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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은 알고 있다, 당신의 사랑도 욕망도

    밤은 알고 있다, 당신의 사랑도 욕망도

    밤을 가로질러/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전대호 옮김/해나무/352쪽/1만 6000원“나 태어난 곳 그대 어둠이여. 그댈 불빛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대 어둠이여’라는 시로 밤을 예찬한다. “불빛은 세계의 경계를 그어버리지만, 어둠은 모든 것을 품 안에 품는다”고 한 그는 어둠이 오히려 세계의 본질을 알려준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나는 밤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릴케는 어둠을 품은 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 해답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밤. 낮의 반대말, 잠을 통한 휴식의 기간, 기이한 꿈이 펼쳐지는 때, 연인이 사랑을 나누는 시간. 그러나 누군가에겐 두려움일 수도 있겠다. 독일 과학사 학자인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신간 ´밤을 가로질러´는 밤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다. 때로는 과학, 때로는 문학, 때로는 철학으로 들여다본, 그야말로 밤에 관한 ‘종합판’인 셈이다. 저자는 밤의 여러 모습을 다양하게 살피고자 어둠, 그림자, 우주, 잠, 꿈, 사랑, 욕망, 악을 소재로 삼는다. 밤이란 무엇인가, 우주는 왜 검은가, 우리는 왜 잠을 자는가, 꿈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악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등 밤을 둘러싼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하나씩 답한다.인간의 역사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인류가 밤을 밝힌 것은 불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어둠을 밝히면서 인류의 뇌는 비약적으로 발달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물, 흙, 공기와 불을 4가지 원소로 꼽았지만, 인류가 불의 정체와 원천을 알기까지는 그 뒤로 2000년이나 걸렸다. 빛이 없는 이 기간에 밤은 인간에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중세 사람들은 밤과 어둠을 인간이 저지른 큰 잘못의 결과로 해석하고, 밤이 오면 밤바람 속의 정령들과 더불어 인간의 내면에서 어두운 욕망이 고개를 든다고 상상했다. 예컨대 16세기 영국 작가 토머스 내시는 ‘밤의 공포’라는 책에서 ‘밤을 절망의 어머니, 지옥의 딸’로 묘사했다. 밤을 논할 때 잠과 꿈을 떼 놓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인공조명이 없던 과거에는 초저녁에 잠들었다가 한밤에 깨어 두세 시간을 보내고 다시 잠을 자는 ‘2단계 수면 패턴’이 보편적이었다. 잠의 패턴이 바뀌었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꿈을 꾼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꿈은 활동하는 뉴런들의 마구잡이 조합에서 발생한다. 잠을 자면 자극성 신호를 가지런히 모으는 모노아민성 시스템과 연결망을 어지럽히는 콜린성 시스템이 함께 작동한다. 이렇게 해서 꾸는 꿈을 프로이트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은폐된 의미’로 파악했다. 은밀한 공포, 바람, 희망이 상징으로 포장됐다는 뜻이다. 과학사에서 봤을 때, 꿈에 의해 창조적인 영감을 얻는 과학자들이 많았다. 예컨대 아우구스트 케쿨레는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벤젠의 구조에 관한 힌트를 꿈에서 얻는다. 벽난로 앞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케쿨레는 뱀 한 마리가 꼬리를 물고 비웃듯 맴도는 꿈을 꾸고 이른바 밴젠 고리 구조를 발견한다. 이 발견 덕분에 19세기 화학공업이 어마어마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를 가리켜 “밤 과학 없이는 위대한 과학이 발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마지막 장에서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주제는 ‘인간 속의 악’이다. 인간은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 과거 세계대전 등에서 드러난 인간의 무자비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저자는 도덕의 원천에 관해 ‘개별 인간의 특수성에 대한 감각지각’이라 설명한다. 앞에 놓인 이가 친구냐 적이냐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도덕의 이중성을 명민하게 파헤친다. 저자는 밤을 종횡무진하면서 삶의 기쁨과 풍요로움은 밤의 어둠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빛이 존재하려면 어둠이 있어야 하고, 인간은 낮과 밤, 모두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삶은 밤을 통해 가치를 얻는다”는 게 그의 마지막 결론이다. 저자는 문학, 과학, 역사, 철학의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고 유려한 글솜씨를 선보인다. 다만, 너무나 방대한 범위를 다루는 데다가 온갖 지식을 쏟아내기 때문에 자칫하면 저자의 안내를 놓치고 어둠 속에 남겨질 수 있음을 유의하시길.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맥주 이야기] 루스벨트가 살리고 카터가 되살린 정신

    [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맥주 이야기] 루스벨트가 살리고 카터가 되살린 정신

    ‘1차세계대전 발발’ 독일에 대한 반감 군중들 거센 분노에 금주법 만들어져 밀주에 마피아까지 판치는 결과 초래 카터, 홈브루잉 허용에 ‘맥주 르네상스’미국은 전 세계에서 ‘크래프트 정신’이 살아 있는 양조장이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미 전역의 크래프트 양조장은 6000개가 넘고, 이들은 전 세계 크래프트 맥주계의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보통 ‘맥주 강국’ 하면 독일, 체코 등 유럽 국가들이 떠오르지만, 다양하고 혁신적인 스타일로 대표되는 크래프트 맥주에 한해선 미국을 따라올 국가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미국이 크래프트 맥주의 천국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미국도 과거 지독한 ‘맥주 암흑기’를 거쳤습니다. 때는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19년 1월 16일, 미국 의회에서 알코올 함량 0.5% 이상의 음료를 제조, 운송, 판매하는 것을 일절 금지하는 금주법이 통과됐습니다. 미국처럼 개인의 자유와 책임이 중요시되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법이 생겨난 걸까요. 미국에선 1800년대 후반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 금주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대부분 종교적인 믿음이 굳건한 사람들이었지만, 만취해 소동을 일으키는 남성 취객들에게 질려 분노에 찬 여성도 많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캠페인 지지자의 60%는 여성이었습니다. 이들의 금주 운동에 힘이 실린 건 제1차세계대전이 벌어진 직후였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독일에 대한 반감이 퍼져 있었는데, 마침 미국의 독일계 이민자들 가운데 맥주 양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오늘날 세계최대맥주회사로 성장한 안호이저부시-인베브(AB인베브)의 설립자 안호이저 부시입니다. 주류 업계에 종사하는 독일계 이민자들은 곧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금주 운동은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의회에서 금주법안이 통과되기에 이릅니다.그러나 미국인이 금주법이 ‘말도 안 되는 법’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법이 지켜지기는커녕 각종 밀주가 성행하면서 마피아가 판을 쳤으며 제대로 단속할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아 불법 거래에 뇌물이 오고 갔습니다. 술을 구하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은 메틸알코올을 마시고 죽어갔죠. 금주법 이전엔 집집마다 다양한 맥주를 빚어 마셔온 ‘가양주 문화’가 있었지만, 이런 전통도 이 시기에 모두 사라지고 맙니다. 마침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3년 금주법을 폐지했습니다. 그러나 폐해는 이미 너무 컸습니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들었던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는 모두 사라졌고, 냉장시설을 이용해 아이스크림을 팔아 암흑기를 버텨낸 대규모 양조장만 살아남았습니다. 1914년 1345개에 달했던 미국 전역의 양조장은 1970년대 44개로 움츠러들었습니다. 대규모 양조장들이 원가 절감과 대량 생산에 유리한 라거 맥주 생산에 집중한 결과 미국인들은 수십 년간 버드와이저 스타일의 가벼운 라거 맥주만을 마셔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당시 불법이었던 홈브루잉(자가양조)을 몰래 하면서 맛있는 맥주에 대한 욕구를 채웠습니다. 이런 가운데 1978년, 지미 카터 정부는 홈브루잉을 전격 허용했습니다. 이제 예전처럼 가정집에서 맥주를 만들어 마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합법적으로 홈브루잉을 즐길 수 있게 되자 가양주 문화가 되살아나기 시작합니다. 당시 유행이었던 히피 문화의 영향으로 청년 세대가 독특하고 다양한 맥주를 찾는 분위기도 한몫했습니다. 개성 있는 맥주를 생산하는 소규모 양조장들은 샌프란시스코 등 캘리포니아 지역을 중심으로 다시 생겨났고, 인기를 얻어갔습니다. 크래프트맥주라는 말도 이 시기에 탄생했습니다. 양조사들은 금주법 기간 동안 사장된 다양하고 독특한 맥주 레시피를 다시 부활시켰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부재료를 넣어 기존에 없던 맥주 스타일을 창조해 냈죠. 이는 라거 일색이었던 맥주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킵니다. 임페리얼 인디안페일에일(IPA), 블랙 IPA, 아메리칸 와일드에일 등 미국 특유의 독특한 크래프트 맥주 스타일은 이렇게 세상에 나왔습니다. 미국 크래프트 맥주의 다양성과 독특함은 곧 전 세계 맥주 마니아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2000년대 이후 크래프트 맥주 열풍이 퍼져 이제는 유럽, 남미, 아시아 어느 국가를 가도 미국식 크래프트 맥주를 생산하는 양조장을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국에서도 2010년대 이후 크래프트 맥주가 알려지면서 맥주 시장의 판도가 뒤바뀌었습니다. 개인의 취향이 세분화되고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존중되는 최근의 소비시장에서 미국식 크래프트 맥주의 인기는 좀처럼 식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macduck@seoul.co.kr
  • 트럼프 “내가 대통령 되지 않았으면 北과 전쟁”(종합)

