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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플러스] 삼랑성문화축제 13~14일 전등사서

    인천 강화도 지역축제인 제7회 삼랑성 문화축제가 13·14일 전등사에서 ‘천년의 기다림 새로운 시작’이라는 주제로 열린다. 팔만대장경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과 난치병 척수성근위축증 어린이 돕기 프로그램.13일 오후 5시30분 개막돼 가수 유익종, 이치현, 조덕배, 임지훈의 ‘가을음악회’가 이어진다.14일 오전 10시 호국영령들을 위한 영산재가 열린뒤 마당극 ‘청아청아 내딸 청아’ 공연에 이어 화문석·짚풀공예, 천연염색 체험행사가 진행된다.6∼14일엔 팔만대장경 판각지 강화도의 위상을 알리기 위한 판각 시연과 전시회, 조선왕조실록 사고본 사진전도 열린다.(032)937-0125.
  • [지방시대] 청주직지문화특구에 거는 기대/남기헌 충청대 행정학부 교수

    마침내 중앙정부가 직지(直指)의 진가를 알았나 보다. 지난 6월 인쇄문화산업진흥법을 만들더니 며칠 전에는 지역특화발전특구위원회를 열어 청주 고인쇄박물관 주변을 ‘청주직지문화특구’로 지정했으니 말이다. 청주직지문화특구는 문화자원을 바탕으로 지정된 국내 최초의 특구여서 의미가 크다. 이는 지역의 조그마한 시민단체가 문화운동으로 시작한 직지찾기운동이 그 시발점이었다. 풀뿌리민주주의 실천이 낳은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 직지가 갖고 있는 의미와 가치를 곱씹어 보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문화유산임에 틀림이 없다. 그 이유는 직지가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 78년 앞선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점이다.2001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그 가치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직지는 인류사에 정보의 생산, 기록, 교류를 촉진하는 매개체로서 학습의 양과 질을 가속화시켰다. 현대의 지식정보사회를 이루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정보기술과 인간의 창조적 지식을 통합하여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도 제시해 준다. 청주시와 시민단체가 정부의 관심 밖에 있던 직지의 세계화를 통해 청주의 세계화 전략을 구상하고 다듬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직지의 가치를 문화·경제와 연계해 청주의 세계화에 경쟁력을 확보한 뒤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산업도시이자 세계 최고 인쇄문화도시로 승화시키자는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이번 특구지정으로 중앙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을 받게 되면서 이러한 프로젝트가 힘을 얻게 됐다. 직지특구의 계획에는 2010년까지 총 130억원을 들여 직지문화특화거리를 조성하고 기반조성 사업, 직지문화 관광상품 개발 및 홍보 사업, 관광자원 개발과 투어링사업 등 3개 분야에서 10여개 사업을 추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구지정이 지방정부 경쟁력을 가져오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청주시가 정부의 특구지정 원칙과 방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할 때에 그 효과는 극대화될 것이다. 청주직지문화특구 지정이 직지가 지니는 상징성과 위상에 걸맞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보완이 필요하다. 먼저 선택과 집중이다. 행사를 위한 행사로 추진되고 있는 직지와 관련된 사업을 재정비해 직지의 위상에 걸맞은 사업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시민사회단체, 학술단체, 언론기관 등이 나눠먹기식으로 추진하고 있는 직지 관련 사업과 예산도 재정비해 효율적으로 배분해야만 한다. 청주시 중기 재정계획과 도시 기본계획과정과의 연계도 필요하다. 둘째 청주직지문화특구의 지리적 범위가 재정립돼야 한다. 현재의 특구범위로는 직지를 통한 인쇄문화도시의 초석을 다지는 데 역부족이다. 추진 과정에서 기존 특구범위에다 그동안 연구돼온 직지문화지구를 도시계획에 담아 이를 연계한 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셋째 직지문화특구 지정이 지니는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관련 전문가들의 관심과 배려, 중앙 정부의 인식 제고를 통한 행정력과 예산 지원도 절실하다. 특히 직지 관련 사업을 전반적으로 기획 운영하는 청주고인쇄박물관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완해야 한다. 세계문화유산을 관리 운용하는 중심축다운 지위와 조직, 시설, 연구인력이 필요한 것이다. 독일 마인츠시가 구텐베르크의 세계화 100년 역사를 통해 세계적인 인쇄문화도시로 거듭난 점에 비춰 보면 청주직지문화특구의 지정은 청주시의 미래이자 희망이다. 직지의 가치를 살려 청주의 희망이 한국의 희망으로, 더 나아가 세계 지식산업의 희망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남기헌 충청대 행정학부 교수
  • ‘화성성역의궤’ 세계기록유산 등재

    조선 정조시대 지어진 수원 화성의 건축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가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2일 경기 수원시에 따르면 화성성역의궤는 지난달 14일 유네스코 제8차 세계기록유산국제자문위원회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결정된 뒤 1일 공식 등재됐다. 화성 건설이 끝난 지 5년 만인 순조 1년(1801년)에 편찬된 화성성역의궤에는 화성 건설 계획에서부터 진행상황, 공사비, 공사 실명제, 공역 참가자 작업일수까지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또 공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그림까지 그려져 있어 조선시대의 문화, 과학, 건축, 예술 등 수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화성성역의궤가 등재됨에 따라 우리나라는 ▲훈민정음 해례본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 ▲승정원일기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등 총 6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수원 김병철기자kbchul@seoul.co.kr
  • 영화 ‘오즈의 마법사’등 38건 세계기록유산 등재

    넬슨 만델라의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투쟁 기록, 할리우드 영화 ‘오즈의 마법사’,1000년된 이란의 서사시 등 38건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19일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만델라의 투쟁 기록을 구텐베르크 성경, 바르샤바 게토(유대인 거주지)의 기록물과 함께 세계기록유산 명단에 올렸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른 기록물은 158건이 됐다. 유네스코의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작품들은 디지털 복사본이 제작된다. 이번에 선정된 기록물들은 이란의 유명 시인 페르도시(941∼1020년)의 ‘왕들의 책’, 기원전 1800∼1500년부터 내려온 힌두경전 ‘리그베다’,1066년 노르만의 영국 침공을 묘사한 ‘벽걸이 융단’ 등이다. 이밖에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나온 영화 ‘오즈의 마법사’, 세계 최초의 장편영화 호주의 ‘켈리 갱 이야기’도 포함됐다. 우리나라 기록물로는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 승정원 일기, 직지심체요절에 이어 조선왕조 의궤와 해인사 고려대장경판이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조선왕조 의궤·고려대장경판 ‘세계기록유산’ 등재

