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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닥터 ‘이지’의 발칙한 치아 얘기] 치과 의녀

    의녀(醫女)는 조선시대에 주로 부인들의 병을 치료하고 간병하는 여자 의원이었다. 당시는 사회 통념에 따라 여자들이 함부로 속살을 드러내 보이는 걸 극도로 꺼렸다. 당연히 병이 났을 때 남자가 전부였던 의원에게 진단과 치료를 받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었다.이런 사정으로 궁궐에서는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지는 궁녀들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의녀 제도가 처음 생겼다. 그때가 1406년, 즉 조선 태종 6년이었다. 검교한성부 지제생원사 허도(許道)가 건의하여 제생원(濟生院)에 의녀를 배치하였던 것. 한편, 세조실록을 살펴보면 1456년, 즉 세조 2년에 제주의 안무사(按撫使)가 치과의녀를 뽑아서 서울로 올려 보낸 기록이 있다. 당시 지금의 중국 상하이, 일본의 후쿠오카, 그리고 우리나라의 제주도 사이에 삼각무역이 이뤄졌던 것을 감안하면 제주도에는 이미 치아를 치료하는 기술이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성종은 충치로 고통받은 임금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성종실록에 보면 “제주도 의녀 장덕(張德)이 치충(齒蟲)을 잘 잡아내고 코와 눈병을 잘 고치니….”라는 말이 전한다. 수년전,‘국민 드라마’였던 ‘대장금’에서도 장금이 관비로 제주도에 내려갔을 때 그곳에서 명의(名醫)로 이름을 떨치던 의녀 장덕과 운명적으로 해후하는 장면이 다뤄졌던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잖을 것이다. 성종실록에 치과의녀 장덕에 대한 언급이 있고, 성종이 충치에 시달렸다는 기록을 종합해 볼 때 성종이 치과의녀 장덕에게 치료를 받았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이런 기록들에서 보듯 치충(齒蟲)을 잡아내는 것, 즉 선조들이 벌레를 잡아낸다고 표현한 것을 현대 치의학적으로 해석하면 바로 신경치료의 한 과정이다.이는 치아 속 신경을 빼내는 것(발수·拔髓)을 뜻하는데, 치료시의 통증을 감안하면 아마 마취를 하였을 것이며, 마취는 경혈을 이용한 침술을 적용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연산군 이후에 의녀는 천민이라는 신분 때문에 의관(醫官)과 같은 지위에 오를 수 없었으며,1882년 고종 19년에 의료기관이었던 혜민서가 폐지되면서 의녀제도도 함께 사라졌다. 이후 갑신정변과 갑오경장을 거치면서 새로운 의료기술과 제도가 독일, 미국 등지에서 유입되었으며, 또한 서양의학의 발달과 선교의사들에 의한 서구식 진료가 시도되면서 의녀라는 이름도 서서히 사라졌다. 그 의녀제도가 존속되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의녀는 세계적으로 독특한 지위를 인정받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다. 세계사를 통틀어 국가적 차원에서 여성에게 의학교육을 시켜 활원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치의학 박사·강남이지치과 원장·www.egy.co.kr
  • [문화마당] ‘바리데기’와 한국 사회의 미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황석영의 장편소설 ‘바리데기’는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라서 있는 작가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여기서 작가는 한국의 전통적인 구비 서사인 바리데기 이야기를 우리 시대의 삶의 문제와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매우 풍부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 소설로 거듭나게 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북한의 청진이 고향인, 어느 당 간부 집의 일곱 번째 딸 ‘바리’다. 전통적인 바리데기 이야기에서처럼 이 소녀는 나면서부터 버림을 받지만 구해져서 새 생명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황석영은 이 소녀의 성장기 속에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세계사의 흐름을 응축시켜 보고자 했다. 덕분에 어린 소녀 ‘바리’는 북한의 청진에서 무산으로, 중국의 만주를 거쳐 다롄으로, 여기서 다시 영국의 런던에까지 건너가게 된다.‘바리’ 소녀가 북한 대기근의 와중에 어머니, 아버지와 헤어지고 할머니의 죽음을 겪으면서 홀로 런던에까지 흘러가 파키스탄 청년과 결혼한다는 이야기는 어느 면에서 작위적이지만 그 메시지는 아주 복합적이다. 한반도의 울타리를 넘어서 중국과 유럽으로 확산되는 이야기의 무대는 우리들의 삶이 이미 세계사의 일부임을 상기시킨다. 특히 이 소설을 위해서 작가가 직접 오랫동안 체류하면서 탐사했다고 하는 런던에 대한 묘사는 음미해 볼 만하다. 런던은 주지하듯 제1세계의 중심국가 중 하나인 영국의 수도. 그러나 이 소설에 나타난 런던은 앵글로색슨 족속들만의 도시가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밀려든 온갖 국적의 제3세계 시민들의 ‘집산지’다. 이런 ‘혼혈, 혼합의 도시 형상은 우리들의 세계가 바야흐로 탈국경, 탈민족적인 차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알려주기에 족하다. 어떤 견해들에 따르면 이러한 탈국경, 탈민족화는 세계 자본주의의 새로운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시대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제1세계뿐만 아니라 제3세계 사람들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어야 할 텐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세계적 차원에서의 이주, 대규모의 노동 이동 현상이 범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황석영의 ‘바리데기’는 세계화 시대라 불리는 이 21세기에 소설은 과연 어떤 형식과 내용을 가져야 하고 또 가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 작품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직면한 한국인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인가. 한국으로 밀려드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흐름은 한국이 ‘다행스럽게도’ 제1세계 국가들의 모델을 따라가고 있음을 시사해 주는 듯하다. 그러나 그러한 모델은 우리들이 첨단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 논리에 따라 불가피하게 민족적 ‘단일성’을 대체해 나가는 혼합적, 혼혈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예기하게 한다. 필자는 이것을 중대한 딜레마라고 주장하고 싶다. 경제 논리를 따라가는 한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행복한 본질 안에 안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혼합, 혼혈의 위험 때문에 경제 논리를 포기하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는 임박한 미래, 아니 이미 우리 앞에 하나의 현실로 박두해 있는 ‘미래’를 위한 새로운 삶의 규칙과 가치관을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필자는 민족주의에 대해서 과도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단일성’의 논리라는 것이, 근대의 산물이고 그만큼 허구적, 상상적이라 해서 쉽게 파기해야 하는 것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마다 그 사회가 믿고 싶어 하는 신화가 있고 여기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슬기로울 수 있다면 우리 한국인들은 런던으로까지 떠밀려간 북한 소녀 ‘바리’와 같은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넓게 포용하는 방향을 취해야 할 것이다. 황석영의 ‘바리데기’에 나오는 영국과 런던은 기실 우리들이 직면해 있는 현실과 다를 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 [정종욱 월드포커스] 한·중 수교 15주년과 중국 중독증/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정종욱 월드포커스] 한·중 수교 15주년과 중국 중독증/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도 모레 24일로 15년이 된다. 그동안 양국관계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수교 당시 63억달러였던 교역이 올해는 1500억달러에 육박하고 양국 간의 방문자도 6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중 한국 유학생이 7만명, 기업체는 4만여개에 달한다.7만명이 모여 살고 있는 베이징의 왕징(望京)을 비롯하여 칭다오·톈진·상하이 등에는 한인촌도 있다. 정치분야에는 3부 수장의 상호교류가 정착되었고 중국이 그토록 주저했던 군사분야에서의 협력도 차츰 본격화되고 있다. 물이 차면 도랑이 생긴다(水到渠成)는 수교 당시의 비유를 빌리면 양국 간에는 이제 고랑이 넘쳐 바다가 생긴 셈이다. 앞으로의 변화는 더 빨라질 것이다.2010년 이전에 교역 2000억달러, 방문객 1000만명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중국에의 무역의존도가 3분의1이 넘고 20∼60세의 한국인 두 명 중 한 명이 매년 중국을 다녀오고, 미국 유학생보다 중국 유학생들이 더 많고, 중국어와 영어가 똑같은 비중의 외국어로 취급되는 현상이 수교 20주년 안에 우리 앞에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중국 인구가 15억명에 육박하고 그 많은 인구가 모두 여유 있는 삶을 향유하는 샤오캉(小康) 사회가 실현되는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에는 한국의 중국 의존도가 경제뿐 아니라 정치·외교·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이 될 수 있다. 이때쯤 한국은 중국 중독증 환자가 될 수도 있다. 중독증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독도 적당히 먹으면 약이 될 수 있다. 어떤 약은 독이 되고 어떤 독은 약이 되기도 한다. 지금처럼 국제사회가 밀접한 상호의존의 관계를 맺고 있는 세계화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강대국이나 약소국이나 모두 서로 얽혀 있다. 문제는 어떻게 얽혀 있느냐이다. 상호의존관계가 어떤 것인가에 따라 중독증은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고 반대로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냉전시대처럼 상호의존이 진영 간의 극한 대립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중독증은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병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며칠 전에 있었던 러시아의 행동은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핵폭탄을 싣고 다니도록 된 러시아의 장거리 전략폭격기가 태평양의 미군 전략 요충인 괌 가까이 비행했다는 것은 미국의 군사적 우위에 도전할 수도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오기와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지난주 상하이협력기구가 실시한 ‘평화임무 2007’이라는 합동군사훈련이다.6년 전 중국과 러시아가 중심이 되어 만든 이 상하이협력기구는 4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회원국이지만 지금까지 옵서버로 참여해온 파키스탄·이란·몽골 등도 조만간 정식 회원국이 될 예정이다. 극단적인 경우 이 기구가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인도로 연결되는 남방 군사 협력 네트워크에 대한 대항마적 성격을 띨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미국과 일본의 일부 전략가들은 벌써 그런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우리로서는 냉전시대를 상기시키는 새로운 진영적 대결 구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상호의존적 공동체의 등장이다. 서로 편을 갈라 경쟁하고 대립하는 세력 균형적 질서보다 공존·공영하는 다원적 상호의존의 지역공동체가 우리의 목표이다. 수교 15주년을 맞는 한·중 관계는 이제 성년기에 접어들었다. 앞으로의 한·중 관계는 이런 지역공동체 형성에 기여하고 그 속에서 심화 발전될 때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가 발휘될 수 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부고]

