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세계대전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505
  • [씨줄날줄] 생체실험 박사 논문/최광숙 논설위원

    나치의 의사 요제프 멩겔레는 ‘죽음의 천사’로 불린다. 독일 친위대 대위이자 아우슈비츠의 강제수용소 내과 의사이던 그는 끔찍한 인간 생체실험들을 자행했다. 쌍둥이를 하나로 꿰매 샴쌍둥이로 만들고, 푸른 눈을 만든다며 어린 아이의 눈에 화학약품을 넣었다. 아이의 생식기 교체와 마취 없이 간 꺼내기 등 그의 생체실험은 엽기 그 자체였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도 멩겔레 못지않은 ‘냉혈 의사’가 있었다. 생체실험으로 유명한 ‘731부대’ 책임자 이시이 시로다. 교토제국대 의과를 졸업한 의사인 그가 지휘한 731부대에서는 포로로 잡힌 중국군, 우리 독립투사, 여성과 어린이 등 모두 1만여명을 생체실험한 것으로 전해진다. 세균전에 대비해 페스트균과 탄저균 등을 주입한 음식과 물을 포로수용소의 사람들에게 먹였다. 거리의 아이들에게도 콜레라균이 묻은 사탕을 나눠주기도 했다. 산 채로 사람의 피부를 벗겨 내기도 했고, 성병 연구를 위해 남녀 수용자에게 강제로 매독·임질균을 감염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동상실험을 한다며 중국인을 발가벗겨 물벼락을 내린 뒤 추위에 저녁 내내 방치하기도 했다. 최근 일본 교토대와 규슈제국대, 심지어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국대 의학부에서 731부대 관계자 수십여명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이 생체실험을 바탕으로 쓴 논문은 일본 국회도서관에 극비 문서로 대량 보관돼 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회부된 23명의 전범 중 20명이 의사였다. 하지만 마루타 실험에 나섰던 일본 의사들은 오히려 전후 의학계, 학계에서 유명인사로 출세했다. 독일과 달리 일본은 전쟁의학 범죄에 대한 단죄는커녕 오히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역사의 역주행을 일삼고 있다. 731부대원들이 생체실험도 모자라 이를 바탕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사실은 일본의 니시야마 가쓰오 시가대 의대 명예교수에 의해 이번에 처음 드러났다. 그가 용기 있게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면 이런 사실은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몰역사인식을 비난하기에 앞서 과연 일제 강점기를 비롯한 과거사 연구에 우리는 얼마나 매달리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일본과의 ‘역사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일제 강점기 전문가를 비롯한 일본 전문가들을 긴 안목을 갖고 길러내야 한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면 일본 내의 양식 있는 지식인들과 연대해서라도 과거의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해야 일본의 억지 논리에 실증적으로 반박할 수 있지 않겠는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한국은행과 함께하는 톡톡 경제 콘서트] 바젤위원회와 바젤규제의 역사

    [한국은행과 함께하는 톡톡 경제 콘서트] 바젤위원회와 바젤규제의 역사

    바젤은 약 20만명의 인구를 가진 스위스 제2의 도시이면서 유명한 제약사의 본점 소재지, 시계 및 예술품 박람회의 개최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바젤’을 들을 때 도시 이름보다는 은행의 자본건전성 규제인 ‘바젤 자기자본비율’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이처럼 바젤 규제는 널리 알려져 있으나, 막상 바젤은행감독위원회(바젤위원회)의 역사, 바젤Ⅰ·Ⅱ·Ⅲ의 내용 등은 쉽게 와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바젤위원회와 바젤 규제가 무엇이기에 은행 등 금융권에서 그 동향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것일까. 바젤위원회의 시작은 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로 인한 자본 흐름의 자유화, 본격적인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등 국제금융 환경이 변하면서 각국 은행을 비롯한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이익이 되는 기회를 찾아 매우 활발히 활동했다. 이로 인해 금융시장의 국제적 연계성이 크게 늘어났다. 이에 따라 자국 소재 금융기관의 건전성 규제에 초점을 기울인 기존의 감독 체계로는 국제적으로 영업하는 은행(국제영업영위은행)을 규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특히 1974년 독일 헤르슈타트 은행의 도산이 이 은행과 거래하던 은행들 및 국제외환시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면서 국제영업영위은행들에 대한 감독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그 결과 1974년 말 주요10개국(G10) 중앙은행 총재회의의 결의로 스위스 바젤에 사무국을 둔 바젤위원회가 설립됐다. 설립 초기 바젤위원회는 국제영업영위은행에 대한 감독 공백 최소화 및 적정 감독수준 유지를 목표로 최소한의 금융감독 절차 및 원칙을 수립하는 데 중점을 뒀다. 바젤위원회의 첫 번째 성과는 1975년 발표된 ‘은행 국외점포 감독에 관한 일반 원칙’으로서 국외점포 형태 및 감독 고려사항별로 진출국과 본국의 감독당국 간 책임을 구분하는 원칙을 제시했다. 이후 경제 및 금융환경이 변하면서 바젤위원회의 활동 범위는 점차 넓어졌다. 특히 1980년대 초 외채 과다국들의 채무상환 능력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나라별로 다른 규제 수준이 글로벌 공정 경쟁 여건을 저해한다는 주장이 퍼졌다. 이에 따라 1980년대 중반 이후 바젤위원회 작업의 초점은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자본적정성 규제 원칙을 마련하는 데로 옮겨졌다. 1988년 7월 발표된 ‘자기자본 측정 및 자기자본에 대한 국제적 통일기준’(바젤Ⅰ)은 일반인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위험가중자산 대비 8%의 자본비율을 국제영업영위은행들이 준수해야 할 최소 자본건전성 수준으로 제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젤Ⅰ은 바젤위원회 회원국의 범위를 넘어 글로벌 차원에서 국제은행감독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단순하게 설계된 바젤Ⅰ이 도리어 은행들의 효율적 위험관리기법의 발전을 저해하고 규제회피 행위를 유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공통으로 준수되는 은행 리스크 관리의 최적 관행 수립을 목표로 바젤Ⅰ개정 작업이 진행됐으며, 약 6년이라는 장기간의 작업을 거쳐 2004년 6월 ‘신(新)바젤자기자본협약’(바젤Ⅱ)이 발표됐다. 바젤Ⅱ는 다양한 위험요인을 반영하고 차등적인 위험가중치를 적용하는 한편 개별 은행에 위험측정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하는 등 자본비율 산정방식의 개선을 도모하였다. 또한 최저자기자본비율(필라 1) 규제 외에 각국 정책당국의 감독기능(필라 2) 및 시장규율(필라 3) 강화라는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 종합적인 은행감독체계를 구축했다는 점도 바젤Ⅱ의 큰 특징 중 하나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바젤Ⅱ로도 위기를 예방하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출발하여 바젤위원회는 기존 규제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또한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선진국과 신흥시장국을 아우르는 정책 공조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됨에 따라 바젤위원회는 G10 위주의 폐쇄적 운영에서 벗어나 외연을 확대했다. 2009년 3월 우리나라를 비롯한 7개국에 이어 6월에는 주요20개국(G20) 전체 및 홍콩과 싱가포르에도 문호가 개방되면서 현재 27개 회원국 체제가 이루어졌다. 위기 극복 및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바젤 규제 정비가 시급하다고 판단한 바젤위원회는 2010년 11월 G20 서울정상회의의 승인을 거쳐 12월 16일 ‘은행 부문의 복원력 강화를 위한 글로벌 규제 체계’ 및 ‘유동성 리스크 측정, 기준 및 모니터링을 위한 글로벌 규제 체계’ 등 두 개의 문서로 구성된 바젤Ⅲ를 발표했다. 바젤Ⅲ에서는 손실흡수력이 가장 높은 보통주 자본의 비율을 일정 수준(4.5%) 이상 유지하도록 요구하는 한편 부채와 자본의 중간 성격을 지니는 신종자본증권이나 후순위채의 자기자본 인정 요건을 강화함으로써 자본의 질을 향상시켰다. 아울러 위기로 인해 자본이 빠르게 소진되는 경우에 대비하여 은행들에 최저자본비율에 더하여 2.5%의 추가자본(자본보전완충자본)을 적립하도록 하는 한편 국가별로 당국이 경제 성장 추세에 비해 은행의 신용공급이 지나치게 증가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2.5% 한도 내에서 추가자본(경기대응완충자본)을 적립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위험가중치를 고려하지 않고 총익스포저(손실 가능성이 있는 금액) 대비 3% 이상의 자본을 유지하도록 하는 레버리지 비율 규제를 신설했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가 은행들의 유동성 리스크 관리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에서 유동성 규제 체계가 도입됐다. 이 외에도 바젤위원회는 대형 금융기관의 부실이 금융시스템 전체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매우 크다는 점에 주목해, 이른바 ‘글로벌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에 대해서는 추가 자본규제를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완전한 규제란 있을 수 없으며, 바젤 규제 역시 금융환경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해 왔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교훈으로 하여 바젤Ⅲ가 설계됐지만, 거래기법과 금융상품이 날로 복잡·다양해지고 금융기관들이 규제를 피해 수익을 올리려는 유인이 존재하는 한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 허점이 발견되고 그에 대응해 앞으로 바젤Ⅳ,Ⅴ가 출현할지도 모를 일이다.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막대한 경제적·사회적 비용이 초래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적절한 규제 정비는 불가피하다. 다만 지나친 규제는 금융산업의 발전 및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으므로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아나가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공동기획 서울신문·한국은행 내용 문의 lark3@seoul.co.kr [쏙쏙 경제용어] ■브레턴우즈(Bretton Woods) 체제 제2차 세계대전 중 44개 연합국이 체결한 브레턴우즈 협정에 따라 1944년 구축된 국제 통화협정 체제다. 미 달러화와 금 및 다른 국가 통화 간 고정 교환 비율을 유지하기로 한 것이 특징이다. 이 체제는 베트남 전쟁으로 미국이 재정적자 누적을 견디지 못하면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1971년 달러를 금(금 1온스=35달러)으로 바꿔주던 ‘달러의 금태환’의 정지를 선언함에 따라 붕괴됐다. ■위험가중자산 신용대출, 담보대출 등 은행의 자산에 내재된 위험 수준을 계량화한 수치(위험가중치)를 곱한 뒤 이를 다 더한 자산규모를 뜻한다. 은행의 자본비율을 계산할 때 분모는 이 위험가중자산, 분자는 은행의 자기자본이 된다. 예를 들어 은행이 보유한 국채의 경우 각각의 금액에 신용등급에 따라 0~150%의 위험가중치를 곱하여 위험가중자산을 산출한다. 현재 바젤 규제에서는 신용위험(차주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실가능성), 운영위험(은행 내부 절차의 부적절성, 인적 오류 등으로 인한 손실가능성), 시장위험(보유자산의 시장가격 변동으로 인한 손실가능성) 등을 반영하여 위험가중자산을 산출하도록 하고 있다.
  • ‘호밀밭의 파수꾼’ 작가 샐린저 사생활 낱낱이

