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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한국군 무기 18] ‘지상전의 왕자’ K-1 전차

    [기획 한국군 무기 18] ‘지상전의 왕자’ K-1 전차

    1987년 9월 17일, 육군은 경기 포천의 승진사격장에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신형 전차를 공개했다. ‘88전차 명명식’이라 이름 붙은 이날 행사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까지 참석했을 만큼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날 공개된 ‘88 전차’가 지금 육군 기갑 전력의 주력인 ‘K-1’전차다. 88 전차라는 이름은 이듬해 있었던 88 서울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붙여진 애칭이다. 이 이름은 전 대통령이 직접 명명한 만큼 홍보가 대단했기 때문에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군 생활을 한 예비역들은 K-1전차보다 88전차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실제로 외국의 자료에서 K-1전차는 ‘타입88’(type 88), 혹은 88식 전차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 육군의 희망, K-1전차 K-1전차가 개발 중이던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육군의 기갑 전력은 북한과 비교해 절대적인 열세였다. 당시 육군의 주력은 미국제 ‘M-48’ 시리즈와 6·25전쟁 중에 개발된 ‘M-47’ 전차 등 성능이 떨어지는 구형전차였다. 그나마도 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한 ‘M-4A3E8’을 퇴역시킨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때문에 K-1전차에 거는 육군의 기대는 매우 컸다. K-1전차는 이 기대에 부응해 움직이면서도 정확히 목표를 조준할 수 있는 ‘이동간 사격능력’과 캄캄한 밤에도 적을 찾아낼 수 있는 ‘열영상 장비’, 1200마력의 대출력 디젤엔진 등을 갖춰 세계적인 수준의 3세대 전차로 개발됐다. 이 전차가 실전배치되기 시작한 1985년 당시에 동급의 전차를 배치한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ㆍ독일ㆍ영국 정도 밖에 없었을 정도였다. 또 신형 무기의 개발이 완료되거나 양산이 시작되면 행사를 통해 대내외에 사실을 알리지만 K-1전차는 공개 없이 바로 실전배치에 들어갔다. 육군이 얼마나 마음이 급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K-1전차는 지금 기준으로도 북한이 보유한 어떤 전차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이 장비가 실전배치된 이후 육군은 불안감을 다소 해소할 수 있었다. ◆ 최초의 국산(?) 전차 K-1 K-1전차는 최초의 국산전차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국산이란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K-1전차는 생산만 국내에서 이뤄졌을 뿐 실제 개발은 미국에서 진행됐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기술력으론 독자개발이 어려웠다. 결국 우리나라는 신형전차 개발에 대한 국제입찰을 실시했고 미국의 크라이슬러 디펜스사가 최종 선정됐다. 크라이슬러 디펜스사는 미군의 주력 전차인 ‘M-1’을 개발한 업체로 현재는 제너럴 다이나믹스 랜드시스템(GDLS)으로 인수합병됐다. K-1전차가 M-1전차를 줄여놓은 듯한 외형을 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육군은 빠른 시간내로 전력화할 수 있는 신형 전차를 원했고 이 요구에 맞추기 위해선 기존의 모델을 개량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덕분에 K-1전차는 1978년 크라이슬러 디펜스사와 한국형 전차(ROKIT) 개발에 관한 양해각서를 채결한 지 7년만에 개발을 완료하고 실전배치까지 되는 진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후 K-1전차는 1997년까지 1000대가 넘게 양산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몇차례의 성능개선을 진행하는 등 관련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이 때 얻어진 기술력은 훗날 개량형인 ‘K-1A1’전차와 ‘K-2 흑표’ 전차를 개발하는 밑거름이 된다. ◆ K-1전차의 특징 K-1전차는 미국에서 개발되고 M-1전차와 유사한 외형을 갖는 등 개성이 부족한 전차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전차는 산악지형이 많은 한반도를 고려한 한국형 전차의 특징을 충실히 갖추고 있다. 먼저 K-1전차는 동급의 전차들에 비해 높이가 낮아 위장에 유리하다. 지상고(땅에서 바닥까지의 높이)도 0.46m로 높은편에 속해 다양한 지형을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다. 또 앞쪽의 1, 2번과 마지막 6번 보기륜은 유기압식 서스펜션과 연결돼 있어 차를 앞이나 뒤로 기울이는 것이 가능하다. 보기륜은 지면과 맞닿아 있는 바퀴를 말한다. K-1전차는 이를 통해 최대 +20도~-9.7도의 고각을 확보할 수 있어 언덕 위에서 아래쪽을 보고 사격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에 유리하다. 그 밖에 당시 미국의 M-1전차에도 없었던 ‘전차장용 조준경’(CPS)를 장착해 포수가 목표를 조준해 공격할 때 전차장은 다른 목표를 미리 찾아내는 ‘헌터-킬러’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다만 주간전용 장비라 야간에는 능력이 떨어진다. ◆ K-1전차 제원 길이 : 9.62m 폭 : 3.59m 높이 : 2.25m 무게 : 51.1톤 주무장 : KM-68 105㎜ 강선포 1문(포탄 47발 탑재) 부무장 : K-6 12.7㎜ 중기관총 1정   M-60 7.62㎜ 기관총 2정 엔진 : MTU MB871KA-501 1200마력 디젤엔진 항속거리 : 약 500㎞ 속도 : 약 65㎞/h(최고속도), 약 40㎞/h(야지 최고속도) 승무원 : 전차장, 포수, 조종수, 탄약수 등 4명 계열차량 : K-1ARV(구난전차), K-1AVLB(교량전차) 서울신문 M&M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日관방장관 “과거사 보상검토 안해” 공식 부인

    일본 정부는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보상을 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보상 의사를 비공식 표명했다는 보도(서울신문 8일자 1면 참조)와 관련, 히라노 히로후미 관방장관은 8일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는 지금 그 문제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공식 부인했다. 앞서 사단법인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의 민간청구권 소송 대리인인 마이클 최 변호사가 7일 “하토야마 총리가 과거사 문제 전반에 관해 순서를 두고 보상할 용의가 있음을 미국의 한 중진 의원에게 피력한 것으로 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일본 법원은 이날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에서 강제노동한 유찬이(84)씨 등 23명이 일본정부와 후지코시(不二越)사를 상대로 낸 소송을 또다시 기각했다. 일본 나고야 고등재판소 가나자와 지부는 항소심 판결문에서 강제노동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한국 국민 개인의 청구권은 포기됐다.”는 1심 논리를 반복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왈츠· 모니크, 이변없이 오스카 ‘남녀조연상’

    왈츠· 모니크, 이변없이 오스카 ‘남녀조연상’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크리스토프 왈츠와 ‘프레셔스’의 모니크가 제82회 아카데미 남녀조연상을 수상했다. 8일 오전 10시(한국시간)부터 미국 LA 코닥극장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왈츠와 모니크는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조연상을 수상하며 이변없는 결과를 보였다. 먼저 왈츠는 ‘인빅터스: 우리가 꿈꾸는 기적’의 맷 데이먼, ‘메신저’의 우디 해럴슨, ‘라스트 스테이션’의 크리스토퍼 플러머, ‘러블리 본즈’의 스탠리 투지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최고의 조연배우로 등극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나치에 복수하기 위해 뭉친 ‘개떼들’의 활약상을 다룬 작품이다. 극중 왈츠는 악랄하고 지능적인 나치 장교 한스 란다 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왈츠는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데 이어, 제35회 LA비평가 협회상 남우조연상과 제62회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등을 거머쥐며 아카데미의 영광까지도 예고한 바 있다. 또 ‘프레셔스’의 모니크 역시 오스카의 여우조연상의 트로피를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모니크의 수상은 ‘나인’의 페넬로페 크루즈, ‘인 디 에어’의 베라 파미가와 안나 케드릭, ‘크레이지 하트’의 매기 질렌할 등 우명 여배우들과 조연상 경합을 벌인 결과라 더욱 시선을 모은다. 모니크는 “‘프레셔스’를 함께한 제작진과 출연진, 남편과 함께 영광을 나누겠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한편 배우 알렉 볼드윈과 스티브 마틴의 사회로 열린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아바타’가 촬영상과 미술상, ‘허트로커’가 음향상과 음향폅집상, 애니메이션 ‘업’이 장편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 이하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자 및 수상작 ▲작품상=허트로커 ▲감독상=캐서린 비글로우(허트 로커) ▲남우주연상=제프 브리지스(크레이지 하트) ▲여우주연상=산드라 블록(블라인드 사이드) ▲남우조연상=크리스포터 왈츠(바스터즈: 거친녀석들) ▲여우조연상=모니크(프레셔스) ▲촬영상=아바타 ▲편집상=허트로커 ▲각본상=허트 로커 ▲각색상=프레셔스 ▲미술상=아바타 ▲시각효과상=아바타 ▲음악상=업 ▲음향상=허트로커 ▲음향편집상=허트로커 ▲주제가상=크레이지 하트 ▲분장상=스타트렉 ▲의상상=영 빅토리아 ▲공로상=존 휴즈 감독 ▲장편애니메이션상=업 ▲단편애니메이션상=로고라마 ▲장편다큐멘터리상=더 코브 ▲단편다큐멘터리상=뮤직 바이 프루든스 ▲단편영화상=더 뉴 테넌트 ▲외국어영화상=시크릿 인 데어 아이즈 사진 = 영화 ‘바스터즈’·‘프레셔스’ 스틸이미지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자민당 “일왕을 국가원수로”

