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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저무는 20세기의 관계는 그 어떤 것이었을까.지구촌 변혁의 주역이었던 고르비는 적어도 역사 무대의 전면에서는 스러져 간다.◆역사가 그에게 안긴 소임이 그것이었던가.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몫만을 책임완수 하고 물러나야 하게 되어 있었던 것인가.6년 남짓한 집권기간에 그는 세계사의 진로를 바꿔 놓았다.서기장에서 대통령으로 될 때만해도 그는 무소불위의 능력을 지닌 사람같이 비쳤다.그러나 70여년 공산당사가 금방 청산되는 건 아니다.쿠데타이후 힘을 회복 못한 채 마침내 퇴장한다.◆퇴장한다해서 그는 패배자가 아니다.그는 새 세계를 연 승리자이다.동양에는 공성신퇴라는 말이 있다.「사기」의 범수(범수)채택열전에 나온다.공을 이룬 사람은 물러나야 한다는 뜻으로 원문은 「성공자거」로 되어 있다.그는 대결의 논리를 종식시켰다.그는 공산주의에 조종을 울렸다.누가 뭐래도 지구촌의 평화에 공을 쌓은 사람.그 공을 이루었으니 물러나야 한다는 것인가.어쨌건 물러남이란 쓸쓸한 법이다.◆진심으로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고르비.자신의 생각을 대세앞에 용해시킬 줄 아는 민주주의자이다.자신의 명분을 끝까지 합리화시키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은 현인이기도.『하루를 주신 신이니 하루의 양식도 주실테지』.러시아의 속담이다.그 속담의 나라 사람들에게 신은 무심했다.고르비의 퇴진이 이 양식(빵)과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그는 70여년 적폐의 멍에를 쓰고 물러난다고 할 수도 있겠다.◆「장사속」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에게 손짓한다.이러저렇게 대우할 테니 와달라고.그에대한 대답­『나는 이 나라에서 태어났고 살아왔으며 앞으로 살아갈 것이다』.고르비는 그 퇴장도 위대하다.
  • 소 연방의 소멸과 한반도(사설)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소련)이 마침내 소멸된다. 고르바초프 연방대통령과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의 합의에 따른 것이다. 91년의 마지막 날인 오는 31일이 운명의 날이다. 낫과 망치로 상징되는 사회주의혁명의 붉은 깃발이 크렘린의 게양대에서 하강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소련을 탄생시킨 1917년 볼셰비키 사회주의혁명 이후 74년만의 종언인 것이다. 물론 소련이라는 국가실체의 소멸은 아니다. 소비에트연방은 해산되지만 공화국들은 남는다. 옐친이 주도하는 독립국가공동체로 새 출발하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것이 될지 아직은 분명치 않다. 분명한 것이 있다면 공화국들의 위상이 거의 절대적으로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자유·민주·자본주의 공화국들의 필요에 따른 자발적 공동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분명하고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공산주의 혁명의 공식 종언을 의미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연방의 붕괴보다도 공산혁명과 함께 탄생한 소비에트의 소멸,그리고 공산혁명 그 자체의 공식 종언에 더 큰 역사적 의미를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산주의 소련은 소 국민은 물론 세계에 대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이었던가. 돌이켜보면 고통과 희생의 강요로 일관되었던 74년의 공산혁명사였다. 공산주의 이장사회 건설의 명분밑에 얼마나 많은 인명의 희생과 고통의 강요가 요구되고 정당화 되었던가. 소련에서는 물론 동구와 중국대륙,그리고 한반도와 인도차이나에서 있었던 역사를 생각하게 된다. 모든 것이 잘못되고 실패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도 결국은 그런 자각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74년간의 공산주의가 세계에 기여한 것이 있다면 자본주의의 파멸을 막는데 도움을 준 사실 뿐이란 역설적 평가도 있다. 사회주의의 장점인 분배와 평등의 가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공산권은 그로서 「빈곤의 평등」을 달성했지만 덕분에 서방은 복지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발전시킴으로써 공산혁명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소련과 동구,그리고 인도차이나가 모두 원점으로 돌아갔다. 누구와 무엇을 위한 공산혁명이요 희생이며 고통이었단 말인가. 중국과 북한은 그런데도 여전히 사회주의 고수를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도 정치사회주의와 경제자본주의라는 정경분리의 방향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국 소련등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 공산혁명의 포기와 민주화개혁의 변화는 소련의 소멸이 상징하듯 어쩔 수 없는 세계사적 시대의 요구인 것이다. 소련의 소멸을 보면서 한반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분단과 골육상쟁의 한반도는 공산혁명의 가장 큰 희생자의 하나였다. 소련의 소멸이 상징하는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최근의 남북한 합의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이미 역사의 유물이요 골동품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하면 이 무의미해진 분단을 가장 적은 혼돈과 희생과 비용으로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남북한의 공통된 역사적 소임이다. 북한의 질서있는 민주화 개혁의 달성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돕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일 것이다.
  • 「이데올로기 전쟁」마침내 종언(대변환 지구촌 ’91:1)

    세계공산주의 맹주노릇을 해오던 소련공산당의 소멸과 소련방의 해체라는 대사건을 경험한 1991년은 동서이념대결종언의 원년이며 세계사에 큰획을 그은 한해로 기록될 것이다. 모스크바 크렘린궁에 새해부터는 더이상 낫과 망치의 소련기가 휘날리는 모습을 볼수없게 됨으로써 1917년 레닌의 볼셰비키혁명 이래 세계의 절반을 붉은 이데올로기로 지배해오며 전쟁과 증오와 대립을 야기시켰던 「소련왕조」는 이제 종말을 고하게 된것이다. 80년대 후반 고르바초프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 실시로 도래한 「민주화」는 왕조의 가장 충실한 동맹국이었던 동구제국을 비롯,제3세계권의 추종국가들을 이탈시켰다.더욱이 올해들어서는 지난 8월 강경보수파의 쿠데타 실패 이후 발트3국이 독립해 나가는등 왕조자체의 해체작업이 가속화되더니 마침내는 붕괴의 운명을 맞고 말았다. 이로써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으로 본격화됐던 국제공산주의운동 또한 1백43년만에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결국 그들이 추구하던 유토피아의 건설은 공산주의방식으로 즉 혁명찬미의 방식으로는 더이상 불가능함이 확인된 것이다. 단지 이같은 공산주의 몰락의 벼랑에서 아직도 중국을 비롯한 북한·쿠바·베트남등 잔존 공산주의 국가들이 체제유지를 위해 발버둥치고 있으나 그들이 역사의 흐름을 역류시키기에는 역부족임이 이미 여러가지 측면에서 판명된 상태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사회학자인 다니엘 벨이 50년대말 자신의 저서 「이데올로기의 종언」에서 선언한 소련이데올로기와 서구이데올로기 대립의 종식이 실제 이뤄지기까지는 3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이데올로기의 종언이 유토피아의 종언은 아니다』며 이데올로기의 함정을 알고 거기서 유토피아 논의를 다시 시작할것을 강조한 벨의 혜안이 다시금 돋보이는 91년이었다. 21세기의 진정한 유토피아 건설을 위해 새해부터는 그동안 이데올로기에 쏟아온 인류의 정열을 공존과 화해의 휴머니즘 고양에 쏟아야 한다.
  • 국어/사고력에 중점/계산과정 평이/수학/대입학력고사 과목별출제경향

