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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3) 산성(중)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3) 산성(중)

    ●단 한 번도 뚫린 적 없는 난공불락 요새 18세기 방랑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 “경기도 여주 서쪽은 광주로, 석성산에서 나온 한 가지가 북쪽으로 한강 남쪽에 가서 고을이 형성되었으며 읍(광주부)은 만 길 산꼭대기에 있다. 옛 백제 시조였던 온조왕이 도읍하였던 곳으로, 안쪽은 낮고 얕으나 바깥쪽은 높고 험하다. 청나라 군사들이 처음 왔을 때 병기라고는 날도 대보지 못하였고, 병자호란 때도 성을 끝내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인조가 성에서 내려온 것은 양식이 부족하고 강화가 함락되었기 때문이었다. 강화가 결정되고 나서도 국도(한양)를 외적으로부터 막아줄 중요한 성이라 생각해서, 성 안에다 절 아홉을 세워 스님들을 살게 하고 총섭(總攝)한 사람을 두어 승대장으로 삼았다. 해마다 활쏘기를 시험하여 후한 녹을 주는 까닭에 스님들은 오로지 활과 살로써 업을 삼았다. 조정에서는 나라 안에 스님들이 많아서 그들의 힘을 빌려 성을 지키고자 한 것이었다”라고 적었다. 인조가 스스로 성문을 열고 내려온 것이지 남한산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남한산성은 한성백제,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단 한 번도 뚫린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13세기 전 세계를 휩쓴 무적 몽골군의 두 차례 공격과 병자호란 당시 12만 대군을 이끈 청 태종의 파상공세도 47일간 막아냈다. 해발 400m를 넘나드는 험준한 지형을 따라 본성과 외성을 합쳐 11.7㎞가 넘는 성벽을 쌓았는데 내부는 넓고 평평했다. 우물이 80곳, 연못이 45개에 이를 정도로 물이 풍부해 군량미와 소금만 잘 비축하면 수만 명의 병력이 장기농성할 수 있는 철벽의 금성탕지였다. 우리나라에는 평지성과 산성을 다 합쳐 3000여개의 성이 있다. ‘삼천리금수강산’이니 1리마다 1개의 성곽을 쌓은 셈이다. 가히 ‘성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 남한산성은 산성 축성기법의 교과서라고 할 만하다. 성곽유산으로는 평지 성인 수원 화성에 이어 두 번째로 지난 6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로써 우리는 모두 11건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문화대국이 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남한산성이 병자호란 등 국제전쟁을 통해 동아시아 무기발달과 축성술이 상호교류한 탁월한 증거이며 조선의 자주와 독립 수호를 위해 유사시 임시 수도로 계획적으로 축조된 유일한 산성도시이며 자연지형을 활용하여 성곽과 방어시설을 구축함으로써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단계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을 평가했다. 한 해 100만명 이상의 등산객과 관광객이 몰려드는 남한산성이 세계적 명소로 자리 잡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종묘와 사직을 갖춘 행궁은 남한산성이 유일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 24㎞ 떨어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있는 남한산성은 행정구역상 광주시에 63%, 하남시에 24%, 성남시에 13%가 속해 있다. 광주는 고려 태조가 이름 짓기 이전까지 한강 남쪽의 넓고 오래된 땅 한산(漢山)이었다. 하남이라는 지명은 한강의 남쪽, 성남은 남한산성의 남쪽에 면했다고 해서 붙여졌다. 서울과 한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남한산성의 지리적, 공간적 존재감을 알 만하다. 남한산성은 전란이 일어났을 때 왕의 안전을 담보하는 보장처였다. 왕의 선택지는 대개 강화 섬이 아니면 남한산성이었다. 남한산성에 대한 기록은 주로 광주행궁이라고 남아 있다. 조선시대 전국 각지에는 23곳에 이르는 행궁이 있었다. 별궁 또는 이궁이라고도 했다. 전란에 대비한 광주행궁, 양주행궁(북한산성), 강화행궁, 전주행궁을 비롯해 능행을 목적으로 화성행궁, 이천행궁, 파주행궁, 고양행궁, 풍덕행궁을 지었다. 왕은 질병 치료와 휴양차 온양행궁, 청주행궁, 목천행궁, 고성행궁, 전의행궁 등에 행차했다. 온양행궁 가는 길인 과천행궁과 수원행궁에도 머물렀다. 행궁의 역사는 오래다. 백제본기에 ‘진사왕이 행궁에서 죽었다’라는 최초의 기록이 남았으며 고려사에는 40건의 행궁에 관한 기록이 전해진다. 종묘와 사직을 갖춘 행궁은 남한산성이 유일했다. 국가에 전란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한 임시 수도로서의 위상이다. 조선시대 5군영 중 하나인 수어청의 근거지였으며 광주부가 1917년 경안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290년 동안 광주부 관아가 있던 조선시대 최대의 산악 군사행정 도시였다. 규모도 예사롭지 않았다. 광주행궁은 두 개의 궁으로 나뉘었는데 상궐은 73칸, 하궐은 154칸으로 총 227칸의 당당한 규모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기 전 경복궁은 7715칸, 창덕궁은 4500칸이었다. 화성행궁은 576칸, 북한산성 행궁은 124칸이었다. 대부분의 행궁은 말이 궁이지 왕이 실제 머문 횟수나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에 비해 남한산성 행궁은 인조가 모두 6차례 행차했고 머문 기간도 농성 47일을 비롯해 50일을 넘었다. 이후 숙종과 영조가 서장대를 둘러보았고, 정조는 서성과 남성을 거쳐 북성까지 돌아보고서 서장대에서 군사훈련까지 했다. 이후 철종과 고종 등 모두 6명의 왕이 찾았다. 남한산성이 몽골과 청은 물론 일제에 항거한 외세 저항의 본거지였던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1895년 명성황후시해사건 이후 광주, 이천, 여주 지역 의병 1600명으로 이뤄진 연합의병부대가 주둔하면서 삼남지방 및 강원도 지역 의병 3000명과 합세해 서울로 진격하기로 한 을미의병의 주요 거점이었다. 이후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항거한 을사의병과 1907년 고종 강제퇴위와 군대 해산령에 반발한 정미의병도 이곳에서 일어났다. 일제는 산성 안 행궁과 사찰을 불태우고 철저하게 파괴했으며 광주읍성도 성 아래로 옮겨버렸다. 1, 2차 대몽항쟁의 승전지에다가 척화론을 주장하다 청에 끌려가 죽은 윤집, 오달제, 홍익한 세 학사를 모신 현절사가 세워진 항청의 기운이 항일로 옮아붙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만해 한용운 기념관이 여기에 깃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남한산성에는 백제의 시조 온조를 모신 숭열전이 있다. 정조실록 등에 따르면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군사를 독려하다 앉아서 잠시 조는 사이 꿈에 온조가 나타났다. “적이 사다리를 타고 북성을 오르는데 뭐하고 있는가”라는 말을 듣고 정신이 들어 군사를 보내 격퇴했으며 이에 감읍해 온조왕의 묘를 지어 제사지내게 했다는 것이다. 덧붙여 이서라는 장군이 배향된 이야기도 재미있다. 환궁한 인조의 꿈에 온조가 나타나 “묘를 세워준 것이 고마우나 혼자서는 지내기 외로우니 이서 장군을 보내 달라”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다음날 아침 이서가 죽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인조는 온조가 이서를 데리고 갔다고 생각해 숭열전에 배향했다는 것이다. ●남한산성은 정말 백제의 왕도였을까 남한산성은 과연 백제의 왕도였을까. 택리지뿐 아니라 조선왕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야승, 연려실기술, 여지도서, 대동지지 등 대부분의 조선시대 지리서들이 남한산성을 백제의 고성(古城)이라고 기술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고고학적으론 입증된 바 없다. 18세기 홍경모가 지은 ‘중정남한지’에는 “남한산성은 온조가 쌓은 것이라고 하는데 한산 위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도 없고, 문헌에 근거할 것이 없다”면서 “백제의 도읍은 지금의 검단산 아래인 광주의 고읍이며 온조의 고성은 이성산성”이라는 다른 설을 주장했다. 현재까지 하남시 이성산성과 교산동 유적은 물론 남한산성에서도 백제 관련성을 확인할 수 있는 성과는 발굴되지 않았다. 다만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 12년(672년) “한산주(광주)에 주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주장성이 남한산성의 원조일 가능성이 크다. 이 시기는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군사 4만명이 평양에 주둔하고 있던 시기와 일치한다. 주장성은 당의 침입에 대비해서 신라가 쌓은 한강 이남의 방어거점이라는 것이다. 실제 2007년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보이는 군량미 창고 터가 발굴돼 ‘주장성=남한산성’의 신빙성을 높였다. 남한산성이라는 지명은 선조 대에 자주 등장한다. 조선 초기에는 일장산성이라고 불렸다. 한강과 한양의 북쪽에는 북한산과 북한산성이 있고 남쪽에는 남한산과 남한산성이 있다는 논리에 따른 작명으로 보인다. 남한산성은 ‘인조의 성’이라고 할 만하다. 조선 역사상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와 함께 비운의 임금 1, 2위를 다투는 인조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을까. 반정으로 광해군을 축출하고 즉위했으나 반정공신 이괄의 난 때 공주까지 달아나야 했다. 중립외교를 포기하고 친명배금(親明排) 정책을 내세우다 정묘호란 때는 강화도,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에서 이부자리도 없이 옷을 입고 잠자리에 드는 등 세 번이나 도피행각을 벌였다. 즉위 2년 만인 1624년 남한산성 축성을 명하였고 1626년 성이 완성되자 서부면에 있던 광주부를 옮긴 것도 인조였다. 남한산성은 축성술의 역사를 보여 주는 단순한 세계문화유산이 아니다. 이 땅에는 3000개에 이르는 성이 있었지만, 성의 역할을 제대로 한 성은 평양성과 진주성, 강화성 등 몇 개에 지나지 않았다. 그중 남한산성은 단 한 번도 외세에 빼앗기지 않았던 ‘서울지킴이’ 같은 존재이다. 항몽, 항청, 항일의 구국 혼이 살아 숨 쉰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한국민 우호 DNA 내장… 교류 창구 다양화”

