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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불전결의안」추진/중의원/2차 대전 사죄·평화지향 내용

    【도쿄연합】일본 중의원은 오는 8일 진주만 공격 50주년을 맞아 「불전」을 맹세하는 결의를 채택할 방침이라고 일 교도(공동)통신이 30일 보도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의원들은 결의에서 제 2차 세계대전에서 교전국과 인근 아시아국가들에 참화를 가져다준데 대해 반성하고 전쟁책임을 명확히 하는 한편 헌법전문을 인용,일본의 국제적 공헌과 책임을 주창한다. 현재 여야의원들은 운영위원회에서 「불전결의」문안을 둘러싸고 최종적으로 조정을 벌이고 있는데 문안은 ▲전쟁에 대한 반성과 사죄 ▲전후 복구협력과 감사 ▲앞으로 국제적 공헌과 책임등 3개항목으로 구성될 전망이다. 결의에서는 우선 「개전 50주년을 계기로 인근 아시아국가들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에 심대한 괴로움을 준데 대해 반성한다」며 전쟁 책임을 인정하고 「전후 황폐화에서 경제대국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다름아닌 미국을 비롯,각국으로부터 물심양면의 협력 덕분」이라며 감사의 의향을 표명한다. 또 앞으로 일본의 입장에 관해서는 헌법의 전문대로 「평화국가」를 견지할 것임을 강조하는 한편 세계평화와 번영에 공헌한다는 결의를 천명할 것이라고 교도통신은 설명했다.
  • “산업구조 개편·국제분업 뛰어들 때”/서울신문 46돌 해외특별기고

    ◎일본 경제가 한국에 주는 교훈/두 독일학자 공동집필/한국경제환경,60년대초 일과 흡사/높은 산업투자율·교육수준등이 큰 무기/타국서 모방 힘든 전략상품 집중개발을/금융시장 정부개입 줄이고 물가 잡아야… 금세기내 선진국 진입 낙관 제2차세계대전이후 서구선진국들과 일본간의 국민소득수준은 점차 그 폭이 좁아졌다.이는 국민소득과 생산성이 낮았던 국가가 생산성이 높은 고소득국가보다 급속히 성장할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유럽에서는 독일과 이탈리아가 고도성장을 이루어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독일의 경우 50년대초 1인당 국민소득수준은 42%(미국기준 1백)에서 90년대에는 85%로 늘어났다.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독일이나 이탈리아보다 빠른 성장을 이루어 서구선진국수준에 돌입할 수 있었다.이같은 예의 핵심문제는 소득수준의 향상을 기준으로 하는 경제발전법칙이 있느냐하는 것이다.그렇다면 한국과 같은 신흥경제개발국들은 일본의 선진경제개발모델로부터 무엇을 배울것인가. 대전후 관심을 끌었던 「캐칭업」이론의 원리는 서구와 일본의국민경제발전과정은 미국의 고도산업기술을 활용해 기초분야의 기술을 발전시켜 기술개발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새로운 생산기술의 원용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산업및 유통구조의 모방은 처음부터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이들 「캐칭업」국가들은 개척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놓여있었다.이들 국가들은 기술적으로 앞서있는 국가보다 산업발전 분야에서 보다 큰 도약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경제적인 도약을 이룰수가 있었다.또 기술수준의 격차가 클 수록,1인당 국민소득차가 크고 생산성의 간극이 벌어질수록 후발국은 선발국을 따라잡을 수 있는 보다 큰 가능성을 가지고있다.그러나 산업기술격차를 줄이는 방법에 있어서는 기술적용만으로 선진국을 따라잡을 가능성은 크지않다. 「캐칭업」의 기본원리는 이상과 같이 간단하나 실제로는 여러 요소가 가미돼 단순하지가 않다. ­첫째,이 이론은 산업이 극도로 뒤져있는 국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도의 산업기술 도입은 한국과 같이 상당히 개발된 국가에 있어서나 꽃을 피울 수 있다. ­둘째,「캐칭업」은 가만히 있어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가능하다는 것이다.경제발전의 가능성은 가장 적합한 기술을 찾아내 자기것으로 만들 수 있는 한 국가의 「사회적 역량」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는 「사회적 역량」에는 어떤 사회적·경제적인 요소가 중요한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우선 구조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거시경제의 틀에서 볼때 안정되고 조직화된 교육의 실체를 들 수 있다.이밖에 국제경쟁력에 대한 공개성,국가조정력의 외연성,그리고 새로운 기업을 설립하고 운영하는데 필요한 여건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른바 사회·경제적인 요소가운데 경제발전을 이루는데 중요한 「사회적 역량」이 무엇인가는 과거 유럽에서 경제부흥을 이룬 국가들과 일본의 예에서 살펴본것 들이다. 일본은 50년대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에 비해 18%에 지나지 않았다.이때문에 일본은 커다란 기술격차를 이용해 경제를부흥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으며 낡고 뒤떨어진 기계를 외국으로부터 최신의 첨단기계를 도입해 과감하게 시설을 바꿀 수 있었다.그 결과 일본은 이후 10여년동안 세계평균 경제성장률을 훨씬 넘는 연 7%의 성장을 도모할수 있었다.일본은 이같은 방법으로 경제를 발전시켜 60년대초에 이르러서는 국민소득을 미국의 30%수준으로 끌어올릴수 있었다.일본은 60년대 또한차례 대대적인 시설투자를 함으로써 연 9%의 성장률을 이루어 경제발전에 일대 도약을 이룰 수가 있었다.일본의 국민소득은 70년대에 이르러 60%수준에 달했다.그러나 일본은 이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기술격차는 줄였으나 최고의 자기고유기술과 부가가치가 큰 기술을 소유하는데는 뒤졌다.이후 일본은 연 40%라는 대대적인 투자율에 비해 성장률은 4∼3.4%라는 저조한 실적을 올렸다.그러나 일본은 90년대에 들어 1인당 국민소득을 미국의 80%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서구국가에 비교해서 일본의 기술습득과정이 빨랐던것은 사회·경제적인 환경이양호했기 때문이다.국민들의 높은 교육수준은 일본으로하여금 기술선진국으로부터 기술의 비결과 혁신을 어렵지않게 수용해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또 정부로서도 기술도약을 도모할수있는 적절한 조처를 취함으로써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음을 높게 평가해야 할것이다. 서구국가와 상대적으로 비교적 낮은 국가예산,이에 상응하는 낮은 세금은 노동의욕을 고취시키고 지속적인 투자와 기술혁신을 하는데 기여했다.이밖에 수출쿼타나 생산성을 연계한 적절하고도 공개적인 경제적인 조치와 비교적 낮은 환율정책은 일본이 확고한 「캐칭업」을 성취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일본은 특히 인플레율이 연 10%에 달했던 70년대를 제외하고는 산업이 인플레로인해 위축을 받았던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금융환경도 양호했으며 60년대와 80년대에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환율에 개입하는 것을 가급적 피했다. 한국은 6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선진기술을 습득하며 「따라잡기」에 나섰다.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선진공업국인 미국의 10%수준에 불과했으며 산업투자율도비교적 낮아 연 성장률은 5∼6%에 그쳤다.그러나 이후 20여년동안 한국은 과감한 투자와 수출의 증가에 힘입어 연 성장률은 7%에 이르렀다.90년대에 접어들면서 국민소득은 34.5%까지 증가했다.한국은 광범위한 기술도입에 힘입어 경제기술적으로 선진공업국을 추격하는데 성공할 수가 있었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국의 교육수준은 계속 향상되었으며 이제 한국경제는 비교적 낮은 보호율에도 불구하고 보다더 공개성이 요구된다고 규정지을수 있다. 한국은 또 국가가 금융정책에 간섭하면 인플레가 유발되는점을 감안할때 앞으로 정부의 영향력을 점차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이는 환율정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한국의 환율은 60년대와 70년대에는 암시장에서 높은 프리미엄을 받고있었다. 선진공업국을 따라잡는 것과 관련해 또하나 중요한것은 과감히 국제분업에 뛰어드는 일이다. 한국은 70년대 서구국(OECD국가)과의 무역거래에서 주로 노동집약적인 상품의 수출이 주를 이루었다.이들 상품은 70년대 전체 수출물량의 70%이상을 차지했다.이후 한국은 노동집약상품의 수출량을 50%이하로 줄였으며 이에 대신해 기술집약수출품의 물량을 증가시킬수 있었다.그러나 기술집약상품이라 하더라도 쉽게 기술을 모방해 생산한 수출품은 국제시장에서의 경쟁력이 낮으며 다른 나라가 쉽게 모방할수 없는 기술집약상품을 개발해 수출하면 경쟁력이 높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국이 산업의 전문화를 꾀하고 이에따른 산업구조개편을 이루는데 있어 모델로 삼기 위해서는 일본을 뒤따를 필요가 있다.일본은 70년대 서구와의 교역에서 노동집약상품이 비교적 경쟁력을 가졌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쟁력을 상실해 이들상품의 수출량을 크게 줄이기 시작했다.대신 일본은 기술집약상품의 개발과 수출을 늘렸으며 이들 수출품들은 국제경쟁력도 높았고 특히 고도의 전략생산품은 다른 나라가 모방하기 힘들어 국제시장에서 절대적인 경쟁력을 갖게되었다. 그렇다면 한국도 일본과 같이 성공적인 전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90년대는 한국이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어 선진공업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이 결론이다.그 근거는 한국은 60년대부터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어나가면서 그 과정이 일본의 모델과 너무나도 닮았는데 한국의 90년대초 경제발전환경은 일본이 경제대도약을 한 60년대초와 너무나 비슷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구체적인 요인을 들면 현재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 34.5%,높은 산업투자율,그리고 전체적으로 극히 높은 국민교육수준등인데 이는 일본이 경제도약기에 접어든 60년대초에 보유하고 있던 경제발전의 제반요소와 똑같다. 더욱이 선진공업국에 비해 낮은 국가예산은 한국이 경제적인 대도약을 이룰수 있는 또하나의 희망적인 요소이며 특히 적절한 금융 및 환율정책을 병행해 나간다면 그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질것이 확실하다.이와함께 일본이 60년대 산업전문화를 이룬 과정을 한국이 받아들인다면 내일의 한국경제 번영을 더욱 낙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베른할트 하이트거 ■독 킬대졸. 경제학박사 ■독 킬대 세계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일본의 산업구조변화 ○딘 스피난거 ■베를린자유대졸 경제학박사 ■독 킬대 세계경제연구소수석연구원 ■저서:「개발국의 무역과 보호정책」
  • “한국,일 군사적 위협 경계/통일후도 미군 주둔 바라”

