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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플러스] 미국인 총소득 2년째 감소

    미국인들의 총소득이 지난 2000년 이후 2년 연속 감소했다고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이 29일 미 국세청(IRS) 자료를 인용해 보도했다.미국인들의 총소득이 2년 연속 줄어든 것은 현대적 과세체제가 구축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국세청에 제출된 납세신고서를 기준으로 한 지난 2002년 미국인들의 총소득은 6조달러로 지난 2000년의 6조 3500억달러에 비해 5.1% 감소했다고 전했다.인구증가율을 감안할 경우 이 기간 평균 소득은 5.7% 떨어졌다.
  • [아테네 GO]화룡점정 ‘성화점화’

    아네테올림픽 성화는 26개국 33개 도시를 돈 뒤 지난 10일 성화운송 전용기인 ‘제우스’에 실려 그리스로 돌아왔다. 고대올림픽 시절에는 올리브관과 지팡이가 성화를 대신했다.개최도시의 올림픽 전령들은 당시 그리스 세력권이던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반도까지 달려 올림픽 시작을 알렸다.1896년 시작된 근대올림픽의 역사에서 성화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28년 암스테르담대회이지만 성화 봉송은 36년 베를린올림픽조직위원회가 그리스에서 점화해 베를린까지 운송할 것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봉송 프로젝트를 지시한 사람은 ‘나치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였다.평화를 상징하는 성화 봉송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2차례(40·44년)나 올림픽을 취소시킨 히틀러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올림픽의 아이러니다. 어쨌든 성화 점화는 올림픽 개막식의 ‘화룡점정’이다.76년 몬트리올 대회 때는 레이저 빔을 사용해 첨단 과학의 시대를 알렸다.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고 손기정옹과 임춘애에 의해 봉송된 성화를 섬마을 선생님 정선만씨와 마라톤선수 김원탁,소녀무용가 손미정이 승강기를 타고 세계수(世界樹)로 명명된 22m 위의 성화대까지 올라가 동시에 점화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던 왕년의 복싱스타 무하마드 알리가 떨리는 손으로 점화를 해 진한 감동을 안겨줬다. ‘환경 올림픽’이 주제였던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는 호주 원주민(애보리진)의 우상이었던 육상선수 캐시 프리먼이 발목까지 차오른 물 속으로 첨벙첨벙 걸어들어간 뒤 서서히 떠오르는 원형 성화대에 불을 붙이는 장면을 연출했다.지난 6월 성화 봉송을 위해 서울에 온 아테네올림픽조직위원회 대변인 앤드루 던스콤은 “세계를 깜짝 놀랄 쇼를 준비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아테네 화필기행] (7) 경희대 이종빈 교수와 ‘켄타우로스’

    [아테네 화필기행] (7) 경희대 이종빈 교수와 ‘켄타우로스’

    유럽 남동부 발칸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나라 그리스.유럽에 관광을 가면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먼저 보고 그리스를 마지막에 보라는 말이 있다.그것은 고대의 유적과 유물이 도처에 널려 있는 그리스를 먼저 보면 다른 여행지들이 시시하게 느껴진다는 의미일 게다. 아테네 화필기행을 떠난 지난 4월,우기를 지나 봄을 맞은 그리스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올리브나무와 쪽빛 바다로 이루어진 해안은 ‘축복받은 땅’ 바로 그것이었다. 폐허가 되어 버린 유적지에는 수천년을 이어내려온 신화가 서리서리 얽혀 있고,느린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서정과 여유가 넘쳤다. 이탈리아 유학시절,동쪽에서 배를 타고 아드리아해를 건너기만 하면 그리스 땅이었지만 그때는 왜 그리 여유가 없었던지….그리스 기행은 훗날로 미루지 않을 수 없었다.그런대로 테오도라키스의 음악과 파란투리,아그네스발차가 부르는 그리스 음악만이 외롭고 힘든 유학생활에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리스는 터키의 침공과 제2차세계대전 그리고 내전의 역사를 경험하며 오랜 기간 암흑과도 같은 혼란기를 보냈다.테오도라키스는 이러한 시련의 시기에 음악으로 그리스 국민들의 설움과 아픔을 달래준 위대한 음악가였다.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에는 그리스 민족 특유의 분위기가 서려 있다.가사는 알 수 없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 멜로디는 나의 마음에 절절하게 와 닿았다. 그리스 기행은 곧 그리스 신화기행이다.신화의 싹이 트고 가지가 뻗어나간 신들의 땅,신들의 놀이터를 확인하는 작업이다.어린 시절 삽화가 조잡하게 그려진 그리스 신화를 읽으며 정신의 키를 키웠던 나로서 이번 아테네 화필기행의 화두는 단연 ‘신화’였다. 신화 속에는 기상천외한 신들의 이야기가 있고,영웅들의 전설이 살아 숨쉰다.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슈퍼맨이 있고 해리포터가 있으며 매트릭스가 있는 셈이다.그 중에서도 유달리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반인반마(半人半馬)의 켄타우로스였다. 켄타우로스는 상체는 인간이고 하체는 말의 형태를 한 괴물이다.제우스가 여신 헤라의 모습으로 만든 구름과 테살리아의 왕인 익시온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혹은 그 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산에서 암말과 교접하여 낳았다고도 한다. 고대인들은 말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말과 인간의 결합을 그다지 천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따라서 켄타우로스는 고대의 상상속 괴물 중에서 가장 훌륭한 특성을 부여받은 ‘유일한’ 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에 등장하는 켄타우로스는 영웅 헤라클레스와도 수 차례에 걸쳐 싸운다.어릴 적 나는 종종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에 빠지곤 했다. 아테네 신화 화필기행은 나의 잠들어 있던 신화적 상상력에 다시 한번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굳이 어디랄 것도 없이 그리스는 온통 신들의 거처이자 상상력의 곳간이다.화필기행의 출발은 파르테논이었다.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프로필라이아(입구)를 통과하면 바로 앞에 도리아식 돌기둥으로 둘러싸인 파르테논 신전이 펼쳐진다.파르테논 신전은 원래 전체가 조각상과 부조로 꾸며진 거대한 예술작품이었다.그러나 아쉽게도 모조품이 아닌 진품은 지금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조각상과 부조의 일부가 박물관 등에 보존되어 있을 뿐. 나의 시선은 이내 파르테논 신전 밖을 장식하고 있는 말과 그리스 신들을 조각한 석상에 꽂혔다. 신화 속의 기괴한 동물과 인물을 형상화한 조각상들은 화필기행 내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체와 짐승이 결합된 그로테스크한 형태는 현대 조각에서도 더러 원용된다.상반신은 게이고 하반신은 인체인 조각도 있고,스테판 발켄홀이라는 독일 조각가처럼 나무로 소,말,곰 등의 짐승머리를 만들고 아래는 인간 형태로 표현한 경우도 있다.켄타우로스 이외에도 신화에는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괴물이 여럿 등장한다.그리스 신화는 이렇듯 문화 예술 전반에 다양한 모티프를 제공해왔고,앞으로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예술적 상상의 불씨가 될 것이다. 이번 아테네 화필기행은 비록 8일간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작가로서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였다.유적지 곳곳에 넘쳐나는 관광객들의 진지한 눈빛에서 나는 유럽사람들이 왜 그토록 그리스를 아끼고 사랑하는가를 알 수 있었다.영국 시인 셸리는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라고 읊었다.그리스 문화 혹은 신화는 그만큼 서구인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이방(異邦)의 나그네인 필자로서도 그리스 신화는 그리 낯설지 않으니 그들은 오죽할까.아테네 화필기행은 조각가인 나에게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그 중에서도 신화적 상상력’임을 일깨워 줬다.
  • [아테네 화필기행] (7) 경희대 이종빈 교수와 ‘켄타우로스’