    ◎민족사의 유기적 파악에 비중/국사/교과서 바탕,현실 이해력 측정/사회/다양한 그래프 분석능력 평가/지리 92학년도 전기대 입학학력고사문제를 출제한 중앙교육평가원은 17일 과목별 출제경향을 밝혔다. ▷국어­(한문­포함)◁ 예년과 같이 평이하면서도 깊은 사고를 필요로 하는 문제를 내도록 노력했으며 난이도는 지난해와 비슷하다. 교과내용별 출제비율은 현대문이 31점으로 56%,고문이 16점으로 29%,한문 8점 15%등 지난해와 같이 현대문에 중점을 두었다. 주관식 문제는 전체의 30%인 16점으로 지난해와 같으며 7문항가운데 2문항은 서술형으로 출제했다. 현대문에서는 논설문·설명문·시·소설·수필·희곡등에서 고루 출제해 독해력과 감상능력·응용력·어휘력등을 폭넓게 평가하고자 했다. 고문에서는 고전 산문·시가,국어의 이해에서 다양하게 출제해 고전작품의 총체적 감상능력,형식과 내용,문장의미와 구조,국어의 역사적 변천에 대한 이해정도등을 측정하고자 했다. 한문은 독해력·어휘력·기초문법·한시의 이해등에 중점을 두었다. ▷국사◁ 민족사 전반에 걸친 발전과정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여부를 측정하는 문제를 주로 출제했다. 특히 역사의 발전에서 국제관계와 문화교류 부분에 대한 이해도 평가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교과과정 범위안에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는지와 이를 종합적으로 이해,해석하고 있는가를 평가하기위해 사료와 연표등을 활용했다. 또 민족사의 맥락을 각시대의 사회·경제사적 시각에서 유기적으로 파악하고 있는가에 유의했다. 주관식은 한국사에 나타난 대표적인 정치이념과 근대화 과정에서의 국제관계에 대한 이해도를 묻는 문제를 출제했다. ▷수학◁ 각 계열의 모든 영역에서 골고루 출제한다는 원칙아래 중요도를 고려,문항수를 배분했으며 기본원리에 대한 이해력을 측정하는 문제로 계산과정이 복잡하지 않은 문제를 주로 낸 것이 특징이다. 인문계및 예체능계의 수학 Ⅰ·Ⅱ­1에서는 주관식 5문항을 포함해 24문항을,자연계의 수학Ⅰ·Ⅱ­2에서는 주관식 7문항을 포함해 33문항을 출제했다. 공통 이수부분인 수학Ⅰ에서 14문항과 수학Ⅱ의 공통부분에서 3문항을 모든 계열에 공통으로 출제했으며 그 가운데 4문항은 주관식으로 했다. 인문계및 예체능계는 주관식 5문항 가운데 3문항은 단답형,2문항은 서술형이며 자연계에서는 주관식 7문항 가운데 5문항은 단답형,2문항은 서술형이다. ▷사회◁ 교과서의 기본내용을 한국사회의 현실과 당면 과제 해결 등과 관련지어 이해하고 있는가와 개인의 합리적인 의사결정 능력의 기초가 형성돼 있는가를 평가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단편적인 지식보다는 종합적인 사고력을 포함하는 고등정신 능력을 측정한다는 원칙아래 교과서 범위안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 세영역에서 주관식은 각 1문항씩,객관식은 각각 4,6,4문항씩을 출제했다. ▷지리◁ 검인정 교과서 4종에서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출제했다. 다양한 종류의 지도와 그래프에 표현된 지리적 사실을 해석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문제를 많이 출제했으며 특히 환경문제,도시문제,국제문제 등 현대사회의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제들에 대한 평가의 비중을 높였다. ▷세계사◁ 인문계,자연계,예체능계로 구분해 문제를 냈으며 17문항가운데 객관식 12문항,주관식 3문항은 공통으로 출제했다. 근현대사에 치중해 출제했으며 단편적인 지식보다는 역사의 전체적인 흐름이나 시대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지 여부를 점검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영어◁ 문법중심의 편향적인 교육풍토를 개선하기 위해 실질적인 독해능력을 측정하는 문제의 출제비중을 높였다. 또 문법적 지식을 묻는 문제도 단순한 문법지식의 재생이 아니라 속독속해 능력을 신장하는 관점에서 출제했다. 국제화시대를 맞아 실용영어의 구사능력을 알아보기 위한 회화문제의 비중도 예년보다 높였다. 독일어 고등학교 독일어수준의 기초지식과 활용 능력을 평가하는데 출제의 기본방향을 두었다. 문법은 모든 영역에서 문장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항목들을 골고루 냈으며 독해력 문제는 5종교과서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된 단어와 평이한 내용으로 구성된 생활독일어에서 출제했다. ▷프랑스어◁ 국제화시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구어체 중심의 문장과 표현을 중심으로 중간정도의 학생이 풀수 있는 평이한 문제를 냈다. 지나치게 구어적이거나 문어적인 표현은 배제했으며 주관식은 이해력과 적용능력을 측정하는 문제를 냈다. ▷중국어◁ 발음·어휘·문법·회화·독해·작문의 각 영역에서 골고루 출제했으며 일상회화에서 자주 쓰이는 문장을 골라 복합적으로 묻는 문제를 많이 냈다. 주관식 문제는 관용어구의 활용능력과 논리적인 사고능력을 측정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일본어◁ 전 영역에 걸쳐 고등학교 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라면 쉽게 풀수 있는 문제를 냈다. 주관식에서는 학생들의 이해력과 적용력을 측정하기 위해 문장의 구성능력을 묻는 작문문제를 출제했다. ▷국어Ⅱ◁ 단편적 지식보다는 심도있는 사고력을 필요로 하는 이해와 적용문제에 비중을 두고 출제했다. 문법문제는 문법의 각 분야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요구하는 것과 실제 언어생활의 적용능력을 파악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으며 현대문학영역을 전체 45%인 9점으로 비중을 지난해보다 높였다. ▷국민윤리◁ 추상적 도덕개념들을 급변하는 시대상황과 사회생활에 적용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문항수를 늘린 것이 특징이다. 선발기능 이외에 「국민으로서의 공동체 의식과 긍지」를 갖도록 하는 기능을 지닌 점을 감안,극히 평이한 상식문제도 출제했다. ▷물리◁ 4종 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공식의 암기보다는 개념의 이해가 필요한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복잡한 수식의 계산이 필요한 문제는 피하고 간단한 수의 계산으로 답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화학◁ 단순암기보다 화학의 기본원리와 기초 개념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능력을 묻는 문제에 비중을 두었다. 주관식은 화학의 원리와 개념을 응용해 화학반응을 식으로 나타내거나 계산하는 문제를 출제했다. ▷생물◁ 생명현상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본개념과 생명과학의 탐구방법에 대한 이해및 적용력을 평가했다. 생물Ⅰ은 실생활과 관련이 있는 내용을,생물Ⅱ에서는 좀 더 심도있으면서 전반적인 내용을 숙지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데 초점을 두어 출제했다. ▷지구과학◁교과서의 각 단원을 비중에 따라 고르게 배분해 기본개념의 이해를 통해 실제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평가했다.
  • 「70년 붉은제국」 지도서 사라진다/소 연방 해체되기까지…

    ◎군수산업위주 정책으로 경제파탄 촉발/공화국들의 「독립도미노」에 결국 “두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벨로루스의 3개 공화국이 8일 독립국가공동체를 결성키로 합의하고 국제법의 실체로서 또 지리적 실체로서의 소련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은 중병속에서도 회생을 위해 마지막 몸부림을 치던 소련에 사망선고를 내린 최후의 일격이라고 할수 있다. 이로써 세계공산주의의 종주국으로,또 냉전체제의 한 주역으로 현대사의 기록에서 결코 지울수 없는 발자취를 남긴 소련은 이제 공중분해를 거쳐 74년에 걸친 목숨을 마치게 됐다.이와 함께 지난 수년간 세계사의 흐름을 가장 극적으로 변화시킨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던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정치생명도 완전히 끝났다고 할수 있다. 15개 공화국(발트 3국의 독립으로 현재는 12개 공화국)에 1백개 이상의 민족으로 구성된 소련의 탄생은 볼셰비키 혁명의 성공에 따른 「힘의 강압」에 의해서였다.그러나 소련의 탄생을 가져왔던 그 강압적 힘이 결국은 스스로의 심장에 꽂히는 비수로변하고 만 것이다. 소련이 국가로서의 생명을 잃은 것은 최근 식량폭동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서도 알수 있듯이 공산주의 경제체제 실패에 따른 경제파탄과 다민족국가라는 특수성에서 비롯되는 민족분규의 폭발적 분출을 해결할수 없었던데 따른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결과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측됐던 것이다.6년전 54세의 젊은 나이에 소련 공산당서기장에 선출된 고르바초프가 신사고를 통한 정치·경제의 개혁(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을 들고 나온 것도 이같은 결과를 예측,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다.그리고 그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국내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것도 그의 생각에 소련국민들은 물론 많은 서방국가들이 동조했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 이전의 소련은 오랫동안 군사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군수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편데다 미국과의 냉전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무리한 대외원조를 제공함으로써 소련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몰아넣었다.이는 민생경제의 도탄을 가져와 핵강국 소련으로 하여금 국민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자존심마저 버리고 과거의 적대국이었던 서방국가로의 구걸행각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또 오랜 세월 민족갈등의 분출을 억눌러 왔던 공산독재의 무자비한 탄압이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 등장으로 완화되면서 각민족간의 유혈분쟁이 점증하더니 결국은 지난해 3월 리투아니아의 독립선언을 시발로 지난 1일 우크라이나의 독립승인 국민투표에 이르기까지 각공화국들간에 독립선언 도미노현상까지 몰고 왔다. 결국 무리한 힘의 억압으로 빚어진 결과는 이미 어떤 방법으로도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돼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개혁반대세력들의 저항과 이에 따른 사회혼란의 조장,어려운 상황속에서 자국의 생존만을 우선시킨 각공화국들의 지역적 이기주의가 이같은 상황악화를 더욱 가속시켰다고 할수 있다.시급한 정치·경제개혁의 필요성엔 다같이 공감하면서도 그 방법론에 대한 의견차를 해소하지 못하고 지금과 같은 공중분해의 길을 선택한 것은 소련으로선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될것으로 보인다. ◎인구 150만… 벨로루스공 수도/「독립국가공동체」 수도 민스크 「독립국가연방」의 수도로 결정된 민스크시는 이들 3개 공화국중 가장 규모가 작은 벨로루스(백러시아)공화국의 수도이자 산업 중심지. 인구 1백50만명으로 러시아공화국 국경으로부터는 2백24㎞,모스크바로부터는 6백90㎞ 거리에 위치해 있다. 스비스로크강을 끼고 있는 민스크시는 1154년 유명한 아랍인여행가인 아부 압둘라 무하메드가 그린 지도에 명기되어 있으며 당시에 이미 대도시로 널리 알려졌다.벨로루스공화국은 50년전 독일군의 침공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었으며 민스크시는 당시 대부분이 파괴됐다. 전후 소련정부는 널찍한 시가지와 공원을 갖춘 민스크시를 재건했으며 이로 인해 역사적 특징이 많이 손상됐다.
  • 진주만기습 50주년(사설)