    │도쿄 이종락특파원│일본 자민당이 일왕을 단순히 ‘국가의 상징’으로 놔두지 않고 국가원수로 격상시키자고 주장하고 나서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본부장 호리 고스케)는 4일 회의를 열어 헌법 개정을 위한 ‘논점 정리’를 발표했다고 아사히신문이 5일 보도했다. 자민당은 보수색을 강화한 이들 내용을 논의한 뒤 헌법 개정에 필요한 절차 등을 규정한 국민투표법이 시행되는 5월 말까지 개헌안을 만들 방침이다. 자민당이 거론한 주요 논점은 일왕을 국가원수로 명기하자는 것이다. 1889년에 공포된 구 제국헌법은 일왕을 국가의 원수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일본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뒤인 1946년 11월3일 공포된 현행 일본 헌법은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어서, 이 지위는 주권을 갖는 일본 국민의 총의에 따른다.’고 규정했다. 일왕이 상징적 존재로만 남은 것인데 자민당은 이를 고쳐 실질적인 국가원수로 다시 바꾸자는 주장이다. 자민당은 또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는다는 점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도 명시했다. 국회를 지금처럼 상·하원 양원제로 운영할지 아니면 일원제로 바꿀지도 명확히 하자고 주장했다. 특히 집단적 자위권은 동맹국 등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외국이 무력공격을 받을 경우 실력행사를 통해 저지할 수 있는 권리여서 주변국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크다. jrlee@seoul.co.kr
  • 장동건·고소영 5월2일 웨딩마치

    장동건·고소영 5월2일 웨딩마치

    톱스타들의 ‘세기의 결혼식’이 열린다. 서른여덟 동갑내기인 영화배우 장동건(왼쪽)과 고소영(오른쪽)이 5월2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백년가약을 맺는다. 두 사람의 재산을 합치면 3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슈퍼 커플의 탄생으로 꼽힌다. 4일 영화계와 신라호텔에 따르면 장·고 커플은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가까운 친지 및 연예계 동료만 초대한 가운데 비공개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장동건은 6일 서울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리는 팬 미팅에서 결혼 일정을 공식 발표한다. 두 사람은 그동안 결혼 계획에 대해 함구해 왔다. 지난 설 연휴 기간 양가가 결혼일정을 진지하게 논의한 끝에 날짜를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혼집은 장동건이 지난해 8월 사들인 서울 흑석동의 30억원대 빌라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강 조망권이 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는 장동건이 속해 있는 야구단 ‘플레이 보이즈’ 멤버인 탤런트 김승우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장·고 커플과 가까운 또 하나의 슈퍼 커플 현빈-송혜교의 하객 등장 여부도 관심사다. 가까운 사람만 부른다고 해도 하객이 500~600명은 될 것이고 빅스타들이 총출동할 것으로 보여 결혼식장은 영화시상식의 레드 카펫을 재현할 전망이다. 장동건 소속사 측은 “장동건씨 본인이 6일 팬 미팅에서 구체적인 결혼계획을 밝힌다는 사실만 확인해 줄 수 있다.”고 밝혔다. 1972년생인 두 사람은 2007년 하반기부터 연인 관계로 발전했으며, 열애설이 불거진 지난해 11월5일 소속사를 통해 “두 사람이 오랜 시간 좋은 친구로 지냈으며, 좋은 감정을 갖고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고 시인했다. 당시 장동건은 자신의 팬클럽에 “서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걱정해주고 다독여 주는 그녀가 좋아졌다.”고 말했고, 고소영도 자신의 팬카페에서 “든든한 동건씨가 있어 무척 행복하다.”며 사랑하는 연인으로서의 행복감을 표현했다. 올해 초에는 두 사람이 함께 하와이 여행을 하고 입국하는 다정한 모습이 공개돼 예비 허니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특히 장동건이 흑석동에 고급 빌라를 사들인 사실이 공개되면서 두 사람의 결혼은 기정사실로 굳혀졌다. 1990년대 최고의 청춘스타였던 장동건과 고소영은 영화 ‘연풍연가’(1999)를 통해 처음 호흡을 맞췄다. 한편, 장동건은 오는 6월부터 강제규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마이웨이’에 출연할 예정이다. ‘마이웨이’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일본군에 징집됐다가 독일의 나치 병사가 된 동양인 남자 이야기를 다룬다. 마이웨이의 첫 촬영이 7월로 연기돼 결혼식을 5월로 잡았다는 후문이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기획 한국군 무기 17] 전차잡는 팬저파우스트3

    [기획 한국군 무기 17] 전차잡는 팬저파우스트3

    90년대 초 북한이 러시아제 ‘T-72’전차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지자 국군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한다. T-72 전차는 공격력이나 방어력 등에서 북한이 보유하고 있던 어떤 전차보다도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국군은 주력전차인 ‘K-1’전차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강화하는 사업과 함께 보병용 대전차 무기의 현대화도 추진했다. 이전부터 써온 ‘M72 LAW’ 대전차 로켓은 파괴력이 약해 현용 주력전차를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팬저파우스트3(PZF-3)는 당시 대안으로 도입된 대전차 로켓이다. 독일에서 개발된 이 무기는 전체 중량이 12.8㎏으로 LAW보다 5배 이상 무거웠지만 압연강판(RHA)을 700㎜나 관통할 수 있어 일단 명중하면 확실히 전차를 격파할 수 있다. 팬저파우스트3 대전차 로켓은 LAW와 달리 1회용이 아닌 탄을 재장전할 수 있다. 약 3~5회에 걸쳐 재사격이 가능한데 다만 3번 이상 발사하면 조준경의 영점(기준이 되는 조준선)이 틀어진다. 때문에 제작사는 재사격 한계를 3회 정도로 밝히고 있다. 영점이 틀어진 조준경은 제작사로 보내 점검을 받게 된다. ◆ 독특한 내부구조 팬저파우스트는 원래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사용하던 대전차 무기다. 팬저파우스트는 당시 강력한 성능으로 독일의 항복시기를 뒤로 늦췄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연합군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런 무기들은 대부분 대전차고폭탄(HEAT)을 탄두를 쓰는데, 이 탄두는 직경이 클 수록 더 높은 파괴력을 발휘한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탄두의 직경을 크게 만들면 발사관도 커져야 하기 때문에 무게와 부피가 늘어난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독일은 로켓탄의 추진부만 발사관에 넣고 탄두는 밖으로 노출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같은 생김새로는 구소련에서 개발된 RPG(로켓추진유탄) 시리즈가 유명하다. RPG가 팬저파우스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팬저파우스트3는 기본적인 구조는 옛날의 것과 같으나 80년대 실전에 배치된 만큼 몇가지 부분이 개량됐다. 먼저 1회용이었던 점이 3회 이상 사격이 가능하게 개량되고 3배율의 조준경도 설치됐다. 발사기의 구조가 복잡해지긴 했으나 사거리와 명중률도 크게 늘어났다. 무엇보다 후폭풍을 대폭 감소시켰다. 기존의 대전차 로켓은 발사할 때 강한 후폭풍이 발생해 사수의 위치가 쉽게 드러나고 실내사격이 어려웠다. 하지만 팬저파우스트3는 후폭풍 대신 ‘카운터매스’라는 일종의 무게 추를 뒤 쪽으로 날려보낸다. 작용-반작용의 원리다. 카운터매스는 이전 모델인 팬저파우스트2에서도 썼지만 팬저파우스트3에선 더 효과적으로 후폭풍을 감소시키고 있다. ◆ 팬저파우스트3 제원 길이 : 1230㎜(발사시) 무게 : 12.8㎏(전체중량), 3.8㎏(로켓탄) 직경 : 60㎜(발사기), 110㎜(탄두) 유효사거리 : 400m(고정표적), 300m(이동표적) 관통력 : RHA 700㎜(기본형) 서울신문 M&M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한·일 100년 대기획]‘닮은꼴’ 서울·도쿄올림픽

