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세계대전
    2026-04-19
    검색기록 지우기
  • 목표달성
    2026-04-19
    검색기록 지우기
  • 육사
    2026-04-19
    검색기록 지우기
  • 청라
    2026-04-19
    검색기록 지우기
  • 은상
    2026-04-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507
  • [해외항일전적지를찾아서] (8)美洲 독립운동 전초기지 하와이

    [호놀룰루(하와이)김삼웅 주필] 지금 하와이 한인사회는 이민 100주년(2003년)을 앞두고 행사준비에 바쁘다.하와이 이민 100년사는 바로한민족 이민사와 같고 미주지역 독립운동사와도 맥락을 같이한다. 1903년 1월 13일 대한제국 수민원(綏民院)총재 민영환이 발행한 여권을 소지한 노동이민 97명이 미국상선 갤릭호를 타고 23일 간의 긴항해 끝에 호놀룰루항에 상륙한지 100년이 다가오는 것이다.하와이이민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직전까지 65척의 선박편으로 7,200여명의한인이 하와이섬으로 이민,오아후섬 등 농장에서 사탕수수 재배와 관개사업에 종사했다. 일제시대 미주지역 항일독립운동은 바로 이러한 이민동포들의 힘으로가능했다.그러나 을사조약과 함께 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일제가 한국인의 해외이민을 봉쇄함으로써 하와이 이민도 중단되었다. 하와이이민 한인들은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근면성을 발휘해 몇년이지나면서부터 일부는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본토로 건너가기도 했다.그러나 대부분이 현지에 정착하면서 역량을모았다. 현지 석간신문 Evening Bulletin지 1903년 2월 26일자에는 “지난 1월 31일 이곳 와이아루아 농장에 도착한 한인들은 몸이 건강하며 농업에 익숙한 사람들이다.그들은 모두 만족해 하며 농장노동일에 힘쓰고 있다.그러나 그들의 임금은 저렴한 것이 현실이다”라고 보도했다.한인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10시간 이상의 노동에 하루품삯이 남자는 69센트,여자는 50센트에 불과했다.교민들은 이렇게 열악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중 일부를 떼어 독립운동자금으로 헌금했다.중국에 세워진 임시정부 운영자금의 상당액이 하와이 한인들이 보낸 돈이었다. 한편 교민들은 1905년 하와이 에바농장에 한인감리교회를 세워서 정신적인 유대를 나누는 한편 애국단체를 만들어 조직적인 항일운동에나섰다.1907년 하와이 각 지방에 분립되어 있던 24개 단체대표 30여명이 호놀룰루에 모여 하와이 한인단체를 총망라하는 ‘한인합성협회’를 조직하고 1909년 2월 1일에 ‘국민회’를 창립했다.국민회는 1910년 명칭을 ‘대한인국민회’로 고치고 조직 강화와 조국해방 사업에 필요한 외교·교육·출판사업 등을 관장할 인재의 필요성을 실감하여 1912년 네브라스카대학 정치학과를 수학한 박용만(朴容萬)선생을 초청했다. 박용만의 출현으로 하와이 대한인국민회는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고,주정부로부터 경찰권을 부여받는 등 크게 신뢰를 받게 되었다.한인국민회는 1914년 호놀룰루시의 중심가인 밀러 스트리트 1306번지에 회관을 마련했다.초기에는 월세집을 얻어서 사용하다가 김종학 총회장때 회원들의 성금 7,250달러를 들여 목조 2층 양옥을 건축해 1948년현재의 회관으로 이전할 때까지 전후 30여년동안 독립운동과 한인사회 발전의 모태가 되었다. 1층은 상점,2층 회의실,그리고 2층 뒷편의 일부는 국민회 노인들의편의시설로 이용된 회관은 그러나 아쉽게도 하와이 주정부의 토지수용령으로 철거되었다.하와이대학 최영호교수는 국민회관 자리는 현재밀러스트리트의 하와이 주청사와 주지사 관저 사이에 위치한 국기게양대 앞이라고 지목한다. 하와이 지역의 독립운동은 박용만 선생의 등장과 함께 본격화되었다.박용만을 중심으로한 지도급 인사들은 1914년 독립군을 양성하는 사관학교를 세우면서 본격적인 무장투쟁 준비에 나섰다.교포들로 부터의연금을 받아 군용지를 마련하고 대한제국 광무군인 출신의 노동이민을 중심으로 사관학교 간부와 학도 124명으로 ‘조선국민군단’을창설한 것이다. 한인사회에서 ‘산너머 병학교’로 불린 사관학교의 교장은 박용만이었다.그는 조선국민군단 단장도 겸했으며 대대장에 박종수,중대장심세권,소대장 박충식 등의 간부진으로 편성되었다.지금은 주택지로변한 이곳은 호놀룰루시에서 63번 도로를 따라 동북쪽으로 10마일쯤떨어진 해안을 낀 아후이마누언덕에 위치해있다.박용만은 이곳에 조선국민군단 본부와 사관학교를 세워 한때는 311명의 병력을 훈련시켰다.그리고 1909년 헤스팅스에 한인소년병학교를 세우고 국민회의 기관지 ‘국민보(國民報)’를 발행하는 등 독립운동에 열정을 바쳤다. 그러나 박용만 중심의 하와이 독립운동은 국제정세(1차세계대전)의변화와 이승만과의 노선갈등(박용만은 무력독립투쟁,이승만은 외교노선)으로 사관학교도 20마일쯤 떨어진 카후구 사탕수수 농장으로 옮겨졌다가 얼마 안있어 해산되고,박용만은 중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암살됐다. 현재의 대한인국민회 회관은 호놀룰루시 북쪽 룩 애비뉴 2600번지푸노이계곡 언덕위 아담한 스페인풍 2층건물로 자리잡고 있다.1946년현 위치로 이전한 이 건물이 독립운동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하와이 한인사회를 발전시켜온 상징적 건물이다.300여평의 부지에 2층콘크리트 벽돌 건물의 전시장에는 지금도 국민회의 역사를 입증해주는 각종 문건과 자료가 많이 있다.1910년대에 제작된 태극기와 성조기,국민회 회원들이 납부한 독립운동자금 기록부,독립운동기금을 넣어두었던 두개의 대형금고,1922년 제작되어 각급 회의때 사용한 의사봉 등이 보존되어 있다.그러나 기관지 ‘국민보(國民報)’를 찍었던인쇄기는 본국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졌다. 1918년 12월 이승만 박사와 30여명의 이민신도들에 의해 세워진 호놀룰루시 리리하 스트리트 1832번지의 한인기독교회는 이박사가 하와이 독립운동의 본거지로 삼았던 곳이다.1938년에 4만달러를 들여 신축해 지금까지 사용해온 것을 최근 교회당 재건축을 위해 주정부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교회사무실과 교회예배당,이박사 동상 등은 보존되고 이박사 기념관이 새로 건립중이다.현재 300만 달러의 예산으로1층의 교회당과 2,3층의 광화문 누각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이승만박사와 이민 초기 하와이 한인들이 주축이 되어 1903년에 세운 ‘그리스도 연합감리교회’는 그동안 이전을 거듭하여 1948년에 케아우모쿠 1639번지의 현 위치에 2년전 신축돼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와이 항일운동사적지를 살피면서 아쉬웠던 대목은 이승만 전대통령과 관련해서는 상당한 규모로 신축중인 기념관을 비롯해 많은 유적이보존되고 있는데 비해 박용만선생의 사적은 거의 찾아 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하와이 독립운동의 양 날개의 한쪽인 박용만 선생이 너무잊혀지고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박용만선생의 독립운동 역할을상기한다면 지나친 불균형이 아닐 수 없다. 한인회장의 거취를 둘러싸고 교민사회가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는것을 빼고는 이민 100주년기념사업을 준비중인 하와이 한인사회는 국권침탈기 하와이 이민 동포들의 고난의 이민사와 독립운동사 발굴·조사·정리에 열정을 모으고 있다.어떤 사람은 이승만-박용만의 뿌리깊은 노선갈등의 잔재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kimsu@
  • 최초 원자탄 개발 참여 심슨박사 사망

