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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L주의 포기한 개혁의 주역/고르비 집권에서 실각까지

    ◎85년 서기장 피선·90년 대통령으로/신사고로 세계냉전의 흐름을 바꿔 집권 6년5개월만에 실각된 고르바초프는 세계정세의 흐름을 냉전에서 데탕트로 바꿔놓은 장본인. 체르넨코가 서거함에 따라 러시아혁명(1917년) 이후에 출생한 최초의 소련지도자로서 지난 85년3월11일 54세의 나이로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된 고르바초프는 집권직후부터 「인간적인 사회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신사고외교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및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을 추진,사회주의혁명 70년의 낡은 유물들을 몰아내기 위한 일대운동을 전개했다.총성없는 「제2의 러시아혁명」을 시작한 것이다. 사유재산제를 도입하는 등 소련경제를 철저한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시키고 공산당 권력독점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는 등 국내에서의 엄청난 정치·경제적 변화를 주도했다. 국제적으로도 지난 88년 브레즈네프독트린을 폐기하고 동유럽개혁 불간섭을 선언,동구전역을 휩쓴 민주화물결의 불을 댕겼다.독일통일도 고르바초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지난달 모스크바 미소정상회담에서 역사적인 전략무기감축협정에 조인하는 등 미소관계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에까지 화해의 대기운을 몰고온 것도 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거나 최소한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지난해 6월 노태우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한소수교를 맺고 지난 4월 방한했는가 하면 북한에 개방압력을 꾸준히 가하는 등 한반도의 해빙무드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있다. 이같은 국제무대에서의 빛나는 업적으로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는 격찬을 받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같은 급속한 개혁추진과정에서 정치·경제적 대혼란이 불가피하게 수반돼 인기가 곤두박질쳤다.식량위기 등 극심한 경제난에 따른 불만이 극에 달했다.지난달 런던에서 서방선진7개국 정상들과 회담을 갖는 등 서방세계로부터 대소경제지원을 얻어내기위해 안간힘을 다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한 채 국내에서는 오히려 구걸외교라는 비난을 사기도했다.발트3국을 비롯한 소수민족의 독립요구에 따른 연방해체위기로 골머리를 썩이면서 러시아공화국 등 9개공화국과 신연방조약 체결을 추진,20일 조인할 예정이었다. 급진개혁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있는 보수파와 더딘 개혁속도를 못마땅해하는 개혁파의 협공 속에서 어려운 줄타기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자신에게 도전한 보수파의 거두 리가초프를 제거하는데 성공하는 등 위기를 맞을 때마다 번번이 승리를 이끌어내 간간이 나돌던 실각설을 비웃으며 정치의 마술사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60세로 지난 31년 남부 러시아의 프리볼노예에서 출생,모스크바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78년 농업담당서기로 당중앙위에 진출,80년 정치국원이 됐다.헌법을 개정,지난해 5월 임기5년의 대통령직에 선출돼 공산당서기장과 겸직하던중 1년 남짓만에 도중하차하는 불운의 주인공이 돼버렸으나 고르바초프라는 이름은 세계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고르바초프 연보 ▲31.3.2 러시아공 프리볼노예에서 출생 ▲50 모스크바대 법학과 입학 ▲52 공산당 청년조직(콤소몰)에 가입 ▲78 공산당 농업담당 서기 ▲80 정치국정위원 ▲85.3.11 공산당 서기장 ▲85.8 핵실험 일방중지 선언 ▲85.11 레이건과 제네바에서 제1차 정상회담 ▲86.10 레이캬비크에서 레이건과 2차 정상회담 ▲87.12 워싱턴 방문,INF 폐기협정서명 ▲88.9 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 ▲89.5 북경방문,최고회의 의장 피선 ▲89.10 몰타정상회담,냉전종식선언 ▲90.3.15 5년임기의 초대대통령 취임 ▲90.5 워싱턴방문,미소정상회담,전략핵감축합의 ▲90.6 샌프란시스코한소정상회담 ▲90.10 한소수교 ▲90.10.15 노벨평화상 수상 ▲90.12 모스크바서 한소정상회담 ▲91.4.16 방일 ▲91.4.19 방한 ▲91.7.26 소련공산당 중앙위서 마르크스­레닌주의 포기,신강령안채택 ▲91.7.30∼31 모스크바서 미소정상회담,START(전략무기감축협정)조인
  • 신데탕트·페레스트로이카 “위기”(크렘린 대지진:1)

    ◎“개혁혼란·경제난 타개”구실,보수파 반격/동서화해 조류 역류 위기… 세계가 긴장 동·서화해의 새로운 국제조류가 역류할 위기를 맞고 있다. 2차세계대전이후 세계사를 지배해온 냉전시대의 막을 내리게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실각하고,소련이 다시 강경보수화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실각으로 소련은 최대의 정치적위기를 맞았으며 국제정치무대의 주인공 중의 하나였던 고르바초프의 퇴장은 국제정치 기류를 크게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 전세계를 놀라게 한 고르바초프의 실각은 최근 절정에 이른 소련내의 개혁파와 보수파간의 갈등과 대립에서 보수파가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소련 공산당은 지난15일 고르바초프의 핵심 측근이며 개혁정책 입안자인 야코블레프를 축출,개혁파에 대한 대반격을 본격화했다. 소련군부도 군기관지 적성을 통해 『군내의 모든 공산당원들은 일치단결하여 당과 군을 방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혀 오랜 침묵을 깨고 자기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었다. 소련의 강경·보수파들은 지난 16일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공장의 공산당 활동금지조치를 적용하자 더 이상 개혁파에게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20일로 예정돼 있던 신연방조약체결 하루전날 고르바초프를 축출했다. 강경파 지도자들은 소련의 새로운 「탄생」을 저지한 것이다. 관영 타스통신은 소련은 새로 구성된 국가비상사태위원회에 의해 통치될 것이며 의장은 겐나디 야나예프 부통령이 맡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권한은 소련 강경보수파의 상징인 군부와 KGB가 장악한 것으로 분석된다. 8명의 국가비상사태위원회에 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과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 KGB의장이 포함돼 있는 사실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위원회에는 또 발렌틴 파블로프 연방총리,보리스 푸고 내무장관등 강경파들로 구성돼 있어 소련이 다시 강경보수파의 통치시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알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은 동유럽의 대변혁을 가져오며 서방세계에서는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소련의 경제를 회복시키는데는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를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며 점진적인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시도해 왔다. 정통적인 공산주의 경제체제로는 소련의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접목시키는 「실험」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고르바초프의 실험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는 면도 없지않다. 소련의 경제성장은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때도 있었고 고질적인 식량난은 더욱 악화돼왔다. 더욱이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은 소연방체제의 「붕괴」를 가져왔다.리투아니아공화국등 발트해 3개공화국을 비롯,6개공화국이 신연방조약 가입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국가해체과정」을 더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밝혀,발트해 3개공화국 등이 주도하고 있는 소련내의 분리·독립움직임을 힘으로라도 저지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강경보수파들은 소연방이 해체되는 것을 막아야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분리독립을 추진하고 있는 발트해 3개공화국들의 독립의지도 매우 강하기 때문에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르바초프의 개혁으로 자유의 실체를 체험한 이들의 저항도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분리독립을 추진하는 공화국 국민들 뿐만아니라 러시아공화국등 다른 소련인들의 반응도 주목된다. 옐친대통령의 급진개혁 깃발아래 개혁을 서두르는 러시아공화국 국민들도 개혁이 후퇴될 경우 반발이 예상된다.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물론 비상사태선포가 소련 각부문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의 길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개혁의 속도나 방법에 대해 보수파들이 큰 불만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소련의 개혁속도는 늦추어지지 않을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강경보수파들도 개혁은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식의 개혁이든 현재 소련이 안고 있는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의 실각은 소련 국내보다 오히려 세계사적인 측면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도 할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갈등과 대립의 시대를 마감하고 동서화해의 새시대를 개막시켰다. 고르바초프의「대변혁 드라마」는 유럽의 정치지도를 다시 그리게 만들었으며 지구촌 곳곳의 분쟁을 하나 하나 해결시켰었다. 그의 개혁정책은 냉전의 마지막 잔재로 남았던 한반도에도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한국은 소련과 국교정상화를 이루었으며 북한도 지금까지의 철저한 고립정책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한반도의 긴장완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이같이 세계를 무겁게 누르고 있던 냉전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화해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창출하는데 미국과 함께 주연역을 맡았었다. 그러나 세계사를 바꾸어 놓은 고르바초프의 「정치드라마」는 대단원의 막이 내리기도 전에 또다른 힘에 의해 중단됐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이 강경보수파에 의해 중단된 것이다. 소련의 보수화는 미국을 주축으로한 서방세계를 긴장시킬 것이다. 미국은 고르바초프를 소련역사상 최초로 믿을만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를 체결하는 등 미소밀월시대를 맞았었다. 그러나 미소의 밀월시대는 일단 끝났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냉전의 시대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정치분석가들은 전망한다.소련도 「스탈린이나 브레즈네프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국제정치 역학관계는 미국의 대소대응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새로운 지도자들과 어떤 관계를 정립하느냐에 따라 국제정치의 성격도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시대의 화해의 새국제질서가 정착되기는 당분간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의 환한 웃음이 국제정치무대에서 사라지면서 국제정치가 난기류에 휩싸이고 있다.
  • 북한 행정구역·정겹던 옛 지명/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분단 반세기만에 펼친 북녘 산하의 지리지/김일성 우상화에 1백여곳 “개명”/50여 차례나 개편,낯선 타향/6도 9개시서 9도 24개시로/237곳은 「노동자구」로 바꿔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 광복 46년,분단 반세기를 맞은 북한의 강산은. 자강도·양강도·전승동·해방동.북녘의 산천은 옛모습 그대로일지 모르나 행정명칭과 지역의 이름은 세월의 켜만큼이나 숱하게 고쳐지고 바뀌었다. 북한은 해방이후 모두 50여차례의 행정구역개편을 통해 해방당시의 6도 9시 89군을 1특별시,2직할시,9도 24시,1백47군 1백50읍,4천2백42리(동),2백37 노동자구등으로 바꾸었다. 북한의 수도이며 행정 중심지인 평양은 1946년 특별시로,개성(1954년)과 남포(1980년)는 직할시로 승격됐다. 특히 평양은 해방이후 20여 차례에 걸친 확대개편을 통해 2천㎦가 넘는 광역으로 변모했다. 북한은 또 행정구역개편과 함께 유서깊은 옛 지명을 없애고 엉뚱한 이름을 붙여놓기도 했다. 지난 81년 양강도의 신파군이 김정일의 생모이름을 따 「김정숙군」으로,88년8월 양강도의 후창군이 김일성 망부이름을 따 「김형직군」으로 바뀐 것이 그 예. 북한은 지난 82년10월부터 「문화혁명」이란 그럴듯한 이름아래 학자와 대학생을 동원,지명과 동명 바꾸기 작업을 펴오고 있어 북한지명의 변모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북한의 이같은 행정구역 개편목적은 두가지.첫째는 그들이 줄곧 주장해온 남북협상을 통한 남북한 총선거가 실시될 경우 지역별대표제에 대비한 것이고 둘째는 김일성에 대한 충성심 제고를 위한 것이다.김일성우상화를 겨냥해 바꾼 지명은 지난 82년이후 1백여곳에 달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대포를 녹여 쟁기를 만드는 평화의 시대에 들어섰다.체제개혁과 개방,상호협력과 화해의 새로운 질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그럼에도 한사코 북한만은 개방을 거부하며 2천만동포들을 주체사상이란 옹이박이 기둥에 비끄러매놓은채 체제수호를 소리높여 외치고 있다.세계사의 새로운 흐름속에 흔적도 없이 삼켜질 「고독한 외침」을.
  • “이젠 좀 조용합시다”/강수웅 정치부장(데스크시각)

