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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늦깎이 시인의 발랄한 시선과 사유

    ‘발상의 경쾌함과 신선함’은 갓 등단한 신인의 기본 덕목이다. 하지만 일종의 클리세(Cliche·진부한 표현)와 같은 이런 찬사의 대상이 오십줄에 들어선 늦깎이 신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2005년 쉰살 나이에 ‘시인세계’로 등단한 시인 한우진(55)에게 발상의 경쾌함과 신선함이란 흔한 찬사는 진부함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에게 있어 그 진부한 덕목은 숨길 수 없는 연륜의 중후함과 뒤섞이며 젊은 신인들이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시 세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첫 시집 ‘까마귀의 껍질’(문학세계사 펴냄)은 그러한 신선함과 중후함이 길항하며 만들어 낸 독특한 결과물이다. 수록작 60여편에는 신인의 발랄한 시선과 중로(中)의 오래 삭은 사유, 또 이 둘이 뒤엉킨 색다른 맛의 표현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섞여 나온다. ‘오프너가 콜라병뚜껑을 지나가듯이- / 바람이 목련의 모가지를 따고 있다’(‘아우구리움’ 중) 같은 연상을 내놓는 한우진에게는 신인다운 신선한 감각이 있다. 그 감각 안에서 개울물은 ‘밀감 냄새’를 풍기며 흐르고, 밤에 남은 흉터는 ‘우유빛깔’을 띤다. 거기다 ‘침묵의 달을 훔친/ 꽃들의 혀는 날름거린다’처럼 낯선 비유들은 발칙하다는 인상까지 남긴다. 그렇지만 한우진은 이런 표현들을 난삽하고 멸렬한 문맥 속에 억지로 구겨넣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흐름 안에 위치시킨다. 시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도 새·나무 같은 일상의 것들로, 일상 속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메시지들을 그는 찾아 낸다. ‘새의 노래를 끌어올려 높은 데로 보내려고 나무는 서서 버티는 것인데 (중략) 새는 옆으로 나는 것이다. 나무의 고통을 전하러 멀리멀리 수평으로 날아갔다가 돌아오는 것이다’처럼 자연을 관조할 때 그는 여타 농익은 중견 시인들처럼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경지까지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구름 때문에 바지가 흘러내렸다/ 문장 하나가 완성되자/ 꿀에 가까워지는 여자들,/ 늑골 사이로 저녁놀이 삐죽거린 (중략) 모자를 벗고 모자에/ 유두만 골라 따 담았다’같이 에로틱하고 능청스러운 중년의 유머도 잃지 않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시론]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시론]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다시 3·1절을 맞는다. 어김없이 오전 10시에 사이렌이 울리면서 1분간 ‘순국선열 및 호국 영령’에 대한 묵념을 올릴 것이다. 그리고 세련된 기념사와 우아한 독립유공자 포상, 장엄한 ‘기미독립선언문’ 낭독 등이 끝나면 “이날은 우리의 의(義)요 생명이요 교훈”으로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는 ‘삼일절 노래’를 부르고는 만세 삼창을 끝으로 뿔뿔이 제 갈 길로 흩어질 것이다. 묵념의 순간만이라도 순국선열들의 고통과 염원을 상기했던가. 식민통치 압제 아래서 2000여회에 이르는, 그리고 세계 최대의 평화적인 만세 시위운동 참가자 200여만명의 함성에 귀 기울였던가. 3·1운동 후 1년간 피살 7500여, 부상 4만여, 피체 5만여, 가옥 소각 700여, 교회 소각 60여, 학교 소각 3, 헌병 즉결 태형 1만여, 약식 태형 1500여….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했던 일제 침략자들의 각종 고문들, 대나무 바늘로 손톱 밑 찌르기, 시신과 함께 잠재우기, 철사를 달구어 남자 성기나 여자 음문·유방 난자, 발가벗겨 담뱃불과 다리미로 지지기, 기름종이를 국부에 삽입하여 불붙이기 등등…. 그런데도 신문은 일본인 순사가 시위 군중에게 음경 절단을 당했다는 등 허위 기사로 ‘불법 폭력 시위’라 우겼고 일부 비뚤어진 동포는 거기에 동조하기도 했다. 아니, 그런 비뚤어진 동포가 그때만 있었고 오늘에는 없을까. 그런 만행에도 식민통치의 경제 개발로 우리나라가 더 살기 좋아졌다는 논리에 따르면 3·1운동은 ‘불법 난동’일 뿐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라는 헌법전문처럼 ‘삼일정신’은 근대 민족혁명사의 모태이다. ‘기미독립선언문’은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천명하면서 “인류 평등의 대의”와 “전 인류 공존동생권(同生權)”을 위한 세계평화를 주창한다. 이어 “침략주의, 강권주의”를 구시대의 유물로 타매(唾罵)하고 “아아,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도다. 위력(威力)의 시대가 거(去)하고 도의의 시대가 내(來) 하도다.”고 절규한다. ‘기미독립선언문’은 세계사적 관점으로 보면 한 나라가 남의 나라의 예속에서 벗어나야 될 당위성을 밝힌 미국의 ‘독립선언문’(1774)이나, 현대 인권사상의 교본인 프랑스의 ‘인권선언문’(1789)에 뒤지지 않는 명문이다. 약간 번잡스러운 앞의 글이나, 너무 간결한 법률 조항인 뒤의 글이 지닌 아쉬움을 극복하고 유려 장엄한 문체로 인권과 독립정신 이념에다 민주화와 도덕의식 강조, 세계평화사상을 동시에 접합시킨 게 ‘기미독립선언문’이다. 글쓴이와 민족대표 33인 중 3명이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옥에 티로 거슬리지만 그 정신은 고전적인 ‘홍익사상’을 제치고 근대 국민국가의 기본 이념으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그것은 상하이 임시정부와 국내외의 여러 항일투쟁 세력들이 삼일정신을 면면히 승계하면서 친일반민족행위를 가차없이 비판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헌법전문은 삼일정신을 이어받은 유일한 적통으로 ‘4·19 민주이념’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학은 이미 ‘5·18광주민주화운동’이나 ‘6월 민주화운동’ 역시 삼일정신과 4·19 민주이념의 계승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런 찬연한 민족 민주주의 이념의 모태인 3·1운동을 기리는 ‘3·1문화상’ 역대 수상자 가운데 13명의 친일파가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많은 친일파 명의의 기념사업이나 포상제도 역시 헌법전문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라는 삼일절 노래 가사는 선열들에게 이 나라를 봐달라고 할 만큼 우리가 떳떳하지 못함을 자책하는 표현일까. 아니면 살아 있는 우리 힘으로는 헝클어진 이 나라를 어쩔 수 없으니 돌아가신 당신들께서 다시 민족을 굽어 살펴달라는 애원일까. 아무래도 우리는 아직까지 “이 날을 길이 빛내자.”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 [씨줄날줄] 북한의 세계화/구본영 논설위원

    금강산이 남쪽 사람들에게 처음 열리던 1998년 그해 가을. 관광객과 취재진을 태운 유람선 금강호가 북한 장전항으로 들어서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가는 길 험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글귀가 필자의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당시 금강산뿐만 아니라 평양 등 북한 전역에서 가장 많이 나부끼는 구호였다. 그 어떤 곤경에서도 당과 지도자를 믿고 견뎌내라고 인민들을 독려하는 메시지였다. 수백만의 아사자까지 나왔다는 ‘고난의 행군’ 전후 북녘 보통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오버랩됐다. 하지만 그런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외부세계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기대감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금강산 일대에서 만난 북측 인사들은 대부분 남루한 옷차림에 여윈 얼굴이었지만 남쪽에 대한 호기심을 슬쩍슬쩍 내비쳤다. 올들어 ‘세계를 향하여’라는 새로운 구호가 북한에 등장했다고 한다. 평양 시가지 곳곳의 전신주 기둥 등에 ‘주체99(2010) 세계를 향하여’라고 적힌 홍보 구호판이 걸려 있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에 다녀온 평화자동차 박상권 사장의 전언이다. 올해 국제사회와 정치·경제적 관계를 강화해 2012년 이른바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준비를 하겠다는 북한정권의 의지가 실렸다는 해석도 곁들였다. ‘세계를 향하여’라는 구호가 문자 그대로 북한지도부의 대외 개방 의지를 반영한다면 반길 만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현재 북한의 엄혹한 처지도 오랜 폐쇄체제로 인한 자업자득이 아닌가. 즉, 작금의 고립과 궁핍은 북측이 자유민주주의와 대외 개방에 기반한 시장경제라는 인류문명사의 큰 흐름을 외면해 온 결과라는 평가다. 그러지 않곤 분단 직후 산업기반과 자원 등 여건이 나았던 북측이 남쪽에 뒤처진 까닭을 설명할 길이 없지 않은가. ‘북한의 세계화’가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될 이유다. 그런데도, 최근 전해지는 동향은 여간 안타깝지 않다. 북한당국은 조금씩 싹을 틔워 가던 시장경제의 모종밭을 지난 연말 화폐개혁으로 갈아엎었다. 개방 노선을 거스르는 수구적 행태였다. 더군다나 휴대전화 소지자에 대한 대대적 단속에 들어갔다는 보도에서 보듯이 북한지도부는 ‘우리민족끼리’와 대외 개방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길게 보아 개혁과 개방은 세계사의 대세가 아닐까. 북한지도부가 이에 순응하는 일이야말로 외길 수순이다. 북한주민들의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북한체제 자체의 존속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동화로 읽는 세계의 문화 1, 2, 3(한정영·임선아 지음, 김준미 그림, 가교출판 펴냄) 다른 나라를 접한다는 것은 그곳의 지리, 역사, 풍습, 음식 등 총체적인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전해온 동화에는 이 모든 것이 쏙 배어있다. 1권 아시아편, 2권 유럽편, 3권 아프리카·오세아니아·아메리카편은 각 대륙별, 나라별로 대표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모았다. 각권 9800원. ●근현대사신문 근대편, 현대편(문사철 기획, 사계절 펴냄) 교과서가 미처 가르쳐주지 못한 역사 속 진실의 토막을 신문 편집 형식으로 정리했다. 근대편은 1876년 개항 기사를 시작으로 해방 이전까지 만들었고, 현대편은 해방이후부터 2001년 9·11테러와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촛불집회 기사까지를 마지막으로 정리했다. 기존의 ‘역사신문’, ‘세계사신문’과 더불어 역사신문 시리즈의 완결판이다. 각권 2만 3000원. ●지상 최대의 생일잔치(신디 누시원더 지음, 웨인 지핸 그림, 승영조 옮김, 승산 펴냄) 영재수학동화를 표방한 시리즈가 이 책 8권을 마지막으로 완결됐다. 수학의 기본 개념 이해는 물론, 생활 속에서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도록 도와준다. 함께 출간된 7권 ‘둘둘섬의 비밀’은 원주율(파이·π)을 몰라도 원의 넓이를 구할 수 있는 비밀을 알려준다. 각권 7800원.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고트프리트 A. 뷔르거 지음, 염정용 옮김, 인디북 펴냄) 200여년 동안 전세계 어린이들의 황당하고도 기발한 상상력을 자극해온 책이 독일어판 원본 완역으로 나왔다. 사냥꾼이자 여행가, 그리고 귀족 사교계의 화제 인물인 뮌히하우젠 남작의 얘기를 쭉 따라 읽다보면 마치 돈키호테와 걸리버여행기가 합쳐진 듯한 느낌이다. 9500원. ●내 말 좀 들어주세요, 제발(하인츠 야니쉬 지음, 질케 레플러 그림, 김라합 옮김, 상상스쿨 펴냄) 아이들은 소통에 익숙하지 않다. 호기심에 가득차 궁금한 것도 많아 질문을 퍼붓지만 정작 대답을 듣는 데는 도통 관심이 없는 듯 하다. 게다가 너도나도 자기 아이들을 떠받드는 세상에서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 일쑤다. 동화는 어려움에 처한 곰의 말을 듣지도 않은 채 제멋대로 처방을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경청의 소중함을 알려준다. 9500원.
  • ‘反역사’를 쓰는 소수자들

