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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 관객들 웃음에 인색해 그래서 더 재밌는 작품 쓰죠”

    “한·일 관객들 웃음에 인색해 그래서 더 재밌는 작품 쓰죠”

    “웃음은 만국 공통어입니다. 한국도, 일본도 경제 불황으로 웃을 일이 별로 없는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줘야죠.”여기 남을 웃기는 것을 천직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이 웃는 것을 보면 힘을 얻는다는 이가 있다. 바로 코미디 연극 ‘웃음의 대학’에 이어 ‘너와 함께라면’으로 한국에서도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일본의 간판 극작가 미타니 고키(49)다. 일본에서 ‘웃음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스타 작가 겸 연출가인 그를 최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평소에 전 말이 많거나 사람들을 잘 웃기는 편은 아니지만, 일상 속에서 사람들을 잘 관찰하고 그들을 접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인터뷰 장소에 좀 일찍 도착해 대학로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한국사람들이 즐겨 먹는 아이스크림과 소시지도 사먹었어요. 그런데 이 연극은 정말 재밌나요?” ●웃음의 전염성 강한 연극에 더 애착 큰 안경테 뒤로 친근한 인상을 주는 그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낸 연극 홍보 전단지에는 개그맨들의 얼굴이 가득 들어 있었다. 배우들의 면면을 뜯어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그는 현재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1관에서 공연되고 있는 자신의 연극 ‘너와 함께라면’을 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29살 아가씨가 일흔살 할아버지인 남자친구를 가족들에게 소개시키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그린 코미디 ‘너와 함께라면’은 홈드라마적인 성격으로 다양한 세대의 관객들이 웃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다른 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정서적으로 많이 닮았어요. 요즘 일본에서 ‘소녀시대’가 인기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한국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는 그는 “일본 드라마는 인물이나 스토리가 뻔하고 점점 재미가 없어져서 한국 드라마가 그 자리를 채우는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웃음을 잃어버린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그의 연극 ‘웃음의 대학’은 한국은 물론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전세계에서 공연되며 호평을 얻었다. “처음엔 라디오 드라마용으로 쓴 작품인데, 이렇게 오랫동안 외국에서까지 사랑 받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특정한 역사적 배경보다는 서슬퍼런 검열을 피해 웃음을 전하려는 극단 ‘웃음의 대학’ 작가가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이 공감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느 나라를 가도 웃는 지점은 다 비슷해요. 역시 웃음은 만국 공통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억지웃음보다 대사와 상황속 재미 전달하고파 일본대 재학 시절부터 극단을 결성해 연극 무대에 참신한 기획의 코미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한 그는 TV 드라마와 시트콤은 물론 국내에도 잘 알려진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의 원작자로서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TV 드라마나 영화보다 ‘웃음의 전염성’이 더 큰 연극에 애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극장이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연극을 보면 내가 웃기지 않더라도 웃게 되는 전염성이 있어요. 미국 사람들은 조금만 웃겨도 웃음이 헤플 정도로 많이 웃는데, 일본이나 한국은 그렇지 않죠. 하지만 웃고 싶지 않아서는 아닐 거예요. 그래서 그들을 웃겨주려고 더 재밌는 작품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미타니 고키는 “관객을 일부러 웃기기보다는 인물 간에 주고 받는 대사를 통해 상황 속에서 웃음과 재미를 전달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웃음에 인색한 한국과 일본 국민들에게 더 많은 웃음을 선사하겠다는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바로 웃음이다. 그가 코미디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저 자신부터 괴롭고 우울하거나 절망했을 때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이나 ‘맥베스’ 보다는 희극을 찾아 보고 힘을 얻게 됩니다. 다른 분들도 코미디를 통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제가 항상 다양한 작품으로 남을 웃기기 위한 작업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佛 “집시촌철거 계속” EU “소수 인종 차별”

    프랑스가 국제적 현안이 된 집시 추방 문제를 놓고 유럽연합(EU)과 기어이 정면 충돌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1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이 프랑스 정부가 추진 중인 집시추방 정책을 둘러싸고 가시 돋친 설전을 벌였다. ●레딩 부위원장, 추방정책 나치에 비유 11월 열릴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역내 국가들 간 사전 의견조율을 위해 마련된 EU 정상회의 오찬장에서 ‘다혈질’로 소문난 사르코지 대통령이 며칠 전 집시정책을 나치 학살에 비유한 비비안 레딩 EU집행위 부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따지자 결국 두 사람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14일 레딩 부위원장 겸 사법·기본권 담당 집행위원의 발언. 레딩 부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특정 소수 인종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공동체 회원국에서 시민들이 추방되는 것을 보면서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면서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다시는 없어야 될 광경”이라고 프랑스 집시 정책을 공격했었다. 당시 즉각 사과 요구 성명을 냈던 사르코지 대통령은 16일 바로수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레딩 부위원장이) 부끄럽고 모욕적인 단어를 사용해 우리 프랑스인들을 경악시켰다.”고 비판하며 “집시 추방을 나치의 유대인 추방·말살에 비유한 것이 집행위원단의 공식 견해냐고 거듭 따졌다. 이에 바로수 위원장은 “소수 인종에 대한 차별은 어떤 경우에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맞섰고 레딩 집행위원의 발언은 개인적 견해가 아니라 집행위원단의 공식 견해라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집시 문제를 둘러싸고 EU와 프랑스 간의 공방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EU 집행부 측은 프랑스 정부의 집시 추방에 대한 위법성 여부를 확인하고 있으며, 프랑스를 상대로 한 법적 조치를 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AP통신 등은 전했다. 지난 14일 레딩 집행위원은 “조만간 EU가 프랑스에 법적인 대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U집행부 佛상대 법적조치 취할 듯 그러나 유럽 동맹국들의 거센 압박에도 프랑스는 ‘기왕에 뺀 칼’을 거둬들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거듭 확인하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을 따로 갖고 “집시 추방을 나치의 유대인 말살에 빗댄 집행위원단의 견해 표명은 언어도단이며, 우리는 앞으로도 불법적으로 설치된 집시촌을 철거할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다큐] 애호가들 갈증 풀어줄 명품 영상