    ◎미 월스트리트저널 【뉴욕 연합】 남한에 대해 지금 당장의 가장 큰 위협세력은 북한이지만 한국의 외교.군사문제 전략 수립가들은 일본의 최근 군비증강 움직임과 관련,일본이 장래의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보고 극도로 경계하고 있으며 일부 전략 수립가는 일본의 군국주의 정책에 대비하기 위해 남북한 통일 후에도 한반도에 미군주둔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고 미국의 월 스트리트저널지가 20일 서울발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과 불행한 역사적 과거를 갖고 있는 한국민들은 「신세계 질서」라는 이름아래 미국이 동북아 지역의 평화유지군 역할을 그만두고 그들의 군대를 모두 철수할 경우 무슨일 벌어질지 몰라 크게 우려하고 있으며 한국민은 2차세계대전 종전 이전 40년간 한국을 잔인하게 지배한 일본이 동북아 지역의 평화유지군 역할을 하도록 결코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저널지는 김종휘 대통령 외교안보담당 특별 보좌관이 『2년전엔 한국 주둔 미군의 최대 역할을 북한의 도발 억제로 보았으나 지금은 지역평화유지라는 또하나의 역할이 중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한 점에 주목했다.
  • “진주만 기습” 상반된 미­일 감회/나윤도 국제부기자(오늘의 눈)

    2차세계대전에 미국을 본격적으로 끌어들였던 일본의 진주만(펄하버)기습 50주년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양국에서 나오는 반응은 퍽이나 대조적이다. 미국은 최근 냉전체제 붕괴 이후 부쩍 강화되고 있는 「일본위협론」으로 자칫 무력감에 빠지기 쉬운 국민들에게 대일항전의식을 다시한번 고취시키기 위해 이번 기념일을 절호의 찬스로 보고 있다.사실상 전후 반세기 동안 미국 안보정책의 기조를 이루게 했던 「펄하버신드롬」은 비단 일본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세기말의 불확실성시대를 맞아 그 어느때보다도 재조명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이때문에 이날을 맞는 미국인들의 캐치프레이즈는 「리멤버(기억하자)펄하버」로 강조되고 있다. 반면에 다른 한편인 일본쪽에서는 진주만기습이야말로 일본의 침략성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포겟(잊어버리자)펄하버」를 내세우며 잊혀졌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일본인들은 그같은 계산에서 그동안 히로시마의 원폭피해를 일본의 희생과 고통에 대한 상징으로 부각시키며 진주만기습이나 남경대학살을 상쇄하고도 남는 것으로 치부해왔다. 이같은 상반된 입장의 일본과 미국은 그동안 소련이라는 공동적을 놓고 미국의 헤게모니에 일본이 금융을 부담하는 이른바 「니치베이(일미)경제」체제를 유지해왔다.그러나 이제 공동적이 사라진 상황에서 그들이 일미안보협력체제의 강화를 주장하고 있으나 더이상 그들의 밀월관계가 지속될 수 있으리라고 전망하기는 어렵다.미국은 적자투성이의 채무국으로 전락하고 일본은 세계최고의 채권국으로 부상했기 때문에 미국은 대일통상압력을 그 어느때보다도 강화시키고 있으며 반면에 일본은 경제대국뿐 아닌 정치·군사대국의 꿈까지 이루려 하고 있다. 이때문에 성급한 전망이기는 하지만 21세기초 미국과 일본간의 제2차 태평양전쟁이 불가피하며 이미 일본의 경제기습으로 이전쟁이 시작됐다는 책자가 미국에서 나와 날개돋치고 있다.군사대국화의 첫걸음으로 인식되고 있는 자위대파병 합법화법인 유엔평화유지활동(PKO)법안이 오는 26일 중의원통과를 앞두고 있고 핵무장화추진등 각 분야에서의 일본의 발빠른 움직임은 그같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하고 있다. 21세기의 유럽을 「박물관」,또 미국을 「농장」으로 냉소적 전망을 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팍스니포니카(Pax Nipponica)」의 꿈을 누구보다도 주목해야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 외언내언

