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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백억원 상당 은괴 실은 ‘보물선’ 찾았다

    수백억원 상당 은괴 실은 ‘보물선’ 찾았다

    미국의 해저수색 전문 업체 ‘오디세이 마린탐사’(Odyssey Marine Exploration)가 바다 밑에 잠자던 ‘보물선’을 또 찾아냈다. 이번에는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북대서양에서 격침돼 2400m 아래로 침몰한 영국의 화물선인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플로리다 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오디세이 마린탐사 측은 10일(현지시간) “1917년 2월 9일 독일의 잠수함(U-보트)의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한 영국의 화물선 만톨라(SS Mantola)호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오디세이 측은 만톨라 호가 당시 가입했던 보험내용으로 미뤄 700만 온스(약 17t) 은괴를 싣고 가던 중에 격침당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재의 시세를 따른다면 이 정도 은괴는 1900만 파운드(한화 약 345억 5860만원)상당이다. 내년 봄 배 인양작업을 통해 수송물을 건져낸다면 그 안에 있는 은괴 80%가량이 오디세이 소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오디세이 측은 영국 화물선 게르서파(SS Gairsoppa)호를 발견했다고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한 바 있다. 1941년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어뢰에 격침된 게르서파 호는 해저에서 찾아낸 귀금속류로는 최고가인 시가 1억 5000만 파운드(약 2850억원)에 이르는 은괴가 실려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화물선이다. 오디세이를 ‘돈방석’에 올려놓을 지도 모르는 두 화물선의 인양작업은 내년 봄께에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두 화물선의 발견 지점은 불과 100마일(16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오디세이 측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해저 보물선을 찾아낸 바 있다. 2007년에는 대서양에서 약 50만 개의 금화를 싣고 1804년에 침몰한 스페인 보물선을 발견했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외국인 최초 가야금 독주회 여는 조세린 배재대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외국인 최초 가야금 독주회 여는 조세린 배재대 교수

    ‘다스름’이라 한다. 판소리에서 목을 푸는 것이다. 가야금 연주에서의 첫 시작도 그렇다. 무대는 전통 한옥이다. 처마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서서히 잦아든다. 앞뜰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도 잠시 멈춰진다. 사람들의 숨소리 또한 그렇다. 여인의 열 손가락이 가야금 열두 줄을 타기 시작한다. 느린 진양조장단에서 시작된 가야금 소리는 중모리에서 중중모리, 자진모리에서 휘모리로 잘도 넘어간다. 줄을 희롱하듯 농현(絃)한 지경에 다다른다. 이윽고 많은 박수갈채가 이어지고…. ●국악으로 하버드대서 박사학위 받아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았다가 우연히 이런 광경에 매료돼 국악을 배우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하지만 외국인이 직접 무대에 올라 국악기로 연주 발표회를 갖는 경우는 거의 없을 듯싶다. 우선 한글을 배우기가 어렵고, 가야금 등의 전통 국악기 또한 배우기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오는 15일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당에서 보기 드문 국악 행사가 열린다. 미국인 여성 조세린(41) 배재대 교수가 가야금 독주회를 처음 갖는 것. 그의 본명은 조셀린 클라크(Jocelyn Clark)로, 알래스카에서 태어나 22살 때 한국에서 가야금을 처음 접했다.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을 배우다 매료돼 가야금 전도사로 나섰고 하버드대에서 가야금 병창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런 그가 이번에 국내 최초로 가야금 산조 독주회를 갖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특히 그는 성금연(1983년 작고)류의 긴 산조(45분 분량의 풀버전)를 선보일 예정이다. 외국인이 짧은 산조는 물론이고 긴 산조의 가야금 연주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있는 일이라는 게 국악계의 평가다. 지난달 말 대전 배재대 연구실에서 조 교수를 만났다. 그는 3년 전부터 이 대학의 국제학부 학생들에게 ‘종교와 사회’ ‘비교미학’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고 있다. 그의 연구실에 들어서자 한쪽 편에 가야금과 북이 맨 먼저 보였다. 또 벽에는 각종 국악 공연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평소의 국악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막 강의를 마치고 나온 시간이어서 그런지 “잠시 목을 축여야 해요.”라고 하면서 활짝 웃는다. 이어 녹차와 찻잔을 꺼내 오더니 차 한잔을 권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얘기를 시작했다. 그의 명함에 새겨진 ‘조세린’이라는 큰 글씨가 눈에 띄었다. 누가 이름을 지어 주었을까. ●하숙집 오빠들이 지어준 이름 조세린 “하숙집에 있을 때였지요. 같이 있는 사람들이 미국 이름(조셀린)을 얘기하면서 한국말 ‘조세린’과 비슷하니 그렇게 하자고 해서 조세린이 됐습니다. 그때 하숙집에는 오빠들도 있었는데 경상도 말을 썼어요.” 녹차를 무척 좋아하나 보다. 차를 몇 잔 더 마시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는 한국말을 잘하는 편이었다. 다만 외국인 특유의 축약과 생략이 있는 어투였다. 중간중간 영어를 섞기도 했다. “어제 전주에 계신 선생님한테 가야금 배우러 갔다가 오늘 아침에 왔어요. 공연을 앞두고 이것저것 최종적으로 (점검을) 받고 있는데 참 어려워요(웃음).” 그는 여러 스승을 모셨지만 현재는 성금연 선생의 딸인 지성자(전북 무형문화재)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야금이 어렵기는 하지만 리듬을 심오하게 타고 있으면 생각의 깊이를 많이 느끼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가야금 독주 얘기가 나왔다. “저 스스로 많이 힘들었어요. 어떻게 공연할지도 궁금하고요. (가야금 연주를 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 같아요. 아마 외국인으로는 처음일 것 같은데 맞죠(웃음)? 이번 독주회는 긴 산조라서 더 어려워요. 산조는 20년 전 처음 배웠다가 잠시 중단하고 (가야금) 병창을 공부했지요. (산조를) 다시 본격적으로 한 것은 올 3월이었는데 20분 분량을 소화했어요. 그 후 25분 분량을 더 늘리는 데 많이 힘들었어요.” 얘기를 나누다 보니 소탈하면서도 솔직한 성격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외국인으로서는 처음 독주회를 갖는 소감 또한 남다를 터. “알래스카에 계신 부모님도 오세요. 딸 공연을 보러 오시는 것이지요. 가야금 공부라는 것이 매번 산에 오르는 것 같아요. 왜 그렇잖아요. 산에 오를 때, 다 왔나 생각하면 또 산이 있고 오르고 또 오르고, 가야금 하는 것이 그런 것 같아요. 이번 독주회도 큰 산에 오르는 첫 단계이겠죠.” 가야금은 누구에게 배웠을까. 국립국악원에서는 서울대 이지영 교수와 지애리·강정숙 선생에게 배웠다고 했다. 또 나중에 지성자 선생에게는 가야금 산조를, 강은경 선생한테는 가야금 병창을 배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황병기 선생에게도 잠깐 배운 적이 있다고 했다. 가장 궁금했던 하버드대 논문에 대해 물었다. 오죽 국악을 좋아했으면 한국에 있다가 일부러 미국으로 건너가 국악을 주제로 박사학위까지 받았을까. “2005년에 박사학위를 받았지요. 판소리 흥부가에 제비소리가 있거든요. 그 대목을 논문 제목(지지지지 주지주지)으로 했습니다. 논문을 쓸 때도 가야금을 들고 미국과 한국을 몇 번 왔다 갔다 했지요.” 그러면서도 틈틈이 외국에서 가야금 연주를 했단다. 하버드대에서도 했고, 2002년에는 베를린과 시카고, 알래스카에서도 연주를 했다. 이뿐만 아니다. 유럽에 갈 일이 있을 때에도 가야금을 들고 가 프랑스 그르노블, 독일 쾰른 등에서 연주했다. 그가 가야금 전도사라는 말을 듣는 이유다. 외국에서 연주할 때 ‘미국 사람이 왜 한국 음악을 하느냐.’는 질문은 혹시 받지 않았을까. 그는 “한국에서는 (그런 질문을) 받지만 외국에 가서는 거의 없어요. 좋아서 하고 있는데 왜 그런 질문을 받아야 하죠?” 하고 오히려 반문한다. 괜한 질문을 했나 보다. ●“14페이지 악보 달달 외는 가야금 힘들죠” 내친김에 또 한 가지 우문을 던졌다. 가야금을 배우면서 정말 후회하지는 않았느냐고 했다. “그런 적은 없어요. 물론 힘들어요. 특히 (가야금의) 긴 산조는 시간이 많이 걸려요. 14페이지에 달하는 악보를 다 외워야 했어요. 가야금을 배우면서 잠시 한눈을 팔면 골목길로 빠지고 조금이라도 신경을 덜 쓰면 딴 곳으로 가는 것 같아요. 마음은 빨리 터득하고 싶은데 그렇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가사를 외워야 하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먹고 싶은 당근을 바라보는 말의 심정인 것 같아요. 아무튼 가야금을 잘하면 멋있어요.” 미국인 입장에서 한국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참 매력 있어요.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그 매력을 잘 살리지 않는 것 같아요. (잠시 생각하더니) 한국인들은 음악의 뿌리를 다른 나라에 심고 있어요. 학교에 와서 라디오를 켜면 서양 음악이 나와요.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보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어요. 아이들은 서양 음악을 배우고, 스승과 제자 사이의 예의를 생각하면 화가 날 때도 있어요. 젊은이들이 한국 문화에 재미를 많이 느끼지 못하고 있죠. 가야금 산조도 마찬가지예요. 선생님들은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제자들은 그렇지 않아요. 제가 가끔 시골에 가서 소리하는 선생님들을 만나면 참 훌륭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소리 듣고 자연 속에서 빚은 막걸리 한잔 하고 얼마나 좋아요(웃음). 한국인은 한국 밥을 먹어야 하잖아요. 지금이라도 (서양 음악에 심취하지 않도록) 잘 잡아야 해요.” ●국악은 희로애락 표현하는 삶 같은 음악 그는 이어 국악은 말 그대로 삶을 표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고 덩실덩실 흥을 돋우는가 싶으면 한풀이를 하는, 그런 음악이 좋다고 했다.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더라도 산에 오르는 것처럼 한국 음악과 함께 걸어갈 것이라며 웃었다. 조 교수는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 클라리넷을 배웠고 고등학교 때 오보에를 배울 만큼 음악을 좋아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공군 정보장교 출신으로 2차세계대전 직후 일본에서 근무했다. 외할아버지는 진주만 공습 때 해군대위였다. 아버지는 일본에 잠시 살다가 베트남전에도 참전한 경험이 있어 조 교수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동아시아에 대해 친근함을 갖게 됐다. 17살 때에는 일본, 20살에는 중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했다. 그래서 일본의 전통 악기 고토를 배웠고, 중국에서는 쟁과 서예를 배웠다. 그러던 중 한국의 가야금에 대한 얘기를 여러 차례 들으면서 한국행을 결심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거문고 연주자를 통해 국립국악원을 소개받았던 것이다. 가야금 병창을 배울 때에는 한글을 못 읽어 무조건 외우면서 시작했다. 특히 다스름이니, 진양조니 하는 것을 배울 때에는 손가락에 피가 날 정도로 아팠지만 언젠가는 좋아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꾹 참고 견뎠다. “가야금이 저의 삶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그 진정한 의미를 찾을 때까지 계속할 겁니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조세린 교수는… 1970년 미국 알래스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조셀린 클라크(Jocelyn Clark)이며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가 군인 출신이어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현재 그의 아버지는 알래스카에서 변호사로, 어머니는 요리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17살 때 일본에 살면서 전통 악기 고토를 배웠고 20살에는 중국에서 쟁과 서예를 익혔다. 민속음악으로 유명한 미국 웨슬리언대를 나왔으며 중국 난징대에 잠시 다니기도 했다. 그가 한국에 처음 온 것은 1992년 22살 때였다. 미국에서 거문고를 하는 한국 사람에게 소개받아 국립 국악원에서 가야금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하버드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학위 논문의 주제는 모두 국악이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가야금 연주도 여러 번 했다. 그는 한국에서 이지영 서울대 교수, 지애리·강정숙 선생에게 가야금을 배웠고 지성자 선생에게는 가야금 산조를, 강은경 선생한테는 가야금 병창을 배웠다.
  • [씨줄날줄] 마에킨(前金)/박대출 논설위원