    [시카고 AP 연합]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을 이끈 뒤 핵의 평화적 이용에 앞장을 서온 존 심슨 박사가 31일 시카고대학 버나드 미첼 의료원에서 심장수술 합병증으로 숨졌다.향년 83세. 심슨 박사는 1943년 시카고대학에 부임한 뒤 미국의 극비 원자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러나 심슨 박사는 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탄이 엄청난인명피해를 일으킨 것을 본 뒤로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을 위한 운동에 매진했다.심슨 박사는 46년 핵 에너지의 민간부문 관리를 규정하는 법률 제정도 적극 후원했다. 심슨 박사는 또 우주선(線) 연구의 선구자로 ‘우주선 중성자 농도감시장치’를 개발해 56년 사상 처음으로 태양 자기장의 영향을 받는 행성 너머의 지역을 의미하는 태양권의 존재를 입증하는 증거를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심슨 박사와 그 연구팀은 이 연구를 바탕으로 65년 화성을 필두로 목성,수성과 토성까지 우주선(線) 탐사기구를 보내는 성과를 거뒀다.
  • 정물화의 기호학적 의미 따라잡기

    신라 진흥왕 때 화가 솔거가 황룡사 벽에 ‘노송도’를 그렸더니 새들이 날아와 앉으려다가 부딪쳐 떨어졌다는 일화가 있다.서양에도 그리스의 제우시스라는 화가가 그린 포도송이 그림을 보고 새들이 따먹으려고 달려들었다는 얘기가 있다.모두 사실적인 묘사 중심의 회화가발달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정물화는 흔히 사실의 정확한재현과 기술로 그 가치가 평가된다. 그러나 정물화가 전혀 다른 시각에서 본격적으로 그려지고 또 전문화된 시기가 있었다.17세기 네덜란드이다. 한길아트의 아르테마 시리즈 제3권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최정은 지음)은 정물화라는 양식이 정립되고 가장 많이 그려졌던 17세기 네덜란드에 초점을 맞춰 정물화의 상징적·기호학적 의미를 살핀다. 본격적인 의미의 정물화는 16세기 후반경에 등장했다.이 때의 정물화는 현재의 삶을 찬양하고 삶의 찰나성을 아쉬워하며 붙잡아두려는인간의 욕망에 다름아니었다.종교가 지배적이었던 중세에 들어서는정물화는 신의 계시나 신의 품성을 상징화하는 데 제한적으로 사용됐다.그러나 종교개혁 후에는 대상을 아름답게 그리기 보다 추하고 이지러진 모습까지 그대로 묘사하려는 경향이 강했다.특히 네덜란드 정물화에서는 꽃이나 과일 등을 그리면서 죽음을 의미하는 해골을 끼워넣거나,꺾여진 꽃이나 빈 술잔 등을 그려넣어 인간의 유한한 삶과 허무를 표현했다.이 책은 지상의 모든 것에 대한 덧없음과 헛됨을 뜻하는 바니타스(Vanitas)라는 개념을 통해 정물화의 속성을 파헤친다.‘바니타스 정물화’는 30년 전쟁 직후인 1650∼1660년 사이에 많이 그려졌다.2차세계대전 때의 유태인 학살과 맞먹는 인명피해를 낸 30년전쟁의 잔혹과 허무를 정물화라는 그릇에 담아낸 것이다. 김종면기자
  • [외언내언] 지뢰밭

    전쟁개념을 일상화하는 것이 현대인의 버릇이다.두 나라가 경제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면 ‘경제전쟁’에 들어갔다고 말한다.한 쪽을 심하게 비판하면 ‘포화를 퍼부었다’고 표현한다. ‘지뢰(地雷:land mine)’ 역시 생활 깊숙이 들어와있다.어느 부처에서 여성장관이 자주 중도하차하자 ‘지뢰밭’같은 이익단체들에 걸려 희생됐다는 분석도 있었다.‘지뢰찾기’라는 이름의 컴퓨터 게임도 있다.어느 성직자는 “인생은 지뢰밭과 비슷해 한번 잘못 밟으면인생이 망가진다”며 예측하기 어려운 삶의 불투명성을 경고했다.진념(陳稔) 재정경제부장관은 최근 만나는 사람들에게 ‘지뢰밭’을 거론한다.우리 경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요인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지뢰는 위장돼 미리 알아내기가 쉽지 않은 점 때문에 잠재된 위험요소를 가리키는 비유로 흔히 인용된다.철이나 플라스틱 속에 폭약을넣은 방어용 무기가 지뢰이다.대(對)전차용이 가장 많이 쓰인다.무게1∼5㎏의 대인지뢰는 특히 예민해 강아지가 살짝 밟아도 터진다. 15세기경 중국에서 실전에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보편화됐다. 주로 군대나 전차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일정 지역에 폭넓게 지뢰를묻어 지뢰밭을 조성한다.때로는 게릴라 부대가 적의 정규군 전력을약화시키거나 교통을 방해하기 위한 공격용으로도 사용한다.전세계에묻혀있는 지뢰는 60여개국에 1억개 가량으로 추정된다. 지뢰 피해자는 해마다 2만6,000여명에 이르고 이중 83%가 민간인으로 추산되고있다.대인지뢰 반대운동 단체들이 지뢰 제거를 적극 주장하는 것은이런 민간인의 큰 피해 때문이다. 캄보디아에는 모두 1,500만개의 지뢰가 지천으로 깔려있다.과거 크메르루주군이 정글 곳곳에 1개 5달러짜리 싼 중국제 지뢰를 마구 파묻은 탓이다.요즘 유엔 지뢰철거반이 하루 평균 20개의 지뢰를 철거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전역에 묻힌 지뢰를 전부 없애려면 적어도 300년이 걸린다고 한다. 한반도 비무장지대의 대인지뢰 매설지역 넓이는 여의도 면적의 334배에 이른다.탐지가 불가능한 대인지뢰는 100여만발이 매설돼 이를제거하는 데 드는 비용만 1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추산된다.때마침경의선 철도 복원과 관련해 정부는 지뢰밭 제거 면적을 당초 7만2,000평에서 25만4,000평으로 늘릴 모양이다.그래도 널려있는 지뢰밭에서경의선 주변 지역은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남북화해 무드 못지않게 경제의 지뢰밭 제거도 중요하다.경제안정은 비무장지대의 지뢰밭 축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 위안부 출신 여성들 인권상 받는다

