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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명유래:1(서울 6백년만상:32)

    ◎궁정동/궁궐물 긷는 우물 있던 곳/피난 인조,말위서 팥죽 먹어/말죽거리/서인들,반정 다짐후 칼 씻어/세검정 서울 종로구 북악산 아래에 위치한 궁정동은 경복궁을 비롯한 주변의 궁궐에서 물을 길어다 쓰는 우물이 있었다해서 붙여진 이름. 궁정동은 철옹성같은 권력자를 몰락시키면서 이름을 얻었고 또 그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그리하여 궁정동은 절대 권력자들이 영락의 골로 빠져든 역사의 현장으로 서울6백년사에 권력부침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첫번째 권력자가 몰락한 때는 조선조 숙종시대로 그 인물은 장희빈이었다.장희빈이 하늘을 찌르듯한 권력을 누리고 있을 당시 영조의 생모 최씨는 대궐에서 쫓겨난 인현왕후를 사모하게 되고 그 사실이 장희빈에게 전해져 혹독한 고통을 받았다. 하루는 숙종이 낮잠을 자다가 내전앞마당의 큰 항아리속에서 용이 기어나오려다 빈사상태에 이르는 꿈을 꾸었다.깜짝 놀라 꿈에서 깬 숙종은 꿈의 현장이 실제와 똑같고 꿈이 너무 생생해 기이하다고 여겨 꿈에서 본 현장을 찾았다.그 곳에는 실제로 큰 항아리가엎어져 있었고 그 독을 젖혀보니 궁녀 최씨가 꿈속의 용처럼 빈사지경을 헤매고 있었다.숙종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장희빈을 멀리하게 하고 끝내는 사약을 내렸다. 그 2백50여년뒤인 1979년 10월29일엔 역시 절대권력자였던 박정희대통령이 이 동네에서 비명에 갔다. 궁정동은 이른바 대통령의 안가로 세인들의 궁금증을 자아 냈지만 문민정부는 두명의 절대권력자가 힘없이 쓰러져갔던 그 자리를 모두 헐어내고 이른바 효자동 사랑방과 무궁화동산으로 가꿔 시민들에게 공개했다.6백년만에 세인들의 발길을 받아들인 셈이다. 역사적인 사연에서 이름을 얻은 곳도 있다.지금은 사통팔달의 관문으로 변해버린 양재동사거리는 엊그제까지만해도 흔히 말죽거리로 불렸다.지금부터 3백70년전인 1624년 광해군을 반정으로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인조는 논공행상의 불만에서 비롯된 이괄의 난을 만났다.이괄은 도성에 입성,결국 「일일천하」로 끝났지만 인조는 서둘러 피난길에 나섰고 급작스레 나선 피난길이라 임금만 간신히 조랑말 한필을 구해 몸을 실었을 뿐 대신들마저 백성들 틈에 끼어 남대문을 지나 한강을 건너야 했었다.임금일행이 천신만고끝에 지금의 양재동사거리에 도착했을 때는 그 다음날 여명이 밝아올 무렵이었다.이 소식을 들은 김이등 부근 유생 6∼7명이 급히 팥죽을 쑤어 임금에게 바치니 임금은 말에서 내릴 틈도없이 말위에서 부랴부랴 죽을 마시고 과천으로 떠났다해서 말죽(마죽)거리라는 땅이름을 얻었다.즉위초부터 이괄의 난을 겪은 인조는 즉위 중년에 병자호란을 만나 또 한차례에 피난길에 나선다.남한산성으로 황급하게 피난길에 올랐던 임금일행이 지금의 오금동인 백토고개에 이르러 잠시 쉬어가게 됐다. 구중궁궐에서 천하를 호령만하던 임금인지라 갑자기 먼길을 달려 오금이 너무 아팠던지 백토고개에 이르러 엉겁결에 「아이구 내 오금이야」하고 가쁜숨을 내쉬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백토고개일대를 오금골이라 부르게 됐고 지금의 오금동이 유래됐다고 전한다. 역사적인 사건으로 이름을 얻은 곳으로는 종로*구 자하문밖 세검정(선검정)을 빼놓을 수 없다.본래 자하문밖 일대를 탕춘대라고 불렀으나 당시 서인들이 인조반정을 다짐하며 칼을 갈고 이 냇물에 씻었다해서 이때부터 세검정으로 불렸다.
