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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어떤 상실/김성호 논설위원

    살다 보면 이런저런 상실을 겪게 마련. 부모형제 지인과 죽음으로 헤어지는 사별이 있고, 죽어도 못 잊을 연인과의 서러운 별리가 있다. 아끼던 물건을 빼앗겼을 때의 박탈감도 참기 힘든 상실이다. 그런가 하면 달콤한 꿈을 꾼 뒤 일어나 기억이 나지 않을 때의 기분좋은 상실도 가끔씩 맛보곤 한다. 어느 상실치고 아프고 아쉽지 않을까. 하늘이 무너지는 사별에 머리를 잡아뜯는 절규가 있고, 좋아하던 것이 사라진 뒤의 밤잠 못 자는 아쉬움도 만만치 않다. 상실의 아픔이 오죽했으면 1차 세계대전후 전쟁의 절망과 허무를 담아낸 작가들에게 ‘상실세대’란 별명을 붙였을까.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젊은세대의 상실을 담은 제 작품에 ‘상실의 시대’란 제목을 얹었다. 최근 연달아 맛본 상실의 아픔. 지인이 정성스레 보내온 난과 책장속 아끼던 책의 증발이다. 애지중지 챙기던 것들의 상실에 원망이 작지 않지만 도적질(?)에도 나름의 필요가 있을 터. 그냥 ‘기분좋은 상실’쯤으로 넘기겠으니 잘 키우고 잘 보시길 앙망합니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아르헨 학자 “나치, 회춘약 개발 성공했었다”

    아르헨 학자 “나치, 회춘약 개발 성공했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나치정권이 회춘약 개발에 성공했었다는 주장이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나치가 아돌프 히틀러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은밀하게 연구를 진행, 임상실험까지 마치고 회춘약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펴고 나선 건 아르헨티나의 역사학자 카를로스 데 나폴리. 나치에 대한 저서를 이미 여러 권 펴내기도 한 그는 최근 “독일이 2차 대전에서 패한 후 아르헨티나로 넘어온 한 독일인 의사가 살던 집에서 회춘약 개발성공에 대한 기록이 발견됐다.”고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데 나폴리에 따르면 기록을 남긴 문제의 독일인 의사는 2차 대전 때 ‘죽음의 천사’라고 불리던 나치의 고위인사다. 그는 독일의 패전 후 아르헨티나로 은밀히 넘어와 신분을 감춘 채 여자 대리인을 앞세워 제약회사, 연구소 등의 지분을 인수해 사업에 손을 댔다. 역사학자가 발견했다는 기록은 바로 그 당시 문제의 독일인 의사가 대리인에게 보낸 문서 중 하나다. 데 나폴리는 “문서를 보면 청춘을 되찾을 수 있다는 회춘약 비법이 적혀 있다.” 며 “회춘약을 투약하면 20-30대 청춘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문서기록에 따르면 아우슈비츠 인근에서 나치가 임상실험을 했는데 회춘에 성공한 사례가 있었다.”며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하던 중 실제로 임상실험을 받고 가임기간이 연장됐다는 덴마크 여성의 증언을 직접 들었다.”고 주장했다. 강제수용소에서 학살된 사람들로부터 호르몬을 채취해 만든 회춘약을 투약하고 운동, 채식, 로얄제리 복용 등을 병행하는 실험이 있었고, 실제로 청춘을 회복한 성공사례가 있었다는 증언을 했다는 것이다. 데 나폴리는 이 여성의 실명(프리에다 로센슨)을 인터뷰에서 공개했다. 한편 데 나폴리는 인터뷰에서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AIDS)가 회춘약 임상실험에서 만들어진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원숭이 성기에 회춘약을 투약하면 특히 효과가 빠르다는 나치의 실험기록이 남아 있는데 회춘약을 투약받은 원숭이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을 보이며 죽어갔다는 것이다. 데 나폴리는 “회춘약의 임상실험 과정에서 부작용이 생기면서 에이즈 바이러스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前나치 친위대 60년만에 역사의 심판

    90세의 전직 나치 친위대원 소속 전쟁범죄자가 지난 17일(현지시간) 독일 검찰에 기소돼 60년 만에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됐다. 한 오스트리아 대학생의 끈길긴 과거사 추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AP와 AFP 등에 따르면 아돌프 슈토름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계 헝가리인 강제노역자 58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은 그동안 전범 추적 단체 등에서도 실상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슈토름스가 이름 철자 일부를 바꿔 과거를 숨긴 채 살아왔기 때문이다. 슈토름스는 지난 1945년 3월 다른 친위대와 히틀러 유겐트(소년단) 대원들과 함께 최소 57명의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을 오스트리아 도이치 슈첸 마을 인근 숲으로 데려가 무릎을 꿇게 한 뒤 등 뒤에서 머리에 총을 쏴 살해했다. 다음 날에는 수감자들을 강제이동시키다가 탈진한 수감자를 같은 방법으로 죽였다. 슈토름스는 전후 미군 전범교도소에 수감됐다가 1946년 풀려났다. 이런 사실을 밝혀낸 건 오스트리아 빈 대학 학생인 안드레아스 포스터(28). 그는 오스트리아 유대인협회가 1995년에 피해자 유골을 발굴했던 ‘도이치 슈첸 학살 사건’ 관련 자료를 조사하다가 슈토름스의 이름을 발견했다. 베를린 연방문서보관소에서 관련 파일을 더 입수한 포스터는 독일 뒤스부르크에 살던 슈토름스를 방문했다. 며칠 동안 12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하는 동안 슈토름스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범죄 사실을 부인했다. 포스터는 지난 7월 독일 검찰에 관련 정보를 통보했고 검찰 기소가 이어졌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태평양전쟁 ‘日잠수항모’ 하와이 근해서 발견

    태평양전쟁 ‘日잠수항모’ 하와이 근해서 발견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해군이 사용하던 잠수함이 하와이 남쪽 해저에서 발견됐다. 하와이 해저탐사연구소(HURL)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탐사팀은 지난 12일, 하와이 남쪽 해저 920m 지점에 가라앉아 있던 일본의 잠수함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찾아낸 잠수함은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본이 건조한 ‘I-401’함으로, 3대의 공격기를 탑재할 수 있어 ‘잠수항모’로 더 유명하다. I-401함은 종전과 함께 미군에 항복했으나 미군은 이 잠수함을 연구한 후 소련이 기술을 습득하지 못하도록 어뢰 표적으로 사용해 가라앉혔다. 당시 소련은 미국과 함께 2차 세계대전 전승국으로 패전국들의 기술을 요구할 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잠수함은 길이 122m, 수중배수량 6500톤으로 역사상 가장 큰 재래식 잠수함으로도 유명한데, 이 정도는 현재 미해군의 주력인 ‘LA급’ 원자력 잠수함과 비슷한 크기다. 또 공격기를 운용하기 위해 각종 폭탄 및 어뢰와 ‘캐터펄트’까지 장착하고 있었다. 캐터펄트는 활주로가 짧은 항공모함에서 비행기를 이륙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장비다. 당시 일본해군은 이 잠수함들을 이용해 미국 서부 연안의 도시들을 세균무기로 공격할 계획을 세웠으나,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파나마 운하로 목표를 변경했다. 독일이 패한 후, 대서양에서 활동하던 미해군이 태평양으로 넘어올 것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빠르게 무너지는 전선 탓에 이렇다 할 전과도 올리지 못한채 종전을 맞았다. 한편, 이번 탐사는 원래 당시 가장 빠른 잠수함이었던 ‘I-201’을 찾는 것이 목표였으나 I-201함 대신 I-401함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I-401함은 이미 지난 2005년 3월에 위치가 파악됐었지만 탐사를 못해오다 이번에 4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 목표였던 I-201함은 물 속에서 저항을 줄여주는 유선형 선체와 수납식 포탑 등, 10여 년 뒤의 냉전시절에 등장한 잠수함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 당시 일본해군이 가진 기술력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사진 = Widelife Productions 서울신문 나우뉴스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온라인게임에서 바라본 2차 세계대전 어떨까?