    [워싱턴 연합] 미국 의회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고 배상을 촉구하는 입법을 추진하는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아시아 여성들이 다음달 미 국회 의사당에서 인권상을 받게돼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미국 유대인학살(홀로코스트) 추모 박물관이 위안부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위안부 출신 여성들의 육성 증언을 라디오로 미국 전역에 생중계할 예정으로 있는 등 미국에서 위안부 문제가 집중 조명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지역 정신대문제 대책위원회의 이동우 회장은 21일 수치심을무릅쓰고 일본의 만행을 폭로한 위안부들을 격려하기 위해 오는 9월20일 미 국회 의사당 레이번빌딩에서 ‘존엄과 명예의 여성을 위한 2000년 인권상’ 시상식을 갖는다고 밝혔다. 인권상 수상자는 한국 6명(김상희,문필기,황금주,김을례,이용수,김분선),필리핀 2명,중국과 대만 각 1명 등 10명이다.
  • “日軍 위안부 책임자 처벌·법적 배상”

    [제네바연합] 유엔 인권소위는 17일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한 ‘현대적 형태의 성노예’에 관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이 결의안의 이행상황을 감독할 것을 유엔인권고등판무관에게 요청했다. 결의안은 일본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운영한 군대위안부와 관련해 국제법상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법적 배상을 비롯한 완전한 보상과 함께 책임자의 처벌을 역설한 맥두걸 특별보고관의 최종 보고서를 환영한다고 밝혀 적극적인 지지를 표시했다.
  • [김삼웅 칼럼] 독립운동 정신으로 통일운동

    오늘 해방 55주년을 맞는 광복절의 의미는 무엇일까. 1945년 해방의 날과 3년 뒤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에 맞은 광복절의 의미를 뺀다면 2,000년대 첫 광복절의 의미처럼 각별하고 감회깊은 날도 없을 것같다. 그것은 6·15 남북정상선언과 함께 갈라졌던 겨레가 다시 왕래를 시작하고 하나로 되는 기대가 모아지기 때문이다. 남북 7,000만 겨레뿐만 아니라 세계 142개국에 흩어져 사는 560여만명의 한민족 핏줄이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설렘이고 희망이다. 과거의 경우와는 크게 다르다. 7·4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의 채택이 양측 권력의 막후 흥정의 산물이라면 이번의 ‘사변’은 시대정신에 따른 실사구시적인 접근이라 하겠다. 가장 큰 걸림돌인 주변4강의 역학(力學)관계를 ‘배타적 자주가 아닌 협력적 자주’를 통해 수용하면서 전개된다는 점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이와 더불어 주한미군의 존재가 “지역안정과 완충역할을 담당한다”(김대중), “통일된 후에도 평화유지를 위해 남는게 유리하다”(김정일)는 인식의 공유에는 “일본의 군비증강과 중국의군사강국화”를 지켜보는 두 정상의 우려가 작용했을 것이다. 더 이상 적대와 분단상태로는 경제의 국경선이 무너지고 있는 세계의 장터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결코 좌절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한번의 좌절은 비극이지만 같은 이유로 발생한 좌절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어리석음이 연출한 희극이다”(칼 마르크스) 일제의 압제로부터 민족해방을 쟁취하기까지 수많은 애국선열과 지사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해방조국은 그들의 희생을 담보로 독립국가를 건설했다. 그러나 분단국가의 절름발이 국가였다. 거기에다 동족상쟁을 치르고 길고도 신물나는 냉전시대를 살아야 했다. 동족간의 전쟁이나 대결은 이긴 쪽이나 진 쪽이나 모두 피해자다. 우리가 민족내부 문제로 적대와 증오를 극대화할 때 일본과 중국은경제·군사적으로 거대해졌다. 특히 일본은 군사대국화에 이어 2차세계대전의 전범국인 자신을 피해자로, 연합군을 가해자로 진실을 뒤바꿔 놓으면서 자신들을 ‘아시아해방 지도국’이라 자처하기에 이르렀다.도쿄전범재판을 비난하고 2차대전 침략을 미화하는 역사왜곡의교과서를 만든다. 여전히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앙탈을 부리면서영토야욕을 숨기지 않는다. 모리 요시로 일본총리의 ‘신(神)의 나라’ 발언은 그들의 지향점을 한눈에 읽게 한다. 남북이 합쳐도 맞설까 말까한 처지에서 쪼개고 갈라져서 어찌 그들과 맞상대가 되겠는가. 세계시장을 누비면서 번 달러를 무역적자로해마다 일본에 100억달러씩 쏟아붓는다. 경제적 예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한반도 전체를 하나의 경제단위로 하는 경제공동체가 아니고는 벗어나기 어렵다. 또한 하루가 다르게 비대해지는 중국의 군사력과 경제력도 우리에게는 큰 위협이다. 이같은 주변상황을 직시한다면 우리에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시간의 유예도 기대하기 어렵다. “길은 외길/남도천리”의 시구를 차용하여 “길은 외길/남북협력”일 뿐이다. 6·15선언은 이러한 역사의 소명에서 이루어졌다. 오늘 서울과 평양에서 상봉하게 되는 저 이산가족들의 피눈물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이산가족이 만나도록 길을 넓혀야 한다. 그리고 경의선 연결,경제협력,군비통제와 군비축소를 포함한 군사문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등 남북 사이의 모든 현안을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혈육과 가족이 다시 만나고 남북이 서로 협력하면서 전쟁의 위협을제거해 나간다면 하나되는 일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열망과 소망에 부합되는 사회, 그것이야말로 인류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닌가?”(에릭 홉스봄) 겨레의 화해와 협력을 못마땅해하는 세력은 일제로부터 해방을 두려워한 세력과 다를 바 없다. 분단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린 자들이나 왜정 치하에서 출세한 자들이나 정신적으로 한 통속이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해방둥이들이 50대 중반을 넘는 매정한 세월 속에서 우리는 민주화와 근대화의 현대국가 건설에 매진해왔다. 많은 사람의 피땀과 눈물이 배었다. 그 바탕에서 통일의 길을 연다. 8·15광복절 55주년,국민 모두가 반세기 묵은 녹슨 쟁기를 씻어 들고 통일의 황야로 나아가는,겸허하고 결연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김삼웅 주필 kimsu@
  • 신간 맛보기