    [한·일 100년 대기획]‘닮은꼴’ 서울·도쿄올림픽

    아시아에서 첫 번째, 두 번째로 열린 1964년 도쿄올림픽과 1988년 서울올림픽은 20여년의 격차가 있었지만 꼭 닮은꼴이었다. 국민을 열광시키며 열린 양국의 올림픽은 국제적 위상을 한껏 높이고, 세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다. 양국 모두 1인당 국민소득 5000달러 안팎에서 유치한 올림픽은, 올림픽을 개최하면 경제가 발전하고 서양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환상과 풍요를 국민들에게 심어줬다. 그것은 성공적이었다. 도쿄올림픽 참가국은 94개국으로 당시 사상 최대였다. 서울올림픽 역시 세계 167개국 중 160개국이 참여해 사상 최대의 국가 간 이벤트였다. 1984년 LA올림픽이 공산권 국가가 참여하지 않은 반쪽짜리 올림픽이었던 탓에 이념을 초월한 올림픽이라는 의미가 가중됐다. 도쿄올림픽에서 일본은 금메달 16개, 은메달 5개, 동메달 8개 등 모두 29개 메달 획득해 미국, 소련, 독일에 이어 역대 최고의 성적인 4위를 했다. 서울올림픽에서 한국도 마찬가지. 한국은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로 소련, 동독, 미국에 이어 역대 최고의 성적인 4위를 했다. ●올림픽을 통해 만들어낸 이미지 일본은 도쿄올림픽을 통해 2차 세계대전의 전범이자 패전국의 이미지를 씻어내고 아시아의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애초 1940년 도쿄올림픽을 유치했으나 2차 세계대전으로 무산된 뒤 24년 만에 재유치한 일본은 더 이상 전쟁의 가해자가 아니었다. 패전 이후 일본 젊은이들은 국기인 ‘히노마루’와 국가인 ‘기미가요’ 등에 대해 혐오감까지 느꼈다. 하지만 올림픽 동안 메달 시상식에서 16차례 히노마루가 게양되고 기미가요가 연주되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맥아더와 치욕의 패전 사진을 찍었던 일왕도 올림픽 개막식을 통해 복귀했다. 당시 일본 선수단은 ‘2위는 소용없다.’는 비장한 각오로 시합했다. ‘동양의 마녀’라고 불리던 여자배구팀의 우승이 결정된 순간, 도쿄 내에서 전화를 거는 사람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국민 통합이 이뤄졌다. 한국도 서울올림픽을 통해 일본 식민지였던 과거의 굴욕을 떨쳐내고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음을 세계에 자랑했다. 한국은 1981년 1인당 국민소득이 1719달러에 불과했으나 1988년에는 4040달러로 2.5배가 증가했다. 5공화국에서 유치했지만, 6공화국에서 개최하면서 독재국가라는 오명을 벗었다. 중국이나 일본의 속국으로 알려진 한국을 독자적이고 세련된 민족문화를 가진 나라로 인식하게 됐다. 올림픽 이후로 코리아는 몰라도 ‘서울’을 아는 세계인들이 많이 늘어났다. 세계화의 발판도 됐다. 동구 공산권에 서울올림픽 참가를 독려하기 위한 스포츠 외교로 수교국이 19개국 늘어난 148개국이 됐다. 소련, 헝가리, 체코,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7개 공산권과의 수교는 이후 ‘북방외교’의 성과로 이어졌다. ●도쿄·서울올림픽에 숨겨진 애증 코드 그러나 도쿄와 서울올림픽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양국의 성화봉송 마지막 주자였다. 두 나라의 해묵은 역사의 애증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1964년 10월10일 도쿄올림픽 개막식 성화봉송 최종 주자는 1945년 8월6일 미국의 원자폭탄이 투하된 날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사카이 요시노리라는 19세의 젊은이였다. 일본이 전쟁 도발자가 아니라 피해자이며, 새로운 형태의 파괴적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적인 국가임을 과시하기 위해 의도된 연출이었다. 사카이는 175㎝에 63.5㎏으로 당시 일본인으로서 뛰어난 신체조건으로, 전후 일본의 부흥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요소였다. 올림픽 개최국 선정 과정에서 유일한 경쟁상대였던 일본 나고야를 누르고 올림픽을 유치한 한국 역시 손기정옹을 성화봉송 최종주자 4명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1936년 일제 강점기 시절 베를린올림픽의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옹의 존재를 통해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일본의 역사적 죄악을 세계 곳곳에 널리 알리고자 했던 것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세계 정보기관들 첩보전쟁중]세계 정보기관들 첩보전쟁중

    [세계 정보기관들 첩보전쟁중]세계 정보기관들 첩보전쟁중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발생한 하마스 간부 암살을 계기로 세계의 정보기관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첩보영화를 방불케 한 이 사건의 용의자로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가 지목 되면서 두바이 경찰은 1일(현지시간) 모든 이스라엘인의 두바이 입국 금지 조치를 통보했고 국제 여론도 이스라엘에 등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경제와 안보를 둘러싼 세계 각국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기 때문에 21세기에도 정보기관은 국가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고 있다. ■CIA 외국어 능통자 확보·NSA 요원 3만8000명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 정보기관인 ‘중앙정보국(CIA)’은 지난해 말부터 한국어, 중국어, 아랍어 능통자 확보에 나섰다. 북한 핵 문제 해결과 중국과의 경제 및 군사 패권 다툼, 대 중동정책 수립 과정에서 첨단장비를 이용하는 ‘시진트’를 넘어 ‘휴민트(인적정보)’를 통한 최고급 정보를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CIA 요원 중 외국어 구사 능력자가 13%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어를 포함한 외국어를 ‘중요 임무 언어’로 분류하고 이들 언어 구사능력자 채용 시 특별 보너스를 지급하는 등 해외 정보 수집에 유리한 인재 확보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미 정치첩보 기구의 대명사였던 CIA는 구 소련의 붕괴로 냉전시대가 저물자 주력 분야를 경제첩보 활동으로 전환하고 세계 각국의 경제 정책 수집 및 분석, 자국 기술의 해외 유출 방지 등에 힘쓰고 있다. CIA와 함께 미국 정보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국가안전보장국(NSA)’은 CIA보다 더 막강한 정보력을 자랑한다. NSA는 CIA 요원 2만여명보다 더 많은 3만 8000여명이 소속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 정보기관 중에서도 가장 베일에 가려진 조직이다. NSA는 조직에 대한 정보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그런 기관 없음(No Such Agency)’ 혹은 ‘아무 말도 하지 말 것(Never Say Anything)’ 등의 별명이 붙어있다. NSA의 주력 분야는 전 세계 정보 통신망의 도청 및 감청이다. 통신위성이나 각종 전자장치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언제든지 도·감청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NSA가 주도한 전 세계 통신감청 시스템인 ‘에셜론 프로젝트’를 통해 하루 30억 건의 통화를 도청할 수 있고 ‘테러’ ‘폭탄’ 등 특정 단어를 사용하게 되면 즉각 추적 대상으로 올려 NSA의 본부로 전송해 수집·분석한다. 이처럼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과시하는 미국도 9·11 테러 이후 미 본토를 향한 테러 위협, 이라크 전쟁에 이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란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 등 국제 현안이 산적해 있어 지난해 12월 알카에다 스파이가 아프간 CIA에 잠입해 폭탄 테러를 가하는 등 막강 정보망에 허점을 노출하기도 했다. ■국가안전부 저인망식 정보수집… 해킹중심지 의혹 중국의 대표적인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는 최근 세계 해킹 공격의 중심지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미 언론에 따르면 중국은 국가안전부를 중심으로 매년 수천명의 중국 외교관과 유학생, 기업가들을 저인망식으로 활용해 해외의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의 한 언론은 지난해 9월 독일 정보기관인 연방헌법수호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중국 국가안전부가 해외에 파견한 스파이가 60만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독일 일간 디벨트는 독일에서 열린 주요 기술보고회에서 중국인 방청객이 발표자의 노트북에 이동식 디스크(USB)를 연결하다 적발된 사건과 독일에 잠입한 중국 산업 스파이들의 사례 등을 꼽으며 “중국 정부가 독일 기업의 채용 동향 등을 확인해 중국인들에게 시험을 응시하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3만 2000명의 중국 유학생과 중국인 학자들도 의심 대상으로 지적했다. 국가안전부는 이러한 의혹에 대해 “근거 없는 비방”이라며 부인하고 있지만 최근 중국 정부의 구글 해킹 사태 등 잇달아 발생한 대규모 해킹의 진원지가 중국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가안전부에 대한 의혹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1983년 공공안전부의 정보 담당국과 공산당의 내사 및 내부 안전을 담당한 중앙조사부의 일부 기능이 군 총참모부와 통합해 출범한 기관으로 중국의 개방정책 채택 이후 출입국 내·외국인 관리와 미국 등 선진국의 첨단산업 및 군수기술 정보 수집에 주력하고 있다. ■MI-6 해외정보·MI-5 대테러 등 국내보안 담당 첩보 영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소속된 기관으로 잘 알려진 MI-6는 최근 영국 언론을 통해 지난 1월 두바이에서 발생한 하마스 핵심 간부 마흐무드 알 마부 암살 사건의 계획을 모사드로부터 통보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휩싸였다. MI-6는 영국의 해외정보 수집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비밀정보국(SIS)’의 또 다른 이름으로 영국 국내 정보는 ‘국가보안국(SS·MI-5)’이 맡고 있다. 이들 기관이 MI-5, MI-6로 불리는 이유는 1909년 비밀첩보부(SSB)에 속했던 두 기관이 1916년 군사정보국으로 편입되면서 각각 군사정보(Military Intelligence) 5과와 6과로 편성됐기 때문으로 지금도 영국 언론은 SS, SIS보다 MI-5, MI-6를 주로 표기하고 있다. MI-5는 제1,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영국에 침투한 해외 간첩 색출을 주로 담당해 오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활동 분야를 넓혀 대테러, 마약 및 조직범죄, 불법 이민 단속 등의 임무도 수행하고 있지만 경찰과 중첩되는 업무로 마찰을 빚는 등 논란의 중심에 오르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해외 정보를 담당하고 있는 MI-6의 황금기는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였다. 이 기간 동안 MI-6는 독일과 이탈리아군의 암호 해독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보이며 연합군에 상당한 수준의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냉전 종식 이후 이 기관의 중요성도 떨어지면서 조직은 대폭 축소됐다. ■모사드, 규모 작지만 최고 정보력 지닌 조직 평가 알 마부 암살의 용의자로 지목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는 ‘작지만 최고의 정보력을 지닌 조직’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사드의 공식 명칭은 중앙공안정보기관(Central Institute for Intelligence and Security)이지만 히브리어로 ‘기구’ ‘교육기관’ 등을 의미하는 ‘모사드’가 널리 쓰이고 있다. 알 마부 암살사건을 수사 중인 두바이 경찰은 사건 직후 모사드를 지목하며 11명의 용의자를 공개 수배한 데 이어 최근 15명의 용의자를 추가 발표했다. 알 마부 한 명을 살해하기 위해 26명의 모사드 요원이 동원된 것으로 외신들은 1997년 하마스 최고 지도자 칼리드 마샬 암살 실패를 경험한 모사드가 이번 암살 작전에 더욱 치밀한 준비를 한 것으로 분석했다. 러시아는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소련의 비밀경찰이었던 KGB의 역할은 현재 연방보안국(FSB)이 담당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간첩 탐지와 국경수비를 담당하던 FSB역시 최근에는 경제 및 정보산업 분야로 중심 업무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 국가안전부와 마찬가지로 2009년 12월 영국 대학의 기후 변화연구소 해킹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한 FSB는 해커 양성에도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내각정보조사실 등 운영… 경제·안보분야 대폭 강화 │도쿄 이종락 특파원│일본도 부처내 정보 파트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독자적인 정보기관이 없지만 내각정보조사실, 경찰청, 공안조사청, 방위성이 별도의 정보부처를 운영하며 정보수집활동에 나선다. 일본은 첩보전을 방불케하는 정보대전을 대비해 한때 독립적인 정보기관 창설을 검토했었다. 2007년 아베 신조 전총리 재임시 일본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창설을 추진했다. 당시 9·11 테러와 북한 핵미사일 시험 발사 등으로 인해 일본도 별도의 정보부대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이 해 4월6일 NSC 창설 안건이 각료회의를 통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쿠다 야스오 전총리가 취임하면서 이 방안에 대한 논란을 거듭했다. 외무성과 방위성이 “NSC는 옥상옥 기구가 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결국 NSC 사무총장과 사무국장의 임명, 위원 구성 방식 등을 놓고 부처 간 주도권 다툼을 벌이다 같은 해 12월 24일 안전보장회의에서 NSC 창설안이 폐지됐다. NSC 창설이 무산됐지만 일본 부처내 정보기구의 역할은 오히려 더욱 강화됐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런 차원에서 외무성은 최근 각국 대사관별로 이뤄지는 일본 주재원들의 정보 수집 활동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보당국 관계자는 “NSC 창설에는 실패했지만 이후 내각정보조사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며 “경제와 안보에 대한 정보수집활동이 대폭 강화됐다.”고 말했다. jrlee@seoul.co.kr
  • “서울 대표 중소기업 주목해 주세요”