    이 책에 우리가 아는 ‘역사’는 사실상 없다. ‘역사의 공간’(이진경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이란 제목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저자는 힘과 주류의 논리를 앞세워 대신할 수 없는 것을 대신하고, 대표할 수 없는 것을 대표하겠다는 일련의 시도들이 스스로 ‘역사’임을 강변해왔다고 판단한다. 이런 ‘역사’ 속에서 국민적, 혹은 세계사적 보편성을 갖지 못한 소수자들의 역사와 그들의 삶은 망각되고 지워진다. 따라서 보편적 역사, 즉 하나의 진실로만 귀결된 단수의 역사를 쓴다는 것은 소수자들의 삶을 망각의 어둠 속에 밀어넣는 한편, 소수자의 역사를 지우는 행위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소수자들 역시 자신의 이야기와 역사를 쓸 수 있다. 다수자에게 통합된 하나의 시간 이면에 또 다른 시간들이 흐르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이 “역사라는 이름으로 강제되는 기억에 대한 ‘반-기억’(counter-memory)이고, 보편성의 형식으로 주어지는 역사를 거부하는 ‘반-역사’(counter-history)”라고 명명한다. 저자는 ‘반-기억’과 ‘반-역사‘를 공론의 장에 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독립신문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는가 하면, 대한매일신보의 행간을 들쑤셔 철저히 해체한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외쳤던 ‘가족계획 사업’도 예외는 아니다. 국가가 목표로 했던 경제성장 속도와 그에 필요한 인구의 감소를 위해 “국가가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영역인)가족생활 자체를 특정한 방식으로 조절하고 통제했다.”고 저자는 인식한다. 결국 이 책은 역사에 관한 것보다는 ‘역사의 정치학’, 혹은 ‘정치적 관점에서 본 역사’를 다뤘다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이 책이 갖는 덕목은 지나온 길들을 되짚어 보는 새로운 방법, 그리고 획일화되지 않은 사유의 새로운 준거 틀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2만 3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월드뉴스 위클리 프리뷰] (1월25일~31일)

    [월드뉴스 위클리 프리뷰] (1월25일~31일)

    ●아프간 국제회의, 파병계획 등 점검 이번주(25~31일)는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놓고 국제사회가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댄다. 이에 따라 지난 18일 이 회의에 대한 경고성 테러를 감행했던 탈레반의 재공격에 대한 우려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세계경제포럼(WEF) 연차 총회와 반 세계화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세계사회포럼이 기다리고 있다. 오는 28일 영국 런던에서 영국·아프간 정부, 유엔이 공동 주최하는 ‘아프간 국제회의’가 열린다. 각국의 파병 계획과 아프간 치안 상황을 점검하는 이 자리에서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이 투항하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내용의 평화안을 제안할 예정이다. 하지만 탈레반은 대통령궁 등 수도 카불 도심 테러를 통해 다국적군 철수 전까지 협상은 없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재확인한 바 있다. ●다보스포럼 vs 세계사회포럼 선진국 경제 주체 중심의 다보스포럼과 제3세계 진영의 세계사회포럼이 각각 ‘세계 개선’과 ‘다른 세계’라는 상반된 화두 아래 개최된다. 두 포럼 모두 금융위기,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전 지구적 위기를 인식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해결책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다보스포럼의 경우 경제, 기후 문제에 더해 아이티 지진 해결을 주요 주제로 삼는다. 이와 관련, 25일에는 아이티인 이민자가 많아 제2의 아이티 수도로 불리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아이티 공여국 긴급회의가 열린다. 지난해 12월 열린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 결과물인 ‘코펜하겐 협정’에 따르면 선진국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개발도상국은 감축 실행 방안을 오는 31일까지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국가만이 인정한 법적 구속력이 없는 협정이다. 주요 개도국이 24일 인도 뉴델리에서 모임을 갖고 선진국의 과감한 감축을 요구하는 등 기존 입장을 고수해 마감일이 지켜질 가능성은 낮다. 이보 데 보어 UNFCCC 사무총장도 이미 “1월까지 제출해도 좋고, 그 이후에도 가능하다.”며 사실상 ‘데드라인’을 포기했다. ●오바마 상·하원 합동회의서 국정연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7일 의회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올해 첫 국정연설을 한다. 지지율 추락, 매사추세츠 선거 패배 등으로 힘겨운 임기 2년차를 맞은 오바마 대통령이 금융규제 개혁안에 이어 이번 연설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최고경영자(CEO)는 27일 ‘태블릿 PC’ 출시 기자회견을 갖는다. 아이폰, 아이튠즈에 이은 또 다른 야심작 공개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동성애에 대해 엄격한 분위기의 말레이시아에서는 야당 연합을 이끄는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가 동성애 혐의로 또다시 재판을 받는다. 안와르는 1998년 권력투쟁에서 밀려났을 당시 동성애 혐의로 수감됐지만 2004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도쿄 도립고교 일본사 필수과목으로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도쿄도 교육위원회가 이르면 내년부터 230곳의 모든 도립고교에서 ‘일본사’를 필수과목으로 채택하도록 방침을 굳힌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존중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다. 문부과학성의 현행 고교학습지도요령에 따르면 사회과에서는 ‘세계사’만을 필수로 정하고 , 일본사와 지리 중 한 과목을 선택토록 했다. 때문에 이과 학생들은 세세한 사실까지 외워야 하는 탓에 일본사의 선택을 꺼리는 실정이다. 나아가 대학생들도 상식에 가까운 역사적 사실도 제대로 모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제는 취지와는 달리 드러나지 않은 의도다. 도쿄도와 가나가와현, 사이타마현, 지바현 등 4곳은 지난 2006년 9월 연명으로 문부성 측에 개정하는 2013년 신학습지도요령의 필수과목에 일본사를 포함시킬 것을 건의했었다. 또 같은 해 10월 도쿄도는 단독으로 의견을 냈었다. 당시 역사·전통 교육을 내세워 보수·우익을 결집,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를 주창했던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교육정책에서 비롯됐다. 문부성 산하 중앙교육심의위원회는 2008년 도쿄도 등의 요구를 거부했다. “일본사는 초등·중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만큼 고교에서는 세계사를 필수과목으로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요코하마시는 올해부터, 가나가와현은 2013년부터 공립고에서 ‘일본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토록했다. 예컨대 가나가와현의 요코하마시는 올해부터 출판사 ‘후쇼사’와 ‘지유사’의 왜곡된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주도적으로 채택, 가르칠 예정이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는 지난 15일 하토야마 정권이 추진하는 영주외국인의 지방참정권 부여와 관련, “절대 반대다. 위험한 시도다.”라고 밝힐 만큼 대표적인 극우 인사로 꼽히고 있다. 일본 교육계의 일각에서는 “일본사의 채택 자체를 비판할 수 없지만 고교 단계에서는 세계 속에서의 일본, 즉 균형된 역사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적잖다. hkpark@seoul.co.kr
  • “노숙자들이 좋은 책 읽고 용기 얻길…”

    “노숙자들이 좋은 책 읽고 용기 얻길…”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을 읽고 나니 삶의 희망이 생기더라고요. 노숙자 학생들도 저 같은 감동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성균관대 물리학과 김태우(23)씨는 최근 학교 홈페이지에 독서 후기를 올려 노숙자들에게 책을 기증하는 ‘책 나눔’ 행사에 참여했다. 이렇게 모인 독서 목록을 바탕으로 성균관대는 지난 6일 성프란시스대학 노숙자 인문학 과정에 책 300권을 기증했다. 성프란시스대는 2005년부터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학생들은 지난해 12월 한달 동안 2010년 새해를 맞아 ‘노숙자 학생’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을 학교 홈페이지에 올렸다.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모두 250명이나 신청해 그중 고르는 데 애를 먹었을 정도. 백인욱 학술정보관 과장은 “경제적 요인 등으로 사회적으로 궁지에 몰린 노숙자들의 자활과 학습의욕을 고취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면서 “인문학 과정에 참여하는 노숙자 학생들의 정신이 풍요로워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동양철학 에세이’를 추천한 김용미(21·여)씨는 “이 책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면서 “힘들더라도 이 책을 읽고 용기를 얻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300권의 독서목록은 학생들 추천목록, 성프란시스대 요청목록, 출판사 문학동네의 기증목록으로 구성됐다. 학생 추천목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 에세이류가, 성프란시스대 추천목록은 ‘르 몽드 세계사’ 등 인문서가, 문학동네 기증목록은 ‘오 하느님’ 등 문학서가 주를 이뤘다. 목록에 따라 300권의 책을 구입하는 데는 성균관대 교직원 사회봉사단과 문학동네 출판사, 포털업체 인터파크 등도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보탰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씨줄날줄] 아편전쟁/김성호 논설위원

