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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유럽 정치·문화사 증언록

    2010년 만 93세에 쓴 ‘분노하라’는 책은 프랑스에서 출간 7개월 만에 200만부를 포함, 지금까지 3500만부가 팔리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얇은 책 한 권으로 세상의 온갖 불의에 맞서 용감히 저항하고 연대할 것을 호소해 세계에 크나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까닭은 뭐니뭐니해도 저자의 힘에 있다. 슈테판 에셀은 1917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2013년 2월 파리의 자택에서 한 세기 가까운 기나긴 삶을 마감했다. 유대계 작가인 아버지, 화가이자 예술애호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에셀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 1944년 체포돼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사망자와 이름을 바꾸며 극적으로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종전 후 외교관의 길을 걸어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하고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 유엔 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 등을 역임했다. 그는 생전에 ‘사랑을 사랑하기’를 외쳤고 국경 없는 시민, 헌법 없는 유럽인, 당파 없는 투사, 한계 없는 낙관주의자로 지냈다. 신간 ‘세기와 춤추다’(슈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김희진 옮김, 돌베개 펴냄)는 20세기 유럽을 온몸으로 살았던 저자의 파란만장한 일대기이자 유럽의 정치·외교·문화·지성사의 증언록이다. 나이 80대에 주변 지인들의 우정어린 압력(?)에 못 이겨 집필한 회고록이다. 20세기 식민지들의 연이은 독립, 끝없는 분쟁, 인종 갈등, 냉전 등의 다큐멘터리를 치열하게 다루고 있다. 여기에 독특한 개인사와 어우러진 것이 더욱 흥미롭다. 올랑드 대통령의 추도사와 에셀이 주로 활동했던 지역인 유럽, 아프리카 등의 지도를 곁들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1946년 외무부 시험에 합격해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저자는 샤를 드골,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 조르주 퐁피두,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수아 미테랑, 피에르 모루아, 미셸 로카르 등 당대 최고 권력자들 밑에서 국제사회 관련 일들을 맡아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내용을 상세히 담고 있다. 행동하는 유럽 지성의 전위로서 알제리 전쟁기간에는 알제리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한편 불법 이민자 문제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하는 내용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2011년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선정한 세계의 대표적 사상가 명단에 올랐다. 2만원.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日의원 야스쿠니 집단 참배] 이제는 대놓고 역사도발… 7월선거 보수 표심몰이 검은 속셈

    [日의원 야스쿠니 집단 참배] 이제는 대놓고 역사도발… 7월선거 보수 표심몰이 검은 속셈

    아소 다로 부총리 등 각료 3명이 지난 21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데 이어 23일에는 일본의 여야 국회의원 168명이 집단 참배했다. 최근 몇 년간 100명 이하의 의원들이 참배한 것과 비교하면 올해 들어 부쩍 늘었다. 이러한 참배 인원 증가는 일본 정치권의 보수화 추세가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정치인들은 한국과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왜 매년 춘계·추계 예대제와 패전일인 8월 15일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집착하는 것일까. 야스쿠니 신사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태평양전쟁 등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나섰다가 숨진 이들을 신격화해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1978년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14명을 연합군에 의해 오명을 뒤집어쓴 ‘순난자’(殉難者)로 규정한 뒤 비밀리에 합사해 놓았다. 신사에는 2만 1000여명의 조선인들도 강제 합사돼 있다. 전범자와 일반 전몰자들이 섞여 있다 보니 우익이 아닌 일반 참배자 대부분도 유족의 관점에서 참배하지만 겉보기에는 A급 전범자들을 용인하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사회가 급격히 우경화되면서 우익들에게는 군국주의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상징적인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대부분의 우익들은 A급 전범들을 범죄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일본의 중대 전쟁 범죄인을 재판하기 위해 1946년 실시한 도쿄재판에 대해서도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전쟁 책임은 인정하지만 14명만이 특별히 책임질 일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나라를 위해 숨진 영령들을 위로하는 이곳을 국정 최고 책임자인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1985년 나카소네 전 총리가 야스쿠니를 참배한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집권한 2001년부터 해마다 참배해 한국과 중국의 거센 반발을 받았다. “지난 2006년 총리 때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못한 게 한으로 남는다”고 말한 아베 신조 총리는 이번 춘계 예대제에는 공물을 봉납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지난해 12월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압승해 3년 4개월 만에 재집권에 성공한 자민당은 오는 7월 참의원(상원)에서도 보수층의 지지를 확산시키기 위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외교적 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각료나 의원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참배했다고 발뺌하는 형식이 되풀이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3일 “일본에는 신교(神敎)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각료든 초당파 의원이든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우익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일본 내부에서도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가이에다 반리 대표는 한국 정부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일본 방문을 미루기로 한 것과 관련,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이미 외교에 영향을 미쳤다”며 “정권 핵심에 있는 사람은 대국적 입장에서 행동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진보 언론들도 정치인들이 내정을 위해 외교 분란을 일으키는 것에 비판하고 나섰다. 아사히신문은 ‘야스쿠니 문제, 왜 불씨를 만드는가’라는 제목의 23일자 사설을 통해 “이웃 나라들과의 관계개선이 필요한 때 아베 정권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며 “야스쿠니 참배는 역사인식에 관한 문제이며, 양국(한국과 중국)의 반발은 당연히 예상된 것”이라고 적었다. 마이니치신문도 사설에서 “북한 문제와 관련한 중국, 한국과의 협력을 어렵게 함으로써 결국 일본의 국익을 해칠 수도 있다”며 “무신경한 행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지극히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윤병세 외교 방일 취소… ‘朴心 반영’ 對日 강력 경고