    ●류용애(서울 서초초등학교 교사)씨 부친상 구본순(서울특별시 교육위원)씨 빙부상 구승모(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 검사)태연(올리버와이만)씨 외조부상 1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3010-2263●박좌규(동신종합운송 사장)우규(SK 경영경제연구소장)종규(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혜홍(신반포중 교사)씨 모친상 예지해(요시다인터내쇼날 코리아대표)최주선(인뉴게이트 대표)씨 빙모상 1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3010-2230●윤석구(서울도시철도공사 대리)석필(진화운수 노무과장)씨 모친상 1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5일 오전 7시 (02)3010-2292●최현자(남춘천여중 교사)현숙씨 부친상 최승현(경향신문 춘천주재 기자)씨 빙부상 13일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발인 15일 오전 6시30분 (033)240-5475●김형태(동부하이텍 과장)씨 모친상 1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5일 오전 10시 (02)3010-2291●김원철(비잔티움 자금부장)인철(플로라성형외과 원장)씨 부친상 손인권(하나은행 남대문지점 차장)씨 빙부상 13일 서울대병원, 발인 15일 오전 6시 (02)2072-2018●최동구(자영업)씨 모친상 전창운(서울예대 교수)김성남(자영업)씨 빙모상 13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15일 오전 5시30분 (02)923-4442●최용호(전 한일은행장)씨 별세 경태(우리은행 일원동 지점장)씨 부친상 변지석(홍익대 경영학과 교수)추현광(추병원 원장)씨 빙부상 1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4일 오전 6시30분 (02)3010-2232●신동선(육군예비역 소장·전 육군 통신감·전 한국전력 감사)씨 별세 창섭(충북대 교수)씨 부친상 김석봉(한전원전연료 기획실장)오상돈(나자인 부사장)씨 빙부상 1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4일 오전 7시 (02)3410-6917●서덕원(한국언론재단 광고사업본부)씨 부친상 12일 서울보훈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 (02)489-3394●강형원(한국산업은행 e뱅킹전산실장)명길(삼성에버랜드 운영팀장)씨 부친상 1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 (02)3410-6916●조기호(전 국민연금관리공단 서울시지부장)씨 별세 동진(한국고용정보원)씨 부친상 정용환(중앙일보 정치부 기자)김위정(기획예산처 사무관)씨 빙부상 1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4일 오전 7시 (02)3010-2265●선우홍석(현대자동차 차장)씨 모친상 1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4일 오전 6시 (02)3010-2231●최재원(사업)명선(대안여중 교장)재성(사업)재민(피엔텔 사원)씨 부친상 박추성(사업)박완혁(한국PCB산업협회장·삼성전기 고문)홍경표(사업)이창섭(동양공전 교수)우영철(SK건설 부장)씨 빙부상 1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5일 오전 9시 (02)3410-6914●정덕제(한국고미술협회 감정위원)씨 별세 범석(유한대 교수)씨 부친상 박찬준(베트남 거주)김철민(LG전자 책임연구원)김인태(자영업)씨 빙부상 1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5일 오전 11시 (02)3410-6918●이재철(단국대 명예교수)씨 상배 광호(서울예대 교수)수호(세계사이버대 외대교수)우경(삼육대 겸임교수)씨 모친상 강화수(초당제약 이사)김희송(펀드매니저)씨 빙모상 13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921-3099●전병국(하나대투증권 명동센터지점장)씨 부친상 전경식(전 현대자동차 부장)선모(LG 히다치 부장)씨 형님상 윤신욱(삼성전자 과장)신덕현씨 빙부상 1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4일 오전 9시 (02)3410-6933●김용구(대우차판매 회계팀장)씨 별세 칠용(사업)팔용(〃)씨 아우상 13일 인천길병원, 발인 15일 오전 9시30분 (032)462-9261
  • [길섶에서] 숏다리 클럽/송한수 국제부 차장

    ‘숏다리 클럽’이 떴다.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쳤다. 연령층도 다양하게 선후배끼리 맞닥뜨렸다.“너, 무릎 위까진 잘라야지.”하고 막내를 가리켜 어느 선배가 운을 뗐다.“그러고 보니 다들 반토막(?)이네.”라고 누군가가 거들었다. 금세 웃음이 쫙 퍼졌다. 헬스클럽에 다니는데, 여자가 옆에서 러닝머신을 타고 있으면 눈치가 뵌다며 또 누군가가 끼어든다. 자신도 모르게 속도계를 곁눈질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리하게 따라 잡으려다 운동은커녕 체력만 더 소진하게 된단다. 그러나 실망할 이유는 없다. 모인 사람들 가운데 꽤 장신(長身) 축에 드는 이는 “이번만 끼게 해준다.”는 꼬리표를 달아 가까스로 명예회원이 됐다. 청소년들 체격이 나날이 커지는 마당에 ‘숏다리’는 콤플렉스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떤가. 우리 클럽에 못 들어와 안달인 사람들도 많은데. 다리가 짧아야 출세(?)한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세계사의 흐름을 뒤바꿔 놓은 위인들 가운데는 작은 거인들이 많다. 나폴레옹이나 덩샤오핑도 160㎝가 될까말까 했다지 않은가. 송한수 국제부 차장 onekor@seoul.co.kr
  • “이슬람과 화해 없인 21세기 세계평화 없다”

    “이슬람과 화해하지 않으면 21세기의 세계 평화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종교를 연구하는 사람으로 이슬람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이슬람을 직접 경험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이슬람의 한쪽만 보는 건 미국의 이데올로기지난 1년 동안 이슬람권 15개국을 ‘순례’한 페미니스트 여성 신학자 현경(51) 미국 유니언신학대 교수는 5일 어려운 여행에 나선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그동안 이슬람의 눈으로 세계사를 읽는 법을 배웠고 이슬람 문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에 반했다.”면서 “기독교에도 다양한 교파가 있는 것 처럼 이슬람도 수많은 스펙트럼이 있는데 이슬람의 한쪽만을 바라보는 것은 미국의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했다. 현경 교수는 진보 신학의 명문대에서 아시아 여성 최초로 종신 교수가 된 데 이어 불교를 공부하겠다며 머리를 깎고 히말라야에서 수행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안식년을 이용해 지난해 9월 시작한 ‘이슬람 평화 순례’는 터키, 스페인, 모로코,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이란, 파키스탄 등을 거쳐 이달 초 인도네시아에서 마무리됐다.●이슬람문화 배워 그들과 좋은 이웃돼야 그는 “과거의 기독교 선교가 우월감 속에 이슬람을 도와주고 개종하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은 이슬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배워서 그들과 좋은 이웃이 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라면서 “특히 여성에 관심을 집중해 그곳 여성들이 어떻게 평화를 만들어가는지 알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이슬람 여성에 대한 서구의 편견과 비하적 시선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그는 “서구에서는 오랫동안 여성이 재산권을 가지지 못한 반면 코란에는 여성이 공부할 권리, 이혼할 권리, 재산을 가질 권리, 심지어는 성적으로 만족하지 못했을 때 남편을 바꿀 권리도 씌어 있다.”면서 “좋은 가정에서 교육을 잘 받은 이슬람 여성은 어떤 종교의 여성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가진 것”이라고 말했다.●여행길서 `정원의 법칙´ 교훈 얻어현경 교수가 여행길에서 얻은 또 하나의 깨달음은 ‘정원의 법칙’이라고 했다. 인류 역사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했다지만 ‘정원의 법칙’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세상에 백만 가지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조화와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에 인류가 망하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라면서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이 이 정원의 법칙을 실현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19일에는 이스라엘로 떠난다. 이슬람 국가를 다녀보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보지 않고는 여정을 끝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현경 교수는 앞으로 “교리의 전달자가 아니라 삶에 체화된 종교, 지금 살아 있는 종교를 읽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서 “종교가 여성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종교를 어떻게 활용하면 여성이 꽃피고 커져서 자신뿐 아니라 세상을 크게 사랑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다.”고 소박하지만 쉽지 않아 보이는 희망을 밝혔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중동行 ‘올스톱’