    문화사학자들은 흔히 인류 역사를 도취와 중독의 점철로 본다. ‘실낙원’의 선악과부터 시작해 서구문화사엔 술과 아편에 취해 창조적 영감을 구한 문학·예술가들이 숱하다. 그래서 계몽적 합리주의에 반기를 든 19세기 낭만주의 시기는 ‘도취의 시대’로 통한다. 악마파 시인 보들레르는 ‘인공의 낙원’을 통해 아편 도취를 묘사했었다. 도취의 영감은 낭만주의 예술가들을 관통해 20세기 전위적 아방가르드와 지금 대중문화까지 닿는다. 오죽하면 독일 문학평론가 알렉산더 쿠퍼는 그 일탈과 도취를 ‘신의 독약’이라 했을까. 문화사가들이 들여다보는 도취와 중독은 ‘자유로운 존재’ 측면의 인간 해방일 것이다. 그럼에도 도취와 중독은 해악의 그림자 탓에 빛이 바래기 일쑤다. ‘죄의 씨앗’이자 ‘영혼의 파괴적 도피’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 몰아세웠다는 마르크스의 경계도 종교가 가진 광기에 앞서 영혼타락과 오염의 집중부각일 것이다. 도덕·이성적 일탈로서의 도취, 중독의 꺼림이다. 도취며 중독과 관련해 나라끼리 피를 뿌린 세계사의 또렷한 흔적은 1840년의 그 유명한 ‘아편전쟁’이다. 아편무역을 통해 이윤창출을 노린 영국과, 이에 반발한 청나라의 전쟁. 당시 우수한 옷감 제조술을 가졌던 중국에 대한 영국산 방직물 공세가 여의치 않자 영국이 대안으로 들이민 게 바로 아편이다. 하층민 사이에 아편이 광범위하게 번져가자 중국은 마약상들을 홍콩으로 추방했고, 영국이 무역항 확대 명분을 내세워 일으킨 게 아편전쟁 아닌가. 전쟁에 패한 청나라는 홍콩을 영국에 빼앗겼고 지난 1997년에야 돌려받았다. 마약을 중국에 밀반입한 영국 남성이 그제 결국 사형을 당했다.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에서 헤로인 4㎏을 소지한 혐의다. 총리까지 나서 선처를 호소하는 6개월간의 구명운동이 무위로 끝나자 영국이 ‘섬뜩하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날 선 비난을 퍼붓고 있다. 자국 실정법 조치에 대한 ‘내정간섭’이라 반박하는 중국 입장도 잘못은 아닐 터. 그래도 중국에서 유럽인이 사형된 게 58년만이라니 보통 일은 아니다. 아편전쟁의 험한 기억이 작용했을까. 도취와 중독의 핏빛 전철을 또 밟지 않기를.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사설] 개정교육과정 역사 외면 위험하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고교 1학년 ‘역사’ 과목을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꾸고, 2~3학년 선택과목에서 ‘한국문화사’를 제외하는 내용의 ‘2009 개정교육과정’을 이달 중 확정하기로 한 데 대해 역사학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이번 개정교육과정이 역사교육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면서 그대로 실행될 경우 역사교육이 파탄날 것이라고 주장한다.현행 일선 고교의 역사교육은 1학년은 ‘국사’를 필수로, 2~3학년은 ‘한국근현대사’와 ‘세계사’를 선택과목으로 하고 있다. 2011년부터는 ‘2007 개정교육과정’에 의해 근현대 한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한 ‘역사’를 필수로, 2~3학년은 ‘한국문화사’ ‘동아시아사’ ‘세계역사의 이해’를 선택과목으로 적용할 예정이었다. ‘2007 개정교육과정’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할 역사 인식의 확립을 위해 역사교육 강화를 핵심으로 개정된 것인데 시행도 되기 전에 폐기될 처지가 돼 버렸다.‘2009 개정교육과정’에 따르면 고교 시절 내내 한번도 한국사 교육을 받지 않고 졸업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 중학교 때 배우는 근대 이전의 한국사가 정규 교육에서 받는 최종 역사교육이 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올바른 역사관과 세계관을 정립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오로지 학생 개인의 흥미와 노력 여하에 역사교육의 운명을 내맡긴다는 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발상이다. 교육당국은 지금이라도 역사학계의 비판과 지적을 받아들여 역사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개정안을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
  • [2009 수능 성적발표] 수리 쉬워 상위권 눈치작전 극심할 듯

    [2009 수능 성적발표] 수리 쉬워 상위권 눈치작전 극심할 듯

    올 수능은 지난해 어렵게 출제됐던 수리영역이 비교적 쉽게 출제돼 정시지원에서 상위권 학생들의 극심한 눈치작전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반적인 고른 점수 분포로 주요 특정영역이 당락을 좌우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 때문에 비교적 어렵게 출제된 외국어영역과 과목별 쏠림현상이 두드러진 탐구 및 제2외국어 영역이 당락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쉬워진 수리영역 난이도 올해도 역시 초미의 관심사는 수리영역이었다. 지난해 무척 어렵게 출제된 수리영역 점수가 당락의 핵심 변수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수리영역은 다시 체감 난이도에서 큰 차이를 보이며 쉬워졌다. 수리영역 가·나형에서 문제를 모두 맞춘 학생의 표준점수가 142점이었다. 지난해 154점이었던 ‘가’형은 12점, 158점이었던 ‘나‘형은 16점이나 떨어졌다. 그만큼 쉽게 출제됐다는 의미다. 만점자수는 수리 ‘가’형이 463명으로 지난해 95명보다 5배 가까이 늘었다. ‘나’형 만점자는 3875명으로 지난해 442명보다 8배 이상 많아졌다. 입시전문 청솔학원 입시연구소에 따르면 특히 올해 수리 ‘나’형의 1등급 커트라인이 원점수 91점 정도로 예상돼 지난해 79점보다 12점이나 상승했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올해 수리가 얼마나 쉽게 출제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치우 비상에듀 평가실장은 “남·여 수험생들이 전반적으로 어렵게 느끼는 수리영역이 쉽게 출제돼 상위권이 두껍게 형성될 것”이라면서 “올해 수능 정시에서는 상위권 학생들의 치열한 눈치작전이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국어영역 최상위권 변수 반면 외국어영역은 지난해보다 다소 어려웠다. 표준점수도, 최고점도 지난해 136점에서 4점 오른 140점으로 나타났다. 만점자수는 4642명으로 지난해 5340명 보다 다소 줄었다. 또 같은 1등급 내에서도 표준점수 차이가 지난해 5점에서 7점으로 벌어졌다. 이는 변별력이 다소 높아졌다는 의미다. 때문에 외국어영역 점수는 1등급끼리 경쟁하는 상위권 변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것으로 예상된다. 언어영역은 일부 까다로운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지난해보다 쉬웠다는 분석이 일반적이었다. 표준점수 최고점이 134점으로 140점이었던 지난해보다 6점이나 하락했다. 만점자 역시 1558명으로 643명이었던 지난해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때문에 올해 언어영역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입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올해 수능에선 비주요 영역으로 분류되는 탐구영역과 제2외국어가 수능의 복병이 될 전망이다. 올해도 예년과 다름없이 선택 과목에 따른 유·불리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제2외국어 영역에서 표준점수 최고점이 아랍어I(100점)와 독일어I·프랑스어I·일본어I·한문(69점) 간 최대 31점이나 벌어졌다. 사회탐구에서는 경제(81점)와 한국근·현대사(67점)가 14점 격차를 보였으며, 과학탐구에서는 물리II·화학II(77점)와 지구과학I(67점)이 10점이나 차이가 났다. 직업탐구에서도 정보기초기술(88점)과 해사일반·해양일반·식품과영양(70점)의 점수차가 18점이었다. 오종운 청솔학원 평가연구소 소장은 “올해 정시에서는 그 어느 해보다 탐구영역을 비롯한 선택과목의 영향력이 클 것”이라며 “자신의 표준점수와 백분위를 잘 살펴보고 자신에게 유리한 전형 기준을 제시한 대학을 찾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영역별 최고점수 ▲언어=134점 ▲수리 가=142점 ▲수리 나=142점 ▲외국어(영어)=140점 ▲사회탐구 윤리=69점 국사=72점 한국지리=77점 세계지리=69점 경제지리=71점 한국 근·현대사=67점 세계사=68점 법과 사회=78점 정치=71점 경제=81점 사회·문화=73점 ▲과학탐구 물리Ⅰ=73점 화학Ⅰ=76점 생물Ⅰ=68점 지구과학Ⅰ=67점 물리Ⅱ=77점 화학Ⅱ=77점 생물Ⅱ=70점 지구과학Ⅱ=73점
  • [내 책을 말한다] 기든스가 제시한 기후변화 해법