    조선왕조 의궤·고려대장경판 ‘세계기록유산’ 등재

    조선왕조 의궤(儀軌)와 합천 해인사 소장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諸經板)’이 각각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도 프리토리아에서 11일부터 닷새 일정으로 회의를 갖고 있는 유네스코 제8차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는 14일 회의에서 한국이 지난해 3월30일 외교통상부를 통해 등재 신청한 이 두 건을 모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키로 최종 결정했다. 이로써 한국은 1997년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을 필두로 직지심체요절(2001년), 승정원일기(2001년)에 이어 모두 6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8만 7000여장은 불교경전 일체를 한자로 새긴 현존 세계유일의 목판본으로 그 내용이 광범위하고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고유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한자권에서 불교가 지속적으로 포교될 수 있도록 기여한 것이 인정돼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결정됐다. 왕세자 책봉과 같은 각종 왕실 의식을 그림으로 정리한 조선왕조 의궤류는 유교문화권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대표적인 기록물인 점 등이 높이 평가돼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의궤류는 등재소위원회 1차 평가에서만 해도 유교적 행동규범과 의례를 보여주는 우수한 유산이기는 하나 그런 의례들이 유교문화권에서만 실행되었고, 외교의전은 조공체계가 있는 아시아 국가에 한정돼 적용되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세계유산 대신 아시아·태평양지역목록으로 등재하라는 권고가 있어 등재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등재 목록에 오를 의궤류는 규장각 소장 546종 2940책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287종 490책이다. 이번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조선왕조 의궤와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의 중요성이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프리토리아(남아프리카공화국) 연합뉴스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2)오대산 史庫 유감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2)오대산 史庫 유감

    조선왕조실록이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데에는 후세에 넘겨주기 위한 치열한 노력도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잘 알려져 있는 대로 조선왕조실록은 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 인천 강화 정족산과 강원 평창 오대산, 경북 봉화 태백산, 전북 무주 적상산 등 4곳의 사고(史庫)에서 보관됐습니다. 모두 외적의 침입이 어려운 섬이나, 깊은 산골짜기입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이 세계사에 유례가 드물게 방대한 기록유산으로 각광받는 동안 사고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미술사학자인 우현 고유섭(1905∼1944)은 1934년 월정사를 거쳐 상원사로 가는 길에 오대산사고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는 “사람 없는 곳에 담 벽은 흩어지고 기와도 떨어진 소름끼치는 건물이 있을 뿐”이라고 스산하기만한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월정사 사적기’에는 조선총독부 관원들이 사고(史庫)와 선원보각(璿源寶閣)에 있던 사책 150짐을 동민들을 동원하여 주문진항으로 옮긴 것이 1914년 3월이라고 씌어있으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20년 동안 크게 쇠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추사 김정희(1786∼1856)는 ‘포쇄를 하러 오대산에 오르다(曝登五臺山)’는 시에서 ‘법운(法雲·부처)이 지켜주고, 선(仙·산신령)이 밝게 빛나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당시 추사는 3년마다 임명되었다는 포쇄관(曝官)으로 오대산사고를 찾았습니다. 책을 꺼내 볕에 말리고, 바람을 쐬어주는 소임입니다. 그렇게 당당하던 오대산사고는 우현이 지나친 이후 언제인지도 모르게 주저앉고 맙니다. 오대산사고 뿐만이 아닙니다. 정족산사고는 병인양요 당시 외규장각이 프랑스군에 약탈당하는 동안에도 건재했지만 1930년대에는 흔적만 남았습니다. 태백산사고는 해방을 전후해 불타고 집터는 산사태에 묻혀버렸습니다. 적상산사고 역시 황폐화했습니다. 사고는 1990년대 들어서야 다시 존재가 부각됩니다.1992년 오대산사고가 복원됐고,1999년에는 정족산사고가 옛 모습을 찾았습니다. 적상산사고는 1992년 양수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수몰됐지만, 자리를 옮겨 1999년 다시 지었습니다. 태백산사고도 1988년 발굴작업이 이루어진 데 이어 2008년까지 복원한다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건물만 다시짓는 것을 복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장서가 없는 도서관이 도서관이 아니듯, 사서(史書)없는 사고는 빈 창고에 불과합니다. 마침 전북 무주군청이 올해 조선왕조실록을 복제해 적상산사고에 비치하고, 사고를 지키는 장면 등을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하는 등 관광자원화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고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 같아 반갑습니다. 하지만 사고 4곳의 복원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기보다 정부 차원에서 보다 일관성있게 추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고가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높이는 현장이 되어야지, 실망만 주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dcsuh@seoul.co.kr
  •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언어·예술상징(하)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언어·예술상징(하)