    “한국민 우호 DNA 내장… 교류 창구 다양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조선통신사를 세계기억유산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양국이 힘을 합쳤으면 합니다.” 나카무라 호도 나가사키현 지사는 지난 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이 지원하고 있는 기억유산 등록에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다음은 일문일답. →조선통신사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의의는. -지금의 한·일관계는 반드시 좋다고 할 수 없다. 양국은 이웃으로서, 대부분의 시기에 좋은 관계 속에서 교류하며 이익을 누려 왔다. 그런 것을 다시 한번 세계에 알리고 서로에게 소중한 것이라는 점을 함께 인식했으면 한다. 민과 관이 다양한 교류의 창구를 만들면 보다 안정된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조선통신사는) 그 같은 계기가 될 일이다. →한·일관계가 나쁜 상황에서 추진하고 있다. 반대는 없었나. -없었다. 나가사키현의 특성인지도 모른다. 한·일 국교 정상화 때에도 한·일 친선 협회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나가사키에 생겼다. 1962년에는 나가사키현 지사를 대표로 한 우호 친선단이 한국에 파견됐다. 항상 친근한 존재로 교류해 온 역사가 있다. 나가사키 현민은 한국 사람들과, 늘 우호를 쌓아온 것이 DNA에 내장돼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한·일 정상회담이 이뤄져 조선통신사 등록을 위한 양국의 협력선언이 있으면 좋을 텐데. -나가사키가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동시에 일본 정부에도 적극적인 대처를 요청하고 있다.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을 포함해 여러 곳에서 긍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있어 기대를 걸고 있다. 국가 간 일이므로 어떻게 될지 좀처럼 전망하기 어렵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제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시라도 빠른 관계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기억유산 등재 추진 과정에서 한·일 양국의 온도차는 없나. -없다. 힘을 합쳐 함께하자고 움직이고 있다. 양쪽 모두 추진 조직이 가동되고 있다. →양국 관계가 나빴던 지난해 5월 서울사무소를 부활시켰는데. -일본이 과거 쇄국 정책을 취하고 있을 때도 나가사키에는 중국, 네덜란드와의 교역 창구가 있었다. 쓰시마는 항상 한국에 열린 창구였으며 교류의 접점이었다. 다양한 민간 및 지방 교류의 지원, 확대를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부활시켰다. →한국이란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타깝게도 한·일 양국이 잘 협조하면서 서로 번영의 길을 걸었던 시기에 대해서는 역사교육에서 별로 소개되지 않는다. 조선통신사는 12차례 일본에 왔다. 그 시기에는 경제적, 인적, 문화적 결속이 양호한 상태였다. 쓰시마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쓰시마 역사를 더듬어 보면 한·일 관계가 잘되고 있을 때는 발전했지만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피폐해지는 역사를 되풀이했다. 나가사키현은 일본의 맨 서쪽에 있다는 핸디캡이 있지만 관점을 바꿔보면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라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는 나라가 눈앞에 있는 우위성을 가진다. 나가사키는 한국의 여러분과 다시 큰 교류를 하면서 발전해 나갔으면 한다. →지난 7월 방한했는데 성과는. -나가사키~인천 간 한국의 진에어가 주 3편 취항하고 있다. 호조를 보이고 있어 겨울철 매일 운항을 부탁했는데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해서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조선통신사의 기억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부산문화재단도 방문했다. 3월 방한 때는 부산시와 우호협정도 체결했다. 나가사키 황성기 특파원 marry04@seoul.co.kr
  • 조선통신사 세계유산 등재 온 힘… 한·일관계 개선 지렛대로