    ◆일본의 전후책임을 묻는다(다카하시 데쓰야 지음,이규수 옮김,역사비평사 펴냄)1990년대 후반 들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일본의 네오내셔널리즘은 역사를 자국 중심으로 해석하는 이른바 자유주의사관과 가토 노리히로가 주창한 ‘패전후론(敗戰後論)’을 두 축으로 삼고 있다.저자는 독일군 강제 매춘과 일본군 위안부를 비교하며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이 자유주의 사관과 전쟁 책임을 애매하게 만드는 패전후론의 허구성을 통렬히 비판한다.‘기억의 정치,망각의 윤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그는 직접 알지 못하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책임을 추궁받을 때의 당혹스런 경험을 ‘망령’의 비유를 매개로 분석한다.또 반나치운동가 한나 아렌트의 사례를 인용하며 민감한 사안인 책임자 처벌 문제를 거론한다.9,000원◆미시사란 무엇인가(곽차섭 엮음,푸른역사 펴냄)마르크스주의 역사학,독일의 사회구조사,프랑스 아날학파의 전체사 등 역사적 거대구조를 탐색하고자 하는 것이 거시사적 방법론이다.반면 미시사는 구체적인 개인을 통해 역사적 리얼리티의 관계망을 이해하려 한다.거시사가 롱샷으로 본 것이라면 미시사는 줌으로 사물을 당겨보는 것이라고할 수 있다.이 책에선 민중문화의 뿌리찾기를 시도한 진즈부르그의‘치즈와 구더기’,갈릴레오 재판의 ‘진실’을 전복하려 한 레돈디의 ‘이단자 갈릴레오’,근대초 한 프랑스 농촌여인의 선택의 문제를 다룬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 등의 저작을 통해 미시사가 ‘가능성의 역사’임을 보여준다.미시사는 1970년대 이후 서구 사학계에서 새로운 역사연구 방법론으로 주목받고 있다.1만9,500원◆위대한 세대(탐 브로코 지음,김경숙 옮김,문예당 펴냄)1930년대 경제공황으로 세계 최대 채무국이 됐던 미국을 2차 세계대전이란 국가적 위기를 통해 세계 최강의 채권국으로 도약시킨 미국 보통사람들의 이야기.항공모함 조종사였던 조지 부시,한쪽 팔이 불구가 된 산악사단의 젊은 소위 밥 돌 등 정계 인사와 노벨 의학상 수상자 트루디 엘리언,저널리스트 벤 브래들리·에드 굿맨 등 가장 위급한 상황에서책임감으로 조국을 구한 이들의 ‘평범속 비범’을 만날 수 있다.이책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 조지 W 부시가 내세운 온정적 보수주의가왜 미국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지 그 이유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지난 83년부터 지금까지 NBC 저녁뉴스를 진행해온 톰 브로커의 다큐멘터리적 감각이 돋보인다.9,000원◆약산과 의열단(박태원 지음,깊은샘 펴냄)월북 소설가 박태원(1909∼1986)이 해방직후인 1947년 약산 김원봉의 증언을 토대로 약산의일제시대 항일 독립운동의 행적을 적은 전기형식의 글.약산이 경남밀양에서 태어나 서당에서 공부하던 어린시절부터 1919년 윤세주·곽경·강세우 등과 ‘의열단’을 조직한 일화,중국땅에서의 항일투쟁등이 소개됐다.약산은 해방후 좌우합작을 추진하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 본격화되자 월북,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지냈다.‘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잘 알려진 박태원은 일제때 정지용,김기림 등과 함께 문학동인 ‘구인회’의 멤버로 활동했다.6.25때 월북한 뒤실명과 반신불수 속에서도 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을 지어 북한최고의 역사소설가라는칭호를 얻기도 했다.7,000원
  • 브리티시·US여자오픈 내일 티오프

    세계 최고의 남녀골프 빅쇼가 유럽과 미국에서 동시에 펼쳐진다. ‘디 오픈(The Open)’ 즉 브리티시오픈과 US여자오픈이 각각 스코틀랜드세인트앤드류스의 올드코스(파 72·7,115야드)와 미국 일리노이주 리버트빌의 메리트GC(파 726,516야드)에서 20일 오후 나란히 개막한다.모두 시즌 3번째 메이저타이틀이자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다. 브리티시오픈은 1860년 창설,1·2차 세계대전 등으로 12차례 중단됐을뿐 올해로 129회째를 맞는 가장 오래된 대회.골프의 발상지 스코틀랜드에서는 ‘The Open’이라는 통칭으로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총상금 453만달러,우승상금 82만5,000달러이며 세인트앤드류스올드코스에서 대회가 열리기는 27번째. 올해는 특히 마스터스,US오픈,PGA선수권 등 나머지 3개의 메이저 타이틀을거머쥔 세계랭킹 1위 타이거 우즈가 역사상 5번째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지의 여부와 관련,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우즈의 경쟁상대로는 세계 랭킹 2위 데이비드 듀발과 올 마스터스 챔피언비제이 싱(피지),필 미켈슨,데이비스 러브 3세,어니 엘스(남아공) 등이 꼽히며 지난해 챔피언 폴 로리,유럽의 상금왕 콜린 몽고메리,리 웨스트우드(이상 영국),대런 클라크(북아일랜드) 등도 유럽파의 자존심을 걸고 정상에 도전한다. 98년 극적인 우승을 차지한 루키 박세리(23·아스트라)를 신데렐라로 만든US여자오픈 역시 여자 메이저 가운데 가장 전통이 깊다. 46년 창설,55회째를 맞으며 총상금이 275만달러로 중상급 남자 대회에 맞먹고 우승상금도 49만5,000달러로 웬만한 여자대회의 3배가 넘는다. 우승후보로는 단연 JAL빅애플을 거머쥐며 5승으로 다승선두에 나선 애니카소렌스탐과 4승의 캐리 웹,그리고 줄리 잉스터 등 3인방이 꼽힌다. 여기에 시즌 첫승과 2년만의 정상탈환을 꿈꾸는 박세리,첫 메이저타이틀에도전하는 김미현(23·ⓝ016-한별),슈퍼루키 박지은(21) 등 한국선수들이 복병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선수들은 이들 외에도 강수연(24·랭스필드) 박희정(20) 펄신(33)과 아마추어 강지민,송나리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곽영완기자 kwyoung@
  • 홀로코스트 참상 폭로 카르스키 사망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참상을 최초로 폭로한 전직 폴란드 외교관 얀 카르스키가 심장질환 등으로 14일 사망했다.향년 86세. 폴란드 언론들은 이날 카르스키가 심장 및 신장 질환 치료를 위해 입원 중이던 미국 조지타운 대학부속병원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리오 J.오도노번 조지타운 대학 총장은 “카르스키는 홀로코스트의 참상을처음으로 생생히 전한 영웅이었다”면서 “조지타운 대학인들은 카르스키와맺은 약 40년간의 인연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카르스키는 지난50대 미국으로 이민온 뒤 조지타운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강의했다. 1914년 폴란드 로지시(市)에서 태어난 카르스키는 35년부터 폴란드 외교관으로 복무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포병장교로서 전쟁에 뛰어들어,나치와 소련에 대항해 싸웠고 폴란드 망명정부에 참여하기도 했다. 42년 나치 친위대로 위장해 폴란드의 이즈비차 수용소 등 강제수용소에 침투한 카르스키는 이 곳에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목격한 뒤 영국,미국 등서방 지도자들에게 이 사실을 폭로했으며이를 계기로 홀로코스트의 참상이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바르샤바 AP 연합
  • “헤밍웨이 2차대전 당시 쿠바서 美 정보원 활동”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사귄 사람들로부터 얻은 비밀정보를 미국 정부에 넘기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았다고 선데이 타임스가 16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국 공문서보관소에서 찾은 서류를 인용,헤밍웨이가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쿠바의 수도 아바나 근처 자신의 농장에서 살면서 간첩단을 조직하고 카리브해에 나가 나치의 유보트를 수색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아바나에 주재하던 미국연방수사국(FBI) 요원의 보고서들은 헤밍웨이가 미국 해군과 대사관으로부터 봉급을 받았던 것으로 밝히고 있다. FBI요원 로버트 레디가 작성한 이 보고서들은 헤밍웨이의 간첩단원들이 미국이 부패했던 풀겐시오 바티스타 정권과 맺은 비밀계약을 망치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이신문은 전했다. 보고서는 또 헤밍웨이가 아바나의 ‘반란자들’에 대한 정보보고의 대가로미 대사관으로부터 돈을 받기로 합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보고서 작성자인 레디는 “42년 9월30일 헤밍웨이의 농장에서 그로부터 4명을 풀타임으로 고용하고 있으며 14명의 바텐더와 웨이터 등을 고용하고 있어그 비용이 월 500달러라는 말을 들었다”고 기술했다. 헤밍웨이를 싫어했던 것으로 보이는 레디는 또 “헤밍웨이가 대사와 친분이두터워 그가 술집 같은데서 알게된 사람들로부터 얻은 정보의 신뢰도에 이의를 제기하기가 어렵다”고 적었다. [런던 연합]
  • 2003년 군인체육대회 남북한 공동개최 제의