    “임금이 당나라 태종의 고사(古事)를 본받아 즉위 이래의 사초(史草)를 보려고 하니, 대신이 상언하여 옳지 못하다 하고, 대간에서도 또한 상서하여 옳지 아니하다고 하였으므로, 임금이 이에 따랐다.(태조실록,4년)”조선 시대의 격동기였던 조선 초기 실록의 한 부분이지만 정작 실록 속 주인공인 태조는 보지 못한 기록이다. 이번에 소개할 우리 민족 문화상징들인 조선왕조실록, 한글, 풍물, 탈춤, 판소리 등을 돌아볼 때, 우리가 민족문화 내용들을 보다 제대로 안다면 오늘날의 우리 문화 생활을 보다 넓고 깊게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에서 철종에 이르기까지 472년 간에 걸친 25대 임금들의 기록이다. 이 방대한 역사 기록을 세계에서도 인정하여 유네스코도 1997년 이를 세계기록유산의 하나로 등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사실 외에도 조선왕조실록은 그 편찬 과정이나 관리 면에서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긴다. 조선왕조실록은 사관의 사초들에 의해 대부분 이뤄지는데, 사관은 비록 정7∼9품의 하급 관리였지만 항상 궁중에 들어가 왕과 신하들이 국사를 논의하는 것을 기록하였으며 그 잘잘못까지 직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이뤄진 사초나 실록은 위의 태조 때의 기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비록 군왕이라 할지라도 볼 수 없었다. 군왕은 ‘국조보감(國朝寶鑑)’ 같은 역사책을 보는 것 정도에 머물러야 했던 것이다. 또한 실록들은 4∼5사고로 여러 질들이 분산 보관되었기에 한두 사고의 멸실에도 실록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실록과 관계되는 정신과 지혜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 한글 세계 현존 문자중 가장 과학적 한글은 오늘날 국외에서 더 많이 알아주는 문자다. 현재 세계에는 5000여개의 말들이 있지만, 이 중 100여개만 문자를 가지고 있다. 또 이들 문자들 중 특정한 시기에 과학적 방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한글뿐이다. 이러한 한글의 과학성과 실용성은 1446년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 반포 이후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맹률을 보이는 것으로 분명히 입증되었다. 그래서 유네스코에서도 현재 ‘세종대왕 문맹 퇴치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제정하여 해마다 각 나라의 문맹 퇴치에 공이 큰 사람들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자랑스러운 일이다. 거문고는 고구려의 왕산악이 진(晉)나라의 칠현금을 개조해서 만들었다 하는데, 예부터 ‘모든 악기들 중의 으뜸(百樂之長)’이라 하였듯, 우리나라의 전통 악기들 중 대표적 악기다. 대금은 우리나라의 전통 관악기들 중 폭넓은 음악 세계를 실현할 수 있는 악기다. 대금과 같이 대(竹)로 만들어, 가로 부는 적(笛)류는 다른 나라들에도 많으나, 우리나라의 대금은 음량이 풍부하고, 취공(吹孔)이 넓어 입술로 소리들을 조절할 수 있으며, 다른 나라의 적(笛)류에는 거의 없는 청공(淸孔)이 있어 거칠면서도 청아한 소리를 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청공은 갈대 속청을 붙여 만든 구멍이다. 풍물은 우리가 흔히 ‘농악’이라고 하는 것이다. 풍물에는 우선 정초 집돌이 때 치는 ‘매구(埋鬼)’와 모심기나 김매기 두레 때 치는 ‘풍장’ 두 가지가 있다. 정초의 매구는 한 해가 오기 전인 섣달 그믐께에 잡귀잡신들을 몰아내는 중국의 나례(儺禮)에서 유래한 것인데, 충렬왕 21년에 이미 민간의 나례를 금했다고 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부터 이미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두레 때 치는 풍장은 두레가 나면 마을신이기도 한 농신을 농신대에 모셔 가기에 이에 따른 풍악과 두레패들의 오락으로도 활용되는 과정에서 내려온 것이다. 이 중 본격적인 풍물이 이뤄지는 것은 매구를 칠 때다. 정초에 마을의 집집들을 돌다 보름께는 ‘판굿’이라 하여 밤새도록 수준높은 풍물가락들을 치며 노는 관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 섣달 그믐 잡귀신 몰아내는 ‘매구’ 탈춤은 각 민족마다 있는 것이고, 각 민족에게 또한 나름의 역사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전승되는 세계의 탈춤들을 보았을 때 우리나라의 봉산 탈춤, 양주 별산대 놀이, 통영 오광대 놀이 등과 같이 잘 짜여지고 발달된 탈춤들은 없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판소리도 또한 세계적인 고급 성악 예술이다. 판소리는 조선 후기에 성립된 우리나라의 성악 예술의 하나로 강력한 발성과 고도의 음악 세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서양의 오페라 정도가 이러한 판소리에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수준 높은 세계적 예술이다. 그래서 2003년 판소리는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만 왜 이런 판소리와 같은 수준높은 성악 예술이 성립되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는 그 당시 다른 나라에는 없는 광대 집단이란 특수 신분 집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광대 집단이라면 하나의 신분적 조건으로 광대의 역을 공식적으로 담당한 집단인데, 다음에 보듯 1846년 경기도에만 해도 4만명에 달했고,1894년 갑오경장 때 비로소 ‘창우’ 곧 ‘광대’ 신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이들 광대 집단은 신라 진흥왕 때부터 있었던 산대희를 위해 필요한 집단이었다. 산대희는 나라에 큰 경사가 있거나 중국 사신이 올 때 행해졌는데, 커다란 산 모양의 구조물을 설치하고 그 위와 아래에서 가무백희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조선 시대에는 600명 정도의 광대들이 동원되었듯, 이미 그 이전에도 수백 명의 광대들이 동원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러한 산대희 등을 공식적으로 담당하는 하나의 신분 집단으로서의 광대 집단이 성립된 것이다. 중국의 경우는 송나라 중기에 관청에 소속된 이러한 하나의 특수 집단으로서의 광대 집단은 해방되었다. 중국에서는 민간에서도 광대들이 많았기에, 유사시에는 이들을 동원하면 되었으므로 종래와 같이 관에서 이들 광대 집단을 잡고 있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민간에서의 광대들이 별로 없었기에, 근대 무렵인 1894년까지도 관에서는 이러한 산대희를 하는 광대 집단을 하나의 신분 집단으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신분 집단으로 수많은 광대들이 근대 무렵까지도 있었던 것은 세계 민속 예능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판소리를 비롯하여 앞서 든 풍물, 탈춤 등이 현재 세계 민속예술에 있어 그 수준이 월등히 높은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 판소리 유네스코 인류구전유산 선정 이러한 광대 집단의 사람들로는 경기이남의 세습무 집안 사람들과 경기이북의 재인촌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에 대한 광대 집단적 접근은 최근에야 비로소 이뤄지고 있다. 아리랑은 애국가 다음가는 우리 민족의 노래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아리랑’으로 부르는 노래는 1926년에 만들어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으로 서양 음악식으로 작곡된 것이다. 그러면 민요 아리랑과 이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1864년 경복궁 중건 때 강원도 사람들이 그 지역에서 벌채한 나무를 뗏목으로 만들어 한강을 타고 내려와 공사장으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서울에서 오늘날 ‘정선 아리랑’이라고 하는 강원도 아리랑을 불렀다. 이에 황현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 고종이 아리랑을 즐겼다 하듯, 서울 지역에서는 이 강원도 아리랑을 경토리로 선율을 조금 바꿔 부른 이른바 ‘본조 아리랑’을 성립시켰다. 이후 이러한 본조 아리랑이 지방에도 퍼져 밀양 아리랑, 진도 아리랑 등이 성립되었다. 당시의 이러한 아리랑 문화와 관계해 나운규는 자신의 영화 제목을 ‘아리랑’이라 했고, 그 주제곡 ‘아리랑’도 크게 성공했던 것이다. 이번에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100대 민족 문화 상징은 사실상 문화관광부가 정리하고 있는 민족 문화 상징의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 민족 문화 상징이 어떻게 100개에만 머물겠는가? 또 사실 많을수록 더 좋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라도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문화적 차원에서 또다시 돌아보게 된 것은 참으로 뜻 깊은 과정이었다. 손태도 문화재 전문위원