  • 전과기록조회/이성관계추적/전화도청까지/개인정보 불법거래 22명구속

    ◎흥신소 13곳,경관과 결탁/경찰컴퓨터 이용 사생활기록 유출/“보안누설 행위 특감”/경찰청 긴급지시 전과기록·주민조회 등 개인정보를 빼내 기업체 및 개인에게 돈을 받고 팔아온 불법흥신업소 및 심부름센터가 성행하고 있다(서울신문 3월11일자 보도)는 지적에 따라 검찰이 일제수사에 나서 업자·경찰관·전화국직원등 모두 31명을 적발,이가운데 22명을 구속했다. 서울지검 강력과(성백영과장)는 31일 불법흥신업소 및 심부름센터 13곳을 적발,이중 종로구 부암동 「코델」대표 김명준씨(33)등 업자 16명을 신용조사업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하고 2명을 불구속입건하는 한편 설춘식씨(35)등 3명을 수배했다. 검찰은 또 돈을 받고 이들에게 전과기록 및 주민조회기록 등을 빼내준 경찰관 11명을 적발,서울 서대문경찰서 세검정파출소 모종범경장(55)등 3명을 뇌물수수혐의로 구속하고 청량리경찰서 이동수경장(34)등 4명을 불구속입건하는 한편 4명을 해당서에 통보,자체 징계토록 했다. 이와 함께 청량리전화국 영업과장대리 한동규씨(44·4급)등 한국통신공사 직원 3명을 배임수재 등 혐의로 구속했다. 이날 구속된 용역업체대표가운데 「스피드라인」대표 임현식씨(44)는 경찰관을 통해 전과기록을 유출했을 경우 실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한 「형의 실효에 관한 법률」이 지난해 국회에서 의원입법으로 개정,발효된 이후 적발된 첫 케이스이다. 「코델」대표 김씨는 지난해 1월부터 금융기관·채권자 등으로부터 신용카드연체자 등의 「주민조회」를 의뢰받고 서대문경찰서 전산실 경관과 의경들에게 한건당 1천원씩을 주고 수천여차례에 걸쳐 사생활정보를 빼낸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모경장은 지난해 8월부터 코델 대표 김씨등의 부탁을 받고 경찰전산망을 이용,주소지 등 개인정보를 알려주고 19차례에 걸쳐 모두 1천3백5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다. 청량리전화국 한대리는 지난해 5월부터 전화국컴퓨터망을 이용,스피드라인 대표 임씨등에게 전화가입자의 인적사항 및 주소를 알려주고 모두 1백40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밖에 함께 구속된 「남광용역」대표 허덕규씨(32)는 지난해 8월 전모변호사이름의 도장과 고무인으로 가짜위임장을 만든뒤 동사무소에 제출,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등·초본을 발급받는 등 수십차례에 걸쳐 사문서를 위조해 오다 적발됐다. 검찰조사결과 이들 심부름센터업자들은 단순한 용역업무만 할 수 있는데도 전과조회,특정인 소재탐지,이성관계 추적등 사생활조사는 물론 전화도청까지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15개 지방청에 경찰청은 31일 경찰관이 불법흥신소등과 결탁해 주민조회내용을 누출한 것과 관련,직원들의 보안누설행위에 대해 특별감찰을 벌여 오는 9일까지 보고하라고 전국 13개 지방경찰청에 긴급지시했다.
  • 서울시 초·중등 교장­교감급 인사