    트럼프 “내가 대통령 되지 않았으면 北과 전쟁”(종합)

    “북핵 협상, ‘타임 게임’ 안 해···김정은과 관계 좋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북한 비핵화 협상 시한과 관련해 “시간 싸움(time game)을 하지 않겠다”며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혹은 5개월이 걸리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뉴욕 롯데 팰리스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 비핵화에 얼마나 오래 걸리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대답했다. 이는 북한 비핵화 협상에 마감시한을 설정해서 시간에 쫓기듯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북미 협상을 총괄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시간 싸움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우리는 그들(북한)을 멈추게 했다. 그들은 (핵·미사일 관련) 공장을 해체하고,많은 다른 실험장을 파괴하고 있다”며 현행 대북전략이 성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그들은 더 많이 해체할 것이다.스스로 앞서 나가고 싶진 않지만,여러분이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해,앞으로 북한발(發) 추가 비핵화 조치가 잇따를 것임을 예고했다. 그는 “그들은 지금 핵실험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며 북한의 비핵화 약속에 거듭 신뢰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고 했지만,나는 ‘언론을 이해해야 한다.세상 모든 시간이 나에게 있다.서두를 필요 없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돼 북한과의 전쟁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방아쇠를 당겨 전쟁에 들어가기 일보직전이었다”며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더라면 북한과 전쟁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전쟁이 났으면 수백만 명이 숨지고 세계대전으로까지 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아무도 그것(전쟁을 막은 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 뒤,“나와 김 위원장은 관계가 매우 좋고,서로 좋아하고,잘 지내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공포 이야기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연합뉴스가 전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돌아오지 못한 ‘비운의 책’ 그 위대함과 위로 만나볼까

    돌아오지 못한 ‘비운의 책’ 그 위대함과 위로 만나볼까

    1377년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직지는 지구촌에 현존하는 금속활자로 찍은 인쇄물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서양의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섰다. 활자 인쇄술의 발명은 정보의 빠른 전파를 통해 중세적 사고를 근대적 사고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으로 꼽힌다. 유네스코는 그 가치를 인정해 2001년 9월 4일 직지를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했다. 다음달 1일부터 21일간 펼쳐지는 청주직지코리아국제페스티벌은 직지의 위대함을 세계인과 공유하는 행사다. 글로벌 축제답게 수준 높은 전시, 학술, 강연, 체험, 공연 등이 풍성해 눈과 귀가 심심할 틈이 없다. 행사 기간 세계인쇄박물관협회 창립총회도 열린다. 직지는 100여년 전 헐값에 팔려 프랑스로 건너가 돌아오지 못하는 ‘비운의 책’이지만 청주의 직지 사랑은 뜨겁다.●책속에 담긴 자기 수양과 치유 속으로 26일 청주시에 따르면 이번 행사의 주제는 ‘직지, 숲으로의 산책’이다. 직지와 숲은 다소 생뚱맞은 조합 같아 보이지만 직지의 속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직지의 저자는 고려 말 승려 백운화상이다. 그는 공부하기 위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귀국하면서 스님 석옥청공에게 ‘불조직지심체요절’이란 책을 받아 왔다. 이 책은 부처 등 이름난 승려들의 말씀이나 편지 등에서 마음을 수양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모아 석옥청공이 정리한 책이다. 우리가 아는 직지는 백운화상이 불조직지심체요절을 보완, 수정한 책이다. 그래서 직지의 풀네임이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백운의 제자였던 석찬과 달잠은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펴기 위해 묘덕의 도움을 받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직지를 간행했다. 직지코리아 조직위원회는 직지의 내용을 주목했다. 현대인들이 자기 수양과 힐링을 위해 숲을 찾듯이 고려시대 사람들은 직지를 읽지 않았을까. ‘직지’와 ‘숲’은 이렇게 하나가 됐다. 조직위는 직지의 내면적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메인 무대인 청주예술의전당 광장에 ‘직지숲’을 조성한다. 위로와 치유의 공간이다. 세계적 설치미술가인 한석현 작가가 버려진 목재를 활용해 18m 높이로 만든다. 숲 안에는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의 정원’이 꾸며진다. 직지가 간행된 해(1377년)를 기념해 시민들에게서 기증받은 1377권의 책으로 만든다. 행사 종료 후 이 책들은 작은도서관과 사회복지시설에 기부될 예정이다.●1377년 간행 기념한 1377권 ‘책의 정원’ 직지코리아의 한 축인 전시는 크게 주제전시와 기획전시로 나뉜다. 주제전시관은 수백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곳이다. 백운화상과 직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시주자라는 큰 역할을 한 묘덕의 의복을 재현한다. 백운화상의 초상화도 처음으로 공개된다. 백운화상은 남아 있는 자료가 많지 않아 잘 알려지지 못했으나, 최근 충남 청양군 장곡사에서 그의 친필이 발견되는 등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 직지를 세상에 알린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직지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는 사실을 한국에 최초로 알린 박병선 박사, 직지 활자를 처음 복원한 오국진 금속활자장, 사이버외교사절단으로 불리며 직지세계화운동을 전개하는 반크 등이 소개된다. 또한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초대 주한 대리공사로 부임해 우리나라에 근무하면서 직지 등 고서와 문화재를 수집해 프랑스로 건너간 콜랭 드 플랑시도 소개된다. 이후 직지는 1911년 경매를 통해 주인이 앙리 베베르로 바뀌었다가 195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됐다. 안승현 직지코리아 홍보마케팅부장은 “직지와 관련된 인물들을 스토리텔링 전시로 풀어냈다”며 “이들을 통해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획전시는 직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다른 나라들의 세계기록유산을 모았다. 데스멋 컬렉션은 네덜란드 최초의 영화배급자인 장 데스멋이 1907년에서 1916년 사이 전 세계에서 제작된 900편 이상의 35㎜ 영화 필름과 원본 포스터, 홍보물 등을 수집한 것이다. 그림 형제가 만든 ‘그림 동화’는 종교 혁명의 시초가 된 루터의 성서에 버금갈 정도로 독일 문화사에서 가장 많이 알려지고 배포된 책이다. 인류 최초로 유럽과 동양의 모든 전통 동화를 체계적으로 편집하고 과학적으로 기록했다. ‘솜 전투 필름’은 1916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프랑스 연합군과 독일군 간의 치열했던 솜 전투를 기록한 영상이다. 전쟁 준비와 전투 초기단계가 흑백의 35㎜ 무성필름에 담겼다. 약 70분 분량이다.‘직지로드’라는 전시공간도 꾸며진다. 이곳에는 1333년 교황 요한 22세가 고려 충숙왕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가 전시된다. 이 편지는 고려와 서양 간의 교류 가능성을 높여 주는 자료다. 고려의 금속활자기술이 구텐베르크 인쇄술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직지코리아의 또 다른 축은 공연과 체험이다. 지난 행사보다 기간이 3배 가까이 길어진 만큼 주제에 걸맞은 공연과 프로그램이 넘친다. 청춘들의 고민을 나누는 토크 청춘콘서트, 음악과 차, 명상이 어우러진 다도가 있는 음악회, 고려의상 패션쇼, 젊은이들이 밴드와 함께 금요일 밤을 즐길 수 있는 Rock&Night, 고려 장터를 재현해 당시의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고려 저잣거리 등이 마련된다. 색모래를 이용해 도로 위에 그림을 그려 보는 그라운드아트, 차 없는 거리에서 지역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할 수 있는 아트나잇 청주, 고려시대 금속활자 조판임무를 담당하던 군자장의 역할을 놀이로 만든 직지조판놀이, 직지를 맛으로 표현하고 즐겨 보자는 의미로 문자와 먹거리를 결합한 직지콜라시옹도 즐길 수 있다.●전 세계 인쇄문화 전문가 참여 학술회의도 세계인쇄문화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행사들도 속속 열린다. 직지코리아 개막일에는 전 세계 인쇄문화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세계인쇄박물관협회(IAPM)를 창립하기 위해서다. 세계 50여국의 80여개 인쇄박물관, 인쇄 관련 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들은 2일과 3일 이틀간 학술회의를 갖고 기록유산과 인쇄문화의 보존, 지식정보발전을 위한 프로젝트 등을 논의한다. 김천식 직지코리아조직위 사무총장은 “세계 인쇄박물관 정보공동체인 IAPM 출범식 개최로 청주는 세계적인 기록문화 도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개막식 때 유네스코 직지상 시상식 열려 개막식에서는 유네스코 직지상 시상식이 거행된다. 올해 수상자는 아프리카 이슬람 문서보존을 위해 힘쓴 비정부기구(NGO) 단체인 아프리카 말리의 ‘사바마-디’(SAVAMA-DCI)로 결정됐다. 사바마-디는 아프리카 말리 북부지역이 알카에다 연관 무장단체에 장악돼 많은 유적과 문서가 손실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말리의 ‘알 왕가리 도서관’ 등에 소장된 600여건의 문서를 디지털화했다. 직지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해 2001년 제정된 이 상은 기록유산의 보전·연구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유네스코가 2년에 한 번씩 주는 상이다. 수상자에게는 3만 달러가 상금으로 전달된다. 역대 직지상 수상자들이 모여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기록문화 발전을 위해 국제적 협력을 모색하는 자리인 ‘직지상2.0라운드테이블’도 열린다. 직지코리아 입장료는 성인기준 사전 예매 6000원, 현장 판매 8000원이다. 직지코리아는 정부 공인 국제행사로 2016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2030 세대] 정원사의 비극/김현집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2030 세대] 정원사의 비극/김현집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해 질 무렵 차를 타고 반포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옆 차선에 트럭 몇 대가 나무를 운반하고 있다. 트럭 한 대에 한 그루씩 나무는 길게 눕혀져 이동 중이다. 어떻게 보면 미사일 탄두대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잠든 듯 누워 있는 모양이 지친 여행객 같기도 하다.어렸을 땐 뭘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동물들이 매력 있었다. 요즘에는 침묵한 꽃이나 나무가 흥미롭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도 좋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을 읽은 후 이런 마음이 더해졌다. 날마다 화초 기르는 것을 즐기던 강희안은 축적한 노하우를 기록으로 남겼다. 대체로 꽃은 물을 적당히 주고 햇빛만 쬐어 주면 될 것 같지만, 저마다의 성질과 요구가 다르기에 이를 잘 살펴 가며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식물이나 사람이나 해쳐선 안 될 천성이 있다고 강희안은 말한다. 나무와 화초를 얘기하다 보니 생각나는 친구가 하나 있다. 내가 다니던 대학은 교정에 오래된 나무가 많았다. 바둑판무늬의 그림자가 지도록 나뭇가지로 시커멓게 덮인 좁은 숲길은 내가 특히 좋아한 곳이었다. 틈만 나면 찾곤 했는데 친구 중 하나는 풀이면 풀, 나무면 나무, 그 이름과 성질과 심지어는 나이까지 모르는 게 없었다. 누구나 알 법한 나무 이름 하나 제대로 대지 못하는 나로서는 심히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난 이 친구가 남달라 보였다. 힘없고 말없는 것을 귀중히 대하는 건 아름답다. 영국 18세기 소설가 로런스 스턴의 작품 ‘트리스트럼 샌디의 삶과 견해’에 등장하는 토비 삼촌은 마음이 고운 사람이다. 저녁 식사 내내 자기 음식 위를 맴돌던 파리를 손으로 잡더니 다시 놓아 주며 말한다. “저리 가라. 내가 너를 왜 해치겠느냐. 이 세상은 너와 내가 같이 살 정도 공간은 있다.” 물론 파리나 식물은 사람에게 무관심하다. 우리가 없어져도 파리는 날아다닐 것이고 빈집은 나무와 풀들로 무성해질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동유럽에서 독일 병사들은 집단 학살한 사람들의 무덤을 감추기 위해 그 위에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또한 그런 땅에서 잘 자라는 게 나무다. 인간이 작은 생물을 보살펴 주고, 잡초와 화초를 구분하는 것은 자연에 대해 좋은 일을 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의 깨끗한 마음을 비쳐 줄 거울이 필요해서다. 동생 강희맹은 형인 강희안의 책을 내며 이렇게 덧붙였다. “공이 세상을 떠난 지 9년 후인 계사년 봄에 그의 정원을 찾았더니, 아무도 가꾸지 않아 잡초가 우거지고 꽃과 나무는 망가져 있었다. 배회하면서 돌이켜 보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양화소록’ 유고를 찾아 ‘진산세고’의 뒤에 덧붙이니, 후세에 이것을 보는 사람들이 공의 덕을 알고 공의 뜻을 안타까워 느끼는 바가 있었으면 한다.” 600년 전 사람들 얘기다. 망가진 정원은 화초들의 비극이 아니라 정원사의 비극이다.
  • [달콤한 사이언스] 100년 전 화학식으로 원유 없이 최고급 휘발유 만든다