    제2차세계대전 직후 전승국이었던 미소가 패전의 독일에서 제일 먼저 가져간 것이 과학기술두뇌였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미국으로간 독일로켓의 아버지 폰 브라운박사의 경우를 들지 않더라도 이때 미소가 데려간 수많은 독일 과학기술자들이 전후 미소과학기술및 무기개발경쟁의 기초가 되었던 것 또한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2차세계대전 직후 독일에서 있었던 그일이 지금 소련·동구에서 일어나고 있다니 세상 무상인가.냉전의 패전때문.사회주의경제는 붕괴되고 과학기술두뇌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중단되자 과학두뇌실업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생계가 막연해진 이들이 대접받는 해외로의 이주를 희망하고 있고 서방연구소,기업등이 이들을 스카우트 하고 있는 것이다.◆가장 심각한 경우는 역시 소련.프랑스의 르 몽드지는 「소련의 연구·실험실에 대지진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89년의 50명에 이어 90년엔 2백50여명의 저명한 소과학자들이 서방연구기관들과의 장기 계약으로 소련을 떠났다.「우주팽창론」의 창시자 린데박사에 대한 미스탠퍼드대학과 프랑스의 CERN연구소간의 유치경쟁은 최근의 일.◆「소련과학자들의 엑서더스현상」이라든가 「2차대전종전 이후 최대의 두뇌유출」등으로 표현되고 있다.소련은 연간 4백31억달러(86년)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왔으며 연구원만도 1백50만.기초이론과 군사첨단과학기술 수준이 높아 일본까지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형편이며 보수도 서방세계의 3분의 1이면 족하다는 것.◆문제는 서방선진국이 안전상 수용을 꺼리는 핵과학자들.핵군축등으로 실직상태에 있는 것이 10여만명인데 이중 1만여명이 핵용병이 될수 있는 위험수준의 과학자들.이들이 핵개발을 원하는 중동의 석유부국이나 한반도의 북한으로 유입되거나 됐을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것.북한이 이들을 노린다는 보도도 있었다.체니 미국방도 7일 우려를 표시했을 정도.국민은 굶기면서 핵고집은 꺾지않고 군수공장은 쉬지않는다는 북한이니 정말 걱정이다.
  • 외언내언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법.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 기독교계에서는 이세상이 언제쯤 끝날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고 지구의 종말을 날짜까지 예언한 선지자들(?)이 계속 출현했다.이른바 시한부 종말론.2세기중반 초대교회때의 몬티누스가 시한부종말론의 선두주자이고 12세기의 요아힘피오레,16세기의 재세례파,19세기의 윌리엄 밀러,20세기의 찰스 다이어등이 그뒤를 이었다.◆시한부종말론은 초대교회때의 기독교박해,십자군원정,세계대전등 당시의 긴박하고 어려웠던 시대상황을 대변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1920년,1950년,1975년등 몇차례에 걸쳐 소동을 일으켰다.그러나 모두 불발로 끝났다.◆「종말론」은 성서에 근원을 두고 있지만 그시기를 밝히지 않고 있다.예수 그리스도는 종말의 시기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그날과 그때는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마태복음 24장36절).따라서 종말의 시기는 하나님의 권능에 속한다.그런데도 인간이 종말의 시기를 예언한다는 것은 반성서적이다.◆종말론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의 하나이지만 시한부 종말론은 교리의 범위를 벗어난 이단의 사설이란것이 성서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또 종말론은 하나님의 심판 보다는 「항상 깨어있는 믿음」을 강조하는데 보다 큰뜻을 두고있다.성서의 가르침은 거의가 비유로 되어 있는데 종말론도 비유를 통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그런데 최근 우리사회에 또다시 시한부 종말론이 극성을 떨고있다.『92년10월28일 예수가 재림하시고 이때 휴거(휴거·공중에 들리어 올라감)의 영광을 입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인을 받으라』고 외치는 일부 선교회 회원들.사람이 많이 모이는 역주변이나 도심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다.참으로 민망스러운 세태의 한단면.신앙의 자유도 좋지만 이런일은 반사회적인 행위로 규제되어야 한다.
  • 일,유엔서 영향력 확대