    1863년 미국의 노예제도가 폐지됐다. 남북전쟁 직후였다. 해방 흑인들은 노동력밖에 없었다. 식료품이나 옷을 살 돈이 필요했다. 농장주에게 전차금(前借)을 받고 일했다. 일종의 선급금(先給)이었다. 전차금엔 높은 이자가 매겨졌다. 노동자들은 늘 빚에 쪼들렸다. 해방 흑인뿐만 아니었다. 가난한 백인도 마찬가지였다. 전차금 제도는 신(新)노예계약이었던 셈이다. 이런 악순환은 남부의 농업을 더 뻗어나지 못하게 했다.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이런 나라는 허다했다. 전차금이란 미리 받는 임금이었다. 일을 해서 갚기로 약정하는 돈이었다. 저임금으론 전차금을 갚기 어려웠다. 고리(高利)일수록 더했다. 근로자 착취로 이어졌다. 국가 개입은 전후에 이르러서다. 우리 근로기준법도 엄격하다. 전차금 상계의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전차금을 임금으로 갚을 수는 있다. 이를테면 가불 같은 형태로 가능하다. 학자금 대여나 주택구입자금 대부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임금과의 상계 조건을 달지는 못한다. 빌려 쓴 ‘빚’과 미리 받은 ‘임금’을 구분한 것이다. 현실은 법과 다르다. 빚과 임금의 경계가 모호하다. 오히려 빚으로 더 많이 쓰인다. 전차금은 일본에선 전금(前金)으로 불린다. ‘마에킨’으로 발음된다. 우리나라에선 ‘마이낑’ ‘마이킹’으로 변용됐다.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는 속어다. 유흥가에서 많이 쓴다. 업주가 여종업원에게 빌려주는 돈이다. 고리의 이자가 붙기 십상이다. 여종업원들에겐 목돈이 필요하다. 성형은 아예 초기 투자다. 의상비, 주거비도 한두 푼이 아니다. 업주로부터 마에킨을 받아 충당할 도리밖에 없다. 수천만원에서 1억원대도 있다고 한다. 제일저축은행이 대형 사고를 쳤다. 마에킨을 담보로 불법 대출을 했다가 탈이 났다. 유흥업소에 빌려준 규모가 1546억원에 이른다. 밤무대 종사자를 상대로 무리한 짓을 벌였다. ‘강남 유흥업소 대출 특화상품’이란 이름으로. 이를테면 아가씨 담보 대출인 셈이다. 이자가 무려 18~23%에 달했다. 멀쩡한 고객이 찾을 리 만무하다. 30개 업소는 폐업했고, 업주 36명은 신용불량자였다. 2000년 음반 발행이 연간 4000만장을 넘었다. 당시 음반업계는 전속금 명목으로 마에킨을 줬다. 마에킨이 수십억원에 달한 가수도 있었다. 마에킨은 몸값을 가늠하는 척도다. 하지만 수입이 보장될 때 얘기다. 그러지 못하면 마에킨의 노예가 된다. 어느 분야든 예외가 없다. 그 위험률은 액수와 정비례한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내 안에 다른 軍 있다] ‘공정통제사’(CCT) 왜 필요한가

    공정통제사(CCT)는 병력과 보급 물자를 안전하게 투하하기 위해 생겨났다. 적진 가장 깊숙한 곳에 가장 먼저 침투해 안전한 공중 보급 장소로 공군 수송기를 안내해 주는 게 CCT의 기본 임무다. 공정통제사는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시실리 공정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특수부대의 필요성을 느낀 미 공군에 의해 세계 최초로 창설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중 수송 임무를 전담하는 제5전술공수비행단을 구성한 뒤 보다 효과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베트남전에서 맹활약한 미국 공군 CCT를 모델로 해 1978년 3월 중대급으로 창설했다. 일각에서는 1968년 1월 북한 124군부대의 청와대 습격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김일성 주석궁을 폭파하는 임무를 띠고 같은 해 4월 창설된 실미도 부대가 전신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두 부대가 정보교육대대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것 말고는 임무가 전혀 달라 무관하다는 게 공군의 설명이다. 우리 공군 CCT는 전원이 부사관으로 구성되는 전형적인 전술공정 작전팀으로 발전해왔다. 전시에 적지의 비행장이나 아군 목표 지점에 육상, 해상, 공중을 통해 침투해 작전용 통신망을 구축하고 아군 수송기를 유도·관제하며 지상 정보를 수집하고 병력과 물자 투하 지점을 설치, 운영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F15K 전폭기 등이 전략 목표물을 공격할 때 첨단 미사일이나 폭탄이 정확히 목표물에 명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임무도 맡고 있다. 육군의 특수전부대, 해군 특수전여단, 해병대 특수수색대 등 다른 특수부대가 주로 적진에 침투해 타격 작전을 벌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과는 구별된다. 우리 공군의 CCT 부대는 2000년 동티모르 한국군 수송기 관제를 완수했으며, 2005년에는 이라크 전장 공수를 맡은 쿠웨이트 다이만 부대에 파병돼 경호 및 대테러 임무를 수행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열린세상] ‘자유 민주주의’ 논란의 맥락/김태승 아주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자유 민주주의’ 논란의 맥락/김태승 아주대 사학과 교수