    [다큐] 애호가들 갈증 풀어줄 명품 영상

    TV프로그램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큐 애호가들도 마찬가지. 다큐멘터리 장르에 있어서 신뢰의 상징처럼 된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NGC)과 EBS가 한가위 연휴 동안 명품 다큐들을 잇따라 선보인다. 하나같이 다큐 애호가들의 갈증을 풀어줄 작품들이다. 다큐전문채널 NGC에서는 그동안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던 명작 다큐를 엄선, ‘명작다큐 앙코르방송’을 준비했다. 우선 20~25일 밤 11시 2008년 한국방송대상에서 대상을 거머쥔 ‘차마고도’가 시청자를 찾아간다. 세계의 지붕 티베트를 거쳐 히말라야를 넘고 네팔과 인도에 이르기까지, 험하고도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생생하게 영상으로 담아낸 명작이다. 21~23일 오전 10시에는 8000만년 전 백악기, 한반도에 살았던 마지막 공룡들의 일대기를 담은 3부작 ‘한반도의 공룡’이 방송된다. 2008년 EBS에서 방송된 작품. 급격한 지구환경의 변화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쳤던 한반도의 마지막 공룡 타르보사우루스와 부경 고사우루스, 해남이크누스 등 주변 공룡들의 드라마틱한 삶이 첨단 컴퓨터그래픽기술로 재현된다. 이어 같은 기간 오후 5시부터는 각 분야 최고의 인기 다큐가 안방을 찾는다. 21일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죽음의 공포 속에서 남긴 전쟁의 기록을 살펴보는 6부작 ‘2차 세계대전’ 전편이 방송된다. 22일에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민물고기를 찾아 떠나는 ‘몬스터 피시’가 준비됐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탐험단과 해양 생태학자 제프 호건 박사가 거대 물고기의 숨겨진 세계를 낱낱이 파헤친다. 23일에는 ‘인류재앙 시나리오’가 시청자를 찾아간다. EBS의 한가위 다큐 프로그램도 이에 못지않다. 우선 21~23일에는 ‘추석 특선 앙코르 다큐프라임’을 준비했다. 21일 오후 11시10분에는 ‘한반도의 공룡 1, 2부’가 100분 동안 연속 방송된다. 22일 오후 11시10분에는 ‘한반도의 매머드 1, 2부’가 잇달아 방송된다. EBS 창사 10주년 기념 프로그램으로, 3D로 제작돼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23일 오후 1시20분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인류를 다룬 ‘호모 컨버전스 1, 2부’가, 오후 11시10분에는 100만년 전 한반도에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 등 선사시대 인류를 추적하는 ‘한반도의 인류 1, 2, 3부’가 150분 동안 안방을 찾는다. 아울러 24일 오후 1시55분 ‘추석특집 다큐프라임 스페셜-북극항로’가 전파를 탄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시론] 원로 사회학자에게 보내는 박수/황규호 언론인

    [시론] 원로 사회학자에게 보내는 박수/황규호 언론인

    어떤 이들은 서구 열강이 세계를 마음대로 나누어 차지했던 영토제국주의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고 말한다. 그 대신 문화제국주의라는 새로운 침략 수단이 빈자리로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제국주의는 이 시기에 국한한 현상만은 아닌 듯하다. 오늘날 중국이 주권국가인 우리네 역사를 무시한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속내를 들여다 보노라면, 더욱 그렇다. 이같은 중국의 역사 왜곡은 자기네를 세계 한가운데 놓고, 다른 이웃을 전적으로 얕잡아 보는 역사를 쓰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니까 기원전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악명 높은 지배 이데올로기 중화주의(中華主義)가 오늘의 21세기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 며칠 전 한국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중국인 유엔 고위직 외교관이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는 말을 떠올리면,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땅 한 뼘이 삶보다 중요하다.”는 그의 주장을 곱씹을 때, 지금 중국은 영토제국주의와 문화제국주의가 맞물려 돌아가는 시대를 맞았는지도 모른다. 우리네 자존에 올가미를 씌운 중국 동북공정에 맞설 뚜렷한 학술적 이론은 정녕 없을까. 그렇지 않다는 믿음을 심어줄 저술 한 권이 최근 세상에 나왔다. 이는 역사학자의 저술이 아니거니와, 역사학과 아주 가깝다는 고고학 전공도 아닌 사회학자가 썼다는 점에서 펴뜩 눈길을 끈다. 그동안 고고학계가 밝힌 여러 편린의 학술적 성과를 모아 한국상고사(上古史) 실체에 접근한 저술이고 보면,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을 실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에 원로 사회학자 신용하 교수가 내놓은 ‘고조선 국가 형성의 사회학’에 박수를 보낸다. 사회사로 온통 일관한 저술로 여길지 모르지만, 지은이는 먼저 고고학 쪽에서 한국상고사의 실마리를 찾는다. 이를테면 인류가 혹독한 추위의 구석기시대 빙하기를 용케 버틴 지역을 북위 40도 이남으로 보고, 이때 살아남은 무리가 신석기인으로 진화한 최초의 한국인 원류에 해당하는 한(韓·桓·馬于)부족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원전 1000년쯤부터 한반도에 나타난 신석기시대 유적에 주목하면서, 경기도 양평 앙덕리 등지의 한강 유역에 분포한 덮개돌식(蓋石式) 고인돌을 들추었다. 이와 더불어 남한강 유역의 신석기시대 집자리 출토품인 뾰족밑 빗살문토기에서는 수확한 곡물을 갈무리할 만큼 생산기반을 갖추었던 농업구조 흔적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들 농경문화 주체의 근거지는 한강 분수령을 경계로 물길이 남하한 금강 상류까지를 싸잡아 한강문화권에 넣었다. 그 경제기반으로는 일찍 벼를 심기 시작한 금강 상류의 충북 청원 소로리를 비롯, 한강 하류인 경기 고양 가와지와 김포 가현리 등지의 고대 볍씨 출토 지역을 꼽았다. 어떻든 남성 군장(君長)을 우두머리로 삼은 부계공동체 사회였던 한강문화권의 ‘한’ 부족 주체세력은 북으로 올라가 대동강 유역에 새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맥(貊)’부족 및 ‘예(濊)’부족과 서로 어울려 선돌에 덮개돌을 얹은 덩치가 큰 탁자식 고인돌을 지었다. 탁자식 고인돌은 왕의 권력과 권위를 상징하는 거석문화(巨石文化)인데, 이를 축조할 무렵인 기원전 30세기~기원전 24세기쯤에는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인 고조선이 건국되었다. 이 때 고조선 왕을 배출한 ‘한’부족은 혼인동맹을 통해 ‘맥’부족을 건국세력으로 끌어들였다고 한다. 중국이 마냥 자랑하는 대릉하 유역의 우하량(牛河梁) 유적 출토 토제여신상(土製女神像)은 여자를 부족장으로 삼았던 ‘맥’부족의 모계사회를 상정한 유물로 풀이했으니, 중국은 허탈감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더구나 논픽션의 기자(箕子)동래설을 앞세워 한국상고사의 고조선 실체를 얼버무린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한국을 착한 이웃으로 생각한다면, 동북공정 같은 악성 문화정책보다는 남을 존중하는 상대문화주의의 길로 나오기를 바란다.
  • [씨줄날줄] 라스코 동굴 벽화/함혜리 논설위원