    온라인게임에서 바라본 2차 세계대전 어떨까?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온라인 실시간전략시뮬레이션(RTS) 게임이 국내 상륙을 눈앞에 두고 있다.게임업체 윈디소프트는 신작 온라인게임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온라인’를 내년 초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18일 열린 제작 발표회에서 밝혔다.이에 따라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온라인’은 내년 1월 비공개 서비스를 시작으로 2월 공개 서비스를 진행할 전망이다. 요금제는 부분유료화 모델이 유력하다.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연합군과 추축군간 교전을 그린 이 게임은 2006년 발매된 동명의 PC게임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를 기반으로 개발됐다.온라인판은 PC판과 차별화를 위해 100명 이상의 영웅 유닛과 48개의 능력을 갖춘 6명의 지휘환 그리고 50레벨까지 육성 가능한 캐릭터 시스템 등을 추가했다.연합군과 추축군 외에 향후 새로운 진영의 추가도 예상된다. 이날 윈디소프트는 향후 대규모 콘텐츠 업데이트를 통해 새로운 진영을 추가할 가능성을 내비쳤다.윈디소프트는 이 게임의 발매 후 ‘스타크래프트’에 버금가는 e스포츠 대회를 추진해 세몰이에 나선다는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RTS 게임의 경우 e스포츠에 가장 최적화된 게임 장르란 점에서 날로 인기를 끌고 있는 e스포츠와 발을 맞춰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판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온라인’ 즐겨봤더니…윈디소프트는 18일 한국판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온라인’을 공개하면서 행사장 주변에 10대 가량의 시연 PC를 마련하고 행사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체험행사를 진행했다.이날 행사를 통해 공개된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온라인’은 오는 12월 실시 예정인 포커스그룹인터뷰(FGI)를 위해 제작된 것으로 최고 레벨인 50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설정됐다.눈에 띄는 것은 사실성이다. 기존 판타지 RTS 게임과 달리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과 추축군의 모습을 진영 별로 생생히 재현한다.이날 행사에는 1대1 대전을 중심으로 게임이 진행됐다. 게임 모드는 모든 적을 섬멸하기 위한 ‘점멸전’과 상대편 점수를 낮춰서 승리를 얻는 방식의 ‘승리점수지정’이 공개됐다.서울신문NTN 최승진 기자 shai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다윈 ‘종의 기원’ 출간 1859년 세계문명 대혁신의 해

    인생을 회고하다 보면 사람들은 환골탈태라고 할 만한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찌 된 일인지 이전과 달리 사물의 이치가 머릿속으로 속속 들어오고, 날밤을 새며 활동해도 육체적으로 끄떡없다. 우연하게도 주변 환경도 대단히 우호적이라 의도하는 바를 다 이룰 수 있는 상황 말이다. 사람에 따라서 그 시기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 또는 직장 초년병 시절 등에도 나타날 수 있다. 그 시기를 통과한 사람들은 이전의 자신과 비교할 수가 없다. 점진적 발전이 아닌 도약과 비약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인생의 한 시점에서도 그렇듯 인류의 역사에는 환골탈태라고 부를 만한 비약적인 발전의 시점들이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철학과 과학의 발전과 15세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 16세기 초 대항해의 시대, 18세기 프랑스 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 그리고 19세기 중반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출간 등을 손꼽을 수 있겠다. 이러한 발전들은 지구를 점점 공동의 가치와 방법, 개념들로 하나로 묶으면서 동떨어져 있던 세계를 점점 가깝게 하나로 묶어나갔다는 것이다. ●과학기술 발전이 서양정치·사회·경제 등에 미친 영향 ‘다윈은 세상에서 무엇을 보았을까’(피터 매시니스 지음, 석기용 옮김, 부키 펴냄)는 1859년이란 시점을 고정해놓고, 서양 과학기술의 발전 수준과 그러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정치·사회·경제·문화에 끼친 영향을 시시콜콜 다룬 책이다. 동양에서 종의 기원은 생물학적으로 인류가 진화됐다는 과학적 의미로 한정되지만, 서양에서 종의 기원은 기독교 사회의 붕괴를 가져오는 것으로 그 파장은 과학에 한정되지 않았다. 유럽에서 경제학이 급속히 확산되고 발전했던 이유로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믿음의 체계를 잃어버린 서양인들이 이를 대체할 학문과 철학, 윤리의식으로서 경제학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종의 기원이 나오기 전까지 서양에서는 인류의 역사가 6000년에 불과하다고 알고 있었다. 구약성서에 나와 있는 선지자들의 나이를 다 합쳐서 만들어낸, 비교적 과학적(?)인 가공의 역사다. 그러나 종의 기원이 나올 무렵 공룡의 뼈 등 화석을 발굴해내던 지질학자들은 지구의 역사를 46억년 전으로 끌고 올라간다. 지질학은 진화론과 맞물려 지구와 인간, 신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호주 시드니에서 활동하는 과학 저술가인 저자 피터 매시니스는 종의 기원 발간을, 자리표는 있지만 자리 배치도를 마련해 놓지 않은 엉성한 결혼피로연에서 몇몇 하객이 먼저 자리를 차지함에 따라 나머지 하객들이 쉽게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뒤에 피로연장을 찾는 하객들은 미리 자리 잡은 배우자나 동료, 친구들의 손짓을 따라가면 쉽게 자리를 찾고, 자리를 채우는 속도는 점차 빨라진다는 것이다. 즉 종의 기원의 발간은 지금까지 자리를 못 찾고 우왕좌왕하던 각종 과학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고, 통신과 교통, 무역, 지성, 언론 등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발전을 폭포처럼 연쇄적으로 이끌어낸 해라고 말한다. 물론 종의 기원이 그 일을 이끌어내기도 했지만, 그 책의 발간 역시 시대적 산물이자 변화의 증상이라는 지적을 저자는 잊지 않는다. ●교통·통신·무역·언론 등 연쇄발전 그럼 1859년에는 또는 1859년을 전후로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1859년 4월에 수에즈 운하가 착공됐고, 그 해 한해 동안 많은 전신선이 부설됐다. 속도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존 브라운이 노예제 폐지운동을 벌이며 무력행동을 하다가 교수대에서 처형을 당했다. 그해 에이브러햄 링컨은 대통령 캠페인에 들어갔고, 1861년 미국의 대통령이 된 링컨은 노예제 폐지를 두고 전쟁을 벌인다. 루이 파스퇴르는 정밀한 실험을 통해 생명체는 자연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세균설’이 등장할 무대를 만들어줬다. 1854년에는 영국 존 스노가 콜레라 창궐지역을 지도로 찍어내 ‘물속의 무언가’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전염병 확산의 명확한 패턴을 밝혀주었다. 이제 과학은 분화돼 과학자들도 전공이 아니면 모르게 됐다. 도시에는 가스등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최초의 전등이 실험됐다. 미국 에드윈 드레이크는 최초의 유정을 시추하기도 했다. 이산화탄소의 증가에 따른 지구온난화를 예측한 스반테 아레니우스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그해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독일로 시집간 딸이 베를린에서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몇 분 만에 전보로 전해들었고, 1859년에 태어난 그 손자는 빌헬름 2세로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을 통치했다. 빌헬름 2세는 당대의 기술발전을 통해 가공할 만한 군비개량을 이뤄나가기도 했다. 동인도에서 구타페르카라는 고무와 비슷한 형질의 신물질이 1859년에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해저케이블의 피복으로, 충치치료제로, 소방호스의 피복 등으로 널리 이용됐다. 알루미늄은 당시 금보다 더 비싼 신물질이었다.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됐다. 또 노동계급들의 열악한 노동여건의 개선과 여가의 확보 등은 인쇄매체 등 읽을거리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면서 면직물 넝마가 아니라 목재 펄프로 종이를 만들기도 한다. 미국과 호주에서는 골드러시가 있고, 영국 런던에서 발행된 신문은 해저케이블 등의 발달로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서도 2주 만에 받아볼 수 있게 됐다. 세계는 좁아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 참! 1857년에서 1859년 사이에 인플루엔자가 크게 유행해 태평양 지역을 강타한 것도 잊지 말자. 1859년은 그저 150년 전의 어느 한 해가 아니었다. 그리고 1859년과 닮은꼴처럼 보이는 2009년도 그저 그렇게 평범한 한 해가 아니었다고 나중에 술회할지도 모르겠다. 1만 6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HAPPY KOREA] 테마로 다시보기 ⑮ 유럽 - 생태도시