    대부분의 어휘는 특정의 맥락 속에 들어가 있을 때, 그 의미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민주주의라는 어휘 역시 그렇다. 그런데 민주주의라는 어휘가 정치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는 만큼, 이 어휘의 정의는 보편적 해석이나 이해와는 관계없이 해석 주체(권력자들)들이 의도한 정치적 목적을 치장하기 위해 재구성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이 어휘를 사용하는 논쟁에서는 그 맥락을 읽어내는 게 중요하다. 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는 추구해야 할 비전으로 받아들여졌지만, 현실에서는 집권자의 ‘사적 이해관계’에 근거해 재구성됐다. 신생국에서 권력을 장악한 실권자들은 장기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특수 민주주의 논리를 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1960년에 파키스탄에서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아유브 칸이 제안했던 ‘기본 민주주의’는 그런 사례의 하나였다. ‘기본 민주주의’는 일시적으로 아유브 칸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으나, 국민을 무시하고 참정권을 제한하려 한 시도는 결국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여 실패했다. 신생국 인도네시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 역시 ‘교도 민주주의’라는 독특한 논리를 개발하였으나 사실상 개인 독재를 강화하는 데 이용돼 실패로 끝났다. 북한이나 공산주의 국가에서 특정 인물이나 공산당의 독재를 ‘인민 민주주의’로 분식한 것 역시 공산당이나 개인의 권력독점을 노린 허위논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한 특수형태의 민주주의는 우리의 현대사 속에도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형식으로 남아 있다. 국민과 정치적 반대세력을 오직 ‘계몽과 지배’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집권세력의 가치만을 절대화한 이런 논리들은 결국 집권세력 내부의 분열과 국민의 저항에 직면해 대부분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이해에서 중요한 것은 현란한 수사학에 감춰진 진실의 맥락, 즉 ‘현실의 실천’을 보는 것이다. 최근 국회 교과위 국정감사장에서는 한 여당의원의 “자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북한에 가서 국회의원을 하라.”는 발언을 둘러싸고 대립이 발생했다. 이 사태는 본인이 해명하고 진의를 밝혔으니 곧 진정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걱정스럽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발언자는 이 발언의 진의가 “민주주의를 자유 민주주의로 개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대표가 있다면 사임해야 한다는 데에 있다.”고 해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해명은 원래의 논리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원래의 발언이 갖는 문제점, 즉 ‘자유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맥락과 그것을 강제하는 의도’에 대한 비판 의견을 바로 북한 지지자와 동일시하는 ‘논리의 비약’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헌법의 정신이나 한국 현대사의 전개에 비추어볼 때, ‘자유-민주주의’는 우리가 지켜 온 매우 소중한 유산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특정의 맥락 속에서 사용될 때, 그것은 오히려 자유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헌정질서의 파괴를 정당화하려 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도를 숨기기 위해 사용하는 ‘수사학적 매개물’에 지나지 않았다. 자기를, 자신이 정한 논리 속의 ‘자유 민주주의자’라고 규정하고(자유 민주주의적 가치의 ‘실천’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모두 ‘북한의 추종자’라고 규정하여 배제하기 위한 논리로 그것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맥락’과 ‘실천’에 대한 성찰을 배제한 채 흑백논리적 대결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자유 민주주의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할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하는 행위가 된다. 자유 민주주의적 가치는 자신이 규정한 논리 속에서가 아니라 구체적 삶의 실천에서 지켜지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는 일은 우리가 이미 경험해 왔듯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치권과 관련학계가 그러한 논란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고, 자유 민주주의적 가치의 절차적 정당성을 지켜냄으로써 무익한 갈등국면을 하루빨리 종식시키길 바랄 뿐이다.
  • 은괴 200t 품은 英보물선 찾았다

    은괴 200t 품은 英보물선 찾았다

    70년 전 독일 잠수함에 공격당해 침몰한 영국 보물선이 대서양 해저에서 발견됐다. 은괴 등 역대 최대규모의 화물을 싣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3839억원 규모… 美 탐사업체 발견 미국 탐사업체인 ‘오디세이 마린’은 지난달 아일랜드 서쪽 483㎞ 지점, 수심 4700m 해저에서 침몰한 영국 화물선 ‘SS 게이어소파’호를 발견했다고 AFP통신 등이 26일(현지시간) 전했다. 이 배는 2차 세계대전이 불붙었던 1941년 2월 16일 독일 잠수함 ‘유 보트’에 습격당해 침몰했다. 선원 84명 중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한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숨졌다. 오디세이 마린 측은 게이어소파호가 출항 당시 은괴 200t을 비롯해 철과 차 등 7000t의 화물을 실었다고 밝혔다. 당시 적재된 은괴의 현재 환산가격은 2억 1000만파운드(약 3839억원)에 이른다. 은괴에는 또 금이 2.5% 함유된 것으로 알려져 산정액이 더 뛸 가능성이 높다. ●2차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에 격침 이 업체는 영국 정부와 난파선 인양 계약을 맺고 지난해부터 수색작업을 벌여왔으며 화물 평가액의 80%를 챙길 수 있게 된다. 다만, 은괴가 배에 온전히 실려 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업체 측은 “은괴를 찾아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게이어소파호는 1919년 상선으로 만들어졌지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41년 1월부터 해군 보급선으로 등록됐다. 인도 콜카타를 출발해 영국 리버풀로 향하던 이 배는 도중에 폭풍우를 만나 아일랜드 서부 골웨이로 항로를 변경해 운항하던 중 격침당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씨줄날줄] 여성 참정권/곽태헌 논설위원

    근대 의회민주주의 발상지라는 영국에서도 여성 참정권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영국에서도 초기의 참정권은 일정한 금액 이상의 세금을 낼 수 있는 재산가 남성들의 ‘특권’이었다.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려는 투쟁은 길고도 험난했다. 영국에서는 1860년대부터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여성의 참정권을 꾸준히 주장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영국 여성들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영국 여성운동의 상징인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1903년 여성사회정치연맹(WSPU)을 조직했다. 세 딸과 함께 여성 참정권 운동을 주도했다. 1908년에는 수감되기도 했다. 1913년에는 10여 차례나 단식투쟁을 통해 정부의 부당함을 폭로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의 투쟁도 과격해졌다. 여성들은 일부 공공건물을 파괴하기도 했다. 경찰서에 여성 시위자들이 넘쳐나던 때도 있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정부는 전쟁기간 동안 노동력을 제공한 여성들의 공을 무시할 수 없어 국민대표법을 만들어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허용했다. 하지만 30세 이상의 여성에게만 허용된 불완전한 정치 참여였다. 남성과 똑같은 21세 이상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것은 10년 뒤의 일이다. 흑인노예제도가 있었던 미국에서의 여성 참정권 운동은 인간해방운동과 함께 진행됐다. 1848년 첫 여권(女權)대회가 뉴욕에서 개최됐다.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의회에 ‘여성 참정권법안’을 제출하는 등 체계적으로 활동했다. 미국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20년 21세 이상의 여성은 남성과 같은 참정권을 인정받았다. 여성의 참정권이 최초로 인정된 나라는 뉴질랜드(1893년)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제헌헌법에 남녀의 평등한 참정권이 보장됐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첫 여성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있고,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과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10·26 서울시장 보선에서 첫 여성 민선 서울시장을 노릴 정도로 여성들의 힘은 커졌다. 여성 인권에 관한 한 세계 최하 수준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여성 참정권이 오는 2015년부터 허용될 것이라고 한다. 압둘라 사우디 국왕은 그제 “여성들이 선거에 출마할 수 있고 투표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우디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들의 차량 운전을 금지할 정도로 여권이 미약한 나라다. 어떤 독재자나 절대 군주도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한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70년 전 가라앉은 ‘보물선’에 은괴가 무려...

    70년 전 가라앉은 ‘보물선’에 은괴가 무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서양을 항해하다가 침몰한 영국 화물선이 아일랜드 서쪽 500km 지점에서 최근 발견됐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최근 보도했다. 미국의 민간 탐사업체인 오디세이 해양탐사팀(Odyssey Marine Exploration)은 북대서양 수심 4700m에 가라앉아 있는 선박을 발견했으며, 이 난파선이 영국 수송부 화물선으로 활동했던 ‘SS게이어소파호’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의 서류에 따르면 당시 SS게이어소파호는 은괴 240t을 싣고 인도 콜카타에서 출항해 영국으로 향하다가 폭풍우를 만나 항로를 바꿔 아일랜드 서부 골웨이 항구로 향하던 중 독일 잠수함 U보트의 어뢰 공격으로 격침됐다. 선박에는 당시 기준으로 60만 파운드(한화 11억원)상당의 은괴가 실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은괴들이 온전히 인양된다면 현 시세에 따라 은괴가치만 무려 1억 5500만 파운드(한화 2848억원)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침몰한 선박에서 발견된 보물 중 최대 규모다. 오디세이 해양탐사팀이 모든 은괴를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업체는 영국 교통부와 맺은 계약에 따라서 화물 평가액의 약 80%를 가져갈 수 있다. 앤드루 클레이그 탐사팀장은 “측방감시용 수중음파탐지기를 통해서 선박이 침몰된 위치를 찾아냈다.”면서 “인양작업 2달 안에 은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70년 간 바다에서 잠자던 보물선의 인양작업은 내년 중반기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126m 길이의 게이어소파호는 침몰 당시 타고 있던 선원 85명 가운데 단 1명만 구명보트를 타고 영국 웨일스 남부 해안에 도달해 살아남았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유럽 여행에 악센트를 주다