    조선통신사 세계유산 등재 온 힘… 한·일관계 개선 지렛대로

    2015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조선통신사의 정신을 되새기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이목을 끌고 있다. 무대는 부산에서 불과 50㎞ 떨어진 일본 나가사키현의 쓰시마. 임진왜란·정유재란 직후 1607년부터 약 200년간 조선에서 일본에 파견한 외교사절인 조선통신사가 가장 처음 머물렀던 곳이다. 쓰시마시 등 조선통신사가 지나갔던 15개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구성된 조선통신사연지연락협의회와 부산문화재단은 조선통신사를 유네스코 세계기억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3월 준비회의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2016년 신청, 2017년 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나가사키현은 부산시와 함께 이들 두 단체의 조선통신사 기억유산 등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나가사키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다른 지방보다 일찍 이국의 문화를 수용하고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 번영을 누려온 지역이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살려 나카무라 호도 나가사키현 지사는 2011년 4월 나가사키현에 아시아국제정책과를 만들었다. 아시아를 비롯한 해외 전략을 강화해 경제활성화를 꾀한다는 게 나카무라 지사의 생각이다. 나카자키 겐지 아시아국제정책과장은 “특히 나가사키현과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 한국·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한다. 나가사키현이 한국과의 인적, 물적 교류는 물론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중점을 두는 것이 조선통신사의 기억유산 등재다. 나가사키현은 지난 3월에는 부산시와 우호협력도시 체결에 합의한 것은 물론 중앙정부와 정치권에도 조선통신사와 관련한 나가사키현의 움직임을 알리고 있다. 나카무라 지사는 지난 6월 시모무라 하쿠분 일본 문부과학상을 만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조선통신사연지연락협의회는 오는 24일에는 제3차 한·일 공동학술위원회를, 25일에는 공동추진회의를 열어 조선통신사의 기억유산 등재와 관련해 심도 있는 협의를 할 예정이다. 나카자키 과장은 “한국과 일본이 조선통신사의 기억유산 등재를 힘을 합해 추진해 간다면 양국 관계 개선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나가사키현은 지난해 5월 10년 만에 서울사무소를 다시 열었다.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한·일관계가 급속히 얼어붙은 가운데서도 나카무라 지사는 2003년 철수했던 서울사무소 재개에 의욕을 보였다. 나가사키현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외국인 한국이야말로 나가사키현과 ‘윈·윈’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나가사키현의 이런 노력으로 나가사키와 한국의 교류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나가사키현에 따르면 지난해 현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37만 2711명으로 전년 대비 21.3% 늘어났다. 전체 외국인 관광객(83만 8251명) 중 최다인 약 44%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저가항공사 진에어가 인천~나가사키 항공편을 주 3회 취항하면서 관광객이 늘어났다. 현은 또 KTX가 지난 6월 말 인천공항역을 개통해 부산까지 직통으로 이어진 것도 한국인 관광객 증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나가사키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기초단체장에게 듣는다] 곽용환 경북 고령 군수

    [기초단체장에게 듣는다] 곽용환 경북 고령 군수

    “다져진 군민들의 화합과 단합을 바탕으로 지역발전을 위한 가속페달을 더욱 힘차게 밟겠습니다.” 곽용환(56) 경북 고령군수는 11일 집무실에서 만나자마자 지역발전을 위한 ‘중단 없는 전진’을 강조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6·4 지방선거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토대로 단독 출마해 무혈입성한 젊은 재선 단체장의 강한 의지와 자신감이 묻어났다. 곽 군수는 “고령은 1500년 전 6개의 가야국 가운데 가장 발전했던 대가야의 도읍지”라면서 “새로운 대가야 르네상스시대를 주도해 갈 각종 사업을 활발히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곽 군수는 “우선 지산동 대가야고분군을 2018년까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대가야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 “고령읍 명칭을 대가야읍으로 변경하고, 대가야 종묘 및 관문화(關門化)사업을 통해 대가야의 정체성을 확립하겠다”며 “대가야를 역사문화 관광거점 도시로 육성하기 위한 가야국 역사 루트 재현사업 등도 펼치겠다”고 말했다.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을 묻자 그는 “동고령·다산·월성산업단지를 새로 조성하거나 활성화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면서 “특히 성산면 오곡리 신고령변전소 인근에 총 1조 5000억원을 투자해 조성하는 천연가스(LPG) 복합화력발전소 건설사업을 통해 신성장 산업을 키우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이어 “쌍림면 월막리 등 4곳에서 추진 중인 골프장사업도 계획대로 하겠다”고 덧붙였다. 다산면장, 쌍림면장, 운수면장 등을 거쳐 현장 행정에 밝은 그는 누구보다 주민들의 실상을 잘 알고 있다. “우리 군은 대구와 인접해 교육과 문화인구의 역외 유출이 심각합니다. 문화예술회관과 다양한 체육시설을 동시에 갖추는 대가야문화누리사업 조기 완공과 함께 프로그램 개발에도 힘쓰겠습니다. 교육에 대한 투자도 더욱 늘릴 작정입니다.” 곽 군수는 “대가야는 역사 속에 묻혔지만 찬란했던 문화는 세계유산으로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며 “4만 군민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고령의 최대 성장 잠재력인 대가야 역사를 재조명하고 문화를 꽃피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고령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한양도성 학술총서 3권 발간…서울시, 한글·영문판으로 구성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 등재를 앞두고 28일 서울시가 ‘한양도성 학술총서’를 발간했다. 한양도성 학술총서는 시가 지난해부터 개최해 온 한양도성 학술회의 결과를 정리한 것으로 3권으로 구성됐다. 시는 해외홍보를 위해 학술총서를 한글판과 영문판으로 나눠 제작했다. 한양도성 홈페이지(http://seoulcitywall.seoul.go.kr)에서는 파일로 된 책을 내려받을 수 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우주서 본 ‘천번째 세계유산’ 오카방고 삼각주

    우주서 본 ‘천번째 세계유산’ 오카방고 삼각주

    우주에서 본 ‘세계유산’ 오카방고 삼각주의 아름다운 모습이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지구관측소(EO)는 28일 ‘오늘의 사진’으로 최근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포착한 오카방고 삼각주의 풍경 사진을 소개했다. 아프리카 보츠와나 북서부 칼라하리 사막 한가운데 1만5000평방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져 있는 오카방코 삼각주는 아프리카 생태계에서 없어서 안 되는 보호지역으로 최근 1000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주목받고 있다. 공개된 사진은 ISS 우주비행사들이 우리 태양에 의해 반사되는 오카방고 삼각주의 모습을 아름답고 상세하게 볼 수 있도록 촬영한 것이다. 특히 이 사진에는 오카방고 삼각주의 상류인 오카방고 강(江)은 물론 하류에서 합류하는 보테티 강(江)의 빛나는 강줄기도 볼 수 있다. 오카방고강은 ‘결코 바다를 찾지 못하는 강’으로도 유명한데 이는 강물 대부분이 바다가 아니라 칼라하리 사막의 광활한 퇴적물 위로 퍼져가기 때문. 나머지 2%만이 오카방고 삼각주에 도달하며 가장 넓게 형성될 경우 동쪽에서 서쪽까지의 길이가 150km에 달한다. 이를 통해 형성된 습지에서는 수많은 동물과 새들이 모여들어 살며 번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NASA/JSC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통도사·법주사 등 7개 산사 세계유산 등재 본격 추진