    1940년 9월12일. 프랑스 남서부 도르도뉴 지방의 몽티냐크 마을에 사는 4명의 10대 소년들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베제르 계곡 탐험에 나선다. 중세시대의 고성으로 이어지는 비밀통로가 있다는 전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소나무가 우거진 언덕에서 갑자기 사라진 개를 찾다가 덤불로 가려진 굴 입구를 발견했다. 굴 입구를 6~7m쯤 기어 들어가다가 갑자기 10m를 미끄러져 떨어졌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천장이 높고 상당히 넓은 굴이었다. 다음 날 램프와 밧줄을 가지고 다시 탐험에 나선 소년들은 동굴 벽을 비춰보고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수만년 동안 어두운 동굴 속에서 평화스럽게 잠자고 있던 선사시대 들짐승들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빙하기 말기 인류가 추위를 피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라스코 동굴은 주 동굴과 3~4개의 좁고 긴 방으로 구성된다. 벽면은 800여점의 벽화와 암각화로 아름답게 장식돼 있다. 목탄이나 망간으로 선을 그린 뒤 광석을 으깨 검정, 빨강, 황토색, 갈색으로 채색한 동물 그림들은 매우 다양하다. 거대한 들소부터 말, 사슴, 돼지, 이리, 곰, 새, 그리고 뿔이 하나인 상상의 동물과 점성술사처럼 보이는 인물상도 묘사되어 있다. 1만 8000년 전 구석기 시대에 존재했던 인류가 그렸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역동적이며 사실적인 모습이다. 동물 몸체나 동물 가까이에 그려진 수많은 화살과 덫을 통해 이 동굴 벽화는 오랫동안 사냥과 주술의식을 행하는 장소로 사용됐다고 믿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잠시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이 동굴은 1948년 본격적인 관광명소로 개발됐다. 벽화의 불행도 시작됐다. 역사학자, 인류학자, 고고학자 등 학자들뿐 아니라 대규모 일반인 관광객들까지 몰리면서 동굴의 유물은 훼손되고 벽화에 곰팡이까지 감염돼 급속도로 손상됐다. 급기야 프랑스 정부는 1963년 이 동굴을 폐쇄하고 이곳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실물과 같은 형태로 ´라스코 2´를 만들어 1983년부터 일반에 공개해 왔다. 문화적 가치가 워낙 크기 때문에 비록 가짜이긴 하지만 매년 25만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아 아쉬움을 달랜다. 라스코 동굴 발견 70년을 기념해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 내외가 실제 라스코 동굴을 한 시간여에 걸쳐 관람했다. 동굴벽화 보존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이들이 누린 ‘특별한 혜택’에 비난이 쏟아졌다. 우리나라의 공정사회 논란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아무래도 좀 씁쓸하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日 100세이상 행방불명 23만명

    일본에서 호적상 생존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주소지가 파악되지않고 있는 100세 이상 고령자가 23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법무성은 100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전국 호적조사 결과, 호적에는 생존해 있지만 주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사람이 23만 4354명이라고 밝혔다. 이들 가운데 120세 이상은 7만 7118명, 150세 이상은 884명이었다. 법무성은 “2차 세계대전 전후의 혼란기와 해외 이주 등으로 사망했으나 사망신고나 실종신고가 접수되지 않은 사례가 많다.”면서 현주소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 호적 원부에서 삭제하도록 각 법무국에 통지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국민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등의 행정서비스는 주민등록표를 토대로 하고 있어 이번 법무성의 조사가 행정상에는 영향이 거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100세 이상 행방불명자는 도쿄, 오사카, 효고, 후쿠오카, 오키나와 등이 각각 1만명 이상이었으며, 150세 이상 행방불명자는 군마현이 184명으로 가장 많았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왜 아프리카 음식점은 없을까