    유럽 남동부 발칸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나라 그리스.유럽에 관광을 가면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먼저 보고 그리스를 마지막에 보라는 말이 있다.그것은 고대의 유적과 유물이 도처에 널려 있는 그리스를 먼저 보면 다른 여행지들이 시시하게 느껴진다는 의미일 게다. 아테네 화필기행을 떠난 지난 4월,우기를 지나 봄을 맞은 그리스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올리브나무와 쪽빛 바다로 이루어진 해안은 ‘축복받은 땅’ 바로 그것이었다. 폐허가 되어 버린 유적지에는 수천년을 이어내려온 신화가 서리서리 얽혀 있고,느린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서정과 여유가 넘쳤다. 이탈리아 유학시절,동쪽에서 배를 타고 아드리아해를 건너기만 하면 그리스 땅이었지만 그때는 왜 그리 여유가 없었던지….그리스 기행은 훗날로 미루지 않을 수 없었다.그런대로 테오도라키스의 음악과 파란투리,아그네스발차가 부르는 그리스 음악만이 외롭고 힘든 유학생활에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리스는 터키의 침공과 제2차세계대전 그리고 내전의 역사를 경험하며 오랜 기간 암흑과도 같은 혼란기를 보냈다.테오도라키스는 이러한 시련의 시기에 음악으로 그리스 국민들의 설움과 아픔을 달래준 위대한 음악가였다.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에는 그리스 민족 특유의 분위기가 서려 있다.가사는 알 수 없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 멜로디는 나의 마음에 절절하게 와 닿았다. 그리스 기행은 곧 그리스 신화기행이다.신화의 싹이 트고 가지가 뻗어나간 신들의 땅,신들의 놀이터를 확인하는 작업이다.어린 시절 삽화가 조잡하게 그려진 그리스 신화를 읽으며 정신의 키를 키웠던 나로서 이번 아테네 화필기행의 화두는 단연 ‘신화’였다. 신화 속에는 기상천외한 신들의 이야기가 있고,영웅들의 전설이 살아 숨쉰다.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슈퍼맨이 있고 해리포터가 있으며 매트릭스가 있는 셈이다.그 중에서도 유달리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반인반마(半人半馬)의 켄타우로스였다. 켄타우로스는 상체는 인간이고 하체는 말의 형태를 한 괴물이다.제우스가 여신 헤라의 모습으로 만든 구름과 테살리아의 왕인 익시온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혹은 그 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산에서 암말과 교접하여 낳았다고도 한다. 고대인들은 말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말과 인간의 결합을 그다지 천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따라서 켄타우로스는 고대의 상상속 괴물 중에서 가장 훌륭한 특성을 부여받은 ‘유일한’ 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에 등장하는 켄타우로스는 영웅 헤라클레스와도 수 차례에 걸쳐 싸운다.어릴 적 나는 종종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에 빠지곤 했다. 아테네 신화 화필기행은 나의 잠들어 있던 신화적 상상력에 다시 한번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굳이 어디랄 것도 없이 그리스는 온통 신들의 거처이자 상상력의 곳간이다.화필기행의 출발은 파르테논이었다.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프로필라이아(입구)를 통과하면 바로 앞에 도리아식 돌기둥으로 둘러싸인 파르테논 신전이 펼쳐진다.파르테논 신전은 원래 전체가 조각상과 부조로 꾸며진 거대한 예술작품이었다.그러나 아쉽게도 모조품이 아닌 진품은 지금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조각상과 부조의 일부가 박물관 등에 보존되어 있을 뿐. 나의 시선은 이내 파르테논 신전 밖을 장식하고 있는 말과 그리스 신들을 조각한 석상에 꽂혔다. 신화 속의 기괴한 동물과 인물을 형상화한 조각상들은 화필기행 내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체와 짐승이 결합된 그로테스크한 형태는 현대 조각에서도 더러 원용된다.상반신은 게이고 하반신은 인체인 조각도 있고,스테판 발켄홀이라는 독일 조각가처럼 나무로 소,말,곰 등의 짐승머리를 만들고 아래는 인간 형태로 표현한 경우도 있다.켄타우로스 이외에도 신화에는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괴물이 여럿 등장한다.그리스 신화는 이렇듯 문화 예술 전반에 다양한 모티프를 제공해왔고,앞으로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예술적 상상의 불씨가 될 것이다. 이번 아테네 화필기행은 비록 8일간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작가로서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였다.유적지 곳곳에 넘쳐나는 관광객들의 진지한 눈빛에서 나는 유럽사람들이 왜 그토록 그리스를 아끼고 사랑하는가를 알 수 있었다.영국 시인 셸리는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라고 읊었다.그리스 문화 혹은 신화는 그만큼 서구인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이방(異邦)의 나그네인 필자로서도 그리스 신화는 그리 낯설지 않으니 그들은 오죽할까.아테네 화필기행은 조각가인 나에게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그 중에서도 신화적 상상력’임을 일깨워 줬다.
  • [100년기업 100년상품] 해외선 어떤가

    미국의 포천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중 3분의1은 13년이 채 지나기 전에 흡수합병 되거나 사라진다고 한다.이 상황 속에서도 100년 이상 장수하는 외국의 대표적인 기업들은 코카콜라,아멕스,도요타,피아트,듀폰,존슨&존슨,홍콩상하이은행(HBSC),파리국립은행,지멘스,바이엘,포드,GM,P&G 등이다. 코카콜라는 1886년 미국 애틀랜타의 약사 존 펨버턴에 의해 탄생됐다.펨버턴은 두통제를 만들다가 캐러멜 색의 향기로운 혼합액을 섞어내고 탄산수를 더했는데 약국에 온 손님들은 “그 맛이 특별하다.”고 좋게 평가했다. 1916년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현재의 코카콜라 병 모양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조그만 약국의 단골들에게 짜릿한 청량감을 선사하던 코카콜라는 2차대전에는 유럽으로,1978년에는 중국으로 진출했다. 오늘날 전 세계 약 200여 개국에서 소비되고 있다.10초마다 전 세계의 12만 6000명이 이 음료를 마시고 있다.그동안 스프라이트,프레스카,다이어트 코크 등 다양한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바이엘은 건강관리,농화학,폴리머,특수화학제품을 핵심사업으로 하는 다국적 기업이다. 1863년 프리드리히 바이어와 베스코트가 설립한 염료회사였으나 의약품사업에도 진출해 1899년에는 아스피린·페나세틴 등을 개발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50년 연합군의 점령정책에 의해 12개사로 분할,해체됐다.1952년 계승회사로서 파르벤 파브리켄 바이엘로 재발족하고 1972년 현재의 이름으로 사명을 바꿨다.2000년 전후에는 구조조정을 통해 핵심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19세기 말 영국 외과의사 조세프 리스터는 공기를 통해 감염되는 세균의 정체를 알아내고 이를 퇴치하려는 의지를 밝혔다.그의 주장을 지지하던 미국의 로버트 우드존슨은 1886년 형제들과 함께 미국 뉴저지주 뉴브런즈윅에서 존슨&존슨사를 설립,외과용 방부드레싱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894년 ‘심프슨 산모용품 세트’라는 세계 최초의 유아용 파우더를 개발했고, 1920∼30년대에 영국, 캐나다, 호주, 멕시코 등으로 진출했다.1960년대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확장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삶과 경영 이야기] (18)신동렬 성문전자 회장