    ◎2차대전 「적국차별」 조항 삭제 추진/일지 보도 【도쿄 연합】 일본 정부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됨에 따라 2년의 임기동안에 일본,독일등 제2차 세계대전 「적국」에 대한 차별조항을 유엔헌장에서 삭제하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일 아사히(조일)신문이 17일 외무성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이신문은 특히 일본 정부내에는 「적국조항」의 폐지와 함께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입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어 외무성은 신정권의 발족과 함께 유엔안보리를 무대로 한 외교정책을 신속히 검토할 예정이라고 아울러 전했다. 일 정부는 또 임기중에 걸프전쟁과 같은 지역분쟁 예방을 위한 유엔기능 강화,재래식무기 국제이전의 유엔보고제 창설등에 대해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생각을 갖고 있다. 또 일정부는 무기이전 유엔보고제도에 대해서는 유엔총회에서 결정될 경우 내년에 제도의 운영문제를 협의하는 국제회의를 일본에서 개최,명실공히 안보이사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생각이다.
  • 부의 세습/외국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현대그룹 정주영명예회장 일가의 주식 변칙증여·상속 사실을 계기로 재벌그룹을 중심으로 한 「부의 변칙세습」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현행 세법에 규정된 상속·증여세를 제대로 물고는 재벌그룹이 2세에게 그대로 세습되기가 어려운데도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재벌기업의 세습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으며 미국·일본·독일등 외국의 경우는 어떤지 알아본다. ◎미국/기업 경영권등 이사회전속 제도화/상속세 기초공제 초과땐 최고 55% 누진과세 미국에서는 부의 대물림이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회사경영 형태를 살펴보면 실질적 경영권이나 의사결정권은 전적으로 이사회에 속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석유 부호였던 록펠러 2세의 경우 1934년 부인과 자녀 6명의 장래를 위해 총1억달러를 신탁하면서 3천5백여만 달러의 증여세를 물었다.부인을 위한 신탁금이 1천8백30만달러로 가장 많았는데 석유회사 주식으로 납입했다. 그는 또 록펠러 센터등 소유재산을 처분했던 1952년 후손들에게 6천3백30만달러의 재산을 나눠주면서 3천2백20만달러의 증여세를 냈다.그의 재산 양여는 이때도 대부분 신탁으로 이뤄졌다. 록펠러가의 이같은 재산상속및 관리방식은 미국부호들의 세계에선 「전형」으로 통한다. 록펠러 2세는 「1934년 신탁기금」에 대한 통제권을 자신의 보좌관들로 구성한 피신탁인 위원회가 행사하도록 했으며,위원들에겐 후임자 임명권이 주어졌다.기금관리는 체이스 내셔널 뱅크 신탁부가 맡았다. 그는 자녀들에게 기금에서 생기는 수익은 갖게했지만 기금 자체를 소유케하지는 않았다. 미부호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의 하나는 재산관리및 상속과 관련하여 어떻게 하면 면세혜택을 많이 받고 절세를 극대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때문에 뉴욕의 부촌에서 이같은 세무를 담당하고 있는 변호사들은 미국에서도 가장 수입이 좋은 직종으로 꼽힌다. 미국의 상속세 기초 공제액은 60만달러이며 이를 초과할 경우 최저 18%에서 최고 55%(3백만달러 이상부터)의 누질세율이 적용된다. 재산세를 배우자에게 상속하거나 자선단체에 기증하는 경우 상속세와 증여세가 면제된다.미국에서 많은 부자들이 생전에사재를 털어 문화재단을 세우거나 유산을 자선단체에 상속시키는 것은 사회적 관행이기도 하지만 이같은 세제와 무관하지 않다. 현재 미10대 재벌기업들의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은 10%정도에 불과하다.록펠러가의 엑슨이 8%,US스틸 11.8%,제너럴 모터스 9.9%,제너럴 일렉트릭 9.4%등이다. 이들 재벌의 가족 지분율은 엑슨이 0.8%,US스틸 1.2%,제너럴 모터스 0.75%,제너럴 일렉트릭 0.4%등으로 나타났다. ◎일본/기업경영·소유 분리… 직계승계 없어/도요타사등 창업주 주식지분 1%도 안돼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창업자인 도요타 에이지(풍전영이)는 평생을 바쳐 도요타를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그러나 그가 현재 가지고 있는 주식은 전체주식의 0.18%에 불과하다.도요타는 자신의 기업이 아닌 것이다. 창업자의 아들인 도요타 쇼이치로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비율도 0.86%에 지나지 않는다.창업자와 그의 가족이 가지고 있는 모든 주식을 합쳐도 전체주식의 겨우 1%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비단 도요타자동차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일본의 대표적인 위스키회사 산토리의 창업자 도리씨와 그의 가족의 주식 지분역시 1%미만이다. 마쓰시타(송하)전기의 신화를 창조한 마쓰시타가 생전에 가지고 있었던 주식 지분도 2.8%에 불과했다.일본의 기업들은 이같이 창업자와 그 가족들이 소유하고 있는 주식지분율이 매우 낮다.일본기업들은 족벌경영과 부의 세습을 위해 각종 비리를 일삼는 많은 한국의 대기업들과는 다르다. 일본 대기업의 주인은 창업자나 그의 가족이 아니다.한국의 대기업은 가족중심적이지만 일본의 대기업은 금융기관등 법인소유가 일반화되어 있다. 일본통계에 의하면 지난 89년3월 현재 일본기업의 개인지주 비율은 22.4%에 불과한 반면 법인지주비율은 73%에 이르고 있다.특히 법인인 은행,보험회사등의 투자재원이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는 점에서 일본의 대기업은 「국민기업」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일본 대기업에 있어서 자본가의 영향력은 갈수록 약화되어 가고 있다.이같은 현상의 역사적 배경은 제2차대전후 맥아더사령부에 의한 재벌해체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맥아더사령부는 기업을 독점하고 있던 재벌가족의 기업지배를 배제하고 주식소유를 분산시켰다. 미국에 의해 해체된 재벌들은 개별기업들의 연합체적 성격을 띤 거대한 기업집단으로 변신했다.미쓰비시,미쓰이,스미모토등이 대표적인 기업집단들이다.그러나 이들의 경영과 소유는 분리되어 있다.이들 뿐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상장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대기업들은 이같이 자본과 경영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기업의 세습승계란 거의 없다.혼다의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본전종일낭)는 직계가족을 자신의 회사에 입사조차 시키지 않았다.그는 스스로 젊고 유능한 후계자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까지 했다.그러나 한국의 기업풍토는 창업자의 직계라는 이름만으로 후계자로 선택된다.한국과 일본의 기업가정신은 한일간의 기술수준 만큼이나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독일/주식 2세 이전땐 증여세 80% 중과/「국민기업화」 정착… 부의 대물림 제도적 봉쇄 독일은 자본과 노동의 갈등을 오랫동안 경험해온 만큼 2차세계대전이후 기업운영의기본방향을 사회보장에 바탕을 두어왔다.또 기업 뿐만 아니라 사회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공개되어 있어 탈세나 주식의 위장공개등으로 한 기업의 부가 후계세대에게 불법적으로 이전될 수 없다. 모든 경제활동이 은행이나 공증인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제도화되어 있어 불로소득이란 있을 수 없으며 기업의 주식이 은밀하게 다음세대로 인계될 수 있는 소지가 막혀있어 재벌총수의 세습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자본과 경영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 아무리 대주주라도 경영에는 참여할 수 없으며 회사의 운영은 전문경영인들과 종업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독일대기업의 2대 지주는 사원지주제와 사원경영참여권으로 기업이 국민기업으로 뿌리내리는데 모태가 됐다.사원지주제는 75년 법제화돼 한 기업의 주식 30%이상을 사원들에게 배당하도록 되어있다. 사원경영참여제도의 정착으로 인해 근로자들도 일정기간 근속하게 되면 회사경영에 책임을 지게되며 기업의 추가이윤을 배당받기 때문에 기업경영의 감시자로 독일 기업이 국민기업으로 정착하게 되는데 큰역할을 담당해왔다. 창업주가 생존시 기업의 주식을 2세에게 넘겨줄 경우에는 상속세·증여세가 80%이상 부과되며 사후에 인계될 경우에는 소득세가 따라붙기 때문에 한 기업의 부가 후계세대에 이전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더욱이 독일의 주식회사들은 완전히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부의 위장이전이 이루어질 수 없어 창업주는 자신의 부를 자식에게 물려주기보다는 기업에 돌려주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어 기업의 부는 기업에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이 때문에 독일의 대기업인 지멘스·메르세데스 벤츠·보쉬등의 계열기업의 경영진중에서는 창업주의 성인 지멘스·벤츠·보쉬의 성을 찾아볼 수 없으며 단지 많은 주주중의 한사람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몇년전 독일의 신문재벌인 악셀 스프링거가 사망하고 그의 부인이 이 재벌을 인계했으나 신문사 경영문제로 베르리너 모르겐포스트지등 독일 유수의 신문사종업원들과의 마찰로 주식의 대부분을 회사에 반납하고 일개 주주로 남아있는 것은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는어떤가/기업합병·물타기 증자… 변칙상속 일쑤/작년 상속세,국세의 1.5%… 일과 큰 격차/세제개선·금융실명제등 보완이 과제로 우리나라 재벌기업의 역사가 40여년에 이르면서 많은 기업들이 2세들에게 물려졌다.그러나 지금까지 세습에 의해 규모가 줄었거나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진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오히려 2세에게 물려지면서 더욱 비대해진 경우가 많다.그만큼 재벌들이 부의 세습을 어렵게 하고 있는 현행 세법을 거의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현행 우리나라의 상속과 증여에 관한 세법에는 상속의 경우 10억원이상일때 55%,증여의 경우는 5억원이상일때 60%의 세율의 상속·증여세를 물도록 규정하고 있다.법을 제대로 지킨다면 기업을 세습할 경우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야 하며 3대 4대에 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야한다. 그러나 80년이후 우리나라에서 재벌기업들의 실질적 기업경영권이 2세 또는 3세에게 넘어간 경우는 모두 27개 그룹이지만 이들이 낸 상속및 증여세는 최고 2백77억원에서 최저 1억여원 정도에 지나지 않은 것은 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세금을 탈루해 왔는지를 쉽게 짐작케 해주고 있다.물론 이들이 탈법적 수단을 동원할 수 있었던 데는 세제의 미비와 금융실명제의 허실이 「합법」을 가장한 수법을 도왔다는 지적도 없지는 않다. 80년 이후 국내 재벌그룹중 상속·증여세를 가장 많이 낸 사람은 한국화약그룹의 김승연회장.그는 지난 81년 7월 부친 김종희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가운데 증여세 2백8억1천2백만원,상속세 69억2천만원등 모두 2백77억4천만원의 세금을 냈다. 또 삼성그룹의 경우는 이병철회장 사망후 이건희회장이 상속세 1백76억2천9백만원,증여세 4억7천8백만원을 물었다. 또 한진그룹의 조중훈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아들 양호·정호·수호씨도 증여받은 재산에 대해 각각 33억4천만원,32억6천만원,20억4천만원의 세금을 냈다. 이밖에 그룹별 상속·증여세액을 보면 ▲범양상선(박승주)1백37억5천만원 ▲동아그룹(최원석)80억3천만원 ▲삼미그룹(김현철)70억6천만원 ▲현대그룹(정주영)54억7천만원 ▲한일합섬(김중원)51억3천만원 ▲럭키금성(구자경)16억5천만원 ▲금호그룹(박성용)14억3천만원 ▲쌍용그룹(김석원)12억6천만원등이다. 그러나 이같은 세액 규모는 창업주들의 유산 규모와 비교해 볼 때 턱없이 낮거나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액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국세청 집계에 따르면 상속·증여세는 81년이후 매년 0.1%정도씩 꾸준히 증가,90년 현재 국세의 1.5%에 이르고 있다.그러나 일본의 4.1%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선진국의 상속·증여세의 납부 수준이 높은 데는 일본의 경우 상속및 피상속인들이 상속세및 증여세의 탈세는 가장 큰 불명예라는 인식이 기업인들 사이에 뿌리박혀 있고 과세 체제가 치밀한데도 원인이 있다. 일본 최대의 재벌인 마쓰시타(송하)전기그룹의 창업주 마쓰시타가 지난 89년 사망했을 때 보유재산 규모가 1조엔(한화 5조원)을 넘은 것과 우리나라 제1의 갑부였던 삼성그룹의 고 이병철회장의 사망시 재산이 3백억원이었다는 점은 우리나라재벌들의 부의 세습과 관련,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창업주들이 세금을 피해 2세들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수단으로는 현대그룹의 예에서 보듯이 ▲주식을 상장전에 증여대상자에게 념겨주고 상장후 차익을 챙겨주는 「물타기증자」 ▲기업의 흡수·합병과정에서의 대주주(창업주)의 실권을 위장한 합법적 변칙 증여 ▲기업합병시 감자를 통한 변칙상속등이 주로 동원되고 있다.
  • 게르만 자치 「볼가공」 추진/소련(특파원코너)