    [달콤한 사이언스] 100년 전 화학식으로 원유 없이 최고급 휘발유 만든다

    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 제국주의 국가들이 세계 제패라는 야욕에 사로잡혀 일으킨 전쟁이다. 특히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아프리카나 중동에 식민지를 갖고 있지 않아 원유 확보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독일이 유럽 정복을 위해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은 풍부한 석탄을 석유화할 수 있는 화학기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공군기 연료의 90% 이상, 그리고 국가 전체 석유 수요의 절반 이상을 이 같은 석탄화 석유로 충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바로 석탄을 석유로 만든 이 마법 같은 기술은 1920년대 독일 화학자 프란츠 피셔와 한스 트롭슈가 개발한 ‘피셔-트롭슈 공정’ 덕분이다. 석탄의 탄소와 공기 속 산소를 결합해 일산화탄소를 만든 뒤 여기에 수소를 넣어 반응시키면 탄화수소(석유)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중동의 석유가 전 세계에서 널리 쓰이면서 이 공법은 많이 쓰이지 않고 있었는데 일본과 중국 화학자들이 이 반응을 개선해 바이오매스에서 가솔린과 항공기 연료를 직접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일본 토야마대 응용화학과, 국립재료과학연구소, 중국 과학원, 샤먼대 화학공학부 공동연구진은 100여년 전 독일 화학자들이 석탄에서 합성석유를 만들어 낸 피셔-트롭슈 화학공정을 개선해 석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바이오원료에서 액체 연료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화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촉매’ 18일자에 실렸다. 석탄이나 잘게 분쇄된 땅콩껍질 같은 바이오매스를 천연가스와 비슷한 성분으로 전환시키는데 피셔-트롭슈 공정은 매우 유용하지만 실제로 가솔린이나 디젤, 항공유처럼 직접 사용되기 위해서는 분리 정제 과정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피셔-트롭슈 공정으로 연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이 같은 공정으로 인공석유를 만드는 나라들은 석탄 같은 원료가 지나치게 저렴하거나 원유 수입이 어렵다는 등의 상황이 아닌 이상 사용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연구팀은 기존 피셔-트롭슈 공정에서 철이나 코발트를 이용한 촉매 대신 다공성 물질인 제올라이트와 코발트 나노입자를 혼합시킨 촉매를 사용했다. 이렇게 되면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실제 사용이 가능하고 순도가 높은 액체 연료를 다량 생산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연구팀은 바이오매스를 이용해 순도 74%의 가솔린과 순도 72%의 항공유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순도 50%가 넘기가 어려웠다. 츠바키 노리타츠 토야마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가솔린과 항공유처럼 석유를 기반으로 나올 수 있는 액체연료를 다른 방식으로 원스톱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면서 “아직 촉매 문제나 합성연료의 수요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석유라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다는데 의미가 크다”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나치 유혹해 사살했던 네덜란드 소녀, 92세 나이로 숨져