    한국인 피랍 사건의 여파로 교회 단체나 대학생들이 여름방학이나 휴가를 활용해 이슬람 국가 등 위험 지역에서 선교나 봉사활동을 하려던 계획을 잇달아 취소하거나 무기한 연기하고 있다. 비교적 치안이 안정된 다른 이슬람 국가들의 여행 수요도 크게 줄었다. ●중동지역 선교·봉사할동 7개팀 취소·연기 24일 중동지역에서 선교·봉사 활동을 벌이는 중동선교회에 따르면 다음달 7개팀이 아프간과 터키, 요르단, 이집트 등 이슬람권으로 봉사활동을 떠날 계획이었지만 4개팀이 계획을 취소하고,3개팀이 무기한 연기했다. 선교회 관계자는 “이들이 지난 5월 비행기표 예약을 마친 상황이었지만 아프간 피랍 사건이 일어나자 선교회 차원에서 취소·연기를 결정했다.”면서 “일부 팀이 봉사활동 일정을 강행하려고 해 오히려 선교회측이 말리고 있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M교회도 희망자 5∼6명을 모집해 이번 여름방학 동안 중동지역으로 단기 선교를 떠나려고 했지만 일정을 무기 연기했다. 광주의 한 교회 청년회 회원들도 선교회를 통해 이달 말 아프간에서 단기 선교 활동을 할 계획이었으나 취소했다. 지난 10일 아프간으로 봉사활동을 떠났던 한동대 소속 한동평화봉사단 학생 29명도 중간 경유지인 우즈베키스탄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이들은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 아프간 입국을 시도할 계획이었다. 한동대 관계자는 “피랍 사태가 발생하면서 입국 시도를 중단한 상황”이라면서 “우즈베키스탄에서 머무른 뒤 귀국한다고 연락해 왔다.”고 밝혔다. ●대학생 봉사활동, 중동 여행 수요도 줄어 방학을 앞두고 중동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도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회사원 박모(39)씨는 휴가를 내 요르단과 시리아 등 중동지역으로 배낭 여행을 떠나려다 취소했다. 그는 “평소 세계사에 관심이 많아 휴가를 내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상지를 돌아보고 싶었는데 가족들이 말려 포기했다.”고 말했다. 중동지역 전문인 E여행사는 “성지 순례가 겨울에 집중되므로 현재는 피해를 얘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중동 여행에 관한 문의가 늘고 있다. 회사에서도 만일에 대비해 여행을 미룰 것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일영 이경주 박건형기자 argus@seoul.co.kr
  • [책꽂이]

    ●경제인류학으로 본 세계무역의 역사(필립 D 커틴 지음, 김병순 옮김, 모티브 펴냄) 미국 존스홉킨스대 명예교수인 지은이는 ‘상인 유민 집단’이 생겨난 배경을 설명하고, 그들이 몇 세기에 걸쳐 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무역 거래와 교환 행위를 해나간 역사를 비교 세계사의 관점에서 파악한다. 무엇보다 유럽 중심 사관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다.2만 3000원.●고대에도 한류가 있었다(임재해 등 지음, 지식산업사 펴냄) 오늘의 한국 문화를 세계 문화 속에 살아 숨쉬게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면, 한류를 주체적으로 파악하고 지속적으로 이어가려면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 책은 한류가 주춤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역사에서 한류의 뿌리를 찾아보자는 학계의 노력을 한데 엮은 것이다.2만 3000원.●택리지-당쟁의 상처를 딛고 조선 팔도를 누비다(이중환 지음, 허경진 옮김, 서해문집 펴냄) 실학사상에 바탕을 둔 대표적인 인문지리서로 조선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여느 지리서와는 달리 ‘살 만한 곳은 어디인가.’라는 문제의식으로 지리와 인문의 상관관계를 밝히고, 역사와 문학과 철학을 아우르며 우리 땅의 진경을 펼쳐보여 인문지리서의 전범이 되었다.9500원.●탐사선이 밝혀낸 태양계의 모든 것(미즈타니 히토시 감수, 뉴턴 코리아 펴냄) 마젤란, 갈릴레오, 마스 글로벌 서베이어, 스피리트, 오퍼튜니티, 카시니, 호이겐스 등 우주 탐사선이 천체 상공이나 표면에서 직접 촬영한 자료로 만든 영상해설집이다. 태양계 천체의 모든 것을 200여컷의 사진에 담았다. 뉴턴 하이라이트 시리즈.1만 5000원.●시간여행자(로널드 몰렛 지음, 이창미 옮김, 쌤앤파커스 펴냄) 지은이는 코네티컷 대학의 이론 물리학 교수로 2000년 타임머신 이론을 발표했다. 그는 지난해 회전하는 빛 안에서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중성자를 관측할 수 있는 실험장치를 만들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기초로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증명했다.1만 2000원.●내몸을 살리는 천연발효식품(산도르 엘릭스 카츠 지음, 김소정 옮김, 전나무숲 펴냄) 김치와 된장, 요구르트와 독일의 양배추 발료식품 자우어크라우트, 인도의 발효빵 도사와 이들리, 에티오피아의 벌꿀 술 테치까지…. 미국 테네시주의 쇼트 마운틴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지은이가 발효식품의 사회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규명한 식품 문화 보고서이다.1만 4800원.●속담 인류학(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이코노미스트 펴냄) ‘남자는 늘 욕망하나 늘 가능하라는 법은 없고, 여자는 늘 가능하나 늘 바라지는 않는다.’일본의 여성작가인 지은이는 주자의 ‘소년은 쉬 늙고 배움은 이루기 어렵다(少年易老學難成)’는 시에서 불경스럽게도 이런 러시아속담을 연상한다. 제목은 연구서 같지만 일종의 유머집이다.1만 1000원.●크레이지 허니문 604(구완회 지음, 올림 펴냄) 지은이는 어느날 터키 이스탄불의 거리에서 미친 개 세 마리에게 허벅지를 물어뜯겼다. 광견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그는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자문한다. 그후 그는 신혼여행으로 세계일주를 하자고 여자친구에게 제안했고, 대책없는 남녀는 604일 동안 ‘땡기는 대로’ 40개국을 여행한다.1만 2000원.
  • [19일 TV 하이라이트]

    ●해피투게더-학교가자(KBS2 오후 11시5분) 유재석, 박준규, 박명수, 신봉선이 교복을 벗고 응원복을 입었다. 다리 찢기, 탑 쌓기 등 최고의 치어리더가 되기 위한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펼쳐진다. 신입부원 김동완, 박정아, 박신혜와 함께 하는 세 번째 암기송 ‘세계사 100대 사건’. 과연 이번 시간의 우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글로벌 코리안(YTN 오후 8시30분) 지난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이준 열사의 순국과 헤이그 특사 100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구한말 애국지사들의 활동을 재조명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헤이그 시내 곳곳에서는 한국조형미술작품과 한국식품문화 전시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똑똑 교육충전소(EBS 오후 8시) 영재 교육을 받던 승연, 사립 초등학교 우등생이었던 숙희는 초등학교 시절 기대를 모으던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한 뒤 성적이 떨어졌다. 갑자기 성적이 떨어진 아이들과 원인도 모른 채 걱정이 태산인 엄마들. 아이들은 변화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 엄마는 아이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오후 8시50분) 경기도 파주의 한 금속공장. 용접하다 말고 마스크를 벗은 사나이는 까만 마스카라에 붉은 립스틱을 칠한 얼굴이었다. 요상한 화장을 6년째 하고 있다는 이강호씨의 사연을 들어본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개가 있다. 인형의 이름만 말하면 알아서 척척, 구짱이의 테스트 결과가 공개된다.   ●아현동 마님(MBC 오후 7시45분) 자신이 1966년생 말띠라는 시향의 말을 들은 길라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싹 걷히고, 시향은 그런 길라의 반응이 씁쓸하기만 하다. 딱딱한 업무 얘기만을 주고받는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감돈다. 성종은 조카 연지가 인천지검으로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간다고 하자 같이 가주겠다고 한다.   ●하늘만큼 땅만큼(KBS1 오후 8시25분) 은주는 상현을 대신해 시댁 어른들도 뵙고, 티격태격했던 유대리에게 인심을 쓰는 차원에서 명자네 식당에 들른다. 무영은 검사를 받으려고 병원에 입원하고, 지수는 무영을 보려고 병원에 들르지만 면회가 여의치 않다. 실망한 채 벤치에 앉아 있던 지수는 옆에서 울고 있는 진숙과 우연히 대면한다.
  • 황석영 새소설 ‘바리데기’ 출간