    “서울 대표 중소기업 주목해 주세요”

    #1. 나무인형 똑이와 딱이가 보내는 시계속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똑딱 하우스’는 전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는 애니메이션 시리즈다. 영국 최대 TV프로그램 제작사인 RDF미디어와 한국 중소기업인 퍼니플럭스의 공동작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미취학 아동들에게 시간의 개념에 대해 소개하는 교육성을 인정받았고, 나무 완구 캐릭터를 등장시켜 향후 캐릭터 시장에서도 성공 가능성이 높다. 퍼니플럭스는 현재 프랑스TV, 알자지라 방송, BBC, USA 등 전 세계 유력 방송사들과 공급협상을 진행 중이다. #2. 패션 액세서리 업체인 이마컴퍼니는 최근 프랑스 파리백화점 입점에 성공했다. 한국의 전통을 기반으로 수작업을 이용한 이 회사의 브랜드 ‘수작(秀作)’은 현지에서 ‘독특하고 고급스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철학을 액세서리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한윤주 대표는 디자인 개념을 가미한 ‘콩두(豆) 이야기’라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 ‘한국의 날’ 행사 만찬 상차림을 기획한 요식업 사업가이기도 하다. 서울시 중소기업 육성지원 전문기관인 서울산업통상진흥원(SBA)은 1일 이마컴퍼니, 퍼니플럭스 등 10개 기업을 ‘2009 서울소재 우수 중소기업’으로 선정해 발표했다. 25명의 전문가들이 패션, 디지털콘텐츠산업, 창업, 해외시장 개척, 연구개발 및 집적화 등 5개 부문에서 총 150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심사를 거쳐 뽑았다. 시상식은 2일 오전 SBA 본사에서 열린다. 특색 있는 프린트기법으로 캐주얼 의류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티지엠트렌드, 친환경 그린 신소재 방수재를 만든 리뉴시스템, 250여개 기업의 데이터베이스 성능관리를 맡고 있는 엑셈, 40여개국에 정수기 관련 제품을 수출하고 있는 현대와코텍 등 중소기업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기업들이 대거 선정됐다. 자궁경부암, 결핵 등을 감염초기에 조기진단할 수 있는 바이오칩 스캐너를 개발한 나노스토리지, 2차 세계대전 공중전을 구현해 한국, 일본, 독일 등지에서 사랑받고 있는 HIS의 개발사 게임어스, 고기능성 섬유와 관련된 68개의 특허를 보유한 벤텍스 등 독특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지식형 기업들도 이름을 올렸다. 선정된 기업들은 앞으로 SBA 지원사업 참여시 다양한 우대혜택이 주어지며 홍보지원도 받게 된다. SBA는 이 기업들의 성공사례로 구성된 우수사례집 ‘SBA가 디자인하는 기업성공 스토리 2.0’을 제작해 무상 배포할 계획이다. SBA 관계자는 “심사위원들이 중소기업들의 무궁무진한 아이디어와 강한 열정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면서 “이들의 성공 사례를 전파해 서울시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기획 한국군 무기⑮] KH-179 155mm 견인포

    [기획 한국군 무기⑮] KH-179 155mm 견인포

    155㎜급 화포는 서방 측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화포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5월에 미군으로부터 ‘M114’ 155㎜ 견인포를 지원받아 처음으로 155㎜급 화포를 운용하게 된다. 당시 우리나라가 지원받은 M114 견인포는 총 303문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M114 견인포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에 개발돼 지금 기준으론 사거리가 짧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미군은 M114 견인포를 대체하기 위해 ‘M198’ 견인포를 새로 개발해 1978년부터 일선에 배치했다. 우리나라는 M198 견인포를 도입하는 대신 자체개발하기로 하고 1979년부터 신형 155㎜ 화포 개발에 착수했다. 육군 포병세력의 한 축을 맡고 있는 ‘KH-179’ 견인포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KH-179란 이름은 ‘1979년에 개발에 착수한 우리나라 최초의 155㎜ 견인포’라는 뜻이다. KH-179 견인포는 이전의 M114 견인포와 비교하면 포신이 길어진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M114 견인포의 포신은 3.62m이지만 KH-179 견인포는 7.01m다. 덕분에 포탄의 사거리가 크게 연장됐으며 정확도도 향상됐다. 사거리연장탄인 ‘RAP탄’은 최대 30㎞까지 날아갈 수 있어 미군의 M198 견인포와 같다. 또 무게를 줄이는 것에도 신경을 써 포신은 2배 가까이 길어졌지만 무게는 1t 정도 늘어난 6890㎏ 정도로 주한미군과 국군이 보유한 ‘CH-47 치누크’ 헬기에 매달아 수송할 수 있다. KH-179 견인포가 일선에 배치되면서 M114 견인포는 후방의 동원사단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전시를 대비한 치장물자로 보관중이다. ◆ KH-179 견인포의 한계 KH-179 견인포는 우리나라가 독자개발한 첫 155㎜급 화포임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성능을 지녀 80년대 북한과의 포병전력 격차를 줄이는데 일조했다. 하지만 KH-179는 견인포라는 근본적인 한계도 동시에 드러냈다. 견인포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자주포와 달리 견인차량을 통해 진지로 이동한 뒤 포병들에 의해 방열된다. 방열은 사격을 위해 자세를 갖추는 것을 말한다. 포병의 숙련도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KH-179 견인포를 방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가장 빠른 긴급방열의 경우가 3분 정도다. 하지만 자주포인 ‘K-9’의 경우엔 30초 내에 방열을 마치고 사격할 수 있다. 문제는 사격을 마치고 다시 이동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현대전에서 포병들은 과거 전쟁처럼 한 곳에 진지를 만들고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는다. 날아온 포탄의 궤도를 역추적해 발사지점을 알아내는 대포병 레이더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도 중국제 대포병 레이더를 갖춘 것으로 알려진다. 상대방의 위치를 역추적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보통 3분 정도로, 적의 포병대가 미리 준비하고 있다면 3분 안에 반격탄이 다시 날아온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격을 마치면 1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자주포와 달리 견인포는 방열을 해제하고 견인차량을 불러 포를 끌고 나가는 시간이 보통 15분 이상 걸린다. 사실상 적의 대포병 사격을 피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전방의 보병사단은 두꺼운 철근 콘크리트로 KH-179 견인포 포대를 만들어 놓기도 했지만 전선이 이동했을 땐 포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국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K-55’나 K-9같은 자주포를 도입해 KH-179 견인포를 대체하고 있다. ◆ KH-179 155㎜ 견인포 제원 구경 : 155㎜ 무게 : 6890㎏ 길이 : 10.39m 포신 길이 : 7010㎜(39 구경장) 최대사거리 : 30㎞(RAP탄), 22㎞(일반고폭탄) 발사속도 : 2발/분(지속), 4발/분(최대) 포탄 종류 : 고폭탄, 연막탄, 조명탄, DP-ICM탄(이중 목적 개량고폭탄) 서울신문 나우뉴스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캐나다 마지막 1차대전 참전용사 사망