    서울시교육청은 25일 국민학교(초등) 교장·교감급 1백38명과 중·고등학교(중등)교장·교감급 63명에 대한 승진및 전보·전직 인사를 오는 3월1일자로 단행했다. ▷초등◁ △영본 김상기△잠신 도재희△영남 송규석△흥일 김성렬△고은 이해성△삼정 이만규△거여 이규현△독립문 이병완△창동 권오용△봉천 진재명△길음 임경보△청룡 심영희△하일 김용규△송중 김홍갑△신구로 김천수△방화 이정세△대림 김영진△창천 이창재△명신 이은수△명덕 김명범△미동 김춘보△신북 김찬유△양명 권일호△신내 이창길△세검정 이강오△면북 이일헌△가산 이명희△난화 서기철△대신 김동환 △신석 이찬우△중마 이석구△중대 이강신△오륜 이일△가원 배동식△석관 이종춘△강월 권혁신△을지 김은식△청량 한정현△백운 김용환△신용산 구본애△역삼 박옥자△영도 유천형△원명 황의범△광남 박은식△상월 조한욱△숭덕 김동소△아주 이규창△한서 차원재△신남성 금기훈△구산 조태길△갈산 김익수△언북 유지우△신방학 남상문△신남 김숙경△구의 유항하△양천 박병춘△양목 서형석△우장 유부상△창서 이홍준△아현 유정자△선곡 지기상△양강 김영삼△언주 박로성△신월 신창재△개포 정훈△서래 김완기△신정 심선영 △강서교육청 이준순 황명자 변정숙 정정헌 박찬성 손호찬△북부〃 하헌태 최금옥 이삼만 공항식 이수철 박권태△남부〃 권석숭 최장호 이우영 백명순△동작〃 이명남 임병수 이민언 이희정 김용운△동부〃 임백호 김세환 김원기 △강서교육청 홍성애△북부〃 한상애 노태창△서부〃문재옥 김평호 이광호 홍봉표 김기태△강동〃 김제문 최기종 우지형△강남〃 송임헌△동작교육청 송태순 심정우 이근선 이수웅 △자양 곽석연△신사 김증회△중랑 윤종길△시흥 구두회 △북부교육청 학무국장 이완주 △강서교육청 박종옥△남부〃 신근우△동부〃 김주남 김종건 이용근 △중부교육청 장학사 최오복△강서〃 〃 최각경△서울시〃 초등장학과 〃 이형직△강동〃 〃 오상탁△강동교육청 장학사 서옥석△동부〃 〃 이복일△북부〃 〃 최선익△서울교원연수원 교육연구사 장재영△동부교육청 장학사 진장관△서부〃 〃 조재욱△동작〃 〃 오효숙△과학교육원 〃 김태서 홍순길 △교육부 정신교육장학관실 교육연구관 김영숙△국립교육평가원 장학사 김지도△강동교육청 〃 박상렬△남부〃 〃 서영석 김군자△서울시〃 초등교직과 〃 유복길△〃 초등장학과 〃 홍대식 △북부교육청 장학사 정종구 중등 △장안중교장 김미자△공릉중〃 고헌식△신방학중〃 김이태△삼정중 윤성하△전농중〃 최문길△동대문여중〃 김성분△당산중〃 박대규△신상중〃 조남기△강남중〃 안정엽△난우중〃 정귀주△영등포중〃 조승관△중계중〃 홍정훈△천일중〃 하석호△방원중〃 신두영△대왕중〃 이종현△문성중〃 윤정옥△종암여중〃 강신호△양화중〃 양원△개봉중〃 유찬영△신양중 황영연△상도중〃 김조령△개포중〃 손상철△영림중〃 윤종영△홍은중〃 이경복△연천중〃 소진률△원촌중〃 김교모△용강중〃 박성순△장승중〃 최창희△성동고〃 김화곤△명일여고〃 김덕순△경기기공〃 장옥용△송파공고〃 박승헌△강남공고〃 신현구△서초전자공고〃 권령목△강서공고〃 신흥균△광양중〃 윤명렬△숭인여중〃 이명숙△신창중〃 김정자△천호중〃 김경수△대청중〃 김중진△신구중〃 한의수△구일중〃 원병엽△중평중〃 김영주△문정중〃 강우희△방이중〃 윤영수△풍납중〃 최락훈△경원중〃 강희돈△대명중〃 명로걸△신동중〃 권용자△신서중〃 지윤호△언남중〃 백필균△사당중〃 강태중△개웅중〃 이치종△금호여중〃 문상렬△역삼중〃 이종면△잠신중〃 조명현△서울특별시 교육연구원 교육연구관 유청자△서울교원연수원〃 김덕자△서울시교육청 학교체육과 장학관 김명완△〃과학교육원 교육연구관 이영일△〃과학기술과 장학관 김우탁△〃중등장학과〃 이중중△〃중등교직과〃 송영재
  • 청남대 머물며 정국 구상/김 대통령/설연휴 정·관가 이모저모

    ◎이 총리,교통상황 보고받으며 독서로 보내/JP는 자택·KT는 제주서 임시국회 준비 ○…김영삼대통령은 설 연휴동안 주로 청남대에 머물며 정국구상을 한 뒤 지난 11일 하오 청와대로 돌아와 아들,며느리,손자등 가족과 함께 윷놀이등을 하며 여가를 즐겼다. 김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맞는 25일 기자회견이나 기자간담회를 통해 구상을 밝힐 예정.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설날 연휴 첫날인 지난 9일에는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 있는 생가를 찾아 성묘를 하고 부친에게 세배. 