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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 썸남’ 5급 사무관… ‘9급 올킬’ 프로게이머

    ‘국민 썸남’ 5급 사무관… ‘9급 올킬’ 프로게이머

    누구나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길 원하지만 그 길이 쉽지 않다는 것 또한 모두가 알고 있다.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자리에 있다가 ‘무색무취’한 공직사회를 모두 경험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들이 있다. 재경직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얻고도 방송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규빈(25·지난해 5급 공채 합격)씨와 프로게이머라는 화려한 삶을 뒤로한 채 교육 공무원으로 살아 가는 박영민(34·군산남초) 주무관이 대표적이다. 9일 이들로부터 화려했던 전 직장, 힘들었던 수험 생활, 공직에 대한 기대감 등을 들어봤다.●하트시그널 ‘직진 연하남’… 합격 향해 ‘직진’ “어릴 때부터 무척 활동적이었어요. 수험 기간 동안 많이 차분해지기는 했지만 합격한 마당에 (방송 출연을) 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단 생각이 들었죠. 다른 직업군은 TV에 많이 나오는데 공무원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있나 싶었어요.” 지난 6월 종영한 예능 방송에 출연해 ‘직진 연하남’으로 큰 인기를 끈 이씨에게 방송 출연 계기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대학 재학 중이던 지난해 국가직 5급 공채(재경직)에 합격했다. 올해 연수를 받고 내년에 신입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다. 이씨가 5급 공채를 준비한 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교 시절 의사를 꿈꿨던 것도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살리는 게 사회에 도움이 되리란 생각에서였단다. 그는 “대학 입학 뒤 사람들의 삶에 와닿는 변화를 이끌어 내고 싶단 생각을 했고 그게 공무원이란 생각이 들었다”면서 “활달한 제 성격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염려했지만 일단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한 뒤부터는 앞만 보고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민족사관고 졸업 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진학한 이력이 알려지자 ‘엄친아’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머리가 좋으니 공채에도 손쉽게 붙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이씨는 “진짜 빨리 합격하는 사람들은 1년 만에 붙기도 하지만 저는 두 번 낙방했고, 세 번째 응시할 때는 ‘이번에 떨어지면 그만두자’고 마음먹기도 했다”면서 “수험생활을 보내면서 남들 앞에 서는 게 두려울 게 없던 이전과는 달리 (수험 기간에는) 심리적으로 위축돼 남들 앞에 서는 게 두렵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집과 학교,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한 이씨는 1학기 땐 수험 공부에만 매진하고 2학기 땐 학교를 다니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다른 수험생들처럼 수험 기간 내내 휴학 상태에서 공부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살다간 감정이 격해져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그간 쌓아둔 외로움 등을 2학기 때 사진을 찍으며 해소하는 등 나름의 ‘완급 조절’을 했다”고 덧붙였다. 시험에 임박하면 컨디션 조절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일반적 생각이지만 이씨는 달랐다. 첫 시험을 앞두고 잠을 이루지 못해 최악의 컨디션으로 시험을 치른 경험이 있어서다. 그는 “큰 시험을 앞두고 긴장을 많이 하다 보니 잠을 3~4시간밖에 못 잘 게 뻔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런 패턴을 몸에 익히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면서 “시험 날짜가 다가오면 피곤한 상태에서 문제를 푸는 연습을 하려고 일부러 늦게 잤다. 극한의 상황을 가정하고 이에 대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합격 뒤 그동안 하고 싶었던 걸 다 해봐야겠단 생각에 방송 출연에 나섰지만 이씨 역시 공직사회의 경직된 분위기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입직한 순간부터는 지금처럼 방송 활동을 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고 시간이 지나면 저 또한 주어진 부처 업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씨는 “시간이 갈수록 ‘국민과의 소통’이나 ‘정책 홍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지금의 흐름이 지속된다면 공직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며 “그때가 되면 지금의 경험이 국가를 위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교육 공무원이 된 프로게이머 “프로게이머였던 20대에는 또래 친구들보다 많은 돈을 벌었고 번 만큼 많이 쓰기도 했어요. 하지만 군에서 전역하고 나니 어느새 서른이 눈앞이었어요. 막다른 골목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200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출신 박영민 주무관에게 공무원에 된 이유를 묻자 담담하게 자신의 20대를 이렇게 밝혔다. 박 주무관은 대학생이던 2004년 KBC 파워게임쇼 신인왕전으로 데뷔했다. e스포츠 최초의 신인 드래프트였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신인 드래프트’(2005년)를 통해 프로게임단에 입단했다. 2009년에는 공군 프로게임단에서 복무했다. 2011년 전역 뒤 은퇴를 선언해 영원히 사라진 듯했던 박 주무관의 소식이 다시 들려온 건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였다. 인터넷상에 ‘박영민 노량진 목격담’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는 “프로게이머가 왕성하게 활동하는 기간은 매우 짧았고 은퇴 뒤 코치나 지도자로 남아 있는 사례도 매우 드물었다”면서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말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프로게이머보다는) 좀더 안정된 직장이 필요하다고 결심해 공무원이 되기로 했다”고 회상했다. 박 주무관은 수험 생활을 시작하면서 휴대전화를 구식 2세대(G)폰으로 바꾸고 친구들과의 연락도 최대한 줄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친구들을 만나기보다는 합격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만나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다. 프로게이머 시절 연습을 위해 하루 10~12시간씩 앉아 있던 저력이 수험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합격의 문턱은 높았고 응시 첫해 고배를 마셨다. 두 번째 시험을 준비할 때는 고향인 전북 군산으로 돌아왔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과목은 영어였다. 박 주무관은 “점수가 잘 안 나와 부담이 컸고 공부할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본능에 맡겨두면 나도 모르게 영어 학습량을 줄일 게 뻔해서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어머니로부터 ‘제발 영어공부 좀 그만하라’는 소리가 나올 때쯤부터 점수가 올라갔다”고 말했다. 결국 박 주무관은 국가직과 서울시, 지방직 교육행정(9급)을 ‘올킬’(싹쓸이)했다. 이 가운데 지방직을 택한 건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단다. 초창기에는 연수원에서 만난 동료들과 게임을 즐기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는 “관중들 사이에서 승부를 겨뤘던 프로게이머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면 삶의 방식에서 차이가 크지만 그래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고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 생활에 보람을 느낀다”고 미소를 지었다. 10, 20대가 꿈꾸는 두 직업을 모두 섭렵해 부럽다는 시선을 받는 것이 어떤 기분이냐는 질문에 박 주무관은 “계획된 일들이었다기보다는 그 순간 제가 하고 싶은 일과 이루고 싶은 일에 집중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밝혔다. 미래의 아이가 프로게이머와 공무원 가운데 무엇을 했으면 좋겠냐고 묻자 그는 “머리로는 ‘공무원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하지만 마음속에서는 ‘프로게이머를 하라’고 외칠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행시 합격 노하우 공유한 ‘직진 연하남’ 이규빈…교육공무원된 전 프로게이머 박영민