    나치 유혹해 사살했던 네덜란드 소녀, 92세 나이로 숨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에서 나치 독일군들을 유혹해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했던 한 여성이 9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은 17일(이하 현지시간)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반(反)나치 저항조직의 마지막 생존자 여성이 지난 5일 사망했다고 전했다. 프레디 오버스테헌이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93번째 생일을 하루 앞두고 숨졌다. 몇 년 전부터 고향 근처 요양원에서 지내온 그녀는 생전 심부전으로 수차례 위기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1925년 9월 6일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 인근 하를럼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느날 찾아온 한 남성의 권유로 ‘라트 판 페르제트’(RvV·Raad van Verzet)라는 이름의 저항조직에 친언니 트루스와 함께 가입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14세에 불과했으며 외모는 최소 2살 더 어려보였다. 두 자매의 어머니는 공산주의자로 당시 네덜란드 공산당과 연계돼 있던 이 조직의 가입을 허락했다. 자매의 아버지는 가족과 별거하고 새 가정을 꾸린 상태였다. 자매는 우선 저항 활동에 필요한 사격과 정찰, 이동 등의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추후 법대를 중퇴하고 이 조직에 합류한 또 다른 조직원인 한니 샤프트와 함께, 나치 독일군의 눈을 피해 다리나 철로 등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해 폭파하거나 강제 수용소에 잠입해 유대인 아이들을 구출했으며 자전거 바구니에 총을 숨겨두고 가능한 한 많은 나치 독일군을 사살했다. 초기에 프레디는 나이가 너무 어려 주로 정찰 임무를 맡았으며, 한니와 트루스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독일군에게 먼저 접근해 유혹한 뒤 “함께 산책하러 가자”는 말로 인적이 드문 숲으로 유인하면, 다른 조직원들이 이들 남성을 제거하도록 했다. 프레디는 과거 현지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해야만 하는 일을 했다. 선량한 사람들을 팔아먹은 그들을 죽여야만 하는 필요악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여성들은 암스테르담 외곽에서 나치 독일군이나 변절자들을 제거하는 데 삶을 바쳤다. 사실 네덜란드 저항조직의 여성들은 대부분 주목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오버스테헌 자매가 하를렘 주변에서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표적(나치 독일군)을 찾거나 다른 암살 작전을 위한 정찰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데 도움이 됐다. 이에 따라 오버스테헌 자매는 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종전 이후 언니 트루스는 2016년 사망하기 전까지 예술가로 활동했고 자신이 저항조직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회고록을 썼다. 반면 프레디는 종전 이후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것으로 전쟁의 참상을 극복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얀 데커라는 이름의 남성과 결혼했으며 슬하에 세 자녀를 뒀다. 하지만 이들 자매의 친구이자 리더였던 법대생 출신 한니 샤프트는 나치 독일군이 항복하기 불과 3주 전 체포돼 처형됐다. 샤프트의 이야기는 네덜란드 아이들에게 가르쳐졌고 그녀는 네덜란드에서 국가적으로 여성 저항의 상징이 됐다. 또한 1981년에는 ‘빨간 머리를 가진 소녀’(The Girl With the Red Hair)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한편 프레디의 언니 트루스는 한니 샤프트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1996년 ‘국립 한니 샤프트 재단’을 설립했다. 프레디는 이사로 활동한 바 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서울광장] 차별없는 세상은 어떻게 도래하는가/이순녀 논설위원

    [서울광장] 차별없는 세상은 어떻게 도래하는가/이순녀 논설위원

    일본 도쿄의 오모테산도 골목에 자리한 어린이책 전문서점 크레용하우스는 책보다 꽃이 먼저 반기는 곳이다. 서점 입구에 만발한 꽃과 식물은 직원들이 1년에 두 차례 손수 씨앗을 뿌려 정성껏 가꾼 소중한 생명이다. 바깥에 걸린 ‘Love&Peace’(사랑과 평화), ‘Stop the war’(전쟁을 멈춰라), ‘Nuke free’(반핵) 같은 문구도 인상적이다. 1층은 어린이책, 2층은 친환경 장난감, 3층은 여성 서적으로 나뉘어 있지만, 서가와 매대 곳곳에서 헌법, 인권, 젠더 관련 책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지하에는 유기농 야채 가게와 식당이 있다.너 나 할 것없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하는 최근의 서점가 트렌드를 따라 했겠거니 생각하기 쉽지만 알고보면 역사가 무려 42년이다. 작가이면서 평화주의자, 페미니스트인 오치아이 게이코(73)가 지난 1976년 창립해 지금까지 대표를 맡고 있다. 어린이를 사랑하고, 평화와 인권을 존중하는 창립자의 철학이 수십 년간 응축된 곳이다. 우경화하는 일본 정부에 맞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려는 이들을 위한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기도 하다. 크레용하우스와 오치아이 대표에 대해 알게 된 건 김언호 한길사 대표 덕분이다. 둘 다 1945년에 태어난 동갑내기인데다 1976년 같은 해에 크레용하우스와 한길사를 세웠다. 우연치고는 남다른 인연이다. 일본에 갈 때마다 크레용하우스에 들른다는 김 대표는 “책의 유토피아가 거기 있다”고 극찬한다. 열흘 전쯤, 김 대표가 한길사에서 번역한 오치아이의 자전 소설 ‘우는 법을 잊었다’를 건네며, 그가 곧 파주북시티 국제출판포럼 참석차 방한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치열한 메시지를 지닌, 대단히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말에 궁금증이 커졌다. 지난 14일 파주출판도시에서 마주한 오치아이의 이야기는 기대 이상으로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해에 정치인의 혼외자 딸로 태어난 오치아이는 어릴 때부터 반전(反戰)과 인권, 차별 이슈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담담히 풀어놓았다. “열다섯 살때쯤 엄마에게 ‘차별받을 걸 알면서 왜 나를 낳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엄마는 아빠를 매우 사랑했고, 또 전쟁통에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걸 보면서 나를 꼭 낳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대요. 그러면서 우리가 당하는 차별은 이 세상 수 많은 차별 중 하나일 뿐이고, 차별당하는 다른 사람들과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방송사 아나운서를 7년 만에 그만둔 것도 직장 내 여성 차별 때문이었다. 작가로 전업한 뒤 출간한 에세이가 베스트셀러에 올라 목돈이 생기자 이를 기반으로 크레용하우스를 창립했다. “나이, 성별, 인종, 장애 등 모든 종류의 차별과 폭력은 사라져야 합니다. 다음 세대인 아이들이 책을 통해 이런 가치를 고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해요. 어릴 때 무엇을 읽느냐가 그 사람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크레용하우스는 언제나 누구에게든 활짝 문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그는 현실 참여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2011년 동일본 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반대운동에 앞장서 왔다. 평화헌법 개헌 반대 집회에 나가고, 아베 신조 총리에게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라고 촉구하는 서명운동에도 빠지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평화는 누가 가져다주는 게 아니에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씨를 뿌리고, 함께 키워 나가는 것입니다.” 반전, 반핵, 반원전 등 그가 주장하는 가치에 모두가 지지를 보내는 건 물론 아니다. 정부 반대편에 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서점 운영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개인이 하는 일에 한계가 있는 건 맞아요. 하지만 개인도 여기까지 할 수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치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현실이 겹쳐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반도는 지금 비핵화와 평화정착이라는 중대 기로에 서 있다. 전쟁의 위협이 사라진 평화로운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려줄 책임과 의무를 더는 방기해선 안 된다. 평양에서 진행 중인 3차 남북 정상회담이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하는 이유다. 난민 차별과 여성 혐오 등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반인권적 인식은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장애인 특수학교 하나 세우는데 온 나라가 들썩이는 후진적 사고도 창피한 노릇이다. 오치아이의 말처럼 차별 없고, 평화로운 세상은 거저 오지 않는다. 개인 각자가 각성하고, 더 나아지고자 노력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coral@seoul.co.kr
  • [씨줄날줄] 초고령사회 준비/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초고령사회 준비/임창용 논설위원

    일본에서 70세 이상 노인 비중이 전체 국민 중 20%를 넘어섰다고 현지 주요 언론들이 총무성 인구추계 결과를 인용해 일제히 보도했다. 고령자 기준 연령인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의 28.1%에 달해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는 소식도 함께 전했다. 거리에서 만나는 3~4인 중 한 명은 노인이란 얘기다. 일본을 가히 ‘노인의 나라’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일본은 2006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겨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번에 70세 이상 고령자 비중이 20%를 넘긴 것은 ‘단카이(團塊) 세대’(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1949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세대)가 본격적으로 70대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인구 전문가들은 2차 베이비붐 세대(1971~74년 출생)가 65세 이상이 되는 2040년엔 고령자 비율이 총인구의 36%를 차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회의 노화를 늦추기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저출산·고령화 전담 장관을 두고 인구가 1억명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저출산 문제는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과 기업문화를 바꾸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그 결과 출산율이 2005년 1.26으로 바닥을 찍은 뒤 점차 개선돼 지난해 1.44까지 올랐다. 고령자 급증 대책도 쏟아내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올해 초 더 많은 노인이 일할 수 있고 차별받지 않는 ‘에이지슬레스(agesless)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2월 일률적인 고령자 기준 연령(65세) 수정 방침을 공식화했고, 연금수급 개시 연령 조정, 정년 70세로 연장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 또는 실행하고 있다. 가능한 한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데 방점을 뒀다. 얼마 전엔 급증하는 노인 간병 수요에 맞추기 위해 베트남 간병인 1만명을 받아들이기로 베트남 정부와 합의하기도 했다. 고령자 친화적인 사회환경 조성도 눈여겨볼 만하다. 70세 이상 고령자가 운전하는 차량 뒤창에 실버마크를 붙여 다른 운전자들의 조심과 배려를 유도하고, 공항 게이트 앞 의자에 노인을 위한 의자 표시로 노란색 커버를 씌우는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일본의 상황은 우리에게 결코 남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14% 이상)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2026년쯤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 최저 수준인 1.0대 출산율과 고령화의 가파른 속도를 감안하면 일본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다. 최근 2분기 합계 출산율은 0.97이었다. 한국이 초고령사회를 맞을 준비를 더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sdragon@seoul.co.kr
  • [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글로벌 기업 없는 아르헨티나, 늪에 빠지다