  • [씨줄날줄] 기호 가나다/임태순 논설위원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서로 뜻이 통하지 않아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이가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글자를 만들었다.”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대왕은 서문에서 한글의 철학적 배경이 위민사상에 있음을 밝혔다. 한글의 우수성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선 ㄱ,ㄴ,ㄷ 등 글자를 만든 원리와 형태를 자세히 밝힐 정도로 과학적이다. 외국인들도 한국말을 배우기는 어려워도 글자가 되는 원리나 발음 등은 금방 깨치게 된다고 말한다. 이미 있는 문자가 아닌 새로운 것에서 글자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란 평가도 빠지지 않는다. 언젠가 국립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구내 매점에서 한글문양의 우산을 보고 깜짝 놀랐다. 노란 바탕에 아로새겨진 ㄱ,ㄴ,ㄷ,ㄹ,ㅇ 등 한글의 자음은 독특한 조형미로 시선을 잡아끌었다. 아 한글이 저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몸을 떨었다. 그후 한글문양이 새겨진 지갑이나 가방 등을 자주 보게 된다. 독일의 한 백화점에서는 훈민정음 글꼴을 전시하고 있을 정도라고 하니 한글의 디자인으로서의 빼어남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글꼴을 다양하게 변형시킬 수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한글의 기초가 되는 가, 나, 다…는 순서를 정하는 데에도 자주 쓰인다. 학교 다닐 때 번호는 이름의 가, 나, 다순으로 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도 가, 나, 다 순이 적용됐다. 새로 중선거구제가 도입되면서 한 정당에서 복수의 후보자가 나오자 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별 고유 숫자에 후보자 이름의 가, 나, 다순으로 투표용지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묘한 조화를 부렸다. 많은 사람들이 제일 앞에 있는 사람에게 기표를 하는 바람에 이름이 빠른 사람이 무더기로 당선됐다. 그래서 지방의원은 이름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좀더 짚어보면 이는 주민들이 주권행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후보자와 공약을 면밀히 살펴보지 않고 그저 앞에 있는 사람에게 표를 찍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묻지마 투표였다는 비난도 쏟아진다. 세종대왕이 어리석은 백성을 구하기 위해 한글을 만들었는데 500년이 지난 지금도 백성들은 여전히 우매한 모양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약탈 국보’ 민간교류로 환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史庫本)의 반환은 지난해 10월 돌아온 북관대첩비와 더불어 한·일 민간차원의 협상을 통해 이끌어낸 문화재 반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안휘준(명지대 석좌교수) 문화재위원장은 “이번 실록 반환을 계기로 민간 교류를 통한 문화재 환수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도쿄대 서고에 오대산 사고본 47책이 보관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올해 초. 그때부터 오대산 월정사를 비롯한 불교계와 시민단체, 정치권 등은 이를 돌려받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왔다. 지난 3월 불교계를 중심으로 출범한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는 실록 환수를 위해 도쿄대와 수차례 협상을 했으며 정치권에서는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김원웅 열린우리당 의원 등이 참여했다. 환수위측은 불법으로 유출된 문화재 반환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환수가 이뤄지지 않으면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환수위의 적극적인 요청에도 불구하고 도쿄대는 최근까지도 “문부과학성, 문화재청, 외무성 등 관계당국과의 협의에 상당한 시일이 요구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도쿄대가 신중한 태도를 취했던 것은 한국측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줄 경우 일본 내 우익세력이 반발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도쿄대의 이같은 고민은 서울대가 개교 60주년을 맞아 양국의 대표적 국립대간 학술교류협력 차원에서 고문서를 기증받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해결됐다.‘약탈문화재 반환’의 의미보다 학술교류를 강조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대와 도쿄대 총장이 최근 적극적인 학술 교류를 약속하면서 반환 분위기를 조성했으며,2004년 도쿄대가 법인화되면서 학교 자산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 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김기배 문화팀장은 “그동안 서울대보다 환수위가 협상에 적극적이었지만 향후 실록 보관 및 활용 등을 고려할 때 일본측이 서울대 규장각을 선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동안 실록 반환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온 환수위측은 조선왕조 시절 오대산 월정사가 실록 사고 관리를 맡아 왔다는 점을 근거로 ”반환되는 실록은 서울대 규장각이 아니라 월정사가 소장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환수위 실무자들이 30일 3차 협상을 위해 일본으로 떠난 상태에서 일본측이 일방적인 결정을 내렸다며 크게 실망하는 분위기다. 환수위 공동의장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도쿄대의 결정은 협상주체인 우리 환수위를 무시하는 처사”라면서 “일본측이 아량을 베푸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경 김기용기자 chaplin7@seoul.co.kr ●조선왕조실록 조선시대에 왕위를 물려받은 왕이 선대 왕대에 일어난 일들을 편년체로 정리한 것들을 실록이라 하며 이런 실록을 총칭해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한다. 조선 왕은 27명이 재위했으므로 27가지 실록이 존재해야 하지만 우리가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하면 26대 고종과 27대 순종실록은 제외한다. 마지막 두 왕에 대한 실록이 엄연히 있는데도 고의로 누락시키는 까닭은 이 두 실록이 일본 제국주의시대에 편찬되었기 때문이다. 목활자로 인쇄된 실록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전주 사고(史庫)만이 살아남은 교훈을 거름삼아 깊숙한 산중으로 옮겨져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 강화도 사고에 보관된다. 현재는 남한에 강화 정족산본 실록 1707권 1187책과 오대산본 27책 등이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돼 있고, 국가기록원 부산기록정보센터에 태백산본 1707권 848책이 보관돼 있으며 모두 국보 151호로 일괄 지정돼 있다.1997년에는 훈민정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북한 사회과학원에서도 적상산본 실록을 보관하고 있다. 이번에 반환되는 것은 조선총독부 시대에 일본에 반출된 오대산본 47책이다.
  • 몽골 기록유산 보존 팔걷은 한국