    행시 합격 노하우 공유한 ‘직진 연하남’ 이규빈…교육공무원된 전 프로게이머 박영민

    행시 합격 후 ‘하트시그널’·‘문제적 남자’ 출연“공무원이라고 TV 출연 못하란 법 없다 느껴”공군 ACE 전역 후 ‘노량진’에 급 출몰한 박영민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인생 2막 시작 누구나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길 원하지만 그 길이 쉽지 않다는 것 또한 모두가 알고 있다.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자리에 있다가 ‘무색무취’한 공직사회를 모두 경험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들이 있다. 재경직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얻고도 방송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규빈(25·2017 5급 공채 합격)씨와 프로게이머라는 화려한 삶을 뒤로한 채 교육 공무원으로 살아 가는 박영민(34·군산남초) 주무관이 대표적이다. 9일 이들로부터 화려했던 전 직장, 힘들었던 수험 생활, 공직에 대한 기대감 등을 들어봤다.●일편단심 ‘직진 연하남’…3년간 합격 향해 ‘직진’? “어릴 때부터 무척 활동적이었어요. 수험 기간 동안 많이 차분해지기는 했지만 합격한 마당에 (방송 출연을) 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단 생각이 들었죠. 다른 직업군은 TV에 많이 나오는데 공무원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있나 싶었어요.” 지난 6월 종영한 한 예능 방송에 출연해 ‘직진 연하남’으로 큰 인기를 끈 이씨에게 방송 출연 계기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대학 재학 중이던 지난해 국가직 5급 공채(재경직)에 합격했다. 올해 연수를 받고 내년에 신입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다. 이씨가 5급 공채를 준비한 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교 시절 의사를 꿈꿨던 것도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살리는 게 사회에 도움이 되리란 생각에서였단다. 그는 “대학 입학 뒤 사람들의 삶에 와닿는 변화를 이끌어 내고 싶단 생각을 했고 그게 공무원이란 생각이 들었다”면서 “활달한 제 성격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염려했지만 일단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한 뒤부터는 앞만 보고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민족사관고 졸업 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진학한 이력이 알려지자 ‘엄친아’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머리가 좋으니 공채에도 손쉽게 붙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이씨는 “진짜 빨리 합격하는 사람들은 1년 만에 붙기도 하지만 저는 두 번 낙방했고, 세 번째 응시할 때는 ‘이번에 떨어지면 그만두자’고 마음먹기도 했다”면서 “수험생활을 보내면서 남들 앞에 서는 게 두려울 게 없던 이전과는 달리 (수험 기간에는) 심리적으로 위축돼 남들 앞에 서는 게 두렵기도 했다”고 털어놨다.집과 학교,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한 이씨는 1학기 땐 수험 공부에만 매진하고 2학기 땐 학교를 다니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다른 수험생들처럼 수험 기간 내내 휴학 상태에서 공부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살다간 감정이 격해져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그간 쌓아둔 외로움 등을 2학기 때 사진을 찍으며 해소하는 등 나름의 ‘완급 조절’을 했다”고 덧붙였다. 시험에 임박하면 컨디션 조절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일반적 생각이지만 이씨는 달랐다. 첫 시험을 앞두고 잠을 이루지 못해 최악의 컨디션으로 시험을 치른 경험이 있어서다. 그는 “큰 시험을 앞두고 긴장을 많이 하다 보니 잠을 3~4시간밖에 못 잘 게 뻔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런 패턴을 몸에 익히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면서 “시험 날짜가 다가오면 피곤한 상태에서 문제를 푸는 연습을 하려고 일부러 늦게 잤다. 극한의 상황을 가정하고 이에 대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합격 뒤 그동안 하고 싶었던 걸 다 해봐야겠단 생각에 방송 출연에 나섰지만 이씨 역시 공직사회의 경직된 분위기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입직한 순간부터는 지금처럼 방송 활동을 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고 시간이 지나면 저 또한 주어진 부처 업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씨는 “시간이 갈수록 ‘국민과의 소통’이나 ‘정책 홍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지금의 흐름이 지속된다면 공직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며 “그때가 되면 지금의 경험이 국가를 위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 공무원이 된 프로게이머…“조용한 삶에 만족” “프로게이머였던 20대에는 또래 친구들보다 많은 돈을 벌었고 번 만큼 많이 쓰기도 했어요. 하지만 군에서 전역하고 나니 어느새 서른이 눈앞이었어요. 막다른 골목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200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출신 박영민 주무관에게 공무원에 된 이유를 묻자 담담하게 자신의 20대를 이렇게 밝혔다. 박 주무관은 대학생이던 2004년 KBC 파워게임쇼 신인왕전으로 데뷔했다. e스포츠 최초의 신인 드래프트였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신인 드래프트’(2005년)를 통해 프로게임단에 입단했다. 2009년에는 공군 프로게임단에서 복무했다. 2011년 전역 뒤 은퇴를 선언해 영원히 사라진 듯했던 박 주무관의 소식이 다시 들려온 건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였다. 인터넷상에 ‘박영민 노량진 목격담’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는 “프로게이머가 왕성하게 활동하는 기간은 매우 짧았고 은퇴 뒤 코치나 지도자로 남아 있는 사례도 매우 드물었다”면서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말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프로게이머보다는) 좀더 안정된 직장이 필요하다고 결심해 공무원이 되기로 했다”고 회상했다.박 주무관은 수험 생활을 시작하면서 휴대전화를 구식 2세대(G)폰으로 바꾸고 친구들과의 연락도 최대한 줄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친구들을 만나기보다는 합격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만나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다. 프로게이머 시절 연습을 위해 하루 10~12시간씩 앉아 있던 저력이 수험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합격의 문턱은 높았고 응시 첫해 고배를 마셨다. 두 번째 시험을 준비할 때는 고향인 전북 군산으로 돌아왔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과목은 영어였다. 박 주무관은 “점수가 잘 안 나와 부담이 컸고 공부할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본능에 맡겨두면 나도 모르게 영어 학습량을 줄일 게 뻔해서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어머니로부터 ‘제발 영어공부 좀 그만하라’는 소리가 나올 때쯤부터 점수가 올라갔다”고 말했다. 결국 박 주무관은 국가직과 서울시, 지방직 교육행정(9급)을 ‘올킬’(싹쓸이)했다. 이 가운데 지방직을 택한 건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단다. 초창기에는 연수원에서 만난 동료들과 게임을 즐기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는 “관중들 사이에서 승부를 겨뤘던 프로게이머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면 삶의 방식에서 차이가 크지만 그래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고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 생활에 보람을 느낀다”고 미소를 지었다. 10, 20대가 꿈꾸는 두 직업을 모두 섭렵해 부럽다는 시선을 받는 것이 어떤 기분이냐는 질문에 박 주무관은 “계획된 일들이었다기보다는 그 순간 제가 하고 싶은 일과 이루고 싶은 일에 집중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밝혔다. 미래의 아이가 프로게이머와 공무원 가운데 무엇을 했으면 좋겠냐고 묻자 그는 “머리로는 ‘공무원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하지만 마음속에서는 ‘프로게이머를 하라’고 외칠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푸른 눈의 감독, 왜 평양 영화유학 갔을까

    푸른 눈의 감독, 왜 평양 영화유학 갔을까

    ‘김정일 스타일’ 선전영화 비법 사사 방북 北영화인·영화제작 현장 인터뷰 첫 공개호주의 영화감독 안나 브로이노스키는 2012년 서양 영화감독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의 영화산업 전반을 촬영했다. 방문 허가를 받기 위해 2년여간 애썼다는 안나가 그토록 북한을 찾고 싶었던 이유는 ‘평양 스타일’의 선전 영화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안나는 도대체 왜 선전 영화를 찍고 싶었는지’, ‘북한에서 무엇을 배웠는지’에 대한 질문이 13일 개봉하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에 담겼다. 이 작품은 안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됐다. 시드니에 살고 있는 안나는 어느 날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탄층 가스 시추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접한다. 시추로 인해 주민과 환경의 안전이 위협당하는 것에 분노한 그는 지역 주민들과 시위에 참여해 봤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몇 해 전 평양에 다녀왔던 친구로부터 선물받은 책 ‘영화와 연출’이었다. 1987년 김정일이 쓴 이 책에는 선전영화를 만드는 김정일만의 세세한 지침이 담겨 있다. ‘김정일 스타일’로 시추 공사를 주도하는 다국적 기업에 대항하는 선전영화 ‘정원사’를 만들기로 결심한 안나는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평양을 찾는다. 지난 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안나는 “김정일식의 영향력 있는 선전 영화가 기업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저만의 비밀 무기라고 생각했다”면서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보다는 북한의 영화인들이 그들의 삶을 영화로 만들어 내는 열정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작품에는 그동안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던 북한 대표 영화인들과 그들의 영화 제작 현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북한 영화계 원로이자 공훈예술가인 박정주 감독이 배우들의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촬영장 주위를 몇 바퀴씩 뛰게 하거나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서 시키는 특유의 연기 지도법, ‘북한의 올리버 스톤’이라 불리는 리관암 감독이 가벼운 농담으로 촬영장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끄는 모습 등이 눈길을 모은다. 김정일이 가장 아낀 배우 중 한 사람으로 북한의 ‘국민 여동생’이라 불렸던 배우 윤수경과 북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인 리희찬, 베테랑 촬영가 오태영, 작곡가 배용삼 등 북한 영화계 대표들의 인터뷰도 담겼다. 안나는 “처음엔 북한을 생각하면 굶어 죽는 국민, 독재정권에 세뇌당해 스스로 삶을 결정할 수 없는 국민, 악의 축 등의 이미지만 떠올랐다. 영화를 만들고 보니 북한 영화인과 우리가 다르기보다 비슷하다는 공감을 얻게 됐다”면서 “한국 관객들도 북한 국민들을 더욱 친숙하게 느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DMZ국제다큐영화제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던 이 작품이 국내에서 정식 상영되는 건 처음이다. 안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회담이 열리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아마 한국에서 상영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주한 호주대사를 지낸 아버지 덕분에 남북 관계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 온 저로서는 이 영화가 민간 외교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베네수엘라 대통령 암살 기도 배후는···“음모자들 플로리다 있어”

    베네수엘라 대통령 암살 기도 배후는···“음모자들 플로리다 있어”

    베네수엘라 검찰이 4일(현지시간) 발생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암살 기도 사건에 대해 수사에 들어갔다. 이런 가운데 마두로 대통령은 암살 시도 배후로 콜롬비아와 미국을 지목하는가 하면 반정부단체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자처하고 나섰다. 4일(현지시간) AP·타스통신과 현지 신문 엘나시오날에 따르면 타레크 사브 베네수엘라 검찰총장은 검사 3명에게 이번 사건을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면서 상세한 내용은 6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남미에서 좌파 정권을 이끄는 마두로 대통령은 이날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국가방위군 창설 81주년 행사에서 연설하던 중 드론(무인기)을 이용한 암살 기도에 긴급 대피했다. 두 번의 드론 폭발로 행사에 참석한 군인 7명이 다쳤다. 사건 당시 단상 근처에 있었던 사브 총장은 행사 촬영용 무인기가 갑자기 폭발하더니 두 번째 폭발이 잇따랐다고 설명했다.사브 총장은 암살 기도가 마두로 대통령뿐 아니라 연단에 함께 있던 군 수뇌부 전체를 겨냥한 것이라면서 체포된 복수의 용의자들로부터 이미 중대한 정보를 얻어냈다고 말했다. 의문의 단체가 암살 기도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자칭 ‘티셔츠를 입은 군인들’(Soldiers in T-shirts)이라는 한 정체불명의 반정부단체는 폭발물을 실은 드론 2대를 마두로 대통령을 향해 날려 보낼 계획을 짰지만, 정부군이 이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성명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굶주리거나, 병자에게 약이 없거나, 화폐가치가 전무하거나, 교육시스템이 교육은 하지 않고 공산주의만 세뇌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그러나 이 단체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한 주장이 사실인지를 확인되지 않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사건 직후 이번 암살 기도의 배후로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을 비롯한 콜롬비아와 미국 마이애미의 ‘우익’ 세력을 지목했다. 사브 총장도 “베네수엘라를 넘어 조직된 테러 계획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마두로 대통령은 “초기 수사결과 이번 사건을 음모하고 자금을 댄 자들이 지금 미국 플로리다주에 살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같은 평화로운 남미 국가를 공격한 테러분자들과 싸울 용의가 있기를 바란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콜롬비아 대통령 측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산토스 대통령은 다른 나라 정부를 전복하는 일이 아니라 손녀 세례식 때문에 한창 바쁘다”고 반박했다고 EFE통신이 전했다.이에 더해 AP는 현장에 있던 소방관들의 말을 인용해 행사장 인근 아파트에서 가스통이 폭발했다면서 정부 발표와는 전혀 다른 사건일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베네수엘라 안팎에서 실정, 민주주의 쇠퇴 등으로 비판받는 마두로 대통령이 위기를 돌파하려고 자작극을 벌였다는 시선도 목격되고 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를 수십 년간 연구해온 데이비드 스마일드 워싱턴중남미연구소(WOLA) 선임연구원은 “연설 도중 놀라 달아나는 모습이 대통령의 이미지에 끼칠 부정적 영향을 고려하면 마두로 정부의 자작극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스마일드 연구원은 “누구 소행이든 마두로는 이를 권력 집중에 활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빈 라덴의 어머니 “우리 아들은 착한데 주위 사람들 때문에”