    [HAPPY KOREA] 테마로 다시보기 ⑮ 유럽 - 생태도시

    ■친환경도시 오스트리아 빈 │빈(오스트리아) 강주리특파원│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이 화려한 재기를 위해 꿈틀대고 있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생태도시’로의 변신이다. 역사와 고전은 보전하면서 최첨단 과학의 편리성과 자연의 소통을 담아낸다. 빈은 올해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머서(Mercer)’가 꼽은 ‘삶의 질’이 가장 좋은 도시 1위(지난해 2위)에도 올랐다. 비결은 바로 ‘역발상의 힘’이다. 음악과 낭만의 도시 빈의 거리는 오랜 유럽의 역사가 그대로 묻어난다. 1926~27년에 지어진 아파트는 8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 이용되고 있다. 고비용을 들여 모든 것을 부수고 새롭게 짓기보단 조금씩 변형을 통해 옛것과의 조화를 맞춰가는 스타일이다. 용도가 사라져 폐기처분해야 할 산업단지를 친환경 주상복합센터로 변모시켜 일대를 신도시화시킨 것도 같은 정책의 일환이다. ●새것 짓기보단 옛것과의 조화를 빈의 중심부인 슈테판 광장에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10분만 가면 가조메터(gasometer)역이 나온다. 벽돌로 외벽을 감싼 높이 80m, 지름 64m의 거대한 4개의 원통형 건물은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인 1870년에 세워진 옛 가스공장 ‘가조메터’다. 100년간 빈 주민들에게 가스를 공급해 주던 에너지 저장소, 가조메터는 1978년 시의 에너지정책에 따라 공급이 중단되면서 사실상 도시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하지만 빈시는 만프레트 베도른 교수 등 유명 건축가, 도시설계가 등을 동원해 지난 2001년 4동의 가스탱크 외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내부 공간을 100% 리모델링했다. 1600t의 갑갑한 강철 원형 지붕을 뜯어내고 빛이 잘 들고 통풍이 잘되는 여닫이 친환경 유리 천장으로 탈바꿈시켰다. 현재 가조메터는 600가구의 아파트와 250여명의 학생을 위한 기숙사, 대규모 쇼핑몰, 음식점, 공연장, 영화관, 주차장, 사무실 등을 모두 갖췄다. 4개 동을 모두 연결해 편의성과 실용성도 높여 입주자는 물론 주변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에게 친환경 공동체 공간으로서 인기를 끌고 있다. 역사의 교훈과 도심 재생 효과를 일군 사례는 또 있다. 3호선 노이바우가세 역의 9층짜리 벙커 수족관 ‘바다의 집’에 가면 ‘포탄 속을 떠다니는 물고기’를 만날 수 있다. ●‘포탄 속의 물고기’ 도심 재생의 꽃 되다 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만들어진 100여개의 벙커 등 군사시설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없애는 대신 내부를 개조해 지역 수익을 올리는 관광상품으로 개발했다. 빈은 독일의 베를린, 함부르크와 함께 전투기를 격추시키는 3대 대공기지 ‘플락트룸’을 리모델링했다. 군인들이 잠을 자던 숙소는 수족관, 파충류 생태공원, 동물원, 놀이터로 꾸며졌고 엘리베이터 시설은 물론 빈 시내를 전망할 수 있는 층에 멋스러운 레스토랑도 마련했다. 최만진 경상대 건축학과 교수는 “기존 건물을 백지화해 도시 재개발을 하기보다 역사적 유물을 현장에 보존해 후대에 교훈으로 남기고 이를 관광자원으로 재활용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도시와 역사를 둘 다 살리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글ㆍ사진 jurik@seoul.co.kr
  • [정부예산 대해부] 비대해진 국방예산 왜?

    국방비가 살찐 이유는 최첨단 무기 구입비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구시대적인 무기나 업무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서다. 군대가 시대 변화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한 것이다. 가장 큰 예산이 들어가는 항공 전투기 ‘F-15K’ 2차 사업비는 올해 5468억원에서 내년엔 6800억원으로 24.4%나 증액됐다. 함정 사업인 ‘장보고-II’ 내년 사업비도 올해 3958억원에서 47.7% 늘어난 5844억원 규모로 편성됐다. 이 밖에 내년 ‘탄도유도탄 조기경보레이더’ 사업비는 788억원으로 올해 69억원에서 1042.3%나 증가했다. 게다가 육군을 제외한 해군, 공군 무기는 대부분 첨단무기화돼 거의 전량을 해외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군수산업 선진국들은 매년 무기값을 인상하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군은 여전히 구시대적인 업무에 많은 예산을 쏟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재 군 병력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육군 보병중대만 살펴봐도 노후화된 군 무기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화기중대 전투편성표에는 1900년대 초반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제작된 81밀리 박격포와 90밀리 무반동총 등이 여전히 편제돼 있다. 최첨단 전투기, 미사일과 같은 대량살상무기가 일반화돼 있는 오늘날 군은 1950년대 한국전쟁 때의 무기를 그대로 사용하며 이를 유지하는 데 돈을 쓰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군은 지난 10년간 해상침투간첩 발견 건수가 0건인데도 전투편성의 융통성 없이 562개 해안경계초소에 연간 53만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게다가 해안경계임무를 해안경찰에 이관하는 것도 2012년에서 2014년으로 연기한 상태다. 불필요한 조직운영의 단적인 예다. 군의 한 관계자는 “군 조직이 변화하기를 꺼려해 항상 예전에 하던 것을 답습하는 경향이 강하다 보니 업무도 구시대적인 업무를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가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군 조직도 시대에 맞게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한 예산 전문가는 “지금까지 아무리 경제사정이 어려워도 군대는 내부적으로 구조조정을 한 적이 없다.”면서 “불필요한 군 조직을 통폐합하고 구시대적인 무기를 과감히 버리는 등 전투 편제도 현실에 맞게 구조조정한다면 늘어나는 첨단장비 구입비와 밸런스를 맞출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방비 낭비도 줄어 연례적인 과도한 예산 요구와 비정상적인 국방비 운용도 사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나무로 정교하게 만든 ‘세종대왕함’ 눈길