    21세기 인류 최대의 퍼즐이라면 필경 ‘기후변화’ 문제를 꼽을 수 있겠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는 얼마나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그런 기후변화의 원인이 과연 인류가 뿜어내는 이산화탄소 때문일까. 만약 화석연료 사용을 획기적으로 저감한다면 기후변화를 억제할 수 있을까. 기후 변화가 영화나 소설에서 보듯이 그렇게 인류에게 대재난을 불러올까. 그런 대재난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우리는 과연 어떤 준비를 하여야 할까.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해답을 알고 있는 현자는 없다. 하지만 세계적인 지성의 반열에 선 인사라면 한 권의 책으로 나름대로의 해법을 제시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제3의 길’ 저자로 지난 20년 동안 세계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던 앤소니 기든스가 바로 그런 일을 해냈다. 연초 영국에서 발표된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즉각 세계 언론의 주목과 찬사를 받았는데 저자 자신의 무게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제까지 발간된 그 어떤 책들과도 다른 현실적인 해답과 해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여러 면에서 기든스 만큼이나 유명한 저자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과 대비된다. 고어는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의 위기감을 강조하고 그 대책으로 인류의 화석연료 사용 저감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데에 그쳤다. 하지만 기든스는 기후 변화 문제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과학계의 논란에서부터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들이 각자 앞으로 취할 수 있는 전략에 대해서, 그리고 국제사회가 준비해야 해야 하는 대책들에 대해서 특유의 논리적인 설명으로 문제의 핵심과 그 해결책을 짚어준다. 번역자로서 꼽을 수 있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기든스는 기후 변화 억제를 위한 정책의 입안과 집행에서 중앙정부의 역할과 책임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대부분의 환경문제가 지방과 지역 차원에서 보다 해결이 용이하지만 기후 변화 문제만큼은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정책적 대응이 절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소개하는 대안과 정책들에는 신재생에너지 개발과 에너지절약 기술들을 포함하는 과학기술 분야로부터 탄소세로 대표되는 조세제도와 시장의 힘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온실가스 거래시장 등 금융과 재정 분야, 그리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들 사이의 협력강화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청정개발체제(CDM)에 대한 새로운 제안 등에 이르기까지 이제까지 제안된 거의 모든 분야와 대안들이 대부분 다 포함되어 있다. 이런 정책과 대안들이 바로 우리나라와 우리 기업 앞에 놓인 선택지가 되는 것은 물론이겠다. 다음 주에는 교토의정서 체결 이후 그 후속대책을 논의하는 역사적인 기후변화협약 정상회담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다. 멀게는 우리 후손의 미래에 대해서, 가깝게는 최근의 금융위기와 경제위기 속에서 우리나라와 우리 경제가 나아갈 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지식인이라면 기든스의 견해에서 적지 않은 시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리라. 홍욱희 번역자 세민환경연구소장
  • [열린세상]독일의 이방인, 그리고 우리는? /황기돈 한국고용정보원 선임연구위원

    [열린세상]독일의 이방인, 그리고 우리는? /황기돈 한국고용정보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11월3일은 독일 통일 2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독일 통일의 세계사적, 정치적, 경제적 의미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독일의 통일로 한국이 유일한 냉전·분단국가로 남아 있어서다. 분단, 통일(비용)에 대한 논의도 많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기로는 독일에 못지 않은 한국이건만 독일의 이방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독일 사람들이 내게 가장 궁금해하는 게 독일 말과 태권도 잘 하느냐는 거야! 나는 내가 독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나는 이방인이야!” 필자의 독일 유학시절에 한국계 독일인 후배가 한 말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 말을 독일 사람처럼 잘하고 독일 국적을 가지고 독일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고 여자 친구도 독일인인데 이방인이라니? 그럼 유학생인 나는? 그 후배는 이방인이고 나는 외국인이었다. 외국인은 무슨 이유로든 독일에서 살고 있지만 자신이 어디에 속한다는 것을 잘 알며 민족국가로 구성된 질서를 따르고자 하는 반면, 이방인은 독일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 이웃이지만 독일인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나 생활양식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다. 이웃이지만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이다. 이런 거부감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인들과 달리 종교를 비롯해 독자적인 삶의 양식을 고집하는 유대인, 터키인, 아프리카인에 대한 대응은 확연히 다르다. 물론 거부감의 정도에 차이가 없는 경우도 있다. 점차 줄어드는 일자리와 국가의 보조·지원을 둘러싼 경쟁자로 인식될 경우 이방인에 대한 독일인의 질투와 증오심은 아시아인이든, 유대인이든, 터키인이든 가리지 않는다. 신나치계열 젊은이들의 무차별적 테러가 좋은 예다. 전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업과 함께 근로자의 활동영역도 전 세계로 넓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끼리’ 살아왔던 많은 한국 사람들이 외국으로 나가고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가 하기 싫어하거나 못하는 부분에 기여하면서 살고 있다. 모두가 이방인이거나 그럴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이들 외국인, 또는 이방인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독일인들은 그들과 함께 사는 이방인에게는 살갑게 대하지 않지만 가난한 나라 원조에는 적극적이다. 돕거나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이 지역적으로 거리가 멀수록 강해지는 모순적인 현실이다. 독일의 원조를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반성의 일부로 볼 수도 있고, 장기 투자라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 오랫동안 원조를 받아왔던 한국도 늦게나마 원조를 시작하겠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함께 살고 있는 이방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때리지 마세요!”, “월급주세요!”라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절규를 자주 듣는다.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욕설과 매질이라니. 게다가 백인에게 그렇게 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피부색에 따라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사용자나 관리자에게 매를 맞는 이방인이 독일에는 없다. 물론 이방인이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렵지만 최소한 근로관계가 성립되면 이런 차별은 없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가 경제 원조국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어렵사리 벌어 놓은 세상의 긍정적인 평가를 함께 사는 이방인에 대한 매질로 까먹고 있다. 법적인 것은 물론 국가 이미지 관리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농어촌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나 웃음소리가 나는 것은 대부분 ‘외국인’ 며느리 덕분이라는 보도가 있다. 이제 우리도 피부색과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가까운 이웃에게 살갑게 대하며 함께 살아가는 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독일 통일 20주년을 계기로 통일은 물론 이방인 문제에 대해서도 독일에서 배울 것과 버릴 것을 분명히 할 수 있어야겠다. 황기돈 한국고용정보원 선임연구위원
  • 베를린 장벽 붕괴·소련 해체· 유럽 통합… 프리메이슨의 전략이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소련 해체· 유럽 통합… 프리메이슨의 전략이었다?

    학창시절 보이스카우트나 걸스카우트를 한 경험이 있다면 비밀 결사의 가입 의식이 익숙할 것이다. 세계 최대의 비밀 결사인 프리메이슨은 20세기 말에 그 숫자가 700만~1000만명으로 늘었고 로마클럽, 적십자, 보이스카우트 등의 이름으로 자선 및 복지·문화 활동을 하고 있다. ●모차르트·나이팅게일도 결사단원 댄 브라운의 소설과 영화 ‘다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 등을 통해 그 실체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던 사람은 ‘비밀결사의 세계사’(김희보 지음, 가람기획 펴냄)를 통해 이를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다. 음모론의 배후로 인기있는 프리메이슨의 기원은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 때부터 있었거나 영국 런던에서 1717년에 시작되었다는 등의 주장이 있다. 12세기에 조직된 성전기사단의 후예란 설도 있다. 프리메이슨으로 알려진 유명인사로는 종군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과학자 아이작 뉴턴, 단두대 기요틴의 발명자인 기요틴, 음악가 모차르트 등이 있으며 나폴레옹 1세를 비롯한 유럽의 왕들도 프리메이슨이 많았다. 프리메이슨이 관여한 역사적 사건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프랑스 혁명과 미국의 독립전쟁이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조차 프리메이슨 회원이었고 그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1달러짜리 지폐 뒤에는 ‘프로비덴스의 눈’이 인쇄되어 있는데, 이것은 프리메이슨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만물을 보는 눈’이라고 책은 말한다. ●고르바초프의 치밀한 계산 있었다 20세기 말 지구를 뒤흔든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동유럽 자유화,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유럽 통합 등의 대변혁에도 ‘당연히’ 프리메이슨이 개입했다. 서독 정부가 동독에서 입국한 200만명에게 한 사람당 100마르크(약 7만원)씩 준 환영금이 질서정연하게 지급된 배경에는 프리메이슨의 세계 전략과 고르바초프의 치밀한 계산이 있었다. 공산 혁명을 확장하자는 이념을 가진 공산주의자 고르바초프는 ‘세계 정부’를 목표로 하는 프리메이슨의 전략에 동조해 구소련과 동유럽의 재건을 꾀했다. 고르바초프가 프리메이슨의 결사원인지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프리메이슨과 공산주의의 뿌리는 같다고 저자인 김희보 서울장신대 명예학장은 주장한다. 마르크스가 1847년 쓴 ‘공산당 선언’은 클린턴 루스벨트가 쓴 ‘정치체의 과학’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프리메이슨은 부르주아에 의한 세계 제국을, 공산주의는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세계 제국을 목표로 한다. 공산주의는 유물론에 따라 신을 부정하고, 프리메이슨은 사탄 숭배에 따라 신을 부정하므로 목적이 같은 ‘머리가 두 개인 용’인 셈이다. ●“비밀 누설 땐 영원한 버림…” 모차르트는 오페라 ‘마술피리’를 통해 프리메이슨의 비밀의식을 밝혀 독살됐다는 주장이 있다. 프리메이슨의 비밀 서약 내용은 “메이슨의 비밀을 엄수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칼로 목이 잘리고 혀가 뽑혀 바다의 모래밭에 묻혀져 밀물이 나를 영원한 잊어버림으로 잡아가게 된다는 것을 각오하고 있다.”는 것이다.1만 8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정치적 강요… 엘리트들의 파워게임… GMO는 그렇게 확산된다