    캐나다 마지막 1차대전 참전용사 사망

    캐나다의 마지막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알려진 존 뱁콕이 숨을 거뒀다. 뱁콕은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주의 스포케인시의 자신의 집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올해 나이는 109세였다. 캐나다의 스티븐 하퍼 총리는 성명을 통해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에 참가했던 65만 명의 캐나다인이 모두 떠나갔다.”면서 “그의 사망으로 우리의 독립을 세계에 선포하고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를 전 세계에 과시했던 한 세대가 끝났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뱁콕은 1900년 7월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한 농장에서 태어났다. 그가 13살이 되던 1914년 유럽에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2년 뒤인 1916년에 그는 나이를 18살이라 속이고 군에 입대했고 몇 달 뒤 영국으로 파견됐다. 하지만 곧바로 전선에 투입되진 않았다. 그가 나이를 속인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결국 뱁콕은 1917년 8월 소년병들로 편성된 부대로 전출됐다. 이 부대에 소속된 1300명 정도의 소년병들은 이곳에서 훈련을 받다 성인이 되면 전선으로 투입된다. 그러나 뱁콕은 전투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그가 19살이 되던 해에 1차 세계대전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온 뱁콕은 미군에 입대해 시민권을 얻은 뒤 작은 공장을 운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뱁콕의 사망으로 1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는 미국인과 영국출신 호주인, 영국인 등 단 세 명이 남았다. 사진 = AP 서울신문 나우뉴스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시론] 밴쿠버의 교훈과 세종시 출구전략/한희원 동국대 국가정보법 교수

    [시론] 밴쿠버의 교훈과 세종시 출구전략/한희원 동국대 국가정보법 교수

    온국민이 열광하는 밴쿠버 동계올림픽 1500m 쇼트 트랙 결승에서 금·은·동메달이 눈앞에 보이는 순간 우리 선수들끼리의 판단 잘못으로 올림픽 메달 2개가 달아났다. 최선을 다하는 스포츠맨십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부터, 매일 정치인들이 싸우는 것만을 본 당연한 귀결이라면서 차제에 정치인들이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많았다. 지난 여름방학에 전 세계에서 온 학생들이 참석한 하버드대학교 입학설명회의 스크린이 한국제품이고, 아이비리그와 MIT 등 유수한 대학의 입학담당자들의 손에 한국산 휴대전화가 들려 있는 것을 목격한 필자로서는 국가지도자들의 다툼 가운데 국가의 미래발전, 그리고 대외적 이미지는 어떻게 될지 참으로 걱정이 앞선다. 결론적으로 세종시 문제는 치열한 이성적 논의와 정치지도자의 진정한 결단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세종시 논쟁의 논리는 크게 4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그동안 잘 부각되지 않았지만 통일대비론이다. 두 번째는 국가안보론을 포함한 행정효율론이다. 세 번째는 지역균형발전론이다. 마지막으로 약속이행론이다. 통일대비론과 행정효율론이 우리의 현실에서 긴요하다면 행정부처 이전을 백지화한 세종시 수정론이 맞을 것이다. 수도권의 과밀화와 집중화를 염려하는 지역균형발전론과 약속이행론의 관점이라면 원안 고수의 입장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에 바탕을 둔 논쟁은 당연히 글로벌 국제사회의 변화무쌍함을 통찰하는 정치지도자의 혜안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 현실정치가의 모습을 주창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되돌아 보아야 할 이유가 있다. 일국의 정치지도자는 재선만을 고민하는 정치인이나 정치를 업으로 하는 정치꾼과는 달라야 한다. 중국의 초석을 이룬 마오쩌둥, 작지만 커다란 오뚝이 덩샤오핑, 티베트의 당서기로 몰리며 변방으로 휘둘렸다가 다시 권좌에 오른 공대 출신의 후진타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대외적으로는 스탈린과 처칠을 간단히 휘어잡고 국내로는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며 미국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4선 대통령이 되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모두 현실정치의 대가들로, 그들 정치지도자에게는 국제정치에서도 ‘약속은 국가이익을 위한 방책’일 뿐이었다.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은 2010년 다보스포럼에서 경제사학자인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가 한 주장을 곱씹어 보아야 한다. 퍼거슨 교수는 지난해 영국 더 타임스가 세계의 경영사상가 50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한 인물로 ‘차이메리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그는 “북한이 아주 갑작스럽게, 그리고 아주 빨리 10년 내에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 한 달 전인 1989년 여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칼럼을 썼고, 실제로 한 달 뒤에 베를린장벽은 무너졌던 예지를 가졌던 인물이기도 하다. “중국이 더 이상 북한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때가 바로 북한이 갑작스럽게 붕괴하는 시점이 될 것”이며 “10년 후에도 한국이 여전히 분단된 상태로 남아 있다면 놀라운 일이 될 것”이라는 퍼거슨의 지적은 정치지도자들에게는 세종시 논쟁의 중심이 되어야 할 기준이다. 통일한국의 수도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미래예측과 급변하는 국제질서를 염두에 두고도 세종시에 대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는다면,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는 공동성명으로 현 단계에서의 논의 중단을 선언해야 한다. 새로운 변수로서 북한체제의 전개과정을 면밀히 살핀 후에 판단하기로 하는 국가의 미래과제로 보류하는 해법이 요구된다. 그것이 진정으로 국민을 편하게 하고 모두 승자가 되는 세종시 출구전략이 될 것이다.
  • [기획 한국군 무기⑬] 대전차무기 106mm 무반동총

    [기획 한국군 무기⑬] 대전차무기 106mm 무반동총

    106㎜ 무반동총. 보병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주특기 중 하나다. 106㎜ 무반동총은 중량이 무거워 차량에 탑재되기 때문에 병사들도 차량과 함께 움직인다. 행군을 하다 보면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게 가장 부러워진다. 하지만 106㎜ 무반동총을 주특기로 가진 병사들도 고충은 있다. 3m가 넘는 포신 덕분에 기본적으로 ‘오픈카’인 상태로 운용되기 때문에 겨울엔 차라리 보병이 부럽다. 또 발사 화염보다 더 커다란 후폭풍을 보면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들킨다.”라는 선임들의 말이 농담 같진 않다. 이 장비의 정식명칭은 ‘M-40 106㎜ 무반동총’(Recoilless Rifle)이다. 구경이나 용도를 따지면 포로 분류해야지만 육군에선 처음 도입했을 때부터 무반동총으로 불렸다. 특이한 점은 M-40 무반동총의 구경은 105㎜지만 이전에 등장했던 ‘M27 105㎜ 무반동총’과의 구별을 위해 106㎜로 부른다는 점이다. M-40 무반동포의 측면에는 12.7㎜ 총이 한 정 달려있다. 이 총은 보조무기가 아니라 106㎜포를 쏘기 전에 명중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사격하는 용도로 쓰인다. 유효사거리 내에선 12.7㎜탄과 106㎜탄의 탄도 특성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포탄으로는 전차를 공격하기 위한 대전차고폭탄(HEAT)과 인마살상을 위한 고폭탄(HE) 등이 있다. 이중 대전차고폭탄의 경우 약 400㎜ 이상의 압연강판(RHA)를 관통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탄은 추진체인 장약과 탄두가 일체화되어 있어 신속한 재장전이 가능하며 장약이 들어 있는 탄피에 1160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보통은 장약의 폭발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탄피가 앞쪽으로만 뚫려 있다. 이런 생김새는 발사반동을 줄이기 위함으로 격발할 때 이 구멍을 통해 연소가스가 빠져나온다. 이 연소가스 중 일부가 뒤쪽으로 뿜어져 나오면서 후폭풍이 발생한다. 구경이 작은 다른 무반동총들도 구조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원리로 반동을 억제한다. M40 무반동총은 1960년대 미군의 지원으로 처음 보유한 뒤 80년대 초 이를 바탕으로 개량 생산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장비는 전체중량이 196㎏에 이르기 때문에 보병이 휴대하지 않고 지상에 고정하거나 차량에 탑재해 운용한다. 국군은 주로 ‘K-111’ 1/4톤 전술 차량에 탑재해 운용하며 M-40 무반동총을 탑재한 차량은 ‘K-116’으로 부른다. 다만 K-111이 보다 신형의 ‘K-131’전술차량으로 대체되면서 K-116도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K-131에 M40 무반동총을 탑재한 차량도 개발됐지만 채택되진 않았다. 전방 부대에서는 대부분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자리는 불곰사업으로 도입된 러시아제 ‘9K115 메티스-M’(Metis-M) 대전차 미사일이 대신 배치돼 있다. ◆ 국군의 대전차 무기 역사 6·25전쟁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는 산악지형과 논이 많아 전차는 비효율적이다.’라는 통념이 있었다. 때문에 미군은 국군에 중(重)전차를 지원하지 않았고 전쟁 직전까지 국군의 기갑 전력은 정찰용의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 37대가 전부였다. 이에 비해 북한은 2차 세계대전 말에 등장한 최신형 T-34/85전차 242대와 176대의 SU-76M 자주 대전차포 등 강력한 기갑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대전차무기는 더욱 빈약했다. 국군은 미군에게 넘겨받은 2.36인치 로켓, 일명 ‘바주카포’(Bazooka)와 37㎜와 57㎜ 대전차포를 대전차전력으로 보유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들은 모두 2차 세계대전 당시 쓰던 무기로 대전말에 등장한 최신형 T-34/85 전차의 장갑을 관통할 수 없었다. 결국 소련제 T-34/85 전차를 집중운용한 북한은 개전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국군은 이 교훈으로 휴전 이후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기갑 전력과 대전차무기를 확보하는데 주력해왔다. ◆ M40 무반동총 제원 길이 : 3403㎜ 무게 : 196㎏ 포신 : 36조 우선 구경 : 105㎜ 탄종 : 대전차고폭탄(KM344A1) 유효사거리 : 1100m(최대 7700m) 발사속도 : 1발/분 서울신문 나우뉴스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손예진, 장동건과 연인… ‘마이웨이’ 출연 확정