    나무로 정교하게 만든 ‘세종대왕함’ 눈길

    나무를 깎아 만든 군함 모형에 네티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모형은 우리나라 해군의 ‘세종대왕함’(DDG-991)으로, 물속의 스크류에서 마스트 꼭대기의 안테나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부분이 재현됐다. 128셀(cell)에 달하는 수직발사대를 하나하나 다 만든 것은 물론, 함교 창문의 와이퍼도 정밀하게 만들어졌다. 함미 비행갑판에는 ‘링스’ 대잠헬기도 올라가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완벽히 재현된 마스트로, 기류신호를 위한 로프와 풍향속계 같은 각종 센서, 레이더까지 달려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프라모델이 아닌, 직접 나무를 깎고 다듬어서 만든 모형이란 걸 염두에 두면 실물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모형을 본 네티즌들도 한결같이 ‘놀랍다’는 반응이다. 네티즌들은 “인내심에 경의를 표한다.” 며 “전부 손으로 만들었다는 게 상상이 안간다.”는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모두를 놀라게 한 이 모형을 만든 사람은 송정근(55, 천안)씨. 자신을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소개한 송씨는 어떻게 이걸 만들었냐는 질문에 “퇴근하고 쉬는 시간에 짬짬이 만들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송씨가 만든 세종대왕함은 군함이라는 특성상 도면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여러 사진을 보고 눈짐작으로 그린 도면을 따라 제작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율이나 디테일이 정확하게 재현돼 있다. 이번에 만든 세종대왕함은 송씨의 10번째 작품으로, 제작기간은 약 4개월 반, 실제 들어간 시간만 따지면 약 400시간 정도가 걸렸다. 재료는 주로 은행나무를 쓰는데, 은행나무는 단단하고 결이 좋아 목공예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송씨는 그동안 해군의 ‘충무공 이순신함’(DDH-975)을 비롯해,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했던 영국 전함 ‘후드’(Hood),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Bismark), 일본 전함 ‘후소’(Fuso) 등을 제작한 바 있다. 사진 = 토마스의 작품세계 서울신문 나우뉴스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묵념하는 여왕… 영국군 전사자 추모

    묵념하는 여왕… 영국군 전사자 추모

    아프가니스탄 깊숙한 곳의 전진기지에서부터 영국의 런던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서 활동 중인 영국군이 전몰장병 추모식을 열었다. 추모식은 지난 8일 오전 11시, 영국 런던의 전사자 기념비 앞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2분간 묵념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여왕이 헌화를 마친 후, 에딘버러공을 비롯해 왕자들, 정부 인사들의 헌화가 뒤를 이었다. 아프간 헬맨드 지역의 베스티언 기지에서도 약 2000명의 장병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열렸다. 헬맨드의 주도(州都)인 라쉬카르가의 제 11 경보병여단 병력 500여 명도 같은 시간 추모식을 열고 헌화했다. 이 자리에서 여단장인 제임스 코완은 “이 날은 1, 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쓰러져간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날”이라며 “여기 아프간에서 죽은 우리의 동료들도 기억하자.”고 헌화사를 했다. 영국의 전몰장병 추모식은 1차 세계대전 종전일인 11월 11일을 기념해 가까운 일요일 오전 11시에 거행된다. 한편, 아프간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9000여 명의 병력을 파견하고 있는 영국은, 지난 4일 아프간 경찰의 공격으로 5명이 사망하는 등 급증하는 사망자 숫자와 그와 비례하는 철군 여론으로 고심하고 있다. 추모식이 열린 주말에도 7명이 사망해 2001년 아프간전 개전 이후 지금까지 239명의 영국군이 전사했다. 사진 = 영국 국방부 서울신문 나우뉴스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씨줄날줄] 하나의 유럽/함혜리 논설위원

    20세기 초반 두 차례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유럽은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2차 대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프랑스는 독일의 재도발을 막기 위해 전쟁물자인 석탄과 철강산업을 통제하는 초국가적 감독기구 창설을 제안한다. 국제적 신뢰도 회복이 급선무였던 독일은 프랑스의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였고 유럽의 안정을 희망했던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이탈리아가 이에 동참하기로 한다. 이들 6개국은 1951년 4월 파리조약을 맺고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출범시켰다. 파리조약에서 출발한 유럽통합 작업은 여러가지 조약들을 통해 진행돼 오늘날에 이른다. 조약은 유럽연합(EU) 내 정책결정과정에서 만들어지는 1차적 규범으로 국내법에 우선해 적용된다. EU통합이 유지되고 공동정책이 일관되게 적용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1957년 3월 로마조약을 통해 원자력 분야, 농업, 수산, 교통, 에너지 등 경제 전반으로 협력이 확대됐으며 유럽경제공동체(EEC) 조약은 유럽단일시장의 주요한 원칙들을 규정했다. 1985년 6월 프랑스, 독일, 베네룩스 3국간 처음 체결된 솅겐조약에 의해 체결국 국민간 별도의 비자나 국경검색 없이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해 졌다. 1993년 발효된 EU 창설조약, 일명 마스트리히트조약으로 경제공동체 외에 외교안보 및 내무사법 분야의 유럽통합이 가능해졌다. 2001년 2월 체결된 니스조약은 향후 EU확대에 대비한 내부개혁의 기반을 마련했다. EU는 정치적 통합을 강화하기 위해 2004년 6월 정상회의에서 정치적 통합을 위한 헌법조약을 마련하지만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부결되면서 폐기되고 만다. 유럽통합 작업에 잠시 브레이크가 걸린 듯했으나 2007년 12월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헌법조약을 대체하는 리스본조약을 체결, 정치공동체로 한 단계 도약할 기반을 마련했다. 체코가 EU 27개 회원국 가운데 마지막으로 리스본조약에 서명하면서 ‘하나의 유럽’ 탄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유럽통합은 유럽이라는 문화적 정체성에 기반해 회원국들간 공통분모를 찾아내면서 의견대립을 해소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다. 동북아공동체를 추구하는 아시아 국가들이 배워야 할 대목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HAPPY KOREA] 두바퀴 주거도시 獨보봉지구