    지안니 골라(이탈리아) 국제군인스포츠연맹(CISM) 회장이 2003년 제3회 세계군인체육대회의 남북한 공동 개최를 공식 제안했다. 대한체육회는 10일 골라 회장이 김운용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에게공문을 보내 제3회 대회를 서울과 평양 등에서 남북한이 공동개최해 줄 것을요청했다고 밝혔다. 골라 회장은 이같은 서한을 김 위원장과 박명철 조선올림픽위원회 위원장에게 동시에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군인체육대회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을 기념해 지난 95년 로마에서 1회 대회를,99년 자그레브에서 2회 대회를 치렀다.CISM에는 남북한을포함,120개국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한편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회에 참석한 뒤 이날 귀국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은 오는 9월 시드니올림픽 기간중 2002년 월드컵의 남북한 공동개최를 위한 3자회동이 열린다고 밝혔다.정회장은 3자회동에 자신과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장웅 북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참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박해옥기자 hop@
  • [외언내언] 지뢰밭

    한반도 비무장지대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뢰밭이다.남북군사분계선을경계로 200만개의 대전차·대인 지뢰가 묻혀 있어 수색대원들의 한밤중 정찰근무는 피를 말리는 일이다.수색대원들은 방어진지 통문(通門)을 들어서 ‘지뢰지대’라는 경고판을 비켜지나 정해진 코스로만 방어시설을 점검하고 있으나 풍수해 등으로 인한 유실 지뢰를 밟을지 모를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있다. 세계대전 때 일반화된 지뢰는 값싸고 효율적인 방어무기여서 대전 후 가난한 나라의 군사대치지역에 널리 보급되었다.지구상에는 60여개국에 1억개 이상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고 해마다 2만5,000여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다. 특히 대인지뢰는 비인간적인 살상무기라는 점에서 지탄의 대상이 된다.예고 없는 비겁성과 살아 남는다 해도 평생 불구로 지내게 하는 야만성이 문제다.이때문에 민간기구인 국제지뢰금지운동(ICBL)이 마련한 대인지뢰금지협약에 87개국이 서명했으나 한반도는 예외지역으로 남아 있다. 서부전선 군사분계선(MDL)에서 수색근무 중 지뢰가 터져 육사 선후배인이종명(李鍾明·41),설동섭(薛東燮·39)중령이 모두 두 무릎부터 다리가 절단되는 사고가 나 안타까운 심정이다.사고 당시 두 장교가 보여준 전우애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이들은 수색대대장 임무의 인수인계를 위해 현장답사를하던 중 앞서 가던 설중령이 지뢰를 밟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이중령이 대원 20명의 안전을 위해 ‘내가 구한다.너희들은 오지 말라’며 지뢰밭에 뛰어 들었다 ‘꽝’하는 굉음과 함께 변을 당했다고 한다. 중상을 입은 두 장교는 부하장병들의 접근을 막고 소총과 철모에 의지해 지뢰밭에서 기어나와 현장지휘를 한 뒤 실신,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는 것이다. 군기강해이 사건이 잇따라 조성태(趙成台)국방부장관의 특별 지시가 내려진가운데 두 장교가 보여준 뜨거운 전우애와 희생정신은 더없이 고귀하고 값져 보인다. 지역 사정을 잘아는 장교가 사고를 당한 것도 충격이지만 지뢰의 몰인간성을 다시 한번 생각케 한다.군사분계선 인근에서 발생한 사고의 폭음이 경계중인 북한군을 자극할 것을 우려,최악의 상황에서도 조용하게지뢰밭에서 탈출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한 참군인의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특히 비무장지대에 매설된 플라스틱 지뢰는 가벼워 유실되기 쉽고 금속탐지기로도 찾아내기 힘들어 골칫거리다.독일 통일 후 동서독 국경지대 지뢰제거 작업이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지뢰의 해독성을 짐작할 수 있다.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만큼 남북합의 아래 휴전선 지뢰밭 위험을 제거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때다.두 중령이 보여준전우애에 경의를 표하며 빠른 쾌유를 빈다. 李基伯논설위원 kbl@
  • [외언내언] 북한의 코카콜라