    빈 라덴의 어머니 “우리 아들은 착한데 주위 사람들 때문에”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7년 만에 입을 열었다. “우리 아들은 착했는데 주위의 이상한 사람들이 바꿔놓았다.” 여느 세상의 어머니와 다를 바 없이 그렇게 아들을 추억했다. 2001년 9·11 테러를 기획하는 등 전 세계 수많은 테러를 획책했던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어머니 알리아 가넴이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를 통해서다. 아들이 2011년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은신처에서 미군 네이비실에 사살된 지 7년 만이다. 인터뷰는 제다에 있는 빈 라덴 가문 자택에서 진행됐다. 그녀는 아들이 수줍고 “착한 아이”로 자라났는데 대학에 가서 “세뇌를 당해” 그런 끔찍한 일을 꾸몄다고 변호했다. 가족들이 빈 라덴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9·11 테러가 일어나기 2년 전인 1999년 아프가니스탄에서였다. 그는 당시 1980년대 옛소련 군대에 짓밟힌 아프가니스탄을 돕겠다며 그곳에 있었는데 이미 그 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테러 음모를 구상하고 있었다.가넴은 아들이 지하디스트 전사가 됐다는 것을 안 뒤 어떤 느낌이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엄청 화가 났다. 난 이런 일이 벌어지길 원치 않았다. 왜 그가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내던지려 했는지?”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아들이 공부하면서 연루된 무슬림 형제단 조직이 일종의 컬트 집단 같았다고 했다. 빈 라덴은 압둘아지즈 대학 재학 중 무슬림형제단을 이끌던 압둘라 아잠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빈 라덴 가문은 사우디에서 미국에 유착해 건설업으로 돈을 모은, 영향력 강한 가문이었다. 아버지 모하메드 빈 아와드 빈 라덴은 그가 태어난 지 3년 뒤 가넴과 이혼했고, 50명 이상의 자녀를 뒀다. 9·11 공격 이후 가족은 사우디 정부의 감시를 받고 여행이나 이동에 제한을 받았다. 마틴 출로프 가디언 기자는 사우디 왕가가 이번 인터뷰를 허락한 것은 일부에서 의심하는 사우디 왕가 배후설을 일축하고 빈 라덴이 가문에서나, 왕가에서나 ‘돌연변이’란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해석했다.그의 동생들 하산과 아마드도 인터뷰에 등장하는데 둘다 9·11 테러를 형이 기획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아마드는 “막내부터 제일 위 형까지 우리 모두 그가 부끄러워졌다. 우리 모두 끔찍한 후폭풍에 휘말려들 것이란 것을 예감했다. 해외에 있던 가족 모두 귀국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 어느 어머니든 자식 문제에 대해선 객관적이 될 수 없다”며 9·11 테러 이후 17년 동안 어머니가 아들의 잘못을 “부인”하며 주위의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빈 라덴의 아들 함자다. 아버지의 죽음이 확인되자 복수를 결심하고 알카에다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하산은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했을 때 함자가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고 말했다”며 “그같은 일은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함자가 지금 내 앞에 있으면 신이 널 인도하고 있으니 하는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아버지의 뒤를 밟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911 주모자 오사마 빈 라덴의 가족 처음으로 입 열다

    911 주모자 오사마 빈 라덴의 가족 처음으로 입 열다

    “길을 잘못 든 사랑하는 아들은 20대 초반 잘못된 사람들을 만나 세뇌 당했다” 9·11 테러 등을 주도한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알카에다의 리더 오사마 빈 라덴의 어머니와 가족이 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의 항구도시 젯다에서 이뤄진 영국 가디언지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가족의 인터뷰는 처음이라고 가디언은 밝혔다. 어머니 알리아 가네는 빈 라덴을 “길을 잘못 든 사랑하는 아들”로 표현했다. 가네는 “오사마는 똑똑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였다”며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를 다른 사람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그녀는 “오사마는 아주 좋은 아이였고, 나를 너무나 사랑했다”며 “20대 초반 잘못된 사람들을 만나 세뇌 당했다”고 주장했다. 빈 라덴은 압둘아지즈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무슬림형제단을 알게 되고 스승으로 꼽는 압둘라 아잠을 만났다. 아잠은 추후 빈라덴이 알카에다를 결성하기 이전 국제 지하디스트 네트워크를 최초로 조직한 인물이다. 가네는 “그것은 일종의 컬트였다”며 “나는 항상 오사마에게 그들과 멀어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사마는 나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내게 말하려 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오사마가 극단주의자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며 “(알게 된 이후)매우 화가 났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바란 적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빈 라덴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함자 빈 라덴에 대해서도 가족들은 고개를 저었다. 함자는 2011년 5월 빈 라덴이 사살된 이후 알카에다 활동을 시작했다. 인터뷰 자리에 함께 자리한 빈 라덴의 형제 하산은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했을 때 함자가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고 말했다”며 “그같은 일은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함자가 지금 내 앞에 있다면 신이 너를 인도하고 있으니 하는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아버지의 뒤를 밟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또 하산과 다른 형제인 아흐마드도 “9·11 테러 이후 17년이 지났음에도 어머니는 오사마에 대한 일을 부인하고 있다”며 “어머니는 그를 너무 사랑해서 비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대신 오사마의 주변 사람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오사마의 좋은 면만 보려고 한다. 지하디스트 오사마의 모습은 외면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테러가 발생하고 48시간 안에 오사마의 소행인 것을 알았다”며 “우리 모두는 그를 부끄럽게 여겼고 끔찍한 결과가 따를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빈 라덴 가족과의 인터뷰는 사우디에 새로 들어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지도부의 요청으로 성사됐다. 사우디 최대의 건설 기업을 ‘빈라덴 건설’을 운영하고 있는 이들은 여전히 사우디 사회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빈 라덴의 가족은 사우대의 대표적인 부호로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갖고 있으며, 친미, 친서방적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빈 라덴 등만이 특이한 경우였던 셈이다. 가디언은 “빈라덴의 유산은 여전히 사우디의 가장 시급한 문제”라며 ’온건 이슬람’을 새로운 사우디의 기치로 내세운 새 지도부가 사우디에 드리운 ‘빈라덴 시대’와 선을 긋기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IS 떠난 자리, 공포·굶주림만 남았다

