔다. 담합 이후 당과 문재인 상임고문의 지지율이 내려앉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 후보는 황당한 표정으로 코웃음을 친 뒤 “민주당에는 중심적인 리더십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나온다.”고 반박했다. 다른 후보들도 가세했다. 조정식 후보는 “민주당에 127명의 의원이 있는데 역할 분담을 꼭 두 사람만 하느냐.”고 꼬집었고, 우상호 후보는 “결과적으로 당내 갈등과 분열이 심해졌다. 이 후보는 유력 대선 후보와도 긴밀한 관계인데 대선 후보 경선에서 중립성 시비도 붙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역순회 경선 투표 결과를 현장에서 즉시 발표토록 한 규정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김 후보는 “그런 규칙은 전례도 없고 외국에서도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규칙”이라고 비난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지방시대] 선거공약과 비전이 있는 실천방안/박상규 강원대 경영학 교수

    [지방시대] 선거공약과 비전이 있는 실천방안/박상규 강원대 경영학 교수

    총선 이벤트 이후 어수선한 분위기가 진정되는 국면이다. 많은 국민들이 정치 평론가에서 일상으로 돌아와 공약 이행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대선 예언가로 탈바꿈하고 있다. 19대 국회의원 선거도 예전처럼 정책 대결보다는 구태의연한 꼼수와 비방, 그리고 저질 막말로 얼룩졌다. 국가 대계를 위한 정책 선거가 아니라 목전의 득표에 유리한 방향으로 복지, 재벌 및 세금개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등을 남발했다. 후보자 입장에서는 당선을 위해 국가 및 지역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사탕발림의 공약(空約)일 수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복지, 일자리, 경제민주화 등 125개 항목의 공약을 내세웠다. 선거 후 “더욱 낮은 자세로 국민들에게 드린 약속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 원칙과 약속을 강조하는 박 위원장이 내놓은 공약 이행을 위해 필요한 5년간 소요 예상액은 75조 3000억원으로 알려졌다.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해 우리는 궁금할 수밖에 없다. 제1당이 된 새누리당은 공약 이행에만 몰입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와 같은 국가부도를 반면교사로 삼아 무리한 공약 이행에 따른 부작용을 점검해야 한다. 공약 사항의 실현 가능성 검토, 향후 추진할 우선순위 평가 등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또한 국방, 교육, 복지 등 국가 발전에 필요한 요소들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약 이행 문제는 결국 재원 조달이다. 재원은 결국 국민의 부담이다.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에 적합한 복지정책을 재정립해야 한다. 1인당 2만 달러의 국민소득 수준에서 4만 달러의 복지는 국가재정 운영에 많은 부담을 줄 것이다. 따뜻한 자본주의 4.0시대에서 복지의 중요성은 강조돼야 한다. 하지만 2만 달러의 파이를 나누는 옹색함보다는 4만 달러의 파이로 키운 후 수혜의 여유를 갖는 국정의 비전을 제시해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국민들은 그동안 정치권에서의 무상, 반값, 공짜 정책들에 세뇌돼 기대 수준이 높아졌다. 국민들의 입맛에 맞는 만족스러운 복지가 쉽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과의 진솔한 대화와 설득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지역 발전을 위한 공약이다. 지역 당선자들의 공약과 경합한 후보들의 바람직한 공약을 수렴해 국가정책 기조에 연계시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국가 어젠다가 필요하다. 지역 발전이 국가 발전으로 연결되는 국가전략 수립이 요망된다. 지역 및 정당의 이기적인 입장에서 공약을 강행하려는 것은 국가적 낭비일 뿐이다. 이웃 지역과의 공동사업을 통한 예산 절감 방안 마련과 이웃과의 공생 발전에 이바지하는 공약사업 추진이 요구된다. 수도권과 지방, 지방과 지방 간의 균형적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힘 있는 다선 국회의원 지역에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힘없는 초선 국회의원 지역이 소외된다면 건전한 국가 발전을 이룩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들이 행복한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공약실천 로드맵을 수권 정당인 새누리당이 만들어 주길 기대한다. 공약 이행에 따라 복잡하게 얽힌 국민들의 이해관계를 정치권에서 허심탄회한 토론과 합의 과정을 통해 정부의 진정성을 전달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우리는 정치권을 신뢰할 수 있는 발전적 정치 풍토의 개선을 원한다.
  • [사설] 흐릿해진 독도인식 다시 다잡아야 한다

    일본의 독도영유권 침탈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0년 초등학교 교과서에 이어 지난해 대부분의 중학교 교과서 검정에서도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주장을 통과시켰다. 오늘 검정이 확정된 상당수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표현이 담겼다. 교과서라는 ‘합법적’ 수단을 통해 미래 세대에게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세뇌교육을 체계적으로 시키겠다는 속셈을 노골화한 것이다. 그제는 반한·극우단체 회원들이 주일 한국대사관 영사부 건물 앞에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적은 나무 말뚝(다케시마비)을 기습적으로 설치했다가 철거당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정부도, 민간도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발맞춰 나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지금 우리의 독도는 안녕한가. 어느새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가. 며칠 전 서울 한복판 지하철 역사에서 열린 일본 관광홍보 행사에서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한 한글지도가 배포돼 물의를 빚은 사실은 우리의 느슨해진 독도 인식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본 극우파 의원들이 ‘울릉도 방문’ 쇼를 벌인 몇달 전만 해도 독도 수호 의지는 한 점 의심도 받지 않았다. 어느 장관은 한달음에 독도로 달려가 해경 경비대원과 함께 보초를 서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이 독도영유권 주장의 수위를 한껏 높이고 있는데도 우리는 조용하기만 하다. 포퓰리즘이라는 말까지 들으며 너도나도 한 자락 걸치던 정치권은 선거에 매몰돼 독도문제는 안중에도 없다. 이제 일본 초·중등 교과서에서는 어디서나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대목을 어렵잖게 만날 수 있다. ‘역사 왜곡의 완결판’이라고 할 만한 실로 엄중한 상황이다. 우리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관한 한 무엇보다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본다. 늘 그렇듯 외교통상부 장관이 일본 측에 유감의 뜻을 전하고 몇 마디 항의성명이나 발표하는 식이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지나친 감정적 대응은 물론 바람직하지 않지만 명백한 영유권 도발에 팔짱만 끼고 있을 수는 없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분명한 항의 및 철회 의사를 밝히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마련한 독도종합대책도 보다 속도감 있게 실행에 옮겨야 한다. 단호한 말과 실질적인 행동으로 우리의 영토 수호 의지를 보여줘야 할 때다.
  • 조회수 8200만건 ‘코니 동영상’ 우간다 소년병 납치 등 과장논란

    조회수 8200만건 ‘코니 동영상’ 우간다 소년병 납치 등 과장논란

    지난 1일 유튜브에 오른 이후 8200만건 조회를 기록하고 있는 우간다의 악명 높은 반군 지도자 조셉 코니(왼쪽·51)를 잡으라는 취지의 영화 ‘코니 2012’가 사실보다 과장한 탓에 진실성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CNN과 USA투데이 등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코니 2012는 미국 샌디에이고의 비영리단체 ‘인비저블 칠드런’을 이끄는 제이슨 러셀이 만든 30분짜리 영화다. 1980년대 후반 코니가 아프리카 어린이 수만명을 유괴해 세뇌시켜 소년병으로 만들어 죽게 했는데, 이런 코니를 잡기 위해 30달러짜리 ‘액션 키트’(팔찌·티셔츠·포스터(오른쪽) 세트)를 사거나 기부를 하면 된다는 것이 영화의 큰 줄기다. 2006년 이후 위축됐지만 코니의 활동 무대는 우간다 북부와 콩고민주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남수단 등으로 프랑스만큼 넓다. 미국은 영화가 나오기 몇 달 전인 지난해 10월 특수군을 보내 은밀하게 코니 체포작전에 들어갔다. 영화는 우선 사실을 호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A)는 “반군에 의한 납치와 살인을 과장해 의도적으로 사실을 조작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우간다 군이나 수단 인민해방군(SPLA)도 강간, 약탈 등의 혐의를 받지만 영화는 오히려 이들을 옹호하고 있다.”며 “코니만 제거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했다.”고 비판했다. 민간연구기관 애틀랜틱 카운슬의 피터 팜은 “영화 때문에 코니가 더 깊이 숨어들어 잡는 데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기금 활용의 투명성도 도마에 올랐다. 인비저블 칠드런은 웹사이트에서 지난해 예산 890만 달러(약 100억원) 가운데 80%를 아프리카 프로그램에 썼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정보고서에는 기부금의 37%를 사용한 것으로 적혀 있다. 이 단체가 아프리카에 학교와 라디오방송국을 설립한다고 밝혔지만 확인되지 않았다고 CNN이 덧붙였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특파원 칼럼] 임기말 지지율 올리는 법/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임기말 지지율 올리는 법/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자기 부하가 자기보다 인기가 높거나, 심지어는 자기를 대신해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을 때 그 상사는 얼마나 일할 맛이 떨어질까. 지난 8월 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심정이 딱 이랬을 것 같다. 재정적자 감축을 둘러싼 벼랑끝 협상에서 “공화당에 지나치게 소심한 모습을 보였다.”는 민주당 지지층의 비판과 함께 오바마의 지지율은 급전직하했다. 그러면서 나온 것이 ‘힐러리 대안론’이다. ‘오바마 카드’로는 내년 대선에서 공화당에 대권을 헌납할 우려가 있으니 차라리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내보내는 게 낫다는 여론이 저잣거리의 구시렁거림을 넘어 언론에까지 보도됐다. 이렇게 불쾌하기 짝이 없는 여론을 접한 오바마는 어떻게 했을까. 신경질적으로 반응했을까. 아니다. ‘2008년의 민주당 대선 후보 오바마’로 돌아가는 쪽을 택했다. 그는 양복 저고리를 벗어던지고 셔츠 소매를 걷어올린 차림으로 버스를 타고 전국을 누볐다. 경호상의 위험성도 아랑곳없이 연일 타운홀 미팅을 통해 유권자들과 만나고 정제되지 않은 거친 질문에 답했다. 개인적으로, 처음엔 오바마의 셔츠 차림 민생탐방을 보면서 ‘저렇게 한다고 지지율이 올라갈까.’라고 냉소했었다.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지지율 회복을 위한 ‘쇼’라고밖에 할 수 없는, 식상한 전략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거의 매일 오바마가 국민들과 부대끼며 뭔가를 설파하는 것을 자꾸 듣다 보니 그의 말이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경제가 아주 안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우리는 할 수 있다.”라고 주문처럼 영감을 불어넣으니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생각, 그리고 공화당의 잘못이 더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을 일종의 세뇌현상이라고 일컬어도 좋은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마침내 눈을 비비고 볼 만한 결과가 나왔다. 지난 2일 퀴니피액 대학 여론조사 결과 한때 41%까지 떨어졌던 오바마의 지지율이 47%까지 오른 것이다. 오바마가 갑자기 국민한테 예쁘게 보일 만한 가시적 ‘호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2일 발표를 보면, 살림살이는 더 나빠졌다. 성장률 전망치는 더 낮아졌고, 실업률 전망치는 더 올라갔다. 미국이 별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은 리비아 내전이 종료됐다고 해서 먹고살기 팍팍한 미국 국민들이 돌연 오바마 지지로 돌아섰을 것 같지도 않다. 결국 오바마가 국민들한테 겉으로라도 열심히 하는 성의를 보인 게 지지율을 끌어올린 근인이 아닐까. 오바마는 지난 몇달간 고고한 현직 대통령이 아니라 겸손한 대선 후보로 변신했다. 시골 마을 식당에 불쑥 들어가 손님들을 놀라게 하는가 하면 농촌 고등학교를 방문해 신세대 질문에 답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현직 대통령의 카리스마가 훼손될 우려가 있는 심야 코미디 토크쇼에도 나가 서슴없이 망가졌다. 단임제인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재선에 출마할 일이 없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보기 힘들다. 한국의 대통령들은 임기 말이 되면 국정의 대단원을 정리하거나 외교적 치적에 상대적으로 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단임제는 나름대로 장점이 많다. ‘포퓰리즘’에 영합하지 않고 나라의 비전을 멀리 내다보며 소신 있게 임기를 마무리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대통령의 지지율이 너무 떨어지면 우선 본인 스스로가 일할 맛이 안 날 테고, 이건 결과적으로 국가적 손해다. 또 대통령의 지지율은 영원히 역사에 남는다. 임기말의 대통령이 높은 보료 위에서 내려와 마치 내일 선거를 앞둔 후보처럼 절박하게 국민들에게 손을 내민다면 어떤 기적이 일어날까. 오바마는 2일 셔츠 차림으로 포토맥강의 냄새나는 다리 밑에 서서 “경제회복”을 역설했고, 워싱턴DC 시민들은 그런 대통령의 모습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느라 바빴다. carlos@seoul.co.kr
  •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남자한테 참 좋은 건 정말 좋은 건 말이죠

