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유엔가입 이후/소 바자노프박사 특별기고
◎한반도통일/“북의 체제변화 와야된다”/남북 관계개선 낙관… 중국도 권고할것
○소 외교아카데미부원장 본사초청 내한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후 전개될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와 북한의 대남 정책이 우리 통일정책의 주된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소련 외무부산하 외교아카데미 부원장 페트로비치 유진 바자노프박사(47·국제정치학)는 이와관련,『현 국제환경은 냉전종식을 이룩했지만 그것이 한반도의 대치구조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바자노프박사의 한국통일에 대한 전망과 견해는 그 자신이 소련의 아시아정책 수립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서울신문사 초청으로 지난 7일 방한,열흘동안 머물며 포항제철등 산업시설을 돌아보고 각계 인사들과 접촉한다.
얼마전 미소정상들은 모스크바에서 만나 냉전이 완전종식됐음을 다시한번 확인했다.그러나 우리는 이같은 미소양국의 냉전종식선언에 「표면적 가치」이상의 의미를 부여해선 곤란하다.전략무기감축협정이 타결됐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환상에 사로잡힐수 있다.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통해 전쟁준비를 상호 제한한 두국가가 여전히 적대관계의 대치상태를 유지했던 숱한 예를 찾아볼수 있다.
부시미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소련이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날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확고히 공약했다.그러나 미국은 결코 소련을 동정하지 않으며 소련의 약점이 보완되는 것을 도우려 하지도 않는다.따라서 우리는 냉전종식의 의미를 「냉전」이라는 과거의 유산이 단지 표면상 사라진 것으로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국제관계에 있어 현재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그것은 소련내부사정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다.또한 소련의 정치는 앞으로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기존의 체제는 이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모두 붕괴되고 새로운 세계질서에 부응하는 새 체제가 창출될 것이다.사실이 그러하다면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결론에 이르게 된다.즉 앞으로의 국제관계 상황은 필연적으로 심각한 변화를 겪게된다는 것이다.냉전의 유산들은 조만간 모두 사라지며 한반도의 대치상황도 그 막을 내릴수 밖에 없다.
한반도에서 남과 북이 어떻게 분단됐으며 왜 대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주지의 사실이다.사회주의혁명을 수출하고자 했던 이념적 열망,강대국이 되고자 했던 야망,미제국주의에 대한 증오와 안보관심등은 스탈린으로 하여금 한반도 북쪽에 「형제정권」의 출현을 유발시켰으며 무력통일을 추구하도록 만들었다.그후 스탈린이후의 소련지도자들은 다소 평양과 마찰이 있었지만 북한을 전략적 동맹국으로 인식,꾸준한 관계를 맺어왔다.한편 미국은 이에대한 대상으로 남한에서 공산이념을 몰아내고 서울을 친구로 맞이했다.결국 모스크바와 워싱턴의 이같은 상이한 태도가 한반도에서 호전적 대치상황이라는 토양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환경이 심각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데탕트 분위기 서울∼평양에도 확산/미도 북한과 대화유지 필요성 있어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것은 한국에 대한 소련의 정책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우선 소련은 더이상 미국과 세계 어느곳에서도 대치할 생각이 없으며 분란을 일으키려 하지도 않는다.소련의 이같은 태도는 한반도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돼 북한은 더이상 소련을 전략적 동맹국으로 볼수 없다.
둘째는 소련이 그간 추진해왔던 「사회주의이념 강화정책」을 포기한 사실이다.지금 소련에선 내부에서 조차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따라서 모스크바정부는 현재 북한에 대해 특정이념을 주지시키려 하지않고 있으며 이 때문에 소련과 북한의 이념체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소련은 이와함께 한국에 대해선 기존의 입장에서 탈피,긍정적이고 우호적인 시각으로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합리적인 외교정책,국내 민주화조치,괄목할만한 경제성장,대소경제지원등 한국의 일련의 조치는 소련의 호감을 얻고 있다.그리고 이러한 호감은 소련으로 하여금 한국에 대한 새로운 역할을 시도하게 만들었다.
그 누구도 예전엔 사회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한국을 승인하고 협력관계를 유지하리라고 생각지 않았다.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한국인들이 소련의 호전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한국에 대한 새로운 소련정책의 근간은 한소 양국이 좋은 「이웃관계」로 발전하는 것이다.또한 미국·중국·일본등과의 관계개선 및 상호협조를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환경을 새로이 조성하는 것이다.따라서 장기적으로 볼때 소련은 일본의 정치적 야망을 어느정도 견제할수 있도록 통일된 한국이 한반도에서 출현하기를 바란다.
중국은 아직까지는 북한을 지지하며 북한과 상호협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멀지않아 서울과 평양이 친선을 맺도록 강력히 권고할 것이다.미국의 정책은 한반도 상황과 관련,중요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워싱턴 당국이 북한에 매료된 것은 아니지만 더이상 북한을 코너로 몰아가려 하지 않는다.미국은 기본적으로 북한과 대화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이와함께 한국이 미처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통일을 맞이할 경우 엄청난 부작용이 발생할 것을 우려한다.
이상에서 언급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한반도를둘러싼 외부환경은 지금 남과 북의 화해를 촉진시키고 있으며 강대국간의 데탕트 분위기는 서울과 평양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세계는 현재 한반도에 존재하는 두 국가가 보다 밀접하고 우호적으로 접근하길 바라고 있다.남북 사이에 존재하는 민족 감정이나 경제적 필요성도 서울과 평양의 상호접근을 가속화시키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필자는 그렇기 때문에 향후 남북관계의 전망은 매우 낙관적이라고 생각하나 조기통일문제는 당분간 힘들 것으로 본다.남한과 북한은 근본적으로 상이한 이념적·정치적·경제적 체제를 40여년 이상 각기 유지해 왔기 때문에 합일점을 찾는데 어려움이 있다.통일을 위해서 북한은 내부변화가 선행돼야 하며 개인의 자유신장을 포함,경제체제의 변화,이념체제의 탈바꿈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또 남한도 보다 자유가 신장되고 민주주의가 공고히 확립돼야 하며 특히 경제에 있어 사회주의적 요소인 배분정의가 실현돼야 한다.
이같은 통일을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될때 통일은 부드럽게 그리고 덜 충격적으로 한국인들에게다가갈 것이다.그러나 만일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의 체제가 붕괴되길 바란다면 그것은 결코 소망스런 통일이 될수 없다.시간을 갖고 인내하며 보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모스크바국제관계대 졸업
□정치학 박사
□주미·주중대사관 근무
□당 국제부 동아시아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