    왜 아프리카 음식점은 없을까

    “그 빌어먹을 인류학 프로젝트를 하려는 것이라면 내 앞에서 당장 꺼지시오.” 아메리카 원주민인 한 은세공 기술자가 인터뷰를 요청하는 백인 인류학자에게 한 말이다. 인류학에 대한 인상은 다양하다.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자 ‘미개한’ 민족들을 재단하고 규정했던 편견의 학문, 또는 낯선 문화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탐색하고서 그럴싸한 논리로 설명하는 지식인의 취미나 여가생활 같은 학문. 어찌 되었든 인류학이란 타자를 관찰하고 나름의 논리로 정의하는 ‘일방적인’ 학문이란 느낌이었다. 제국주의 시대를 지나 세계화의 부작용이 곳곳에서 발견되는 시점에 인류학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타자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관찰하는 특성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류학은 학문이나 사회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도식을 부수는 힘을 갖추었고, 이 힘을 응용해 진화하고 있다. 제국주의 이론을 정당화하고자 태어났으나 오히려 타자를 이해하고 온갖 가짜 이데올로기를 깨뜨리는 힘을 역설적으로 갖게 됐다. ‘잭 구디의 역사인류학 강의’(잭 구디 지음, 김지혜 옮김, 산책자 펴냄)도 이러한 시각으로 역사인류학을 선보인다. 잭 구디가 역사인류학자가 되기로 한 것은 아주 우연한 경험 때문이다. 원래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던 구디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다. 포로수용소에서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와 당시 최고의 인류학자이던 고든 차일드의 ‘역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읽고 전공을 인류학으로 바꾸게 된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인류학이 아니라 인간 삶의 시간적 측면, 즉 역사적 감각을 더한 역사인류학 연구를 하게 된다. 특정 문화를 관찰한 결과로 인간의 본성을 환원하거나 인류 문화의 다양성만을 되풀이하는 구식 인류학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구조적으로 변화하는 계기와 원인에 관심을 둔 것이다. 한마디로 “왜 어떤 일이 한 곳에서는 일어나는데 다른 곳에서는 일어나지 않는가?”가 구디의 인류학 연구가 던지는 질문이다. 구디가 주로 다루는 음식, 사랑, 문자라는 세 가지 키워드는 분절된 것이 아니라 문명 속에서 하나로 얽혀 나타나는 현상이다. 음식 만들기와 먹기는 그저 생존만을 위한 행위가 아니다. 계급과 사회구성이라는 거시적 범주에서부터 조리법과 입맛에 이르는 미시적 범주까지 ‘먹기’의 위력은 문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척도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어떻게 중국 음식점은 서구 사회에 깊이 파고들 수 있었을까. 서구로 이주한 아시아 노동자들의 식생활은 백인들의 입맛까지 바꾸어 놓았다. 중국인은 일찍부터 발달한 도시 문화를 갖고 있어 음식점 경영에 익숙했으며, 값싼 재료와 쉬운 조리법으로 음식 사업의 우위를 점했다. 또 고급 요리는 계급의 분화가 일어난 사회 특유의 현상이라고 구디는 설명한다. 상층 계급과 하층 계급이 구체화하지 않은 사회에서 지배층은 피지배층보다 단지 더 많이 먹었을 뿐이다. 그러나 계급 차이가 발달하면 상층 계급은 희귀한 재료와 정교한 조리법으로 자신들만의 ‘먹는 문화’를 만들고, 사치 금지법을 통해 이 ‘다르게’ 먹는 문화를 독점하려고 든다. 아프리카 요리가 없는 까닭도 계급이 정교하게 분화되지 않았고 지속적인 문자 전통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요리는 고급화되고 기록되어 세계에 선보이지 못했으며 호텔 요리나 레스토랑처럼 자본화되지도 못했다. 저자는 ‘로맨틱한 사랑’을 통해 동양과 서양이란 이분법적 사고의 틀도 깬다. 로맨틱한 사랑이란 개인이 자아를 강하게 인식하고 자신의 삶을 한 편의 드라마로 받아들일 때 일어나는 고도로 문명화된 개념이라는 게 구디의 설명이다. 글이 확산되고 여성들의 교육이 일반화되면서 여성들은 성취와 오락의 수단으로 로맨스와 소설로 향했다. 로맨틱한 사랑은 추상적인 근대화가 아니라 글을 아는 여성들에 의해 확산되었으며 저자는 그 예로 중국 시에 등장하는 뜨거운 사랑의 심상, 원시 부족들의 사랑 노래 등을 제시한다. 2만 3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2차대전 참전 63國 승인 “독도는 한국땅” 지도 공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미국·옛 소련·프랑스 등 참전 63개국이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표기한 지도가 1일 공개됐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1945년 종전 직후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지령 제677호로 제작한 지도를 공개했다. 박 의원이 러시아에서 입수한 이 지도는 러시아어로 표기돼 있는데 38선을 기준으로 북한과 남한을 분할하고, 울릉도와 독도를 한국 영토로 표기한 반면 대마도는 일본 영토로 명기해 놓고 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하와이 한인포로 2600명 명부 공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징용됐다가 미군에 포로로 잡혀 하와이수용소에서 생활했던 한반도 출신 2600명의 명부가 공개됐다고 아사히신문이 30일 보도했다. 이들 한국인 포로 명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하와이수용소에서 생활했던 징용 한국인 포로의 유족이 ‘재일한인역사자료관’에 기증하면서 공개됐다. 1945년 12월15일이라는 날짜가 기록된 이 명부는 하와이수용소에서 발행된 것으로 보이는 주간 ‘자유한인보’의 부록으로 추정된다. 명부의 존재는 1992년에 알려졌으나 유족이 이를 보관하다가 ‘귀중한 자료인 만큼 연구에 활용됐으면 좋겠다.’며 이달 재일한인역사자료관에 기증했다. 이 명부를 하와이수용소에서 지니고 귀국해 아이치현 오카자키시에 거주했던 재일 한국인 1세는 생전에 “괌에서 미군 포로가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감안할 때 당시 하와이 포로수용소에는 남태평양 지역에서 미군의 포로가 된 한반도 출신자들이 다수 수용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강덕상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관장은 “일본의 탄광이나 군수공장 외에 전쟁터에서 일본군의 토목작업원 등으로 강제로 끌려갔던 한국인도 많다.”면서 “모든 남방 전선에서 이들 한국인 유골이 잠자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할아버지 무릎 위에서 듣는 역사

    오스트리아의 세계적 석학 에른스트 H 곰브리치(1909~2001)의 ‘서양미술사’는 32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으로 600만부 이상 팔렸다. 지금도 미술관 순례가 많은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에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꼽힌다. ‘곰브리치 세계사’(박민수 옮김, 비룡소 펴냄)는 곰브리치가 청소년을 위해서 쓴 세계사 입문서다. “모든 이야기는 ‘옛날 옛적에’란 말로 시작한다.”로 말문을 여는 이 책은 1936년 초판이 나왔다. 곰브리치의 역사관은 “역사를 거대한 시간의 강물에 견줄 때 아주 작은 물방울에 불과한 개인의 삶들이 인류의 역사를 이룩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사건들 가운데 어떤 것이 대다수 인간의 삶에 영향을 끼쳤으며 우리의 기억에 가장 크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란 단순한 물음에서 곰브리치는 세계사의 의미를 찾았다. 원시 인류의 등장부터 문자의 탄생, 여러 종교의 발전, 신대륙 발견, 산업 혁명, 두 차례의 세계대전 등 세계사의 흐름을 쉽고도 자상하게 들려준다. 막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독일의 나치는 초판이 나온 ‘곰브리치 세계사’를 금서로 지정했다. ‘반유대적 동기가 아니라 평화주의 관점을 가졌다.’는 어이없는 이유에서였다. 전쟁이 끝나고서 금서에서 풀린 ‘곰브리치 세계사’는 1985년 개정판을 출간하면서 저자가 직접 겪은 제2차 세계대전과 중국 역사 등을 추가했다. 예술사를 연구한 곰브리치가 세계사 책을 출간한 까닭은 그의 손녀 레오니 곰브리치가 설명해 준다. 곰브리치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어린이를 위한 역사책을 내고 싶어하는 책 편집자였던 친구와 연이 닿았다. 박사 논문을 쓰기에 지쳤던 곰브리치는 친구의 어린 딸과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학문적 글쓰기에 싫증 났던 그는 이 편지를 무척 즐겼다고 한다. “대부분의 문제는 복잡한 전문 용어가 아닌 쉬운 말, 총명한 아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곰브리치는 어려운 학문 주제를 어린이에게 편지로 쉽게 설명했다. 이 편지는 편집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90년대 들어 저서를 영어로 번역하게 된 곰브리치는 손녀에게 “‘곰브리치 세계사’를 다시 읽어 봤더니 정말로 많은 내용이 담겨 있더구나. 내가 봐도 훌륭한 책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곰브리치는 “독자들이 필기하고 이름이나 연대를 외운다는 부담없이 느슨한 마음으로 읽어 나가길 바란다.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하려고 꼬치꼬치 질문도 않겠다.”고 머리말에서 밝혔다. 책을 읽노라면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를 무릎에 앉히고 난로가에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 든다. 1만 7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아우슈비츠, 발견된 수술도구 ‘인체실험-불임 목적’