    제법 중후해 보이는 건강보조식품 회사 대표가 한때 방송 광고에 등장해 사람들을 웃겼습니다. “남자한테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이런 요지의 카피 때문이었습니다. 기존 광고 규제의 허점을 파고든 기발한 착상이 재미있어 그 화면을 보면서 키득거리곤 했는데, 문제는 ‘남자한테 참 좋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카피만으로는 그 제품이 남자의 어디에, 어떻게 좋은지가 분명치 않습니다만, 굳이 의역하자면 아마도 남성의 스태미나, 즉 성적 능력을 말하고 싶었던 듯합니다. 이전에도 상업적 목적으로 ‘남성’을 들먹인 사례는 많았습니다. ‘강한 남성성’은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유전적 신드롬이었습니다. 물개의 생식기가 그렇고, 뱀탕이나 보신탕도 이런 사회적 속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런 식품이 어떻게 남성의 힘을 강화하는지는 저도 모릅니다만 아마도 단백질, 지방 등과 연관이 있을 듯합니다. 농경 민족인 우리는 항상 육류에 대한 향수를 갖고 살았습니다. 육류를 일상적으로 먹는 서구인들에 대해 갖는 ‘왜소 콤플렉스’나 ‘약체 콤플렉스’가 부른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 세대들은 모처럼 고기반찬이라도 장만할 때면 “고기가 최고다. 많이 먹어라.”라며 ‘육류대세론’을 세뇌시켰고, 그런 노력 덕분에 요즘도 고기라면 정신 못 차리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는 서구 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부른 허상일 뿐입니다. 그들의 육식 문화가 체형이나 완력을 키우는 데는 일정 부분 기여했으며, 덩달아 성적 능력도 얼마간 강화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성적 능력은 기본적인 5대 영양소에 미량원소가 더해져 발현되고 거기에 체력과 심리적 요인이 더해져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며,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데 서구형 섭생이 전적으로 유리하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따라서 한 가지 식품이 인간의 성적 능력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미련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그 건강보조식품 회사의 대표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했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성적 능력을 키우려면 ‘또 다른 무엇’을 찾기보다 건강한 식사를 생각하고, 나태에서 벗어나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보다 더 좋은 ‘참 좋은 것’은 없으니까요. jeshim@seoul.co.kr
  • [中 인권사각지대를 말하다] ‘인권’ 변호 이유로 60일 감금

    [中 인권사각지대를 말하다] ‘인권’ 변호 이유로 60일 감금

    “너는 인간이 아니야.” 중국에서 ‘재스민 시위’ 시도가 이어지던 지난 2월 공안에 끌려가 구금됐다가 두 달 만에 가까스로 풀려난 인권변호사 장톈융(江天勇·40)이 당시의 끔찍했던 악몽에 대해 입을 뗐다. 장 변호사는 1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풀려난 뒤 처음으로 당시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과 협박, 욕설과 위협, 세뇌 공작 등을 낱낱이 폭로했다. 그는 에이즈 관련 인권운동가나 파룬궁 수련자 등의 변호를 맡으며 당국의 집중적인 감시를 받아 왔다. 악몽이 시작된 것은 지난 2월 19일이었다. 이튿날에는 중국의 첫 번째 재스민 시위가 예정돼 있었다. 우선 이틀 동안 극심한 구타가 이어졌다. “모른다.”라는 대답이 나오면 무자비한 폭력이 쏟아졌다. 참다 못한 그가 둘째날 밤 “당신들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왜 이런 비인간적인 짓을 하느냐.”라고 울부짖자 “너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강요된 반성과 세뇌 공작은 물리적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한 뒤 ‘보고하겠습니다. 저는 우리나라를 열렬히 사랑합니다. 그리고 정부의 교육을 받겠습니다.’라는 문장과 애국가요 3곡의 가사를 암송해야 했다. 한 구절이라도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담당 요원들은 가족을 볼모로 한 협박, 생매장 위협 등으로 장 변호사를 황폐화시켰다. 끊임없는 반성문 제출이 이어졌다. 당초 의도한 대로 ‘세뇌됐다’고 생각한 당국은 60일 만에야 그를 석방했다. 물론 조건이 따라붙었다. 장 변호사는 앞으로 인권 관련 사건을 맡지 않고,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등의 8개 항목을 담은 서약서에 서명한 뒤 가까스로 풀려날 수 있었다. 중국 정부는 올 초 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재스민 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에도 여파가 닥칠 기미를 보이자 장톈융 등 인권운동가 수십명을 구금하는 등 인권운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선 바 있다. 장 변호사는 “그들은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길 원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두려움 속에 살고 싶지 않다.”고 폭로 이유를 밝혔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문화마당] 가난하고 무식한 자들로 번창하라/주원규 소설가

    [문화마당] 가난하고 무식한 자들로 번창하라/주원규 소설가

    서울 용산 남일당에 이어 홍익대 두리반, 그리고 이번엔 명동이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의 피맺힌 외침을 바라보는 그 누군가들의 시선엔 서늘함을 넘어선 차가움이 있었다. 그들이 그 차가움을 당연한 논리로 생각하게 만드는 건 법이라는 이름이었다. 정당한 법 집행. 이 한 마디 앞에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한 장의 서류 앞에 쓰인 내용도, 의미도 모호한 판결문을 절대의 낙인처럼 들이밀었다. 그러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법대로 할 뿐이다.’ 부러 편가르기를 할 생각은 없다. 그 누군가들이 말하는 법의 부당한 적용에 대해 추궁할 여력은 필자에게 주어진 몫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가지 질문은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질문조차 하지 않으면 오늘도, 내일도 법의 서슬 아래 삶의 모든 것을 강탈당해도 여전히 앵무새처럼 ‘법대로’만을 외치는 이들의 논리에 어느 순간 우리들 모두가 세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법이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그리고 그 누군가들은 누구인가. 첫 번째 질문. 법이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이 질문의 답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필자의 네 살배기 조카도 알고 있다. 사람이 먼저라고. 하지만 이 당연한 답에 대한 진정성 있는 실천은 요원해져 버린 지 오래다. 사람이 먼저라는 취지의 악용으로 인해 수많은 특별법들이 배설되었고, 찬란하고 난해한 법조문은 경쟁과 착취의 논리에서 승리하고자 발버둥치는 천민자본주의 신봉자들의 들러리가 되어버렸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 식으로 자신들의 편에서만 툭하면 법 운운하는 작태를 민주주의의 미덕인 것처럼 남발해 온 것이다. 이 경우,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선명해진다. 그 누군가들.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송두리째 도려내고도 법의 이름으로 태연할 수 있는 심장을 가진 자들, 사람이 법보다 먼저라는 진리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오직 승리한 자신들이어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들, 그 승리의 푯대를 향해 탈선한 폭주기관차가 되어 달리는 사람들, 승리의 의미를 ‘너’를 짓밟고 일어서는 밥그릇 빼앗기라는 프레임에만 가둬놓는 이들, 그 누군가들은 바로 이런 이들이 아닐까. 그 누군가들의 눈에 보인 가난과 무식함은 삶의 전부를 건 척결의 대상이다. 법은 결코 패자들의 비루한 가치에 손을 들어주는 보루가 될 수 없는 고결한 가치라고 입을 모아 부르짖는다. 하지만 그 누군가들이 지향하는 승리의 궁극엔 승자도, 패자도 없다. 공멸의 패악질만 반복, 재생산될 뿐이다. ‘나’는 ‘너’고, ‘너’는 ‘나’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세상에서 그 누군가들은 사람이 아니다. ‘너’도 죽이고, ‘나’도 죽이는 심장이 뚫려 버린 괴물이다. 이 괴물들이 법보다 먼저인 세상을 원하는가. 과연 이것이 우리들 세상의 오늘과 내일이 되어야 하는가. 가난하고 무식한 자들로 번창해야 한다. 이때의 번창은 우리들 세상의 공생이다. ‘오직 나만 가난과 무식에서 벗어나면 그만이다.’라는 경쟁논리의 노예가 된 사람이야말로 약육강식의 괴물을 동경하는 참가난과 무식함의 노예임을 영혼의 뼛속까지 자각할 때, 그때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하고 무식한 자들의 번창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너’도 가난하고 ‘나’도 가난하다. 하지만 우리들의 세상은 그 가난과 무식함으로 인해 번창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괴물들이 추종하는 법의 논리로 사로잡은, 착취와 경쟁의 결과로 얻어낸 가난과 무식의 한계를 벗어난 가난 아닌 가난, ‘해방된 가난’을 맛볼 것이기 때문이다. ※ 칼럼 제목은 김원이 쓴 ‘박정희시대의 유령들’ 발문에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 [글로벌 시대] 일본 원자력 산업의 복합구조/고토 노부유키 홍익대 교양외국어학부 교수