    결론부터 말해 보자.이제는 좀 조용히 하자는 것이며,과욕에서 자신들을 해방시키라는 주문이다.젊은층의 시니컬한 함축어 「못말려」라는 비난을 끝까지 듣고 싶은가.이것은 비단 우리 정치풍토의 「장애물」로 지칭되는 김씨 몇사람에 국한되는 말은 아니다.비난 받는 정치권 인사와 국정을 수행하는 일부 공직자가 그 대상일 수도 있고,언론도 해당될 수 있다.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인가의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이다. ○“못말려” 비난 들을건가 그러나 모든 국민이 생업은 제쳐두고 대통령되는 일에만 신경을 쏟는다면 나라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국민은 현명하다.적어도 대통령이 되고 싶은 몇몇 사람들 보다는 사태를 더 잘 꿰뚫어 보고 있다.그들은 말없는 다수로 남아있을 뿐이다.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것도 잘 안다.한국은 오는 9월17일이면 유엔회원국이 된다.유엔가입신청서는 이미 제출됐다.북한도 마찬가지이다.통일의 기운은 익을 수밖에 없다.그러나 우리사회가 이대로 정비되지 않은 채 통일을 맞았을 때 과연 어떤 결과를 빚을 것인가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본 사람은 있는가.우리 체제를 공고히 다지지 못한 경황중의 통일은 환상일 뿐,우리의 것이 될 수 없다.40여년 분단의 갭을 메우기 위한 준비는 의식·법령·제도는 물론 문화적 갈등의 해소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서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더구나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정세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동구의 사회주의는 잇따라 몰락했고 드디어 소련은 공산주의를 버렸다.미국은 걸프전 이후 새로운 패권주의를 구가하려 하고 있으며,일본과 통일독일은 그들의 경제발전 속도에 가속력을 더한다.세계각국은 「국제화」를 앞다툰다.이것은 21세기를 턱앞에 둔 세계사의 흐름이다.또 하나의 흐름이 있다. 삶의 질이 향상되지 않고서는,나아가 국부가 축적되지 않고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힘을 쓸 수가 없다.우리가 「경제화」를 지향하지 않을 수 없는 소이이다.우리의 처지는 우리가 한때 문화적 우위를 자랑하며 깔볼 수 있었던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GNP) 2만2천달러의 4분의1 안팎에 불과하다.한시도 한눈을 팔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이런 상황속에 젊은이들은 편한 일,쉬운 일만 찾아 나선다. 택시운전사보다는 술집 웨이터쪽을 택한다.장자의 권위는 인정되지 않으며,도덕성은 황폐되어 있다.그런데도 정치지도자들은 이 사회를 다시 어디로 이끌려는가.국민들은 소모적 정치행태에 지겨움을 느낀다.20년이 넘도록 『나는 대통령만 하겠다』는 집착을 딱하게 생각한다.「못말릴 사람들」이라고 치부한다.안정된 사회,풍요한 삶,국제적 지위향상의 당면과제는 덮어두고 『내가 대통령이 되겠으니 밀어달라』고 멀리 제주섬에서부터 소리친다.그러나 국민적 의식의 흐름은 감각이 다르다. ○역겨운 소모적 정치 장충단공원에서,여의도광장에서 모인 청중숫자를 1백만,2백만명으로 비교해가며 사자후를 토하는 자신을 「생래적 대통령」이라고 착각할는지 모른다.역사의 흐름은 이를 거부한다.아집과 독선의 정치인,낡은 생각을 가진 정치인은 이제 그만 물러나 달라는 것이 흐름이다.주권의 표현방법에 있어서도 다른 궁리는 얼마든지 있다.조용한 선거,돈안드는 선거,국민의 편을 갈라놓지 않는선거를 더 많은 국민은 희구한다.대통령은 보통사람이 한다.태어날 때부터의 대통령은 없다.능력있는 깨끗한 사람이면 누구나 대통령이 되는 꿈을 가질 수 있다.그런 뜻에서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를 미리부터 정해놓을 필요는 없다.현직대통령의 임기는 1년7개월이나 남겨놓고 있다.국민의 손으로 선출한 대통령이 훌륭히 국정을 수행하는데 아무런 하자도 없다. 다음 대통령 후보를 미리 정해 놓음으로써 무슨 이득이 국가·사회에 있는가. 국가의 정점을 이극화함으로써 국력을 분산시키자는 의도인가.선거전략상의 문제를 고려에 넣지 않는다면,후보결정은 늦으면 늦을 수록 좋다.정치권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모든 국민은 내일의 번영을 위해 힘을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개인의 정치적 야망을 탓할 수는 없다.국가발전에의 역행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문제로 부각된다.다케시타(죽하)우노(우야)가이후(해부)정권을 창출해낸 일본정계 최고의 실력자 가네마루 신(김환신)전부총리는 총리메이커이면서도 자신이 총리가 될 생각을 꿈에도 않고 있다.그 자신 국민적 인기가 없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막후실력자로서의 영향력 행사에 자족한다.과거 김동길교수는 김씨들에게 낚시나 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그것은 김씨로 상징되는 구태정치인으로 해석하고 싶다.그것은 가혹한 일이다. ○늦으면 늦을수록 좋아 정치를 그렇게도 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못하게 말리면 금단현상을 일으킨다.우리사회는 민주사회이니까 마음껏 정치발언을 할 기회를 가지라.정치활동도 계속하라.그러나 말에 의미를 부여해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언론을 상대로 하지말고 안방에서 하라.직접 나설 생각은 말고 뒤에서 리모트 컨트롤만 하기 바란다.그랬을때 역사의 흐름은 그들이 남긴 민주화투쟁의 공로와 더불어 국가안정의 디딤돌로서 영원한 고마움을 표명할 것이다.
  • 제목과 내용이 다른 나라­중국/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중국 광동성 심수는 우리들에게 처음부터 조금 잘못 알려졌다.우선 「심천」이 아니라 「심수」이다.그러나 중국인들은 이를 「센첸」으로 발음한다. 경제특구로 지정된 심수를 흔히들 중국의 자본주의 실험창구라고 부르지만 이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광동성 저아래 변두리 한촌이었던 심수는 11년전에 중국 자본주의실험창구로서가 아니라 그냥 「자본주의 도시」로 지정,개발됐다.홍콩에서 기차로 20여분이면 훌쩍 넘어갈 수 있는 심수는 이제 홍콩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도시가 돼있다. 그렇게 볼때 중국 자본주의 실험창구라면 오히려 그 수도 북경쪽이 더 가깝다. 어쨌거나 짧은 기간 중국대륙을 여행한 끝에 얻은 나름의 결론은 중국이란 참으로 크고 무섭고 이상한 나라라는 것이었다.사회주의 중국이 표방하는 제목과 그 사람들이 연출해내는 내용은 전혀 다르다.제목과 내용이 아주 다른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우리는 오늘날 하나의 거대한 세계사적인 실험을 지켜보고 있다.근1세기전 새로운 세계관으로 등장하여 혁명적변혁을 이룩했던 마르크시즘이 근본적으로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자본주의의 타락과 몰락을 예언하며 자기비판을 강요했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독화살이 이제 그 자신에 되돌아가 꽂히게 된 것이다. 『공산주의는 실패했다』는 역사적인 자아비판을 공식문서로 채택하고 소련공산당 중앙위 전체회의는 끝났다.그로써 동유럽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경제는 「제도적」으로,그리고 「사실적」으로 종막을 고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인식에 혼동을 주는 사회주의 국가가 있다.그게 바로 오늘의 중국이다.제목은 사회주의인데 내용은 무척 자본주의적이다.아니 자본주의로 가고 있는데도 이것을 인정하는 공식문서는 한장도 없다.오히려 자본주의노선을 걷는 「주자파」는 아직도 공개적으로는 이단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과거 주자파에 대해 모택동이 벌였던 지각변동과도 같았던 대량 말살운동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다시 등장했다.등력군 등 중국공산당내 극좌이론가들은 그 주자파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제2의 문화혁명을 발동해야 할 때가 왔다는 식의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사회과학원의 미래학자 하신은 보다 더 보수적이다.하의이론에 따르면 세계의 자본주의 선진열강은 중국이 그 능력과 위상에 걸맞는 국제적 역할을 수행하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앞으로 3년이내에 중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것이다.그래서 중국은 이 신제국주의세력과의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위」의 공식이론과 「아래」의 움직임이 전혀 딴판인게 중국이다.그들 극좌이론가들과는 달리 이붕을 비롯한 전기운 추가화등 당정고위층들은 자본주의 국가의 손님들과 악수하고 8차 5개년계획을 직접 브리핑하며 중국에 투자하는 나라는 무조건 친구 나라라며 파안대소한다. 북경의 번화가나 천안문 광장은 밤낮없이 인산인해를 이룬다.왕부정 대가의 수없는 상점들에는 온갖 상품들이 지천으로 흘러넘치며 사람들 또한 물결친다.호텔·식당·백화점·극장들에다 자영상점들도 즐비하고 멋쟁이 아가씨들도 많다.저녁시간 북경 TV를 보노라면 한프로그램 앞뒤에 끼여드는 10여가지의 상품선전 광고에 눈이 부실지경이다.개방 중국 수도의한면이다.물론 상해는 더하다. 그런 점에서 경제특구 심수야말로 오늘날 중국의 이중구조­제목과 내용이 다른­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곳이다.심수는 잠안자는 도시다.새벽1시에도 중심가 화문로일대는 대낮같이 밝다.줄지어 늘어선 「가랍OK」(가라오케),무도장·가무청(댄스홀)·야총회(나이트클럽)의 현란한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이 어우러져 불야성을 이룬다.뒷골목들도 이에 지지않는다. 주자의 도시 심수에는 시인민정부(시청)청사가 둘이 있다.제1청사는 정치·행정부서이고 제2청사는 경제개발 계획과 각종기획·투자유치와 집행부서가 들어있다.심수경제의 심장부이기도 한 곳이다. 경제발전과 개발의 모든것을 실무차원에서 지휘하는 「심수시 투자촉진중심」의 부처장인 여국추씨와 심수시 경제개발국 부국장인 이청삼씨는 그래서 그런지 외모부터가 퍽이나 「자본주의적」이다.그들은 모두 놀랍게도 명확한 어조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칙과 효용성을 지지했고 제품가격결정의 자율성과 경쟁성을 강조한다. 우리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삼성이증자형식으로 참여한 화리전자유한공사의 사장 고래지씨도 마찬가지다.그 역시 경제의 시장성과 가격결정의 자율성및 경쟁성을 강조하는 한편으로 사회주의적 중앙통제에서 오는 기업의 비능률을 거리낌없이 비판한다.고씨는 그러면서 『세계가 사회주의 중국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인식하고 이해하려면 오랜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현재의 고충을 말한다. 천안문광장 건너편 정면에 인민영웅기념비가 있고 그 바로 뒤쪽 일직선상에 모택동 기념당이 있다.화국봉이 2억원이나 되는 국비를 투자해 지은 이 건물 중앙의 넓은 홀에는 오성공기로 하반신이 둘러싸인 모택동의 유해가 안치,공개되고 있다.이 기념관을 참배코자 수십만의 중국인이 뙤약볕아래 도열해 있는 것이다.그들은 「주자」를 박해한 모의 과거를 알지도 못하고 알려하지도 않을 것이다.다만 무언가 달라지고 보다 잘살면 그것으로 족하고 그래서 「사회주의 중국」의 아버지인 모의 유해에 경배하고 숙연해지는 것이다.그들의 행태에 주자의 요소는 자리잡고 있는 듯했다.그것이 모순인가 아닌가는 시간이 해결할 것이다. 중국의 오늘과 우리의 위상등 지난 몇년의 흐름은 우리 북방정책의 당위,나아가 그 불가피성을 말해주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오늘의 중국에 대한 정확하고 냉철한 인식과 이해위에서 추진돼야 할 것이다.
  • 외언내언