    과거는 현재의 원인이며 현재는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7일(한국시간 8일)은 일본이 미국의 하와이진주만을 기습공격한지 꼭 50주년이 되는 날이다.아침 7시30분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에 나선 3백50여기의 일본전폭기들은 불심을 자랑하던 미전함 애리조나등 미태평양함대 군함 수십척을 격침하고 2천4백명의 사망자를 포함,수천명의 군인·민간인들을 살상했다. 이른바 「진주만기습」인 것이다.세계사에 있어 그것은 태평양전쟁의 개전이다.일제에 있어 그것은 제국의 팽창을 견제하고 봉쇄하던 미국을 극복하기위한 「성전」의 개시를 의미했으며 미국에 있어 그것은 불의에 당한 오욕의 패배였다.우리와 아시아이웃에 있어 그것은 보다 심각한 수난의 시작을 알리는 비극의 신호였다.무수한 인명과 재산을 앗아가고 참기 어려운 고통과 희생을 강요했던 5년간의 이 전쟁은 일제의 패망으로 끝이 났다.그리고 개전 50주년이요,종전 46주년인 것이다. 당연히 회고와 반성이 있어야할 날인 것이다.그것은 지난날의 과오와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기위해 필요한 것이다.새로운 비극의 예방을 위해서도 필요불가결하다.전쟁의 당사자인 미국·일본의 경우는 말할것도 없고 그 희생자인 한국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중에서도 가장 반성하고 자중해야할 나라는 개전의 장본인인 일본이다.미·구의 봉쇄에 대항하기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는가 하는것이 그동안 일본의 은연중의 변명이었다.일본은 한번도 개전의 과오를 정말로 인정하고 반성하거나 사죄한 일이 없다.입으로만 하고 지나가는 형식적인 사과와 반성은 몇차례 있었으나 그것도 마지못해 하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것이었다.진주만기습50주년을 계기로한 일본의회의 사과와 반성의 「비전결의 무산」소동은 오늘의 일본 심리상태를 그대로 말해주는 것이라 할수있다. 일본은 그동안 반성하고 사과하며 보상하려 노력하기보다는 변명하고 외면하며 회피하려고만 해왔다.그러고는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의 논리로 적반하장의 역습만 일삼아왔다.일제만행을 외면하는 역사교육이 그것을 말한다.그동안의 일본에서는 개전의 날을 기억하거나 기념하는 사람이나 행사는 거의 없었다.오직 8·15종전의 날만 와신상담의 계기로 기억되어왔다.히로시마(광도)나가사키(장기)에 대한 미국의 「무자비한」원폭피해만 강조하고 선전해왔다.개전은 불가피한 것이었고 원폭이 죄악이라는 것이 많은 일본사람들의 논리다.사죄는 미국이 하라는 것이다. 선전포고 없는 기습의 진주만공격은 전쟁이었지만 야비한 비도덕의 상징이다.그것을 옹호하고 변명하는 심리도 불도덕인 것이다.그 부도덕을 오늘의 일본사람들은 예사롭게 생각하게 된것이 아닌가.승패의 역전을 논하는 성급한 사람도 있다.일제가 가졌던 자만이요,오만의 부활인 것이다.패전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어있다가 「다행스런 점령자」미국의 비호와 도움속에 거부가 되면서 다시 살아나고있는 것은 아닌가.「미국에 대해선 경멸밖에 할말이 없다」는 말도 거침없이 하게된 오늘의 일본인이다.패전당시의 겸손과 자중은 찾아볼수 없게 되었다.경제뿐아니라 정치 군사대국화의 21세기를 거침없이 지향하고있다. 사정이 이렇고서는 또 한차례의 「진주만」이걱정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다.일본은 진주만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 감자장수로 변장…들풀로연명/모윤숙씨/명사들의「6·25체험」기록내용

    ◎어린 자녀들과 떨어져 단신 피난길에/유진오씨/온갖 고문·사상교육 받고 겨우 풀려나/복혜숙씨/평양까지 끌려갔으나 미공습때 도주/황신덕씨 「6·25」의 의미가 퇴색해 가고 있다. 불행한 것은 아예 6·25를 모르는 세대도 있다. 급변하는 세계사의 흐름과 탈냉전의 조류속에서 6·25를 거론하면 구태의연한 발상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이런 가운데 현민 유진오 박사,여류시인 모윤숙씨,왕년의 대스타 복혜숙씨,당시 서울신문 정치부장 김영상씨등 사회지도층인사들의 소중한 6·25체험기록이 발견돼 관심을 끌고있다. 그들이 겪었던 한계상황와 심경을 반추해보는 것은 오늘날 또다른 의미를 부여해준다. 체험기록내용은 다음과 같다. ○폭력에 대한 항의/이건호 고대교수 서울이 함락되고도 집에 숨어있었다. K씨로부터 공산주의자들이 인민위원회를 열어 소위 반동분자라고 하는 사람들을 학살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을 뜨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미 한강다리가 폭파됐고 또한 공산군들의 만행이 심각해 피난을 떠나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집에 숨어라디오를 들으면서 전황을 파악했다. 두명의 공산군이 어떻게 알고 은신처에 나타났다. 체포될 뻔했으나 그중 한명이 내책으로 공부한 법학도여서 그의 도움으로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나는 진정 살아있나/모윤숙씨 25일 정오 평양방송으르도 서울역에 전화를 했다. 당시 평양방송은 국방군의 북침으로 전쟁이 터졌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서울역에서는 괴뢰군이 38선을 전면 남침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북괴 내무성 경찰에게 추적을 당하게 됐다. 감자장수로 변장,남쪽으로 피난하면서 들풀과 밭의 곡식으로 연명했다. ○서울에서의 탈출/유진오 박사 50년 6월25일 둘째딸로부터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처음 듣고 38선에서 흔히있는 총격사건으로 대수롭지않게 생각했다. 다음날(26일)공무원 훈련원에 강의하러 가는 도중 비로소 진짜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을 공식 확인했다. 암담한 심정으로 K씨를 만나러 민중서관으로 갔다. 27일 정부가 수원으로 이동했으며 국군의 이동행렬을 보면서 전황이 몹시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판단,집에 돌아와어린 네자녀를 친척집으로 피신시키고 큰아이들과 집사람을 집에 남겨둔채 피난길을 떠났다. ○내려앉은 방공호/황신덕씨 6월28일 아침 서울이 함락된 것을 보고 인민재판에서 사람들이 처형돼 불안해 하던 중 7월25일 낯선 사람들에게 체포됐다. 7월30일 트럭에 실려 평양으로 실려갔다. 도중에 황해도 남천의 인민법정에 수용돼 사상교육을 강제로 받고 개조센터라고 부리는 수용소에 감금됐다. 조사를 받는 동안 안면이 있는 인사 3백여명을 보았다. 10월초 유엔군의 공습이 심해지자 10일쯤 이름도 모르는 장소로 끌려다녔다. 그러다 어느 굴속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집단학살을 당할 것이라고 예상,죽음을 각오하고 있는데 갑자기 부근에 공습이 있어 이때다 싶어 정반대쪽으로 마구 달렸다. ○여배우가 겪었던 일/복혜숙씨 27일 밤 10시쯤 딸과 함께 피난을 떠나기 위해 의사인 남편과 헤어져 한강을 건너던 도중 김인선 검찰총장 가족과 만나 함께 가게 됐다. 안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수원·천안을 거쳐 시댁이 있는 홍성에서 머물던중 김총장은 정부가있는 대구로 떠나고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친척이 만들어준 위조신분증을 갖고 서울로 향하던중 8월19일 청양에서 체포돼 경찰서에 감금되어 심문을 받게 됐다. 조사관은 김총장이 숨어있는 곳을 대라고 온갖 위협과 고문을 자행했다. 28일 밤9시에 다시 중부내무서로 연행돼 온갖 고문을 받은뒤 특별선전교육을 받도록 명령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피로 뒤범벅 된 부상자치마를 입고/박순천씨 6월25일 아침 공산군의 침략소식을 듣고 긴급 소집된 국회에 참석,끝까지 서울을 사수하기로 한 결정에 따르기로 하고 서울에 남아있었다. 7월8일 정치보위부로 옮겨져 심문을 받은뒤 13일 다른 6명과 함께 석방됐다.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할 때까지 피묻은 치마를 입고 변장,숨어 지냈다.
  • “선진국 무역장벽 헐어야”/경제블록화가 시장흐름 해쳐