    몽골 기록유산 보존 팔걷은 한국

    사라질 위기에 처한 몽골 기록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우리나라가 발벗고 나섰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최근 유네스코몽골위원회 등과 함께 몽골 울란바토르에 있는 몽골 교육·문화·과학부 회의실에서 몽골 기록유산 보존을 위한 워크숍을 개최했다고 10일 밝혔다. 한국의 박물관·도서관 등 기록유산 관련 기관 전문가 11명과 몽골 기록유산 관리 실무자 등 35명이 참가했다. 워크숍에서는 기록유산 보존의 중요성과 우리나라 기록유산 보호 정책과 제도, 고전적 자료조직·관리, 특수매체 기록물의 보존관리 방안, 환경에 따른 지류문화재의 손상원인 이해 및 조사실습 등 기록유산 보존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강의와 발표가 이뤄졌다. 이와 함께 자문회의에서는 몽골 기록유산 보존, 한·몽골 기록유산 분야 협력, 몽골 세계기록유산 등재 방안 등이 논의됐다. 유네스코한국위 허권 문화팀장은 “1941년부터 러시아 문자를 차용, 기록유산 관리·보존이 문화 전수를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몽골은 역사적·문화적 유산을 공유하고 있는 한국의 기술과 전문성에 많은 기대를 갖고 있다.”면서 “워크숍을 계기로 몽골 기록유산 보호·관리에 맞는 특성화 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몽골은 동서 문화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자담바’‘몽골 누츠 노보츠’ 등 많은 기록유산을 보유했지만 보존설비 부족에 따른 관리 소홀과 노하우 부족으로 아직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재 보존·교류를 위한 국제협력은 몽골 외에도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최근 베트남 문화공보부와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제도 및 정책, 보수기술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문화유산 분야 교류·협력 약정’을 체결했다. 양국은 무형문화재 전승 및 활용, 건조물 보존·관리, 왕경유적 공동 발굴, 세계유산 관리 등 다양한 교류를 추진할 예정이다. 국립공주박물관도 최근 일본 규슈 국립박물관과 학술문화교류 협정을 체결하고, 문화재 공동 조사 및 양 박물관 공동 주관의 문화재 교류 특별전 개최, 연구자 교류 등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조선 최고의 명저들/신병주 지음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조의궤. 최근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 조선시대 최고의 기록물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은 일본 도쿄대로 반출된 오대산 사고본에 대한 환수가 추진되고 있고, 의궤는 실록에 이어 세계기록유산으로 신청된 상태다. 조선사가인 서울대 규장각 신병주 학예연구사가 쓴 ‘조선 최고의 명저들’(휴머니스트 펴냄)은 이들 실록과 의궤를 비롯, 조선의 시대상과 그 시대 사람들의 지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록물과 서책 14권을 엄선, 역사학자의 눈으로 쉽게 풀어헤쳤다. 기행문에서 일기, 보고서, 문집, 관찬기록 등 국보급 기록물에서 당대 베스트셀러까지 명저들의 특징과 함께 관점과 맥락, 인물과 사건, 현재적 의미까지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평소 고전을 어렵게 느낀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조선이 기록과 서책의 문화역량을 가질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조선왕조 500년간 이어진 방대한 편찬사업의 산물인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문치주의 확산의 촉매제였다. 학자 등 개인들도 문집이나 일기를 통해 자신의 학문과 사상을 기록, 책으로 남겼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건국의 주역 정도전과 의녀 장금도 등장한다. 실록 뿐 아니라 승정원일기에 담긴 국왕 비서들의 기록에서는 세종은 육식주의자, 영조는 채식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최초의 체계화한 성문헌법인 ‘경국대전’에는 당대 사람들의 합리성이 담겨 있다. 조선왕실의 행사기록을 생생하게 담은 ‘의궤’는 당시의 높은 그림 수준을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 시대에도 삶의 모습을 후손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를 과제로 던져준다. 국가적인 토목공사의 추진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한 ‘준천사실’에서는 왕들의 국가경영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신숙주의 ‘해동제국기’나 최부의 ‘표해록’은 축적된 지적 역량과 해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보여준다.‘난중일기’에는 장군 이순신의 진솔한 모습이 담겨 있으며, 허균의 ‘홍길동전’은 변화와 개혁을 갈망하는 지식인의 궤적을 보여준다. 백과사전인 ‘지봉유설’과 ‘성호사설’을 통해서는 조선시대에 대한 지식을 폭을 넓힐 수 있다.18세기 우리 국토를 답사하면서 산천·풍수·인심을 논한 ‘택리지’는 당대 사대부들이 너도나도 책을 손에 들고 국토를 유람하는 붐을 낳았던 베스트셀러였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은 궁중생활의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며, 박지원의 진취적인 세계주의 사상이 담긴 ‘열하일기’는 세계화와 정보화의 과제를 안고 있는 오늘날에 필요한 새로운 지혜를 던져준다. 우리 선조들이 남긴 기록유산들 속에는 삶의 가치와 역사,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대를 이끌어간 고민과 사상의 깊이를 책 한권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있다.1만 50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110) 不立文字(불립문자)

    儒林(530)에는 ‘不立文字’(아니 불/세울 립/글월 문/글자 자)가 나오는데,佛道(불도)의 깨달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므로 말이나 글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不’은 나무·풀의 ‘뿌리’를 본뜬 象形字(상형자)였으나 ‘아니다’라는 뜻의 不定詞(부정사)와 發音(발음)이 같아 假借(가차)해 쓰면서 ‘아니다’라는 뜻으로 굳어졌다.‘不知其數(부지기수: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많음),不遠千里(불원천리:천리 길도 멀다고 여기지 않음),不朽(불후:썩지 아니함이라는 뜻으로, 영원토록 변하거나 없어지지 아니함)’ 등에 쓰인다.‘立’은 서 있는 사람의 모양이다. 용례에는 ‘立身揚名(입신양명:출세하여 이름을 세상에 떨침),立錐之地(입추지지:송곳 하나 세울 만한 아주 좁은 땅),竪立(수립:꼿꼿하게 세움)’ 등이 있다.‘文’은 가슴에 文身(문신)을 새긴 사내가 버티고 선 모양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文券(문권:땅이나 집 따위의 소유권이나 그 밖의 권리를 증명하는 문서),文豪(문호:뛰어난 문학 작품을 많이 써서 알려진 사람)’ 등에 쓰인다. ‘字’는 ‘집’이라는 뜻의 ‘ ’(면)과 아이가 본뜻인 ‘子’(자)를 합쳐 ‘집안에서 아이를 기르다.’에서 ‘기르다’라는 뜻을 추출하였다.‘撫字(무자:어루만지듯이 잘 돌보아 기름),衍字(연자:글이나 문장에서,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 자리에 군더더기로 들어간 글자),題字(제자:서적의 머리나 족자, 비석 따위에 쓴 글자)’등에서 쓰임을 알 수 있다. 선종(禪宗)은 ‘敎外別傳(교외별전),不立文字(불립문자),直指人心(직지인심),見性成佛(견성성불)’을 宗旨(종지)로 삼는다.敎外別傳은 말이나 문자를 쓰지 않고, 따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진리를 전하는 일이다.敎外(교외)의 법은 석가의 마음을 직접 다른 사람의 마음에 전하는 것을 말한다.不立文字(불립문자)는 문자로써 가르침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以心傳心(이심전심) 이루어짐을 의미한다.直指人心(직지인심)은 눈을 외계로 돌리지 말고 자기 마음을 곧바로 잡아서 자기 자신이 본래 부처였음을 파악하라는 것이며,見性成佛(견성성불)은 인간이 본성을 깨치면 누구나 부처가 된다는 말이다. 直旨人心과 관련하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金屬活字本(금속활자본) ‘直旨’에 대하여 살펴보자.‘直旨’는 1372년 白雲和尙이 성불사에서 편찬한 것을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하였다.‘直旨’의 체제는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흥덕사에서 간행된 금속활자본은 현재 상권은 전하지 않고, 하권 1책(총 38장)만이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전하고 있다.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초대 주한대리공사로 부임한 콜랭 드 플랑시가 우리나라에 근무하면서 수집한 것중 하나였다. 이것을 다시 앙리 베베르가 구입하여 소장하다가 遺言(유언)에 따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직지는 1901년 모리스 쿠랑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으나 실물과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1972년 ‘세계 도서의 해’를 기념하기 위한 ‘책’전시회에 출품됨으로써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직지를 알리기 위한 충청북도의 노력으로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가치를 세계적으로 公認(공인)받았다. 김석제 경기도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씨줄날줄] 세계무형유산/이용원 논설위원