    한국의 전통 산사(山寺)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한 사업이 본격 추진된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다음달 6일 오후 2시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문화재청·지방자치단체와 공동으로 한국 전통산사 세계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발족식을 연다고 24일 밝혔다. 발족식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비롯해 나선화 문화재청장, 충북·충남·전남·경북·경남도 등 5개 광역단체장, 7개 자치단체장, 전통산사 주지 스님 등 추진 단체장이 참여해 협약식을 갖는다. 국회 정각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및 해당지역 소속 국회의원 등 관계자들과 조계종 본사 주지 스님들도 초청된다. 추진위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대상으로 선정한 사찰은 양산 통도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해남 대흥사, 순천 선암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등 7개 사찰. 2011년 5월 국가브랜드위원회가 세계유산 등재 작업을 시작해 이듬해인 2012년 6월 전문가 협의회가 전통사찰 45곳을 실사해 잠정목록 대상으로 지정한 곳들로 2013년 12월 유네스코 잠정목록에 모두 등재됐다. 이들 사찰은 중국과 동아시아적 요소를 갖췄으면서도 한국의 독창적인 선·교 융합의 통불교 사상을 간직한 공통점을 갖는다. 특히 의식·생활·문화 등 종합적인 기능을 유지·계승해 생명력을 지닌 유산이란 점에서 세계유산의 가치를 충분히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와 관련해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자문위원회 존 허드 회장은 2012년 양산 통도사에서 열린 학술대회를 통해 “한국사찰은 인도로부터 불교가 전파되는 동안 다양한 변화를 거치면서도 하나의 핵심 원칙과 종교철학이 올곧게 전승돼 왔다”고 평가한 바 있다. 추진위는 8일 발족식을 시작으로 2018년 등재 목표로 2017년까지 등재를 위한 연구와 조사, 국내외 학술대회를 열어 유네스코 현지 실사를 준비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를 위해 조계종과 각 지자체가 MOU를 체결, 해당 기관 간 업무교류를 활성화할 예정이다. 등재 사업에는 7개 지자체가 각 1억원씩, 조계종이 1억원을 출연해 조성된 연 8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조계종 총무원은 “전통사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 한국사찰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질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전통사찰을 찾게 될 것”이라며 “한국 전통사찰이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위안부 기록물 ‘세계유산’ 등재 준비 박차

    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정책토론회가 18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여성가족부와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문화재청 공동 주최로 열린다. 여가부는 이 정책토론회를 기점으로 위안부 기록물의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목표로 관련 문헌·자료 등에 대한 목록화 작업을 본격 추진한다. 위안부 피해실상에 관한 문헌·자료를 집대성해 여성이나 어린이 등 약자를 대상으로 더 이상 이런 참혹한 성범죄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전 세계와 후세대에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다. 서울대 서경호 교수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사업의 목적과 의의’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위안부 관련 기록물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고립적인 사안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오점인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성이 침해된 경험의 증언이라는 점에서 세계적인 중요성을 충족하고 있지만 산재한 기록물의 체계화 등 철저한 준비과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동북아역사재단 남상구 연구위원은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사적 의미와 가치’란 주제발표에서 증언, 피해자 작품을 비롯한 피해자 기록과 일상·유품, 가해자 기록, 수요집회를 위시한 해결 노력 등이 모두 세계사적 의미와 가치를 갖는 기록물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나라는 훈민정음 원본 등 11건의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김주혁 선임기자 happyhome@seoul.co.kr
  • “후지산 폭발, 위험한 단계”…대재앙 발생할까

    “후지산 폭발, 위험한 단계”…대재앙 발생할까

    일본 후지산이 곧 분화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나와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 일본의 상징이자 지난 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된 후지산을 두고, 일본 뿐 만 아니라 프랑스 등지의 해외 전문가들도 ‘위험한 상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매년 지적되는 후지산 분화 위험과 달리 이번 주장이 신빙성을 얻는 이유는 2011년 발생한 도호쿠 대지진 때문이다. 지금까지 일본을 강타한 지진 중 가장 강력한 것으로 기록된 도호쿠 지진으로 1만 5878명이 사망하고 2713명이 실종됐으며, 이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유발하기도 했다. 프랑스 지구과학협회와 글로벌물리학협회 등 영향력 있는 연구단체와 일본의 전문가들이 도호쿠 지진 당시 기록된 지진파를 분석한 결과, 이것이 계속해서 후지산 지각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지진파는 매우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고 심지어 전 세계를 몇 차례나 우회할 수 다. 지진파의 움직임은 지각에 진동을 미치고 이로 인한 충격파는 지각 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호쿠 지진 당시 발생한 지진파는 도호쿠 일대 뿐만 아니라 400㎞ 떨어진 후지산 지각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이 때문에 후지산 지하에서 끓고 있는 지하수와 액체 형태의 마그마, 가스 등이 압력을 받고 있다는 것. 도호쿠 대지진 당시 쓰나미가 지나간 이후에도 강도 6.4의 지진과 약한 여진이 잇따라 발생했는데, 이 역시 후지산이 아래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연구팀은 주장했다. 연구를 이끈 프랑스 지구과학협회의 플로랑 브랭구이어 박사는 “지진과 화산분출의 정확한 연관관계 및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현재 후지산이 지속적인 압력을 받고 있으며 이는 분명 매우 높은 위험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후지산 분화시기를 예측하고 미리 대비할 수는 없을까? 후지산의 마지막 화산폭발은 1707년이었다. 화산이 폭발하기 정확히 49일 전, 후지산에서 100㎞ 떨어진 곳에서 규모 8.7의 강진과 거대한 해일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문가들은 도호쿠 대지진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규모 화산폭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면서, 철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자넌 2월 시즈오카(靜岡)와 야마나시(山梨), 가나가와(神奈川) 등 후지산 인근 3개 현이 설립한 ‘현위원회’는 후지산이 분화돼 화산재가 지상 30㎝이상 쌓일 경우 약 47만 명의 인근 지역 주민이 피난해야 한다는 예측을 제기했다. 일본 정부 역시 후지산이 분화하면 수도 도쿄까지 화산재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세계 문화유산 등재된 남한산성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세계 문화유산 등재된 남한산성

    ‘성’(城)이란 적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흙이나 돌 등으로 쌓아 올린 장애물을 말한다. 인류는 농경에 따른 정착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담’을 쌓았다. 이것을 성곽의 기원으로 보기도 한다. 특히 외침이 많았던 우리 역사 속에서 ‘성’은 국토를 지키려 했던 ‘호국 의지’의 산물이다. 산지지형인 우리나라는 산에 쌓은 ‘산성’(山城)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 땅에서 산성의 기원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깊다. 기원전 1000년 전부터 다른 부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산에 성벽을 쌓기 시작한 이후,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와서 절정을 이뤄 한반도에만 모두 1200여개의 산성이 세워지게 됐다고 한다. 지난달 한국의 대표적인 산성인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남한산성은 산악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만든 성곽이다. 계곡과 능선을 따라 불규칙적으로 성벽을 세우다 보니 산성의 존재를 알기가 어렵다. 적들은 힘들여 험난하고 굽이진 산을 올라야 했다. 방어를 하는 데 탁월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성 안에 수많은 군인과 백성들이 상주할 수 있도록 큰 규모로 지은 것도 남한산성의 특징이다. 자연적인 지형지물 위에 돌을 얹은 형태는 민족 고유의 심미관과 토착기술을 응집하여 만든, 세계에 없는 고유한 성곽의 모양이다. 조상들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미적 감성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남한산성 문화관광사업단 신명종 연구원은 “우리 선조들의 산성축성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산성건축의 교과서’라 불릴 만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남한산성의 문화재적 가치에 세계가 주목했다. 유네스코는 “남한산성이 지형을 이용한 축성술이 돋보이는 초대형 산성”이라 평가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한 것이다. 또한 체계적 관리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남한산성에는 촘촘하게 쌓아 올린 돌의 개수만큼이나 많은 사연이 담겨 있다. ‘남한산성’ 하면 병자호란의 치욕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남한산성은 훨씬 이전부터 이어져 온 긴 역사와 더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매 시기, 격전의 현장이었던 남한산성은 한강유역과 수도에 대한 방어 기능을 담당한 천혜의 요새였다. 남한산성은 굴곡 많은 세월을 온몸으로 견뎌온 역사의 산증인이다. 수어장대(守禦將臺·지휘관이 군대를 지휘하던 누각)에 올라와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던 이혜선(37·서울 강남구)씨는 “남한산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다양한 행사가 산성 일대에서 열린다는 말을 듣고 가족들과 함께 왔다”며 “아이들에게 남한산성에 대한 역사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고 각종 전시회도 즐거웠다”고 말했다. 남한산성 문화관광사업단 세계유산담당 노현균 팀장은 “남한산성은 굴욕의 역사가 담겨 있지만 끝까지 나라를 지키려던 선조들의 애환과 삶이 그대로 묻어 있는 곳”이라며 “우리가 현재 기억해야 할 남한산성은 위기의 순간에도 역사를 이어온 지혜로움의 산물이며 위대한 문화유산”이라고 강조했다. 오천년 역사와 함께 살아 있는 유산으로 불리고 있는 남한산성이 지금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다. 주말이면 한번쯤 호국의 성지인 남한산성에 올라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기려보는 것은 어떨까. 글 사진 jongwon@seoul.co.kr
  • [여행 가방]