    [HAPPY KOREA] 두바퀴 주거도시 獨보봉지구

    │프라이부르크 강주리특파원│맨발로 거리를 뛰노는 아이들, 녹음이 우거진 주택, 시원스레 뻗은 자전거길. 공원과 주택의 경계가 허물어진 도시의 오후는 평온함 속에 활력이 넘쳤다. 프라이부르크 도심에서 3㎞ 떨어진 보봉 지구는 프라이부르크시 안에서도 손꼽히는 친환경 교통·생태주거지역이다. 집집마다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한 것은 물론 도로 옆에 낮은 빗물 전용 경사로를 만들어 빗물을 모아 에너지로 재활용한다. 친환경 건물만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 병영지였던 음침한 도시는 자동차 운행금지 등 주민들이 자발적인 친환경 자치규약을 내세우면서 매연 없고 안전한 환경도시의 표준으로 급부상했다. 이곳 주민들은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훨씬 더 편하다고 입을 모은다. 주민의 90%는 자기 소유 차량이 없다. 대신 비가 오거나 먼 거리를 갈 때는 카셰어링(car sharing)를 통해 이웃 주민들과 공동으로 차를 이용한다. 보봉 지구 곳곳에는 카셰어링 스티커가 붙은 차량이 정차돼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5000명의 주민들은 직접 교통시스템과 자치 규약 개발에 참여한다. 자동차 운행을 줄이기 위해 주차장 면적만큼 세금을 물리도록 주차법을 개정했다. 이 지역주민 가운데 차량을 소유한 가정은 10%(500명 남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불편함이 없다. 집 주변 7분 거리 내 전찻길, 유치원, 학교, 병원 등 대중교통과 주민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대신 자전거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도록 프라이부르크 중앙역 인근에 자전거 전용 육교, 자전거 주차장(979대 보관) 등을 마련했다. 이곳에서 관광객과 주민들은 하루 1유로, 한 달 10유로, 1년 30유로를 내고 언제든지 빌릴 수 있다. 프라이부르크 내 자전거 도로는 전용도로 46㎞를 포함해 모두 연결하면 500㎞에 이른다. 보봉 지구 곳곳에 전기 자전거 충전기도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처럼 민·관 합심으로 일궈낸 프라이부르크의 자전거 이용률은 28%에 이른다. 프라이부르크시의 홍보를 대행하는 이노베이션아카데미의 스테펜 리스 자문역은 “자동차가 적어 유가 걱정도 없고 아이가 30%에 달할 정도로 도시 전체가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글 사진 jurik@seoul.co.kr
  • ‘하나의 유럽’ 8년 노력 결실

    ‘하나의 유럽’ 8년 노력 결실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이 리스본 조약에 3일 서명함에 따라 이제 남은 장애물은 없다. 60년 유럽 통합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생길 일만 남았다. 지난 2001년 12월 정상회의에서 유럽연합(EU) 정치통합을 강화 논의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기나긴 마라톤의 결승 테이프를 끊은 셈이다. EU 27개국 가운데 올해까지리스 본 조약 비준을 마치지 못한 국가는 체코와 아일랜드, 폴란드 뿐이었지만 지난 10월 아일랜드에서 국민투표로 비준동의안이 통과됐고 같은 달에는 폴란드도 비준절차가 마무리됐다. 클라우스 대통령이 리스본 조약 비준안 서명을 계속 미룬 이유는 두가지다. 리스본 조약의 ‘기본권조항’이 체코에 치명적인 사회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점과 체코 헌재가 아직 리스본 조약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본권조항은 유럽헌법이 EU 회원국의 국내법보다 상위에 있다는 것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체코 정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에 대한 보복조치로 수덴탄란트 지역의 독일 거주민 250만명을 추방했는데 만일 이 조항이 발효되면 EU 회원국 시민들의 재산권이 더 존중되는 법리 문제가 발생, 대규모 재산 반환 소송이 예상됐다. 체코 정부가 기본권조항의 예외를 주장해 온 이유다. 리스본 조약이 체코 헌법과 상충하지 않는다며 상원의원 17명이 제기한 위헌심판 청구도 유럽 통화 회의론자였던 클라우스 대통령에게 비준 지연을 위한 좋은 명분을 제공해줬다. 하지만 EU 회원국들이 지난달 예외를 인정하는 문구를 삽입한다는 제안을 만장일치로 수용, 체코의 고집은 수그러졌다. 특히 헌재가 위험심판 청구에 대해 기각을 결정하자 체코의 ‘마지막 명분’도 사라지게 됐다. 결국 클라우스 대통령은 합헌결정 몇시간만에 비준안을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리스본조약이 발효됨에 따라 조약을 근거로 신설되는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선출 및 새 집행위원단 구성에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EU 정상들은 조약 발효에 앞서 이 문제를 마무리하고자 이달 중순쯤 정상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호세 마누엘 바로소 EU 집행위원장은 “신속하게 지명이 이뤄질수 있기를 희망하며 회원국으로부터 후보 명단이 넘겨지면 집행위원단 구성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베를린장벽 붕괴 3인방 20주년 맞아 한자리에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이끌어낸 ‘냉전 종식’의 삼인방이 한자리에 모였다. 조지 H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가 그 주인공. BBC 등에 따르면 이들은 31일(현지시간) 베를린 프리드리히슈트라세의 한 극장에서 개최된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기념식’에 함께 만나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1982년부터 16년간 독일을 이끌었던 ‘통일 재상’ 콜 전 총리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부시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면 기분이 좋아진다.”면서 “고르바초프와 부시는 독일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독일인들은 통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이유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1989년부터 1993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부시 전 대통령은 “역사학자들이 개혁, 개방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뛰어난 비전과 불굴의 의지를 높이 평가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추켜세웠으며,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을 이끌었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우리 셋은 전 세대의 업적을 가로챌 생각이 없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냉전시대 종식은 제2차 세계대전 이래 화해의 최정점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베를린에서는 이날부터 오는 9일까지 장벽 붕괴 20주년 기념 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질 예정이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EU, 체코요구 수용… 통합 마지막 걸림돌 제거

    유럽연합(EU) 정상들이 EU 기본권 헌장에서 체코가 요구한 예외 사항을 인정키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리스본조약으로 불리는 EU 개정조약 발효의 마지막 걸림돌이 제거됐다. BBC 등에 따르면 2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순회의장국인 스웨덴이 폴란드와 영국이 포함된 기본권 헌장의 예외조항 ‘프로토콜 30’에 체코를 추가하자고 제안했고 27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프레드리크 레인펠트 스웨덴 총리는 “리스본조약이 발효될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아일랜드가 국민투표에서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고 10일 폴란드가 비준을 마치면서 체코는 리스본조약에 서명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가 됐다. 그동안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은 리스본조약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겠다며 시간을 끌었다. 그러나 실제 내건 요구조건은 바로 예외 조항 인정이었다. 2차 세계대전 후 체코 법에 따라 재산을 압류 당한 독일계와 헝가리계 주민들이 기본권 헌장을 근거로 유럽사법재판소에 재산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에 스웨덴이 이번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체코 측에 이번에 합의된 내용을 제안했고 클라우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얀 피셔 체코 총리는 정상회담 전날 “27일 오후 늦게 클라우스 대통령을 만나 체코의 요구 조건을 해결해 주면 비준하겠다는 확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제 남은 과정은 헌재의 결정이다. 체코 헌재는 지난 27일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상원의원 17명이 제기한 리스본조약 위헌심판청구건을 심리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새달 3일 다시 심리키로 했으며 이날 결정이 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체코 헌재는 이미 지난해 11월 리스본조약이 체코 헌법에 부합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에도 합헌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헌재 결정까지 나오면 체코는 더 이상 서명을 미룰 명분이 없게 된다. 체코가 연내 비준 절차를 마무리하면 리스본조약은 예정대로 내년 1월1일 발효된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조르주 루오는