    유럽 여행에 악센트를 주다

    유럽 여행에 악센트를 주다 유럽을 여행하는 방법은 많다. 특히 어떤 항공사를 이용하느냐에 따라 그 여정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그려내기 마련이다. 이번 여행은 벨기에의 브뤼셀로 들어가 독일과 룩셈부르크를 거쳐 프랑스 파리에서 되돌아오는 일정이다. 자칫 일반적인 유럽 여행이 될 수 있는 동선이지만 여기에 특별한 ‘스톱오버’가 전체 분위기에 변화를 줬다. 중동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광활한 사막 그리고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카타르에서의 ‘스톱오버 투어’는 새로운 느낌의 유럽 여행을 연출하게 한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동철 취재협조 카타르항공 www.qatarairways.co.kr 1 벨기에 브뤼셀의 골목길에서 만난 거리의 악사 2 야경이 더욱 아름다운 그랑플라스는 브뤼셀의 상징과도 같다 3 젊은이들의 낭만으로 가득한 하이델베르크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또 하나의 목적지 Doha도하 늦은 밤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현지 시각으로 새벽 5시 즈음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 도착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하는 온통 모래빛깔이다. 땅도 건물도 모두 사막을 닮았다. 그 옆으로 넘실거리는 페르시아만의 짙푸른 바다가 마치 신기루처럼 느껴질 정도. 유럽으로 향하는 길이었지만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아라비아 반도의 동쪽 해안에서 바다를 향해 엄지손가락 모양으로 툭 튀어나온 카타르는 작은 나라다. 면적은 우리나라의 경기도 정도이며, 인구는 외국인을 합쳐도 200만 명에 불과하단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카타르를 무시할 수 있는 국가는 없다. 자그마치 152억 배럴의 원유와 5,700조 배럴의 천연가스를 보유한 ‘부자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척박해 보이는 땅에서 2006년 아시안게임이 개최됐고, 2022년 월드컵이 열릴 예정이다. 도하의 거리로 나서면 이슬람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부국으로서의 자신감을 동시에 감지할 수 있다. 웨스트베이 지역에는 우후죽순처럼 마천루들이 솟아오르고,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은 하나같이 고급 승용차들이다. 건너편 부둣가에서 바라본 웨스트베이 지역은 마치 미래 도시처럼 사막 한가운데 비현실적으로 떠 있는 것만 같다. 이슬람 전통 복장을 한 이들이 값비싼 스포츠카를 끌고 도하시티센터(도하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쇼핑몰)로 달려와 명품 쇼핑을 하는 풍경은 이국적이라는 표현만으론 부족할 지경이다. 하지만 카타르의 매력은 역시나 가장 카타르다운 것에 있었다. ‘올드 수크Old Souq’라 불리는 재래시장에는 중동의 색채가 담뿍 묻어난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그네들의 과거와 현재가 뒤엉킨 채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여유롭게 물담배를 피우거나 그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시커먼 천으로 온몸을 휘감고 장을 보러 나온 이슬람 여성들이 어우러진다. 이름 모를 향신료가 코를 간질이고, 원색적인 양탄자는 올라앉으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처럼 상상력을 자극한다. 일용잡화에서부터 앵무새와 토끼 등 애완동물과 고풍스러운 골동품까지 볼거리들이 즐비하다. 올드 수크와 함께 도하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바로 ‘사막 사파리 투어’이다. 사륜 구동 SUV를 타고 도하에서 약 1시간 정도 달리면 광활한 모래사막이다. 사막에 진입하기 직전, 접지력을 높이기 위해 타이어에서 바람을 조금 빼면 준비 완료.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하는 사막 어드벤처가 시작된다. 거대한 파도와도 같은 사구를 달리는 차는 위아래로 숨 가쁘게 출렁거린다. 차가 뒤집힐 듯한 아찔한 상황을 수도 없이 연출해내면서도 운전기사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경사가 80도에 가까운 사구 정상에서 추락하듯 달려가는 데에 이르면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요동치던 차를 멈추고 사막 한가운데 내려서면 작렬하는 태양 아래 끝없이 펼쳐진 모래언덕이 눈을 아련하게 한다. 그리고 사막 끝에 드러나는 페르시아만의 짙푸른 바다는 사막과 기묘한 대비를 이루며 시선을 붙잡는다. 숨 막히는 사막의 더위를 깜빡 잊을 만큼 장관이 아닐 수 없다. T clip.도하 스톱오버 프로그램 사막 사파리 투어 4륜 구동 SUV를 타고 카타르 남쪽 사막을 달리는 프로그램이다. 요금은 4시간 기준으로 2~3명은 1인당 65달러, 4명은 1인당 55달러이며, 1명의 경우 2명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도하 시티투어 가이드를 겸한 한국인 운전자와 승용차를 타고 올드 수크, 매시장, 웨스트베이 등 도하의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일정이다. 요금은 4시간 기준으로 2~3명은 1인당 75달러, 4명은 1인당 63달러이며, 1명의 경우 2명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카타르 비자는 공항에서 신용카드(30달러)로만 결제할 수 있다. 문의 페가수스코리아(도하 스톱오버 프로그램 예약 대행사) 02-733-3441 1 부둣가에서 바라본 웨스트베이는 마치 신기루 같다 2 상상력을 자극하는 올드 수크의 양탄자들 3 이슬람 전통복장을 한 공예품들이 지갑을 열게 한다 4 사막에서 바라본 페르시아만의 짙푸른 바다 카타르항공 카타르의 수도 도하를 기점으로 하는 카타르항공은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낯선 항공사이다. 하지만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서비스와 안전에 대한 불안감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 한국인 승무원이 배치되어 있어 언어에 따른 불편함을 전혀 느낄 수 없으며, 쇠고기와 닭고기로 구성된 메인 요리는 한식 스타일로 조리되어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또 여유로운 좌석이 비행의 피로를 덜어주는 것도 큰 장점이다. 카타르항공은 현재 98대의 항공기로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 세계 102개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특히 도하를 경유하여 유럽 25개 도시를 연결하고 있어 유럽을 여행하려는 한국인들에게 편리하다. 항공 리서치 전문기관인 스카이트랙스Skytrax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6개뿐인 5성급 항공사인 만큼 기내 서비스도 수준급이며, 경쟁력 있는 요금도 매력적이다. 퍼스트클래스나 비즈니스클래스 고객이라면 도하국제공항의 ‘프리미엄 터미널’을 이용할 수 있다. 9,000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지난 2006년 완공한 프리미엄 터미널은 여느 항공사 라운지에서 맛볼 수 없었던 서비스를 제공한다. 줄을 설 필요 없이 별도의 체크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스파, 수면실, 샤워실, 레스토랑 등의 시설을 모두 무료로 즐길 수 있다. 경유지 도하에서의 스톱오버 프로그램은 덤이다. 문의 카타르항공 02-3708-8571, www.qatarairways.co.kr 유럽연합의 작은 거인 Brussels 브뤼셀 카타르 도하를 뒤로하고 다시 비행기에 올라 도착한 곳은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이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사이에 자리한 벨기에는 처음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잠시 스쳐가거나 건너뛰는 작은 나라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카타르가 그랬던 것처럼 벨기에 역시 남다른 저력을 발휘하는 국가이다.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본부가 브뤼셀에 자리잡고 있어 벨기에의 수도뿐 아니라 유럽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 수준에 있어서도 여느 유럽 국가들에 뒤처지지 않는다. 와플, 초콜릿, 맥주 등 벨기에의 먹을거리는 유럽에서도 유명하며, 최근 할리우드 극장판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개구쟁이 스머프>도 벨기에에서 태어나 세계로 뻗어나갔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그랑플라스Grand-Place’는 브뤼셀의 상징으로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을 벨기에로 이끈다. 그랑플라스로 이어지는 구시가지의 풍경은 예스러움과 현대인들의 여유로움으로 가득하다. 거리의 악사들은 흥겨운 음악으로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사람들은 과일과 시럽을 잔뜩 올린 와플을 들고 거리를 활보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달콤함이 느껴지는 초콜릿 가게와 거리 곳곳에 세워진 조각들에 한눈을 팔다 보면 어느새 탁 트인 광장에 다다르게 된다. 1998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대광장, 즉 그랑플라스이다. 직사각형의 그랑플라스를 둘러싸고 있는 고딕과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은 정교한 조각품을 떠올리게 할 만큼 화려함을 자랑한다. 시청사, 왕의 집, 길드하우스 등 건축물 대부분이 15~17세기에 지어진 것들로 광장 한가운데 서 있으면 중세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느낌이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96m의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시청사이다. 그랑플라스의 건축물 가운데서도 가장 섬세한 외벽 조각으로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첨탑 꼭대기에는 브뤼셀의 수호천사인 미카엘 대천사가 황금빛으로 조각되어 있다. 시청사 옆길로 5분 정도 걸어가면 브뤼셀의 또 다른 상징인 ‘오줌싸개 동상(마네캥-피스Manneken-pis)’을 만날 수 있다. 사진으로 먼저 동상을 본 여행객들이라면 “애걔!”라는 실망스런 감탄사가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것이 크기는 60cm에 불과한 데다, 여느 유럽 거리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조각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거만한 자세로 오줌을 누고 있는 이 꼬마 녀석에 얽힌 이야기는 자못 대단하다. 프랑스 군대가 브뤼셀에 불을 질렀을 때 이 꼬마가 오줌을 누어 불을 껐다고 하며, 14세기에 한 제후의 왕자가 오줌을 누며 적군을 모욕한 것이 모델이 되었다고도 한다. 어느 것이 정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오줌싸개가 벨기에의 ‘수호 꼬마’인 셈이다. 이 때문에 오줌싸개 동상은 수차례 약탈당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단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벌거벗은 꼬마의 옷이 수백 벌에 달한다는 것. 외국 정상들이 브뤼셀을 방문할 때마다 선물한 옷들로 그랑플라스의 왕의 집에 전시되어 있다. 꼬마의 옷 중에는 한복도 있다고. 1 그랑플라스 시청사의 섬세한 외벽 조각 2 벨기에에 왔다면 와플은 꼭 맛봐야 한다 3 오줌싸개 동상 앞에 모인 여행객들 T clip. 벨기에에 왔다면 꼭 맛봐야 할 것이 바로 ‘와플’이다. 와플이란 이름은 독일어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지만 그 원조는 벨기에이다. 