    ◎소 거주 독계 이민 2백만명 주축/독일선 “역 엑서더스” 부담,정착 지원/경제난 소도 독 지원 기대 “적극 협조” 소련연방이 공중분해되고 있는 가운데 게르만족들을 중심으로한 볼가공화국의 설립이 추진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현재 본국을 떠나 사는 게르만족은 3백여만명으로 이중 볼가강주변을 중심으로 소련에 거주하는 사람은 2백여만명.이들은 18세기 소련의 피터대제(1672∼1725년)와 카타리나여왕(1729∼1796년)때 이주했거나 세계대전중 국토의 변경으로 옮겨간 사람들이다. 18세기에 이주했던 사람들은 소련이 불모지였던 볼가강주변을 개발하기위해 정착금과 세금감면등 각종 혜택을 주면서 독일인들의 이주를 권장해 옮겨간 사람들이다.그러나 최근 소련의 물자부족과 쿠테타사건을 계기로 2백50여년만에 잘사는 모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 게르만민족의 역엑서더스현상이 일고있어 독일과 소련이 볼가공화국을 세워 이들을 집중지원키로 한것. 소련은 볼가강주변에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독일인들에게 자치권을 주고 공화국을설립하도록 2차세계대전 전에도 허용했었으나 대전중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함으로써 스탈린은 41년 자치권을 몰수,이번에 반세기만에 그 계획이 다시 추진되는것이다. 독일은 이 계획을 지난해부터 추진해왔으며 올 예산에 볼가공화국설립 지원비 2억마르크,내년예산에 1억마르크등 모두 3억마르크(약 1천3백억원)를 계상해 놓고 있다. 독일은 소련이 곧 본으로 파견할 대표단을 맞아 논의를 한뒤 이달중 볼가공화국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마련할 계획이며 여기에는 학교·공공건물·문화원·공장시설등의 건립이 포함되어 있다. 볼가공화국이 들어설 위치는 강중류지방의 러시아공화국과 카자흐스탄공화국의 경계선지역으로 최근 페테르부르크로 바뀐 레닌그라드와도 멀지 않은 곳이다.이때문에 아나토니 소부차크 페테르부르크시장도 시외곽에 산업지역을 조성해 시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목적에서 새로 이주하는 독일계 소련인들이 생활필수품을 구입하는데 최대의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다짐했다. 볼가공화국을 중심으로 독일인들을 집단이주시키려는 것은 독일과 소련의 이해가 서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소련은 최근의 어려운 경제사정과 정치적인 변화로 소련거주 독일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하기때문에 이들을 붙잡아 두어 경제발전을 이루고 독일의 지원을 기대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또 독일은 통일과 동구의 민주화이후 해외교포의 귀국이 늘고있어 실업을 가중시키며 주택과 정착비등 경제적인 부담을 안고있어 이들을 가급적이면 거주지역에서 살도록 하는것이 목적이다. 88년 동구의 민주화개혁선풍과 뒤이은 독일통일이후 해외거주 독일인들의 귀국이 러시를 이루어 그 이전에는 소련과 동구권을 포함한 전체귀국자수가 연평균 10만여명이던 것이 88년 20만3천명,89년 37만7천명,지난해에는 40만명에 이르러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있다. 구서독의 인구 12만명의 레크링하운젠시의 경우 올해 1백여명의 귀국자들에게 제공할 주택이 없어 임시변통으로 살림을 할 수 있는 여행차 36대를 빌려 시외곽에다 주차시켜놓고 이들의 숙식문제를 해결하는등 각도시마다 밀려드는 이주민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 “부는 국민의 것” 의식 대전환 시급

    ◎재벌의 행태 무엇이 문제인가/전문가 대담/재력 세습은 국민 일체감 형성 저해/재테크·마구잡이 수입으론 경제어려움 가중시킬 뿐/이윤 돌려줘야 근로정신·산업평화 살아나 현대그룹이 족벌경영과 변칙적인 기업확장,호화별장,주식의 위장거래를 통한 상속·증여세탈세등 각종 비리로 사회문제가 되고있다.국민경제에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재벌이 국민의 기대와 기업윤리를 저버리고 과연 어떤 행태를 보이고 있는지,이런 비리를 막기위한 대책과 바람직한 재벌상은 무엇인지를 중앙대 김경무교수(경영대학장)와 국민경제제도연구원의 정진성박사의 대담을 통해 들어본다. ▲김경무교수=해방직후 민족자본이 없는 상태에서 출발한 우리 기업들이 그동안 놀라운 성장을 거둔것은 사실입니다.성장의 업적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자본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일부 기업가들이 권세와 유착하는등 적지않은 문제를 남긴 것도 사실입니다.정경유착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기업인이 공인으로서 가져야 할 의식이 불분명해진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이윤의 극대화에만 눈을 떳지 이윤의 사회화에는 별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이로인해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재벌=지탄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이같은 현실은 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못하고 있는 재벌의 전근대적인 구조에도 근본적이 원인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정진성박사=최근 일부 재벌그룹의 주식 변칙증여와 이에 수반되는 상속·증여세의 탈루 사실을 비롯한 각종 비리들이 드러나 또다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융제도와 세제의 과감한 개혁과 법의 엄정한 집행이 요구되고 있습니다.그런데 이러한 문제들이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지도적 위치에 있어야 할 재벌이 탈법행위를 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라고 봅니다.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재벌가족이 갖고 있는 거대한 독과점력이 법망을 피해서 제2세로 유지되어 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재벌을 둘러싼 여러가지 문제들이 파생되는 근본 요인은 우리나라의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집중하고 있는 재벌의 대부분이 아직도 창업자나 그 가족에 의해 배타적으로 소유되고 있다는 점입니다.일부 재벌의 주식 변칙증여는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살 깎아먹기 급급 ▲김교수=재벌들은 법을 잘 지킴으로써 균등배분(예컨대 조세)에 기여하기 보다는 성금등 준조세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뿐만 아니라 국제수시적자등 우리 경제가 처한 어려움에는 아랑곳 않고 호화사치재의 무분별한 수입으로 국민들의 건전한 의식을 흔들어 놓고 있으며 기술개발을 소홀히 하고 있어 결국 제살깎아 먹기에 급급한 실정입니다. 이같은 재벌들의 행태는 그릇된 정치·사회풍토와 무관하지 않으며 이에 따른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사회적인 불안정,기업자체의 예측능력의 부족등의 요인과 노사관계에 있어 「재벌=도둑」이라는 인식이 만연된 풍토하에서는 기업의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지요.결국 재벌기업들은 건전한 생산활동을 통해국민경제에 기여하기 보다는 자기 재산에 대한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부동산투기등 재테크에 더큰 관심을 갖게되는 것입니다. ▲정박사=거대한 경제력이 재벌가족등과 같은 사적인 집단에 의해 소유되고 있는 우리나라 재벌들의 독점적 소유 구조는 사회적 위화감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이로인해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해 내는데 막대한 코스트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소유와 경영이 혼돈 ▲김교수=우리나라의 경우 자본주의의 역사가 짧은데다 기업도 비정상적인 성장에만 급급해 왔습니다.이 과정에서 많은 혼돈이 생기고 소유와 경영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구분조차 정립되지 못해 혼란과 부작용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재벌들은 사회적 윤리의식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죽을 고생을 해가며 키운 기업이니 내아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식의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또 『나만 살아야 한다』는 식의 생각에 몰두하다 보니 기업은 기업대로 생산활동에 투자할 생각을 하지않고 국민은 국민들대로 저축하려 들지 않는등 그 폐해는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정박사=재벌의 독점적 소유구조와 부의 세습체제가 갖는 폐해에 대해서는 일본의 예가 우리에게 귀중한 참고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일본의 재벌은 소유권이 재벌가족에게 독점되어 있었으며 이점에서 현재의 우리나라 재벌들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1930년대 초기 대공황이 밀어닥치자 빈궁에 시달려온 대부분의 일본국민들에게 사회적 불평등감이 급속히 확산됐고 당시 재벌은 부도덕한 존재로 비춰져 공격을 받는등 반재벌의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일본의 재벌들은 사태가 이에 이르자 자선단체를 설립하거나 거액의 헌금을 내놓기도 하고 소유주식을 공개하거나 군부에 협력하는등 「재벌전향」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대책을 취하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재벌구조의 민주화를 통해 근본적으로 대처하지는 못했으며 그 결과로 2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점령군에 의한 「재벌해체」라고 하는 가장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김교수=재벌의 비뚤어진 의식을 바로 잡는노력은 재벌뿐만 아니라 정부·기업·국민이 제각기 자기 역할을 나름대로 해 나갈때 가능하다고 봅니다.정부는 우선 정부의 시책을 따르면 손해만 본다는 인식이 더이상 없어지도록 해야 합니다.부동산투기의 문제도 결국 부동산 소유에 따른 이득이 비용보다 크다고 믿으니까 거기에 집착하는 것 아니겠습니까.또 기업은 기업대로 기술혁신과 인력양성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국민들도 근검·절약하는 정신을 생활화해야 할 것입니다. ○상호출자 엄격 규제 ▲정박사=재벌의 행태와 관련해 반드시 지적해야 할 부분은 상호출자의 문제입니다.상호출자는 「가공의 출자」에 근거해 서로 기업의 지배력을 교환·소유함으로써 출자없이 기업을 지배하는 것입니다.결국 진정한 출자자는 소외되는 반면 재벌기업은 이를 통해 외형을 키우고 계열기업의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우리나라의 경우 독과점규제및 공정거래법으로 상호출자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으나 상호출자에 의한 재벌그룹의 내부지분율은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습니다.일본의 경우 상호출자가 기업간에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거래관계를 유지시켜 경제에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견해도 제시되고 있기는 합니다.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계열기업간의 상호출자가 무분별한 계열확장 이외에 일본과 같은 긍정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사례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김교수=우리나라에서도 재벌의 상당수가 2세 경영체제로 들어가고 있고 점차 전문경영인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습니다.앞날이 결코 비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재벌이 올바르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그로 인해 국민경제가 다시 활기를 되찾는 것은 기업과 국민·정부 모두가 얼마만큼 빨리 의식의 대전환을 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생각입니다.
  • 「리옹의 백정」 바르비 사망/2차대전때 나치 앞잡이로 악명