    손예진, 장동건과 연인… ‘마이웨이’ 출연 확정

    배우 손예진이 장동건과 연인 호흡을 맞추게 됐다. 18일 강제규 감독의 신작 ‘마이 웨이’(가제) 제작 관계자는 “영화의 히로인에 손예진이 출연을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영화 ‘마이 웨이’는 2차 세계 대전 중 일본군으로 징집돼 노르망디 상륙작전까지 참가하게 된 한국 군인의 이야기를 다룬 전쟁 영화다. 극중 손예진은 연희 역에 캐스팅돼 장동건과 호흡을 맞추게 된다. 손예진의 연희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한국남자와 일본남자 사이에 선 여인이다. 그녀는 두 남자의 엇갈린 운명에 갈등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랑 때문에 고뇌하는 캐릭터다. 관계자는 “웰메이드 작품을 지향하는 강제규 감독의 초대형 프로젝트 ‘마이 웨이’는 톱스타 손예진의 연기변신 행보에 큰 힘을 실어줄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종횡무진 하는 손예진의 매력이 영화 속에서도 크게 빛날 것”이라고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이로써 손예진은 내달 방송 예정인 MBC 드라마 ‘개인의 취향’을 마친 후 ‘마이 웨이’의 촬영에 합류할 전망이다. 한편 강제규 감독과 장동건이 2003년작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8년만에 다시 호흡을 맞추는 ‘마이 웨이’는 캐스팅을 마무리하고 오는 여름께 크랭크인할 예정이다. 영화는 한국을 비롯, 독일, 중국 등에서 다양한 국가에서 촬영을 진행한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가위질 87년…세계 최고령 98세 이발사

    “걱정마! 손 안 떨어~” 99세 생일을 눈앞에 둔 세계 최고령 이발사가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소개돼 화제다. 뉴욕에서 현역으로 활동 중인 이발사 앤소니 맨시넬리 할아버지가 그 주인공. 경력 87년의 베테랑 이발사인 멘시넬리 할아버지는 다음 달 2일이면 만 99세가 된다. 한국 나이로 100세가 넘은 이 할아버지 이발사는 이미 세계 최고령 이발사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한 때는 직접 이발소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다른 이발소에 자리를 잡고 손님을 받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한 단골 고객은 “내가 아는 한, 세계에서 가장 머리를 빨리 깎는 이발사”라면서 “여전히 깔끔하게 머리를 다듬는다.”고 멘시넬리 할아버지의 실력을 칭찬했다. 멘시넬리 할아버지가 일하는 이발소의 주인 안토니오 머그나노는 “바쁜 날에는 할아버지 혼자 손님을 25명에서 30명까지 쉬지 않고 받는다.”면서 “항상 웃으며 대화를 많이 해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아버지를 도와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려 이발 기술을 배웠다는 멘시넬리 할아버지는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이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랜 시간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1929년 대공황과 2차세계대전과 같은 무거운 내용부터 비틀즈와 메이저리그 야구와 같은 소소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해박하다. “걸어다니는 역사책”이라고 불릴 정도다. 멘시넬리 할아버지는 “은퇴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처럼 오래 일한 것이 자랑스럽다.”며 계속해서 현역으로 일할 뜻을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기획 한국군 무기⑫] 대전차무기 90mm 무반동포

    [기획 한국군 무기⑫] 대전차무기 90mm 무반동포

    대전차(對戰車)무기는 말 그대로 전차를 상대하기 위한 무기다. 화염병부터 최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연합군을 괴롭히는 급조폭발물(IED)까지 전차를 공격하는 무기는 많다. 하지만 국군의 제식 무기 중 보병이 운용하는 대전차무기는 크게 대전차로켓과 미사일, 무반동포 등이 있다. ’M67 90㎜ 무반동포’(recoilless rifle)는 1970년대 미군의 지원으로 처음 보유하게 된 대전차무기다. 이후 76년에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국산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전군에 보급됐다. 이전에는 구형의 대전차포나 3.5인치 슈퍼바주카를 보유했다. M67 무반동포는 구경으로는 ‘포’로 분류돼야 하지만 영문이름이 ‘총’(rifle)인 이유로 국군에서는 오랫동안 무반동총으로 불렸다. 무반동포란 포탄을 격발시키면서 발생한 가스압이 발사관의 뒤쪽을 향해 뿜어져 나가면 그 반작용으로 탄두가 앞으로 날아가는 무기를 말한다. 반동이 없다는 뜻은 아니며 일반 총기류와 달리 사수가 포탄의 발사반동을 전부 받아낼 필요가 없어서 무반동포라 부른다. 이 무기는 무반동포 특유의 강력한 후폭풍 때문에 발사관 후방으로 28m 정도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때문에 실내와 같은 밀폐된 곳에서는 운용이 힘들며 야외에서도 발사관을 어깨에 걸치거나 직각이 되게 엎드려야 사수가 안전하다. M67 무반동포는 대전차고폭탄(HEAT)을 사용해 기갑차량을 상대할 수도 있다. 대전차고폭탄의 경우 압연강판(RHA)을 기준으로 300㎜정도의 관통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차의 장갑이 강력해진 현대전에서선 위력이 약해 주로 고폭탄(HE)을 사용해 벙커나 인마를 살상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다만 2005년 공개된 전차파괴실험 결과 북한이 대량으로 보유한 T-55급 전차에겐 유효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지금은 90년대부터 대량 도입된 독일제 ‘팬저파우스트-III’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 바주카? 무반동포? M67 무반동포는 어깨에 걸쳐 쏜다는 점에서 흔히 ‘바주카’포(Bazooka)라 불리는 대전차 로켓과 혼동되기도 한다. 특히 ‘M20 3.5인치 슈퍼바주카’의 경우엔 구경도 비슷해 더욱 그렇다. 무반동포와 대전차 로켓은 강선의 유무에 따라 구분된다. 무반동포의 경우 포신에 강선이 새겨져 있어 포탄이 회전을 하며 날아간다. 이에 반해 대전차 로켓은 발사기에 강선이 없으며 로켓탄은 발사 직후 날개를 펼쳐 탄도를 안정시킨다. 전통적으로 무반동포가 대전차 로켓에 비해 사거리와 명중률 면에서 강점이 있었다. 대전차 로켓은 발사기의 구조가 간단해 가격이 저렴했지만 날개로 탄도를 안정시키기 때문에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아 명중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차 세계대전 이후 무반동포가 대전차 로켓을 대체해 주력으로 보급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술이 발전해 사거리와 명중률이 크게 늘어난 대전차 로켓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특히 국군에서 M67 무반동포를 대체하고 있는 팬저파우스트-III는 대전차 로켓이면서도 후폭풍을 줄이기 위해 무반동포의 원리를 이용하는 등 양쪽의 장점을 고루 채용하고 있다. ◆ M67 무반동포 제원 길이 :1350㎜ 무게 : 17㎏ 포신 : 64조 우선 구경 : 90㎜ 탄종 : 대전차고폭탄(KM371A1), 일반고폭탄(K242) 유효사거리 : 약 400m(최대 2100m) 발사속도 : 1발/분(최대 10발/분) 서울신문 나우뉴스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女心은 벌써 春心