    ‘호밀밭의 파수꾼’ 작가 샐린저 사생활 낱낱이

    샐린저 평전/케니스 슬라웬스키 지음/김현우 옮김/민음사/604쪽/3만원 미국 작가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 봤는가.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독백이 쉽게 와 닿던가. 만약 당신이 이 책을 읽고 감동했다면 당신은 감수성이 아주 뛰어난 게 틀림없다. 하지만 이 소설은 결코 만만하게 읽히는 작품이 아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주인공의 내적 변화를 추적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소설을 잘 이해하려면 작가의 인생 여정을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물론 그의 다른 소설들을 보다 잘 이해하는 데도 작가가 살아온 과정들을 짚어 보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2010년 1월 27일 샐린저가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4년 만에 그에 대한 평론을 곁들인 전기가 번역돼 나왔다. 이 책 ‘샐린저 평전’이다. 샐린저는 1919년 1월 1일 뉴욕에서 육류와 치즈 수입상을 하던 유대계 아버지 솔로몬과 어머니 미리엄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사업이 날로 번창해 1932년 가족이 마지막으로 이사한 집은 센트럴파크 맞은편 파크애비뉴의 호화 아파트였다. 샐린저는 맨해튼의 맥버니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성적이 나빠 퇴학당했다. 그 후 다시 들어간 학교가 펜실베이니아주의 밸리 포지 사관학교. 이 학교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퇴학당하는 기숙학교의 모델이 됐다. 1937년 뉴욕대에서 2학기 중간고사를 망치자 샐린저는 자퇴했다. 이듬해 가을 샐린저는 밸리 포지 사관학교에서 멀지 않은 어시너스대에 등록해 글쓰기와 어학 수업을 주로 들었다. 그는 학교가 맘에 들지 않아 한 학기 만에 관뒀다. 그러나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실히 찾았다. 전업 작가였다. 1939년 1월 샐린저는 컬럼비아대에 등록해 문학잡지 ‘스토리’의 편집자인 휘트 버넷이 가르치는 단편소설 작법을 들었다. 그는 버넷에게서 영감을 받았고 교실 밖에서도, 집에서도 자신만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40년 ‘스토리’ 봄 호에 그의 첫 작품인 단편소설 ‘젊은 친구들’이 실린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만의 작품 활동을 하고 싶은 욕심에 컬럼비아대를 자퇴했다. 학창 시절은 그렇게 끝났다. 1941년 여름 22세의 샐린저는 당시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로 미모가 출중한 우나 오닐과 깊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자기보다 6세 아래인 이 아가씨는 속은 얕고 자기중심적이며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샐린저가 자신의 글에서 통렬하게 묘사하고 경멸했던 여성의 유형이었다. 그는 우나의 현란한 취향에 자신을 맞췄고 감당하기 어려운 고급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영화 배우나 상류층 유명 인사들과 어울렸다. 그러나 연애는 거기서 멈췄다. 그 이듬해 로스앤젤레스로 이사간 우나는 36세 연상의 전설적 배우 찰리 채플린과 사귄다는 얘기가 들려오더니 1943년에는 그와 결혼까지 했다. 샐린저는 엄청난 상처를 받았다. 역설적인 사실은 그 후 샐린저의 작품세계가 대외적으로 크게 조명받기 시작했다는 대목이다. 1946년 그의 작품 ‘매디슨에서 시작한 작은 반란’이 미국 최고의 문학잡지 ‘뉴요커’에 실렸다. 1951년 7월 16일 마침내 ‘호밀밭의 파수꾼’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10년 전부터 구상한 작품의 완성판이었다. 소설은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7개월 동안 머물렀다. 그의 이름은 비로소 미국 문화의 흐름을 바꾸고 세대를 초월한 시대정신을 규정한 작가의 대명사로 자리매김됐다. 평전은 샐린저의 2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 신비에 싸인 여인 실비아와의 첫 결혼과 이혼, 출판사 및 언론사들과의 신경전, 헤밍웨이에 대한 신랄한 비평, 그가 영향 받았던 선(禪 ) 사상 등 다양한 이야기를 아우르고 있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美 상원서도 위안부 법안 통과

    미국 하원에 이어 상원에서도 일본 정부의 ‘위안부 결의안’ 준수를 미 국무장관이 독려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의 법안이 16일 통과됐다. 이로써 미국에서 사상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법안이 의회의 문턱을 넘어 행정부로 넘어가게 됐다. 의회를 통과한 법안은 이르면 17일 행정부에 이송되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하면 공식 발효된다. 미 상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2007년 7월 30일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H. Res. 121) 통과를 주목하고 국무부 장관으로 하여금 일본 정부가 이 결의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독려할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이 부속문서에 담긴 2014년 통합 세출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 내용은 전날 하원에서 통과된 것과 똑같다. 2007년 마이크 혼다(민주·캘리포니아) 의원 주도로 하원을 통과한 위안부 결의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종군위안부 강제동원과 관련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혼다 의원과 함께 하원에서 법안 처리를 주도한 스티브 이스라엘(민주·뉴욕) 하원의원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는 위안부와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일본 외무성은 이와 관련, 별도의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을 때 발표한 입장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전날 외무성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아베 신조 총리는 역대 총리와 같은 입장이다. (과거에) 쓰라린 기억을 가진 분들에 대해 아픔을 느낀다. 위안부 문제를 정치·외교 문제로 비화해서는 안 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하원 통과에 이어 하루 만에 상원에서도 법안이 통과되면서 일본의 부담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말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직후라 입장이 더욱 난처하다. 일본 정부는 일단 야치 쇼타로 국가안전보장회의(일본판 NSC) 사무국장의 방미에 기대를 걸고 있다. 17일 출국한 야치 사무국장은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척 헤이글 국방장관과 만나 위안부 결의안 법안 통과,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과 관련해 일본 측의 입장을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수직적 리더십 집권 전보다 심해… 메르켈 민심 수용 새기길”