    아우슈비츠, 발견된 수술도구 ‘인체실험-불임 목적’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 수용소 인근 주택에서 150 개 이상의 부인과 수술도구가 발견됐다. 프랑스 통신사 AFP 등 현지 매체들은 수술도구의 발견소식과 함께 “기구들이 발견된 주택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수용소로 둘러싸여 완전히 폐쇄됐던 지역이다”고 보도했다. 조사결과 이 기구들은 당시 여성 수용자들에게 ‘우월한 여성 배양’을 목적으로 잔인한 인체실험을 행했던 외과의사 카를 클라우베르크의 것으로 드러났다. 클라우베르크가 열성인자로 구분된 여성들을 ‘불임’ 시킨다는 목적으로 진행한 실험은 30cm가량의 쇠막대로 여성의 둔부와 생식기를 휘젓는 것이었다. 수백여 명의 여성 수용자들은 실험에 동원돼 고통 받았고 살균, 검열을 목적으로 실험되다가 사망했다. 그는 1945년 1월 옛소련의 ‘붉은 군대’ 나치를 몰아내자 독일 베를린 근처의 라벤스브뤽 여성 수용소로 자리를 옮겨 실험을 계속했다. 그러던 6월 소련인들에게 체포돼 25년형을 받은 그는 1955년 서독으로 보내졌다. 이곳에서 수용소 생존자들에 의해 또 다시 기소됐다. 그로부터 2년 뒤 1957년 숨졌다.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처음에는 폴란드 정치사범을 수용하기 위해 세워졌지만, 유럽 유대인을 집단학살하는 장소가 됐다. 사진 = AFP 통신 온라인 캡처 서울신문NTN 전설 기자 legend@seoulntn.com ▶ 려원, 볼살 오른 최근모습…"살쪘다 vs 지방주입?"▶ 송혜교, 가을패션 화보공개…공주느낌 폴폴▶ 9월의 신부 이유리, 웨딩화보 공개…고혹미 물씬 ▶ ‘이기적 몸매’ 유인영 뱃살 굴욕?…타이트한 옷 때문▶ 송지효, 건강미 넘치는 피부+몸매 시선고정
  • 폭풍에 쓰러진 ‘안네 프랑크 나무’

    폭풍에 쓰러진 ‘안네 프랑크 나무’

    안네 프랑크의 ‘꿈 나무’가 끝내 쓰러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치하에서 숨어 살던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1929년 6월~1945년 3월)에게 위안이 됐던 밤나무가 폭풍에 부러졌다고 23일(현지시간)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안네 프랑크 기념관 측은 “이날 오후 몰아친 강한 비바람에 지상에서 약 1m 되는 부분의 나무둥치가 부러졌으며, 인명 피해나 주변 건물의 손상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가족과 은둔하는 동안 어린 안네가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며 위안을 삼았던 이 나무의 나이는 150~170년. 뿌리 부분에 곰팡이가 슬어 주변 건물을 덮칠 수 있다는 이유로 한때 베어질 위기에 처했으나, 1년여의 법정공방 끝에 2008년 초 ‘현장보존’으로 가닥을 잡았다. 당시 안네 프랑크 재단(SAFTF)은 5만유로(약 7500만원)를 들여 나무에 철제 버팀목을 설치했다. 안네의 밤나무가 쓰러졌다는 소식이 전해지기 무섭게 온라인 경매사이트에는 부서진 밤나무 조각을 판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999만 9999유로(약 150억원)에 사겠다는 응찰자가 있어 눈길을 끌었지만 매매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일제 징용자 유골 42구 한국서 유족확인

    일제 식민통치 하에서 한반도에서 일본의 탄광이나 공장에 끌려가 일하다 숨진 ‘민간 징용자’로 보이는 유골 중 42구의 유족이 한국에서 확인됐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중 사망해 일본 각지의 사원이나 납골당 등에 안장돼 있는 유골의 수는 7월 말 현재 2643구. 이 가운데 765구가 한반도 출신 유골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 정부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 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이들 765구의 이름과 생년월일, 본적지 등으로 신원확인작업을 벌인 결과 42구의 유족이 확인됐다. 21구는 신원은 확인됐으나 유족의 소재지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번에 확인된 42구 등 민간징용자 유골의 반환을 일본 측에 거듭 요구하기로 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美 육군병원에 울려퍼진 ‘報恩의 선율’

    美 육군병원에 울려퍼진 ‘報恩의 선율’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국 전쟁 때 한국을 도와주고, 지금도 우리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지켜 줘서 감사합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월터리드 미육군보훈병원에서는 작지만 뜻 깊은 공연이 열렸다. 1909년 설립된 월터리드 육군병원은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 베트남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부상 미군들을 진료해온 최고의 미 육군병원이다. 미 버지니아주 패어팩스카운티의 한인 중·고생으로 구성된 음악자원봉사단체인 컴패션 뮤직 벌룬티어(Compassion Music Volunteers)는 부상당한 참전 군인들과 병원 직원들을 위해 구내식당에서 1시간여 동안 ‘보은’ 콘서트를 열었다. 병원 공보과 직원 데이비드 디킨슨은 “전문 연주단의 위문 공연은 더러 있지만 어린 학생들의 공연은 전례가 없었다.”면서 “특히 한국 학생들이 병원에 들어와서 공연을 한 것은 특별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관용(16·토머스제퍼슨고)군은 “태어나기도 전 일이지만 한국전 때 도와준 미군에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연주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서예현(14·토머스제퍼슨고)양은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어린이이기 때문에 전쟁이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도 담았다.”고 말했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 공연을 즐긴 환자들과 병원 관계자들은 한 곡 한 곡 연주가 끝날 때마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했었다는 간호부 소속 데니스 히긴스 소령은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병원 직원들에게는 잠시나마 휴식을 주는 시간이었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2008년 5월 결성된 ‘컴패션 뮤직 벌룬티어’는 매월 한 차례 지역 양로원에서 자원봉사 공연을 해오고 있다. 구호단체들과 연계한 에티오피아 아동돕기, 아이티 지진재해돕기 기금 마련 공연과 독도 알리기 공연도 펼쳤다. 글 사진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열린세상] 일본의 잠수함 능력/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 교수