    ◎박태준위원,가 대학서 연설 【토론토=이목희특파원】 캐나다를 방문중인 박태준 민자당최고위원은 26일 하오(현지시간) 워터루대 명예공학박사학위를 수여받는 자리에서 『국가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국제경제의 자여적 흐름을 억제하는 장벽을 허물어가는 공동의 노력이 절실하게 요청된다』고 일부 선진국들의 신보호주의 움직임 중지를 촉구했다. 박최고위원은 수여식 연설을 통해 『최근 일부 선진경제대국을 중심으로 점차 강화되고 있는 신보호주의와 지역주의의 장벽은 세계경제 번영을 가져다준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뒤흔들고 있다』면서 『지금 경제문제를 두고 남북간에,그리고 아시아·태평양국가간에 긴장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세계경제의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일부 국가들이 기존의 세계경제흐름을 차단하려는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최고위원은 『갈등과 불균형의 현실을 화해와 균형의 미래로 이끌어가는 것이 이 시대에 부여된 세계사적 과제』라면서 국가간 무역장벽 제거를 거듭 촉구한뒤 한­캐나다 양국간 기존의 협력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자고 강조했다. 박최고위원은 이에앞서 25일 낮 토론토 한인회관에서 가진 교민 간담회에서 『정부내에 교민관계부서를 강화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 기대와 우려의 평양행/장수근 북한부장(오늘의 눈)

    직선거리로 2백㎞라 했다.서울에서 평양까지의 상거가.「돌아 오지않는 다리」로부터 치면 그보다 50㎞가 더 가깝다던가.새마을호 열차라면 2시간이면 달려 갈 수 있는 평양.그러나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 남측 대표단이 대동강철교를 건너기까지엔 지난해 12월이후 무려 열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대동강 물살이 거센 탓이 아니었다.고요로운 강심에 걸핏하면 돌팔매질을 해대는 「심술」들이 걸음을 막은 때문이었다. 제4차 고위급평양회담일자는 당초 지난 2월25일로 합의됐었다.그걸 북측은 일방적으로 두차례나 연기했다.처음엔 팀스피리트훈련을 핑계로,두번째는 얼토당도 않게 남한의 콜레라 발병을 빌미삼아서. 이런 우여곡절 끝에 열리는 만큼 이번 회담에 모아지는 내외의 관심은 전례없이 크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양회담에서 가시적 성과가 도출될 것이란 희망적 조짐은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북측은 제4차 고위급회담과 관련,개막 하루전인 21일 『남측이 분열고착적 대화자세를 견지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남북한간 정치·군사적 대결상태의 해소를 위한 남북불가침선언채택을 거듭 강조했다. 이같은 북측의 주장은 이번 회담에 임하는 그들의 자세에 일말의 변화도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남측대표단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있다. 주지하다시피 남북고위층회담이 표류하는 동안 우리는 엄청난 지각변동을 경험했다.소련에서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했으며 냉전시대에 양극을 이뤘던 미소간에 핵을 포함한 군축제의가 경쟁적으로 이어졌다. 이제 세계사는 데탕트라는 도도한 흐름속에서 새로 쓰여지고 있다.그러나 유독 한반도만은 여전히 냉전기류속에 침잠,불신의 장벽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다. 남측은 유엔동시가입 이후 처음 열리는 이번 회담에 유연성있게 임해 대화와 교류의 물꼬를 트겠다고 다짐하고 있다.북측이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는 합의문 명칭에도 융통성을 보이리라 한다.또 합의문건 숫자에도 구애받지 않을 방침임을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더 이상의 소모적 통일논의는 끝내겠다는 결단에서 나온 전향적 자세라고 하겠다. 지금이야말로 북한이 시대착오적인 「우리식 사회주의」를 청산하고 개방과 개혁의 빗장을 열 때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절과 통한의 군사분계선을 넘는 고위급회담대표들은 마음을 비우고 간다고 했다. 그 비운 마음의 자리에 「신뢰」를 담아오기 위해. 기자 또한 통일에의 기대로 가슴 뜨거운 국민들에게 전할 낭보로 귀환길 행랑이 무거워지길 기대하며 평양길에 오른다.
  • 부시의 핵 폐기선언과 한반도(사설)

    부시 미국대통령은 28일 미 지상및 해상발사 단거리 핵무기 일체의 일방적폐기 내지는 철수를 골자로 하는 새로운 핵정책을 발표했다.40여년의 냉전시대를 일관해온 미국핵정책의 혁명적 전환을 의미한다.냉전의 군사적 종식과 탈냉전의 평화질서 정착을 위한 용기있는 결단으로 환영한다.핵감축 내지는 폐기와 추방의 시대적 조류를 반영하는 것이며 우리는 부시의 이 결단이 그러한 조류의 한반도확산을 촉진하게되길 희망한다. 전후 오늘에 이르는 세계사는 미·소대결과 군비증강 경쟁의 냉전사라 할수있다.소련의 개혁으로 탈냉전의 시대가 시작된 지금 군비경쟁은 무의미 할수밖에 없는 것이었다.소련이 군비증강을 일방적으로 포기한 상황에서 미국도 보다 획기적인 군축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는 내외의 압력이 가중되어왔으며 그에 대한 대답이 28일의 부시 선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개혁의 혼돈에 빠져있는 소련은 이미 미국에 대한 실질적인 군사적 위협이 될수 없게 된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미국이 획기적인 조치에 나서지 못한것은 소련정세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아직도 그불안이 완전히 가신것은 아니지만 지난 8월의 보수파 쿠데타진압으로 소련개혁의 미래에 대한 얼마간의 자신을 갖게된것이 아닌가 보인다. 부시대통령은 이번 선언으로 내외의 군축압력에 호응하면서 소련의 군축을 더욱 촉진시킬 효과를 계산하고 있을것이 분명하다.동시에 부시는 소련의 개혁파 지원도 계산에 넣고 있을것이라고 봐야 할것이다.개혁파가 서방세계에 일방적인 양보만 하고있다는 보수파 반발의 명분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소련개혁의 지원은 곧 군축과 탈냉전의 세계적 평화질서정착을 돕는다는 점에서 그역시 바람직한 일이 아닐수 없다. 부시선언이 갖는 군축과 국제평화질서적 의미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그보다더 중요한것은 역시 그것이 갖는 한반도적 의미라 해야할것이다.특히 미국 보유지상발사전술핵무기 일체의 폐기선언은 한반도에 배치된것으로 북한에의해 주장되는 전술핵무기 문제와도 관련되는 것이며주한미군이 전술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것이 사실이라면 그것도 폐기될것임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반도 안보상황의 중대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일수도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것이다.핵이 있었다면 그것이 없어지는 경우에 대응한 철저한 대비도 있어야 하는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것이다.뿐만아니라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해야할 필요성은 더욱 절박해진다고 할수있다.그동안 북한핵개발고집의 최대명분은 주한미군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부시의 선언으로 북한의 그런 명분은 자동소멸된 셈이다. 우리는 이번 조치가 세계는 물론 한반도와 동북아의 군축및 평화질서 구축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북한이 핵무장의 어리석은 고집을 버리는 계기가 되길 다시한번 기대한다.북한의 핵문제에도 언급할것이라는 연형묵총리의 유엔 연설을 포함하는 북한의 이제부터의 반응이 주목된다.
  • 대입부담 덜고 전인교육 강화/초중고 교육과정 개편 방향

