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신사고외교」 아·태에 접목시도/고르비 「도쿄독트린」과 파장
◎극동 군축 가시화… 대서방 평화공세/지역회의 주창,영향력 증대도 노려/미·일선 “아주 주도권 뺏길라” 소극대응 예상
일본을 방문중인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17일 하오 중의원 본회의장에서 행할 국회연설은 국제정세에 관한 소련측 견해를 밝히는 「총결산」이며,「도쿄 독트린」이라고 불릴 만한 것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이 내용에는 아시아·태평양정책,일·소 관계,소련의 국내정세 등도 망라되어 있다. 아시아·태평양정책에서는 87년 7월 이래 소련은 아시아지역에서 핵 운반수단의 숫자를 늘리지 않았다는 사실 및 극동 병력 20만명 삭감 등을 들어 『소련의 군사독트린은 전수방위를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미국에도 해군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안전보장 및 경제협력 등에 관한 다자간 협의기구 결성의 제1보가 될 미·소·중·일·인도 5개국 회의는 군사비를 삭감,경제·인종·사회·종교·환경 등의 국제문제 해결에 대처한다는 폭넓은 구상이다. 또 동북아시아,환동해 지역회의는 「아시아·태평양지역 경제통합을 위한 절호의 실험대가 될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소 관계에서는 「평화조약의 체결이 급선무」라고 지적,『현재와 장래를 위해 과거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북방영토 문제에 대해서는 『정상회담에서는 거론하지 못할 의제는 없다』고 밝혔을 뿐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다만 『소련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의 결정에 책임을 질 수는 없으나 전후의 새로운 현실을 존중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소련의 국내정세에 대해서는 『심각한 정치투쟁이 전개되고 있으며 그 결과 국민경제가 곤란을 겪고 있다』고 솔직히 시인,그 「복잡성과 극적 성격」을 인정했으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해서는 『결코 후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국회연설은 냉전 이후 나아가 걸프전쟁 이후의 세계질서 재편과 관련,어떻게 새로운 아시아·태평양정책을 밝힐 것인가라는 점에서 세계의 주목을 끌어왔다. 아사히(조일)·요미우리(독매)신문 등이 사전에 입수한 국회연설 내용에 따르면 지금까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계속제안해온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다국간 협의기구 설치」를 이번 「도쿄 독트린」에서는 한층 구체화시켜 ▲군사문제에서의 미·소·일 3개 국회의 ▲「안전과 협력」 문제 해결의 제1보로서의 5개국회의를 제창하고 있다. 이것은 지난 86년 7월 블라디보스토크 연설에서의 「헬싱키형 태평양회의」,88년 크라스노야르스크 연설의 「군사적 대립 완화에 관한 다국간 회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보아도 좋다. 블라디보스토크 연설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유럽에는 대화·교섭·합의를 위한 헬싱키프로세스가 기능을 발휘하고 있으나 아시아·태평양지역에는 이같은 기능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 태평양에 접하는 모든 국가가 참가하는 헬싱키형의 태평양회의를 제창한다』고 말했다. 또 크라스노야르스크 연설에서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해군력 증강을 억제하기 위한 이 지역 주요 해군국간의 협의』를 주창했다. 이번 「도쿄 독트린」은 이같은 구상과 지난해 11월19일 전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표명한 「북반구의 협력체제」 구상을 보다 명확히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도쿄 독트린」에서의 소련측 노림수는 ▲미·일에 대해 평화공세를 강화,태평양지역에서의 해군을 중심으로 한 군축을 종래 이상으로 구체적으로 기하고 ▲지금까지 소련의 존재감이 엷었던 아시아·태평양지역 국제사회에 참가하는 발판을 만들어 이 지역의 활기넘친 경제력을 도입함과 동시에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외교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아시아지역에서의 소련군 삭감과 관련 ▲91년까지 동아시아 병력 20만명 삭감 ▲극동지상군 12개 사단 감축 ▲항공연대 11개 해체 ▲태평양함대의 대형 수상함정 9척,잠수함 7척 퇴역 등 처음으로 군축결과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미군도 이 지역에서 삭감되도록 하려는 「작전」의 하나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받아들일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태평양에서의 해군력 비교는 미국이 소련보다 압도적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체니 미 국방장관이 지난해부터 태평양지역의 미해군 역할에 관해 『소련의 위협에 대항하려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 불안정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도 소련의 안보공세를 염두에 둔 것이다. 또 「안전과 협력에 대한 5개국회의」에 대해서도 새로운 기구 설치에 따른 소련의 영향력 증대는 국제정치의 주도권 확보라는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소극적 자세를 보일 것이 틀림없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