    윤병세 외교 방일 취소… ‘朴心 반영’ 對日 강력 경고

    정부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일본 방문을 전격 취소했다. 양국의 새 정부 출범 후 첫 한·일 외교장관 회담 취소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인 것으로 확인돼 양국 간 정상회담도 장기간 공전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외교부는 22일 아소 다로 부총리 등 일본 각료들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와 관련해 오는 26~27일 예정됐던 윤 장관의 방일 계획을 백지화했다고 밝혔다. 야스쿠니 신사는 2차 세계대전 전범이 합사된 곳으로, 아베 신조 정권 출범 후 각료들의 참배는 처음이다. 일본 국회의원 100여명은 23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예정이다. 아소 부총리는 박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취임식 직후 접견했던 인물로, 당시 박 대통령은 그에게 “한·일 간 진정한 우호관계를 구축하려면 과거의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진심 어린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이 아소 부총리의 참배에 상당한 불쾌감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윤 장관의 방일 취소는 박 대통령의 원칙에 입각한 대일 외교 의지를 분명히 하고, 일본 측에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대통령의 뜻이 반영된 조치”라며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묵과하지 않겠다는 경고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우리 정부가 그동안 수차례 야스쿠니 참배의 자제를 표명했지만 일본 정부가 양국 간 신뢰를 깨트렸다”며 “어제 청와대와 협의했고, 현 상황에서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고 말했다. 아베 정권의 ‘우익 본능’이 두드러지면서 양국 관계 정상화의 돌파구를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후 양국 외교 갈등은 새 정부 들어서도 첨예해지고 있다. 특히 일본 내각 서열 2위로, 차기 총리를 넘보는 아소 부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결정타가 됐다. 박근혜정부의 동북아시아 역내 외교에도 지형 변화가 현실화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다음 달 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중국 방문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역대 정부의 ‘미국→일본→중국’ 정상회담 관례가 처음으로 뒤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새 정부 들어 첫 한·일 정상회담은 상당기간 불투명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베 정권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면 공약대로 현 평화헌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할 수 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북한 문제와 엔저 정책, 동북아 역내 현안 등 논의할 문제가 많아 외교장관의 방일 취소는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북한과의 소통, 그 난해한 해법/나은영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옴부즈맨 칼럼] 북한과의 소통, 그 난해한 해법/나은영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최근 3주간 서울신문 1면의 머리기사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북한 관련 내용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4월 6일자 ‘북 위협 맞선 치킨게임부터 멈춰라’와 11일자 ‘불신의 덫, 한·미·북 3각외교가 없다’는 뉴스분석 기사는 북한과의 심층적 소통문제를 짚어보려 한 의미 있는 기사였다. 대개 1면 머리기사의 경우 보완 기사가 신문 내부에 담긴다. 그중 ‘북 개성공단 몰수 후 제품 수출 개척할 것’이라는 탈북자선교회 대표의 진단(10일자)과 ‘김정은이 전쟁을 직접 겪지 않아 북한이 군사대국이라고 오판할 수 있다’는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소 교수의 견해(12일자)는 워싱턴과 베이징 특파원의 심도 있는 취재내용을 담아 관심을 끌었다. 국가 간의 소통에는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 개인 간 소통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나 국가도 결국 공통의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모여 형성된 집단이기에, 사회문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북한과의 소통을 생각해 봤다. 북한은 같은 민족이지만, 오랜 세월 다른 체제 아래 분리되어 생활해 온 탓에 지금은 동일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문화는 ‘마음의 소프트웨어’로서 어떤 외부 자극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일종의 프로그램처럼 작동한다. 이런 측면에서 특히 북한지도층은 북한주민이나 탈북자와는 다른 마음의 소프트웨어, 즉 문화를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문화심리학자 호프슈테드가 말하는 문화차원들 중에서 남성적 문화와 여성적 문화는 특히 갈등해결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국가의 부유함과 무관하게 남성적 문화는 성취를 중요시하며 국민총생산(GNP) 중 군비지출 비율이 높고, 여성적 문화는 겸손을 중요시하며 해외원조 비율이 높다. 남성적 문화는 힘으로 해결하려 하고, 여성적 문화는 타협하려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일본·이탈리아는 모두 남성적 국가였다. 남성적 문화의 특성을 보이고 있는 북한 지도층은 ‘우리가 힘이 세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반면에 전통적으로 여성적 문화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한국은 ‘우리가 지금 양보하면 다음에는 저쪽에서 양보하겠지’ 하는 타협의 마인드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우리 쪽에서 먼저 양보하면, 저쪽에서는 ‘이번에도 우리가 세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하며 매번 같은 방식의 대결을 시도한다. 공교롭게도 주요 8개국(G8)에 속한 대부분의 나라가 남성적 문화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힘의 논리로 무장된 작금의 환경 속에서 한국의 대응을 더욱 어렵게 한다. 한국 장관은 대북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문제와 별개로 진행해야 한다고, 미국 장관은 북한이 비핵화에 동의하지 않으면 지원을 끊겠다고 하는 것이다 더욱 어려운 부분은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예측불가능성이다.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응집력이 높고 외부정보와 차단된 집단에서 흔히 독선적인 리더가 저지르기 쉬운 것이 집단사고와 유사한 비합리적 의사결정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언어적 위협에도 끄떡하지 않고 일상에 충실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성숙한 모습은 실로 가치 있는 의연한 자세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상대의 비합리적 오판에 우리의 숭고한 인도적 희망이 희생이 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전주에 핀 영화꽃 190송이… 대중성·예술성 뿌리 찾을까

    전주에 핀 영화꽃 190송이… 대중성·예술성 뿌리 찾을까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JIFF)는 내홍을 겪었다. 지역언론과 갈등을 빚은 프로그래머의 부당 해임 논란, 고석만 신임 집행위원장과의 의견 충돌에 따른 스태프의 집단사표가 이어졌다. 우려를 딛고 JIFF는 심기일전했다. 오는 25일부터 새달 3일까지 열리는 제14회 JIFF는 프로그램을 정리했다. 6개 메인 섹션과 19개의 하위 섹션 프로그램으로 꾸려졌던 지난해와 달리 하위 섹션을 11개로 줄였다. 반찬 가짓수만 많았던 한정식 상차림을 간소하게 한 셈. 대신 재료의 선도는 한껏 끌어올렸다. 지난해 상영작 중 세계 첫 상영(월드 프리미어)은 36편, 제작국을 제외한 최초 상영(인터내셔널프리미어)은 1편이었지만, 올해에는 각각 45편과 18편으로 늘어났다. 총 190편의 상영작 가운데 김영진(왼쪽)·이상용(오른쪽) 프로그래머가 추린 추천작 7편을 소개한다. 마테호른 판권·배급사업을 병행하는 JIFF가 지난해 베를린영화제에서 구매했다. 올 로테르담영화제 관객상을 받은 디데릭 에빙어 감독의 작품. 아내와 사별한 후 홀로 사는 프레드는 정신이 나간 듯 보이는 레오를 도와주게 된다. 두 사람은 함께 살며 마을 사람들의 눈총을 산다. 하지만 프레드는 레오에게 집안일을 알려주는 등 점점 마음을 쓰게 된다. →김영진의 추천평:아내를 떠나보낸 후 혼자 사는 중년 남성이 낯선 노숙자를 보살피면서 우정을 확인한다.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과 놀라운 반전까지 선사해줄 아름다운 삶의 찬가다. 마스터 ‘부기나이트’ ‘매그놀리아’ ‘데어 윌 비 블러드’로 유명한 폴 토머스 앤더슨의 최근작.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와 경합 끝에 은사자상과 공동남우주연상(필립 세이모어 호프먼·호아킨 피닉스)을 쓸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후 사회 부적응자로 살아가던 사내가 신흥종교 교주를 만나 포교에 동참하지만, 더 큰 폭력으로 또 다른 상처가 생긴다. →김영진의 추천평:구원 대신 맹목적인 믿음을 추구하는 인간이 견인하는 광기의 드라마다. 앤더슨의 절도 있는 연출 아래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과 65㎜ 촬영이 만나 영화예술이 이를 수 있는 절경을 유감없이 펼친다. 센트로 히스토리코 마뇰 드 올리베이라와 페드로 코스타 등 포르투갈의 두 거장과 빅토르 에리세(스페인), 아키 카우리스마키(핀란드)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네 감독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기마랑이스를 배경으로 풀어낸 옴니버스 영화다. 세계 영화계를 통틀어 최고령인 올리베이라(105) 감독의 신작을 볼 수 있는 건 영화팬에겐 축복이다. →김영진의 한마디:손님 없는 식당의 외로운 주인(카우리스마키), 혁명에 실패한 후 미쳐버린 대위(코스타), 과거의 명성이 퇴색한 폐허 같은 공장(에리세), 기마랑이스의 관광 가이드(올리베이라)의 시선을 따라가며 유럽의 근대사를 관통한다. 디지털 삼인삼색 2013:이방인 중 풍경 ‘숏!숏!숏!’과 더불어 JIFF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한 ‘디지털 삼인삼색’(영화제 측이 3명의 감독에게 화두를 던지고 제작비를 지원, 30분 내외의 디지털 영화를 의뢰)의 올해 주제는 ‘이방인’이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영화작가 장률은 서울에 사는 이방인의 풍경을 다룬다. 사람과 도시를 바라보며 “누군들 이방인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김영진의 한마디:많은 시간, 사람들은 서로에게 풍경으로 존재한다. 이 생경함은 때론 당신에게 어떤 감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풍경은 여전하나 감동은 서서히 변한다. 경계에 선 인간을 지속적으로 조명해 왔던 장률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 아메리카 ‘심판’ ‘성’과 더불어 프란츠 카프카의 3부작으로 불리는 ‘아메리카’는 끊임없이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JIFF는 카프카 탄생 130주년을 맞아 ‘카프카, 영화를 만나다:카프카 특별전’을 마련했다. 블라디미르 미차렉이란 낯선 감독은 원작에 대한 뛰어난 해석과 스타일리시한 화면 구성으로 주목할 만하다. →이상용의 한마디:수많은 버전의 ‘아메리카’가 있지만, 더 스타일 넘치는 화면으로 미국에 대한 풍요로운 상상력을 제공하는 영화다. 물론 그 이면에는 카프카라는 20세기 예술가의 비전이 스며 있다. 돌아올 거야 오빠와 소녀 크리스가 한적한 도로 위에 남겨진다. 부모는 돌아오지 않고 오빠는 방법을 찾겠다며 크리스를 남겨둔 채 떠나가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 크리스는 근처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시간을 보내며 가족을 찾게 된다. 하지만 며칠 동안 세상은 조금 변해 있다. 브라질 감독 마르셀로 로르델로의 성장영화다. →이상용의 한마디:길 위에서 떠나버린 부모와 오빠를 기다리던 소녀의 성장담을 깔고 있으면서도, 남미의 풍경과 소녀의 마음이 흥미롭게 겹쳐지는 아름다운 영화다. 세상은 자신도 모르게 변하고, 그 속에서 주인공은 성장을 경험한다. 지젝의 기묘한 이데올로기 강의 슬로베니아의 석학 슬라보이 지제크와 함께 2006년 ‘지젝의 기묘한 영화 강의’를 내놓았던 소피 피엔스 감독의 후속 다큐멘터리. 이번에는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룬다. 그가 다루는 핵심은, 우리가 믿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의 간극과 시차다. 시청각 지제크 개론서라 부를 만하다. →이상용의 한마디:지제크이다. 언변과 재기 넘치는 예시만으로도 눈과 귀가 즐거워진다. 이데올로기란 무엇인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과 뛰어난 논증, 사색이 담겨 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길섶에서] 절두산/서동철 논설위원