    황석영 새소설 ‘바리데기’ 출간

    뿌리 뽑힌 자의 허망함은 뿌리 뽑힌 자가 가장 잘 안다. 굶주린 자의 허기는 굶주려 쓰러져 본 자가 가장 잘 알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자의 슬픔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가슴 속까지 쩍쩍 갈라터진 자가 가장 잘 안다.‘바리’는 그런 여자다. 뿌리 뽑혀 북한 청진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영국으로 부초처럼 떠밀려 다녔다. 한 끼 밥 걱정 없이 하루를 살지 못했고, 부모는 생사조차 모르며, 동생 현이는 얼어 죽었고, 할머니도 딸 홀리야 순이도 떠나보내기만 했다. 소설가 황석영(64)은 새 소설 ‘바리데기’(창비 펴냄)의 주인공 바리를 그렇게 창조했다. 누구보다 아팠고 누구보다 억울했기에 누구든 공감하고 어떤 이의 억울함도 풀어줄 수 있는 사람. 황석영은 ‘만신 바리’를 만들기 위해 어린 바리에게 세상의 모든 고통을 안겼다. ●문장은 인테리어 불과… 구성이 중요 작가가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소설 구성이다.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황석영은 “요즘 문장 문장 하지만 문장은 인테리어일 뿐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 곧 자기형식”이라고 강조했다. 작가의 펜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든다. 환상이되 현실이고, 설화이자 실화며, 은유이되 직설이다. 소설은 바리데기 설화를 원용했다. 설화 속 바리데기는 무당의 원형이다. 오귀대왕의 일곱째 공주로 태어나 버려진 바리데기는 서천 생명수를 구해와 병들어 죽은 부모를 살린다. 소설 속 바리도 일곱째 딸이고, 버려졌다. 바리가 넋을 띄워 만나는 모든 헛것들은 황망하고 쓸쓸한 것들뿐이고, 우는 사람들뿐이다. 황석영의 손끝을 거친 후 바리는 ‘가장 고난 받는 자’와 ‘가장 고난 받는 자의 치유자’로 재해석됐다. ●90년 이후 세계사 소용돌이에 휩쓸려 ‘이동과 조화’. 작가가 집약해 표현한 작품주제다. 바리의 인생역정엔 영국과 프랑스에서 생활하며 세계화의 격랑을 관찰한 작가의 고민이 배어 있다. 바리는 90년 이후 세계사의 모든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이동을 강제하는 소용돌이의 핵으로 작가는 신자유주의를 지목한다. 바리는 중국으로, 식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심장 런던으로 떠밀려가고,‘뱀단’(밀항자) 브로커에 걸려 인신매매 당한다. 이주노동자 단속에 하루하루 떨고,9·11 사태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발발 후엔 파키스탄인 남편 알리까지 쿠바 관타나모 감옥에 갇힌다. 이동이되 ‘유목’이 아닌 ‘유랑’이다.‘주체적 노마드’가 아닌 ‘주체가 원치 않는 유랑’이다.‘공존의 조화’가 아닌 ‘온갖 상처로 얼룩진 섞여듦’이다. ●올해 10월 파리서 귀국 “누구에게나 평범한 보통 여자아이로 보여지길 진심으로 원했던” 바리, 남을 위로하기 전에 “슬퍼 살 수가 없어.”라며 자신부터 위로받기 원했던 10대 소녀 바리. 바리에게 ‘잔인한 고통’을 안기면서 황석영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불바다→피바다→무쇠성→서천으로 이어진 여정 끝에 바리 입에서 ‘공수’가 터지는 과정에 꾹꾹 집약돼 있다.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맞아 죽고 애달아 죽은 세상의 넋들과 팔 떨어지고 목 떨어지고 붕대 매고 의족 짚은 사람들이 묻는다.“우리가 받는 고통은 무엇 때문인가.” “어째서 악한 것이 세상에서 승리하는가”…. 바리가 답한다.“사람들 욕망 때문이래.” “전쟁에서 승리한 자는 아무도 없대, 이승의 정의란 늘 반쪽이래….” “남북 분단과 정치적 문제에서 이제야 한 걸음 벗어난 것 같다.”는 작가는 오는 10월 4년간의 외국생활을 끝내고 파리에서 귀국한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역사학계 ‘진보 보수 갈등’ 등에 제몫 해 왔나

    한국 역사학은 시대적 요구를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가. 계간 ‘역사비평’ 필진들이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나섰다. 역사학계에 던지는 도전이자, 그들 스스로에 대한 성찰적 반성이다. 1987년 9월 창간준비호를 낸 후 올 가을호로 통권 80호를 맞는 역사비평이 13일 고려대학교 인촌기념관에서 창간 20주년을 기념해 학술대회를 연다. 현대사를 연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히던 시절,‘역사인식의 심화와 대중화를 통해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창간된 역사비평은 이후 ‘역비’란 약칭으로 불리며 한국 역사학계의 굵직한 논쟁들을 주도해왔다. ‘민주화 이후 근현대사 연구 20년:어떻게 새롭게 할 것인가’란 주제의 이번 학술대회에서도 역비는 새로운 논쟁거리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역사학계의 현재를 총체적으로 묻는 반성적 논쟁이다.특히 97년 IMF사태와 신자유주의 확산, 사회 양극화 심화, 진보·보수갈등 등 현실의 실천적 요구에 역사학계가 제대로 대응해 왔는지를 파고든다. 김성보(연세대 사학과 교수) ‘역사비평’ 주간은 ‘탈중심의 세계사 인식과 한국근현대사 성찰’이란 발제문에서 “(한국 역사학계가)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당면한 근본적이며 실천적인 고민들을 제대로 반영하면서 역사의식의 수준을 한 단계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는지 회의적이다.”라며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 주간은 “특히 지난 20년간의 논의는 학계 자체의 고뇌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외적 환경의 영향 속에서 정치적 대립구도가 학문적으로 여과되지 않은 채 거의 그대로 투영됐다.”면서 “결국 핵심에는 민주화세력과 독재·산업화세력이 서로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역사학을 동원한 측면이 강하다.”고 비판했다. 역사학계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회 진보와 통합을 이루는 데 주도권을 쥐지 못한 채 현실 갈등을 그대로 대변하거나 증폭시키기까지 한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역비 20년’의 고민이 역사학계를 넘어 한국사회 전반을 성찰로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된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한곳서 3~4개 추진 국가도 주민도 ‘피멍’

    한곳서 3~4개 추진 국가도 주민도 ‘피멍’