    성문전자 신동렬(63) 회장은 일생의 절반은 야구를 하고 나머지 절반은 건실한 중소기업을 운영하면서 보냈다. 그는 최근 중소기업의 경영난을 만루 위기에 처한 투수에 비유하면서 “내·외야수들이 마운드에 선 투수의 어깨를 두드려 주듯이 임직원이 어려운 경영 상황을 함께 거든다면 불황은 극복된다.”고 강조했다. 최고경영자(CEO)의 자질에 대해서도 까다로운 주문을 빼놓지 않았다. ●시련과 좌절이 패기를 키운다 1965년 성균관대 졸업과 함께 실업 명문팀인 대한통운 야구부에 투수로 입단했다.당시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구호가 온 나라에 퍼질 때다.대한통운은 국영기업이라 야구 선수들도 요즘으로 말하면 구조조정을 겪게 됐다.나는 초년 선수라 야구를 계속할 수 있었지만 일부 선배들은 졸지에 직장을 떠나야만 했다.첫 직장에서 비애감을 느꼈다.어릴 적에는 김응룡(당시 한일은행 선수감독·현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스 감독)씨처럼 야구감독이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선배들의 처지를 보면서 야구가 싫어졌다. 형과 남동생 등 세 형제가 사업을 시작했다.그때는 건설 현장이 많아 유리 수요가 많았다.소자본으로 노동력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유리 공장을 차렸다.그러다 72년 대홍수로 한강물이 범람하면서 서울 영등포구 신도림동에 있던 유리 공장이 침수됐다.혹독한 첫 시련이었다. 그때 전자산업이 유망하다는 소리를 들었다.벤처산업이었던 셈이다.미국과 일본의 전자부품업체에 편지를 보냈다.‘나는 공장을 갖고 있는데 자본과 기술을 대주면 훌륭한 합작 회사가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수없이 편지를 보냈더니 그중에 한 일본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74년 일본의 한 전자부품업체와 합작을 했다. 태동기인 국내 전자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면서 그런대로 사업이 잘 됐는데,79년 터진 2차 석유파동으로 두 번째 시련기를 맞았다.한번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곧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공장 규모나 기계 등 줄일 수 있는 것은 다 줄였다.가슴 아프게 일부 직원들도 내보냈다. 80년 석유파동의 여파를 견디지 못해 쓰러진 중소기업을 인수했다.이 때부터 콘덴서에 손을 댔다.콘덴서는 지금도 모든 전자제품에 없어선 안 되는 주요한 부품이다.기능은 전혀 다르지만 지금으로 치면 반도체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그 콘덴서에 들어가는 필름을 만들었다.핵심 공정은 기술이 모자라 일본에서 처리한 뒤 필름을 다시 들여와 국내 전자업체에 납품했다.그 때는 삼성·LG·대한전선 등 국내 대기업도 정신없이 전자제품을 생산할 시기였다.일본에서 중요한 기술은 가르쳐 주지 않아 일본에 건너가 기술을 훔치다시피 몰래 배웠다.3년 만에 국내에서도 100%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자신감이 생겼다.콘덴서에 목숨을 걸자고 다짐하고 한 대에 20억∼30억원이나 하는 콘덴서용 금속필름 증착기를 들여왔다.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공동으로 금속증착 필름의 독창적인 국산화에 성공했다.로열티를 물지 않아도 됐다.일본 회사로부터 독립도 했다.투자자를 찾아 헤매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의 투자조합으로부터 지원금을 얻었다.5년 만에 회사를 주식 시장에 상장해 자산의 30%를 조합에 주는 조건이었는데,약속대로 5년이 되기 전인 90년에 주식을 상장했다. 그 시기엔 정말 기업할 맛이 났다.우리가 신뢰를 저버린 회사를 먼저 찾아가 신제품의 우수성을 설명했다.그들이 납득할 때까지 매달렸다.힘들 때마다 투수 시절에 위기에 몰린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를 떠올리면서 버텼다. 해외의 유명 전자업체들이 우리 제품을 인정하자 그 다음은 순풍에 돛 단 듯 일이 잘 풀렸다.지금은 금속증착 라인이 15개로 늘었고,머리카락의 1000분의1에 불과한 얇은 필름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생산하고 있다.정부로부터 동탑산업훈장,우수중소기업대상,과학기술훈장 등을 연이어 받았다. ●원칙과 명예를 존중하는 스포츠 부산에서 태어난 나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때 해운대에 살면서 야구를 배웠다.초등학교 주변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주말이면 야구 배트과 글러브를 피란민 청년들에게 나눠주고 함께 야구 시합을 했다.중학교에 입학해서도 취미는 야구뿐이었다.동래고등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큰 키(180㎝)에서 내리꽂는 공을 타자들이 잘 맞히지 못해서 그런지 투수를 맡았다.당시 부산의 야구 명문은 경남고교인데,이 학교를 콜드게임으로 이긴 적도 있다.전국 대회에서 5일 동안 9회까지 완투를 하는 바람에 손가락에 물집도 났다.하지만 나는 원칙과 명예심을 존중하는 스포츠 정신이 좋았다.이는 선수단의 집단 생활에서 익혀진다.성대에 야구 장학생으로 입학했다.당시 성대는 전국 우승을 넘보는 명문 팀이었다. 일본인들은 태평양전쟁 패망후 미 점령군에게서 본격적으로 야구를 배웠다.미군은 패전국 일본의 사회 치안이 불안정하고 거리에 실업자가 넘쳐나자 정책적으로 야구를 보급했다.특히 게임의 룰을 중시하도록 가르쳤다고 한다.지금은 일본에 5000여개의 야구팀이 있지만 유소년 팀에선 경기방법보다 먼저 야구인의 자존심과 매너를 가르친다.야구 선수는 더운 여름에도 긴 소매 옷과 바지를 입는다.타석엔 혼자 서지만 수비석에는 9명이 정교하게 호흡을 맞춰야 멋진 플레이가 나온다. 80년대쯤 평소 존경하던 성대 총장이 만나자고 해서 모교를 찾았다.사무실 비품 등이 함부로 내팽개쳐진 채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있었다.총장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총장은 학생들을 탓하기보다 “가라앉은 학교 분위기를 살리고,학생들에게 단합된 애교심을 심어주고 싶으니 야구인 동문회를 활성화시켜 달라.”고 부탁했다.그 뜻을 받아들이고 다시 총장실로 가서 후배 학생들을 호통쳤다.“총장은 너희들 뜻을 받아들일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데,이게 무슨 행패냐.지킬 것은 지키면서 주장하라.”고 다그쳤다.나중에 총장실 점거를 곧 풀었다는 소식을 듣고 흐뭇했다. ●투수와 CEO 우리는 스포츠를 통해 희생 정신과 융화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다.나를 낮추고 동료들과 함께 하려는 정신을 바탕으로 남과 공정한 원칙속에서 경쟁하는 법을 배운다.기업에도 룰이 있다.정확한 물건을 만들어 바르게 팔 때 소비자들이 나를 인정한다.또 동료 기업인들의 본보기가 되면 그들과 언제 어떤 자리에서 만나게 될지 모르는 거래 관계에서 그 이익이 내게 돌아온다.기업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 우리 주변의 극단적인 노사관계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도저히 한 배를 탄,한 운명의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내가 아는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직원들을 자기 식구처럼 여기고 있다.제 직원에게 월급을 제대로 못 주는 것처럼 가슴 아픈 일은 없다.노조도 이같은 경영인들의 심경을 조금은 헤아려 주어야 한다. CEO는 끊임없이 앞길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된다.이제는 정보와 기술이 바로 돈이다.내가 갖고 있는 정보와 기술은 곧 다른 이들의 표적이 된다.그래서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CEO는 직원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모 대기업 회장은 첨단기술을 개발한 연구진에게 약속했던 대가의 몇 배를 주고 아낌없이 격려했다.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은 미사일을 개발하는 국방기술 연구진을 밤에 홀연히 찾아가 만두를 함께 나눠 먹으며 그들을 감동시켰다.CEO는 마운드의 투수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다방면에서 능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은 기업을 하는 환경이 매우 나쁘다.30년 이상 지속된 중소기업의 생산 환경이 중대한 변화기를 맞았다.대기업에 의존하는 하청관계를 벗어나야만 할 때가 됐다.중국은 방문할 때마다 우리를 놀라게 만드는 나라다.우리는 절대 중국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우리의 권위적인 행정 규제는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하다.미국 투자가들은 한국의 노사관계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비관적이고,배타적으로 보고 있다.한국 사람들이 다른 민족보다 정(情)과 열(熱)이 많아서 그런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이제는 정확히 해야만 살 수 있다.모 국회의원이 내게 보낸 글을 인용한다.아르헨티나는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선 세계 5대 경제부국이었다.볼펜과 버스,헬리콥터를 세계 최초로 발명한 나라다.그러나 페론 정부의 인기주의 정책과 계층간 갈등 때문에 지금은 세계 5대 채무국으로 전락했다. 한국을 잘 아는 한 일본인이 한국과 일본의 다른 점을 열거한 글이 생각난다.그 일본인은 ‘막히는 고속도로에는 어김없이 나타나 물건을 파는 한국인’에 대해선 호감을 표시한 반면 ‘한국의 버스 정류장에는 반드시 버스가 서지 않는다.’라면서 일본인 방문객들의 주의를 당부했다.또 ‘자동차 접촉사고가 나면 목소리 큰 사람이 종종 이긴다.’고 꼬집었다. 한국인이 룰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게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돼선 안 된다.이제 모두 제자리에서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한 때다. ■ 신동렬 회장은 성문전자의 신동렬(辛東烈·63) 회장은 고교·대학 시절 정식 야구선수 출신이면서도 보기 드물게 전자부품 업계에 뛰어들어 회사를 작지만 강한 전문 기업으로 키운 최고경영자(CEO)다.그는 실업야구 초년 시절에 야구를 그만두고 우여곡절 끝에 전기·전자 부품인 콘덴서의 핵심 소재인 금속증착필름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성문전자를 창업했다.경기도 성남과 평택 등 공장 3곳의 연매출액은 500억원.이 분야 국내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제품의 65%가 세계 20여개국에 수출된다. 신 회장은 파푸아뉴기니 명예총영사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감사도 맡고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 海士 요트원정대 현해탄 횡단