    언젠가 여행한 포르투갈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가물가물하지만, 파티마에 대한 기억만큼은 또렷하다. 작은 마을 파티마는 한 해에 수백만명이 찾는 가톨릭 성지(聖地)라고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어느 날, 양을 치는 세 아이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 성모 마리아는 5개월 동안 매달 13일 이곳에 와서 평화를 기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마침내 10월 13일, 7만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모 마리아가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1930년 ‘성모 발현(發顯)’을 공인하고 1953년 대성당을 세웠다. 엊그제 서울 양화진의 절두산 성당을 찾았다. 누에의 머리를 닮아 잠두봉(蠶頭峰)으로 불리다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형으로 순교하면서 절두산(切頭山)이 됐다. 이곳에서 순교한 것으로 기록이 확인된 사람은 29명이지만, 수천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박물관에서는 포교와 박해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당시 신앙과 목숨을 맞바꾼 사람은 전국적으로 8000명에 이른다고 한국 교회는 설명한다. 절두산에 비하면 ‘파티마의 기적’은 오히려 감동이 적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일본 역사교과서 극우 가속… 검정제도까지 뜯어 고친다

    일본 역사교과서 극우 가속… 검정제도까지 뜯어 고친다

    일본 정부가 역사교과서 등의 검정 제도 수정 방침을 공식화했다.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은 10일 오전 중의원(하원) 예산위원회 답변에서 현재의 교과서 검정 제도에 대해 “현상과 과제를 정리해 수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 중국 등 제2차 세계대전 피해국을 배려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근린제국(諸國) 조항’을 수정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시모무라 문부과학상은 일본군 강제 동원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극우적 성향의 정치인이다. 그는 아베 신조 총재 직속의 자민당 교육재생실행본부장을 맡아 자학사관 편향 교육의 중단, 교과서 검정제도 개편을 통한 근린제국조항의 폐지, 애국교육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자민당 총선 교육 공약을 만들었다. 일본의 집권 자민당도 근린제국 조항에 대해 “역사 교과서의 자학사관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한 목소리로 비난해 왔다. 지난해 말 총선 공약에서 “전통문화에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내용의 교과서로 배울 수 있도록 검정 기준을 개선하겠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집권 후에는 경제 문제에 집중한다며 검정 기준 수정 방침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아베 총리도 이날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검정 기준에 대해 “개정 교육기본법의 정신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며 “(교과서를 검정하는) 검정관에게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고 지적했다. 또 교과서 채택이 교육적인 관점에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 의심하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아베 총리가 언급한 ‘개정 교육기본법’은 본인의 첫 번째 총리 임기 때(2006년) 1947년 제정 이후 처음 손을 댄 것으로, 애국심 교육 강화가 핵심이다. 문부과학성은 이 개정 교육기본법을 토대로 2008년과 2009년 초·중·고등학교의 새로운 학습지도 요령과 해설서에서 영토 교육을 강화하도록 했고, 이에 따라 교과서 검정이 이뤄지면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이 크게 늘어났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대기업 순환출자 해소비용 너무 커 강제하기 쉽지 않지만 원칙적으로 막겠다”

    “대기업 순환출자 해소비용 너무 커 강제하기 쉽지 않지만 원칙적으로 막겠다”