    IS 떠난 자리, 공포·굶주림만 남았다

    어린이 43% “온종일 슬픔 빠져” 청소년 80% “혼자 다닐 때 불안” IS 폭압이 어린이 정신까지 파괴 보호자 80%가 경제난·불면증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 어린이들에게 남긴 상처는 크고도 깊었다.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이라크 정부군이 이라크 제2의 도시이자 IS의 최대 근거지였던 모술을 탈환한 지 1주년이 된 9일 보고서 ‘망가진 삶을 고쳐나가기’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모술 어린이 138명과 보호자 114명 등 총 252명을 설문해 작성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모술 탈환 1년이 지났음에도 어린이들은 여전히 극심한 공포, 우울 등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설문에 참여한 어린이 43%가 “거의 온종일 큰 슬픔에 빠져 있다”고 답했다. 25%는 “나 자신을 좋아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삶에서 행복한 요소가 하나라도 있다”고 답변한 어린이는 9%에 불과했다. 13~17세 사이 청소년의 50%는 보호자와 떨어지면 불안해했다. 80%가 혼자 걸어 다닐 때조차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꼈다. 한 소녀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전쟁의 흔적과 마주하게 된다. 다시는 전쟁을 겪고 싶지 않다”면서 “내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슬퍼진다. 엄마, 아빠가 곁에 있을 땐 행복했는데, 이제 두 분 다 돌아가셨다”고 회상했다. 이 소녀를 보호하고 있는 삼촌은 “조카는 아직도 비행기를 보면 겁을 먹는다”며 “폭격에 대한 두려움이 즉각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IS의 폭압이 어린이들의 정신을 파괴한 것으로 보인다. 유니세프 등에 따르면 IS 점령 당시 약 10만명의 어린이가 모술에 갇혀 있었다. IS는 어린이들을 살해하거나, 정부군과 교전 당시 ‘인간방패’로 내몰았다. 일부는 세뇌 교육을 시켜 IS 행동대원으로 양성해 자살폭탄 공격을 하도록 꼬드기기도 했다. 이 어린이들을 보듬어야 할 보호자들조차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보호자의 80% 이상이 경기 침체, 구직난에 걱정으로 불면증에 시달렸다. 72%가 불행함을 느꼈고, 약 90%는 스스로가 가치 없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보호자들이 어린이들에게 거의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모술에서 IS의 통치를 견뎌 낸 부모 압둘 카데르(25)는 “끊임없는 굶주림, 폭격기의 공습, 벽을 뚫는 총알의 소리 등을 생생하게 기억한다”면서 “돈은 다 떨어졌다. 남은 것은 곧 무너질 것 같은 방 두 칸짜리 집뿐”이라고 독일 공영방송 도이치벨레에 말했다. 아나 록신 세이브더실드런 이라크지부 사무소장은 “모술 어린이들은 학교가 전쟁터로 변하고 교실에서 친구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면서 “이라크의 미래는 어린이들에 달려 있다. 이들이 안전함을 느낄 수 있게 즉각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알자지라는 이날 “모술은 이라크에서 가장 심각하게 파괴됐다. 잔해만 약 800만t”이라면서 “도시의 90%가 초토화됐다. 학교 62개가 사라졌고, 주택 5만 4000채가 완파됐다”고 전했다. 모술의 기반 시설을 복구하는 데에는 약 874억 달러(약 97조원)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노동신문에서 ‘미제’가 사라졌다…‘반미’ 대신 ‘반일’ 감정 키우는 북한

    노동신문에서 ‘미제’가 사라졌다…‘반미’ 대신 ‘반일’ 감정 키우는 북한

    미국과 대화 무드를 이어가고 있는 북한이 노동신문을 비롯한 공식 매체에서 반미 감정을 자극하는 ‘미제’와 같은 표현을 전혀 쓰지 않고 있다. 대신 일본에 대한 적대감은 여전하다. 계급교양은 한마디로 자본주의 체제를 미워하도록 주민을 끊임없이 세뇌하는 과정이다. 북한은 평소에도 계급교양을 강조하지만, 특별히 6·25전쟁 발발일과 정전협정 체결일(7월 27일)이 있는 6월과 7월을 ‘반미공동투쟁 월간’으로 정하고 ‘미제’(미제국주의의 준말)를 중심으로 한 ‘계급적 원수’를 증오하라고 주민을 부추겨왔다. 그러나 예년과 달리 올해 6∼7월 북한 공식매체에서 계급교양의 주된 타깃이었던 ‘미제’라는 용어가 5일 현재까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5월 말까지도 계급교양과 함께 노동신문에 등장했던 ‘미제’라는 표현이 북미정상회담 이틀 전인 6월 10일부터는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관련 기사들은 자본주의의 ‘열악한’ 사회상과 사회주의의 ‘행복상’을 부각하고, 특히 계급교양의 두 번째 타깃인 ‘일제’의 만행을 소개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또 2∼3일에 한 번꼴로 계급교양관 참관기나 계급교양관을 찾은 주민들의 반응 등을 소개하고 있는 조선중앙TV도 6월부터는 일제의 조선 침략 역사와 만행을 규탄하는 내용만 내보내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체제 유지를 위한 중요한 사상교육인 계급교양을 지속하면서도 계급교양의 핵심인 ‘미제’에 대해 비난을 자제하는 것은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미 관계 정상화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미대화 분위기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반미교양을 강화하면 그것은 스스로 북미정상회담의 성과를 깎아내리는 꼴”이라며 “북한 당국이 대화 상대인 미국을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인다”고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재록 피해자들 “신이라 믿었다”…‘그루밍 범죄’

    이재록 피해자들 “신이라 믿었다”…‘그루밍 범죄’

    이재록 만민중앙성결교회 목사에게 장기간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이 목사를 신으로 믿었기 때문에 저항할 수 없었다고 JTBC는 11일 보도했다.피해자들은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7~8년간 성폭력 피해에 노출됐지만 어릴때부터 이 교회에 다니며 종교적으로 세뇌된 피해자들은 이 목사의 강요를 뿌리칠 수 없었다고 취재진과 경찰에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피해자들이 가해자에게 정신적으로 예속돼 폭행이나 협박이 없어도 저항하지 못하는 범죄 유형을 ‘그루밍(길들이기) 범죄’라고 부른다고 JTBC는 전했다. 이 목사는 1982년 만민중앙교회를 개척해 37년째 담임 목사를 맡았다. 1990년 성결교회 교단에서 제명당하자 따로 교단을 만든 뒤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회 측은 “이 목사가 평소 설교에서 혼전순결과 엄격한 성도덕을 강조해 온 만큼 성폭행이나 성추행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특히 교회는 신도들에게 “기사 내용은 모두 거짓말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해 내린 시련이다. 관련 기사는 찾아보지 말고 검색도 하지 말라”고 얘기했다고 JTBC는 보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에는 이…日 그림책에 맞선 ‘독도네 가족들’

    이에는 이…日 그림책에 맞선 ‘독도네 가족들’

    일본의 일방적인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일본 그림책에 맞서는 국내 그림책이 나왔다. 출판사 연두세상이 취학 전 아이들에게 독도에 대해 알기 쉽게 소개하고자 출간한 그림책 ‘보물섬 독도네 가족들’이다.연두세상이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2014년 일본의 전직 초등학교 교사인 스기하라 유미코가 펴낸 그림책 ‘메치가 있던 섬’이다. 이 책은 바다사자의 일종인 강치(‘메치’는 일본 지역 방언)와 일본 어린이들의 우정을 다룬 동화로, 독도 인근에서 놀던 강치가 한국 어부의 무분별한 포획으로 멸종됐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이 책의 전자도서를 전국의 초·중학교에 배포하는 등 교육 현장에서 적극 활용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도 논란이 됐다. 이 책이 일본 어린이들에게 편향된 역사적 사실을 세뇌시키는 것을 우려한 연두세상은 철저히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보물섬 독도 시리즈’를 기획했다. ‘보물섬 독도네 가족들’을 시작으로 앞으로 총 10권의 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조건희 연두세상 이사는 “어릴 때부터 독도에 대해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독자적인 차원에서 이번 책을 내게 됐다”면서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인 독도의 소중함을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독도와 독도를 대표하는 동식물 10가지를 캐릭터화하는 작업에 신경 썼다. 독도의 동도와 서도를 각각 마음 따뜻한 할머니와 멋쟁이 할아버지로, 빨간 우체통과 사철나무는 상냥한 엄마와 든든한 아빠로 설정했다. 부지런한 오징어 이모, 씩씩한 혹돔 삼촌, 투정쟁이 파도, 씽씽 갈매기 등도 등장한다. 이번에 나온 1권이 6살 별이와 보물섬 독도네 가족들의 반가운 첫 만남에 대한 이야기라면 2권부터 본격적인 별이의 보물찾기 놀이가 시작된다. 조 이사는 “독도와 그 주변 환경에 이름을 붙여주고 이를 하나의 가족으로 치환한 것은 아이들이 독도를 제주도처럼 친근하고 가까운 장소로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영토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고려는 함경남도 남부까지?… 총독부 학설로 끌어내린 2000리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고려는 함경남도 남부까지?… 총독부 학설로 끌어내린 2000리