    “수직적 리더십 집권 전보다 심해… 메르켈 민심 수용 새기길”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추진위원회’ 윤여준 의장과 이상돈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중앙대 명예교수)은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 1년에 대해 “‘내 생각이 원칙’이라는 식의 대통령 리더십으로는 민주주의적 국가 운영을 하기 어렵다”고 박하게 평했다. 이날 서울신문사에서 이뤄진 특별대담에서 두 사람은 박 대통령의 집권 1년과 여야 정치권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개헌 논의에 대해서는 “내각제 개헌이 바람직하다. 시기적으로도 늦지 않다”고 밝혔다. 다음은 주요 대담 내용.→박 대통령의 1년 국정운영을 점수로 매긴다면. 윤여준(이하 윤) 저는 박 대통령이 대선후보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리더십의 성격이 수직적, 폐쇄적, 권위적이라고 비판했다. 집권 이후를 보니 제 걱정보다 훨씬 심한 것 같다. 집권 1년도 되기 전에 사회 일각에서 퇴진운동이 일어났다면 자신을 들여다보는 성찰이 시간이 있어야 했는데 그런 부분이 아쉽다. 이상돈(이하 이) 본인 내재적인 측면도 있지만 전임 이명박 정부와의 관계,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 정국 등 의도치 못한 측면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시절 ‘벽파계획’이란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대통령 지시사항이 ‘벽’이라면 공무원들이 벽을 깨부수듯 지시사항을 수행한다는 뜻이다. 아직도 이런 구시대적 국정운영이 엿보인다. 박 대통령이 거짓말은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 그럴듯하게 꾸미거나 회피하는 언행을 못해 더 진통을 겪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 대통령의 ‘불통’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윤 박 대통령 특유의 ‘원칙과 신뢰’의 태도는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내 생각이 원칙이다’는 규정자 의식은 곤란하다. ‘내가 아니면 아니다’는 고집으로는 안 된다. 이 박 대통령과 비교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한국에선 ‘대타협의 정치인’이라고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2005년 총선 당시 메르켈은 슈뢰더 전 총리의 우파적 개혁정책 ‘어젠다 2010’이 사회적 반발을 얻은 덕분에 집권했는데 집권 뒤 자기 원칙은 폐기하고 슈뢰더 정책을 받았다. 메르켈이 선거에 나타났던 민심을 받아든 게 아닌가 생각해볼 부분이다. →대통령 단임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윤 민주국가는 반응성과 책임성이 중요하다. 지금은 반응성은 거의 없고 책임성도 물을 수 없는 상태다. 5년 단임제라는 정치제도의 탓이 크지만 대통령 개인의 리더십의 탓이 크다. 이 대통령 단임제라고 국민심판을 안 받는 건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1995년 지방선거에서 패했고 그 외 여권이 중간선거에서 매번 패하지 않았나. 윤 여당에 (중간선거로) 책임을 묻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책임을 묻는 게 아니다. 2012년 총선 직전 한나라당이 당 이름과 로고를 다 바꿨다. 집권세력을 심판할 중요계기를 앞두고 심판의 대상을 바꿔버린 것은 정당정치의 본질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대통령이 ‘개헌은 블랙홀’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제 실패에 대한 반성에서 개헌한다면 의원내각제를 해야 한다. 분권형이나 이원집정부제는 의미가 없다. 윤 전적으로 동의한다. 의원내각제로 가는 게 맞다. 개헌논의는 국회에서 하면 된다, 블랙홀이 아니다. 개헌논의를 국민에게 개방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 학자들은 권력집중의 폐해 때문에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저는 동의 안 한다. 권력은 나뉘지 않는 속성이 있는데다 요즘 국가안보, 내정 등 명확하게 구분할 수가 없다. 내정과 안보를 줄 긋듯 분리하기 어렵다. →분권형이나 대통령중임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분권형 대통령제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예가 없다. 윤 결국 사람이 먼저냐 제도가 먼저냐의 문제다. 제도를 통해 사람이 바뀔 수도 있다. →6·4지방선거의 정치·역사적 의미와 야권연대나 전격 통합의 가능성은. 윤 이번 선거가 중간심판의 성격이 강하냐 약하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집권 1년차에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중간심판 성격을 부여해야 한다. 여론 관심이 온통 안 의원의 신당, 야권연대에만 쏠려 있는데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지방분권을 어떻게 할 것인지, 지방선거 본질을 고민해야 한다. 지도자들이 ‘야권연대’, ‘단일화’, ‘신당’ 같은 말초적인 데에만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 야권분열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처럼 말하는 주장은 원천적으로 성립이 안 된다. 지금 민주당의 전체 판세를 보면 여당을 이기지 못한다. 신당 창당 여부와 관계없이 지는 선거다. 우리는 이미 (민주당이) 잃어버린 표를 가져올 뿐이다. 이번 기회에 신당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당선시키느냐도 중요하지만 새 정치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크다. 이 구정치에 대한 총체적 심판이냐 혹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심판이냐를 놓고 볼 때 이번 선거는 불행히도 후자 쪽이 더 강하다. 민주당의 문제는 항상 호남이다. 민주당이 호남에서 개혁, 쇄신을 하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100년 만에 동북아 안보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한·일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일본에 대한 국민정서, 역사문제와 안보·경제 분야는 별도로 접근해야 한다. 과거엔 한·일 관계에 비공식 채널이 있었는데 이제는 끊어져 버린 게 아닌가 걱정도 든다. 한·일관계가 개선되어야 함은 말할 여지가 없다. 박 대통령이 국내정치의 긴장을 풀어야 남북관계도 풀린다. 윤 일본에는 아베 총리의 극우적 언행에 반대하는 지식인, 중산층 계층이 두껍다. 이들과의 시민적 교류를 병행해야 한다. 대통령은 통일 한반도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미·중 지도부 설득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현 외교안보라인을 보면 군 출신, 국방통은 많지만 외교안보통은 보이지 않는다. →역사교과서 논란은 어떻게 보나. 윤 역사학은 기본적으로 해석학의 영역으로 과거 사건에 대해 해석상의 논쟁이 붙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이념을 앞세운 나머지 사실 관계조차도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념 잣대에서 불리하면 팩트를 고치는 게 어떻게 교과서인가. 역사학자들이 학문적 논쟁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정치적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미국 고등학생들이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 지휘관 이름은 몰라도 일본계 주민들을 집단수용소에 가뒀던 것은 다 안다고 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보도연맹, 노근리 사건은 아는데 6·25 전쟁의 중요 전투는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권위 있는 우파 전통의 교수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관련 특별검사제 도입 논란이 장기간 지속됐다. 이 의혹이 터져 나왔던 지난해 여름에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했으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윤 박 대통령이 업보로 짊어지고 가야 한다. →야당의 특검 정치공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는가. 이 야권에서 정치공세를 포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문제는 검찰이 기소해 재판하더라도 국민들이 이를 믿겠느냐는 것이다. 검찰 수뇌부에 대한 신뢰가 붕괴한 마당에 강도 높은 검찰개혁을 시도한다 해도 이에 실패한 정권·대통령에 대해선 국민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윤 대선 불복을 떠나 야권에서는 포기할 수 없는 이슈다. 대선개입의 규모보다 국가가 선거에 개입했다는 객관적 사실이 드러났고, 박 대통령으로선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게 아니겠는가. 앞으로 이 정부에 두고두고 큰 짐이 될 것이다. →지도자 자질 논란이 많다. 국가지도자의 조건은 무엇인가. 이 그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적 과제를 알아야 한다. 영국은 그 시대의 필요에 의해 마가릿 대처, 토니 블레어를 총리로 원했다. 성공하는 대통령·총리는 ‘소통과 위임의 달인’이 돼야 한다. 소통은 기본이고 좋은 사람을 써서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로 혼자서 껴안고 가면 100% 실패한다. 세세한 문제도 챙긴 미국 존슨, 카터 전 대통령이 실패한 대통령이 된 이유다. 윤 대통령은 두 가지 기초소양이 필요하다. 첫째, 국가의 핵심 가치가 공공성이라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공인 의식이 없으면 권력을 마치 물려받은 유산처럼 착각해 모든 병폐의 근원이 된다. 둘째, 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이해가 밑바탕이 돼야 한다. →윤 의장이 안철수 의원에게 다시 합류한 이유는 무엇인가. 윤 지금 새 정치의 심벌은 안철수다. 새 정치 요구 현상은 기존 정치에 대한 혐오 때문에 생겼고 안철수란 사람이 다른 정치인과 다르기 때문에 이름 석자 앞에 ‘새 정치’란 단어가 붙은 것 아니겠나. 새 정치를 만드는 데 헌신한다고 했으니 도울 뿐이다. 한국 정치를 바꾸고 싶은 제 소망이 있지만, 만약 안철수가 ‘대통령을 만들어달라’고 했다면 돕지 않았을 거다. 진행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정리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사진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이상돈 前비대위원은 새누리당 쇄신과 19대 총선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2012년 초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에서 비대위원으로 활동했다. 대선 때는 박근혜 캠프의 정치쇄신위원으로 활동하며 박근혜 후보의 중도보수 이미지를 만드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박근혜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 비판적 충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윤여준 새정추 의장은 최근 새정추에 합류해 창당 준비 과정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윤 의장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고 각종 선거에서 이름을 날린 보수진영의 대표적 전략기획통으로 평가받는다. 문민정부 때에는 청와대 공보수석과 환경부 장관 등을 지냈고, 지난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선대위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을 맡았다.
  • ‘식민지배 사과’ 무라야마 전 日총리 새달 방한