    노대래(57)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공정위가 물가정책의 첨병으로 나선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물가 때려 잡기’에 나섰던 이명박 정부의 공정위 역할이 바뀔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순환출자와 관련해서는 원칙적으로 신규뿐 아니라 기존 출자분도 해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비용 등이 막대해 당장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해 시간을 두고 추진할 뜻임을 시사했다. 노 후보자는 3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정부에서 공정위가 물가 안정에 주력했지만 이는 (공정위의 존재 목적과) 맞지 않다”면서 “물가는 카르텔 규제 등 간접 조정으로 접근하고, 향후 공정위는 (본래의 설립 목적인) 공정거래 질서 확립 등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노 후보자는 “물가 정책의 핵심은 인상을 아예 막는 게 아니라 (오르는)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라고 뼈 있는 말을 했다. 이어 “풍선(물가)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인상)을 막기만 하면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이라면서 “시장을 적으로 돌리면 안 되는 만큼 물가 역시 시장 원리에 맞춰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순환출자와 관련해서는 “기존이나 신규 모두 해소하거나 금지하는 게 방향은 맞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소요돼 법으로 강제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경제민주화 정책은 필요성과 (시장의) 감내 가능성 둘 다 고려해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공약 후퇴’ 조짐이 엿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기존 순환출자는 놔두더라도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겠다고 분명히 했다. ‘개혁 의지가 약하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노 후보자는 “대기업에 과도하게 유리한 경쟁 구조에는 단호하게 메스를 가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독일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쟁정책으로 특정 대기업의 시장 장악 현상을 바로잡은 것처럼 약자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방위사업청장 재직 시절 무기선정 과정 등에 대해서는 청문회에서 상당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K2 전차의 핵심 부품인 ‘파워팩’(엔진+변속기) 도입과 관련해 그는 지난해 11월 감사원의 주의 조치를 받기도 했다. 감사원은 당시 “독일산 파워팩이 양산 실적이 있는 것처럼 기재하고 주행 평가 등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친기업 성향 발언도 야당의 공세거리가 될 수 있다. 노 후보자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이던 2006년 말 순환출자 규제에 대해 “과잉 규제”라며 반대했다. 2011년 8월 ‘불량 건빵’ 납품이 문제됐을 때는 “중소기업이 품질검사까지 제대로 해서 납품하기 어렵다. 대기업의 참여를 검토하겠다”고 말해 중기 비하 및 대기업 옹호 논란을 야기했다. 지난 29일 공개된 노 후보자의 재산은 15억 2625만원으로 지난해보다 2280만원 감소했다. 노 후보자는 육군 일병으로, 아들은 병장으로 각각 만기 제대했다. 부인 박혜리(57)씨와 1남 1녀. ▲충남 서천 ▲서울고·서울대 법학과 ▲행정고시 23회 ▲주미대사관 재경참사관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 ▲기획재정부 차관보 ▲조달청장 ▲방위사업청장 세종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1938년 흑백영화속 휴대전화 든 여성 등장

    1938년 흑백영화속 휴대전화 든 여성 등장

    1938년 흑백영화 속에 휴대전화를 들고 통화하는 여성이 찍힌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지난해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공개됐는데 여러 음모론가는 이 여성이 “시간 여행자”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최근 한 유튜브 사용자(Planetchecks)가 영화속 여성은 시간여행자가 아니지만, 손에 든 기기는 휴대전화라고 주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이 네티즌은 영화 속 여성이 든 기기는 미국 거대 기업 듀폰이 1차 세계대전 직전 개발한 프로토타입의 휴대전화라고 밝혔다. 영상은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레민스터에 있는 듀폰 공장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신들이 본 숙녀는 내 할머니 거트루드 존스”라면서 “당시 17세였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당시 해당 공장에 다녔으며 그곳에는 통신 구역이 있었고 당시 다른 여성들과 함께 무선 전화기를 실험 중이었다고 그는 주장했다. 한편 세계 최초의 휴대전화는 모토로사사(社)가 1983년 개발한 다이나택 8000X(DynaTAC 8000X)이며, 1928년 나온 찰리 채플린의 영화 ‘더 서커스’에서도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듯한 여성이 찍혀 논란이 된 바 있다. 사진=유튜브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20세기 르네상스 꿈’의 유산들

    ‘20세기 르네상스 꿈’의 유산들

    현대 건축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 르 코르뷔지에(1887~1965)의 말년 걸작 라 투레트 수도원 얘기라길래 처음엔 건축 얘기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유럽 가톨릭 문화와 도미니코 수도회의 신부 알랭 쿠튀리에(1867~1954) 얘기다. ‘르 코르뷔지에; 언덕 위 수도원’(니콜라스 판 지음, 허유영 옮김, 컬처북스 펴냄)은 르 코르뷔지에의 라 투레트 수도원과 롱샹 성당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아시 성당, 마티스 성당 얘기까지 다룬다. 이런 접근이 가능했던 것은 두 가지가 뒷받침돼서다. 하나는 저자가 사진작가인 데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여서 성당 측의 초청으로 오래 머물며 수도사들과 교류하면서 자유롭게 사진도 촬영할 수 있었다. 또 하나는 라 투레트 성당에 대한 남다른 감회다. 처음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천주교 신자인 저자에게 유럽에서 성당을 만난다는 것은 “자애로운 성모 마리아상, 십자가 위의 예수, 하늘의 뭇별만큼이나 많은 성인과 성녀들”을 통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과 전율에 압도”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라 투레트 성당은 바깥에서 얼핏 보기에 기숙사나 사무용 건물로 보일 만큼 딱딱하기 그지없는 노출 콘크리트 덩어리로 누구 말마따나 “중증 정신병자를 수용”하는 게 더 잘 어울리거나 “기도할 꼬딱지만 한 동상 하나 없”어 괴로운 곳이었다. 그런 저자로 하여금 라 투레트 수도원 구석구석을 촬영하게 하고, 또 롱샹, 아시, 마티스 등 다른 성당들을 탐험하도록 만든 계기는 르 코르뷔지에의 유언. 일흔여덟의 나이로 수영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한 현대 건축계 거장의 마지막길을 프랑스는 국장으로 치렀는데, 공개된 그의 유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장례 전 시신을 라 투레트 수도원에 하룻밤 안치해 달라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아무렇지 않을지 몰라도 그 시절엔 위험하게도 공공연히 자신이 무신론자임(교회의 가장 큰 적은 이슬람신자가 아니라 무신론자다)을 얘기하고 다녔고, 그래서 수도원 측에서 아무리 자기네 건물을 지어준 사람이라 해도 죽음에 대한 어떤 의식도 치러주지 않을 것임을 뻔히 알고 있었다. 자신이 숭앙하는 진보적 현대 건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독기 어린 온갖 논쟁을 서슴지 않았으며, 건축 제안을 받았을 때 독실한 천주교 신자 건축가를 찾지 왜 날 찾았느냐며 단호하고도 매몰차게 거절했던 그가 대체 왜? 거기엔 천주교의 현대화를 꿈꿨던 알랭 쿠튀리에 신부가 있었다. 그 스스로가 젊은 시절 화가를 꿈꾸기도 했던 쿠튀리에 신부는 1·2차 세계대전으로 망가진 수도원과 성당들을 새로 짓거나 고치면서 20세기 르네상스를 꿈꿨다. 성당을 새로 갖춘다면서 아무 감흥 없는 옛 방식을 고스란히 모방하느니 현대미술을 과감하게 도입하자는 제안이다. 그 작업이 성공적이라면 16세기 르네상스 못지않은 20세기 르네상스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신앙은 있으나 재능이 없는 건축가” 대신 “신앙은 없지만 천재적 재능을 가진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는 것이 “르네상스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이라 역설했다. 그래서 전통 가톨릭 사제와 신자라면 그 어느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을 프로젝트들을 벌였다. 저자는 “쿠튀리에 신부가 없었더라면 무신론자를 자처하는 르 코르뷔지에가 스스로 ‘빌어먹을 단체’라고 욕한 수도회를 위해 수도원을 설계하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라면서 이를 두고 “어느 시대에나 천리마와 그것을 알아보는 백락이 있는 법”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역시 돈주머니만 두둑하다고 걸작이 나오는 게 아니다. 1963년 가톨릭의 현대화를 선언한 바티칸공의회와 맞물려 들어가는 부분은 요즘 새로 선출된 교황에 대한 이런저런 기대와 우려에 비춰보면 재밌게 읽힌다. 라 투레트 수도원을 흠모해서 7번이나 방문했다는 건축가 승효상이 르 코르뷔지에의 기록을 들고 원문과 번역본을 꼼꼼히 읽고 감수했다. 2만 80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위안부 범죄 미래세대에 가르쳐라”