    역사학은 사료로 말하는 학문이다. 검경의 수사나 법원의 재판이 증거로 결정 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료는 크게 1차 사료와 2차 사료로 나눈다. 1차 사료가 당시에 쓴 직접 증거라면 2차 사료는 1차 사료를 가지고 쓴 저술 등으로서 간접 증거다. 당연히 1차 사료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 고려사에 대해서는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가 기본적인 1차 사료다. 고려와 같은 시대였던 나라들의 정사(正史)인 ‘송사’(宋史), ‘요사’(遼史), ‘금사’(金史), ‘원사’(元史), ‘명사’(明史) 등도 1차 사료다. 또한 고려 인종 원년(1123)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도 직접적인 목격담이니 1차 사료다. 고려사에 대해 연구할 때는 이런 1차 사료들이 기준이 된다.●윤관의 9성이 함경남도? 박근혜 정권 때 만든 국정교과서나 현행 검인정 교과서를 막론하고 고려의 북방 경계는 압록강 서쪽에서 함경도 원산 부근의 함흥평야라고 설명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국고 47억원을 들여 만들다 폐기된 ‘동북아역사지도’와 ‘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마찬가지였다. 고려는 서북방에 북계(北界), 동북방에 동계(東界)라는 두 행정구역을 두어 관할했는데 이들은 동북방 동계의 북쪽 끝을 함경남도 남부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고려는 만주는커녕 한반도도 3분의2밖에 차지하지 못한 작은 나라이고, 이들에게 세뇌된 대다수 국민은 그렇게 알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이들은 예종 2년(1107) 평장사(平章事) 윤관(尹瓘)이 여진족을 몰아내고 설치한 9성이 함흥평야 부근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원(元)나라가 설치한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도 이 지역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고종 45년(1258) 조휘(趙暉)와 탁청(卓靑) 등이 이 지역의 화주(和州) 등을 들어서 몽골에 항복하자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는데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고려 후기 몽고가 고려의 화주(和州·지금의 함경남도 영흥) 이북을 직접 통치하기 위해 설치했던 관부”가 쌍성총관부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의 함흥평야 부근이 윤관의 9성 지역이자 쌍성총관부 지역이란 주장이다.그러나 한국과 중국의 모든 1차 사료는 달리 말하고 있다. 인종 원년(1123) 사신으로 왔던 송나라 서긍(徐兢)은 ‘고려도경’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려는 남쪽으로는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에 맞닿고, 북쪽은 거란의 옛 땅과 접하고, 동쪽은 대금(大金)과 맞닿는다.” 고려 서쪽 강역은 압록강이 아니라 지금의 랴오닝성 랴오수이(遼水)에 맞닿는다는 것이다. 서긍이 말하는 요해(遼海)는 바다가 아니다. ‘금사’(金史) ‘지리지’는 동경로(東京路) 산하 징주(澄州)를 ‘본래 요해주’(遼海州)라고 말하고 있다. 요해에 대해 중국 학계는 요동반도 남단의 랴오닝성 하이청(海城)시로 비정한다. 고려 북방 강역의 서남쪽은 지금의 랴오닝성 하이청시이고 서쪽은 랴오수이(遼水)라는 것이다. 요동반도 대부분이 고려 땅이라고 당대의 송나라 학자가 설명하고 있다. 게다가 고려 동쪽은 금(金)나라라고 말했다. 함경남도 남부가 고려의 동계라면 금나라는 동해 한가운데 있어야 한다. 고려에 직접 왔던 송나라 사신의 설명은 국정·검인정 교과서의 설명과 전혀 다르다. 그럼 ‘고려사’는 무엇이라고 말할까.●조선 사료가 말하는 고려의 동계 ‘고려사’ ‘지리지’는 동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비록 연혁과 명칭은 같지 않지만 고려 초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공험(公) 이남에서 삼척 이북을 통틀어 동계라 일컬었다.”(‘고려사’ ‘지리지’ ‘동계’) 고려 동계의 북쪽 끝이 공험이라는 것이다. 과연 공험은 지금의 함경남도 남쪽 부근일까. ‘고려사’ ‘지리지’는 “평장사 윤관이…병사를 거느리고 여진을 쳐서 쫓아내고 9성(城)을 두었는데, 공험진(公鎭) 선춘령(先春嶺)에 비석을 세워 경계로 삼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윤관이 쌓은 9성의 가장 북쪽이 공험진 선춘령인데, 그곳에 고려 땅이라는 비석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 공험진 선춘령이 고려 강역의 북쪽 끝이다. ‘세종실록’ ‘지리지’는 ‘함길도 길주목 경원(慶源)도호부’조에서 두만강가에 있는 경원에서 북쪽 700리가 공험진이라고 말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함경도 회령(會寧)도호부의 ‘고적’(故跡)조는 공험진 선춘령에 세웠다는 비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선춘령 :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다(在豆滿江北七百里). 윤관이 땅을 넓혔는데 여기까지 와서 공험진에 성을 쌓고 드디어 고개 위에 비석을 세워 ‘고려지경’(高麗之境)이라고 새겼다. 비석 사면에 모두 글씨가 있었는데 호인(胡人·여진족)들이 다 지워버렸다.” 당대에 쓴 모든 1차 사료는 고려 북방 국경인 공험진 선춘령에 대해 두만강 북쪽 700리라고 말하고 있다. 함경남도 남부라고 말하는 사료는 하나도 없다. ●더욱 심해지는 총독부 역사관 두만강 북쪽 700리 공험진을 2000여리 남쪽의 함경남도 남쪽으로 바꾼 장본인은 일본인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와 이케우치 히로시 등이다. 이 두 식민사학자가 조선총독부와 만주철도의 돈을 받아서 윤관의 9성을 함흥평야 부근이라고 왜곡한 것을 한국 사학계가 지금껏 추종해서 정설(定說)이라고 우기는 중이다. 중국은 “이게 웬 떡이냐”라면서 두만강 북쪽 700리 공험진에서 함경남도 남부까지 고려 강역 2000여리를 가져갔다. 고려 예종과 윤관 그리고 고려 군사 14만여명이 지하에서 땅을 치며 통곡할 일이다. 이 문제 해결은 간단하다. 역사학적 방법론에 따라 고려 북방강역을 두만강 북쪽 700리까지 끌어올리면 된다. 그러나 한국 역사학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지난 2월 8일 한국고대사학회(회장 하일식) 등 14개 학회는 감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인하대 고조선연구소를 감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연구소가 국비로 고려 국경을 두만강 북쪽이라고 연구해서 발표했으니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고려 북쪽 강역이 함경남도 남부라고 그린 ‘동북아역사지도’ 사업 재개를 요청했고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도형은 기다렸다는 듯이 22일 사업 재개를 선언했다. 감사원 앞에서 정요근 덕성여대 교수는 고조선연구소의 연구 내용이 “고려왕조의 영토가 한반도를 넘어 중국 동북 3성과 러시아 연해주 일대까지 뻗어나갔다는 허황된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면서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그러나 누구의 말이 “허황된 내용”인지 공개 학술토론을 제안하면 일체 거부한다. 지금을 총독부 세상으로 생각하고 감사원을 움직여 총독부 학설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감사원 앞 시위처럼 한국 역사학의 몰락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장면도 없겠지만 많은 사람이 의아해하는 것은 적폐청산 목소리가 드높은 새 정권 들어서 이들이 더욱 기세등등해졌다는 점이다. 국민에게 ‘새 정권이 설마’ 하는 믿음이 아직 남아 있을 때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
  • 하태경 “김일성 가면, 김정은의 신세대 우상화 실험”

    하태경 “김일성 가면, 김정은의 신세대 우상화 실험”

    북한 응원단이 ‘김일성 가면’을 쓰고 나왔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킨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이 13일 “김정은이 한국에서 신세대 우상화를 실험한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폈다.하 의원은 이날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북 응원단이 지난 10일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과 스위스의 경기에서 쓰고 나온 남성 얼굴 가면이 김일성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앞서 통일부는 북측 설명을 인용해 미남 가면이며, 김일성 가면이 아니라고 공식 부인한 바 있다. 하 의원은 “미남 가면이라는 통일부의 설명은 내 주장을 반박한 게 아니라 오히려 도와준 것”이라면서 “수령사회인 북한 최고의 미남은 김일성이며 특히 북한 기성세대와 집권층에서는 더더욱 그렇다”고 주장했다. 북한 배우 리영호의 얼굴 가면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하 의원은 “김일성의 젊은 시절 사진과 가면 사진, 리영호 사진을 비교해 페이스북에 띄우겠다. 누가 더 닮았는지 직접 판단해달라”고 말했다. 지도자 사진이나 초상화를 함부로 다룰 수 없는 북한 사회의 특성상 김일성의 얼굴사진에 구멍을 뚫어 가면으로 사용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는 게 북한 전문가, 탈북자들의 전반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하 의원은 이에 대해서도 특이한 논리를 폈다. 그는 “사람한테는 눈구멍, 동공이 있다. 3차원에는 구멍이 있는데 이를 2차원으로 형상화하려면 구멍을 내야 한다”면서 “구멍을 누가 뚫었겠나. 노동당에서 결정해서 뚫었을 것이다. ‘당이 결심하면 인민은 한다’가 북한의 철학”이라고 주장했다.또 북한 안에서 금지됐다고 해서 북한 밖에서도 금지되는 건 아니라고 하 의원은 강조했다. 삼지연관현악단이 평창동계올림픽 축하 특별공연에서 한국 노래 12곡을 부른 것을 두고 한 말이다. 하 의원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와 같은 한국노래 10곡은 북에서 금지된 곡인데도 공연무대에서 부르는 게 허용됐다”고 말했다. ‘김일성 가면’ 주장을 끝내 굽히지 않은 하 의원은 김정은이 새로운 우상화 실험을 시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과 김여정은 북한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해외에서 유학했기 때문에 북한 주민과 달리 수령화, 세뇌화가 안 돼 있다”면서 “김정은은 파격정치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 김정일이 허용하지 않은 핸드폰을 주민들이 쓰도록 하지 않았나. 이런 연장선에서 볼 때 김일성 가면은 신세대 우상화를 한국에 와서 실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방송에는 하 의원을 비난하는 문자메시지, 게시판 글 등이 1500통 넘게 쏟아지기도 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누군가를 죽여야만 했던 존재 투견 베토벤, 근황 공개