    「나이키」「리복」「아디다스」「LA기어」가 무엇인지를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신발의 세계적 상표들.우리 TV화면에까지 이들 광고는 요란하다.그러나 이 신발의 대부분은 우리가 만들어 주는 것이다.이것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그래서 물건은 우리가 만들면서 왜 우리상표는 세계화가 안되는가를 아쉬워 한다.◆특히 스포츠용 신발에서는 세계 최첨단기술과 생산라인까지 우리가 갖고 있다.이는 또 세계시장이 알고 있다.세계에서 드문 신발연구소도 한국에 있다.재정보조를 조금만 더해주면 문자 그대로 세계최고 연구소가 된다는 장담을 하고 있다.이것도 국내에서보다는 세계가 인정한다.부산에 있는 불과 종업원 90명의 한 영세신발회사는 또 최근 사이클화업계에서 빛나고 있다.생산라인 단 1개로 세계사이클화시장 10%를 점유했기 때문이다.◆이게 바로 우리 신발업이다.아마도 국제시장에서 부가가치가 있는 상표로 등장할 가장 확실한 품목이 신발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지금 싸구려 신발까지 수입을 하고 있다.알려진 바 우리가 만들어 내보냈다가 상표만 붙여 비싸게 들여오는 신발만이 아니라,아예 무명신발까지 사들여 오고 있다.그것도 싸구려 업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으젓한 대무역상사나 바로 유수한 신발제조업자들이 하는 일이다.◆지난 상반기 34억원어치쯤 들여왔다 하니까 언듯 얼마안되네 할지도 모르겠다.그러나 고가사치품도 정신없이 들여다 쓰고 이제는 싸구려도 몽땅 가져다 쓰자고 한다면 우리 소비양식은 과연 어떻게 되는걸까.이점을 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국산품 애용」이라는 국가적 캐치프레이즈는 이제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어중간한 것들의 몫이 되는가.그런 어중간한 제품이란 과연 어떤 상품가치를 갖는 것인가.◆이런 질문들이 있을 수 있다.한국기업의 체면과 입지도 마찬가지다.도대체 지금 만드는게 무엇인가.그리고 파는 것은 더욱 무엇인가.
  • “남북이 개방의 조류 맞춰 역사의 새 지평에 동참을”

    ◎박 의장,제헌절 기념사 제43주년 제헌절 기념식이 17일 상오 국회 중앙홀에서 박준규국회의장을 비롯한 각계인사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박의장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정치민주화의 숙원이었던 지방자치화시대가 열리고 유엔가입이라는 40여년의 숙원이 성취되는 이 마당에 우리는 헌법에 대한 충성심이 더욱 굳건해지는것을 느낀다』면서 『국제적인 다원화시대,번영과 평화의 시대,그리고 자유민주주의의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은 우리헌법과 그 정신을 살리고 더욱더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의장은 또 『세계사에 우뚝선 한민족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개방과 개혁의 세계조류,자유민주주의 전성시대를 여는 역사의 새 지평선에 함께 동참해야 될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서는 통일한국을 바라보는 헌법과 각종 법체계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외언내언

    세계사람들이 한국인을 비웃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너무 일찍 마셔버린 샴페인으로 꼬집힌 것은 벌써 지난해의 일인데 이번에는 겨우 6천달러 국민소득 이뤄놓고 2만달러나 돼야 앓는 「선진국병」에 걸린 한국을 일본신문이 비웃고 있다.잔뜩 조로현상에 걸려서 6천달러정도로 무슨 큰 벼슬이나 한 것처럼 흥청거리고 있음을 자신들의 경우와 빗대어 꼬집고 있는 것이다.◆한국을 비웃는 언론은 일본만이 아니다.태국조차도 연일 비웃었다.한국관광객이 전세기를 타고 구름처럼 몰려가 돈을 마구 뿌리고 오는 데도 멸시해가며 야만인 취급을 했다.다소 게으르고 문맹률이 높으며 민주화라고는 멀어 보이는,10대소녀의 매춘이 국제회의에서까지 문제가 되는 나라가,조각난 한국말로 한국관광객에게서 외화를 뺏어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나라의 신문까지가,「한국인비웃기」에 이렇게 침을 튀기도록,우리는 되어 버렸다.◆태국만이 아니다.중국도 비웃었다.한국관광객의 추한 몰골을 대서특필해가며 비웃었다.홍콩은 심심하면 한국관리의 오염을 열거해가며 즐긴다.이런 일을 「추악한 일본인」이 지구촌을 누비던 시절과 유사하다고 말한다.그러나 그건 잘된 비유가 아니다.그들은 성공할수록 방심하지 않고 노력하는 「이상한」민족이다.더러 추악한 여행은 할지 몰라도 조로병은 걸리지 않았다.◆일본은 전천후 무역흑자에 제조산업 제품의 불량률이 0.5%도 안되는 민족이다.우리의 경우 그것이 6%나 되는데.일본처럼 「이상한」민족이 20억 중국인이기도 하다.사회주의국가를 경험한 나라들이 가진 나태하고 의존적이며 「개인의 이익찾기」의욕을 상실한 증후를 중국민족만은 갖지 않았다.그들이 덜미를 치며 추격해오는 중인데,잔인하고 충격적인 방법으로 산곰의 쓸개나 빼먹어가며 자기 쓸개는 빠져가는 민족,한국인은 그렇게 타락해가는 것일까?
  • 여·야대표 유엔가입 찬성연설