    [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글로벌 기업 없는 아르헨티나, 늪에 빠지다

    아르헨티나는 19세기 초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직후 1827년 국가부채의 채무불이행으로 일찍이 위기에 직면한 바 있다. 이후에도 정책 난조와 대외환경의 영향으로 수많은 경제 위기를 반복적으로 경험했다.1980년대 이후만 봐도 1982년 대외부채 지급중지를 선언한 바 있고, 1989년에는 심각한 사회갈등으로까지 번진 위기를 경험했다. 1990년대 초반 라틴아메리카 위기가 발생하자 어려움은 계속됐고, 1998~2002년에는 페소화 폭락과 실업, 금융시장 붕괴, 자금이탈 등 극심한 위기를 경험했다. 누적된 부채에 대한 국제투자자와의 채무 재조정에 실패하며 2014년 위기가 재발했는데, 2018년 다시 통화가치가 폭락하며 또 한번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아르헨티나에 위기가 발생한 시점을 보면 비슷한 배경이 있다. 200년 전 독립선언 직후 처음 위기가 발생했을 때 아르헨티나는 런던 금융시장에서 국채를 발행해 건국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초반 국제금융시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영국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이 금리를 올리며 국제이자율이 급등하자 아르헨티나 정부는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경제가 위기를 경험한 시기는 이같이 국제금융시장에서 금리가 상승하거나 선진국 경기 활황으로 선진국 금융시장의 투자수익률이 상승하던 때다. 특히 아르헨티나 같은 경제에서 이 상황이 문제되는 것은 국채의 해외 의존 때문이다. 정부가 재정자금 조달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지만, 저축이 충분하지 않은 국내에서는 이를 소화하지 못하고 주로 해외에 국채를 팔아 자금을 조달하는데, 선진국 상황이 개선되고 금리가 상승하면 이러한 자금 조달 방식이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즉 국제투자자에게 아르헨티나 같은 위험한 경제가 아니어도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안정적인 투자처가 생겼다는 뜻이다. 이렇듯 자금의 해외 유출이 발생할 때 외화로 표시된 대외채권 형태의 국채를 갚으려면 외환이 필요한데, 결국 민간 수출 기업들이 얼마나 성과를 거두어 외환을 확보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는 수출로 외환을 벌어들여 경제 전반에 외환위기가 번지는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국제 경쟁력을 확보한 글로벌 기업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경험한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졸업하고 위기에서 벗어난 것도 결국 수출시장에서 외환을 확보할 수 있었던 글로벌 기업이 있었던 덕분이다. 반면 글로벌 기업이 약한 아르헨티나는 외채 부담과 외환 부족의 악순환으로 반복되는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상존한다. 경제전문지 포천은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을 선정하는데, 매출액 기준으로 2018년 글로벌 500대 기업에 삼성전자(12위)를 필두로 현대자동차(78위), SK(84위), LG전자(178위), 포스코(184위) 등 우리나라 회사 16개가 선정됐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기업은 발견하기 힘들다. 실제로 아르헨티나는 기업에 대한 세금 부담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노사 갈등을 포함해 각종 기업 환경 역시 열악하다고 평가된다. 지금은 반복되는 경제 위기의 대명사와 같은 오명을 쓴 아르헨티나가 과거에도 그랬던 것은 아니다. 원작 ‘아페니니산맥에서 안데스산맥까지’를 각색한 만화영화 ‘엄마 찾아 삼만 리’에서 주인공인 ‘마르코’는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일자리를 구하러 떠난 엄마를 찾아 모험을 한다. 만화의 배경처럼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농축산업을 중심으로 세계시장에 떠오르며 각광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페론 정부가 본격적인 대중영합 정책을 실시하면서 이후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는 기업들을 키우지 못하고 국제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져 외부 충격에 취약한 만성 위기 국가가 된다. 결국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 육성은 그 기업의 이윤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혁신해 생존하려고 노력하는 글로벌 수출 기업 없이는 국가의 외환 확보 자체가 어렵다. 그리고 외환 확보가 원활하지 않은 경제가 특히 재정이 불건전한 채 위기의 고리에 한 번 빠지면 그 악순환의 늪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고 작은 외부 충격에도 위기에 허덕이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기업 환경을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 묘 이전...사후 43년만에 ‘역사청산’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 묘 이전...사후 43년만에 ‘역사청산’

    스페인 의회가 13일(현지시간) 30여년간 철권통치를 펼쳤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년) 총통 묘지의 이전을 가결했다. 독일의 히틀러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마찬가지로 ‘파시스트’ 독재자였으나 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단죄받지 않았던 프랑코에 대한 ‘역사 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풀이된다.현지 일간지 엘파이스는 이날 의회에서 실시된 표결에서 찬성표 172표, 반대 2표, 기권 164표로 프랑코 묘 이전안이 가결됐다고 보도했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집권 사회당 등 좌파계열 정당 소속 의원들은 모두 찬성표를 던진 반면 국민당 등 보수 정당들은 반대 또는 기권표를 던졌다. 반대표 2표도 실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뉴욕타임스(NYT)는 프랑코 사후 43년간 이어져 온 그에 대한 논쟁이 묘지 이전으로 더욱 격화될 수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국민당은 묘지 이전안이 의회에서 가결됐지만,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를 가리겠다는 입장이다. 프랑코의 유해는 올 연말 쯤 파내져 다른 곳으로 이장될 것으로 보인다. 이장 장소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프랑코는 1939년 수 만명이 사망한 내전에서 승리한 이후 1975년 사망할 때까지 36년간 스페인을 다스렸다. 이후 왕실이 복원되고 입헌 민주정부가 들어섰지만 그는 생전에 수도 마드리드로부터 북서쪽으로 50㎞ 떨어진 에스코리알에 ‘전몰자의 계곡’이라는 이름의 추모탑과 웅장한 영묘를 세웠고 결국 그 자신도 이 곳에 묻혔다. ‘전몰자의 계곡’에는 프랑코 뿐만 아니라, 내전 당시 사망한 약 3만 3000명의 유해가 묻혀있는데 대부분은 프랑코를 위해 죽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프랑코로부터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사망한 사람들의 유해도 있다. 이들의 유해는 ‘무명’으로 합장돼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경계 또는 분리