    ◎체육·음악·미술 전담교사제 도입/초/「직업」과목 신설,진로지도에 역점/중/「선택」을 80여개로… 전문성등 모색/고 교육과정연구위원회가 27일 발표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개정시안」은 내용면에서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국제화·정보화시대에 대비해 컴퓨터·환경등의 첨단기초과목을 선택과목으로 신설하고 교육부의 교육과정 선택결정권을 줄이는 대신 각시·도교육청및 학교측에 결정권을 대폭 이양한 것이 눈에 띈다. 또 소련을 비롯한 동구공산권의 몰락과 남북한 유엔동시가입등으로 호전되어 가고 있는 국내외정세를 감안,그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국사와 교련과목을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바꾼 것도 주목을 받고 있다. 덧붙여 초·중·고 모두 도덕교육에 중점을 둔 것은 기본생활습관·예절·규칙·질서를 중시하고 도덕적사고·가치관·인생관·세계관을 함양시키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개정시안은 이와함께 지역의 특성이나 학교의 실정,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다양성과 융통성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앞으로 개정안이 확정되려면 내년 6월30일까지 9개월 남짓 남아 있으나 정부의 최종안도 연구위원회가 이날 내놓은 시안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제는 개정내용이 혁신적인 만큼 그에 상응하는 교육예산과 인력확보,시설확충등이 급선무라고 교육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지적하고 있다. 연구위원회가 이날 발표한 내용가운데 현행제도와 다른 점을 초·중·고별로 요약해 본다. ▷국민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지도하는 「바른생활」(사회·도덕)과 「슬기로운생활」(자연)이 「탐구생활」로 통합된다. 3학년 이상에만 도덕과목이 있었으나 1·2·3학년에 「생활예절」과목을 신설하고 4학년이상은 그대로 도덕과목을 둔다. 6학년을 기준으로 주당 32시간인 수업시간을 최고 31시간으로 줄이고 2학년 이상은 현재보다 주당 1시간씩 줄여 학습부담을 경감시켜 준다. 현재 국민학교의 수업시간을 보면 1학년이 24시간,2학년 25시간,3학년 28시간,4학년 30시간,5·6학년이 각각 32시간씩으로 나타났다. 고학년 체육·음악·미술과목의 교과전담제를 도입하면 현재 교사1명이 9개 과목에 걸쳐 최고32시간을 수업하던 것이 6개과목 24시간으로 훨씬 줄어들게 된다. ▷중학교◁ 교과체계의 합리화를 위해 국사과목을 사회과목에 통합시킨다. 한문교과는 완전히 폐지하고 국어과목에 귀속시킨다. 이는 현재의 한문교과서에는 실제생활과 거리가 먼 한시나 고문등이 많아 이를 국어과목에 귀속시켜 생활한자교육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또 농업·공업·상업·수산업·가사과목 가운데 한 과목만 선택하도록 했던 것을 3학년 교육과정에 「생활과 직업」이라는 과목을 신설,진로지도에 만전을 기울이도록 했다. 주당 수업시간은 현재 36시간에서 34시간으로 2시간 줄어들며 과목별로 주당 1시간 범위안에서 늘리거나 줄일 수 있도록 자율성을 확대시켰다. 남녀역할의 평등화를 도모하기 위해 1·2학년 교육과정에 기술과 가정과목을 통합시킨 「생활관리」과목을 신설한다. ▷고등학교◁ 개정시안중 가장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는 학기당 18∼20개 과목을 이수해야 하나 12개 과목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필수과목은 국민윤리·국어·국사·사회·수학·과학·체육·교련·음악·미술·한문·외국어등 12개과목에서 ▲일반국어 ▲현대사회와 시민 ▲윤리 ▲일반수학 ▲현대과학과 인간 ▲일반영어 ▲체육 ▲음악 ▲미술등 9개과목으로 줄였다. 이는 국사·교련과 한문과목을 선택과목으로 돌린데 따른 것이다. 국사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지 않은 이유는 종전처럼 한국사에만 연연해 할 것이 아니라 세계사의 맥락에서 우리를 이해하고 세계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교육전문가들은 그러나 국사과목을 완전히 폐지하지 않고 선택과목으로 남겨놓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도교육청과 학교는 국사과목을 선택과목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필수과목을 제외한 선택과목도 현행 29개 과목에서 80여개 과목으로 늘려 교육내용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꾀하고 있다. 그동안 없었던 환경관련과목을 신설,「환경교육」「환경과학」과목을 선택과목으로 신설한다. 전인교육의 강화측면에서 특별활동중 클럽활동시간이 현재의 주당 1시간에서 주당 2시간으로 늘어난다.
  • 유고 사태와 민족주의(사설)

    동구모범공산국의 하나였던 유고슬라비아가 유혈내전의 혼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탈공산화과정에서 파생된 민족분열의 혼돈이다.지난 6월25일 크로아티아공화국의 독립선언으로 본격화되기 시작한 유고 내전은 유럽공동체(EC)의 끈질긴 중재노력에도 불구하고 휴전과 개전을 되풀이하는 악화일로를 치달으면서 이미 5백여명의 사망자를 내고 있다. 유고는 6개공화국 5개민족의 인위적 복합국가다.유고연방을 만들고 그것을 유지시킨 구심점역할을 한 것이 티토요 공산당이었다.그것이 없어진 지금 유고연방붕괴의 진통은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유고연방의 붕괴여부는 복잡미묘한 민족문제로 얽혀있는 유럽통합은 물론 민족분열의 혼돈에 휘말려 있는 소련기타 동구국들의 장래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주목거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유고의 유혈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것은 배타적 민족주의 감정이 갖는 위험성이다.유고사태는 한마디로 배타적 민족감정의 대립갈등에서 비롯되고 있다.세르비아민족주의대 크로아티아민족주의의 극한적 대결이 오늘의 유고유혈사태를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연방의 유지나 공화국 독립의 추구가 아니라 각 민족의 자기이익에 대한 배타적 추구가 지상의 과제요 목표가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련의 개혁과 신사고외교에서 비롯된 탈냉전의 세계질서를 지배하는 가치는 국가이익과 민족주의일 것으로 흔히 예측되어 왔다.그렇다면 탈냉전시대가 냉전시대보다 평화롭지만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최근의 세계적 사태의 전개는 그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는 것 같아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걸프전이 국가리익주의전쟁이었다면 유고를 비롯한 동구나 소련의 갈등은 민족주의분쟁이 아닌가. 민족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선의의 민족주의가 나쁠 것은 없다.타민주과의 공존·공영속에 경쟁적으로 자기민족의 이익을 추구하는 민족주의는 바람직한 것일 것이다.그러나 그것이 유아독존의 배타적이고 국수주의적인 것이 될 경우 얼마나 위험스럽고 무서운 것인가는 나치스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에서 우리는 충분히 목격하고 경험한 바 있다.국가이익 지상주의와 국수적 민족주의가 결합했을때 세계는 약육강식과 전쟁의 재앙에 휘말렸던 귀중한 경험인 것이다. 세계는 그런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부활을 최대한 경계해야 할 것이다.유고와 소련의 민족분규가 반드시 그런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그러나 그것이 화해와 공존은 물론 평화적 방법에 의한 문제해결이라 세계사적 방향에 역행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이유는 많겠지만 배타적 민족감정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유고는 물론 세계의 모든 민족은 우선 평화공존과 공영의 가치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이데올로기가 무의미해진 세계가 국가내지는 민족이기주의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해야할 책임은 세계정부의 역할을 해야할 유엔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해관계가 엇갈리는 EC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유엔이 유고내전의 종식에 발벗고 나서야할 때가 아닌가 한다.
  • 외언내언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추구하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이상은 북구식 복지사회주의의 건설에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다.소련 쿠데타 저지후 사회주의 완전포기의 대세에 밀리면서도 『스웨덴에서 배우고 싶다』며 사회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하던 그가 인상적이기도 했다.북구식 복지사회주의는 그가 아니더라도 많은 세계사람들의 오랜 선망의 대상이었다.◆가난한 사람이 없고 소득수준의 격차가 적은 사회.요람에서 무덤까지를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는 이상사회가 북구사회주의의 목표다.북구는 그목표에 가장 가까이 가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대표적인 나라가 스웨덴.한데 정작 그 스웨덴사람들은 실망하고 변화를 바라기 시작했다는 소식.◆15일 총선에서 집권사회민주노동당의 패배가 확실하다는 것.스웨덴의 사민당은 36년의 한때를 제외하곤 32년부터 60여년을 장기집권하면서 세계제일의 복지국가를 건설한 민주사회주의 정당으로 유명하다.최근의 여론조사에선 사민당과 좌익당(옛공산당)의 지지율이 35.9%.감세와 철저한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하는우익의 부르주아4개 당 지지율은 49.5%.◆연이은 제로내지 마이너스 성장과 실업률의 배증등 경제부진이 직접적인 이유.하지만 최대의 원인은 고복지·고부담사회민주주의정책의 한계노출.근로소득의 60%를 세금으로내도 부족한 복지부담의 한없는 증가.높은 세금을 피하기 위한 기업들의 해외투자 도피사태.일하는 자보다 놀고 먹는자가 많아진 사회분위기.국민들은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분배에는 강하나 생산에는 약한것이 사회주의의 최대 약점.소련공산당의 붕괴나 스웨덴사민당 퇴조도 바로 그 약점때문 아닌가.스웨덴의 복지사회주의도 60년만의 한계인데 소공산당의 붕괴가 70년만의 일이고 보면 그 세월이 사회주의실험의 한계인가.북구도 한계라면 고르비도 서구자본주의 말고는 갈길이 막연하다.고르비같은 이상도 없이 끝나버린 공산주의의 고수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앞날이 걱정이다.
  • 소 공산 독재가 무너지던 날/김영만 모스크바특파원(오늘의 눈)