    ◎김영삼 민자 대표/“대결서 공존으로”… 민족사적 대전환 지난 40년간 민족발전을 가로막았던 족쇄가 풀리고 이제 대한민국도 주권국가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이제 우리에게는 유엔이라는 국제무대에 나서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사회주의체제 몰락에 이은 동유럽국가들과의 수교,그리고 마침내 소련과의 국교수립,걸프전이후 신국제질서의 형성속에서 추진되어 온 유엔가입 정책 등은 세계사의 흐름의 중심부로 우리가 진입해 있다는 것과 우리가 올바른 좌표를 설정했다는 것을 웅변해주는 것이라 하겠다.무엇 보다도 북방정책의 가장 빛나는 성과는 소련과의 관계정상화였다.북한의 가장 가까운 우방인 중국과의 관계도 놀라운 속도로 진전되었다.이번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 실현은 한반도가 대결의 시대로부터 공존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통일의 길목으로 접어든다는 민족사적 전환을 뜻한다. 앞으로 남북한이 국제평화의 무대인 유엔에서 서로 협력하는 방법을 모색하면서분단극복을 위한 평화적방안을 찾기위해 진지한 대화와 협의를 진행하기를 기대한다.우리의 유엔가입은 또한 국제질서의 전환기에 우리나라가 매우 중요한 국제적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그러나 우리 내부를 돌아보면 우리는 안타깝게도 여전히 지역간·계층간·세대간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소모적인 대립의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국민은 더이상 대립과 갈등의 정치를 원하지 않으며,희망과 결실의 정치를 원하고 있다.지난해 3당 통합을 한 것도 이러한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통일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따라서 이번 유엔가입은 우리 내부의 화합을 이루는 큰 계기가 돼야할 것이다. ◎김대중 신민 총재/남북 정당대표 교류 정부서 모색을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은 해방이래 최대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국제법상으로 볼때 우리는 명실상부한 국제공동체의 한 구성원이 된것이다.따라서 남북은 서로 협력해야하고 외교관계도 대표부형식으로 교환해야하며 남북간 여행과 무역등 각종교류의 길이 크게 열려야 한다.우리의 대북정책도 근본적인 개혁이 있어야한다. 노태우정권은 내부에 있는 반통일세력을 정리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북이 안하니까 우리도 안하겠다는 것은 졸렬한 얘기이고 패배주의다.북한도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북한로동당 규약의 전문에 있는 「조선로동당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반도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는 내용은 마땅히 삭제되어야 한다.남한과의 교류접촉에 대해 가혹한 처벌을 규정한 북한의 형법도 개정되어야 한다.통일문제는 결코 어느정당이나 정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고 관계자들이 충분히 협의해서 단일안 또는 복수안을 국회의 의결과 국민투표에 부쳐 채택해야 한다.지금 여권의 일부에서는 독일식 흡수통일을 꿈꾸는 세력이 있다.대한민국에 의한 흡수통합은 가능하지도 않고 해서도 안된다.흡수통일의 자세는 북한내부의 강경파만을 득세하게 만들고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킬 뿐이다.학생이나 재야인사들이 북한에 가겠다면 조건없이 보내주고 TV와 라디오도 일방적으로 개방해야한다.북한에 대한 연구의 자유도 보장돼야 한다. 통일문제는 노정권만이 독점해서는 안되며 야당과 공동대처해야 한다.남북간정당대표 교류를 정부가 고려할때가 왔다.노정권이 원한다면,그래서 나의 방북이 남북간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위한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북한을 방문할 용의가 있다.
  • “중국공산당 독재 고수/사회주의식 경제개혁 지속 추진”

    ◎강택민 총서기,창당70돌 연설 【북경 UPI 로이터 연합】 중국당총서기 강택민은 1일 세계사회주의의 쇠퇴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한 것이라면서 중국은 결코 공산당의 권력독점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은 이날 중국공산당 창당 70주년을 맞아 북경의 인민대회당에서 행한 기념연설에서 중국은 「공산주의 독재기능」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말하고 『오늘날 세계사회주의가 명분면에서 다소 심각한 쇠퇴를 경험하고 있으나 이는 역사상 일시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에서 서구식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것은 공산당의 지배를 종식시키자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우리 인민 전체는 결코 이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인민의 민주적 독재는 약화되거나 포기돼서도 안될것』이라고 말했다. 강은 2시간 가까이 계속된 이날 연설에서 의례적인 중국의 시장경제개혁의지를 거듭 천명하면서도 『중국은 먼저 국가소유의 사회주의경제를 통합·확대해 나가야하며 결코 자본주의경제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중국공산당은 이날 관영언론매체들을 동원해 통상적으로 중국인민해방군을 지칭하는 「철의 대장벽」이라는 용어를 사용,서구식민주주의의 침투를 저지하기 위해 「철의 대장벽」을 굳건히 건설해 나갈 것임을 다짐했다.
  • 통일·민주화 굳건한 의지 보았다/노경수 미 스탠퍼드대교수

    ◎노 대통령의 「후버연 연설」을 듣고 예상밖의 압승을 민자당에 가져다준 광역선거 10일후,그리고 6·29선언 4주년을 맞는 이날로 예정된 노태우대통령의 후버연구소 초청연설은 그동안 후버연구소뿐만 아니라 스탠퍼드대 교수 학생및 전미국인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기대를 모아왔다. 80년대에 들어서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앞으로 이지역에 관한 다양한 학과목들을 신설할 구상을 하고 있는 스탠퍼드대학으로서는 이시점에 한국대통령이 방문하는 것을 큰영광으로 생각하기에 충분하다.노대통령 또한 지난해 6월 소연의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역사적인 만남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루어진만큼 이곳을 방문하는 데에는 특별한 감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믿어진다. 후버연구소에 도착한 노대통령은 이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있는 조지 슐츠 전미국무장관과 존 레이지언연구소장의 영접과 안내를 받으면서 오찬장에 입장했다.이날 오찬연설의 초청대상인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미연방정부 전·현직고위관리,지역 유명인사,후버및 스탠퍼드대 저명학자들 틈에 끼어 이자리에 참석하게된 필자에게도 사뭇 감개가 무량했다.지난 70년대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때만해도 우리나라는 유신치하에 있었고,한국정부의 대외적인 이미지는 무척 손상되어 있었음은 다시 언급할 필요도 없다. 아무리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해도 그와 병행된 정치적 발전을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 우리들의 노력에 대한 평가는 커녕 외국인들의 날카로운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우리나라에 대한 비판은 특히 미국대학 캠퍼스에서 더욱 심했다. 노대통령이 연구소의 교수들과 학생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연설장으로 입장하는 장엄한 광경을 바라보면서 20년만에 너무나 많은 것이 변하고 조국이 정말 발전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함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노대통령은 이제 세계10대 교역국으로 부상하고 민주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대표해 모두의 환영속에서 참석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연설을 비롯한 오찬행사도 시종 부드러운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었다. 노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금세기 세계사를 피로 얼룩지게한 혁명과 전쟁의 시대는 마감되고 있으며 보다 나은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노력은 대결이 아닌 상호협력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강조했다.그리고 이러한 대원칙을 바탕으로 21세기를 향한 한국의 외교는 평화롭고,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국제질서 설계과정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임을 다짐했다.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은 보호주의가 아닌 자유로운 경제질서를 지지할 것임과 동시에,불과 10년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나라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도 분명히 밝히면서 이어 현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위치한 중간국가로서 아태지역 경제발전에 촉매가 되겠다는 포부도 자신있게 다짐했다. 노대통령은 남북한 관계에 언급하면서 최근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겠다고 정책을 바꾼 대목에 대해 북한당국도 냉전이후의 변화된 국제질서와 북방정책으로 인해 조성된 한반도 주변의 새로운 동북아 지역질서를 무시할 수 없게된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오는 9월 유엔총회 개막과 함께 이루어질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은 궁극적으로 북한을 개방된 세계로 유도하고,한반도의 불행한 분단사를 타개하는 긍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라고 노대통령은 전망했다.끝으로 노대통령은 해방 이후 한국이 자유와 민주주의 이상을 추구해온 과정에는 많은 굴절과 파란이 있었음을 말하고,그러나 6·29선언이후 지난 4년간 경주돼온 민주주의 토착화 노력은 앞으로도 흔들림없이 지속될 것임을 약속했다. 참으로 참석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주는 연설이었다.참석한 미국인 학자들도 좋은 평을 아끼지 않았다.그러나 오찬장을 나오면서 연구소밖 한구석에 몇사람이 모여 노대통령의 방미를 반대하고 주한미군 철수와 정치구속자 석방을 외치고 있는것을 보면서 조국의 현실이 아직까지는 그저 희망스럽기만 한것은 아니라는 엄연한 사실 또한 새삼 느끼게 했다. 노대통령이 말했듯이 지난 3∼4년간 우리나라가 민주정치를 향해 괄목할만한 발전을 한 것은 분명하다.그러나 아직까지 정도 이상의 자신감이나 자만은 금물이다.불안한 국내 경제사정,사회적인 혼란,심해지고 있는 계층간 갈등의 해소,그리고 국제무대에서뿐만 아니라 남북한간의 직접적인 협상을 통한 폭넓은 신뢰와 협력을 구축해야 하는 크나큰 숙제가 앞에 놓여 있는게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급변하는 국제환경에 적응하고 이 소용돌이 속에서 국익팽창을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국익확보와 국가의 밝은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 그 못지 않은 노력이 국내에서도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국민 모두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노대통령의 성공적인 미국방문도 결국 우리국민 모두가 그동안 국내외에서 땀흘려 일한 결실이며 이 결실을 앞으로 더욱 알차게 거두어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번 노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다시한번 인식해야겠다.
  • 정치사속의 짧은 홍수·긴 가뭄/김용운 한양대교수(서울시론)