    ‘잉카 트레일’ 세계유산 등재 세계 3대 하이킹 코스로 꼽히는 페루의 ‘잉카 트레일’이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에 등재됐다. 고대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40㎞짜리 트레일이다. 협곡과 빙하, 눈 덮인 안데스의 산자락, 폭포, 고산 지대 마을 등 이채로운 풍경들과 동행할 수 있다. 페루관광청은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일일 방문객 수를 200명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비수기에는 2개월 전, 성수기에는 4개월 전에 예약해야 한다고 전했다. 페루는 케이블채널 tvN 배낭여행 프로젝트 3탄 ‘꽃보다 청춘’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최근 더욱 주목받고 있다. 가수 유희열, 이적, 윤상 등이 출연하는 새 배낭여행 프로젝트다. 한국을 대표하는 중년 뮤지션들의 페루 여행기는 오는 8월 공개된다. 5~6일 세계비보이대회 한국관광공사(사장 변추석)가 주최하는 ‘R16 KOREA 2014 세계 비보이 대회’가 오는 5, 6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다. 올해 8회째로 한국과 미국, 유럽 등 세계 최정상 비보이들이 열띤 배틀을 선보인다. 티켓 예매는 홈페이지(www.R16KOREA.com) 등에서 받고 있다. 롯데월드, 야간 퍼레이드 선봬 롯데월드 어드벤처는 개원 25주년을 맞아 최신 미디어 기술과 특수 효과를 동원한 신규 나이트 퍼레이드 ‘렛츠 드림’을 선보인다. 제작 기간 2년, 150억원을 투자한 퍼레이드에는 150명의 배우와 ‘태양의 서커스’, ‘라이언 킹’ 등에서 활약한 해외 스태프가 대거 참여한다. 매일 오후 8시 30분부터 30분간 진행된다. 무선관광 안내기 ‘유비체크’ 넥스트로닉스가 위치검색 기능을 장착한 ‘유비체크’를 선보였다. 가이드 1명이 최소 8명에서 최대 100명까지 관광객에 대한 위치 검색과 부재자 조회, 긴급호출 등을 할 수 있는 무선 관광음성 안내기다. 유비체크는 스마트폰처럼 생긴 본체와 작은 MP3 크기의 수신기로 구성된다.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7월의 야경 이곳에서 즐겨라

    7월의 야경 이곳에서 즐겨라

    경기 광주의 남한산성이 국내 11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로써 한국은 남북한을 통틀어 13개, 중국 동북 지역까지 포함할 경우 모두 14개의 세계유산을 갖게 됐다. 낮에 웅장했던 남한산성은 밤에 경관조명을 받아 한층 화려한 풍경을 선사한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야경 여행지로 남한산성을 꼽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관광공사가 선정한 7월의 야경 여행지들을 함께 소개한다. 남한산성은 백제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보루 역할을 한 요충지였다. 조선시대 인조는 청나라의 침략을 피해 47일 동안 남한산성에 머물며 항전하기도 했다. 남한산성은 경기 광주·하남·성남시 등에 접해 있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은 서문 지역이다. 서문 성곽 아래 전망대가 조성돼 있다. 서울 강남 일대와 경기 하남시 등이 아득하게 내려다보인다. 야경 감상은 성곽 위쪽이 한결 운치 있다. 서문까지 길이 잘 닦여 가족이 산책하듯 야경을 즐길 수 있다. ●경주역사유적지구·한양도성도 매력 만점 10여년 복원 과정을 거쳐 문을 연 행궁(사적 제 480호)은 남한산성의 새로운 상징이다. 행궁은 임금이 도성 밖에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물던 곳이다. 조선 인조 때 만들어진 이후 숙종과 영조, 정조 등이 능행 길에 남한산성에서 머물렀다. 남한산성 행궁은 국내 여러 행궁 가운데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을 갖췄다. 이는 남한산성이 유사시에 임시 수도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행궁 안에는 정문이자 ‘한강 남쪽 제일의 누각’이란 뜻의 한남루와 내·외행전, 이위정 등이 복원돼 있다. 행전에서는 무료 해설이 진행된다. 주말엔 아이들을 위한 책 만들기, 부채 만들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행전을 둘러봤으면 남한산성 낮 투어에 나설 차례다. 야간에는 일부 유적에만 조명이 들어오기 때문에, 야경 감상 전에 산성을 둘러보는 게 낫다. 남한산성은 해발 500m의 험한 자연 지형을 따라 조성됐다. 둘레 11.76㎞ 성곽 주변에 200여개 문화재가 산재돼 있다. 산성 탐방 코스 가운데 일반인은 물론 가족 나들이객도 접근하기 수월한 코스는 북문~서문~수어장대~남문 구간이다. 성곽 안팎을 넘나들며 성곽 둘레길을 걸어볼 수도 있다. 성문 밖으로 나서면 솔숲이다. 솔향 가득한 곳에서 쉬어가기 맞춤하다. 코스의 반환점은 저 유명한 수어장대(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다. 남한산성의 핵심 건물로, 현재 남은 건축물 가운데 가장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수어장대는 지휘와 관측을 위한 장소다. 이름 그대로 장수가 머물며 휘하 군사를 지휘하던 곳이다. 남한산성 내에 모두 5곳의 수어장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겨우 한 곳만 남아 있다. 아울러 군사를 훈련하기 위해 건립한 연무관, 병자호란 때 항복을 끝까지 반대한 삼학사를 기리는 현절사 등의 유적과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한용운 선생의 흔적이 담긴 만해기념관 등도 묶어 돌아보는 게 좋겠다. ●대구 앞산 야경·대전 문화의 거리도 강추 수어장대와 서문까지 빠르게 오르려면 숭렬전, 국청사를 거치는 숲길 코스가 낫다. 숭렬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2호)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과 산성 축조 당시 책임자인 이서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다만 이 단축 코스는 야간에 길을 잃을 우려가 있으니 해가 진 뒤에는 산행을 삼가야 한다. 남한산성은 밤에도 멋들어지다. 한낮에 성곽을 채우던 산행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면 그제야 산성은 고요를 되찾는다. 북문에서 서문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탐방 코스 역시 주말 낮이면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해가 내려앉을 때쯤이면 한적한 공간으로 변신한다. 최고의 야경 감상 포인트는 서문 성곽 위다. 옛 도읍이던 서울의 건물과 한강 변에 불이 하나씩 켜지고 옅은 어둠에서 벗어난 도시가 은은한 조명으로 뒤덮인다. 청량산을 거슬러 오른 바람은 이마의 땀을 식혀준다. 남한산성도립공원 (031)743-6610. 산성 주변에 야경 투어의 여운을 즐길 만한 공간도 많다. 무기 제작을 관장하던 침괘정과 행궁 초입 종루 인근에는 허기를 달랠 식당과 차 마시며 쉴 수 있는 카페들이 늘어서 있다. 산성 남문 초입엔 닭죽마을이 조성돼 있다. 동문 방향으로는 시래기붕어찜을 맛볼 수 있는 집들이 있다. 관광공사는 남한산성과 함께 ▲도보로 즐기는 신라의 여름밤, 경주역사유적지구 야경 (경북 경주) ▲600년 전 한양도성을 따라 600년 후 서울 도심을 바라보다 (서울특별시) ▲마치 야간 비행에 나선 비행사가 된 기분, 대구 앞산 야경 (대구광역시)▲도시·섬·항구가 어우러진 바다의 야경,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경남 창원) ▲불빛으로 피어나는 삶의 근기, 목포의 야경 (전남 목포) ▲밤의 열기 가득한 도시의 야경, 대전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 (대전광역시) ▲통합 청주시의 저녁 풍경 전망대, 수암골 전망대 (충북 청주) 등을 7월에 가볼 만한 야경 여행지로 선정, 추천했다.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7~19세기 국내 축성술 변화·동아시아 건축 교류 증거”