    소련이 해체되던 5일 모스크바에서는 작은 떨림같은 것이 있었다.해체가 좋다거나 싫다는 그런 정치적인 떨림이 아니다.예상했던 일이긴 했지만 워낙 큰 뉴스앞에서 이유없이 긴장하게되는 몰가치적인 떨림들이 모스크바 시민들의 얼굴에서 잠시 나타났던 것이다. 붉은 곰으로 소련은 곧잘 비유되었듯이 그것은 탐욕스럽고 거친 이미지로 우리에게 있어왔다.2차대전이후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하면서 인류를 핵전쟁의 공포에서 허덕이게 했고 20억 공산권인구에게 마르크스와 레니즘을 실험해왔던 공산주의 종주국이 소련이었다. 그보다 더욱 우리에게 선명한 소련의 이미지는 얄타회담에서 38선을 그어 통일된 나라를 분단시켜 놓은데서 찾아진다.2백만명이상의 사망자를 낸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38선을 넘어왔다는 부분에 이르면 소련의 이미지는,또 우리에게 있어서의 그 역사적 존재는 탐욕이나 거칠다는 것을 훨씬 넘어선다. 그 소련이 지도에서 사라지던 날,모스크바의 TV와 라디오는 쿠데타소식을 전하던 그때처럼 흥분된 목소리로 인민대의원대회의 결정을 전했다.그러나 그것 뿐이었다.아나운서의 흥분된 목소리를 들으면서 시민들은 잠시 큰 뉴스앞의 흥분을 감추지 못했을 뿐 금세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였다.이미 쿠데타직후부터 연방해체를 예상했던 사람이 많았고 연방이 해체된다 해도 일반시민들의 생활이 바뀔것도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연방해체를 충격없이 받아들이는 모스크바시민들앞에서 한국기자들만은 설명하기 쉽지 않은,배반감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소련이 만들어낸 38선이 휴전선으로 뒤바뀐채 남아있고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통일은 언제될지 모르는 상태에 한국은 여전히 머물러 있다.언제 아물지 추측키도 쉽지 않은 그런 상처를 남겨놓은채,막상 상처를 입힌 장본인들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볼셰비키혁명이전으로 돌아가버리는 5일의 모스크바 표정에서 배반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같은 유약한 감정일 것이다.또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될리없는 단상이란 점도 분명하다.그러나 그런데서 세계사의 몰인정을 배우면서 새로운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도 큰 재산이 될 것이다.
  • 발트3국 완전독립 눈앞에/“50년 숙원” 어떻게 풀리려나

    ◎EC 이어 미도 승인… 인민대회 인준 남겨/올가을 유엔가입­올림픽 독자참가 길터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1일 미 CNN­TV 및 소련 TV들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발트3국의 독립을 수용할 방침을 밝힌데 이어 2일 개막된 소련 인민대표대회는 이들의 독립인준을 개막의제로 올려 통과시킬 예정으로 있고 부시 대통령도 이날 발트3국 승인을 공식 발표해 이제 이들의 독립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들의 독립은 단순히 식민상태에서의 해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2차대전후 강대국들이 임의로 확정해 놓은 약소국 국경의 원상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이미 EC를 포함한 40여개국에서 이들의 독립을 승인하거나 외교사절 파견계획을 밝혀왔으며 또 1일 모스크바를 방문한 존 메이저 영국총리는 이들 발트 3국의 유엔가입 및 국제기구에의 가입을 적극 주선하겠다고 강조해 빠르면 올 가을 발트 3국의 유엔가입까지도 내다볼 수 있게 됐다. 또한 지난달 30일 소련올림픽위원회(SOC)가 발트 3국의 올림픽 독자참가를 허용하는 조치를 내림에 따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이달중에 베를린에서 열리는 집행위원회에서 이들의 가입문제를 논의할 예정으로 있다. 발트 3국은 소련에 합병된 1940년까지 IOC회원자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재가입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의 독자적인 참여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발트 3국은 독립이 목전에 다가옴에 따라 그 내부적 문제들이 주요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첫째는 경제적인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이들이 비록 소연방내에서 1,2,3위를 차지하고 있는 공업국이지만 대 연방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이들의 국민총생산(GNP)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대외무역수입 가운데 95%가 연방내 타공화국과의 무역액이며 특히 광물자원과 에너지의 경우 러시아공화국으로부터 거의 전량을 수입하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에스토니아의 농축산품,라트비아의 기계류와 섬유,리투아니아의 조선·제지 등 지금까지 주 수입원이었던 상품들도 독립후에는 경쟁력이 앞선 유럽·아시아국가들과 경쟁해야할 처지여서 이들이 홀로서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문에 이들은 당분간 경제적으로는 소연방체제하에 잔류할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서방에의 의존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는 민족문제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스탈린시대의 민족대이동으로 러시아인이 라트비아 인구의 33%,에스토니아 인구의 28%,리투아니아 인구의 9%를 차지하는 외에 우크라이나인·백러시아인·폴란드인 등 여러 민족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군사기지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이들 3개 국내에는 전략폭격기 기지 등 군용비행장 32곳,잠수함 기지 등 해군시설 6곳,미사일 기지 31곳 등이 있다. 특히 이 지역은 소련군의 대 유럽 및 대서양·북극해 전략에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에 이 문제의 원만한 합의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 옐친의 소련/공산독재 막 내리다:7

    ◎“공산 잔영 지우기” 국민손에 달렸다/경쟁원리 도입… 나태·무책임 추방이 열쇠/물가·민족갈등 해결없인 더 큰 혼란 우려 요즈음 모스크바 시민들은 다시 일상의 생활을 되찾았다.빵가게·육류가게앞에는 다시 먹을것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긴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TV는 새민주 소련의 출범을 놓고 난상토론중인 연방최고회의 임시총회장면을 하루종일 방송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관심은 어느덧 먹고 사는 문제로 다시 돌아와 있다.한때 자고나면 하나씩 사라지던 볼셰비키혁명 지도자들의 동상제거소식도 이제는 뜸해졌다. 정치면에서 지난 1주일은 소련 국민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일주일이었다.볼셰비키혁명 74년만에 공산주의가 다시 폐기됐다.쿠데타군의 탱크들이 모스크바시내를 빠져 나가던 날 러시아공화국의 한 대의원은 『74년전 10월혁명으로 자본주의가 망하던 날은 몹시 추웠고 공산주의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비가 오고있다』는 날씨이야기로 자신의 연설을 시작했다. 많은 학자들이 소련에서 공산주의가 종말을 고한 것은 지구의 절반을 지배해온 공산주의가 다원주의·다당제·사상·표현의 자유등 민주적 가치에 기초한 자본주의 이념에게 길을 비켜주었다는 점에서 중대한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련의 경우 공산독재는 막을 내렸지만 경제난,민족간 갈등,만연한 부정부패,일하려 들지않는 국민의식등 쿠데타이전에 안고있던 문제들 어느 하나 해결된것 없이 고스란히 남아있다.구체제는 무너졌지만 새로운 체제는 만들어지지 않은 체제의 공백기가 시작된 것이다. 한 소련학자는 74년전에 버린 자본주의를 다시 찾아 나가는 「또 하나의 혁명」이 이제 소련에서 시작됐으며 이 혁명이 완성되려면 또다시 74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고 말했다. 쿠데타기간 3일동안 러시아공화국 청사를 지키려고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쿠데타군의 탱크에 맞서 거리를 누비던 시민들의 모습은 이 나라에서 이제 공산독재는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때 거리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념적 확신을 가지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쿠데타세력에 대한 저항보다는 기존체제 전반에 대한 일종의 집단히스테리같이 보였다. 이 히스테리의 대상은 쿠데타세력·공산당·군·관료세력등 기존체제의 모든 수혜자들이 포함된다.이 집단파괴의 에너지를 어떻게 새로운 사회건설에 모아 나가느냐가 앞으로 소련지도자들이 해야될 최우선 과제라 여겨진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소련국민들 사이에 뿌리박힌 소위 「사회주의 근성」이 바뀌어져야 한다.남보다 더 일하지 않으려는 의식,「노동자의 천국」이라는 환상이 심어놓은 한없는 나태,무책임한 태도들이 바뀌지 않고는 어떤 개혁도 성공할 것같지 않다. 레흐 바웬사 폴란드대통령은 『사회주의는 한사람이 일할 삽을 5명이 잡고 일하는 것』이라고 사회주의의 비효율성을 지적한 적이 있다. 개혁이란 결국 이가운데서 4명을 쫓아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국민들의 이해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자본주의 경쟁의 원리와 인센티브제에 대한 인식을 국민들이 얼마나 빨리 갖느냐에 개혁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지난해 1단계 가격자유화조치때와 같은 사재기·파업등의 혼란이 되풀이되면 개혁의 길은 그만큼 더 멀어질뿐이다.국민들의 이해와 협조없이 본격적인 개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쿠데타이후 소연방은 엄청난 속도로 쇠퇴의 길을 걷고있다.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재결합이 전제되지 않을때 이 해체의 과정은 엄청난 위험을 수반할 것이다.새연방구성에 대한 합의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공화국간 내전발발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29일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민족과 카자흐민족간 충돌이 벌써 일어났다.어쨌던 소련국민들은 수십년의 시행착오끝에 공산주의를 버리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그 시행착오의 대가로 소련국민들이 겪는 고통은 실로 끔찍한 것이다.그리고 그 시행착오는 소련국민들에게 잘못된 제도뿐만 아니라 그들의 의식까지도 바꾸라는 어려운 과제를 남겨 놓았다.
  • “공산주의 사망” 공식 조종/소 최고회의의 「당활동 정지」 의미