    우리 조상이 이룬 문화적 업적이 다른 문명권의 그것에 비해 떨어진다고 오해하는 이가 있다면, 그에게 유네스코(UNESCO)가 보존·계승을 지원하는 인류 공동의 유산에 우리것이 얼마나 많이 포함돼 있는지를 알아 보라고 권하고 싶다. 유엔의 교육·과학·문화 전문기구인 유네스코는 인류 유산을 3가지로 구분해 지원한다.‘세계유산’‘세계무형유산’‘세계기록유산’이 그것이다. 1972년 유네스코 총회의 협약에서 비롯된 세계유산은 유적·건축물 등을 대상으로 한 문화유산과 자연 상태인 자연유산, 문화·자연적 가치를 함께 지닌 복합유산으로 다시 분류해 지정한다. 국내에서는 1995년 종묘, 해인사 장경판전, 불국사와 석굴암 등 3가지가 함께 지정된 것을 필두로 창덕궁, 수원 화성, 경주 역사유적지구, 고창·화순·강화 고인돌유적 등 문화유산이 7종이나 존재한다. 또 기록물에 한해 지정하는 세계기록유산에는 1997년이후 훈민정음 해례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직지심체요절 등 4가지가 등재됐다. 가장 늦게 출범한 세계무형유산(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탄생에는 한국의 공헌이 대단히 컸다. 우리는 오랫동안 유형문화재와 더불어 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 제도를 운영해 예능·기능의 보존·전수에도 심혈을 기울여 왔다. 이 인간문화재 제도를 세계적으로 확산해 무형유산 보호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우리 정부는 유네스코에 권유했고, 유네스코 집행이사회가 1993년 이를 받아들이는 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세계무형유산 제도의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유네스코는 2001년부터 2년에 한번 세계무형유산을 지정했는데 우리나라는 1차에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을,2차에 판소리를 등재했으며 며칠전 강릉단오제를 세번째로 지정받았다. 이번 선정을 앞두고 중국은 단오절이 자국에서 유래했기에 한국의 단오제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거세게 반발했으며, 국제사회도 한국이 3차례 연속 지정받는 데 대해 견제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목표를 이룬 것은 그만큼 강릉단오제가 높은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인류의 유산에서 우리가 차지한 몫은 인근 국가보다 결코 작지 않다. 조상에게 감사 드릴 일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씨줄날줄] 언어 쓰레기/육철수 논설위원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글, 무슨 말을 쓰고 있을까. 최악의 경우 제대로 된 글을 갖고 있지 않았던 청나라 만주족처럼 국가와 민족이 모두 사라지는, 험한 꼴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민족이 겨우 명맥을 유지했더라도 한자문화에 흡수돼 살다가 일제강점기엔 일본 문자를 썼을 테고, 광복 후에는 영어·러시아어·중국어 같은 외국의 문자를 썼을 가능성이 높다. 고유의 말에다 어느 나라 문자인지도 모를 ‘잡탕언어’가 우리의 정신(혼)을 어지럽혔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지구상에는 6800여종의 말이 존재한다. 국가 수가 230 안팎임을 고려할 때 같은 나라에도 여러 가지 말이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말이 있더라도 그걸 종이에 옮길 만한 문자를 가진 민족은 그리 많지 않다. 인간은 말과 글을 통해 생각을 다듬고 정서를 나누며,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사회를 발전시켜 나간다. 언어가 국가적·민족적으로 가장 소중한 가치요, 문화유산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한글 창제 오백쉰아홉 돌을 맞아 되돌아보니 한글사랑이란 말을 꺼내기조차 부끄럽다. 보도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포털과 커뮤니티·게임업체들이 한글 오·남용과 언어폭력 등 ‘언어쓰레기’를 치우는 데 연간 2900억∼5800억원의 정화비용을 쓰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일반 기업의 인터넷 사이트나 인터넷 쇼핑몰, 공공기관 등에서 허비하는 돈까지 합치면 언어쓰레기를 치우는 데만 경제적 손실이 수조원은 족히 될 것이라고 한다. 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들은 한글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문자’(미국 언어학자 레드야드),‘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 가운데 하나’(영국 언어학자 제프리 샘슨),‘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문화학자 존 맨)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유네스코는 1997년 훈민정음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했다. 그뿐인가. 한글에는 사람과 하늘과 땅, 그리고 겨레에 대한 사랑이 들어 있다. 최첨단 정보화 시대를 선도하는 세계적 문자로도 입증됐다. 그런 한글을 쓰레기로 만들어 욕보이려면 차라리 글문을 닫는 게 낫다. 말과 글은 사람의 인격과 품위다. 늘 바르고 깨끗하게 사용하는 습관이 그래서 중요하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서울국제도서전’ 아이 손잡고 책속으로 나들이갈까