    최근 몇년간 일부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묻지마식’의 국제행사 유치 경쟁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광역 지자체들은 사업 효율성 검증도 제대로 하지 않고 앞다퉈 국제행사를 유치하거나 계획하고 있어 세금 낭비 등 각종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국제행사 유치는 선거용? 6일 시민단체에 따르면 지자체들은 각종 국제행사 유치를 단체장의 차기 선거용 실적 쌓기는 물론 도시기반시설 확충 등 지역 발전을 꾀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젯밥에만 눈이 어두워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추진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전북도는 2013년 여름유니버시아드 유치에 나섰다가 중도 포기한 뒤 2014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2015년 겨울아시안게임,2017년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2019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등을 유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여수엑스포’ 유치를 자신하고 있는 전남도는 2013년 여름유니버시아드에도 도전하기로 하고 본격적인 유치활동에 나섰다. ●“안 하면 팔불출” 제주도는 그동안 눈독을 들여온 2013년 동아시아경기대회 유치가 무산되자 2017년 대회에 다시 도전한다는 방침이다. 대구시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에 이어 2012년에는 국제곤충학회,2013년엔 세계에너지총회, 세계식물병리학회 등 크고 작은 국제행사를 유치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지자체마다 ‘문어발식’으로 국제행사 유치를 시도하고 있어 이 대열에 끼지 못하면 ‘팔불출’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같은 현상은 국제적인 행사나 시설을 유치하면 정부의 재정지원뿐만 아니라 생산·고용효과 유발, 도시 브랜드 가치 상승 등 각종 파급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자체 간 출혈경쟁은 물론 정치적 요인이 개입되는 등 부정적 측면이 적지 않게 드러나고 있다. 세계태권도공원은 강화, 춘천, 경주, 무주 등 10여개 지자체가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무주로 결정됐으나 이 과정에서 상호간 네거티브 공세와 정치권 개입설 등으로 사후에 심각한 후유증이 빚어졌다.전국종합 인천 김학준기자 자의든 타의든 중도에 포기했을 경우 행정력과 예산 낭비, 준비위원회에 투입된 인력문제 등 적지 않은 문제가 드러난다. 국제행사 유치는 지자체와 정부간에 입장 조율이 있어야 함에도 지자체가 일단 일을 저지른(?) 뒤 정부의 지원을 요청하는 사례도 다반사다. 인천이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쁜 영향을 우려하는 정부의 승인 없이 아시안게임 유치에 뛰어든 뒤 뒤늦게 정부의 협조를 요청한 것이 한 예다. 따라서 정부가 사전에 국제행사의 중요도와 파급 효과, 우선순위 등을 따져 적극적으로 교통정리를 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따른다. 막상 국제행사 유치에 성공해도 재원 마련 등에 고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정부가 일정 비율을 지원해준다 하더라도 결국 뼈대가 되는 재원 마련은 지자체의 몫이기 때문이다.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인천은 용역 결과 40개의 경기장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나자 난감해하고 있다. 인천에서 당장 국제경기를 치를 수 있는 시설은 5개에 불과하다. 따라서 최소한 4조원을 들여 경기장을 지어야 하나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 사후 활용 문제도 간단치 않다. 월드컵 때 지은 문학종합경기장조차도 활용도가 낮아 매년 20억여원의 적자를 보는 실정이다.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박길상 사무처장은 “무리를 해서라도 유치만 하면 정부가 어쩔 수 없이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재정지원 등을 해줄 수밖에 없다는 심리가 팽배해 있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kimhj@seoul.co.kr
  • 지자체들 국제행사 ‘마구잡이’ 유치경쟁

    지자체들 국제행사 ‘마구잡이’ 유치경쟁

    최근 몇년간 일부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묻지마식’의 국제행사 유치 경쟁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광역 지자체들은 사업 수행 능력을 검증도 제대로 하지 않고 앞다퉈 국제행사를 유치하거나 계획하고 있어 국민의 혈세 낭비 우려 등 갖가지 부작용과 후유증을 낳고 있다. ●국제행사 유치는 선거용 실적? 6일 각 지자체에 따르면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인천아시안게임 유치 이후 각종 국제행사 유치를 단체장의 차기 선거용 실적 쌓기는 물론 도시기반시설 확충 등 지역 발전을 꾀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젯밥에만 눈이 어두워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추진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전북도는 2013년 하계유니버시아드 유치에 나섰다가 중도 포기한 뒤 2014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2015년 동계아시안게임,2017년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2019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등을 유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여수엑스포’ 유치를 자신하고 있는 전남도는 2013년 하계유니버시아드에도 도전하기로 하고 본격적인 유치활동에 나섰다. 경남도는 내년 10월 창원에서 람사총회가 열리는 것을 계기로 ‘환경수도’라는 이미지를 굳히기 위해 환경 관련 각종 국제회의를 지속적으로 유치하기로 했다. ●안하면 팔불출 말까지 제주도는 그동안 눈독을 들여온 2013년 동아시아경기대회 유치가 무산되자 2017년 대회에 다시 도전한다는 방침이다. 대구시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에 이어 2013년 세계에너지총회,2012년 국제곤충학회,2013 세계식물병리학회 등 크고 작은 국제행사를 유치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지자체마다 ‘문어발식’으로 국제행사 유치를 시도하고 있어 이 대열에 끼지 못하면 ‘팔불출’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같은 현상은 국제적인 행사나 시설을 유치하면 정부의 재정지원 아래 도시기반시설을 확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생산·고용효과 유발, 도시 브랜드 가치 상승 등 각종 파급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실패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 하지만 지자체 간 출혈경쟁은 물론 정치적 요인이 개입되는 등 부정적 측면이 적지 않게 드러나고 있다. 세계태권도공원은 강화, 춘천, 경주, 무주 등 10여개 지자체가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무주로 결정됐으나 이 과정에서 상호간 네거티브 공세와 정치권 개입설 등으로 사후에 심각한 후유증이 빚어졌다. 자의든 타의든 중도에 포기했을 경우 행정력과 예산 낭비, 준비위원회에 투입된 인력문제 등 적지 않은 문제가 드러난다. 국제행사 유치는 지자체와 정부간에 입장 조율이 있어야 함에도 지자체가 일단 일을 저지른(?) 뒤 정부의 지원을 요청하는 사례도 다반사다. 인천이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쁜 영향을 우려하는 정부의 승인 없이 아시안게임 유치에 뛰어든 뒤 뒤늦게 정부의 협조를 요청한 것이 한 예다. 따라서 정부가 사전에 국제행사의 중요도와 파급 효과, 우선순위 등을 따져 적극적으로 교통정리를 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따른다. 막상 국제행사 유치에 성공해도 재원 마련 등에 고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정부가 일정 비율을 지원해준다 하더라도 결국 뼈대가 되는 재원 마련은 지자체의 몫이기 때문이다.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인천은 용역 결과 40개의 경기장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나자 난감해하고 있다. 인천에서 당장 국제경기를 치를 수 있는 시설은 5개에 불과하다. 따라서 최소한 4조원을 들여 경기장을 지어야 하나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 사후 활용 문제도 간단치 않다. 월드컵 때 지은 문학종합경기장조차도 활용도가 낮아 매년 20억여원의 적자를 보는 실정이다.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박길상 사무처장은 “무리를 해서라도 유치만 하면 정부가 어쩔 수 없이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재정지원 등을 해줄 수밖에 없다는 심리가 팽배해 있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전국종합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차베스식 ‘환란 치유법’ 한국 신자유주의에 대안?