김대통령은 부인 손명순여사및 아들,며느리,손자등 가족들과 함께 전용기와 헬기·승용차를 번갈아 타고 대계마을에 도착,마을 어귀에 위치한 조부모와 모친의 묘소에 차례로 성묘. 김대통령은 이어 생가를 찾아 마산에서 이곳에 와 있던 부친 김홍조옹에게 세배를 한 뒤 가족들과 점심을 나누며 담소. 김대통령은 이날 고향으로 가면서 생가 이웃이 고향인 삼성전자 수원공장 여성근로자 2명을 전용기와 헬기에 동승토록 해 귀향을 돕기도. 취임 후 두번째인 김대통령의이번 고향방문에는 박상범경호실장,홍인길총무수석,김기수수행실장 등만이 수행. ○…이회창국무총리는 설날 연휴기간동안 삼청동공관에서 관계부처 장관들로부터 전국의 교통상황을 수시로 보고받는 이외에는 다른 일정없이 독서및 정국구상을 하며 모처럼 자신의 시간을 가졌다고 총리실의 한 관계자가 소개. 이총리는 이에 앞서 연휴 첫날인 지난 9일 하오에는 경찰청 상황실에 들러 김화남경찰청장으로부터 설날교통상황과 치안대책을 보고받고 근무자들을 격려. ○…민자당의 김종필대표는 주로 가족들과 함께 조용한 시간을 보내며 임시국회 대표연설문 준비등 정국구상에 몰두.10일에는 큰형 종호씨의 세검정근처자택에서 차례를 지냈고 11일에는 청구동자택에서 손님들을 접대. 문정수사무총장은 부산 지역구에서 각종 단체와 시설등을 돌아보았고 이세기정책위의장은 가족들과 함께 지방에 내려가 조용한 시간을 가졌으며 이한동원내총무는 10일 지역구인 포천을 찾아 선영에 성묘한 뒤 상경,자택에 머무르며 임시국회 전략을 점검. 이만섭국회의장과황락주부의장은 각각 공관과 자택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뒤 11일 하루 지방에서 휴식. ○…민주당의 이기택대표는 지난 9일 김덕규사무총장·김병오정책위의장·박지원대변인등과 함께 서울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등을 찾아 귀성현장을 돌아본 뒤 지하철을 타고 승객들과 교통및 물가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 이대표는 10일 상오에는 동교동으로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을 방문한 뒤 곧바로 제주도로 떠나 휴식을 취하며 임시국회 전략등에 대한 구상에 들어갔는데 13일 귀경 예정.
  • 낙산·인왕·목멱·백악산 경계로 도성형성/한양에서 서울까지 성장과정

    ◎면적 15㎢·인구 5만으로 출발/강남지역 일제말까지 경기도/49년 특별시 승격… “1천만” 거대도시로 한양이 조선의 수도가 된 것은 1394년 11월29일(음력10월28일).정도 당시 서울은 동서남북으로 낙산 인왕산 목멱산(남산) 백악산등 4대산을 경계로한 성벽안 도성과 성저십리라 불린 성밖 10리까지였다. 넓이는 15.2㎦가량으로 지금의 40분의 1가량.한양의 일부면서도 도성과는 구별되던 성저십리는 동으로 왕십리와 청량리,남으론 한남동,서로 용산 마포,북으로는 세검정과 종로구 부암동일대에 이르렀다. 한성부의 영역이었던 한강 북쪽과는 달리 한강진 용산 서강 양화진과 강남의 송파 삼전도 동작진등은 중요 상업거점으로 성장한다.삼남지방의 곡식과 8도의 물산 대부분이 서해와 내륙수로를 이용해 한양으로 수송됐다.이에따라 서울주변의 강촌들은 수송·창고·수탁판매·숙박업등이 집결,경강상이란는 상가를 이룬다.특히 양화·노량·동작·송파·한강진등 5개진은 읍단위 행정관청과 관리들이 파견된 상업및 전략적 거점이었다. 강남의 전역은 조선말기까지 행정구역상 경기도에 속했다.그 때도 지금과 같은 이름이었던 우면산 남태령 관악산등은 과천현에 속했으며 강남이 서울에 일부로 포함된 것은 일제말이 되어서였다. 박석고개와 은평구 진관외동 일대는 경기도 양주목의 신혈면이었고 태릉에는 동북지역으로 가는 역사가 설치돼 있었다.