    인기 미국 드라마 ‘CSI 마이애미’ 8시즌 5번째 에피소드에서 젊은 두 남녀가 돌연사한다. 호레이시오 반장이 이끄는 과학수사팀은 이들이 음식 때문에 사망했다는 단서를 잡고 재료의 유통 경로를 역추적한다. 대형 유기농 식품 회사가 용의선상에 오른다. 수사팀은 이 회사가 사람이 소화하기 쉽게 특정 박테리아와 결합시킨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만들었는데 이 옥수수가 간간이 치명적인 독성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는 “그런 독성이 나올 확률은 1%보다 낮은 확률”이라면서 “비행기 사고가 나면 항공사가 모든 책임을 지느냐.”고 반문한다. 또 “고객들은 음식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싶어하지 않고 음식만 원할 뿐”이라면서 “한 명의 죽음으로 500명을 먹일 수 있다면 그 가능성을 택할 것”이라고 말한다. 고발성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상업적인 드라마에서 유전자 조작 식품(GMO)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것이 이채롭다. 그만큼 GMO에 대한 논란이 보편화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석유 지정학이 파헤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에서 영국과 미국이 석유를 통해 세계지배전략을 수행했다고 주장한 윌리엄 엥달이 이번에는 ‘파괴의 씨앗 GMO’(김홍옥 옮김, 길 펴냄)에서 GMO를 겨냥한다. 지은이는 생명공학계와 애그리비즈니스 업계를 적극적으로 싸고돌며 ‘GMO 혁명’의 시동을 건 레이건, 부시 행정부가 어떤 모습을 보여줬는지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특히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1992년 GMO가 겉보기에서도, 맛과 영양적 가치 면에서도 보통 식물과 실질적으로 같다는 행정적인 판정을 내렸다. 위험성에 대해 구체적인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몬산토나 듀폰, 다우케미컬 등 생명공학 기업들은 보통 식물과 다름 없다는 GMO를 가지고 특허를 따내 막대한 이득을 챙기기도 했다. GMO는 농업효율성, 환경 친화, 기아 문제 타개 같은 포장지에 둘러싸여 전 세계로 퍼져 나갔지만 식물의 다양성이 파괴되고 내성을 가진 벌레와 슈퍼잡초들이 등장해 제초·살충제의 사용량이 증가하는 한편, 일반 작물과의 교배로 종자 오염 등의 부작용이 심각해졌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지은이는 “이 책은 명목상으로는 유전자 조작 생물체라는 주제를 다루는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무슨 수를 써서든 세계를 자기들 손아귀에 넣으려는 엘리트들의 권력 키우기에 관한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GMO 자체 보다는 정치적인 강요, 정부의 압박, 사기, 거짓말 등을 통해 GMO가 보급되고 확산되는 과정을 조명하고 있다는 것. 전 세계적으로 식량 안보를 틀어쥐어 불균형 상태를 유지하려는 전략은 193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전쟁과 석유 덕분에 엄청난 부를 거머쥔 록펠러 가문이 선두주자다. 록펠러 가문은 그들이 키워준 여러 기관장과 고문들을 통해 영향력을 여러 분야로 확장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들이 에너지 제품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석유화학비료와 석유 제품을 위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고 개발도상국에 돈을 대주며 농업부문의 녹색 혁명을 일으켰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저자는 “앞으로 10년에서 20년 정도면 아무도 못 말리는 GMO 프로젝트의 막후 실세들이 세계의 식량수급을 모조리 장악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1만 8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셰익스피어는 인종차별 작가?

    셰익스피어는 인종차별 작가?

    르네상스(Renaissance)-학문·예술의 재생, 부흥. ‘르네상스는 14~16세기 그리스·로마 문화와 사상을 부흥시키려는 문화예술적 움직임을 일컫는다. ‘신(神)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변화가 시작됐으며, 중세의 종언이자 근대의 시발점이 되는 운동’이라고 학교는 가르친다. 박홍규 영남대 법학과 교수에 따르면 이는 절반의 정답이자 절반의 무지(無知)에 가깝다. 박 교수는 ‘르네상스는 중세와 달리 자유-자치-자연을 추구해 유토피아를 꿈꿨으나, 유럽 중심, 인간 중심에 매몰되면서 제국주의와 자연정복으로 타락한 14~16세기의 서양 문명’으로 정의하며 기존의 르네상스관(觀)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르네상스의 본질은 현상적으로 드러난 고대의 문예 부흥이 아니라 ‘인간 시대의 시작’이라고 규정했다. ●“르네상스시대는 고대 문예부흥 아닌 인간시대의 시작” 박 교수가 최근 펴낸 ‘인간시대 르네상스’(필맥 펴냄)는 그 시대의 주요 인물 20명에 대한 평가가 이어진다. 평가 정도가 아니라 그에 의해 르네상스 인물들은 전복되거나 해체되고, 재조명된다. 모든 평가의 준거가 됨과 동시에 르네상스로부터 근본적으로 복원하고자하는 것은 그가 내세우는 ‘삼자(三自)주의’로 귀결한다. 즉, 자유(自由)로운 개인, 자치(自治)하는 사회, 자연(自然)스러운 세계다. 예컨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이른바 ‘르네상스 3대 미술가’로 꼽히는 라파엘로는 아예 평가에서 제외했다.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등을 그리고 ‘다비드’, ‘피에타’ 등을 조각한 미켈란젤로는 교황청 등의 권력을 거부하고 개인의 자유를 추구한 르네상스인으로 재조명된다.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을 썼고 종교개혁에 앞장선 인물로 세계사 시간에 배웠다. 하지만 이 책은 이탈리아를 둘러본 뒤 낭비와 타락에 젖은 모습에 실망해서 가볍게 쓴 소품에 불과한 점을 밝힌다. 원제도 ‘우신예찬’이 아닌 ‘바보자찬’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는 평까지 덧붙인다. 에라스무스를 ‘휴머니스트들의 왕’이자 ‘인류공동체 사상의 상징’이라고 부르며 칭송한다. 특히 에라스무스의 새로운 면모는 또 다른 저서 ‘평화의 탄핵’에서 빛을 발한다. 그는 ‘전 세계는 공동의 조국’임을 선언한다. 그는 유럽 전체를 조국으로 삼은 최초의 유럽인이자 세계시민이라고 명명한다. 유럽연합(EU)이 20년 전부터 유럽의 점진적 통합을 추진하는 일환으로 나라별 학생 교환 사업인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의 사상적 유구함을 확인할 수 있다. 세르반테스의 ‘동키호테’ 역시 박홍규라는 프리즘을 거치며 새롭게 해석된다. 2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에 등장하는 동키호테를 박 교수는 “동키호테 같다는 소리를 들을 각오”로 ‘반체제 아나키스트’라고 과감히 명명한다. 설령 망상에 젖었을지라도 물질주의 탐닉을 거부하고 고귀한 정신주의를 구현하려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는 설명이다. ●에라스무스, 마키아벨리 등 르네상스 시대 주요인물 20명 재평가 이러한 인물의 재평가는 권모술수의 상징 마키아벨리를 ‘만드라골라’라는 위대한 희극을 쓴 극작가로서의 면모와 함께 귀족에 대항한 민중사상가로 부각시켰다. 또한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이탈리아 바깥에 있던 탓인지 그동안 르네상스 시대 문인으로 분류되지 않는 경향도 있었으나 그를 ‘마지막 르네상스인’으로 포함시킴과 동시에 ‘인종 차별주의와 제국주의에 갇힌 작가’로 규정한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대인 차별, ‘오셀로’의 흑인 차별, ‘폭풍우’의 제국주의적 관념 등을 대단히 불편해한다. 박 교수는 “우리 시대에도 개혁이 필요하다면 르네상스를 살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을 지내고 여러 학술 저서를 갖고 있는 법학자이지만 모리스, 고흐, 카프카, 니체 등의 평전을 쓰며 두터운 인문학적 소양을 확인시켜준 ‘한국의 르네상스인’이자 ‘또다른 에라스무스주의자’이기도 하다. 2만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유럽 ‘현대소설 백화점’ 한번 들러볼래

    유럽은 우리에게 가깝다.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뒤 한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은 곳 중 하나가 유럽이다. 비자를 받을 필요가 없고, 한 번 비행기 타고 날아간 뒤 간편하게 국가간 이동도 할 수 있는 ‘배낭여행자의 학교’ 같은 곳이었다. 또한 유럽의 예술, 문화, 역사 역시 중·고등학교 미술시간, 세계사 시간에 수박 겉핥기 식으로라도 쭈욱 배워왔으니 어느 나라, 어느 대륙보다 친숙한 지역이다. 하지만 유럽의 현대 문학이라면? 프랑스나 독일 등 그나마 알려진 작가들 한 두 명 정도를 떠듬거리며 댈 수 있을까? 난감해진다. 유럽연합(EU) 27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들의 단편소설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유럽, 소설에 빠지다’(전2권·민음사 펴냄)가 나왔다. ‘유럽 도시의 삶’이라는 공통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같은 문화권에 있는 작가들이지만 조금씩 다른 국가별 문학의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그나마 알려진 나라는 물론,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키프로스, 헝가리, 불가리아 등이 망라됐다. 한국 주재 외교관 등으로 구성된 문학 모임 ‘서울문학회’ 창립에 기여했고, 시를 쓰고 있는 라르스 바리외 주한 스웨덴 대사와 민음사의 공동 기획물이다. 대부분 2000년 이후 발표된 작품들이다. 불가리아의 니콜라이 스토야노프의 ‘프랑스어 수업’은 한 아이가 부모님의 강요로 프랑스어를 배우며 겪은 문화적 충격과 빈부 격차,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 등에 닥쳐 느끼는 혼란스러움, 불안함에 대한 작품이다. 고작 7쪽의, 소품에 가까운 단편소설이지만 동유럽 국가의 현재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스페인의 서른세 살 젊은 작가 하비에르 몬테스는 ‘대담무쌍 알프레도’에서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영웅이 만들어지고, 우상화되는지 과정을 보여준다. 비극적인 대형 화재 사건이 벌어진 뒤 비극을 덮기 위해 언론은 열 명이 넘는 사람을 구했다는 인물에 대해 주변을 취재하고 당시 상황의 증언들을 앞다퉈 싣는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까지 ‘영웅 알프레도’의 존재는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실체 자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바리외 대사는 “유럽은 민주주의, 인권존중 등 공동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진정한 힘의 원동력은 서로 다른 차이점에 있다.”면서 “이 소설집이 EU의 특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커피가 세계사를 바꿨다?