    코카콜라는 햄버거·플레이보이지(誌)와 함께 미국자본주의를 대표하는 3대상품으로 꼽힌다.특히 과거의 코카롤라 모스크바 진입은 공산주의의 몰락을가져와 역사를 바꾼 상징적 상품으로 지목된다.세계인에게 친숙한 산타클로스의 빨간 옷과 하얀수염은 코카콜라 광고를 담당한 화가 선드블론이 코카콜라 이미지를 홍보하기 위해 그린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코카콜라가 진출해 있는 나라는 북한과 이라크·리비아 3개국을 제외한 195개국으로 하루 30억병 소비된다.1985년 미국우주인이 지구 밖에서 처음 마신청량음료도 코카콜라이다.영화‘혹성탈출’에서 인류멸망 후 지구를 지배한원숭이들이 콜라병을 보고 인류문명을 알게 되는가 하면 ‘부시맨’에선 콜라병이 아프리카 오지인에게 문명사회로의 초대장으로 묘사된다. 1893년 챈들러라는 사업가가 소다에 갖가지 약재를 섞어 만든 ‘달콤한 소화제’의 제조법을 약국주인 펨블튼으로부터 사들여 상표등록함으로써 출현한 코카콜라가 미국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미국의 힘이었다.세계대전 중 미군병사들은 코카콜라를 행운을 가져다 주는 수호신으로 여겨 미군이 있는 곳엔 반드시 코카콜라가 따랐다.북아프리카 작전중 아이젠하워장군은 콜라 300만병을 공급해 달라는 긴급전문을 보낼 정도였다. 2차대전 후 코카콜라는 ‘승자의 음료수’로 세계로 퍼져나갔고 공산국가들은 서둘러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다.미국정부는 경제봉쇄조치로 맞섰으며 코카콜라는 이념의 장벽마저 무너뜨리는 힘을 발휘했다.코카콜라는 이제 자유분방한 미국인 생활방식이나 가치를 상징하고 있으며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종교처럼 세계인의 생활과 의식을 지배해 코카콜로니즘(코카식민주의)이라는말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자본주의의 전초병으로 군림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조치 이후 코카콜라가 미국상품으로는 처음으로북한에 공식 진출했다.코카콜라 북한 입성은 예상된 일이나 이를 계기로 미국상품의 북한 진출이 잇따를 것으로 보여 관심을 끈다.‘우리는 이렇게 허리띠를 조이면서도/서양의 코카콜라는 얻어마시지 않았다/시뻘건 흙탕물을마실지언정 제나라 물을 마시었다’ 북한 「조선문학」 1월호에 게재된 ‘조선사람들’이라는 시에서 코카콜라에 대한 북한의 종전 인식이 엿보인다. 코카콜라가 80년대 말부터 북한 내 외화상점이나 외국인호텔에서 팔렸다고는 하나 이는 제3자가 제품을 구입해 북한에 흘러든 것으로 이번 직접판매형식과는 성격이 다르다.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코카콜라의 북한 진출은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없다.세계는 지금 평양의 개방에 주목하고 있다. 이기백 논설위원.
  • [대한시론] 한국통일과 아시아의 돌파구

    최근에 있었던 강택민과 김정일의 회담,그리고 그간 경제위기,체첸사태 등으로 시달려 국제 문제에 관한 발언이 적었던 러시아 푸틴 대통령도 평양방문을 발표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새삼 오늘의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 역학의 구도가 조선왕조 말기와 유사함을 실감하며,‘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명제를 떠올린다. 역사 이래 유라시아 대륙은 민족 이동,침략,전쟁 등 소용돌이의 연속이었다.대륙의 동녘끝에 자리한 한국은 그 움직임에 민감하게 관련되어 왔으며,특히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동학운동(1894)으로 시작된 한민족의 비극은 청·일전쟁,일제강점으로 이어졌고,해방은 곧 6·25를 야기하였으며,분단상태는 20세기 말,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일편단심 중국에 사대를 일삼은 조선은 마치 미·일·중·러의야욕 앞에 속살을 드러낸 규방의 처녀처럼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지난 한세기동안 한국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 유고슬라비아 등은 한결같이 국민국가의 형성에 실패함으로써 비극적 체험을 겪었던 것이다. 요컨대 20세기는 국민국가를 재빨리 이룬 나라가 그렇지 못한 나라를 짓밟는 제국주의적인 갈등에서 막을 올렸고,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를 넘는 기간은 그때 입은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한 독립과 민주화를 향한 알력이었다. ‘동양은 한 사람만이 자유임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희랍 로마의 세계는 소수만이 자유임을 알고 게르만세계는 모두가 자유임을 알고 있다’라는 헤겔의 고전적인 명제가 있다.동양은 전제적인 체제로써 자유를 억압해 왔고 희랍,로마의 전통을 이어 받은 서양(게르만세계)에서는 민주적인 정치체제로써 자유를 표현함으로써 역사를 정체시키는 동양과 스스로를 보편화시킨 서양의 역사가 대비된다. 그러나 그간 민족적 비극을 겪어 온 여러 나라는 추상적인 ‘자유’의 개념보다는 부족,지역,종교적인 신념을 내세웠으며,나라를 앞세우는 시민의식을형성하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 애쓰는 4강의 힘을 적절히이용하여 역사적인 남북통일의 첫걸음을 내디뎠으며,역사이래 처음으로 주변 국가를 설득,자주적으로 한국문제 해결의 기회를 포착함으로써,우리가 하나임을 자각하고 진정한 국민국가를 이룰 절호의 기회를 마련했다.통일은 곧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것이며,아시아의 중심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우선 북한에 대한 인프라의 정비차원에서 남북이 철도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지난 5년간 부산에서 일본을 잇는 해운항로는 7개에서 35개로 증가했다. 한민족의 영향력은 일본열도에서 유라시아대륙 깊숙이 파고들어 갈 것이며,또한 영종도국제공항은 태평양 연안국가와 유라시아대륙 전역을 연결하는 중심이 될 것이다. 주변국가의 엇갈리는 이해를 조장할 역학구도의 중심국가는 철저하게 평화공존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필연적으로 엄청난 한민족의 에너지가 발산될것이며,한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공동체(AU)구상도 현실성을 갖게 될 것이다. 특히 한·중·일 세 나라의 문화적 공통기반(유교,불교,한자)은 몬순지대라는 풍토조건과 오랜 농경의 체험,그리고 교육의 중시에 있으며 특히 종교에관한 세속적인 관용성에 있다.이 기반에서 한국이 서양의 근대문명을 충분히 소화하고 유연한 민족문화를 가진다면 AU는 EU보다 훨씬 능률적·정신적인공동체 의식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주변의 태평양 연안 국가들에 긴장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오히려 상호간의 공존 의식을 확산시킬 것이다. 역사는 무의미하게 되풀이되는 구도를 등장시키는 것은 아니다.마르크스는한 번의 좌절은 비극이지만 같은 이유로 발생한 좌절은 역사에서 아무 것도배우지 못한 어리석음이 연출한 희극이라고 했다.겉보기에는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역학의 구도가 100년 전과 다름없어 보인다.그러나 21세기 우리가 스스로 민족의 일체감을 이루어 간다면 국격(國格)을 다듬어 새로운 한민족의 위상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金 容 雲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 현충일 맞이 특집 프로그램…탈냉전시대 다시 찾는 철의 장막