    [글로벌 시대] 일본 원자력 산업의 복합구조/고토 노부유키 홍익대 교양외국어학부 교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가 탈(脫) 원자력 발전을 표명했다. 일본 유명 배우 스가와라 분타는 일본·독일·이탈리아 3국이 원전반대 동맹을 결성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는데 나는 찬성한다. 그러나 일본의 대부분 연예인은 원자력 발전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왜냐하면 일본 연예계, 특히 TV 방송계는 전력회사에 지배당하고 있어서 “원전 반대”를 주장하는 연예인은 연예계에서 곤경에 처해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TV에 출연하는 유명인의 발언은 영향력이 커서 연예인이나 유명 스포츠 선수가 정치가로 변신하는 경우도 많다. 연예계의 불문율을 지키지 않고 “원전 반대”를 강력하게 주장해서 소속사에서 퇴출당하면서까지 원전 반대 데모에 참가하는 연예인이 있다. 야마모토 다로라고 하는 배우인데, 이처럼 정의감이 강한 연예인은 드물다. 그는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만일 일본 연예계에서 활동을 못하면 부디 한국 연예계에서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정치계에서도 “원전 반대”를 주장하면 곤경에 처해지는 것 같다. 일본 정치계의 정점에 있는 간 나오토 총리는 시즈오카현 하마오카 원자력 발전의 정지를 요청해서 게이단렌(한국의 전경련에 해당)을 비롯하여 각계각층에서 퇴진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일본정부의 대응이 사후약방문 격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하마오카 원전을 정지한 것이나 후쿠시마현 초등·중학교에서 방사선량의 연간 허용 한도를 변경한 점 등을 헤아려 보면, 현재 일본정부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자세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총리는 최근에 향후 일본의 에너지 정책으로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라는 방침을 밝혔다. 언론 각사의 앙케트 결과를 보면 일본 국민의 과반수가 탈원전을 기대하고 있다. 총리는 대다수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여 그러한 방침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매스컴, 특히 TV는 총리의 이러한 노선을 평가하는 목소리보다 총리 퇴진을 재촉하는 쪽으로 의견으로 몰아가고 있다. 야당인 자민당이나 공명당뿐만 아니라, 총리의 소속 정당인 민주당 의원들마저도 총리의 퇴진을 겨냥해서 그의 서툰 언행을 일일이 들먹여 비판하고 있다. 한편, 최근 전력회사의 소위 ‘야라세’(사전공모) 실태가 폭로되고 있는데, 매스컴에서도 ‘야라세’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길거리 인터뷰는 총리의 조기퇴진을 바라는 시민의 모습을 방영한다. 총리 퇴진으로 몰아가려는 정치세력을 비판하는 시민의 목소리도 상당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러한 인터뷰 모습은 TV에 그다지 노출되지 않고 있다. 특히 TV에서 ‘야라세’가 일상적으로 행해져 국민들을 세뇌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 위성방송으로 해외에서도 시청가능한 NHK의 9시뉴스를 들어 보아도 이러한 ‘야라세 현상’이 엿보인다. 이번 휴가 때 일본에 다녀왔다. 그곳 일본인에게서 “최근 총리의 원전 반대 발언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해도 좋을 텐데, 매스컴에서는 왜 그러한 의견을 별로 취급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나는 정치계에서 고립당하면서까지 국민여론에 귀기울여 국민을 대변하는 총리에게 성원을 보내고 싶다. 총리의 행동은 일본에서는 지극히 드문 일이지만, 한국으로 말한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대정치가다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총리는 암살조차도 각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 정치계와 경제계의 보수파와 그들의 광고탑인 대기업 매스컴 각사와 대립하면서까지 일본국민 편에 서서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암살’ 같은 극단적인 단어는 시대착오적인 표현이지만, 원자력 산업의 암흑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일본 원자력 산업의 중추에는 여전히 일제(日帝)가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한국인들은 납득하기 쉬울 것이다. 지금 현재 일본에서 공개적으로 강력하게 간 총리를 지지하고 있는 사람은 손정의씨뿐일까?
  • “현대판 노예”… 다단계 피해 어머니의 절규

    “현대판 노예”… 다단계 피해 어머니의 절규

    무려 8년간이었다. 서울 유명 사립대에 재학 중인 아들이 ‘다단계’에 빠져 가족을 속여온 것도, 업체에서 나올 바에는 차라리 죽겠다며 완전히 딴사람이 된 것도. 어머니 한모(56)씨는 최근 그 사실을 알고 억장이 무너졌다. 아들을 망가뜨린 불법 다단계 업체를 수사해 달라며 지난 5월 경찰서를 찾았다. 내성적이고 착실한 모범생이었던 아들 김모(31)씨가 변한 것은 제대한 지 사흘 만인 2003년의 어느 날. 군대 고참을 만난 뒤 “돈을 벌겠다.”며 나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대전에서 직장을 구했다며 방값으로 1000만원이 넘는 돈만 받아 갔다. 다시 1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엔 우수사원으로 뽑혀 영국으로 연수를 떠난다며 손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없는 돈을 긁어 모아 생활비를 부쳤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복학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등록금이 필요하다, 교환학생으로 선발돼 학비가 필요하다.’는 아들의 말만 믿고 부모는 8년간 5000만원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올 초 졸업 뒤 호주에 갔다던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한씨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결국 계좌와 인터넷 쇼핑 주소지 등을 확인한 끝에 아들이 그동안 서울 송파구 인근에서 머물렀던 사실을 알게 됐다. 마침내 한씨는 지난 5월 서울 오금동의 다단계 업체 반지하 합숙소에서 아들을 찾아냈다. 그곳에는 이미 10여명의 남녀가 혼숙을 하며 ‘감금’되다시피 한 상태였다. 그러나 아들은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며 부모를 거부했다. 한씨는 “아들이 업체 말에만 복종하는 ‘현대판 노예’가 됐다.”면서 “어리숙하고 정 많은 사회 초년병들을 세뇌시켜 바보로 만들었다.”며 울먹였다. 경찰도 청년층을 유혹하는 불법 다단계 범죄가 도를 넘었다고 판단,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송파경찰서는 거여동·마천동 일대 다단계 업체에서 5000명의 판매원이 활동 중인 것으로 보고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이미 지난달 21일 무허가 다단계 판매업체 대표 A씨 등 피의자 25명을 방문판매업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거했다. 경찰청은 1일부터 9월까지를 불법 다단계 특별단속 기간으로 정했다. 경찰이 파악한 이들 업체 수법 중 대표적인 것이 ‘8일 요법’이다. 조사 결과 다단계 업체들은 처음 1~3일간은 피해자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지인을 동원해 비위를 맞추고, 4일째엔 잠을 재우지 않거나 고소득을 미끼로 현혹해 가입 승낙을 얻어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피해자가 가입 결정을 하면 5~8일째 되는 날 제2금융권 등을 통해 물품구입, 방값 명목으로 돈을 대출받게 만들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8일이 지난 뒤부터는 군대 동기나 선후배, 친구를 유인하거나 자사의 물건을 비싼값에 사들이게 하는 등 본격적인 업무에 투입하기도 했다. 또 한 사람을 유인할 때마다 통상 150만원의 수당을 줬다. 송파서 관계자는 “방문판매업법 위반 등은 처벌이 강하지 않아 재발이 우려된다.”면서 “취업 재수생이나 등록금을 마련하려는 대학생들은 불법 다단계 업체가 사실상 사기극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北 수용소에 갇힌 ‘신숙자 모녀’ 비극 공개

    경남포럼21(대표 최효석)이 주최하고 경남지역 보훈단체가 후원하는 ‘북한 인권 바로알기 강연회’가 26일 오후 3시 경남 창원 늘푸른전당 공연장에서 열렸다. 강연회에서는 탈북자 강철환·안혁씨의 증언을 통해 통영여중 9회 졸업생인 신숙자(69)씨와 두 딸 오혜원(35)·규원(33)씨가 북한 요덕수용소에서 수감 중인 사연이 공개됐다. 증언에 따르면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신씨는 1976년 유학 중이던 오길남 박사를 만나 결혼, 두 딸을 낳았다. 이후 신씨는 교통사고와 간염으로 휴직하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했고 ‘오 박사에게는 교수직을, 아내에게는 치료를 보장한다.’는 북측의 제안을 받고 85년 입북했다. 오씨 가족은 북한에 도착한 뒤 3개월간 세뇌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오 박사는 대남 선전방송에 동원되는 등 김일성과 북한 체제에 대한 충성을 강요당했다. 1년 뒤 ‘독일 유학생 2명을 덴마크로 유인해 입북시키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독일로 되돌아온 오 박사는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했지만 가족들과는 마지막이었다. 이후 오 박사는 가족을 인질로 잡은 북한 측으로부터 재입북을 강요당하기도 했으나 우리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92년 입국했으며, 지금까지도 가족 송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는 프랑스 기자가 본 북한 영상물, 김정일의 감춰진 진실에 대한 안보영상물 등도 시청했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日배우 타카오카 소스케 한류비난 “세뇌당하는 것 같아 무서워”

    日배우 타카오카 소스케 한류비난 “세뇌당하는 것 같아 무서워”

    일본 영화배우 타카오카 소스케가 한류에 대한 공포감을 드러냈다. 타카오카 소스케는 지난 24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한국물을 많이 방영하는 후지TV를 비난하며 한류가 무섭다고 밝혔다. 타카오카 소스케는 “한국 드라마 등을 많이 방영하는 후지TV가 한국 방송국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여기가 어느 나라인지 모르겠다”라고 개탄하는 글을 올렸다. 타카오카는 또“한국과 관련한 내용이 나오면 기분이 나빠 TV를 꺼 버린다”며 “여기는 일본이니까 일본 프로그램을 방영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그는 “세뇌 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며 “한류라는 말 자체가 무섭게 들린다”고 밝혀 문화적 공포감을 드러냈다. 타카오카 소스케의 글이 알려지자 국내 네티즌들은 “열등감을 드러낸 경솔한 발언”, “한류에 대한 솔직한 심경일 것”, “배우라서 밥그릇 위기감이 심각한 것 같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타카오카 소스케는 일본 톱스타 배우 미야자키 아오이의 남편으로 지난 1999년 드라마 ‘천국의 키스’로 데뷔, 영화 ‘루키즈’‘박치기’등에 출연하면서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배우다. 사진 = 영화 ‘박치기 ’스틸컷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CG영화라면 톱 배우보다 잘 놀 수 있죠”

    “CG영화라면 톱 배우보다 잘 놀 수 있죠”