    미국 뉴저지주 하원이 21일(현지시간) 일본 정부에 위안부 역사 교육을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뉴저지주 하원은 이날 본회의를 열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 피해자 20만명의 고통과 희생을 기린다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위안부(comfort women)라는 용어는 1932∼1945년 일본군에 강제 동원된 성노예(sexual slavery)를 일컫는다”면서 “대부분 한국과 중국 여성들이지만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호주, 네덜란드 등에서도 동원됐다”고 명시했다. 이어 “위안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시인을 받아내려고 싸우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지하며, 일본 정부는 역사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이러한 과거의 범죄를 미래 세대에게 교육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하원 결의안 통과에 따라 지난해 9월 뉴저지주 상원에 함께 발의된 결의안도 조만간 채택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뉴저지는 미국 50개 주 가운데 타운과 카운티, 주의회 상·하원 등 4대 입법기관 모두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는 첫 번째 주가 된다. 뉴저지주의 팰리세이즈파크(팰팍) 타운 의회에서는 2010년, 버겐 카운티 의회에서는 지난해 8월 결의안이 통과된 바 있다. 미국 주의회 차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채택된 것은 1999년 캘리포니아주 하원과 지난 1월 뉴욕주 상원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미국 연방 하원은 2007년 7월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美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日 위안부’ 영구 전시

    美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日 위안부’ 영구 전시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만행의 역사가 미국 뉴욕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영구 전시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에 대한 대규모 학살 역사 등을 전시하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위안부 역사가 영구 전시되기는 전 세계를 통틀어 처음으로, 위안부 강제 동원이 홀로코스트에 비견되는 만행임이 사실상 국제적으로 공인된 셈이다.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 나소카운티 정부 소유의 ‘홀로코스트 기념관’(HMTC)의 스티브 매코워츠 회장과 베스 라일리치 수석 교육·대민 담당관은 19일(현지시간) 일본군 위안부 만행 역사를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영구 전시하기로 뉴욕 지역 한인단체인 한미공공정책위원회(KAPAC·회장 이철우)와 정식으로 합의했다. KAPAC의 이 회장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매코워츠 회장은 오는 25일 오후 1시 30분 기자회견을 열어 홀로코스트 기념관 안에 특별 전시관을 만들어 일본군의 위안부에 대한 만행 역사를 영구 전시하겠다는 계획을 직접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또 “미국 지방 정부 소유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영구 전시 결정은 사상 처음”이라면서 “위안부 문제가 유럽의 홀로코스트와 동급으로 인식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KAPAC 측은 이 기념관에 전시할 위안부 관련 각종 자료, 사진 등의 수집과 기념관에 설치할 위안부 만행 역사 소개 동영상 제작 등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이 회장은 “자료 수집을 위해 곧 한국, 일본 등 관련국을 방문한 뒤 올해 가을쯤 위안부 전시관 설치를 마칠 계획”이라면서 “전시관 설치 비용은 한인 사회가 부담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홀로코스트 기념관 영구 전시는 위안부 기림비를 수백개 세운 것보다 일반 시민들에게 교육적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한국에 갔을 때 만난 일부 일본 특파원들이 ‘위안부 문제가 어째서 홀로코스트와 같은 범죄가 될 수 있느냐’고 내게 따졌다”면서 “이번 홀로코스트 기념관 영구 전시 사실이 알려지면 일본은 큰 충격과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이스라엘-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①悲 로마의 구둣발에 짓밟히랴