    ◎분수 지켜 자유범람에 대비해야 대원군이 몇개월 전에 TV 사극으로 상영된 적이 있었다. 조선말의 이 나라 지도자와 백성의 사고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다. 일본의 근대화,소위 명치유신이 일어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인은 조선을 월등한 문명국으로 보아왔다. 필자는 그러했던 조선이 허망하게도 가엽게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만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사극 대원군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한마디로 조선은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데에 사회적 제도는 물론 개인의 정신면에서도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 것이다. 국민국가란 지도자는 스스로의 책무를 자각하고 또 저마다의 국민은 자신의 처지를 명확히 의식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국민국가를 성공적으로 이끈 국가에서는 자신의 주장보다는 「국가」를 앞세우는 지혜가 있었다. 영국의 나이트,프랑스의 조블,일본의 사무라이,독일의 융커 등은 전쟁 때 스스로 일선에 서야 할 의무를 자각하고 희생을 특권으로 여겼었다. ○조선조 망국의 원인 대원군이 활약하고 있었을 무렵 일본은 명치유신을 성공시키고 이미 완전한 국민국가의 태세를 갖추었다. 국민국가의 지도자는 자기의 가문이나 지역에 대한 이익보다도 국가의 이익을 앞세워야 한다. 대원군 시대의 지도자는 저마다 자기 가문의 세도에 혈안들이 되어 있었다. 안동 김씨니 전주 이씨니 민씨니 서로가 팔을 자신의 가문에 굽히고 있는 동안 일본은 그 파벌싸움의 구조를 교묘하게 이용했던 것이다. 일본의 특권계급이었던 무사단들은 순순히 자신의 특권을 내놓았는데 조선의 지도자는 일단 손에 들어온 특권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일본 농민들은 자신들의 번에 침입한 적병에 대해서도 전혀 무관심했으며 오직 생업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조선팔도의 농민은 방방곡곡에서 의병운동을 일으켰다. 정신면에서는 조선 농민이 일본 농민보다 훨씬 애국적이었으나 변변치 못한 지도자 밑에서 의병운동은 나약하기만 했다. 조직적인 전투에서는 지도자가 희생을 해야 하는데 못난 지도자밖에 없었기에 농민 스스로가 나섰던 것이다. 이빨이 없으니 잇몸이나섰던 셈이다. 그러나 잇몸에는 한계가 있다. 세계사상 마르크스·레닌이즘이 나오기 전에 농민 스스로 나라를 위해 나선 나라는 오직 조선의 의병뿐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의병의 성공적인 활동은 임진왜란 때까지였다. 그 후의 의병운동은 한결같이 좌절하고 만 것이다. 근대적인 무기를 지닌 백인 앞에 용감하게 나섰던 인디언의 저항이 모두 좌절했던 것처럼 말이다. 산업사회화가 국민국가의 형성을 요청했다. 그러나 산업사회를 성공시키기 위한 중요한 요소가 분업의 정신이다. 아담 스미스 이래 모든 경제학자들은 분업과 산업의 발달을 같은 차원에서 논했다. 특히 서구와 일본의 경제발전에는 개인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윤리적 자부심이 크게 기여했음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분업의 윤리성이다. ○장인정신 절실하다 서구 자본주의 정신과 기독교의 윤리(M 베버)에서는 장인의 사명감이 기술을 발전시켰고 자본가에게 있어서의 기독교적인 분배의 정신을 주시하고 있다.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개인의 직업에 대한 윤리성,즉 어떤 분야라도 좋으니 그 분야에서 천하제일의 정신이 있었고 지도자들은 할복자살로 책임을 다하는 책임감이 있었다. 일본이 선진국의 지위를 획득하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대원군 시대,조선의 지도자가 자신의 가문만을 내세우고 또 모든 국민은 자신의 자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우리의 근대 국민국가의 성장은 역행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19세기말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국민국가 형성에 실패한 한국인은 지난달에 대한 큰 반성의 정신적 작업도 거치지 않은 채 새로운 세계사 조류의 분기점에 섰다.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의 길이다. 해방 이후 역대의 대통령은 저마다의 가문이나 지역에 대한 이기심을 내세웠다가 모두 좌절했다. 망명­암살­은둔,국민국가의 지도자가 조선시대 이를테면 이도령식의 사고를 발휘함으로써 나타난 결과였다. 이도령은 벼슬에 올라 맨 먼저 자기 고향에 내려가 자기의 마누라부터 구했다. 고향,마누라,자기 팔을 안으로 굽히는 범위인 것이다. 오늘날,단순한 농업사회가 아닌현대의 다양한 산업을 기반으로 한 국민국가의 지도자가 조선시대의 출세관으로 정치에 임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북한의 김일성 체제가 멀지 않아 망할 것이라는 예측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가능할 수 있다. ○또다른 가뭄의 조짐 바닥이 얕고 경사도가 낮으며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 나타나는 것이 한국의 강의 모습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강의 대부분은 수일간의 홍수 뒤에 백사장의 긴 가뭄으로 이어지는 모습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의 정치사도 짧은 홍수와도 같은 자유범람과 긴 가뭄과도 같은 강권정치가 번갈아왔다.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또 하나의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또다른 가뭄을 예견하기 때문이다. 이 가뭄을 막아야 할 길은 분명하다. 지도자는 더 이상 자신의 가문이나 지역을 위해서는 아니되며,국민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여야 한다. 특히 정보화시대의 힘의 원천은 정보이다. 학생에게는 학문과 연구라는 중요한 과제가 있다. 미래의 국가의 번영은 과학·기술을 비롯한 학문적 수준이 가름한다. 학생에게 있어서의진정한 애국의 길은 학문밖에 없다. 돈키호테는 시행착오로 풍차에 돌진하여 신세를 망친다. 학생의 애국적 동기는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그 방법은 시대적인 요청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학문 이외는 그 어떤 것도 지난날의 되풀이만을 가져옴을 알아야 한다.
  • 외언내언

    「탐라」라는 아름다운 옛이름을 가진 제주섬은 실제로도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고장이다. 섬이어서 바다가 있고 그 바다가 유난히 맑고 푸르러서 환상의 휴양지로 적합하다. 북으로 백두가 있고 남으로는 제주의 한라가 있어서 이 두 영험한 산이 이 강토를 신성하게 지키고 있다는 믿음을 우리 민족에게 주기도 한다.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아 삼다지만 그래도 도둑이 없고 거지가 없어서 문도 필요없는 삼무의 섬이다. 요컨대 공해요인이 없었던 섬이다. 제주섬이 이렇게 있을 것과 없을 것이 분명한 고장인 것은 그곳 사람들의 기질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백이 있고 굽힐 줄을 모른다. 아녀자일지라도 기대어 살지 않고 스스로 삶을 개척하여 살기 때문에 게으른 남정네에게는 이 고장이 안성맞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기질로 항몽과 항일의 애국절개를 드높여 오기도 했다. 볼 것도 많고 소산도 다양하고 인심도 시원시원하며 절도높은 땅,제주의 자랑은 짧게 끝낼 수가 없다. 이 고장에서 오늘 한소정상회담이 열린다. 동토를 다스리는,오랫동안 얼어붙었던 사이의 상대국 대통령과 이 따뜻하고 풍광이 아름다운 땅에서 화해의 만남을 거듭하게 되었다는 일이 대견하고 다행스럽다. ◆지중해 한복판의 몰타섬과도 달라서 제주섬을 둘러싼 바다는 태평양으로 이어진다. 중국도 가고 일본도 가고 미국과도 이어지는 태평양 바다 위에 떠 있는 대한민국 땅이다. 이곳에서 나누는 「짧지만 긴 대화」에 세계의 이목은 목을 늘이며 쏠리고 있다. 한소 두 나라만이 아니라 세계평화에 도움이 되는 성과가 있으리라고 우리는 굳게 믿는다. ◆기왕에 아름다운 제주가 세계사에 부상하게 되었으니 이 기회에 착실한 실속도 쌓아졌으면 좋겠다. 또 최근 들어 급성장하고 있는 「회의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이 제주에서 본격적으로 확대되었으면 좋겠다.
  • “소련은 이제 밝혀야 한다”/장정행 국제부장(데스크시각)