    조르주 루오는

    │파리 문소영특파원│“조르주 루오(George Rouault·1871~1958년) 하면, 검고 굵은 선으로 외곽선을 그리는 작가를 연상하지만, 아주 특이한 화가이자 분류가 불가능한 작가입니다.” 앙겔라 랑프 퐁피두센터 학예실장은 루오를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했다. 야수파니 상징주의니 하는 분류가 불가능한 독자적인 화풍을 유지한 탓에 그는 현대에 와서는 점차 잊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루오는 생존에는 인상파 화가보다 더 유명했고 대접을 받았다. 1925년 레지옹도네르 훈장을 받았고, 1945년에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모마)에서 전시회를 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1948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고, 1953년에 미국, 도쿄 등에서 전시를 했다. 1958년에 사망했을 때 프랑스 정부는 그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를 정도로 프랑스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랑프는 “유럽사람들이 2차 세계대전 직후에 원자폭탄의 등장, 대량학살, 모든 가치가 붕괴된 상황에 빠졌을 때 루오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가치, 연민, 신성, 숭고함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루오는 가구 제조공의 아들로 1871년에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미술에 관심이 많아 오노레 도미에의 석판화 작품을 여러 개 가지고 있었는데, 루오는 “도미에에게 최초의 교육을 받았다.”고 술회했다고 한다. 14살 무렵부터 유리 제조공의 작업장에서 5년간 견습을 받는다. 유리 제조공으로서의 화려한 색깔과 검은 테두리가 인상적인 스테인드 글라스를 제작해본 경험 등이 그의 화풍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분석된다. 12월 한국 전시에도 루오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 1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1891년에 루오는 국립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해 정식 미술교육을 받는다. 그때 그는 야수파인 젊은 앙리 마티스와 알베르 마스케 등을 만나고, 상징주의 화가인 귀스타브 모로의 총애를 받는다. 랑프는 “ 루오의 화풍은 전통적인 기법에서 출발했으나 귀스타프 모로와의 만남으로 결정적으로 바뀌었다.”면서 “당시 학교에서 만난 마티스, 마르케 등도 루오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에콜 데 보자르에서 램브란트 등의 영향이 워낙 강해서, 일부 학생들이 거장의 화풍을 흉내내 그리는 것에 만족했는데, 루오는 자신만의 길을 갔다는 설명이다. 루오의 특이한 점은 초기작품부터 나타난다는 것이 랑프의 설명이다. 1905년에 모로가 죽은 뒤 루오는 야수파 화가들과 함께 전시를 열었는데, 루오가 다룬 주제를 보면, 창부, 서커스에 나오는 광대들이고, 색상은 야수파에 일부 동조했으나 어두운 측면이 남아 있었다. 반면 마티스 등 다른 작가들은 화려한 색채를 찾아서 떠났다는 것. 소외된 자에 대한 연민과 그들의 고난 즉, 남을 웃겨야 하지만 자신들의 삶은 고통스러운 창부나 광대 등에 대한 연민의 시선이 있다는 것이다. 루오는 중기에 이르러 미제레레 판화연작(58개)이 주류를 이룬다. 1차대전 직후에 나타난 인간의 고난, 성경에서 나오는 것 등 성스러움과 세속의 주제를 뒤섞는다. 이 주제는 중기 이후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60세를 전후로 한 후기(1920~30년)에 루오 그림의 주제나 톤은 어둡지만, 색채가 폭발한다. 미술평론가 R 맥뮬렌(McMullen)의 글에 따르면 ‘죽기 10년 전까지 루오는 색조의 범위를 노란 색과 초록색 계통의 색까지 넓혔고, 초자연적인 분위기의 풍경화도 그렸다.’고 한다. 특히 풍경화, 성자, 광대에서 색깔이 폭발한다. 루오가 추구해온 숭고함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연민의 주제가 살아있으면서, 숭고함의 경지에서 구도나 색채, 하모니를 중요하게 생각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루오의 일생에서 한 차례의 굴곡이 있었다. 다음은 앙겔라 랑프의 설명이다. 루오에게는 앙부르와즈 볼라르라는 후원자 겸 화상이 있었다. 볼라르는 고흐, 르느와르 등 인상파, 세잔, 피카소 등의 후원자로도 유명하다. 볼라르는 루오에게 아틀리에도 빌려주고 거기서 제작된 모든 작품은 구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1939년에 볼라르가 갑작스레 죽었다. 그의 상속인들은 이미 비싼 가격에 거래되던 루오의 작품을 모두 차지하기 위해 루오가 자신의 아틀리에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아틀리에에 있는 작품들을 사인도 없는 미완성 상태에서 팔려고 했다. 그래서 루오가 재판을 벌였고, 1944년에 승소했다. 루오는 자신이 너무 나이가 들어서 반환된 작품을 다 완성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공증인이 보는 데서 자신의 작품 315점을 불태웠다. 그리고 1958년 죽기 직전까지 그린 그림을 미망인이 1963년 국가에 기증했고, 10년 뒤 퐁피두의 수장고로 들어갔다. 소각되지 않고 루오의 손에서 살아남은 그 걸작들이 한국에서 12월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셈이다. 당시 그림을 불태우던 루오의 모습은 예술의전당 전시장에서 흑백 기록영화 형태로 상영될 예정이다. symun@seoul.co.kr
  • 첫 장편 ‘피아노 교사’로 세계를 놀래킨 한인2세 소설가 재니스 리