    ‘차베스=대안’이란 등식이 최근 한국 진보진영의 뚜렷한 움직임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베네수엘라와 대통령 차베스. 오는 6일부터 3일간 서울 덕성여대에서 열리는 ‘한국사회포럼2007’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공통어다. 포럼에선 ‘베네수엘라:차베스 정부의 식량주권 입법화 과정’ ‘베네수엘라의 개혁과 혁명’ 등을 주제로 한 토론이 진행된다.‘범미주자유무역지대(FTAA)’에 대한 견제를 목표로 베네수엘라가 주도하고 있는 ‘미주대륙볼리바르대안(ALBA)’에 대한 탐구작업도 벌인다. ‘민중의 호민관 차베스’(당대)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시대의창) 등 차베스를 주인공으로 한 책들도 여럿 출간돼 있다.‘차베스 미국과 맞장뜨다’(시대의창)는 최근 5쇄를 찍었다. 인터넷에선 ‘한국 사회의 개혁, 그리고 차베스’란 만화도 인기를 모으고 있고,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국제뉴스도 넘쳐난다.‘차베스 미국과’의 저자 임승수씨는 “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그늘에서 대안을 꿈꾸는 사람들이 베네수엘라를 사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한다. 이런 ‘차베스 열풍’엔 몇 가지 요인이 겹쳐 있다.▲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진보진영의 고민 ▲한·미 FTA 타결로 커진 미국식 경제모델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 ▲지지층 이탈로 이어지는 노무현 대통령식 참여민주주의의 실체 등…. 차베스에 대한 한국 진보진영의 지적탐구는 이런 갑갑함을 뚫기 위한 자구책 성격이 짙다. 최근 차베스와 베네수엘라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목하는 쪽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원장 손석춘, 이하 새사연)이다. 인터넷 정책토론공간인 ‘이스트플랫폼’엔 아예 ‘차베스 모델’이란 코너까지 만들어 지속적 토론을 유도하고 있다. 김병권 새사연 연구센터장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절박한 문제는 신자유주의에 대안을 제시하는 국민적 동의나 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라면서 “이 문제의식에 가장 훌륭한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는 나라가 베네수엘라”라고 밝혔다. 한국보다 10여년 먼저 ‘IMF 처방전’을 받은 베네수엘라는 사회양극화 심화 등 세계화의 필연적 부작용을 한국과는 정반대 방법으로 치유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49%에 이르는 빈곤층이 차베스 집권 이후 34%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이 차베스를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우선적 근거다. 한국사회포럼 조직위원회 민경우 사무국장은 “베네수엘라와 차베스 대통령이 한국 현실의 대안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베네수엘라에서 한·미 FTA와 위기에 처한 농업의 대안을 찾는 것은 유의미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민 사무국장의 지적처럼 차베스와 베네수엘라가 한국의 대안이 될지는 미지수다. 한국과 베네수엘라의 정치경제적 상황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베네수엘라 모델 자체가 완성형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현재진행형인 까닭이다. 차베스에 대한 평가도 양갈래로 나뉜다.‘희대의 혁명가’란 평가에 ‘포퓰리스트’와 ‘독재자’란 꼬리표가 동시에 따라다닌다. 현재 차베스는 주민자치위원회와 통합사회당이란 대중정당 건설을 통해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국민에게 부여하는 정치실험을 진행중이다. 실험이 실패할 경우 차베스 한 사람의 리더십에 의존하고 있는 베네수엘라가 독재국가로 전락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차베스는 과연 한국 자본주의의 병폐를 치유할 대안적 상상력을 제공할 수 있을까. 한국 진보진영은 차베스에게 끊임없이 묻고 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한국사회포럼은 어떤 곳 올해로 6회째를 맞는 한국사회포럼이 변신을 꾀한다. 단체 활동가 중심의 ‘전문가 포럼’에서 수천명이 모이는 ‘대중포럼’ 형태로 전환한다. 이 같은 변화는 2007년 한국사회가 당면한 현안들에 대한 진보진영의 대응 전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오는 6일부터 9일까지 열리는 ‘한국사회포럼2007’은 세계화진영의 전초기지인 다보스포럼의 대항마로 전 세계 반신자유주의 운동가들이 개최하는 세계사회포럼의 한국판이다. 노동, 평화, 여성, 민주화, 이주노동 등의 이슈를 중심으로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진보적 시민사회단체 및 학계 최대의 토론마당이다. 올해 포럼의 중심 주제는 현 시기 한국사회가 직면한 굵직굵직한 현안 중심으로 짜였다. 포럼 조직위원회가 특히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한·미 FTA 저항 국제민중포럼’과 ‘식량주권 대토론회’. 민경우 조직위 사무국장은 “지금까지 한·미 FTA에 관한 대응은 저지싸움이 중심이었다면 이젠 FTA의 대안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크다.”면서 “농업 부문에서도 농민들이 ‘전업농업’이 아닌 ‘국민농업’이란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려 한다.”고 말했다. 대중포럼으로의 전환도 이런 고민의 소산이다. 민 사무국장은 “사안이 중할수록 소수 활동가가 아닌 대중의 문제의식으로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몇몇 사람이 아닌 다수의 광범위한 문제의식이 결집돼야 대사회적 대응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이밖에 ‘87년 항쟁 20년, 민주화의 역설:민주주의의 위기와 사회운동’,‘외환위기 10년, 그 야만의 시대’ 등의 비판적 토론도 예정돼 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중국눈으로 본 독일 번영의 역사

    프로이센의 철혈(鐵血)재상 비스마르크는 세 차례 대외전쟁을 거치며 1871년 독일 통일을 이루었다. 이후 독일은 신속하게 2차 산업혁명을 이끌면서 30년 남짓 만에 영국을 추월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중국 국영방송(CCTV)은 세계사에는 이렇듯 간단하게 서술되어 있는 독일 번영의 역사를 국민들에게 구체적으로 알리겠다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생동감 넘치는 화면과 충실한 역사적 고증이 뒷받침된 것은 물론이다. CCTV는 15세기 이후 세계를 호령한 독일 등 9개 대국(大國)의 발흥과 패망의 역사를 담은 ‘대국굴기(大國起)’를 지난해 방송했다. 미국과 더불어 21세기 양대 경제대국으로 떠오를 것이 확실시되고 있는 중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강대국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미래를 준비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CCTV는 국내외 학자와 전문가 100여명의 자문을 받아 3년 동안 9개국의 역사현장과 대학·박물관 등을 찾았다. 그 결과 중국 시청자들로부터 ‘2006년 중국사회를 뒤흔든 최고의 프로그램’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CCTV는 12회로 이루어진 ‘대국굴기’가 모두 끝난 뒤 시청자의 요구가 거세지자 다시 방송했다.6개짜리 DVD는 시중에 깔리자마자 동났고, 내용을 8권으로 정리한 책 역시 1만질이 순식간에 팔려나갔다고 한다. EBS는 특별기획 ‘대국굴기’를 10일까지 월∼금요일 오후 9시50분에 방송한다.2일은 ‘독일, 유럽제국을 이루다’편이다. 19∼20세기 서양 역사에 대한 인문학적 교양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이자, 왜 중국사람들이 ‘대국굴기’에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문화유산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고래실 펴냄

    보존과학자인 이태녕 서울대 명예교수가 충남 공주 송산리 6호 벽돌무덤을 처음 찾은 것은 1956년이었다. 그는 습기가 많은 여름철이었는데도 바닥을 포함한 벽과 천장의 벽돌 표면 전체가 완전한 건조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의문스러웠다고 한다. 특히 바닥의 중앙부로 곧게 뻗쳐 있는 골이 인상깊었다. 배수로처럼 보였는데 손을 넣어 보니 차가웠고 골을 만들고 있는 통로 표면은 젖어 있었다. 배수로는 묘 주위의 둘레석까지 5m 이상이나 길게 구축되어 있었다. 자세히 살펴 보니 배수로에는 어떤 실용적 기능이 있는 것 같았다. 항상 묘실의 벽돌 온도는 배수로의 벽돌온도보다 높게 유지되고 있었다. 밤이나 새벽에 기온이 내려가면 묘실 공간에 퍼져 있던 수분은 배수로 벽돌에 우선적으로 결로(結露)될 것으로 생각됐다. 이 배수로 아닌 배수로는 제습기 구실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생각해도 기가 막히게 훌륭한 결로 방지 장치였다고 노학자는 술회했다. ‘문화유산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고래실 펴냄)’에 담겨있는 내용이다.‘문화유산… ’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950년대부터 문화유산을 과학적 시각으로 연구한 과학자들의 성과를 정리하고자 ‘고미술의 과학’이라는 주제로 2005년 실시한 특별강좌의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전상운(문화재 위원) 전 성신여대 총장은 “15세기 조선 세종시대 과학자들이 이룩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질과 양에서 동아시아를 뛰어넘어 세계사의 시야에서 볼 때도 유례가 없는 발자취를 남겼다.”고 우리 역사에 대한 이유없는 열등감을 질타한다. 일본에서 1983년 나온 ‘과학사 기술사 사전’은 1400년에서 1450년까지 주요 업적으로 한국이 29건, 중국이 5건에 일본은 없으며, 동아시아 이외 나머지 전 지역이 28건으로 정리되어 전 세계 학계가 인정하는 객관적 사실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이밖에 ▲박성래(문화재 위원)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최항순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박상진 전 경북대 임산공학과 교수 ▲조병묵 강원대 제지공학과 교수 ▲정시영 서강대 기계공학부 교수 ▲강성군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이성구 인하대 인문학부 교수가 전공분야별로 우리 과학사의 성과를 정리했다.1만 5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언어·수리·외국어·탐구 4개영역 모두 1등급 835명

    지난 7일 실시한 2008학년도 대입 수능 모의평가 결과 언어와 수리, 외국어에 사회탐구 또는 과학탐구 영역 4과목에서 모두 1등급을 받은 학생이 835명으로 집계됐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8일 수능 등급제가 첫 적용되는 올해 수능을 앞두고 실시한 6월 모의수능 영역·과목별 등급과 등급조합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자연계열 모집단위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주로 응시하는 언어+수리‘가’+외국어+과학탐구 4과목 조합에서 영역별로 모두 1등급을 받은 학생은 369명으로 해당 영역 응시자 가운데 0.22%를 차지했다. 인문계열 모집단위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주로 응시하는 언어+수리‘나’+외국어+사회탐구 4과목 조합에서 모두 1등급을 받은 학생은 466명이었다. 해당 영역 응시자의 0.18%에 해당한다. 사회탐구나 과학탐구, 제2외국어·한문 영역을 고려하지 않고 언어·수리·외국어, 세 영역에서 모두 1등급을 받은 학생은 6348명으로 해당 영역 응시자의 1.14%로 집계됐다.1등급과 2등급을 구분하는 경계는 언어 4.27%, 수리‘가’형 4.69%, 수리‘나’형 4.52%, 외국어 5.41%로 나타났다. 사회탐구에서는 윤리 4.13%, 국사 4.95%, 한국지리 4.28%, 세계지리 4.40%, 경제지리 4.22%, 한국근현대사 4.12%, 세계사 4.40%, 법과사회 4.66%, 정치 4.72%, 경제 4.79%, 사회·문화 4.77% 등이었다. 과학탐구에서는 물리Ⅰ 4.57%, 화학Ⅰ 4.62%, 생물Ⅰ 5.03%, 지구과학Ⅰ 5.05%, 물리Ⅱ 4.36%, 화학Ⅱ 4.51%, 생물Ⅱ 4.55%, 지구과학Ⅱ 4.24% 등이었다. 이번 평가에 응시한 수험생은 모두 57만 5618명이었다. 사회탐구 영역에서는 한국지리가 21만 7764명, 사회문화가 21만 6465명으로 가장 많았고, 세계사는 3만 5475명으로 가정 적었다. 과학탐구 영역에서는 화학Ⅰ이 16만 6028명으로 가장 많고, 지구과학Ⅱ가 1만 5128명으로 가장 적었다. 평가원은 29일 전국 16개 시·도교육청과 학교, 학원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개인별 성적통지표를 나눠주고 홈페이지(www.kice.re.kr)를 통해 영역·과목 등급 조합자료를 공개하기로 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세계사 캐스터 / 로라리 지음