    각 방송사는 6일 현충일을 맞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의 뜻을되새기는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KBS 1TV는 낮 12시15분 1966년 베트남전 ‘해풍작전’에서 적의 폭탄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 부하들을 구하고 숨진 고 이인호 소령의 일생과 철학,군인정신을 베트남 현지를 방문한 미망인 이경자 여사로부터 들어보는 ‘꺼지지않는 호국의 혼 이인호 소령’을 방송한다.오전 10시35분에는 ‘현충원’ 이참전용사와 독립운동가들만 묻힌 곳이 아니라 인명구조 소방관 등 우리 사회와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이웃이 묻히는 곳이라는 점 등 국립묘지의 뜻을 재조명해보는 ‘2000년 6월 대전국립묘지’를 방영한다. EBS는 오전 11시25분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을 맞아 미국 여성 언론인 레지 나델슨과 소련의 방송인 블라디미르 포즈너가 발트해에서 아드리아해까지1,200마일에 걸친 ‘철의 장막’을 횡단하며,냉전을 겪은 세대와 지금 자본주의를 배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철의 장막이 지닌 정치·사상·역사적 배경 등을 되새겨보는 ‘특집다큐-다시 찾아 본 철의 장막’을 방영한다. MBC는 ‘아주 특별한 아침’(오전10시40분)에서 26년 경력의 모범 택시기사로 태극기와 관련된 자료를 10만건 이상 모으고 3,500여건이 넘는 잘못된 자료를 바로잡아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손복한씨의 ‘26년 올곧은 태극기 사랑’을 방송한다. 특집 영화도 준비됐다. SBS는 오전 11시 군벌득세로 혼란을 겪던 1930년대중국을 배경으로 황비홍의 활약을 그린 서극 감독의 ‘황비홍 무두장군’을내보낸다.헤밍웨이 원작의 ‘무기여 잘 있거라’(KBS2 오전10시40분),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전쟁 속에서 피어난 애절한 사랑을 보여주는 랠프 리처드슨,데보라 커 주연의 ‘새날의 여명’(EBS 낮12시30분)도방송된다. 아이들을 위한 영화로는 카를로 콜로디의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영화화한 ‘피노키오의 모험’(MBC 낮12시20분),집시 사기꾼으로부터 도망친원숭이와 그를 데려다 기르는 한 소녀 사이의 우정을 그린 ‘다저스 몽키’(KBS2 오후3시15분) 등이 있다. 장택동기자 taecks@
  • 과거속에서 미래 찾는 ‘해양대국의 힘’

    로테르담은 유서깊은 항구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항만시설을 자랑한다.이미14세기부터 유럽대륙의 주요항구로 자리잡은 뒤 17세기에는 암스테르담에 이은 네덜란드의 두번째 상업도시로 발돋움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내를 걸으면서 이 도시의 역사를 실감하기란 쉽지 않다.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으로 옛 건물은,시청과 중앙우체국·증권거래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파괴됐기 때문이다. 대신 과감한 도시계획과 파격적인 디자인의 건축물들이 눈길을 끈다.철저하게 파괴된 것을 오히려 현대적인 계획도시로 탈바꿈시키는 기회로 삼은 전형적인 사례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로테르담 해양박물관(Maritiem museum Rotterdam)에서도 이 곳 사람들의 기질이 읽혀진다.과거를 나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미래를 위한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해양박물관은 유라시아 횡단철도의 유럽쪽 종착역인 로테르담 중앙역에서 정면으로 난 큰길을 따라 10분쯤 걸으면 나타난다.3분쯤 더 가면 이 곳 출신대학자의 이름을 따 최근 개통된 에라스무스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그러나 신경을 쓰지 않으면 박물관은 그냥 지나쳐버리기 십상이다.루페항(Louvehaven)의 도크 끝자락을 이용한 박물관은 소박한 외관에 야외 전시품들도일상적인 항구의 풍경처럼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오히려 박물관 앞 ‘1490년 광장’에 서 있는 오시프 샤킨의 조각이 표지판구실을 한다.‘심장을 잃은 사람’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2차대전 당시 도시 전체가 파괴당한 절망적인 심정을 표현했다고 한다. 박물관의 본관은 크고 작은 두개의 삼각형을 이어놓은 모습이다.길쪽에서 보면 평범한 흰색 벽체만 눈에 들어올 뿐이지만,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면 좁은 부지에 공간을 최대한 활용코자 한 설계자의 뜻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전시공간은 크게 건물안과 밖으로 나누어진다.그러나 건물안팎 모두 보편적인 항해와 선박의 역사를 담고있다기보다는 철저히 네덜란드적이고 로테르담적이며,미래지향적이다. 건물밖 도크에는 1867년 진수된 네덜란드 군함 ‘부펠호’가 정박해있다.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뮤지엄 십(Museum ship)’으로 꾸몄다.크레인 등 각종 하역장비와 화물을 실어나르는 기관차 및 화차,등대 등의 해양 안전시설들도 흥미를 끈다.화차의 내부는 하역방법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전시공간으로 활용했다. 건물 안에서 맨 먼저 만나는 전시공간은 지난해 12월 문을 열었다는 ‘세계항구 로테르담’이다.거대한 컴퓨터 게임장처럼 보이는 이 곳은 로테르담 항구를 축약하여 여행자의 짧은 일정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로테르담항의 전모를 보여준다.컴퓨터를 이용하면 항만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다.3층의 ‘콜렉션’관은 로테르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대형 선박들의 미니어처가 공간을 채우고 있다.지도와 콤파스·나침반 등 항해도구를 통해 과거 첨단기술의 도움없이도 어떻게 대양을 주름잡았는지를 알게 한다. ‘17∼18세기의 해상생활’관은 당시 선원들이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었으며,어떤 위험에 직면했는지를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선박의 예를 통해 설명한다.‘네덜란드의 조선’관은 17세기에서부터 20세기 후반에 이르는 선박의 진화과정을 보여준다.여기서도 현대 네덜란드의 조선기술에 공간의 상당부분을 할애한 것은 물론이다.‘스플래시 선생’이라고 이름붙인 어린이관은철저한 체험 위주 전시로 항해나 해양공학의 원리를 깨닫도록 만든다.예를들어 아치형 다리를 만드는 코너에서 구조물을 제대로 조립했다면 어린이들은 아치 위로 가상의 바다를 건너갈 수 있다.그러나 아치의 원리를 이해하지못한 채 조립하면 어린이가 건너는 순간 다리는 무너지고 만다.물의 원리를보여주는 각종 실험장치에서는 배가 어떻게 뜨고 가라앉는지를 배우고,호이스트와 크레인을 작동해보면서 적은 힘으로도 무거운 화물을 부릴 수 있는원리를 스스로 깨우친다. ‘스플래시…’와 부펠호의 내부는 어린이들을 위한 생일파티 장소로도 개방된다고 한다.‘박물관은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라는 로테르담 사람들의 인식은 여기서도 뚜렷이 드러나고 있었다. 로테르담(네덜란드) 글 서동철기자 dcsuh@
  • WP, 한국전서 전사한 美형제 사연 크게 소개