    [열린세상] 일본의 잠수함 능력/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 교수

    일본은 1976년부터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잠수함 16척 체제를 유지해 왔다. 16척 체제지만 매년 1척씩 퇴역시키고 1척을 새로이 건조해 왔기 때문에 가능한 한 모든 첨단 기술을 적용하며 아시아 최강의 잠수함 국가로 발전했다. 한국이 보유한 잠수함 중 가장 큰 것은 1800t인데 일본은 4100t이다. 잠수함의 형태를 눈물방울형에서 담배모양의 형태로 바꾸면서 상대방의 음향추적을 피하기 위한 음향흡수장치를 외관에 붙여 ‘음향스텔스 잠수함’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북한의 천안함 공격을 계기로 16척 체제에서 18척 체제로 군사전략을 수정하려 한다. 이번에도 북한이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돕고 있는 것이다. 통한의 식민지배를 당한 지 100년이 되는 해에 북한은 일본이 군사력을 증강할 수 있도록 빌미를 주고 있는 것이다. 1998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실험을 구실 삼아 일본은 미사일방어체제(MD)를 미국과 마련했고 첩보위성 4기 체제로 인공위성을 군사용으로 사용하는 길을 마련했다. 자위대와 군사력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헌법 제 9조 때문에 엄두도 못 낼 일들이었다. 일본이 18척이라고 하지만 퇴역한 잠수함을 연습함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는 계상하기 쉽지 않다. 일본의 잠수함 전력을 아시아 최강이라고 평가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오래된 풍부한 경험이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도 잠수함 운용 경험이 많은 일본은 미국과 함께 동북아 해저에서 활동하는 상대방 잠수함의 음문(音紋)을 거의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음문이란 사람의 지문(指紋)처럼 잠수함마다 제각기 내는 소리의 특성이 있는데 이 데이터를 오랜 역사를 통해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잠수함에 상대방 잠수함이 발각되면 어느 국가의 어떤 종류의 잠수함이라는 것을 식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섬나라인 일본은 오래 전부터 바다 밑 방어를 위해 해군력을 착실하게 증강시켜 왔다. 그러기에 상대방 잠수함 식별 능력뿐 아니라 대한해협, 동북아 해역, 동지나해, 남지나해까지 해군 능력을 키워 왔다. 연전에 중국 잠수함이 일본 영해에 들어가려다 발각된 것도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 그리고 일본 자체의 대잠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 공작선이 일본 영해에 침투하려다 발각되는 것도 일본의 해양감시 그리고 그들의 해상교통로를 지키기 위한 수단들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잠수함 킬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대잠초계기 P3-C를 한국은 10여기 갖고 있는데 일본은 100여기를 보유하고 있다. 때로는 대잠 초계기가 잠수함 추적을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심되는 지역에 여러 대를 한꺼번에 투입하여 탐색에 나서는데 세계에서 작전 영역에 비해 가장 많은 대잠 초계기를 갖고 있는 이유를 알 만하다. 잠수함 전력은 군사전력 중에서 최후의 군사력이라 불린다. 그 이유는 은밀하기 때문이다. 수심 100m가 주 활동 무대이지만 해저 400m 아래로도 내려갈 수 있는 잠수함이기 때문에 바다 밑 어디에 배치되어 있는지 쉽게 알 수 없어 상대방에 몰래 접근해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래서 가장 두려운 공포의 군사전력이 잠수함 전력이다. 천안함 사태가 잠수함 공격의 공포스러움을 실감하게 했다. 북한보다 한참 뒤진 한국의 잠수함 전력은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유비무환의 대비태세를 갖추지 않으면 언제 또다시 불행을 자초할지 모른다. 그동안 우리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 밑 방어에 대해 소홀했던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월26일 천안함에서 46인의 아까운 희생이 있었던 것을 계기로 방어태세에 대한 장비의 도입과 작전개발 등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가장 걱정스러웠던 점은 국민의 안보불감증이었는데 천안함 사태로 안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만큼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에 돌아보는 한국의 안보는 여전히 불안하다. 국력을 높이는 일에 온 국민이 노력할 때 역사의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 남북통일비용 국제사회 분담 추진

    외교통상부 고위 관계자는 16일 남북한 통일 비용과 관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가 공동 부담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언급은 이명박 대통령이 전날 통일세 도입 등 ‘본격적인 통일 준비’를 천명한 이후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 관계자는 “독일 통일의 사례에 비춰 남북한 통일 비용도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남한이 혼자서 그 부담을 짊어지는 데는 엄청난 무리가 따를 것”이라면서 “우리 스스로 부담하는 통일세 도입은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통일 기금을 모금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구상에 대해 정부 내부적으로 공감대가 있다.”고 말해 통일 임박 시 정부가 실제 이 같은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일부 외교부 당국자들은 이미 몇몇 국제회의 석상에서 이 같은 구상을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자료 등에 따르면 북한이 갑작스럽게 붕괴할 경우 2040년까지 대략 2525조원의 통일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독일은 통일 비용으로 20년간 무려 3000조원을 썼다는 추정치가 나온 바 있다. 관계자는 “남북한 통일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동북아 평화는 물론 세계 평화에 기여하게 된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부각시켜야 한다.”면서 “이를 명분으로 미국, 일본, 중국, 유럽 등으로부터 통일 비용을 당당하게 갹출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은 물론 중국도 ‘북한 리스크’ 감소로 경제발전에 혜택을 보게 된다는 점을 우리 입장에서는 강조할 명분이 있다. 또 2차 세계대전 직후 마셜플랜(유럽부흥계획·ERP)으로 유럽을 부흥시킨 경험이 있는 미국과 그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은 유럽에도 동참을 촉구할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각국에 직접적으로 통일 비용 분담을 요청하는 방안 이외에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로부터 원조를 받는 방안도 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을 개발이 필요한 빈곤 지역으로 규정하면 국제기구로부터 도움을 받을 명분이 생긴다.”면서 “유엔개발계획(UNDP),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관련 국제기구의 원조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나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 쓴다”