    “넓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바다이기에 항해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기대가 앞섭니다.”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요트에 몸을 싣고 대한해협 횡단에 나선다. 이들은 해사 교내 요트 동아리 3,4학년 생도 25명과 인솔 장교 등 총 32명.특히 5명은 여생도이다. 이들은 크루저 탐험대를 구성해 오는 12∼14일까지 부산∼일본 대마도∼진해를 잇는 총연장 146마일(253㎞)의 해역에서 요트를 타고 거친 파도를 가르며 항해할 계획이다. 3척의 대형 요트(크루저)에 나눠 타고 12일 오전 1시 부산 수영만을 출발할 이들은 체력과 담력을 키우기 위해 부산∼진해를 오가는 혹독한 요트 항해훈련을 해왔다.‘훈련에는 남녀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방침에 따라 여 생도들 역시 남 생도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3개월간의 거친 훈련을 꼬박 받았다. 이들은 항해 시작 후 9시간 만인 12일 오전 10시 대마도 히타카쓰항에 도착,조선사절단 숙소와 2차 세계대전 유적지 등을 답사하게 된다.이어 13일 오후 8시 대마도를 출발,다음날 오전 11시쯤 진해 해군사관학교 부두로 돌아올 예정이다. 항해하는 동안 한국 영해와 공해상에서는 해군 3함대 구조함이,일본 영해에서는 대마도 해상청 경비함이 각각 초계활동을 펼치게 된다. 항해에 참가하는 최은영(22·3학년) 생도는 “바다를 직접 체험하는 게 매력적이어서 도전하게 됐다.”고 참가 배경을 밝힌 뒤 “어떤 험난한 파도라도 헤쳐나갈 자신이 있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15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서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

    러시아 태생의 유대인 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은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화가 중 한 명이다.하지만 꿈과 환상의 세계를 다룬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하늘을 나는 소라든가 공중에 떠다니는 연인들의 모습은 천진난만해 보이지만 만만치 않은 의미를 지닌다.샤갈 자신 또한 그 점을 인정했다.“나는 나의 그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그것은 문학이 아니다.나를 사로잡은 이미지를 회화적으로 배열한 것일 뿐이다.” 15일부터 10월1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은 ‘꿈꾸는 작가’ 샤갈의 세계에 한 걸음 다가서게 한다. 샤갈은 러시아에서 보낸 어린 시절,제1차세계대전 이전 파리 아방가르드와의 접촉,혁명기 러시아에서의 활동,미국과 남프랑스에서 보낸 만년 등 98세의 오랜 인생여정을 통해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샤갈의 환상적인 그림들은 그를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로 여기게 했지만 그는 동시대의 어떤 미술사조에도 몸담지 않았다.그만큼 미술사적으로 독특한 위치를 지닌다.이번 전시는 샤갈의 전 생애에 걸친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보여주는,단일작가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다. 전시에는 ‘도시 위에서’‘꿈’‘푸른 풍경속의 부부’ 등 샤갈의 대표적인 유화 작품을 비롯해 드로잉·판화 등 모두 120여점이 소개된다.전시작품은 모스크바 트레티아코프 국립미술관,파리 퐁피두 센터,스위스 샤갈재단 등에서 대여한 것들과 개인 소장품으로 이뤄졌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돋보이는 작품은 트레티아코프 미술관 소장품으로 국내 처음 공개되는 ‘유대인 극장’ 연작이다.‘무용’‘음악’‘연극’‘문학’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920년 모스크바에 있는 한 유대인 극장의 패널화로 제작된 것으로 스탈린 시절 철거된 뒤 50여년 동안 창고에 묻혀있었다.1970년대 말 세상에 다시 나와 복원작업을 거친 이 그림은 1985년 파리 시립미술관의 ‘샤갈의 러시아 시기’전에서 서방에 첫 선을 보였다.이밖에 히틀러의 유대인 탄압 소식을 접하고 우울한 시대상을 그린 ‘비테프스크 위의 누드’,샤갈의 작품으론 드물게 눈내리는 풍경을 묘사한 ‘땅거미 질 무렵’ 등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서울전이 끝난 뒤에는 부산시립미술관으로 옮겨 11월13일부터 내년 1월 16일까지 전시된다.관람료는 어른 1만원,청소년 8000원.어린이 6000원.(02)724-2904.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공연 리뷰] ‘카바레’

    공연은 끝났지만 환호는 없었다.극이 끝났음을 미처 알지 못했던 관객들은 배우의 인사를 받고서야 박수를 보냈다.브로드웨이에서 직수입했다는 ‘카바레’(16일까지,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극장 풍경이다. 왜일까.뮤지컬의 소재인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유행했던 그 카바레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과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원래 카바레는 연주자와 청중이 얼굴을 맞대고 노래했던 일종의 라이브 공연장으로 주로 정치 풍자와 섹스에 대한 내용이 담긴 무대였다.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독일 배경 영화들에서 묘사됐던 음침한 카바레들은 바로 당시 암울했던 시대 정신의 반영이기도 하다.그래서 같은 제작자의 뮤지컬 ‘시카고’만을 연상하고 찾은 관객은 낭패를 보기 쉽다. 작사,작곡자인 프레드 엡과 존 칸더는 브로드웨이에서는 흔치 않은 ‘진지한’ 뮤지컬을 추구하는 별난 예술가들이다.이들은 뮤지컬에는 단지 웃고 즐기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담겨야 한다고 믿었다.바로 ‘서푼짜리 오페라’의 작곡자 쿠르트 바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탓이다.바일은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계 지식인이었다. 격변기 나치 독일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담긴 ‘카바레’는 이런 배경에서 잉태됐다.1966년 처음 무대에 바일의 미망인이었던 로테 레냐가 직접 프롤라인 슈나이더 역으로 등장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릴라를 여자친구라 소개하며 춤추던 MC가 관객들에게 “자세히 보면 유대인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내뱉는 충격적인 대사나 유대계를 의미하는 별 모양이 그려진 죄수복을 입고 가스실로 향하는 마지막 장면 등은 그래서 강한 뒷맛을 남긴다.뮤지컬중에는 보면 볼수록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있다.풍자와 은유가 많을수록 더 그렇다.‘카바레’가 대표적 사례다.극장을 찾는 횟수가 더해질 때마다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실험성과 창의력은 감탄을 자아낸다.숨겨진 그림 조각을 찾아내는 희열을 맛볼 수 있다. 공연은 수준급이었지만 왜 꼭 영어 무대였어야만 했느냐는 의문은 남는다.짧은 공연기간으로 여러번 무대를 접하기도 힘든데다 혹여 익숙하지 않은 ‘파격’에 놀라 실망할지 모를 우리 관객들을 생각하면 다소 아쉽다. 같은 기획사에 의해 이미 우리말 공연이 올려졌던 터라 더 그렇다.기왕이면 좀더 ‘씹어 소화시킨’ 우리말 버전이었다면 어땠을까.좋은 무대를 만나고도 아쉬움이 남는 것을 보면 정말 우리 공연 산업이 많이 성장하고 있긴 하나 보다. 원종원(뮤지컬 비평가·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 테러배후 알카에다, 그들은 누구?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이나 서유럽보다 테러를 당할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해왔다.하지만 김선일씨 피살 사건을 겪으면서,이제 테러는 더이상 ‘남의 집 불구경’이 아니라 ‘발 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이에 EBS는 30일 다큐멘터리 ‘테러,안전지대는 없다-알카에다 그들은 누구인가’(오후 8시50분)를 통해 각종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어 온 알카에다 조직을 파헤치고,테러 위협을 경고한다. 전쟁이 끝난 지 1년도 훨씬 넘은 현 시점까지도 이라크는 전면적인 내전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이라크 저항세력과 알카에다는 자살폭탄테러,과도정부 요인 암살,송유관 파괴에 이어 민간인 납치·참수까지 자행하고 있다.이들이 미국과 그 우방국에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미국의 동맹국들은 테러 비상체제에 들어간 상태다. 무장세력들의 테러는 최근 아시아 각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추세.최근 알카에다 간부인 리오넬 듀몬이 독일에서 체포됐을 때 독일 경찰은 그가 일본에 체류했다는 사실을 밝혀내 일본을 경악시켰다.한국도 더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예정대로 추가파병이 이뤄질 경우 한국은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하는 국가가 되기 때문이다. 방송은 알카에다의 국제 활동망과 유럽,미국,아시아에서의 개별 세포조직의 테러 준비활동을 추적한 BBC의 최신 다큐멘터리 ‘알 카에다:3차 세계대전’에서 한국과 연관이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사례를 소개한다.아울러 외교안보연구원 김성한 교수,FBI 대테러국장 팻 다무로 등 테러문제 및 아랍지역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의 상황을 진단한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씨줄날줄] 참전용사/손성진 논설위원