    1983년 9월. 아직 초가을 이었지만 북방의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던 사할린의 바다는 창자를 끊는 듯한 통곡으로 가득했다. 이달 1일 새벽 KAL007기를 타고 뉴욕을 떠나 서울로 오다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공격으로 수중고혼이 된 승객 2백69명의 유가족들이 사랑하는 부모 아들 딸을 찾아 흔적도 없는 망망대해를 향해 울부짖었다. 세계가 다 함께 분노하고 상상할 수 없는 소련의 만행에 치를 떨었다. 사할린을 마주하고 있는 일본 최북단의 조용한 어항인 와카나이는 희생자들의 유품이라도 확인하려는 유가족들과 사고경위를 밝히려는 각국의 조사단,취재진들로 연일 붐볐다. 미국·일본,그리고 우리나라의 함정과 선박들이 사고해역에 몰려 한달 이상의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바닷가에 떠내려온 사고기의 일부 잔해와 승객들의 유류품 몇 조각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사고경위를 밝힐 수 있는 블랙박스도 발신음까지 포착했으나 끝내 회수하지 못하고 말았다. 소련 영해인 사고지점을 일찌감치 둘러싸고 있던 소련 함정들의 집요한 방해 때문이었다.소련은 무고한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유가족들의 뱃길마저도 함정과 전투기로 위협했다. 유엔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이 천인공노할 만행을 규탄하고 나서자 소련은 사고발생 3일 만에 타스통신을 통해 KAL기 격추사실을 시인하고,그러나 이 여객기가 첩보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얼토당토 않은 어거지를 썼다. 9일에는 오가루코프 참모총장 겸 제1국방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수호이 15전투기가 미사일로 KAL기를 격추시켰으며 KAL기가 소련 영공을 침범,첩보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출격전투기와 기지와의 교신내용을 분석,소련측이 경고나 강제착륙의 시도없이 격추를 명령했음이 밝혀져 있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건 경위는 아무것도 없는 형편이다. 다만 소련의 자유화바람을 타고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가 당시 수색작업에 동원됐던 잠수부,출격전투기의 조종사 등을 광범위하게 취재,최근 10회에 걸쳐 사건의 내막을 보도하여 진상의 일부가 알려졌을 뿐이다. 이 보도에 이어 공개된 사건 직후의 해저상황을 촬영한 몇 장의 사진은 소련이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그뿐 아니라 지금은 퇴역해 있는 출격전투기의 조종사는 당시 KAL007기가 여객기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명령에 따라 격추시켰다고 증언하고 있다. 수색에 동원됐던 잠수부들은 블랙박스로 보이는 오렌지색 상자도 분명히 인양했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의 한소관계는 83년과는 판이하게 변했다. 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적대관계에서 협조관계로 바뀌었으며 빈번한 교류와 함께 정식으로 국교가 수립되었다. 19일에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샌프란시스코 모스크바에 이어 세번째 한소정상회담을 갖는다. 비록 일본방문 후의 귀국길이고 회담장소가 서울이 아닌 제주도이긴 하지만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한국방문은 세계사에 남을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비단 한소관계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소련의 위상도 이제는 더이상 냉전체제의 한쪽 우두머리가 아니라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동참하는 위치로 바뀌었다. 따라서 이제는 KAL사건의 진상을 밝힐 때가 됐으며 또 당연히 밝혀야만 한다. 이 같은 불행한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련은 최소한 현재까지 그들이 알고 있는 사건경위와 왜 격추시켰는지를 밝혀야 할 책임이 있다. 아울러 지금까지도 항공계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KAL기의 항로이탈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회수한 블랙박스를 공개하여 국제적인 분석을 하도록 해야 한다. 거대한 보잉747점보기를 민간여객기로 알아보지 못했다든가,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승객 2백69명을 태우고 KAL기가 첩보활동을 했다는 등의 어거지로 사건의 진상을 더 이상 묻어두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이제 막 본격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한국이 KAL기 사건의 피해당사국이기 때문에 앞으로 두 나라 관계의 발전을 진심으로 바란다면 사건의 진상공개와 함께 그에 합당한 사과가 있어야만 한다. 소련은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면서 45년 동안이나 자신들의 행위가 아니라고 부인해 왔던 1940년의 폴란드군 대량학살 사건을 소련비밀경찰의 소행이라고 인정했고,「프라하의 봄」을 무참히 짓밟았던 68년 8월의 체코 무력침공도 소련정부의 과오였음을 솔직이 시인했었다. 그러나 소련은 KAL기 사건에 대해서만은 최근까지도 계속 「더 이상 아는 것이 없다」는 식으로 발뺌하고 있다. 이달 내한했던 로가초프 외무차관은 사건진상의 공개를 바라는 우리 국민들의 기대에 『냉전시대에 발생했던 불행한 사건이었다』고 대답하며 관련자료가 추가로 입수되면 한국측에 전달하겠다는 식으로 얼버무려 버렸다. 급속한 접근과 빈번한 교류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의 대다수가 모스크바에 대해 느끼는 인상은 어딘가 음흉하고 어둡다는 쪽이 아직도 강하다. 소련 대통령이 역사적인 방한을 하고 두 나라 정상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고 정답게 상호 관심사를 의논하는 마당에,그깟 이미 흘러간 불행한 사건을 더 이상 굳이 들출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소 두 나라가 경제적이나 통일·안보적 필요에 의해 일시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하여 참다운 협력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간의 신뢰가 회복돼야 하며 이 같은 신뢰를 쌓는 첫걸음이 KAL사건의 진상공개와 사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2백69명의 원혼과 그 유가족들을 달래고 평화를 사랑하는 자유세계에 소련의 변화를 확신시켜 주는 길이기도 하다.
  • 「정보혁명시대」의 지자제 선거/김용운 한양대 대학원장(서울시론)

    ◎타락선거 못막으면 중우정치 전락 오랫동안 중단되어 왔던 지방자치제가 근 30년만에 부활된다. 민주화와 더불어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보다 직접적인 요인은 범인류·세계사의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보화 현상」에 있다고 하겠다. 인류사에는 정보와 혁명이 이전에도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맞고 있는 것은 두번째 정보혁명이다. 첫번째 정보혁명은 구텐베르크의 활자의 발명이었다. 이로 인한 인쇄술의 발달로 성서가 보급됨으로써 신에 대한 정보를 독점한 사제계급을 무력화 시켰고 마침내 종교혁명을 야기하여 봉건제도의 기반을 흔들어 놓았다. ○“부정근절” 의지 확산중요 두번째 정보혁명은 현대의 「C & C」(Computer and Communication)이다. 하나의 정보가 순식간에 전 세계를 돌아 곧바로 다시 새로운 정보로 증폭,보다 높은 차원의 충격이 계속 생산되어 나온다. 첫번째 정보혁명으로 사제귀족이 보통사람이 되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제는 누구나가 귀족이고 보통사람인 것이다. 정보전달 수단의 발달은 또한교육의 보편화를 가져왔다. TV·라디오를 통한 방송대학은 더욱 더 앞으로 발전해 간다. 그리하여 누구라도 교육을 받게 된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철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보화는 긍정적인 면만큼 많은 약점도 있다. 가령 최근 세인을 놀라게 한 수서사건은 정보화시대가 아니었으면 그 충격은 도저히 그 처럼 크게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정보화 시대이기에 나쁜 것,좋은 것이 함께 순식간에 전달된다. 선거에서의 부정에 관한 정보도 단숨에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타락을 가속화시킬 수 있고, 그 반대로 국민 각자가 자각하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여 부정한 분위기를 없앨 수도 있다. 정보가 쉽게 일반인에게 전달됨으로써 누구나 쉽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노동조합·학생·시민까지 모든 활동이 정치성을 띠게 된다. 각자의 높은 목소리가 정치의 방향을 결정할 수도 있다. 이는 우리가 갈구했던 민주화가 아닌,일찍이 인류가 체험한 바 없는 대중사회의 출현이라 할 수 있다. 자칫 중우적인 경향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한국민의 체험에는 도시적인 생활이 없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2백50개 정도밖에 안되는 성씨,균질적인 마을이 수천개 있고 중간의 완충지대에 해당하는 건전한 도시가 없이 바로 서울에 이어지는 사회제도를 오래도록 경험해야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지방자치 제도가 쉽게 성숙해질 수도,또는 같은 이유에서 오히려 좌절될 수도 있다. 정보화가 가속화되면 대중화가 무질서로 이어질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그것을 막는 일이 곧 윤리성이 높은 지방문화의 창달이다. 「정보」란 일의 진행에 있어서 그 선택의 폭을 넓히고 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정보 사회의 특성은 그 선택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정보의 범람에 따른 문화현상의 당양화와 가치관의 다극화에 있다. 이에 맞게 지방차지도 획일화된 도시화 보다는 개성이 강한 지방문화의 창출해 기여해야 마땅하다. ○정치혼란 가중시킬 우려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맞추어 생각할 때 비슷한 지방의회가 각처에 생기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지방의회는 소위 정치만은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의원들의 진출로 지방마다 개성있는 의회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세계가 국제화되는 일은 모든 문화·인종 등을 하나로 융합시키는 일이 아니가,국가와 민족마다 스스로의 개성을 살려나가면서 서로 조화되도록 하는 일인 것이다. 데모크라시란 본랜 「대중(데모스)을 지배(크라티아)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질서를 유지하고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을때에만 그 존재의의를 갖는다. 데모크라시의 좌절은 결국 중우의 늪으로 빠지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본 고장인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은 중우정치를 경계하여 철인 정치를 주정했다. 바보들의 발언권이 커짐으로써 질서를 유지 못하는 경우보다는 철학자들의 정치,청렴하고 투철한 이성을 지닌 사람이 엄하게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국가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는 악마도 이용할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플라톤의 철인정치를 오용한 수많은 독재자가 나왔다. 스탈린,히틀러,최근의 이라크의 후세인도 예외가 아니다. 어찌되었든 우리에게는 단군이래의 풍요로움을 기반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새로운 지침이 요청된다. 예전의 윤리나 행동강령은 이에 어울리도록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가치는 돈이 아니라 보람이다. 우리가 선거에 돈이 풀리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히 타락선거라는 상식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이 사회 전체의 문화를 억압하는 폭력적 분위기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는 권력을 위한 것,즉 중앙 정치권에 대한 영향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방문화의 윤리성이 중앙권력의 가장 큰 제동력이 될 것을 믿고 우리의 희망을 그것에 걸어보는 것이다. 요즘 우리는 정치인의 무력함·무능함을 익히 통감했다. 나라의 미래를 그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으며 오직 건전한 시민정신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지방지치를 통해서도 이 같은 시민 정신이 구현될 것이다. ○참신한 지방문화 창출을 따라서 지방선거의 성격이 중요하며 내일의 국가적 양상에 그대로 반영될 것이 틀림없다. 새로운 시대에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윤리관이 요청된다. 정보화 시대이기에 민주주의가 될 수밖에없고 따라서 정보화 시대에 어울리는 지방자치가 실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늘 그래온 거처럼 중우정치에 빠지고 돈에 흐를 유혹이 있다. 지난날의 고식적인 사고로 그대로 미래를 추진시킬 수는 결코 없다. 이번 지방선거에는 우리 모두가 민족사적인 사명감으로 일찍이 체험한 바 없는 의식 개혁 속에서 종교혁명을 성취하는 마음으로 임할 것을 바란다.
  • 외언내언