    이스라엘-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①悲 로마의 구둣발에 짓밟히랴

    ISRAEL 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강해 보이기만 했던 이스라엘을 옆에서 바라보니 곳곳에 흉터가 선명했다. 이스라엘이 낸 ‘민족과 종교’라는 어려운 문제를 풀면, ‘사해·사막·지중해’가 들어있는 3종 선물 세트가 기다린다. 글·사진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이스라엘관광청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悲 로마의 구둣발에 짓밟히랴 Masada마사다 & Qumran쿰란 강자 앞에서 당당하고 약자 앞에선 따뜻하고 싶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지리멸렬한 싸움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팔레스타인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편향된 마음을 들킨 것인지, 이스라엘 여행은 처음부터 꼬였다. 출국을 코앞에 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 간의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신문 국제면이 ‘이스라엘-하마스 교전 격화…전면전 가능’, ‘하마스 군 수장 사망’ 등 살벌한 이야기로 도배됐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안전한 나라가 그 어디 있는가. 내 나라만 하더라도 서로 남과 북으로 찢어져 으르렁거리고 있는데 말이다. 다행히 하늘이 도왔다. 출국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을 때, 현지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휴전에 합의했으니 안심하고 와도 좋다.” 100여 명을 일주일 만에 죽이고 1,000명을 다치게 했다는 이번 전쟁은 시작도 끝도 문을 여닫는 것처럼 간단해 보였다. 짧은 말다툼으로도 마음이 들들들 끓는데, 총과 칼을 내젓는 싸움이 쉬울 리 없다. 이스라엘을 여행한다는 건 피고름이 철철철 흐르는 그들의 과거사를 훑는 과정이다. 이스라엘의 조상은 신에게 아들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아브라함1). 아브라함이 신으로부터 받은 땅은 바로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이다. 신의 간택을 받았을지언정 아브라함의 자손은 끝없는 고통 속에서 광야를 헤맸다. 그들의 수난사를 읊자면 끝도 없다. 유대인에게 행복한 과거란 노역생활을 하던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을 되찾았던 순간, 지혜로운 다윗과 솔로몬을 왕으로 삼았던 시절 정도였을 테다. 여기에 십자군전쟁의 박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의 삶까지 더하면 ‘신은 정말 있습니까’ 하고 저절로 묻게 된다. 특히 이스라엘에서 로마제국의 발길질은 악명 높았다. 이탈리아를 지도에서 찾아보면, 지중해에 발을 담근 구두 한 짝과 같은 모양새다. 신발의 높다란 굽으로 로마군은 유대인을 마구잡이로 밟아댔다. 척박한 사막을 비집고 자리한 기괴한 마사다Masada 는 로마군과 유대인의 처절한 싸움을 그 자리에서 똑똑히 지켜봤다. 450m의 높이에 들어선 이 요새는 길이 600m, 너비 320m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AD70년, 로마에서 온 디도 장군의 박해를 피하고자 유대인 960여 명이 마사다로 몰려들었다. 도망자들을 가만히 손 놓고 봐 줄 로마군이 아니다. 1만5,000여 명의 로마군은 마사다를 정복하고자 수를 쓴다.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마사다에 오르지 못해 쩔쩔매던 로마군은 요새로 들어가기 위한 경사로를 3년에 걸쳐 만들었다. 경사로가 마사다에 닿았을 때, 그곳에서 로마군을 기다린 것은 유대인의 시체 960구. 유대인들은 로마군에게 능멸을 당하는 대신 죽음을 택하기로 했던 것이다. 죽음을 도울 사람을 제비뽑기로 뽑고 최후의 1인은 자살하는 식으로 그들은 끝까지 ‘절개’를 지켰다. 마사다 정상에 오르면 900명이 넘는 유대인이 어떻게 3년간 마사다 꼭대기에서 생활할 수 있었는지 궁금증이 풀린다. 이곳엔 목욕탕, 창고, 채석장, 교회, 수영장 등이 아직도 남아 있다. 마사다의 본래 용도는 왕의 피난처였다. BC40년경 헤롯왕2)은 본인이 도망갈 곳으로 마사다를 지었고 온갖 시설을 갖추었다. 헤롯왕이 만든 시설을 이용하며 목숨을 부지하던 유대인은 빗방울을 모으려 도랑을 만들고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비둘기까지 길렀다고 한다. 마사다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로 금방이건만 많은 유대인은 가파른 마사다를 직접 두 발로 오르며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사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쿰란 동굴Cave of Qumran이 있다. 쿰란 동굴 역시 마사다와 마찬가지로 로마에 굴하지 않은 유대인의 삶을 증명한다.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는 쿰란 동굴에 숨어 살던 은둔주의자들이었다. 에세네파는 성경사본을 항아리에 담아 숨겨놓았는데 2,000년이 지난 1947년, 목동이 염소를 찾던 중 항아리를 발견한다. 그 속에서 사해본Dead Sea Scroll으로 불리는 양피지 두루마리 7개가 나왔다. 1)아브라함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다. 그는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올리거라’는 신의 명령을 따르려 했을 정도로 신에게 충성했다. 현재 물과 기름 같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사실 알고 보면 아브라함을 한 조상으로 삼고 있다. 2)헤롯왕 이스라엘 일대를 다니다 보면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헤롯왕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헤롯왕은 아기 예수가 두려워 ‘어린아이를 모조리 죽이라’고 지시했던 왕으로 유명하다. 악덕한 왕이긴 했지만 그는 건축에 조예가 깊었다. 무너진 예루살렘의 성전을 대대적으로 재건축했으며 자신의 피난처로 철옹성 같은 마사다를 축조했다. 1 로마의 발길질을 피하고자 발버둥친 유대인의 흔적을 이스라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국기에 새겨진 별은 ‘다윗의 별’로 불린다 2 검은 양복을 고수하는 정통 유대교인 3 ‘머리 위에 신이 있다’는 의미의 작은 모자, 키파 4 유대인은 예수의 이야기를 닮은 신약성서를 부정하고 구약성서만을 읽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그것은 누구의 사원인가 Temple Mount성전산 & Western Wall통곡의 벽 마사다와 쿰란을 돌아보던 중 고개를 들었다. 모래바람이 풀풀 날리는 사막 한가운데서 보이는 것이라곤 너른 하늘과 뜨거운 태양뿐. 왜 유대인이 ‘하나의 신’만을 숭배하는지 퍼뜩 이해가 됐다. 그들에겐 이리저리 떠돌며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잡아 줄 강력한 절대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반대로 불교는 ‘숲의 종교’라 불린다. 울창한 숲은 사막과 달리 풍요로워 수많은 식물과 동물이 살아간다. 유일신이 필요 없다. 인간이 곧 신이 될 수 있으며 그저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 된다. ‘하늘에 계신 신’을 아버지로 삼는 건 유대교뿐만이 아니다. 유대교에서 뻗어 나온 기독교, 이슬람교도 마찬가지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 세 종교가 하나로 겹쳐져 보였다. 한 뿌리에서 뻗어 나왔을지언정 결코 세 종교를 같다고 말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된다. 종교의 각축장인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세 종교의 정체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다. 예루살렘을 조망할 수 있는 감람산에 올랐다. 공동묘지 너머로 성전산Temple Mount이 보였다. 성전산은 유대인, 기독교인, 이슬람교인 모두 ‘성지’라 여기는 곳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산인 동시에 예수의 발길이 닿은 곳이며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말을 타고 승천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곳에 서니 세 개의 종교가 동시에 “우리가 진짜”라 외치는 것만 같아 현기증이 났다. 지금 성전산에는 황금색 모자를 쓴 황금사원Dome of Rock이 서 있다. 이슬람교도가 예루살렘을 점령하며 지은 이 사원은 오마르 모스크Mosque of Omar로도 불리며 메카와 메디나만큼이나 중요한 곳으로 여겨진다. 당연히 유대인은 이슬람교도가 축조한 황금사원을 보며 칼을 간다. 그들은 성전을 두 번이나 지었으나 두 번 모두 잃었다. 솔로몬왕 시절 지어진 첫 번째 성전은 전란 중 부서지고 말았고 두 번째 성전은 로마 디도 장군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됐다. 디도 장군은 과시용으로 성전의 서쪽 부분 일부를 남겨 두었는데 그 흔적이 통곡의 벽Western Wall이다. 땅을 잃은 백성은 수천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이 벽 앞에 선다. 세우면 무너지고, 찾으면 또 뺏기고…. 약자의 역사를 이해한다. 우리의 조상도 그랬을 것이다.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유대인은 성전을 다시 세울 ‘그날’을 기다리며 통곡의 벽에 머리를 조아렸다. 키파1)를 쓰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토라2)를 읽는 그들의 모습은 생경하다. 구레나룻을 돌돌 말고 검은 양복을 입은 정통 유대교도도 여기선 흔하게 보인다. 1) 키파 유대인이 쓰는 테두리 없는 모자. ‘하느님이 내 머리 위에 있다’는 뜻으로 크기는 손바닥 크기 정도. 이스라엘 어디서든 쉽게 살 수 있으니 기념품으로 사 와도 좋다. 2) 토라Torah 유대인은 예수의 행적을 담은 신약성서를 인정하지 않고 구약성서만을 읽는다. 토라는 구약성서의 처음 다섯 권을 일컫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빈필 “우리는 나치에 부역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1938년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독일 나치에 부역한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했다. 그동안 유착 관계를 인정하지 않아 지탄을 받다가 결국 굴복한 것이다. 1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빈 필하모닉은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1942년까지 단원 123명 가운데 절반 가까운 60명이 나치당원이었다고 밝혔다. 1938년 이전 나치당이 금지됐을 때도 단원의 20%가량이 이미 나치 소속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럼에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치 연루 이력 때문에 오케스트라를 떠나야 했던 단원은 불과 10명뿐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대인 단원은 1938년 전원 해고됐다. 이들 가운데 5명은 이후 강제수용소나 유대인 격리 지역에서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또 세계 곳곳에서 방송되는 빈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는 나치 시절 독일 국영 방송사와 함께 준비해 시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빈 필하모닉은 추가 세부 사항을 12일 공개할 예정이다. 특히 1942년 빈의 나치 통치자였던 발두르 폰 시라흐에게 반지를 증정한 일에 대해서도 밝힐 계획이다. 빈 필하모닉은 그동안 민간단체이기 때문에 일반에 기록물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비판이 계속되자 지난 1월 역사학자 3명에게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악단의 역사를 조사하는 작업을 맡겼다. 빈 필하모닉을 비판해 온 하랄트 발서 오스트리아 녹색당 의원은 이번 조치에 대해 너무 늦었지만 환영한다면서 “오스트리아의 자기 인식에 긍정적인 발전이 얼마간 있었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일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주말 영화]