    다음주엔 아이들 손을 잡고 서울 삼성동 코엑스로 가보자. 새달 3일부터 8일까지 코엑스 태평양홀과 인도양홀에선 ‘문화페스티벌’을 표방한 ‘2005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린다. 국내외 500여개 출판사가 선보이는 책도 구경하고 다양한 이벤트도 즐길 수 있는 기회. 입장료도 받지 않으니 온 가족이 나들이하기에 부담도 없다. 이번 행사엔 국내관 348개 부스에 192개 업체, 국제관 88개 부스에 20개국 164개사가 참여한다. 또 책의 아름다움을 내세운 ‘북아트전’이 14개국 56개사가 참여한 가운데 60개 부스에서 별도로 열린다. 지난해 보다 90여개사 정도 참여업체가 늘었다. 국제도서전으로 승격된 후 올해로 11번째로 열리지만 아직 전체 규모도 외국의 유명 도서전에 비해 작고, 외국 업체 참여 비중도 낮아 국제도서전으로는 미흡한 게 사실. 그래도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단행본 출판사의 참여가 크게 늘어 좀더 다양한 책을 구경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엔 참여업체가 아동·교육 및 단체 부문에서 60%에 달하고 단행본·종합 부문의 업체는 40%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단행본·종합 비중이 65%로 크게 늘었다. 이는 행사를 주관하는 대한출판문화협회 집행부가 올해 단행본 출판사 중심으로 바뀐 것이 크게 작용했다. 이번 도서전은 ‘문화 페스티벌’을 표방한 만큼 문학행사를 포함한 다양한 이벤트를 풍성하게 준비했다. 우선 전시행사로 우리 작가 친필(육필)원고전을 마련했다. 윤동주 김소월 유진오 황순원 기형도 박목월 김동리 이효석 채만식 등 작고문인과 박완서 박경리 이문열 김훈 조세희 한승원 조정래 최인훈 등 생존문인들의 육필원고를 직접 볼 수 있다.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을 맞아 한국에서 출간된 안데르센 작품 및 일러스트 원화를 선보이는 특별전도 열린다.‘인어공주’‘성냥팔이 소녀’‘미운오리새끼’‘빨간 구두’ 등 주옥같은 작품과 그림들을 보며 동심의 세계로 빠져보는 기회를 맛볼 수 된다. 유명 저자들과의 만남 시간도 갖는다. 책에 사인을 받고 사진도 함께 찍는 프로그램. 신현림 함정임 이원복 등 11명의 문인이 참여한다. 작가 당 100권의 책을 선착순으로 공짜로 나누어주고 사인도 해준다. 함께 찍은 사진은 바로 출력해 액자에 넣어준다. 이와 별도로 태평양홀에 위치한 이벤트홀에선 참가사별로 마련한 저자 간담회나 소규모 강연회 등이 매일 3∼4회 열린다. 이밖에 청주 고인쇄박물관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直指’(직지) 전시 및 금속활자 체험프로그램, 독서단체들이 참여해 독서문화사업 등을 소개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또 관람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각종 문화상품과 상품권, 생활용품 등 다양한 경품도 나누어준다.(02)735-5651.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유네스코 자문위원에 서경호교수

    서경호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자문위원회 위원에 임명됐다. 이 위원회는 세계기록유산 선정과 함께 사업 전반에 대한 자문과 평가를 담당한다.
  • [씨줄날줄]다시 보는 한글/손성진 논설위원

    사용하는 인구순으로 볼 때 한국어는 중국어,스페인어,벵갈어,영어,힌디어,포르투갈어,러시아어,일본어 등에 이어 세계 12위라고 한다.그러나 한글은 세계 최고의 문자다.한자처럼 어려운 글을 배우지 않아도 되는 한국인은 문자만큼은 축복받은 민족이다.간결하고 쉬운 한글 덕에 우리의 문맹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1%대다.영어를 정확히 읽고 쓰지 못하는 미국인은 20%나 된다고 하니 비교할 만하다.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 언어학자들에 의해 공인됐다.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고 유네스코는 우리의 한글날에 문맹 퇴치에 공이 큰 사람에게 ‘세종대왕상’을 수여하고 있다.국제기구가 왕의 이름으로 수여하는 상은 세종대왕상밖에 없다고 한다.어느 유명한 언어 학자는 한글은 너무나 완벽해서 매우 사치스러운 글자라고 말했다.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언어학 대학이 세계 모든 문자의 순위를 매겼는데 1위는 한글이라고 한다.한글은 컴퓨터와도 가장 잘 어울린다.한글의 업무 능력은 한자나 일본글보다 7배 이상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한글은 왜 우수한가.한글은 창시자가 있는 유일한 문자다.로마문자가 수천년 동안 변하고 있는 불완전한 문자인데 비해 한글은 완전한 문자다.글자를 만든 원리가 매우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다.한글 자모 28자는 몇 개의 기본자와 그에서 파생시켜 만든 글자로 구성됐다.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음소문자다.한글로 적을 수 있는 소리는 8800개나 된다.일본어는 300개,한자는 400여개밖에 안 된다고 한다.표음문자인 한글은 하나의 자음과 모음이 하나의 소리를 갖는 명확한 글자다. head와 heal에서 ea의 발음이 다르듯이,영어는 그렇지 않다. ‘세종어제 훈민정음’이라고 하였듯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었다.세종대왕은 실제 뛰어난 음운학자였다.세종이 집현전 학자들을 독려해 한글을 창제,반포한 날이 양력 1446년 10월9일이다.한글이 고조선의 ‘가림토(加臨土) 문자’를 모방했다는 설도 있다.세종실록과 훈민정음 반포 서문에 옛 전(篆)자를 모방했다는 기록도 있다.그러나 다소 참고는 했는지 몰라도 모방은 아니고 한글은 분명 창조다.한글날만큼은 한글의 우수성을 되새겨 보고 잘못 쓰는 현실을 반성하는 마음을 가져보자.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華城 세계유산 트리플 도전

    경기도 수원시는 화성(華城)에 이어 화성 관련 기록과 무형유산 등도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 등록을 추진키로 했다고 24일 밝혔다. 화성은 지난 1997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추가 등록을 추진중인 유산은 화성 축성 당시인 1794∼1796년의 모든 기록을 적어놓은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10권)와 뒤주에서 숨진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수원행궁에서 치른 8일간의 행적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10권) 등 2건의 기록이다.이들 기록은 사용된 물품·비용,노동자 이름과 복무일수,회갑연의 반찬과 조리방법까지 상세히 작성해 놓은 데다 그림까지 삽입해 놓아 세계기록유산으로 손색이 없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들 책은 모두 한글로 번역돼 발간됐으며,유네스코에 등록하기 위한 영어번역 절차를 앞두고 있다. 또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과 정조대왕의 화성 능행차 역시 조선시대의 큰 행사로,현재 기록에 따라 재현하고 있어 세계무형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문화재위원이면서 한림대 석좌교수로 재직중인 한영우(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박사는 “현재 재현하고 있는 정조대왕의 능행차 등을 기록과 똑같이 말 800필이 동원되는 등 장엄한 행사로 치른다면 세계유산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수원 화성사업소 김준혁 학예연구사는 “화성 관련 기록과 무형 유산이 세계유산으로 등록된다면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3개 유형이 전부 등록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면서 “앞으로 서울대 규장각과 공동으로 학술세미나 등을 개최한 후 유네스코에 접수하고,심사를 거쳐 2007년 정식으로 등록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유네스코 ‘直指賞’ 제정