    고지로 돌진하다 총탄에 맞고 쓰러지는 국군 용사.혹한 속에 부상당한 전우를 업고 걸어서 후퇴하는 병사.6·25 기록 필름에서 본 장면이다.6·25가 난 지도 어언 54년.점점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다.꽃다운 스무살에 참전한 용사들.벌써 고희를 넘긴 노병이 됐다. 참전 용사들은 우리의 아버지요,할아버지들이다.조국을 지켜낸 그들은 산업의 역군으로 나라를 살리는 데 다시 온몸을 던졌다.그런데도 노년이 행복하지는 않다.생존한 6·25 참전용사는 47만여명.13만 7899명은 전장에서 산화했고 살아남은 사람도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생존 용사들중에는 생활고로 만년을 힘들게 보내는 용사들도 많다.그들을 위해 국가가 보훈정책을 편 것은 종전 40년이 지나서다.지난 1993년에야 참전군인지원법이 제정됐다.그것도 처음에는 병원진료비 감면 정도였다.그뒤에 경북 영천과 전북 임실에 참전용사들을 위해 국립묘지를 조성했고 경기도 이천에도 묘역을 만들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장례보조비로 15만원을 주고 월 6만원의 참전수당도 지급하고 있다.그러나 이미 많은 참전용사들이 유명을 달리한 뒤다. 우방을 위해 머나먼 타국에서 젊음을 희생한 미군은 3만 6940명,유엔군은 3730명에 이른다.부산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는 11개국 2293명의 이방인 참전용사들이 잠들어 있다.에티오피아에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모여사는 코리안 빌리지가 있다.이들은 한국전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공산정권의 핍박을 받아 궁핍한 삶을 살고 있다.외국의 참전용사들은 아직도 한국을 잊지 못하고 있다.이들을 위해 국가가 초청행사를 갖는 등 조그만 성의라도 보인 것은 겨우 수년전이다. 참전용사 지원은 아직 미흡하다.지하철 무료 탑승 등 실생활에서의 혜택은 없다.미국에는 1차 세계대전부터 이라크전쟁까지 참전한 470여만명의 베테랑이 생존해 있다.이들을 위해 미국 정부는 장례비,묘비,의료보험 혜택과 병원왕래 교통비를 준다.취업 우대,대부 지원 등의 혜택도 있고 연금은 전액 국가가 부담한다.캐나다에서는 베테랑을 위해 토지도 분양해 준다고 한다. 참전용사들은 말한다.조국을 위해 이 한 목숨 바쳤노라고.그들이 후세들에게 바라는 것은 물질적 혜택보다 고귀한 희생을 기억해주는 것이다.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박기철의 플레이볼] 야구와 전쟁 사이

    지난 6일 외신의 관심은 온통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으로 쏠렸다.2차세계대전의 분수령이 됐고,사상 최대의 작전으로 남아 있는 노르망디 상륙 60주년 기념일이었기 때문이다.당시 독일은 예비 전력인 기갑사단을 제대로 써먹지 못한 것이 패인으로 지적됐다.이 작전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전략가들이 활약한 마지막 무대이기도 하다.21세기의 컴퓨터게임 같은 전쟁은 스키피오나 한니발 등 고대의 명장들은 물론이고 아이젠하워,롬멜,구데리안 등 20세기의 전략가들이 등장할 자리를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대 야구에서는 전략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초기 야구에서는 선발 투수가 대부분 경기를 끝까지 책임졌고,타자들도 부상을 당하기 전에는 자리를 지켰다.한 팀의 선수도 많지 않았고,잘 하는 선수들로만 9명을 선발로 골라내는 정도나 감독이 머리를 써야할 분야였다. 현대의 야구에서는 감독이 머리를 써야할 곳이 너무나 많다.한 경기 안에서는 희생번트를 해야 할지,강공으로 나가야 하는지 미시적인 작전을 결정해야 한다.한 시즌을 놓고는 투수의 선발 로테이션과 야수들의 체력 안배를 걱정해야 한다.예전 전쟁의 무대를 주름잡던 명장들이 야구 감독을 맡는다면 어떤 곳에 전략의 초점을 맞출까? 아마 예비 전력의 확보에 힘을 기울일 것이다.명장들이 활약한 전쟁의 진행 과정을 살펴보면 모두가 예비 전력을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위치에 투입해 승기를 잡았다.어떤 전쟁이든 처음의 예측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수비진에 예상치 못한 구멍이 뚫릴 수도 있고 적의 실수로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이런 순간에 사용하기 위해 명장들은 자기의 핵심 부대를 전략 예비로 활용했다.절대로 전력이 약한 부대를 예비로 삼지 않았다. 야구 경기는 기회를 한번도 잡지 못하고 완패하거나 위기를 한번도 겪지 않고 완승할 수도 있다.그러나 이런 경기는 많지 않다.여러 차례의 실점 위기와 득점 기회가 반복된다.득점 기회를 살려줄 대타,실점 위기를 막아줄 구원투수가 그래서 중요하다.그리고 어떤 감독이건 이런 사실은 다 알고 있다. 문제는 팀의 전력이 워낙 약해 선발 라인업도 짜기 힘들어 도저히 예비 전력을 갖출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있다.명장이 명장이란 찬사를 받는 것은 이런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우세한 전력을 갖고 이기는 것은 평범한 장군도 할 수 있다. 고대의 명장이라면 팀이 약할수록 구원투수와 대타 요원의 확보에 신경을 썼을 것이다.한니발이라면 1,2번 선발투수라도 희생해서 구원투수로 돌렸을 것이다.스키피오라면 상위타순의 타자라도 빼서 대타로 확보해 두었을 것이다.그들은 주전 선수가 부상당할 때나 쓰려고 예비 전력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포츠투아이’상무이사 tycobb@sports2i.com˝
  • [유로 2004]오렌지가 獨 기꺾었다