    ‘식민지배 사과’ 무라야마 전 日총리 새달 방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의 뜻을 담은 ‘무라야마 담화’로 유명한 무라야마 도미이치(90) 전 일본 총리가 정의당의 초청으로 다음 달 방한, 국회에서 한·일 관계 해법을 모색하는 강연을 연다. 15일 정의당에 따르면 무라야마 전 총리는 다음 달 11일 방한해 2박 3일 일정을 소화한다. 국회 방문 강연은 12일로 예정돼 있으며,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일본의 우경화와 한·일관계 개선 방안 등이 주제가 될 것으로 전해졌다. 무라야마 전 총리가 199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발표한 무라야마 담화에는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 정책으로 아시아 국가에 큰 피해와 고통을 준 것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최근 국내에서는 악화된 한·일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일본이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는 뜻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방한은 지난해 9월 일본 사민당의 방문 당시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가 사민당 소속인 무라야마 전 총리의 방한을 공식 요청했고 무라야마 전 총리가 지난달 이에 화답해 성사됐다. 일정은 정의당이 주최하고 한·일의원연맹,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의원 모임’ 등 여야 의원으로 구성된 모임이 후원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日 “독도·센카쿠는 고유 영토” 교과서 제작지침에 명기 추진

    일본 정부가 독도가 자국의 고유 영토라는 주장을 중·고등학교 교과서 제작 지침에 반영하는 안을 추진한다고 일본 언론이 지난 11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문부과학성은 중·고교 교과서 편집 지침인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명기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개정안은 독도에 대해 “한국에 불법으로 점거됐다”는 주장을, 센카쿠 열도에 관해서는 “해결해야 할 영유권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는 지침을 각각 담고 있다. 문부과학성은 이런 내용을 중학교 역사와 공민(사회) 해설서에, 고등학교 지리 A·B와 일본사 A·B 해설서에 반영한다. 개정된 해설서는 이르면 올해 교과서 검정 때부터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해설서 자체는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학습지도 요령의 의미나 해석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교과서 제작이나 수업의 지침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이날 “일본 정부가 독도와 댜오위다오를 자국 교과서에 일본의 고유 영토로 기술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이는 일본이 후세에 잘못된 영토 인식을 심어주는 것임은 물론 분쟁 도서를 빼앗고 나아가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국제질서에 도전하려는 행위”라며 강력 대응할 뜻을 시사했다. 타이완 외교부도 성명을 통해 “일본의 일방적인 행보는 동아시아 지역 안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한편 외교부는 12일 고바야시 겐이치 주한일본대사관 정무공사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불러 ‘일본 문부과학성이 중·고교 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방침’이라는 보도에 대한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보도가 사실일 경우 일본 정부에 즉각 이 계획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서울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나치 반대파 처형에 쓰인 ‘히틀러 단두대’ 발견…섬뜩

    나치 반대파 처형에 쓰인 ‘히틀러 단두대’ 발견…섬뜩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반 나치투쟁을 벌인 뮌헨 대학 비밀결사 ‘화이트 로즈’ 멤버들 처형에 사용된 일명 ‘히틀러의 단두대’가 발견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2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이 단두대는 독인 뮌헨에 위치한 국립 바이에른 박물관 지하창고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기록에 따르면, 이 단두대는 지난 1943년 뮌헨 대학 구내에서 히틀러를 규탄하는 활동을 하다 붙잡힌 반 나치결사 ‘화이트 로즈’ 멤버 한스, 조피 숄 남매와 크리스토프 프롭스트 참수에 쓰였다. 당시 뮌헨 대학 학생이었던 한스, 조피 숄 남매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패전 진실과 나치 정부의 폭압을 고발하는 내용의 전단을 제작해 몰래 배포하다 나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에 체포됐다. 숄 남매와 프롭스트는 국가반역죄와 이적 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 절차 없이 나흘 만에 단두대에서 처형됐는데 사형 틀에 목을 올려놓는 순간까지 전혀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아 사형집행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박물관 측은 이 단두대가 내포하고 있는 역사적 상징성을 고려해서 대중에 공개하고자 했지만 ‘화이트 로즈’ 생존자 중 한 명인 프란츠 조셉 뮐러(89)는 이를 반대하고 있다. 그는 “이 단두대는 엄밀하게 살인에 쓰인 물건”이라며 “아직도 내 기억 속에는 한스, 조피 숄 남매가 생생히 살아있다. 이런 슬픈 물건을 대중 관람용으로 전시하는 건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바이에른 주 문화 장관인 루트비히 스페늘은 “양 측 주장이 모두 의미가 있다. 단두대 전시는 하루아침에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한편 ‘화이트 로즈’ 단체는 발키리 작전을 펼쳤던 슈타펜베르크 대령과 함께 반 나치투쟁의 상징적 존재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2005년 ‘조피 숄의 마지막 날들(Sophie Scholl-Die letzten Tage)’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사진=데일리메일 캡처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격동의 동북아-석학에게 길을 묻다] 데라시마 지쓰로 일본총합연구소 이사장

    [격동의 동북아-석학에게 길을 묻다] 데라시마 지쓰로 일본총합연구소 이사장

    지난해 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강한 일본’을 표방한 아베 정권은 올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강력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여 한국·중국과의 관계에 먹구름을 한층 드리우고 있다. 데라시마 지쓰로(67) 일본총합연구소 이사장으로부터 2014년 ‘아베호’가 이끄는 일본의 운명과 동북아 정세에 대한 전망을 들었다. 데라시마 이사장은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글로벌 감각을 지닌 석학이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그야말로 전격적이었다. 한국·중국·미국이 모두 적어도 올봄까지는 참배가 없을 것이라고 봤지만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일본인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이 갖는 공통의 역사 인식이 있는데,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란 것이다. 일본은 도쿄 재판을 받아들이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으며 국제사회에 복귀했다.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한 “일본의 속내는 예전의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을 수밖에 없다.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나는 평화를 사랑하고,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도 언급했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알링턴 국립묘지가 아니다. 지난해 10월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2+2)’에 참석하기 위해 방일한 존 케리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미국 고위 관리로는 처음으로 지도리카후치 전몰자 묘역에 참배한 것은 “우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메시지인 것이다. 일본인에게는 그런 감각이 없지만,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마치 독일의 지도자가 히틀러 묘역을 참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A급 전범 중에 일본인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은 점점 불안해진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면 A급 전범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또 아베 총리가 국가의 지도자로서 ‘존숭의 염’을 표한다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는 4만 9000명의 한국·타이완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존숭의 뜻을 나타낼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일본인 참전자들은 유족 연금 등 일정한 배상을 받고 있지만 그들은 잊혀졌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 것은 올해 자신의 본색을 전면에 드러내겠다는 의지로도 읽히는데, 아베 총리가 최종 목표로 삼고 있는 헌법 개정은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나. -헌법을 절대로 고쳐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도 자주 헌법을 수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전후 일본이 평화 국가로서 쌓아 온 헌법은 확실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지금 전후 민주주의의 시련을 겪고 있다. 전후 태생이 전체 인구의 80~9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질문받고 있다.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어떤 일본을 물려줄 것인지가 중요하다. 헌법을 개정해 옛날의 일본으로 회귀시키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헌법을 개정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자는 생각은 분명히 좌절될 것이라고 본다. 전후 일본을 짊어지고 온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외부적으로도 중국이 대국화를 진행하고 있고, 미국은 ‘아시아 중시 외교’에도 불구하고 예전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등 동북아의 상황이 안정적이지는 않다. 올해 한·중·일과 미국에 대한 전망은 어떤가. -일본은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 연대한다는 생각이 강하지만, 미국은 일본을 위해 자국 청년의 피를 흘려 가며 중국과 전쟁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미국은 일본으로부터의 기대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가 일본의 실효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중국의 입장도 배려하기 위해 영유권과 관련된 중국의 입장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런 미국과 일본의 온도차는 지난해 말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 논란에서 훌륭하게 입증됐다. 미국이 유사시에 일본을 지켜 줄 것이라는 생각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한국의 대통령 역시 경제적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중국 편에 서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외교를 하고 있다고 보는데, 과도한 기대와 과도한 의존은 어느 나라에도 실수라는 것을 한국도 곧 알게 될 것이다. 최근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도 저서를 통해 같은 내용을 얘기했다. 지금 일본에서는 ‘미·중 신냉전시대’가 오기 때문에 미국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그런데 미·중 대립의 시대가 온다는 인식은 매우 어설프다. 미·중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심화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돋보이게 하고, 미국 역시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힘을 확대하려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냉전시대의 미·소 양강 구조나 미국의 1강 지배,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다극화 구조 등으로 설명할 수 없다. 세계는 ‘무극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무극화’되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일은 상호 네트워크형 발전의 틀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상호의존’이다. 삼성, LG 등 대기업은 일본의 소재나 기술을 기반으로 하면서 여기까지 성장했다. 일본도 주변에 한국, 타이완 같은 산업국가가 있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다. 유럽과 미국에서 보면 한국과 일본, 타이완은 상호 의존의 네트워크 안에 있다. 서로 적대하면서 에너지를 낭비할 게 아니라 상호 협력해야 한다. ‘단계적인 접근법’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는데, 부정적인 얘기로 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시너지 효과가 나는 사안부터 힘을 합치는 식이다. 유럽에서 배울 점이 많다. 프랑스와 독일도 오랜 기간 동안의 증오로 절대 화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에서 출발해 지금은 유럽연합(EU)으로 통합하지 않았나. →2014년 동북아의 키는 누가 쥐고 있나. -러시아다. 러시아가 태평양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한·중·일 삼각 구도에 러시아가 가세해 게임이 더 복잡해졌다. 러시아는 지난해 3월 약 380조원을 투입하는 극동 및 바이칼 지역 개발 프로그램을 승인했으며 극동 시베리아 송유관 개발방안 등을 통해 동북아 에너지 통합 노력을 하고 있다. 일본만 해도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현재 원유·LNG 전체의 10%를 넘어섰고, 2020년까지 20%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세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한국 언론에는 처음 말하는 것이다. 독일의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와 6~7년 전에 만났을 때 그가 “북한 문제는 별것 아니다”라고 말했다. 냉전 시대 북한은 뒤로는 중국과 소련을 두고 있었고, 김일성 주석의 사상에 공명하는 세계의 젊은이가 있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처럼 세계 젊은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정당성’을 부여하는 메시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냉전이 끝나고 20년 동안 북한은 급속하게 정당성을 잃었다. 2014년 북한은 점점 정당성을 잃고 부유하고 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중국의 영향력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군사 독재국가의 방향으로 향하는 지금 북한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지원이 없어서는 안 된다. 국제사회의 시각으로 보면 중국의 주변 국가가 되고 있다. 글 사진 도쿄 황성기 특파원 marry04@seoul.co.kr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데라시마 지쓰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비평가 중 한 명이다. 다마대학 학장, 미쓰이물산 전략연구소 회장 등을 겸임하고 있고 방송과 신문 등을 통해 현안을 명쾌하게 풀어 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1947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 정치학과 학·석사를 수료하고 1970년대 엘리트들이 몰렸던 종합상사 미쓰이물산에 입사했다. 뉴욕 본점 정보담당 과장과 워싱턴 사무소장을 지내며 1990년대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다. 미국 근무를 마치고 1998년 ‘국가 논리와 기업 논리’라는 책을 펴내 주목받았다. 2009년부터 다마대학 학장, 2010년부터 일본총합연구소 이사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 美 위안부 소녀상 ‘보호 VS 철거’ 한일 대결 양상 ‘누구 손 들까’