지금의 구리시는 미음읍. 정도당시 인구는 대략 5만명 안팎.조선왕조실록은 태종9년 1409년의 한성부의 호수를 1만1천56호로,세종10년 1428년에는 1만8천5백22호 10만9천3백72명의 백성이 살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1600년대 기록은 양반이 전체인구의 10%였고 상민이 15%,75%는 노비라고 전한다. 한강이 서울을 양편으로 나누듯 한양 중심에는 지금은 복개돼 자취를 찾기 어려운 청계천이 흐르고 있었다.이를 경계로 북쪽은 양반들이,남쪽은 중인과 서민들이 모여 살았다.청계천이남 을지로일대는 서민주택촌.경복궁에서 광토현(현재 광화문네거리)까지 이어진 폭35m의 대로 양쪽에는 이조·예조등 각종 관아가 밀집돼 있었고 광토현에서 동대문까지 폭35∼18m도로변에는 1414년까지 공랑(관에서 세운 상설점포)3천간이 들어선 상업중심지였다.일제가 점령하면서 서울의 종로일대는 한국인 거주지,을지로∼남산기슭∼용산∼원효로는 일본인 거주지역으로 나누었다. 한양은 그때도 역시 교통의 중심지였다.서울과 지방은 6대간선도로인 의주로,경흥 서수나로,평해로,동래로,강화로,제주로(해남∼노량진을 잇는길)로 이어졌고 동북지역과는 금화∼금성∼철령∼안변∼원산로로 연결됐다. 미군정하인 46년8월 경성부에서 서울특별자유시로 선포된 서울은 49년 서울특별시로 승격됐다.면적도 경기도일부를 편입시켜 63년 5백93㎦,73년엔 6백5㎦로 확대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창의문 개방(외언내언)

    서울 청운동 막바지,세검정으로 넘어가는 고개마루에 한양도성 4소문중 하나인 창의문이 있다.자하문으로 더 잘알려진 창의문은 조선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1396년 도성과 궁궐을 짓는 대토목공사를 일으키면서 만들어진 성문이다.그러나 4대문중 북한산에 위치한 북문인 숙정문(처음에는 숙청문)이 창건된지 18년만인 태종때 폐쇄되면서 창의문 역시「산중에 있고 지대가 높다」해서 폐쇄당하는 불운을 겪는다.숙정문을 열어두면 도성 부녀자들의 풍기가 문란해진다는 것이 폐문의 이유였다고 한다. 숙정문과는 달리 창의문은 양주나 고양으로 통하는 길이 연결돼 곧잘 이용되어왔다. 1623년 인조반정때는 지방에서 진군한 군사들이 홍제원에 집결했다가 창의문을 통과해 궁궐에 들이닥쳐 광해군을 왕좌에서 몰아냈다.그 당시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현판이 지금도 걸려있다.근래에 와서 창의문이 다시 폐쇄돼 「금단의 문」이 된 것은 68년 북한의 무장간첩 김신조일당이 청와대 기습을 노려 이곳까지 침투한 1·21사태이후.안보상 이유로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인왕산·북악산과 함께 창의문도 폐쇄조치가 내려졌다.그바람에 사적인 창의문 경내에는 군인막사와 경비초소등 군사시설이 들어섰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어제 굳게 닫혔던 창의문이 개방되었다.일대 9백여평의 소공원까지 아담하게 조성돼 시민들에게 공개된 것이다.새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 청와대앞길,인왕산길,대통령비서실장 공관(효자동 사랑방)개방등 일련의 청와대주변공개조치에 따른 것이다. 때마침 내년은 서울 정도6백년.갖가지 기념행사가 준비되고 있는중에 유서깊은 사적인 창의문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어 한결 더 뜻깊다.도성의 4소문중 현재 남아있는 것은 서문인 창의문과 동남문인 광희문(일명시구문)뿐이다.그중에서도 문루와 함께 완벽하게 원형을 갖추고 있는 곳은 창의문이다.