    설전으로 시작된 ‘유럽판 한·일전’이 무승부로 판가름났다. 만약 경기가 0-1로 끝났다면 네덜란드의 골잡이 루드 반 니스텔루이(28)는 머쓱했을 것이다.그는 경기에 앞서 “독일을 이긴다는 것은 축구 자체는 물론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네덜란드 침공을 상기시키며 필승을 다짐했다. 이에 대해 독일의 수문장 올리버 칸(35)은 “이번 경기는 정치가 아니라 오직 스포츠여야 한다.”며 과거는 잊고 축구에 집중하라고 응수했다.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는 16일 새벽 포르투갈 포르투 드라가웅 스타디움에서 열린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04) D조 1차전에서 ‘전차군단’ 독일의 토르스텐 프링스(28)에게 먼저 한 골을 내줬으나,후반 막판 반 니스텔루이의 그림 같은 발리슛으로 1-1을 만들어 한숨을 돌렸다. 독일을 만나면 오렌지색은 더욱 붉게 타올랐다.동·서독 시절을 포함,이전 경기까지 게르만족과 모두 44차례(16승13무15패) 겨뤘다.서독에는 8승5무2패로 절대 열세를 보였지만 90년 통독 이후 3승1무1패로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이날 ‘클래식 더비’에 걸맞은 내용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전반 30분,주장 필립 코쿠(34)가 왼쪽 진영으로 치고 올라온 독일 필리프 람(21)의 다리를 걷어찼고,프리킥 키커로 나선 프링스가 오른발로 휘어찼다.공은 전차군단 공격수의 머리에 맞지 않았지만,오히려 오른쪽 골 포스트를 맞고 그대로 들어갔다. 후반 투입된 노장 마크 오베르마스(31)가 왼쪽 측면을 뚫으면서 네덜란드에 기회가 왔다.후반 36분 안디 반 데 메이데(25)가 어렵사리 올린 크로스를 반 니스텔루이가 상대 수비수를 등진 채 가위차기 발리슛을 작렬,관중석을 가득 메운 오렌지 물결을 출렁거리게 했다.90분 동안 단 한번 찾아온 기회를 골로 연결,킬러의 진면목을 보여준 셈. 28년 만에 정상복귀를 노리는 체코는 라트비아가 일으킨 돌풍의 희생양이 될 뻔하다가 후반에 터진 연속골로 2-1로 역전승,죽음의 D조에서 가장 먼저 승점 3을 챙겼다.체코는 우승후보다운 면모를 과시하지 못하고 전반 인저리 타임,라트비아의 마리 베르파코프스키스(25)에게 한방을 얻어맞았다.후반 중반까지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한 체코는 28분,40분에 밀란 바로스(23)와 마렉 하인츠(27)가 각각 라트비아의 골망을 갈라 경기를 마무리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역사학 지원 ‘두계학술재단’ 설립 이태녕 서울대 교수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실용학문이 득세하면서 인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들 한다.자연과학자들은 자연과학자들대로 똑같은 이유을 들며 심각한 위기론을 펼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시대를 이끌어간 대표적인 자연과학자로,자신의 분야에서 쌓은 연구 업적을 바탕삼아 인문학 발전에 기여하는 노(老)학자의 존재는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문화재 보존과학의 선구자는 화학과 교수 이태녕 서울대 화학교육과 명예교수가 주인공이다.‘한국 보존과학계의 태두’로 일컬어지는 그는 자신의 분야에서 뚜렷이 한 획을 그은 대학자이다.하지만 이 박사의 인생을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그의 아버지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이 박사의 부친은 역사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두계(斗溪) 이병도(李丙燾·1896∼1989) 선생이다.얼마전 타계한 이기백 한림대 석좌교수의 스승으로 일제시대 인문학 분야의 대표적 학술단체인 ‘진단학회’ 창설을 주도하는 등 1980년대 초까지 실증사학계를 주도한 역사학자였다. “처음에는 역사를 전공할 생각이었어요.그런데 아버지가 ‘우리나라가 필요한 인재는 자연과학도’라면서 크게 반대했습니다..” 두계 선생의 셋째 아들로 어려서부터 잔병치레가 많았다는 이 박사는 결국 “내가 약을 개발해서 고통스러운 질병을 물리쳐야겠다.”는 생각에서 화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평생을 화학자로 살아온 이 박사지만 부친의 전공인 ‘역사’와 그리 멀지 않은 삶을 이어왔다.그는 한국땅에 보존과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처음 들여온 인물이다.보존과학이란 과학분야에서 쌓아놓은 연구 성과를 문화재 등의 보존에 활용하는 학문이다. 공군장교로 6·25전쟁에 참전한 뒤 국방부에 들어가 국방과학연구소(현 ADD)에서 연구실장까지 지낸 그는 5·16 이후 연구소가 해체되자 서울대 화학교육과로 자리를 옮겼다.보존과학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것도 이 즈음이다. ●팔만대장경·석굴암 보존 진두지휘 석굴암 보존을 위해 유네스코에서 전문가를 초빙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그는 공주 송산리 6호분의 보존과학적 특성을 밝혀낸 자신의 경험을 설명해줬다.이 일을 계기로 미국에 건너가 일년동안 보존과학을 다시 연구한 그는 이후 해인사 8만대장경과 석굴암 보존 작업 등을 진두지휘했다.이 분야의 체계적 발전을 위해 보존과학회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정년퇴직을 한해 앞둔 1989년 부친이 타계하자 이 박사는 새로운 할 일을 발견하게 된다. “아버님께서 남기신 장서만 1만여권이 넘습니다.그런 자료들이 제대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했지요.” 그는 이 해 여름부터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부친의 고택에서 하루 10시간씩 먼지가 켜켜이 쌓인 고서들과 씨름하고 있다.1000여종의 한문 고서적과 5000여권의 양장본 서적 등 1만 5000여권을 일일이 뒤져가며 책의 종류와 내용 등을 분류,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었다.부친의 대표적 저서인 ‘한국사 대관’‘한국고대사연구’ 등과 함께 부친이 모아놓은 비문,고지도,탁본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 박사는 “아버님이 타계하신지 만 15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 온전한 평가가 나오지 않은 것 같다.”면서 “그동안 분류한 데이터베이스 등을 일종의 ‘사이버 라이브러리’로 인터넷에 올려 사학도들이 학술연구에 활용토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먼지 쌓인 부친의 古書 DB로 만들어 그는 곧 자신의 사재만으로 ‘두계학술연구재단’을 설립한다.부친이 타계하기 전까지 33년동안 생활한 옛집을 ‘두계문고’로 개방하여 일종의 도서관으로 활용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국내 역사·문화 연구자들에게 부친의 자료는 물론 국내외 연구자료 정보를 지원할 계획입니다.세계 주요 도서관과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연구자료의 탐색 및 수집도 알선해야죠.” 두계 선생과 관련해 잘못 알려진 부분(이완용과는 30촌 이상 벌어지는 먼 친척임에도 사촌간이라는 등의 소문)을 바로잡는 것도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버지가 진단학회에 전 재산인 100석 규모의 경기도 용인땅을 쾌척한 것과 마찬가지로 두계학술재단은 다른 사람의 도움은 받지 않기로 했다.정년 퇴직 이후 받고 있는 연금과 자신이 개발한 세제 및 알츠하이머 예방 물질 관련 특허료 수입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우선 옛집을 도서관으로 쓸 수 있도록 리모델링하고 무질서하게 보관된 장서도 새로 정리하기로 했다.지금도 대문 기둥에 남아 있는 부친의 문패는 그대로 남겨둘 계획이다. ●한자는 2000년 역사의 기호… 반드시 배워야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으며 고생도 많았다.역사를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환갑이 넘은 나이에 처음 부친의 자료를 살펴볼 때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장서의 대부분이 어려운 한자로 되어 있는 역사책들이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사실상 한문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한자의 묘미도 이때 깨달았다고 한다. “한자는 2000년 이상 약속된 기호입니다.서양이 동양을 무서워하는 것은 한자 때문이지요.제2차 세계대전 때 맥아더 장군이 일본을 점령한 뒤 맨 처음 추진하려고 했던 일이 한자 폐지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500자의 한자만 제대로 알아도 충분하다.”면서 “그냥 글자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역사서적 등을 통해 실속있게 가르쳐야 한다.”고 한자교육에 관한 소신을 피력했다. 부친이 떠난 동숭동 고택에 손때 묻은 각종 화학실험 기자재를 옮겨놓고 연구활동을 이어온 그는 기자와 만나는 동안에도 미국의 우주전파망원경이 보내온 신호가 뜰 때마다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하는 영락없는 과학자이기도 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개관 10돌 맞은 김석원 전쟁기념관장