    커피가 세계사를 바꿨다고 하면 믿겠는가. 사이토 다카시 일본 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는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등 세계 주요 도시들을 중심으로 세계 커피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스타벅스를 통해 세계사를 훑는다. 그는 스타벅스가 무서울 정도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현대인에게 특별하다고 느끼는 공간’을 지속적으로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특히 잠이 오지 않는다는 커피의 특성에 주목한다. 근대가 가진 ‘잠에서 깨어 있는’ 느낌과 궁합이 잘 맞는 음료로 세계를 크게 바꿔놨다는 것이다. 커피의 역사는 에티오피아 등에서 커피 열매를 으깨 경단으로 먹었던 기원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커피를 마시는 습관은 8세기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나타난 이슬람 신비주의 집단 수피교도로부터 시작됐다. 밤을 새워 명상을 하는 수행에 커피의 각성 효과가 도움이 됐기 때문. 커피는 이슬람에서는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으나, 이성을 중요하게 여겼던 유럽에서는 상인들이 ‘이성을 각성시키는 음료’라고 홍보하며 이전까지 존재하지도 않았던 욕구를 만들어 냈다. 1652년 영국 런던에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등장했고, 불과 31년 뒤 3000여 곳으로 늘어났다. 사이토 교수는 이성을 각성시키는 장소로 자리잡은 커피하우스에서 각종 의견 교환과 정보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져 시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발생했다고 말한다.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진 토론의 장소였으며, 오늘날 보험이나 금융 같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등장하게 된 장소였다는 것. 사이토 교수는 커피 문화권에서는 뭔가 일의 피치를 올리고 싶을 때 커피를 마시는 편인데, 차 문화권 사람들은 한숨을 돌리며 쉬고 싶을 때 차를 마시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하며 “한때 영국의 식민지로, 차 문화권이었던 미국이 18세기 후반 보스턴 차 사건 때문에 커피 문화권이 됐다. 커피는 이후 미국이 세계를 제패하게 된 하나의 보이지 않는 요인이 됐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다시 물음표를 던져보자. 누가 또는 무엇이 인류 역사의 톱니바퀴를 움직여 왔을까. 왕이나 장군, 혹은 소수의 리더 계층에 의해 중요한 의사 결정이 이뤄지고 시스템이 만들어지며, 역사가 움직인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활동에 의한 역동적인 움직임도 분명히 존재하고, 이를 놓치지 않아야 역사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사이토 교수는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홍성민 옮김, 뜨인돌 펴냄)에서 역사의 톱니바퀴를 움직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간의 감정에 주목하며, 그 감정이 만들어낸 다섯 가지 힘을 통해 세계사를 바라보고 있다.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자본주의·사회주의·파시즘), 종교라는 코드다. 이 코드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낸다. 저자는 막스 베버의 관점을 빌려와 자본주의는 기독교로부터 생겨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종교개혁을 이끌어냈던 프로테스탄트, 특히 칼뱅주의자들은 일하는 것을 신에 대한 봉사로 생각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그만큼 돈도 많이 벌었다. 이들은 금욕을 중시하고 자신을 위해 돈을 사용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일을 확대하는 데 돈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현대적인 개념으로 따지면 투자였고, 투자가 확대재생산되며 자본주의 탄생의 모체이자 메커니즘이 됐다는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서유럽과 이슬람의 대립구도를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종교적 대립으로 인식하지만, 저자는 근대화를 덧댄다. 약 1000년 동안 신에게 짓눌려 가사 상태에 빠졌던 서유럽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 인간이 앞서는 시대, 즉 근대로 들어섰는데 이슬람은 신보다 인간을 중시하는 근대 문명에 반발심을 가졌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예수를 신의 아들까지는 아니라도 예언자의 한 명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다른 종교에 대해 관용적이었던 이슬람에서는 근대가 싫으니까 유럽도, 기독교도 싫다는 의식의 흐름이 형성됐다는 것.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있다. 저자는 서양의 근대는 신체 감각보다 정신을 우위에 두는 시대이지만 단 하나, 시각은 예외였다고 지적한다. 중세에서는 ‘성서’라는 지식이 권력을 쥐었다면 인간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근대에서는 시선이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 때문에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언급한 원형감옥 ‘파놉티콘’ 처럼 근대는 ‘보는 자’가 ‘보여지는 자’를 지배하는 사회가 됐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우석훈 연세대 교수는 해제를 통해 “이 책은 자본주의 등장과 전개라는 관점으로도 읽을 수 있고, 근현대 문화사라는 시각으로도 읽을 수 있고, 경제사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조건이라는 측면에서도 읽을 수 있다.”면서 “세계사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의 역사에 대해서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이들에게 역사를 읽는 재미와 함께 생활의 소소한 것들의 기원과 기능에 관해 생각해보는 재미를 주게 될 것”이라고 추천하고 있다. 1만 3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10·26 30주년]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10·26 30주년]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인 26일을 사흘 앞둔 박상범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소회였다. 1979년 ‘10·26’ 당시 경호계장이었던 그는 궁정동 저격 현장의 경호실 관계자 중 유일한 생존자다. 인터뷰 요청을 완곡하게 사양하던 그였지만, 본지 취재진이 지난 23일 서울 방배동 민주평통장학재단 그의 사무실을 찾자 온화한 미소로 반겼다. 대담:구본영 편집국 수석부국장 →‘10·26’ 30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를 텐데. -(박 대통령이) 서거하신 지 30년이 된 요즘에 와서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하는 학술대회도 열고, 유물·기록전시회도 하고 그러더라.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 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 60년 만에 이만큼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발전하게 된 나라는 세계사에 없다. 소위 한강의 기적은 정확히 이야기하면 (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부터) 약 40년 만에 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 데 최소한 100~150년 걸렸다. →최근 국제학술회의에서 진보쪽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있다. 한 교수는 김일성 유일체제인 북한에 비해 상대적이지만 반대 세력을 허용한 박정희의 남한이, 그리고 개방적·국제적 전략을 택한 남한이 폐쇄적 전략을 취한 북한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당시 그분을 모시고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다녔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인 조선, 제철, 자동차 등이 짧은 기간에 상당한 발전을 했다. 과학분야도….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군수산업도 당시에 기초가 다져지고 그랬다. 참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던 지도자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유신 때 데모하다가 호주에서 공부한 김형아 호주국립대교수가 박 대통령을 재평가하게 됐다는 말을 했다. 여러 면에서 박 대통령의 캔두이즘(Candoism)이 큰 기반이 됐다 하더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이 국민성을 바꿨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그런 신념을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난다. ‘할 수 있다.’, ‘우리도 잘살 수 있다.’ 라는 신념을 심어준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이 밑거름이 돼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경호를 하면서 사선(死線)을 수차례 넘나들었다. 그 중 ‘10·26’ 현장이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을 텐데. -경호했던 사람으로 거기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없다. 자칫 변명으로 들릴 수 있고. 다만 그 이후에 후배들에게 나와 같은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는 뜻에서 경호 기법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엄청난 연구를 통해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경호라는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있는데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지역을 최소화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10·26’도 봐야 하지 않나 싶다. 어떤 경우라도 경호는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매사를 접근하고 들어봐야 한다.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경호실장 때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1994년 있을 뻔했는데, 그때 경호 관련 협상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었나. -경호 통신 문제에 대해 협의가 다 끝나고 일주일 뒤에 우리 경호 선발팀들이 들어가게 돼 있었을 때 김 주석이 사망했다. 총기 휴대하고. 제일 문제된 게 위성 통신 문제였다. 그것까지도 다 원만하게 잘 협의가 돼서 일주일 뒤에는 최종적으로 선발팀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김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게 중지됐다. →그때 김일성 사망을 예상하는 꿈을 꿨다는 비화가 있던데. -당시 윤여준씨가 안전기획부 제3특보였고, (별세한) 엄익준씨가 북한 국장이었다. 나중에 통일부 장관 지낸 정세현씨가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었다. 오찬하는데 “아무래도 경호실에서 인원을 정리해 줘야겠다.”는 연락이 왔다. 오찬이 끝나고 제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아무래도 정상회담 안 될 거 같다.”라고 말하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경호실장이 그런 이야기하니 (무슨) 특별한 정보있는 줄 알고…. “무슨 이야기냐.”고 하기에 농담처럼 “며칠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서 관에 입관하는 꿈을 꿨다.”고 얘기했다. →요즘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 한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경호문제로 답방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호상 여러가지 가정도 있는데 그쪽도 똑같은 가정을 놓고 검토할 것 아니겠는가. 아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문제이고 전부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니까 힘들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호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성품을 가까이서 봤을 텐데.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건강하다. 그게 아주 공통되는 거 같고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은 카리스마, 결단력이 있었던 분들 같다. 특히 박 대통령 같은 분은 공과가 있겠지만, 30~40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육 여사 서거후 지만군을 돌보라고 박 대통령이 특별히 밀명 준 건 없나. -그런 건 없고, 그 당시에 지만군이 주말에 나오면 (청와대에) 안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외출나와서. 대통령이 찾으니까 차지철 실장이 나를 부르더니 “지만이좀 데리고 오라.”고 해서 명동에서 찾아서 데리고 갔던 그런 일도 있고…. 나중에 지만씨가 약물 때문에 보훈병원에서 봉사한 적이 있다. 제가 1997년 초에 보훈처장 할 때였다. 지금은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이루고 애도 갖고 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말년에 박 대통령이 지방시찰 많이 다녔나. -지금 관광지인 설악동인가, 그게 그 당시엔 정말 형편없었다. 그런 걸 그때 다 정비하는 등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다. 광양제철소는 본래 (충남) 아산에 만들려고 결정됐다가 (전남) 광양으로 바뀌었다. 그때 모시고 현장에 갔을 때 중국 쪽에서 바람이 부니까 매연이 내륙으로 들어오니 전문가들이 건의하고 그래서 현지에서 박 대통령이 “그럼 광양으로 하자.”고 결정했던 기억이 난다. →박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는. -유년시절부터 어렵게 성장하셨던 분이지만, 굉장히 정이 많은 분이었다. 외모는 아주 매섭고, 단구에다 깡마르고, 눈매도 무섭고…. 하지만 인정은 많았다. 전에 골프를 가끔 나가시면 추울 때나 더울 때나 근무자를 꼭 챙기셨다. 아주 서민적이셨던 걸로 기억한다. 1974년 영부인이 서거한 뒤 굉장히 외로워하셨다. 그러다 보니 국정에만 몰두해서 74년 이후 쭉 기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공단이나 산업단지 조선소 등이 그때 건설됐다. 안면도에는 제2국방과학연구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로켓을 만들었고 타코마라는 회사가 당시 마산에 있었는데 거기서 잠수함을 만들기 시작했다. 허전함을 그런 일로 푸셨던 듯하다. 정리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박상범 전 靑 경호실장 인터뷰 전문 보러가기