  • 마음의 고향을 앗겨간다(박갑천칼럼)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는 이 곳으로 소풍 왔었다니까.물이 얼마나 맑았던지 몰라.그땐 이 안쪽으로 온통 자두·능금밭이었지.감나무도 많았고 말이야.찻길이 다 뭐야? 걸어다녔는걸.그런데 이렇게 변했어.…』 들을래서 들은 건 아니다.자하문 고개를 오르는 버스 뒷자리에서 하는 말을 그저 주워들은 것뿐이다.말하는 쪽은 외국에서 오래 살다가 온 사람인듯했다.내리면서 흘끗 보니 머리가 하얀 예순 안팎의 노파.동행한 여성은 손아래 친척이었던 게지. 출근해서 신문을 펼친다.예천(예천) 특산물인 은풍(은풍)곶감 만드는 감나무가 해마다 줄어 이제 10그루 정도 남아 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그 곶감은 옛날 임금님께 진사했다는 명물.줄어드는 까닭은 경제성이 없다는데 있다.또다른 지면에는 서울의 명물 먹골배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그 「원산지」인 중랑구 묵동 일대가 택지로 재개발되게 되어 「진짜 먹골배」는 이번 가을로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는 내용.다만 불암산·수락산 기슭 일대가 「새로운 먹골배」산지로 되어 가는 모양이다. 성현은 그의 「용재총화」(용재총화:7권)에서 이런 말을 한다.『무릇 채소나 과실은 알맞은 풍토에 따라서 심어야 그 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그러면서 예를 든다.­『지금의 동대문밖 왕심평(왕심평:왕십리)은 무·순무·배추 따위를 심고 있으며 청파·노원 두 역은 토란이 잘 된다.…정선의 배와 영춘의 대추와 밀양의 밤,순흥의 잣,함양·진양의 감은 일품이다.다른 곳에서도 이런 것들이 나긴 하나 이 고을 것에는 댈 것이 못된다』 특산명품도 시대의 흐름 따라 바뀌는 것임을 알게 하는 글.그때는 정선의 배가 먹골배보다 유명했고 영춘이 보은보다 대추로써,밀양이 양주보다 밤으로써 더 이름난 고장이었던 듯하다.그렇게 변천하는 건 오늘을 봐도 역시 마찬가지.영광굴비의 쇠락 따라 칠산앞바다 파시도 스러졌다.진상품이던 몽탄 숭어하며 서산 어리굴젓도 옛얘기 같이 되어간다.그대신 이젠 풍기·개성인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 여기저기가 인삼명산지로 개발되고 있듯이 갖가지 산품의 새 명산지가 생겨난다. 은풍 곶감 감나무같이 경제성이못따라 없어지는 명물이 있다.영광 굴비같이 자연의 변화 따라 스러져 가는 특산품도 있고.그러나 세검정 자두·서산 어리굴젓·먹골배같이 문명화의 시류 속에서 퇴조를 강요 당하는 것도 있다.비단 명물뿐이 아니다.서울 서린동 낙지골목 같은 명소가 없어지는 것도 바로 그 맥락.그게 다 생멸의 세상사겠거니 하면서도 허전해지는 마음이다.마음의 고향을 앗겨가는 것 같은….
  • 강계·희천 등에 군수산업체 밀집(새로 쓰는 북녁지리지:16)

    ◎자강도:㉻/6·25이후 정밀기계공업 정책적 배치/수전 무계획 증설… 갈수기엔 발전중단 자강도의 산업은 수력발전과 최근 귀순한 김용씨(33)의 기자회견에서도 밝혀졌듯이 무기를 만드는 정밀기계공업을 대표적인 것으로 꼽을 수 있다. ○곳곳에 수력발전소 수력발전은 주로 압록강 청천강 독로강 등의 풍부한 수력을 이용하고 있는데 자체기술과 자재로 건설했다는 독로강발전소를 비롯,중국과 합작으로 세운 운봉발전소(40만㎾),강계청년발전소(24만㎾) 등 중·소규모의 발전소가 여러곳에 건설되었다. 그러나 같은 수계의 강·하천에 여러 발전소를 건설하는 바람에 수량이 감소될 때에는 하류의 발전소는 가동을 중단하거나 발전량의 감소를 초래하는 부작용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강도의 기계공업은 6·25이후 발돋움하기 시작,희천·강계·만포지역에 집중적으로 각종 공장이 건설되었으며 특히 정밀기계분야는 주로 전쟁용 무기를 생산하는 시설로 발전시켰다. 대표적인 시설은 종사자가 6천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희천시의 희천공작기계종합공장과 강계시의 강계기계공장. 희천공작기계종합공장의 주종제품은 유압기계와 피스톤 고속베어링 자동차부품 등. 이 공장은 70년대초 당의 특별지시에 따라 선반 연마반 보링반 등 공작기계 1만대를 생산하는 성과를 올려 북한 기계공업의 「어머니공장」으로 이름나 있다. 이밖에 포탄등을 생산하는 무기공장이 되어버린 강계뜨락또르(트랙터)공장,희천 청년전기공장(지배인 허민선),강계 세균비료공장과 편직공장 등이 있다. 이 생활필수품 가운데 강계의 연필과 포도주,전천의 성냥은 특산물로 꼽히며 외국에도 수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당국은 자강도의 불리한 자연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농업과학연구기관과 육종장 채종장 등을 곳곳에 설치했으나 성과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다. 해발 2백∼8백m에 있는 다랑이땅이 전체농경지 82%를 차지하고 있고 16도이상의 경사지가 23%를 넘는 열악한 실태이다. 도내 랑림 고풍 화평 등지에 아직도 통나무를 생산하는 임산사업소가 있고 통나무자원을 늘려가기 위하여 송원 강계 등지에 조림사업소를 두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의 동맥 만포선 자강도의 교통은 철도가 기본이다. 주요 철도는 만포선(만포∼순천),강계선(강계∼랑림),운봉선(만포∼운봉) 등. 만포선은 서부 산악지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면서 공업지구와 평양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동차 길은 희천∼성간∼강계∼만포 사이,우시∼위원∼만포∼자성∼중강 사이,강계∼화평∼중강 사이,화암∼룡림 사이,초산∼고풍∼송원∼희천 사이 등에 뚫려있다. ○유적 천연기념물 많아 자강도에는 예부터 관서팔경의 하나로 이름난 강계시의 인풍수를 비롯하여 전천군의 학무정,만포시의 세검정 등이 있으며 오가산의 원시림을 비롯하여 60여개의 천연기념물과 1백30여개의 유물·유적이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강계시의 망미정,희천시의 원명사,만포시의 세검정 등이다.