    경계 또는 분리

    ‘경계’와 ‘분리’. 지난 7일과 8일 하루 차이로 개막한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의 주제어는 묘하게 닮아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경계’와 ‘분리’의 한 양태인 북한 관련 전시가 눈에 띄는 것도 비슷하다. 비슷한 시기 두 달여 대장정에 들어간 광주와 부산, 비슷한 듯 다른 매력의 두 비엔날레에 빠져보자.●1만 6000보의 광활함… 광주비엔날레 1만 6000보. 지난 6일 열린 광주비엔날레의 프레스 오픈에 참석한 기자들의 걸음 수다. 구두 신고 나섰다가 크게 낭패를 봤다. 11명의 큐레이터를 선임한 광주비엔날레는 늘어난 큐레이터 숫자만큼이나 광활한 스케일을 자랑했다. 7개의 주제전은 기존의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까지 저변을 확대했다. 이 외에도 5·18민주화운동의 현장인 전남도청 회의실, 옛 국군광주병원, 전일빌딩 등 도심 곳곳이 전시관이 됐다. ‘상상된 경계들’이라는 슬로건 아래 43개국 165명의 작가가 참여한 광주비엔날레는 모더니즘에 기반한 건축의 효과와 갈등을 보여 주고(상상된 국가들/모던 유토피아), 동남아의 ‘국경이라는 유령’과 마주하는 한편(‘경계라는 환영을 마주하며’), 포스트 인터넷 시대 정보격차가 불러온 부작용과 폐해를 환기(‘종말들: 포스트 인터넷 시대의 참여정치’) 했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창설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아카이빙(‘귀환’)까지 시도, ‘상상 가능한 모든 경계들’이 나열돼 산만한 느낌이었다. 기획 단계서부터 화제를 모았던 ‘북한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전은 ‘사회주의 미술은 획일적일 것’이라는 편견을 날려 버릴 좋은 기회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 큐레이터 문범강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스승과 제자의 산수화를 비교하는 것으로 답했다. “스승 정영만의 그림은 유려한 운무가 돋보이는 반면 제자 최창호는 산세의 웅혼한 기상을 그려 같은 산수화여도 그 느낌이 다르다.” 반항적이고 심술궂은 캐릭터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일본 작가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도 반갑다. 10가구, 30명만 남아 있는 일본의 북쪽 경계, 도비우의 아이들을 실제 사람 크기와 흡사하게 그렸다. 그 지역에서 나는 목탄으로 그려진 그 아이들과 가만 눈을 맞추고 있노라면 곧 사라질 것들, 잊혀질 것들에 대한 슬픔이 오롯이 밀려온다.●메가 전시 시대는 끝… 부산비엔날레 “가장 전문적인 관람객들마저도 지치게 만드는 초대형 전시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다.” 부산비엔날레의 외르그 하이저 큐레이터는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광주를 ‘저격’한 듯한 발언이었다. 300여점의 작품을 내놓는 ‘국내 최대 규모´ 광주와 달리 부산비엔날레는 33개국 66개팀이 참여, 작품 125점을 선보인다. ‘비록 떨어져 있어도’라는 주제가 “광주와 콘셉트가 겹친다”는 질문에는 “우리는 분리된 영토로 인해 분열된 사람들의 심리에 초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집약적인 전시가 주는 서사를 표방한 부산비엔날레는 전시장 입구부터 눈길을 끌었다. 부산현대미술관 1층에는 공항 체크인 구역에서 볼 법한 철과 나일론 재질의 검은색 바리케이드가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 에바 그루빙어의 ‘군중’이다. 작품에는 군중을 통제하기 위한 메커니즘에 따라 물류를 관리하듯 인체의 흐름을 구조화한다는 설명이 붙었다. 빠듯한 일정에 쫓기던 기자들은 바리케이드를 넘기도 했는데, 메커니즘에 반항하는 것 또한 인간의 몫인 까닭이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로 붐볐던 고장답게 부산에서도 ‘북한’은 주요한 테마다. 천민정의 ‘초코파이 함께 먹어요’는 북한에서 인기 있는 암거래 품목인 초코파이 5만개를 쌓아 관람객들이 먹을 수 있게 했다. ‘며칠 만에 동날 것 같으냐’는 질문에 작가는 “학생들이 단체로 와서 2~3개씩 집어먹으면 금세 없어지지 않겠느냐”고 했다. 동나면 추가로 5만개의 초코파이가 긴급 수혈(?)될 예정이다. ●각자의 리듬으로 즐기는 비엔날레 프레스 오픈 내내 작가들에게 쇄도했던 질문은 “이건 무슨 의미인가요”, “이렇게 표현하신 데 어떤 법칙이 있나요”였다. 부산비엔날레에 ‘부산, 1:10,000’을 출품한 최선아 작가는 “특별한 법칙은 없고 개인적으로 사연이 있는 지역들을 지도에서 오려낸 것”이라고 답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린들 작가의 개인사까지 알 수는 없다. 그저 느낄 뿐.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모르는 만큼 편견 없이 마주해 나만의 스토리텔링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부산에서 만난 일본 작가 유이치로 다무라의 작품 ‘거미줄’은 붉은 글귀 아래 형형색색의 스카잔(화려한 자수가 놓인 항공 점퍼)이 인상적이었다. 그 앞에서 셀피를 찍던 기자에게 작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 주둔했던 미군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수집품이 이 스카잔”이라며 냉전 시대의 표상으로서 스카잔을 설명했다. 그날 기자는 인스타그램에 그 붉은 글귀가 찍힌 사진을 올렸다. “I´VE SPENT MY TIME IN HELL.” 글 사진 광주·부산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제주 국제관함식에 ‘욱일기’ 단 일본 구축함 참가 논란

    제주 국제관함식에 ‘욱일기’ 단 일본 구축함 참가 논란

    다음달 10~14일 열리는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에 욱일기를 단 일본 해상 자위대 군함이 참가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될 전망이다. 연합뉴스는 6일 “제주 국제관함식에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1척이 욱일기를 달고 참가한다”는 군 소식통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1998년과 2008년 우리나라에 열린 국제관함식 때에도 일본 군함이 욱일기를 달고 참가했다”면서 “일본 해상자위대가 이 깃발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주최 측 입장에서) 일본 함정이 욱일기를 달고 입항하는 것을 금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욱일기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사용한 깃발로 한국과 중국 등 일제 침략을 당한 지역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일본 해상 자위대는 욱일기를 여전히 부대 깃발로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물론 해외 곳곳에서 욱일기나 욱일기와 비슷한 문양을 상업적으로도 널리 사용하고 있다. 2차 대전에서 나치가 패망한 이후 하켄크로이츠 깃발이나 이를 연상케 하는 문양의 사용을 유럽 여러 나라에서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과 다른 양상이다. 해군 관계자는 이날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욱일승천기를 단 자위대 함정의 제주 입항 논란에 대해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은 우리가 주관하고 또 세계 해군을 초청해 열리는 전 세계 해군 축제의 장”이라며 “그래서 이러한 행사의 성격과 자국의 군함에 자국의 해군기를 다는 국제관례 등을 고려해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제주민군복합관광미항(제주해군기지)에서 열리는 이번 제주 국제관함식에는 국내외 50여척의 함정이 참여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95회 생일 나흘 뒤 44분 동안 40m 잠수, 2차대전 참전 용사가

    95회 생일 나흘 뒤 44분 동안 40m 잠수, 2차대전 참전 용사가

    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던 레이 울레이(영국)가 95세로 자신의 세계 최고령 스쿠버다이빙 기록을 고쳐 썼다. 머지사이드주 출신인 울레이는 58년이나 스쿠버다이빙을 즐겨왔는데 지난달 28일(이하 현지시간) 95회 생일을 지낸 나흘 뒤인 지난 1일 키프로스의 라르나크 앞바다에서 44분 40.6m를 잠수해 지난해 자신이 세운 41분 38.1m를 더 늘렸다. 울레이는 동료들과 이곳 바다에 1980년 처녀 항해 때 침몰한 화물선 MS 제노비아호 갑판에 걸터 앉아 기념촬영까지 했다. 이 난파선은 한 해 40만명이 찾을 정도로 스쿠버다이빙 명소다. 울레이는 배로 올라와 “우리는 해냈다”고 외친 뒤 몸만 따라주면 내년에 다시 기록 경신에 도전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는 뭍에 올라 선 뒤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여러분이 내 나이 언저리가 되더라도 연습만 하면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해군 무전병이었던 그는 은퇴한 뒤 아예 키프로스로 이주해 리마솔 근처에 살며 스쿠버다이빙을 즐기고 있다. 5년 전 생일에는 ‘90@90’ 프로젝트에 도전, 90피트(27m) 잠수에 성공했다. 바로 이곳 제노비아호 근처에서였다. 2년 전에는 ‘39@93’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93세이던 그 해 39번의 잠수를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했는지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사진·영상= BBC / World NEWS youtube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트럼프 WTO까지 탈퇴하나

    트럼프 WTO까지 탈퇴하나

    기후변화협약, 유네스코 등에서 이탈하고, 일방적으로 이란 핵합의를 파기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는 세계무역기구(WTO) 탈퇴 가능성을 시사했다. 국제 무역분쟁 해결 기구인 WTO가 공정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 미국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논리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WTO가 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나는 WTO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블룸버그는 “미국의 WTO 탈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건설에 힘을 보탠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면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보다도 세계 경제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미국이 WTO에서 너무 많이 패소한다는 데에 불만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제소당한 사안에서 패소한 것은 약 90%다. 미국이 제소한 사안에서는 90% 넘게 승소했다. 무역 분쟁에서는 원고가 이기고 피고가 지는 일이 많다. 미국과 무역전쟁 중인 중국이 WTO에 해결을 호소하는 것을 원천봉쇄 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23일 미국이 160억 달러(약 17조 7700억원) 규모의 자국 제품에 25%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한 사안을 WTO에 제소했다. WTO는 1994년 미국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역대 미국 대통령은 WTO에 힘을 실어줬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들은 대대로 세계 경제에 안정성을 부여하려고 국제 무역의 규정을 만들고 강화하는 노력을 주도해왔다”고 전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WP “日, 지난달 베트남서 美에 통보없이 北과 비밀회담”… “美 격앙”

    ‘동맹’ 미·일, 이해 따라 각자도생 드러나 일본 정부가 지난달 동맹국 미국에 알리지 않고 베트남에서 북한과 ‘비밀 회담’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돈독한 것으로 보였던 미·일 관계의 이면에는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각자도생하는 동상이몽이 존재했던 셈이다. 미국은 일본과 대북 협상 정보를 공유하는데도 일본 정부가 북·일 접촉을 알리지 않은 데 격앙된 분위기가 팽배한 것으로 전해졌다. WP에 따르면 일본 정보기관인 내각조사실 수장인 기타무라 시게루 내각 정보관과 김성혜 북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이 지난 7월 베트남에서 만났다. 회담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주된 의제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 일본 정부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9일 “보도된 하나하나의 사안에 대해 정부가 코멘트하는 것은 피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가 장관이 통상 부인하기 어려운 사안에 대해 ‘노코멘트’로 답하는 것을 감안할 때 사실상 보도 내용을 인정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일본 정부 관리는 WP에 “일본 측은 납치 문제 협상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납북자 문제 해결에 나서 달라고 요청했지만 진전을 보지 못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실리주의적 대북 접근법과 대일(對日) 무역 적자 문제 등은 양국 간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8번 회동하고 26번이나 통화를 했지만 안보·경제 문제에서 홀대받는 듯한 분위기가 적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백악관을 방문한 아베 총리 면전에서 돌연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사건을 언급하며 “나는 진주만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소고기·자동차 업체에 유리한 양자 무역협상도 촉구했다. 아베 총리는 6·12 북·미 정상회담 며칠 전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지 말 것을 요청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무시했다. 서울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독도함, 항모가 될 수 있을까?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독도함, 항모가 될 수 있을까?