    美 위안부 소녀상 ‘보호 VS 철거’ 한일 대결 양상 ‘누구 손 들까’

    ‘美 위안부 소녀상’ 美 위안부 소녀상이 화제다. 7일(현지시각) 백악관에 따르면 지난 4일 ‘글렌데일의 평화의 소녀상을 보호해달라’는 제목의 청원이 백악관 청원사이트 ‘위 더 피플’(We the People)에 게재됐다. 백악관 규정상 청원을 올린 지 30일 이내에 10만 명 이상이 지지 서명을 하면 관련 당국이 이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공식 답변을 하게 돼 있다. 美 위안부 소녀상 보호 청원을 올린 네티즌 ‘S.H’는 “어제 나는 평화의 동상을 철거해달라는 청원이 10만 명을 넘어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평화의 동상은 2차 세계대전 기간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의한 성노예 희생자들을 상징한다. 우리는 역사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나는 우리가 이 평화의 동상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백악관 청원 사이트에서 한국과 일본의 네티즌들이 美 위안부 소녀상 보호와 철거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 앞서 지난 12월 11일 美 텍사스주 메스키트에 사는 ‘T.M’이라는 네티즌이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청원을 올린 바 있다. 현재 10만 명을 넘은 11만9,825명이 서명했다. 사진 = 정대협(美 위안부 소녀상) 온라인뉴스부 seoulen@seoul.co.kr
  • 獨검찰, 70년 전 ‘나치 SS대원’ 법정에 세우다

    獨검찰, 70년 전 ‘나치 SS대원’ 법정에 세우다

    가까운 옆나라에 귀감이 될 만한 뉴스가 전해졌다. 최근 독일 검찰이 제 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중부 한 마을에서 민간인들을 학살한 올해 88세의 노인을 살인혐의로 기소했다. 과거 나치스친위대(SS) 소속인 이 노인은 쾰른 출신의 베르너 C라는 이름으로만 알려졌으며 사건 당시 19살이었다. 프랑스 최대의 민간인 학살로 기록된 이 사건은 지금으로 부터 70년 전인 1944년 6월 1일 발생했다. 당시 나치 점령 하에 있었던 오라두르-쉬르-글란 마을에 SS대원들이 들이닥쳤다. 레지스탕스와 관련된 정보를 캐던 이들은 주민 642명을 무참히 살육했으며 특히 이중에는 무려 205명의 어린이들까지 포함돼 있어 당시 나치의 잔학상을 한 눈에 드러냈다. 독일 검찰은 당시 베르너가 다른 대원들과 함께 주민 25명을 살해한 혐의를 두고있다. 안드레스 브랜델 검사는 “베르너가 SS대원으로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살해 혐의는 부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대해 베르너의 변호사는 “의뢰인은 이 살인사건과 관련이 없으며 당시 나이도 어린 상태였다”면서 강력히 무죄를 주장했다.   한편 나치의 준군사조직인 ‘나치스친위대’(Schutzstaffel)는 아돌프 히틀러의 소규모 개인 경호대로 시작한 엘리트 조직으로 다른 인종을 증오하는 교육을 받아 폭력적이고 광신적인 활동으로 악명이 높았다. 사진=마을 학살 현장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美소녀상 철거 반대” 맞불 청원… 백악관 홈피 한·일 사이버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시립공원에 세워진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해 달라는 백악관 홈페이지 인터넷 청원 서명자 수가 10만명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인 지난 4일(현지시간) 이 소녀상을 철거해서는 안 된다는 청원이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것으로 6일 확인됐다. 일본 네티즌들의 위안부 소녀상 철거 청원에 맞서 한국 네티즌들이 철거 반대 청원을 올린 것으로 보여 위안부 소녀상 문제를 놓고 한·일 네티즌 사이에 ‘사이버 전쟁’이 펼쳐지는 형국이다. 백악관 홈페이지의 청원 코너 ‘위 더 피플’(We the People)에 지난 4일 ‘S.H.’라는 이름의 청원자가 “글렌데일에 있는 평화 기념 동상을 보호해 주세요”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청원은 “어제 나는 평화 기념 동상을 철거해 달라는 청원의 서명자 수가 10만명을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평화 기념 동상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의한 위안부 희생자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우리는 역사를 올바로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 청원에는 7일 오전 9시 현재 3396명이 서명했다. 백악관이 청원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는 기준인 10만명에 이르려면 청원 게시 후 한 달 뒤인 다음 달 3일까지 9만 7974명이 더 서명해야 한다. 외교 소식통은 “과거의 사례에 비춰 철거 반대 청원 서명자가 10만명을 넘을 경우 백악관이 철거 찬성과 철거 반대 등 두 청원에 대해 한꺼번에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씨줄날줄] 국민소득 4만불의 함의/정기홍 논설위원