벨기에 와플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벨기에 수도 이름을 딴 ‘브뤼셀 와플’과 동부 도시의 이름을 딴 ‘리에주 와플’이 그것이다. 브뤼셀 와플은 바삭바삭하고, 리에주 와플을 부드러운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그랑플라스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면 와플 가게를 흔하게 만날 수 있다. 바나나, 딸기, 크림, 초콜릿 시럽 등 상상을 초월할 만큼 푸짐한 토핑을 올린 와플은 여행 중 간식거리로 부족함이 없다. 가격은 1~3유로 정도. 1 웅장하다 못해 보는 이를 압도하는 쾰른 대성당 2 쾰른 대성당의 아치형 중앙 회당 3 오리 한 마리가 유유히 흐르는 네카어강을 바라보고 있다 4 담소를 나누는 하이델베르크의 대학생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웅장한 자태에 반하다 Ko”ln 쾰른 벨기에 브뤼셀에서 동쪽 국경을 넘어 독일의 쾰른으로 달려간 이유는 단 하나, ‘쾰른 대성당Cologne Cathedral’ 때문이다. 시내 중심에 157m의 높이로 솟아 있는 두 개의 첨탑은 웅장하다 못해 압도적이다. 건물 외벽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들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1996년 유네스코는 ‘인류의 창조적 재능을 보여주는 보기 드문 작품’이라고 평가하면서 쾰른 대성당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쾰른 대성당이 지어진 것은 1248년부터이다. 1164년 한 대주교가 동방박사 세 명의 유해가 담긴 성물함을 가져왔고, 이를 안치하기 위해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사가 중단된 시기도 있었지만, 1880년 완공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650년에 이른다. 이 때문에 건물 외벽의 색깔이나 석질이 조금씩 다른 것도 눈에 띈다. 완공 이후 1884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으며, 현재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과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첨탑이 서 있는 서쪽 입구로 들어서면 아치형의 중앙 회랑이 144m의 길이로 소실점을 그리며 뻗어나간다. 바닥부터 천장까지의 높이는 약 43m이며, 기둥에 조각된 석상들은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고 예수의 열두 제자들이다. 좌우 창가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엄숙하고 경건하며 신비롭기까지 한 성당 내부에 서면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리게 된다. 젊은 낭만의 도시 Heidelberg 하이델베르크 룩셈부르크로 들어가기 전 들른 도시는 독일 남서부에 자리한 낭만의 도시 하이델베르크이다. 라인강의 지류인 네카어 강을 따라 달리던 차가 하이델베르크에 들어서자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의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를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학생들과 도도히 흐르는 옥빛 강물 그리고 크고 작은 광장을 연결하는 고풍스러운 하우프트 거리 등이 방문객들을 낭만 여행으로 이끈다. 하이델베르크는 인구가 10여 만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지만 이 가운데 대학생이 약 3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1386년에 설립돼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꼽히는 하이델베르크대학이 있기 때문. 수백년의 세월 동안 학구열을 불태운 이 도시는 칸트, 괴테, 야스퍼스 등 세계적인 학자와 문학가들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네카어강을 건너 독일의 유명 철학자들이 즐겨 걸었다는 ‘철학자의 길’을 걷다 보면 누구나 골똘히 사색에 잠기게 된다. 하이델베르크가 ‘대학도시’로 불리는 까닭이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 중간에 서서 뒤를 돌아보면 ‘하이델베르크 고성’이 눈에 들어온다. 세모꼴에 울긋불긋한 마을 지붕들 너머로 고고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 고성은 하이델베르크의 상징에 다름 아니다. 13세기에 축조되기 시작한 하이델베르크 고성은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군주를 거치며 파괴되고, 복원되고, 증축되며 지금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다양한 형식의 건축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기도 하다. 고성에 오르면 종탑, 성문탑, 루프레히트 궁, 프리드리히 궁 등 여러 건물들이 있는데, 30년 전쟁과 왕위계승전쟁을 거치면서 훼손된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고성의 아름다움은 세월 속에서 더욱 여물어 여행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요새 Luxembourg 룩셈부르크 파리로 향하는 길에 방문한 룩셈부르크는 유럽 지도에서 찾아보기도 힘들 만큼 작다.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끼여(?) 있는 듯한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해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부르고뉴가, 합스부르크가, 프랑스, 네덜란드, 프로이센의 지배를 받아오며 중세 400년 동안 파괴와 복원이 되풀이됐다. 룩셈부르크 독립의 꿈은 1839년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졌다. 지금은 유럽재판소, 유럽의회 사무국 등이 룩셈부르크에 자리하고 있어 브뤼셀과 함께 EU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다.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아픈 역사의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외침에 대항해 단단한 방패를 들듯, 높은 성벽과 포대가 완고하게 도시를 두르고 있는 것이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요새와도 같은 형국이다. 가장 유명한 성채는 ‘복포대Casemates Du Bock’이다. 군사적 요충지는 전망 또한 좋기 마련이어서 복포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알제트 운하가 회색지붕들 사이를 유유히 흘러가고, 숲과 마을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룩셈부르크의 지난했던 역사를 잠시 잊게 한다. 1차 세계대전 때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황금의 여신상이 있는 ‘헌법광장Constitution Square’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장관이다. 페트루세 계곡을 따라 울창한 숲이 이어지고, 그 중간 즈음에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아돌프다리Pont Adolphe’가 멋들어진 아치를 자랑한다. 1903년에 완공된 아돌프다리는 높이 46m, 길이 153m에 이르는 석조 다리이다. 건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아치교로 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헌법광장에서 길을 건너면 ‘노트르담대성당Notre Dame Cathedral’이다. 유럽의 여느 성당들과 비교하면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지만, 단정하고 간결한 모습이 매력적이다. 성모마리아 조각이 중심에 있는 파사드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단아한 외관과는 달리 화려하고 장중한 내부가 모습을 드러낸다. 스테인드글라스와 파이프오르간 그리고 벽면과 기둥의 정교한 조각들이 반전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유럽의 문화 수도 Paris 파리 이번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 파리는 유럽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가장 훌륭한 장소였음에 틀림없다. 유럽 여행을 계획한다면 빠질 수 없는 곳일 뿐더러 몇 번을 방문한다고 해도 질릴 리 없고 그리워지기까지 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1889년 완공된 에펠탑은 여전히 파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었고, 세계 최대의 개선문으로 꼽히는 에투알 개선문의 당당한 자태는 변함이 없었다. 세계 각국의 유물과 미술품으로 가득한 루브르박물관과 19세기 인상파 작품들로 유명한 오르세미술관 역시 파리를 방문했다면 놓칠 수 없는 명소이다. 유람선을 타고 센강을 따라 명소들을 둘러보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번 파리 여행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뤽상부르공원Jardin du Luxembourg’과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이었다. 여행의 마지막인 만큼 여유로운 휴식과 느긋한 산책을 즐기기로 했던 것. 뤽상부르공원은 1615년 건축된 뤽상부르 궁전에 딸린 프랑스식 정원이다.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이며, 파리지앵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식처로 잘 알려져 있다. 화창한 날씨라면 뤽상부르공원은 온통 일광욕을 하는 이들로 가득하다. 공원 곳곳에 놓인 벤치와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햇볕을 만끽한다. 스케치북에 공원의 모습을 담는 젊은 미술학도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공원을 거닐다 보면 그늘진 숲길과 넓은 잔디밭, 수많은 조각상들과도 조우하게 된다. 책 한 권과 커피 한 잔을 들고 햇볕 다사로운 곳에 앉아 시간을 보내 보자. 짧은 시간이지만 파리지앵이 되어 보는 것이다.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한 몽마르트르는 그 이름만으로도 낭만이 흘러넘친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언덕 꼭대기에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하얗게 빛나고, 계단 옆 잔디밭에는 햇볕에 취한 사람들이 옹기종이 모여 앉아 있다. 언덕의 높이는 130m에 불과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크레쾨르 대성당 오른편으로 가면 에펠탑까지 조망할 수 있다. 언덕 한쪽에는 거리의 화가들이 예술의 향기를 뿜어낸다. 여행객들과 그들의 초상화를 자신의 스타일대로 그려내는 화가들은 몽마르트르의 고유한 풍경이다.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맥주나 와인을 음미하며 이 풍경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술은 한 잔이면 족하다. 몽마르트르의 독특한 분위기에 먼저 취하기 마련이니까. 1 숲과 마을 그리고 알제트운하가 장관을 이루는 복포대 2 마네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 3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캐리커처를 그리고 있는 화가 4 룩셈부르크의 노트르담대성당의 외관은 단정하고 간결하다 5 헌법광장에서 바라본 아돌프다리 6 뤽상부르공원은 파리지앵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식처다 7 샹젤리제 거리를 오가는 파리지앵들 8 센강에서 바라본 에펠탑과 파리시내의 야경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영화프리뷰] ‘코쿠리코의 언덕에서’