    [워싱턴 연합] 노근리 민간인 학살사건에 관한 AP통신 보도와 이를 둘러싼논쟁으로 미국 내의 한국전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28일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전에서 전사한 두 형제의 사연을 장문의 기사로 소개했다. 신문에 따르면,고등학교 졸업 직후 군에 입대한 밥과 제럼 맥거번 형제는 1950년 한국전에 파견됐으며 다음해인 51년초 중부전선에서 각각 소대장으로 전투를 지휘하던중 불과 10 여일의 간격을 두고 전사했다. 당시 트루만 행정부는 밥과 제럼을 대신해 형제의 아버지인 해슬리 맥거번에게 명예훈장과 은성훈장을 수여하려 했다. 그러나 해슬리씨는 한국전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과 참전 장병에 대한 국가지원부족에 항의해 수상을 거부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수상 제의를 완강히거부했다. 83년 해슬리씨가 사망한 뒤 몇 년이 지나 그의 친척들은 정부에 훈장 수여를 신청했으며,현재 이 훈장들은 두 형제가 졸업한 성(聖)존스 칼리지 고교에 기증,보관돼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현충일 맞아 게재한 이 기사에서 한국전쟁은 그 역사적 의미가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걸프전쟁 등에 가려 미 국민들과 언론들의 철저한 무관심속에 ‘잊혀진 전쟁’으로 남아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AP통신이 노근리 민간인 학살사건을 보도하고 이 기사의퓰리처상 수상과 관련한 논쟁이 미 언론에서 진행된 이후 과거와는 달리 많은 미국인들과 언론,정치인들이 한국전쟁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 美사회개혁가·자연주의자 스콧 니어링 자서전

    “전세계적 규모로 계획된 파괴와 살상이 서구 문명이 인류에게 제공할 수있는 최상의 서비스라면 서구문명은 조금이라도 빨리 세계 무대에서 퇴장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우리의 시골생활은 이 폭력적인 미친 세상에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제 정신을 갖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삶의 한 본보기다”자본주의로 상징되는 문명 전반에 대해 근본적 비판을 가했던 열정적인 사회개혁가이자 자연주의자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1883∼1983).그의 자서전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됐다. 니어링은 미국 한 탄광도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100세 되던 해에 지상에서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며 스스로 곡기를 끊어 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삶의 원칙이 분명한 사람만이 취할 수 있는 그런 최후였다.그가 살았던 100년은 현대사회의 격변기였고,그의 일생은 파란만장하면서도 완벽하고 조화롭고 너무도 진지한 삶이었다.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강연과 저술을 통해 아동노동문제 해결과 여성 참정권 등 당시로서는 매우 앞서가는 주장을폈다.재산가의 유산 상속 제의도거절했다.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죽어간 수백만 명의 민간인과 병사들을 보고절망을 느껴 전쟁의 광기를 강하게 비판해 법정에까지 섰다. 1차대전 반전운동을 주도한 행적 때문에 스파이 활동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니어링은 선구자적 생각을 조금도 굽힘없이 설파한 대가로 교수직에서 쫓겨나야 했다.순회강연 요청도 끊겼다.중산층의 가정을 추구했던 첫 번째 아내도 떠나갔다. 그는 1930년대 미국 우익의 압력 아래서 살아가는 삶의 수단으로 가능한 한시장과 임금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도록 자급농을 택해 시골마을에서 살았다.당시 45세의 니어링에게 스무살 연하의 매력적인 여성 헬렌 노드가 동반자가 되었다.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이었다.돈을 벌려고애쓰지 않았다.돈을 번다는 것은 한도가 없는 게임이기 때문이다.1년 동안생활에 필요한 현금을 벌어들일 만큼만 환금작물을 생산했다. “생계를 위한 노동 4시간,지적 활동 4시간,좋은 사람들과 친교하며 보내는시간 4시간이면 완벽한 하루가 된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자본주의 소비문화가 극대화되면 될수록,우리의 삶이 더욱 바빠지고 황폐해질수록,그의 메시지는 더욱 강하게 되살아날 것이다.값 1만2,000원. 김주혁기자 jhkm@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군사혁신”

    성웅 이순신 제독은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개발하고‘학익진(鶴翼陳)’전법을 창안하여 적은 군사력으로도 일본의 대규모 함대를 격파함으로써 세계전사에 찬란히 빛나는 업적을 달성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은 수적으로 열세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난공불락의 요새로 알려진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돌파하여 파리를 점령하였다.1차세계대전시 수년간 1,000만명의 인명 손실로도 얻을 수 없었던 성과를 6주만에 불과 수만명의 희생으로 달성한 것이다.이 경이적인 성과는 독일의 구데리안 장군이‘전격전’(Blitzkrieg)이란 획기적인 전법을 발전시키고 이에입각한 군사력을 건설함으로써 가능하였다. 아랍국가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 이스라엘은 고유의 군사비책을 창조적으로발전시킴으로써 불리한 여건에서도 4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이와 같이 상대적으로 자원도 적고 병력수도 적은 나라가 승리를 거둔 사례가 많이 있다.그것은 시대를 뛰어 넘는 혁신적 차원에서 새로운 전쟁 수행 개념을 개발하고 이에 따른 군사력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보혁명으로 불리는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지구촌 전체로 급속하게확산되어 가고 있다. 이제까지의 산업문명 패러다임이 새로운 정보문명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변화는 군사 분야에도 파급되어 전쟁수행의 개념과 방식을 근원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최근의 걸프전과 코소보전에서 생생하게 보았듯이 앞으로의 전쟁은 첨단 정보전,장거리 정밀 교전,사이버전 등의 양상을 띨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이에 따라 군사 선진국들은가속적으로 발전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새로운 차원의 전력시스템을 개발하고 그에 상응한 전투 수행 개념과 조직 편성을 발전시키려는 군사 혁신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군도 이러한 정보화시대의 변화 물결에 발맞추어 ‘정보와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작지만 강한 군’을 만들기 위해 비전을 정립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군사 혁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미래전 상황에 적응할 수 있도록인력의 정예화,무기의 과학화,국방체제의 정보화를 적극 구현해 나감으로써선진형 국방 태세를 구축할 예정이다. 최근 우리 군이 장병들에게 인터넷 교육을 시키고 교육개혁을 통해 미래 안보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 양성에 주력하면서,미래 지향적인 방위력 개선을 추진해나가는 것도 모두 선진 정보화된 군을 육성하려는 군사 혁신 노력의 하나인 것이다. 趙成台 국방장관.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