    첫 장편 ‘피아노 교사’로 세계를 놀래킨 한인2세 소설가 재니스 리

    “주제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니 아직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다음 작품은 한국이 소재, 또는 배경이 될 것입니다. 한국(사람)에 대해 쓴다는 생각만으로도 많은 부담이 되고 떨리네요.” ● 24개국 출판… 美서 10만부 넘게 팔려 첫 장편소설 ‘피아노 교사’(문학동네 펴냄·김안나 옮김)를 내기 전부터 전 세계 24개국에서 출판 계약이 이뤄질 정도로 초대박을 터뜨린 한인 2세 소설가 재니스 리(36)가 한국 출간에 맞춰 모국을 찾았다. 26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회의실에서 기자들과 만난 재니스 리는 자신의 첫 소설이 한인이 등장하거나, 한국의 정서를 담지 않은 것 같다는 질문에 “그동안 대학원 시절 썼던 단편 소설에서는 한국인이나 코리안-아메리칸의 얘기를 많이 담았다.”면서 이같은 향후 계획을 밝혔다. ‘피아노 교사’는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1940~1950년대 홍콩에서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엇갈린 사랑의 관계를 그린 소설이다. 단편소설을 들고 찾아간 출판사마다 번번이 퇴짜를 맞던 재니스 리는 2007년 가을 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인생 역전을 이룬다. 5년에 걸쳐 쓴 ‘피아노 교사’가 픽션 부문 우수작품으로 선정된 뒤 미국, 영국은 물론 유럽, 남미, 중국 등 여러 나라의 출판 제안 쇄도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된다. 게다가 지난 1월 미국에서 출간된 직후 10만부가 넘게 팔리며 뉴욕 타임스 집계 전미 베스트셀러에 5주 동안 이름을 올려놓기도 했다. 전례없는 일이었다. ● 홍콩 출생… 하버드대서 영문학 전공 그는 “이렇게 큰 반향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꿈같은 일”이라면서 “과거(1940~50년대)와 낯선 공간(홍콩)이라는 경험하기 어려운 배경에서 사랑과 인간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 것이 주효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준비된 재원에 가까웠다. 재니스 리는 한국인 부모가 사업차 홍콩으로 건너간 뒤 태어났고 15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엘르 USA’에서 출판 담당 기자로 일하며 한 달에 15권씩 책을 보고 서평을 썼다. 그러다가 스물여덟 살에 아예 기자 일을 내던지고 헌터 대학원에서 재미 소설가 이창래 교수로부터 소설 창작법을 집중적으로 배웠다. 모국어 소통이 능란하지는 않지만 그의 바람은 모국에서 그의 작품이 사랑받는 것, 단 하나다. “모국인 한국에서의 책 출간은 내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 독자들이 많이 읽고 성원해주시길 바랍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앙겔라 랑프 퐁피두센터 학예실장-한국 루오전을 말한다

    앙겔라 랑프 퐁피두센터 학예실장-한국 루오전을 말한다

    │파리 문소영특파원│“오는 12월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의 의미는 세계 최초로 루오 말년에 다량으로 존재했던 미발표작들이 해외에서 공개된다는 것입니다.” 앙겔라 랑프 퐁피두센터 학예실장은 서울신문과 퐁피두센터가 주최해 오는 12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색채의 연금술사 루오’전에 대해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랑프는 “이 미공개작들은 루오 사망시 화실에 있었던 작품들로, 1953년 국가에 기증됐고 10년 뒤 퐁피두센터로 왔는데, 그 후로 프랑스를 떠난 적이 없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이들 미공개 작품은 루오 사후 10년 기념전이 루브르박물관에서 열렸을 때 말년 작품을 다 보여줄 수 없어 일부만 전시하고 퐁피두가 보관해 왔던 것이다. 인터뷰는 지난 19일(현지 시간) 퐁피두센터 학예실에서 이뤄졌고, 2명의 프랑스어 통역이 인터뷰 내용을 교차 체크해 정확성을 확보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2월 한국에서 열리는 루오전의 구성은 어떻게 되나. -풍경화, 종교화 등 4개의 주제로 연대기 식으로 보여줄 것이다. 어두운 화면을 그린 초기부터 색채가 폭발적으로 나타나는 말년까지, 진화되는 루오의 작품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작품은 모두 168점이고, 이 가운데 미공개작이 80여점 정도로, 프랑스인 관객들조차 보지 못한 작품도 있다. 전세계에 처음으로 발표하는 미발표 작품이 14점이나 나온다. 프랑스에서만 공개된 작품도 69점이고,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인 ‘비트라이어’는 1975년 뮌헨에서 전시된 후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판화도 58점이다. 전시장 구성과 관람객 동선은 중요한 작품을 집중해서 볼 수 있도록 하고, 많은 작품을 볼 수 있게 구성할 예정이다. 특히 미제레레(Miserere)와 같은 판화는 방 하나에 여러 줄로 걸어놓고 관객이 볼 수 있도록 전시 방식도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다. →2006년 대전에서 열린 루오전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그때는 단순한 회고전이었다. 이번에는 루오의 아틀리에에 들어가서 루오의 머릿속을 보는 것처럼, 왜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됐는지를 전혀 다른 앵글에서 심화해서 보는 것이다. 당시에는 작품 구성이 일본 미술관들과 프랑스 루오 재단 측, 퐁피두센터가 소장한 몇 작품 등으로 구성됐다. 이번에는 170여 점 모두 퐁피두 소장 작품1000점 중에서 골랐다. →루오를 흔히 20세기 최고의 종교화가로 생각하는데. -종교화가라는 좁은 의미로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는 종교적 소재를 그린 화가인데, 평생을 강박관념을 가지고 형태와 색채, 하모니에 집착해서 같은 주제를 그리며, 경지에 이른 작가다. 루오의 작품은 예수 등 종교적인 신성과 창녀, 광대 등 세속적인 소재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 또한 세속적인 주제를 종교적으로 어떻게 다뤘는지, 종교적인 소재를 어떻게 세속적으로 그렸는지를 모두 봐야 한다. 예수의 모습을 봐도 모두 인간이 된 모습이다. 이번 전시는 20세기 최고의 종교화가 이상의 것을 보여줄 것이다. 퐁피두에서 이번 전시의 가제를 ‘신성과 세속(가제)’이라고 잡은 이유다. →루오가 영향을 미친 작가군들이 후세에 있나. -루오는 특정한 화풍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독특한 화가다. 시류를 따르지 않고, 제자를 가르치지 않았으며, 주제가 있는 구상화를 그렸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은 2차 세계대전 전후로 추상화로 옮겨갔다. 다만 기이하게 일본과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탓인지 일본인들이 열광했다. 루오의 80세 한국인 제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퐁피두센터가 이번에 서울신문과 루오전을 열게된 이유가 뭐냐. -한국에 인상파 등이 많이 소개됐고, 한국의 관람객들이 이제 현대적인 작품을 보고 싶어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20세기 현대미술은 미국의 국립현대미술관(모마)과 프랑스의 퐁피두센터가 50대50으로 양분돼 있는데, 퐁피두센터의 정책이자 사명은 우리 수장고의 작품들을 대여하는 등으로 전세계에 작품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수년 전부터 일본· 중국과는 많은 문화교류가 있었는데, 한국과는 그렇지 않아서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왜 이 시기에 루오 전시가 필요한가.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생활이 어려워지고 가치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루오에 대한 르네상스가 있다. 2006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2008년 프랑스 생트로페(프랑스 최고의 휴양지) 등에서 전시를 했고, 루오 풍경화로 전세계 순회전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미국 보스톤에서도 루오 전시를 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부터 시작된 세계경제위기,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가치의 상실 등으로 혼란스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관람객은 이번 루오전에서 루오가 그림을 그리면서 느꼈던 평화와 조화, 안정, 숭고한 경지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글 사진 symun@seoul.co.kr
  • [월드이슈] 美 발목잡던 발칸 도살자 ‘카라지치’ 이번엔 심판받나