    [영화프리뷰] ‘코쿠리코의 언덕에서’

     1963년 일본 요코하마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하숙집 코쿠리코. 이곳 살림은 열여섯 여고생 우미의 몫이다. 우미는 선원으로 일하다가 실종된 아버지를 그리며 매일 아침 안전을 기원하는 깃발을 올린다.  때는 도쿄올림픽이 열리기 딱 1년 전. 낡은 것을 모조리 새롭게 바꾸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우미가 다니는 고등학교 고위층도 낡은 동아리 건물을 철거하려 한다. 우미는 학생신문 편집장 슌과 함께 역사와 추억이 깃든 동아리 건물 보존 운동에 나선다.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슌은 우연히 우미의 돌아가신 아버지 사진을 보고 자신의 친아버지라고 확신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상징 지브리의 신작 ‘코쿠리코의 언덕에서’(사진)가 오는 29일 개봉한다. 지브리 팬이라면 불안할 수도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들 고로가 메가폰을 잡았기 때문.  2006년 ‘게드전기-어스시의 전설’은 고로와 지브리 스튜디오 모두에게 악몽이었다. 하야오 감독이 시사회 도중 문을 박차고 나갔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지브리의 독재자 하야오는 또 한번 아들에게 기회를 줬다. 완벽주의자인 그가 단지 후계자를 찾지 못해서, 혹은 아들이기 때문에 연출을 맡겼을 리는 없을 터.  ‘코쿠리코의 언덕에서’는 지브리인 동시에 지브리가 아니다. 지브리 작품으로는 드물게 사람만 나오는 영화의 프러덕션 디자인과 그림은 일본 가정식처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지브리의 최대 강점인 인물 표정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늘 지브리 영화의 중심에 서 있는 소녀 캐릭터는 물론 동아리 건물을 가득 메운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에서는 장인의 섬세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기대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환경, 생명, 자연과의 공존 등 시공간을 뛰어넘는 거대 담론을 판타지 형식으로 풀어내는 ‘지브리스러움’에 익숙했던 한국 팬에게 영화의 주제의식은 당황스럽다. 굴곡진 1940~50년대를 관통했던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전하며 우미와 슌으로 대표되는 일본 베이비붐 세대에게 희망을 품고 새롭게 출발하라고 격려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집단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을 통해 화려하게 세계무대에 컴백했다. 일본의 중장년층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일 터. 4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자신감을 잃어버린 오늘날 일본 젊은이들에게 지브리가 던지는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  우미와 슌 사이에 얽힌 ‘출생의 비밀’도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너무 착한, 혹은 계몽적인 드라마에 ‘힘’을 주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지브리답지 않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헉! 에어쇼서 2차대전 전투기가 돌연 관중석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전투기가 관중석을 덮쳤다. 미국 네바다 주 리노에서 16일(현지시각) 열린 ‘내셔널 챔피언십 에어 레이스’에서 P-51 머스탱 비행기가 관중석으로 추락해 최소한 9명이 숨지고 50여명이 다치는 참사가 일어났다. 에어레이스 대변인 마이크 드레이퍼는 유명 조종사 지미 리워드(74)가 몰던 P-51 머스탱 비행기가 이날 오후 4시30분께 관람석 앞으로 추락했다고 밝혔다. P-51 머스탱은 1940년 말에 제작돼 제2차 세계대전 때 투입됐던 첫 미군전투기로, 현재는 민간용으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사고 현장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구급차들도 긴급히 도착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이 에어쇼의 마이크 호튼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항공기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종사 리워드는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역 응급의료서비스 당국의 스테파니 크루즈 대변인은 이 사고로 지금까지 확인된 부상자 56명 가운데 15명은 중태고 다른 13명은 중상이라고 전했다. 미국 네바다 리오에서 열리고 있는 ‘내셔널 챔피온쉽 에어 레이스’는 매번 수만명의 관람객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높은 대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영화프리뷰] ‘킬러 엘리트’

    [영화프리뷰] ‘킬러 엘리트’

    제2차 세계대전 때 만들어진 영국 특수부대 ‘SAS’(Special Air Service)는 북아프리카 전선과 유럽 전역에서 엄청난 전과를 올렸다. 전후 잠시 해체됐지만, 1950년대 재건된 뒤 동남아시아(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와 중동(오만·예멘)에서 국익을 지키기 위한 ‘어두운’ 임무를 수행했다. 1991년 출간된 라눌프 파인스의 베스트셀러 ‘페더맨’(The Feather Man)은 SAS의 오만 석유전쟁 개입설을 다뤘다. 아들을 잃은 오만 부족 지도자가 석유개발을 조건으로 SAS 대원의 죽음을 원하자 영국 정부가 묵인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킬러 엘리트’는 소설 ‘페더맨’을 원작으로 삼았다. 킬러 생활에 염증을 느낀 대니(제이슨 스태덤·오른쪽)는 손을 씻고 고향으로 떠난다. 그런데 멘토이자 동료였던 헌터(로버트 드니로·왼쪽)가 오만에 인질로 잡혔다는 소식을 듣는다. 헌터를 살리려면 오만 부족장의 아들을 죽인 SAS 요원 3명의 자백을 받은 뒤 사고로 위장해 죽여야 한다. 하지만 대원들이 죽어나가자 SAS의 비밀조직인 ‘페더맨’ 소속 퇴역 군인 스파이크(클라이브 오언)가 대니를 쫓기 시작한다. ‘킬러 엘리트’의 한국판 포스터는 드니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스태덤과 오언이 포진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오롯이 스태덤의 아날로그 액션에 빚지고 있다. 12년간 영국 다이빙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스태덤은 가이 리치 감독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1999)로 뒤늦게 영화판에 발을 들여놓았다. 운동신경 못지않게 남다른 외모에 주목한 뤽 베송 감독이 각본을 쓴 ‘트랜스포터’로 스태덤은 새로운 액션 아이콘으로 떠오른다. 스태덤의 액션은 이번에도 볼 만 하다. 의자에 두 팔이 묶인 채 360도 공중회전을 하는 장면은 그가 아니라면 소화하기 어려운 장면일 터. 신선도는 고만고만하다. 스태덤은 앞서 20여편의 주·조연 작에서 차량이나 좁은 방 등 한정된 공간에서 소품을 활용한 액션을 충분히 뽐냈다. 최근 들어 부쩍 다작을 하는 드니로나 정극과 액션에 두루 능한 오언의 존재감은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친다. 포르셰와 하이네켄 등 상업광고에서 재능을 보인 영국 출신 개리 매켄드리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주먹질을 할 때 아픔이 느껴지길, 누군가 죽을 때는 상실감이 느껴지길 원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컴퓨터그래픽(CG)을 배제하고 투박한 영상을 담았다. 하지만 불혹을 넘긴 중년의 ‘아날로그 액션’에 얼마나 관객이 끌릴지는 의문이다. 북미 개봉은 11월인데 한국에서는 오는 22일 개봉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특별기고] 요즘 신세대는 짜증난 V세대/최진봉 텍사스 주립대 저널리즘 스쿨 교수

    [특별기고] 요즘 신세대는 짜증난 V세대/최진봉 텍사스 주립대 저널리즘 스쿨 교수

    미국 경제가 좀처럼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말미암아 미국 회사들은 신규고용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오히려 직원을 감원하는 추세여서 미국의 실업률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 발표에 따르면, 지난 7월 미국의 실업률은 9.1%로 현재 무려 1400만명이 실업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의 청년 실업률이 미국 전체 실업률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대학을 졸업하고도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지 못해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요즘 신세대들은 인생의 주요 결정을 뒤로 미루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18세에서 29세 사이의 미국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조사대상의 44%가 주택을 사들일 계획을 훗날의 일로 미루겠다고 응답했고, 응답자의 23%는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일이 지금 고민할 내용이 아니라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계획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신세대들에 대해 LA 타임스는 ‘짜증난 세대’(Generation Vexed)라는 의미로 ‘V세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경제 거품이 꺼지면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자신들이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V세대’들은 정치인들과 기성세대에 대해 불만과 불평을 많이 가지고 있다. V세대는 그동안 미국 정부가 국가 부채 한도를 지속적으로 늘리는 등 정치인들과 기성세대들의 경제정책 실패로 말미암은 피해를 고스란히 자신들이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재학 중인 엘리샤 토머스는 “안정적인 수입과 건강보험을 제공하는 괜찮은 직장을 얻으려고 전공을 몇 차례 바꿨지만 그러한 직장을 얻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라고 허탈해했다. 뉴욕의 세인트 로런스 대학에 다니는 존 글래스도 “우리 세대만 희생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억울해했다. LA 타임스는 미국의 실업률이 증가하면서 요즘 신세대들이 패스트푸드점 같은 파트타임 일자리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하고 있다. 신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도전과 젊은이들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긍정적인 의미를 띠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 중반에 신세대를 지칭하는 의미로 등장한 ‘X세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베이비 붐’ 시대가 지나고 태어난, 미래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미지의 세대’(Unknown Generation)라는 의미가 있었다. 그 후 2000년대 초반 등장한 ‘Y세대’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만의 미래를 개척하는 다양성을 지닌 신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에는 신세대를 인터넷과 휴대전화·유튜브·페이스북 등 다양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기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면서 서로 지그재그로 연결된 세대라는 의미로 ‘Z세대’, 즉 ‘디지털 원주민 세대’로 불렀다. 이렇게 신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들은 대부분 신세대의 기발한 개성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지금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신세대들은 희망이 사라지고 경기침체 탓에 꿈에 재갈을 물린 세대라는 의미의 ‘짜증난 V세대’로 불리고 있다. 갤럽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절반(50%)이 현재 젊은 세대의 삶의 질이 지난 세대보다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짜증난 V세대’는 혹독한 실업률로 말미암은 경제적 기회 부족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은커녕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안과 짜증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 정치권과 경제계를 포함한 기성세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들의 짜증을 없애 주어야 한다. 이대로 내버려둘 경우, 머지않은 미래에 기성세대를 포함한 국가 전체에 큰 재앙이 되어 되돌아올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 교통체증 질린 브래드 피트, 헬리콥터 구입해 화제