    서울의 한 대학이 50년 전 대학생에게 물어본 미래의 국민소득 예측자료를 2012년 말에 공개해 화제가 됐었다. ‘2049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많아야 500달러에 머물 것’이란 내용이었다. 당시 국민소득은 120달러였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을 앞둔 지금에 생각하면 당시의 삶이 얼마나 궁핍했으면 이 같은 암울한 예측을 했을까 싶다. 경제성장에 따른 우리의 국민소득 증가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가팔랐다. 명목기준으로 1961년 80달러 정도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1977년 1000달러를 넘어섰고, 1995년에는 1만 달러를 달성했다. 정부의 1·2차 경제개발계획(1962∼1971년)과 새마을운동(1970년 시작) 등에 힘입은 바가 크다. 북한보다 살기 힘들었다는 1960년대에 “필리핀 만큼만 살자”는 것이 모토였으니 이 또한 격세지감이다.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에는 7000달러로 내려앉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7년, 선진국 진입을 의미하는 2만 달러 시대를 맞게 된다. 2만 달러 달성은 인구 1000만명 이상 국가 중 13번째였다. 소득 2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명 이상의 국가에 주어지는 ‘20-50클럽’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로서는 처음이며 미국과 일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독일에 이어 7번째라고 한다. 국민소득은 한 국가의 경제와 개인의 생활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로 활용된다. 정부는 이를 통해 갖가지 경제정책을 짠다. 국민소득을 뜻하는 용어도 여럿 있다. 국민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국가의 총체적인 경제력인 국민총생산(GDP)보다 실질소득인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훨씬 더 중요하다. 더 까다롭게 따져보면, GNI에서 세금 등을 뺀 개인총처분가능소득(PGNI)이 국민의 평균생활 수준을 알 수 있는 가장 근접한 바로미터다. 국민소득의 증가는 그 단계에 따라 소비행태는 물론 시장의 가치관 변화를 동반해 왔다. 소득 1만 달러 시대를 맞아 소비는 더 이상 상류층의 전유물은 아니었고, 소비를 통한 자아실현 욕구가 커지면서 레저·서비스 산업도 번창했다. 2만 달러 시대에 들어서는 ‘성장과 분배’가 화두로 등장해 논란을 불러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엊그제 신년기자회견에서 3년 안에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고, 4만 달러 시대를 여는 초석을 놓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명박정부 때도 소득 3만 달러 달성을 다짐했지만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2만 달러 시대든, 3만 달러 시대든 성장의 과실이 사회 전반에 제대로 스며들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4만 달러 대망론’이 이번만은 수치 놀음으로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인간은 평생 변한다” 그 통찰은 유효한가

    “인간은 평생 변한다” 그 통찰은 유효한가

    유년기와 사회/에릭 H 에릭슨 지음/송제훈 옮김/연암서가/528쪽/2만 5000원 발달심리학이란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무렵부터다. 과거 인간 수명이 50세 정도였을 때에는 인간이 태어나서 스무 살 무렵까지의 심리발달 과정만 알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동심리학이라는 명칭이면 충분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발전과 의술의 발달로 수명이 크게 늘어나면서 학자들의 관심은 유아에서 노년에 이르는 일생을 단계별로 나눠 그 특징을 밝히는 것으로 확장됐고 발달심리학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에 이른다. 그 흐름을 주도한 이론가가 독일 출신의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이다. 그가 1950년에 발표해 발달심리학의 고전이 된 책 ‘유년기와 사회’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완역돼 나왔다. 첫 저서이자 출세작으로 1963년과 1985년 두 차례 개정판이 나왔으며 이번에 나온 책은 1985년판을 토대로 삼았다. 에릭슨은 1902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확실치 않았고, 어머니는 덴마크계 유대인이었다. 전공인 미술을 포기하고 오스트리아 빈의 정신분석학연구소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의 도움으로 1927년부터 6년간 정신분석을 연구했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39년 미국 국적을 얻었고 아동정신 분석 분야에서 명성을 쌓았다. 공식적인 학위가 없었음에도 1949년 UC버클리에서 종신교수직을 제안받았지만 매카시즘 광풍이 대학에까지 몰아치면서 충성 맹세를 요구하자 1년 만에 교수직을 내던지고 학자의 양심을 택했다. 이 책은 그로부터 몇 달 뒤 나왔다. 개인의 심리학적 진화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성격발달이 성인기 초기에 종결되는 것으로 가정한 프로이트와 달리 에릭슨은 인간의 심리사회학적 발달 과정이 전 생애에 걸쳐 일어난다고 봤으며 인간 자아의 형성을 문화·사회와 관련지어 설명했다. 에릭슨은 이 책에서 임상적 정신분석과 문화인류학적 접근방식을 새롭게 결합해 주목을 끌었다. 반세기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그가 임상을 통해 만난 많은 사람들의 사례와 정체성 위기에 직면한 인디언 부족에 대한 현장연구, 히틀러와 고리키를 통해 독일 국민과 러시아 민중의 정체성을 반추한 내용은 여전히 흥미롭고 설득력을 갖는다. 그는 책에서 유명한 인간발달의 여덟 단계를 소개했다. 구강감각기(0~1세), 근육항문기(1~3세), 보행이동-남근기(3~6세), 잠재기(6~12세), 청소년기(12~20대 중반), 성인기 초기(20대 후반~30대 중반), 장년기(30대 중반~60대 중반), 노년기(60대 후반~)가 그것이다. 인간은 발달 단계별로 기본적 신뢰 대 기본적 불신, 자율성 대 수치심과 의심, 주도성 대 죄책감, 근면성 대 열등감, 정체성 대 역할 혼란, 친밀 대 고립, 생산력 대 침체, 자아완성 대 절망이라는 심리적 위기에 당면하며 이를 잘 넘겨야 자아가 조화롭고 건전하게 발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유년기로부터 비롯된 좌절이 이후의 삶과 그가 속한 사회에 드리우는 그림자에 주목했던 에릭슨은 “유년기의 갈등은 문화적 관습과 지배계층의 견고한 지지가 유지될 때 창조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제3의 길’ 석학 인터뷰(상)] “사회통합·다양성은 배치되는 개념 아닌 민주주의 양대 토대”