    영화 ‘퀵’의 주연배우 강예원(31)을 만난 지난 15일, 폭우가 쏟아졌다. 서울 팔판동의 카페에서 만난 강예원은 “(관객 1100만명이 든) ‘해운대’ 시사 때 비가 왔는데 ‘퀵’의 시사 때도 그랬다. 오늘도 비가 온다.”며 활짝 웃었다. 느낌이 좋다는 얘기다. 20일 개봉하는 ‘퀵’은 100억원(순제작비 80억원)이 투입된 액션 블록버스터다. 전설적인 폭주족에서 퀵서비스맨으로 변신한 기수(이민기)는 생방송 시간에 쫓기는 걸그룹 멤버 아롬(강예원)을 방송국에 데려다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웬걸, 가 보니 고교 때 여자 친구 춘심이다. 그때 전화가 울린다. 기수의 헬멧에 폭탄이 장착돼 있고, 30분 안에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폭파시킨다고. 생존을 위해 도심과 빌딩 숲을 헤짚는 질주가 시작된다. ‘퀵’은 블록버스터 전쟁의 복판에 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 ‘트랜스포머 3’와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2’가 이미 개봉했고, 한국 영화 경쟁작 ‘고지전’이 같은 날 개봉한다. 그런데도 강예원은 자신만만했다. “재미로만 따지면 여태껏 나온 한국영화 중 최고의 오락 영화”라며. →오토바이 헬멧을 계속 쓰고 촬영하는 게 고역이었겠다.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찍었다. 여름에 너무 숨 막혀 목디스크에 두통까지 생겼다. →스턴트맨이 있지만 위험한 순간이 많았다고 들었다. 언제 가장 힘들었나. -헬멧을 쓴 채 옷을 모두 벗고 샤워하며 펑펑 우는 장면이 있는데 감정이 잡히지 않아 힘들었다. 일각에서 ‘오버 연기’를 지적하던데 결코 오버가 아니다. 머리에 진짜 폭탄이 장착돼 있다고 생각해 봐라. 어떻게 침착할 수 있겠나. 홍상수 감독님 영화 속 인물처럼 연기한다면 어울렸을까. 물론 만화적인 설정이 많아 배우들도 처음엔 손발이 오글거렸다. 하지만 그걸 의식하기 시작하면 관객들이 볼 땐 더 어색하다. 그때부터 난 ‘춘심이로 사는 5개월이 하나도 안 창피해’란 식의 세뇌를 계속했다. →‘해운대’, ‘하모니’, ‘헬로우 고스트’ 등 여러 흥행작에 출연했지만 실질적인 주연은 처음이다. 기획·투자 단계에서 “배우가 약하다.”는 말도 많았는데. -CJ가 돈이 남아돌아서 무모한 캐스팅에 투자했겠나. 윤제균 감독님이 제작하는 것도 컸겠지만 나나 민기씨가 ‘해운대’에서 1000만명을 넘기지 않았다면 캐스팅하지 않았을 거다. ‘해운대’에서 특수촬영을 한 것은 돈 주고도 못할 경험이었다. 덕분에 ‘퀵’에서 또 다른 경험을 했다. (특수효과가 많은 블록버스터) 경험을 안 해본 톱배우보다 현장에서 더 잘 놀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이민기씨가 “강예원씨가 비명을 너무 잘 질러 힘들었다.”고 하던데 설정된 리액션인가. -내가 한 건 연기가 아니고 모두 ‘리얼’이다. 음악을 해서 그런지 소리에 예민하다. 폭탄이 터질 때마다 하도 비명을 질러 처음엔 주위에서 걱정하더니 나중에는 ‘(터질 줄) 다 알면서 왜 또 저래’라며 웃더라. 나는 겁이 나 죽겠는데…(웃음). →음악 얘기 좀 해보자. 성악 전공(한양대 음대)인데 왜 진로를 바꿨나.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선명회 어린이합창단 활동을 했다. 대학에 가니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더라(웃음). 중·고교 때부터 가수나 연기를 해보자는 제안을 많이 받았다. 음악으로 연기를 하는 게 성악이라면, 말로 연기를 하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어른이 된 뒤 진로를 결정하고 싶어서 당시 기획사 제안은 모두 거절했다. →2004~2007년 사이 경력이 비었던데. 또래 배우들에게 뒤처지는 초조함은 없었나. -휴학했던 대학을 다시 열심히 다녔다. 연극영화과가 아니어서 봐주는 것도 없고 1주일 내내 레슨받고 빡빡하게 살았는데 재밌더라. 작품이 들어오긴 했는데 안 끌렸다. 크게 초조하지는 않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형 기획사에서 가수 제의도 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땐 연기에 대해 뭘 알았던 것도 아닌데 왜 그리 고집을 피웠는지 모르겠다. 하하. →혈액형이 O형인데 실제 성격은 어떤가. -밝고 긍정적이다. 다 잘될 거라고, 할 수 있다고 늘 다짐한다. 부정적인 생각은 싫다. 험담도 싫다. 사랑하며 살기도 빠듯한 세상 아닌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그때그때 푼다. 솔직한 편이다. →출연작들마다 흥행이 잘됐다. 선구안이 좋은 건가. 운인가. -운명인 것 같다(웃음). (시나리오를) 고를 입장도 아니고, 몇 개 오지도 않는다. 그중에 진짜 하고 싶은 것만 한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최우선 선택 기준이다. 슬프고 우울한 영화는 힘들다. ‘블랙스완’을 보고 1주일 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반면 ‘파수꾼’은 좋았다. 또래 친구들의 미묘한 감정선에 공감이 갔다. →‘고지전’과 같은 날 개봉인데. -‘퀵’이 이겼으면 좋겠다. 영화계에서는 한국 영화가 두루 잘돼야 한다고 하지만, 남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다(웃음). →킥복싱을 배운다고 들었다. -(이종격투기 선수) 노재길 선생님께 5개월째 배우고 있다. 액션 영화를 할 수도 있으니 시간 있을 때 발차기라도 다듬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재능이 있더라(몇 차례 시범을 보이는데 운동한 태가 났다). 선생님이 “(권투 챔피언에 오른 배우) 이시영씨보다 더 잘할 수 있다.”며 본격적으로 대회에 나가 보자고 했다. 나도 그러고 싶다. 스파링부터 하고 싶은데 매니저들이 사색이 된다(웃음). →롤모델은 누구인가. -극과 극을 오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김하늘 선배의 희극 연기와 전도연 선배의 비극 연기, 하지원 선배의 액션 연기를 닮고 싶다. 장점을 요리조리 갖춘 종합선물세트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 욕심이 많아서 힘들기는 한데, 욕심이라도 부려야 선배들 절반쯤 쫓아간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데스크 시각] 휘둘리는 역사교육에 관한 단상/심재억 의학 전문기자

    [데스크 시각] 휘둘리는 역사교육에 관한 단상/심재억 의학 전문기자

    분명한 사실은 인간의 이성을 깨우는 교육이 이념이나 사상의 윗자리에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념이나 사상의 상투를 틀어쥔 부류는 한사코 교육을 비좁은 이념과 사상의 틀에 욱여넣으려 한다. 교육의 왜곡, 역사의 좌굴(挫屈)은 이렇게 시작된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발표한 ‘역사 교육 강화 방안’은 ‘머지않아 다시 바뀔 정책’이라는 관행적 예단 때문에 발표 현장의 뒷배경으로 삼은 경천사지 10층 석탑의 그림자보다 긴 아쉬움을 드리웠다. 그날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천사지 10층 석탑 앞에 섰다. 아마도 역사의 현장성을 빌려 역사 교육 강화의 당위성을 말하고 싶었으리라. 이번 역사 교육 강화 방안의 요체는 고교에서 한국사를 필수 교과목으로 하고, 공무원 시험에서 한국사 반영 비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런 교과부의 선택이 새삼 놀라울 것도, 신선할 것도 없는 것은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단행한 2009년 교육과정 개정 때 이전에 필수 과목이었던 한국사를 선택 과목으로 ‘강등’시켰다가 다시 설득력 없는 이유를 들어 이를 필수 과목으로 ‘특진’시킨 전력 때문이다. 그들이 역사를 작위적으로 강등시켰던 2009년은 중국의 동북공정 예봉이 지금보다 훨씬 섬뜩했던 때이고, 일본의 독도 침탈 의도 역시 지금보다 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때 ‘한국사 강등 조치’를 주저하지 않았던 정부가 지금 다시 역사 교육 강화를 외치고 나선 배경은 뭘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또 다른 ‘역사 비틀기’와 ‘국민 개조’의 의혹을 떨치기 어렵다. 과거의 기억 때문이다. 개발 연대의 통치자들은 부당한 권력을 역사학이라는 당의(糖衣)로 감싼 알약을 서슴없이 삼키라고 강요했다. 그러자니 파헤치고 따지는 게 싫어 무조건 암기해 일용할 양식으로 삼게 했다. 이후 역사 교육은 허접한 ‘암기 과목’으로 전락해 ‘태혜정광경성목’이니 ‘태정태세문단세’ 따위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외우기만 되풀이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 세대는 우리 세대에 어울리는 역사 교육이 필요하다. 그 교육은 역사적 실체를 왜곡, 윤색해 대립과 불화를 조장하는 교육이 아니다. 누구에게 맞서고, 누구를 제압하려는 교육도 아니다. 오로지 순정하게 역사라는 뿌리 깊은 학문을 바로 가리키는 교육이어야 옳다. 지금 일본과 중국을 겨냥해 학생들에게 뭔가를 가르쳐야 한다면 그것은 역사가 아니라 역사에 근거한 현실 인식이며 역사적 상식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한사코 분란의 부담을 후대에 떠넘기려고 도모한다.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소신인 발상인가. 정부의 역사 교육 강화 방안에 대해 마냥 박수를 칠 수만 없는 이유는 또 있다. 한국사 교육을 강화해 국수적 국가관과 자폐적인 민족주의 의식을 주입할 의도라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게 사상과 이념을 주입해서야 바른 세계인이 나올 리도 없거니와 우리 안에서 자행되는 또 다른 역사 왜곡은 어떻게 바뤄 갈 것인지 생각해 보면 답답한 일이다.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정말 단호하게 곁가지를 쳐내야 할 영어, 수학은 손도 못 댄 채 엉뚱하게 한국사를 선택 과목으로 돌리더니 이제 와서 그때 구두선으로 외쳤던 ‘학생 부담’은 쏙 빼놓고 바른 역사관을 주입하겠다고 나섰다. 도대체 일본과 중국의 획책에 맞서는 우리 식의 바른 역사 교육이란 어떤 것인가. 혹여 나치가 그랬고, 군국주의 일제와 중화주의의 중국이 그랬듯 교육을 국가 책략의 소도구로 이용하려는 유혹에 몸을 기댄 건 아닐까. 우리가 과거에 그랬던 아픈 기억의 유훈에 기약 없이 포박돼야 하는 일은 결코 하찮은 고통이 아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병을 주는 교육은 끝내야 한다. 우리는 지금도 세뇌의 쓰라린 후유증과 동거하고 있다. 역사 교육은 그 강고한 세뇌의 도구였다. 그때 질 나쁜 교육에 노출된 세대는 지금도 국수주의라는 중병을 앓고 있다. 언제까지 국가의 현실 문제를 역사의 이름으로 분식(粉飾)하고 대물림하려 하는가. jeshim@seoul.co.kr
  • [생명의 窓] 종교의 권력화 국민이 막아야/박광서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생명의 窓] 종교의 권력화 국민이 막아야/박광서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다종교 국가 중 한국만큼 비기독교인으로 사는 데 불편한 나라는 없다고 한다.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엄연히 있음에도 개신교인을 제외한 일반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종교의 자유 체감도는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일 것이다. 다소 과장하자면 한국에 개신교의 자유는 있어도 종교의 자유는 없어 보인다. 최근 드러나는 개신교의 힘자랑을 보면 더욱 그런 듯싶다. 지난달 3일 공개적인 행사인 국가조찬기도회에서 통성기도하자는 목사의 한마디에 무릎 꿇은 대통령, 엉거주춤 함께 꿇은 야당대표, 고위관리들과 군 장성들도 모양새가 영 아니다. 국민 모두를 무릎 꿇린 것 같아서 심히 자존심이 상한다. 국민은 두렵지 않은데, 종교권력은 두려운 것일까. 더 고약한 것은 하나님을 등에 업고 대통령 위에 군림하는 목사다. 대통령을 무릎 꿇리니 통쾌할까. 기독교 국가가 된 듯해 뿌듯할까. 종교권력을 확인하고 재생산하는 전형적인 정교(政敎) 야합의 해괴한 굿판이 되어버린 국가조찬기도회는 더 이상 공익법인 자격이 없다. ‘정교분리’의 헌법수호를 위해 국가조찬기도회를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유있게 들리는 까닭이다.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은 쓰나미 같은 대형 자연재해 때마다 ‘신이 내린 징벌’이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그런데 지난 2월 뉴질랜드에서, 그것도 이름마저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라는 성스러운 도시에서 지진이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교회까지 무너질 때는 왜 아무 말도 안 했을까. 옥석도 못 가리고 집단학살하는 무자비한 신은 상상이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남의 불행을 먹고 사는 것은 악마밖에 없다는 것을. 종교지도자들의 탈세도 문제다. 10억대의 연봉을 받는 목사가 세금 한푼 안 내는 엉터리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수년 전 여론조사에서 ‘성직자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의견이 89%나 되었지만, 정부는 개신교 위세에 눌려 잘못된 관행을 애써 모르는 척하고 있다. 쥐꼬리만 한 급여에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일반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클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라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소득 있는 곳에는 예외 없이 세금이 부과되어야 하지만, 개신교 목사들만은 이 세상과 무관한 별천지에 살고 있는 셈이다. 더 크게 짓고, 더 높게 오르고, 더 많이 가지려는 인간의 욕망 위에 지은 누각은 종교사업자의 탐욕에 불과할 뿐 진정한 종교일 수는 없다. 어느 개신교인이 스스로 “오늘의 한국 기독교 상황이 정신나간 운전사에 조는 승객들로 가득 찬 버스와도 같다.”고 우려했다지만, 일부 힘 있는 성직자들의 막된 언행과 세속적 권력화의 반작용이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자신들을 덮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듯해 안타깝다. 국민은 종교지도자들의 무례한 언행과 무분별한 힘자랑이 불쾌하고 피곤하다. 종교의 권력화는 국민이 나서서 막아야 한다. 정치성향이 강한 종교인은 종교계 스스로 밀어내야 한다. 종교가 사회의 부조리와 불협화음을 해소하기는커녕 불화와 갈등의 씨앗이 된 지금이야말로 결단의 시기다. 한국 개신교가 유효기간이 지난 종교상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길은 “나는 기독교 신학이 인류의 커다란 재앙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던 20세기 영국의 과학철학자 화이트헤드의 말을 화두 삼아 순수한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용기 있게 리셋(reset)하여 국민의 사랑을 다시 받기를 바란다. “종교는 무지렁이(일반대중)들에게는 진실로 여겨지고, 현자(賢者)에게는 거짓으로 여겨지며, 통치자들에게는 활용대상으로 여겨진다.”고 했던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말이 떠오른다. 정치인은 임기가 끝나면 국민이 표로 심판이라도 할 수 있지만, 종교지도자는 세뇌된 신도집단이 버텨주는 한 변화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정치가 종교지도자들에게 활용대상이 된 한국사회는 그래서 더 큰 위험을 안고 있다. 종교계의 자정과 쇄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 “몸 바쳐 독도 사랑한 아버지 피가 내몸에 흐른다”