    “나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 쓴다”

    “도시의 왕이 비틀거리면 사람들은 그가 허리를 숙였다고 말하지만, 그는 허리를 숙이고 죽입니다.” 16일 중앙대 아트센터 대강당에서 열린 14회 국제비교문학대회에 참가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르타 뮐러(57)는 덤덤한 말투로 기조강연을 이어갔다. 강연 제목은 ‘이발사, 머리카락 그리고 왕’. 지난해 노벨상 수상 연설 때 할머니가 건네던 ‘손수건’을 화두로 삼았듯, 어찌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은 작은 키워드로 자신의 체험과 작품 세계를 설명해 나갔다. 할아버지 때의 1차 세계대전과 민족주의 광풍, 부모와 자신 세대에 있었던 2차 세계대전과 나치즘, 그리고 조국 루마니아에 드리운 독재의 풍경 등에 대한 세세한 증언이 이어졌다. 반항하면 겉으로는 사과하고 미안한 척 고개를 숙일지라도, 속으로는 좀 더 악랄하게 괴롭힐 거리를 뒤지는 것은 모든 독재자들의 공통점일 듯. 뮐러의 장점은 이를 한폭의 풍경화를 그려내듯 생생하게 묘사하는 데서 멈춘다는 것이다. 목청 키워 주장하거나 억울했노라 울부짖지 않는다. 그저 그때 그랬노라고만 말을 끊는다. 노벨상 수상에는 그런 문학성도 영향을 끼쳤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마음짐승’ 등 뮐러의 대표작도 그의 방한에 맞춰 잇따라 국내에 번역 출간되고 있다. 다음은 기조강연 뒤 기자들과 가진 일문일답. →방한 소감은. -(한국 방문은) 처음인데 어제(15일) 와서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광복절 행사를 호텔에서 (TV로) 지켜봤는데 묘했다. 남한에는 이런 민주주의가 있는데 북한은 아직도 뒤떨어진 독재를 하고 있다. (가까이 붙어 있는) 남북한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과 루마니아는 절친했던 관계다.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있나. -(루마니아 독재자인) 차우셰스쿠와 김일성의 관계는 유명하지 않았나. 유감스럽게도 차우셰스쿠는 북한을 모델로 삼았다. 문화혁명이라는 것도 그대로 가져왔고, 인물 숭배나 부자 세습도 그대로 가져오려 했다. →그런 느낌이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을까. -난 루마니아인이다. 한국작가들이 이미 그런 주제를 많이 다뤘으리라 생각한다. 어쩌면 그런 작품을 하나쯤 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로선 아니다. →작품을 보면, 몹시 어두운 유년기가 연상된다. -맞다. 시골에서 가난하게 자랐고 독재자의 시대를 살았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것은 언제나 순간적인 것이다.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 행복해도 끝까지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불우함이 끝까지 영향을 주진 않는다. →당신의 작품은 고발인가, 기록인가. -1980년대 말 독일로 망명한 뒤에도 루마니아에는 독재가 계속됐고, 독재정권이 망가지는 것까지 지켜봤다. 고발인가 기록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치 않다. 문학은 변혁을 이뤄내는 것 같은 그런 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아주 작은 사물과 개인에 대한 작업이라 생각한다. 텍스트에 고발 자체가 있다면 그것은 문학이 아니라 정치적 팸플릿이라 생각한다. 난 담담히 기록해둔 것이고, 독자가 읽다가 분노를 느낀다면 그것은 고발이 된다. 내 작품은 나 스스로 분명히 하기 위해, 또한 살기 위해, 나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 쓴 것이다. →국내 소개되는 책들이 주로 초기 10년작들인데 후기작들은 어떤가. -초기 10년작은 주로 루마니아(시절) 때 쓴 것이어서 마음이 항상 불안했다. 빨리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었다. 그래서 주로 단편이었다. 독일로 건너가서는, 이를테면 ‘허파’가 생겨났다. 조금 더 여유를 갖고 길게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까 말했듯, 문학은 사소한 것들을 다루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작품세계에 그리 큰 변화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노벨상 수상 뒤 변화는. -없다. 난 똑같은 사람이다. 공적인 자리가 많아져서 좋은 면도 있는데, 책상 앞에 앉아 종이를 대면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다만 내 작품 때문에 사람들이 독재를 잊지 않고 독재에 대해 많은 얘기들을 해서 좋은 점은 있다. →끝으로 작가 지망생들에게 해주고픈 말은. -없다.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고,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이대통령 8·15 경축사] 日 야스쿠니 대신 전몰자 묘원 헌화

    일본 민주당 정권은 집권 뒤 처음 맞은 8월15일 ‘종전기념일’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았다. 간 나오토 총리를 포함, 대신(장관), 부대신(차관), 정무관 등 각료 전원은 이날 야스쿠니신사 대신 도쿄에 위치한 전몰자 묘원을 방문해 헌화했다. 각료 전원이 종전기념일에 야스쿠니를 찾지 않은 것은 1980년대 이후 처음이다.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 대해 신경 씀으로써 자민당 정권과의 차이를 국내외에 호소하려는 의도라고 교도통신은 분석했다. 간 총리는 이후 도쿄 무도관에서 열린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역대 총리와 마찬가지로 “아시아 여러 국가의 사람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며 가해 책임을 언급한 뒤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고, 세계 영구 평화의 확립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도 “역사를 돌아보고 전쟁의 참화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절실히 바란다.“고 밝혔다. 반면 자민당이 중심이 된 ‘다함께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의원모임’ 소속 여야 의원 41명은 이날 야스쿠니를 집단참배했다. 간 총리는 지난 10일 담화에서 밝힌 ‘조선왕실의궤’의 반환을 위해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를 특사로 서울에 파견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카다 가쓰야 외무상도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한반도에서 유래한 도서를 한국 측에 인도하기 위한 조약을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승인받을 수 있도록 각 당에 협조를 요청하겠다.”며 한국 측과 조약체결을 통해 조선왕실의궤 등을 반환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1993년 8월부터 94년 4월까지 총리를 지낸 호소카와 모리히로(72) 전 총리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간 총리의 한·일 강제병합 100년 담화에 대해 “한일병합은 힘을 배경으로 일본의 무력에 의해 강제된 것”이라며 간 총리가 담화에서 병합의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은 데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을 ‘침략전쟁’이라고 발언했다가 파문을 일으킨 것과 관련, “상식적으로 중국과 한국, 동남아시아에 큰 고통과 희생을 유발한 만큼 가슴에 손을 얹고 보면 침략이 아니었다고 할 수 없다.”고 회고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등장인물들의 ‘상징성’ 뜯어보니