    최근 동북아시아의 바다는 20세기 초 세계대전을 앞둔 열강들의 해군력 군비경쟁을 연상케 할 정도로 달아오르고 있다. 중국은 항모굴기를 선언하고 여러 척의 대형 항공모함을 동시다발적으로 건조하고 있으며, 이에 질세라 일본도 ‘헬기탑재호위함’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항공모함을 건조해 호위함대에 배치하고 있다. 중국은 6만톤급 랴오닝·산둥 항공모함을 전력화시킨데 이어 8만톤급 통상동력 항공모함 1척, 10만톤급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1척을 건조 또는 개발하고 있으며, 일본은 2만톤급 휴우가 호위함 2척 전력화에 이어 공식 배수량 2만 7천톤, 추정배수량 4만톤 이상의 대형 헬기탑재호위함 이즈모급 2척도 최근 전력화를 마쳤다. 이처럼 뜨거워지는 항모 경쟁 열전(熱戰)에 대한민국 해군도 출사표를 던졌다. 해군은 지난 10일, 국방전자조달시스템에 「LPH 미래항공기 탑재운용을 위한 개조·개장 연구」라는 연구용역과제 입찰공고를 냈다. 이 연구과제는 우리 해군의 독도급 대형수송함에서 F-35B를 운용하려면 얼마의 비용과 시간을 들여 어떻게 개조해야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으로 연구 기간은 4개월이 주어졌다. 제안요청서에서 밝힌대로 해군이 이 같은 연구용역과제를 발주한 목적은 독도급 수송함 2척을 F-35B 탑재 경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위한 것이다. 즉, 주변국의 4~8만톤의 중대형 항공모함에 맞서는 대한민국 해군의 출사표는 2만톤급 경항모인 것이다. 과연 독도급을 개조한 경항공모함은 가능한 이야기일까? 군함이 전투기를 운용하는 항공모함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려면 항공관제시설을 갖추어야 하고, 전투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넓고 튼튼한 비행갑판이 있어야 한다. 전투기의 보관과 정비, 보급이 이루어질 격납고와 항공무장용 탄약고, 유류고가 있어야 하며, 격납고와 비행갑판을 오르내릴 엘리베이터도 필수다. 배의 엔진에서 나오는 뜨거운 배기가스가 이착륙하는 항공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특별히 설계된 배기 시스템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독도급에는 이러한 시설들이 충분히 갖춰져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No’다. 독도급은 헬기 운용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항공관제시설은 갖추고 있으나, 전투기 운용은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착함 관제용 장비와 시설을 추가로 설치해야 한다. 대형 항공기 운용은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에 30톤에 육박하는 F-35B가 뜨고 내리기 위해서는 비행갑판의 구조설계는 물론, 비행갑판 자체를 제트엔진의 고열에도 견딜 수 있는 내열 소재로 전부 교체해야 한다. 함교 앞뒤로 설치된 엘리베이터는 17m×9.75m에 적재중량 19톤으로 F-35B 탑재가 불가능하므로, 이 역시 선체 일부를 뜯어내고 30톤급 대형 엘리베이터로 교체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격납고다. 해군이 독도함에 부여한 분류기호인 LPH(Landing Platform Helicopter) 유형의 상륙함들은 일반적으로 3층 갑판 구조를 취하고 있다. 가장 높은 층은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비행갑판, 바로 아래층은 항공기 격납고, 가장 아래층이 상륙용장갑차나 상륙정을 탑재하는 갑판이다. 그러나 독도함은 2층 갑판 구조다. 비행갑판 바로 아래 항공기 격납고 겸 상륙정 탑재를 위한 웰덱(well deck)이 하나의 층으로 이어져 있다. 독도급 수송함에 F-35B 탑재용 격납고를 확보하려면 배 뒤쪽의 상륙정 출입도어과 웰덱을 없애고 2층 갑판 전체를 격납고로 개조해야 한다. 단층구조로 설계된 독도함의 웰데크와 행거데크(Hanger deck) 전체를 항공기용 격납고로 만들더라도 내부 용적은 약 1,800~2,000평방미터 수준이다. 경항공모함으로 분류되는 호주 캔버라급의 약 5,100평방미터 용적의 4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호주의 싱크탱크인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 : Astralian Strategic Policy Institute)는 지난 2014년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캔버라급에 탑재 가능한 F-35B는 10대 정도에 불과하며, 굳이 많은 비용을 들여 이러한 경항모를 운용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었다. 다시 말해 독도급의 2배가 넘는 덩치의 군함에서조차 F-35B 운용은 비효율적이라는 말이다. 2,000평방미터도 되지 않은 행거데크에 F-35B를 위한 항공유 연료탱크와 항공무장 무기고를 마련하면 실제 격납 용적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독도급의 전체 행거데크 용적이 캔버라급과 비교했을 때 40% 미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탑재 가능한 F-35B 전투기의 숫자는 많아봐야 4~6대를 넘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4~6대의 F-35B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주변 해역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정답은 해군이 지난 2015년 발주했던 「차세대 첨단함정 건조가능성 연구」 보고서에 이미 나와 있다. 이 보고서에는 북한은 물론 중국과 일본의 항모전단과 수상함 전단, 지상발진 항공기와 미사일 전력 등에 대한 위협 분석을 실시한 뒤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최소 작전능력을 일일 소티 생성률, 항공기 요격 능력, 동시 대함 공격 능력, 일일 대지 타격 능력 등으로 구분해 이를 일일 작전요구 충족률로 정리했다. 6대 정도의 F-35B를 탑재하는 경항공모함의 작전 능력은 그야말로 참담한 수준이다. 일일 소티 생성률과 항공기 요격 능력은 요구치의 18%, 대함 공격능력은 요구치의 9%에 불과했다. 즉, 중국이나 일본의 함대와 교전하기 위해서 최소 100의 작전능력이 요구될 때, 이 경항공모함의 능력 충족률은 18% 수준에 불과해 주변국 함대와의 전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사실상 전력으로서 의미가 없는 이러한 경항공모함 1척을 보유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예산은 약 2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영국공군 도입가격 기준 F-35B 전투기의 대당 가격은 대당 2,800억 원에 육박한다. 6대를 도입할 경우 전투기 값만 1조 6,800억원이다. 여기에 F-35B 운용을 위한 선체 개조 비용 역시 수 천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언급한 호주 ASPI는 호주해군 상륙함에 F-35B 운용을 위한 개조 비용으로 약 5,000억 원이 소요된다고 추산했다. 포클랜드 전쟁 이후 지난 1980년대 유행처럼 번졌던 경항공모함은 작전능력 부족과 생존성 취약 등의 이유로 현재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도태되고 있는 개념이다. 최초로 경항공모함을 도입했던 영국은 인빈시블급 경항모를 조기 퇴역시키고 7만톤이 넘는 퀸 엘리자베스급 항모를 도입 중이며, 수직이착륙기인 YAK-38 전투기를 운용했던 구소련의 키예프급 경항공모함도 사라진지 오래다. 또다른 경항모 운용국인 이탈리아와 스페인, 호주 역시 경항모 운용 계획을 축소하거나 이미 도입된 함정을 항모 대신 다목적 지원함 또는 헬기항모로 운용하는 추세다. 즉, 2만톤도 되지 않는 독도급 수송함을 개조해 경항모로 만들겠다는 발상은 30년 전 유럽에서 유행하다 사라진 낡은 개념을 21세기에 흉내내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외국에서는 이미 도태되어 사라진 무기나 개념을 마치 최신 트렌드인 것처럼 가져와 ‘명품무기’로 포장해 운용하다 낭패를 보는 사례는 한국형 무기 개발의 고질병 중 하나다. 독도급을 개조해 경항모로 쓰려는 이번 구상 역시 마찬가지다. 미래 안보환경이 한국해군에게 요구하는 수준은 정규항공모함인데, 예산 좀 줄여보겠다고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개념을 가져와 배를 만들어내면 안보는 안보대로 실패하고, 혈세는 혈세대로 낭비될 뿐이다. 2인승 스포츠카를 아무리 개조한다한들 일가족이 탈 수 있는 패밀리카가 될 수 없으며, 미니밴을 아무리 개조한다한들 스포츠 레이싱용 레이싱카가 될 수 없는 이치처럼 모든 군함에는 고유의 형상과 기능이 있다. 독도급은 처음부터 헬기 탑재 상륙함으로 설계·건조되었다. 따라서 독도급은 상륙함으로 두고, 해군에 항모가 필요하다면 처음부터 항공모함 고유의 형상과 기능을 갖춘 별도의 배를 만드는 것이 타당하다. 독도급을 경항모로 개조해 운용하는데는 막대한 혈세가 들어갈 것이다. 막대한 혈세로 만들어진 이 비효율적인 군함이 과연 주변국들에게는 얼마나 큰 비웃음거리가 될 것인지, 우리 국민들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가 될 것인지 정책 결정론자들의 심사숙고가 필요한 때이다. 이일우 군사 전문 칼럼니스트(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베를린의 우울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베를린의 우울