    교통체증 질린 브래드 피트, 헬리콥터 구입해 화제

    “교통체증 정말 싫어!” 영국 런던에서 새 영화 촬영중인 월드스타 브래드 피트가 런던의 극심한 교통체증을 견디다 못해 결국 헬리콥터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데일리미러 등 현지 언론의 9일자 보도에 따르면, 피트는 교통체증을 피해 자신의 헬리콥터를 구매하고, 이를 이용해 촬영을 나가거나 심지어 다른 지역의 슈퍼마켓을 찾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트 뿐 아니라 연인인 안젤리나 졸리와 여섯 아이들도 피트의 헬리콥터를 이용해 등하교를 하거나 쇼핑을 나서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월드스타 다운 ‘통 큰’ 전용 교통수단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팬들 역시 놀라움과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편 브래드 피트는 런던에 머물면서 영화‘세계대전 Z’(World War Z)촬영에 매진하고 있으며, 새 영화는 2012년 개봉 예정이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열린세상] 한 세기 전 아픈 역사기억에 비춰 본 중국/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열린세상] 한 세기 전 아픈 역사기억에 비춰 본 중국/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지난 6일 중국 국무원은 ‘평화발전백서’를 펴냈다. 백서는 말한다. “중국은 평화를 사랑하며 결코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다른 나라가 중국 내정에 간섭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겠다.”고. 그러나 국가주권과 안보, 그리고 영토를 “단호하게 지켜나갈 것”이라고. 이 백서는 후진타오 주석이 2003년 이래 추진해 온 화평굴기(和平?起) 정책과 유소작위(有所作爲) 전략을 잘 보여준다. 전자는 평화를 추구하면서 대국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고, 후자는 적극적으로 국제 관계에 개입해 국익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화평굴기는 속내를 감춘 외교적 수사일 뿐이다.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출범 이후 주변국을 영향권 내에 묶어두려는 기미(羈?)정책을 폐기한 적이 없었다. 방점은 유소작위에 찍혀 있다. 스텔스 전투기 젠(殲)20의 개발과 항공모함 바랴크호 진수를 둘러싸고 중국 위협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요즘. 한 세기 전 국망(國亡)의 아픈 역사가 생각난다. 우리의 근대화를 가로막은 주범은 중국이었다. 1860년 베이징조약 때 러시아에 연해주를 넘길 때만 해도 중국은 그 후폭풍이 얼마나 클지 알지 못했다. 1870년대에 들어 러시아는 대륙 진출의 관문인 신장성 이리(伊犁)지역에서 국경분쟁을 일으켰다. 그 틈을 타 일본은 타이완을 침략하고 오키나와를 집어 삼켰으며 조선을 개항시켰다. 그제야 중국은 조선에 대한 영향력 상실이 가져 올 결과에 살을 떨었다. “조선은 독자적인 대책을 수립할 수 없으므로 조선을 위하여 대신 주책(籌策)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청조의 실력자 이홍장의 이 말이 잘 나타내듯 중국은 조선의 내·외정에 깊숙이 간여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위기 의식은 청불전쟁을 기회삼아 중국세력을 몰아내려 한 1884년 갑신정변 이후 증폭되었다. 중국이 입술이 사라진 후 겪게 될 시린 이의 고통을 절감하게 된 것은 1894년 청일전쟁과 1905년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대륙침략에 나선 뒤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까지 일본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시달려야 했던 중국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아픔을 뼛속 깊숙이 새겼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늘의 패권 추구는 치욕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산물일 수 있다. 몇 해 전 티베트인의 독립 요구에 대한 유혈진압, 이에 대한 지구촌 사람들의 비판에 힘으로 맞선 중국인들의 도를 넘는 애국주의, 그리고 6·25전쟁 개입이나 동북공정도 쓰라린 역사 기억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역사 경험 때문이라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은 명백한 침략자였다. 1882년 임오군란 때 3000명의 군대를 몰고 이 땅에 들어온 이래 청일전쟁으로 밀려날 때까지, 우리에게 정치적 독립과 경제적 자립은 물론 세상을 알기 위한 교육의 기회마저 주려 하지 않았다. 그때 우리는 반식민지나 진배없었다. “나는 조선에 대한 중국의 극악무도함을 너무도 증오하므로 다른 나라의 지배는 나에게는 비교적 견딜 만하다.” 청일전쟁이 터진 직후 윤치호는 중국에 대한 적개심을 토로했다. 중국의 6·25전쟁 개입은 민족 통일의 기회를 가로막은 폭거이며, 고구려의 역사를 앗아 가려는 동북공정도 좌시할 수 없는 역사 기억의 침탈이다. 아픈 역사를 다시금 곱씹어 교훈을 찾아야만 한다. 러시아와 우리가 국경을 접하게 된 연해주 할양은 한반도 지배권을 놓고 열강이 벌인 쟁탈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역사에 도돌이표는 있는가? 힘의 정치(power politics)가 관철되는 국제정치판이 다시 펼쳐지고 있는 오늘. 6자회담이 상징하듯 한반도 지배권을 놓고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힘겨루기가 다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한 세기 전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무너져 가던 청나라 때나 대국굴기(大國?起)를 외치며 중국이 패권국가로 발돋움하는 지금이나 매한가지인 것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중국의 숨통을 죄는 인후(咽喉)라는 것이다. 그때 중국이 우리에게 행한 간섭은 그 영향력 상실이 가져 올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큰비가 오기 전 둥지를 고치는 미우주무(未雨綢繆)의 혜안을 위정자들이 갖길 바란다.
  • [서울광장] 이제 국민을 좀 대접하라/오병남 논설실장

    [서울광장] 이제 국민을 좀 대접하라/오병남 논설실장

    대한민국 국민은 착하다. 광복 이후 66년간 가난과 전쟁, 군사독재의 질곡 속에서도 개미처럼 근면했고, 민주주의 대장정을 멈추지 않았다. 더구나 나라가 어렵거나, 큰일을 치를 때면 늘 세계가 깜짝 놀랄 민도를 보여줬다. 외환위기 때 들불처럼 일어난 ‘금 모으기’는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었다. 이리 착한 국민의 피땀 덕분에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뤘는지 모른다. 대접받을 만한, 아니 대접받아야 할 국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달리는 말에 채찍 든다고 했던가. 박정희정권 시절 지상명령처럼 외친 수출 100억 달러-1인당 국민총생산(GNP) 1000달러는 무역규모 1조 달러(세계 9위)-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 달러로 바뀌었지만 쉼 없이 달려온 국민을 다독이고, 격려하고, 대접하는 일은 사뭇 소홀한 듯하다. 삶의 질 지표가 2000년 이후 줄곧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주요20개국(G20)에 속한 39개국 가운데 27위에 정체돼 있는 사실이 하나의 방증이다. 최근 이념전쟁으로 변질돼 헛배만 부른 복지논쟁도 착한 국민에게는 섭섭하고 피곤한 일이다. 뒷감당도 못하면서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식의 ‘표(票)퓰리즘’은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중산층이 무너진 가운데 노숙자가 하루에 한명꼴로 숨지고,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세계 1위인 현실에서 복지에 대한 비전 제시는 없이 이제 막 움튼 복지의 싹을 잘라내기라도 하려는 듯한 태도는 곤란하다. 열심히만 살면 나라가 잘되고, 그 나라가 자신을 대접해 주리라는 기대를 배반하는 것만큼 가혹한 일은 없다. 이쯤에서 착한 국민을 위해 나라가 무엇을, 어떻게 대접할 것인가를 좀 더 깊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비록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지금 나라가 국민을 위해 최소한 무엇을 대접하려고 노력한다는 믿음은 줘야 한다. 복지선진국의 길은 멀고 험난하다.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라도 챙겨 보라. 가까운 예로 시민단체들이 10여년 전부터 줄기차게 요구해온 경인·경부고속도로 등의 무료화도 해볼 만하다. 지난 1968년 12월 21일 우리나라 최초로 개통된 경인고속도로와 1970년 개통한 경부고속도로는 이미 법률상으로도 통행료 징수기간을 한참 넘겼다. 현행 유료도로법은 30년 이내에서 통행료 수납기간을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통행료 총액도 건설유지비 총액을 초과할 수 없다. 개통 30년을 넘긴 고속도로는 모두 9곳이다. 이 가운데 건설유지비 총액까지 회수한 곳은 경인선·경부선을 비롯해 울산선(1969년)·남해2지선(1981년) 등 4곳이다. 한국도로공사와 국토해양부는 전국의 고속도로를 하나의 도로로 보는 통합채산제를 근거로 10년 넘게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일본 민주당 정권이 지난 6월 고속도로 무료화를 2년 만에 접어 ‘폐지 불가’ 입장은 더 단단해질 것 같다. 하지만 지난 6월 1일 인천 경실련 등 4개 시민사회단체와 30명의 공익소송인단이 2000년 이후 11년 만에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부과처분 취소 소송을 내는 등 폐지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총체적인 해법이 마련되지 않으면 갈등은 갈수록 증폭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전면적인 무료화가 여의치 않다면 사실상 고속도로 기능을 상실하는 명절 때만이라도 통행료 징수를 멈추는 건 어떨까. 사흘 뒤면 민족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 연휴가 시작된다. 이번에도 전국의 고속도로는 고향 가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룰 것이다. 통행료를 받지 않는다고 더 몰려들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차피 주차장을 방불케 할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팍팍한 삶 속에서 명절은 오아시스 같은 것이다. 올해 한가위는 유럽·미국발 글로벌 경제쇼크,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고통 속에 맞는 것이어서 더욱 그렇다. 고향을 오가는 동안만이라도 전국의 고속도로를 무료 개방해 한시름 덜어주면 좋겠다. 이제 우리 국민도 좀 대접받을 때가 됐다. obnbkt@seoul.co.kr
  • 일제 한인징용 26만명 확인