    ◎「계급없는 사회」 구현 74년 실험 실패 확인/동구공당 몰락이 종주국에 “부머랭 효과” 공산주의의 장송곡이 울려 퍼지고 있다.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지난 74년간의 공산당지배의 「종언」을 스스로 선언한 것이다. 소련의 연방최고회의는 29일 공산당의 활동을 소련전역에서 정지시키기로 결정했다.최고회의는 공산당의 주도세력이 지난 19일 발생한 쿠데타의 모의및 실행에 연계된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공산당 활동의 정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소련 관영 타스통신은 연방최고회의가 공산당해체를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소연방 최고재판소가 공산당 활동을 종식시킬지 여부를 결정할수 있도록 자료들을 제출하도록 명시했다고 보도,공산당의 공식해체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소련 공산당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 했던 보수파의 쿠데타로 스스로 종말을 재촉했다.고르바초프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로 의식의 변화를 가져온 소련시민들의 자유의지가 보수화를 거부한 것이다. 쿠데타에 대한 시민저항이 공산당의 몰락을 가져왔지만 85년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함께 공산당은 이미 변화하기 시작했다.고르바초프는 공산당 일당지배체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당을 정부및 의회기구와 분리시키는 개혁을 단행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에 따라 89년 소련의 최고 입법기관인 인민대표회의 대의원 선거가 소련 역사상 처음으로 복수경선에 의해 실시됐다.다음해인 90년에는 공산당중앙위원회가 스스로 공산당의 권력독점 포기를 선언했으며 지난달에는 당중앙위 전체회의가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하는 새 당강령을 채택했다. 고르바초프는 사회주의체제내에서의 개혁을 희망했다.그는 마르크스주의를 청산하면서도 사회주의 건설을 추구했다.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는 「불행히」도 사회주의에 대한 소련인들의 환상이 한낱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지나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1917년 볼셰비키혁명과 함께 등장한 소련 공산주의의 74년간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그러나 공산주의의 등장은 화려했었다.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의 해방과 계급없는 풍요로운 사회,이른바 「지상낙원」의 건설을 선언했었다. 공산주의의 환상은 한때 지식인들의 희망이었다.그들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여 자체 모순을 일으킬때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할 것이라고 예언했었다.그러나 공산주의는 자본주의가 몰락하기 전 먼저 스스로 종언을 고하지 않으면 안되었다.공산주의는 이제 무너지는 레닌동상과 함께 희미한 「전설」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소련 공산당의 해체는 소련 한나라의 국가이념이나 체제 붕괴 이상의 의미가 있다.이는 한때 지구의 절반을 지배할만큼 지대한 영향력을 가졌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가치개념의 붕괴를 의미하는 세계사적인 대변혁인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공산주의의 몰락은 자체의 본질적 모순과 한계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카터 전미대통령의 안보담당보좌관이었던 브레진스키박사는 『소련의 변화는 추악한 역사의 한 장이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리고 있다.부시 미대통령은 『소련 공산당의 죽음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그는 대소긴급지원을 선언했다.강대국간의 경쟁은 숙명적이지만 보다 개방적이고 민주화된 소련은 미국과의 화해의 시대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소련의 새로운 시작은 어느 한 지도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보수파의 쿠데타를 저지시킨 시민의 힘에 의해 창출되고 있다.역사의 한 발전단계가 소련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혁명」의 와중에 있는 모스크바거리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의 어두운 그림자가 남아 있다.
  • 「주사파」여 망상서 깨어나라/이철승 전신민당대표최고위원(특별기고)

    ◎공산독재 몰락과 우리현실을 보며…/“우리식대로 살자”는 북의 허성 듣는가 수일전 소련에서 전인류 원한의 상징인 거대한 레닌동상이 맥없이 헐려 내리는 것을 보는 순간 반탁·반공전선에서 싸워 대한민국을 세우고 자유전선을 지키다 살아남은 한사람으로서 오랜만에 승리감을 느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냉엄한 우리 현실앞에 착잡한 심경을 어찌할 수 없었다. 공산통치기간중 전세계에서 목숨을 잃은 1억5천만명이 넘는 참혹한 희생자와 6·25동란때 자유전선에서 희생된 3백만명이 넘는 영혼들의 명복을 빌었으며 반세기동안이나 이산의 고통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는 1천만 남북동포들을 마음으로 위로 했다. 세기말적 사건인 소련의 붕괴는 「공산주의의 죽음」이라는 세계사적,보편적 하나의 예이다. 74년에 걸쳐 소련과 세계에 군림하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가치관으로 세계인구 3분의1을 지배하던 소련공산당이 드디어 붕괴되고 연방해체의 위기에까지 직면해있다. 그러나 아직 민주화혁명을 겪지 않은 아시아 등 지역 공산국가들은 「공산주의의 죽음」이라는 세계대세에 저항하여 공산체제를 지탱해 보려고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다. 중국은 「사상의 만리장성」을 쌓자고 하고 쿠바와 베트남은 사상교육을 강화,반공투쟁을 봉쇄하고 있다.북한은 「우리식대로 살자」는 구호를 주민의 뇌리에 주입시키고 소련 대신 중국을 종주국으로 삼으며 남한의 좌익세력을 조종,남한정부의 전복투쟁을 벌이면서 북한체제를 안정시키는 공세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그러나 아시아의 공산체제도 대세에 역행할 수 없어 조만간 붕괴될 것은 역사적 필연이라 확신한다.이 숨가쁜 현실에서 우리의 할일은 무엇인가.그간 우리의 정치 잘못으로 북한의 대남통일전선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이 때문에 우리는 정부 각기관에 침투된 「공산분자」를 가려내고 철없이 날뛰는 좌익 혁명세력을 잘 다스리면서 경제력회복과 각종 부조리를 척결하고 바른정치·바른언론으로 정치·경제·사회적 안정을 공고히 한뒤 의외로 빠른 장래에 북한공산체제의 붕괴와 함께 도래할 각종 혼란을 막고 통일에 대비한준비를 범국민적으로 착실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북방정책과 대소정책은 성과가 없지않아 있었다.그러나 북방정책과 경협을 포함한 우리의 대소정책은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첫째로 정치 기득권의 창구만을 고집하지 말고 정부와 민간·학계및 연구기관 등으로 다양하게 우수한 정보수집력과 분석능력이 총동원되는,각계각층이 망라된 「대책위」같은 것을 제도화해야 할것이다.둘째로 대소정책은 오늘의 소련방의 해체와 공화국의 독립이라는 두가지 현상을 놓고 오늘은 소연방,내일은 공화국식으로 우왕좌왕하거나 무원칙의 경쟁적사업 진출로 추태를 보이지말고 어느것이 국익이 될것인가를 살펴 종합적인 판단력과 안전성확보에 주력하라는 것이다.셋째로 소련과 같은 구조적·사상적으로 변화하는 체제와의 교섭은 더 이상 비밀외교나 단독창구에 의존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우리가 빚을 내서까지 30억달러를 군부와 KGB등에 업혀 있던 고르바초프에게 일방적창구를 통해 제공하기로한 정부의 당초의 처사는 경솔했다고 생각한다.오늘의 소련의 정정으로 보아 자칫하면 그 경협의 상환계획은 원인무효가 될 소지를 안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 당장 경협의 미집행분을 전면보류하고 미일 등이 특별대책반을 구성,소련사정을 면밀히 분석,신중히 대처하고 있듯이 대소정책을 전면재검토하여 신중하게 대응해 나가야 할것이다. 또한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들돝 잡으려다 집돝 놓친다」는 속담처럼 대소정책에 매달려 있기에는 우리의 경제사정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금년에 1백억달러가 될것이라는 무역적자,3백60억달러가 넘는 외채,생산성저하,기술부족,물가폭등,난맥적인 주택정책,막심한 태풍피해,그리고 과소비,외화낭비,도덕성타락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만큼 경제사정은 험난하다.정부는 우선 이같은 상황을 바로 잡아야 할것이다. 독일통일은 많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지만 독일민족의 끈끈하고 우수한 민족성과 경제력으로 극복될 수 있다고 본다.그러나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한마디로 대북한정책·통일정책은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북한의 대남정책은 소련등 외부정세가 아무리 바뀌어도 소위 「사회주의불패론」을 내걸고 6·25전범자인 김일성이 살아있는한 대남통일전선전략을 한치의 변화없이 밀고 나갈 것이다. 김일성이 무너질때 북한의 사정은 아비규환의 혼란이 일어날것이며 북한 동포들의 난민이 쏟아져 나올때 정부는 무엇으로 이를 대비할것인가.통일바람만 부추기고 있을때가 아닌 중대한 전환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북한의 상투전술에 끌려 다니지 말아야 할것이다. 우리의 통일정책은 인류보편의 정경대원칙을 견지하면서 루마니아 소련보다 더 큰 혼란에 빠질 위험을 안고 있는 김일성에게 환심을 사려하기보다는 김일성정권이 얼마나 반민족적 반인간적 독재정권인가를 남북한동포와 해외동포,나가서는 전세계인류에게 알리고 북에서 신음하는 동포를 구제하며 국제적연대에 의해 북한의 개방을 불가피하게 만들며 자유와 다원체제로서의 통일을 이룩하는 명백한 국민적 합의를 이룩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대북정책·통일정책을 성과 있게하려면 우리의 내부정돈부터 하여야 한다.국내 각계·각층·각기관에 독버섯처럼 박혀 있는 공산간첩·좌익파괴분자들을 낱낱이 뿌리 뽑아야 한다. 소련에 이번 정변이 났을때 쿠데타세력을 지지·찬양하는 대자보가 수개대학에 나붙고 있었던 실상을 우리는 어찌 보아야할것인가. 북한은 3만5천여개의 김일성동상을 만들어 인민에게 충성을 강요하고 있다.남한의 주사파좌익학생들은 바로 그 김일성동상을 가슴에 묻고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여야정치지도자들이나 지식인 언론계가 건국과정에서 6·25자유수호전선에서 희생된 선대의 덕으로 자유와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동안 소련과 동구권의 시민과 같이 이나라 좌익세력의 뿌리를 뽑는다는 책무를 잊어버리고 있는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 사회주의라니…/장수근 북한부장(오늘의 눈)