    ■고스트 라이더(OBS 토요일 밤 11시 15분) 자니 블레이즈(니컬러스 케이지)는 세계 최고의 모터사이클 스턴트 챔피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피터 폰타)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넘긴 자니는 밤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불멸의 영혼 사냥꾼 ‘고스트 라이더’로 변하게 된다. 악마의 요구대로 영혼을 빼앗아야 하는 운명과 정의감 사이에서 방황하던 자니는 첫사랑 록산(에바 멘데스)과 재회하고, 차마 자신의 비밀을 밝힐 수 없어 괴로워한다. 한편 4명의 타락천사 ‘데블 4’를 동원해 어두운 세상의 지배를 꿈꾸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아들 블랙하트는 가장 큰 방해세력인 고스트 라이더와의 정면 승부를 위해 록산을 내세워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공격을 준비한다. ■피아니스트(EBS 토요일 밤 11시) 1939년 폴란드 바르샤바. 유명한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은 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한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불길이 한창 타올랐던 바로 그때, 스필만이 연주하던 라디오 방송국이 폭격을 당한다. 유대인 강제 거주지역인 게토에서 생활하던 스필만과 가족들은 나치 세력이 확장되자 죽음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게 된다. 기차로 향하는 행렬 속에서 평소 스필만의 능력에 호감을 가졌던 유대인 공안원이 그를 알아보고 제지한다. 가족을 죽음으로 내보내고 간신히 자기 목숨만을 구한 스필만.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치들의 눈을 피해 숨어다니며, 폭격으로 폐허가 된 어느 건물에 자신의 은신처를 만들게 된다. ■왕의 남자(EBS 일요일 밤 11시) 조선 연산군 시대. 남사당패의 광대 장생은 자신의 하나뿐인 친구이자 최고의 동료인 공길과 보다 큰 놀이판을 찾아 한양으로 올라온다. 타고난 재주와 카리스마로 놀이패 무리를 이끌게 된 장생은 공길과 함께 연산과 그의 애첩인 녹수를 풍자하는 놀이판을 벌여 한양의 명물이 된다. 공연은 대성공을 이루지만, 그들은 왕을 희롱한 죄로 의금부로 끌려간다. 의금부에서 문초에 시달리던 장생은 특유의 당당함을 발휘해 왕을 웃겨 보이겠다고 호언장담한다. 하지만 막상 왕 앞에서 공연하자 모든 광대들이 얼어붙는다. 장생 역시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왕을 웃기고자 갖은 노력을 하지만 왕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바로 그때 얌전하기만 한 공길이 기지를 발휘해 특유의 연기를 선보이자 왕은 못 참겠다는 듯이 크게 웃어버린다.
  • [부고] 日전범 도조 히데키 체포한 ‘마지막 미군’ 별세

    1945년 2차 세계대전 전범인 도조 히데키 전 일본 총리를 체포한 미군 5명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인 존 J 윌퍼스 2세가 별세했다. 93세. 4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윌퍼스 가족은 그가 지난달 28일 미국 메릴랜드주 개렛파크 자택 인근 요양시설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윌퍼스는 일본점령군 최고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로부터 도조 히데키 체포를 명령받은 5명의 군 정보요원 특수임무조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다. 1945년 9월 11일 윌퍼스 등 요원들이 도조를 체포하기 위해 도쿄 외곽에 있는 그의 자택에 급파됐을 때 도조는 권총으로 가슴을 쏴 자살을 시도했다. 이때 윌퍼스는 현장의 일본인 의사에게 도조를 치료하라고 했고, 의사가 이를 거부하자 윌퍼스는 그에게 총을 들이대며 긴급 진료를 명령했다. 이어 다른 의사를 불러 도조를 군병원으로 이송해 소생시켰다. 치료를 받은 도조는 전범 재판정에 서게 됐으며, A급 전범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1948년 12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윌퍼스는 이후 33년간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근무하면서 당시 일을 함구했다. 그는 당시 공을 인정받아 2010년 동성무공훈장을 받은 뒤 첫 언론 인터뷰에서 “명령받은 대로 했을 뿐”이라며 “전쟁을 멋진 것으로 묘사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었든 다른 전쟁과 마찬가지로 유감스러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 산책] 공군 제16전투비행단 군견소대를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 산책] 공군 제16전투비행단 군견소대를 가다

    침입자의 모습이 드러나자 위협적인 눈빛의 셰퍼드 ‘빈츠’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림과 동시에 곧장 달려들었다. 방어복으로 감싼 침입자의 팔을 물고 늘어졌다. 곧이어 침입자는 제압됐다. 지난달 19일 경북 예천 공군 제16전투비행단 헌병대대 군견소대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군견 20여마리가 한창 훈련을 받고 있었다. 군견들의 기초체력과 공격능력을 키우기 위한 기본 훈련이다. 훈련은 ‘핸들러’(handler)라고 불리는 취급병과 짝을 이뤄 1시간가량 진행됐다. 군견과 핸들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료다. 이어 폭발물 탐지 훈련도 실시됐다. 항공기 주기장 내 F5 전폭기의 좌측 랜딩기어 속에 설치된 C4폭약을 찾아내는 미션이 주어졌다. 활주로의 끊이지 않는 소음이 군견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게 했지만 랜딩기어 주위를 맴돌던 탐지견인 코카스 파니엘 ‘우정이’는 채 1분도 안 돼 폭약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탐지견 ‘우정이’ 이외에 나머지 군견은 모두 독일산 셰퍼드다. 부대는 지난해 폭발물 탐지·명령복종·공격능력·체력능력 등 4개 종목을 측정하는 군견경연대회에서 최우수 군견소대로 뽑혔다. 소대장을 받고 있는 박태호 상사는 “개들 모두가 최고의 자질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함께 기지 순찰임무를 할 때면 마음이 든든하다”고 자랑했다. 군견과 관련된 기록은 일찍이 중국의 고서 ‘삼진기’(三秦記)나 고대 로마사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군견이 조직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군견들은 경비, 연락, 수색, 운반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을 했다. 대한민국 군견 1호는 육군이 아닌 공군 출신이다. 1954년 수원기지 미 공군 제58전폭대에서 10마리를 인수해 처음 군견으로 운용했다. 현재는 경남 진주 공군교육사령부 예하 행정학교 군견훈육중대에서 배출하고 있다. 우수한 혈통을 가진 수컷 종견과 암컷 모견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는 생후 45일이 되면 군견으로 등록된다. 12주째에는 군번인 ‘견번’(犬番)이 부여된다. 1년간의 훈련을 마친 500여 마리는 수색견·추적견·경계견· 탐지견 등으로 분류돼 각 예하 비행단과 기지에 배치된다. 공군 군견은 기지 내 전투기 주기장과 침입자를 막는 야간 순찰임무를 주로 수행하는데 ‘핸들러’만이 행동을 같이할 수 있다. 토종 진돗개는 충성심이 강해 함께 생활하는 핸들러가 제대하면 후임 병사를 따르지 않는 탓에 사교성 좋은 셰퍼드를 군견으로 양성하고 있다. 군견 에이스 핸들러 손청황 병장은 “군견도 사람과 같이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서 “공격명령 등을 지시할 때는 핸들러와의 호흡과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군견의 후각은 인간의 1만 배, 청각과 야간 시각은 각각 40배와 10배에 달한다. 박 소대장은 “군견 1마리의 능력은 1개 중대의 전투력과 맞먹는다”면서 “공군에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강조했다. 군견은 능력만큼 대우도 상당하다. 매일 소독 처리되는 ‘1견 1실’의 견사(犬舍)에서 생활을 한다. 종합병원급인 병원에서 수의장교가 매일 꼼꼼하게 건강 체크를 하고 있다. “사람보다 더한 호사를 누린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군견도 때가 되면 제대한다. 관리규칙에 따라 8~9살(인간나이 65세)쯤 되면 후각과 추적능력이 떨어지는 탓에 안락사를 시키거나 대학 수의과에 학술용으로 기증된다. 군 이외의 생활을 차단하는 것이다. 철칙이다. 군견으로 살다가 군견으로 죽는 셈이다. 정훈공보실장 김희강 소령은 “살아선 국가안보와 국익에, 죽어선 의학발전에 기여한다”고 말했다. ‘빈츠’나 ‘우정이’ 등 군견은 대한민국의 영공 방위체제에서 없어서는 안 될 ‘군 가족’인 것이다. 글 사진 경북 예천 jongwon@seoul.co.kr
  • [씨줄날줄] 로스트 제너레이션/오승호 논설위원