  • [10·26 30주년] 박상범 전 실장의 인터뷰 전문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인 26일을 사흘 앞둔 박상범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소회였다. 1979년의 ‘10·26’ 당시 경호계장이었던 그는 궁정동 저격 현장의 경호실 관계자 중 유일한 생존자다.  그는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말년에 유신헌법을 개정한 뒤 물러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비화를 들려줬다. 즉, “박 대통령이 집권 18년 정도 됐을 때인데 ‘1∼2년 뒤에는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라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는 얘기였다. 경호 실무자로서 피경호대상을 지켜내지 못한 아쉬움을 넘어 그의 표현대로 “경제적으로 세계사에서 드문,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박 전대통령이 평화적 권력이양까지 일구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배어있는 듯했다.  “기억하기도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 이야기를 안 꺼낼려고 했다.”며 서울신문의 인터뷰 요청을 완곡하게 사양하던 그였지만, 본지 취재진이 지난 23일 서울 방배동 민주평통장학재단 그의 사무실을 찾자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반겼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 남북정상회담 준비과정의 뒷얘기에서부터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경호 및 남북관계 전문가로서 견해를 담담하게 피력했다. 합기도 등 각종 무술이 도합 10단이 넘는 무골답지않게 담담한 어조였다.  ●‘10·26’ 30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를텐데.  -(박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30년이 된 요즘에 와서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하는 학술대회도 열고, 유물·기록전시회도 하고 그러더라.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 60년만에 이 만큼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발전하게 된 나라는 세계사에 없다. 소위 한강의 기적은 정확히 이야기 하면 (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부터) 약 40년만에 된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데 최소한 100~150년 걸렸다. 그런걸 보면 당시 지도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강력하게 뒷받침 해줬던 국민의 저력이 “참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해외 나가면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한국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느낀다. 서거 30년이 흘렀지만 매년 개인적으로 현충원을 간다. 그분 생각이 가끔 떠오른다.  ●최근 국제학술회의에서 진보쪽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있다. 한 교수는 김일성 유일체제인 북한에 비해 상대적이지만 반대 세력을 허용한 박정희의 남한이, 그리고 개방적·국제적 전략을 택한 남한이 폐쇄적 전략을 취한 북한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당시 그 분을 모시고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다녔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인 조선, 제철, 자동차 등이 짧은기간에 상당한 발전을 했다. 과학분야도….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군수산업. 그게 그 당시에 기초가 다져지고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참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던 지도자가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을 한다. 가끔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국내를 다니다 보면 관광지 재정비 한 곳을 많이 보는데 대부분 그 때 시작한 것이다. 그 족적을 보면서 당시의 지도자로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신 때 데모하다가 호주에서 공부한 김형아 호주국립대교수가 박정희 대통령을 재평가를 하게됐다는 말을 했다. 여러 면에서 박 대통령의 캔두이즘(Candoism)이 큰 기반이 됐다 하더라. 박정희 대통령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이 국민성을 바꿨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그런 신념을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난다. ‘할 수 있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라는 신념을 심어준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이 밑거름이 돼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것들이 경제나 문화쪽에서 보인다. 최근 광화문 세종대왕 좌상이 생겼지만, 그 전에 이순신 장군 동상 세워지고…. 여주의 영릉이나 아산의 충무공 사당도 그 때 다 성역화됐다. 처음에 갔을때는 초라했는데 그분이 성역화시키고, 그게 우리 역사에서 계속 남는 거다. 사석에서 말씀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갖고 계셨다.  ●경호를 하시면서 사선(死線)을 수차례 넘나들으셨겠지만, 그 중에서도 ‘10·26’ 현장이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을텐데. 1983년의 아웅산사태 때도 아슬아슬했겠지만.  -경호했던 사람으로 거기에 대해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자칫 변명으로 들릴 수 있고. 다만 그 이후에 후배들에게 나와같은 전철을 밟으면 안된다는 뜻에서 경호 기법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엄청난 연구를 통해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소위 경호라는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있는데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지역을 최소화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10·26’도 봐야하지 않나 싶다. 어떤 경우라도 경호는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매사를 접근하고 매사 들어봐야한다.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한다는 건가.  -그렇다. 아웅산 사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들이 다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경호관계자 중 ‘10·26’ 현장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것은 그 때 중앙정보부(현재 국가정보원) 후배가 평소에 후덕한 모습을 기억하고 일부러 비껴 쏴서 허벅지와 옆구리를 스치게 했다는 말도 있었는데. 확인사살 과정에서 버클에 맞췄다는 얘기도 있었고.  -제 3자를 통해 그런 얘기도 들었지만, 지금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다.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고, 중정 직원들도 다 사형당했으니.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중정 직원들도 참 고생 많이 했다. 대통령 경호원과 한 집안 식구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 사람들 고생하는거 보고 서로 따듯하게 해서 깊은 우정들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사실 정말 안타까웠다. 정말 제가 아끼는 후배들도 있었고 그 중에 저를 참 좋아하는 후배들도 꽤 많았다.  ●정황상으로는 어떤가.  -그 현장이 한 10평 그 정도 밖에 되지않는다. 가운데 직사각형의 막힌 조리대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졌으니까 확인사살은 실수할 리가 없다.  ●군출신 아닌 첫 문민 경호실장을 지냈는데, 박종규, 차지절, 장세동, 안현태, 이현우씨등 군 출신의 여러 경호실장들의 노후는 불행했거나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 욕심 탓인지, 아니면 권력의 비정한 생리나 속성 때문인지.  -둘다로 본다. 하나는 권력의 속성 탓이다. 당시 여러 사회적 여건이 그 자리에 그분들이 있을 때 여건이 그런쪽으로 갈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각 개인의 성격에도 (다소) 문제가 있지 않겠나 싶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으로서 그런 행로를 답습하지 않아야겠다는 철학을 정립했을 것 같은데.  -거기서 오랫동안 생활하다보니 많은 상사들을 모시고 이런저런 일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확신은 안서지만 내가 만약에 과장자리. 처장자리에 갔을 때 ‘이러이러한 것은 내가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어느 직장이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우선 권위라는건 꼭 필요하지만 배타된 권위는 안된다. 예컨대 정부 각료들 회의 때 경호실장이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그 안에 근접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팀장도 있기 때문에 굳이 국가 정책 논의하는 그 자리에 경호실장이 꼭 들어가서 앉을 필요가 있느냐. 교육도 참 중요한것 같다. 2년 있는 동안 교육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어차피 경호도 국제화되기 때문에 많은 국빈들이 오고 우리 대통령도 1년에 몇 번씩 해외를 순방하고 그런 시대가 돼서 이제 어학 문제라든가 이런것을 체계적으로 해서 경호원들의 수준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1년 코스이지만 해외 유학도 보냈다. 지금은 우리 후배들 보면 아주 상당한 수준에 와있다는 생각이다. 통역 필요없이 업무를 직접 협의할 정도까지 상당한 직원들이 와 있다. 경호실이 예전처럼 권위적이지 않다. 한 때는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린다는 조직이란 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아주 순수한 전문 조직으로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경호라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경호하는것이지 인간 누구를 경호하는것 아니다. 적어도 경호실은 그런 생각을 갖고 전문 조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월권 등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알력이 생겨 박 대통령 서거라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고 보는 쪽도 있다. 이와 달리 박 대통령이 3선후 유신체제로 가면서 장기집권하는 통에 산업화 이끈 훌륭한 지도자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불행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저는 계장급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정치적이나 정책적인 면 잘 모르지만 다 일리가 있다. 다만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 의해 저격된 뒤 차지철 실장이 들어왔을때 사회적 환경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차 실장이) 장관들을 배석시킨 채 국기하강식을 한다든가 하는 월권도 저질렀다는데.  -주말마다··· 그랬다. 굉장히 힘들 때가 있었다.  ●차 실장의 다른 독특한 면은.  -차 실장은 그런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금전, 돈 에 대해서 상당히 깨끗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아무것도 남겨놓은 게 없다. 돈에 있어선 깨끗했다.  ●최근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회고록에서 1978년 경제특보 재임 당시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방식은 내가 봐도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어.”라며 개헌후에 물러나겠다는 박 대통령의 육성을 기록했는데 당시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사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 때가 (박 대통령 집권) 18년 정도 됐을때인데 “1~2년 뒤에는 내가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하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게 좀 앞당겨 실현됐더라도 ‘10·26’ 같은 불행한 일은 없었을텐데.