    ‘인간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다.권력을 위해,때론 영광이나 명예를 위해,또 한 때에는 사랑을 위해….’ 얼마전 개봉된 영화 ‘트로이’의 도입 부분 내레이션이다.‘트로이전쟁’은 10년간 계속됐던 기원전 최대의 전쟁으로 예술과 문학사에서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트로이’는 저 유명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배경이 되고 있다.실재 여부를 차치하고라도 인간 상상력의 극치다.3000여년이 지난 지금도 ‘트로이 목마’가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류는 역사 이전의 시대부터 숱한 전쟁을 치르고,또 기억하면서 살아왔다.‘전쟁’이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1·2차 세계대전,6·25전쟁,베트남전쟁 등에서 실증적으로 경험했다.이라크 전쟁은 지금도 진행형이다.그래서 전쟁은 기억하고 싶던 아니던 인간과 더불어 영원히 ‘기념’될 수밖에 없다고 학자들은 얘기한다. ●1년에 100만명 관람… 분단의 상징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은 민족분단의 ‘상징’이다.해마다 이맘때쯤 가장 붐빈다.‘보훈의 달’이라는 이름아래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올 6월은 더욱 의미가 깊다.10일로 개관 10돌을 맞았기 때문이다. 전쟁기념관은 예상보다 찾는 이가 많다.연평균 100만명이 이곳을 들른다.이에 10년을 곱하면 그동안 1000여만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이 이곳을 다녀갔다는 계산이다. 며칠전 김석원(64) 전쟁기념관장을 만나기 위해 기념관 ‘전사자명비’ 앞을 막 지나는 순간이었다.백발의 두 노병이 눈에 들어왔다.둘은 손가락을 짚어가며 돋보기를 들이대며 전사자명비를 열심히 살폈다. “연대장님,여기 있네요.이놈이 틀림없어요.” “백마고지,그 김 중사 맞아?” “그렇습니다.연대장님.” 이윽고 둘은 ‘김○○’이라고 적힌 이름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놈 참 용감했어.그때 고집만 안 부렸어도 살았을 텐데….” “연대장님,그래도 김 중사가 아니었으면 우리 연대본부는 아마 몰살당했을 겁니다.” “하긴,그래.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가로막힌 남북은 그대로야.이놈은 죽어서 우리한테 아무 말도 안하고 말야.살아 있다는 게 덧없을 뿐이야.” “…….” 잠시 침묵이 흘렀다.두 노병의 눈가는 이미 젖어 있었다.시인 모윤숙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가 문득 생각났다. ‘…나는 죽었노라.스물다섯 젊은 나이에,대한민국의 아들로 숨을 마치었노라.질식하는 구름과 원수가 밀려오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드디어 드디어 숨지었노라….’ 때마침 견학온 유치원생 100여명이 그 앞을 시끄럽게 지나가는 바람에 더 이상의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전쟁기념관의 이운세 홍보부장은 “6월이어서 옛 전우의 이름이라도 찾으려는 노병의 발길이 더욱 잦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작전통으로 이름날린 36년 ‘군인의 삶’ “전쟁기념관은 한마디로 전쟁을 단일주제로 5000년 민족사를 조망하고 있지요.그 교훈을 마음으로 새기고 두번 다시 전쟁의 참극을 겪어서는 안되겠다는 실천적 결의를 다지는 호국의 전당입니다.” 김 관장은 예비역 중장이다.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과 제5군단장,군수사령관 등을 지냈다.군 안팎에서는 소문난 ‘작전통’이다.지난 5월10일 관장으로 부임했다.그는 부임한 지 한달밖에 안됐다고 강조했지만 베트남전 참전과 36년 동안 군에 몸담아서인지 전쟁기념관의 중요성과 역할,그리고 나아갈 길에 대해서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반적인 박물관과는 다르죠.추모의 기능이 있습니다.20만여명의 전사자명비가 있어 추모객들의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전쟁기념관은 우리 민족이 겪은 전쟁사가 살아 숨쉬는 국내 최대의 군사박물관이자 아시아 최고의 기념관으로 우뚝 섰습니다.” 김 관장의 목소리가 더욱 빨라졌다.전쟁기념관은 도심속의 시민문화공간이라고 했다.3만 5000여평의 너른 부지위에 연못,분수,녹지공간이 그렇단다.매년 나라사랑 그림그리기 대회,평화사랑 글짓기 대회,청소년 문화교실,호국추모 꽃꽂이 전시회,6·25음식먹기 행사,열린음악회,영화시사회,패션쇼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며 이용하기에 따라 정말로 유익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뿐만이 아니다.어린이연극,청소년연극,도자기체험교실,과학체험교실,호신무예교실,전통예절교실 등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체험프로그램을 연중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98년 발해건국 1300주년을 맞아 ‘발해를 찾아서’나,2000년의 6·25전쟁 50주년 특별기획전 ‘아! 6·25’,2002년의 DMZ특별기획전 ‘갈 수 없는 땅,그러나 가야만 하는 곳’ 등은 관람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고 했다. 김 관장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은 대부분 전쟁기념관을 찾을 정도로 중요한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면서 “그동안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영국의 앤드루 왕자,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고(故) 살라후딘 말레이시아 국왕,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등 30여개국의 VIP들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용산 박물관벨트 중심으로 도약할 것 전쟁기념관에 보유중인 유물만 해도 3만여점에 이른다.김 관장은 “지난 4월 세계적 군사박물관인 프랑스의 앵발리드 박물관과 ‘양해 및 교류협약서’를 맺는 등 앞으로 스페인·영국 등 외국의 박물관과 교류협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2005년 국립박물관의 용산이전이 완료되면 기념관 일대는 새로운 박물관벨트로 서울을 대표하는 명소로 한단계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관 10주년에 맞춰 국내 최초로 ‘우리나라 전통무기’ 특별기획전이 열립니다.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전통무기를 총망라했지요.국보급·보물급도 많이 선보일 예정입니다.” 김 관장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소탈하면서도 업무추진력만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오자복 현 성우회장과는 각별한 인연을 쌓고 있다.김 관장이 15사단 39연대 작전주임때 오 회장은 39연대장이었다.이후 김 관장은 오 회장의 ‘수제자’라는 별칭이 붙었다. 1940년 경북 영주 출생인 그는 가난한 농가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61년 6월 사병으로 군입대했으나 장교가 멋있어 62년 6월 소위(갑종166기)로 임관했다.이후 위관급때에는 15사단에서,영관급때에는 28사단에서만 근무하게 되는 인연을 맺었다.28사단 81연대 2대대장 시절에는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연대장,김동진 전 국방장관이 인근 3대대장으로 근무했다. “15사단은 젊은 시절 대부분을 보내 제 마음의 고향입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열린세상] 로마의 거리에 서서/이종수 연세대 행정학 교수

    로마의 거리에 서면 나는 침묵하게 된다.그냥 침묵하며 상상의 날개를 펼 뿐이다.도대체 역사는 발전하는 것일까? 진리란 무엇일까? 로마의 찬란했던 문명을 보면,역사는 그저 순환하는 것일 뿐 반드시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또,로마의 기독교 유적들을 바라보면,서양 문명은 기독교 문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한눈에 목격하게 되고,기독교의 원형(原型)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로마는 수메르와 그리스를 잇는 문명이었다.수메르는 지금부터 7000여 년 전 이라크 지역에 존재했던 찬란한 문명이다. 설형문자,성경의 창세기와 유사한 창조설화,교육제도,법 등 인류 최초의 39대 사건이 수메르에서 시작되어,인류문명의 고향으로 간주되곤 한다.새뮤얼 크레머 교수는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는 책을 내기도 하였다. 서양에서 수메르 문명은 그리스에 의한 에게해(海)문명으로 이어졌다.그리스는 기원전 1050년 경 철기 문화를 발전시키면서,소아시아의 서해안과 이탈리아 남부까지 지배하였다. 에게해 문명을 지중해 문명으로 바꾼 주인공이 바로 로마였다.로마는 기원전 27년 그리스 본토를 지배하고,3년 후 이집트를 정벌하면서 서양사의 주인공이 되었다.로마가 이룩한 과학,예술,군사력의 수준은 여행객으로 하여금 시간의 흐름을 착각하게 한다.시멘트를 이용한 2,3층짜리 집,판테온신전,콜로세움,포로 로마노,40㎞ 길이 14개로 이룩된 상하수도 시설,조각과 예술품은 현대의 과학과 예술을 무색하게 한다. 당시 로마는 경부고속도로 200개의 길이에 해당하는 8만 5000㎞의 도로를 닦아서 사용하였고,군대는 그리스,이집트,마케도니아,스페인,영국,프랑스,아프리카를 휩쓸었다.군대,과학,예술이란 면에 있어서 로마는 하나의 완결된 수준을 이룩하고 있었다. 로마가 그리스도교에 무릎을 꿇고,서양이 기독교 문명권으로 전환된 사건은 313년 일어났다.베드로가 로마에 기독교를 전한 지 246년 만이었다.그는 어부였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릴 때,세 번 부인한 베드로는 고향으로 가 다시 고깃배를 탔다.바다위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베드로는 로마로 전도를 하러가기로 결심하였다.그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로마 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종교와 가치체계,진리에 대한 도전은 당연히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네로의 핍박 속에 베드로는 AD 67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 베드로가 순교한 지 246년만인 313년 로마는 그리스도교에 무릎을 꿇는다.군대,예술,과학이라는 면의 진리에 있어서는 세계를 지배했지만,암살과 음모로 황제가 평균 1년에 한 번 바뀌고 노예에 대한 끝없는 착취 위에 군림하던 제국이었다.그런 로마가 베드로에 의해 전파된 사랑이라는 진리 앞에 무릎을 꿇은 사건이었다. 가장 처참하게 죽은 베드로의 무덤 위에 지금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성당이 서있다.그 어떤 왕궁도 베드로성당만큼 아름답진 못하다.한 인간이 가진 신앙,그리고 그 믿음이 바꿀 수 있는 역사의 규모와 엄숙함은 순례자를 숙연하게 만든다. 로마가 꽃피운 지중해 문명은 15세기 대서양쪽으로 이동한다.800여년 간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은 스페인은 1474년 이사벨라 1세가 즉위하면서 독립과 에스파냐 국가통일을 이룩하였다.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에 의해 침몰되면서,문명의 중심은 대서양으로 훨씬 가까워 졌다.이후 300여년 간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군림하였다. 20세기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문명의 중심은 미국으로 넘어왔다.그 방향으로만 친다면,태평양의 시대가 예견될 만한 상황이다. 그러나,열린다던 태평양의 시대는 1990년대 한국의 IMF경제위기,일본의 부진을 겪으면서 지연되고 있는 느낌이다.로마의 거리에 서서,로마 문명의 찬란함과 그 문명의 이동행로를 다시 한 번 떠올려보는 것이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 교수˝
  • 스웨덴 왕립학술원장 얀 린슈텐 성대서 특강