    지금 소련에선 공산당이 박살나고 공산주의가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다. 「붉은 제국」의 창시자 레닌의 동상이 정강이가 부러진채 땅바닥에 패대기쳐지면서 공산독재의 종언을 알리는 장송곡이 울려퍼지고 있다. 요즘 소련에서 진행되고 있는 숨가쁜 변혁을 두고 「8월 혁명」이라기도 하고 「제2의 소련건국」이라고도 말한다. 사실 지난 74년간 인민위에 군림하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운명」은 「혁명」이란 표현으로도 그 뜻을 다 담기 어려운 세기사적 드라마임에 틀림없다. 한마디로 소련의 최근 사태는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정이 난 공산주의 이념과 체제를 고집할때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실례라고 할 수 있다. 또 개방과 개혁,자유와 민주를 갈망하는 시민의 저항은 탱크와 총부리로도 막을 수 없음을 소련의 드라마는 보여주고 있다. 이런 판국에 여전히 「공산주의의 승리」라는 환상에 쫓겨 체제의 개선을 외면한채 낡은 이념의 껍질속으로 파고드는 세력이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은 26일 사회주의체제를 옹호하면서 『로동당의 지시와 지도노선을 따름으로써 다양한 적들로부터 우월한 사회주의를 지켜나가자』고 역설했다. 도쿄에서 청취된 평양방송은 이날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비견할데 없는 사회주의의 중요성과 매력을 인정하고 당의 현명한 지도하에서 자랑스럽게 우월한 우리의 사회주의를 건설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련의 붕괴과정을 지켜보면서도 북한은 「사회주의 승리는 역사적인 필연」이란 그들의 지정곡만을 되풀이해 틀고 있는 것이다. 모르면 몰라도 그들은 소련의 격변이 이른바 「주체사상」같은 「위대한 사상」이 없는데서 비롯됐다고 우길 것이다. 그러나 이념을 빙자한 절대주의체제는 아무리 국민을 통제하고 외부세계와의 접촉을 막는다 하더라도 결국은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루마니아가 실증한 바 있다. 보다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는게 세계사의 도도한 흐름이다.인권과 자유가 말살된 「북한식 사회주의의 우월성」따위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소련사태는 웅변하고 있다. 인류역사가 새로 쓰여지고 있는터에 「사회주의 고수」라니,어림도 없는 소리가 아닌가.
  • 소 공산당 영욕의 74년사

    ◎노동자에 의해 무너진 「노동자천국」/억압과 부패의 철권통치… 인민불만 누적/고르비의 개방정책 이후 급속한 몰락의 길 지난 1917년부터 74년동안 소련 그 자체로 모든 것 위에 군림했던 소련공산당이 모든 것을 잃고 이름마저 없어질 신세로 전락했다. 소련공산당은 공포와 억압 정치로 소련을 이끌어왔다.소련공산당이 소련이란 국가를 창출해 낸 것은 누구나 부인하지 않는 1917년의 역사적 사실이다.마찬가지로 이후 70여년간 계속된 「소련공산당이 곧 소련이다」는 정치체제와 통치방식이 오늘날의 소련 위기와 소련공산당의 궤멸을 초래했다고 역사는 증명한다. 소련공산당은 이 명칭 그대로의 이름(CPSU)을 1952년에야 갖게 됐지만 그 연원은 93년전인 1898년에 발족된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SLDP)이다.1903년 제2차 당대회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을 지도자로 하는 볼세비키(다수파)가 멘셰비키(소수파)를 누르고 당 주도권을 잡았다. 1905년 1월 20만여명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러시아 차르의 동궁앞에 몰려와 시위를 벌였으나 1천여명이 학살되는 데그쳤다.그러나 1917년 10월26일 레닌이 주도하는 노동자와 병사들이 페테르스부르크궁에 입성하면서 세계사 최초로 노동자농민의 소비에트연방 정권이 탄생했다.혁명의 성공과 함께 볼셰비키조직은 러시아사회민주당을 「전러시아공산당」으로 바꿨는데 이때 레닌은 이를 「이 시대의 지혜,명예,그리고 양심」이라고 불렀다. 1921년부터 28년까지 신경제정책(NEP)을 통해 일부 사기업제도를 도입하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서 공산당은 산업과 문화,그리고 사고까지 통제·지배하는 중앙집권의 틀을 잡았고 이를 위해 「적색테러」를 일삼았다. 이같은 철권통치는 24년 레닌사망을 전후해서 당내부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막후 권력투쟁 과정에서 심화된 뒤 스탈린의 집권기간동안 최고에 달했다.스탈린은 집권후 당의 권한을 무한정 강화하면서 당의 이름으로 정적 뿐만 아니라 일반 「인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에 들어갔다. 2천만명이나 사형·유형·감금 당하는 암흑시대가 전개된 것이다. 53년 스탈린이 사망하자 흐루시초프 당제1서기가 발렌코프 총리와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했지만 당에 힘의 바탕을 둔 흐루시초프가 4년만에 전권을 장악,소련정치무대에서의 공산당의 위치를 분명히 했다.흐루시초프는 스탈린시대의 공포정치를 다소 완화하려고 했으나 64년 궁정쿠데타를 통해 권좌에서 쫓겨났다. 뒤를 이어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당서기장은 코시긴 총리,포드고르니 최고회의의장과 3두체제를 형성했으나 곧 당의 브레즈네프가 독주,통치권을 휘둘렀다. 소련공산당의 공인 당사는 『소련공산당의 역사는 영웅적 투쟁의 도정이며 노동계급과 사회주의,그리고 공산주의의 승리를 가리키고 있다』고 시작되지만 소련의 실상은 공산당 고위 특권계급에게만 무한한 혜택을 주는 「당주의」의 병폐가 만연했다.이를 위해 공산당은 전국의 어느 기관이나 단체를 불문하고 당세포를 무조건 배치시켜 개개인의 일상과 의식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82년 브레즈네프의 사망으로 KGB의장이었던 유리 안드로포프가 당서기장으로 선출됐고 개혁의지를 드러내긴 했으나 84년에 사망했다.후임자 체르넨코도 별다른 실적없이 병사했는데 85년3월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서기장에 선출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이듬해 페레스트로이카(개혁)노선을 선언한 다음 개혁이념과 정책을 실천해갔다.소련식 사회주의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에 몰린 탓이었다. 강압적 중앙통제의 계획경제와 사유재산의 부정은 생산성의 저하만 가져왔다는 점이 확실해지면서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꾀했고 공산당의 권력독점이 갖고 있는 해악에서 벗어나고자 권력의 분산을 시도하기에 이른 것이다.90년2월 고르바초프는 1당독재의 포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공산당을 주축으로 개혁을 진행시키고자 했고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한다고 되풀이 천명하다가 강경 공산주의자의 쿠데타란 역습을 당한 것이다.이 역습으로 고르바초프와 그의 개혁노선은 지금까지의 「공산당」이란 울타리를 뛰어넘도록 강요당했다. 역사는 진정한 소련의 개혁을 위해 탈공산당 및 초공산주의를 지시하고 있다. □소 공산당 약사 ▲1898년=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발족 ▲1903년=레닌볼셰비키당 창당 ▲1917=10월혁명,레닌 소비에트정부수립 ▲1922년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방 수립 ▲1924년=레닌 사망,스탈린 당권장악 ▲1953년=스탈린 사망 ▲1956년=흐루시초프 당제1서기,스탈린격하연설 ▲1964년=흐루시초프 실각,브레즈네프·코시긴·포드고르니집단지도체제 시작 ▲1968년=「브레즈네프독트린」발표 ▲1982년=브레즈네프 사망 ▲1984년=안드로포프 사망 ▲1985년=체르넨코 사망,고르바초프 승계 ▲1986년=고르바초프,개혁 선언 ▲1990년=공산당일당독재 포기 ▲1991년=고르바초프 공산당서기장 사임 및 공산당해체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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