    ◎40년 숨어살다 83년 남미서 체포 【파리 로이터 연합】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점령지 프랑스 리용의 비밀경찰 총수로 악명이 높았던 나치 전범 클라우스 바르비(77)가 암으로 리옹의 한 교도소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프랑스 경찰이 25일 발표했다. 「리옹의 백정」으로 알져진 바르비는 전쟁이 끝난 후 볼리비아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거의 40년 동안 법망을 피해오다가 지난 83년 프랑스로 이송되어 87년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었다. 경찰은 3주전 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바르비가 구체적으로 언제 사망했는지는 발표하지 않았다.
  • 일 자위대 해외파병 반대/노 대통령,미지 회견

    ◎북 핵 사찰 수락땐 군축논의 용의/이 외무도 일에 신중 대처 공식 요청/한일 외무회담 【뉴욕=임춘웅특파원】 노태우대통령은 일본 자위대의 해외파견움직임과 관련,『일본이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노대통령은 23일 발행된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 가진 회견에서 『동북아지역 국가들이 2차세계대전전 일본 군국주의의 불행한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일본이 비록 유엔평화유지군의 역할에서 정당성을 찾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일본이 군사력을 증강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지역국가들의 공통된 견해』라고 강조했다.일본의 해외파병움직임에 노대통령이 분명한 반대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대통령은 이어 북한의 핵사찰문제에 대해 『북한은 유엔의 원칙에 따라 핵확산금지조약의 서명당사국으로서 조건없이 핵안전협정에 서명해야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북한이 핵안전협정상의 의무를 이행하면 한국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논의를 시작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또 22일 방영된 미국 CNN방송과의 회견에서도 『북한의 핵개발기도가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에게도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핵관련 물자와 시설을 국제사찰에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뉴욕=박정현특파원】 이상옥외무장관은 23일 상오(한국시간 23일밤)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에서 나카야마 다로(중산태낭)일본외상과 회담을 갖고 일본자위대의 해외파병을 합법화하는 유엔평화유지(PKO)협력법안에 대해 처음으로 한국측의 공식적인 우려를 표명하고 일본정부가 이에 신중히 대처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장관은 이날 『일본정부가 세계평화를 위해 PKO협력법안을 만들려는 취지는 이해하나 과거 불행했던 역사를 가졌던 한국등 인접국의 우려를 고려해 신중히 대처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배석했던 외무부의 한 당국자가 전했다.
  • 일본의 해외파병을 경계한다(사설)

    일본의 해외파병법안이 마침내 의회에 상정되었다.일본군 해외파병의 제도화가 전후 처음으로 공식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일본외교·국방정책의 역사적인 전환을 보여주는 상황의 전개라고 일본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일본은 변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는 지금 보고있다. 우리를 포함하는 아시아제국은 그동안 일본의 정치·군사대국화를 끊임없이 경계하고 경고해왔다.그것은 「현대판 일제」의 부활을 예고하는 것일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아시아 제국에 있어 일제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악몽이며 되풀이 되어서는 안될 역사이기 때문이었다.일본도 이 점을 이해하고 자제할 것으로 우리는 믿어왔다.그러나 일본의 정치·군사대국화 지향의지는 강화되기만 했으며 이제 그 노골적인 구체화를 의미하는 일본군 해외파병법의 제정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법의 제정을 추진해온 일본정부와 자민당의 지도자들은 이것이 일본의 정치·군사대국화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유엔평화유지활동협력법」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어디까지나 세계평화유지에 기여하기 위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일본이 세계의 평화유지에 기여하겠다는데 반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일본군의 참여가 유엔의 세계평화유지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반대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경험한 일제도 세계평화를 파괴하기 위해 해외에 황군을 파견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일본은 세계의 평화와 아시아의 공존·공영을 위해 한반도를 식민지화하고 중국대륙에 진출했으며 동남아를 석권하고 세계대전을 일으키지 않았는가.그때의 일본과 오늘의 일본은 다르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가 있단 말인가.해외파병법 같은 것을 만들지 않는 것이 그것을 믿게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지금의 일본은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걸프전당시 군사적 지원을 하지 못했던 것을 가장 큰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구미의 비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걸프전은 정말 일본의 군사적 지원을 필요로 했다고 구미는 물론 일본도 생각하는가.그리고지금 세계는 평화유지를 위해 일본의 군사력을 필요로 하는 상황인가.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일본인 가운데도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동은 무엇인가.세계평화보다는 일본의 야심을 위한 것이다.일본은 경제대국에 걸맞는 정치·군사대국화의 야심을 달성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세계는 질서재편의 과도기를 맞고 있다.세계의 관심은 소련과 중동에 쏠려있는 것이다.특히 아시아의 대국 중국은 일본의 돈이 필요하고 집안단속에 여념이 없으며 한반도도 남북관계와 그 주변상황에 신경쓰기 바쁘다.세계와 아시아제국은 일본의 재무장과 군사대국화의 문을 여는 위장된 해외파병법같은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일본에 있어 그것은 아시아제국의 반발을 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세계와 아시아가 일본에 대해 필요로 하는 것은 해외파병 등 군사적 기여가 아니라 경제·기술협력의 봉사란 사실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일본은 세계와 아시아에 대해 갚아야할 역사의 부채가 아직도 많다.정치·군사적 영향력 확대에만급급한다면 그것은 아시아와 일본 모두를 위한 비극일 것이다.
  • 일,자위대 특별부대 창설/2천명 병력 규모

    ◎유엔 평화유지활동 지원 【도쿄 AFP 연합】 일본은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을 지원키 위해 자위대 산하에 특별부대를 창설할 계획이라고 관계 소식통들이 17일 전했다. 19일의 각의에서 창설이 승인될 이 특별부대는 약 2천명의 병력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이 소식통들은 말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해외파병을 최초로 가능케할 이 법안은 각의의 승인을 거친 후 의회에 상정될 것이라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집권 자민당이 제안한 이 법안은 야당인 공명당과 민사당이 지지를 표명하고 있어 별 어려움 없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가들은 내다봤다. 이 특별부대는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의 직접 통제하에 완충지역 순찰,선거감시,의료지원등 오직 평화유지 활동에만 병력을 파견할 것이라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 중국문제 전문가 페어뱅크