    일본에서는 ‘졸업연기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학들이 있다고 한다. 졸업 요건을 충족시켰는데도 1년 더 재학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청년실업이 심각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진풍경이다. 졸업을 연장하는 동안 등록금은 덜 내는 것이 일반적이란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생들이 4학년이 되어도 일부러 학점 이수를 다하지 않고 취업을 위해 졸업을 늦추곤 한다. 일본의 청년실업 문제가 더 심한 편인 것 같다. 일본인들은 1991년 이후 대학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25~35세 젊은층들을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잃어버린 세대)이라 부른다. 경기 침체로 정규직으로 취직하지 못하는 이들이 아르바이트나 임시직 등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것을 빗댄 표현이다. 그리스에서는 미래가 암울한 청년층을 ‘592유로세대’라 일컫는다. 한화로 환산하면 90여만원으로, 우리의 88만원 세대와 비슷하다. 지난해 그리스와 스페인의 청년 실업률은 53%까지 치솟았다. 스페인 대학생들도 스스로를 ‘미래가 없는 젊은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부모 곁을 떠났다가 경제적인 이유로 다시 부모에게 돌아가는 부메랑 키즈들이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부모를 포함한 다른 세대와 동거하는 미국의 25~34세 비율은 21.6%로 1950년대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미국의 청년 실업률은 15% 정도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27일 ‘로스트 제너레이션은 되풀이되는가’라는 칼럼에서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센터의 최근 보고서를 인용, 2007년 시작된 불황 이후 35세 미만 젊은이들이 다른 어느 세대보다도 뼈아픈 고통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자동차 구매 등 소비를 줄여도 소득은 줄어들고 있는 점을 우려했다. 원래 로스트 제너레이션은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이후 기존 도덕 등 가치관을 상실하고 절망에 빠진 세대를 의미한다. 헤밍웨이가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의 서문에 “당신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의 사람들입니다”라는 미국 작가 G 스타인이 한 말을 인용한 데서 유명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0~2010년 혼인상태 생명표’에 따르면 지난 2010년에 태어난 남자 아이의 20.9%는 미혼인 상태로 생을 마감할 것으로 추정됐다. 여자아이의 미혼 확률은 15.1%이다. 해가 갈수록 남녀 모두 결혼할 확률이 낮아지고 있어 걱정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의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나중에 현실은 이런 추정과 달랐으면 좋겠다. 경제 회복에 전념해 잃어버린 세대가 후대까지 이어지지 않기를 기원한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UFO가 지구 구했다…러 운석 충돌장면 포착” 주장

    “UFO가 지구 구했다…러 운석 충돌장면 포착” 주장

    “UFO가 우리를 살렸다!” 지난 달 15일 러시아 우랄산맥 인근 첼랴빈스크주(州)에서 운석우 현상이 발생했을 당시, 지구 상공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운석과 미확인비행물체(이하 UFO)의 충돌현장을 목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베리안타임즈 등 현지 언론의 지난 달 28일자 보도에 따르면 큰 운석이 지구로 낙하하면서 대기 상층부에 진입했을 무렵 UFO가 이와 충돌하면서 폭발, 작은 조각들로 산산이 부서져 우랄산맥 인근에 떨어졌다는 것. 이 같은 주장을 내놓은 일부 UFO 신봉자들은 “각기 다른 각도에서 찍은 동영상 여러 편을 분석한 결과, 운석이 파편으로 갈라지기 전 작은 물체와 충돌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당시 러시아 군은 미사일 등 어떤 무기도 사용한 적 없다고 주장하는 점을 미뤄, 거대한 운석을 조각낸 정체는 UFO가 틀림없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운석과 UFO가 충돌하지 않았다면 엄청난 규모의 운석이 지구 표면과 충돌하면서 피해가 더욱 커졌을 것이라며 “UFO가 우리 지구를 구한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당시 상공에서의 운석 폭발로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위력의 33배에 달하는 충격파가 지상으로 전해져 피해가 잇따랐다. 일부 건물의 천장과 벽이 무너지고 유리가 모두 파괴됐으며, 주민 약 2000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파편으로 떨어지기 전 이 운석의 폭은 18m,무게는 1만t에 달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부고] 佛외교관 출신 ‘분노하라’ 작가 에셀

    프랑스의 최고 지성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분노하라’의 작가로 유명한 스테판 에셀이 타계했다. 96세. 27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에셀의 아내인 크리스티안 에셀은 “그가 26일 밤에 잠을 자는 도중 숨졌다”고 밝혔다. 에셀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맞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했으며 전후엔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에셀이 2010년 펴낸 ‘분노하라’는 34쪽의 소책자에 불과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세계 35개국에서 450만여권이 팔리면서 분노 신드롬을 일으켰다. 에셀은 이 책에서 프랑스의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레지스탕스 정신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젊은이들을 향해 분노하고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 에셀은 이어 2012년 청년 시민운동가와의 대담을 담은 책 ‘참여하라’를 펴내 전지구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참여만이 유일한 방법임을 강조했다. 1917년 독일 베를린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한 에셀은 1924년 프랑스로 이주한 뒤 1939년 프랑스로 귀화했다. 에셀은 1941년 영국으로 건너가 드골 장군이 이끈 자유프랑스(망명정부)에 합류해 간첩활동을 시작했다. 독일 나치에 맞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에셀은 강제수용소로 끌려갔으나 극적으로 살아 남았다. 이후 에셀은 외교관의 길을 걸었으며, 유엔 보좌관 시절인 1948년 세계인권선언문 초안 작성에도 참여했다. 이후 유엔 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 등을 역임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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