    “사회 전체가 과학에 대해 갖는 태도가 그 나라의 경쟁력을 좌우합니다.” 노벨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왕립학술원의 얀 린슈텐(69) 원장이 3일 성균관대 다산경제관에서 ‘노벨상의 과거와 미래’를 주제로 특강을 했다.노벨재단 이사와 노벨 총회 사무총장을 역임한 그는 이날 노벨상의 역사와 수상자 선정에 얽힌 뒷이야기 등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린슈텐 원장은 특히 1940년대 이후 주요 국가의 노벨상 수상자 추이를 설명하면서 지식 중심 사회의 중요성을 역설했다.그는 “자연과학이 매우 발달했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상자가 급격히 줄어든 것은 히틀러가 독일 사회의 지적 환경을 파괴해 많은 과학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이라면서 “지적 분위기를 파괴하는 것은 순식간이지만,회복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영국이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것은 런던에 폭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대학의 연구활동이 유지됐기 때문”이라면서 “중요한 것은 재정적 지원보다 과학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라고 강조했다.돈보다는 지식과 지혜를 가진 사람을 중요시하는 유대인의 전통이 노벨상 수상자 배출의 배경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린슈텐 원장은 한국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묻는 한 학생의 질문에 “기밀 사항이라 언급할 수 없다.”면서도 “전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뛰어난 교육열과 과학에 대한 투자로 연구 환경이 크게 좋아져 노벨상 수상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한국은 아직까지 위계질서를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는 것 같다.”면서 “젊은 학생들이 학제 등에 얽매이지 않고 일찍 과학적 재능을 발휘하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린슈텐 원장은 이날 오후에는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환담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日 ‘신사참배 합법화’ 개헌 추진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집권 자민당 헌법조사회가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위헌 시비를 없애기 위해 헌법상 정·교(政敎) 분리 원칙 조항을 개정키로 해 논란이 예상된다. 마이니치신문은 30일 헌법조사회가 특정종교의 포교나 선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종교적 행사에는 국가가 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개헌안 초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자민당은 전몰자 추도식 등 전통적이고 의례적인 행사는 헌법상의 정·교 분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고이즈미 총리 등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따른 위헌 시비 소지를 없애려는 기류다.아울러 총리가 전몰자 추도를 위해 야스쿠니 등에 참배할 때 공금을 지출하는 건 헌법상의 종교활동이 아니라 ‘전통문화행사’라는 주장이 대세다.하지만 2차 세계대전 전의 ‘국가신도(神道)’에 대한 반성에서 헌법에 정·교 분리의 원칙이 도입됐기 때문에 정·교 분리 조항 개정이 가시화되면 국내·외적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일본 헌법 20조3항은 ‘국가 및 국가기관은 종교교육,기타 어떤 종교활동도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89조에는 ‘공금,기타 공공재산’을 종교조직이나 단체에 지출할 수 없도록 명기해 재정적인 면에서도 정·교 분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taein@˝
  • [글로벌 한국차-(1)車산업 한국경제 버팀목] ‘글로벌 톱5’ 선결과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동차산업에 진입한 국가 중 독자 생존하고 있는 곳은 한국뿐이다.그러나 자동차산업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을 만큼 도약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당장 신뢰를 바탕으로 한 노사관계의 정립,한·일 자유무역협정(FTA)과 세계 최대 격전지인 중국시장에서의 경쟁 격화 대비,친환경 미래형 자동차 개발,브랜드 이미지 향상 등이 과제로 남아 있다. ●최대 걸림돌은 노사관계 고용의 안정성과 유연성이 균형을 이루는 노사관계의 글로벌 스탠더드화가 국내 자동차 업계의 가장 큰 숙제다. 현대차 등 4개 완성차 노조는 사회공헌기금의 공론화 필요성을 제기하며 올해 하투(夏鬪)를 주도하고 있다.당장 다음달부터 본격화될 노사협상에서 자동차업계의 노사간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측은 노조의 요구대로 순이익의 5%를 사회공헌기금으로 내놓을 경우 기업들의 경쟁력을 크게 해칠 수 있다고 반발한다.현대차의 경우 지난해 순이익이 1조 4794억원이어서 5%의 사회공헌기금이 법제화되면 874억원을 기부해야 한다. ●사면초가 자동차산업 국내 자동차산업은 선진국들과 신흥국들 사이에서 협공을 당하고 있는 형국이다.세계 자동차시장은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수출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수출 경쟁력 강화는 내수시장 확대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최근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내수불황도 국내 자동차업계 발전의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올해만 하더라도 1∼4월 내수는 지난해 동기 대비 28.9%나 뒷걸음질치는 등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종락기자˝
  • AP 선정 ‘FIFA 100년 영광의 순간들’

    미국의 AP 통신은 21일 국제축구연맹(FIFA) 창립 100주년을 맞아 지난 한세기 FIFA 역사에 길이 남을 ‘중대 순간’으로 기록된 35가지 사건과 1930년 제1회 월드컵 개최 이후 가장 위대한 이변과 영광의 순간들을 정리했다. 35대 사건 가운데서는 2002한·일월드컵 공동 개최가 가장 최근의 기념비적인 이벤트로 선정됐다.또 1904년 첫 FIFA 총회를 시작으로 1906년 잉글랜드의 FIFA 가입,1908년 올림픽종목 채택,1909∼1913년 아르헨티나 등 비유럽 4개국 FIFA 가입,1914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경기 중단,1921년 월드컵의 창시자 줄리메 회장 취임과 33년 임기 시작 등이 꼽혔다. AP는 이어 1930년 이후 ‘월드컵의 가장 위대한 순간들’로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을 비롯해 17세의 펠레가 1958년 월드컵 결승에서 2골을 뽑아낸 경기 등을 들었다.또 1986년 멕시코월드컵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 디에고 마라도나가 중앙선부터 50m를 단독 드리블해 잉글랜드 수비수 5명을 제치고 빼낸 골은 월드컵 사상 가장 위대한 골 중 하나로 꼽혔고,당시 경기에서 마라도나가 ‘손으로’ 헤딩골을 뽑아내 생긴 ‘신의 손’은 가장 많이 회자된 말로 기록됐다. 홍지민기자 ica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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