    “7~19세기 국내 축성술 변화·동아시아 건축 교류 증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의 가치는 ‘비상시의 왕궁’이라는 데 방점이 찍혔다. 임진왜란(1592~1598)과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 등 국가전란 시 왕실과 조정의 명운을 보장하는 임시 수도의 역할을 했다. 또 방어력을 갖춘 산성도시로서 조선시대 행궁 가운데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을 갖춘 왕궁이다.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위원장인 이혜은 동국대 교수는 “일상적인 왕궁과는 별개 산성이면서도 전란 때 왕이 일상적으로 거주한 곳은 남한산성 외에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남한산성은 그 원류를 찾아가면 백제 온조왕 때 왕성과 통일신라 시대 주장성에 잇닿는다. 그러다 1624년 인조 때 뒤로 굽어지는 ‘굽도리 방식’의 산성으로 탈바꿈했다. 18세기 영·정조 때는 석재 중간에 작은 돌을 끼워 넣어 지지력을 높였고, 화포를 쏠 수 있도록 포좌와 포대를 만들었다. 이들 성벽은 시기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최재헌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는 “남한산성은 7~19세기에 이르는 국내 축성술의 발달 단계와 무기체계의 변화상을 잘 드러낸다”면서 “동시에 16~18세기 동안 전란을 거치며 동아시아의 한국과 중국, 일본 간 산성 건축술이 상호 교류한 중요한 증거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위원회(WHC)는 남한산성이 계곡을 감싸고 축성된 초대형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라는 점과 축조와 운용 과정에서 사찰과 승려가 동원된 점 등에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 남한산성에는 수어장대와 숭렬전, 청량당, 현절사, 침괘정, 연무관 등의 기념물 외에 남한산성 소주와 같은 유·무형유산 10점이 곳곳에 자리한다. 아울러 파란만장한 한국사를 상징하는 공간으로서 현대 도시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점도 가치를 인정받았다. 현재 세계문화유산을 등재하는 기준은 ‘유적이 얼마나 잘 보존돼 있는지’와 ‘역사성을 얼마나 담고 있느냐’, ‘현대인의 삶과 얼마나 잘 조화되느냐’ 등이다. 여기에 인류의 보편 가치까지 강조된다. 이를 포괄하는 것이 ‘세계유산협약의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으로 남한산성은 특정 기간·지역 내에서 인류 역사의 중요한 발달 단계를 보여 주는 탁월한 사례로 꼽힌다. 경기 광주시 중부면에 자리한 남한산성은 2009년 6월 세계유산 등재 잠정목록 후보로 선정된 뒤 지난해 1월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서가 제출됐다. 지난 4월에는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로부터 ‘등재 권고’ 판정을 받았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씨줄날줄] 남한산성과 문무대(文武臺)/정기홍 논설위원

    “알 수 없는 것은 조선이다. 청(淸)군사가 송파강(잠실 부근의 한강)을 건널 때 행군대열 앞에 조선군대는 한 번도 얼씬하지 않았다. 누런 개들이 낯선 행군대열을 향해 짖어댈 뿐이었다. 산성의 문을 닫아 걸고 내다보지 않으니 맞서겠다는 것인지, 돌아서겠다는 것인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조선 인조가 10만의 청 군사가 공격해 오자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47일간의 병자호란 치욕을 이같이 기록한다. 애통한 역사 현장인 남한산성(경기 광주)이 어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1995년 석굴암·불국사 등이 처음 등재된 이래 11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요새가 그렇듯 영광보다 상처가 많은 곳이다. 인조가 삼전도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했던 무력감과 비참함이 버무려진 곳이기도 하다. 고립된 성 안의 민초가 양식이 부족해 굶주려 죽어간 안타까운 이면도 있다. 청에 인질로 갔다가 돌아온 효종(봉림대군)이 복수를 하기 위해 준비한 ‘북벌 운동’의 단초도 제공한 곳이다. 백제 시조인 온조왕이 이곳(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옮긴 뒤 성을 쌓고 군사훈련장과 병기·군량창고를 두었다는 기록도 있다. 지금은 대부분 이전했지만 기슭에는 육군종합행정학교와 군 체육부대, 육군교도소 등 군 교육훈련기관이 자리했다. “남한산성 간다”(영창 간다는 뜻)는 말도 교도소가 있었던 데서 유래됐다. 군 골프장 남성대도 있었다. 남한산성은 대학생과의 인연이 유독 깊은 곳이다. ‘문무대’(文武臺)라 불렸던 학생중앙군사학교가 이곳에 있었다. 1976년 들어선 이후 수도권 지역의 대학 1학년생은 5박6일(80년대 이전엔 9박10일)간의 병영훈련을 받았다. 군대 말로 ‘집체(集體)훈련’으로 불렀다. 이 과정을 이수하면 45일간의 군복무 단축 혜택이 주어졌다. 민주화 시절인 1980년대 초·중반엔 크고 작은 소동도 잦았다. 교육훈련을 거부하며 연병장을 돌면서 시위하는 일도 발생해 주동 학생에게는 어김없이 조기 징집 등의 보복이 따랐다. 하지만 엄혹하지만은 않았다. 문무대 입소 전에 여대생이 건네주는 초콜릿과 담배는 대학가의 낭만적 그림이기도 했다. 당시 대학생활의 축이었던 MT와 함께 굴곡의 지난 일들이다. 남한산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외세의 침략을 온몸으로 견뎠고 자연석을 이용한 방어적 축성술이 탁월하다는 것에 그 의미를 찾아야 할 듯하다. 산성 지형이 ‘고위 평탄면’으로 한양 땅을 지켜내는 천혜의 요새 역할을 했다. 유구했던 산성 안의 민간인 생활상의 가치도 결코 작지 않다. 이제는 영욕의 역사적 편린(片鱗)들을 한데 모아 서울을 찾는 세계인들이 꼭 들러야 하는 관광 루트로 만들어야 한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남한산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남한산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남한산성(사적 제57호)이 한국의 11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문화재청은 카타르 도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22일(현지시간) 열린 ‘2014 유네스코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남한산성이 이같이 심사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등 3건이 한꺼번에 처음으로 등재된 이래 창덕궁과 수원화성(이상 1997년),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이상 2000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년), 조선왕릉(2009년), 한국의 역사마을:하회와 양동(2010년) 등이 잇따라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려 왔다.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과 개성역사유적지구 그리고 중국 동북지방 일대의 고구려 유적까지 합칠 경우 한민족 관련 세계유산은 14건에 이른다. 남한산성은 지난 15일 개막한 이번 회의에서 43개국이 제출한 41건의 등재신청 목록 가운데 12번째로 심사를 받았다. 등재 심사에선 남한산성이 세계유산 가운데 인간이 남긴 기념물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유산’의 6개 조건 가운데 특히 등재 기준 2와 4를 충족했다고 평가됐다. 기준 2는 특정 기간, 지역 내 인류 가치의 중요한 교류 증거임을 밝히는 것이며, 기준 4는 인류 역사의 중요한 발달 단계를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를 뜻한다. 둘레 11.7㎞, 면적 52만 8000㎡인 남한산성은 백제 온조왕 때 왕성으로 처음 축조된 뒤 조선 인조 때인 1624년 사찰과 승려가 동원돼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계획과 축성술이 상호 교류한 군사유산이자, 축성술과 방어전술의 시대별 층위를 엿볼 수 있다는 점 등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문화재청은 덧붙였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남한산성 비롯 등재된 각국 세계문화유산 살펴보니