    “몸 바쳐 독도 사랑한 아버지 피가 내몸에 흐른다”

    세월은 떠난 많은 사람을 지운다. 하지만 독도가 시름에 잠기는 이맘때라도 꼭 흐려진 기억에서 끄집어내야 할 사람이 있다. 이덕영. 울릉도 사람. 독도를 제몸처럼 사랑했던 사람. 그 사랑이 지나쳐 제명을 다 채우지 못한 사람. 푸른독도가꾸기 초대회장. 바위섬 독도에 푸른 나무로 옷을 입힌 사람이다. 1980년대, 뜯어말리는 경찰과 싸워가며 회원들과 함께 울릉도에서 흙을 퍼다 나르고, 그 위에 해송과 동백과 향나무와 야생화들을 가져다 심은, 미련하고 고집 센 사람. 그는 1998년 1월 23일 나이 마흔아홉에 죽었다. 타계도, 별세도 아니고, 죽었다. 일본 열도 남쪽 도고섬 앞바다에서. 시신은 뗏목 위에 묶어 놓은 한쪽 다리뿐. 나머지는 며칠 뒤에야 찾았다. 독립운동에 뒷돈을 댔던 선친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핏속에 반일(反日), 항일(抗日)의 유전자라도 담겼던 것일까. 이덕영은 어릴 적부터 머릿속에 ‘우리땅’이, 가슴 속엔 ‘반일’이 가득했다고 한다. 음악가 한돌이 ‘홀로 아리랑’을 지을 때 영감을 받았다던, 그의 울릉도 집에 켜켜이 쌓여 있던 역사책 2만권이 그 증좌의 일부다. 석포에 살면서도 일본식 지명이 싫어 홀로 정들포마을이라고 불렀다. 우리 들꽃에 빠져 전국 방방곡곡을 돌기도 했다. 1997년 겨울 어느 날. 대구로 나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아들 병호를 이덕영은 불쑥 찾아가 불러냈다. 그러곤 국밥 한 그릇을 사 주며 “아버지, 멀리 다녀와야 한다. 당분간 보기 힘들 거야.”라고 했다. 멀쩡한 농협을 다니다 때려치우고는 뭘 하는지 밖으로 돌며 걸핏하면 며칠씩 집을 비우고 가산도 거의 털어먹은 아버지를, 병호는 그날 마지막으로 봤다. 이덕영은 동료 3명과 함께 러시아로 떠났다. 그리고 12월 31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뗏목 ‘발해 1300호’에 올랐다. 발해 건국 1300주년을 맞아 옛 조상의 동해 개척사를 재연하겠다며 험한 바다에 몸을 맡겼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함흥, 강릉, 울릉도, 부산, 일본으로 바닷물길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뗏목으로 입증하고, 이를 통해 발해의 문물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흘러간 역사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거사(擧事)’였다. 동해와 독도의 주인이 정녕 누구인지, 일본은 똑똑히 지켜보라는 시위였다. 무모했다. 용기보다는 결기와 오기였다. 출항 15일째인 이듬해 1월 14일 이덕영의 동료 21세기 바다연구소 소장 장철수는 항해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내가 왜 탐험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심신이 피곤하다. 어제 예기치 않은 해류에 밀려 자칫 울릉도와 독도마저 보지 못하는, 그래서 곧장 일본으로 빠지는 사태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했다. 그래서 행여 (일본) 경비정에 몰려 나가는 보기 싫은 장면이 연출되지 않을까 해서’ 닷새 뒤인 19일에는 또 이렇게 적었다. ‘폭풍우에 계속 동쪽으로 밀린다. 이 방향이면 오키섬으로 가지 않겠나 싶다. 일본으로 간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1. 우리 어선을 나포하지 말라, 2. 바다는 넓다. 바다를 통해 더불어 사는 민족이 되길 바란다. 영원한 제국이란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다시 나흘 뒤인 23일. ‘바다가 거칠어진다. 교신이 빨리 되길 바란다. 우리 탐험대가 맞은 가장 위험한 상황이다. (중략) 나라에 짐이 된다는 게 부담스럽다. 더욱이 오늘 한·일 어업협정이 일방적으로 파기되었다는데, 그들의 속셈이 드러났다고 보여진다. 무엇보다 내가 의연해지고 싶다. 미래와 현재의 공존과 조화. 바다를 통한 인류의 평화 모색. 청년에게 꿈과 지혜를 주고 싶다. 탐험정신. 발해의 정신.’ 일지는 거기서 끝났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해를 따라 내려온 이들 4명은 부산을 거쳐 제주로 향하다 폭풍우가 집어삼킨 뗏목과 함께 일본 오키 제도의 도고섬 앞에서 스러졌다. 독도 지킴이의 소임도 그렇게 끝났다. 눈엣가시와도 같은 이들을 일본 당국이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았다는 논란, 심지어 일본 해경에 구조됐다가 다시 뗏목으로 내몰린 뒤 죽음을 맞았다는 의혹이 따랐다. 하지만 그러든 말든 세월은 흘렀고, 이들의 이름도 서서히 세상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 갔다. 13년이 지났다. 이덕영의 아들 병호(30)씨를 지난 6일 울릉도에서 만났다. 아버지의 비보에 이어 6개월 뒤 벼랑에서 차가 구르는 사고로 어머니마저 잃은 고등학생 병호의 아픔을 그는 웃음기 머금은 얼굴로 가리고 있었다. “다 잊고 싶었죠. 애써 그렇게 했습니다. 그땐 너무 어려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어머니마저 떠나 버린 현실에서 그냥 벗어나고만 싶었습니다.” 대학을 나와 직장을 잡은 한참 뒤까지 아버지가 누구였고, 무엇을 했는지 애써 되짚으려 하지 않았고,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울릉도 선착장에 있었다. ‘안용복 재단’이라고 적힌 노란 점퍼를 수십명과 함께 입고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독도로 향하는 길이었다. “지난 2월 초 경북도청의 담당 국장께서 찾아와 ‘제2, 제3의 이덕영을 만들어 보지 않겠느냐’고 하셔서 숙고 끝에 재단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용복 재단은 17세기 말 일본에 끌려가서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주장하며 거꾸로 일본 막부의 사과를 받아내고 돌아온 어부 안용복을 기리고 독도 수호 의지를 다지기 위해 지난 2008년 경상북도 주도로 만들어진 재단이다. 민간 차원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독도를 찾도록, 그래서 독도가 외롭지 않도록, 그래서 일본이 더는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지 못하도록 하는 일을 맡고 있다. 사회에 나와 무역회사를 다니고 운동처방사로도 일하던 이씨는 재단 측의 참여 제의를 접하고는 ‘아버지가 지니셨던 정신에 어쩔 수 없이 매력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했다. “좋아하던 일도 때려치우고 재단에 참여하게 된 걸 보면 아무래도 아버지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를 이어 독도 지킴이로 나선 소감을 물었다. “학교 행사로 독도를 찾은 한 아이가 그러더군요. ‘갈매기똥밖에 없는 돌산인데, 왜 난리야. 그냥 일본에 줘 버리지….’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안 되겠구나, 큰일 났다 싶었죠. 후세뿐 아니라 우리 기성세대조차 국토의 소중함, 중요함을 잘 모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피는 못 속이는 걸까. 독도를 어떻게 해야겠느냐고 물으니 말이 빨라졌다. “관심이죠. 지속적인 관심 말입니다. 사람들이 가 봐야 합니다. 일본은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독도의 중요성, 필요성…. 심지어 지금 교과서에다가 자기들 영토라고까지 표기하며 아이들을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한데 우리나라는 독도에 대해 별다른 교육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관심만 갖는다고 독도 문제가 풀리겠느냐’고 물었다. 단호했다. “우리가 관심만 기울인다면 그것 말고 어떤 노력도 필요 없습니다. 우리 땅이라는 걸 우리가 알고 있는데,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제대로 알고만 있다면 이 상황은 변하지 않습니다. 뭐가 터졌을 때에만 피켓 들고 난리를 칠 게 아닙니다. 독도가 우리에게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후대에 얘기해 줘야 합니다. 그럼 냄비처럼 쉽게 끓다가 별안간 잠잠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일본의 중학교 교과서 검정 발표를 하루 앞둔 29일 다시 그에게 전화했다. 독도 안 갑니까. “며칠 뒤에 또 갑니다. 카메라 들고….” 그새 아버지에게 한발 더 다가서 있었다. 진경호·최여경기자 jade@seoul.co.kr
  • [WHO&WHAT] 독재자의 만찬