    “나는 세르비아인들이 자신들의 역사에 무고한 사람들을 더 이상 도망칠 곳 없는 스레브레니차의 구석까지 밀어붙여 소와 양처럼 도살하는 이 장면까지 넣고 싶어할지 궁금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인종학살로 기록된 1993년 이슬람 거주지 스레브레니차의 집단학살을 목격한 유엔 직원 래리 홀링워스의 말이다. 이 참혹한 역사를 만들어낸 남자는 음울한 시인이었고 성공하지 못한 정신과 의사였다. 바로 보스니아 내전을 주도한 스르프스카공화국 대통령 라도반 카라지치(64)다. 13년간 포위망을 피해 오다 지난해 7월 베오그라드에서 체포된 그가 오는 26일(현지시간) 구유고슬로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법정에 선다. 다민족국가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지도자인 그는 다른 두 축 이슬람 교도, 크로아티아계에 대한 대량 학살과 민간인 테러, 강제 국외추방 등 11개 혐의를 받고 있다. ●카라지치 “당시 내 역할 후회 안 해” 그러나 카라지치는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법정에서 유죄가 입증되면 최대 종신형에 처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카라지치의 강력한 무기는 1996년 미국의 발칸반도 특사였던 리처드 홀브룩 현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특사와의 면책 협상이다. 정계 은퇴를 조건으로 홀브룩 특사가 자신에게 헤이그 전범재판소의 기소를 면제해 주겠다고 약속함으로써 데이턴 평화협정을 체결했다는 주장이다. 홀브룩 특사는 이를 거듭 부인해 왔다. 지난 13일 ICTY 상소 재판부는 수개월간 들끓었던 ‘비밀계약’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재판부는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재판을 제한할 수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없이는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자 카라지치는 16일 안보리 의장에게 “결의안을 채택해 주면 감사하겠다.”는 요지의 서한을 보냈다. 그는 또 당시 홀브룩 특사가 이 ‘밀약’내용을 안보리에 전달했고 유엔도 그 기록을 갖고 있다고 주장해 법정 공방의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판은 3년 정도 소요될 전망이다. 첫 이틀간은 기소 요지를 설명하는 검찰의 모두진술이 예정돼 있다. 이후 카라지치에겐 이틀간의 변론 준비기간이 주어진다. 미국 변호사 피터 로빈슨의 도움으로 직접 변론에 나설 그는 자신의 노력이 세르비아의 미래에 필수적이었다는 입장이다. 2개월 전 로이터통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도 “나는 내 역할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비밀협상 밝혀져도 미국만 망신? 유족들은 조속한 재판을 촉구하며 분노하고 있다. 당초 19일 열릴 예정이던 재판이 26일로 미뤄지자 스레브레니차 학살에서 남편과 아들, 가족 20명을 한꺼번에 잃은 여성 무니라 수바직은 “공판이 지연되는 동안 수많은 증인들이 죽을까봐 두렵다.”며 “이 모든 게 재판정이 해 오던 더러운 게임”이라고 성토했다. 관건은 전범 재판이 정치적 역학관계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느냐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카라지치의 자기 변론이 ‘정치적 입지 과시’나 ‘시간끌기’로 이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의 비밀 거래가 입증되더라도 구제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당혹스러워지는 건 미국이다.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전세계의 불신이 더 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빌 클린턴 전 미 행정부는 실제로 카라지치를 체포하는 데 거의 손을 쓰지 않아 비난을 받았다. 보스니아 내전을 종결시킨 데이턴 평화협정이 클린턴의 ‘치적’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전 등 사실상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은 자국민이 ‘정치적 기소’에 처할까봐 전범 재판을 두려워한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의 근거가 되는 로마규약 채택을 반대했을 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 미국민이 기소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데 급급했다. 거물급 전범을 단죄하는 이번 사건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권오곤 ICTY 부소장이 재판장을 맡을 예정이라 국내에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제범죄재판소의 가장 근본적인 목표는 국제인도법(IHL)의 심각한 저해가 기소되고 처벌받는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것”이라고 선언했던 ICTY가 스스로의 소임을 다할지 주목된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서울에어쇼서 볼수있는 ‘퇴역 비행기’ 5선

    서울에어쇼서 볼수있는 ‘퇴역 비행기’ 5선

    20일부터 개막된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전시회 2009(ADEX 2009) 한켠에는 조금 특별한 전시물들이 있다. ‘첨단무기’와는 거리가 멀지만 이들은 우리나라 공군의 60년 역사를 말해주는 산 증인. ◆ 공군을 만든, ‘T-6 건국기’ 1949년 10월 1일, 20대의 L-4,5 연락기로 만들어진 공군은 이듬해 5월, 국민 성금을 모아 T-6 훈련기를 10대 도입한다. 일명 ‘건국기’로 각 기체마다 ‘국민, 경북, 전남’ 등 별도의 이름이 붙여졌다. 비록 훈련기지만 각각의 기체마다 이름을 달아줄만큼 공군의 소중한 핵심전력이었다. ◆ 나라를 구한, F-51D 무스탕 무스탕은 6.25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7월 2일, 미국의 군사원조로 도입된 공군 최초의 전투기이다. 원래 이 전투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을 지원하기 위해 개발됐으나 우수한 성능으로 미공군도 주력으로 사용했으며 전후 수많은 우방국들에게 지원된 바 있다. 공군의 무스탕은 미공군의 지원에 힘입어 전쟁기간동안 총 8,495회 출격하여 평양대폭격, 승호리 철교폭파 등 수많은 전과를 올렸다. ◆ 빨간 마후라를 키운 훈련기 3인방 아무리 최신예 전투기 조종사라고 해도 처음부터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진 못한다. 처음엔 훈련기를 타면서 비행술을 익혀야만 하는 것. T-28, 33, 37은 그런 면에서 빨간 마후라를 키워낸 항공기들이다. T-28은 1960년 12월에 도입된 후 30년간 수많은 조종사들을 길러낸 중등 훈련기. 이후 제트기인 T-37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퇴역했다. T-33은 1955년 8월에 도입된 우리나라 최초의 제트훈련기로, 5월에 도입된 F-86F 전투기와 함께 공군의 제트기 시대를 가져온 항공기다. T-37은 1973년 6월에 도입된 중등훈련기로, 2004년 국산 훈련기인 KT-1에게 바톤을 넘겨주고 마지막 기체가 퇴역했다. 30년 동안 T-37이 키워낸 조종사는 약 4,000명에 이른다. ◆ 공군 최초의 제트기 F-86F 세이버 ‘쌕쌕이’란 별명으로 더 유명한 세이버는 우리나라 최초의 제트기라는 타이틀도 같이 갖고 있다. 6.25 전쟁 직후부터 도입돼 공군의 제트기 시대를 열었다. 이 항공기는 공군 특수비행팀인 ‘블랙이글스’에서도 사용했으며, 가상적기편대에서 90년까지 사용됐다. ◆ 공군의 대동맥, 수송기 편대 총출동 전시장에는 EC-47을 비롯, VC-118, C-123K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 중 특히 VC-118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용기로 사용된바 있는 수송기. EC-47은 항로점검용 항공기로 C-47 수송기를 개조하여 사용됐다. 이들 뒤에는 현역에서 활동 중인 CN-235와 C-130H도 전시되고 있어 공군의 수송기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한편 공군은 23일, 전시장 내에서 창설 60주년 기념식을 예정하고 있다. 이 행사에는 블랙이글과 썬더버드의 축하비행을 비롯해 다채로운 볼거리가 마련되어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군사전문기자 최영진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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