    2차 세계대전 기간 한반도에서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된 군인·군속 26만명의 배치 상황이 일본의 역사 연구가에 의해 확인됐다고 마이니치신문이 4일 보도했다. 그동안 한반도 출신자의 배속처가 부분적으로는 판명됐지만 체계적으로 밝혀진 것은 처음이다. 이 같은 사실은 일본의 근대사연구가 다케우치 야스토(54)가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넘긴 군인·군속 관련 명부를 조사한 결과 밝혀졌다. 조사에 따르면 한반도 출신의 육군 징용자는 한반도에 6만 2000명, 중국(옛 만주와 타이완 포함)에 약 4만 3000명, 일본에 약 2만명, 남방전선에 약 1만 4000명, 일본과 아시아 각지의 항공군과 선박군에 약 2만명이 배치됐다. 또 해군은 한국 진해에 약 2만 1000명, 요코스카·사세보·마이쓰루·오미나도 등 일본 군항의 군속에 약 8만명 등이다. 육군과 해군을 포함하면 한반도 출신 군인·군속은 모두 26만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서울 용산에 편성돼 있던 보병 제20사단의 78, 79, 80연대에는 모두 1140명의 한반도 출신자가 배속돼 있었다. 이들은 격전지 뉴기니에 파견돼 1000명 이상이 전사했다. 그동안 한반도 출신 군인·군속은 일본이 패전한 뒤 정부 기관에 따라 24만~36만명 등으로 집계됐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주말 영화]

    ●헬보이(OBS 토요일 밤 11시 15분) 때는 1944년 2차 세계대전, 수세에 몰린 나치는 러시아의 마술사 라스푸틴을 고용해 지옥의 악마를 불러와 전세를 역전시킬 음모를 꾸민다. 라스푸틴의 염력으로 혼돈의 지옥신 자하드가 깨어나고 지옥의 문이 열리려 하는데 미리 정보를 입수한 연합군이 공격해 간신히 이를 저지한다. 간발의 차이로 지옥에서 지구로 불려온 헬보이는 BPRD를 설립한 브룸 교수에게 인도돼 텔레파시 예지력을 지닌 양서인간 아베 사피엔과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파이로-키네시스’ 리즈와 함께 악에 맞서는 전사로 성장한다. 그로부터 60년 후 어둠 저편으로 추방되었던 라스푸틴은 추종 세력에 의해 부활한다. 그가 창조한 ‘지옥의 사냥개’ 삼마엘과 부관 크뢰넨에 의해 온 세계에 강력한 파괴와 종말의 기운이 퍼져나간다. 지옥의 문을 다시 열기 위해선 헬보이의 힘이 꼭 필요한 상태다. 라스푸틴은 리즈의 목숨을 볼모로 헬보이에게 악마로서의 각성과 파괴신으로서의 재림을 강요하는데…. ●콰이강의 다리(EBS 토요일 밤 11시) 2차 대전 중 타이의 밀림 속에서 영국군 공병대가 일본군 포로 수용소에 잡혀 온다. 일본군은 이들을 이용하여 콰이강에 다리를 건설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일본군 수용소장 사이토 대령(세슈 하야카와)과 영국군 공병 대장 니콜슨 중령(알렉 기네스)은 투철한 군인 정신과 인간성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니콜슨 중령은 영웅적인 지도력으로 일본군 수용 소장을 심리적으로 누르고 콰이강 다리 공사를 독단으로 해낸다. 마침내 콰이강의 다리 건설은 급진전되고 영국군 유격대는 폭파 작전을 감행한다. 다리 개통식 날 첫 기차가 통과하는 장면을 여유 있게 바라보던 니콜슨 중령은 다리와 연결된 도화선을 보고 경악하는데…. 자신이 이룬 것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는 너무도 쉽게 무너져 버리고 만다. ●언브레이커블(OBS 일요일 밤 11시 15분) 예상치 못한 반전과 충격적 결말이 시작된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차 충돌 사고가 발생한다. 승무원과 승객을 포함해 131명이 현장에서 즉사한 대형 사고였지만 놀랍게도 한 명의 생존자가 발견된다. 바로 대학교 풋볼 스타디움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데이빗 던(브루스 윌리스)이다. 데이빗은 대학 시절 영웅처럼 떠오르던 스타 선수였으나 자동차 사고로 선수 생명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이다. 놀라운 것은 그때의 사고에서도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났다는 점이다. 혼자만 살아났다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데이빗은 자신의 승용차에 꽂혀 있는 쪽지를 발견하고는 쪽지를 보낸 엘리야 프라이스(새무얼 잭슨)라는 사람을 찾아가는데…. 과연 그는 어떤 이유에서 데이빗이 자신을 만나러 오도록 쪽지를 남긴 것일까.
  • [씨줄날줄] SAS(영국 공수특전단) /우득정 수석논설위원

    프레드릭 포사이드는 소설 ‘더 아프간’(The Afghan)에서 마틴이 영국의 대테러부대 공수특전단(SAS) 정예요원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22주간에 걸친 훈련과정에서 8~9주째 극기훈련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웨일스 지방의 혹독한 추위 속에 잠도 자지 않고 강행군하다 체온저하 등으로 목숨을 잃는 훈련병도 적지 않다. 11~12주째 체력 테스트에서는 비, 우박으로 진흙탕이 된 언덕을 통나무를 끌고 달려야 한다. 이때까지 버텨낸 대원들에게는 빨간 베레모가 지급된다. 하지만 이어지는 3주에 걸친 야전 생존훈련에서는 황무지 벌판에서 젖은 옷을 입은 채 모닥불도 없이 겨울바람을 견뎌야 한다. 16주째부터 비로소 낙하산 강하 훈련이 시작된다.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기 전 4주간에 걸친 예비훈련에서도 탈락자가 속출한다. 그래서 포사이드뿐 아니라 잭 히긴스, 다니엘 실바 등 영국이나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의 소설에는 항상 테러리스트에 맞서는 SAS 출신 주인공이 등장한다.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이나 하마스, 알카에다 출신 테러리스트 못지않게 냉혹하다. KGB나 CIA 요원들은 교활하거나 뒤통수 치기에 급급한 하수쯤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대테러부대의 원조가 SAS라는 자부심이 은연중에 배어 있는 듯하다. SAS는 1941년 북아프리카에서 독일과 이탈리아군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된 특수부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혁혁한 전공을 세워 전후 6개 대대의 여단급으로 성장했으나 1952년 3개 대대 연대급으로 축소됐다. 각 대대는 4개 중대로, 각 중대는 사병 72명과 장교 6명으로 구성돼 있다. 1960년대 말까지 각국의 경호원들에게 경호 기술을 전수하다가 1969년부터 북아일랜드에 파견되면서 대테러작전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1980년 런던 주재 이란대사관 인질억류사건 진압, 모가디슈 항공기 납치 구출작전, 아센 열차 납치 구출작전, 알도 모로 전 이탈리아 총리 납치사건 등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델타포스를 비롯한 전 세계 대테러 특수부대의 롤 모델이 SAS이다. SAS연대본부 시계탑 4개면에는 작전 중 순직한 요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외신에 따르면 SAS와 영국의 정보기관 MI6 등이 리비아에서 ‘카다피 사냥’에 나섰다고 한다. 특히 SAS 정예요원들은 카다피의 지지기반인 시르테에 침투해 작전 중이라는 소문도 나돈다. 42년간 리비아를 철권통치했던 카다피가 이젠 한낱 테러리스트 수준으로 전락한 모양이다. 우득정 수석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日, 개도국 지원… 민·관이 문화외교 협력

    일본은 과거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공공외교의 주안점을 바꿔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군국주의 국가’라는 꼬리표를 떼내기 위해 전 세계에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 주력했다. 공공외교 사업도 당연히 이 부분에 중점을 뒀다.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1970년대 이후 ‘경제 동물’이라는 부정적인 수식어가 따라붙자 일본은 이 같은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1972년 국제교류기금을 설립했다. 1990년대 들어 일본은 ‘자신들만 알리려 할 뿐 우리를 알려고는 하지 않는다’는 국제 사회의 비판을 의식해 또다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된다. 국제사회, 특히 개발도상국에 이바지하는 사업이 대폭 늘어난 것이 이 즈음이다. 아시아 국가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인식도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일본 국제교류기금 혼다 오사무 한국 사무소장은 자국의 공공외교 목표를 “일본에 대한 세계 각국의 이해를 높이고 국제사회에서 상호 이해 증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실천계획으로 국제환경 조성과 조화로운 대외관계 유지, 세계평화를 위한 이바지를 꼽았다. 현재 일본 국제교류기금은 21개국 22개 도시에서 문화원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 공공외교, 특히 문화외교의 특징은 민간이 중심이 되고 정부가 민간의 자산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상업성이 없어 민간이 맡을 수 없는 분야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관여한다. 혼다 사무소장은 최근 일본에서 일고 있는 K팝을 사례로 들며 “문화 외교는 소통이 중요하다. 일방적인 홍보로 흐르면 자칫 역풍이 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얽히고설킨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과 협력을 위해 한·중·일이 다양한 공동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는 인식도 갖고 있다. 현재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국가 간 연대가 부족하다는 지적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예를 들면 에라스무스계획을 통해 1만명이 넘는 교수와 10만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상호 교류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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