    女心은 벌써 春心

    2010년 봄·여름을 겨냥해 각종 패션 브랜드들이 연예인 모델을 기용해 찍은 화보들을 살펴보면 빠지지 않는 조합이 ‘스키니진+킬힐’이다. 스키니진은 스타킹처럼 허벅지에서 종아리, 발목까지 다리에 쫙 달라붙는 청바지를 말한다. 킬힐은 굽 높이가 7~8㎝인 하이힐보다 더 높은 10~15㎝의 아찔한 굽을 자랑하는 구두다. 킬힐이란 말은 우마 서먼이 주연한 영화 ‘킬힐’의 제목을 패러디한 것. ●프리미엄진은 길게 보이는 재단이 특징 프리미엄 진의 유행을 이끈 미국 브랜드 세븐진은 한국 진출 2년 만에 걸 그룹 ‘애프터스쿨’의 멤버 유이를 모델로 기용했다. 프리미엄 진은 비싼 가격과 다리가 길어 보이는 재단이 특징이다. 우중규 세븐진 팀장은 “유이는 스타의 화려한 이미지를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젊고 청순한 아기 같은 얼굴에다 다리도 길어 청바지 모델로 최적”이라고 모델 기용 배경을 설명했다. 세븐진 화보 가운데서도 종아리 부분을 지퍼로 장식한 스키니진과 발등을 덮는 킬힐 패션이 눈길을 끈다. 이효리가 모델로 활동 중인 여성 패션 브랜드 ‘탑걸’은 도발적인 록 시크(Rock Chic) 스타일을 올봄 트렌드로 잡았다. 록 시크 스타일을 이끄는 것은 호랑이해를 맞아 유행 중인 호피 무늬의 레오파드 룩, 반짝이가 잔뜩 달린 레깅스, 세련된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모터사이클을 타기 편한 옷에서 유래한 라이더 재킷 등이다. 하지만 변함없이 탄탄한 이효리의 몸매는 스키니진에 킬힐을 신었을 때 가장 돋보인다. 신원그룹 홍보팀의 강추경씨는 “자신의 몸을 가꾸는 열기가 식지 않으면서 여성의 몸매를 돋보이게 하는 스키니진과 킬힐의 유행이 몇 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비키’ 모델 한효주는 날염 처리된 오묘한 색의 갈색 스키니진을 입어 다리가 더욱 길어 보인다. 매력적인 허리선을 자랑하는 ‘씨’ 모델 신민아도 스키니진으로 몸매 선을 살렸다. 스키니진을 결정적으로 유행시킨 주역은 드라마 ‘스타일’에서 발망 브랜드의 날염 청바지를 입고 나온 김혜수와 노래 ‘지’를 부를 때 색깔별로 스키니를 입은 소녀시대다. 최근 몇 년간 해외 패션쇼 무대에서 트렌드를 이끌고, 김민희 등 옷 잘 입기로 소문난 연예인들이 사랑한다고 밝힌 브랜드는 어깨를 부풀린 스타일의 ‘파워 숄더’가 특징인 발망이다. 발망의 날염 스키니진과 파워 숄더는 1980년대를 휩쓴 ‘스노 진’과 패드로 과장되게 부풀린 어깨를 연상시킨다. ●가보시힐 앞굽 숨겨 세련미 더해 킬힐의 유행이 지속되는 것은 구두 앞부분에도 흔히 ‘가보시’라고 불리는 굽을 넣고, ‘글래디에이터(검투사) 룩’이라고 표현하는 여러 줄의 가죽끈으로 발등을 지탱하는 등 하이힐에 편안함을 더했기 때문이다. 뒷굽 말고 앞에도 굽이 있는 하이힐은 ‘플랫폼힐’ 또는 ‘가보시힐’이라고 불리는데 이런 구두를 처음 만든 디자이너는 살바토레 페라가모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물자 부족으로 구두 허리 부분을 받쳐주는 쇠의 품질이 나빠 구두가 쉽게 고장 나자 아예 앞굽과 뒷굽을 이은 플랫폼 신발을 만들어냈다. 최근의 ‘가보시힐’은 앞굽을 속으로 숨겨 세련됨을 더한다. 강주원 금강제화 디자인실장은 “봄 느낌이 물씬 나는 화사한 색깔의 플랫 슈즈와 뱀가죽이나 레오파드 무늬를 넣은 킬힐의 유행이 공존하고 있다.”고 전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그가 그린 것은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슬픔이고 사상 이었습니다”

    “그가 그린 것은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슬픔이고 사상 이었습니다”

    “슬픔을 저렇게 그릴 수 있을까요? 슬픔 그 자체지 그림이라고 할 수 없어요. 미술이 아니라 사상 그 자체입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부슬부슬 내린 1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의 ‘색채의 연금술사 루오’ 전을 찾은 김남조 시인은 루오의 대형 그림 ‘부상당한 광대’ 앞을 떠나지 못했다. 서커스는 조르주 루오(1871~1958)가 예수의 얼굴만큼 자주 그린 주제다. 하지만 세로 2m에 이르는 거대한 화폭에 담긴 세 명의 광대 모습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고 오르는 예수를 부축하는 듯 종교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김남조 시인은 30여년 전 처음 루오의 작품을 접했다. 그는 “반 고흐가 광기를 지닌 천재였다면 루오는 깊은 바다 같은 거대한 스케일의 위인”이라며 “루오는 시간이 지나면 더 거장으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미술적 지식은 “초등학교 아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겸양했지만 사랑을 노래한 그의 시는 여전히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인은 “음악가나 예술가들은 저마다 하나의 산이고, 저마다 하나의 절대가치라 누구를 제일로 꼽을 수는 없지만 내 경우에 그림은 루오가 제일 감동적”이라고 설명했다. ●남편 김세중교수, 루오 특별한 인연 김 시인은 극구 밝히기를 꺼렸지만 루오와 특별한 인연도 있다. 시인의 남편은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유엔탑’과 광화문 충무공 동상 등의 작품을 남긴 조각가 고(故) 김세중 교수다. 루오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기록하기 위해 10년간 매일 인쇄소로 출근하며 기념비적인 규모인 전체 58점으로 구성된 판화 ‘미제레레’를 완성했다. 옛 라틴어로 신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뜻의 ‘미제레레’는 검은색과 흰색만으로 구성되어 더욱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김세중 교수는 25년 전쯤 루오의 친구이자 문화재단을 운영하고 있던 자크 마르탱을 통해 어렵사리 ‘미제레레’ 한 세트를 한국으로 가져왔다. ‘미제레레’는 1927년 루오의 주의 깊은 감독 아래 54점이 425차례 인쇄된 이후 다시는 찍어내지 못하도록 판화 원판에 철필이 그어졌다. 김 시인은 “색 중의 최고는 검은색과 흰색”이라며 “흑백의 세계에는 겸허함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54점의 판화가 벽에 쫙 걸려 있는 전시실에서 쉽사리 발길을 옮기지 못했다. 특히 미제레레 가운데 가시관을 쓴 예수의 얼굴을 담은 ‘그의 고통 덕분에 우리는 치유되었다’와 예수가 얼굴에서 피를 흘리는 루오의 대표작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깊은 밑바닥을 흔드는 느낌을 받았다.”고 시인은 밝혔다. “검은색을 가장 잘 쓰기로는 미술 역사에서 루오가 최고”라고도 했다. 루오는 판화인 미제레레를 통해 검은색이 주는 힘을 최고로 발휘한 외에도 대부분의 작품에서 동양화의 먹선을 연상시키는 검정 윤곽선을 써서 강렬한 느낌을 준다. ●아나운서 김지은 “편협한 해석 반성” 루오의 그림을 보고 큰 감동을 받은 이로는 김지은 MBC 아나운서도 있다. ‘서늘한 미인’ ‘예술가의 방’ 등 미술 관련 책을 2권 펴낸 그는 ‘아나운서 저널(2009년 겨울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종교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화가로만 생각했다가 전시를 보고 루오의 작품세계를 얼마나 편협하게 가두어 놓았는지 뼈저리게 반성했다.”고 털어 놓았다. 이어 “서커스의 광대나 거리의 여자 등 사회 밑바닥 삶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덧없는 인간존재에서 신성하고 영원한 빛을 찾아 기록한 화가가 루오”라고 평가했다. 루오전은 수녀 등 성직자뿐 아니라 프랑스, 러시아 등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다. 루오는 사망 당시 국장을 치를 정도로 프랑스에서는 국민화가로 칭송받는다. 하지만 ‘서커스 소녀’ 등 그의 작품 14점이 세계 최초로 추가 공개된 곳은 이번 서울전이다. 때문에 전시를 찾은 프랑스 사람들이 “왜 프랑스가 아니라 한국에서만 이런 루오 작품을 전시하는 거냐.”라고 묻는 경우가 많다고 임은신 큐레이터는 전했다.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인 김환기 화백이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루오 선생을 존경합니다. 피카소와 루오는 꼭 한 점씩 사 가지고 싶습니다.”라고 했을 정도로 한국인의 감성을 건드리는 루오전은 설연휴에도 휴관 없이 3월28일까지 이어진다. (02)585-9991.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잊혀가는 세계의 분쟁지역