    [‘제3의 길’ 석학 인터뷰(상)] “사회통합·다양성은 배치되는 개념 아닌 민주주의 양대 토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정치철학이나 정치사상은 낡은 학문으로 굳어졌다. 사회주의 체제가 힘을 잃은 상황에서 획기적인 새 이론도 등장하지 않자 정치학은 과거의 사례를 연구하거나 현실을 해석하는 데 집중하는 학문으로 폄하됐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치는 ‘철학’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현안에 맞춘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혐오성 짙은 행위로 여기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회체제나 세계를 보는 시각에 근본적으로 메스를 대려고 하는 도전적인 학자도 드물다.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81)와 미국의 마이클 하트(53) 듀크대 교수는 이 같은 정치철학 위기의 시대에 새로운 담론을 이끌어 내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2000년 펴낸 ‘제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 속에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제국화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에 대항할 세력으로 ‘다중’(多衆·Multitude·지배계급을 제외한 공동행동을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들이 책에서 주장한 ‘미국 중심의 신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이에 대한 세계적인 반발의 징조’는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면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고 ‘제국’은 전 세계 30개국에 출판되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두 사람은 ‘다중’, ‘공통체’로 이어지는 이른바 ‘제국 3부작’을 잇따라 펴내며 자신들의 사상을 펼쳐 나갔다. 한국사회에서도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이들의 사상에 주목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네그리는 ‘지성인들의 지성’으로, 하트 교수는 ‘지성계의 샛별’로 추어 올려졌다. 하지만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주목받게 된 계기는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였다. 당시 나이와 성별을 특정 지을 수 없는 사람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 대해 학자들은 뚜렷한 근거를 대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새롭게 주창한 계층인 ‘다중’과의 유사성이 높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중’은 프랑스 파리 지하철 시위, 월가 점령 시위 등 과거와 다른 형태의 시위를 주도하는 주체로 평가받았고, 일부 학자들은 최근 한국 대학가를 강타했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역시 ‘다중’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분위기다. 서울신문은 지난해 말 하트 교수와 수차례에 걸친 이메일·전화 인터뷰를 통해 현재의 세계 정세에 대한 평가와 민주주의에 대한 하트 교수의 생각을 들어봤다. 하트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회 통합’과 ‘다양성’에 대해 “두 가지는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며 둘 모두 민주주의의 토대”라고 강조했다. 하트 교수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한 것은 처음이다. →저서 ‘제국 3부작’은 명확한 인과관계를 제시하기보다는 가설에 가깝다. 하지만 진보 지식인 계층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럴듯한 얘기를 담아 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기본적으로 인간은 남의 생각에 크게 관심이 없다. 그래서 소통이 어렵다. 우리가 하는 얘기들은 진보나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공유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한동안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적 현상이나 대중의 움직임에 대해 마땅히 해석할 방법을 찾지 못해 왔다. 제국 3부작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춰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철학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예를 들어 슬라보이 지제크가 철학자로서는 비정상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역시, 그가 대중적인 얘기를 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제국’이 출판된 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다. 지난 10년간 일어난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는 얼마나 예측에 가깝게 진행됐는가. -‘제국’의 시작은 일방적인 방식으로 국제적 사안을 지시할 수 있는 전통적인 형태의 ‘국민국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당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미국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의 종말을 고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우리는 지난 10년간 미국이 여전히 강력하지만, 국제적 헤게모니는 끊임없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실패가 명확한 증거다. →여전히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질서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 -미국은 국제 문제에 개입하기 위해 전통적인 동맹과는 다른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네그리와 나는 ‘제국’에서 세계화된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권력 네트워크’가 새롭게 형성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미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등과 같은 초국가적 기관, 국가 또는 대륙 간 자유무역협정, 주요 기업 및 기타 다양한 세력을 포괄하는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보는 시각이다. ‘국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또는 ‘국가는 계속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라는 전통적인 시각으로는 안 된다. →일반인들에게는 지나치게 크고 거대한 담론이다. 그렇다면 세계를 어떻게 봐야 한다는 것인가. -개별적이기보다는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특히 정치는 일방적이지 않다. 국가들, 그중에서도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들이 새로운 세계 질서를 지배하기 위해 어떻게 협력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이 관계가 변해갈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지배 형태를 알아내는 것뿐 아니라 이런 지배에 공격을 가하고 도전할 수 있는 적절한 정치적 수단을 창안하고 구성하는 일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노동권은 약해진 반면 복지는 전 세계에 걸쳐 축소되는 추세다. 성장을 위해 자국 사회를 재구성한 독일 같은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둠에 따라 이 같은 움직임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인들과 상당수 경제학자 등은 우리에게 두 가지 경제적 선택이 있다고 말한다. 민영화와 탈규제라는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 또는 공공재산을 국가가 통제하는 케인스·사회주의 논리를 택하라고 한다. 최근에는 신자유주의의 병폐가 국가통제라는 약으로 치유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사회주의 정책이 유발한 문제가 민영화로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둘 다 죽은 생각이라고 본다. 어느 쪽도 스스로 제시했던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다. 둘의 목표는 모두 ‘경제 발전’, ‘적절한 수준의 고용’, ‘경제적 복지와 자유’인데 둘 다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 문제는 이미 죽은 두 생각이 세계에서 온갖 종류의 재앙을 불러일으키며 계속 전개될 것이라는 점이다. 좀비 같은 생각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네그리와 나는 이 같은 죽은 생각은 완전히 묻어버리고, 경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새롭게 생각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아직은 뚜렷한 방향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는 ‘다양성’을 중시하는 목소리와 ‘사회적 통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두 가지 모두 민주사회에서 중요한 가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모순되는 측면이 있다. -사회적 통합은 통합을 ‘동질화’로 볼 때만 다양성에 모순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똑같이 행동하거나 살아가고, 동일한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은 동질화이지 통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사람들이 생산적이고 창조적으로 협력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동일해질 필요나 똑같이 행동할 필요가 없다. 물론 동일한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이 같은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서로 협력해서 다양성을 보완해 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적 토대다. →‘다중’은 기존의 잣대로 이해할 수 없는 집단행동을 이해하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월가 시위나 촛불 시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에 ‘다중’의 힘은 역부족이 아닌가. -사회의 변화는 한번에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움직임을 하나의 차원으로 보면, 보다 이해가 쉬울 것이다. 재스민 혁명이나 월가 시위는 형태나 참여자들은 다르지만 기존에 구축해 놓은 사회체제에 대한 도전이라고 보면 다르지 않다. 성공한 혁명이나 시위라고 해도 그게 끝은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체제는 또다시 도전을 받는다. 과거에 비해 독자성을 가진 개인들이 이해관계가 다른 상황에서도 한데 모여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 이미 ‘다중’이다. →네그리와는 이탈리아와 미국이라는 상이한 환경, 30년에 이르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함께 생각하고 글을 써 왔다. 2010년 네그리를 인터뷰했을 때 그는 “나와 하트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하나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기본적으로 난 네그리의 영향을 받아 이 세계에 들어왔고, 그를 존경한다. 차이점이 없지는 않지만, 이 같은 차이는 우리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된다. 우리는 20년 이상 계속 생각을 지속적으로 나눴고, 언제나 책에 대해 얘기한다. 우리의 우정이 근본이고, 책은 그 부산물일 뿐이다. 자르브리켄(독일)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마이클 하트 교수는 정치철학자, 문학이론가. 1960년 출생.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지만, 안토니오 네그리의 책을 읽고 정치철학으로 방향을 바꿔 워싱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듀크대 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질 들뢰즈,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다. 2000년 네그리와 함께 ‘제국’을 출판하면서 세계 지성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디오니소스의 노동’, ‘제국의 새로운 옷’, ‘다중’, ‘공통체’ 등을 네그리와 함께 썼다. 미네소타출판사의 ‘경계 너머의 이론들’의 책임편집자다. ‘제국 3부작’의 마지막이자 종합편인 ‘공통체’는 새해 국내에서 번역, 출간됐다.
  • [열린세상] 아베 정권의 탈선과 우리의 선택/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아베 정권의 탈선과 우리의 선택/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함으로써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야 말았다. 침략의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는 한국과 중국이 가장 싫어하는 역사의 현장인데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과거 침략의 역사를 부인하는 의미가 된다. 이런 일본의 앞날을 예측했던가. 일본을 항복시킨 맥아더 원수는 일본을 점령하자마자 중요한 몇 가지 정책을 펼쳤다. 첫째, 지독하리만큼 독한 일본의 보수세력들의 결합을 끊는 일이었다. 맥아더는 일본이 침략전쟁을 일으킨 원동력을 군벌과 재벌의 결탁이라고 보았다. 군국주의를 내세운 군벌은 결집된 재벌의 자본력을 배경으로 항공모함, 가미카제 전투기 등 수많은 무기로 무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맥아더는 점령정책의 첫째를 군사력 해체, 두 번째를 재벌 해체로 정책목표를 삼았다. 그리고 군국주의에 물든 국민들의 사상을 바꾸기 위해 민주화를 단행시켰다. 그래서 일본은 패전한 지 70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나름대로 민주주의를 경험하면서 미국과의 동맹하에 조용히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일본의 보수세력의 생각은 경제력뿐만 아니라 정치·군사력으로 강대국이 되는 염원을 간직하고 있었고 그 속마음이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와 중국의 센카쿠 위협으로 수면 위로 부상해 본격화되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보수세력은 존재하는데 일본의 보수세력은 성격이 다르다. 한국이나 중국이 일본의 침략전쟁을 비판하면 잘못되었다고 진정하게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두 나라가 그 당시 국력이 약해 자신들의 나라를 못 지킨 것일 뿐 침략전쟁이 잘못됐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60년 이상 사과와 반성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나치 학살의 독일은 지금도 침략의 역사를 인정하며 주변국들과 동행하려 한다. 작년 봄 베를린의 중심가 브란덴부르크 문 옆에 나치 학살의 잘못됨을 수많은 관 모양의 건축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독일 뮌헨 근처에는 최초의 강제수용소 다카우가 있고 베를린 근처에는 나치가 생체실험을 했다는 작센 하우스가 있어 과거 나치 만행의 시설을 보존하며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고 있는데, 수도 중심가에 어쩌면 흉물스럽기도 한 진회색의 관들로 건축돼 있는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은 독일을 신뢰받게 한다. 일본은 독일과 일본을 비교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친다. 비겁한 일이다. 세계는 동북아 세 나라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두려워도 한다. 각각의 한 나라가 세계의 어느 국가와도 견줄 만큼 경제력이 발달한 나라들이다. 서로가 평안하여 협력하면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동북아를 만들 수 있는데 소아적인 생각에 머물러 값비싼 무기를 사들이는 군비경쟁에 휩싸여 있다. 일본은 침략 역사를 부정하며 우경화의 길을 가고 있고, 중국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넘보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평온 상태를 깨뜨리려 한다. 그러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일본의 침략 역사 부정에 대해서는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주장해야 한다. 36년의 식민지배를 당한 한국은 직접적인 피해자이며 일본의 침략 역사를 그 누구보다도 잘아는 당사자다. 독일은 교과서에 나치 만행을 제대로 쓰고 정권이 바뀌어도 피해자들을 어루만져 주기 때문에 후세들이 선대의 잘못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반면에 일본의 후세들은 제대로 역사를 배우지도 못해 한국이나 중국을 여행하면서 선조들의 잘못을 알게 되는 수치를 당하는 것이다. 일본의 지도자들이 역사를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면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확대하며 센카쿠를 넘보는 것에 국제사회의 협력을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하나는 한국 외교의 역할이다. 일본의 보수우익화가 더욱 강화되는 것은 중국의 위협이 근저에 깔려 있다. 일본과 중국의 무기 사재기는 한국에도 영향을 미쳐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한국 경제에 주름이 지게 하고 있다. 동북아의 군비경쟁 축소라는 화두를 갖고 한국이 선제적 외교에 나서야 동북아 평화의 미래가 있다.
  • [시간제 일자리-길을 묻고 답을 찾다] 하르츠 개혁의 심장 獨 폭스바겐 공장 가보니