  • 「등록금 투쟁」 불씨가 「치사」로 번져/「강경대군사건」 시말

    ◎총학생회장 구속되자 연일 항의시위/동료화상에 흥분한 전경이 화를 자초 명지대생 강경대군의 치사사건이 학원가는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충격파를 증폭시키고 있다. 이번 사건은 경찰의 과잉진압이 빚은 가장 불행한 사건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의 심각성에 비추어 다시는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는 물론 정치적 결단과 도의적 책임이 뒤따라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번 사건은 등록금의 인상 철회를 주장하며 과격한 시위를 주도한 이 학교 총학생회장 박광철군(22·무역학과 4년)이 경찰에 연행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군은 「등록금투쟁」 과정에서 본관 총장실을 점거,업무를 방해하고 세 차례에 걸쳐 교문 앞 화염병투척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수배됐다가 지난달 24일 하오 상명여대에서 열린 「총장퇴진결의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던 길에 세검정에서 경찰에 연행돼 이틀 뒤 구속됐다. 박군의 연행소식이 알려지자 명지대학생들은 25일 하오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데 이어 26일 하오에도 3백여 명이 모여 「총학생회장 구출을 위한 진격투쟁행사」를 가진 뒤 출동한 경찰에 화염병 3백여 개와 돌 5백여 개를 던지며 격렬하게 대항했다. 이 과정에서 사복경찰중대인 94중대 3소대 소속 배성기 일경(22)이 화염병에 맞고 목과 귀부분에 3도의 화상을 입어 경찰을 자극했다. 흥분한 94중대 3소대원들 가운데 김영순 상경(22·구속) 등 5명은 하오 5시10분쯤 학생들이 교문 왼쪽 50m 지점에서 시위를 벌이다 최루가스에 쫓겨 학교 담벽을 넘어 달아나자 이들을 뒤쫓아가 혼자 뒤처진 강군을 쇠파이프와 각목 등으로 때려 숨지게 했다. 그러나 강군 사망의 간접적인 원인이 된 등록금인상을 둘러싼 갈등은 지난해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생들은 이때 91년도 새학기 등록금을 올리려는 학교측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90년 등록금사용 내역서」를 공개할 것을 학교측에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협의가 결렬되자 학교측은 인상률을 16%로 책정,지난 3월부터 등록금의 수납을 강행했고 총학생회측은 이에 대항해 학교측 등록금의납부거부를 결의하고 자체수납을 위해 총학생회 명의로 온라인 계좌를 개설했다. 이에 학교측은 직권으로 총학생회의 계좌를 폐쇄하고 3차례에 걸쳐 추가등록을 실시,총학생회에 통장을 맡긴 1백여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생들로부터 등록을 받아 95%의 등록률을 확보했다.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학교측이 등록금지출내역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지난해 중앙도서관 증축 등의 예산지출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지난달 19일 본관 총장실의 집기를 모두 끌어내고 총장실을 폐쇄시켰다. 이어 지난달 25일에는 본관 부총장실을 점거,강군사건이 일어나기까지 날마다 20여 명씩 남아 철야농성을 벌여 왔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학내사태에 그칠 수도 있었던 일을 흥분한 몇 명의 전경이 그르친 것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이와 같은 어리석음이 재연돼서는 결코 안 되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진압방법이 크게 혁신돼야 하고 학생들 또한 필요이상 상대방을 자극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는 것이 교훈이라면 교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수서파동」부른 한보 정태수회장은 누구인가