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유신헌법 개정안 초안 작업을 하던 신직수 법률특보가 10·26 이후 관련자료를 폐기했다고 남 전총리가 구체적으로 증언했던데.  -2년 정도 뒤에 하야하려고 생각하셨던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은 그때 그런 생각을 확실하게 갖고 있었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 하실 때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1994년 있을뻔 했는데, 그 때 경호 관련 협상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었나.  -어느 단계에 가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냐면 경호 통신 문제에 대해 협의가 다 끝나고 일주일 뒤에 우리 경호 선발팀들이 들어가게 돼 있었을 때였다. 물론 총기 휴대하고. 제일 문제된 게 위성 통신 문제였다. 그것까지도 다 원만하게 잘 협의가 돼서 일주일 뒤에는 최종적으로 선발팀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게 중지돼 버렸다.  ●그 때 김일성 사망을 예상하는 꿈을 꿨다는 비화가 있던데.  -당시 윤여준씨가 안전기획부 제 3특보였고, (별세한) 엄익준이 북한 국장이었다. 나중에 통일부 장관 지낸 정세현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었다. 오찬하는데 저한테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경호실에서 인원을 정리해줘야겠다는 연락이었다. 그 자리에서 정리를 다 했다. 경호 쪽에서 인원 줄이고…. 오찬이 끝나고 제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아무래도 정상회담 안될거 같다.’라고 말하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경호실장이 그런 이야기 하니 (무슨) 특별한 정보있는줄 알고…. ‘무슨 이야기냐.’고 하길래 내가 농담처럼 ‘며칠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서 관에 입관하는 꿈을 꿨다.’고 얘기했다. 당시에 정책비서관이 ‘맞으면 도사로 모시겠다.’고 농담으로 말하더라.  ●김영삼 대통령에겐 보고했나.  -안했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끝났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일주일 전에 꿈을 꿨다. 새벽 3시쯤 깜짝 놀래서 깼다. 집사람을 깨워 ‘이상한 꿈을 꿨다.’고 하니 집사람이 ‘절대 다른 곳에 가서 말하지 말라. 경호실장이 그런 말 하면 북한가기 싫어서 이야기 한다고 오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당시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 남북관계 큰 진전 있었을 텐데 김일성주석 답방도 있을 수 있고.  -그렇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국의, 한반도의 운명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꿈으로 나타날 정도면 신경 많이 써서 그런 것 같다. 사상 최초로 북한에 가는 남쪽 정상을 경호 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상당했을 것 같다.  -처음 이뤄지는 일이고 민감한 일이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사실 잠이 안왔다. 현장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여건들이 많았는데,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옥쇄할 수 밖에 없다는 각오까지 했었다.  ●요즘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한다는 보도가 잇다르고 있다. 그런데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경호문제로 답방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호상 여러가지 가정도 있는데 그쪽도 똑같은 가정을 놓고 검토를 할 것 아니겠는가. 아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문제이고 전부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니까 힘들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물리적인 위해가 아니더라도 김 위원장 쪽에선 남쪽 보수단체에서 계란이라도 던지지 않나 이런 것 신경쓰는 거 아닌가.  -그런것도 있고. 예를 들어 근접 경호하는 사람 중에 약간 정신적으로, 순간적으로 문제가 발생돼 총이라도 뽑고 한다면 그건 큰일이 생기는 거다.  ●영화 쉬리의 한 장면 떠오르는데.  -그럴 경우 전쟁터가 되는 거다. 사실 초청한 쪽에선 그런 의도 없더라도…. 그게 젤 위험하다. 우리도 그렇지만 그쪽에서도 그런 생각 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 몇분 모셨나.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등 다섯분을 모셨다. 김종필 총리 인준이 안되는 바람에 (인수인계가 늦어져) 김대중 대통령 취임 초반 (보훈처장으로) 잠깐 재직하기도 했다.  ●경호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성품을 가까이서 봤을텐데.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건강하다. 그게 아주 공통되는 거 같고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은 카리스마, 결단력이 있었던 분들 같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은 공과가 있겠지만, 30~40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제 기억으로는.  ●김영삼 대통령도 전두환,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보스형 리더십의 소유자인가.  -그렇죠.  ●노태우 대통령은 좀 다르지않나.  -좀 다르다. 최규하 대통령도 그렇고.  ●어느 정부든 할거 없이 대통령 아들 때문에 속썩인 일이 많은데.. (김영삼 대통령 아들인) 현철씨 관련해서 경호실장 하면서 김 대통령에게 직언하자 언짢아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런거 보다도…. 김현철씨 같은 분 보면 예의도 바르고 총명하고 그렇다. 대인관계도 좋고.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아버님이 두 번씩 대선에 출마할 때 김영삼 대통령과는 부자간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대선 때 어려움을 겪으면서 참모역할을 하면서.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저도 한 2년 현철씨를 접촉했지만 예의바르고 대인관계 좋고 그랬는데, 대통령학에 대한 책도 좀 읽어보고 했지만 집권후 1년, 1년반 지나다 보면 주변에 사람들이 자꾸 모이게 되지않나. 어떤 사람들이 주위에 모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본의 아니게 본인 생각과는 전혀 관계 없이 그런 문제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오랫동안 다섯 분 대통령 모시면서 보고 느꼈던 일이고, 김현철씨도 그랬던 듯하다. 그래서 그 당시 대통령께 (박관용 비서실장 등을 포함해) 여러분들이 고언을 드렸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아들인) 박지만씨와 관련한 에피소드중 기억나는 것은.  -박지만씨가 몇년 전 결혼해서 축복해 주기도 했지만, 그때는 육사를 다녔다. 아주 어릴 때인 1974년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신 뒤로 정신적 어려움이 많았고, 그래서 저항적인 그런 쪽으로 한 때 잠깐 바뀌었던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까 약물도 시작하게 됐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오죽 외롭고 했으면 그랬겠나 하고 이해도 된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세상을 떠났고, 더군다나 비명에 가시지 않았나. 자연사로 가신것도 아니고…. 다행스러운건 지금 새 보금자리 만들어 잘 살고 있고….  ●육 여사 서거후 지만군을 돌보라고 박 대통령이 특별히 밀명 준건 없나.  -그런 건 없고, 그 당시에 지만군이 주말에 나오면 (청와대에) 안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외출나와서. 대통령이 찾으니까 차지철 실장이 나를 부르더니 ‘지만이좀 데리고 오라.’고 해서 명동에서 찾아서 데리고 갔던 그런 일도 있고…. 나중에 지만씨가 약물 때문에 보훈병원에서 봉사한 적이 있다. 제가 1997년 초에 보훈처장 할 때였다. 지금은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이루고 애도 갖고 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권부 근처에 있었으니 일부 측근들이 엉뚱한 권력을 행사하는것을 보는 등 온갖 인간 군상들을 목격했을 듯한데.  -그런 것들이 대통령의 자제분들이나 가까운 친척 분들을 망가뜨릴 수도 있고. 역시 사람이 젤 중요하다. 사회생활하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지난 대선에 나온 허경영 후보가 공중부양한다는 농담같은 얘기가 나도는 데 무술의 달인으로서 말하자면 원조 공중부양 전문가라는 소문은 사실인가.  -(손을 내저으며) 에이, 지금은 세월이 흐르니 아픈데도 생기고…. 요즘엔 무술 훈련은 안하고 하루에 한시간 반 정도 집에서 열심히 헬스는 하고 있다. 지금 나이에 무슨 헬스 하냐고, 또 얼마나 오래살라고 그러냐고도 하는데 적어도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해야 통일되는 것도 보고, 요즘 G20 그러는데 (한국이) G10 되는 건 보고 죽어야 할것 아니냐는 농담도 한다. 열심히 운동한다. 한 시간 헬스가서 운동하면 기분 좋고 정신도 맑아지고 의욕도 생기고 그렇더라.  ●다친 무릎 때문에 고생한다는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제 등산은 하지않는다. 가끔 골프할 때는 보호대 차고 한다.  ●공직 땐 골프 안했는데 입문 1년만에 싱글했다는데.  -1998년 3월 중순까지 보훈처장으로 일했다. 그 직후 집사람과 골프 시작해 6개월 만에 80타 쳤다.  ●경호 전문가지만 민주평통 사무총장, 보훈처장 등 남북관계나 안보전문가로서 식견을 사회에 환원할 복안은.  -후배들에게 그런 이야기 많이 한다. 1996년 평통 총장 막바지에 장학재단을 하나 만들었다. 장학재단 일이 다 봉사다. 수익사업 하는것도 아니고.  ●강의 같은 것도 하나.  -강의를 그만둔게 한 3년 됐다.대전 배재대에서 경제학부 학생들이 인간관계론을 강의해달라 해서 2년, 경기대에 경호문제 및 대테러 문제로 석·박사 과정 학생들 한 2년 지도했는데 무척 힘들더라.  ●10·26 사태의 배경을 설명해 달라.  -신문이나 언론을 통해 수없이 많이 보도 됐다. 합동 수사팀들이 조사결과가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런 사건을 당했던 사람들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더 일들이니까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 다음에 모르잖아요. 총맞고 깨어나니 병원이었다. (공식)기록이 가장 중요하다. 작년에 어느 매체에서 1974년 문세광 사건 재조명한다고 했다. 한 11년동안 음성전문가 동원해서 준비했다는데, 어떤 결론을 내놓고 그쪽으로 몰아가니까.  ●경호원이 육 여사 돌아가시게 했다는 추측성 보도를 가리키는 건가요.  -그런 뉘앙스로…. 하도 그래서 내가 한 말이 있다. 총알은 절대 거짓말을 안한다. 탄환이 다 있다. 건물 내부에서 일어났던 일이니까 탄환이 없을리 없잖아요. 총알은 각도가 있다. 그렇게 이해시키려 했는데, 자칫잘못하면 왜곡된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10.26 사건도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합동수사팀의 조사결과가 젤 정확하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합동 수사팀에 검찰도 다 들어가고 했기 때문에 숨길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운명이다. 운명이 아니고는 벌어질 수가 없다. 물론 원인도 다들 아시잖아요. 차 실장과 김재규씨하고 인간관계도 있고. (유신정권의)권력독점 문제 등도 있고.  ●호사가들은 미국 CIA가 배후조종했다는 설도 제기하는데요.  -(고개를 저으며)원래 그런 사건에 별별 추측이 다 일어나거든요.  ●박정희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는 어땠나요.  -그분도 유년시절부터 어렵게 성장하셨던 분이지만, 굉장히 정이 많은 분이었죠. 외모를 보면 아주 매섭고, 단구에다가 깡마르고, 눈매도 무섭고. 하지만 인정은 많았죠. 예전에 골프를 가끔 나가시면 추울 때나 더울때나 근무자를 꼭 챙기셨다. 아주 서민적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74년도에 영부인 서거한 뒤에 굉장히 외로워하셨죠. 박근혜씨가 영부인 대행하셨지만 외로움을 타는 것 같았죠. 그러다 보니까 국정에만 몰두해서 74년 이후 쭉 기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공단이나 산업단지 조선소 등이 그 때 건설된 거죠. 창원 신도시에서 창원 공단, 풍산에는 풍산금속 등이 하나하나 자리잡기 시작했지요. 70년 초만 해도 우리나라가 철모도 하나 못만들었지요. 철모가 간단한거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총알이 맞아도 튕겨나갈 정도가 돼야하는데 그걸 못만들었으니까. 안면도에는 제 2국방과학연구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로켓을 만들었고 타코마라는 회사가 당시 마산에 있었는데 거기서 잠수함 만들기 시작했지요. 허전함을 그런 일로 푸셨던 듯합니다.  ●말년에 박 대통령이 지방시찰 유난히 많이 다녔는가요.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가끔 여행하다 보면 그분의 족적을 볼 수 있다. 지금 관광지인 설악동인가요, 그게 그 당시엔 정말 형편 없었거든요. 그런 걸 그 때 다 정비하는 등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광양제철소는 본래 아산에 만들려고 결정됐다가 광양으로 바뀌었죠. 그때 모시고 현장에 갔을 때 중국 쪽에서 바람이 부니까 매연이 내륙으로 들어오고 그러니까 전문가들이 건의하고 그래서 현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그럼 광양으로 하자고 결정했던 억들이 납니다  대담 구본영 편집국 수석부국장·정리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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