    【캠브리지(매사추세츠) 로이터 연합】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가장 저명한 중국문제전문가로 손꼽혀온 존 페어뱅크(84)가 14일 심장마비로 병원에서 사망했다.
  • 엘친,“북방 4섬문제 해결 용의”

    ◎방일 러시아공 의장,가이후에 친서 전달/“일의 대소 경원 확대와 연계” 시사 【도쿄 AP 로이터 특약】 보리스 옐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은 소련과 일본 양국간의 2차세계대전 강화조약 체결을 가로막고 있는 영토 문제는 일본이 대소경제원조를 할 경우 해결할 결심을 갖고 있다고 일본 외무부의 한 관리가 9일 말했다. 일본 집권 자민당의 초청으로 이날 도쿄에 도착한 루슬란 하스브라토프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서리는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 총리와 만난자리에서 옐친 대통령의 이같은 취지를 담은 친서를 전달했다고 이 관리는 전했다. 하스브라토프 의장서리는 가이후 총리에게 『나는 옐친 대통령이 양국간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할 결의를 갖고 있다는 그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밝히면서 일본과 러시아 공화국간의 문화교류및 원조확대를 아울러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외무부 관리는 이날 열린 두 사람간의 회담 내용에 논평하면서 『나는 이 문제(영토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옐친 대통령이 최선을 다할 의사를 갖고 있다는 개인적인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옐친 방일 초청 한편 가이후총리는 이날 하스브라토프의장서리를 만난 자리에서 옐친을 일본에 초청했다고 외무부 관리가 밝혔다.
  • 발트3국 완전 독립 “산넘어 산”

    ◎수출 60%·원유수입 전량 연방의존/국경문제·러시아인 반발등 난제로 발트해 연안 3국의 탈소독립이 거의 기정사실화되어가고 있다.소련에 강제합병된지 51년만에 주권국가로서 다시 세계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연방과 마무리해야할 제반문제를 남겨놓고는 있지만 세계 40여개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했거나 국가인정을 준비중이어서 발트3국의 독립은 이제 돌이킬 수 있는 선을 넘어선 상황이다.강권통치속에서 잠복돼온 독립염원이 페레스트로이카의 물결을 타고 지난 87년말 시작된 독립요구시위로 가시화된 이래 4년만에 열매를 맺은 셈이다. 그러나 정식으로 독립하기까지에는 공화국내 러시아인들의 처리를 포함한 국경문제 등 아직도 숱한 장애들이 남아있다.에스토니아 인구의 40%,라트비아의 35%,리투아니아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자존심 강한 러시아인들이 순순히 약소민족의 지배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 틀림없다. 또 독립후에도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까지에는 한세대 정도의 고난이 불가피하다.발트3국은 제조공업 위주로 특화돼 있어서 소련내 15개 공화국 가운데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잘사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다.그러나 소비원유의 거의 전량을 러시아공의 볼가유전으로부터 국제시장가격의 20%에 불과한 싼 값에 수입하고있기 때문에 독립후 에너지공급에 막대한 추가비용이 소요된다.국민총생산의 60%정도를 소련내에 수출해왔으나 이들의 조악한 공업제품이 앞으로 선진공업국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도 쉽지않은 실정이다. 조상이 서슬라브민족인 발트3국은 러시아·게르만·폴란드·스웨덴·덴마크 등 강대국에 둘러싸여 끊임없는 침략을 받았고 18세기경부터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오다 제1차세계대전 이후인 1920년을 전후해 차례로 독립했지만 2차대전 직전 독소불가침조약에 따라 40년 소련에 각각 합병됐다. 리투아니아는 인구 3백72만명으로 리투아니아인 비율이 80%를 넘고 정밀기계공업과 금속가공업에 중점을 두고있으며 라트비아는 인구 2백69만명으로 54%가 라트비아인이며 전기·전자 금속·화학공업·자동차 등의 산업이 발달돼 있으며 에스토니아는 인구 1백58만명으로 65%가 에스토니아인이고 식품가공업과 직물 등 경공업 위주다.
  • 소비에트에서 러시아로(사설)

    소련보수파 쿠데타실패의 반작용이 격렬하다.공산당이 붕괴되고 연방이 해체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급진개혁을 표방하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연설이 나왔다.예상되었던 사태의 전개이긴 하지만 변화가 너무도 급속하고 급격해 현기증을 느낄정도다.소련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연방국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걷잡을 수 없는 유혈의 내란사태가 촉발되는 것은 아닌가.그런 의문과 우려까지 갖게하는 급박한 사태의 전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소련사태는 한마디로 혁명적 상황이라 할수 있다.그만큼 유동적이고 예측을 불허하는 불확실의 상황인 것이다.다만 그동안의 상황전개와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연설로 미루어 소련의 민주화개혁이 급가속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그리고 소련의 근본적인 재구성이 불가피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도 느낄수 있다.새로운 민주헌법이 채택되고 그에따른 민주자유총선의 실시를 통한 새출발을 예상할 수 있다.한마디로 동구제국의 민주화과정이 소련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소련이세계적인 공산권개혁의 시발국이면서 그동안 속도가 느리고 조심스러우며 갈등이 심했던 것은 소련이라는 나라가 갖는 특수성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어 왔다.공산주의의 발상지이며 70여년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공산당의 나라다.15개공화국으로 구성된 방대한 영토,1백개이상의 민족과 1백30여개 언어가 통용되는 복잡한 구성이 중요한 장애요인이었던 것이다.고르바초프는 이러한 현실에 너무 집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옐친과 고르바초프의 누가 옳은지는 여전히 더 두고 봐야할 문제인지 모른다.그러나 보수파쿠데타실패는 대세의 방향을 옐친쪽으로 돌려버렸으며 소련도 마침내 급진개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그것은 고르바초프가 그토록 건너기를 주저했던 「루비콘강」을 소련의 개혁이 건너고 말았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문제는 10개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한 상황에서 소련방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희망하는 공화국의 독립은 인정한다는 것이 옐친의 방침이며 고르바초프도 동의하고 있다.공화국들의 지위와권한이 대폭강화된 신연방조약이 조인되면 새연방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고르바초프개혁의 발목을 가장 강하게 붙잡은 것이 발트3국을 비롯한 일부 공화국들의 독립문제였다.옐친은 연방보다 개혁을 선택했다고 할수 있다. 현재의 소 연방은 공산혁명과 2차세계대전의 산물이다.강제에 의한 약육강식의 결과인 것이다.공산주의를 포기한 지금 연방에 부담일 수도 있는 군소공화국의 이탈을 기어이 방지해야할 이유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혁명전의 원상회복이 순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소련은 러시아만으로도 세계 최대의 국가다.희망하는 공화국만의 연방으로 새 출발하는 것도 오히려 바람직한 것인지 모른다.소련은 동구위성국들을 이미 해방시킨 바 있다.독·일제국은 패전으로 강제 해체되었다.그러고도 큰 발전을 했다.소련공산제국의 자진해체 내지는 축소가 소련의 발전으로 이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소련의 과감한 새출발을 기대한다.세계는 그것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 옐친,그는 누구인가/소 권부의 실세로 떠오른 “풍운아”