    남한산성 비롯 등재된 각국 세계문화유산 살펴보니

    22일 우리나라의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이날 함께 등재된 실크로드(비단길), 중국 대운하, 프랑스 남부의 그로트 쇼베 동굴 등도 주목받고 있다. 유네스코(UNESCO·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유산위원회(WHC)는 이날 카타르 도하에서 한국이 등재 신청한 남한산성을 비롯해 2000년 전부터 중국과 유럽 간 교역과 문화 교류의 통로로 이용된 실크로드, 세계 최대 인공수로인 중국 대운하, 프랑스 남부 아르데슈에 있는 인류 최초의 벽화 유적인 그로트 쇼베 동굴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승인했다. 지난해 1월 세계문화유산 신청 이후 1년 5개월 만에 등재된 남한산성은 석굴암과 불국사, 조선왕릉을 포함해 우리나라가 11번째 보유하게 된 것으로,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지키는 산성으로 병자호란 시기 인조가 피신해 비상 왕궁으로 쓴 곳이다. 중국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이 공동 신청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실크로드는 중국 22곳, 카자흐스탄 8곳, 키르기스스탄 3곳의 총 33군데다. 옛 실크로드를 따라 세워진 궁전과 불교사원 탑, 폐허로 변한 유적, 사막 등으로 이뤄졌다. 24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중국 대운하는 베이징에서 항저우까지 1794km를 잇는 뱃길로 “옛 중국인의 근면성과 지혜의 집대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프랑스 아르데슈 콤브다르크에서 1994년 발견된 그로트 쇼베 동굴은 유럽 최초의 인류 문화 유적으로 추정되는 3만6000년 전 벽화 1000여점이 8500평방미터 이상의 방대한 동굴면적에 그려져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쇼베 동굴 유적은 인류 중 가장 먼저 구상화를 그린 오리냐크인의 예술 창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되고 잘 보존된 벽화가 있는 곳으로 사람의 손을 상징하는 도안은 물론 매머드, 삵, 코뿔소, 들소, 곰, 원우(소의 조상) 등 수십 종의 동물이 그려져 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남한산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비운의 역사를 품고...”

    남한산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비운의 역사를 품고...”

    남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우리나라의 11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문화재청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3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남한산성의 세계유산 등재가 확정됐다고 22일 밝혔다. 지난 2009년 2월 문화재청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한 이후 5년 5개월 만이다. 이번 세계문화유산 등재유적은 국가지정문화재 남한산성(57호), 남한산성행궁(480호)과 경기도지정문화재 수어장대(1호), 숭렬전(2호), 청량당(3호), 현절사(4호), 침괘정(5호), 연무관(6호)이다. 또 경기도의 무형문화재 남한산성소주(13호), 기념물 망월사지(111호)와 개원사지(229호), 문화재자료 지수당(24호)과 장경사(15호)도 세계유산 대상 유적에 포함됐다. 남한산성은 동아시아에서 도시계획과 축성술이 상호 교류한 증거가 되는 군사유산이라는 점과 지형을 이용한 축성술, 방어전술의 시대별 층위가 결집된 초대형 ‘포곡식’(包谷式ㆍ계곡을 감싸고 축선된) 산성이라는 점 등이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또 효과적인 법적 보호 체계와 보존 정책에 따른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는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문화재청은 덧붙였다. 남한산성의 등재 결정으로 우리나라는 1995년 12월 9일 석굴암ㆍ불국사, 해인사장경판전, 종묘 3건이 처음 등재된 이래 모두 11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세계유산은 1972년 세계유산협약에 근거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돼야 할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해 선정한 문화재로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분류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판교 옆 광주는 문화의 도시로 탈바꿈 중

    - 판교 옆에 위치한 ‘광주’ 남한산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유력해 짐에 따라 주목 - 내년 말 ‘성남~여주 복선전철’ 개통예정 서울에서 ‘경기도 광주’ 나들이 대폭 수월 - 광주에서도 개발기대감 높은 광주역 바로 옆에 대림산업 ‘e편한세상 광주역’ 분양으로 관심집중 판교 바로 옆에 위치한 경기도 광주가 세계문화유산의 도시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남한산성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에 대한 평가 결과 보고서’에서 남한산성을 ‘등재 권고’로 평가해 유네스코(UNESCO)에 제출한 것을 확인됐다고 밝혔다. 등재 권고는 이변이 없는 한 그 해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가 이뤄진다. 이로써 남한산성은 올해 6월 예정된 유네스코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유력시됐다. 남한산성은 연간 300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문화명소로 교육, 체험 공연 등 다채로운 장르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남한산성 내에는 성곽(사적 제57호)과 행궁(사적 제480호)등 국가지정문화재를 비롯해 유형문화재(6점), 문화재자료(2점), 기념물(2점) 등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있다. 이처럼 관광객의 증가와 도시활성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경기도 광주시의 교통여건도 획기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라 광주의 부동산 가치가 재조명 되고 있다. 2015년 말에는 ‘성남~여주 복선전철’이 개통될 예정으로 판교나 서울에서 광주로의 이동이 더욱 수월해질 전망이다. 성남~여주 복선전철은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판교역)에서 광주, 이천을 거쳐 여주읍 교리(여주역)를 잇는 구간으로 광주지역에는 총 4개의 역이 설치된다. 또한, 성남~장호원간 자동차 전용도로’는 성남시 여수동(성남시청)부터 이천시 장호원읍간 총 62.5㎞에 이르는 자동차 전용도로로 2017년 완전개통예정이다. 이 도로가 개통되면 분당까지 20분대, 서울 강남까지 30분대에 닿을 수 있다. 특히, ‘성남~여주 복선전철’ 노선 중 가장 개발기대감이 높은 ‘광주역’(광주시 역동) 바로 옆에는 대림산업이 ‘e편한세상 광주역’을 분양할 예정이다. ‘광주역’을 이용하게 되면 판교역까지 세 정거장, 약 10분대 도달이 가능하고, 신분당선으로 환승하면 강남역까지 27분 대 진입한다. 이렇게 되면 ‘e편한세상 광주역’에서 강남 및 판교테크노밸리, 분당업무지구로의 출퇴근이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며 사실상 분당생활권으로 편입하게 된다. ‘e편한세상 광주역’은 총 2,122세대로 전용 59~84㎡로 지어진다. ‘원스톱 라이프’ 아파트로 단지 내 어린이 집, 유치원, 초등학교가 들어서며 인근에는 중학교가 있어 탄탄한 교육인프라를 누릴 수 있다. 한편, ‘e편한세상 광주역’ 견본주택 오픈에 앞서 아파트가 지어지는 입지에 전망대를 설치했다. 저녁에 방문을 원하는 수요자들을 위해 현재 저녁 8시까지 연장운영 중이며, 방문객 전원에게 사은품 지급 및 경품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e편한세상 광주역’ 측에서는 수요자들의 편의를 위해 광주지역 및 분당 야탑, 정자, 판교 등 인근지역에서도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문의번호: 031-8017-0048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저자와 차 한잔] ‘역사로 여는 과학문화유산답사기’ 펴낸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