    누군가를 죽여야만 했던 존재 투견 베토벤, 근황 공개

    ‘죽이지 않으면 죽는 존재, 6년 동안 누군가를 죽여야만 했던 존재’ 동물보호단체 케어가 지난 3일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투견 현장에서 구조된 ‘베토벤’의 최근 근황을 전했다. 지난해 1월 15일이었다. 베토벤은 경기도 광명시의 한 공터 비닐하우스에서 벌어진 투견 도박판에 급습한 경찰과 케어 관계자들에게 구조됐다. 당시 베토벤의 온몸에는 깊은 상처가 난 상태였다. 상처의 통증 때문인지 녀석은 몸을 계속 떨고 있었다. 케어 측은 베토벤의 죽을 날이 이미 예정돼 있었다고 전했다. 승률조작을 위해 늙은 베토벤이 링 위에 올라가게 된 것이며, 예상대로 경기에 진 베토벤의 상태는 처참했다. 이미희 케어 동물구호팀 PD는 “(베토벤은) 엉덩이 살이 찢겨 앉지도 못하고 서성였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상처들 때문에 피를 계속 흘리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구조된 베토벤은 수의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녀석의 당시 상태에 대해 이 PD는 “병원으로 이송했을 때 잘 먹지도 못하고 기력도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그로부터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현재 베토벤은 몸도 마음도 회복 중이다. 이 PD는 “지금은 다른 펜스에 개들이 있는데도 안 달려든다. 사람한테 다가와서 냄새도 맡고 그런다.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살기 위해 상대를 죽여야만 하는 존재인 투견들은 공격성을 높이기 위해 마약성 약물을 맞아 가며 근육과 공격성을 높인다. 상대 개를 물어뜯는 행동은 오랜 시간 학대를 통해 구축된다. 그렇게 만든 투견들은 인간에게만 복종한다. 이에 대해 이 PD는 “투견들은 사람에게는 절대 복종하지만, 다른 동물은 공격한다. 물어뜯고 한번 잡으면 놓지 않도록 세뇌를 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3월에 바뀌는 법에 따르면, 동물 학대로 적발되면 2년 이하의 징역 혹은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동물 학대 기준도 ‘죽이는 행위’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로 좀 더 광범위해진다. 투견 등 도박을 목적으로 동물을 이용하거나 상품이나 경품으로 동물을 제공하는 행위, 영리목적으로 동물 대여하는 행위 등이 모두 동물 학대로 간주한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설움에 설움에 설움 더해…꺾이지 않는 긍지로 피다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설움에 설움에 설움 더해…꺾이지 않는 긍지로 피다

    넉넉한 가문이었지만 이미 가세가 기울어진 집에서 김수영은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에 가서도, 만주에 가서도, 연희전문에서도 공부를 마치지 못했어요. 맘에 들지는 않지만 시인으로 등단했고, 의용군으로 북한에 갔다가 거제도 수용소에 갇힙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혀 그는 짐승스러운 설움을 체험합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나는 벌써 인간이 아니었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포로가 되었다는 것, 포로는 생명이 없는 것이라는 것, 아니 그보다도 포로가 되었길래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던들 지금쯤은 이북 땅 어느 논두렁에서 구르고 있는 허다한 시체 속에 끼여 고향을 등지고 이름도 없이 구르고 있을지도”(시인이 겪은 포로생활·1953) 모른다며 “허무하고도 서러운 일뿐”이라고 썼습니다. 가장 허무하고도 서러운 일을 체험할 때 쓴 시가 ‘긍지의 날’입니다. 이 시는 1953년 9월호 ‘문예’에 처음 발표되었으니, 가장 서러웠을 전쟁 중 혹은 포로수용소에서 구상했을 듯합니다.제목이 긍정이 아니고 긍지입니다. 한자로 ‘肯志’가 아니라 ‘矜持’로 쓰여 있습니다. 긍(矜)자는 ‘창 모’(矛)와 ‘이제 금’(今)으로 이루어진 한자입니다. 긍지라는 한자는 ‘지금 자루를 쥐고 있다’는 뜻일까요. 자긍심(自矜心)이라고 하지요. 긍지를 가지면 창자루를 쥔 듯 든든할까요.누구나 매일 밥 먹고, 일하고, 잠자는 뻔한 일상을 ‘순환’하며 살아갑니다. 순환의 원리를 너무나 잘 알기에 일상은 지겹고 뻔해요. 일상의 피로를 ‘나’는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내 삶에는 설움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설움은 상처이고, 아름다움은 환상이죠. 상처와 환상의 증환(症幻)을 품고 우리는 살아갑니다. 사실 설움과 아름다움으로만 지친 삶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아요. “설움과 아름다움을 대신하여” 긍지를 만날 때 우리는 성장합니다. 설움과 아름다움이 충돌하여 긍지에 이릅니다. 긍지가 없는 사람은 상황에 복종하는 노예가 됩니다. 긍지가 있는 사람이 창조하고 책임지고 모진 운명에 맞섭니다. 우리는 힘든 나날을 “몇 개의 번개 같은 환상”으로 견뎌 왔지요. 나의 꿈은 교훈이며 청춘이며 물이며 구름입니다.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죠. 다만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긍지입니다. “피로들이 몇 배의 아름다움을 가하여 있을 때도” 나의 원천과 나의 최종점은 긍지입니다. 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견뎌야 합니다. 파도처럼 흔들려서(혹은 흔들려도), 소리가 없고, 퍼붓는 비에도 젖지 않는 강한 긍지로 화자는 살아가겠다고 합니다.당연히 모든 피로는 내가 만듭니다. 멋진 모습을 보이기 위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도구가 되기 위해 퇴근 후에도 헬스클럽에 다니고 운동장을 뜁니다. 포도당 링거를 맞아 가며 일하고 공부하는 도핑(doping) 사회입니다. 성과를 올리기 위해 내가 나를 착취합니다(한병철·피로사회). 피로도 내가 만들지만, 진짜 해야 할 일은 긍지를 스스로 만드는 겁니다. 오스트리아 극작가 페터 한트케는 사람들을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와 반대되는 ‘우리-피로’라는 개념을 내놓습니다. 내 성공만을 위해 미친 듯 살아가는 삶을 넘어, 내 삶을 나누는 피로를 그는 ‘우리-피로’라고 명명했습니다. 나만을 위한 ‘분열적인 피로’와 달리 ‘우리-피로’는 ‘화해시키는 피로’라고 합니다. 긍정적인 피로겠죠. 이 겨울에 독거노인 댁에 도시락이나 연탄이라도 나를 때 나의 지겨운 피로는 의미 있는 긍지로 변합니다. ‘우리-피로’를 나누는 순간 회춘(回春)한다고 합니다.내 설움과 피로를 극복하는 순간, 그때 “그러할 때면은 나의 몸은 항상/한치를 더 자라는 꽃”으로 핍니다. 긍지의 날은 꽃이 피는 날입니다. 설움에서 싹튼 긍지는 꽃으로 피어납니다. 가장 피로한 ‘오늘’이야말로 긍지의 날이다. 첫 연에서 말했던 지겹게 피로한 “순환의 원리”를 깨달은 이후에는 새로운 순환, 풍성한 반복으로 변합니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거울 앞에서 “나는 잘할 수 있다”고 수십 번 자기세뇌하는 ‘아Q정전’식 사이비 정신승리에 반해, 김수영의 긍지는 전혀 다릅니다. 설움을 망각하려는 긍정과 달리, 김수영의 긍지는 설움을 설움으로 이겨내는 단독자의 긍지입니다. 어제 겪은 설움의 힘으로 오늘 겪는 설움을 이겨나가는 포월(匍越), 기어서 넘어가는 경지입니다. 그 설움은 다시 아름다움을 만나 새로운 긍지의 꽃을 피워낼 설움이지요.“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거미·1954) 전쟁 후에도 김수영은 설움을 겪었습니다.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릴 만치 그는 설움 속에 살아갑니다. 사랑하던 여자가 지인과 함께 살고 있고, 남동생은 월북이 아니건만 월북으로 오해받아 연좌제 때문에 가족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아내에게 포르노 소설까지 쓰게 했던 숨기고 싶은 비루한 순간은 얼마나 서러웠을까요. 비단 개인적인 설움으로 그가 이렇게 괴로워했을까요. 그를 낳고 기른 이 나라는 그야말로 서러운 눈물의 나라였습니다. 지지리도 못난 식민지 시대를 거쳐 해방된 줄 알았더니 미군정이라는 새로운 식민지에서 좌우가 싸웁니다. 거의 3차 세계대전이라 할 수 있는 민족상잔을 겪습니다. 전쟁 후에도 닭장 앞에서 모이를 주며, 까마득히 사라져 가는 민주주의를 서럽게 그리워하는 그의 처지는 안팎으로 설움과 피로 자체였습니다. 그를 버티 게 한 것은 눈물을 곱씹으며 설움을 오히려 긍지로 승화시키는 다짐이었습니다. 이제는 절대로 더러운 글은 쓰지 않겠다고 그는 다짐합니다. “곧은 소리를 곧은 소리를 부른다”(폭포)며 곧은 글만 쓰기로 다짐합니다. “우선 나는 지금 매문(賣文)을 하고 있다. 매문은 속물이 하는 짓이다. 속물 중에도 고급 속물이 하는 짓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매문가의 특색은 잡지나 신문에 이름이 나는 것을 좋아하고, 사진이 나는 것을 좋아하고, 라디오에 나가고, 텔레비에 나가서 이름이 팔리고, 돈도 생기고, 권위가 생기는 것을 좋아한다.”(이 거룩한 속물들·김수영 전집 2 산문) 그는 매춘하듯 글을 싸구려로 매문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속물이 되고 싶지 않았고, 긍지 있는 글만 발표하고 싶었습니다. 정직한 글을 쓰며 서러운 시대를 견디고 싶어 김수영은 무, 파, 상추 등 채소와 닭을 키워 팔기 시작합니다. 닭을 키우는 “양계는 저주받은 사람의 직업입니다. 인간의 마지막 가는 직업으로서 양계는 원고료 벌이에 못지않은 고역입니다”(양계 변명)라면서도 그는 “나는 양계를 통해서 노동의 엄숙함과 그 즐거움을 경험했습니다. 내가 양계를 시작한 지 2년인가 3년 후에 나는 노모에게 병아리 천 마리를 길러 드린 일이 있습니다”라며 의미를 찾습니다. 닭을 키우면서도 자기의 설움에 그치지 않고 “근 10년 경영에 한 해도 재미를 보지 못한 한국의 양계는 한국의 원고료 벌이에 못지않게 비참합니다”라며 한국의 경제상황을 함께 봅니다. ‘긍지의 날’을 여럿이 읽으면 간혹 당혹스러운 반응을 만나곤 합니다. 피로에 지친 여사원은 이 시를 낭송하다가 눈물을 훔쳤습니다. 노숙인들을 위한 민들레 교실에서 노숙인 한 분은 이 시야말로 감동 자체라고 합니다. 성매매 체험 여성들과 함께 읽고, 돌아가면서 어떤 설움을 경험했는지 대화하다가 숨죽여 운 적도 있어요. 김수영의 시가 공감을 일으키는 핵심에 설움이 있습니다. 설움이야말로 긍지를 꽃피우는 씨앗이지요. “내 맘에 서러움 알알이 맺힐 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피우는 그런 아침이슬의 긍지입니다. 모짊의 시간은 긍지를 증폭시킵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둘러봅니다. 나의 설움은 나의 긍지를 만듭니다. 설움이 클수록 긍지도 커집니다. 남을 위해 피로를 나누는 사회적 영성은 더욱 생기롭습니다. 서러운 오늘이야말로 내가 자라는 날입니다. 오늘은 설움으로 긍지의 꽃을 피우는 긍지의 날입니다. 시인·숙명여대 교수
  • 우디 앨런 수양딸 성폭행 의혹에 “전 부인이 세뇌시킨 것”