    [시간제 일자리-길을 묻고 답을 찾다] 하르츠 개혁의 심장 獨 폭스바겐 공장 가보니

    독일 니더작센주 볼프스부르크 중앙역. 고속철도 이체에(ICE)에서 내리면 붉은색 굴뚝 4개가 우뚝 솟은 웅장한 규모의 공장이 눈에 들어온다. ‘하르츠 개혁의 심장’으로 불리는 폭스바겐 본사 공장이다. 이 공장은 단일 기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이곳 볼프스부르크 지역 경제의 상징이기도 하다. 본사 공장을 둘러보려면 먼저 폭스바겐 테마파크인 아우토슈타트(자동차 도시)에서 유람선을 타야 한다. 폭스바겐은 단순 생산 기능에만 그치지 않고 ‘국민 자동차’의 명성을 살려 공장 일대에 2000년 아우토슈타트를 개장했다. 특히 독일 국민 및 인근 유럽 국가 국민들은 폭스바겐 차량을 계약한 뒤 이곳을 직접 방문해 차량을 인도받는 것을 가족 행사로 여길 정도다. 볼프스부르크 공장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완공된 공장으로 자체 발전소까지 갖췄다. 세계 최대 규모의 공장답게 일일 최대 3500대의 자동차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공장은 하루 3개 조로 24시간 가동된다. 1993년 말 폭스바겐은 경영 실적 악화 위기 속에서 직원 해고 대신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실험을 강행했다. 당시 주당 36시간이었던 노동시간을 28.8시간으로 줄이고 임금 10%를 삭감하는 대신 2만명 이상의 해고를 막았다. 익명을 요구한 폭스바겐 한 임원은 “당시 그런 변화가 없었다면 폭스바겐이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지금의 위상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폭스바겐은 노동 유연성 확보와 더불어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도 강화했다. 100% 자본금을 투입해 설립한 인력 운용 자회사 ‘아우토 비전’을 통해 파견직, 하도급, 시간제 노동자 등을 공급받고 있다. 폭스바겐 독일 내 공장 총인원 10만여명 중 4%에 해당하는 4000여명이 아우토 비전에서 파견한 노동자들이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본급 기준으로 정규직의 90%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고 있다. 부품 조립 라인의 한스 윌러는 “1999년 파견직으로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2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돼 안정적으로 일하고 있다”면서 “2000년대 초반 한때 회사가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노사가 유연하게 협의해 해고의 위기를 잘 넘겼다”고 말했다. 글 사진 볼프스부르크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정부 ‘독도 동영상’ 통해 日 비판

    정부 ‘독도 동영상’ 통해 日 비판

    “우리는 일본이 역사의 진실 앞에 겸허해지기를 바랍니다.” 정부가 새해 1일 0시부터 공개한 독도 동영상을 통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반박하고 정치 지도자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는 4분 19초 분량의 동영상을 통해 독도는 역사·지리적으로 우리의 고유 영토인 점을 밝히며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의 첫 희생물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의 옛 지도와 문서, 2차 세계대전 전후의 문서 등을 근거로 일본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주장하는 건 한반도 침탈의 역사를 되풀이하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일본이 시마네현의 독도 편입을 시도했던 1905년 이전에는 독도를 자국 영토가 아니라고 주장했다가 이제는 고유 영토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영상에서는 지난해 4월 야스쿠니 신사 춘계 예대제 당시 일본 국회의원 146명이 참배하는 장면과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가 폴란드의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장면을 대비시켜 일본의 표리부동한 역사 인식을 비판했다. 브란트 총리는 당시 무릎을 꿇은 데 대해 “나는 독일의 부끄러운 역사 앞에서 수백만 희생자의 무게를 느끼며, 인간이 할 말을 잃었을 때 하는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정부는 외교부 독도 홈페이지(dokdo.mofa.go.kr)에 독도 동영상을 공개하고, 실시간으로 독도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라이브 영상도 배치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문화마당] 울면 안 돼/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문화마당] 울면 안 돼/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지난 연말에 들은 한 크리스마스 캐럴 가사가 아직도 뇌리에 맴돈다. 누구나 귀에 익은 ‘울면 안 돼’라는 곡인데, 예전엔 느끼지 못하던 면을 이번에 새롭게 느꼈다. 아니, 그 가사가 문득 나를 엄습했다. 가사의 내용을 풀면 다음과 같다. 누가 착한 애이고 누가 나쁜 애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 산타 할아버지가 오늘 밤 동네를 방문하는데, 좋은 애에게는 선물을 주고 나쁜 애에게는 주지 않는다. 나쁜 애는 짜증을 부리거나 우는 아이다. 그러니 좋은 애는 짜증도 안 부리고 울지도 않는 아이다. 따라서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으려면 나쁜 행동을 버리고 좋은 애가 돼야 한다. 원곡인 영어 가사에는 아이를 분류하는 기준이 하나 더 나온다. 말을 안 들으면(naughty) 나쁜 애, 잘 들으면(nice) 좋은 아이다. 그뿐 아니다. 산타 할아버지는 동네 모든 아이들을 좋은 애와 나쁜 애로 분류한 명단을 갖고 있으며, 혹시 어떤 실수가 있을까봐 그것을 한 번 더 확인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잠이 든 사이에 몰래 방문해 좋은 애에게만 선물을 주고 떠난다. 그러니 선물을 받고 싶으면 어른들 말씀을 잘 듣는 착한(good) 아이가 돼야 한다. 연말에 이런 가사의 노래를 들으며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자본주의의 산물로 탄생한 산타클로스의 정체가 떠올라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하루에도 보통 몇 번씩 울어야 하는 어린 아이에게 선물을 들이밀며 자연적인 울음조차 스스로 알아서 참게 만드는 어떤 괴력이 그 가사에 녹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가사로 인해 웬만큼 사는 거의 모든 부모는 연말에 아이 선물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열 수밖에 없다. 억지로라도 선물을 준비해서 밤에 아이의 머리맡에 두지 않으면, 이 노래를 유치원에서 목이 터져라 부르고 온 자기 아이는 영락없이 나쁜 애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노래는 그동안 가난한 부모의 마음을 얼마나 후벼 팠을까. 억지로 무리해서 조그만 선물을 할지라도 다른 아이의 선물과 비교해 너무 작다면 그것은 내 아이가 덜 착하기 때문인가. 고아원에서 추운 겨울을 맞는, 그래서 이렇다 할 선물도 제대로 받기 힘든 아이들은 전형적인 나쁜 애인가. 참으로 어이없는 산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물질적 선물을 미끼로 장난치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다. 울 만한 일이 있을 때나 그냥 울고 싶을 때는 울도록 해야 한다. 문득 엄마의 품이 그리워 울음이 터질 때도 울지 말고 보모 말씀에 무조건 순응해야 정말 좋은 아이일까. 어떤 일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울음이 복받칠 때 참지 못하면 정녕 나쁜 애일까. 갑오년 새해가 밝았다. 현재 한국사회에는 갖가지 이유로 울고 싶은 이들이 무척 많다. 사회의 구조적 굴레로 인해 울음이 치미는 사람도 많다. 바로 지난 연말에도 그런 일들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이 사회는 지금 그들 더러 울음을 뚝 그치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라고 한다. 말을 안 들으면 엄벌에 처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는다. 울 만한 일에 실컷 울게 허용하는 사회가 따뜻한 사회요, 더불어 사는 좋은 사회 아닐까. 2014 갑오년이 그런 해였으면 좋겠다.
  • [새해에도 막가는 아베의 ‘군국 행보’] 아베 올해 2차대전 격전지 순방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현직으로는 29년 만에 제2차 세계대전 격전지인 남태평양 제도를 순방한다고 산케이신문이 31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오는 9월 팔라우에서 열리는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등 2014년부터 2년간 남태평양 섬나라를 돌아볼 방침이다. 이는 일본인 전몰자를 위령하고 유골 수집 활동을 강화하려는 총리의 의향에 따른 것이라고 신문은 덧붙였다. 태평양전쟁 중 국외에서 사망한 일본인 약 240만명 가운데 50만명이 파푸아뉴기니, 괌, 솔로몬제도 등 남태평양 지역에서 숨졌다. 아베 총리는 최근 보수층의 지지를 노리고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현직 총리로서는 7년 만에 참배했으며, 이번 남태평양 제도 순방에도 비슷한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외무성에 따르면 현직 총리로 태평양의 섬나라를 방문한 것은 전몰자 위령 목적으로 1985년에 피지와 파푸아뉴기니를 방문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마지막이다. 2005년에는 일왕 내외가 사이판을 방문했다. 아베 총리는 남태평양 도서국을 방문할 때 각국에 공적개발원조(ODA) 공여를 표명하는 등 경제 지원도 실시할 방침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그동안 차관급이 파견된 PIF 정상회의에 총리가 직접 참여하는 것도 일본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중국의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서라고 신문은 덧붙였다. 중국은 ‘중국·태평양 도서국 경제발전 및 협력포럼’을 개최해 남태평양 지역에 대한 경제 지원을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 해군의 태평양 진출을 모색해 왔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