    [WHO&WHAT] 독재자의 만찬

     ‘민주’(民主)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오늘날, ‘독재’(獨裁)란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유쾌하지 않은 단어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멋대로 좌우하고 과장된 논리나 종교와 다를 바 없는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독재에 대한 거부감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한국인에게도 ‘독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군사정권에 맞서 밑으로부터의 민주화를 일궈냈다는 자부심,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최장수 독재체제(북한)와 마주하고 있는 현실 등 우리는 독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몰아닥친 ‘재스민 혁명’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수십년간 그래온 것처럼 아랍권의 민주화 운동이 ‘찻잔 속 태풍’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빗나갔다.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과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의 싸움은 점점 격해지고 있고, 이젠 국제사회의 개입도 본격화됐다.  가상 인터뷰 ‘WHO&WHAT’의 이번 주인공은 역사 속 인물들이다. 이름 자체가 공포가 되고, 금기어가 됐던 이들. 현대 정치사를 피로 물들이며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악몽’ 그 자체였던 네 명의 독재자들을 만찬장에 초대해 그들이 생각하는 재스민 혁명과 ‘독재’ 그리고 ‘민주화’에 대해 들어봤다. 사회:독재돼지 나폴레옹(소설 ‘동물농장’의 주인공)  식당으로 들어서는 네 사람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살아생전 서로 배신의 총부리를 겨눴던 사이도 있었고, 서로 ‘사상적 동지’로 돈독한 관계를 자랑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반세기의 시간도 서먹한 분위기를 가시게 하지는 못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사전에서 바로 튀어 나온 듯한 이들은 같은 자리에 마주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뜩치 않아 보였다.  콧수염을 기른 사람이 셋, 군복을 입은 사람이 셋이었다. 앞에 이름표를 놓을 필요조차 없이 얼굴만으로도 누구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마오쩌뚱, 사담 후세인. 인류 또는 자기의 민족을 위해 떨쳐 일어났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웠지만 결국엔 자기자신의 안위와 비뚤어진 욕망으로 가득찬 이미지만 역사에 남긴 공통점을 가진 이들. 한 사람만 있어도 공포를 느끼게 할 만한 20세기 정치가 네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만찬 자리는 현재 국제정세를 감안하면 상당히 늦은 감이 있었다.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각자의 전성기 시절 국내외 정치에 대해서라면 남부럽지 않을 역량을 과시했던 이들에게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강타하고 있는 ‘쟈스민 혁명’에 대해 묻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한테 물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만찬의 주제가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독재’인데 말이다.  네 사람의 만남에 적합한 사회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민주화 전문가나 학자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이들을 통제하기엔 늘 역부족이기 마련. 결국 메이너 농장의 절대권력자 나폴레옹(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독재자 돼지)에게 어려운 역할을 부탁했다. 1945년 처음 세상에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농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나폴레옹의 능력이라면 참석자들도 특별한 불만이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오웰이 묘사한 것처럼 나폴레옹은 ‘사람이 돼지인지, 돼지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능수능란하게 만찬장의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본인들의 얘기와 현재 상황을 비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오늘의 메뉴●  애피타이저 - 당신은 떳떳한가  메인 디시1 - 당신의 국민은 왜 당신을 버렸을까  메인 디시2 - 당신은 부패했나  디저트 - 당신의 사랑은 진짜였나      <애피타이저> 당신은 떳떳한가.   →나폴레옹 인간 세상 최고의 독재자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돼 기쁘다. 나야 동물 100여마리 거느리는 수준이지만, 당신들은 수백만명에서 수억명에 이르는 사람의 목숨을 한 손에 좌우했던 사람들이지 않은가. 실제로 죽이기도 많이 죽였고…. 당신들보다 훨씬 잔혹하거나 무자비한 사람도 없진 않지만, 20세기 이후 독재자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선정됐다는 점을 밝혀둔다. 우선 당신들이 지금 이 테이블에서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있을 수 있는 자신감의 근원부터 묻고 싶다.   히틀러 정당성을 묻는거냐. 어디까지나 국민들이 원해서 적합한 위치를 맡았을 뿐이다. 내가 총통이 됐을 때 4500만명이 투표에 참가했고 그중 3800만명이 찬성했다.(히틀러는 1934년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죽은 직후 1시간 만에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통합하고 최고사령관 직까지 합쳐 그 자리에 오른 다음 투표를 실시했다.) 국민들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에 자발적으로 동참해서 내가 그 위치에 올랐다는 증거다. 정당성의 측면에서 과거의 왕들과는 평가부터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왕 중에서도 네로나 헤롯 같은 사람이 있었고, 나름 성군(聖君)으로 존경받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들은 왕으로 태어나 왕으로 살면서 그 권력을 조금 더 쓰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스탈린 난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했고 성공시킨 레닌이 직접 지목한 정당한 후계자다.(실제로는 레닌이 그의 위험성을 경고한 편지를 공개하려고 했지만,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막았다. 뿐만아니라 스탈린은 레닌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여러 장의 사진과 역사기록을 조작했다.) 그루지아 출신이라는, 심지어 러시아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범 러시아 지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데 대해 지금까지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독재고 뭐고 간에 아예 정권을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소한 총과 칼로만 쿠데타를 일으켜서 최소 몇 년 이상 유지한 사례가 얼마나 될지 지난 100년 간을 꼽아봐라. 처음엔 그렇게 잡더라도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유지가 안되는 게 정치다.   →나폴레옹 그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역사에 악인으로 이름을 남긴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듣다보니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요새 연설을 통해 계속 반복하고 있는 논리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 얘기는 나중에 이어가기로 하고, 최근 전 세계 최고 관심사인 ‘쟈스민 혁명’에 대해 들어봤나.   마오 내용이야 어떻든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기분이다. 지난해 12월 한 청년이 분신을 하면서 벌어진 일이 불과 석달 만에 이렇게까지 커지다니. 벌써 두 나라(튀니지·이집트)의 정권이 뒤집혔고 리비아, 시리아, 바레인도 내전이 한창이지 않은가. 난 ‘공산당’을 알리고 ‘혁명 동지’를 모으기 위해 10만여명을 이끌고 1934년 370일 동안 1만 5000㎞를 걸어야했다.(마오는 12개의 지방을 지나고 18개 산맥과 24개 강을 건넜다. 마오의 짐은 두 장의 담요와 홑이불, 외투 한 벌, 책 몇 권 뿐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고도 15년 이상 지나서야 중국을 세울 수 있었다. 고작 석달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지금 같은 세상이라면 보다 완벽한 혁명을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히틀러 거기엔 100% 동감한다. 요즘처럼 다양한 수단이 있었으면 내가 연설을 일부러 석양무렵에 하면서 다양한 무대장치를 동원하는 수고는 덜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이런 아이디어는 히틀러의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능력이라는 얘기가 정설이다.) 아! 물론 난 연설 대신 다른 방법으로 국민들을 설득해야 했겠지만 말이다.   후세인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딱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내 입장에서 쟈스민인지 뭔지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다. 아랍에는 ‘하마’라는 게 있다. 1980년대 초반에 시리아의 하마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민란이 일어났는데, 정부는 마을 전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다시피 했다.(2만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시리아 정부는 그 숫자를 본보기 삼아 일부러 널리 공포했다.) 그 이후 ‘하마’는 절대권력에 대항하는 반항에 대한 응징을 뜻했다. 아랍권에서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던 반 체제 인사들은 힘을 잃었고, 일반인들은 조용해졌다. 그게 지금까지 아랍권을 지탱해온 버팀목이었다. 왕정이든 사회주의 체제든 광범위하게 사용돼 왔다. 물론 무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영TV와 신문을 장악하고,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세뇌시켰다. 나름 치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질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했다.   →나폴레옹 후세인 당신과 카다피가 유난히 비슷한 점이 많다고 들었는데.   후세인 카다피와 나는 소위 말하는 ‘역경의 자식들’이다. 전통적인 아랍사회가 혈통과 명문을 높이 떠받드는 점이 가장 큰 타도의 목표가 됐다는 점에서 일면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아랍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이 중요시되지만 혹시 내 아버지나 카다피의 아버지 이름을 아는가? 뭐 사실 이 만찬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말이다. 우리는 기존 사회의 합의나 계급은 무시하고, 아랍의 전통적인 가치들이 권력에 장애가 된다면 과감히 지워버렸다.  <메인디시1> 당신의 국민은 왜 당신을 외면했나.   →나폴레옹 슬슬 본격적인 식사로 들어가보자. 여러분은 다들 수십년에 걸쳐 자기 나라는 물론 주변국가, 나아가 전 세계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앞서 스탈린이 말한 것처럼 독재는 총칼 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많은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는 게 선행돼서 가능했다. 그런데 끝까지 초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인지 통치스타일이 변하면서 서서히 독재자가 돼 가는 공통점이 나타났다. 말은 자꾸 바뀌고, 점점 잔혹해지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안듣게 되었는데.   스탈린 국민들에게 제시했던 내 목표는 무조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었다. 어떤 수단을 써서든 달성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내 뜻에 복종해야 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은 틈만 나면 배신하려 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심지어 공장 노동자들도 내 목표량에 미달했다. 충분히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5개년 경제계획을 세워 모든 농민들이 국가 소유의 조합에 가입하게 했다. 그러나 대부분 농민들은 재산을 내주는 대신 땅을 불태우고 가축을 죽였다.) 결국 나는 그들을 피로 다스릴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가까운 사람들조차 나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처럼 생각됐다.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기쁨은 적을 정하고,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철저하게 복수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히틀러 난 독일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대부분 다 지켰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정책에는 본인의 증오 이외에 ‘독일 국민들에게 잘 통할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고, 실제로 주효했다.) 솔직히 내가 세운 모든 계획 중에 딱 하나 틀린 게 있었는데, 바로 전쟁에 졌다는 것이다. 난 거창하게 세계정복 같은 공약을 내세우지 않고, 우리가 받을 수 있을 걸 받자고 얘기했을 뿐이다. (히틀러의 전쟁은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이라기보다는 영국과 프랑스 양강으로 구분돼 있던 유럽 내에서 독일의 정당한 위치를 인정해 달라는 권리찾기에 가까웠다.