    [저자와 차 한잔] ‘역사로 여는 과학문화유산답사기’ 펴낸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

    “500년 이상 이어진 왕조의 왕릉 가운데 훼손 없이 원래의 모습이 보존돼 있는 건 세계적으로 조선 왕릉이 유일합니다. 두 곳만 빼곤 도굴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이종호(66) 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이 ‘역사로 여는 과학문화유산답사기’ (북카라반)조선왕릉 편과 전통 마을 ①편을 동시에 출간했다. 그는 조선 왕릉이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은 ‘먹을 게 없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시신과 함께 묻힌 부장품이 모조품이었기에, 다시 말해 가짜였기에 도굴해봤자 돈이 안 됐던 거죠. 임진왜란 때 선릉이 파헤쳐 졌으나 진품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후엔 도굴이 사실상 없었습니다.” 그는 모조 부장품의 종류와 내용은 ‘산릉도감의궤’란 책에 상세히 남아 있다고 전한다. “42기의 조선 왕릉 가운데 선릉과 정릉을 제외하곤 그 어떤 왕릉도 도굴되지 않았던 다른 이유는 과학적인 건축 기술도 한몫을 했습니다. 왕릉 석실의 벽과 천장은 두께가 76㎝나 되는 화강암을 통째로 사용했습니다. 또 석실 주변에는 일종의 시멘트라고 할 수 있는 삼물을 120㎝ 두께로 둘러쌌습니다. 또 다른 도굴 방지책들도 여럿 도입했습니다.” 저자는 “죽은 이에게 명당은 햇빛이 잘 들고, 전망이 좋으며, 물이 흐르지 않는 곳이면서 토양이 중성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땅은 대개 산성입니다. 그런데 명당의 토양을 조사해 보니 중성이더라고요. 중성의 땅은 뼈를 보존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수천년간 썩지 않고 남아 있는 단군 묘터의 토양도 중성입니다.” 그는 조선 왕릉이라는 유산이 훼손 없이 남아 있는 이유의 근본은 과학에 입각해 무덤을 조성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져 갈 게 없이 만들어서 도굴 의욕이 생기지 않게 하고 혹 그래도 있을지 모르는 도굴에 대비해 철저한 방지책을 마련한 것이 가장 과학적인 대비책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전통 마을 ①편은 현재 남한에 남아 있는 20여곳의 전통 마을 가운데 10곳을 답사한 기록으로, 저자는 그곳에서 마을의 문화가 형성된 배경뿐만 아니라 마을을 조성한 사람들의 과학적 속성까지 분석했다. “충남 아산군 송악면에 있는 외암마을은 풍수지리에 딱 들어맞는 천혜의 입지가 아니라 실상은 불리한 입지에 조성된 마을입니다. 위치상 겨울에 북서풍에 노출됩니다. 그래서 우백호 역할을 하는 소나무 숲을 인공적으로 조성해 방풍림 역할을 하게 했죠. 또 가옥은 왼쪽으로 향하게 했죠. 모두 강한 북서풍을 막기 위한 조치죠.” 그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크기를 감안할 때 풍수지리를 충족하는 입지가 많지 않다”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개선하려는 선조들의 노력이 결과적으로는 과학적인 대응을 하게 만들었다”고 밝힌다. 그는 “우리나라 기후나 자연환경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초가집”이라면서 “초가집을 황토로 지으면 금상첨화”라고 말한다. “짚으로 만든 지붕은 가벼운데다 비와 눈을 잘 막고, 좋은 단열재이기도 합니다. 두꺼운 황토는 흙이 습도를 저절로 조절해주기 때문에 가습기가 필요 없습니다. 또 유익한 미생물도 많습니다.” 건축공학과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10여개의 특허를 20여개국에 출원했고, 90여권의 저서를 펴냈다. 앞으로 전통 마을 ②편을 포함해 공룡 편, 유네스코 세계유산 편, 국보 건축물 편 등으로 나눠 과학문화유산 답사기를 6~7권 더 낼 계획이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교토 속살 들여다보기… 도래인의 역할은?

    교토 속살 들여다보기… 도래인의 역할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권 교토의 역사/유홍준 지음 창비/412쪽/1만 8000원 무려 1000년간 일본의 수도였던 고도 ‘교토’(京都). 경주를 제쳐놓고 한국 문화를 이야기할 수 없듯이 일본의 문화를 논할 때 교토를 빼놓을 수가 없다. 사찰 3030곳과 신사 1770곳을 품고 있는데, 그중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만도 17곳. 한 해 800만명이 찾아든다는 교토에 한국이 각별한 관심을 갖는 큰 이유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른바 고구려·백제·신라계 도래인(渡來人)의 존재와 역할 때문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권 교토의 역사’는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작심하고 교토 해부에 나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0권째 작품이다. “마치 미적분 풀이를 하는 것 같았다”는 서문 속 심경 그대로 교토 속살 들여다보기 작업이 녹록지 않았음이 충분히 읽힌다. 책은 교토 문화유산의 대종인 사찰과 신사(神社) 답사기 형식으로 엮여 있다. 하지만 길을 따라 훑어가는 종전의 평면적 답사기와는 조금 다른 흐름이다. 공간의 문화유산에 역사라는 시간성을 얹어 ‘일본문화 본고장’의 진면목을 풀어내고 있다. 유 교수가 책에서 주목한 건 역시 일반의 인식과 비슷하게 ‘1000년 고도’ 속 도래인의 역할이다. 황폐한 교토에 댐과 수로를 만들어 비옥한 땅으로 일군 하타씨(秦氏)를 비롯해 일본 국보 1호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이 소장된 광륭사, 원효와 의상 대사의 실물에 가까운 초상화가 보관된 인화사 등에 담긴 도래인의 숨결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책은 한반도 도래인의 역할과 숨결을 중시하면서도 그들의 뒤를 이어 번져갔던 당나라 문화 배우기(唐風)며 헤이안 시대 중엽(후지와라 시대) 이래 자발적인 힘으로 문화를 일궈내려 했던 시도인 국풍(國風)까지를 소개한다. 그 치우치지 않는 입체적 답사의 바탕은 이렇게 요약된다. “나를 비롯한 한국인들은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 때문에 일본 답사기는 국내 답사기와 달리 일본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다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교토 답사의 모범답안’을 만들려 했다는 유 교수는 일본 문화의 정수가 모인 교토를 후속편 ‘교토의 명소’를 통해 한 번 더 훑어낼 예정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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