    ◎우랄산촌서 염소와 잠자던 빈농의 아들/“촌티난다” 괄시하던 서방,이젠 악수 공세 불멸의 무쇠인 양 하던 소련 공산당이 오늘은 한낱 바람 앞의 촛불 신세이다.그리고 무쇠를 종이장처럼 태워버릴 수 있는 이 바람은 소련 정치무대의 「풍운예」인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서부터 불어오고 있다. 옐친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인 티가 너무 나」국제정치의 지도자들로부터 깔보임을 당했지만 품성과 행동 하나하나가 러시아인의 전형인 그에 의해 세계 코뮤니즘의 원조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것이다. 6피트4인치의 거구로서 옐친은 그가 방문한 서방 정치인들로부터 먼저 『어느방이든 옐친이 들어오면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쳐다보게 된다』는 평을 받곤 했다.그러나 이 인물평은 곧 『육체적인 위압감에 그칠 뿐 카리스마적 위세로 곧장 연결된다고까진 볼 수 없다』는 평가절하로 이어졌다.부시 미대통령은 자신보다 훨씬 풍모상으로 위세당당한 옐친을 『촐랑대는 라이트급』이라고 깎아내린 바 있었다. 그러나 쿠데타 기간동안 옐친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했던 서방지도자들은 서둘러 자신의 옛 평가를 실수로 인정하고 있다.옐친을 이단시했던 소련 보수정치인 뿐 아니라 한다하는 서방정치인들도 고르바초프에게만 집중 투자한 탓에 편향된 시각을 갖게 됐다고 자인하는 것이다.진취적인 서방정치인들마저 「신중하지 못한」태도로 여겨진 옐친의 모습은 어릴 때부터 드러난 천성이라고 할수 있다. 우랄산맥의 한촌 부트코에서 태어난 옐친은 공동주택 오두막집에서 다섯형제,염소 한마리와 같이 한방을 쓰는 가난한 어린시절을 거쳤으며 2차 세계대전 와중인 10살때 길가에 떨어진 수류탄을 만져보다 수류탄이 폭발,왼손 검지와 장지를 잘리는 사고를 겪기도 했다.잘못했다고 생각되면 이를 꼭 지적하고야 마는 열혈적 성격과 웅변에의 뛰어난 소질을 일찍부터 발휘,12살때 졸업식장에서 교장선생을 사디스트라고 일갈한 덕분에 식장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모험심이 강한 옐친은 우랄기술대를 졸업하기 전인 52년 전국일주 무전여행에 나섰다.표 살 돈이 없어 기차꼭대기에 몰래 올라가는 무임승차가 태반이었으며 집없는 사람들과 헛간에서 살을 마주대고 잠을 자는 일정의 연속이었는데 석탄푸기·육군대령에게 수학을 가르치기등으로 음식값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고르비의 개혁 노선이 발진된 이래 옐친만큼 진보적인 정치성향과 일맥상통하는 자유주의적이고 개방적인 행동거지를 실천해 보인 소련정치가는 없었다.서방정치가들마저 기존 소련정치인의 틀에서 벗어난 이 러시아 개혁주의자를 전적으로 포용하지 못해 『꾀많은 러시아농부가 「개혁」의 어릿광대짓을 하고 있다』는 식의 험담을 서슴치 않았다. 89년 첫 미국 방문때는 흐트러진 백발에다 제스처가 큰 옐친을 두고 일부 미국 언론들은 「술주정뱅이」라고 꼬집기도 했다.닉슨 전 미국대통령만이 고르비가 두뇌에 호소하는 지도자라면 옐친은 상대의 가슴에 와 닿는 지도자라고 칭찬했을 뿐이었다. 옐친은 쿠데타 발생직후 자신의 청사앞에 포진했던 탱크위에 올라 반쿠데타의 사자후를 터뜨렸었다.당시 탱크병은 이 청하지 않은 손님을 거부하는 대신 자신의 얼굴을 가렸으며 이때 옐친이뛰어 오른 것은 일개 소련제 탱크가 아니라 전세계인의 가슴인 것이다.
  • 신데탕트·페레스트로이카 “위기”(크렘린 대지진:1)

    ◎“개혁혼란·경제난 타개”구실,보수파 반격/동서화해 조류 역류 위기… 세계가 긴장 동·서화해의 새로운 국제조류가 역류할 위기를 맞고 있다. 2차세계대전이후 세계사를 지배해온 냉전시대의 막을 내리게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실각하고,소련이 다시 강경보수화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실각으로 소련은 최대의 정치적위기를 맞았으며 국제정치무대의 주인공 중의 하나였던 고르바초프의 퇴장은 국제정치 기류를 크게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 전세계를 놀라게 한 고르바초프의 실각은 최근 절정에 이른 소련내의 개혁파와 보수파간의 갈등과 대립에서 보수파가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소련 공산당은 지난15일 고르바초프의 핵심 측근이며 개혁정책 입안자인 야코블레프를 축출,개혁파에 대한 대반격을 본격화했다. 소련군부도 군기관지 적성을 통해 『군내의 모든 공산당원들은 일치단결하여 당과 군을 방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혀 오랜 침묵을 깨고 자기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었다. 소련의 강경·보수파들은 지난 16일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공장의 공산당 활동금지조치를 적용하자 더 이상 개혁파에게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20일로 예정돼 있던 신연방조약체결 하루전날 고르바초프를 축출했다. 강경파 지도자들은 소련의 새로운 「탄생」을 저지한 것이다. 관영 타스통신은 소련은 새로 구성된 국가비상사태위원회에 의해 통치될 것이며 의장은 겐나디 야나예프 부통령이 맡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권한은 소련 강경보수파의 상징인 군부와 KGB가 장악한 것으로 분석된다. 8명의 국가비상사태위원회에 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과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 KGB의장이 포함돼 있는 사실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위원회에는 또 발렌틴 파블로프 연방총리,보리스 푸고 내무장관등 강경파들로 구성돼 있어 소련이 다시 강경보수파의 통치시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알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은 동유럽의 대변혁을 가져오며 서방세계에서는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소련의 경제를 회복시키는데는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를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며 점진적인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시도해 왔다. 정통적인 공산주의 경제체제로는 소련의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접목시키는 「실험」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고르바초프의 실험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는 면도 없지않다. 소련의 경제성장은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때도 있었고 고질적인 식량난은 더욱 악화돼왔다. 더욱이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은 소연방체제의 「붕괴」를 가져왔다.리투아니아공화국등 발트해 3개공화국을 비롯,6개공화국이 신연방조약 가입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국가해체과정」을 더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밝혀,발트해 3개공화국 등이 주도하고 있는 소련내의 분리·독립움직임을 힘으로라도 저지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강경보수파들은 소연방이 해체되는 것을 막아야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분리독립을 추진하고 있는 발트해 3개공화국들의 독립의지도 매우 강하기 때문에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르바초프의 개혁으로 자유의 실체를 체험한 이들의 저항도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분리독립을 추진하는 공화국 국민들 뿐만아니라 러시아공화국등 다른 소련인들의 반응도 주목된다. 옐친대통령의 급진개혁 깃발아래 개혁을 서두르는 러시아공화국 국민들도 개혁이 후퇴될 경우 반발이 예상된다.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물론 비상사태선포가 소련 각부문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의 길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개혁의 속도나 방법에 대해 보수파들이 큰 불만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소련의 개혁속도는 늦추어지지 않을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강경보수파들도 개혁은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식의 개혁이든 현재 소련이 안고 있는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의 실각은 소련 국내보다 오히려 세계사적인 측면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도 할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갈등과 대립의 시대를 마감하고 동서화해의 새시대를 개막시켰다. 고르바초프의「대변혁 드라마」는 유럽의 정치지도를 다시 그리게 만들었으며 지구촌 곳곳의 분쟁을 하나 하나 해결시켰었다. 그의 개혁정책은 냉전의 마지막 잔재로 남았던 한반도에도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한국은 소련과 국교정상화를 이루었으며 북한도 지금까지의 철저한 고립정책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한반도의 긴장완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이같이 세계를 무겁게 누르고 있던 냉전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화해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창출하는데 미국과 함께 주연역을 맡았었다. 그러나 세계사를 바꾸어 놓은 고르바초프의 「정치드라마」는 대단원의 막이 내리기도 전에 또다른 힘에 의해 중단됐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이 강경보수파에 의해 중단된 것이다. 소련의 보수화는 미국을 주축으로한 서방세계를 긴장시킬 것이다. 미국은 고르바초프를 소련역사상 최초로 믿을만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를 체결하는 등 미소밀월시대를 맞았었다. 그러나 미소의 밀월시대는 일단 끝났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냉전의 시대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정치분석가들은 전망한다.소련도 「스탈린이나 브레즈네프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국제정치 역학관계는 미국의 대소대응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새로운 지도자들과 어떤 관계를 정립하느냐에 따라 국제정치의 성격도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시대의 화해의 새국제질서가 정착되기는 당분간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의 환한 웃음이 국제정치무대에서 사라지면서 국제정치가 난기류에 휩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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