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히틀러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 독일 사람들은 1933년부터 2차대전이 본격화되기 이전, 내가 제3제국을 이끌던 시기를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지지만 않았다면 난 절대로 여기 다른 ‘실패한 독재자’들과 함께 앉아있지 않을거다.   마오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공통된 적이 필요했다. 사회를 뒤집어 엎으려면 당연히 원동력이 필요하고, 그 힘은 밑에서부터 나온다. 히틀러는 그것을 외부(유대인)에서 찾았고, 나와 스탈린은 노동자·농민을 앞세워 인민의 적을 만들어내는 수법을 썼다. 그런데 정권을 잡고 공공의 적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당연히 사회적 결집력과 추진력이 떨어지지 않겠나. 난 1950년대 중반에 무조건 억누르기만 했던 스탈린과는 다른 길을 가려고 했다. 지식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금방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 (마오는 헝가리에서 검열 완화 이후 폭동이 일어난 것을 보고 ‘모든 의견’을 허용하는 대신 ‘공산당의 입지를 굳히는 의견’만을 허용했다.) 고작 6주간 ‘백화제방·백가쟁명’(쌍백) 정책을 펼쳤는데 불온성을 이유로 잡아들인 사람이 100만명이 넘었다.   →나폴레옹 뭐 결국엔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주장했고, 국민들이 그에 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압적인 독재자들로 될 수 밖에 없었다는 논리인 것들 같은데. 국민들이 언제 돌아서는 것을 느꼈나.   스탈린 독재에 대한 대중의 영합은 독재권력이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주기 힘들어지면 힘을 잃기 시작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일반 국민들에게 정치적인 이데올로기가 가장 중요했던 적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정권이 제시하는 조건이나 삶의 질에 만족하면 그 권력을 지지하지만 그게 안 되면 외면하는 게 국민들의 속성이다. 내 영향력이 다소간 줄어든 것도 ‘산업화’라는 당면과제가 생각만큼 잘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영향력이 떨어지면 그걸 보완하기 위해 총과 칼이나 숙청, 강제노동 등을 동원하면 충분히 되돌릴 수 있다. (스탈린은 꾸준한 생산력 증대를 원했고, 만족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무력을 사용했다.) 이런 것이 독재자와 왕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독재자에게 불리한 점이다. 독재자는 국민들이 실망하면 이를 되돌리기가 군주보다 훨씬 힘들다. 엘리자베스1세 말기에 영국 국민의 생활수준은 역사상 최저였지만, 아무도 그런 사실은 기억하지 않는다.   히틀러 이번 아랍혁명이 ‘빵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들었다. 식량값 폭등 같은 단편적인 시각에서 볼 수는 없는 문제다. 원래 독재자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미래상을 제시하고 조금이라고 가까이 가고 있다고 믿게 해야 한다. 정권을 지지하는 국민들 입장에서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오늘’은 별 의미가 없다. 독재자가 “5년 후에 우리가 이 정도 수준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제시하면 반드시 거기에 가 있어야 한다. (히틀러가 뚜렷하게 정책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표방하는 제3제국이 명확한 수치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위기가 찾아오는 거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독재정권들이 망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금씩 나아지는 건 왕정 아래서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정권을 잡으려는 독재자들은 국민들에게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다.”고 소리친다. 결국 삶에 찌들어 있는 대중의 지지를 받아 순식간에 정권을 장악할 수 있지만, 결코 그들이 약속한 삶은 만들어낼 수 없다.   후세인 아랍권의 문제가 심각한 건 사실이지만, 구조적으로 ‘복지독재’라는 희한한 형태가 있어 국민들이 모두 돌아서는 시기를 간단히 전망할 수는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같은 왕권독재 국가에서는 독재의 정도가 다른 나라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 않은데, 국민들의 삶은 다른 나라보다 풍요롭다. 일자리도 주고 의식주 걱정도 없다. 대학도 보내준다. (아랍의 왕조 체제에서는 가진 자의 수가 극히 제한돼 있고, 이들은 인자한 독재자의 모습을 띤다. 이들은 국부를 독점하는 만큼 그것을 나눠주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그럼 이 상황을 뒤집어서 민주화가 되고 완전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 가진 자의 수가 늘어나면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절대 빈곤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민주화라는 것은 결국 허상이다.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민주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난 가진 자의 입장에 설 기회가 생긴다.”는 생각만 한다. 결국 ‘기회’라는 게 어느 순간 현재 생활에 대한 불만을 뛰어넘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  <메인디시2>당신은 부패했나.   →나폴레옹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영국의 역사학자 로드 액튼 경이 말했다. 독재와 관련된 경구 중 가장 유명한 말이 아닐까 싶다. 흔히들 독재자는 부패하기 때문에 망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부패가 독재의 종착점인가.   히틀러 진정한 목표가 있는 독재자는 부패할 시간이 없다. 난 채식주의자에 담배조차 피우지 않는다. 가끔 맥주를 마시기는 하지만, 내 뒤를 아무리 캐봐라. 내가 부정적인 일에 연루됐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할 거다. 심지어 난 평생 두 여자(의붓여동생의 딸인 겔리 라우발, 최후를 같이 했던 에바 브라운)만을 사랑했고, 한명이 죽은 후에야 다른 사람을 만났다. 만약에 지금 세상처럼 청문회가 있다면 난 무조건 100% 무사 통과다. 오로지 위대한 제3제국을 세우겠다는 목표 이외에 개인적인 욕심 따위는 없었다. 제3제국이 부패해서 망했다고 말할 수 있나. 난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스탈린 나 역시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사람들이 나를 ‘금욕주의자’라고 부를 정도로 난 개인적으로 즐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 딸 스베틀라나가 나중에 쓴 책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내 가족들조차도 화려한 옷이나 식사는 꿈도 꾸지 못했다. (스탈린은 부인을 잃은 후 스베틀라나를 사실상 ‘어린 퍼스트레이디’로 대접했고, 자식 중 유일하게 애정을 쏟았다.) 오로지 대업을 완수하는 것만이 내가 평생을 생각했던 유일한 관심사였다. (얄타 회담에서 스탈린을 만난 윈스턴 처칠의 부관들은 스탈린에 대해 “지금까지 만나본 중 가장 철두철미하고 명석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나폴레옹 최근 아랍권의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은 물론이고 부인이나 아들, 측근들이 부패한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후세인 당신도 자식 간수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   후세인 독재자는 외로운 존재다. 누군가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았으면, 언젠가 자신도 똑같은 일을 당하지 말란 보장이 없다. 결국에 믿을 사람은 가족 밖에 없다. 그런데 가족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각자 욕심을 부리게 마련이고, 절대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용서 받는다. (후세인의 큰아들 우다이는 공식 행사에서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거나 싸움을 벌이는 등 난폭했다. 정신박약아라는 설도 있다.) 튀니지의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 카다피 모두 가족이 문제였고 자식한테 권좌를 물려주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 결국 ‘부패’의 진정한 원인은 독재자의 개인적인 성향보다는 독재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1인 중심적인 체제에서 찾아야 한다.   마오 아무리 독재라도 권력은 최소한의 시스템이라도 갖추고, 그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개인적으로 대놓고 이용하기 시작하면 그게 부패한 거다. 난 솔직히 주지육림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방탕한 생활을 즐기기도 했지만, 최소한의 기구를 갖고 있었고 그걸 이용해서 모든 것을 움직였다. (그의 문화혁명을 앞장서서 주도했던 홍위병은 결국 스스로 부패하고 갈라져 사라져갔다.) 간단히 말해서 사회를 바꾸기 위한 목표를 갖고 조직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지 개인이 가진 것을 오로지 지키려는 목적으로 조직을 운영한다면 그건 독재자 중에서도 가장 저질이라고 생각한다. 카다피나 북한의 김일성, 저기 앉아있는 후세인이 대표적인 인간들이다.  <디저트>당신의 사랑은 진짜였나   →나폴레옹 곧 무너질 것 같았던 카다피가 계속 버티고 있다. 심지어 쟈스민 혁명이 곧 사그라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쟈스민 혁명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히틀러 국민을 장악하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연설을 통해 국민을 사로잡았다면 카다피한테는 TV로 보여지는 강력한 모습과 반미 감정몰이가 결정적인 힘을 줬다. 그런데 최근 유행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그걸 뛰어넘을 수 있다. 결국엔 모든 것이 정보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왜 저렇게 폐쇄정책을 고집하겠나. 밖에서 국민들이 정보를 얻기 시작하면 바깥세상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면 지금까지 주장해 온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된다. 결국 정보가 공개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럴듯한 꼬임이나 세뇌만으로 할 수 있던 독재의 시대가 끝났다. 결국 총과 칼을 통한 억압만이 가능하다는 얘기인데, 이번에 혁명이 실패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나중에 또다시 내란이 일어나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한번 떨쳐 일어났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가는 법이다.   마오 그래도 중국은 꽤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리비아가 여러 개의 부족이라서 마지막 한 고비를 넘을 원동력이 부족한 것처럼 중국 역시 민족이 다양하고 워낙 지역도 넓기 때문에 하나로 모으는 추진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국은 아직 폭발적인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국민들이 뭔가를 추가적으로 기대할 여지가 남았다는 얘기다. 특히 연안지역만 개방해서 충분히 통제가 가능하도록 하고 조금씩 열어가면서 개방과 통제라는 두가지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반면 북한 같은 경우에는 특정지역만 열고 통제하는 게 불가능하다. 결국에 경제적 몰락을 극복하기 위해 체제붕괴를 피하기 힘들다.   후세인 내가 보기엔 미국이 얼마나 나서느냐가 관건이다. 군사적, 외교적으로 영향력이 절대적이니 말이다. 여기 있는 네 사람 모두 미국과는 좋은 감정이 아니겠지만, 내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솔직히 대량 살상무기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달아서 억지로 쫓아낸 것 아니냐. 이번에도 이집트에는 개입 안하고, 리비아에만 개입하려고 꼼수를 쓰는 모습이라니…. 결국 다른 나라의 민주화를 자기 입맛대로 골라서 이용하겠다는 것 밖에는 안된다. 민주화니 어쩌니 떠들지만 실제로 국제사회를 독재하고 있는 건 미국이다.   →나폴레옹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다. 철저하게 자기자신의 논리로 무장한 당신들에게 물어보나 마나겠지만, 당신들은 정말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스탈린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던 평양 시민들을 기억하나. 그 원조가 바로 나다. 내 시신을 보겠다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수백명이 깔려 죽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방부처리된 시신을 보기 위해 몰려든 조문객의 일부가 바리케이드에 부딪히거나 밟혀서 목숨을 잃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마오 내가 죽은 후 숱한 변화 속에서도 난 중국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존재다. 톈안먼 광장에 걸려있는 내 초상화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마오가 죽은 1976년 그의 문화혁명으로 쌓인 불만이 폭발한 톈안먼 사건이 일어났다. 1981년 그의 후계자 덩샤오핑은 마오의 문화혁명을 ‘내란’으로 규정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도움말 주신 분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김한지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책임연구원 최 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 류한수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장대익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 [심재억 기자의 건강노트] 국민의 정신건강