    잊혀가는 세계의 분쟁지역

    올해 초 토고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한 총격 테러가 발생하자 국제사회는 그제서야 앙골라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카빈다에 ‘반짝’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 산재해 있는 다른 분쟁 지역민들이 이목을 끌기 위해 이처럼 테러를 자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무고한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분단의 역사를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세인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고 있는 곳들을 살펴봤다. ■팔레스타인 국제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HRW)는 지난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가자지구 전쟁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 조사가 유엔의 기준치에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유엔은 지난해 11월 총회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전쟁 범죄 조사위 구성을 촉구했고, 이스라엘은 5일 자체 조사를 통한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한 바 있다. 이스라엘은 2008년 12월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치조직 하마스가 발사한 로켓포 공격을 빌미로 가자지구를 기습했고 이듬해 1월18일 일방적 휴전을 선포할 때까지 22일간 공격을 감행했다. 이 기간 발생한 희생자 수는 팔레스타인 1419명, 이스라엘 13명이다. 이스라엘의 사망자 13명 중 5명은 자군의 오폭으로 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휴전 협정 이후에도 이 지역의 유혈충돌과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남성 3명이 숨졌다. 또 이스라엘은 최근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의 갈등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란 핵문제 등에 밀려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전문가인 홍미정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위원은 영국 및 서방국가들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영국을 분쟁의 원인 제공자로 꼽았다. 영국은 세계1차대전에서 오스만튀르크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당시 영국이 식민통치하던 팔레스타인 및 아랍지역의 독립을 약속하며 아랍인들을 전쟁에 끌어들이는 동시에, 유대인들에게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민족국가 건설을 약속하며 영국 지원을 요청했다. 영국의 이 같은 조약으로 유대 민족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전 세계의 시오니스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영국은 산레모 협정에서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 건설을 담은 팔레스타인 위임통치안을 통과시켰고, 이 지역의 혼란과 갈등이 계속되자 유엔은 1947년 11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을 아랍과 유대 두 개의 독립국가로 분할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이듬해 5월 이스라엘이 수립됐다. 현재 이스라엘은 옛 팔레스타인 영토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인은 가자와 서안지구에 격리됐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인도령 카슈미르 분리투쟁 20년… 유혈충돌 악화 “이번 회담에서 뭔가 나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도령 카슈미르의 스리나가르에서 택시를 운전하고 있는 셰이크 샤파야트(40)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 회담 재개 소식에 “전혀 희망이 없어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달 31일부터 1주일 사이에 카슈미르 지역 10대 두 명이 인도 경찰과 보안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반응은 어쩌면 당연하다. 지난 2008년 뭄바이 테러로 중단된 양국간 평화회담이 이르면 오는 18일 재개된다. 관계 정상화 의지를 먼저 밝힌 쪽은 인도다. 파키스탄도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당장 관계가 개선될 수 없지만 최소한 관계 회복 국면에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하지만 분리 독립 운동을 벌여온지 20년이 되는 2010년, 카슈미르의 현실은 냉혹하다. 파키스탄 본토와 카슈미르 전 지역은 1990년부터 2월5일을 ‘카슈미르 연대의 날’로 정하고 분리 독립 투쟁 중 숨진 이들의 넋을 기리고 국제사회에 카슈미르 분쟁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양국 모두 이 지역 전체를 통치하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않고 있어 누구 하나 섣불리 나설 수 없다. 양국은 긴장 완화를 위해 국경 지대 정규군 규모를 줄이고 있지만 이는 분쟁을 끝낼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1972년 확정된 현재의 통제선에 따른 인도령 카슈미르에는 불교·힌두교·이슬람교가 공존, 종교 갈등이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 대외적으로 평화를 얘기하면서 한쪽에서는 분리 독립 세력을 강경 진압하는 인도의 ‘이중성’은 주민 정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한 주민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양국 회담은 사진 촬영을 위한 것”이라며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인도 입장에서는 무장 세력을 두고 볼 수만도 없다. 지난 20년간 무장 투쟁 과정에서 숨진 이들은 공식 집계로만 4만 7000명이다. 무장 독립 운동은 인도 정부의 강경 대응을 부르고, 이는 다시 반 인도 운동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강경 무장 세력은 물론 온건파도 무리한 진압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온건 분리주의 세력 지도자인 미르와이즈 우마르 파루크는 “주민들을 죽이면 이는 정부에 대한 강력한 저항으로 되돌아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키프로스 74년 분단… 60차례 통일협상 지중해 동부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키프로스는 한반도처럼 남북으로 분단된 곳이다. 1974년 이후 남북으로 갈라진 키프로스가 통일을 위한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리스계 남키프로스의 드미트리스 크리스토피아스 대통령과 터키계 북키프로스의 메흐메트 알리 탈라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부터 2일까지 남키프로스의 수도 니코시아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통일 방안을 협의했다. 정상회담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참석해 힘을 실어줬다. 반 총장은 “남·북 키프로스가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것에 큰 용기를 얻었다.”면서 “지속적인 대화를 돕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두 대통령은 2008년부터 60차례 넘게 만나 통일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2004년 유엔이 중재한 남북 키프로스 통일방안을 남키프로스 주민들이 거부하면서 무산된 이후 처음이다. 통일 논의가 순조롭기만 한 건 아니다. 특히 탈라트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중요한 변수다. 영국 BBC방송은 “2008년 통일협상을 시작할 때 그는 몇 달 안에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말했지만 지금껏 가시적 성과가 없다.”면서 “재선을 위해서는 대선 이전에 성과물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일협상을 반대하는 강경세력인 국민통일당의 데르비스 에로글루 총재가 여론조사에서 탈라트 대통령에 앞서는 것도 통일협상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게 한다. 현재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정식 승인을 받은 ‘키프로스 공화국’은 섬 전체의 59%를 차지하는 남키프로스다. 남키프로스는 2004년 유럽연합에 가입했으며 현재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이다. 북키프로스는 섬 면적의 37%에 이르지만 터키를 빼고는 국제적 승인을 받지 못했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관할하는 완충 지역과 영국이 소유한 군사기지가 각각 영토의 3%를 차지하고 있다. 키프로스는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요충지에 위치해 있다. 동로마제국과 오스만튀르크가 번갈아 지배했던 역사 때문에 현재 키프로스는 그리스계와 터키계가 양분하고 있다. 1925년 영국 식민지가 된 키프로스는 1960년 독립했지만 1963년부터 11년에 걸친 내부 분쟁이 일어났다. 결국 그리스 군사정권의 지원을 받은 그리스계 주민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친 그리스 정권을 세우자 터키가 이에 맞서 키프로스 북부를 점령한 이후 남·북으로 갈라졌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일본 패망과 한국전쟁

    [한·일 100년 대기획] 일본 패망과 한국전쟁

    2005년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정부 관료와 기업 경영자 등 100명을 상대로 전후 60년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응답자들은 전후 일본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경제사건 가운데 한국전쟁을 다섯 번째로 올려놨다. 전후 일본을 일으킨 것으로 평가받는 요시다 시게루(1878~1967) 전 일본 총리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신이 내린 선물”이라면서 “이제 일본은 살았다. 하늘이 일본을 돕는다.”고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외손자인 아소 다로 전 총리도 총무성장관 시절 영국 옥스퍼드 강연에서 “운좋게도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 일본 경제 재건을 급속도로 진전시켰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닷지 불황서 도요타 구출하기도 혹자는 일본 사람들의 근면성이 전후 경제 부흥을 이끌었다고 평가한다. 평화헌법으로 인해 방위비 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경제 발전에 주력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공산권에 대항하고 물자 부족시대에 세계를 지배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빚은 결과라고 이야기하는 학자도 있다.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했겠지만 어찌됐든 한국전쟁이 일본 경제 부활에 기폭제가 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은 전후 주택과 산업시설의 상당부분이 파괴됐다. 일본이 세계 전쟁에 명함을 내민 것이 무기와 군수 물자를 지원할 수 있었던 재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판단한 미 군정 사령부는 재벌을 해체하기도 했다. 미 군정 방침이 일본 응징에서 일본 경제 자립으로 방향을 틀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미국의 자금 원조를 받은 일본은 1947년 즈음부터 경제 회복에 시동을 걸었다. 특히 석탄, 전력, 해운 분야 등에 자본이 대량 공급됐다. 그런데 국채(복구채)가 크게 늘어난 탓에 심한 인플레이션을 겪게 됐다. 1949년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미국 디트로이트 은행장 조지프 닷지가 일본을 찾아 인플레이션 잡기에 나선다. 닷지는 긴축 재정을 펼쳤다. 부흥금융공사의 융자가 멈추고 채권 발행이 중지되자 인플레이션이 해소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디플레이션이 발생해 도산과 실업이 잇따른다. 이른바 ‘닷지 불황’이었다. 1949년 6월 국철 분야에서 약 10만명, 전기·전철 분야에서 약 2만명이 해고됐다. 도시바 등 민간 기업에서도 대량 해고가 이어졌다. 1950년 3월 이케다 하야토 재무상은 군소업자들이 도산하고 자살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하기까지 했다. 이때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日경제학자 “마셜 플랜 효과에 필적” 미군의 거점 기지 격이었던 일본에서는 엄청난 수요가 발생했다. 미군은 한국전쟁을 위한 마대·석탄·트럭·포탄 등 군수물자를 일본에서 사다 썼다. 트럭이나 전차·함정의 수리, 기지 건설 및 정비 작업 등도 일본에 발주했다. 당시 도요타는 트럭·탱크로리·덤프 트럭·지프 등을 4679대나 주문 받아 공장 폐쇄 위기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세계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미국이 일본에서 쓴 돈은 최대 30억달러로 추산된다. 이로써 산업 전반에 신규 투자가 가능해진 일본은 1950년대 후반부터 세계 역사상 전례가 없는 고도 성장을 거듭하게 됐다. 일본 경제학자 요네자와 요시에의 분석에 따르면 1951년 12%였던 일본 경제 성장률은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9.4% 또는 4.9%로 뚝 떨어진다. 1950년 6월23일 90.59엔이었던 닛케이 평균 주가가 1953년 7월 휴전 즈음 386.13엔으로 3년 동안 4배 이상 뛴 점도 한국전쟁의 일본 경제 기여도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 경제학자 나카무라 마사노리는 자신의 저서 ‘전후 일본사 1945~2005’에서 “1949년부터 이어진 닷지 불황에 신음하던 일본 경제에 한국전쟁은 단비와 같았다.”고 평가했다. 미국 정치경제학자 찰머스 존슨도 “일본에 있어 한국전쟁은 마셜 플랜에 필적하는 효과를 지녔다.”고 분석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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