    많은 평론가들이 ‘파리대왕’을 수많은 상징적 요소들로 겹겹이 쌓여있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대장이자 이 소설의 주인공 격인 랠프는 상식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성을 상징하고, 랠프에 반기를 들고 사냥부대를 이끄는 잭은 권력 지향적이고 야만적인 인간을, 그리고 랠프의 충실한 친구이자 심복 노릇을 하는 새끼돼지는 무능력한 문명을, 잭의 행동참모 격인 로저는 금기에서 해방된 파괴주의자를, 어딘가 모르게 심약해보이나 아이들의 불안을 대표적으로 잘 표현해 주고 있는 사이먼은 순교자의 모습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작품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아무리 어렵다고 소문난 작품을 읽더라도 기죽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리하는 일과 해결하는 일은 다르다.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에 가서 하나의 의미로 정리하는 일은 한 사건의 종결로서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순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 그 사건이 해결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흔히 익히 알고 있는 지식들로만 하나의 사건을, 인물을, 사물을 파악하고 그것으로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고개를 끄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사건은 ‘나의 이해’ 밖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내가 이해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건이 과연 몇이나 될까? 물론 ‘파리대왕’은 작가 윌리엄 골딩이 2차 세계대전에서 경험한 수많은 이미지들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파리대왕’은 핵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장을 본 인간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질문이다. 그러니 작품 속의 인물들이 분명 어떤 상징을 담고 있는지 파악했다고 해서 딱히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다. ‘파리대왕’의 인물들과 그 상징은 2차 대전이 만들어낸 괴물이 아니다. 그들은 그 이전에도 존재했고, 그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있다. 이 일상의 인물들이 바로 2차 대전이라는 잔혹한 전쟁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그야말로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리고 그 끔찍한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는 ‘파리대왕’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윌리엄 골딩의 질문은 책을 덮는 순간에 다시 시작인 것이다.
  • [글로벌 시대] 한국의 광복과 역사의 그늘/아르촘 산지예프 로시스카야 가제타 서울특파원

    [글로벌 시대] 한국의 광복과 역사의 그늘/아르촘 산지예프 로시스카야 가제타 서울특파원

    최근 몇 주 간 극심한 더위가 유럽을 강타하고 있다.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하여 경작지와 마을이 잿더미가 되고 있기도 하다. 자연재해는 우리 세계가 얼마나 견고하지 못한지, 한순간에 어떤 심각한 변화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일깨워 준다. 이번 여름의 무더위로 수많은 나라가 겪고 있는 불행은 오래전의 사건, 즉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 되고 있다. 물론 그 원인이야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피해와 희생은 지구상에 발생했던 그 어떤 자연재해보다 훨씬 더 심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제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통치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지 65년이 되는 날이었다. 9월2일에는 전 세계가 6년간 지속되면서 수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했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을 맞게 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을 일본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대일전쟁은 유럽에서 시작된 세계대전의 논리적 귀결이었다. 대일전쟁은 소련군이 참전하기 몇 년 전에 미국이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은 주로 공중과 해상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의 육상 주력부대인 ‘관동군’은 당시 중국 북동부에 배치되어 있었다. 대일전쟁에 참전한 소련은 바로 이 관동군을 격파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1945년 8월9일 소련군은 국경을 넘어 관동군의 한반도 퇴로를 차단했고, 관동군은 몇 주 만에 궤멸됐다. 이 과정에서 소련군은 4700명이 전사했는데, 그중 1963명이 한반도에서 전사했다. 당시 모스크바의 조치 덕분에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일본인들이 남겨두고 간 한반도의 인프라와 산업시설도 보존될 수 있었다. 소련 정부는 주로 한반도 북부를 지원했으며, 그 결과로 한반도 북부에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건설됐다. 당시 모스크바의 정책은 주로 대외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동기에 따른 것이었다. 따라서 한반도 해방에서 소련의 역할에 관한 기억은 소련군의 묘지와 기념비가 남아 있는 북한에서 주로 유지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세계사의 흐름은 한민족의 운명에 커다란 시련을 안겨 주었다. 해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반도는 양분됐고, 서로 다른 정치체계를 추구하는 두 개의 국가가 형성됐다.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진 한국전쟁과 냉전은 오랜 세월 동안 한민족을 분단시켰고, 한국인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최근 새로운 문서들이 공개되면서 역사학자들이 당시의 사건들을 재검토하고 있으며, 새로운 의견과 가설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의견이 항상 객관적인 것은 아니며, 때로는 완전한 정치적 색채를 띠기도 한다. 전쟁에서 공정한 측면을 찾는다는 시도는 대부분 저급한 센세이션을 일으키거나, 전쟁을 겪어본 적이 없어 TV를 통해서만 전쟁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사고를 교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나는 그 어떤 전쟁도 본질적으로 침략행위이므로, 거기에서 미덕을 찾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 침략자에 맞서는 것이라고 해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공동의 적이 어떤 슬픔과 고통을 초래했고, 많은 사람의 운명을 망쳐 놓았는지에 대해서보다는 그 적에 맞서 싸웠던 여러 국가들 간의 우호와 협력에 대해 말해야 할 것이다. 오래전에 발생했던 비극에 대해서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청년들이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조상들의 희생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국정부가 개최하는 대규모 행사들을 항상 환영하는 입장이다. 미래세대 교육에서 자국의 역사를 알도록 하는 것은 극히 중요하다. 지난 세월의 사건들에 관한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 역사 스스로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상기시키려 할 것이고, 산불의 연기와 같은 위협적인 그늘이 드리워지게 될 것이다. 한국의 독립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연합국의 공동노력의 결과였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혈전을 벌였던 한국 독립투사들의 공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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