    우디 앨런 수양딸 성폭행 의혹에 “전 부인이 세뇌시킨 것”

    영화감독 우디 앨런의 수양 딸 딜런 패로가 7세 때부터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우디 앨런은 전 부인이었던 미아 패로가 딸에게 세뇌시킨 것이라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딜런 패로는 18일(현지시간) 미국 ‘CBS This Morning’에 출연해 아버지 우디 앨런이 자신을 성폭행 했다고 인터뷰했다. 딜런 패로는 “코네티컷에 있는 엄마의 고향 집 다락방에서 우디 앨런이 누워 있는 내 배 위에 장난감 기차를 올려두고서 성폭행 했다”라며 “7세부터 상습적인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우디 앨런은 전처인 미아 패로가 딸인 딜런 패로에게 억지로 거짓말을 시켰다고 이를 부인했다. 패로는 “사람들이 어떻게 딸을 성추행한 아버지의 이야기보다 어머니가 딸에게 세뇌시켰다는 이야기를 더 믿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어머니는 나를 절대 세뇌시킨 적이 없다. 성폭행 사건 당시 나를 믿어준 건 어머니 밖에 없었다”라고 반박했다. 방송 이후 우디 앨런은 CBS에 “25년 전에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관련 당국에서 조사했지만 내가 성폭행 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이 사건은 단지 결별을 앞둔 아내가 분노에 차서 아이에게 나에 대해 나쁜 이야기를 하며 세뇌시킨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딜런 패로의 오빠인 모세가 증인이다. 그는 미아가 딜런로에게 ‘너희 아버지는 위험한 성추행범이라고 늘 말해왔다’고 했다. 딜런 패로우 그걸 믿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우디 앨런은 할리우드 스타 감독이자 작가로, 입양한 한국계 딸 순이 프레빈과 재혼해 충격을 줬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35살로 1997년 결혼해 현재까지 살고 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우디 앨런 수양딸 “다락방서 父에 성폭행 당해..사람들 믿지 않아”

    우디 앨런 수양딸 “다락방서 父에 성폭행 당해..사람들 믿지 않아”

    영화 감독 우디 앨런의 수양딸 딜런 패로우가 7세 때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18일(현지 시각) 딜런 패로우가 미국 방송 ‘CBS This Morning’에 출연해 인터뷰에서 아버지 우디앨런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폭로했다. 딜런 패로우는 “엄마의 고향에 있는 시골집 다락방에서 우디 앨런에게 성폭행 당했다”며 “그는 누워 있는 내 배 위에 장난감 기차를 올려두고 내 중요 부위를 계속 만졌다”고 밝혔다. 딜런 패로우는 “가장 황당한 건 내가 아버지한테 성폭행을 당했다는 걸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내가 그를 조종했다고 말하는 미친 이야기다. 내가 그를 세뇌시킨 게 아니다. 어머니만이 나를 믿어줬다”고 말했다. 딜런 패로우의 인터뷰가 공개된 뒤 우디 앨런은 “25년 전에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관련 당국에서 조사를 했으나 내가 성폭행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며 “이 사건은 단지 결별을 앞둔 아내가 분노에 아이에게 나에 대해 나쁜 이야기를 세뇌 시킨 것”이라고 했다. 또한 “딜런 패로우의 오빠가 증인이다. 그는 미아 패로우가 딜런 패로우에게 ‘너희 아버지는 위험한 성추행범이라 늘 말했다’고 했다. 딜런 패로우는 그걸 믿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부인의 18세 의붓딸과 결혼한 남편의 최후

    부인의 18세 의붓딸과 결혼한 남편의 최후

    한 남성이 아내와 이혼하지 않은 상태로 10대인 의붓딸과 결혼해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미국 일간 뉴욕포스트는 10일(이하 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 주 출신 크리스토퍼 하웁트만(44)이 노섬벌랜드 카운티 법원에서 중혼, 서류 위조, 위증, 불법 총기 소유 등의 혐의를 인정했다고 전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2015년 11월 하웁트만은 플로리다주에서 샤논(43)과 결혼했다. 그러나 달콤한 신혼은 몇 달 만에 끝났고 샤논은 그의 곁을 떠났다. 그녀에게는 딸 케일리가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샤논은 딸과 남편의 관계를 알아채지 못했다. 이후 이혼한 전 남편과 딸이 침대에 함께있는 다정한 사진을 샤논에게 보내 자신들의 관계를 알렸다. 남편은 딸을 세뇌시켰고 전 부인과 똑같은 머리색인 금발로 염색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6년 9월 케일리의 18번째 생일이 지나, 하웁트만은 의붓 딸과 결혼했다. 이중 결혼한 사실은 하웁트만이 위조한 성을 이용해 무기허가증을 신청하면서 밝혀졌다. 경찰은 파일에 지문을 대조해 허가증 신청자와 하웁트만이 동일인임을 확인했다. 판사는 하웁트만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10년을 선고했지만, 그는 여전히 의붓딸과 함께 지내고 있다. 그는 이번 주 재심판을 받을 예정이다. 사진=뉴욕포스트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13년간 현지서 지켜본 ‘일본의 민낯’

    13년간 현지서 지켜본 ‘일본의 민낯’

    지난 9월 타계한 마광수 교수의 제자이자 스승을 이어 ‘윤동주 전문가’로 꼽히는 김응교(55) 숙명여대 교수(시인·문학평론가). 그는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부터 야스쿠니 신사, 일본이 외면하고 있는 국가 범죄와 폭력의 실체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민낯을 그린 ‘일본적 마음’(책읽는 고양이)을 펴냈다.책은 단순한 인상비평에 그치지 않는다. 1996년부터 2009년다지 13년간 일본에 체류하며 학자로서, 타자로서 보고 듣고 체험하며 쌓은 기록이다. 김 교수는 1999년 5월 일본 3대 축제로 꼽히는 도쿄 아사쿠사의 산쟈 마쓰리에 참가했다. 당시 와세다대학의 30대 객원교수로, 한국과 일본 문화를 비교 연구하던 그로서는 대단한 용기를 발휘한 것이었다. 엉덩이가 훤히 드러나는 훈도시(전통 속옷)만 걸친 채 거친 몸싸움을 벌이며 ‘잇쇼켄메이’(의역하면 열심히 하자는 다짐이 되겠다)를 내지르는 수천명의 사내들 속에 김 교수도 있었다. 책에는 이처럼 그가 일본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13년 동안 일기 또는 편지처럼 쓴 수천장의 원고지 가운데 일본인에 대한 자신만의 인문적 통찰을 추려낸 ‘일본인론’이 담겼다. 6일 만난 김 교수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대에 한국과 일본이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책을 냈다”며 “죽음을 숙명처럼 가볍게 받아들이며 체념하고 복종하는 일본인만의 정신세계를 엿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일반 책의 3분의2 크기인 문고본 판형인데도 꽤 알차다. 일본인의 미학적 관념부터 문화, 문학, 작가, 역사 인식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지적 관심과 인문적 성찰이 부드럽지만 날카롭고 거침없이 전개된다. 김 교수가 본 일본인 정신은 그가 ‘질서 속의 초질서’로 표현한 집단주의와 육체화된 체념, 인간을 신으로 만들 만큼 강렬한 죽음에 대한 미화다. 그는 메이지유신 이후 전사·전몰자 246만 5000명을 일본의 신으로 모신 야스쿠니 신사를 대표적 미화의 공간으로 꼽는다. 일급 전범부터 이름도 없는 군도에서 숨진 이등병까지 전과에 따라 줄을 세운 신들의 집합소. 현대에 들어서는 순직한 자위대원 464명도 새로 신이 된 곳이다. 김 교수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 ‘세뇌 공장’이라고 책에서 표현했다. “야스쿠니는 우리 말로 평화로운 국가라는 뜻인데 이 신사를 만든 메이지 천왕은 15년 전쟁을 일으켰고, 히로히토 천왕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어요. 일본 군인들은 알았어요. 싸우다 죽으면 신이 되고, 포로가 되면 신이 되는 걸 포기하는 거라는 것, 그러니 옥쇄를 했죠. 야스쿠니는 일본의 국가중심주의와 선민의식의 판타지를 주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에요.” 그가 보기엔 하루키 문학도 죽음과 닿아 있는 일종의 판타지다. 김 교수는 그의 문학을 일본인을 위한 롯데월드 같은 ‘하루키 놀이공원’이라고 말한다. “일본인 중에서는 하루키 소설을 비타민이라고 표현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요. 표면적으로는 무국적이나 미국적으로 느껴지지만 동시에 가장 일본적인 작가입니다. 글쓰기 스타일도 빈틈을 주지 않는 전체주의적이고, 작품마다 일본인에게 내재된 죄의식과 수치심을 치유하는 느낌을 줍니다. 일본인 대다수는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무의식 상태에서 치유받는 거예요. 2002년에 발표한 ‘해변의 카프카’에서 군복을 입은 남성이 여성을 강간하는 장면을 풀어 가는 방식을 봐도 일본 체제에 대해 속죄해 주는 의식이 있어 일본 내에서도 비판이 많았습니다. 최근 그의 소설과 말이 변화를 보여 주고 있지만 힐링의 문학으로 통하는 이유죠.” 김 교수는 자신의 일본관, 혹은 일본인론이 일본의 전부는 아니라는 ‘타자로서의 한계’를 인정한다. 그가 책 제목으로 일본(의) 마음이 아닌 출판사가 제시한 일본적 마음이라는 문법적으로 어색하고 알 듯 말 듯한 제목에 선뜻 동의한 이유다. 글 사진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무트코 러 부총리 “세뇌당하는 것, WADA와 IOC는 잠자고 있었냐?”