    일본의 재앙에 놀랍니다. 우리와는 수많은 역사적 관계로 얽힌 그들의 비극이 가슴 아픕니다. 특히나 그 비극이 언제든 우리의 비극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일본의 비극에 많은 한국인들이 마음 아파합니다. 언론은 그들이 미증유의 재난을 맞아 침착하고 냉정하게 대처한다며 급기야 ‘민족성’과 ‘국민성’까지 칭송합니다. 그런 뉴스를 접하며 제 가치판단의 기준이 헷갈립니다. ‘그들이 정말 남에게 폐끼치기를 싫어할까. 한 면만을 보고 너무 쉽게 ‘민족성’을 말하는 건 아니며, 과거 ‘이코노믹 애니멀’로 불렸던 그들의 모습은 허상일까.’, ‘또다시 재일한국인 인권문제나, 독도·과거사 문제가 터질 때 우리는 그처럼 경우 바르고, 침착하고, 질서를 존중하는 그들을 상대로 패악을 떨고, 강짜나 부리는 우스운 민족이 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많아집니다. 너무 이기적이고, 우월적이어서 반인륜적 폭력까지 주저없이 행사한 종래 일본의 면모를 기억하며 혼란을 느낍니다. 그들이 어려움 앞에서 보인 질서의식에 존경의 염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라기엔 우리가 지금껏 체득해 온 경험이 너무 쓰라립니다. 우리 기억 속의 일본은 질서정연하게 폭력적이었고, 평화적으로 무질서했으며, 양심적으로 부도덕했고. 열렬하게 냉정했으니까요. 저 역시 반일의 세뇌에 포획된 사람일 수 있지만 암튼 우리에게 일본은 그렇습니다. 그런 마당에 언론이 ‘일본의 탁월한 민족성’을 말하니 마치 식민사관과 민족개조론의 도그마에 다시 갇힌 느낌입니다. 딱히 일본을 싫어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고통을 잊지도 않습니다. 그래선지 요즘 언론의 ‘참을 수 없도록 가벼운’ 현상 진단이 마뜩찮습니다. 이웃에 대한 우정도 아니고, 인간애는 더더욱 아닌 그런 얼치기 보도가 국민의 정신건강에 가할 위해가 걱정스러운 나날입니다. jeshim@seoul.co.kr
  • “기독교의 위상 추락 대형교회 공동 책임”

    “기독교의 위상 추락 대형교회 공동 책임”

    최근 한국 종교계의 온갖 추문의 진원지는 기독교계다. 개별 교회에서는 교회 운영권을 둘러싸고 각종 고소·고발과 폭력이 횡행하고, 대표적 개신교단체는 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한치의 물러섬 없이 갈등이 이어지며 두 동강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여기에 이웃종교의 성지에 들어가 ‘땅밟기’라는 이름으로 예배를 보는 등 오만과 무례도 서슴지 않았다. 교회 내부에서 성찰의 목소리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앞세워 교회의 성찰과 혁신을 촉구한 ‘2010 생명평화선언’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기독교 생명평화운동의 주요 의제를 놓고 토론하는 ‘생명평화포럼’으로 정례화된다. 매달 두 번째 화요일 저녁 서울 충정로2가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 열린다. 포럼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독교계 인터넷 언론인 ‘에큐메니안’(www.ecumenian.com)으로도 생중계된다. 8일 열린 첫 번째 포럼에서는 ‘생명평화마당을 출범하며-생명평화신앙을 통한 기독교의 정체성 재확립’이 주제였다. 발제를 맡은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삭개오 작은교회 목사는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이웃종교에 대한 비상식적인 개신교인들의 폄하 행태, 전철이나 역 광장에서 공공적 사회윤리성을 무시하는 전도 행각, 일부 문란한 성직자들의 탈선과 수준 이하의 공중파 설교, 집단이기주의 행태마저 보이는 개신교 평신도들의 기복신앙 등에 대해 ‘내가 목회하는 교회와 관계없으니 난 책임 없다’는 식으로 방관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사회와 역사는 기독교 전체 위상과 한국 개신교의 공동책임을 묻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 교회는 수치와 조롱도 함께 받고, 칭찬과 영광도 함께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대형 교회 지도자들은 오늘의 한국 개신교 위상 타락에 대한 무한 공동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며, 개별 교회 중심의 성장 선교신학이 비복음적인 것임을 알고 하루속히 청산해야 한다.”며 대형교회의 각성을 촉구했다. 아울러 김 목사는 “한때 전쟁불사론까지 함부로 입에 올렸던 무책임한 정치지도자들이나 반공주의 극우파 집단들의 발언은 생각할수록 모골이 송연한 일”이라며 이념의 틀에 갇혀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에 동조하는 일부 개신교의 행태를 지적하는 한편, “정부의 4대강 개발사업처럼 학계와 종교계, 시민단체 등이 줄기차게 (정부 정책에)반대해온 사례가 없을 것이며, 동시에 지난 2년간 이명박 정부만큼 국민과의 소통에 귀를 꼭 막은 정부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토론자로 나선 조석민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신학적 활동과 교회 운동의 시작은 성서의 가르침에서 출발해 현재의 상황을 점검 분석한 뒤, 성서적 대안을 모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담론의 시작이 현재의 사회적 현상에서 출발한 점은 아쉽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조 교수는 또 “생명과 평화, 그리고 정의 개념과 역사성 역시 성서 속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토론자인 김준우 한국기독교연구소장은 “교회가 한국 사회에 대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반지성주의, 권위주의, 배타주의, 우월주의만이 아니라 무한경쟁에서의 성공과 번영을 조장하고 탈정치성을 세뇌시킴으로써 세상의 위기에 대해 외면하고 침묵하도록 만드는 등 권력과 자본의 시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면서 “내세 구원 중심이 아니라 지구공동체 중심으로, 교리 중심이 아니라 실천 중심으로, 돈과 양적 성장 중심이 아니라 생명과 평화중심으로, 경제 중심의 성공과 번영이 아니라 생태계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전통 신학과 교회의 역할에 대해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며 김 목사의 발제에 동의하는 입장을 밝혔다. 다음달 8일 열리는 두 번째 포럼의 토론 의제는 ‘장로 이명박 정권에 대한 기독교의 교회적, 성서적, 신학적 평가’로, 현 정부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 더욱 구체적이고 전면적으로 접근할 예정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글로벌 시대] 한국의 반일 감정과 민족주의/고토 노부유키 홍익대 교양외국어학부 교수

    [글로벌 시대] 한국의 반일 감정과 민족주의/고토 노부유키 홍익대 교양외국어학부 교수

    일제 식민지 시대의 역사에만 초점을 두고 한·일 간의 역사문제를 논하는 것에 의문을 느끼고 있다. 물론 식민지 시대의 역사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해방 후의 한국과 일본의 현대사, 한·일 기본조약 체결 이래 20세기 후반의 한·일 관계사에 대한 무지(無知)가 일반 대중에게 여러가지 오해를 낳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여년 전 일본 도쿄 진보초(神保町)의 고서점에 책을 사러 간 적이 있다. 헌책 몇 권을 사면서 가게 주인인 60대 할아버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한국에서 일한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말했다. “한국에서 일한다니 힘들겠네. 반일감정이 아직 있을 테니까. 일본 패전 때 반일감정은 거의 없었네. 패전을 맞아 조선에 살던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조선인들 중에는 ‘왜 일본으로 돌아가는 거지? 여기서 함께 살자’고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아쉬워했던 사람도 있었다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의 반일정책 때문에 손바닥을 뒤집은 것처럼 일본을 혐오하게 되었어.” 식민지 상황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이 사이좋게 살고 있었고, 해방 때에는 눈물을 흘려 이별을 아쉬워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기 때문에 조금 놀랐다. 4년 정도 지나, 한국인 사회학 교수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식민지 상황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이 사이좋게 살았고, 해방 때에는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아쉬워한 일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해방 후 새롭게 나라를 규합해 운영하려고 할 때 국민이 일제 황국신민의 의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면, 독립국가가 될 수가 없지요? 국민의식을 일제 황국신민으로부터 탈각시키기 위해서는 반일정책을 해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을 수가 있었어요.” 현대의 일본인에게는 한국인의 반일감정이 때로는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와 해방 이후의 역사를 고려함으로써 관용정신을 가지고 한국인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60여년 전의 역사문제가 자신에게 과연 무슨 관계가 있을까.”하고 느끼는 일본 젊은 세대에게는 현재에 이를 때까지의 경과를 설명하는 편이 역사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인간정신의 ‘현재’를 구성하는 기저 요소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 현대의 한국인에게는 ‘반일 세뇌 정책’이라고 하는 것이 해방 후에 한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었다는 것을 인식해 주었으면 좋겠다. 일본 정치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같은 사건에 대해서는 추상적인 ‘반일 감정’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민족의 벽을 넘어 함께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민족주의 사상은 그 민족성이 부정되고 시달리는 상황이나, 해방 후의 한국과 같이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던 상황에서는 민족을 규합해 그 존엄을 지키는 수단으로서 귀중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시대는 크게 바뀌었다. 지금은 한국이 독립국가인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의 국제적 지위도 비약적으로 올랐다. 군사정권이나 개발독재 시대도 있었지만, 근면한 국민성과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경제발전과 사회자본 정비, 기술력 향상 등 여러가지 면에서 선진국화하고 있다. 이미 독립해서 풍부한 사회를 구축한 상황에서 민족주의를 너무 강조하면 단순한 자민족 우월주의, 인종주의 사상에 빠질 우려가 있다. ‘민족주의 세뇌정책’은 사회에 다양한 폐해를 가져올 것이다. 획일적이고 예외가 없는 자민족상(自民族像)을 추구한 나머지, 같은 민족 내에서 이질적인 인격이나 사고방식을 배제하고, 사회집단에서 다양성을 소멸시켜 버릴 것이다. 그러한 사회는 창조적인 사고활동의 환경을 억압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자민족상의 심리적 투영 작용으로서 타민족에 대해서도 획일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파악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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