    요즘 뜨는 마케팅 개념 가운데 ‘날씨 마케팅’이 있다. 기후변화를 예측해 제품 생산과 홍보에 반영하는 것이다. 한 예로 올 여름 역사상 유례없는 폭염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예보가 있다고 하자. 이 예보를 경쟁업체보다 하루라도 먼저 알게 된 에어컨 업체는 호들갑을 떨며 예보를 마케팅에 활용하고, 생산량도 예년보다 크게 늘릴 것이다. 소비는 당연히 따라오게 마련이다. 날씨는 경제에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다. 날씨가 역사를 바꿨다면 “가당키나 한 얘기냐.”며 힐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날씨가 역사를 바꾼 사례가 숱하다. 투표 당일 하늘을 쳐다 보며 마음 졸인 정치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투표율의 높고 낮음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 보는 심정을 이해못할 바도 아니다. ‘세계사 캐스터’(로라리 지음, 박지숙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역사를 바꾼 날씨에 관한 이야기이다. 1948년 미국 공화당 후보인 토머스 듀이와 민주당 후보인 해리 트루먼은 치열한 접전을 펼치며 제33대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있었다. 여론조사 결과, 투표 전날까지 듀이의 당선은 기정사실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트루먼의 승리였다. 선거 당일 공화당 우세지역인 일리노이주와 캘리포니아 북부지역에 폭풍우가 몰아쳐 투표율이 저조했던 것이 승패의 갈림길로 분석됐다. 책에는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를 우습게 여기다 세계정복의 야망을 접어야 했던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실패담부터 에두아르트 뭉크의 역작 ‘절규’가 화산폭발에 기겁한 남자를 그렸다는 이야기 등 날씨에 관한 놀랍고도 흥미있는 에피소드가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바람은 국가나 문화를 형성하는데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흐린 하늘은 사람들의 생각과 견해에 영향을 미친다. 비는 사람들의 기분을 조절하고 정치와 질병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는 역사까지도 바꾸어 놓는 힘을 갖고 있다.” 저자는 날씨의 힘을 역설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날씨를 지배하려는 인간의 욕망도 더욱 커지고 있다고 주장한다.1967년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은 북베트남 사람들의 보급로인 ‘호찌민 루트’를 파괴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효과가 없자 우기를 연장시키는 ‘기상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요오드화은을 구름 속에 뿌려 강우량을 30% 증가시킨 것. 저자는 단순히 날씨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책에 소개된 44편의 날씨와 관련된 세계사의 명장면들은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사건에서 사소한 요인 하나가 얼마나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하는지 잘 설명해 주고 있다.1만 2000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시론] ‘6·10항쟁’ 성찰과 실천/김명인 인하대 교수·황해문화 주간

    [시론] ‘6·10항쟁’ 성찰과 실천/김명인 인하대 교수·황해문화 주간

    6월 민주항쟁이 벌써 스무돌이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4·13 호헌발언을 거쳐 6·10 대투쟁,6·29선언,7∼8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가 12월16일 대통령선거에서 예기치 못한 결말로 일단락된 6월 민주항쟁. 그후 20년동안 한국사회는 ‘1987년 체제’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이 6월 민주항쟁이 이룬 것과 남긴 것들을 축으로 하여 움직여 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민주화라고 부르든 분단체제의 변동이라고 부르든 한국사회가 이를 계기로 결정적인 질적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질적 변화를 ‘시민민주혁명의 성취’라고 불러도 좋다. 식민지와 분단이라는 악조건에서도 남한의 시민계급은 비약적 경제성장으로 독자적인 물적 토대를 구축해 왔고 마침내 6월 민주항쟁과 그후 ‘민주정권’들의 실천을 통해 상부구조로서의 민주적 정치제도를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분단체제의 탈냉전화와 연성화에도 영향을 미쳐 이제는 통일, 혹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이라는 오랜 과제 역시 가시권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표면적 성취에 눈이 어두워 그 이면에서 진행되는 역사의 흐름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군사독재의 오랜 사슬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사실에 도취하고 만족해 질적 변화의 본질을 올바로 꿰뚫어보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성취했다고 믿었던 시민민주혁명은 우리의 오랜 투쟁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세계사적 변화의 한반도적 부산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1970년대를 휩쓴 오일쇼크에 의해 순조로운 확장을 저지당한 세계자본주의가 마련한 돌파구는 보호무역주의로 대표되는 국가중심적 경제체제를 붕괴시키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무한대로 보장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지구적 관철이었다. 이에 따라 전세계의 ‘민족주의적’ 보호경제는 연쇄적으로 붕괴되었으며 보호경제를 지탱했던 정치적 권위주의 역시 전세계적으로 설 자리를 잃었다. 그것이 중남미의 민주화 도미노이고, 현실사회주의권의 붕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군사독재체제의 붕괴와 민주화 역시 그러한 세계사적 외압의 작용을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높은 파고 앞에서 심각한 동요를 겪고 있다. 문민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이어지는 역대 민주정부는 한편으로는 시민민주혁명을 추진해온 ‘민주화권력’이었지만 동시에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인 ‘신자유주의 권력’이기도 했다.20년 전 우리가 그토록 갈망했던 민주주의가 단지 대통령 직선제나 하는 형식적 민주제도를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과 연대와 사랑을 실천하는 본질적이고 전면적인 민주주의였다면 지금 신자유주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승자독식의 개인주의와 경쟁주의, 야만적 시장주의의 무한한 확장과 사회적 양극화는 우리가 갈망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배반이자 모욕이 아닐 수 없다. 6월 민주항쟁 20년, 올해는 기념식에 대통령까지 참석하는 명실상부한 국가기념일 대우를 받게 된다고 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모든 혁명기념일은 곧 혁명의 무덤이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흥청망청한 기념행사가 아니라 어긋난 혁명의 행로를 다시 돌이키는 전면적 성찰과 실천에 다시 불을 지피는 일이다. 김명인 인하대 교수·황해문화 주간
  •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그 이후] (6) 빛바랜 평등, 팍팍한 일상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그 이후] (6) 빛바랜 평등, 팍팍한 일상