    무트코 러 부총리 “세뇌당하는 것, WADA와 IOC는 잠자고 있었냐?”

    “사람들은 세뇌당해 세계반도핑기구(WADA)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책임을 떠올리지 않고 러시아에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다.” 다음달 6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IOC가 러시아의 2018 평창동계올림픽 출전 허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비탈리 무트코 러시아 부총리가 현지 통신사인 R-스포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을 오염시킨 도핑 추문에 대한 책임이 없으며 다만 세뇌 시도의 희생양일 뿐”이라고 먼저 맞받아쳤다. 그는 나아가 WADA와 IOC가 소치 대회를 깨끗하게 치러야 할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았다며 “그들은 거기서 뭘하고 있었냐? 자고 있었냐?”고 되물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지난 9월 17개국 반도핑 기구들은 “2014 소치 대회에서의 부패 증거가 확인됐으며 클린 스포츠를 이행해야 할 의무를 지속적으로 저버렸다”며 내년 2월 9일부터 25일까지 이어지는 평창동계올림픽에 러시아의 출전을 막아야 한다고 IOC에 요구했다. IOC는 지난주 WADA가 서울에서 집행위원회와 이사회를 열어 산하 두 위원회가 제출한 보고서와 자체 조사 결과를 종합해 다음달 5일 스위스 로잔에서 막을 올리는 집행위원회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IOC는 최근 보도자료를 내 6일 새벽 2시 30분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회견을 열어 최종 입장을 공표할 것이라고 안내했다. IOC는 소치 대회에서 테스트한 도핑 샘플을 재조사한 결과, 이달에만 소치 대회에 참가한 10명의 러시아 선수 메달을 박탈하거나 앞으로의 대회 출전을 막기로 했다. 이미 러시아는 평창동계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과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주관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징계를 받았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직접 만든 지도에 지역 민심 ‘빼곡’… 태국 국민 사로잡은 건 돈 아닌 도덕

    직접 만든 지도에 지역 민심 ‘빼곡’… 태국 국민 사로잡은 건 돈 아닌 도덕

    검소한 생활로 온 국민 존경 서거 직전까지 민심 귀기울여 왕실모독죄·군부와 공생 ‘그늘’ 태국 방콕의 교통 체증은 듣던 대로 대단했다. 택시기사는 신호 대기로 설 때마다 스마트폰의 온라인 메신저창을 만지작거렸다. 본능적으로 안전벨트를 조여 맨 뒤 화면을 흘깃 훔쳐봤다. 푸미폰 아둔야뎃 전 태국 국왕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었다. 택시기사는 친구에게서 받은 그 동영상을 다른 친구들에게 전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문득 깨달았다. 방콕 시내 곳곳에 걸려 있는 푸미폰 전 국왕의 수많은 초상화보다 훨씬 더 많은 태국인 한 명 한 명의 가슴속에 국왕이 남아 있었다.지난해 10월 13일 푸미폰 전 국왕이 서거한 뒤 그의 사진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는 태국인들의 모습은 태국 밖의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냈다. 정부나 왕실로부터 강요받거나 세뇌당한 것 아니냐는 의심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22일부터 사흘간 방콕에서 만난 태국인들은 진심으로 국왕을 존경하고 있었다. 흔히 재위 70년간 이어진 전 국민적 존경과 사랑의 근원에 대해 태국인들을 먹고살게 해준 ‘로열 프로젝트’를 꼽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 원인은 따로 있었다. 그는 태국인들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몸소 가르쳐 준 ‘도덕적 롤모델’이었다. 22일 방콕 중심지 수쿰빗 근처에 있는 퀸 시리낏 컨벤션센터에서는 책 엑스포가 열리고 있었다. 행사장 한편에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푸미폰 전 국왕에 대한 책을 무료로 받으려는 사람들이었다. 800명 한정이라 사람들은 번호표를 미리 받기 위해 줄을 섰다고 했다. 이 중 한 명인 나리폰 프라콩쌉(44·회사원)은 검은 옷에 검은 리본을 달고 있었다. 그는 국왕에 대해 묻자 “왕의 서거 소식을 TV에서 봤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면서 눈물을 터뜨렸다. 그는 “태국에는 자발적으로 조직된 왕의 팬클럽이 있다. 나도 활동하고 있다. 왕의 일정을 체크하고 따라가기도 했다”면서 “그분은 나의 아이돌”이라고 말했다. 나리폰 말고도 푸미폰 전 국왕을 추모하는 사람들은 그가 인간으로서 얼마나 훌륭했는지 앞다퉈 말한다. 첫 번째로 손꼽히는 것이 국왕의 성실함이다. 태국인들은 국왕이 전국을 직접 돌아다니며 만든 지도를 기억한다. 국왕은 이 지도를 색깔별로 다르게 표시해 지역별로 제각각인 요구사항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그는 서거하기 직전까지 지도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두 번째는 검소함이다. 국왕은 막대한 부를 쌓아 놓고도 직접 발명한 치약 짜는 도구로 인해 납작해진 치약을 사용하고, 평범한 중산층 주택으로 보이는 소박한 별장에 머물렀다. 국왕의 세 번째 미덕은 겸손함. ‘로열 프로젝트’가 한창이던 시절 벽지의 노인과도 손을 잡으며 스스럼없이 얘기했고, 요란한 의전을 좋아하는 정치인들과 달리 젊은 시절 직접 지프를 몰고 다녔다. 푸미폰 전 국왕은 자신이 모범이 돼 태국인들에게 이상적 삶의 방식을 제시했다. 24일 방콕 서쪽 나콘파톰에 있는 마히돈대학에서 만난 인권과평화연구소 나파랏 크란라타나수트 강사는 “국왕은 모든 면에서 나의 롤모델”이라고 말한다. 그는 “왕은 서거 전 ‘우리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일을 멈추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가르쳐준 대로 국가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왕을 제대로 추모하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태국의 평균 수명(2015년 기준)은 74.9세. 즉 현재 대부분의 태국인들에게 70년간 왕좌에 앉았던 국왕의 서거는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게다가 나라의 아버지로 추앙받았던 존재다. 태국인들은 길을 잃은 느낌이라고 했다. 자신의 이름을 프레디로 소개한 한 남성(37)은 “특히나 노인 세대에서는 앞으로 우리는 누구의 뒤를 따라가야 할지, 태국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푸미폰 전 국왕의 장남으로 지난해 12월 국왕으로 즉위한 마하 와치랄롱꼰(65)이 화려한 여성 편력과 잦은 외유 등 아버지와는 사뭇 다른 성정이어서 태국인들의 걱정은 더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언급하면 ‘왕실 모독죄’로 큰 곤욕을 치르기 때문에 아무도 입 밖에 내지 못한다. 왕실 모독죄는 완벽한 듯 보이는 푸미폰 전 국왕이 남긴 어두운 유산이기도 하다. 국왕은 재위 시절 일어난 19차례의 쿠데타 중 왕실에 충성하는 세력의 쿠데타는 승인하고 그렇지 않으면 승인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쿠데타를 일으키는 군부 세력이 정당성을 얻기 위한 명분으로 ‘왕실 보호’를 내세우는 탓에 왕실과 군의 ‘암묵적 공생 관계’가 태국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왕실 모독죄가 두려워 이런 비판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왕실 모독죄를 적용하는 나라 중 하나인 태국은 국왕에 대한 모독죄 혐의가 입증되면 최대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박은홍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태국정치 전공)는 “태국의 일부 비판적 지식인들은 왕실이 군의 후원을 받으며 정치에 관여한 듯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원래 입헌군주제의 취지대로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태국 민주주의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고 전했다. 방콕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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