    「남의 집 불구경 하듯 한다」는 말이 있다. 나와는 상관이 없고 재미있는 구경거리라서 걱정하는 체 하면서도 불이 꺼지면 얼마간 아쉬운 기분도 드는 묘한 인간심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 걸프전쟁을 보는 세계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 그런 심리가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니지. ◆「더이상 피할 곳 없는 이라크인들」이라는 제목의 외신기사를 읽으며 6·25 당시를 생각한다. 피란을 못가고 적치하에 남아 적군과 함께 3∼4개월씩 미군기들의 집중적인 공습을 당하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던 그때의 참상을 지금 기억하는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있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가 구분이 안되는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그 전쟁이 하루라도 빨리 끝나기를 얼마나 갈망했는지 모른다. ◆피폭 20일을 넘기고 있는 이라크인들의 참상이 어떨지 보지 않아도 알것 같다. 세계최강 군사대국들의 최첨단 전폭기와 미사일들이 총동원된 폭격이다. 전폭기들의 출격횟수가 5만회에 달하고 있다. 집계된 보도가 없어서 그렇지 군인은 물론 민간인 사상자도 엄청나게 많을 것이 틀림없다. 이런 상황에선 「민족주의」도 「반미」도 「성전」도 소용이 없다. 살아남는 것만이 지상의 과제일 수밖에. ◆이라크 땅 안에서는 안전한 곳이 없다면 많은 사람들이 탈출하고 있다. 그들이 전하는 참상은 더욱 충격적이다. 『나는 안과의사인데도 부상자의 팔·다리 절단수술을 포함하는 외과치료를 했다. 하루 3시간밖에 자지 못하면서』 바그다드를 탈출한 의사의 말이다. 시민들의 탈출방지를 위해 휘발유의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고도 한다. 비행기도 안보이는 상태에서 폭탄은 터지는데 어디서 어디로 떨어지는지를 모르니 불안이 극에 달해 있다고 한다. ◆『매일 새벽4시를 1인당 다섯숟갈분의 식사와 빵 한쪽,그리고 약간의 물을 주는 것이 하루 배식의 전부다』 쿠웨이트 전선에서 탈출한 이라크군 병사의 말이다. 이 엄청난 희생을 무릅쓰면서 후세인이 지키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지도자 잘못 만난 나라의 불행이 어떤 것인지를 보는 것같다.
  • “높아진 대외위상 내치로 연결”/새총리의 새국정 포부

    ◎창의적 행정 바탕,위정 참모습 보일터/“성장도모냐,물가안정이냐” 택일할때 「12·27개각」으로 헌정사상 처음 대통령비서실장에서 총리로 임명된 노재봉 신임 총리서리는 27일 청와대 프레스센터인 춘추관에 들러 『세계적으로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내치로 연결시키는 총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국정수행 방향을 밝혔다. 전날 밤 총리임명 통보를 받고 거의 잠을 이루지 못 했다는 노 총리서리는 『대통령의 통치철학과 이념을 차질없이 수행해 흔들림 없는 내각을 이끌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물가안정 ▲치안확보 ▲새생활 새질서 확립 ▲국민정서함양 등에 특히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취임소감을 밝혀주십시오. 『현실 경험이 부족한 사람에게 중책을 믿고 맡겨주신 대통령의 의지에 존경을 표하며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전환기의 많은 과제들을 충분히 해결해나갈 수 있을지 의문스럽지만 아낌없는 노력을 하겠습니다. 모자라는 힘은 국민들의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국정참여를 통해 해결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국정을 어떻게 운영하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정치·경제적으로 한단계를 뛰어넘어 세계사의 주류에 위치해 있는만큼 국가를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놓아야 하는 임무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국정의 상당부분을 정상화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4대 국정지표인 정치권력의 비집권화,경제력의 비집중화,행정권한의 대폭적인 민간 이양,국민정서의 함양 등을 바탕으로 노 대통령 보좌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또 국민의 새로운 사고가 없으면 사회의 발전은 불가능합니다. 새로운 사고의 종결점은 현 경제구조를 새로운 차원으로 높여놓아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당면 국정 현안은 어떻게 대처해나가겠습니까. 『물가·치안·새로운 생활의 질서·교육 및 환경문제·여성을 포함한 유휴인력문제 등을 해결해달라는 것이 국민의 여망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문제가 대전환기적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정부의 통상적인 임무를 강력히 추진하면서 창의적인 생각을 모아 해결해나가겠습니다. 우선 물가문제는 경제현실과 인식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임금도 많이 올랐고 돈도 많이 풀려 물가가 올랐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는 국민들도 물가상승을 택할 것인지 안정을 택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치안문제는 우리 사회가 도시화하는 과정에서 범죄가 많이 발생한 것이며 국제적인 범죄발생률과 비교하면 그리 높은 것은 아니지만 과거 경험에 비해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국민들이 불안에 떨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범죄와의 전쟁,새생활새질서운동 등 기존 정책을 강력히 추진해나갈 계획입니다. 교육문제는 21세기를 대비한 새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체제로 강력히 추진해나가겠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국민정서의 함양입니다. 우리 국민은 정서면에서 상당히 고갈되어 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경제문제나 치안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비서실장이 총리로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그렇습니다. 바로 그 점이 의미를갖는다고 봅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과 행정부간에 긴밀하고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마련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통치의지와 행정부 이해를 밀착시켜 국민과 더불어 국정을 수행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집권후반기의 권력누수현상과 지자제선거 등에 대처하는 방안은. 『총리는 위정을 맡은 것이지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조직 자체가 흔들리지 않고 안정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공직자들이 정상적 자세로 임무를 수행해나가도록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또 지자제선거 등이 곧 닥치지만 민주주의는 모든 권리와 책임이 국민에게 돌아가는 제도인만큼 철저한 공정선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남북회담 등 남북관계는 어떻게 대처하겠습니까. 『남북문제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대통령의 정책에 따라 남북간 긴장완화와 교류촉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노 총리는 6·29선언 이후부터 노 대통령과 깊숙한 관계를 맺어왔고 취임준비위에서는 자문역을 맡아 그의 중용은 오래전부터 예견돼왔다. 특히 88년 6월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시절 구민정당 의원연수회에서 『김대중씨의 외곽을 때리는 노련한 정치기술 때문에 광주사태가 발생했다』고 발언,정가에 파문을 던지기도 했으며 21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 국제정치학계의 한 맥을 이뤘다. 나전모방 창업주의 장남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미 암스트롱주립대 조교수를 역임했으며 직접 피아노를 치며 부르는 노래가 수준급이라는 평. 부인 지연월씨(55)와 1남1녀
  • “TV과외 80% 적중/국어 89%·수학 68% 반영”

    ◎교육개발원 분석 한국교육개발원은 18일 이날 치러진 91학년도 전기대 학력고사를 분석한 결과 KBS 제3TV로 방송했던 「TV 고교가정학습」 내용에서 79.5%가 반영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개발원은 그동안 방송내용에서 기초확인문제·기출문제·모의 학력고사문제 등 다양하게 다뤄왔는데 이들의 문항의 내용과 형식이 이번 학력고사에서 대폭 수용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문항의 진술방식이 비슷하고 답지의 순서나 진술형태가 약간 다른 형태의 문항이 34.5% 학력고사에 반영됐고 주관식으로 다루었던 내용을 객관식 형태로 변형시키거나 문제와 답지를 바꾸어 출제된 유사문제가 44.9%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과목별로는 국어가 89%,지리Ⅱ 90%,물리Ⅰ·Ⅱ 94%,지구과학Ⅰ 90%,지구과학Ⅱ 94%로 높게 적중됐고 수학 68%,국사 85%,세계사,86%,지리Ⅰ 75%,사회Ⅰ 73%,생물Ⅰ 76% 등이었으며 영어가 34%로 가장 낮게 적중시킨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 대입고사/주관식 문제 60%가 서술단답형