    ◎땅투자로 재미… 철강 인수후 급성장/세리 출신… 79년 은마아파트로 기반다져/철저한 자금관리로 정평… 점술에도 심취 수서지구 택지특별분양 사건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한보그룹의 정태수회장(68)은 땅투자의 귀재로 정평이 나있다. 또 뛰어난 사업 및 로비수완과 함께 자금관리를 철저히 하고 점술을 신봉하는 등 남다른 데가 많은 기업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세무공무원 출신의 정회장은 공직에 있을 때부터 일찍이 부동산에 손을 대기 시작,재미를 보아왔다. 그는 지난 74년 한보상사를 설립,본격적인 기업활동에 나서기 전부터 택시사업과 광산운영에 참여하는 한편 서울 강남지역 등에 많은 땅을 사모아왔다. 정회장이 아파트에 손을 댄 것은 서울 구로동 재개발지역 1천2백평에 1백80가구를 지은 것이 처음이다. 그는 그동안 번돈으로 침수가 잦은 서울 대치동 지역의 땅을 헐값에 사들여 지난 79년 당시 큰 건설업체들이 엄두를 못내던 4천4백여가구의 대규모 은마아파트 분양에 나서 업계를 놀라게 했다. 한보주택이 은마아파트 건설에 착수할 때만해도 불경기로 분양전망이 극히 불투명한 상태였으나 유가와 환율이 크게 오르면서 불기 시작한 아파트붐을 타고 전량분양을 마쳐 주택건설업체로서 확고한 기반을 다지게 됐다. 여기서 챙긴 돈으로 이웃땅을 사들여 미도아파트를 짓는 등 땅에 대한 투자를 계속 늘려나갔다. 그는 땅투자로 성공한 기업인답게 땅을 선택하는 감각과 안목이 뛰어나고 집착이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때문에 건설업게에서는 정회장의 뒤를 따라 땅을 사면 틀림없이 재미를 본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정회장은 택지조성·주택건설에 참여한 다음에는 대금으로 돈으로 받지않고 땅으로 받았다. 또 땅을 고르는데 있어서도 쉽게 집을 지을 수 있는 보통의 택지를 사들인 것이 아니고 당장 주택을 건설하기 어려워 다른 사람들이 매입을 꺼리는 녹지지역을 골라 택지로 용도를 변경하는 노련한 수완을 밝휘해 왔다. 5공화국 시절 내로라하는 대형주택건설 업체들이 추진하다 포기한 서울 반포동 성모병원 뒤쪽의 녹지를 사들여 미도아파트를 지은 것이라든가 세검정 등지의 녹지지역에도 아파트를 건설·분양함으로써 많은 의혹을 사왔다. 이같이 집을 짓기 어려운 녹지에 한보가 아파트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인인 이규동씨와의 친분관계 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정회장은 82년에 한보탄광을 설립하고 84년 금호그룹으로부터 철강업체를 인수,재벌로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같이 부상할 수 있었던 데에는 꼭 필요한 시기에 연도 뒤따랐다. 은마아파트가 히트를 친것도 그렇고 금호그룹으로부터 인수한 철강업체가 철근수요 증가로 많은 이익을 안겨줬다. 그는 자금관리에 철저해 해외출장을 갈 때에는 기간중 자금운용한도를 정해 그 범위안에서 쓰도록 했고 회사직인을 갖고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점술·사주 등에 남다른 집착을 보여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점을 치든가 사람을 고르는데도 관상과 사주를 보기 좋아했다. 그는 비자금을 별도관리했으며 관공서 등을 출입할 때 혼자 다녀 회사에서도 누구를 만나는지 모를 정도로 기밀유지에 신경을 써왔다. 그동안 녹지에 손을 대 재미를 보아왔던 정회장은 결국엔 이번 수서지구의 녹지로 덜미가 잡혀 위기를 맞게 됐다. 한보그룹은 수서지구외에도 서울 가양동 지역에 정회장 등 임직원 명의로 건축이 불가능한 자연녹지와 밭 등 4만여평의 땅을 더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보그룹이 이같이 서울지역의 녹지에 계속해서 손을 댄 것은 서울시 출신의 고위간부를 사장에 영입하는 등 서울시와의 관계에 상당한 자신을 가진데다 대한하키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넓혀온 지면과 로비기반을 믿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회장이 사운을 걸고 말많은 수서지구의 조합택지분양을 추진한 것은 충남 아산만에 추진중인 대규모 철강단지 조성에 필요한 자금조달에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결국 잡히는 법이다. 또 무리에 무리를 계속하다 끝내는 파국을 맞게될지도 모를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이번 사건은 한보그룹뿐 아니라 경제계에 큰 파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데 또 다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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