    |파리 함혜리특파원|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가 기록문화 유산 보호를 권장하기 위해 ‘직지상’(直指賞)을 제정했다. 유네스코는 28일 집행이사회를 열고 세계 기록유산보호를 권장하고 기록문화를 촉진하기 위해 ‘유네스코 직지세계기록유산상’(UNESCO/Jikji Memory of the World Prize)을 제정키로 결정했다. 이로써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인 직지심경에 대한 국제적 인지도가 크게 높아지고 기록유산 분야에서 문화 한국의 이미지가 부각될 것으로 기대된다. 직지상은 2년에 한번씩 기록문화 보호에 기여한 이들에게 수여되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가 수상자를 선정한다.상금은 3만달러이며 시상식은 청주시가 지정하는 ‘직지의 날’에 청주나 파리에서 열릴 계획이다. 한국 정부와 청주시는 직지심경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하고 세계 기록유산보호에 공헌하기 위해 그간 유네스코 직지상 제정을 추진해 왔다.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직지심경은 2001년 9월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제도는 97년 출범한 세계유산보호 분야의 주요사업 중 하나로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임명하는 전문가 14명으로 구성된 국제자문위원회(IAC)가 등재 대상 유산을 선정한다. lotus@
  • “세계의 자랑 ‘직지’ 꼭 찾아야죠”/ ‘직지포럼’ 강태재 회장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독일·1400∼1468)의 금속활자요.” “아닙니다.우리나라의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입니다.” 중·고교 역사시간에 선생님과 학생들이 한번쯤 나누었을법한 대화다.그런데 왜 충북 청주에서 이 직지심체요절에 목을 매는 걸까.현재 이 금속활자로 찍은 책이 청주 ‘흥덕사’란 절에서 인쇄됐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곳에서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은 상·하 2권이 있었으나 하권만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상권은 오리무중이다.상권을 찾고 직지를 세계에 널리 알려보겠다고 지난달 29일 창립한 모임이 ‘직지포럼’이고 강태재(姜泰載·58)씨가 회장을 맡았다. 강 회장은 “직지를 찾고 세계화하려는 것은 한국의 자랑거리이자 청주의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보다 78년 앞서 강 회장은 “세계에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 자랑은 한글과 직지뿐”이라고 주장한다.직지는 고려말인 1377년(우왕 3년) 7월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최소 78년이 앞서는 금속활자인 셈. 강 회장은 “단 한번의 인쇄에 그친 목판활자에 비해 금속활자는 정보의 대량 전달시대를 열어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평가된다.”며 “그 선두에 있는 직지는 우리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슬기로운 문화민족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러나 “구텐베르크는 면죄부를 인쇄하고 성경을 팔려는 상업적 차원에서 금속활자를 만들어 생활 속에 뿌리내려 매체 혁명으로 이어졌으나 직지는 절간의 한 행사로 끝났다.”고 아쉬워했다. 그동안 직지는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됐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었을 뿐 흥덕사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를 못했다.그러던 게 85년 한국토지공사가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양병산 기슭에서 택지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서원부(西原府) 흥덕사’라고 새겨진 금구(禁口·사찰에서 예불시간 등을 알릴 때 치던 징 모양의 종)가 한 귀퉁이가 찢겨나간 채 발견됐다.서원부는 청주를 일컫는 지명이다.이곳이 절터였음을 알 수 있는 주춧돌도 나왔다.강 회장은 “당시 흥덕사에서 현존하는 직지와 함께 인쇄된 직지는 대략 50질에서 100질 정도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올라 흥덕사 위치가 발견되자 당시 문화공보부는 흥덕사지에 대한 개발중지 및 보존지시를 내리고 86년 흥덕사지 1만 711평을 사적 제315호로 지정했다.청주에서는 청주시민회(현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가 처음으로 직지 찾기에 나섰다.96년 11월 ‘직지찾기운동본부’를 구성하고 문화재청,조계종·태고종 등을 방문하면서 활동을 벌였다. 충북도는 도지사 명의로 전국에 직지찾기에 협조를 당부하는 서한을 보내고 직지찾기 엽서도 만들어 배포했다.직지를 찾는 사람에게 1억원의 포상금을 주겠다는 독지가도 나오는 등 당시 직지찾기의 열기는 무척 뜨거웠다. 92년에는 직지의 제작과정 등을 전시하는 청주고인쇄박물관이 문을 열었다.강 회장은 “이 박물관 이름은 ‘직지박물관’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흥덕사 절터가 발견된 이후 직지에 관심을 가졌지만 단체에 참여,활동하기는 3∼4년 전부터입니다.” 그는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의 직지찾기운동본부 상임위원으로 직지 찾기에 동참했다.비록 직지를 찾는데는 실패했지만 지역 각계의 활동 덕에 2001년 9월에는 직지를 유네스코(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기록문화유산’에 올렸다.직지의 원이름은 ‘백운화상 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 抄錄 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백운화상’이란 스님이 중국에서 참선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중국의 ‘불조직지심체요절’에 자신의 해석을 붙여 제자들에게 부처님의 말씀과 선사들의 법어를 가르치기 위해 엮은 책이다.1888년 프랑스 초대 대리공사가 수집해 가져간 하권도 당초 첫 장이 떨어져 나갔으나 조선시대 소장자가 ‘직지(直指)’라고 표지를 써 붙였다고 전해진다. ●9월4일 ‘직지의 날’ 축제 계획 “직지찾기운동본부가 해체된 뒤 2001년 ‘직지와 문화’라는 직지찾기 단체를 만들려다 실패,못내 아쉬웠던 것이 이번에 직지포럼을 만든 계기입니다.” 직지포럼의 멤버는 모두 26명.‘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과 교수및 문화운동가 등이 참여하고 있다.강 회장은 청주상공회의소 지역경제연구소장으로 있다.95년 ‘시와 실험’이란 잡지를 통해 등단,올 가을 첫 단편소설집도 낼 계획이다. 그는 오는 9월4일 열리는 첫번째 ‘직지축제’ 집행위원장을 맡았다.청주시는 조례를 통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9월4일을 ‘직지의 날’로 정하고 축제를 열기로 했다. 강 회장은 “청주하면 ‘직지’를 떠올릴 정도로 이미지화하겠다.”며 “자치단체와 연계,직지사랑을 시민문화운동으로 확대하고 직지 관련 국제학술대회와 홍보,외국어 번역 등을 통해 직지를 세계화하는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청주 이천열기자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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