    ◎문교부 관계자 밝혀/유사 답안없이 한가지 답 나오게/모든 문제 교과서에서만 출제/정리등 이용,풀이과정 문제 주류/수학/문법보다 시사회화·독해에 중점/영어 18일에 있을 91학년도 전기대학 입학 학력고사에서 30%의 비중을 차지할 주관식 문제는 2∼3개의 비슷한 답안이 나오는 것들을 피해 되도록 한가지 답만을 요구하는 것들로 출제될 전망이다. 또 문제의 60% 이상이 서술적 단답형으로 출제되며 나머지는 단구적 단답형을 내되 완성형은 거의 출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교부의 한 관계자는 16일 『지난해 입시때 주관식 문제의 채점결과 일부 대학에서 서술적 단답형을 채점하는 과정에 유사답안 처리에 일관성이 없다는 감사원의 지적을 받았다』고 말하고 『이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부 수험생들의 불이익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서술적 단답형이라도 풀이과정이 1∼2개이거나 정확한 답이 나오는 문제들을 출제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서술적 단답형의 경우 「∼했다」 「∼이다」 「∼하다」 등 답을 마무리 짓는 서술형의 동사채택에 좀더 신경을 써줄 것을 당부했다. 문교부는 이와함께 지난해 출제된 문제의 전반적인 난이도는 예년보다 다소 낮은편이었는데도 국어·영어 등 주요과목의 경우 교과서 밖에서 상당지문이 나와 수험생들을 당황하게 했던 점을 고려,이번에는 모든 지문을 교과서 안에서 낸다는 원칙아래 문제를 냈다고 밝혔다. 입시문제 출제 실무부서인 중앙교육평가원의 한 관계자는 『올해도 예년처럼 주관식과 객관식을 막론하고 모든 문제가 종합적인 사고력을 측정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으며 지금까지 학력고사에 나왔던 문제나 물음이나 답안지문이 한두개 비슷한 것 등 같은 유형의 문제는 될 수 있는대로 출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고교 교육을 정상적으로 받은 사람이면 풀 수 있는 문제를 출제한다는 원칙아래 문제를 냈으며 66만여명의 수험생 가운데 상위권 10%에 들면 누구나 풀 수 있는 문제를 가장 어려운 문제의 수준으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에따라 국어과목에서는 현대문 55%,고문 30%,한문 15% 정도의 배분에 주관식 문제는 거의대부분 서술적 단답형이 출제될 전망이다. 수학은 주·객관식의 배점이 예년과 같은 가운데 주관식 문제의 서술적 단답형은 정리 증명을 이용한 문항이 많이 출제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과목보다는 단구적 단답형이 많을 것이나 서술적 단답형의 효과를 낼 수 있는 풀이과정을 알아보는 문제가 주류를 이룰것 같다. 영어에서는 문법보다 독해력 측정에 비중을 두며 특히 주관식 문제의 대부분이 시사 회화 독해가 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밖에 사회·지리과목은 교과서의 기본적인 내용을 한국사회의 현실이나 당면과제 등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문제가 나오며 세계사에서는 소련·중국 및 동구권 등 공산권 문제가 반드시 한두문제 출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물리·화학·생물·지학 등 과학과목은 예년처럼 원리나 개념의 이해력 측정에 중점을 둘 것이며 제2 외국어인 불어·독어·중국어·일본어 등은 영어과목 출제방향과 비슷할 전망이다.
  • 한·소 관계의 새로운 전개/노·고르바초프 모스크바선언(사설)

    노태우 대통령은 방소일정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모스크바선언」이 발표됐다. 한반도문제 해결의 국제성과 한국의 새 위상정립을 세계에 천명하는 역사적 문서임에 틀림없다. 1905년 이후 오랫동안 적대적 관계에 있던 한국과 소련이 언뜻 국교관계를 수립하더니 마침내 그 한쪽 당사자 한국의 대통령이 사상 처음으로 모스크바에 입성한 결과인 것이다. 세상에는 「예기치 못한 일」이 더러 일어나는 수가 있다. 우리는 새삼 어떤 자부심을 내세우려 하지 않으면서도 올해 세계사적 사건으로 노 대통령의 크렘린궁 방문과 한소정상회담을 꼽고자 한다. 다른 하나는 물론 유럽의 분단국이던 동서독의 통일이어야 한다. ○수교와 방소,그 복합적 의미 전후 얄타체제는 세계를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서방진영과 소련을 축으로 하는 동방진영으로 양분시켰다. 두 진영의 관계는 양극적 이데올로기의 대결관계로 고착됐으며 그 테두리 안에서 유럽에서는 독일이,아시아에서는 한반도가 각각 분단됐다. 85년 출범한 소련 고르바초프 정권체제는 개혁과 개방정책 아래 소련과 동유럽을 교조주의적 레닌이즘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 그 시대적 필연성 속에서 유럽의 동서독이 완전통일을 이룩했다. 이제 한반도의 남북한만 남았다. 노 대통령이 세계의 마지막 분단국의 국가원수로서 소련을 찾은 것이다. 그의 모스크바 입성은 한소 양국이 모두 탈이데올로기적 외교를 수행해온 기본틀 위에서 가능했다. 그 기반 위에서 한소 두 정상은 정치·외교·경제·문화 모든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심화할 것에 합의한 것이다. 한국과 소련은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남북한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북한의 참여 속에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모스크바선언의 정신이다. 모스크바선언은 ①한반도의 평화가 동북아시아와 세계평화를 위해 중요하며 ②한반도의 통일이 한국민의 염원이고 ③남북한 접촉의 확대를 환영한다고 세계에 선포했다. 선언은 『주권평등·영토보전·정치적 독립을 상호 존중하고 국내문제에 상호 간섭치 않는다』고 했고 『경제·통상·산업·수송분야에서 효율·호혜적인 협력을 깊이하고 선진과학기술교환·합작기업협력·호혜적인 사업의 개발과 투자를 환영한다』고 다짐했다. 한소간 관계개선은 이제 바야흐로 전 분야에서의 전폭적인 상호개발협력의 장으로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국제사회속의 새 한국 위상 노 대통령의 방소는 아시아에서도 냉전구조가 붕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했다. 그것은 다음 몇 가지 측면에서 동아시아의 국제관계에 중대한 파급효과를 미칠 것이다. 첫째,비서방권에 대해서는 물론 국제사회 전반에 대해서도 한국의 국제외교적 지위를 더욱 크게 향상시켰다. 또 동아시아의 국제관계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은 한소 관계의 심화와 더불어 더욱 확대될 것이다. 둘째,양국 관계의 진전 및 그에 영향받을 남북한 관계의 진전여하에 따라 한미 관계와 미·북한 관계에,특히 한미 군사관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다. 유럽에서 실현된 동서진영 사이의 군축을 소련이 아시아에서 재연시키려고 하고 있음에 비추어 한미 군사관계의 변화에 의해 나타날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역할의 재조정은 이미 미 자신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다만 우리가 유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전통적인 우방으로서의 미국과 그 우호동맹관계를 더욱 돈독히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소 관계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소련·북한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측면에 유의한다는 것이다. 셋째,한소 관계의 발전은 중국으로 하여금 한중 국교수립과 협력증대를 추진하는 한국의 노력에 보다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아직 북한을 의식해서 대한 관계개선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중국으로서도 모스크바선언은 그들의 대한반도 정책반경을 넓히는 객관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최근의 소중 관계진전 역시 그러하다. ○한·소 정상회담 이후의 과제 노 대통령은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나는 목적에 대해 평양에 가는 길이 막혀 모스크바로 돌아간다고 표현한 바 있다. 이번 방소에 앞서서도 그 비슷한 감회를 피력한 바 있으며 『이제 우리는 한반도의 분단구조가 변화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맞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평양에 가는심정으로 모스크바에 갔을 것이며 대소 관계개선에서 남북한 관계개선의 또다른 단서를 얻고자 그곳에 갔음에 틀림없다. 평양에 가는 길을 트는 데 있어서 소련의 역할은 무엇인가. 과거와 현재에 걸쳐 한반도에 있어서의 소련의 위치와 비중을 평가하는 것이 그 대답이 될 것이다. 물론 북한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행사는 한계가 있고 남북문제 해결의 당사자는 바로 남북한 양쪽이다. 얼마 전 방한했던 메드베데프 소련 대통령위원회 위원도 이 점을 지적했지만 모스크바의 인식 또한 그러할 것이다. 한반도문제 해결에 있어서의 소련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대소 관계개선정책은 결코 북한을 배제하거나 고립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북한을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등장시켜,한반도문제 해결 당사자로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게 하자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이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북방외교의 궁극적 목표가 바로 거기에 있다. 한소 두 정상의 모스크바선언은 확실히 한반도의 기존 냉전구조에 대한 신선한 충격이다. 충격의 확대 재생산이바로 한반도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며 그 당사자가 남북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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