    베를린에는 황제들이 살던 궁전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궁전은 폭격으로 심하게 손상됐다. 동베를린을 점유한 동독 당국은 부서진 궁전을 아예 철거해 버렸다. 통일 후 정부는 이 궁전을 되살리기로 했고, 현재 거의 완공 단계에 도달했다. 여기서부터 브란덴부르크문까지 이어지는 대로가 운터덴린덴이다. 도로 분리대 대신 피나무가 늘어선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서 사람들은 그늘을 거닐며 숨을 돌릴 수 있다. 대로 끝에 이르면 그리스식 열주가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브란덴부르크문과 만나게 된다. 이 장엄한 건축물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때 세워졌다. 그의 큰아버지 프리드리히 2세는 46년 동안 프러시아를 다스리며 독일 동북부에 치우친 그저 그런 나라를 유럽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동성애자였던 탓에 후사가 없었다. 큰아버지로부터 탄탄한 나라를 물려받은 운 좋은 조카는 통치 능력은 변변찮았으나 베를린을 수도의 위상에 걸맞은 도시로 개조한 공적을 남겼다. 습지에 세워진 베를린은 제방과 운하, 목조 다리가 뒤엉켜 있었다. 왕이 벌인 건축 사업의 첫 번째 결실이 브란덴부르크문이었다. 1791년에 완공된 브란덴부르크문은 독일 근현대사의 역사적 현장이 돼 왔다. 베를린을 점령한 나폴레옹 군,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독일 병사들, 기세등등한 나치스, 소비에트 기를 펄럭이는 소련군이 차례로 이 문을 지나갔다. 굳게 닫힌 채 냉전을 상징하던 문은 오늘날 평화와 통일의 상징이 됐다. 이 그림은 1920년대의 운터덴린덴을 보여 준다. 코트 깃을 여미고 우산을 쓴 사람들이 총총 지나간다. 원경에 브란덴부르크문이 보인다. 승리의 여신이 모는 사두마차의 실루엣이 뚜렷하다. 줄지어 지나가는 자동차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임을 말해 준다. 전쟁은 독일의 패전으로 끝났다. 독일은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로 따가운 논총을 받았으며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승리를 장담하며 전쟁을 부추겼던 정치가, 장군, 사회지도자들 중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았다. 정치 상황은 어둡고 인플레는 심각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게 우울함이 느껴지는 것은 괜한 상상이 아니리라. 게오르크 그로스, 오토 딕스 같은 젊은 화가들은 전후 베를린의 황폐한 모습에 절망하고, 중산층의 이기적인 뻔뻔함에 분노했지만, 노년에 접어든 인상주의 화가는 우수에 잠겨 축축한 거리를 바라볼 뿐이다.
  • 마크롱 “다자주의 위기… 유럽 안보, 美에 맡길 수 없다”

    마크롱 “다자주의 위기… 유럽 안보, 美에 맡길 수 없다”

    “극단주의 속 새로운 유럽 안보 기준 필요” 동맹 무시하는 트럼프에 강한 불만 표출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태도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며 유럽의 독자적인 안보 체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위대한 프랑스’를 천명한 만 40세(1977년 12월 21일생) 지도자의 패기로 동맹국들을 무시하는 미국 대신 핵보유국인 프랑스가 중심이 돼 유럽 안보를 이끌어야 한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가디언 등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파리 엘리제궁으로 재외공관장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유럽은 더이상 안보를 미국 군사력에만 의존할 수 없다”며 “극단주의와 민족주의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유럽 안보의 새 기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무엇보다 미국의 정책 탓에 다자주의가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등을 통해 유럽에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를 구축해 온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후 방위비 분담을 압박하는 상황에 대한 반발로 풀이된다. 특히 나토 내 유럽 동맹국들에게 국내총생산(GDP)의 4% 규모의 방위비 지출을 강요하며 무역전쟁까지 벌이는 미국에 대한 불신을 표출한 것이다. 마크롱 정부는 5년간 공공재정 600억 유로(약 77조 6900억원) 감축에 나선 와중에도 국방비만큼은 2025년까지 2950억 유로(약 382조원)를 투입하기로 해 ‘안보 홀로서기’에 적극적이다. 프랑스는 또 핵무기 현대화에 370억 유로(약 48조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유럽연합(EU) 28개국 가운데 영국 등을 제외한 25개국은 지난해 12월 유럽 각국의 무기 국방 체계를 일원화하고 장비·기술 공동 개발을 추진하는 안보국방협력체제(PESCO)를 창설했다. 이 체제의 궁극적 목표는 독자적인 EU군 창설이다. 한편 이날 루마니아를 방문한 하이코 마스 독일 외교부 장관도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을 미국의 적으로 묘사하고 나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유럽 국가들을 자극해 왔다”면서 “EU는 방위연합뿐 아니라 공동의 외교안보 정책도 개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이해하려 하지 마세요... 음악은 느낌이니까”...스타 타악기 연주자 콜린 커리

    “이해하려 하지 마세요... 음악은 느낌이니까”...스타 타악기 연주자 콜린 커리

    “우선 음악을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세요. 각자의 방식으로 느끼고 반응하면 됩니다.” 현대음악과 친해지는 방법에 대한 스코틀랜드 출신 타악기 연주자 콜린 커리의 답변이다. ‘타악기 마술사’, ‘가장 대담한 연주자’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그가 30일과 다음달 2일 서울시향과의 협연을 앞두고 한국을 찾았다. 인간의 목소리를 제외하고 ‘두드리면’ 모든 게 악기가 되는 타악기는 인류 최초의 악기였을지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타악기는 현대음악에서 존재감이 더욱 커졌다. 대부분 악기의 연주법이 한계에 이르자 현대 작곡가들은 타악기의 음색과 음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가 연주하는 많은 곡이 대부분 현대음악에 집중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슈토크하우젠, 메시앙, 피에르 불레즈 등 아방가르드 작곡가들이 새로운 사운드를 찾아나섰고 타악기에 주목하게 됩니다. 다른 악기와 달리 아직 기본적인 연주법에 머물던 타악기에는 더욱 혁신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죠.” 그는 ‘북채를 쥐고’ 태어났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아주 어린 시절부터 드럼 연주에 푹 빠져 살았다. 여섯 살 때 피아노도 배웠지만, 그의 외향적 성격은 앉아서 연주하는 악기보다는 타악기가 더 어울렸다. 재즈 드러머 진 쿠르파 등의 연주를 보며 독주자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한 그는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앞다퉈 초연을 맡기는 스타 연주자로 성장했다.그가 이번 내한에서 선보이는 곡은 미국 작곡가 마이클 도허티의 ‘타악기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UFO’다. 미확인비행물체(UFO)의 존재에 집착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현대악기 ‘워터폰’ 등 10여개의 타악기가 나온다. 타악기 독주자는 영화음악, 빅밴드, 광고음악 등 미국 대중문화의 다양한 요소를 차용한 사운드를 쉴 새 없이 선보인다. 이 같은 곡이 관객 입장에서 어렵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콜린 커리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면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타악기는 음악을 더 친근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도구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팀파니를 관현악곡에 처음 사용한 영국의 헨리 퍼셀과 함께 타악기 연주자에게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 스트라빈스키를 꼽았다. 특히 초연 당시 공연장에서 난동이 일어나기도 했던 스트라빈스키의 발레음악 ‘봄의 제전’은 타악기의 원시성을 깨우는 음향, 극한의 리듬감 등으로 듣는 이를 흥분시킨다며 “음악의 룰을 바꾼 ‘게임 체인저’”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연 5일 전인 지난 25일 입국했다. 무대에 워낙 많은 악기가 오르다 보니 공연장 세팅과 각 악기의 상태 점검 등 준비할 게 많기 때문이다. 콜린 커리는 “세계 각국의 여러 문화에서도 고유의 타악기를 볼 수 있다”며 “인천공항에서도 한국의 타악기가 전시된 것을 봤는데 연주하고 싶었지만 차마 경찰에 끌려갈 수는 없어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고 말하며 크게 웃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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