    서울 천호동에서 조그만 고깃집을 경영하는 박진형(42·가명)씨. 아랫배 두둑하고 인상 좋은, 영락없는 ‘아저씨’다. 그러나 대학 3학년이던 87년 6월 항쟁 당시에는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그의 몸에서 떠나지 않았다. 대학로와 명동 거리가 그의 강의실이었다. 더구나 민족해방(NL)계보다 급진적이었던 제헌의회(CA) 출신이었다. 구소련이 무너지던 91년.TV를 통해 철거되는 레닌 동상의 모습을 보면서 그 역시 가슴속 이념의 지향을 지웠다. 졸업 뒤 그가 안착한 곳은 시중 은행. 그러나 또 한번의 ‘격동’을 맞았다.97년 외환위기 이후 그의 직장은 공중 분해됐다. 재취업의 길도 없었다. 다시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 그렇다고 마냥 넋 놓고 있을 수 없는 일.27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마련한 1억원을 밑천 삼아 음식점을 차렸다. 특유의 성실함에 운도 뒤따랐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시간표는 ‘오전 10시 출근, 자정 퇴근’이다. 실직의 공포는 뼛속 깊숙이 새겨졌다. 한 발자국만 벗어나면 어김없이 추락할 것 같은 위기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6월 항쟁 이전보다 빈부격차도, 경쟁도 훨씬 심해진 것 같아요. 혁명 같은 단어는 지운 지 오래죠. 그러나 이런 세상에서 살겠다고 민주주의를 외쳤나 싶습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대가가 주어지는 사회가 정상적인 거 아닌가요?” ●저소득 통한 고성장 6월 항쟁 ‘불씨’ ‘압축성장’이라는 단어는 한국 경제의 특성을 잘 말해 준다. 지난 1953년 국내총생산(GDP)은 13억달러,1인당 국민소득(GNI)은 67달러에 불과했다. 필리핀은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세 배나 많은 ‘부자나라’였다.. 그러나 지난해 국내총생산은 8883억달러,1인당 국민소득은 1만 8372달러에 이르렀다.44년 만에 각각 683.3배,274.2배가 뛰어올랐다. 하지만 이는 악명 높은 노동시간과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성과였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오일쇼크의 직격탄을 맞은 1980년, 실질 경제성장률은 1.5% 빠졌지만 실질임금은 무려 25.3%나 떨어졌다. 이후에도 10%를 오르내리는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임금 상승률은 그에 턱없이 못 미쳤다. 주가는 1년에 70∼100% 뛰었다. 기업이 호황의 과실을 고스란히 독차지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80년대 초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소득 1분위(하위 10%)와 10분위(상위 10%)의 소득배율은 80년 7.97배에서 85년 8.46배로 늘었다.6월 항쟁을 단순한 민주화운동으로 국한시키기 어려운 이유다. ●진전된 국민 삶 외환위기로 파탄 6월 항쟁 이후 한동안 경제적 민주화는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88∼97년 실질임금 인상률은 한 해 평균 7.24%를 기록했다. 실질성장률 역시 평균 7.73%로 건실한 상승세를 계속했다. 상위 20%와 하위 20%의 연소득을 나눈 상하위 20% 소득배율 역시 85년 5.13배에서 ▲90년 4.63배 ▲95년 4.42배 ▲97년 4.49배 등으로 꾸준히 떨어졌다. 하지만 90년대 초반부터 한국 경제에는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95년 실질 성장률이 9.2%에 달했는데도 주가지수는 14.08% 하락했다. 기업의 해외자금 차입 증가에 따른 과잉투자와 재무건전성 하락이 경상수지 악화와 해외채무자들의 자금회수 우려 증가로 이어진 탓이다. 97년 말 외환위기를 맞았지만 한국 경제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경제성장률은 98년 -6.9%에서 99년 9.5%,2000년 8.5%로 급반등했다. 그러나 이때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은 중산층 붕괴, 양극화 심화라는 경제적 불평등 확산의 결과를 낳았다. 2005년 상하위 20% 소득배율은 5.43배.97년 4.49배보다 1배 가까이 벌어졌다. 소득 불평등 수치인 지니계수는 96년 0.291에서 99년 0.3을 넘은 뒤 떨어질 줄 모르고 있다. 지니계수는 낮을수록 소득 분배가 잘 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한국은 부자에게는 자상하지만 없는 이들에게는 ‘괴물’의 얼굴을 한 사회로 변모했다. ●성장 과실 분배통로 막혀 ‘20대80’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는 ‘강남공화국’이다. 특히 아파트 가격은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과 ‘비강남’으로 우리 사회를 양분화시켰다. 86년 당시 강북과 강남 아파트가격, 소비자물가 지수를 100으로 잡았을 때 외환위기 직전인 97년 지수는 180.8,204.4,187.5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강남 아파트 가격이 큰 폭으로 뛴 것은 2001년 이후. 강북·강남 아파트가격 지수는 ▲2002년 234.6,352.8 ▲2003년 242.8,403.2 등에 이어 2005년 8월 현재는 247.1,448.4로 두배 가까이 벌어졌다. 최근에는 강남에서 ‘평당 1억원 시대’라는 말까지 돌 정도다. 수출 호조의 과실이 개인 대신 기업에 쏠리고 있는 것도 문제다.90년부터 96년까지 개인과 기업의 실질소득 증가율은 각각 7.0%,6.5%로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 7.6%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기업과 개인에 골고루 재화가 분배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2000∼2003년에 개인 소득은 겨우 2.4% 늘었지만 기업은 18.9%나 급증했다. 소득에서 세금을 뺀 순소득인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각각 0.3%,62.6%에 달한다.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도 2001년 8월 26.8%에서 올해 3월 36.7%로 꾸준히 늘고 있다. 전체 개인 소득은 제자리걸음이지만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다는 것은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다는 뜻. 이는 소비와 내수 침체로 이어진다. 올해 1·4분기 1∼5분위 중 1분위 소비성향은 156.5%,2분위는 101.5%이지만 4분위는 79.6%,5분위는 64.8%에 불과하다. 서민층은 소득의 대부분을 소비로 지출하지만 고소득층은 투자에 상당 부분의 돈을 쓴다. 전체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재벌 중심주의 경제체제의 변화 없이 경제적 민주화는 물론 추가적인 한국 경제의 성장도 요원하다고 말하고 있다. 경원대 경제학과 홍종학 교수는 “6월 항쟁의 최대 수혜자는 일반 국민이 아닌 재벌 등 경제적 상위 계층”이라면서 “정치 권력의 자리에 대신 들어선 경제 권력의 통제를 위해 일반 시민 권력의 목소리가 더욱 커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진보 진영 새 사회발전모델은 최근 한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잠재성장률 하락이다. 특히 참여정부 들어 경제성장률이 5% 안쪽에서 머물자 잠재성장률 역시 4% 초반대로 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높다. 좌우 할 것 없이 현재 한국 경제가 문제 있고, 성장률을 높여야 선진국 진입이 가능하다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우파의 성장 전략은 규제 완화에 따른 투자 활성화와 생산성 향상이라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의 신자유주의 발전전략이 더욱 급속도로 적용돼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는 불가피한 현상이라며 눈에 띄는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양극화의 영향이 좌파 진영에 의해 과장됐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고 있다. 진보진영 발전 전략의 공통점은 노동의 기여도를 높이는 것이다. 쉽게 말해 경제발전의 세 요소인 자본과 노동, 기술 가운데 현재 가장 기여도가 낮은 노동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역할도 강조된다. 신자유주의의 ‘작은 정부’가 아니라 자본, 노동 등과 함께 경제발전을 이끄는 주체다. 최근 가장 활발히 논의가 진행된 자리는 지난해 11,12월 두 차례에 걸쳐 열린 ‘한국 경제의 대안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토론회다. 진보정치연구소, 대안연대 등 10개 단체가 참여했다. 먼저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연대국가론’의 골자는 ‘똑똑한 지식노동자의 적극적 역할과 미래산업의 발굴·투자’다. 핵심 전략은 ▲지식노동자의 생산성 주도와 경영 참가 ▲교육복지 강화 미래의 성장잠재력 육성 ▲국가의 산업정책 복원으로 재생가능에너지·환경산업 육성 ▲부유세 사회복지세 등 사회연대적 조세 신설 등이다. 곧 노동의 참여와 복지를 통해 성장잠재력을 높여 나가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노동주도형 경제모델’ 역시 말 그대로 노동의 역할을 끌어올린다. 안정적인 노동정책은 국민적 노동창의성 보장의 필수 요건인 만큼 국가 경쟁력 향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기초로 노동자 재계약과 산업간 재배치를 국가가 책임 지고, 공공금융기관의 지원 아래 산업자본을 강화한다. 국가는 비전 제시자다. 새사연 김병권 연구센터장은 “노동창의성 중심 성장전략은 세계사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을 대체할 보편성·시대성을 지니고 있다.”면서 “피터 드러커의 지적처럼 인적 자원이 풍부한 한국에서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참여혁신 수석비서관 출신인 박주현 변호사가 만든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역시 ‘한국형 신성장동력 사회투자모형’이라는 눈에 띄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기본 구조는 학습복지(Learnfare), 일자리복지(Jobfare), 사회적 안전망(Welfare) 등 ‘3 fare’다. 노동자의 평생학습 시스템을 갖춰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면 경제성장과 복지를 함께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공회대 신정완 교수도 사회구성원의 학습능력과 취업·혁신능력을 증진시킨 ‘한국형 사회적 시장경제모델’을 주창했다. 다만 논의들의 현실화에는 아직까지 의문 부호가 찍힌다.LG경제연구원 송태정 연구위원은 “‘지식경쟁’ 사회로 세계 경제가 변모하고 있는 만큼 노동의 한계생산성을 높이려는 진보 진영의 논의 방향은 맞다.”면서 “다만 이를 위해서는 교육 개혁 등이 동반돼야 하는 등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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